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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강찬수 기자 입니다.
  • 기후에너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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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데이터센터의 대반전: 전력망의 ‘애물단지’에서 ‘충격 완화 장치’로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전 세계 곳곳에서 전력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막대한 전기를 소비하는 AI 데이터센터는 전력망에 부담을 주는 대표적인 시설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한국이 엔비디아로부터 그래픽 처리 장치(Graphics Processing Unit, GPU) 26만 장을 들여와 AI 개발에 활용할 경우 엄청난 전력 소비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GPU 26만장으로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경우 약 600메가와트(㎿)의 전력이 소모되고, 이는 신형 대형원전 APR1400급 1기 발전용량(1400㎿)의 절반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한 연구는 이와 정반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AI 데이터센터가 전기를 잡아먹는 '괴물'이 아니라, 오히려 전력망을 안정시키는 핵심 자산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AI 데이터센터의 대반전인 셈이다. ◇“전력 부담 주는 존재"라는 고정관념의 타파 이번 연구는 미국 에메랄드 AI 연구팀이 주도했고 오라클과 엔비디아, 전력연구소(EPRI) 등에서도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에너지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인 '네이처 에너지(Nature Energy)'에 지난달 게재됐다. 다만 이 연구는 일반 데이터센터가 아닌 AI를 학습시키는 AI 데이터센터에 적용되는 연구 결과다. 지금까지 데이터센터는 '항상 일정한 전력을 끊임없이 소비해야 하는 시설'로 인식돼 왔다.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시간대에도 소비를 줄이기 어렵다는 점에서 전력망 운영자 입장에서는 관리가 까다로운 존재였다. 그러나 연구팀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전력 오케스트레이션(power orchestration)' 기술을 활용하면 데이터센터가 전력망 상황에 맞춰 스스로 전력 사용량을 조절할 수 있음을 실증했다. 핵심은 하드웨어를 새로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AI 작업의 특성을 활용해 전력 소비를 유연하게 만드는 방식이l다. ◇전력소비 조절하는 세 가지 '제어 손잡이' 연구팀은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을 조절하기 위해 세 가지 핵심 수단을 제시했다. 첫째, GPU의 클럭(clock) 속도 조절(dynamic voltage and frequency scaling, DVFS)이다. GPU의 연산 속도를 미세하게 낮추면 성능 저하는 최소화하면서도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GPU는 원래 화면 그래픽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산 장치인데, 구조적으로 동시에 매우 많은 계산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데 특화돼 있어, 지금은 AI 연산의 핵심 장비가 됐다. 클럭은 GPU가 1초에 몇 번 계산을 할 수 있는지 결정하는 기준 속도다. DVFS는 GPU의 전압과 클럭 속도를 실시간으로 조절해 전력 소비를 관리하는 기술이다. 핵심 포인트는 조금 속도를 느리게 하는 대신 훨씬 적은 전력으로 계속 작동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는 GPU가 항상 100% 최고 속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 구간이 많기 때문이다. 메모리 접근, 데이터 대기 시간 등으로 이미 병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클럭을 5~10% 낮춰도 계산 완료 시간은 거의 차이가 없거나 체감 성능 저하는 매우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이번에 발표한 논문의 실험에서도 클럭 속도를 조절해 전력은 크게 줄였지만 AI 서비스 품질(QoS)은 유지됐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이번 연구는 “GPU는 상황에 따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그 자체가 전력망을 돕는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GPU는 전력 소비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전력 수요를 조절할 수 있는 손잡이가 된 것이다. ◇급하지 않은 작업을 일시 중지할 수도 두번 째 방법은 작업 일시 중지다. 즉각적인 응답이 필요 없는 AI 학습 작업은 전력 수요가 급한 순간 잠시 멈출 수 있다. AI 모델 학습은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은 반복 구조를 가진다. '데이터 일부를 읽음 →계산 수행 → 모델 변수 업데이트 → 다음 데이터로 이동'의 과정이 수백만~수십억 번 반복된다. 중요한 점은 이 반복 과정은 연속적일 필요가 없고 중간 상태만 정확히 저장하면 언제든 다시 이어서 계산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 시스템은 일시 중지 가능한 작업 선별해 안전한 지점에서 저장하고, GPU에서 해당 작업 해제하고 GPU 연산을 중단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GPU의 전력 사용 급감한다. 이후 전력 피크가 해소되면 저장된 체크포인트에서 그대로 이어서 학습을 계속하게 된다. 작업을 중단하는 이유는 작업을 '느리게 하는 것(DVFS)'보다 아예 멈추는 것이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한 가장 큰 전력 감축 수단이기 때문이다. 세번 째 방법은 자원 재할당이다. 특정 작업에 투입되는 GPU의 개수를 조정해 전력 사용량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대규모 AI 학습은 보통 병렬 처리로 이루어진다. 여러 개의 GPU가 데이터를 나눠 계산한다는 의미다. 이 때 GPU 숫자와 성능이 늘 비례하지는 않는다. 동기화 지연이나 메모리 병목현상 등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GPU를 절반으로 줄여도 성능은 절반으로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원의 재할당은 우선 작업별 GPU 최소 요구량 파악하고, GPU를 덜 써도 가능한 작업을 식별한 다음, GPU 개수를 줄인다. 이렇게 확보한 GPU는 다른 작업에 할당하거나 작업을 쉬게 한다. 전력 소모가 많은 GPU를 하나 줄이는 것 자체가 하나의 발전기를 끄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낸다. ◇실제 데이터센터에서 효과 입증 이런 세 가지 방법을 조합하면 데이터센터는 전력망의 요구에 따라 빠르고 정밀하게 반응할 수 있다. 연구팀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한 오라클의 실제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에서 현장 실험을 진행했다. 256개의 엔비디아 GPU로 구성된 클러스터를 대상으로 실증한 결과, 전력 수요가 가장 높은 피크 시간대에 AI 서비스 품질(QoS)을 유지하면서도 약 3시간 동안 전력 사용량을 최대 25%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성과가 대규모 배터리(ESS) 설치나 설비 교체 없이 순수하게 소프트웨어 제어만으로 달성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데이터센터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다시 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연구팀은 AI 작업을 전력 유연성에 따라 플렉스(Flex, 전력 유연성 단계) 0에서부터 플렉스 3까지 네 단계로 분류했다. 실시간 응답이 필수적인 챗봇이나 검색 서비스는 '플랙스 0'으로 묶어 성능 저하를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수일 이상 걸리는 대규모 AI 모델 학습 작업은 '플렉스 3'으로 분류해, 전력 상황에 따라 속도를 늦추거나 잠시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내부 시뮬레이터가 각 작업의 전력과 성능 간 관계를 예측하는데, 오차율은 4.52%에 불과했다. 덕분에 '서비스 수준 협약(SLA)'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최적의 전력 감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 세계 어디서나 적용 가능한 '가상 발전소' 이 기술은 특정 국가나 특별한 설비에 의존하지 않는다. 표준 하드웨어와 기존 클라우드 환경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 솔루션이기 때문에 데이터센터가 급증하고 전력망 제약이 심한 유럽 국가 등에서도 즉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망 운영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발전소나 송전망을 건설하지 않고도 수요를 관리할 수 있고, 데이터센터는 전력망 안정화에 기여한 대가로 요금 할인이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다. AI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논의는 이제 “얼마나 전기를 더 쓰느냐"에서 “어떻게 전기를 똑똑하게 쓰느냐"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연구는 AI 시대의 전력 위기를 해결할 실마리가, 역설적으로 AI 데이터센터 그 자체에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일반 데이터센터에서도 전력 유연성 개념을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일반 데이터센터는 웹 서비스, 금융 거래, 데이터베이스 운영 등 실시간성과 연속성이 필수적인 업무가 대부분이어서 작업을 일시 중지하거나 지연시키는 방식의 전력 조정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야간 정산, 백업, 로그 분석과 같은 배치성 작업이나 내부 분석 업무에 한해서는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시간대에 작업을 늦추거나 자원을 줄이는 방식이 가능하지만 그 효과는 AI 학습 작업에 비해 크지 않다. 또한 CPU 중심의 일반 서버는 GPU 중심의 AI 서버에 비해 단위 자원당 전력 밀도가 낮아 자원 재할당이나 클럭 속도 조절을 통해 줄일 수 있는 전력 규모도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일반 데이터센터는 전력망을 적극적으로 조정하는 자산이라기보다는 일부 상황에서만 참여할 수 있는 보조적 수요반응 자원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신호등] 트럼프 2기 ‘광풍’ 1년…한국, 휩쓸리지 않게 기후정책 중심 잘 잡아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월 20일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 연설에서 “오늘은 미국 해방의 날"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어 “급진 좌파와 관료들이 만들어낸 규제와 거짓말의 시대는 오늘로 끝났다"고 말하면서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전반을 사실상 '적폐'로 규정했다.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당시 발언은 상징적 수사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가진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우리는 바이든의 모든 흔적을 지울 것"이라고 말했고, 이후 1년간의 국정 운영은 실제로 '바이든 지우기(ABB: Anything But Biden)'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입증해 왔다. 