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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쓰나미 덮친 AI 인프라…美 표심에 K반도체 긴장

미국 중간선거가 민주당이 공화당 강세 지역까지 휩쓰는 '블루 쓰나미'로 귀결되면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규제 강화 흐름이 한국 반도체 업계의 새 변수로 떠올랐다. 데이터센터가 몰린 주(州)에서 건설 중단을 공약한 주지사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빅테크의 AI 인프라 확장에 차질이 생기면 그래픽처리장치(GPU)는 물론 메모리 수요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업계는 이미 진행 중인 주문보다 2028년 이후 추가 수요와 증설 계획의 불확실성이 커진 데 주목하고 있다. 6일 외신과 미국 데이터센터 감시단체 데이터센터워치(Data Center Watch)에 따르면 주지사 선거가 열린 미국 36개 주 가운데 12곳에서 데이터센터 개발 일시 중단을 지지한 후보가 당선됐거나 개표에서 앞서고 있다. 당선·선두 후보 가운데 데이터센터 세제 혜택을 줄이거나 없애겠다고 공약한 후보는 15명이었다. 34명은 데이터센터 전력 비용을 주민에게 떠넘기지 못하게 하겠다고, 27명은 물 사용과 환경 영향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선이 확정된 34명으로 좁혀 보면 규제 기류는 더 뚜렷하다. 미국 조사기관 데이터센터워치에 따르면 이 가운데 32명(94%)이 데이터센터 개발에 대해 규제 강화나 조건부 허용, 금지·모라토리엄 중 하나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1월부터 모라토리엄 확대·연장을 지지하는 민주당 주지사들이 이끄는 주가 미국 데이터센터 계획 용량의 45%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장 큰 변수는 텍사스다. 텍사스는 일정한 투자·고용 요건을 충족한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20년간 세제 혜택을 주며 시설을 끌어들여 왔다. 건설 예정 시설을 포함한 데이터센터 수는 606곳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고, 2030년까지 미국 데이터센터 계획 용량의 25%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나 이노호사 당선인은 주 의회가 주민 보호 법률을 마련할 때까지 모든 데이터센터 승인을 중단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른바 '텍사스 우선 데이터센터 원칙'에는 전기·용수 요금이 오르지 않는다는 점을 사업자가 입증해야 하는 의무, 보조금 중단, 지역 주민의 사업 찬반 투표권 등이 담겼다. 조지아와 오하이오도 사정이 비슷하다. 미국 3위 데이터센터 시장인 조지아는 장비 구매·임차에 붙는 판매세와 사용세를 면제해 주며 200여 곳의 데이터센터를 유치해 왔다. 브라이언 켐프 현 주지사(공화당)는 2024년 이 세제 혜택을 일시 중단하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반면 키샤 랜스 보텀스 당선인은 전기요금·지역사회·환경 영향을 평가할 때까지 주 전역에서 신규 건설을 일시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오하이오의 에이미 액턴 당선인은 개발업체가 전력·용수 비용 전액을 부담하고, 정보를 공개하고, 노조 인력을 쓰고, 농지 대신 옛 산업 부지에 짓는 경우에만 건설을 허용하는 '조건부 모라토리엄'을 내걸었다. 빅테크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메타의 디나 파월 매코믹 사장은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행사에서 “선거 이후 데이터센터를 짓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영국 데이터센터 업체 엔스케일과 맺은 텍사스 컴퓨팅 계약을 확대할 수 있는 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 HBM·eSSD 주문 '이연' 우려…"2028년이 분기점“ 국내 반도체 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이 미국 빅테크의 메모리 구매에 미칠 영향이다. AI 데이터센터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탑재한 AI 가속기와 서버용 D램, 낸드플래시 기반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등이 들어간다. 가동 시점이 밀리면 서버와 가속기 도입이 늦어지고 메모리 주문도 뒤로 밀린다. 전력망 확충 비용 부담이 커지거나 세제 혜택이 줄어 사업성이 떨어지면 일부 프로젝트가 축소될 수도 있다. 고객사의 투자 규모에 미칠 영향도 수치로 나오기 시작했다. 웰스파고는 텍사스의 데이터센터 계획 용량이 10% 줄어들 때마다 빅테크의 AI 인프라 투자가 1.6% 감소한다고 추산했다. 아마존·MS·알파벳·메타 4사의 올해 설비투자 합계가 7200억~7400억 달러로 예상되는 만큼 작지 않은 규모다. 다만 영향이 나타나는 시점은 당장이 아니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일본 노무라는 중간 실적 보고서에서 2027년에 가동될 용량의 상당 부분은 이미 건설 중이고, 그 이후 사업들이 지연에 더 취약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영향은 2028년부터 나타날 수 있다고 봤다. 골드만삭스도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데이터센터 세제 혜택은 제한될 수 있지만 전국 단위의 건설 중단 조치가 시행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대형 빅테크는 자금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 논란 속에서도 데이터센터 건설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운영비 상승을 흡수하거나 신규 데이터센터를 해외로 돌릴 여력도 충분하다. ◇ 물량은 확보, 가격은 변수…LTA의 한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늘리고 있는 장기공급계약(LTA)은 수요 변동에 대응하는 완충 장치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8일 실적 발표에서 주요 클라우드 기업을 포함한 고객사 14곳과 LTA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 기간은 통상 5년이며, 확보한 물량은 2027년과 2028년 전체 생산능력의 50% 이상이다. 협의 중인 물량까지 더하면 D램과 HBM은 2029년까지 사실상 완판됐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도 실적 발표에서 2027년 HBM 공급 물량이 이미 완판됐다고 밝혔다. 고객사 10곳과 LTA를 맺었고 10곳과 추가로 협상 중이며, 2030년까지 생산능력의 60~70%를 장기계약으로 채우는 목표에 다가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메모리 판매가 당장 줄어들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많은 이유다. 그렇다고 LTA가 수익성까지 묶어두는 것은 아니다. SK하이닉스는 “LTA 가격이 고객사와 합의한 범위 안에서 시장 가격 변동을 반영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으로 공급 부족이 완화되면 물량은 유지되더라도 가격이 범위 하단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얘기다. 계약으로 확정된 물량이 2028년까지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변수다. 규제 영향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과 겹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 모두 생산능력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시장 가격에 노출되는 구조여서, 데이터센터 투자 속도가 둔화하면 이 물량의 가격 협상력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블루 쓰나미’ 덮친 트럼프, 김정은 회담 카드 만지작

