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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포커스] 사라진 새들의 노래…1962년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현실로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새들이 모이를 쪼아 먹던 뒷마당은 버림받은 듯 쓸쓸했다.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 (레이철 카슨 ≪침묵의 봄≫, 에코리브르) 1962년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카슨은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이라는 ≪침묵의 봄≫을 통해 살충제 남용이 생태계를 어떻게 파괴하고, 결국 새들의 노랫소리를 사라지게 만드는지를 경고했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흐른 지금 인류는 다시 한 번 새들이 침묵하는 봄을 마주하고 있다. 다만 이번 '침묵의 봄'은 단일 원인이 아닌, 기후 변화와 농업 구조의 변화, 대형 산불, 그리고 생태계 내부의 사회적 학습 붕괴가 겹쳐 만들어진 복합 위기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아마존 원시림에서 확인된 기후 변화의 조용한 충격 인간의 영향이 거의 없다고 여겨졌던 열대 우림조차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25일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 보도에서 과학전문기자 워런 콘월은 아마존 깊숙한 지역에서조차 새들의 노랫소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미시간 공대 야생동물 생태학자 자레드 울프와 브라질 아마조나스 연방대(UFAM)의 조류학자 스테파노 아빌라가 아마존 중부에서 현장 조사를 벌였는대, 흔히 들리던 특정 숲새의 노래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에콰도르 야수니 생물권 보전지역에서 2001년에서 2014년 사이 그물에 포획된 조류 수가 40% 급감했고, 시각 및 청각 조사 결과에서는 조류 수가 절반으로 감소했다. 특히 곤충을 먹는 조류는 2001년부터 2024년 사이 포획량이 83%나 줄었다. 연구팀은 살충제가 아닌 기후 변화가 원시림 깊숙한 곳까지 영향을 미쳐 곤충 개체수를 감소시키고, 그 결과 곤충을 주 먹이로 삼는 새들이 먼저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미 대륙을 가로지르는 구조적 '조류 감소' 북미 대륙에서는 이 같은 침묵이 장기적 추세로 확인되고 있다. 체코 생명과학대학교의 생태학자 프랑수아 르루아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공간생태학자 마르타 A. 자르지나가 참여한 국제 연구진은 지난달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1987년부터 2021년까지 북미 지역 조류 261종의 개체수 변화를 분석한 결과 122종(47%)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감소가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이 가운데 63종은 감소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가속화' 현상을 보였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살충제와 비료 사용 증가, 대규모 단작 재배, 경작지 확대 등 이른바 '농업의 집약화'가 조류 감소를 구조적으로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기후 변화로 인한 고온 스트레스가 더해지면서 새들의 생존과 번식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 산불과 미세먼지가 빼앗은 새소리 기후 변화가 초래한 대형 산불 역시 새들을 즉각적으로 침묵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떠올랐다. 미국 코넬대학교 소속 생태학자 트리포사 I. 시마모라와 행동생태학자 티모시 J. 보이콧 연구팀은 지난달 '생물학적 보전(Biological Conservation)'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2023년 캐나다 대형 산불로 연기가 미국 동북부까지 확산됐을 당시 초원에 서식하는 조류의 노래 활동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밝혔다. 8개 핵심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높아질수록 새들의 발성 빈도는 급격히 줄었다. PM2.5 평균 농도가 76μg/m³에 이르렀을 때 5개 종에서 유의미한 발성 활동 감소가 확인됐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반응이 아니라 짝짓기와 영역 방어라는 핵심 행동을 방해하는 '행동적 침묵'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멸종 위기 조류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붕괴 더 심각한 문제는 개체수 감소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새들의 '노래 문화' 자체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호주 국립대의 진화생물학자 다니엘 애플비 연구팀은 지난달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멸종위기 조류를 사례로 삼아 이러한 현상을 '문화적 멸종'으로 규정했다. 리전트 꿀빨기새(regent honeyeater)의 어린 수컷들은 다양한 연령대가 섞인 큰 무리에 합류해 노래를 습득하게 된다. 하지만 야생 개체수가 극도로 줄어들면서 어린 수컷 새들이 성체로부터 고유한 노래를 학습할 기회를 잃고, 다른 종의 노래를 흉내 내거나 단순화된 소리를 내는 현상이 관찰됐다. 이는 짝짓기 성공률을 떨어뜨려 다시 개체수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형성하며, 보전 정책의 패러다임을 '개체 보호'에서 '행동과 문화의 복원'으로 확장해야 함을 시사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결론이다. 연구팀은 개체수 감소로 고유의 노랫소리를 잃어버린 리전트 꿀빨기새를 대상으로 3년간의 적응형 노래 교육을 진행한 결과, 야생 노래를 익힌 유조(어린 새)의 비율이 42%까지 증가했다. ◇국내에선 참새·제비는 회복, 다른 조류는 감소 국내에서도 조류 감소는 일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의 '2024년 야생동물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당 29.3마리였던 박새는 2024년 21.5마리로 줄었다. 직박구리도 같은 기간 서식밀도가 21.3마리/㎢에서 17.5마리/㎢로 줄었다. 까마귀는 2016년 4.8마리에서 2024년 4.5마리로, 까치는 2016년 17.5마리에서 2024년 15.8마리로, 어치는 같은 기간 9.7마리에서 6.4마리로 줄었다. 꿩과 멧비둘기, 꾀꼬리도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제비는 2011년 19.8마리에서 2024년 26.2마리로 증가했고, 참새는 2011년 110.1마리에서 2024년 157.4마리로 늘어났다. 농약 사용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포획이 금지된 덕분에 제비와 참새의 서식 환경이 개선된 덕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서 고시한 멸종위기 조류의 경우 2016년에는 전국에서 27종이 국내에서 관찰됐으나, 2020년에는 26종, 2024년에는 23종만이 관찰됐다. ◇두 번째 '침묵의 봄'이 던지는 경고 오늘날 다시 거론되는 '침묵의 봄'은 60여 년 전 레이철 카슨이 경고했던 살충제 문제를 넘어선다. 기후 변화, 토지 이용의 급격한 전환, 대기오염, 그리고 생태계 내부의 사회적 학습 붕괴가 중첩되면서 새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점점 노래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새들의 침묵은 단순한 자연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지구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 1960년대 '침묵의 봄'이 환경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듯 오늘날의 두 번째 '침묵의 봄'은 기후와 생태 위기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경고음으로 다시 울리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E칼럼] 왜 우리는 ‘되는 기술’을 스스로 금지했나: 수소 내연기관의 실종

