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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차 미싱 장인 “직장은 유일한 배울 기회, 그래서 살아남을 기회였다”[장애인, 일자리로 세상을 만나다②]

장애인에게 절실한, 최상의 복지는 결국 일자리다. 일은 생계를 넘어 스스로 삶을 꾸리고 사회와 연결되는 가장 단단한 기반이다. 그러나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이 일하는 장애인의 현실을 찾았다. 지속 가능한 장애인 고용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①출근, 세상에 내딛는 첫 발걸음 ②직장, 인생에서 얻은 유일한 배울 기회 ③가족, 직장인 아들…돌봄받다 돌봄으로 ④회사, 장애인과 일하는 이유…지속해야 할 이유 ⑤일터, 끊어진 일감 앞에 연이어 휴업 ⑥제도, 장애인 일자리 지탱할 우선구매 제도 '유명무실' ⑦외국, 우선구매 제도 철저…'살 품목'부터 정해 ⑧지금, 방치된 우선구매제도 개정안…숫자놀음 벗어난 개혁 필요 “나는 8시간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데, 왜 4시간만 일하라고 하는지 속상했습니다." 고영기(70)씨는 그날을 떠올리며 손을 바삐 움직였다. 눈썹이 오르내리고, 입꼬리가 여러 번 굳었다 풀리기를 반복했다. 곁에 앉은 딸 인경씨가 아버지의 손짓과 표정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말로 옮겼다. 고 씨는 2022년 라에리의류사업단에 입사했다. 올해로 5년째 작업복과 유니폼을 만들고 있다. 그는 입사 첫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고령의 노동자가 하루를 온전히 버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면접관의 얼굴에 비쳤다. 회사는 하루 4시간만 근무하는 '실습'을 제안했다. 고씨에게는 아쉬운 시작이었다. 3개월 뒤, 회사 반응은 완전히 달라졌다. 고씨를 지켜본 회사는 “8시간 근무하셔도 되겠네요"라고 전했다. 라에리에서는 고씨의 나이도, 청각장애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씨는 지금까지 하루 8시간씩 미싱을 잡는다. 고씨는 손끝 기술로 3개월만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냈다. 고씨는 네 살 무렵 열병으로 청력을 잃었다. 고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싱을 처음 시작했다. 구두·목공·자수·인쇄·봉제까지 두루 거쳤지만, 미싱이 가장 그의 적성에 맞았다. 미싱은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범을 보여주는 선생님의 손을 눈으로 쫓아 따라하며 미싱을 배웠다. 손끝이 순서를 기억하면 그다음부터는 혼자 해냈다. 고씨는 '미싱은 청력보다 시력과 손끝의 감각이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졸업 후에는 양복점에서 옷 한 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짓는 법을 익혔다. 골프웨어 공장, 작업복 공장을 거치는 동안 손끝의 기술은 조금씩 더 정교해졌다. 새 일감을 맡을 때도 고씨는 자신감을 내비친다. 계약이 들어오면 작업 방식을 먼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따라 해보며 처음 호흡을 맞춘다. 고씨는 '작업 방법을 이해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계속 생산해나가는 일이어서 전혀 어렵지 않다'고 한다. 이런 고씨지만 직업교육을 받을 고등학교를 찾기까지는 굴곡이 많았다. 대전원명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쳤지만, 당시 학교에는 고등교육과정이 없었다. 고씨는 대전에서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농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는 고등교육과정이 있는 농학교를 수소문했다. 그 끝에 닿은 곳이 서울농학교였다. 고씨는 그곳에서 처음 미싱을 잡았다. 고씨는 '아버지의 관심 덕분에 적성을 찾고 이를 평생의 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아버지가 찾아준 기회가 미싱 경력 50년을 만들었다. 그러나 모든 청각장애인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씨는 '학생들이 자신에게 맞는 기술을 배우고, ​배운 기술로 일할 수 있도록 교육과 취업을 잇는 길이 넓어져야 한다'고 했다. 사는 곳에 따라 교육 기회도 달라진다. 교육부의 '2025년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청각장애 특수학교는 전국 12곳(서울 4곳, 경기 2곳, 부산·대구·인천·울산·충북·전북 각 1곳)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수도권에 7곳이 집중돼 있다. 고씨의 삶에서 미싱을 빼고는 스스로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느냐", “아직도 일하느냐"고 물을 때면 그는 이렇게 답한다. '저는 50년 넘게 일한 미싱사입니다.' 이름보다 먼저 꺼내는 소개다. ​ 그는 앞으로도 '80세까지 미싱을 잡고 싶다'고 했다. 왜 하필 80세냐고 묻자 잠시 생각하더니 '그냥 떠오른 숫자일 뿐,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답했다. 몸이 허락하는 마지막 날까지 미싱을 잡고 싶다는 바람이다. 옆에 있던 아내 이씨는 곧바로 “나는 그 80이라는 숫자가 정말 싫다"며 “일하다가 죽을 거냐. 부부가 함께 추억도 만들고 여생을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맞받았다. 평생 미싱 앞을 지켜온 남편이 이제는 자신과도 더 많은 시간을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고씨에게 일은 여전히 하루를 살아내는 힘이다. 고씨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고 꼽은 순간은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때다.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도 보람차게 무사히 잘 보냈구나'라고 생각한다. 아내 이씨는 남편이 현재 일터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 집에서도 이전보다 밝아졌다고 말했다. 고씨는 말한다. '청각장애인에게 왜 직업이 필요하냐고 묻는 것은 비장애인에게 왜 직장이 필요하냐고 묻는 것과 같다.' 정원선 인턴기자