특히 기후와 에너지, 환경, 과학, 보건 정책은 트럼프 개인의 발언과 신념에 직접적으로 종속되면서 급격한 후퇴를 겪었다. 당장 지난 7일(현지 시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산하기관 31개와 비(非) 유엔기구 35개 등 66개 국제기구에서 탈퇴하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다. 탈퇴하기로 한 유엔 산하 기관 중에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포함됐다. 비 유엔기구 중에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국제에너지포럼, 세계자연보전연맹(IUCN)과 인천에 본부를 둔 녹색기후기금(GCF) 등이 들어있다. GCF는 개발도상국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하는 세계 최대 국제금융기구다. '기후 신호등'은 백악관 행정명령, 연방정부 공식 예산안, 각 부처 장관 발언, 국제기구 기록,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1년간 벌어진 핵심 사건들을 분야별로 정리했다. 이러한 변화가 대한민국에 미친 구체적 영향과 향후 정책적 대응 과제를 살펴본다. ◇'녹색 사기'와의 전쟁에 기후·환경 정책 퇴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20일 취임 당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기후변화를 “수십 년간 미국 산업을 옥죈 정치적 사기극"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기후 위기라는 말은 미국 노동자에게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만들어진 허구"라고 말하며, 국제 사회의 기후 대응 기조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유엔 주재 미국대사에게 파리기후협정 탈퇴 의사를 담은 공식 서한을 즉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에 제출하도록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백악관은 같은 날 배포한 설명 자료에서 파리협정을 “미국에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는 불공정 협약"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협정 규정에 따라 통보 1년 뒤인 오는 22일 공식적으로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게 된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브라질 벨렝에서 개최된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 연방 정부 차원의 공식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이는 1995년 COP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리 젤딘 환경보호청(EPA) 청장은 지난해 4월 2일 워싱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대대적인 규제 완화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선언하면서 31개 환경 규제 철회 계획을 발표했다. 젤딘 청장은 특히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채택한 '온실가스 위해성 판단(Endangerment Finding)'에 대해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공식 폐기하기 위한 행정 절차에 착수했다. 이 판단은 발전소와 자동차,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규제의 법적 근거로 작동해 왔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를 “미국 기후 정책의 근간을 허무는 조치"로 평가하고 있다. ◇화석연료를 띄우고 재생에너지를 압박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23일, 행정명령 14156호에 서명해 “국가적 에너지 비상사태(National Energy Emergency)"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서명식에서 “미국은 땅속에 묻힌 에너지를 두고도 외국에 의존해 왔다"면서 이를 즉각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해 2월 5일 열린 상원 에너지위원회 청문회에서 “기후 위기는 과학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라고 발언하며, 셰일가스와 셰일오일 개발을 가로막아 온 각종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밝혔다. 에너지부는 같은 달 바이든 행정부 시절 중단됐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허가 심사를 전면 재개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내무부는 지난해 3월 북극 국립야생동물보호구역(ANWR)과 멕시코만, 대서양 연안에서의 석유·가스 시추 제한을 해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환경 보호를 이유로 설정된 연방 차원의 시추 금지 구역을 사실상 원상 복구한 조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12일 플로리다에서 열린 공화당 후원 행사 연설에서 풍력 터빈을 가리켜 “아름다운 해안선을 망치고 새를 죽이는 크고 못생긴 구조물"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백악관은 신규 해상풍력 사업 허가를 전면 보류하는 행정명령을 공식화했다. 매슈 지아코니 미 해양에너지관리국(BOEM) 국장 대행은 지난해 3월 18일 내부 공문을 통해 “모든 해상풍력 프로젝트의 건설 활동을 즉각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로드아일랜드주 앞바다에서 건설 막바지 단계에 있던 '레볼루션 윈드(Revolution Wind)' 프로젝트를 포함해, 수조 원 규모의 해상풍력 사업들이 줄줄이 중단됐다. 지난해 7월 4일 트럼프 대통령이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서명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은 태양광·풍력 투자 세액공제를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 재생에너지협회는 이 법안이 “미국 청정에너지 산업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평가했다. ◇과학·보건 예산 삭감과 이념 개입, 그리고 '과학 망명'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과학과 보건 분야를 '연방 관료주의의 핵심'으로 규정하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지난해 5월 백악관이 의회에 제출한 2026회계연도 예산안에 따르면, 국립보건원(NIH) 예산은 전년 대비 약 44% 삭감된 267억 달러(약 38조 원)로 편성됐고, 국립과학재단(NSF) 예산도 56%나 줄었다. 일론 머스크와 러셀 보트가 공동 주도한 정부효율부(DOGE)는 지난해 6월 각 연구기관에 인력 감축 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NIH에서는 수천 명의 연구자가 해고됐고, 특히 임용 초기 단계에 있던 신진 연구자와 박사후 연구원들이 대거 직장을 잃었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3월 보건부 내부 회의에서 mRNA 백신 연구 목록을 별도로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백신 기술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질병예방통제센터(CDC)의 기존 백신 권고안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보건부는 지난해 4월 성별 정체성, 성소수자(LGBTQ+) 건강,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관련 연구 과제 수백 건에 대해 “기관 우선순위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구비 지원을 종료한다고 통보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7월 1일부로 국제개발처(USAID)를 국무부 산하 조직으로 흡수 통합했다. 국무부는 이 과정에서 해외 원조 예산의 90% 이상을 삭감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 지역의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백신 임상시험과 전염병 감시 프로그램이 중단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중대한 글로벌 보건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 환경 악화가 지속되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 대학 소속 연구자들의 해외 이동이 급증했다. 프랑스 엑스-마르세유 대학은 지난해 8월 '과학을 위한 안전한 장소' 프로그램을 발표했고, 불과 2주 만에 미국 과학자 120명 이상이 지원했다. ◇관세 중심 통상 전략과 고립의 심화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4월 2일 백악관 연설에서 관세를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표현하며 전면적인 관세 정책을 발표했다. “우리는 더 이상 호구(suckers)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모든 수입품에 10% 기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중국을 향한 압박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중국을 직접 지목하며 “중국은 수십 년 동안 미국의 기술과 일자리를 훔쳐 갔다"고 비난했다. 기존 관세에 추가 관세를 누적 적용해 중국산 제품에 대해 최대 145%의 관세율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와 일부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 관세를 발표하며 맞대응에 나섰고,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불확실성이 급속히 확산됐다. 세계무역기구(WTO) 사무국은 지난해 5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전면 관세 정책은 1930년대 보호무역 이후 가장 큰 충격"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말 언론 인터뷰에서 덴마크령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그린란드는 미국의 안보와 경제에 필수적인 자산"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4월에는 파나마 운하 통제권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우리는 파나마 운하를 만들었고, 중국이 사실상 이를 장악하도록 방치했다"며 “미국 선박이 미국이 만든 운하에서 차별받는 일은 끝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은 결국 군사적 행동으로까지 이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6년 새해 벽두 베네수엘라를 대상으로 한 기습적 군사작전을 단행했다. 이 작전으로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체포돼 미국으로 압송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기자들에게 “마두로는 독재자이자 마약 범죄자"라며 “미국은 더 이상 불량 국가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19세기식 힘의 외교가 21세기에 되살아난 사례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국내 정치적 지지층 결집에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스스로를 국제 질서에서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엔 대규모 투자 요구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은 수출 중심 구조를 가진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었다. 