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커지는데”…시장 달래기에 급급한 트럼프? [이슈+]](http://www.ekn.kr/mnt/thum/202603/rcv.YNA.20260224.PEP20260224023801009_T1.jpg)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여파로 글로벌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공포가 커지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금융시장 불안을 달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특히 행정부 내부에서 엇갈린 발언이 이어지면서 국제유가는 하루 사이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세계 각국은 에너지 가격 급등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 나섰지만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은 무력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 혼선 키운 트럼프 행정부…국제유가 또 롤러코스터 10일(현지시간)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 해군이 유조선을 호위했다는 내용을 소셜미디어에 게시하자 국제유가가 20% 가까이 폭락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실제로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이날 장중 한때 배럴당 76.82달러까지 추락했다.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를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봉쇄로 국제유가 급등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라이트 장관의 해당 게시물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자 유가는 빠르게 80달러선 위로 오르는 등 낙폭을 줄였다. 라이트 장관은 자신의 게시물을 삭제했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해당 작전이 없었다고 시인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혼선을 더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설치했다는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밝히면서도 이란을 향해 기뢰 제거를 압박했다. 이어 몇 분 뒤에는 “지난 몇 시간 동안 우리는 비활동 상태의 기뢰 부설 선박 10척을 완전히 격파했다"며 “추가 타격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비축유 방출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유가는 다시 하방 압력을 받았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번 방출은 사상 최대 규모로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를 웃돌 전망이다. 당시 IEA 회원국들은 두 차례에 걸쳐 총 1억8200만배럴에 달하는 비축유를 방출한 바 있다. IEA의 이같은 결정은 핵심 돈줄 역할을 하는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매년 약 600만달러를 IEA에 지원하는 등 정규 예산의 약 14%를 부담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IEA를 향해 1년 이내 탄소중립 목표 지지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기구를 탈퇴할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11일 한국시간 오후 1시 53분 기준, WTI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0.49% 내린 배럴당 83.05달러를 기록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치에도 시장 불안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보고 있다. 블룸버그의 가필드 레이놀즈 MLIV 총괄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량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회복되지 않는 한, 에너지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전쟁과 해협의 사실상 봉쇄가 공급을 옥죄고 중동 산유국들의 생산 중단을 연쇄적으로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포렉스닷컴의 파와드 라자크자다 역시 “유가 급락을 반겼지만 지정학적 불안은 여전하며 시장은 추가 변동성에 노출돼 있다"며 “결국 가장 중요한 변수는 역내 에너지 공급이 정상화되느냐 여부"라고 밝혔다. IEA의 비축유 방출은 트럼프 대통령을 위한 결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JP모건 수석 전략가 출신인 마르코 콜라노비치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엑스(X)에 “비축유 방출은 해결책을 늦출 뿐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석유 시장에 더 큰 피해를 준다"며 “소비자보다 트럼프에게 유리한 조치다"고 주장했다. ◇ 호르무즈 봉쇄에 에너지 공급 '빨간불' 실제로 에너지 공급 차질은 이미 현실화됐다. 호르무즈 해협은 현재 법적으로 봉쇄된 상태가 아니며, 이란 정부도 공식적으로 봉쇄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상당수 상선들이 항로 이용을 중단한 상태다. IRGC는 기뢰뿐 아니라 폭발물을 실은 선박과 해안 미사일 포대를 통해 선박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원유뿐 아니라 액화천연가스(LNG), 항공유, 비료 등 주요 원자재 가격도 동시에 상승하고 있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 주요 산유국들도 생산을 줄인 상태다.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아민 나세르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사태를 두고 “중동 석유·가스 산업이 직면한 최대 위기"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공급망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 급등은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를 키우고 있다. 블룸버그는 세계은행(WB) 자료를 인용해 글로벌 공급망 스트레스 지수가 이란 전쟁 발발 이전부터 이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었다고 전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글로벌 경제가 이미 취약해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모리스 옵스트펠드 선임 연구원은 “과거에도 공급망 충격은 있었지만 민간 부문이 빠르게 대응하면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며 “그러나 작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관세 공세와 이에 대한 각국의 대응으로 글로벌 무역 시스템이 더 취약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각국 임시방편 내놓지만…“장기화하면 스태그플레이션" 에너지 가격 급등이 글로벌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자 세계 각국은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한국 정부는 석유 가격 최고가격제 시행을 예고했고 영국은 가계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필리핀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정부기관 근무를 주 4일제로 전환했고 인도 역시 에너지 가격 급등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 중이다. 베트남은 일부 석유 제품의 수입 관세를 낮췄고, 태국은 바이오연료 혼합 비율을 높이는 한편 취사용 가스 가격을 동결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정부 예산으로 연료 가격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페퍼스톤 그룹의 마이클 브라운 수석 전략가는 “이 모든 조치는 단기적으로 에너지 충격을 일부 흡수할 수 있다"면서도 “분쟁이 장기화하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더 큰 우려는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정치 자문업체 인터내셔널 캐피털 스트래티지스의 더글러스 레디커 대표는 “충격이 크지만 단기에 그친다면 주로 인플레이션과 심리적 타격에 머물 것"이라면서도 “사태가 해운, 보험, 가스, 비료, 무역로 등으로 확산하면 스태그플레이션 리스크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보조금·수입 비용이 늘고 송금·관광·투자 흐름이 교란되면서 신흥국의 신용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화석연료 수입이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는 인도와 필리핀을 취약 국가로 꼽았다. 노무라는 △에너지 집약도 △전체 에너지 공급에서 화석연료 비중 △중동산 에너지 수입 비중 △에너지 무역수지 등 네 가지 지표를 기반으로 한국이 태국에 이어 오일 쇼크에 두 번째로 취약한 국가라고 분석했다. 통화정책을 둘러싼 각국 중앙은행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하는 가운데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금리 인상 압력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글로벌 재정 여력도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부채는 348조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팬데믹 이후 각국 정부가 위기 대응 과정에서 부채를 크게 늘린 영향이다. ◇ 공격 이어가는 미·이란…“멈추지 않겠다" 이런 와중에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날 이란 수도 테레란을 비롯한 이란 전역에 공습을 가했다. 테헤란의 한 주민은 “지옥 같았다"며 이날 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이 개전 후 가장 심각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을 지지하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거점지인 레바논 남부에 대한 공습도 멈추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이란에 대한 강경 태세를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특사인 스티브 윗코프는 CNBC 인터뷰에서 “이란이 외교적 해결을 원하는지가 의문"이라며 “지금까지의 증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 역시 1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적이 완전히, 결정적으로 패배할 때까지 작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도 반격에 나섰다. 로이터에 따르면 IRGC는 이날 카타르, 이라크, UAE, 바레인에 위치한 미군 기지를 공습했다.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윌 토드먼 중동 프로그램 선임연구원은 라이트 장관이 미 해군 호위 관련 게시물을 올렸다가 삭제한 것을 두고 “미국이 글로벌 경제의 고통을 완화할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을 이란이 알고 있는 만큼, 오히려 이란이 현재 전략을 더욱 밀어붙이는 빌미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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