혼인·출산 세액공제’ 도마 위 “왜 직접 주나?”…“청년·저소득층 재분배 등 유리”

정부가 추진 중인 혼인·출산 시 주던 세액공제를 재정 지원으로 바꾸는 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와 여당은 세금 적게 내는 저소득층에게 세액공제 혜택보다 직접 주는 재정 지원이 소득재분배 효과가 크다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은 청년, 신혼부부 등의 세금 감면 혜택을 줄이는 대신 세를 더 걷어 현금성 지원하는 전형적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재정경제부는 발표한 올해 세제개편안을 통해 조세지출 사업 241건 가운데 재정 전환 17건 포함 총 115건을 재정비할 방침이다. 여기서 혼인과 출산·입양 세액공제 등은 재정 지원으로 전환해 내년 예산안에 반영하기로 했다. 현재 부부가 혼인신고를 하면 1인당 50만원씩 최대 100만원을 세액공제해 주고 있다. 내년부터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재정을 지원하는, 결혼 장려금 같은 보조금으로 바뀌게 된다. 출산·입양 세액공제도 현재 첫째 30만원, 둘째 50만원, 셋째 이상 70만원을 세액공제해 주고 있는데 앞으로 예산으로 지원한다. 20~30대 신혼부부, 청년, 저소득층의 경우 내는 세금이 적어 공제 혜택이 줄거나 받지 못 하는 사례가 많아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조세지출을 손 보겠다는 취지다. 재경부 관계자는 “현재 소득세 결정세액이 없는 면세자는 수혜 대상에서 빠지고, 결정세액이 낮은 납세자는 충분히 지원받을 수 없는 구조"라며 “소득 수준이 낮아 세금을 덜 내는 청년이나 저소득층에는 소득세 세액공제가 불리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세지출 중 재정 전환이 약 1조1000억원 규모인데 세 혜택에서 제외되는 저소득층의 소득재분배도 고려했다"며 “혼인이나 출산 시 바로 지원을 받을 수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여당도 정부의 혼인·출산 세액공제를 재정 지원으로 바꾸는 안을 옹호하고 나섰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결혼, 출산 등 지원도 기존 세액 공제를 재정 지원으로 전환해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모두 다 지원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은 세액공제 등 조세지출 방식을 재정 지원으로 전환하는 정부 방침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앞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6일 세제개편안 관련 토론회에서 “법으로 보장되던 세금 혜택을 없애고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돌리면서 서민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졌고, 정권의 생색내기식 '쌈짓돈'만 바라보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국세청 자료를 들어 출산·입양 세액공제로 지난 10년 간 약 167만명이 5635억원의 혜택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자녀를 위해 소비가 늘어나는 출산·입양 가정에 30~70만원의 세액공제는 큰 힘이 됐다"며 “공제 제도를 없애고 정부가 세금을 더 걷어서 나눠주겠다는 이재명 정권의 발상은 사회주의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달리, 청년, 저소득층 등 정부 지원이 필요한 계층이 세액공제 혜택에서 배제된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의 조세지출 관련 보고서를 보면 2023년 기준 20대 청년층 절반 가량인 49%는 근로소득세 납부 사례가 없었고, 실효세율도 2.2%에 그쳤다. 혼인, 출산 대상인 다수의 청년들이 낸 세금이 없어 세액공제를 받지 못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도 청년, 저소득층에 미치는 정책 효과가 더 크다는 점에서 세액공제 등 조세지출 방식을 재정지출로 바꾸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출산·혼인 세액공제를 재정 지원으로 전환하고 비효율적인 세액공제를 정비한 점은 긍정적"이라며 “재정 지출은 대상 선별이 쉽고, 적기에 지원할 수 있어 저소득층에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도 “출생 지원처럼 실제 비용 지원의 의미가 있는 정책은 감면보다 직접 지원이 맞다"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재정 지출은 정부의 재량이 상대적으로 커 지원 규모가 과도하게 커지면 재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기존 현금 지원 사례를 통해 효과가 충분히 입증됐는지, 중복 사업은 없었는지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출근이 유일한 외출…닫힌 공장 문 앞에서 그의 세상도 닫혔다 [장애인, 일자리로 세상을 만나다①]

