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기자의 눈] 22대 국회 ‘국감 시즌’ 책임감 있는 모습 보여주길

국정감사(국감) 시즌이 왔다. 국회의원들이 국가 기관을 감사하고 문제점을 파헤쳐 바로잡는 시기다. 우리가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검사한다는 점에서 그 무게감이 상당하다. 헌법 61조에는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해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 제출 또는 증인 출석·증언이나 의견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물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기회를 '정치쇼'로 이용하는 의원들이 상당수다. 여야 간 정쟁만 거듭해 '국감 무용론'이 확산된지 오래다. 황당한 통계를 가져오거나 앞뒤가 안 맞는 논리로 윽박만 질러 빈축을 사는 의원들도 있다. 전문성 없이 상임위원회에 배치돼 '사고'를 치는 사례도 빈번하다. 올해 역시 시작도 전에 일이 터졌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 소방시설 자체점검 실시율이 30% 미만이라고 지적했는데 실제로는 90%가 넘었던 것이다. 일부 축사와 국가유산 시설 화재 점검 시행률이 0%대라는 등 강렬한 내용이 많아 다수 언론사가 해당 내용을 보도한 상태였다. 아쉬운 점은 박정현 의원 측 대응 방식이다. '정정보도요청'이라는 자료를 배포하며 “소방시설 자체점검 대상 숫자 산정에 오류가 있었고 실제 90%를 넘는 것으로 확인해 이를 바로잡습니다"고 밝혔을 뿐이다. 다른 조치는 없었다. 의원실에 “업데이트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는데 왜 '정정보도요청'이냐"고 묻자 “자료 제출이 잘못됐다"며 책임을 회피하느라 바빴다. 국감은 의원들이 형사이자 검사가 돼 피감 기관들을 감독하는 일이다. 건강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큰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의미가 아무리 퇴색됐다고 해도 의원들은 책임감 있는 태도로 이에 임해야 한다. 초선들이 국감을 하고 나서야 국회의원의 진정한 힘을 깨닫는다고 하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아리셀 공장 화재 등 굵직한 사건이 일어나 소방시설 점검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 있는 시기다. 통계 작성 등에서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대신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책임감도 보였어야 한다. 박정현 의원실의 '뭐 어쩌라고 행보' 탓에 아직도 온라인상에는 잘못된 정보가 담긴 기사들이 남아있다. 이번 국감에서 의원들이 제 역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 국민들이 보고 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믿음 못주는 체코 원전 수주, 왜?

15년 만의 해외 원자력발전 수출 가능성이 크지만 정치권과 업계, 국민들에게 강한 확신을 주지 못하는 모양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지적재산권 문제 제기, 저가 수주 등 의구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도 말끔하게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 직접 체코를 방문해 현지 대통령과 총리들을 만나고 '원전 동맹'을 구축하며 최종계약까지 자신했음에도 말이다. 이를 반영하듯 두산에너빌리티 등 원전 관련주들은 지난 7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줄곧 주가 반등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업계가 제기하는 의혹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사업 수익률과 투자 금액을 명백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계약관계가 있지만 자신이 있다면 어느정도 국민들에게 설명을 해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체코 두코바니 지역에 1000메가와트(㎿)급 신규 대형 원전 2기를 짓는 계약이 성사될 경우 '24조원'(4000억코루나)의 수주 실적을 챙길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 사이에서도 한국이 약속한 60% 이상 현지 기업 참여와 현지 노동력 우선 고용, 추가 금융지원 조건 등을 고려하면 구매자가 갑인 원전 수주 시장 특성상 실제 한수원에 돌아올 이익은 크지 않다고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전체 24조원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의 이익이 얼마인지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적재산권, 자금조달 등 사업 리스크의 책임을 발주자인 체코가 지지 않고 공급자인 우리나라가 지게 될수도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게 업계의 요청이다. 여기에 발주처인 체코가 미국과 프랑스의 공격으로부터 최종계약까지 흔들리지 않을 확신이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와 최종까지 경쟁했던 프랑스 EDF는 한국의 제시 가격을 문제 삼는 건 물론이고 입찰 절차까지 문제를 삼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자신들의 기술을 가지고 한국이 우선협상을 했다고 항의를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가 원전 수출 시 특허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는 설계인증 외에 원전에 대한 특허가 없다. 따라서 이번에 웨스팅하우스의 지적재산권 이슈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앞으로도 이같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확언에도 불구하고 의구심이 제거되지 않는 이유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원전 수출의 경제성 분석을 보다 자세히 알릴 필요가 있다. 또한 사업 리스크를 발주자가 부담하는 구조를 명확히 해야 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산업은행 부산 이전의 피로감