미국 중간선거에서 참패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 등 대북 외교에 다시 힘을 실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정치에서 입지가 좁아진 만큼 외교 분야에서 성과를 내 임기 후반 주도권을 확보하고 정치적 유산을 남기려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6일 외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중간선거 패배 이후 북미 정상 간 대화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상·하원 모두 다수당 지위를 확보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 동안 의회의 견제와 각종 조사, 정책 추진 과정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됐다. 다만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대통령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큰 만큼 대북 외교를 비롯한 국제 현안에서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도 있다.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외교적 성과를 통해 존재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임기를 상징할 성과를 남기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AF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전쟁 교착 등으로 외교적 성과가 필요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김 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을 강조하며 정상회담 의지를 드러내 왔다. 지난 8월에는 연내 김 위원장과 만나겠다고 밝혔고, 지난달 12일에도 아시아 순방 중 회동 가능성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첫 임기 당시인 2018년 싱가포르, 2019년 베트남 하노이, 같은 해 판문점에서 세 차례 만났다. 다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비핵화 협상은 사실상 중단됐으며 실질적인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 약해진 트럼프…김정은은 나설까 오는 18~19일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도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거론되는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김 위원장과 접촉하거나 대화 재개를 위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실제 회담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북한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장은 지난 4일 담화에서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는 않으면서도 “평화 수호를 위한 선택지에는 분명 대화가 포함돼 있지만 이는 우리에게 있어서 국가이익과 반드시 동일시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국의 기존 대북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대화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AFP통신도 북한이 러시아·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외교·경제적 입지를 넓힌 데다, 정치적으로 약해진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 사항을 임기 이후까지 보장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굳이 미국과의 협상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 역시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더라도 대북 제재 완화 등 실질적인 양보를 이끌어내는 데는 의회의 견제가 작용할 수 있다. 북한이 원하는 수준의 정책 전환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 정상회담은 임기 후반 외교적 성과를 과시할 수 있는 카드지만, 김 위원장이 이에 호응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상 간 만남 자체보다 비핵화와 제재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이슈&인사이트] 부의 쏠림의 비극

프랑스 고교생들의 시위는 교육의 문제를 사회 전체의 질문으로 끌어냈다. 교사와 학부모, 대학생이 합류했고 생활비 부담에 시달리는 시민들의 항의로 번졌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도 교육 여건과 긴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거리에서 울려 퍼진 질문은 하나였다. 이토록 부유한 사회에서 왜 다수의 삶은 갈수록 궁색해지는가. 학생들이 요구한 것은 특혜가 아니다. 교사가 제때 수업하고, 교실이 지나치게 붐비지 않으며, 학교가 안전하고 위생적인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간호사와 사회복지 인력이 부족하고 대학 진학 배정 체계가 불공정하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공부하라고 요구하는 사회가 정작 공부할 조건은 마련하지 않는 모순에 학생들은 항의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요구 앞에서 장부를 펼쳐 보이며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과 의료, 돌봄에 쓸 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토마 피케티는 10월 17일자 칼럼에서 이 논리를 반박했다. “프랑스가 이토록 부유했던 적은 없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오직 분배의 문제다." 피케티에 따르면 프랑스의 공공부채는 1970년 국내총생산의 20%에서 오늘날 약 120%로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민간자산은 국내총생산의 300%에서 600%로 더 크게 불어났다. 정부는 부채를 이유로 공공투자에 여력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회에 축적된 부가 누구에게 돌아갔는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민간자산이 늘었다고 정부 금고가 저절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집과 주식의 평가액을 당장 학교 운영비로 쓸 수도 없다. 하지만 사적으로 축적된 부에 얼마만큼 세금을 부과하고, 그 재원을 공동체와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떻게 사용할지는 정치가 결정할 문제다. 이 선택을 미룬 채 “돈이 없다"고만 한다면, 정책의 책임을 피하고 긴축을 불가피한 자연현상처럼 보이게 만든다. 부유층에 세금을 거두는 대신 그들에게 돈을 빌리면 국가는 채무자가 되고 자산가는 채권자가 된다. 국가는 이자를 지급하고, 그 재원에는 노동자와 자영업자를 비롯한 시민의 세금도 들어간다. 