장애인에게 절실한, 최상의 복지는 결국 일자리다. 일은 생계를 넘어 스스로 삶을 꾸리고 사회와 연결되는 가장 단단한 기반이다. 그러나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이 일하는 장애인의 현실을 찾았다. 지속 가능한 장애인 고용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①출근, 세상에 내딛는 첫 발걸음 ②직장, 인생에서 얻은 유일한 배울 기회 ③가족, 직장인 아들…돌봄받다 돌봄으로 ④회사, 장애인과 일하는 이유…지속해야 할 이유 ⑤일터, 끊어진 일감 앞에 연이어 휴업 ⑥제도, 장애인 일자리 지탱할 우선구매 제도 '유명무실' ⑦외국, 우선구매 제도 철저…'살 품목'부터 정해 ⑧지금, 방치된 우선구매제도 개정안…숫자놀음 벗어난 개혁 필요 서울 미아역 8번 출구에서 도보로 20분. 골목 안쪽 깊숙히 들어서야 봉제 공장이 보인다. 2급 지적장애인 김토미 씨(50)의 일터다. 김 씨는 구불거리는 골목길을 사뿐히 타오른다. 김씨 귀밑으로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김 씨는 응암동에서 온다. 삼양역에서 내리려면 3번 환승을 해야한다. “삼양역(우이신설선)에서 내리는 게 더 가깝지 않아요?" 기자가 묻자 김 씨는 '헤헤' 웃기만 하고 고개를 숙였다.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신경자 팀장(완성팀·72)이 귀띔했다. “지하철 환승하는 법을 10년 가르쳤는데 2번이 최대야. 그 이상은 못 외워." 김 씨 지능은 7살 수준이다. 보호자 없이 밖에 나가기 힘들다. 출근길도 수백 번을 왕복하며 겨우 외웠다. 평소 다니던 길에 문제가 생기면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떼지 못한다. 전동차가 고장 나 운행을 멈췄는데도 내리지 못할 정도다. 외출은 김 씨에게 힘겨운 일이다. 그러나 김 씨는 출근을 멈추지 않는다. 서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던 지난달 27일. 이날도 김 씨는 출근했다. 문은 닫혀있었다. 김 씨는 한참이나 문을 바라봤다. 문을 밀어보고 닫혔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말없이 돌아섰다. 공장 문은 지난 5월 20일부터 닫혀있었다. 이 공장은 국방부의 수의계약 물량이 줄어들자 지난 5월부터 3달간 무급 휴업에 들어갔다. 휴업을 몇번이고 알려줬지만 김 씨는 주에 한 번은 공장을 찾는다. 출근이 유일한 외출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이곳에서 '시다(조수)'로 일한다. 군용 방상내피, 이른바 '깔깔이' 제작을 돕는다. 이 공장 '최고참' '에이스'로 불린다. “출근이 좋으냐"고 물었다. “집에선 라디오만 들어요. 회사가 훨씬 좋아요. 군인 옷 만드는 게 재밌어요." 김 씨는 소녀처럼 수줍게 웃었다. 김 씨는 2012년 이 공장에 입사했다. 처음엔 하루 종일 구석에서 중얼거리거나 노래를 부르고, 일하다 말고 집으로 가겠다며 짐을 싸기도 했다. 회사엔 동료이자 선생님같은 팀장님들이 있다. 그런 김 씨를 여러 팀장들은 두고 보지 않았다. '헬렌 켈러를 가르친 설리반 선생님의 마음'이라고 했다. 검은색, 군청색, 파란색 등 색이 비슷한 실을 구분해 재단사에게 건네주는 데만 1년이 걸렸다. 한인자 팀장(생산1팀·63)은 “지금은 원단이 떨어지면 말도 안 했는데 먼저 가져다 준다. 공장에서 눈치가 제일 빠르다"며 김 씨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 '설리반 선생님들'은 늘 김 씨가 걱정이다. 김 씨는 봉제 공장으로 출근하던 길에 생리가 터진 적 있다. 바지 엉덩이 부분에 새빨간 동그라미가 생겼다. 피가 줄줄 샜다. 김 씨는 피가 묻은 채 회사에 출근했다. 한 팀장이 뛰어나왔다. 한 팀장은 김 씨 손을 잡고 화장실로 데려갔다. 피를 닦고 생리대를 붙여줬다. 그는 “내가 토미 속옷까지 갈아입혔다"며 호쾌하게 웃었다. 그 뒤로 한 팀장은 김 씨에게 생리대 가는 법을 알려줬다. 월경이 멈추기 전까지 몇번이고 반복했다. 공장은 김 씨의 '세상'이다. 공장이 멈추면 김 씨의 세상도 닫힌다. 김 씨가 휴업한 공장으로 출근하는 이유다. 한 팀장은 “토미가 요즘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걸어 일상을 보고하는데, 어머니랑 개천 걷는 거 말고는 별 다른 일이 없다. '언니 나 하루종일 집에서 라디오 들었어. 그런데 회사 문 언제 열어?' 이렇게 꼭 출근하고 싶단 얘기를 덧붙인다"고 말했다. 공장이 다시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옷 만들기, 포장하기 같은 업무를 말하던 김 씨는 인터뷰에 동석한 팀장이 자리를 비우자 슬쩍 열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손톱이 살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언니들이랑 봉숭아 물들이고 싶어요." 공장엔 김 씨의 또 다른 가족이 있었다. 이 공장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최기준(가명·20대)씨도 있다. 최씨는 제빵·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격증 공부를 했을 때보다 공장 일이 훨씬 즐겁단다. 최 씨를 대하는 동료들의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손이 느리다, 제대로 빵을 못 만든다고 구박 받았어요. 그런데 공장에서는 칭찬 많이 해주세요" 최 씨에겐 틱 장애가 있다. 수시로 '억'하는 소리를 내거나 혼잣말을 반복한다. 자의로는 멈출 수 없다. 하지만 동료들은 최 씨의 틱 장애를 지적하지 않는다. 대신 힘이 좋고 시야가 넓다는 장점에 주목한다. 체격이 크고 힘이 센 최 씨는 공장의 물류 작업을 도맡는다. 무거운 안감을 2층으로 올릴 때, 다른 직원이 한두 단을 들 동안 최 씨 혼자 서너 단을 어깨에 올린다. 무겁지 않냐고 묻자 최 씨는 되려 활짝 웃었다. “대표님한테 칭찬 받으면 옷판이랑 우라(안감) 만든 거 올리는 일 하나도 안 힘들어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요." 계단을 뛰어다니며 우라를 옮기는 최 씨를 김현섭 한국장애인중심기업협회 피복사업본부 대표가 멈춰세웠다. 김 대표는 최 씨의 어깨를 두드리며 “너 계단에서 쿵쿵 뛰면 무릎 나간다, 젊을 땐 괜찮아도 나중에 무릎 안 좋아져"라고 걱정을 건넸다. 삼촌과 조카처럼 보인다. 공장은 온정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오히려 엄격하게 위계를 가르친다. 장애인 노동자가 집에서 보이는 돌발 행동을 막기 위해서다. 최 씨 모친의 말이다. “집에서 잘못을 저지르면 '엄마 대표님한테 절대 얘기하면 안 된다'고 말해요. 제 핸드폰을 숨기기도 하고요. 전화를 하면 대표님이나 팀장님이 따끔하게 혼을 내주시거든요. 제 말보다 더 따르는 것 같아요." 최 씨의 팔뚝은 모친의 허리만큼 굵다. 