자율주행과 전기화가 수송부문의 대세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하나의 선택지가 암묵적으로 지워진 현실 자체는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한다.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제2조는 환경친화적 자동차를 전기자동차, 태양광자동차, 하이브리드자동차, 수소전기자동차로 한정하고 있다. 이 정의 속에는 휘발유나 경유 대신, 수소를 직접 연소시키는 수소 내연기관 차량이 애초에 포함되지 않는다. 전기차 일변도의 전환 경로 속에서 수소는 연료전지라는 극히 제한된 형태로만 허용되었고, 그 결과 수소가 지닌 또 다른 기술적·산업적 가능성은 충분한 논의조차 거치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로는 Tesla의 CEO 일론 머스크(Elon Musk)라고 본다. 그는 수년간 공개 석상과 인터뷰를 통해 수소차에 대해 매우 공격적인 발언을 반복해 왔다. 전기를 생산해 수소로 전환한 뒤 다시 이를 전기로 바꾸는 연료전지 방식은 변환 손실이 크고, 승용차 기준에서 전기차 대비 효율이 낮다는 것이다. 문제는 머스크의 비판이 연료전지를 넘어 수소 전체, 특히 수소 내연기관까지 동일하게 포괄해버렸다는 점이다. 그의 “에너지 변환 단계가 많다", “시스템이 복잡하다"는 비판은 전기→수소→전기로 다시 변환하는 연료전지에는 상당 부분 타당하지만, 수소를 직접 태워서 기계적 동력을 얻는 수소 내연기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 다른 핵심 비판인 “시스템이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연료전지 시스템의 복잡성과 달리 수소 내연기관은 기존 내연기관을 기반으로 한다. 그럼에도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수소를 하나의 비효율적 선택지로 단순화한 이유는, 의도적인 전략이었다. 수소 내연기관을 인정하는 순간 전기차 중심의 정책·투자 집중도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머스크의 단순화된 비판은 글로벌 담론과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수소 내연기관이라는 대안을 완전히 논외로 밀어냈다. 한국의 환경친화적 자동차 법상에서도 이를 명시적으로 배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과 EU의 무공해 수송수단 (ZEV: Zero Emission Vehicle) 기준도 이를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CO₂ 배출이 없음에도 고온 연소로 인해 미세먼지 NOx가 완전히 0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엔진을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제로배출 차량 배제 사유가 된다. 경유차에서 요소수 넣어 미세먼지 원인인 NOx 저감하듯 똑같이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영국 에너지안보탄소중립부 2024년 보고서도 현행 규제가 수소 내연기관을 넷제로 기여 기술로 인정하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분류 체계 개편을 제안했다. 수소 내연기관 인정이 신속한 탈탄소화 옵션 제공, 공기질 개선, 경제 기여, 일자리 보호 등의 부가 효과가 있음을 강조한다. 실제로 수소 내연기관의 핵심 기술은 이미 성숙 단계에 있으며, 한국에서도 2020년 이전부터 실증 사례가 존재했다. 김필수 한국전기차협회 회장도 2022년 칼럼에서 수소엔진이 기존 내연기관 생태계를 활용하면서 탄소 감축을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임을 지적한 바 있다. 자동차 제조업 강국으로서 비용과 생산 측면에서 경쟁력을 가질 가능성이 있으며, 무엇보다 내연기관 중심으로 형성된 산업 생태계와 인력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또한 에너지 안보 관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짚어야 할 점은, 한국이 산업 구조적으로 수소 생산 자립 국가라는 점이다. 정유·석유화학·철강 공정 전반에서 이미 대량의 개질수소와 부생수소가 발생하고 있으나, 현재 이 수소의 상당 부분은 공정 내부 연료로 소모되거나 저부가가치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수소 생산 인프라를 처음부터 구축해야 하는 유럽이나 미국과 한국을 구분 짓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이처럼 부가적으로 생산한 수소를 활용해 화석연료를 대체할 경우, 그레이·블루 수소 자체에서의 온실가스 배출 논란과는 별개로 총 배출은 무조건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미 업계에서는 CCS (Carbon Capture & Storage)등으로 자체 배출을 제거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고 말이다. 반면 전기차를 위한 전력 생산은 여전히 수입 연료에 의존하고, 배터리 핵심 원자재도 대부분 해외 조달에 의존하며, 전기차 확산은 전력망 부담을 키운다. 온실가스 배출을 개별 차량에서 발전소로 몰아준것에 불과하니,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크지 않음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 현대·기아차를 중심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차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수소 내연기관이라는 선택지를 본격적으로 검토하지 못한 채 전기차 중심 전환 경로에 편입된 것이 너무 아쉬울 뿐이다. 결국 2015~2020년 사이 형성된 '수송부문 기후 대응=전기차, 산업 전환=배터리' 이라는 글로벌 컨센서스가 결정적이었다. 이로 인해 수소 내연기관이나 혼합 전략을 제시할 정책적 공간은 사라졌다. 보조금, 규제 인정, 국제 협력, 수출 인증 모두 연료전지 중심으로 설계되었고, 기업 입장에서는 수소 내연기관을 추진하는 것이 시장도 없고 리스크만 큰 계륵(鷄肋)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환경 수송에 대한 국내 시장 방어 혹은 자원 안보라는 현실적인 과제를 감안하면, 지금 이 문제를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 최고의 수소 생산 및 수소차량 기술 보유 국가에서, 단지 정책 분류와 국제 분위기에 밀려 잠재력을 낭비하기에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이 글은 전기차와 한국의 배터리 산업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만 한국이 가진 산업 구조와 자원 현실을 기준으로 할 때, 수소 내연기관이라는 선택지가 처음부터 배제되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는 점, 그리고 이제라도 다시 검토할 가치가 있다는 문제 제기일 뿐이다.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최소한 선택지를 스스로 줄이는 전략은 굳이 할 필요 없지 않을까. bienns@ekn.kr

호남서 재생에너지 470MW 준중앙급전 참여…이제는 주력 자원

