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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4개 상임위 합동 ‘쿠팡 청문회’ 추진

여당이 쿠팡을 상대로 국회 4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연석 청문회 추진에 나섰다. 쿠팡의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태와 노동·안전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불거진 가운데,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국회 출석을 거부할 경우 입국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발의되며 여권의 대응 수위가 최고조로 높아지는 양상이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8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제(17일) 과방위 쿠팡 청문회를 본 국민들은 분노와 허탈감에 빠졌을 것"이라며 “국정조사는 준비에만 한 달 이상 걸리는 만큼,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4개 상임위가 참여하는 연석 청문회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연석 청문회 구성에는 △정무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국토교통위원회 등이 포함된다. 개인정보 유출·노동 문제·택배 인허가 등 쿠팡 관련 핵심 사안 전반을 한 번에 점검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국토위의 참여가 주목된다. 국토부가 택배운송사업자 인허가권을 쥐고 있어, 인허가 박탈 시 쿠팡에 미칠 타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전날 과방위 청문회에서는 쿠팡 영업정지 가능성을 두고 논의가 이뤄졌다.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은 공정위와의 협의를 묻는 질문에 “논의 중"이라고 답했다. 다만 정무위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원내대변인은 “국토·과방·환노위 위원장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지만 정무위원장은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라며 “야당과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무위도 김범석 의장 고발 건을 의결한 만큼 협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정무위는 전날 전체회의에서 김 의장을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 김 의장은 국정감사 기간이던 10월 14일과 28일 두 차례 정무위 출석 요구를 받았지만 '해외 거주 및 출장'을 이유로 모두 불출석했다. 정무위는 이를 '정당한 사유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이어 정무위는 개인정보 유출 관련 과징금을 매출의 최대 3%에서 10%로 상향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산정이 어렵다면 부과 가능한 과징금 상한도 20억원에서 50억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쿠팡을 겨냥한 입법 조치다. 강준현 민주당 의원(정무위 여당 간사)은 “내년 1월 임시국회에서 본회의 처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노위도 쿠팡의 노동 문제에 대해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이 한국 대표로 재직하던 2020년, 쿠팡 물류센터에서 숨진 고(故) 장덕준 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 직접 축소·은폐를 지시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보도가 제기되면서다. 국회 출석을 반복적으로 거부한 외국 국적자에 대해 입국 금지를 가능하게 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국회 증언감정법 개정안과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해,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한 증인에 대해 국회가 법무부에 입국 금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사실상 김 의장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여권의 대쿠팡 압박은 연일 강도를 높이고 있다. 허영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쿠팡이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이런 쿠팡에 대한민국이 줄 수 있는 것은 엄중한 처벌뿐"이라며 “정부는 제재 방안 전부를 마련해 국회에 신속하게 보고하라. 필요한 법 개정도 빠르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과방위 소속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SNS에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나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도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미 의회에 직접 출석했다"며 “김 의장의 태도는 한국 국회를 노골적으로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쿠팡에 대해 최고 수준의 규제·제재를 적용해야 한다"며 “한국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는 기업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달러 ‘유입 전환’ 승부수...정부, 외환건전성 규제 대폭 완화

