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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대형마트 영업규제, 강화-완화 이분법 벗어나야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파면선고 직후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향후 유통업계 이슈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제일 먼저 꼽았다. 대형마트 규제는 윤석열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의 견해 차가 가장 뚜렷한 이슈인 만큼 향후 대선 결과에 따라 향방이 크게 달라질 사안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대형마트 업계의 숙원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규제개혁 1호로 선정하고 관련 내용으로 의무휴업 평일 선택, 의무휴업일 온라인영업 허용 등을 적극 추진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제22대 국회 출범 이후 현재까지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중 대형마트 영업규제 관련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발의 건수만 총 13건에 이른다. 국민의힘이 발의한 6건은 모두 대형마트 영업시간 완화, 의무휴업일 공휴일 지정 완화, 의무휴업일 온라인영업 허용, 자영업자인 프랜차이즈 가맹점 의무휴업 완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발의한 7건은 모두 평일 의무휴업 금지, 상권영향평가 강화, 준대규모점포 규제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들 13개 발의안은 현재 모두 소관상임위 계류 중이다.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실제로 주변 소상공인·전통시장 보호에 효과가 있는 지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지난 2월 산업연구원(KIET)이 발표한 보고서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한 대구시와 충북 청주시는 평일 전환 이후 대형마트 주변상권 매출액이 평균 3.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나 전통시장의 경쟁상대는 서로가 아니라 온라인 업체"라고 지적하면서 “대형마트와 전통상권이 공존하는 복합상권으로 소비자가 찾아오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기업회생을 진행 중인 홈플러스는 월 2회 의무휴업에 따른 매출 감소 효과가 연간 1조원에 이른다고 추산하고 있다. 홈플러스의 위기가 의무휴업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홈플러스 기업회생으로 2만명에 이르는 근로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입점 소상공인들도 위기에 직면했다는 점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의 시사점을 제시해 준다. 6월 대통령선거에서 어느 당이 집권하든 대형마트 규제 방향이 이분법적 잣대가 아닌 전통시장 소상공인은 물론 대형마트 근로자, 소비자 모두 아우르는 통합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기자의 눈] 우리는 산불을 진정 심각하게 여기는가

역대 가장 큰 산불로 기록될 '경북산불'이 지난달 진압된 이후 산불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여러 주장이 나온다. 일부 환경단체선 산림청이 불에 잘타는 소나무를 인위적으로 심어서 문제라고 한다. 반대쪽에선 환경단체 반대로 산림의 길인 임도를 못 만들어서 산불을 끄기 힘들었다고 한다. 인력·장비 부족은 고질적으로 등장하는 문제다. 잔가지 등 산불을 키우는 연료들이 산림에 즐비해 숲가꾸기로 제거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리는 있어 보이나 주장을 계속 듣다보면 자신들과 관련된 조직의 영향력을 키워달라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산림청을 부로 승격해 인력과 예산을 늘리고 임도를 건설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지금 상태에서는 산림부가 된다고 환경단체 반대를 뚫고 임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산림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 공감대와 산림청 위상이 함께 커지면 저절로 부 승격으로 이어질 것이다. 산림청의 산불 진화 업무를 소방청으로 이관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는 산림청 규모를 축소시키고 대신 소방청 힘을 키울 수 있다. 산불 진화의 주인공을 두고 벌이는 신경전 아닌가. 일부 환경단체는 임도 건설, 숲가꾸기, 인공 산림조성 등으로 생태계를 건들지 말고 최대한 보전하자며 산림청을 압박하는 시도도 보인다. 한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 산불의 외부효과, 즉 탄소배출에 따른 피해가 제대로 파악 및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산불로 희생된 주민, 동물과 고생하는 공무원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연예인들의 기부행렬에 박수를 친다. 그러나 대도시에 거주하는 대다수 국민에게 산불은 나와 상관 없는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일 뿐이다. 산불은 결코 우리와 상관 없지 않고 한반도 온실가스 농도를 높인다. 유럽연합(EU)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의 글로벌 산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3월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산불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230만톤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는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정했고, NDC 달성을 위해 탄소배출권 제도를 운영 중이다. 온실가스 한톤이 아쉬운 상황이다. 산불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발전(전환), 산업, 건물, 교통 등에서 배출량을 더 줄여야 한다. 현재 국내 배출권 가격대인 톤당 만원을 적용하면 230만톤은 약 230억원의 가치를 갖는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배출권 가격이 유럽연합(EU)처럼 10만원대로 오른다하면 230만톤은 2300억원가량이다.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일 대표발의한 탄소중립법 개정안이 눈에 들어온다. 개정안은 온실가스 배출의 사회적 손실을 정부가 산출해 공시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불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손해액이 집계되고 이를 온 국민이 함께 책임져야 한다면, 지금보다 산불 대응을 위한 논의가 더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믿는다. 장마철까지는 멀었고, 산불 위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사상 두 번째 ‘탄핵’…끝이 아니라 시작