재생에너지가 본격적으로 전력시장의 주력으로 떠오른다. 이제 재생에너지도 다른 발전원처럼 전력망 안정을 위해 주도적으로 시장에 참여하고 발전을 제한받는 대신 이에 따른 보상을 받게 된다. 4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이달부터 호남 지역에서 시행 중인 '2026년도 봄철 재생에너지 준중앙급전 운영제도'에 총 470.9MW 규모의 발전원이 참여한다. 해당 제도는 재생에너지를 대규모 화력발전처럼 전력거래소의 급전지시에 따라 운영해 전력망 안정에 기여하도록 하는 취지로 올해 처음 도입됐다. 그동안 재생에너지는 별도의 급전지시 없이 생산 전력을 판매해왔다. 대신 전력망 안정을 위해 긴급한 경우 일방적인 가동중단(출력제어) 조치를 받았다. 설비별로는 태양광 4개 설비(총 341.2MW), 풍력 1개 설비(총 51.7MW)가 참여했다. 소규모 자원을 묶은 가상발전소(VPP) 형태의 집합형 자원은 21개(총 78MW) 규모다. VPP는 소규모 태양광 등을 IT 기술로 통합해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방식이다. 준중앙급전제도 운영기간은 지난 1일부터 오는 5월 31일까지이며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적용된다. 재생에너지가 집중되는 봄철 낮 시간대 전력망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다. 준중앙급전제도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하루 전 시간대별 발전계획을 수립해 전력거래소에 제출하고 다음날 수급 상황에 따라 출력제어 지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출력제어를 받더라도 별도의 보상이 없었지만 이번 제도에서는 일정 수준의 보상이 이뤄진다. 사업자는 발전량 예측 정확도와 지시 이행 여부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발전사업자나 VPP 사업자의 예측·운영 역량에 따라 보상 규모도 달라질 수 있다. 보상금은 발전량(kWh)에 정산단가를 곱해 정해진다. 다만 급전지시가 있는 시간대에는 실제 발전량 대신 사전에 제출한 자체 발전계획량을 적용한다. 준중앙급전제도 정산단가는 예측제도 정산단가를 제외한 킬로와트시(kWh)당 9.42원이다. 발전사업자는 전력도매가격에 더해 정산단가로 추가 수익을 거둔다. 전력당국은 준중앙급전제도가 재생에너지가 몰린 호남 지역의 전력망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제도는 향후 전국으로 확대될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로 가기 전의 완충 장치 성격을 갖는다.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는 준중앙급전에 가격 입찰 경쟁까지 더하는 구조로 재생에너지에게 시장 참여도를 한층 더 강화하는 방식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美-이란 전쟁에 저유가 기조 ‘흔들’…전력가격·정책에 변수 부상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정세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국내 에너지 시장이 긴장 국면에 들어섰다. 그동안 국제 유가 안정세를 기반으로 이어졌던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드라이브와 한국전력의 실적 개선 흐름에도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장 정부는 에너지 수급과 전력시장 영향을 점검하기 위해 연이어 비상 대응에 나섰다. 기후부는 이호현 제2차관 주재로 전력거래소와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발전5사·에너지경제연구원 등이 참석한 '에너지상황 점검회의'를 2일 개최해 중동 정세가 국내 전력수급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했다고 3일 밝혔다. 기후부는 현재까지 중동 상황이 국내 전력수급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봄철 기온 상승으로 전력수요가 감소하는 시기이고, 국제 유가 상승이 액화천연가스(LNG) 도입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통상 3~6개월의 시차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단기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발전공기업이 사용하는 유연탄과 직도입 LNG 가운데 중동 의존 물량이 없어 즉각적인 연료 수급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정부는 사태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해 비상 대응체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기후부는 전력공기업과 함께 에너지 비상대응반을 가동하고 중동 지역 동향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극단적 상황에 대비한 대응 계획을 점검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산업통상부 역시 장관 주재 비상 점검회의를 열고 석유·가스 수급 상황을 확인한 바 있다. 정부가 이틀 사이 연속 점검회의를 개최한 것은 이번 사태가 단순 외교·안보 이슈를 넘어 에너지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로 해석된다. 최근 국내 전력시장은 안정된 연료 가격 환경의 혜택을 받아왔다. 글로벌 공급 확대 기대 속에 국제 유가가 장기간 안정 흐름을 보이면서 한국전력의 전력구입비가 크게 낮아졌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악화됐던 재무 구조도 빠르게 회복세에 들어섰다. 시장에서는 올해 역시 연료비 안정세를 전제로 한전의 이익은 커지고 발전 공기업과 민간 발전사들의 실적은 약화될 것으로 예상해왔다. 그러나 이번 미국-이란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러한 전망에도 변수가 생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장기화될 경우 국제유가 상승과 함께 전력도매가격(SMP)이 다시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 SMP 상승은 발전사 수익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전력요금 부담 확대를 우려한 정부가 SMP 상한제 등 시장 안정 조치를 다시 검토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SMP 상한제는 지난 2022년 1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약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발동됐다. SMP 상한제는 직전 3개월간 평균 SMP가 과거 10년간 월별 평균 SMP의 상위 10% 수준에 해당할 때 발동될 수 있다. 상한가는 10년 평균가의 1.5배로 정해진다. 당시 SMP 3개월 평균은 킬로와트시(kWh)당 254.8원으로 10년 평균 상위 10% 기준인 154.4원보다 무려 100.4원 높았다. 이에 따라 SMP 상한선은 160.2원으로 설정됐으며, 2022년 12월부터 2023년 2월까지 3개월간 적용됐다. SMP 상한제는 3개월을 초과해 시행할 수 없도록 제한돼 있다. 이후 2023년 4월 한 차례 더 발동된 것이 마지막이다. 이번 전쟁이 장기화되고 SMP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칠 경우, SMP 상한제가 재발동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SMP는 kWh당 90~100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이어진 저유가 환경이 전력시장 정상화의 핵심 조건이었다"며 “유가 상승이 지속되면 한전 실적 개선 속도와 전력시장 안정 흐름 모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쟁 장기화로 저유가 환경이 흔들릴 경우 에너지 정책 기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커질수록 연료 가격 영향이 적은 기저 전원의 중요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상당 기간 석탄화력발전, 대형 원전 중심의 전력 공급 구조 의존도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동시에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는 소형모듈원전(SMR) 개발 역시 정책 추진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국제 연료 가격 상승은 화석연료 발전 비용을 끌어올리는 만큼 정부가 추진해 온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다시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연료비 