국채 보유자는 연기금과 금융기관, 해외 투자자 등으로 다양하므로 이자가 모두 부유층의 수익으로 돌아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누구에게 얼마를 과세하고 얼마를 빌릴 것인가는 분배의 핵심 문제다. 부채 총액만 앞세우면 시민들은 자신이 누리지 못한 풍요의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국가부채가 통치의 언어가 되면 교사 충원과 병상 확대, 돌봄 인력의 처우 개선은 철없는 요구로 밀려난다.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지는 묻지 않은 채 누구의 몫을 줄일지만 논의한다. 긴축은 회계의 형식을 띠지만, 실은 사회가 감당할 희생의 순서를 정하는 정치다. 공공서비스가 줄어든 자리는 구매력이 대신한다. 학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부모는 학원을 찾고, 병원 대기가 길어지면 돈을 더 내고 빨리 치료받을 방법을 찾는다. 여유 있는 사람은 공동의 체계에서 빠져나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나빠진 조건을 견딘다. 각자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할수록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공공의 능력은 약해진다. 한국의 교육에서도 이 과정은 낯설지 않다.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할 때 어떤 가정은 공교육의 개선을 요구하지만, 다른 가정은 더 비싼 과외와 유명 학원을 찾는다. 공교육의 결핍은 사교육을 살 수 있는 집에 경쟁의 기회가 된다. 부모의 지갑이 만든 격차는 아이의 능력과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공공서비스는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가 아니다. 가족의 재산에 따라 삶의 가능성이 결정되지 않도록 사회가 함께 마련한 기반이다. 그 기반이 약해지면 불평등은 통장 잔액의 차이를 넘어 누가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가의 차이로 번진다. 교육의 실패가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시위 현장의 일부 폭력만 부각하면 거리로 나온 다수의 요구는 지워진다. 프랑스에서는 시위 참가자의 폭력과 함께 경찰의 과도한 물리력 행사도 논란이 됐다. 질서를 말하려면 국가가 행사하는 힘도 엄격하게 살펴야 한다. 깨진 유리창은 눈에 띄지만, 교사 없이 지나간 학기와 치료를 미룬 병, 돌봄 때문에 포기한 일자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공서비스의 쇠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의 가능성을 깎아낸다. 거리에 분노가 드러났을 때는 그 손실이 이미 쌓인 뒤다. 전후 프랑스의 경험은 재건의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 생각하게 한다. 1945년 프랑스는 전쟁으로 파괴되고 공공부채도 컸지만, 거액 자산에 부담을 지우는 국민연대세를 도입했다. 당시보다 부가 훨씬 커진 오늘, 먼저 해야 할 일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를 공동의 필요에 어떻게 쓸지 묻는 것이다. 부의 쏠림이 낳는 가장 깊은 비극은 사람들이 서로의 삶에 책임질 이유를 잃어간다는 데 있다. 부유한 사람은 공동의 학교와 병원이 필요 없다고 여기고, 가난한 사람은 공동체가 자신을 버렸다고 느낀다. 그 사이에서 국가는 모두에게 인내를 요구한다. 하지만 인내를 요구받는 사람과 풍요를 누리는 사람이 계속 다르다면, 그 말은 얼마나 오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bienns@ekn.kr

[EE칼럼] 미국의 표심, 한미 에너지 협력의 조건을 다시 묻다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지난 3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되찾았다. 이에 더해 2010년 이후 16년 만에 주지사직도 과반을 차지했다. 생활비 부담과 이란 전쟁,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불만이 중첩되면서 미국의 정치 지형이 다시 바뀐 것이다. 내년 1월 제120대 의회가 출범하면 행정부에 대한 의회의 견제가 한층 강화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할 가능성도 커졌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 의회와 행정부 간의 갈등 상황 자체에 대한 우려보다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의 에너지 안보와 산업적 이익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을 구체화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우선 이번 민주당의 승리가 곧바로 미국 에너지정책의 전면적인 전환으로 이어지리라 예측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의회 구성이 바뀌어도 대통령은 바뀌지 않는다. 민주당이 법률을 통해 정책을 수정하려 해도 대통령에게는 거부권이 남아 있다. 따라서 화석연료 중심의 정책이 곧바로 폐기되거나 과거의 친환경 지원 정책이 단시간 내에 복원되리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예산과 지원 조건을 둘러싼 협상이 복잡해지고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다. 텍사스주와 조지아주에서는 신규 데이터센터 개발의 일시 중단을 공약으로 내건 민주당 후보들이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했다. 공화당 소속 텍사스 주지사도 선거 전에 데이터센터 관련 허가 중단을 지시했다는 점에서, 지역의 반발은 정당을 가리지 않는 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첨단 산업의 성장을 지지하는 것과, 그에 수반되는 전력·용수 수요 증가와 기반시설·환경 부담을 지역 주민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국가 경쟁력이라는 명분만으로 지역의 우려까지 해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러한 지역 내에서의 갈등은 백악관의 투자 독려만으로 풀리기 어렵다. 미국에서는 소매 전기요금 결정에 주 규제기관의 역할이 크다. 연방정부가 사업을 지원하더라도 현지의 전력 조달 조건과 비용 분담 문제가 주민들이 납득할 수준으로 해소되지 않으면 실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한국 기업 역시 대미 투자 규모를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에서 필요한 전력과 용수, 기반시설을 어떤 조건으로 확보하고 그 비용은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 법적 분쟁의 소지는 없는지 미리 살펴야 한다. 정부의 협력 상대도 백악관을 넘어 의회와 주정부, 지역사회로 넓힐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리스크들이 가시화되었다고 해서 한미 간 에너지 관련 협력의 동력이 모두 약해질 것이라고 보는 것도 과한 판단일 것이다. 원자력의 경우에는 미국 정치권에서 이미 초당적 협력의 기반이 어느 정도 다져진 분야다. 미국의 원자력 개발과 규제 체계 개선을 지원하는 'ADVANCE 법'은 2024년 양당의 폭넓은 지지로 제정됐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제조업 경쟁력, 지역의 일자리를 공통분모로 삼는다면 관련 협력은 이어갈 여지가 있을 것이다. 