그런 최 씨가 힘을 쓰면 가족 중에선 이를 말릴 사람이 없다. 한 때 부친이 최 씨의 월급 통장을 바꾼 적이 있다. 이자율이 더 높은 통장으로 아들의 돈을 옮겨주려 했다. 최 씨는 '아버지가 자기 돈을 뺏어간다'며 화를 냈다. 몸을 휘두르는 최 씨를 멈춘 것은 부친도 모친도 아니었다. 김 대표의 전화 한 통이었다. “기준이! 너 부모님 말 잘 들어야지!" 한 마디에 최 씨는 얌전해졌다. 최 씨도 '월급 주는 사람'이 누군지 알았다. 신경자 팀장은 출근을 할수록 장애인 노동자들의 상태가 안정된다고 말했다. “이 모든 일들이 직원들을 성장시키는 거거든요. 출퇴근도 정확하게 하고 밥도 제 때 먹고 손도 움직이고… 그것만 해요? 우리(상사)한테 혼나고 친구도 사귀죠. 그러면 확실히 몸이나 정신이 건강해지는 걸 느껴요." 공장이 휴업에 들어간 뒤로 최 씨는 밤마다 엄마에게 통화를 조른다. “팀장님한테 전화해서 언제 출근하는지 물어보라고 했어요. 시간 외 근무 많이 해서 돈 많이 벌고 싶어요. 돈 벌어서 엄마, 아빠, 할아버지한테 치킨이랑 피자 사드릴 거예요." 3급 정신장애인 조성진(45) 씨는 공장의 마무리 담당이다. 날카로운 쪽가위로 얇은 원단 사이에 몇 가닥 튀어나온 실밥을 자르는 일을 한다. 손을 어설프게 놀리면 실 대신 원단을 찢는다. 다 만들어진 옷을 망칠 수 있다. 숙련하기 어려운 작업이지만 9년 차 베테랑이 된 조 씨의 손끝은 정교하다. “장애인은 일 배우는 게 오래 걸려요. 비장애인이 보기엔 단순한 기술인데도 3년씩 걸리니까 재취업은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회사가 문 닫으면 오갈 데가 없어요. 여기가 제 마지막 일터라는 마음으로 일해요." 조 씨는 해도 뜨지 않은 새벽 4시에 집을 나선다. 집이 있는 영등포에서 봉제 공장까진 지하철로 1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런데도 조 씨는 새벽 출근을 고집한다. 안전한 출근을 위해서다. 조 씨는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벌금형을 받은 적도 있다. 조 씨의 턱에 있는 보랏빛 반점을 손가락질하며 키득대던 사람을 홧김에 밀쳤다가 벌금 200만 원을 물었다. 사고 없이 출근하기 위해선 최대한 사람이 없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버스는 지하철보다 좁아 거의 타지 않는다. 집에서 지하철역, 다시 역에서 회사까지 40분을 꼬박 걷는다. “그렇게까지 출근이 하고 싶냐"고 물었다. 인터뷰 내내 탁자 끄트머리를 쳐다보고 있던 조 씨가 고개를 들었다. “솔직히 진짜 힘들어요.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재직증명서가 있어서 전세대출도 받을 수 있었거든요. 제가 우리 집 가장이니까요." 조 씨는 특히 '가장'이라는 단어에 힘을 줬다. 조 씨 아버지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조 씨는 70대 노모와 발달장애가 있는 누나 둘을 홀로 보살핀다. 대출 이자를 내고, 부족한 생활비를 보태는 돈은 공장의 월급봉투에서 나왔다. 정신장애인 조 씨를 가장으로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현재 조 씨는 공장이 휴업에 들어가며 무급 휴가를 보내고 있다. “장애가 있으니까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힘들어요. 지금 이 상태로 어디 가겠어요? 공장 문 여는 것만 기다리고 있죠. 기본적인 생활, 먹고 자고 그런 생활조차도 어려워요." 2급 뇌병변장애인 정원철(50) 씨도 집안 생계를 책임진다. 정 씨는 아흔이 넘은 노부모와 1급 뇌병변장애인 형과 함께 산다. 4인 가족의 생활이 정 씨에게 달려있다. 정 씨는 후천적으로 뇌병변장애를 얻었다. 장애가 생긴 7살 전까지 아역배우를 꿈꾸기도 했다. 지금은 장애 탓에 언어 전달이 어눌하고 손발 활용이 불편하다. 대신 숫자 감각만큼은 비장애인보다도 뛰어나다. 세자릿수 단위도 오차 없이 세어 박스에 옷을 넣는다. 정씨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하진 않는다. 정 씨는 아직도 첫 월급의 순간을 기억한다. “부모님이 우리 아들 애 많이 썼다고 처음으로 인정해주셨어요. 지금은 부모님이 제 자식 같아요." 정 씨에게 출근이란 지금까지 받아 온 돌봄을 돌려주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취재를 마무리하고 있는 기자에게 정 씨가 주머니에서 작은 명함을 꺼냈줬다. 지하철 퀵서비스 전화번호다. 정 씨는 공장이 휴업 중인 탓에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택배 보내실 거 있으면 꼭 연락 주세요." 정 씨는 굽은 손으로 종이 뭉치에서 한 장을 겨우 골라냈다. 한참이 걸렸다. 체온이 명함에 스몄다. 오렌지색 명함은 따뜻했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신유정 인턴기자

연이은 폭염, 구윤철 부총리 쪽방촌 찾아…“취약계층에 더 가혹, 지원 지속”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7일 연이은 폭염에 쪽방촌을 찾아 “폭염 취약계층이 안전하게 혹서기를 지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을 방문해 거주민들의 건강과 생활여건을 살펴보고, 폭염 대응 상황을 점검했다. 구 부총리는 쪽방촌 주민들에게 생필품과 냉방 용품 등을 제공하는 온기 창고 4호점을 찾아 이용 현황을 들었다. 쪽방촌 공용에어컨과 안개형 냉각장치(쿨링포그) 가동 상황도 점검했다. 그는 또, 인근에 홀로 거주하는 고령자를 찾아가 건강 상태와 냉방시설 이용 등 생활에 불편한 점은 없는지 살펴봤다. 쪽방 상담소에서는 무더위쉼터, 목욕실 등 시설을 둘러봤다. 구 부총리는 “모두가 더운 여름이지만 쪽방촌 주민 등 취약계층에게는 더욱 가혹하다"며 “폭염경보 발효 등 더위가 극심할 때는 공용에어컨, 무더위쉼터 등을 이용해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6일 폭염·가뭄 대처 상황 점검 회의를 열어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극심한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며 “독거노인, 쪽방촌 주민 등 취약계층을 보다 세심히 살피고, 냉방시설 이용이 어려운 분들은 직접 찾아 안부를 확인하는 등 보호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국고채 담합, 역대급 과징금 15조 예고 왜?…금리 등 영향, 공정위 “중대 위법”

