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지수가 8000포인트를 눈앞에 두고 있다. 쉴 새 없이 오른 지수를 두고 과열이라는 우려와 버블 논쟁이 하루를 멀다 하고 제기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한국 증시는 왜 그동안 이렇게 싸게 거래됐는가. 코스피 7000은 단순한 주가 상승이 아니라, 오랫동안 한국 증시에 붙어 있던 할인율을 다시 계산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역사적으로 증시는 가격보다 인식이 바뀔 때 대전환이 일어났다. 1980년대 일본 증시는 제조업 경쟁력과 금융 완화가 결합하면서 세계 자본의 상상력을 빨아들였다. 문제는 그 상상력이 기업의 실제 이익보다 부동산과 금융자산 가격을 더 빨리 밀어 올렸다는 데 있었다.
반대로 2010년대 미국 증시는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혜택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현금 흐름과 시장 지배력을 증명하면서 미국 주식에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했다. 두 사례의 차이는 분명하다. 일본은 자산 가격이 먼저 달렸고, 미국은 기업의 수익성이 가격을 따라잡았다.
지금 고공행진하는 코스피의 의미도 여기서 갈린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에 갇혀 있었다. 낮은 배당, 취약한 주주환원, 지배주주 중심의 의사결정, 경기민감 업종의 높은 비중, 지정학적 리스크가 한국 기업의 이익에 낮은 가격표를 붙였다. 같은 돈을 벌어도 한국 기업은 미국 기업보다 싸게 거래됐다. 투자자는 한국 기업의 능력을 의심했다기보다, 그 이익이 주주에게 얼마나 돌아올지를 의심했다.
최근의 상승장은 이 의심이 일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인공지능 반도체 사이클은 한국 기업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으로 다시 끌어올렸다. 동시에 주주환원 확대, 자사주 소각, 배당정책 개선, 자본시장 제도 개편 논의가 맞물리며 한국 증시를 바라보는 할인율 자체가 낮아지고 있다. 코스피 7800은 그래서 경기 회복의 결과만이 아니다. 한국 기업 이익에 적용되던 '불신의 비용'이 줄어드는 과정이다.
하지만 재평가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시장이 붙인 새 가격표가 유지되려면 기업도 그에 맞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반도체 대형주 몇 종목의 이익만으로는 부족하다. 주주환원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규칙이 돼야 하고, 자본 배분은 지배주주가 아니라 전체 주주의 이익을 기준으로 설명돼야 한다. AI 반도체의 온기가 소재·부품·장비, 전력기기, 금융, 소비, 서비스업으로 번져야 한다.
투자자가 경계할 것도 이 지점이다. 코스피 8000 이후의 위험은 단순히 조정이 오는 데 있지 않다. 더 큰 위험은 시장이 한국 증시에 새 가격표를 붙였는데, 기업과 제도가 그 가격을 정당화하지 못하는 경우다. 그때 실망은 빠르게 할인으로 돌아간다. 한국 증시는 지금 비싸졌느냐 싸냐의 논쟁을 넘어섰다. 이제 시장은 묻고 있다. 한국 기업은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자격을 지속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최태현 자본시장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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