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주요 해외 공장에 '분산투자'를 단행하며 생산역량을 차근차근 늘려가고 있다. 베트남 등 전략적 요충지를 선정해 해당 지역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던 과거 움직임과 달라진 양상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관세전쟁' 관련 불확실성이 워낙 높은만큼 이에 대응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인도 타밀나두주 당국자들은 삼성전자가 첸나이 인근 스리페룸부두르 가전공장에 100억루피(약 1689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타밀나두주 산업투자부 장관은 이를 두고 “노동력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는 조치"라고 언급했다. 해당 지역에서는 작년부터 노동자 파업과 시위 등이 지속되고 있다. 노조원들이 임금 인상 체계 개혁과 해고자 복직 등을 두고 단체행동에 나서면서다. 지난해 9~10월에는 전체 직원 1800여명 중 1000명 이상이 쟁의 행위에 가담해 생산에 큰 차질을 빚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투자 결정으로 생산시설을 정비하고 노동자 100여명을 고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스리페룸부두르 가전공장에서는 냉장고와 세탁기 등을 만들어진다. 연간 120억달러(약 17조2464억원)에 달하는 회사 인도 매출의 약 20%를 담당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공장 역량도 지속적으로 강화할 방침이다. 베트남 북부 박닌과 타이응우옌에 위치한 공장은 삼성전자 최대 스마트폰 및 태블릿PC 생산 기지다. 지난해 5월 베트남을 찾은 박학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CFO, 사장)은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와 만나 “향후 수년간 연간 약 10억달러(약 1조4378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작년까지 베트남에 투입한 돈은 총 224억달러(약 32조2000억원)로 추산된다. 미국에서는 최첨단 반도체를 만든다. 삼성전자는 앞서 테일러 지역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로 결정하고 미국 정부와 보조금 협상 등을 벌여왔다. 투자 금액은 2030년까지 370억달러(약 53조213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 말에는 이와 관련 미 상무부와 47억4500만달러(약 6조8200원)의 직접 보조금 지급 계약을 체결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첨단 공정 수율을 확보하고 인력을 제때 충원할 경우 빅테크 등 현지 고객사들 물량을 따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중국도 놓치기 힘든 거점이다. 삼성전자 낸드플래시 생산에서 중국 시안 공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40%대를 오가고 있다. D램 분야 중국 영향력도 상당하다. 회사는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역량 강화 등을 위해 현지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전세계 공장 '분산투자' 행보를 보이는 것은 관세전쟁 방향성과 여파를 예측하기가 힘들어서다. 불확실성이 높은 시점이라 무작정 생산거점을 옮기거나 특정 지역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100일이 지난 가운데 미 행정부는 관세정책에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잇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하며 “유예는 없다"고 못박았지만 발효 13시간여만에 '90일 유예' 결정을 내렸다. 중국은 관세 유예 대상에서 제외하며 제품에 145%의 관세폭탄을 명령했다. 이와 관련한 협상을 두고도 미국과 중국은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어 글로벌 통상 환경 불확실성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헌우 기자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