공정거래위원회가 국고채 입찰에서 담합한 혐의로 은행, 증권사 등 15개 국고채 전문딜러(PD)사업자에 대한 심의에 착수했다. 15개사의 입찰 담합에 따른 매출액이 76조원을 넘어 과징금 부과도 사상 최대인 15조원에 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정위는 6일 15개 전문 딜러사에 심사보고서를 송부, 위원회에 제출해 제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심의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심사보고서는 검찰의 공소장 격으로 공정위가 판단한 법 위반 사실과 제재 의견 등이 담긴다. 해당 15개사는 국민, 농협, 기업, 하나, 산업 등 은행 5곳과 교보, 대신, 메리츠, 미래에셋, 삼성, 신한, NH투자, KB, 한국투자, 키움 등 증권사 10곳이다. 이들은 2020년 1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약 3년 6개월간 국고채 경쟁입찰 과정에서 입찰 담합과 정보 교환 담합 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고채는 재정경제부가 국가재정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데, 주로 경쟁 입찰 방식으로 이뤄진다. 재경부는 일정 요건을 갖춘 업체에 국고채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전문 딜러(PD) 자격을 부여한다. PD사들은 유통시장에서 매수·매도 호가를 제시해 거래를 원활하게 하는 시장 조성 의무가 있다. 공정위는 PD사들이 국고채 경쟁입찰 과정에서 금리와 가격, 물량 등 정보를 사전에 공유한 혐의를 조사 중이다. 담합으로 금리가 높게 형성돼 정부의 국채 조달 비용 부담을 키우는 등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담합을 매우 중대한 위법행위로 판단했다"며 “시정조치와 과징금 부과, 법인과 전·현직 임직원에 대한 고발 의견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심사관은 이번 입찰 담합에 따른 국고채 낙찰금액인 관련 매출액만 약 76조2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번 담합이 매우 중대한 위법 행위로 결론나면 과징금 부과 기준율은 관련 매출액의 10.5% 이상 20% 이하다. 이 경우 과징금이 8조원에서 최대 15조원까지 부과될 수 있는데, 담합 관련 역대 최고 수준이다. 공정위는 이르면 이달 말 전원회의를 열어 법 위반 여부를 판단, 제재 수위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조만간 전원회의를 열어 PD사인 피심인들의 의견도 충분히 들은 뒤 구체적인 조치 수준을 결정할 것"이라며 “국고채 시장 상황과 파급효과, 피심인들의 재무 상태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소부장 핵심기업’ 2030년 15개 육성…한화오션·두산 등 5곳, 7년 R&D 지원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총 15개의 글로벌 공급망을 선도할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핵심기업 육성에 나선다. 올해 한화오션 등 5곳을 핵심기업으로 선정했다. 이들 기업은 과제당 200억원 규모로 7년 이상 대형 연구개발(R&D) 지원을 받는다. 정부는 차세대 유리 패키지 기판 등 5개 소부장 협력사업에도 5년간 910억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6일 서울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제16차 소부장 경쟁력강화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안건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허장 재정경제부 2차관은 “소부장 정책은 단순한 국산화와 수입대체를 넘어 세계 최고 기술을 선점하고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성장전략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기 '슈퍼 을(乙) 프로젝트'로 한화오션과 함께 선익시스템, 이오테크닉스, 에코프로비엠, 두산전자사업 등 5개 기업이 뽑혔다. 슈퍼 을 프로젝트는 소부장 핵심기업 육성 사업이다. 한화오션의 경우 잠수함용 연료전지 핵심 장비 개발 과제를 맡게 된다. 선익시스템은 인공지능(AI) 기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자율 증착 장비 개발을 맡는다. 이 밖에, 이오테크닉스(초고속 레이저 열처리장비), 에코프로비엠(전고체전지용 황화물계 고체전해질), 두산전자사업(위성통신용 저손실 소재 및 안테나 모듈) 등을 추진한다. 앞서 산업통상부는 1기 기업으로 주성엔지니어링과 KCC, 테크로스 등을, 2기 기업으로 아모텍, 화신, 세아창원특수강 등을 각각 선정했다. 산업부는 오는 2030년까지 총 15개의 소부장 핵심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아울러, 정부는 5건의 소부장 협력모델 과제도 새로 승인했다. 생태계 완성형 모델로 차세대 유리 패키지 기판과 함께 1000와트(W)급 극자외선(EUV) 펠리클이 선정됐다. 지역 간 협력형 모델로는 공장 맞춤형 모빌리티 플랫폼이 승인됐다. 일반형 협력모델로는 차량 인포테인먼트용 국산 시스템온칩(SoC), 에너지용 초고성능 다공성탄소 과제가 선정됐다. 소부장 협력모델은 핵심 전략기술의 자립화를 위해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 체계를 구축, R&D와 규제특례, 정책금융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협력모델에 대해 5년간 총 910억원 R&D 지원과 함께 화학물질 인허가 등 규제 특례, 금융·세제 등 패키지 지원에 나선다. 정부는 올 하반기까지 소부장 관련 200대 핵심전략기술을 정비하고, 연내 제3기 소부장 특화단지도 선정할 계획이다. 문신학 산업부 차관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소부장 기업을 지속 육성하고, 협력모델을 통해 소부장 산업의 근원적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박영범의 세무칼럼] 창업 초기 세금 걱정 끝…청년 창업자 맞춤형 세정 지원 확대

