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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징벌만으론 산재 못 막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포스코이앤씨(이하 포스코)의 건설면허 취소 가능성을 언급한 뒤 해당 회사는 전방위 압박에 직면했다. 국토교통부는 포스코가 시공한 전국 건설 현장을 전수조사 중이며,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등도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와 최고 수위 행정처분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포스코는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고, 대표 교체와 신규 수주 중단 등의 조치를 취했다. 전국 100여개 공사 현장도 모두 작업을 멈췄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이 지난 9일 공사 현장을 찾는 등 위기는 그룹 전체로 확산됐다. 건설 노동자의 사망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포스코의 현장에서 올해만 4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정부가 사고 원인 규명도 끝나기 전에 특정 기업을 정조준해 면허 취소까지 거론하는 것은 형평성과 실효성 모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우선 포스코만 타깃이 되고 있는 것은 이례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올해 1분기까지 산재 사망자가 가장 많은 건설사는 다른 곳이다. 포스코는 10위권에도 들지 않았다. 업종을 넓혀 보면 지난해와 올해 1분기를 합쳐도 포스코보다 산재 사망이 더 많은 기업이 여럿이다. 그럼에도 포스코가 집중 거론되는 것은 모그룹이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는 '준공기업'이기 때문일까? 징벌 일변도의 강경책이 사고를 다 막아 줄 수도 없다. 전문가들은 공사 기간이 지나치게 짧고 공사비를 싸게 책정하는 구조가 지속적인 산재 발생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숙련 인력이 부족한 데다 말이 잘 안 통하는 외국인 인력의 증가, 폭염·폭우 등 기후 리스크까지 위험을 키우고 있다. 산재 발생이 안전 관리 부실이나 근로자 개인의 실수 등 일시적 요인일 수도 있지만,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징벌로 기업의 책임을 묻는 것 외에도 발주·입찰 제도 개선, 공사 기간 현실화, 숙련 인력 확보 등 구조개혁이 병행해야 한다. 건설현장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물론 일차적으로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정부도 앞에서는 '안전'을 외치면서 뒤에서는 '공기를 줄이고, 비용을 낮추라'는 모순된 신호를 보내는 한 대형 사고는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다. 공기·비용 문제로 입찰이 무산된 가덕도신공항 공사가 대표적 사례다. 산재를 정말 줄이고 싶다면 건설 현장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기자의 눈] 외국인에게 ‘K소도시 여행’ 통할까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일본 소도시 여행이 주목 받고 있다. 세계 각국 관광객으로 포화상태를 이뤄 '관광 공해'라는 불만이 나오는 도쿄, 오사카, 교토 등 대표적인 관광도시를 벗어나 현지인조차 잘 찾지 않을 법한 작은 도시가 대체 여행지로 떠올랐다. 이를 통해 일본 소도시는 작게나마 지역 경제 활성화의 효과를 얻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데이터랩 집계에 따르면 올해 7월 한 달 동안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832만5189명을 기록했다. 세부적으로 서울에 478만1449명, 인천 280만7118명, 경기 265만507명, 제주 185만7932명, 부산 165만3814명이 찾았다. 수도권과 주요 관광도시로 쏠림 현상이 심했다. 경남과 전남은 80만명대, 경북은 50만명대로 뒤를 이었다. 충남, 울산, 강원, 충북, 대구, 전북은 50만 명대를 넘지 못했다. 대전과 광주는 10만명대, 세종은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지역 특성상 8만여 명에 그쳤다. 원인으로는 항공 등 교통 인프라가 외국인 관광객들이 지방을 여행하기에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에 KTX와 적극적으로 연계할 필요가 있다. 인천국제공항이나 김포공항에서 공항철도를 이용하면 1시간 내에 서울역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KTX를 타고 지방을 여행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서울역 KTX 승차장에서 큰 배낭을 메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K소도시 여행' 활성화를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지방의 매력을 알려 여행하기 좋은 장소라는 이미지를 심어줘야 한다. 또 아이돌 케이팝 공연, 뷰티, 의료,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 등 관광 콘텐츠의 영역을 전국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문화, 미식, 자연 등으로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한국관광공사는 서울풍물시장, 인천신포국제시장, 수원남문로데오시장, 속초관광수산시장, 단양구경시장, 안동구시장연합, 대구서문시장, 진주중앙·논개시장, 광주양동전통시장, 순천웃장 등 총 10곳의 'K-관광마켓'을 선정해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홍보하고 있다. 무엇보다 관광객을 맞이하는 지역의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된 강원 속초의 음식축제인 '오징어 난전'에서 벌어진 업체의 불친절한 태도, 여수시의 한 유명호텔에서 투숙객에게 수건 대신 걸레를 제공하는 등 일부의 그릇된 행동이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확산해 전체에 피해를 끼칠 수 있다. 특히 여수시는 내년 세계 최초의 섬 박람회인 '2026 여수세계 섬 박람회'를 개최해 이미지 개선이 시급하다. 백솔미 기자 bsm@ekn.kr

