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휴대폰 액세서리 전문점을 운영하는 A씨의 하루는 길고 고단하다. 매장 불이 켜져 있는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주당 운영 시간만 총 91시간. 일주일 내내 쉬는 날도 없다. 이 긴 시간 중 아르바이트생 2명이 채워주는 시간은 각각 12시간과 14시간, 합쳐서 겨우 26시간뿐이다. 나머지 65시간은 온전히 A씨 혼자의 몫이다. A씨에게 주 52시간 근로 기준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 A씨는 꼬박 매장을 지키며 초인적인 노동 강도를 버텨내고 있다. 15일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380원 더 오른다는 소식을 접한 A씨는 “어차피 기대도 안 했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 쪼개져서 우는 알바, 쪼개야 사는 사장 A씨는 왜 알바생을 더 쓰거나 알바생의 근무 시간을 늘리지 않을까. 답은 단순명료하면서 서글프다. 결국 '돈' 때문이다.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데, 사람을 더 쓰자니 인건비 부담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렇다고 기존 알바생의 근무 시간을 늘려줄 수도 없다. 현행법상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에게는 돈을 더 줘야 하는 '주휴수당' 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결국 A씨가 선택한 고육지책은 알바생들의 근무 시간을 주 15시간 미만으로 칼같이 맞추는 이른바 '알바 쪼개기'다. 사실 A씨가 처음부터 사장이었던 건 아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그는 이 매장의 '알바생'이었다. 결혼 후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었던 그는 이혼이라는 풍파를 겪은 뒤 생계를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알바 전선에는 주휴수당을 주지 않으려 근무 시간을 쪼개서 구하는 일자리들만 넘쳐났고, 한 곳에서 온전한 생계비를 벌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여곡절 끝에 매장을 운영하는 사장이 된 지금, 상황은 기묘하게 뒤틀렸다. 과거 주휴수당을 안 주려는 사장들의 야박함에 눈물짓던 그가, 이제는 그들과 똑같이 알바생의 시간을 주 14시간 이하로 쪼개고 있는 것이다. A씨는 “한곳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고 싶은 알바들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면서도 “그런데 막상 사장이 돼보니 그랬다간 내 생계가 어려워진다. 사실 지금도 내 시급은 알바보다도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 올해도 물 건너 간 주휴수당 폐지 A씨의 이야기는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주 52시간 근로제가 작은 가게 위에서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보여준다. 제도적 보호가 필요한 근로자와 실제 고용 부담을 떠안는 자영업자가 구조적으로 부딪히면서, 양쪽 모두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 상황이 현실이 되고 있다. 전날인 14일 최저임금위원회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4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700원으로 최종 결정했다. 올해 최저임금인 시간당 1만320원에서 3.7%인 380원 인상된 수치다. 그동안 노동계는 올해보다 16.3% 올린 1만2000원, 경영계는 동결인 1만320원을 요구해 왔다. 이날 회의에서는 마지막 최종안으로 근로자측이 제시한 1만730원과 사용자측이 제시한 1만700원을 놓고 27명의 위원들이 표결을 거쳐 15표를 얻은 사용자안을 최종 의결했다. 이번에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근로자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기준 66만명,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기준 297만8000명으로 추정된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380원 오른 1만700원으로 결정되면서 소상공인들의 시름도 깊어진 상황이다. 해마다 오르는 최저임금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분위기지만, 올해도 주휴수당 폐지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데 불만이 크다. A씨는 “우리 매장의 경우 휴대폰 액정 보호필름을 붙이는 작업이 필요한 만큼 책임감 있게 매장에서 오래 일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제도가 이를 막고 있다"며 “차라리 시급을 올리더라도 주휴수당은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는 이날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소상공인의 지불능력을 외면한 최저임금 추가 인상 결정에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소공연 관계자는 “정부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에게 또다시 새로운 부담이 지워진 점을 인식하고 최저임금 결정 구조의 근본적인 개편에 즉각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저임금 추가 인상에 따른 일자리 안정자금 부활,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지원 확대 등 소상공인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다각적인 지원 대책을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게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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