“첫 번째 매듭이 지어졌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후 나오는 말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120여일간 이어진 정치적 혼돈, 사회적 갈등, 경제적 리더십 실종 사태가 이제 막 해결을 위한 첫 번째 단계를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예상보다 심리가 길어졌지만 '8대 0' 만장일치로 국회의 탄핵 소추안이 인용돼 파면 결정이 내려졌다. 일각에선 헌재 재판관들의 진보-보수 성향에 따라 의견이 갈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막상 뚜껑이 열리자 결과는 전원일치였다. 12.3 비상계엄 와중에 윤 전 대통령이 저지른 행위의 위헌·위법성이 그만큼 중대했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의 완패였다. 절차상 문제점·검찰 조서의 증거 능력 인정 여부 등은 모조리 반박됐다. 헌재의 만장일치 선고 덕에 찬반 세력간 극단적 대결을 예방할 수 있었다. 실제 선고 당일 찬반 세력 모두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지만 큰 물리적 충돌이 없어 부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선고일 당시 4명이나 사망한 것을 감안하면 다행한 일이다. 게다가 이번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선 반대 여론이 유독 기승을 부렸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핑계로 든 부정선거론 등 음모론에 자극받아 진영론이 극대화된 덕이었다. 헌재의 전원일치 판결은 자칫 찬반 세력간 폭력 사태로 번질 뻔한 상황을 진정시켰다. 전세계에선 위기에 처했던 한국의 민주주의가 고비를 넘겼다는 평가다. 한때 인구 5000만명 이상·GDP 3만달러 이상 국가 중 1위를 달렸던 K-민주주의가 소생의 기회를 맞이했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각하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법원도 때려 부수는 극우 세력이 나타났다. '윤 전 대통령에게만' 너그러운 검찰·법원의 행태로 사법 불신이 최고조다. 경제도 참혹하다. 미국발 '관세전쟁'에 대응할 국가적 리더십이 실종돼 후유증이 심각할 것 같다. 내수 침체에도 제대로 된 추경 조차 편성하지 못했다. 기업은 망해나가고 자영업자들은 파산 행렬이다. 정치권은 벌써 조기 대선 국면이다. 12.3 비상계엄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과정으로 삼자.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AI) 시대 확 달라진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토론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기자의 눈] ‘탄핵선고 뒤탈’ 없어야 서민경제 산다

4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가 나온다. 계엄령 파동과 탄핵 정국에 따른 시국 불안이 종지부 찍을 전망이다. 그동안 4개월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았던 비상계엄과 현직 대통령 구속, 179명 목숨을 앗아간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를 낸 경북지역 산불까지 혼란의 연속이었다. 잠잠해질만 하면 파도처럼 몰아치는 게 놀라울 정도다. 공교롭게도 시국이 어지러울 때마다 그 후폭풍은 꼭 소상공인들이 얻어맞았다. 연말 대목을 앞두고 벌어진 사건·사고에 각종 모임이 줄줄이 취소돼 요식업계 매출이 직격탄을 맞았고, 봄꽃 축제를 앞두고 발생한 '역대급 산불'로 소상공인들은 가슴에 멍이 들고 있다. 최근 소상공인·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선 산불 피해에 놀란 지방자치단체의 축제 취소사태를 두고 상인들끼리 '갑론을박'을 벌이는 안타까운 모습이 연출됐다. 봄꽃축제만 손꼽아 기다려왔던 어떤 상인은 “산불과는 관련 없는 하천가 축제들까지 취소하며 다른 소상공인 숨통을 조여야하나"라며 불만을 토로한 반면, 산불지역 상인들은 “피해지역은 살길이 막막한데 꼭 축제를 해야 하나"라며 분노했다. 산불에 다 타버린 산자락도 참담했지만, 어느 편을 들기 어려울 정도로 소상인들의 안타까운 외침도 서글프긴 매한가지였다. 4일 헌법재판소의 선고 결과가 어떠하든 간에 사회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기업들은 선고 당일 아예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시행하겠다고 밝혔고, 헌법재판소 인근 식당들도 아예 문을 열지 않겠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탄핵선고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든 정치권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정치권이 싸울수록 그 불똥은 민생에 튄다. 정치권이 헌재 결정에 불복한다면, 서민경제의 축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그 후폭풍을 맞게 된다. 탄핵선고 결과에 상관없이 정치권은 민생경제 살리기를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을 조속히 합의해 통과시켜야 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3일 발표한 한국에 상호관세 25% 부과에도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좌고우면할 겨를이 없다. 대통령 탄핵의 리스크를 넘겼으니 이제 사회 안정과 경제 회복에 '올 인'해야 한다. 더이상 정치 불안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가슴에 대못을 박아선 안된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증권가 레이더] ‘홈플러스 체납’ 책임이 NH투자증권?…논리 비약이 부른 오해