“아직 부산 이전 안했나요?" KDB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을 두고 강석훈 산은 회장과 노동조합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는 기사에 보인 누리꾼 반응이다. 산은의 부산 이전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2022년부터 국정과제로 추진되고 있는데, 아직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되자 이에 대한 피로감을 나타낸 말일 것이다. 산은의 부산 이전은 행정 절차까지 마무리됐으나, 마무리 관문인 산은법 개정이 국회에서 막히며 동력이 줄어든 상태다. 정치적 대립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은법에는 산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를 개정해야 부산 이전을 할 수 있다. 법 개정은 여당 측에서 밀어부치고 있는데 야당 측은 여기에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제22대 국회에서는 여소야대 국면이 더 심화돼 법 개정이 더욱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내부 갈등도 여전하다. 산은이 26일 이사회를 열고 남부권 투자금융본부를 설치하고 인력을 부산으로 이동하는 내용의 조직 개편을 의결할 것을 통보하자 산은 노조의 반발은 더 극심해졌다. 산은 노조는 이번 조직 개편을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서울 여의도 산은 정문 앞에서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산은 노조는 현재 부산 이전과 관련해 행정 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부산 이전이 쟁점화된 지 2년 이상이 지났지만 산은은 부산 이전 블랙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산은은 단순한 은행이 아닌 산업 발전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정책금융을 수행해 국가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역할을 가진 산은을 부산으로 이전해 지역 균형 발전을 이끌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지만, 정작 산은의 정체성은 부산 이전 이슈에 묻히며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치적 대립과 노조와의 갈등, 직원 이탈, 경쟁력 약화 등 부정적인 모습이 비춰지며 산은의 혼란스러움이 부각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소모적인 갈등이 지속될 수록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산은 부산 이전의 명분은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결국 정치적 싸움과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되고 당사자인 직원들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산은의 부산 이전을 강행하려는 이유와 반대하는 이유는 많다. 서로의 이유 대 이유로만 충돌하면 지금의 상황은 해결될 수 없다. 산은의 발전,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길은 무엇인지 돌아보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금융권, 내부통제 강화 ‘치밀한 경쟁’ 보여줘야

신한은행이 이달 23일 금융권 최초로 책무구조도 시범운영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금융권의 주목을 받았다. 신한은행 발표 직후 KB국민은행도 책무구조도 기반의 내부통제 관리 체계를 선제적으로 도입하고자 10월 말 예정인 책무구조도 시범 운영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책무구조도란 지배구조법상 금융사 임원이 담당하는 직책별로 책무를 배분한 내역을 기재하는 문서다. 주요 업무에 대한 최종 책임자를 특정해 내부통제 책임을 하부에 위임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지주사와 은행은 내년 1월 3일까지 금융당국에 책무구조도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10월 31일까지 책무구조도를 조기에 제출하는 금융사를 대상으로 내부통제 관리 의무가 완벽하게 수행되지 않아도 지배구조법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이에 신한은행은 당초 당국이 예고한 시기보다 한 달 먼저 내부통제 책무구조도를 제출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라면 대부분의 금융지주사와 은행들은 책무구조도 시범운영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금융권에 횡령, 배임, 부당대출 등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 가운데 책무구조도를 조기에 도입하면 이를 기반으로 내부통제 강화 분위기가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그간 금융사들은 얼마나 더 많은 상품을 빠르게 고객들에게 판매하고, 수익을 올리는지가 핵심성과지표(KPI)의 기준이 됐다. 