[기자의 눈] ‘불확실성의 시대’ 경제 정책 추진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다자무역 체제 종식을 선언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도입된 브레턴우즈 체제와 이어진 우루과이 라운드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는 “우리는 이제 '트럼프 라운드'를 목도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30여년 이어온 WTO 체제 최대 수혜자 중 하나다.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을 통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거듭났다. 기업들은 전세계를 누비며 부를 축적했다. 새로운 무역 질서의 시작은 한국 입장에서 불확실성 그 자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인데 갑자기 앞이 안보이는 격이다. 잡음은 벌써 나오고 있다. '깡패' 미국이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선언하자 우리나라 정·재계는 눈치 보기 총력전을 펼쳐야 했다. 곧 발표될 반도체 품목관세를 두고도 그 범위와 여파를 걱정하느라 바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증시가 출렁이고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기업들은 정상적인 투자나 고용 판단조차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이런 상황에 정치권은 경제에 직접 영향을 미칠 입법·규제를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밀어붙이고 있다. 법인세를 올리고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를 골자로 상법을 개정했다. 경제계가 극구 반대하는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과 집중투표제 의무화 내용을 담은 '더 센 상법'도 속전속결이 예상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더 강력해질 전망이다. 문제는 현재 국회 권력 지형이 여대야소라는 점이다. 정부와 여당이 민감한 경제 현안들을 대화와 설득 없이 정치적 동력만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은 우려스럽다. 취지는 좋았으나 거대여당 폭주에 한국 경제가 뒷걸음질 친 사례가 한두번이 아니다. 임대차3법, 탈원전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 논리'는 언제나 경제에 부작용을 일으켰다. 지금은 '불확실성의 시대'다. 새로운 경제 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확립될지 예측하기 힘들다. 경제 정책 추진에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함은 물론이다. 재계 목소리를 무조건 수용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국제 정세를 면밀히 살피고 이해관계자 의견을 충분히 들어봐야 한다는 뜻이다. 앞이 안 보이면 비상등을 켜고 서행해야 한다고 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여전히 구호만 넘치는 에너지정책, 현실은?

'에너지 고속도로', '탄소중립', 'RE100'… 멋진 구호는 많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은 커져만 가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에너지 정책은 언제나 미래지향적이다. 분산형 전원 확대, 재생에너지 보급, SMR 산업 육성, 그리고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까지. 듣기만 해도 혁신적이고 전환적인 수식어가 넘친다. 하지만 2025년의 땅 위 현실을 보면 여전히 그 대부분은 '구호'에 머물러 있다. “전기차가 도로에 없던 시절에 충전소를 짓는 게 의미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기차가 도로를 덮은 뒤에도 충전소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에너지정책은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정책 목표는 2030년을 바라보지만, 전력망·요금체계·시장제도는 2010년에 멈춰 있다. “에너지 고속도로를 깔겠다"는 정부의 국정과제는 선명하다. 하지만 정작 송전망 구축은 주민 반대와 재원 부족, 그리고 제도 미비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분산형 전원 체계'를 외치면서도, 여전히 한전 독점의 중앙집중형 전력망 구조에서 한 발도 못 벗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에너지전환에 필수적인 것은 인프라와 재원이다. 하지만 요금 현실화는 정치의 영역에서 여전히 금기어다. 가정용 요금은 민심을 의식해 건드리지 못하고, 산업용은 2년 연속 인상했더니 기업들이 한전에서 빠져나가 한전의 경영악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30%, RE100 산단 확대, 에너지 집약산업 경쟁력 강화 등을 외친다. 구호는 넘치지만, 그에 따르는 요금 개편·시장 설계·보조금 구조는 빈껍데기다. 결국 그 격차를 메우는 것은 공기업의 적자와 국민 부담이다. 탄소중립도, 재생에너지도, 에너지전환도 결국 정치적 결단보다 제도적 설계와 재정 기반이 우선되어야 한다. 장기 공급계획은 있지만, 단기 조정 수단은 없고, 투자 수요는 폭증하지만, 재정 여력은 바닥이다. 공공은 시장에 책임을 전가하고, 시장은 규제 미비를 탓하며, 현장은 여전히 불확실성을 감내한다. 이제는 “2030년까지"가 아니라 “내년 예산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말해야 할 시점이다. '에너지고속도로', '탄소중립', 'RE100'이 종이 위 슬로건이 아닌 현실이 되려면, 정치적 용기와 함께 요금체계의 합리화, 민간투자의 길 열기, 제도의 틈새 메우기부터 이뤄져야 한다. “왜 아직 안 됐냐"는 질문보다, “지금 이대로 가능한가"에 대한 냉정한 검토가 필요한 시기다. 이제는 구호보다, 설계가 필요하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관세 장벽서 ‘포스트 불닭볶음면’ 나오려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가 7일(미국 동부시간 기준) 전격 시행된다. 품목별 관세를 적용받는 분야를 제외하고 우리 수출 기업들은 15%의 관세를 부과 받게 된 가운데, 최근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K-푸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상호관세 부과에 따른 국내 식품업계 영향을 살펴보면, 먼저 북미시장에서 '불닭볶음면'으로 초대박을 낸 삼양식품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삼양식품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37.1% 늘어난 529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의 80%는 해외에서 나왔다. 