국세청은 청년들의 창업 활성화와 안정적인 정착을 돕기 위해 전방위 세정 지원 정책인 '스타트업 세금든든케어'를 발표했다. 인공지능과 로봇, 바이오 등을 접목해 K-푸드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청년들이 복잡한 세무 행정 앞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든든한 지원군을 자처한 것이다.15세 이상 34세 이하의 청년으로서 창업한 지 2년이 지나지 않은 신규 사업자라면, 국세청이 제공하는 구체적이고 파격적인 세정 지원 혜택을 반드시 확인해 보아야 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혜택은 창업 초기 가장 큰 진입 장벽으로 꼽히는 세무 및 행정 업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신설된 맞춤형 케어 서비스다. 종합소득세 신고 시 복잡한 공제 및 감면 요건을 잘못 적용해 불이익받지 않도록, 국세청이 신고 검증시스템 등을 통해 적정 여부를 신속하게 사전 검토해 준다. 만약 오류가 발견되더라도 선제적으로 수정신고를 안내하여 가산세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단, 유흥 주점 등 소비성 서비스업이나 부동산 임대업, 전문직 업종은 제외되며, 농·임·어업은 3억 원 미만, 제조업 등은 1.5억 원 미만 등 수입 금액이 일정 기준 이하인 영세 중소 창업자에게만 적용된다. 아울러 전국 17개소의 '스타트업 원스톱 지원센터'와 연계하여 세금 안심 교실과 현장 상담실을 운영하며, 이 교육을 이수한 기업에는 공제·감면 컨설팅 우선 처리 등의 혜택을 부여한다. 사업자등록증 발급 시에는 부가가치세 등 주요 신고 일정과 납세자 세법교실 일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QR코드 시각 자료를 제공하고, 놓치기 쉬운 원천세 신고 일정 등은 모바일 문자로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청년 창업 기업을 위한 직접적이고 파격적인 세액감면 혜택도 빼놓을 수 없다. 요건을 갖춘 청년 창업 중소기업은 사업장 위치에 따라 5년간 차등적인 세액감면을 받게된다. 올해 1월 1일 이후 창업을 기준으로,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내에서는 50%, 수도권 내 과밀억제권역 밖에서는 75%, 수도권 밖의 지역에서는 무려 100%의 전폭적인 감면율이 적용된다. 특히 2025년 귀속 종합소득세 신고분부터는 세금 신고 단계에서 바로 '절세 혜택'안내를 제공하여 청년들이 혜택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꼼꼼하게 챙길 예정이며, 국세청 누리집 내 「청년 세금」 코너를 개선해 정보 접근성도 높였다. 초보 사장님들이 일상적인 지출 과정에서 가장 헷갈리는 영수증 처리와 적격 증빙에 대한 실무 지침도 명쾌하게 제공된다. 사업과 관련된 지출이라면 현금 결제 시에도 현금 영수증 등 적격 증빙을 챙겨 비용 처리가 가능하며, 신용카드는 원칙적으로 사업자 본인 명의여야 하지만 객관적인 사업 관련 비용임이 확인되면 가족이나 종업원 명의의 카드 사용분도 경비로 인정받을 수 있다. 주말 카드 결제 역시 실제 업무 목적이었다면 요일에 무관하게 경비로 인정되나, 사적 사용 오해를 피하고자 명확한 증빙을 갖추는 것이 좋다. 3만 원 이하 소액 거래는 세금계산서나 신용카드 매출전표 등 적격 증빙 수취 의무가 면제되지만, 간이 영수증 등은 구비해야 한다. 또한 직원 경조사비는 복리후생비로, 거래처 경조사비는 20만 원 한도 내에서 기업 업무추진비로 인정된다. 사업자번호가 없는 인플루언서 등에게 대금을 지급할 때는 계약서나 금융 증빙을 남겨야 하며, 원천징수 후 원천세 신고납부와 함께 지급명세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초기 자금 융통을 돕고 규제 및 세무조사 부담을 대폭 완화하는 정책도 시행된다. 청년 사업자의 주류 시장 진입을 돕기 위해 소규모 주류 제조장 시설 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신규 사업자의 납세증명 표지 부착 의무 면제와 시음주 제공 한도를 확대했다. 청년층의 원활한 사회 진출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학생 및 퇴직자, 재난 피해자 등을 대상으로 선제적인 학자금 상환 유예 안내문도 제공한다. '일자리 창출 청년 창업 기업'과 음식업·미용업 비중이 높은 '물가 안정 기여 소상공인'에 대해 정기 세무조사를 최대 2년간 유예한다. 수출 중소기업의 조사 유예기간도 최대 2년으로 연장되었으며, 특히 스타트업 기업의 조사 유예 적용 기준은 기존 사업 개시일 5년에서 10년으로 대폭 확대됐다. 지난 4월부터는 세무조사 대상자가 직접 3개월 범위에서 희망 시기를 선택할 수 있는 '정기 세무조사 시기 선택제'를 시행하여 경영의 불확실성을 낮췄다. 국세청은 청년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재도전 생태계 구축에도 힘을 쏟고 있다. 폐업 후 재기에 나서는 영세 사업자의 징수 곤란 체납액에 대해서는 납부 지연 가산세 및 가산금 납부 의무 면제 적용 대상을 지난 1월부터 확대 운영중이다. 아울러 사업 실패 등 불가피한 사유로 세금을 체납하게 된 생계형 체납자의 경우, 아예 체납액 납부 의무를 소멸시켜 주는 특례 제도를 신설하여 경제활동으로의 원활한 복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청년 창업의 동반자로서 리스크를 함께 나누겠다는 강력한 제도로 청년 창업자는 적극적으로 지원받기 바란다. ekn@ekn.kr

“1000억달러 수출 처음 찍었다”...경상수지 70조 흑자도 새 역사

