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전세제도의 효용성이 과거보다 낮아졌다고 평가하며 개인 다주택자 의존도가 높은 임대차시장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구상을 내놨다. 대안으로는 공공임대 확충과 법인형 임대사업 지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서울 전셋값과 월세 부담이 함께 오르는 가운데 기존 전세를 대체할 공공·법인 임대의 공급 규모와 시점, 임대료 수준 등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공공임대 역시 지역과 면적에 따른 수요 불일치로 3만8000가구 넘게 장기 공실 상태다. 전세 비중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대체 임대주택의 공급이 늦어질 경우 정책 전환에 따른 비용이 무주택 임차인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국회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홍 후보자는 오는 16일 열리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 전세제도에 대해 “주택금융 발달 등으로 과거에 비해 효용성이 낮아진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홍 후보자는 최근 전세의 월세화가 진행되는 배경으로 전세사기와 보증금 미반환 위험 등을 거론했다.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제도권 금융이 발달하면서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주택 구입자금처럼 활용하던 전세의 금융 기능이 약해졌고, 잇따른 전세사기로 임차인의 보증금 안전에 대한 불안도 커졌다는 진단이다. 임대주택 공급 주체도 다변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홍 후보자는 “현재 임대차시장 구조는 개인 다주택자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며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임대 지속 확충 및 법인형 임대사업 지원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택은 한정된 자원인 만큼 실수요자에게 우선 공급해야 한다는 원칙도 제시했다. 취임할 경우 국정과제인 공적주택 110만가구 공급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청년·신혼부부 등을 위한 세대별 맞춤형 특화주택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주거급여와 청년월세 지원을 확대하고 신혼부부 정책대출의 소득 기준을 개선하는 방안도 지속해서 발굴하겠다고 했다. 다만 공개된 서면답변에는 홍 후보자가 언급한 '법인형 임대사업'이 기업형 장기민간임대와 등록임대사업자, 임대리츠 가운데 어떤 형태를 의미하는지 담기지 않았다. 구체적인 공급 목표와 추진 시점, 의무 임대기간, 임대료 인상 제한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법인형 임대주택의 사업성을 확보하기 위한 세제·금융지원과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을 낮추기 위한 임대료 규제를 어떻게 조화할지도 과제로 남았다. 국토부는 후보자의 임대차시장 구상에 관한 추가 질의에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인사청문회와 관련한 후보자의 입장은 16일 청문회에서 답변할 예정"이라며 “각 실·국에서 작성한 서면답변서는 국회로 직접 제출돼 국토부 대변인실에서 원본을 별도로 제공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임대차시장에서는 전세의 월세화와 임대료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162만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149만원에서 7개월 만에 13만원 올랐다. 월세로 옮기더라도 목돈 부담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 보증금은 1억9557만원으로 지난 1월 이후 6개월 연속 상승했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8곳에서 평균 월세 보증금이 연초보다 올랐다. 전세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는 반전세 계약이 늘면서 월세와 보증금이 함께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 외곽에서도 고액 월세가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1월 1일부터 이달 13일까지 노원·도봉·강북구에서 체결된 월 300만원 이상 아파트 월세 계약은 1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건에서 크게 증가했다. 월 200만원 이상 계약도 노원구는 42건에서 68건, 도봉구는 6건에서 19건, 강북구는 15건에서 69건으로 늘었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과 복수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노원구 상계동 '노원롯데캐슬시그니처' 전용면적 84㎡는 지난 3월 보증금 1억5000만원, 월세 300만원에 계약됐다. 지난해 9월 같은 면적이 동일한 보증금에 월세 220만원으로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월 부담이 80만원 커졌다. 