자동차와 배터리 산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무관세 혜택이 사실상 종료되면서 관세율이 15%로 상승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세액공제는 지난해 9월 조기 폐지됐다. 철강과 가전 산업은 철강·알루미늄 관세 50% 인상과 파생 제품 관세 확대로 수출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안보 측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인터뷰에서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고 표현하며 방위비 분담금 100억 달러 인상을 요구했고, 주한미군 재배치 가능성을 언급했다. 또한 상호관세 인하를 조건으로 향후 4년간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대규모 LNG 구매를 압박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리스크를 단기적 변수로 보기보다 구조적 위험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종종 즉흥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정책은 일관된 방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기후 부정, 과학 경시, 거래 중심 외교다. 한국은 트럼프의 발언을 단순한 말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실제 정책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전제로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급망과 수출 시장 다변화, 저탄소 기술 경쟁력 확보, 실리 중심의 대미 협상 전략, 그리고 탄소중립 정책의 일관성 유지가 핵심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면하더라도 기후위기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갈수록 심화되는 기후 위기를 고려하면 트럼프 정권 이후에 미국이든, 유럽연합이든 전 세계가 다시 기후 대책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국도 현재의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도 기후정책의 중심을 잘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미세플라스틱 오염과 기후 위기, 위험을 서로 증폭시킨다

기후 변화와 미세플라스틱 오염은 흔히 별개의, 서로 관련이 없는 환경 문제로 다뤄져왔다. 그러나 최근 환경과학 연구는 이 두 위기가 동시에, 그리고 상호작용하며 등장할 때 그 피해가 단순한 '합(덧셈)'이 아니라 '증폭(곱셈)'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환경신데믹(Eco-syndemic)'이다. 환경신데믹이란 서로 다른 환경 스트레스 요인이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중첩되며, 상호작용을 통해 생태계와 인간 사회에 더 큰 피해를 초래하는 현상을 뜻한다. 최근 발표된 여러 연구는 미세플라스틱과 기후변화가 전형적인 환경신데믹 관계에 놓여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기후변화는 미세플라스틱의 발생과 확산을 가속하고, 늘어난 미세플라스틱은 다시 지구의 탄소 흡수 능력을 약화시키며 기후위기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승작용 과정은 기후 환경 문제를 악화시키고 인류를 위협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바람·햇빛·고온이 플라스틱 분해를 가속 기후변화는 단순히 기온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강한 바람과 강한 일사, 극단적인 기상 조건은 플라스틱이 더 빠르게 부서져 미세한 크기로 작아지게 하는 환경을 만든다. 중국 네이멍구(내몽골)대학교 연구팀은 농업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는 비닐 필름이 어떻게 미세플라스틱으로 전환되는지를 실험과 모델링을 통해 분석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달 '유해 물질 저널 (Journal of Hazardous Materials)'에 발표됐다. 연구에 따르면, 풍속 증가는 농업용 필름의 기계적 마모를 직접적으로 증가시키며, 강한 태양 복사는 플라스틱의 광산화(photo-oxidation)를 촉진해 분자 구조를 약화시킨다. 이 두 요인이 결합되면 플라스틱은 훨씬 더 쉽게 잘게 쪼개져 미세플라스틱으로 전환된다. 연구팀은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고온·강풍 조건이 빈번해질수록 농경지 자체가 미세플라스틱의 '발생원(source)'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미세플라스틱 문제가 더 이상 해양이나 도시 폐기물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식량 생산 체계 내부로 깊숙이 침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후위기는 미세플라스틱의 이동도 가속한다 기후변화는 미세플라스틱의 생성뿐 아니라 이동과 확산 경로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강우 강도 증가와 빈번한 홍수는 육상과 하천에 쌓여 있던 플라스틱 입자를 단기간에 대량으로 해양으로 쓸어 보낸다. 여기에 북극 해빙까지 더해지면서, 과거에는 얼음 속에 갇혀 있던 미세플라스틱이 다시 해양 생태계로 방출되고 있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리뷰 논문을 지닌해 11월 '과학 프런티어 (Frontiers in Science)' 저널에 발표했다. 이 논문은 기온이 약 10℃ 상승할 경우 플라스틱의 화학적 분해 속도가 최대 두 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하면서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 미세플라스틱 순환을 가속하는 핵심 요인임을 지적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위해성분석센터 심원준 박사 연구팀은 지난달 국제학술지 '환경 오염(Environmental Pollution)'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이런 현상을 지적했다.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가 통과한 직후 실시한 조사에서 연안 부유 쓰레기 밀도가 평상시 대비 수십 배 증가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더 잦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세플라스틱은 다시 기후변화를 부추긴다 미세플라스틱은 해양의 탄소 흡수 능력을 약화시키는 '보이지 않는 방해자' 역할을 한다. 늘어난 미세플라스틱은 단순한 오염 물질을 넘어, 지구 시스템의 핵심 기능 자체를 훼손하는 것이다. 파키스탄 페샤와르대학교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최근 '유해 물질:플라스틱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미세플라스틱이 해양 탄소 흡수를 다층적으로 방해한다고 밝혔다. 연구에 따르면, 미세플라스틱은 해양의 주요 탄소 흡수 주체인 식물성 플랑크톤의 광합성 효율을 저하시킨다. 또한 이를 섭취하는 동물성 플랑크톤의 대사 활동과 성장률을 방해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심해로 운반하는 '생물학적 탄소 펌프' 기능을 약화시킨다. 이는 해양이 수행해 온 자연적 탄소 완충 기능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연구진은 미세플라스틱 표면에 형성되는 미생물 군집, 이른바 '플라스티스피어(Plastisphere, 플라스틱권(圈))'에도 주목했다. 이 미생물 군집은 단순히 플라스틱에 붙어 사는 존재가 아니라, 탄소와 질소 순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메탄과 같은 온실가스를 방출할 수 있는 잠재적 원천으로 작용한다. 또한 해수면에 떠 있는 미세플라스틱은 빛의 반사 특성, 즉 알베도(albedo)를 변화시켜 국지적인 해수 온도 상승을 유발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는 다시 플랑크톤 생태계와 해양 순환에 영향을 미치며, 기후 시스템에 간접적인 피드백을 형성한다. ◇독성의 증폭, 생태계 회복력의 붕괴 기후변화와 미세플라스틱이 결합하면 생물에게 가해지는 피해는 단순 누적이 아니라 증폭된 독성 효과로 나타난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논문애서 “수온 상승이 생물의 대사율을 높여 미세플라스틱 섭취량과 체내 축적 속도를 동시에 증가시킨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어류와 무척추동물에서 염증 반응, 성장 저해, 생식 장애가 더 강하게 나타나며, 이러한 영향은 먹이사슬을 따라 상위 포식자로 갈수록 확대된다. 이는 환경신데믹의 핵심 특징인 '복합 스트레스에 의한 회복력 붕괴'를 보여주는 사례다. 생태계는 하나의 스트레스에는 버틸 수 있지만, 여러 스트레스가 동시에 작용할 경우 급격히 취약해진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미세플라스틱 문제와 기후변화를 분리해 대응하는 기존 정책 접근으로는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플라스틱 생산 감축, 재생원료 전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반드시 통합적으로 설계돼야 하며, 농업·해양·도시 환경을 아우르는 시스템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환경포커스] 양쯔강에서만 연 5200조개 미세플라스틱 유출…“해결하려면 한·중·일 협력해야”

한반도 주변 바다가 육상과 해상을 통해 유입되는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심각하게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잇따라 발표된 국내외 연구 결과는 이 문제가 단순한 국내 연안 관리 차원을 넘어, 동북아시아 전체가 구조적으로 맞물린 해양 환경 위기를 맞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하천을 통한 대규모 육상 유입과 양식·어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해상 유입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오염의 규모와 양상이 점점 복잡해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국내 연안 부유 쓰레기, 10개 중 9개가 플라스틱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위해성분석센터 심원준 박사 연구팀은 지난달 국제학술지 '환경 오염(Environmental Pollution)'에 발표한 논문에서 국내 연안의 부유 쓰레기 평균 밀도를 ㎢당 181개로 추산했다. 연구팀은 파도와 기포의 간섭이 적은 뱃머리 쪽에서 육안과 망원경을 사용해 선박의 항로 상에서 정해진 유효 관측 폭(선박 높이에 따라 10~50m) 내에 존재하는 쓰레기를 식별하고 그 유형과 크기·색상 등을 기록했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 가운데 플라스틱 쓰레기의 비중이 92%를 차지해 해양 부유 쓰레기 문제의 실체가 사실상 플라스틱 오염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역별로는 서해의 오염 밀도가 ㎢당 251개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서해가 대규모 강 하구와 인접해 있고, 조차가 크며, 연안 양식과 항만 활동이 집중된 지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서해의 경우 해안에서는 ㎢ 당 244개가 관찰됐고, 먼바다에서도 256개나 관찰됐다. 반면 동해는 상대적으로 하천 유입이 적고 수심이 깊어 평균 밀도가 ㎢당 81개로 낮았지만, 완전히 안전한 해역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남해는 206개였다. ◇강 하구와 양식장, 유입의 두 축 플라스틱 쓰레기의 주요 유입 경로는 크게 강 하구를 통한 육상 기원과, 양식·어업 활동을 통한 해상 기원으로 나뉜다. 육상 기원의 경우 한강·금강·영산강 등 국내 주요 하천뿐 아니라, 중국 양쯔강(장강)과 같은 초대형 하천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수자원수력과학연구원 소속 연구팀이 지난달 '커뮤니케이션스, 지구와 환경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양쯔강에서만 매년 약 5200조(兆)개에 이르는 미세플라스틱 입자가 바다로 유입된다. 