반도체가 한국의 대외수지를 다시 한번 끌어올렸다.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월간 1000억달러를 돌파하면서 올해 상반기 경상수지 흑자는 이미 정부 연간 전망치의 4분의 3을 넘어섰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음에도 상품수지 호조가 이를 압도하며 사상 최대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한국은행이 6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 통계에 따르면 6월 경상수지는 497억3000만달러(약 70조8000억원) 흑자로 집계됐다. 전달(386억1000만달러)에 이어 두 달 연속 월간 기준 사상 최대 기록을 새로 썼다. 올해 1∼6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1910억1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478억7000만달러)의 약 4배에 달했다. 반기 기준으로도 역대 최대 규모다. 한국은행이 지난 5월 제시한 올해 연간 경상수지 전망치(2500억달러)의 76% 이상을 상반기에 달성했다. 아울러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2023년 5월 이후 38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가며 2000년대 들어 두 번째로 긴 흑자 행진을 기록했다. 이번 기록은 무엇보다 상품수지가 이끌었다. 6월 상품수지 흑자는 478억9000만달러로 종전 최고였던 5월(378억6000만달러)을 크게 뛰어넘으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출은 1123억70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84.5% 늘었다. 월간 상품 수출액이 1000억달러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도체와 정보통신기기가 증가세를 이어간 가운데 기계류와 정밀기기, 승용차도 증가세로 돌아서며 전체 수출 확대를 뒷받침했다. 통관 기준 품목별 증가율은 컴퓨터 주변기기(SSD) 282.7%, 반도체 196.9%, 무선통신기기 60.6% 순으로 높았다. 지역별로는 동남아(105.7%), 중국(92.0%), 미국(78.6%), 중남미(36.1%), 유럽연합(EU·31.8%), 일본(15.8%) 등 대부분 지역에서 수출이 증가한 반면 중동은 8.5% 감소했다. 수입도 644억800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38.6% 늘었다. 자본재는 반도체와 정보통신기기, 반도체 제조장비를 중심으로 35.3% 증가했고, 원자재는 원유와 석탄, 화공품 등을 중심으로 30.5% 확대됐다. 소비재 수입 역시 16.4% 증가했다. 서비스수지는 12억9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다만 여행수지는 4억4000만달러 흑자로 5월에 이어 두 달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외국인 입국이 늘고 유류할증료 인상 등의 영향으로 해외 출국 수요가 줄면서 여행수지 흑자 규모는 2008년 10월 이후 두 번째로 컸다. 김영환 한국은행 경제통계1국장은 “최근 외국인 입국자 수가 굉장히 증가해 월별로 200만명 내외의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며 “외국인들이 입국해 소비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금융시장에서는 외국인 자금 이탈이 두드러졌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투자는 316억1000만달러 감소해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을 기록했다. 차익실현과 포트폴리오 재조정이 겹치면서 역대 최대 순매도를 나타낸 영향이다. 증권투자에서는 외국인의 국내 투자 규모가 263억2000만달러 줄어든 반면 내국인의 해외 주식 투자는 35억6000만달러 늘었다. 직접투자는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80억1000만달러, 외국인의 국내투자가 46억3000만달러 각각 증가했다. 금융계정 순자산은 467억1000만달러 늘어 종전 최대였던 지난 3월을 넘어서는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다만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관련 자금 유입에도 분기 말 만기 도래 영향으로 외국인의 국내 채권 투자 증가 폭은 전달보다 다소 축소됐다. 향후 흐름도 양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국장은 거액의 배당 지급이 있었던 4월을 제외하면 2월 이후 경상수지가 매달 사상 최대 수준을 경신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7월 통관 무역수지가 6월에 비해 줄었지만 여전히 반도체 수출 호조가 지속됐다"며 “상품수지를 중심으로 동월 기준 최대 흑자를 전망한다"고 말했다. 박성곤 한국은행 국제수지팀장은 상반기 경상수지 규모의 국제 비교는 아직 이르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 수준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빵 안 굽는 베이커리, 주차장·병원도 ‘가업상속공제’ 못 받아…“30년 경영해야”

내년 7월부터 마트와 주차장, 병원, 약국 등은 가업상속공제를 받지 못 한다. 식당도 직접 제조·조리하는 곳만 공제받을 수 있고, 빵을 굽지 않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는 제외된다. 가업을 물려줄 때 경영 기간도 10년에서 30년 이상으로 늘어난다. 최근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올해 세제개편안 중 가업 상속 대상 업종이 보다 세분화돼 관련 공제 요건도 더 깐깐해졌다는 점이 주목받는다. 정부는 가업(家業)을 '전문 기술, 경영상 노하우 보유 기업'으로 새로 정의했다. 특허권, 산업기술, 숙련 기술, 영업비밀 및 유사 기술·노하우 등이 해당된다. 가업을 보다 구체화해 편법 상속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를 차단한다는 취지다. 727개 가업상속공제 대상도 업종별로 구체화했다. 개펀안에 따라 마트업과 주차장업, 창고업, 버스나 택시 운송업, 병원, 약국 등은 대상 업종에서 빠진다. 프랜차이즈나 부동산 임대 수입이 주된 사업도 제외된다. 16개 음식점업도 직접 제조·조리한 곳만 공제 대상으로 정했다. 그동안 대형 베이커리 카페로 허가 받은 뒤 커피 등 음료만 판매하는 편법 상속도 가업 공제를 받지 못 하게 된다. 앞으로 직접 빵을 굽고 조리해야 공제가 적용된다. 가업상속공제 대상이 아닌 커피전문점도 백년소상공인이나 명문장수기업 등 가업으로 지정된 경우 공제받을 수 있다. 