강북구 미아동 '송천센트레빌' 전용 114㎡도 지난해 5월 보증금 1억원, 월세 220만원에서 지난달 보증금 1억원, 월세 300만원으로 월세가 80만원 올랐다. 새집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기존 주택에 머무르는 임차인도 늘었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신고된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 1만4089건 가운데 갱신계약은 7233건으로 51.3%를 차지했다. 올해 들어 갱신계약 비중이 절반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갱신계약 가운데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집주인과 조건을 다시 정한 '합의 갱신'은 4363건으로 60.3%에 달했다. 보증금이 같고 월세 변동이 확인된 합의 갱신 1107건 중 74.9%는 월세가 올랐다. 월세가 50% 이상 상승한 계약은 100건, 두 배 이상 오른 계약도 41건이었다. 합의 갱신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한 계약과 달리 임대료 5% 인상 제한을 적용받지 않는다. 민간 전세를 대체할 한 축으로 지목된 공공임대도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장종태 국회의원실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기준 6개월 이상 비어 있는 LH 건설임대주택은 3만8493가구로 집계됐다. 전체 건설임대 관리 물량의 3.9% 수준이다. 공실에 따른 임대료 미회수 추정액은 465억원, 공가관리비 추정액은 168억8000만원으로 두 금액을 합하면 약 634억원이다. 2022년보다 74% 증가한 규모다. 다만 임대료 미회수액은 실제 비용 지출에 따른 확정 손실이 아니라 공실이 없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대료를 추산한 금액이다. 특히 청년과 신혼부부 등을 대상으로 공급하는 행복주택의 장기 공가율은 9.4%로 건설임대 평균의 2.4배에 달했다. 행복주택 공실의 상당수가 전용면적 40㎡ 미만에 몰려 있고, 전체 장기 공실에서도 30㎡ 미만 초소형 주택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지방이나 도시 외곽의 불편한 교통과 부족한 생활 기반시설, 1인 가구 위주로 설계된 협소한 면적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는 공공임대가 전체적으로 남아돈다는 의미라기보다 서울과 선호 지역에서는 임대주택이 부족한 반면 지방·외곽과 초소형 주택에서는 빈집이 발생하는 수요 불일치가 심해졌다는 뜻에 가깝다. 공급 물량만 늘리면 정작 수요자가 원하는 지역과 면적에서는 주택을 구하지 못하고 비선호 지역의 공실만 쌓이는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LH는 장기 공실의 원인이 입지와 면적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입주대기자가 있는 지역에서도 단지별 입지와 노후도에 따라 선호도 차이가 발생하고, 입주자 선정 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누수 등으로 장기간 하자보수를 하는 주택도 공실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신규 개발지역은 생활 기반시설 조성과 인구 유입에 시간이 걸리지만 최초 입주기간부터 빈집으로 집계돼 일시적인 대규모 공실이 전체 공가율을 끌어올리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LH 관계자는 “학계에서는 통상 5% 수준의 공가율을 불가피한 자연 공가율로 보는 견해도 있다"며 “민간임대보다 입주자 선정 절차가 복잡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한 공공임대 특성상 공가율을 현저하게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실을 줄이기 위해 입주 자격을 완화하고 주택 품질을 개선하는 등 다각적인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개인 임대인의 역할을 줄이는 과정도 세심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법인 임대가 충분히 공급되기 전에 세제와 대출 규제로 개인 임대주택 공급이 위축되면 전세 매물이 더 줄고 월세 전환이 빨라질 수 있어서다. 법인 임대사업자에 대한 지원이 과도하면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반대로 임대료 규제와 의무 임대기간을 강화하면 사업성이 떨어져 민간 참여가 저조할 가능성도 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전세의 효용이 낮아졌다기보다 전세의 기능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며 “규제지역 지정과 금리 인상, 주택 공급 감소, 과세 강화가 맞물리면 임대인의 전세 수용성이 낮아져 전세 비중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법인 임대가 전세를 대체하려면 5∼10년가량의 장기적인 시간이 필요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공급 속도가 수요를 따라가기 어렵다"며 “전세의 월세화를 받아들이는 정책과 임대주택 공급 확대 사이에 시간차가 발생하면 그 비용을 일부 세입자가 부담하게 되는 만큼 정책 간극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