변동성이 커질수록 태양광·풍력 등 연료비가 없는 전원의 경제성이 상대적으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다만 연료비 상승이 장기화될 경우 전력구입비 증가가 전기요금 인상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요금 안정 사이의 정책 균형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호현 차관은 “현재 중동 정세가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며 “불확실성 속에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전력공기업과 함께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당장 에너지 물량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한국 경제가 여전히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에 민감하게 노출돼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충분한 비축과 공급 다변화 정책이 단기 충격을 완화하고 있지만, 중동 지정학 리스크가 반복될 때마다 전력시장과 산업 비용 구조가 흔들리는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일시적 긴장에 그칠지 혹은 장기화되면서 저유가 환경 종료의 신호탄이 될지가 향후 전력시장과 에너지 정책 방향을 가를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E칼럼] 지정학적 위기, 에너지 안보를 다시 묻다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지난달 18일 일본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합의한 5,500억 달러(약 800조 원) 규모 대미 투자 가운데 첫 3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오하이오주 가스 화력, 조지아주 인공 다이아몬드, 텍사스주 석유·가스 수출 항만 정비 등 에너지와 산업 인프라가 핵심이다. 일본의 이런 행보는 이미 합의된 대미 투자를 단순한 자본 이전에 그치지 않고, 자국의 에너지 안보 및 경제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 효용성을 끌어올리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자국의 에너지 및 자원 부문이 가진 한계를 동맹 영토 내에서 관련 산업의 거점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보완하려는 것이다. 이는 에너지 안보와 경제 안보를 동맹의 구조 속에 편입시키려는 전략적 행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중동 정세가 급변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이 출렁이고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마저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석유 공급량의 약 27%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에너지 무역의 병목지점이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한국과 일본처럼 중동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직접적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유가 상승은 곧 물가와 제조업 비용 상승으로 연결되고, 이는 수출 경쟁력에는 물론 국민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나 일본 에너지 수송의 취약성은 호르무즈 해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만 유사 사태 혹은 대만 주요 항구를 봉쇄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하거나, 남중국해·동중국해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경우, 동북아 해상 교통로 역시 위험에 노출된다. 동북아시아 시장에로의 에너지 수송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말라카 해협, 남중국해, 동중국해로 이어지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해상 수송로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요컨대 중동과 동북아는 에너지 수송 네트워크로 연결된 하나의 해상 전략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일본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 결정과 최근 중동 정세를 통해 우리가 다시금 상기해야 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와 지정학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현실이다. 일본은 동맹의 내부에서 에너지 안보 및 경제 안보와 관련된 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한국 역시 단기적인 대응보다는 중장기적인 구조 설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에너지 안보와 해상 안보를 분리하지 않는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이 연장선에서 해상 교통로 안정과 시장 불안 완화를 위한 정책 공조, 위기 상황에 대비한 정보 공유 체계를 한미 동맹의 틀과 연계하고, 나아가 이를 한·미·일 협력의 틀에서 추진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또한 미국산 원유·LNG 도입 확대를 포함해 공급 구조의 분산 역시 필요하다. 특정 지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반복적으로 동일한 취약성을 노출시킨다. 이런 점에서 동맹이자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은 미국으로부터의 에너지 수입 확대는 에너지 안보 및 해상 안보 차원에서도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은 물론, 에너지 안보를 동맹과 연계시킴으로써 상호 보완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아울러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수입 화석연료 의존 자체를 지속해서 낮추려는 노력 역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수입산 화석연료 비중을 줄이는 것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일 뿐 아니라 지정학 리스크 완화 전략이기도 하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수가 된 시대에, 에너지 안보는 더 이상 수급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의 중심 의제다. 위기에 대한 단기적 대응에만 급급한 것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를 다각도에서 바라보며 입체적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해야 한다. 임은정