다만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은 이유로 위로부터의 정치적 의지가 개별 사업의 실현가능성과 경제성을 모두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국의 제조·건설 역량을 활용하더라도 금융 조달과 인허가, 공사 지연에 따른 법적 및 경제적 책임을 미리 구체화하고 리스크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을 바라보는 기준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지난달 이 지면에서 공급망과 운송 경로 다변화의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높은 초기 투자비와 건설 지연의 리스크 등도 고려하면서 우리 기업의 참여 범위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썼다. 이 기준이 미국의 선거 결과에 따라 달라질 이유는 없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고 해서 사업성을 희생시켜서도 안 되겠지만, 민주당이 승리했다고 해서 이 사업의 전략적 가치까지 사라졌다고 볼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적 환경이 변할수록 한국이 얻을 이익과 부담할 위험을 우리 스스로 명확히 정리하고, 그에 입각한 협상을 진행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필자는 이번 선거를 계기로 한미 에너지 협력을 위축시키기보다, 정치적 변화에도 지속할 수 있는 협력의 조건을 만드는 데 정부와 산업계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본다. 미국의 연방의회 선거는 2년마다 치러지지만, 에너지 협력은 수십 년을 내다봐야 한다.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드러난 미국의 표심을 면밀히 읽되, 한국의 에너지 전략까지 그때그때의 정치적 변화에 휩쓸려 좌충우돌해서는 안 될 것이다. bienns@ekn.kr

트럼프 대패에 美 대선 시계 빨라진다…‘포스트 트럼프’ 누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간선거 참패로 미국 정치권의 차기 권력 경쟁이 예상보다 일찍 막을 올렸다. 공화당에서는 트럼프 이후 당을 이끌 후계 구도가, 민주당에서는 정권 탈환을 위한 차기 주자 경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트럼프 시대 이후를 준비하는 '포스트 트럼프'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 3일(현지시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모두 탈환하는 압승을 거뒀다. 공화당은 상원에서 최소 7석을 내주고 하원에서도 대규모 의석을 잃는 등 참패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고물가, 이란 전쟁 등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선거 결과에 반영됐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원한 공화당 후보들도 잇따라 고배를 마시면서 그의 당내 영향력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공화당에서는 JD 밴스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된다. 당초 밴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로 가장 유력하게 꼽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확인되면서 트럼프와의 차별화가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정책을 옹호해 온 만큼 책임론에서도 자유롭지 않다는 점도 부담이다. 루비오 장관은 밴스 부통령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존재감을 쌓아온 데다 행정부 내에서도 핵심 역할을 맡고 있어 공화당 내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밴스 부통령의 출마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당내 역학 구도에 따라 독자적인 대선 행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 등도 잠재적 경쟁자로 꼽힌다. ◇ 민주당 당내 노선 갈등이 숙제 민주당에서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가 대표적인 차기 주자로 거론된다. 뉴섬 주지사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 등을 강하게 비판하며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았다. 샤피로 주지사는 이번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며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J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와 웨스 무어 메릴랜드 주지사, 존 오소프 조지아주 상원의원 등도 잠재적 후보군으로 꼽힌다. 다만 민주당 역시 과제가 적지 않다. 이번 승리가 민주당 자체의 지지 기반 확대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에 따른 반사이익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내 중도·진보 진영 간 노선 갈등도 차기 대선까지 풀어야 할 숙제다. 이번 중간선거는 단순한 의회 권력 교체를 넘어 미국 정치의 차기 주도권 경쟁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2년 남았지만, 공화당은 트럼프 이후의 생존 전략을 고민해야 하고 민주당은 반트럼프 정서를 실제 정권교체로 연결할 인물을 찾아야 한다. 결국 2028년 대선의 관전 포인트는 양당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탈트럼프'의 출구를 마련하느냐가 될 전망이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트럼프가 코스피 살렸다?”…삼전닉스 급락 멈춘 이유 [머니+]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는 소식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가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극심한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했다. 민주당의 의회 장악으로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중심으로 투매가 쏟아졌지만 시장 분위기가 급반전된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4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0.62% 오른 5683.80으로 마감했다. 지수는 전장보다 137.34포인트(2.43%) 오른 5786.13으로 출발해 장 초반 3.17% 상승한 5828.13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장중 4.02% 급락한 5421.72까지 밀렸다가 막판 극적인 반등에 성공했다. 이날 고점과 저점의 격차는 무려 406.41포인트에 달했다. 국내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장중 최대 6~7% 급락했지만 낙폭을 대부분 만회했다. 삼성전자는 전장 대비 0.68% 내린 21만8000원에, SK하이닉스는 0.18% 하락한 139만6000원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 다른 아시아 증시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장중 5% 가까이 폭락했다가 낙폭을 줄였고, 대만 자취안지수도 하락폭을 축소해 0.8% 내린 채 거래를 마쳤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시장의 매도세가 진정됐다고 보도했다. 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공화당의 전통적인 강세 지역에서도 잇따라 승리를 거뒀다. 민주당은 상원에서 최소 7석을 공화당으로부터 빼앗았으며, 2024년 선거 당시 공화당이 손쉽게 승리했던 지역구의 하원 선거에서도 승리했다. 