원·달러 환율이 고점을 높여가는 가운데 정부가 외환 수급의 흐름을 바꾸기 위한 제도 손질에 나섰다. 외채 억제에 초점이 맞춰졌던 기존 외환건전성 틀을 조정해 외화 유입을 막기보다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선회하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은 18일 '외환건전성 제도 탄력적 조정 방안'을 발표하고, 금융권의 외화 운용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 경로를 넓히는 대책을 내놨다. 최근 내국인의 해외 투자 확대 등으로 외화 유출 압력이 커진 만큼 과거 위기 대응용 제도가 현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우선 금융기관의 외화 유동성 관리 규제부터 숨통을 틔운다. 당국은 고도화된 외화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에 따른 감독상 조치를 내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 제도는 위기 시나리오를 전제로 금융회사의 외화자금 대응 능력을 점검하는 장치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유동성 확충 계획 제출을 요구한다. 그러나 금융회사들이 제재를 의식해 필요 이상으로 외화를 쌓아두는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을 반영했다. 외국환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규제도 대폭 완화된다. 외국계 은행 국내법인의 선물환포지션 비율 한도는 현행 75%에서 200%로 상향된다. 과거 대규모 외화 유입과 외채 급증을 막기 위해 도입된 규제가 현재는 외국계 은행의 영업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외화 유입을 제약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업의 외화 조달 경로 역시 넓어진다. 외국환은행은 앞으로 수출기업의 국내 시설투자뿐 아니라 운전자금 목적의 원화 용도 외화대출도 취급할 수 있게 된다. 해외에서 조달한 외화를 국내로 들여와 환전할 경우, 원화 약세 압력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정부는 앞서 제한적으로 허용했던 외화대출 대상을 이번 조치로 한층 확대했다. 자본시장 문턱도 낮춘다. 외국인이 국내 증권사 계좌 없이도 현지 증권사를 통해 한국 주식을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외국인 통합계좌' 활성화를 추진한다. 해외 개인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여 코스피 시장으로의 신규 자금 유입을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외국기업의 외환거래 불확실성 해소도 병행된다. 해외 증시에 상장된 외국기업은 전문투자자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확히 안내해, 외환파생상품 거래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요구되던 사전 확인 절차와 증빙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해석의 혼선으로 인한 거래 불편이 국내 투자와 원화 보유를 가로막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이번 조치와 관련한 세부 후속 작업을 연내 마무리할 계획이다. 외환시장으로의 추가 외화 유입을 통해 구조적인 수급 불균형을 완화하고, 환 헤지 수요 확대를 계기로 외화자금 시장의 유동성도 한층 두터워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8개월만에 1480원 찍은 환율...한은 총재 “위기라 할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이 달러 강세 여파로 다시 가파르게 오르며 1480원선 턱밑까지 치솟았다. 장중에는 8개월여 만에 1480원을 돌파하며 고점을 새로 썼다. 환율 급등세가 이어지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위기라 할 수 있고 걱정이 심하다"며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1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8원 오른 1479.8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환율은 이날 1474.5원으로 출발해 한때 하락세를 보였지만 오전 11시를 전후해 방향을 틀어 상승 흐름으로 돌아섰다. 오전 11시8분께에는 1482.3원까지 뛰어 지난 4월 9일 이후 장중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후에도 1480원선을 웃도는 수준에서 등락을 이어갔다. 종가 기준으로도 4월 9일(1484.1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외환당국이 국민연금과 체결한 외환스와프를 실제로 가동한 것으로 전해진 뒤 환율이 잠시 주춤했지만 상승 압력을 뚜렷하게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장에서는 이날 환율 상승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달러 강세를 지목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오전 98.17 수준에서 오후 들어 98.47선까지 빠르게 올랐다. 같은 시각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52.74원으로 전날보다 소폭 하락했고, 엔·달러 환율은 155엔대 중반에서 움직였다. 