“호르무즈해협 14일 이상 봉쇄 땐…세계경제, 구조전환 국면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테헤란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이후 이란군은 이에 대응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고, 아랍에미리트(UAE)의 주요 항공 허브도 운영을 중단했다. 이란 최정예 부대인 혁명수비대(IRGC)가 2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에 대한 공격을 예고했다. IRGC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직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선 상태다. 이같은 봉쇄로 글로벌 시장에서 원유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면서 아시아와 유럽의 주요 경제권의 에너지 안보가 심각한 위협에 처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또한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감소는 산업 정체와 국내 에너지 부족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14일 이상 봉쇄하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면 세계 경제는 단기 충격을 넘어 구조적 변동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정학적 리스크 분석 기관인 '스페셜유라시아(SpecialEurasia)'는 이 기관의 공동 설립자이자 리서치 매니저인 줄리아노 비폴키 박사 명의로 2일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글로벌 경제 충격'이란 보고서를 공개했다. 스페셜유라시아는 이탈리아에 기반을 둔 지정학·국제정세 분석 및 리스크 평가 기관으로 2013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2,000만 배럴 증발…에너지 시장의 '급소' 보고서에서 비폴키 박사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하루 2000만 배럴의 원유가 국제 시장에서 사라질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2026년 초 기준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여기에 더해 전 세계 LNG 공급량의 약 20%도 동시에 차단되면서 전력·철강·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 전반이 심각한 공급 불안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봉쇄가 72시간만 지속돼도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특히 봉쇄가 14일 이상 장기화될 경우 이는 단순한 가격 급등을 넘어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의 구조적 고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들의 전략 비축유(SPR) 방출이 단기 완충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물류 병목과 가격 급등까지 상쇄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송유관(약 하루 700만 배럴)과 UAE의 아부다비–푸자이라 송유관(약 하루 150만 배럴)을 모두 최대치로 가동하더라도, 봉쇄로 사라지는 하루 2000만 배럴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항공·해상 물류 동시 마비…공급망 비용 폭증 에너지 충격과 함께 물류 부문도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했다. 중동 내 주요 항공 허브의 운영 중단으로 서구와 아시아를 잇는 항공 화물 네트워크가 흔들리고, 고부가가치 전자제품·의약품 운송에 차질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두바이 국제공항의 기능이 제한될 경우 글로벌 환승 및 항공 물류 흐름 자체가 재편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운 부문에서는 페르시아만 항로의 전쟁 위험 보험료가 약 50% 급등하고, 일부 보험사는 보장 자체를 중단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홍해와 수에즈 운하의 병목 현상이 벌어지면 선박들은 아프리카 희망봉 우회 항로를 택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운송 기간이 10~15일 늘어나며 연료비와 운임이 동시에 상승하게 된다. 보고서는 이를 “전 세계 물류 비용의 급격한 상승(precipitous increase)"으로 표현했다. 보고서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의 80% 이상이 한국·중국·일본·인도 등 아시아 국가로 향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봉쇄가 2주를 넘길 경우 이들 국가에서는 산업 생산의 '눈에 띄는 위축(marked contraction)'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경우 원유 수입량의 약 50%를 이 경로에 의존하고 있어 장기 봉쇄 시 제조업 생산 차질과 국내총생산(GDP) 성장 둔화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14일 이후에는 '충격'에서 '전환'으로 보고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14일을 넘길 경우 세계 경제가 단기 위기 대응 단계를 넘어 구조적 전환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 시점부터 시장은 봉쇄를 일시적 충격이 아닌 장기 공급 단절로 인식하게 되고,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페르시아만의 신뢰성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화된다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재고 확대와 공급망의 지리적 분산, 특정 항로 의존도 축소 전략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14일이 분기점으로 작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누적 공급 손실 규모다. 하루 2000만 배럴의 원유가 차단되면 2주 동안 약 2억8000만 배럴이 시장에서 사라지는데, 이는 전략비축유로도 단기간에 메우기 어려운 수준이다. 물류 측면에서도 해상 보험료와 운임이 급등하고, 유럽–아시아 노선의 우회 운항이 늘어나면서 글로벌 운송 비용이 구조적으로 상승한다. 산업 현장 역시 14일을 넘기면 대응 방식이 달라진다.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운영 재고는 통상 7~14일 수준에 불과해, 이 시점을 지나면 감산을 넘어 라인 중단이나 휴업이 현실적 선택지로 떠오른다. 특히 한국·일본·중국처럼 연속 공정 비중이 높은 동아시아 제조업 국가들의 취약성이 빠르게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가스 위기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유럽은 전쟁 발발 후 2~3주 만에 러시아 가스 중심의 기존 에너지 체제를 포기하고 LNG 기반 구조로 전환했으며, 이후 공급 여건이 일부 개선됐음에도 과거 체제로 돌아가지 않았다. 보고서는 이 경험을 근거로 14일을 넘긴 봉쇄는 '충격'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시작'이며, 봉쇄 해제 이후에도 과거의 저비용·고효율 에너지·물류 시스템으로의 복귀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대기 중 CO2 증가, 혈액 성분 바꿔 신장결석 초래

대기 중 이산화탄소(CO₂) 농도의 급격한 상승이 인류의 혈액 화학 성분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고,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약 50년 이내에 인체의 생리적 조절 능력이 한계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개별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건강 기반을 흔들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이라고 경고했다. 온실가스 증가가 기후 시스템과 생태계, 그리고 미래세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당장 현세대의 건강까지 위협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호주 커틴대학교의 알렉산더 N. 라콤 교수와 호주 국립대학교의 필 N. 