민주당의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글로벌 증시는 AI 관련주를 중심으로 급락했다.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미국 내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한 감독과 규제가 강화되고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했기 때문이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데이터센터 확장이 주요 선거 쟁점으로 부상한 점도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이미 AI 산업에 투입되는 천문학적인 자금과 투자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상황에서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가중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의회 장악이 반드시 AI 산업의 급격한 위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입법 거부권을 보유하고 있어 민주당이 추진하는 규제 강화 법안이 실제 시행되기까지는 상당한 정치적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베스코자산운용의 기노시타 도모 글로벌 시장 전략가는 “민주당의 의회 장악 전망으로 AI 산업에 대한 감독 강화 우려가 커지면서 아시아 전역의 관련 주식이 압박받았다"면서도 “이러한 반응은 다소 과도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차기 의회에서 AI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재정적자를 크게 확대하는 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 결과가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에 반드시 나쁜 소식인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스테이트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의 마이클 아론 최고투자전략가는 “시장의 가장 큰 위험은 민주당의 압승 자체가 아니라 투자자들이 이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점“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결과를 수용하고 민주당과 협력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점도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진정시키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중간선거 결과를 받아들일 의향이 있고 민주당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의회 장악으로 정책적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태양광과 전기차 배터리 관련 업종이 강세를 보인 점도 증시 반등에 힘을 보탰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실제로 대표적인 태양광 관련주인 한화솔루션은 18% 급등했고 HD현대에너지솔루션도 12% 넘게 올랐다. 이차전지 관련주인 에코프로(9.54%)와 LG에너지솔루션(3.70%) 등도 강세를 보였다. 다만 이번 반등을 본격적인 상승 추세로의 전환으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윤정인 피보나치자산운용 최고경영자(CEO)는 “코스피의 반등 시도는 투자자들이 여전히 저가 매수에 나설 의지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면서도 “현재 시장은 펀더멘털 측면에서는 지지를 받고 있지만 기술적으로는 취약한 상태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코스피가 보다 광범위한 상승 추세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지속적인 자금 유입과 안정적인 기업 실적 전망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이란, ‘트럼프 참패’ 보란듯이…“국민 배신하면 악몽”

미국 중간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당이 참패하자 이란이 미국 유권자들의 선택을 환영하며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4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전쟁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들의 패배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패배 원인 중 일부는 이란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은 내가 이란과 관련해 한 일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란 전쟁이 공화당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대(對)이란 정책 자체는 정당했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상·하원 모두 다수당 지위를 탈환하는 압승을 거뒀다. 지난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미국 내 휘발유 가격과 생활비 부담이 급증한 것이 공화당의 패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선거 결과를 두고 이란은 미국 유권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전쟁 정책을 거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측 협상단을 이끄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은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X)에 중간선거 결과를 언급하며 “양심 때문이든 생활비 때문이든 미국인들은 전쟁에 반대의 목소리를 냈고 우리도 이에 동의한다"고 적었다. 이어 미국 정부를 향해 “만약 미국 정부가 국제적인 자금 후원자들과 협박자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국 국민의 뜻을 배신한다면, 우리의 '아니오'에는 악몽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를 자국의 입장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동시에 미국이 이란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할 경우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중간선거 이후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재개할 가능성을 여러 차례 시사해왔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중간선거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있느냐"고 답했다. 이어 “민주당에 축하를 보낸다. 