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지성 기후에너지부 기자
정권 교체와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 이후로 발생한 이재명 대통령과 김성환 장관의 신규원전 재검토 발언, 청정수소발전시장(CHPS) 입찰 취소 등으로 발전업계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일련의 사태들은 단순한 정치권의 의지나 행정 조정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어떤 에너지원이든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지키지 못하면, 산업 전반의 투자 의지가 급속히 위축되고 이는 전력수급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은 원전이냐, 석탄이냐, 액화천연가스(LNG)냐, 재생에너지냐의 선택이 아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방향이 급격히 뒤집히고, 이미 세워진 계획이 흔들리는 정책 불확실성 그 자체가 더 큰 리스크다. CHPS 입찰 취소로 입찰에 나섰던 기업들은 소위 '멘붕' 상태다.
사업자들은 정부 계획을 믿고 장기적인 투자와 준비를 한다. 발전소 하나를 짓기 위해 수년간의 인허가, 수천억 원의 자금 조달, 수백 명의 인력이 투입된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으니 방향을 바꾸겠다"는 이유로 정책이 철회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과 국민에게 돌아온다.
특히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올해 2월 여야 합의를 거쳐 확정된 국가 에너지 로드맵이다. 이 계획에는 신규 원전 2기 건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사업마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겨우 회복세를 보이던 국내 원전 생태계에 다시 냉기를 불어넣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원전 기자재 업체와 인력풀, 협력 중소기업들은 수년 만에 활기를 되찾았지만 정부가 신호를 흔들면 산업 기반은 또다시 무너질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 전력수요 증가로 대형 원전은 물론 SMR(소형모듈원전) 수요까지 급격히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원전 기업들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재평가받고, 주가 역시 고공행진 중이다.
그런데 정책 신호가 불투명해지면 이 상승 흐름의 동력이 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책의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예측 가능성이다.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전력수요 폭증이 예상되고 있다. 청정수소이든, LNG이든, 원전이든, 에너지원의 종류를 가리지 말고 정부는 기업이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신뢰 가능한 정책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지금 정부가 해야할 일은 급격한 방향 전환이 아니라, 일관성과 신뢰성이 담보된 에너지 수급 환경 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