앞으로 민관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가업상속공제 신청 기업의 공제 적용 여부를 심사할 예정이다. 가업으로 인정받는 경영 기간, 사후 관리 기간 등 요건도 보다 깐깐해진다. 가업을 물려주는 피상속인의 경영 기간은 10년에서 30년 이상으로, 상속받은 사람의 사후 관리기간은 5년에서 10년으로 각각 상향된다. 다만, 피상속인의 경영 기간이 30년이 채 되지 않을 경우 부족한 기간만큼 상속인이 사후관리 기간으로 채워넣어야 한다. 예컨대, 부모가 27년간 가게를 운영하다 물려줬다면 자녀는 부족한 3년에 사후 관리기간인 10년을 더해 총 13년을 운영해야 공제받을 수 있다. 가업공제 한도도 최대 6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상향된다. 30년 이상 장수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경영 기간이 길어질수록 공제를 더 많이 받게 된다. 현재 10년 이상 기업은 300억원, 20년 이상 400억원, 30년 이상 600억원 공제가 각각 적용되고 있다. 친족이 아닌 제3자가 가업을 승계받는 경우에도 세제 지원이 가능해진다. 20년 이상 경영한 60대 이상인 최대 주주가 친족이 아닌 제3자에게 사업을 넘겨 줄 경우 주식 또는 사업용 자산에 양도소득세 20%를 감면한다. 경영 연수당 연 5000만원까지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단독] ‘통제불능’ 선관위, 해외연수비도 ‘기준 초과’ 수억원 뿌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해외연수 직원과 가족들의 항공료로 '비즈니스석 가격'을 지원해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장기 국외위탁교육 대상 직원들에게 정부 표준 기준을 크게 초과한 체재비를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예산 집행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관련 기사 [단독] 美연수직원 항공료 869만원 지급해놓고…“이코노미석 탔다"는 선관위 '황당' 해명) 5일 국민의힘 김태규 의원실에 제출된 선관위의 '최근 5년간 직원 국외위탁교육 훈련내역'과 인사혁신처의 '국외장기훈련 훈련비 내역'을 교차 분석한 결과, 선관위 연수자 24명 중 16명의 체재비가 인사처 지급 상한을 넘겨 총 2억3600만원 세금이 더 쓰였다. 현재 일반 중앙부처 공무원의 장기 국외훈련은 인사혁신처 예규인 「공무원 인재개발 업무처리지침」에 따른 지원 한도를 적용받는다. 체재비는 공무원수당규정에 의한 재외근무수당의 85%로 1개월에 미국은 2431달러, 영국 1918파운드, 일본 31만4169엔, 중국 1만5504위안이 지급된다. 체재비와 별도로 생활준비금 500달러를 최초 출국시 1회 지급하고, 귀국이전비를 아시아 지역 300달러, 그 밖의 지역에 600달러를 지급한다. 의료보험료도 월 220달러를 지급한다. 미국의 경우 2년(24개월) 연수 시 체재비 지급액은 5만8344달러다. 여기에 기타 비용으로 의료보험료 5280달러, 생활준비금·귀국이전비 1100달러도 더해져 총 6만4724달러를 최대한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2021년 7월부터 2년간 미국 연수를 받은 A 직원은 체재비 등으로 6만8564달러를 받아 인사처 기준보다 3840달러 초과 수령했다. 당시 환율 기준 한국 돈으로 약 440만원이다. 미국 2년 연수를 2023년 8월 떠난 B 직원과 2024년 8월 떠난 C 직원 역시 체재비 등으로 각각 6만7859달러, 6만7964달러를 수령했다. 초과 수령분은 당시 환율 기준 한국 돈으로 각각 약 412만원, 약 437만원이다. 영국 연수 사례도 마찬가지다. 인사처 기준상 영국 2년 체재비는 4만6032파운드(월 1918x24)이며 의료보험료 1080파운드(월 45x24)를 더하면 4만7112파운드다. 하지만 2023년 영국으로 떠난 D 직원은 체재비 등으로 5만112파운드를 수령했다. 초과분 3000파운드는 당시 환율 기준 한국 돈으로 약 495만원이다. 그는 별도로 생활준비금·귀국이전비로 보이는 1100달러도 받았다. 선관위는 특히 인사혁신처 체재비 기준이 명시된 국가가 미국·영국·일본·중국 4개국에 한정된 점을 악용해, 캐나다 및 유럽 지역 연수비용을 막대하게 불렸다. 2023년 캐나다 1년 연수자인 E 직원은 가장 많은 초과 액수를 기록했다. 그는 체재비 5만3066 캐나다달러 외에 6935달러를 별도로 지급받았다. 인사혁신처의 기준과 비교하면 1만8873캐나다달러와 5835달러를 각각 초과 수령한 셈이다. 각 통화의 당시 환율을 적용해 한화로 환산하면 초과 지급액만 약 2608만원에 달한다. 2022년 독일 1년 연수자인 F 직원은 체재비 등으로 4만6239유로와 1600달러를 수령했다. 인사처 기준 액수인 330만원을 유로화로 환산하면 2426유로다. 그는 1년 체재비인 2만9112유로(월 2426x12)와 의료보험료 840유로(월 70x12)를 합한 2만9952유로보다 1만6287유로를 더 받은 것으로 계산된다. 여기에 1600달러 중 생활준비금·귀국이전비 1100달러를 제하고도 남는 500달러를 더하면 한국 돈으로 총 2296만원을 초과 수령했다. F 직원과 같은 방식으로 비용을 더 받은 유럽 연수자는 △G(2023년 독일 1년, 2352만원) △H(2024년 독일 1년, 2811만원) △I(2024년 슬로베니아 1년, 1988만원) 등 3명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자체 인사규정에 따라 국외훈련비를 지급하면서 정부 지침을 준용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실제 집행 과정에서 타 부처에 적용되는 기준을 지속해서 상회해 왔다. 국가별 물가 수준을 고려해 책정한 정부 공통 가이드라인이 형해화된 것이다. 선관위는 현재 6·3 지방선거, 2025년 대선, 2024년 총선에 투표자 수를 허위 입력한 정황이 밝혀져 수사를 받고 있다. 독립 헌법기관이라는 지위를 이유로 외부 부처의 예산 통제와 감시 사각지대에 방치되어온 구조적 문제가 이번에 드러난 가운데 앞으로 개선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이상무 기자 rokm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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