그들은 잘했다"며 “민주당은 지난 11년 동안 이런 승리를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선거 결과가 자신에 대한 심판이라는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결과를 나에 대한 타격으로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향후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그는 민주당이 “정신 나간" 법안들을 자신에게 보낼 것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몇 달 동안 거부권을 행사하고 나면 민주당이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 이런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느냐'고 물을 것"이라며 “그때 우리는 협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트럼프가 자초한 참사”…美 중간선거서 공화당 초토화 [이슈+]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 지위를 탈환한 데 이어 공화당의 전통적인 텃밭에서 잇따라 승리하면서 상원에서도 다수당 지위를 되찾았다. 미국 경제에 대한 불만과 이란 전쟁에 대한 반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을 향한 심판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출범 이후 최대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블룸버그통신은 3일(현지시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 지위를 확보하는 압승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미국 경제와 이란 전쟁을 둘러싼 광범위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거부로 이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과 AP통신 등 주요 외신도 민주당의 의회 권력 탈환을 보도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2년 전 백악관에 복귀한 이후 처음으로 그의 권력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이 조성됐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임기 2년인 연방 하원의원 435명 전원과 연방 상원 의석 100석 가운데 35석, 36개 주의 주지사 등을 선출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한국시간 4일 오후 3시 35분 기준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 걸린 상원 의석 35석 가운데 20석을 확보했다. 아직 승패가 확정되지 않은 3개 주 중 2곳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앞서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 경우 민주당 진영은 선거를 치르지 않는 기존 의석까지 합쳐 상원 전체 100석 중 56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원에서도 민주당은 전체 435석 가운데 과반인 225석을 확보해 다수당 지위를 탈환했다. 민주당의 하원 탈환은 선거 전부터 대체로 예상됐던 결과인 만큼 이번 선거에서 더욱 주목받는 것은 상원 선거 결과다. 민주당은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 지역인 캔자스, 텍사스,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오하이오, 아이오와 등 6개 주에서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던 상원 의석을 빼앗았다. 이번 선거에서 핵심 경합주로 꼽히던 메인주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차지하려면 기존보다 의석을 4석 순증해야 했는데, 예상 밖의 승리를 거듭하며 과반 확보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텍사스와 캔자스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는 대이변이 잇따랐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텍사스에서 민주당 후보가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승리한 것은 1988년이 마지막이었다. 캔자스에서는 민주당 상원의원이 마지막으로 당선된 시점이 무려 19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동안 공화당의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지역들마저 민주당에 넘어가면서 선거 판세는 예상보다 빠르게 민주당 쪽으로 기울었다. ◇ '샤이 트럼프'보다 강했던 반(反) 트럼프 표심 2016년과 2020년, 2024년 미국 대선에서는 여론조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세를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면서 이른바 '샤이 트럼프'가 선거 예측의 주요 변수로 주목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 차례 대선 모두에서 주요 여론조사 예상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과거 대선에서 나타났던 트럼프 지지세의 과소평가 현상보다 집권 2기 행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더욱 두드러졌다. 특히 지난 2월 시작된 이란 전쟁으로 미국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계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됐고, 이는 집권 공화당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전략가인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이번 참사는 거의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라며 “유권자들은 생활비 부담에 분노하고 있으며, 물가 상승을 부추긴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적 결정에도 분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미국 유권자들은 생활비 부담에 대한 불안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문제 대응 방식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러한 흐름은 선거 당일 실시된 출구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기 위해 투표했다는 응답자는 43%에 달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 위해 투표했다는 응답자는 16%에 그쳤다. 나머지 41%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투표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39%는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로 '경제'를 꼽았으며, '민주주의 현황'을 선택한 응답자는 32%였다. 또 투표 결정에 '정부 부정부패'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자는 54%, '생활비'를 결정적 요인으로 꼽은 응답자는 49%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율도 38%에 그쳤다. 이는 2008년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27%를 기록한 이후 대선 및 중간선거 출구조사에서 나타난 현직 대통령 지지율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주요 경합지역에서 선거운동에 관여한 공화당 관계자는 “이번 선거는 내가 살아온 동안 겪은 최악의 패배이며, 아마 역사상 최악의 선거 패배일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이름과 국정 운영 성적표가 투표용지에 올라 있다고 말했고, 유권자들은 이에 압도적으로 응답했다"고 지적했다. ◇ 트럼프 “내가 출마했다면 압승"…민주당 의회 장악에 국정 운영 제동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 결과를 수용하고 민주당과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결과를 전적으로 수용할 의향이 있다"며 “우리는 민주당과 협력할 것이며, 협력을 고대하고 있다. 