특히 전체 매출의 4분의 1이 나온 곳이 바로 미국이다. 오뚜기와 CJ제일제당의 해외 매출 비중도 각각 65%와 49%로 높은 수준이지만 사정은 조금 다르다. 오뚜기의 주력 시장은 중국과 베트남이고, CJ제일제당은 미국에 생산기지를 갖춰 관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해외 매출 비중이 약 37%에 달하는 농심 역시 미국 캘리포니아 제2공장에서 라면을 생산한다. 결국 현지 설비가 없는 식품기업과 중소 K-푸드 수출업체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다행스럽게도 정부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에 따른 후속 지원 대책에 식품 부문을 포함하기로 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출석해 “식품이나 화장품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가 미국 시장에서 (수출)모멘텀을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에서 이런 일(관세 부과)이 발생해 답답하다"며 “관세 후속 지원 대책에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세 대응책으로는 바우처 프로그램이나 금융지원 강화 카드가 거론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관세 대응 수출 바우처', 중소벤처기업부의 '수출 바로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관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처방이지만, 사실 이를 장기적 해법으로 보기는 어렵다. 정부가 내놓을 관세 후속 지원책에 식품 기업들의 수출국 다변화를 지원하고,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대책들이 대거 포함되기를 기대한다. 단기 처방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식품 산업의 구조적인 경쟁력 강화다. 그래야 '포스트 불닭볶음면'도 나올 수 있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금융주 기대 꺾은 정책 혼선, ‘코스피 5000’ 신뢰도 흔들

이재명 정부가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는 강한 포부를 밝히자 시장에서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금융주였다. 밸류업 정책의 대표적인 수혜주로 꼽혔기 때문이다. 금융지주사들은 지난해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을 공개하며 주주환원 강화 의지를 드러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4~0.6배 수준이던 금융주는 이재명 정부의 정책 수혜 기대감에 단기간 주가가 급등했다. 실제 KRX은행 지수는 지난 6월 2일 989.13으로 1000선을 넘지 못했으나 지난달 14일 1308.93까지 치솟으며 130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는 오래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큰 그림과 달리, 금융권을 둘러싼 압박과 정책 혼선이 주가에 찬물을 끼얹고 있어서다. 지난달 24일 정부가 은행권의 '이자 놀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어 배당소득 분리과세에 대한 실망감과 주식 양도세 대주주 자격과 관련한 세제 개편 논란 등이 겹치며 시장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배드뱅크 재원 분담, 교육세 부담 확대, 미래·혁신기업과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강화 등의 각종 요구도 금융사의 자원 여력을 축소시켜 주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밸류업 관점에서 보면 기업대출 확대는 위험가중자산(RWA)을 증가시켜 결과적으로 밸류업 달성 속도를 늦추게 한다. 정부가 주가 부양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기업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는 불만의 소리가 나온다. 이 같은 정책 혼선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부각되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실망감도 나타나고 있다. KRX은행 지수는 지난달 25일 1264.88에서 이달 1일 1152.02로 떨어지며 1200선 아래로 밀렸다. 금융주는 'PBR 1배'를 상징적인 중장기 목표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 일관성을 잃고 시장과 소통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목표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증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로 불확실성인데, 정부의 지금 모습은 오히려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코스피 5000은 구호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국내 주식 시장을 외면했던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정책과 목표 달성에 대한 믿음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신뢰를 쌓기란 어렵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지금은 새로운 구호가 아닌 일관된 모습과 정책이 필요하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표류 중인 금융감독체계 개편, 골든타임 놓칠라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공약한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예상보다 더디게 흘러가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최근 금융위원회의 금융 정책 기능과 감독 기능을 분리하는 내용의 조직 개편안을 대통령실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원회의 정책 기능은 기획재정부로 통합하고, 감독 기능은 금융감독원과 합쳐 금융감독위원회로 개편하는 것이 뼈대다. 