결국 금융사 일부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금융상품에 대한 위험성, 중요사항 등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상품 판매에만 혈안이 된 탓에 고객들은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이는 고객들이 금융사의 영업행위를 신뢰하지 않고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제는 금융사들의 경쟁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금융사 관점이 아닌 고객 관점으로, 판매 속도는 다소 느리더라도 질적인 상품을 꾸준히 공급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책무구조도 경쟁처럼 어떻게 하면 더 고객을 보호하고,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내부통제 문화를 어떻게 하면 견고하게 강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이는 곧 고객들에 대한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속 가능한 수익을 창출하는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내부통제 강화라는 건강한 경쟁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금융사들이 목표로 하는 회사의 성장도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우리나라 금융사들이 내부통제, 소비자 보호 부문에서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절박함과 전향적인 자세, 그것이 곧 K-금융을 세계에 알리는 길이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장기 불황기 ESG 경영의 난제

“잘 나갔을 때 했던 구두 약속을 너무나도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꼭 지켜야 할까요?" 얼마 전 만난 대기업 임원이 장기 불황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난제라며 내놓은 질문이다. 개인의 삶에 미치는 기업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기업의 역할이 사적 이익의 극대화에 국한되기보다 다양한 차원에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ESG 경영은 최근 5년여 기간 동안 국내 재계의 가장 큰 화두로 자리매김했다. 모집한 자금을 관련 프로젝트에 투입하도록 한정한 ESG채권의 신규 발행 흐름만 보더라도 최근 5년여 동안 재계의 관심이 급격히 커졌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국내에서 발행된 ESG채권은 1조2500억원 규모에 불과했으나 2021년 86조7510억원으로 3년 만에 69배 이상 늘었다. 당시 국내 많은 기업들이 2040~2050년까지 현재의 화석 에너지를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해 탄소 순배출을 제로화 하겠다는 내용의 과감한 약속을 발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2022년부터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분쟁 등이 발생하면서 에너지와 천연자원의 희소성이 치솟고 반대로 당장 이를 대체하기 어려운 친환경 에너지 및 관련 프로젝트의 가치가 급락했다. 이에 ESG 프로젝트에 대한 재계의 관심도 줄어드는 추세다. ESG채권 신규 발행은 2022년 57조4804억원, 지난해 75조5305억원으로 2021년 수준에 미달했다. 불황이 2~3년 동안 장기화되면서 일부 기업들 사이에서는 호황이었던 2021년 이전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아직 10여년 이상 약속 기간이 남았기에 당장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불황이 향후 몇 년 동안 이어진다면 이에 대한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기업의 수익성과 ESG가 완전히 대립되는 목표는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하나가 극단으로 치닫지 않는다면 경우에 따라서 동시에 추구해야할 가치에 가깝다. 이를 감안하고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수익성에서 눈을 돌린 ESG 정책은 결국 허무해질 수밖에 있다. 수익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도입한 기업도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ESG는 '기업을 옥죄는 또 다른 규제'가 아니라 수익성을 포함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돼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자리매김할 때 ESG의 가치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기자의 눈] 제정 늦어지는 AI 기본법, ‘망양보뢰’라도 해라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을 악용한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 문제로 부상했다. 피해자 중 대학생뿐 아니라 중·고교생, 교사, 여군, 초등학생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내 사진도 이용된 건 아닌지' 공포심이 커지고 있다. 연일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AI 기본법이 제정됐다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까?'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안(AI 기본법)은 지난해 2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법안2소위를 통과하면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상임위를 넘지 못한 채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해당 법안은 AI에 대한 개념과 산업 육성, 안전성 확보 방안 등이 담겨 있었다. 