아마도 어떤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려는 시각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나는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내가 출마했다면 우리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당의 참패에 대한 책임을 자신보다 공화당과 개별 후보들에게 돌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편 이번 중간선거에서 선출된 연방 상·하원 의원들은 내년 1월 3일 출범하는 제120대 의회를 구성하게 된다. 민주당의 의회 장악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공화당 의원들의 지지만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게 된다. 특히 상원까지 민주당에 넘어가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주요 인사와 정책에도 상당한 제약이 가해질 전망이다. 다만 이러한 권력 구도 변화가 새로운 법안의 통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전히 백악관을 장악하고 있는 데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의회 장악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민주당은 의회 다수당 지위를 바탕으로 강력한 조사 권한을 확보하게 되며, 이를 활용해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는 물론 그의 가족과 사업상 이해관계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는 관련자들에게 자료 제출이나 증언을 강제할 수 있는 소환장 발부 권한도 포함된다. 민주당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를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트럼프 심판 시작됐나”…코스피 급락 부른 美 중간선거 [이슈+]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초기 개표 결과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제동이 걸릴 수 있는 방향으로 나타나자 미국 증시 주요 지수 선물이 급락하고 달러화도 약세를 보였다. 특히 민주당의 의회 장악으로 인공지능(AI) 기업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한국 코스피 지수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하락하고 있다. 4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한국시간 오전 11시 27분 기준, 뉴욕증시 3대 지수가 모두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선물은 0.71%, S&P 500 선물은 1.06%, 나스닥100 선물은 1.91% 하락 중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도 0.5% 하락 중이고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6bp(1bp=0.01%포인트) 가량 하락한 연 4.893%을 나타내고 있다. 국채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한국 코스피 지수도 상승 출발했다가 하락 전환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장 대비 2.67% 내린 5497.78을 기록 중이다. 지수는 전장보다 2.43% 오른 5786.13으로 출발한 뒤 장 초반 3.17% 상승한 5828.13까지 올랐으나 이후 하락세로 돌아선 뒤 낙폭을 키우고 있다. 국내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나란히 3~4%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투자자들은 민주당이 압승할 경우 주식시장과 달러화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성장성이 높은 기술기업과 AI 기업들에 대한 규제와 감독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 국채는 정치적 교착 상태로 추가 감세와 정부 지출 확대가 제한될 경우 연방정부의 차입 부담에 대한 우려가 완화되면서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공화당 상원 의석 탈환…'블루 웨이브' 기대 확산 이 같은 금융시장 반응은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초반부터 주요 승부처에서 승리를 거둔 데 따른 것이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의 개표가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민주당 소속 로이 쿠퍼 전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가 공화당의 마이클 와틀리 전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을 꺾고 상원 의석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노스캐롤라이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세 차례 대선에서 모두 승리했던 지역이다. 특히 와틀리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지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번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승리로 상원 다수당 탈환에 필요한 순증 4석 가운데 1석을 확보하게 됐다. 또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후보들이 조지아, 뉴저지 등 지역에서도 승리하면서 상원 탈환을 위한 발판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 선거분석업체 디시전데스크HQ는 민주당이 하원을 탈환할 것으로 전망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온라인 예측시장에서도 민주당의 승리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졌다. 폴리마켓에서는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는 이른바 '블루 웨이브(Blue Wave)'의 확률이 99%까지 치솟았다. 개표 전까지만 해도 이 확률은 73% 수준이었다. 노무라홀딩스의 앤드루 타이스허스트 선임 금리 전략가는 “초기 언론 보도와 예측시장에서는 블루 웨이브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며 “아시아 시장의 초기 거래에서 금융시장은 이러한 전망에 부합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웰링턴매니지먼트의 브리지 쿠라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아직은 매우, 매우 초기 단계이지만 민주당이 예상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분점정부는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목격했던 것보다 재정 지출이 줄어들 것임을 의미한다"며 “역사적으로 분점정부가 형성됐을 때는 대체로 미국 국채에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 민주당 상원 탈환까지 3석 더 필요…트럼프 '거부권 대통령' 되나 다만 주요 경합지의 개표가 진행 중인 만큼 민주당의 상원 탈환을 확신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민주당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1석을 빼앗는 데 성공했지만 추가로 확보해야 할 의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텍사스, 오하이오, 알래스카, 아이오와, 캔자스 등 주요 상원 경합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서 10%포인트 이상의 격차로 승리했던 지역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우편투표 개표와 선호투표제에 따른 집계 절차 등으로 최종 결과가 확정되기까지 수일에서 길게는 수주가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선거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민주당이 하원만 장악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 감세와 주요 입법 과제에 제동을 걸 수 있다. 