미세플라스틱은 크기가 5㎜보다 작은 플라스틱을 말한다. 이를 무게로 환산하면 약 9200톤에 이르는데, 단일 하천(강)임에도 전 지구적 해양 플라스틱 순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다. 이러한 미세플라스틱과 대형 플라스틱이 서해에 유입되면 해류를 타고 한반도 연안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해상 기원 오염은 남해에서 두드러진다. 국내 양식장의 약 46%가 남해 연안에 집중돼 있는데,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발포 폴리스티렌(EPS) 부표와 각종 어구가 주요 오염원으로 지목된다. 파손되거나 방치된 부표는 쉽게 잘게 부서져 중·소형 플라스틱 조각과 미세플라스틱으로 전환된다. ◇플라스틱 '작을수록 더 위험' KIOST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부유 플라스틱 가운데 크기가 2.5~20㎝ 범위의 중형 조각이 전체의 72%를 차지했다. 색상은 백색이 59%로 가장 많았으며, 이는 EPS 부표와 포장재 파편의 영향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 재질별로는 스티로폼 파편이 27%, 필름형 플라스틱이 16%를 차지했다. 중국 시안교통대학교 연구팀이 이달 초 '해양 과학 프런티어즈 (Frontiers in Marine 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동아시아 해역에서 미세플라스틱의 경우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300㎛(마이크로미터) 미만의 작은 입자들이 다량 검출됐다. 연구팀은 이러한 소형 미세플라스틱이 표면적 대비 부피 비율이 커 유해 화학물질을 흡착하기 쉽고, 생물체에 섭취될 가능성도 높아 생태계 위험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플라스틱의 분포와 밀도는 수문학적 요인과 기상 조건에 크게 좌우된다. 강우량이 많은 시기에는 하천 유량이 증가하면서 육상에 축적돼 있던 플라스틱이 한꺼번에 바다로 유입되고, 해류를 따라 더 먼 해역까지 확산된다. 실제로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가 통과한 직후 실시한 KOIST 조사에서는 연안 부유 쓰레기 밀도가 평상시 대비 수십 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러한 극한 기상 현상이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더 잦아질 경우, 해양 플라스틱 오염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생태계는 물론 사람도 피해 이들 논문에서는 플라스틱 오염이 해양 생태계 전반에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피해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플랑크톤과 조개류, 작은 물고기 등이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면 물리적 장(腸) 폐쇄, 섭식 효율 저하, 성장 및 생식 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플라스틱은 잔류성 유기오염물질(POPs)과 중금속을 흡착·운반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먹이사슬을 통해 생물 농축이 일어나 인간을 포함한 상위 포식자에게까지 독성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해양 생물이 대형 플라스틱 쓰레기에 얽히는 사고와 어구 손실 등은 어업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나아가 관광·양식업 피해까지 포함하면 경제적 손실 규모는 연간 수조 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경 넘는 문제, 책임도 넘어야 한다" 동북아 해양에서 중국의 플라스틱 쓰레기는 한반도로, 한반도 플라스틱 쓰레기는 일본 해안으로 떠내려간다는 말이 있다. 논문에서 전문가들은 한반도 주변 해역의 플라스틱 문제를 국경을 초월한 복합 환경 위기로 규정했다. 개별 국가의 수거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과학적 감시와 정책적 대응, 국제적 책임 분담이 동시에 작동해야 실질적인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 시안교통대 연구팀은 논문에서 한·중·일 3국 간 해양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사법 협력 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화학적 지문 분석과 해양 표류 모델링을 결합해 국가별 오염 기여도를 산출하고, 이를 토대로 '시장 점유율 책임(market-share liability)' 원칙을 적용해 비례적 책임을 묻는 방안을 제시했다. KIOST 연구팀도 과학적 추적과 책임 논의와 함께, 집중호우 시 강 하구 차단·수거 시설 운영, 친환경 부표 보급 확대 등 현장 중심의 예방·대응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해양 플라스틱 문제 해결은 국가 내 관리 강화로 플라스틱 쓰레기의 해양 유입을 예방하는 '씨줄'과 바다로 들어온 플라스틱 쓰레기는 국가 간 책임 공유를 통해 해결하는 '날줄'이 서로 잘 짜여야 한다는 얘기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테크] CO₂를 바닷물에 녹여 처리하는 방법은 적용 가능할까

기후위기라는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는 인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 산업 공정 전환, 에너지 효율 개선 등 다양한 해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대기 중에 쌓이고 있는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CO₂)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그래서 과학기술자들은 CO₂를 바다에 녹여 없애는 방법을 생각해왔다. 지구 표면의 약 70%를 차지하는 바다는 인류가 배출하는 CO₂의 약 4분의 1을 지금도 자연적으로 흡수하고 있는데, 이런 바다의 역할을 인위적으로 강화하자는 연구다. '해양 탄소 제거(marine carbon dioxide removal, mCDR)', 즉 바다를 활용해 CO₂를 흡수·저장하겠다는 구상이 주목을 받는 이유다. 그렇다면 바다의 CO₂ 흡수 능력을 인위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과연 현실적인 선택일까. 지난해 발표된 네 편의 주요 연구는 해양 탄소 제거의 가능성과 동시에,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위험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 거품 속에서 드러난 바다의 숨은 흡수 능력 우선 바다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은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 온 것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눈길을 끈다. 독일 헬름홀츠 해양연구소(GEOMAR) 연구팀은 지난해 11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서 파도가 부서질 때 형성되는 해수 거품이 이산화탄소를 바닷속으로 밀어 넣는 과정을 정밀 관측한 결과를 소개했다. 연구팀은 이를 '비대칭적 가스 전달(asymmetric gas transfer)' 현상으로 규정했다. 파도에 의해 생성된 미세한 거품이 수압과 함께 붕괴되면서, 이산화탄소가 대기보다 바닷속으로 더 효과적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전(全) 지구 규모로 환산한 결과, 기존 해양 탄소 흡수 추정치는 연간 약 3억~4억 탄소톤(CO₂로는 약 11억~15억 톤) 정도 과소평가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는 전체 해양 흡수량의 약 15%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연구는 바다가 이미 상당한 '자연 탄소 저장고' 역할을 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것인 동시에 해양 탄소 제거 기술에 대한 과학적 기대를 높이는 근거로 활용될 전망이다. ◇연안에서 알칼리도를 높여 탄소를 잡다 자연적 흡수 능력뿐 아니라, 인위적으로 바다의 화학적 성질을 바꿔 이산화탄소 흡수를 늘릴 수 있는지를 실험적으로 검증한 연구도 등장했다.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 연구팀은 지난달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을 통해 연구팀은 호주 타스마니아 연안에서 수행한 '해양 알칼리도 증진(ocean alkalinity enhancement, OAE)' 현장 실험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연안 인근 해역에 소량의 수산화나트륨(NaOH, 가성소다)을 지속적으로 투입해 바닷물의 알칼리도를 높였다. 그 결과, 실험 해역의 이산화탄소 분압(pCO₂, 이산화탄소만의 기압)이 최대 370마이크로기압(µatm, 1µatm=100만분의 1기압)까지 감소하는 현상이 관측됐다. pCO₂은 공기 전체 압력 중 이산화탄소가 차지하는 몫의 기압을 의미한다. 실험 해역에서 pCO₂가 370 µatm으로 낮아졌다는 것은 지구 전체 평균인 약 420 µatm에서 12% 감소한 것에 해당한다. 이는 바닷물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흡수할 수 있는 화학적 조건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이 연구의 의미는 실험실이 아닌 실제 연안 환경에서 효과를 검증했고, 하수처리시설이나 기존 연안 인프라와 결합할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연구진은 이 방식을 재생에너지와 결합할 경우, 비교적 비용 효율적인 탄소 제거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숨겨진 비용, 바닷속 산소 고갈의 위험 그러나 해양 탄소 제거가 언제나 '친환경적'인 것은 아니다. 독일 헬름홀츠 해양연구소 연구팀은 지난해 6월 '환경 연구 회보(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해양 탄소 제거가 해양 산소 농도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철분 살포를 통해 플랑크톤 생장을 촉진하거나, 대규모 해조류를 재배해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히는 이른바 '생물학적 해양 탄소 제거' 방식에 주목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이러한 방식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효과보다 유기물 분해 과정에서 소비되는 산소량이 훨씬 더 클 수 있으며, 그 손실 규모는 온난화 완화로 얻을 수 있는 산소 회복 효과의 4배에서 최대 40배에 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해양 저산소화, 이른바 '데드 존(dead zone)'을 확대해 어류와 저서생물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을 시사한다. 반면, 알칼리도 증진과 같은 지화학적 방식은 산소 소모가 거의 없거나, 장기적으로는 기후 완화를 통해 산소 감소를 완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CO₂ 1톤을 제거하기 위해 1톤 이상의 NaOH가 필요하고, 이를 대규모로 적용할 경우에는 화학물질 생산과 에너지 소비, 해양 생태계 교란 문제가 동시에 제기될 수 있다. 더욱이 NaOH는 강한 부식성·독성 물질이어서 연안 정체 수역에서 투입될 경우 일종의 해양오염이 될 수밖에 없고, 국지적인 생물 폐사 가능성도 있다. ◇알칼리 물질 투입으로 해양산성화 문제 해결하긴 어려워 일부에서는 해양 알칼리도 증진이 해양산성화 피해를 줄이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해양산성화는 공기 중의 CO₂가 바닷물에 녹아들면서 발생하고, 그 결과 pH 값이 낮아진다. 미국 하와이대 마노아 캠퍼스와 독일 헬름홀츠 해양연구소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진은 지난달 말 '해양과학 프런티어(Frontiers in Marine Science)'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해양 알칼리도 증진으로 해수의 평균 pH 값을 높일 수는 있지만, 해양 산성화가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근본적으로 상쇄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알칼리 물질 투입으로 인해 국지적으로 pH 변동성이 커질 경우, 플랑크톤과 저서생물 등 해양 생물이 오히려 추가적인 생리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산성화는 단순한 pH 저하가 아니라 이산화탄소 분압 증가와 탄산계 화학 구조 변화, 생물 대사 교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현상인데, 알칼리도 증진은 이 가운데 일부 화학적 지표만 개선하는 데 그친다는 것이다. 