비어워스 박사가 공동으로 수행했고, 최근 국제학술지 '대기질, 대기, 건강(Air Quality, Atmosphere & Health)'에 게재됐다. ◇이산화탄소가 늘자, 혈액 속 중탄산염이 증가했다 연구진은 1999년부터 2020년까지 약 20년간 수집된 미국 국가 건강 및 영양 조사(NHANES) 자료를 활용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가 인간의 혈액 성분 변화와 어떤 연관성을 보이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대기 환경 변화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서 혈액 화학 조성의 장기적 변화를 동반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실제 분석 결과, 미국 성인의 평균 혈중 중탄산염(HCO₃⁻) 농도는 1999~2000년 약 23.8 mEq/L에서 2019~2020년 약 25.3 mEq/L로 약 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mEq/L는 혈액 1 L당 이온이 몇 밀리 당량(mili-equivalent) 들어있느냐를 나타내는 단위다. 혈액 속 이온이 '얼마나 강하게 생리 작용을 하는지'를 나타낸다. 산–염기 균형과 전해질 조절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지표다. 연구진은 중탄산염 농도 상승을 인체가 점점 더 산성화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완충 물질을 동원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질수록 인체가 흡입하는 이산화탄소의 양도 증가하고, 이는 혈액 내 이산화탄소 부하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인체는 혈액의 산성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신장을 중심으로 한 보상 기전을 작동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물질이 혈중 중탄산염이다. ◇뼈에서 빠져나오는 칼슘과 인, '조용한 대가' 문제는 이러한 보상 과정이 공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 흡수로 인해 혈액의 산성도가 높아질수록 인체는 이를 중화하기 위해 뼈에 저장된 칼슘과 인산염을 혈액으로 끌어오게 된다. 연구 결과, 같은 기간 동안 혈중 칼슘 농도는 약 2%, 인 농도는 약 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단순한 영양 섭취 문제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기 환경 변화가 장기간 누적될 경우 인체 내부에서 뼈 대사와 무기질 균형 자체가 구조적으로 흔들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이산화탄소의 영향은 혈액과 장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존 연구들을 종합하면 1000ppm 미만의 비교적 낮은 농도에서도 집중력 저하, 의사 결정 능력 감소, 학습 효율 저하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이는 실내 환경에서도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정신 건강 측면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인간은 진화적으로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을 위험 신호로 감지하도록 설계돼 있어 농도가 높아질수록 불안 반응과 공황 반응이 촉진될 수 있다. 연구진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구조적으로 상승하는 사회에서는 인구 전체의 불안 수준이 만성적으로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2070년대, 인체 보상 능력의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다" 연구진은 현재의 증가 추세가 유지될 경우 2070년대 중반에는 평균 혈중 중탄산염 농도가 정상 상한선으로 여겨지는 30 mEq/L에 근접하거나 이를 초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이 수준에 이르면 사람의 몸은 더 이상 산-염기 불균형을 효과적으로 조절하지 못하고 만성적인 대사성 산증과 유사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이 경우 수소 이온을 대신해 칼슘 이온이 과도하게 동원되는데, 이 칼슘이 탄산염 형태로 신장이나 혈관 벽에 달라붙어 신장 결석이나 혈관 석회화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연구진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환경에서 조직 석회화가 관찰된 동물 실험 결과들을 함께 제시하면서 인간에게도 장기적 노출 시 유사한 부담이 누적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신장 결석은 지난 수십 년간 증가 추세를 보여왔고, 특히 기존 위험요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인구집단에서도 증가가 관찰되고 있다. 현재까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가 신장 결석 증가의 직접 원인임을 입증한 단일 연구는 없지만, 생물학적 개연성과 역학적 추세는 일관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누적될 경우 신장 결석이 특정 생활습관병이 아니라 환경 노출과 연관된 보편적 건강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후 위기는 이미 우리 혈액 속에서 진행 중" 이번 연구는 기후 위기가 미래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현재 세대의 혈액과 신체 내부에서 진행 중인 변화라는 점을 과학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인류가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에서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혈액 화학 성분이 변화하고 있고,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인체 항상성(일정한 상태를 지속하려는 성질) 자체에 대한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러한 변화는 눈에 띄는 증상 없이 진행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되돌리기 어려운 건강 부담으로 축적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탄소 등 기후 대응, 선택 아닌 무역경쟁력 핵심요소”

기후 규제가 환경 영역을 넘어 '통상 장벽'으로 급부상한 가운데 우리나라 기업들의 대응 전략을 점검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제11회 탄소시장과 무역경쟁력 세미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논의했다. 행사 주제는 '글로벌 탄소 무역 장벽과 한국 기업의 대응전략'이다. 올해는 전세계 탄소 무역 시장에 새로운 질서가 생겨난 원년이다. 그동안 각국이 '환경 보호'에 초점을 맞췄지만 최근에는 탄소를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작한 '관세 전쟁'에서도 기후 관련 규제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우진 에너지경제신문 부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한국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통상 관련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동시에 실질적으로 탄소를 감축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주제발표를 맡은 장현숙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실장은 '2026년 글로벌 탄소 무역 장벽과 한국 기업의 대응 전략'에 대해 발표했다. 장 실장은 “올해는 기후 규제가 환경 영역을 넘어 통상 장벽으로 공식화한 해다. 외부적으로 드러난 변화보다 실제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것에 있다"며 “탄소는 비용이 아니라 새로운 무역 질서로 자리 잡았고 기후 대응은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무역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고 설명했다.