이날 오후 한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설명회에서 이창용 총재는 최근 환율 흐름에 대한 위기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전통적인 금융위기는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원·달러 환율 수준에 대해 “위기라 할 수 있고 걱정이 심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가 순대외채권국이라는 점을 들어 금융시스템 붕괴나 국가 부도 위험으로 이어질 상황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나라는 현재 순대외채권국이기 때문에 원화가 절하되면 이익 보는 분들도 많다"며 “금융기관이 넘어지고 국가 부도 위험이 있는 금융위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고환율이 물가와 분배 구조에 미치는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우리 내부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 보는 사람이 극명히 나뉜다"며 “(고환율 때문에) 사회적 화합이 어려운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에 따르면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약 0.3%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추산된다. 환율이 현재 수준을 내년까지 유지하면 물가상승률은 기존 전망치(2.1%)를 웃도는 2.3% 안팎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이 총재는 최근 환율 급등의 배경으로 글로벌 요인 못지않게 국내 외환 수급 요인을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환율 수준이 1400원대 초반부터 시작해 미국 달러화가 안정되는데도 한동안 계속 오른 데는 내부적 요인이 컸다"며 “환율이 불필요하게 올라간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변동성뿐 아니라 레벨(수준)에서도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연금의 역할을 핵심 변수로 지목했다. 이 총재는 외환당국과 국민연금이 함께 논의 중인 '뉴 프레임워크'와 관련해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 때 거시적 파급 효과를 고려하면서 자산 운용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연금이 환 헤지 개시 및 중단 시점을 덜 투명하게 해야 한다"며 “패를 다 까놓고 게임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확대를 둘러싼 이른바 '서학개미 책임론'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특정 그룹을 탓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며 “한미 간 경제성장률 차이, 금리 격차, 코리아 디스카운트 같은 구조적 요인들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걸 고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정책 담당자로서는 단기적 수급 요인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연간 2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이 환율 상승 요인이라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총재는 “한은이 외환시장에 위협을 주는 정도로 대미 투자액을 줄 생각은 없다"며 “대미 투자를 원인으로 원화가 장기적으로 절하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은은 외환보유고의 이자·배당 수익으로 자금을 공급해야 하는데,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하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李 대통령 “천하의 도둑놈 심보”…이학재 또 작심 질타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부처 합동 업무보고 자리에서 일부 공직자들의 태도를 강하게 질타하며 “자리가 주는 온갖 명예와 혜택은 다 누리면서도 책임은 다하지 않겠다는 그런 태도는 천하의 도둑놈 심보"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겨냥해서도 “업무보고는 정치적 논쟁의 자리가 아니라 행정을 하는 자리인데 왜 그걸 악용하는가"라고 지적하며 조직 기강 확립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부·지식재산처·중소벤처기업부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 관세청과 인천공항공사가 지난해 체결한 양해각서(MOU)를 언급했다. 그는 “1만 달러 이상 외화 반출 문제는 공항공사가 검색을 위탁받아 하게 돼 있더라"며 최근 외화 밀반출 전수조사 지시를 둘러싸고 이 사장이 SNS로 반박한 데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이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해놓고 뒤에 가서 다른 얘기를 하면 되나"라며 “제가 정치적 색깔을 이유로 누구를 비난하거나 불이익을 줬나. 유능하면 어느 쪽에서 왔든 상관없이 쓰고 있지 않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행정과 정치는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며 “여기는 지휘하고 명령하고 따르는 행정 영역"이라고 재차 선을 그었다. “수없이 강조해도 가끔 정치에 물이 너무 많이 들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도 말했다. 이 대통령 발언 직후 이 사장은 SNS에 “단속의 법적 책임은 관세청에 있고 공항은 업무 협조를 하는 것"이라는 해명 글을 올렸다. 이 대통령의 질타는 한국석유공사에도 이어졌다. 경제성이 확인되지 않은 '대왕고래' 유망구조 시추탐사를 둘러싸고 그는 해외 주요 유전의 생산 원가가 배럴당 40∼50달러 수준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대왕고래에서 석유나 가스가 나온다고 했을 때 생산 원가는 얼마로 추산했었냐"고 물었다. 석유공사 측이 “변수가 많아서 추정치가 없었을 것"이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계산을 안 해봤다는 것인가. 