금융감독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신설하는 안도 포함됐다. 그러나 개편안이 언제쯤 확정되고 발표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인 김은경 한국외대 교수가 국회 토론회에서 '금융위 폐지'를 강하게 주장한 시기가 올해 6월인 점을 고려하면, 벌써 그로부터 2개월 남짓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현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졌다.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대전제 하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간에 기능과 책임, 권한을 분리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금융 감독 권한을 민간기관인 금감원, 혹은 새롭게 신설되는 금감위에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두고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책 기능과 감독 기능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지 단언하기 어렵고, 금융위원회 설치법 등 법 개정을 넘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와중에 금융감독원은 이복현 전 원장이 6월 5일 퇴임한 이후 현재까지 공석이다. 국책은행 수장들도 줄줄이 임기가 만료돼 다수의 국책은행들이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 중이다. 금융사고가 발생해도 누구 하나 총대를 메지 않고 있다. 지난달 SGI서울보증이 랜섬웨어 공격을 받으면서 주요 시스템이 마비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만일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금융권을 지배하지 않았다면, SGI서울보증의 금융사고 관련 파장은 훨씬 더 커졌을 것이다. SGI서울보증 사고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신중하고도 빠르게 완성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향후 시어머니가 한 명일지, 두 명일지 알 수 없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는 어떤 사고가 발생해도 민첩하게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금융소비자 보호의 최대 공백기는 지금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빠르게, 쉽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아무도 없다. 다만 지금까지 알려진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최선'과 '최고'의 선택인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체계를 바꾸는 데 부작용과 리스크가 너무 크다면, 세부 내용을 손질하는 쪽으로 유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진짜 금융소비자보호가 목적이라면 말이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공사장 안전 강화, 협박으로는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근로자 사망사고가 계속 일어난 포스코이앤씨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서 똑같은 방식으로 계속 사고가 나는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산재 사망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은 온 국민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자칫 '산업계에 대한 협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발언까지 했다. 당시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똑같은 사망사고가 상습적·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는 것을 검토해봐도 좋을 것"이라며 “산재 사망사고가 상습적으로 발생하면 여러 차례 공시해서 주가가 폭락하게 하라"고 말했다. 산재가 지속된 기업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경각심을 강하게 줄 필요는 있다. 그러나 의도적인 공시 반복으로 주가를 폭락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정 의도로 어떤 기업의 주가를 폭락하게 만든다면 문제가 되는 기업 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에 주식을 투자한 일반 국민들도 피해를 입는다.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일부 인사들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주가 조작 등 주식 시장을 어지럽힌 바 있다. 이재명 정부가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본시장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경우 결국 해당 기업에 투자한 일반 국민들이 선량한 피해자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특히 현 정부는 그 어느 정부보다 주식 시장 투자를 장려하는 정부가 아니던가. 부동산에 치우친 가계 자산을 주식 시장으로 유도해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신음하는 코스피와 코스닥의 가치상승을 꾀하고자 하는 것이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다. 정부가 주가 부양을 외치면서 정작 특정 기업에 산재 발생을 이유로 페널티를 주기 위해 주식시장에 개입하려는 것은 옳바른 방향이 아니다. 심지어 포스코이앤씨는 주식시장에 상장되지도 않은 비상장 건설사다. 그렇지 않아도 노란봉투법 및 법인세 강화 등 세제 개편으로 재계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주가를 떨어뜨려 특정 기업을 벌주고자 한다면 산업계 전반이 투자 동력을 잃는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 기업들은 미국에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전제조건으로 한 관세 협상이 타결되면서 큰 출혈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사기가 떨어진 산업계를 복돋아주지는 못할망정, 주가를 폭락시켜 벌주겠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과유불급이다. 이런 말 없이도 이 대통령의 경고에 건설업계는 물론이고, 모든 한국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무회의에서의 주가 폭락 발언은 이번 한 번 경고로 마무리되야 한다. 만약 정부 당국이 특정 기업의 주가를 정말 의도적으로 폭락시킨다면 일반 국민과 개인 투자자들이 입는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임진영 기자 ijy@ekn.kr