특히 민주당은 의회 권력을 되찾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을 상대로 각종 조사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상원까지 장악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주요 인사와 법안 처리에도 제약이 커질 수 있다. 정부 예산안 처리와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향 등 주요 재정 현안에서도 민주당과의 협상이 불가피해진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의회 권력 교체 가능성을 의식하고 있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CBS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상원이나 하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할 경우 자신은 “미스터 비토(거부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안에 대해 대통령의 거부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의미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이슈&인사이트] 북극해 물류 혁명, 운항 기술 넘어서 규범의 리더십으로 발전해야

지난 8월 22일 부산항을 출항한 한국 해운회사의 컨테이너선 팬스타 아크로(PanStar Acro)호가 북극해를 거쳐 유럽에 도착한 뒤, 10월 11일 귀항하였다. 기존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항로에 비해서 운항 시간을 크게 줄이며 50일 만에 완수한 이번 왕복 항해는, 국적 선사의 실질적인 북극항로(NSR) 운항 역량을 증명하고 물류비 절감과 수송 효율성이라는 경제적 가치를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북극해의 유빙과 극심한 기후 변동 속에서도 첨단 항해 기술로 안전을 확보하고 통항 절차와 운항 데이터를 축적한 경험은, 극지 항해의 기술적 실현 가능성도 명확히 보여준 것이었다. 장기적으로 이번 항해는 한국이 북극항로의 수동적 이용국 수준을 넘어서 관련 산업까지 주도할 기반을 마련하고, 새로운 해양 물류 거점으로 거듭날 가능성도 보였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팬스타 아크로호의 북극항로 운항이 입증한 이러한 가능성은, 북극의 자원 보유국인 러시아와 신흥 물동량 거점인 동남아시아를 잇는 운송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 확보와 새로운 물류 수송관 구축을 추진하는 ASEAN, 그리고 북극권 개발과 항로 활성화를 도모하는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북극항로는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연결하는 핵심 공급망으로 거론되는 것이다. 러시아산 천연자원이 북극항로를 통해서 동남아시아로 수출되는 최근 사례들은, 동북아시아의 해양 관문에 적절하게 위치한 한국이 러시아의 북극항로와 ASEAN의 남방 물류망을 중계·연결하는 최적의 지리적·산업적 거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항해로 입증된 한국의 해운 역량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거시적 지정학 지형과 결합하며,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북극항로의 상용화 이면에는 다층적 관할권(Multiple Jurisdictions)과 복합적 해사 규제라는 법적 위험도 있다. 영해에서의 외국 선박이 가지는 무해통항권과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의 자유항행권이 UN해양법협약(UNCLOS)에 근거하여 보장되지만, 연안국인 러시아는 주요 해협에 직선기선을 적용하며 넓은 해역을 자국 내수로 편입시키고 사전 통항 허가제 및 쇄빙선·도선사 강제 탑승을 요구하며 관할권을 행사한다. UNCLOS 제234조(결빙해역)가 연안국의 환경오염 예방 권한을 정당화하지만, 유럽사법재판소(ECJ)의 Bosphorus Queen 판결 등으로 확인된 강제 집행에서의 '명백한 객관적 증거'와 '비례성의 원칙' 준수 원칙이 있고, 심지어 기후변화로 인한 해빙 감소는 제234조의 전제 조건 자체를 재검토하게 만든다. 만약 한국 선사 소속인 파나마 국적의 선박이 러시아 연안을 항해하고 유럽에 입항한 경우와 같이 다국의 연관성이 있는 항해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관할권 충돌과 억류 위험 등 복잡한 권리관계가 발생하며, 국제해사기구(IMO)의 극지해역 운항선박 안전기준(Polar Code) 준수 의무와 해양오염방지협약(MARPOL) 부속서에 따른 중유(HFO) 사용·운송 금지 및 블랙카본 규제는 선사에 무과실 손해배상책임과 고가의 친환경 연료 전환이라는 법적·경제적 부담을 준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깊어진 대러시아 경제제재와 해상운송계약상의 위험 분담 미비는, 상업적 운항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 국영 쇄빙선사(Atomflot) 및 주요 북극 항만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여 통항료 및 쇄빙 지원금 송금 과정에서 경제제재 위반의 위험이 발생하고, 이는 글로벌 재보험사들의 담보 제공 거부나 추가 보험료 부과로 이어진다. 또한 해빙으로 인한 지연손해, 항로 변경 권한, 제재 위반 경우의 불가항력 인정 여부, 위성 통신 장애 발생의 경우 화물 손해의 면책 범위 등을 명시한 특약 없이 기존 표준 약관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장기적인 다국적 소송으로 확대되어 선사 전체가 마비될 위험도 크다. 따라서 한국은 팬스타 아크로호의 시범 항해를 계기로 단기적 북극항로 항해 성공을 넘어서, 법률서비스 지원체계와 정교한 계약 약관의 정립 등으로 중립적 중견국으로서 능동적 '규범 촉진자(Enabler)'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한국은 앞으로 북극항로 출항 전부터 해역별 법적 지위와 제재 위반 여부를 검증하고, 유연한 자금 결제 및 민·관 합동 법률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해운 강국이자 북극항로 핵심 이용자로서, 친환경 쇄빙선 기술과 디지털 해빙 정보 분석 체계를 공유하는 협력 플랫폼을 주도할 수 있다. 한국이 보편적 국제법 원칙에 부합하는 포용적 북극 규범 제정을 이끌고 법적 예측가능성을 확보해 나갈 때, 불확실성이 높은 북극해 무대에서 지속가능한 해상교통 질서를 주도하는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김봉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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