특히 여야 간 이견이 거의 없었음에도 무의미한 정쟁만 반복하다가 폐기돼 아쉬움을 낳았다. 22대 국회 들어 경쟁적으로 법안 발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꽤 고무적이다. 이달 기준 국회에 발의된 AI 관련 법안은 10건, 딥페이크 관련 법안은 30여 건에 달한다. 여당은 AI 산업 육성과 기술 개발 지원, 야당은 신뢰성 및 윤리원칙 확립, 구체적인 관리체계 마련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선 현재까지 발의된 주요 법안들의 목표와 실행 계획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적잖다. 공통적으로 산업 진흥과 신뢰성·윤리 원칙 확립을 균형 있게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고위험영역 AI의 개념과 범위가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이다. 딥페이크와 같이 AI 기술을 악용해 허위 정보를 만드는 범죄는 포함되지 않아서다. 심지어 딥페이크에 대한 정의와 통제 영역조차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으로 쏟아져 나온 검은 시위자들이 가해자 처벌 강화를 요구했으나, 기준과 수위를 재정립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으리라 예상되는 건 이 때문이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발의된 AI 관련 법안들은 최근 과방위 법안소위 심사대에 올랐지만, 여야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합의 처리는 불발됐다. 이후 2차례에 걸친 공청회를 통해 공감대 형성에 나섰으나, 국정감사 등 남은 일정을 고려하면 연내 제정은 어려울 전망이다. 결국 여야의 미적거림으로 인한 제도 공백이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사고, 파는 '괴물'을 키운 셈이다. 일찌감치 이 같은 기술 악용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경고가 적잖았음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여야 법안 중 장점을 추출한 '엑기스 법안' 제정과 적절한 규제 방안 마련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란 비판은 피할 수 없겠지만 지금은 그거라도 해야 한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선. 이태민 기자 etm@ekn.kr

[기자의 눈] 전기차 차주 눈총 받지 않는 사회 만들어야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되면서 일부 전기차 차주들이 억울한 차별을 겪고 있다. 정부를 비롯한 일부 업계 전문가들이 “전기차 지하주차장 출입시 충전량 제한이 필요하다"는 낭설을 퍼뜨리면서 실제 차주들의 권리가 침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포비아는 지난달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EQE 모델에 불이 붙으면서 시작됐다. 이 화재는 주차장에 있던 140여대의 자동차와 아파트의 배관을 모두 불태우며 수백명의 피해자를 남긴 사고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해당 아파트 주민들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이후 업계에선 전기차는 100% 충전하면 화재 위험이 높아진다는 근거 없는 루머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 사이에선 전기차는 언제든 불이 붙을 수 있고 화재 진압도 어려운 '시한폭탄'이고 전기차 차주는 '잠재적 방화범'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질 정도였다. 이를 부추긴 것은 다름 아닌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이다. 특별한 기술적 근거도 없이 '전기차는 위험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며 소비자들에 공포심을 더욱 불어넣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선 전기차 100% 충전 제한 권고 등 어이없는 정책이 나왔고, 이에 영향을 받은 일부 아파트에선 '전기차 지하주차장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여기저기 붙기도 했다. 근본적인 예방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차주들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완성차 제조사들이 나섰다. 과충전과 화재는 연관이 없다는 주장을 '기술적 근거'를 통해 소비자들을 이해시키고 있다. 현대자동차 등 제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에게 보이는 '100%'라는 충전량은 일부 여유 용량을 제외한 수치다. 즉 100% 충전이 되도 제조사가 안전을 위해 남겨놓은 충전량이 충분히 남아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배터리관리시스템(BMS)를 통해 충전량을 제어할 수 있으며 충전기를 꽂아두더라도 과충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다행히 정부도 정책을 급히 수정했다. 지하주차장 주차 제한 권고를 풀고 스프링클러 등 화재 진압 장치 개선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진작에 나왔어야 할 대책이 수만명의 전기차주들의 억울함을 거쳐 나오게 된 것이다. 정부와 관계자들의 무지한 발언으로 전기차 차주들은 이미 정신적 피해를 겪었다. 내 집에 내 차를 제대로 댈 수도 없었으며 이웃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사는 처지가 돼버렸다. 전기차 차주는 죄가 없다. 보조금을 퍼주며 전기차를 사도록 유도한 곳은 정부다. 돈 보태주면서 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사고가 터지니 소비자의 과충전 때문이며 위험하니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빼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슬쩍 정책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정부가 더 나서서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고 전기차 차주들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기자의 눈] 인텔의 몰락, 삼성전자는 안녕하십니까

