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미국 내 메모리 반도체 전(前)공정 생산시설 신설 가능성을 처음으로 공개 언급했다. 동시에 내년 글로벌 메모리 시장이 사상 최악 수준의 수급 불균형을 겪을 것이라는 경고도 내놨다. 최 회장은 13일(현지시간) C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 내 웨이퍼 가공(전공정) 라인 추가 건설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의향은 충분하지만, 조건에 맞는 부지 찾기가 만만치 않다"고 답했다. SK그룹 총수가 미국 전공정 팹 신설 의사를 공식 석상에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건은 물·전력·부지 같은 물리적 조건이 아니라 '생태계'라는 게 최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반도체 공장 하나를 돌리려면 소재·화학물질을 대는 협력사가 600~700곳은 뒷받침해줘야 한다"며 “이런 생태계를 갖출 수만 있다면 어디든 공장을 짓겠다는 게 원칙이고, 지금 미국을 포함해 여러 지역을 함께 저울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서 약 40억달러 규모의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는데, 이는 후공정 투자로 이번에 언급된 전공정 팹과는 별개다. 최 회장이 신규 팹 카드를 꺼낸 배경에는 내년으로 예고된 공급난이 있다. 그는 빅테크를 비롯한 주요 고객사 대부분이 SK하이닉스에 기존 대비 두 배 물량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 생산능력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밝혔다. “모두가 더 많은 메모리를 원하는, 전쟁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는 게 그의 표현이다. 팹 증설에 통상 4~5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당장 내년이 공급 부족의 정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도 내다봤다. 최 회장이 특히 신경 쓰는 대목은 메모리 가격 급등이 완제품 물가로 옮겨붙는 이른바 '칩플레이션'이다. PC·스마트폰·가전은 물론 완성차 업체들까지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물가 전반이 밀려 올라가는 흐름을 우려스럽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역할 중 하나를 “메모리 시장을 지키는 일"로 규정하면서, 대규모 투자를 통해 5년 내 웨이퍼 생산능력을 두 배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재확인했다. 최 회장은 이번 수요 급증을 일시적 호황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로 봤다. 과거 스마트폰 같은 하드웨어는 한 사람이 한 대씩 구매하는 데 그쳤지만, AI 시대에는 한 사람이 여러 AI 모델을 동시에 쓸 수 있고 그 각각이 더 많은 메모리를 필요로 한다는 논리다. 수요의 성격 자체가 달라진 만큼 과거처럼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사이클도 예전과 같은 패턴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다만 훗날 공급과잉으로 돌아설 리스크에 대해서는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는 고객사와의 장기공급계약(LTA) 비중을 늘리는 한편, 메모리와 운영 솔루션을 묶어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형 메모리(MaaS)' 모델 도입도 검토 중이다. 최 회장은 “팹 합작법인(JV) 설립도 선택지 중 하나"라며 “장기공급계약은 매년 갱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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