논문은 이러한 이유로 알칼리도 증진을 해양 산성화 대응과 탄소 제거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이중 해법'으로 간주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과도한 기대라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해양 알칼리도 증진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엄격한 생태계 모니터링과 제한적 규모에서만 보조적 수단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근본적인 해법은 될 수 없을 듯 앞에서 살펴본 네 편의 논문을 종합하면, 해양 탄소 제거는 분명 기후위기 대응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알칼리도 증진과 같은 일부 지화학적 접근은 과학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입증되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동시에 한계도 분명하다. 첫째, 생물학적 방식은 해양 생태계의 핵심인 산소를 고갈시킬 위험이 크며, 이는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환경 위기를 초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지화학적 방식 역시 알칼리 물질의 생산·운송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와 비용이 들며, 화석연료 기반일 경우 오히려 순배출을 늘릴 가능성도 있다. 셋째, 무엇보다 바다는 무한한 실험장이 아니며, 대규모 개입의 장기적 영향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결론적으로, 인류가 CO₂를 바다에 녹여 처리하는 방식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해양 탄소 제거는 어디까지나 배출 감축을 전제로 한 보조적 수단이어야 하며, 화석연료 사용을 지속한 채 바다에 부담을 전가하는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후위기 대응의 중심은 여전히 '덜 배출하는 사회로의 전환'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이들 연구는 오히려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비 오는 날 승용차 이용 늘면 온실가스 배출도 덩달아 늘어난다

기후 변화로 인해 국지성 호우와 집중 강우가 일상화되는 가운데 비가 다시 온실가스 배출을 부추길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가 오면 전체적으로 시민들의 외출이 줄어들지만, 대중교통 대신 승용차를 선택하는 비율이 일정 수준보다 높아진다면 오히려 도시 전체의 탄소 배출 효율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 오는 날 시민들의 이동 방식이 도시의 온실가스 배출 구조를 흔드는 셈이다. 부산대 도시공학과 황진욱 교수팀이 최근 국제학술지 '종합 환경 과학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같은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연구팀은 2024년 한 해 동안 부산광역시의 대표적인 도심 지역인 부산진구와 해운대구를 대상으로, 강수량 변화가 교통수단별 이용량과 온실가스 배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밀 분석했다. 이 연구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의 장진혁 연구원 등도 참여했다. ◇비가 오면 통행량은 줄지만, 1인당 탄소 배출은 증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강수량이 늘어날수록 도시 전체의 통행량은 뚜렷이 감소했다. 비 오는 날에는 외출과 이동 자체를 줄이는 시민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이는 교통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긍정적인 효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교통수단별 '날씨 민감도'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강수량이 1% 증가할 때, 버스 이용은 평균 3.4%, 지하철 이용은 2.7% 감소한 반면, 승용차 이용은 1.3% 감소하는 데 그쳤다. 즉, 비가 오면 대중교통 이용은 크게 위축되지만, 승용차 이용은 상대적으로 잘 줄지 않는 구조가 확인된 것이다. 이 차이는 온실가스 배출 측면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연구에 따르면, 한 사람이 1㎞를 이동할 때의 탄소 배출강도(1PKM)는 승용차 이용시 132.80g이었다. 이는 버스 이용시 30.69g, 지하철 이용시 31.38g보다 4배 이상 높았다. 연구팀이 시뮬레이션한 결과, 비로 인해 줄어든 대중교통 이용자 가운데 약 10~12%만 승용차로 이동 수단을 바꿀 경우 전체 통행량 감소로 얻은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완전히 상쇄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총 배출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탄소 배출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비가 오는 날 대중교통 이용자가 줄고 승용차 비중이 높아질수록, 도시 교통 시스템의 평균 탄소 효율은 빠르게 악화되는 셈이다. 승용차를 이용할 때 1인당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이 버스나 지하철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탓이다. ◇“집에서 정류장까지"의 불편함이 만든 선택 비 오는 날 시민들이 승용차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도로 혼잡 그 자체가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전 단계에서의 불편함이다. 집에서 정류장이나 역까지 이동하는 과정, 그리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비에 노출되는 경험, 젖은 우산을 들고 승차하는 불편 등이 대중교통 이용을 꺼리게 만든다. 승용차는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비를 거의 맞지 않는 '도어 투 도어(Door-to-door)' 이동이 가능하지만, 대중교통은 접근 단계와 대기 단계에서 날씨 영향을 직접 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정류장에 비 가림 시설이 부족하거나, 환승 동선이 길고 비에 노출돼 있을수록 이러한 기피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비 오는 날 도로가 더 막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 역시 단순히 차량 수 증가 때문만은 아니다. 빗길에서는 시야가 제한되고, 노면 마찰이 줄면 운전자들이 미끄러짐 사고 위험을 피하기 위한 감속 운전이 반복된다. 이로 인해 차량 주행 속도가 낮아지고, 교통 흐름의 효율이 떨어진다. 결국 차량이 같은 거리를 이동하더라도 더 많은 연료가 소모되면서 온실가스 배출은 늘어난다. ◇'기후 적응형 교통 체계' 없이는 탄소 중립도 흔들린다 이번 연구는 날씨 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행동 변화가 교통 부문의 탄소 배출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가 단순한 교통 이용 변화가 아니라, 기후변화 시대의 새로운 정책 과제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비가 잦아지는 미래 기후 조건에서는, 대중교통 이용 감소를 전제로 한 기존의 탄소 감축 전략이 오히려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후 적응형 교통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버스 정류장과 보행 접근로에 비 가림막과 스마트 쉘터를 확충해, 집에서 정류장까지 이동하는 과정의 불편함을 최소화해야 한다. 단순한 시설 개선이지만, 대중교통 선택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또한 비나 폭우로 인한 지연 상황을 실시간으로 안내하는 정보 제공 체계를 강화해,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불확실한 수단'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측 가능성과 신뢰도는 악천후 상황에서 더욱 중요한 요소다. 중장기적으로는 수요응답형 교통수단(DRT)이나 소규모 셔틀, 공유 모빌리티를 대중교통의 보완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 승용차로의 급격한 쏠림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DRT는 이용 수요에 따라 노선·정차지점·운행시간이 유연하게 바뀌는 교통 서비스, '필요할 때 호출하면 움직이는 대중교통'을 말한다. 아울러 주거지와 생활 시설, 교통 거점 간 거리를 줄이는 콤팩트 시티 구조는 날씨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저탄소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연구팀은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교통 시스템은, 비가 오는 날마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구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서 “기후 적응과 탄소 감축을 동시에 고려한 교통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온난화에도 한파는 여전히 기승…북극진동 ‘심술’ 탓

해가 갈수록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겨울철 한반도와 북미 등 중위도 지역은 기록적인 한파가 닥친다는 뉴스도 반복되고 있다. '지구가 뜨거워지는데 왜 더 추워지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대중적 의문을 넘어 기후과학 분야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최근 잇따라 발표된 학술 연구들은 이 현상이 단순한 우연이나 일시적 변동이 아니라, 지구 온난화로 촉발된 북극 환경 변화와 대기 순환 구조의 왜곡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임을 보여준다. 최신 연구 성과를 토대로 이른바 '온난화의 역설'이 발생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 영향이 한반도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무너진 공기의 장벽, 제트기류와 극소용돌이의 사행 겨울철 중위도 지역의 한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트기류(jet stream)와 극소용돌이(polar vortex)라는 두 가지 개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통상적으로 북극의 찬 공기는 북반구 중위도를 둘러싸며 강하게 흐르는 서풍대 제트기류에 갇혀 있어 남쪽으로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북극의 기온이 중위도보다 훨씬 빠르게 상승하는 '북극 증폭(Arctic amplification)'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 공기의 장벽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교 지구과학과 연구팀이 지난 6월 'AGU 어드밴스(AGU Advance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제트기류의 굴곡 정도, 즉 사행(蛇行, waviness)은 겨울철 기온 변동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연구팀은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해 1901년부터 2023년까지 120년이 넘는 제트기류 변화를 분석한 결과, 제트기류가 직선적인 흐름을 잃고 뱀처럼 구불구불해질수록 북극의 한기가 중위도로 깊숙이 침투한다는 사실을 정량적으로 확인했다. 