변수가 많으면 개발을 안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아무 데나 막 파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대책과 관련해서도 강한 어조를 이어갔다. 그는 “기술탈취는 많이 가져오면 성공한다는 점에서 국가 간 전쟁으로 느껴진다"며 “대응을 잘해야 할 것 같은데 과징금 최대 20억원은 너무 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처벌로는 별로 실효성이 없다. 수사하는 데도 엄청난 역량이 들고 처벌해도 집행유예 나와서 실질적인 제재가 안 된다"며 “만약 탈취한 기술로 1000억원 벌었는데 과징금 20억원만 내면 된다면 (나라면) 막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징금을 기업 매출 대비 얼마, 아니면 기술탈취로 얻은 이득의 몇 배로 규정해야 실제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온누리상품권 정책에 대해서도 구조적 충돌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대통령은 중기부의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사용처 확대 방침을 언급하며 “온누리상품권은 사용 지역 제한 없이 사용처만 제한돼 있다"며 “이걸 계속 늘리면 결국 지역화폐와 사용처가 겹치게 될 텐데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화폐의 취지는 소상공인 매출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를 특정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데 있다"며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소비자가 일정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해주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날 원전 지식재산권 분쟁과 관련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 간 협상 논란을 거론하며 “어떻게 20∼25년이 지났는데 계속 자기 것이라고 한국 기업에 횡포를 부리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얼마 전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와 원자력 기술 때문에 이상한 협약을 맺었느니 마느니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윤석열 정부 시절 체코 원전 수출 계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수원·한전이 지나치게 양보한 채 분쟁을 정리한 것 아니냐는 정치권의 문제 제기를 에둘러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한은 “내년 물가 상승률 2% 수준”...변수는 환율

한국은행이 내년 경기 회복 국면에서도 근원물가 상승률은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성장세가 살아나더라도 물가에 가해지는 압력은 제한적일 것이란 판단이다. 한국은행은 17일 공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를 통해 국내 경제가 점진적인 회복 국면에 진입하고 있지만, 이로 인한 물가 상방 압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식료품과 에너지 등 가격 변동성이 큰 품목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내년에도 2.0%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경기와 물가가 통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현재와 같이 국내총생산(GDP)이 장기 추세를 밑도는 이른바 '마이너스 GDP 갭' 국면에서는 그 연관성이 뚜렷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경기 회복 초기 단계에서는 성장 속도가 완만한 만큼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최근 경기 개선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IT) 수출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물가 압력을 낮추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과거 IT 혁명기나 클라우드 서버 도입기와 마찬가지로 특정 산업의 성장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기 전까지는 근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비용 측면에서도 물가를 끌어올릴 요인은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근원상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유가는 당분간 하락 흐름을 보이며 물가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고, 근원서비스 가격에 중요한 인건비 역시 최근 임금 상승률이 장기 평균을 밑돌고 있어 물가 자극 요인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환율과 관련해서는 영향이 주로 비근원 품목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수입 비중이 높은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중심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고환율 기조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근원물가로의 파급 가능성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李 대통령 “햇빛·풍력연금 신안군처럼…송전망 확충 국민펀드 검토”