영국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콜드 플레이'의 명곡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의 가사는 몰락한 왕이 화려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비참한 최후를 맞는 내용으로 구성돼있다. 이는 과거 '외계인을 고문해서 신제품을 만들어냈다'는 찬사를 받았던 미국 종합 반도체 기업(IDC) 인텔의 모습과 판박이다. 인텔은 개인용 컴퓨터(PC)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고, 코어 시리즈를 출시하며 AMD를 압도하며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당시 인텔은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세계 최고의 반도체 생산·설계 기술력을 자랑했다. 인텔은 PC 시장에서의 절대적인 점유율을 바탕으로 훨씬 많은 칩을 꾸준히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이는 최신 제조 공정 경쟁에서 경쟁 우위를 다져나갈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2007년 아이폰이 등장했고, '내 손 안의 PC'인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 시장이 급성장하는 동안 PC 시장은 정체기를 맞았고, 이와 동시에 인텔의 아성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텔에는 과거의 찬란했던 유산들이 있어 타사 칩을 위탁 생산할 기회가 있었다. ARM 명령어 셋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칩을 설계해 판매했더라면 여전히 시장 내 인텔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인텔은 자체 설계한 x86 아키텍처 칩으로 모바일 시장에 뛰어드는 최악의 수를 뒀고, ARM 아키텍처 대비 성능과 전성비 면에서 모두 처참히 깨지는 모습을 보였다. 또 인텔 제국을 확실히 나락으로 보내버린 6대 최고 경영자(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는 6년의 재임 기간 중 원가 절감을 통한 단기 성과에 집착하며 2016년에는 전체 인력의 10%에 해당하는 1만2000명을 해고했다. 해고 인력 대부분은 연구·개발(R&D) 부서원이었고, 이들은 경쟁사로 이직해 인텔은 기술력 격차·규모의 경제 2개의 해자를 모두 상실했다. TSMC와 AMD는 엄청난 반사 이익을 보며 인텔을 제쳤다. 앞으로도 인텔의 미래는 밝지 않다. ARM 아키텍처가 PC 시장에 침투하기 시작했고, 퀄컴도 이를 기반으로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또 서버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잃어가고 있고, 고부가가치가 기대되는 AI 서버 영역에서도 인텔이 잘 만드는 중앙 처리 장치(CPU)가 아니라 그래픽 처리 장치(GPU)에 집중돼있다는 점도 악재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타사 칩도 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규모의 경제'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TSMC도 채택한 전략이어서 이제는 오히려 인텔이 넘어야 할 벽이 돼버렸고, 야심차게 추진했던 1.8나노(18A) 공정은 브로드컴의 반도체 제조 테스트에서 실패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인텔의 몰락이 삼성전자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은 첨단 기술 패권 다툼으로 번졌고, 삼성전자는 '칩4 동맹'의 질서 속에서도 줄타기를 하며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형국이다. 이 가운데 인공 지능(AI)·그래픽 처리·데이터 센터 등의 필수 요소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분야에서는 SK하이닉스에 뒤졌고, D램과 낸드 플래시 분야에서는 거센 도전을 받고 있어 과거의 삼성전자가 아니라는 비평도 쏟아진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해체한 HBM 전담 부서는 전영현 부회장이 부랴부랴 부활시키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초격차'에서 '추격자'가 됐다는 말이 뼈 아프게 들리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생존을 위해 혁신 기술 개발과 투자 확대에 있고, 무엇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변화 속에서 방향성을 잃지 않고 추진해 나가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로 반도체 사업 50주년을 맞는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에 업계 최초로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기술을 도입했고, 3나노 공정에서 시장을 선도할 경쟁 우위를 확보해 TSMC에 열세인 상황 역전극을 모색하고 있다. 파운드리가 걸음마 단계라서 TSMC에 밀리는 건 사실이지만 이를 당연시 해서는 안 된다. '칩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는 “관료제에 가까운 인텔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설명하려는 노력 조차 기울이지 않아 혁신과 멀어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인텔로부터 무슨 교훈을 얻었는가.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수첩] 플랫폼 1등에 따라붙는 ‘갑질 논란’