특히 20세기 중반 미국 동남부에서 관측된 이상 저온 현상인 '워밍 홀(warming hole)'의 약 3분의 2가 제트기류 사행 증가라는 역학적 요인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는 평균 기온이 상승하는 상황에서도 대기 순환의 변화에 따라 특정 지역에서는 오히려 혹독한 한파가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제트기류가 느려지는 것은 북극진동 탓 제트기류가 느려지고 사행하는 배경에는 북극진동이 있다. 북극진동은 북극과 중위도 사이의 기압 차이가 주기적으로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는 현상을 말한다. 북극과 중위도 지방의 기압 차이가 줄었을 때는 북극진동 지수가 음수(-)로, 기압 차이가 벌어졌을 때는 북극진동 지수가 양수(+)로 표시된다. 북극의 기온이 상승하면 북극 고기압이 약해지고, 북극과 중위도 지방의 기압 차이가 줄어든다. 온도 차이 혹은 기압 차이가 줄어들면 북극 주변을 도는 제트기류가 약해진다. 북극이 온난화됐다 해도 그래도 북극이다. 기압이 변화하는 북극진동이 생기고, 제트기류가 출렁일 때 북극의 한기가 남하한다. 영하 40~50℃의 찬 공기가 허물어진 담벼락을 넘어 중위도 지방 상공으로 밀려 내려오는 것이다. 제트기류가 북반구의 어느 지역에서 남쪽으로 처지느냐에 따라 유럽이나 동아시아, 북미 등에서 번갈아 가며 혹한이 나타난다. 반대로 제트기류가 처지지 않은 구역에 들면 따뜻한 겨울이 나타날 수 있다. ◇고무줄처럼 늘어난 극소용돌이, 한반도를 덮치다 겨울이면 한반도를 강타하는 한파 역시 극소용돌이의 형태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경대학교 김백민 교수와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제임스 오버랜드(James Overland) 박사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지난 9월 '플로스 기후(PLOS Climate)'에 발표한 논문에서, 2025년 초 북미와 동아시아를 동시에 강타한 한파의 주요 원인으로 '늘어난 극소용돌이(stretched polar vortex)' 패턴을 지목했다. 연구에 따르면, 성층권 하부에 위치한 극소용돌이는 통상 북극을 중심으로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며 회전하지만, 이 시기에는 북미에서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타원형으로 길게 늘어나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관측됐다. 마치 고무줄이 한쪽으로 잡아당겨진 듯 늘어난 소용돌이의 끝자락이 한반도 상공에 걸리면서, 북극의 찬 공기가 직접적으로 남하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월 초 서울은 6일 연속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며, 39년 만에 가장 긴 한파 기록을 세웠다.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성층권(약 100mb)과 대류권 중층(약 500mb)의 기압 배치가 마치 하나의 덩어리처럼 연동되는 '순압 구조(barotropic structure)'가 형성되었고, 이로 인해 북극 한기가 지표면까지 빠르고 강력하게 전달됐다고 분석했다. mb(밀리바)는 공기의 무게를 나타내는 기압 단위이며, 숫자가 작을수록 고도가 높음을 의미한다. 500mb는 지상에서 약 5~6km 상공을, 100mb는 지상에서 약 15~16km 상공을 가리킨다. 순압 구조란 '위아래 대기층이 따로 움직이지 않고 한 덩어리처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상태'를 말한다. 이로 인해 위쪽 대기(성층권)에서 형성된 북극의 차가운 공기 흐름이 중간층과 지표까지 막힘 없이 한 번에 전달됐다는 것이다. ◇ 해수면 상승이 내륙 한파를 부르는 새로운 메커니즘 해수면 상승이 해안 침수나 염해 문제를 넘어, 중위도 내륙의 겨울 기후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도 발표됐다. 중국 베이징대학교 연구팀은 지난 9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한 논문에서, 지구 평균 해수면 상승(GMSL rise)이 동아시아의 극한 한파를 강화하는 메커니즘을 수치 실험을 통해 규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해수면이 상승할수록 북태평양 해역의 온난화가 심화되고, 이로 인해 대기 중 로스비 파동(Rossby waves)이 더욱 활성화된다. 이러한 파동은 유라시아 대륙 상공에 고기압이 장기간 정체되는 '블로킹(blocking)' 현상을 유도하며, 그 결과 서풍 제트기류의 흐름이 약화된다. 제트기류가 느슨해지면 북극의 찬 공기가 동아시아로 내려오는 통로가 열리게 된다. 특히 연구팀은 해수면 상승 폭이 0.625m를 넘는 시점부터 동아시아 지역의 극한 한파 빈도와 강도가 급격히 증가하는 임계점을 제시하며, 해안 국가뿐 아니라 내륙 국가들 역시 해수면 상승에 따른 기상 재해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경고했다. ◇ 과거 570만 년의 기록이 말하는 제트기류의 경고 제트기류 변화가 초래할 미래의 모습은 과거 지구의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중국과학원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연구에서 중국 북부 지역의 퇴적물 코어를 분석해 지난 570만 년 동안의 수문·기후 변화를 복원했다. 그 결과 플라이오세(Pliocene, 약 533만년 전~약 258만년 전까지 275만년 동안 지속된 지질 시대)에 속하는 약 300만 년 전 북극이 현재보다 훨씬 따뜻했던 시기에는 제트기류의 사행이 지금보다 훨씬 심했음이 드러났다. 제트기류가 크게 요동치면서 중위도 지역에서는 극심한 가뭄과 홍수, 그리고 예측하기 어려운 한파가 훨씬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는 향후 온난화가 심화되고 북극 증폭이 강화될 경우, 제트기류의 불안정성이 더욱 커져 한반도를 포함한 중위도 지역에서 극단적 기상 이변이 일상화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로 해석된다. ◇ 한반도의 특수성: 서울의 기온 변동성 심화 한반도는 이러한 대기 역학 변화에 특히 민감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수십 년간 한반도의 겨울철 평균 기온은 전반적으로 상승해 왔지만, 1월 최저기온의 평균값은 50년 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거나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더 낮아지는 경향이 관측된다. 이는 겨울 전체로 보면 따뜻해졌지만, 북극발 한파가 한 번 유입될 때의 강도는 과거보다 더욱 매서워졌다는 의미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윤진호 교수팀 역시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따뜻한 북극, 추운 대륙(Warm Arctic–Cold Continent, WACC)' 패턴이 더욱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형태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북극해 해빙이 줄어들면서 방출된 열이 대기 순환을 교란하고, 그 영향이 수주 후 한반도의 한파로 이어지는 '기후 원격상관(climate teleconnection)' 과정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윤 교수팀 논문은 지난해 3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자매지인 '기후와 대기과학(npj Climate and Atmospheric Science)'에 실렸다. 최근 경북대학교 해양과학연구소 박종진 교수팀은 '원격 탐사(Remote Sensing)'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북극진동이 한파를 초래하는 또 다른 메커니즘을 소개했다. 북극진동이 만든 겨울철 대기 변동이 동해 표층 수온에 '기억'으로 저장되고, 그 기억이 한반도 겨울 한파를 증폭·지속시키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는 단선적이지 않다 지구 온난화 속에서도 한파가 잦아지는 이유는, 지구 시스템이 축적된 에너지를 불균형하게 해소하는 과정에서 대기 순환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찬 공기를 가두던 제트기류라는 '장벽'이 약화되고, 해수면 상승은 공기의 흐름을 막는 블로킹 현상을 강화하며, 늘어난 극소용돌이는 마치 표적을 조준하듯 한반도에 한기를 쏟아붓는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성미경 박사와 연세대학교 안순일 교수 연구팀이 2023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연구 역시 대서양과 태평양의 해양 전선대에 축적된 열이 대기 파동 반응을 유발해 동아시아 한파를 조절하는 일종의 '온도 조절기'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한파가 단순한 일시적 이상 기상이 아니라, 전 지구적 해양·대기 변화가 맞물린 결과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기후 변화는 기온이 일정하게 상승하는 직선적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빠르게 회전하던 팽이가 멈추기 직전 크게 비틀거리듯, 북극 온난화가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대기 순환이라는 팽이 역시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 비틀거림이 우리에게는 극한 한파라는 형태로 체감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평균 기온 상승에만 초점을 맞춘 대응이 아니라, 변동성의 심화와 예측 불가능한 극한 기상에 대비한 보다 정교한 사회·기반시설 차원의 대응 전략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신년 인터뷰] 홍종호 교수 “탄소세 왜 유럽에 내나…국내서 부담하고 돈 돌게 만들어야”

“우리나라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대응에 너무 수세적이다. EU에 인증서 비용을 내느니 국내에서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부담하는 게 낫다. 그 돈이 국내에 돌 수 있어서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교수(국회의장 직속 기후위기비상자문위원회 위원장)는 지난달 23일 에너지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CBAM 대응 전략에 대해 이같은 의견을 밝혔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새해를 앞두고 우원식 국회의장 인터뷰와 함께 우 의장의 기후위기비상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CBAM은 일종의 탄소세이다. EU가 정한 6개 품목(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에 대해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에 따라 EU의 배출권거래제(EU ETS) 가격만큼 비용을 지출해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홍 교수는 올해 본격 도입되는 CBAM에 앞서 배출권 가격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럽은 CBAM을 통해 자국의 배출권 가격과 해외 국가들의 배출권 가격을 조정하려 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가 유럽 수준에 맞는 배출권 가격을 유지하면 EU에 세금을 내지 않고도 CBAM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홍 교수는 최근 기후위기가 전 세계적인 식량 안보 문제를 촉발하며 물리적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지난 10월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부문을 떼어내 환경부와 통합한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에 대해서는 “에너지 정책이 너무 오랫동안 산업 정책에 봉사하는 구조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행정부에 충격이 필요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이재명 정부가 임기 동안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2035년 NDC 달성 역시 어렵다는 분석이다. 