이재명 대통령은 16일 전남 신안군의 재생에너지 사업을 두고 모범적 사례라고 평가하며 “신안군 담당 국장이 엄청 똑똑한 것 같다"며 “데려다 쓰든지 하는 것도 검토해보라"고 말했다. '햇빛 연금·바람 연금'으로 불리는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이익공유 제도의 전국 확산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성과를 만들어낸 실무 공무원을 제도 확산의 핵심 인물로 직접 지목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사회연대경제 관련 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신안군 사례를 거론했다. 그는 “신안군 내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려면 주민 몫으로 30%가량 의무 할당하고 있지 않느냐"며 “아주 모범적 형태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전국의 군은 전부 인구소멸 위험지역인데 신안군은 햇빛 연금 때문에 인구가 몇 년째 늘고 있다"며 “이것을 전국적으로 확산 속도를 빨리하면 좋겠다"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신안군의 재생에너지 사업이 주민 수용성 측면에서 성공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체계적으로 대규모 사업을 하는 데다 주민 몫도 확실하기 때문에 저항 없이 햇빛 연금이 정착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나가다 우연히 (인터뷰를) 봤는데, 신안군의 담당 국장이 엄청 똑똑한 것 같다"며 “데려다 쓰든지 하는 것도 검토해보라"고 했다. 기후부가 보고한 사업 확산 계획을 두고는 속도 조절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 대통령은 “리가 3만 8000개인데 2030년까지 500개를 하겠다는 것이냐. 쪼잔하게 왜 그러느냐"고 농반진반으로 지적했다. 그는 “남는 게 확실하지 않으냐"며 “재생에너지는 부족하고 수입은 대체해야 하고, 공기와 햇빛은 무한하고, 동네에는 공용지부터 하다못해 도로, 공터, 하천, 논둑, 밭둑 등 노는 묵은 땅이 엄청 많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부족 사태가 곧 벌어질 텐데, 빨리 개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송전 시스템 구축과 관련해 국민 참여형 투자 방식도 제안했다. 그는 “송전 시스템도 구매가 보장되는 것 아니냐. 그것을 왜 한국전력이 빚 내서 할 생각을 하느냐. 민간자본, 국민에게 투자하게 해 주시라"며 “국민은 투자할 데가 없어서 미국까지 가는데, 민간 자금을 모아 대규모 송전시설을 건설하면 수익이 보장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이 “자칫 민영화 논란으로 확산할 수 있어 그동안 못 했다"고 설명하자, 이 대통령은 “민영화라는 건 특정 사업자에 특혜를 주니 문제인 것이지, 국민 모두에게 기회를 주는 펀드 형태는 다르다"며 “완벽한 공공화"라고 선을 그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유동성 단일 해석은 무리”...집값·환율 상승, 한은의 진단은

한국은행이 최근 시중에 돈이 과도하게 풀리면서 수도권 집값과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일부 시각에 대해 공식적으로 선을 그었다. 자산 가격과 환율 변동을 단일 요인으로 단정하는 것은 현실을 과도하게 단순화한 해석이라는 입장이다. 한은은 16일 공개한 블로그 자료를 통해 최근 나타난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과 환율 급등 현상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통화량 증가만으로 현재의 시장 흐름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통화정책 수단만으로 국내 유동성을 완벽히 제어하는 것도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통화량 지표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는 접근은 현재의 통화정책 운영 체계와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유동성은 협의 통화(M1)를 비롯해 광의 통화(M2), 금융기관 유동성(Lf), 광의 유동성(L) 등 여러 지표로 나뉘어 측정된다. 한은은 최근 유동성 증가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지난 9월 기준 M2는 전년 대비 8.5% 늘었고, Lf와 L도 각각 8.0%, 7.2% 증가했다. 10월에도 증가 흐름은 이어져 M2는 8.7%, Lf는 7.8%, L은 7.1% 확대됐다. 이 같은 유동성 확대 배경으로는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시차를 두고 민간 신용에 반영된 점과 함께, 경상수지 흑자 폭 확대에 따른 해외 유동성 유입이 지목됐다. 여기에 정부 재정 지출 증가로 국채 발행이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다만 한은은 이러한 증가세가 이례적인 수준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과거 금리 인하기와 비교하면 이번 인하기 동안의 M2 누적 증가율은 8.7%로, 2012년보다는 높지만 2014년이나 2019년 당시보다는 낮은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미국과 비교해도 유동성 증가 속도가 과도하게 빠르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놨다.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 3월을 기준으로 보면, 이후 한국과 미국의 M2 누적 증가율은 각각 49.8%와 43.7%로 큰 차이가 없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특히 한은은 최근 M2 통계 증가의 상당 부분이 기존 통계 범위 밖에 있던 자금이 상장지수펀드(ETF) 등 수익증권 형태로 유입되면서 발생한 '구성 변화'에 따른 착시 효과라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에 풀렸던 유동성이 새롭게 창출된 것이 아니라, 통계상 M2로 편입되는 금융상품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환율 상승의 원인 역시 유동성보다는 외환 수급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10월 거주자의 해외 증권 투자 규모는 1171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해 같은 기간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크게 웃돌았다. 