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보호무역정책과 국내 시사점'을 주제로 발표에 나서 “미국에서 온실가스배출 규제가 근거가 사실상 없어지면서 기업들은 경영 관련 불확실성이 확대됐다.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는 규제를 유지하고 EU도 마찬가지라 대응 전략이 필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이어진 종합 토론에서는 정서용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가 좌장 역할을 맡았다.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 연구소장, 유준혁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경영자문부문 파트너, 이선경 켐토피아 상무, 이충국 한국기후변화연구원 탄소배출권 센터장 등이 의견을 나눴다. 에너지경제신문은 '탄소시장과 무역경쟁력 세미나'를 지난 2016년부터 매년 열고 있다. 2015년 탄소배출권거래제가 실시된 이후부터 현 시점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기후환경·경제정책 변화 양상을 살폈다. [관련기사 8,9면] 여헌우 기자 yes@ekn.kr

호르무즈해협·홍해 봉쇄, 미국한테는 남의 일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됐다. 이 해협은 세계 원유, 가스 물동량의 20~25%가 통과하는 지역이며, 우리나라도 원유 수입의 70%, 가스 수입의 15%가 이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봉쇄가 단기적일 경우는 비축유와 수입선 다변화로 버틸 수 있지만, 장기화될 시에는 가격 급등은 물론 수급의 어려움까지 발생할 것으로 분석된다. 1일 타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이란의 이슬람혁명수비대(IRCG)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를 선언하고 모든 선박의 통행 차단에 나섰다. 에브라힘 자바리 혁명수비대 소장은 알마야딘 TV와 인터뷰에서 “이란에 대한 침공 이후에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국경을 따라 형성돼 있으며, 가장 좁은 폭은 불과 50km에 불과하다. 이 좁은 지역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의 원유와 가스가 다른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다. 원유 통과물량은 일평균 2000만~2100만배럴가량으로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25%가량이다. 한국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2025년 총 원유수입량 1억3700만톤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물량은 사우디 4713만톤, UAE 1535만톤, 이라크 1550만톤, 쿠웨이트 1193만톤, 카타르 547만톤으로 69.6%나 된다. 천연가스(LNG) 수입량은 4668만톤 가운데 카타르 697만톤밖에 없어 비중은 14.9%로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일본 역시 중동 석유수입 의존도는 70%가량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이 세계 경제의 전략적 초크포인트(요충지)라는 점을 이용해 이를 봉쇄 또는 위협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 또는 서방과의 갈등에 활용해 왔다. 2차 오일쇼크가 끝난 직후인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서방이 이라크 지원에 나서자 이란이 해협 봉쇄에 나섰다. 이슬람 강경색이 짙은 이란이 이길 경우 중동 전체가 서방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서방은 함대를 파견했다. 이러한 갈등은 1984년까지 지속되면서 해협을 드나드는 유조선은 항상 피격의 위험을 안아야 했고 이로 인해 운임료는 폭등했다. 1987년 8월에는 사우디 메카에서 이란 순례자와 사우디 경찰 간 충돌이 발생해 이란 순례자 수백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란은 사우디 수출을 차단하기 위해 해협을 봉쇄했고, 이로 인해 당시 한국 동력자원부는 자가용 운행 홀짝제, 택시 운행 축소, 심야 주유소 운영 금지 등 석유 비상 통제훈련을 실시했다. 이후 이란의 해협 봉쇄 위협은 줄었으나, 2023년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이후 다시 긴장도가 높아졌다. 올해 1월 11일에는 이라크 원유를 싣고 튀르키예로 향하던 유조선이 나포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기존에는 미국도 중동으로부터 석유를 수입하면서 수입선을 지키기 위해 중동에 함대를 파견해 유조선 등을 보호했다. 하지만 이제 미국은 그럴 필요가 없다. 2016년 미국 셰일석유의 등장으로 자국 석유, 가스 생산량이 넘쳐나면서 더 이상 중동 수입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됐고 중동 함대 파견도 필요성이 사라졌다. 결국 이번 미국의 이란 공격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 싼 긴장도는 한껏 높아졌지만, 정작 미국은 이 해협을 보호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중동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일본, 유럽이 군사적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이를 명분으로 함대를 계속 주둔하는 대신 천문학적 비용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대책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비축유를 풀어 수급 차질을 완화하고, 급히 다른 지역의 수입을 늘리는 것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정부의 석유 비축량은 1억배럴을 약간 웃돈다.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으로 비축일수는 120일 정도다. 여기에 민간 재고량까지 합하면 모두 210일 정도의 비축일수를 갖고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실질적 비축일수는 이보다 상당히 적을 수 있다. 지난해 국내 총 석유 소비량은 9억3157만배럴로, 일평균으로는 255만배럴이다. 이를 정부 비축량에 적용하면 비축일수는 1/3 수준인 39일로 크게 줄어든다. 결국 일상적인 석유 소비 패턴으로는 한달 반에서 두달가량밖에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중동을 대체할 수입선으로는 대표적으로 미국이 있다. 한국의 지난해 미국 원유 수입량은 2232만톤으로 전년보다 3.7% 증가했다. 이어 브라질, 호주, 멕시코, 동남아,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추가 수입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제 제재로 수입이 중단된 러시아산도 상황에 따라 수입이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 중동의 긴장 고조는 호르무즈 해협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유럽으로 가는 관문인 홍해 및 수에즈 운하 운항에도 영향을 미친다. 홍해의 입구는 폭이 30km로 정도로 매우 협소한데, 이 지역은 친이란파인 후티반군이 점령하고 있어 얼마든지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한 공격이 가능하다.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때도 후티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선박을 공격하기도 했다. 한국 등 아시아 대부분의 선박들은 유럽으로 가기 위해 홍해를 지나 수에즈 운하를 거친다. 홍해가 막히게 되면 아프리카를 빙둘러 가야 해 그만큼 비용이 추가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는 북극항로는 이 항로를 대체할 수 있다. 기존 동북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항로는 남중국해를 거쳐 수에즈운하를 지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약 2만2000km를 이동해야 하지만,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약 1만5000km로 크게 단축이 가능하다. 다만 북극항로는 러시아 연안을 통과해야 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탄소 데이터 확보, 수출 기업 생존 가르는 핵심 경쟁력 될 것”