[기자의 눈] ‘정상화’의 길 위에 선 상법 개정

“미국에서는 경영자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해치는, 이른바 '뒷통수를 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 의사결정에 대해 주주들이 일정 수준의 신뢰를 보내는 것도 자연스러운 분위기다. 엄격한 제재가 뒤따르고, 제도적으로도 강력한 견제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자본시장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대목이다. 한국은 그간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일부 대주주 일가가 전체 주주 이익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회사 자금을 사익추구에 동원하거나,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비지배주주를 희생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는 '뒷통수를 맞는' 존재로 전락했고, 기업 의사결정에 대한 신뢰는 좀처럼 쌓이지 않았다. 최근 상법 개정 흐름은 이 오래된 관행을 끊어내기 위한 시도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집중투표제 확대 등 비지배주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하나둘 마련되고 있다. 덕분에 경영자나 기업이 이제는 비지배주주의 눈치를 실질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승계를 위한 인적분할'이라는 의심이 팽배했던 하나마이크론, 파마리서치, 빙그레 등이 경영진의 결정을 철회한 사례는 이러한 변화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그동안 '선택적 고려'에 그쳤던 주주들의 권리가 비로소 법과 제도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다. 눈치를 봐야 할 대상이 늘어나면 경영 자율성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변화다. 기업 운영의 왜곡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고,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도 높아진다. 정상화로 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유다. 이번 상법 개정은 하나의 변곡점이다. 한국 자본시장이 '특이하게 발전한' 기업 운영 형태에서 벗어나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출 수 있을지 가늠하게 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단기적으로는 부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가치 제고와 안정적인 투자 유치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는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주 모두의 이익을 향한 진정한 정상화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통신업계, 흙탕물 싸움 말고 ‘선의의 경쟁’을

야구계의 불문율 가운데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을 때 과도한 세리머니나 몸짓을 하지 않는 것이 있다. 승리에 과도한 집착보다 상대팀에 향한 배려와 예의가 먼저라는 의미다. 마운드에서 한솥밥을 먹는 프로선수들의 동업자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휴대폰 대리점을 뒤덮은 현수막을 보면서 문득 불문율을 떠올린 이유는 SK텔레콤(SKT)의 대규모 유심정보 해킹사고 이후 공포 마케팅이 활개친 탓이다. 'SKT 위약금 드디어 면제', '번호이동 지금이 기회'와 같은 흔한 광고문구부터 '해킹은 내 인생이 털리는 것', '통신사 안 바꾸면 아이도 위험' 같은 자극적인 문구까지 등장했다. 급기야 SKT가 이를 근거로 경쟁사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하는 촌극도 발생했다. 경쟁사를 저격해 소비자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마케팅이 좋은 인상을 줬을 리 없다. 실제 대리점 현장을 취재하던 중 만난 30대 고객은 “한 번 씩은 개인정보 유출 이슈를 겪었으면서 아닌 척하는 게 더 얄밉다"고 말했다. 시류를 적절히 활용하는 게 마케팅의 기본이라지만, 국가재난으로 번진 사안이라면 조금은 달랐어야 했다. 동업자 정신이 실종된 흙탕물 싸움은 서로에게 강한 생채기를, 소비자에게는 깊은 불신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통신사의 마케팅 방향은 보안체계 강화로 선회한 모습이다. 주요 기업들은 최근 정보보호 투자 계획과 핵심 전략을 앞다퉈 발표했다. 이들이 계획한 보안 관련 투자 규모는 총 2조4000억원에 달한다. 전문 인력 확충과 인프라 확대, 기술 고도화를 통한 '제로 트러스트(지속 검증)' 체계 구축에 방점이 찍혔다. 윤리적 신념이나 사회적 책임 등을 토대로 제품을 구매하는 가치소비가 확산하는 시장 동향을 감안하면 시의적절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보안 수준이 뛰어난 통신사는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고, 이는 기업 경쟁력 제고로 이어진다. 장기적으로는 정보보호 기술 품질과 신뢰도를 전반적으로 향상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굳이 경쟁사를 깎아내리지 않아도 고품질 서비스를 적절한 가격에 제공한다면 가입자는 자연스럽게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통신 3사의 '보안 경쟁'은 공포 마케팅을 펼치는 것보다 훨씬 고무적이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소비자에게 더 나은 편익을 제공하고, 시장 발전을 도모하길 바란다. 통신업계의 '동업자 정신'은 이래야 의미가 있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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