CJ올리브영과 무신사 두 기업은 각각 주력 분야인 화장품과 패션 플랫폼업계 1위로 평가받으며 압도적 시장영향력을 가졌다는 긍정적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반면에, 둘 다 '갑질 논란'이라는 부정적 교집합도 공유하고 있다. 입점업체에 갑질 혐의로 현재 공정거래위원회 등 사정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두 기업이 최근 나란히 뷰티 카테고리를 강화하면서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6~8일 무신사가 운영한 '뷰티 페스타 인 성수'에 입점 예정이던 화장품 업체 40여 곳 중 10%가량이 돌연 참여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일각에선 올리브영이 해당 납품 브랜드 업체에 불참을 종용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공정위도 최근 국민신문고를 통해 올리브영이 여러 납품업체에 경쟁사 판촉 행사 불참을 압박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이 때문에 올리브영은 지난 10일 공정위로부터 현장 조사를 받았다. 무신사도 올리브영과 유사한 혐의로 공정위의 칼날에 서 있다. 무신사가 서면 합의 없이 입점 브랜드 대상으로 경쟁 플랫폼으로 진출을 금지하고, 자사에 가격·재고를 관리받도록 한 행위로 지난달 26일 공정위 현장조사가 이뤄졌다. 일단 두 회사 모두 공정위 조사에 성실히 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올리브영·무신사의 불공정행위 논란은 아이러니하게도 두 회사가 가장 강조해 온 '상생 경영'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 올리브영은 신진·중소기업 브랜드의 인큐베이터를 자처하는 만큼 입점을 통한 후광효과를 노리는 기업들의 기대감도 유독 높다. 무신사도 2016년 2000개에서 올해 8000여개까지 패션·뷰티 등 신진·중소 브랜드 위주로 빠르게 규모를 늘린 만큼 시장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불공정거래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국내 플랫폼업계 문화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일부 인디(독립) 브랜드들의 약진으로 해외 소비자들의 K-뷰티 진입 장벽이 낮아진 상황에서 이같은 불공정 시비는 K-브랜드 이미지와 신뢰를 깎아먹는 요인이다. 서로 건전한 견제와 함께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 플랫폼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도(正道)'이다. 올리브영과 무신사가 리딩기업답게 중소 브랜드업체의 공정한 경쟁 기회를 보장하고, 신규시장 진입을 지원해 '상생과 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기자의눈] 상장사 합병과 분할, 당국 권한 강화 필요하다

국가는 조세채권을 보호하기 위해 비정상 거래를 제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세법상 부당행위 부인의 규정이다. 특수관계자가 낀 거래는 비정상 거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인 거래와 달리 특수관계자 사이에는 이해관계가 일치할 가능성이 있다. 정상적으로 보기 힘든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 합병, 분할, 감자 등의 자본거래도 제재하는 범위에 포함된다. 특수관계인 간 이해관계만 맞다면 합병 비율을 달리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에서는 국가는 국가의 조세채권뿐만 아니라 국민의 재산도 더욱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상장사일 때 특히 그렇다. 상장사에는 대주주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국내 기업은 대부분 대주주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사의 충실 의무의 범위에 소액주주는 포함되지 않는다. 당연히 소액주주들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의사 결정에서 배제될 개연성이 높다. 이는 합병, 분할 등 자본거래에서 구조적으로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합병, 분할, 감자 등은 주주간 거래이기에 주주 사이의 이익과 손해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가방식은 이 같은 우려를 심화시켰다. 우리나라는 그간 시장 자율성을 인정했고, 기계적인 법정화된 평가방식만 지키면 됐다. 투자은행(IB)에서는 고객사인 대주주의 이익극대화를 모색한다. 위법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또 대주주 측은 “오늘은 손해이지만, 내일은 이득이 될 것", “어떤 관점으로 본다면 오늘도 이득"과 같은 선전 문구도 활용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소액주주들이 '온전히' 보호받을 방법은 사실상 전무하다. 주식매수청구권 제도는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시장실패'로 볼 수 있다. 대주주만의 정책으로 인해 소액주주들에게는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상태다. 시장 메커니즘은 IB, 커뮤니케이션 등과 같은 이유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당국의 개입이 필요하다. 정부 실패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의 실패가 너무 장기화됐고, 구조적이다. 당국의 현재 한계를 고려하고 당국의 정성적인 평가를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잘못된 개입이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시장실패는 그만큼 심각해 보인다. 이대로 방치하면 매우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