기후 규제가 단순한 환경 보호의 영역을 넘어 국제 무역을 직접 통제하는 공식적인 통상 장벽으로 전환되고 있다. 글로벌 수출 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제품의 전 생애주기 탄소 데이터를 측정, 검증, 보고하는 데이터 역량을 기업의 핵심 생존 조건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장현숙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신무역전략실장은 지난 26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제11회 탄소시장과 무역경쟁력 세미나'에서 '2026년 글로벌 탄소 무역 장벽과 한국 기업의 대응 전략'에 대해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장 실장은 “탄소 데이터 확보 여부가 수출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지난 2023년부터 2025년까지의 전환기를 마치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과금 체제에 돌입한다. 올해 산정된 배출량을 바탕으로 내년부터는 수입 제품에 내재된 탄소량만큼 실제 인증서를 구매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장 실장은 “올해 이전까지는 늦게 보고하면 불이익에 그쳤지만, 이제는 지불하지 않으면 아예 시장 진입 자체가 불가한 구조가 됐다"며 미준수 시 통관이 제한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데이터 산정의 정확성은 기업의 재무적 손실과 직결된다. EU는 탄소 배출량을 정확히 산정하지 못한 기업에게 일괄적으로 가장 불리한 '기본값(Default value)'을 적용하도록 규정했다. 정확한 측정 데이터를 제출하지 못하면 기본값에 가산된 값으로 산출돼 실제 배출량보다 과도한 비용을 자동으로 지불해야 하는 구조다. 장 실장은 “이제는 기술 격차도 중요하지만, 보고 역량 자체가 기업의 경쟁력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통상 규제의 범위도 원재료를 넘어 하류 완제품으로 급격히 확장되고 있다. 현재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분야에 적용되는 CBAM은 2028년부터 철강을 사용한 기계, 자동차 부품, 산업재 등 하류 완제품 단계까지 확대가 논의되고 있다. 장 실장은 “제품 적용 범위가 확대된다면 한국처럼 중간재 수출에 치중하는 국가는 구조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데이터 요구는 통관을 넘어 제품 자체의 투명성 공개 의무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4년 7월 발효된 에코디자인 규정(ESPR)은 '디지털 제품 여권'을 의무화했다. 원자재 정보, 탄소 발자국, 수리 가능성, 재활용률 등 제품의 전 생애주기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장 실장은 “단순한 환경 규제가 아니라 공급망의 투명성 의무를 지운 제도"라며 “이제는 제품이 단순한 물건의 수출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데이터 패키지가 같이 넘어간다"고 설명했다. ESPR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제품을 기준으로 먼저 적용에 들어갔고 점차 모든 제품으로 확대가 예고돼있다. 장 실장은 “환경을 논의하고 있지만 결국엔 데이터의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지난 2월 발효돼 오는 8월 본격 시행되는 포장재 폐기물 규제(PPWR) 역시 재활용 함량 의무율 도입과 함께 QR 기반의 추적 시스템을 명시했다. 장 실장은 “제품뿐만 아니라 제품을 포장하는 포장재까지도 고려해야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탄소 무역 장벽은 일시적이거나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장 실장은 “미국 역시 아직 법안이 계류중인 상황이지만, 민주당의 청정경쟁법안(CCA)이나 공화당의 해외 오염 물질 부담금법안(FPFA)을 통해 EU와 유사하게 수입품에 탄소세를 고정적으로 물리는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탄소 기준은 느슨하지만 세액공제나 조달기준, 투자유치 조건 등을 통해 사실상의 무역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영국도 오는 2027년 CBAM를 도입한다. 영국은 EU와 유사한 Scope 1· 2 배출량 산정 방식을 적용한다. 일본은 성장형 GX 추진전략을 시행한다. GX ETS를 본격 가동하는 한편 제품 단위 탄소 정보 요구를 확대하고 있다. 공급망 탄소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 비관세 장벽을 세우고 있다. 장 실장은 “탄소 기준은 특정 지역의 규제가 아니라 글로벌 무역의 새로운 공통 언어가 되고 있다"며 “이러한 제도가 특정 국가를 선별해 적용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모든 제품의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고 제출해야 하는 방향성은 흔들림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글로벌 시장의 변화는 철강과 시멘트의 공정 개선, 알루미늄의 전력 믹스 전환, 석유화학의 원료 전환 등 산업 구조 전반의 근본적인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장 실장의 설명이다. 그는 “이는 단순히 수출 감소에 대비하라는 차원이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라는 강력한 신호"라고 강조했다. 장 실장은 이러한 구조적 쇄신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의 '한국형 녹색 전환(K-GX)' 추진 방향도 함께 짚었다. 정부는 작년 11월 K-GX 추진 계획을 확정하고 기후부 내에 K-GX 추진 지원단을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금융, 전환 금융, 산업 측정 등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지원 정책을 수립 중이다. 장 실장은 “단지 규제를 이행하고 대응하는 차원을 넘어 이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바꾸는 '성장형 한국형 녹색 전환'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를 위해서는 거버넌스와 민관 협력 체제, 부처별 협력 구조 등에 대한 전반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 실장은 기업은 대응을 위해 온실가스의 정확한 측정과 제3자 검증을 통한 신뢰성 확보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탄소 비용을 줄이는 관점을 넘어, 시장 접근권을 확보하고 이를 '저탄소 프리미엄'과 브랜드 가치로 전환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장 실장은 정부와 기업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을 거듭 주문했다. 그는 “지금까지 기후 변화 관련 논의가 주로 규제와 대응이라는 단어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시장, 성장, 금융의 관점에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전략은 물론 정부 정책 역시 철저히 시장과 성장의 관점에서 금융의 뒷받침을 바탕으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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