고려아연이 MBK파트너스를 향해 날선 비난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NH투자증권으로 불똥이 튀었다. 일각에서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신청으로 인한 농축산업계 피해를 NH투자증권의 MBK 차입매수(LBO) 자금 지원과 연결 짓고 있어서다. 지난달 한국농축산연합회는 성명서를 내고 “유가공 조합·업체의 경우 홈플러스로부터 40억~100억원의 납품 대금을 정산 받지 못하고 있다"며 “홈플러스의 대금 정산이 계속 지연되면서 일선 농협, 영농조합, 유가공조합 등 농축산물을 유통해야 하는 농축산업계는 큰 충격에 빠져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농축산업계가 피해가 부각되자 MBK에 차입매수 자금을 지원한 NH투자증권에도 책임이 있다는 게 고려아연을 비롯한 일부의 주장이다. 농민들의 자금을 기반으로 한 NH투자증권이 사모펀드의 주요 자금원으로 등장한 점은 실망스럽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이 내용만 보면 마치 NH투자증권이 홈플러스의 대금 체납 사태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해석된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업계에선 홈플러스 사태와 NH투자증권의 차입매수 지원을 동일선상에 두고 보는 것은 왜곡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NH투자증권의 MBK 자금 지원과 홈플러스 사태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홈플러스의 대금 체납 사태는 경영 부실에서 비롯된 사안일 뿐 증권사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증권사는 공개매수 과정에서 브릿지론을 제공하기 위한 업무를 수행한다. 차입금은 브릿지론으로 주식 공개매수 등에서 활용되는 것으로 일반적인 차입 형태다. 이번 NH투자증권의 MBK 차입매수 지원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투업계에서는 NH투자증권이 이번 사태에서 거론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반응이다. 일각에선 “고려아연이 MBK와의 경영권 분쟁의 일환으로 NH투자증권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고려아연 입장에서도 과도한 여론전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불확실한 정보를 언론에 제공하면 오히려 기업 이미지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기자의 눈] ‘대립’에서 ‘대화’로…주총장의 바뀐 공기

“주주들은 회사의 적이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 회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난달 시가총액 2조원 규모 코스피 상장사의 주주총회에서 한 주주가 주주제안 안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회사를 믿고 투자한 소액주주들을 본인들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상장사들을 향해 진심을 전달한 것이다. 올해 주주총회 시즌이 막을 내렸다. 지난해 주총 시즌과 비교해보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지난해 몇몇 상장사의 주총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소액주주들과 이사회가 치열하게 대립했다. 고성이 오가는 건 물론이고 물리적 충돌도 발생해 수십명의 경호 인력과 주주들이 대치하는 경우도 잦았다. 반면 올해 주총장의 공기는 달랐다. 이사회와 소액주주들이 치열하게 대립하기보다는 서로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의견을 공유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주주환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상장사들은 주주제안을 안건으로 상정하면서 주주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고 소액주주들 역시 사측을 공격하기보단 좀 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움직였다. 액트 등 의결권 플랫폼을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주주연대 활동이 자리를 잡으면서 주총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행동주의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주주연대의 힘도 커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주들 사이에서 낯선 존재였던 액트가 이제는 주주행동의 상징이 됐으니 말이다. 그 결과 방만경영을 일삼은 경영진을 주주들이 직접 해임시킨 사례도 등장했고 집중투표제 도입 등으로 주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했다. 시장이 발전하면서 주주들의 요구도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등 전통적인 주주환원 방식에서 이사 선임 등 경영 개입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주주들은 물론 상장사들도 주주환원과 주주 권익 보호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아직도 주주들을 배척하는 기업들도 많다. 많은 기업들이 회사의 성장 저해 가능성, 소송 남발 우려 등을 이유로 상법 개정에 극구 반대표를 던지고 있음이 이를 방증한다. 올해 주총 현장에 불었던 변화의 바람이 일시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상장사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주주를 동반자로 여길 때 비로소 진정한 밸류업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기자의 눈] 재계 ‘민간 외교관’ 뛰는데 정치권은 ‘불구경’