여기에 수출 기업들이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보유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외환 수급 불균형이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한은의 실증 분석 결과 올해 9∼11월 원·달러 환율이 약 65원 상승한 가운데 이 중 약 3분의 2는 외환 수급 등 국내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됐다.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 역시 시중 유동성 증가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와 이른바 '똘똘한 한 채' 선호로 인한 특정지역 수요 집중이 집값 상승의 핵심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강남 3구 등 핵심 지역에서 현금 거래 비중이 높아진 점에 대해서도 신규로 풀린 유동성보다는 과거에 축적된 자금이 수익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한은은 자산 가격과 환율 상승의 책임을 유동성 하나로 돌릴 경우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중 자금이 부동산이나 외환시장에 쏠리기보다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 국내외 투자자 신뢰를 높이는 자본시장 제도 개선 등 정책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자사주 소각 의무화’ 숨 고르기…민주당, 기존 물량 1년 유예

더불어민주당이 기업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기존에 보유한 자사주에 대해서는 1년간 처분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등 지도부는 1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기중앙회와의 '중소기업 입법과제 타운홀 미팅'에서 이 같은 방침을 밝혔다. 이날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3차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기존에 보유 중인 자사주의 경우 최소 1년간의 처분 유예 기간을 주실 것을 중소기업계를 대표해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아마 기존 보유 자사주에는 1년 정도 처분 유예 기간이 주어질 것"이라며 “다만 1년이 아니라 더 보유하려고 하면 주총 특별결의를 통해 그 목적에 맞게끔 보유하도록 주주들로부터 동의받는 방식을 취하면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한 정책위의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상생협력법의 처리 상황도 설명했다. 그는 “대·중소기업 간 기술 탈취를 근절하고, 피해 기업에 대한 조사와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한국형 증거 개시 제도', '법원의 자료 제출 명령' 등을 담은 상생협력법이 국회 산업위를 여야 합의로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법과 관련해 변호사의 비밀 유지권을 담은 변호사법이 같이 개정돼야 한다"며 “변호사법도 법사위에서 논의 중이어서 이 두 법안은 1월 중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청래 대표는 철강업계 지원 성과도 언급했다. 그는 “철강·알루미늄 파생상품 분야에서 중국 저가품에 대한 대응이 상당히 어려워졌다고 한다"며 “이와 관련해 컬러강판 도금 부착량 테스트 방법 신설, KS 인증심사기준 개선, 자동차부품 중소기업 관세 대응 연계 지원 등으로 철강업계에서 한시름 덜게 됐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중소기업중앙회는 민주당에 제도 개선 과제를 공식 건의했다. 중소기업계는 투자 촉진과 규제 혁신, 성장 지원을 주제로 △67개 법정기금의 벤처·스타트업 투자 의무화 △국민성장펀드와 코스닥 활성화 펀드 연계 △인공지능(AI) 학습·분석용 데이터 활용 책임 완화 제도 △고객 기반 금융 AI 서비스 개발을 위한 제도 개선 △혁신형 연구·개발(R&D) 세액공제 확대 등을 요청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이번 정부에서 중소기업 규제가 확실히 개선되고, 지역경제가 살아날 수 있도록 민주당 차원에서 입법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민주당에서 정청래 대표와 한정애 정책위의장, 권칠승 중소기업특별위원장, 김원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간사 등이 참석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재계 3·4세 경영 전면배치…신성장동력 발굴 진두지휘

