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병합 야욕을 보이며 대(對)유럽 관세 카드까지 거론하자 미국과 유럽 간 관세 전쟁이 '시즌2'에 돌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관세 위협이 무역 협상을 위한 수단보다 지정학적 힘을 지렛대삼을 수 있는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위험자산 중심으로 매도세가 속출했다. 무역·관세 전쟁을 둘러싼 확실성이 더 이상 없다는 관측까지 나오자 자금이 안전자산인 금과 은에 쏠리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의사에 반대하는 유럽 8개국(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을 상대로 2월 1일부터 대미 관세 10%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6월 1일에는 관세율이 25%로 인상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의 완전하고 총체적인 매입에 관한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부과된다"고 강조하는 등 동맹들을 향한 압박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캐피탈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관세 위협에 가장 취약한 국가는 영국과 독일로 지목됐다. 영국·독일에 대미 관세가 10%, 25% 추가로 적용될 경우 이들의 GDP가 각각 0.1%, 0.2~0.3% 위축될 것으로 추산됐다. 이에 반발한 유럽 각국들은 유럽연합(EU) 차원에서 미국을 상대로 하는 보복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 주요 회원국들은 930억유로(약 159조원) 규모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거나 EU 시장에서 미국 기업들을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은 “해당 보복 조치는 유럽 정상들이 이번 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할 때 지렛대를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FT에 말했다. EU는 지난해 미국과 무역 협상을 벌일 때 보복 관세를 이미 마련했지만 무역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내달 6일까지 유예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EU 8개국에 대한 관세를 예고하자 보복 관세가 이날 다시 논의됐고, 통상위협대응조치(ACI)도 별도로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ACI는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제3국에 서비스, 외국인 직접투자, 금융 시장, 공공 조달, 지식재산권 등의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다. 2023년 도입 이후 한 번도 사용된 적은 없다. 유럽의회 내 최대 정당인 유럽국민당(EPP)은 미국과 무역협정에 대한 표결을 연기할 계획이라고 FT는 전했다. 유럽의회는 이달 26∼27일 미국과 무역협정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었다. 전문가들은 관세를 둘러싼 미국과 EU의 이번 갈등이 상호관세가 발표됐던 지난해 4월 수준으로 격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베렌버버그의 홀거 슈미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관세 상황이 진정될 것이란 희망이 꺾였다"며 “작년 봄과 같은 상황에 다시 처했다"고 우려했다. 포드햄 글로벌 포어사이트의 티나 포드햄 창립자는 “미국과 EU 간 무역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고 봤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이 더 이상 무역 협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교역국들의 '비관세 장벽'을 제거하겠다는 명분으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따라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한국을 포함해 각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글로벌 금융사 ING의 카스텐 브르제스키 글로벌 거시경제 총괄은 “새로운 무역 긴장의 결과는 불확실하지만 무역이나 관세에 대한 확실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이른 흐름을 반영하듯,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위험자산을 중심으로 매도세가 속출하고 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19일 한국시간 오전 11시 56분 기준, 미국 나스닥 100 선물지수는 전장 대비 1% 가량 하락하고 있고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1% 하락 중이다. 호주 S&P/ASX 지수, 홍콩 항셍지수 등도 떨어졌다. 인공지능(AI) 투자의 수혜 지역으로 지목되는 한국 코스피 지수는 유일하게 오른 곳 중 하나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또 로이터에 따르면 이날 시장에서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가 0.2% 하락한 유로당 1.1572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11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영국 파운드화 역시 약세를 보인 반면 일본 엔화는 강세를 나타냈다. 가상자산 시장 전반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비트코인 시세는 이날 장중 최대 3.6% 하락해 9만2000달러선을 한때 밑돌았다. 이더리움과 솔라나도 각각 4.9%, 8.6% 하락했다. 무역 갈등이 고조되자 안전자산인 금과 은은 이날 또 급등하면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이날 국제 금 선물 가격은 장중 최대 온스당 4688.50달러까지 치솟았고 국제은값은 이날 사상 처음으로 94달러선을 돌파했다. 캐피탈닷컴의 카일 로다 애널리스트는 “지정학적 위험이 계속해서 고조되고 있다"며 “새로운 무역 불확실성이 성장 전망을 훼손하고 있고, 미국의 대외정책은 달러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다. 이는 금·은 상승에 완벽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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