“향후 4년간 미국에 210억달러 가량을 추가 투자하려 합니다." 지난달 25일(이하 현지시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 백악관에서 한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대차가 미국에서 철강·자동차를 생산하게 된다"고 거들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백악관에서 대미 투자를 발표한 기업인은 손정의 소트프뱅크 회장과 웨이저자 TSMC 회장 뿐이다. 우리나라 '민간 외교관'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같은달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중국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제공상계 대표 회견'에서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40여명을 초청했는데 이 회장이 포함된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관세전쟁'이 본격화한 가운데 중국은 조심스럽게 한국에 손을 내밀고 있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샤오미, BYD 등 현지 대표 기업 리더들과 회동하며 파트너십도 도모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소속 기업인들은 지난 2월 미국 워싱턴 D.C.를 찾아 '대미 통상 민간 아웃리치' 활동을 전개했다. 최태원 회장은 백악관 및 상·하원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한미 양국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 대응법을 모색하기 위한 경제단체들의 세미나·강연도 계속 열리고 있다. 민간 외교관이 이처럼 바쁜 것은 한국 경제가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내수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데 '무역 전쟁'에 휘말릴 위기다. 환율은 치솟고 금융 시장도 불안하다. 각국이 관세 장벽을 세워 수출까지 줄어들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직전 전망치보다 0.7% 포인트 내린 1.5%로 잡았다. 일부 해외 경제 분석 기관에서는 우리나라 성장률이 0%대에 머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치권은 강건너 불구경 중이다. 12·3 계엄사태 이후 행정부 외교라인은 사실상 멈춰 섰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민감 국가' 명단에 포함시킨 사실을 두 달 동안 몰랐을 정도다. 국회는 민생과 경제는 저버린 채 '표심 잡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연초부터 추가경정예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정치 논리만 앞세우다 적기를 놓쳤다. 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한 이후에도 여야는 추경을 흥정 대상으로 보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기업은 2류,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일갈한 게 1995년이다. 30년이 지났다. 우리 기업들은 1류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치는 어떠한가? 대통령 탄핵 사태라도 빨리 수습되길 바랄 뿐이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급격한 전력시장 변화 바람, 부작용 최소화해야

전력산업이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탄소중립 정책과 재생에너지 확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불거진 국제연료비 급증과 이에 따른 한전의 적자 심화로 인해 전기요금 인상 압력이 지속되었고, 정부는 두 해 연속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제조업을 비롯한 대규모 산업 고객들은 비용을 절감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전력직접거래라는 방법을 통해 한전을 이탈하려 하고 있다. 지난 28일 전기위원회에서 전력직접거래를 위한 전력시장운영규칙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이제 다수의 대규모 제조 기업들이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력도매시장에서 직접 전력거래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는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기에 막을 방법은 없다. 제조업 중심인 한국에서 기업들이 전기요금 인하 방법을 찾는 것은 필연적이다. 산업용 전기소비가 전체의 절반 이상인 만큼 전력산업 개방 요구도 계속돼 왔다. 하지만 앞으로 한전의 재무구조 악화뿐만 아니라, 기존 소비자들의 권익 침해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산업부에서 올린 개정안에는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책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또한, 조만간 시행될 송전제약 PPA(전력구매계약) 고시로 인해 송전제약 지역에서는 용량과 관계없이 직접거래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여기에 발전사들도 한전을 거치지 않는 구역전기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상반기 분산에너지특별구역 지정까지 더해지면 산업용 전기 고객들의 이탈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산업용 고객들이 새로운 조치들을 통해 한전에서 이탈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지만, 전력당국이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산업용 고객의 대규모 이탈로 인해 한전의 적자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결국 요금 정상화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산업용 전기를 제외한 일반 소비자들의 구매 다변화 문제도 얽혀 있어 향후 시장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 산업용 전력 소비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한전의 지속 가능한 운영 방안을 고민해야 하며, 일반 소비자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균형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전력시장 선진화는 단순한 직거래 활성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안보,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안정성 등 다양한 요소들과 맞물려 있는 복잡한 문제다. 전력당국은 급격한 변화가 초래할 혼란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금융당국 믿지 못하는 은행…신뢰 쌓기가 먼저다