재계 총수 일가 3·4세들이 '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주요 기업 경영 전면에 속속 나서고 있다. 롯데·HD현대·GS·CJ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세대교체에 속도가 나는 모습이다. 경력·성과가 뚜렷하지 않은 인물들이 '신성장동력 발굴'이라는 막중한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올해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부사장)의 역할을 대폭 확대했다. 신 부사장은 앞으로 박제임스 대표와 함께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 대표를 맡기로 했다. 그룹 지주사 롯데지주에 신설되는 전략컨트롤 조직도 이끌게 된다. HD현대는 지난 10월 사장단 인사를 통해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아들인 정기선 수석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정 회장은 HD현대·HD한국조선해양 대표에 더해 내년부터는 HD현대사이트솔루션 공동 대표도 맡기로 했다. GS그룹에서도 총수 3·4세 경영인이 전면에 배치된다. 지난달 인사를 통해 허용수 GS에너지 사장과 허세홍 GS칼텍스 사장이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허용수 부회장은 고(故) 허완구 ㈜승산 회장의 아들이다. 허세홍 부회장은 GS칼텍스 회장을 지낸 허동수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승진한 홍순기 ㈜GS 부회장과 함께 '3인 부회장 체제'를 구축해 허태수 회장을 보필하게 된다. CJ그룹 4세인 이선호 CJ 미래기획실장(경영리더)도 영향력이 커진다. 올해 인사를 통해 상위 조직인 미래기획그룹까지 이끄는 방향으로 역할이 확대됐다.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의 장남인 구동휘 LS MnM 대표는 사장으로 명함을 바꿨다. 이밖에 농심에서 총수 3세 신상열 전무가 부사장으로 영전했다. 신동원 회장의 장남인 신상열 부사장은 앞으로 회사 글로벌·미래 사업을 총괄하게 된다. 삼양식품에서는 3세 경영인 전병우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전무 자리에 올랐다. SPC그룹에서는 허영인 회장의 장남 허진수 사장이 올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차남인 허희수 부사장은 사장 자리를 차지했다. 재계에서는 3·4세 경영인들이 지나치게 '고속 승진'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창업주나 2세들이 밑바닥부터 사업을 배우며 실력을 쌓아왔다는 점과 비교된다는 이유에서다. 신유열 롯데 부사장은 1986년생이다. 일본 노무라 증권 등에서 경험을 쌓다 2020년 일본 롯데에 입사했다. 곧바로 본부장·기획부장 등 직함을 달았고, 2023년에는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전무)과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 역할을 맡으며 경영 보폭을 넓혔다. 이 사이 롯데그룹은 코로나19 대응 실패, 유통 부문 혁신 부재, 화학 업황 불황 등을 만나 힘든 시기를 보냈다. 올해 인사에서 전체 CEO의 3분의 1 수준인 20명을 물갈이해야 했을 정도다. 1982년생 정기선 HD현대 회장 역시 본격적으로 회사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다. 수석부장으로 입사하고 1년만인 2014년 상무를 달았다. 2018년부터 현대중공업 부사장, 2021년부터 HD현대 사장을 맡았다. CJ 4세 이선호 경영리더는 1990년생이다. 2013년 입사해 2022년 임원 자리에 오른 뒤 경영 수업을 받아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82년생 구동휘 LS MnM 사장은 2013년 LS일렉트릭에 차장으로 입사해 6년만인 2019년 임원을 달았다. 1993년생인 신상열 농심 전무는 지난해 11월 임원이 된 뒤 1년만에 부사장이 됐다. 1994년생인 전병우 삼양식품 COO는 2019년 입사 뒤 1년만에 임원이 됐다. 2023년에는 상무, 올해는 전무를 달며 초고속 승진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국내 100대 그룹 총수일가 경영인들은 임원 승진 이후 회장에 오르기까지 평균 17년11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세보다 3·4세로 갈수록 임원 진입 연령이 낮아지고 승진 속도도 빨라지는 경향을 보였다. 재직 중인 총수 일가 임원들은 평균 29.4세에 입사해 약 5년2개월 뒤인 34.9세에 임원을 달았다. 이후 7년10개월 뒤인 42.7세에 사장으로 승진하는 경향을 보였다. 입사와 동시에 임원으로 출발한 인원도 28명에 달했다. 실력으로 리더 자리를 차지한 전문경영인들과는 분명히 다른 양상이다. 최근 효성그룹 첫 전문경영인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김규영 HS효성 회장은 1972년 동양나이론에 입사해 53년간 회사를 성장시켜왔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권오갑 HD현대 명예회장도 1978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40여년만인 2019년 회장 자리에 올랐다. 문제는 최근 재계 주요 기업들을 둘러싼 글로벌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발 '관세전쟁'의 후폭풍이 계속 불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고환율 시대 수출·수입 지형도가 급변하고 있고 '인공지능(AI) 혁명' 등 미래 기술을 향한 변화의 속도도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 재계 '젊은 리더'들이 위기 속 본업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미래 성장 분야에서 새로운 동력을 발굴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경험이 부족한 재계 3·4세가 '신성장동력 발굴' 특명을 받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기대와 걱정이 공존하는 분위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영 능력 입증이 아니라 관련 경험 자체가 없는 직원이 총수 일가라는 이유로 고속 승진하는 관행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총수 일가 세대교체는) AI 시대 도래가 전문경영인 '관록의 가치'를 약화시킨 측면도 있다"며 “과거에는 오랜 경험과 축적된 통찰이 강점이었지만 최근에는 변화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실행하는 젊은 임원들이 더 적합하다는 인식도 확산됐다"고 진단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10억이상 ‘금융부자’ 47.6만명…이들이 주목한 투자처는?