홍 교수는 향후 5년 안에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현 10% 수준에서 20%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역별 요금 차등제와 실시간 요금제를 도입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전기요금이 결정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원전에 대해서는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깝다고 진단하며 재생에너지가 현실적으로 가장 빠르게 확대할 수 있는 에너지원임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재생에너지 설치 여건이 독일이나 영국 등 유럽 대부분 국가와 비교하면 훨씬 좋다"며 “재생에너지는 기후 때문에 가는 게 아니라, 경제성 때문에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홍 교수와의 일문일답. -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하다고 보는가. ▲ 자연과학자들과 소통해 보면 대체로 기후변화와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다. 산업혁명 대비 1.5℃(도) 한도 목표는 달성 불가능에 가깝다는 인식도 많고 남북구 빙하 융해, 해수면 상승, 바다 온도 상승 등이 결합하며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진단이 많다. 사회과학자의 시각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이 어떻게 개입할 것이냐다. 전 인류가 공통 목표를 지향하며 함께 가야 하는 문제다. 기후위기 피해가 워낙 심각한 만큼 탄소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지금보다 더 강하게 추진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있다. 지금도 배출량 1위는 중국이지만 중국의 탄소 배출 증가 속도는 분명히 둔화됐다. - 기후위기가 우리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있나. ▲ 10년 전과 비교하면 물리적 피해가 훨씬 커졌다. 경제·금융 분야에서도 기후발 인플레이션, 농산물 가격 급등이 이미 현실이 됐다. 이는 전 지구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더 나아가 식량 공급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하는 국가들도 등장하고 있다. 배출된 탄소만으로도 폭우·폭염·가뭄·산불 같은 피해가 눈에 보이게 나타나고 있고,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앞으로는 이런 현상의 빈도와 강도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미국처럼 영향력이 큰 국가가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고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 전 세계에 주는 신호는 매우 부정적이다. 기후 피해는 이미 현재진행형인 만큼 한국은 그 안에서 어떤 경로를 찾을지 매우 어려운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 정도 지났다. 지금까지 기후·에너지·환경 정책을 평가해보면 어떤가. ▲ 에너지 정책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떼어내 환경부에 붙여 기후에너지환경부를 만든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과거에는 동력자원부가 상공부와 합쳐지면서 에너지 정책이 산업 정책의 일부가 됐다. 당시에는 안정적이고 최대한 싼 화석연료를 공급해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였고 그 시점에서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기후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화석연료 사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럼에도 산업부 안에 있던 에너지 정책은 오랫동안 산업 정책에 봉사하는 관성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를 깨기 위해서는 행정부에 충격이 필요했다고 본다. 산업부와 환경부는 오랫동안 물과 기름 같은 관계였다. 화학적으로 결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만 이제 에너지 정책은 규제 정책과 함께 가야 한다. 중요한 건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인식 전환이다. 탄소를 배출하며 에너지를 생산·소비하는 구조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빨리 받아들이고 그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가 2018년 대비 53~61% 감축으로 제시됐다. ▲ 53~61%처럼 범위를 제시하는 나라도 없지는 않지만 폭이 상당히 넓다. 50%를 넘어서면 1%포인트를 추가로 줄이는 데 드는 비용이 급격히 증가하는데 8%포인트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양쪽(환경계와 산업계) 의견을 모두 담으려다 보니 이렇게 제시된 것 같지만 국민과 산업계에 주는 메시지는 다소 모호하다. 사실 핵심은 2035년 53%가 아니라 2030년 40%다. 2030년 40% 감축은 현재 상황에서는 매우 도전적인 목표다. 지난 정부에서 충분한 탄력을 주지 못했고 이제 남은 시간이 5년밖에 없다. 2030년에 40%를 달성하면 2035년 53%는 갈 수 있다. 하지만 2030년에 실패하면 2030~2035년 사이에 훨씬 더 큰 추가 노력이 필요해진다. 결국 이 정부가 남은 5년 동안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정부에 부담을 넘기게 된다. - AI 시대에 원전하고 소형모듈원전(SMR)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해서 풀 수는 없는 문제인가. ▲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앞으로 전력 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1~2년 전만 해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상상 이상으로 폭증할 거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과다 추정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 전력 생산의 약 60%를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AI 산업 확대는 전력 소비 증가, 즉 탄소 배출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 전환과 녹색 전환이 충돌하지 않으려면 전력 생산을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 SMR은 결국 시장에서 성패가 갈릴 것이다.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러 실질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규모를 줄이면 규모의 경제가 약화되는데 그 상태에서 발전 단가 경쟁력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대형 원전도 마찬가지다. 현재 26기에서 신한울 3·4호기까지 가면 30기다. 국토 면적 대비 원전 설비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에서 원전을 더 짓는 게 맞는 선택인지 고민해야 한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 역시 답을 찾지 못한 상태다. 지금은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를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비중이 너무 낮다는 현실을 먼저 봐야 한다. 이를 최대한 빨리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원전과 화석연료의 위치가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다. -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 재생에너지 여건이 좋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 대중 강의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어디에 설치하느냐', '한국은 바람도 없고 햇볕도 약하다'는 이야기다. 재생에너지가 중금속이나 소음 문제를 일으킨다는 주장도 많은데 상당수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다. 유럽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이런 주장이 나오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국이 미국이나 중동처럼 태양광 여건이 뛰어난 나라는 아니다. 하지만 독일이나 영국과 비교하면 훨씬 낫다. 이런 논리라면 한국은 애초에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나라였어야 한다. 자원도 없고 에너지를 대부분 수입했지만 결국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인식 변화다. 5년 전보다 시민들의 인식은 분명히 좋아졌다. 재생에너지 관련 가짜뉴스가 문제라는 공감대도 생기고 있다. 관건은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많이 늘리느냐다. 영농형 태양광은 농민 소득을 늘리고 풍력도 실제로 해보면 우려만큼 부작용이 크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지금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약 10% 수준인데 3~5년 안에 20%는 가야 한다. 25%까지 가도 일본 수준이다. 결코 앞선 수치가 아니다. - 재생에너지공사 등을 통해 공기업 주도로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 그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는 분산형 에너지이고 시장에서 수많은 기업이 참여해야 한다. 기술 개발은 대기업이 설치와 운영은 중소기업이 맡는 구조다. 태양광 사업자 10만 시대라고 하는데 대부분 중소사업자다. 공사를 만드는 방식보다는 시장이 잘 작동하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 - 송전선로 건설이 주민들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주민수용성을 높이려고 투자를 늘리면 전기요금이 올라가는 문제도 있지 않나. ▲ 송전망 부족은 오래전부터 지적돼 온 문제다. 발전원이 무엇이든 한국 송전망이 부족하다는 건 사실이다. 주민 반대를 이유로 책임을 미루는 방식으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지방에서 생산한 전기를 거의 전부 수도권으로 보내는 구조였다. 충남 당진에 가면 석탄발전소 10기가 있는데 거기서 만든 전기는 당진 시민들에게 거의 쓰이지 않고 수도권으로 간다. 당진 시민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부당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지역별 차등요금제나 실시간 요금제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 송전거리가 길수록 손실이 커지는 수도권이 더 비싼 전기요금을 내는 게 형평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합리적이다. 수도권에 데이터센터, 반도체 클러스터를 계속 짓고 전기는 남쪽에서 다 끌어오는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하냐는 거다. 이제는 전기 있는 곳으로 전기를 많이 쓰는 산업이 가야 할 시대다. 재생에너지가 많은 서남권, 동남권으로 기업들이 내려가면 송전선 부담도 줄고 사회적 비용도 크게 줄어든다 - 한전 적자 상황이 심각하다.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 보는가. ▲ 원가가 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구조 탓이다. 전기사업법에는 원가주의가 명시돼 있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았다. 산업용 전기를 너무 싸게 공급해 왔고 최근엔 산업용 요금을 올리다 보니 가정용보다 비싸지는 역전 현상까지 생겼다. 