현재 은행권 내부에서는 금융당국과 외부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락가락한 정책과 불안한 정국까지 더해지며 은행들은 각종 정책과 금융당국 입을 믿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엔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 정책이 화근이 됐다. 서울시는 지난달 재산권 보호를 이유로 일부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을 해제했는데, 주택담보대출이 폭증하자 한 달여 만에 토허구역을 확대 재지정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한 달 만에 번복된 서울시의 정책에 시장에서는 대혼란이 발생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관리를 강화하겠다며 진화에 동참했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모니터링에 지역별 관리를 추가하도록 했고, 주택담보·전세자금대출 점검도 하기로 했다. 여기에 주로 서민들이 이용하는 정책대출이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경우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은행권의 혼란은 가중됐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은행권에 가계대출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압박해왔다. 하지만 서울시가 촉발시킨 가계대출 확대를 잡기 위해 은행권에 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하며 은행들은 가계대출 금리를 내릴 수도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연초부터 총량 관리 리셋에 따라 은행 자체적으로 조이고 풀어왔던 대출 정책에 혼선이 생겼는데, 금융당국이 금융사들의 자율 관리 강화를 주문하면서 난처함도 커졌다. 은행권에서는 금융당국이 강하게 밀어부치고 있는 제4인터넷전문은행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제4인터넷은행이 이번 정부에서 나온 구상인 데다, 정국 혼란으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나오고 있어 장기적으로 이어질 정책이 아닐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제4인터넷은행 인가는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며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금융당국이 기존 인터넷은행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리고 있어 새로운 인터넷은행 출범에 결코 호의적으로 나설 수 없을 것이란 반응도 적지 않다. 금융위가 지난 25~26일 제4인터넷은행 예비인가 신청을 진행한 결과 한국소호은행을 비롯한 4곳의 컨소시엄이 참여했다. 유력 후보였던 더존뱅크 컨소시엄과 유뱅크 컨소시엄은 접수 일주일을 앞두고 신청을 포기하거나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각 컨소시엄에 참여 가능성이 높았던 신한은행과 IBK기업은행은 사실상 제4인터넷은행에서 발을 뺀 것이다. 정책과 금융당국에 대한 불신이 생기면 은행들은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내부 전략을 세울 때도 불확실성을 지울 수 없게 된다. 금융산업이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책, 금융당국, 금융회사 간 신뢰가 중요한 이유다. 금융당국의 오락가락한 태도와 정책의 급격한 변화에 은행권에서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관되고 꾸준한 정책과 금융당국의 태도가 필요하며, 불안한 지금의 정국에서 어서 벗어나 금융산업 내 신뢰를 쌓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산불피해’ 국회의원보다 먼저 움직인 금융지주 회장들

국회의원들이 민생은 외면하고, 정권에만 몰두한 채 유치한 싸움까지 불사하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산불 사태로 26명이 사망하고,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은 채 목숨을 걸고 대피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조차 국회의원들은 어김없이 서로를 향한 날선 공방만 이어가고 있다. 정말 이정도인가. 국회를 향한 실망이 최고조에 이른 것은 이달 23일이다. 신한지주를 시작으로 KB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는 이날 오후께 앞다퉈 산불 피해지역 복구 및 이재민 구호를 위해 성금 각 10억원을 기부하고, 긴급 구호키트·급식차·생필품 등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산불 피해를 다룬 뉴스를 보면, 은행 로고가 새겨진 구호 텐트가 나오는데, 이는 모두 금융지주사들이 신속하게 대처한 덕분이다. 나아가 금융지주사들은 이재민의 경제적 어려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은행, 보험, 카드 등 계열사들을 주축으로 특별대출, 만기연장, 금리우대 등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고 했다. 그 시각 국회의원들은 무얼 했나. 더불어민주당은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파면을 선고할 때까지 광화문에 천막당사를 설치하고, 광장에서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고 했다. 국민의힘도 이에 지지 않고 더불어민주당에 맹공을 퍼부었다. 국가는 산불과 목숨을 건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정작 국회는 국가 재난을 가벼이 여겼다. 다음날(2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과태료 300만원을 감수하면서도 대장동 민간업자들의 배임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300만원이라는 금액은, 산불로 생사를 오가는 이재민들의 상황에 비춰보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이어 이재명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은 직후 경북 안동의 이재민 대피소를 비롯한 경북 지역의 산불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그가 정말 산불피해에 진심이었다면, 왜 본인이 무죄 판결을 받고 나서야 현장을 방문하는가. 산불피해 현장에 성금을 기부하고, 각종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는 주체는 금융지주사가 아닌 국회의원이다. 어떤 기업들보다 당연히 국회가 먼저 움직여야 하고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이 국민과 함께 싸우고, 사투를 벌여야 할 대상은 희망 없이 고꾸라지고 있는 국가 재난과 경제 위기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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