우리나라에서 10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부자가 47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됐다. 14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5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부자'는 47만6000명, 전체 인구의 0.92%로 집계됐다. 부자 수는 전년보다 3.2% 늘었고, 이 조사가 시작된 2011년(2010년 말 기준 통계·13만명)과 비교하면 3배 이상으로 불었다. 해마다 평균 9.7%씩 증가한 셈이다. 작년 말 기준 한국 부자가 보유한 총금융자산은 3066조원으로 1년 사이 8.5% 늘었다. 전체 가계 금융자산(5041조원)의 60.8%에 해당하는 규모다.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부자들의 금융자산 증가율 8.5%는 전체 가계 금융자산 증가율(4.4%)의 두 배 수준"이라며 “일반 가계보다 부자의 자산 축적 속도가 더 빨랐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1158조원) 이후 부자들의 금융자산 연평균 증가율은 7.2%로 집계됐다. 자산 규모별로 나눠보면, 90.8%(43만2000명)가 '10억원∼100억원 미만'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자산가'로 분류됐다. 보유 금융자산이 '100억원∼300억원 미만'인 '고자산가'는 6.8%(3만2000명), 300억원 이상 '초고자산가'는 2.5%(1만2000명)를 차지했다. 한국 부자 1인당 평균 금융자산은 64억4000만원으로, 전년보다 3억1000만원 늘었다. 올해 7∼8월 부자 400명 면접조사 결과 이들의 자산은 부동산과 금융자산에 평균 각 54.8%, 37.1%의 비율로 나뉘어 있었다. 2024년(부동산 55.4%·금융 38.9%)과 비교해 부동산과 금융자산 비중이 모두 소폭 줄었다. 금·디지털자산 등 대체 투자처가 주목받으면서 기타자산 투자가 늘어난 영향으로 연구소는 추정했다. 한국 부자의 자산 구성을 세부적으로 보면 거주용 주택(31.0%), 현금 등 유동성 금융자산(12.0%), 거주용 외 주택(10.4%), 예·적금(9.7%), 빌딩·상가(8.7%), 주식(7.9%) 순이었다. 부자들에게 지난 1년간 금융 투자 성과를 묻자, “수익을 냈다"고 답한 비율이 34.9%에 이르렀다. 지난해(32.2%)보다 2.7%p 올랐다. 연구소는 “올해 주식시장의 강한 반등과 채권 시장의 양호한 성과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금융 투자 상품별 수익 경험률은 주식(40.0%)가 가장 높았고, 이어 펀드(9.0%)·채권(8.8%)·만기 환급형 보험(8.0%) 등의 순이었다. 주식에 투자하는 부자들은 평균적으로 국내 주식 5.8개, 해외 주식 4.9개 종목에 투자하고 있었다. '서학개미' 열풍에 지난해보다 해외주식 보유 수가 0.7개 늘었다. 한국 부자는 향후 1년 이내 단기에 고수익이 예상되는 투자 대상으로 주식(55.0%)을 가장 많이 지목했다. 금·보석(38.8%), 거주용 주택(35.5%), 거주용 외 주택(25.5%), 펀드(14.0%) 등이 뒤를 이었다. 3∼5년 중장기 투자에서 높은 수익률이 기대되는 유망 투자처로도 주식(49.8%)이 1위로 꼽혔다. 작년보다 응답률이 14.3%p나 뛰었다. 거주용 주택(34.8%), 금·보석(33.8%) 등도 거론됐다. 부자들이 자산을 축적한 원천은 주로 사업소득(34.5%)과 부동산 투자 이익(22.0%), 금융 투자 이익(16.8%)으로 조사됐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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