정치권은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을 굉장히 두려워한다. 통신요금에는 더 많은 돈을 쓰면서도 전기요금 인상에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인색하다. 한전 적자를 결정적으로 키운 건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다.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는데도 전기요금을 최대한 동결하려 했고 그 결과 국민은 에너지 위기를 체감하지 못했다. 대신 한전의 부담만 커졌다. 이제는 전기요금 정상화와 전력산업 구조 정상화를 같이 논의해야 한다. 이걸 미루면 탈탄소 시대, 재생에너지 전환 시대를 제대로 버텨내기 어렵다. - 올해 유럽에서 CBAM이 본격 시행에 들어가는데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대비해야 겠는가. ▲ CBAM은 국가가 국가를 상대로 제품 생산 과정에서 나온 탄소를 이유로 제재하는 첫 사례다. 예전 같았으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가 난무했을 텐데 대부분 나라가 그러지 못한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EU는 탄소 비용을 내부에서 부담하면서 생산하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다른 나라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그건 탄소 누출이 되고 기후 대응이라는 대의에 어긋난다. 문제는 한국이 너무 수세적이라는 거다. EU에 인증서 비용을 내느니 국내에서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을 늘려서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게 낫다. 그 돈이 국내에서 돌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제는 고통만 주는 게 아니다. 제대로 설계된 규제는 혁신을 만든다. 탈탄소 공정, 에너지 효율 기술 개발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산업계가 어렵다는 건 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정부는 정책·금융·재정적으로 적극 지원해야 하고 산업계도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 탄소중립 실천을 위해 일반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는가. ▲ 우리는 여전히 성장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회에 살고 있다. 짧은 기간에 성장해 왔고 그 경험을 한 세대가 아직 사회의 중심에 있다. 이걸 무시하고 환경 의식이 낮다고 비난해 봐야 답이 안 나온다. 기후 문제를 환경 문제가 아니라 경제 문제로 봐야 한다. 기후 문제는 먹거리 문제고 일자리 문제고 물가 문제고 생존 문제다. 이 인식이 퍼지면 공감대는 훨씬 커진다. 기업들도 해외에 나가면서 공급망 실사, 스코프 1·2·3 같은 규범의 압박을 체험하고 있다. 결국 남은 건 정치권과 언론이다.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처럼 합의 가능한 모델을 키워야 하고 언론은 가짜뉴스를 줄이고 세계 흐름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기후 때문에 가는 게 아니라 경제성 때문에 가는 거다. 제일 싸고 제일 빠르다. 이걸 인정하면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의 소모적 갈등도 줄어든다. 결국 해답은 재생에너지를 키우는 데 있다. 대담=강찬수 기후환경전문기자 정리=이원희 기자 □ 홍종호 서울대 교수 프로필 ◇약력 △1963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시간주립대 경제학 석사 △코넬대 경제학 박사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교수 (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원장 △기획재정부 재정정책자문회의 위원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 △아시아환경자원경제학회(AAERE) 회장 △한국재정학회 회장 △한국경제학회 부회장 △한국환경경제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지속가능발전연구소(ISD) 소장 △세계은행(World Bank) 컨설턴트 △아시아개발은행(ADB) 컨설턴트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고문 (현) △국회의장 직속 기후위기비상자문위원회 위원장 (현)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신년호]탄소로 돈 버는 시대: 2026년 대한민국 ‘탄소 자본주의’ 원년

21세기의 4분의 1을 뒤로 하고 새로 시작하는 2026년. 세계 경제는 '탄소'라는 말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탄소가 새로운 '화폐'로 등장하고 있다. 한때 무거운 짐이자 골칫거리로만 여겨지던 온실가스는 이제 기업의 손익계산서에 직접 반영되는 비용이자 동시에 핵심 자산이 됐다. 온실가스를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하고 줄이느냐가 기업가치와 생존을 가르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배출권 거래제(ETS)의 본격적인 강화, 기후테크(기후관련 기술)의 산업화, 자발적 탄소시장의 신뢰 회복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탄소를 줄이면 돈이 된다'는 공식이 현실이 되고 있다. 2026년은 이 거대한 탄소 경제가 제도·산업·금융 전반에서 완성형으로 진입하는 이른바 대한민국 '탄소 자본주의'의 원년이 될 전망이다. ◇ETS의 룰이 바뀐다: 탄소, 가장 직접적인 '자산'이 되다 탄소가 가장 명확하게 '돈'으로 바뀌는 무대는 역시 ETS다. 한국은 2026년부터 제4차 배출권 거래제 계획기간(2026~2030년)에 진입하면서 지난 20년 동안 운영했던 제도의 골격 자체를 바꾼다. 한국은 2015년부터 ETS를 시행하고 있는데, 현재 철강·시멘트·정유·발전·화학 등 700여 개 기업이 대상이다. 그동안 한국 배출권시장은 과잉 할당 문제로 톤당 1만 원 내외의 '글로벌 최저가' 시장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었다. 이는 유럽연합(EU)의 톤당 약 10만 원을 넘는 가격에 비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기업이 온실가스를 줄이도록 하는 실질적 감축 유인으로 작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제4차 ETS 계획기간 동안 배출허용총량을 이전보다 22.5% 줄인 23억6299만 톤으로 설정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 관계자는 “과도한 총량 설정과 무상할당 관행이 내재적 공급 과잉을 초래했다"면서 “공짜 배출권이 남아도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배출권을 돈 내고 구매해야 하는 유상할당의 대폭 확대다.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은 2026년 15%에서 2030년 50%까지 단계 확대되고, 비발전 부문 역시 10%에서 15%로 상향된다.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 누출 업종은 무상할당이 유지되지만, 판단 기준이 기존의 '비용 발생도'에서 '탄소집약도' 중심으로 정교화됐다. 새로운 탄소 감축 기술을 적용했을 때의 탄소집약도(단위 제품당 실제 배출량)를 무상할당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탄소누출 업종이란 기후 규제가 강화될 경우 생산비 상승으로 공장이 규제가 느슨한 해외로 이전해 버리는 산업을 말한다. 가격 신호도 급변하고 있다. 에너지·환경 컨설팅기업인 나무이엔알(NAMU EnR)은 국내 배출권 가격이 2026년 말에는 2만8680원, 2030년에는 5만3699원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 역시 “톤당 4만~5만 원은 돼야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감축 기술에 투자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오는 11월 24일부터 배출권의 증권사 위탁거래가 허용되면서 시장의 성격도 급변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할당 기업뿐 아니라 은행과 보험사,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 금융기관이 직접 배출권 시장에 참여하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시장 활성화 수준을 고려해 배출권 선물시장 도입도 추진 중이다. 한편, 유상할당 수익금은 전액 기업 탈탄소 전환 지원 재원으로 투입된다. 정부는 이 재원을 활용해 탄소차액계약제도(CCfD) 도입도 본격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일정 기간 고정 탄소 가격을 보장하는 이 제도는 미래 탄소 가격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탄소산업에 대한 투자를 촉진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 기후테크, 탄소를 줄여 '매출'로 바꾸는 산업 탄소 감축이 비용이 아니라 신규 매출로 전환되는 중심에는 기후테크 산업이 있다. 탄소 포집 이용 및 저장(CCUS), 수소, 에너지저장장치(ESS), 인공지능(AI) 에너지관리, 저탄소 소재는 이제 명백한 '차세대 성장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미국·중국·유럽을 중심으로 100개 이상의 기후테크 유니콘 기업이 탄생, 기술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실리콘밸리의 딥테크 생태계를 기반으로 핵융합, 에너지 플랫폼 등 전 분야에서 47개의 유니콘을 배출했다. 중국은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과 거대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전기차·배터리 분야에서 유니콘의 70%를 차지하는 등 35개의 유니콘을 키워냈다. 미국 보스턴메탈의 경우 전기를 이용한 무탄소 제철 공정을 개발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브림스톤, 아일랜드의 에코셈은 석회석 대신 규산염을 활용해 공정에서 CO₂가 배출되는 것을 막는 시멘트를 상용화하고 있다. 캐나다 카본큐어는 콘크리트에 CO₂를 주입해 강도는 높이고 탄소는 영구 저장하는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 저탄소 공정을 선점한 기업은 배출권 비용을 절감하면서 '그린 프리미엄' 가격까지 확보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안토라에너지는 재생에너지를 고체 탄소 열배터리로 저장해 중공업 열원으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스웨덴의 하트 에어로스페이스는 순수 전기 기반으로 최대 200㎞ 비행이 가능한 하이브리드 항공기를 개발 중이다. 국내에서도 경기도가 2030년까지 기후테크 유니콘 3개사 육성을 목표로 클러스터·펀드·센터 3대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일부 국내 스타트업들도 글로벌 기술력을 입증하고 있다. 고려대 강용태 교수팀은 압축기 없는 냉각 기술로 냉장·냉방 전력 사용량을 최대 65% 감축하는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구현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 8월 한 보고서를 통해 “빌 게이츠 등 글로벌 벤처펀드 기관들이 기후테크 육성을 통한 글로벌 탄소 중립의 미래지도를 그리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관련 스타트업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테크는 향후 우리 산업구조 전환과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전략적 투자 분야라는 것이다. ◇ 자발적 탄소시장: '감축을 팔아 돈을 벌다'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ETS 밖에서도 '감축 실적을 현금화하는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기업과 개인이 자발적으로 감축한 성과를 탄소 크레딧(배출권)으로 발행해 거래하는 자발적 탄소시장(VCM)이다. 그동안 VCM은 '그린워싱' 논란으로 신뢰 위기를 겪었지만, 최근 시장은 '고품질 크레딧'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국제 자발적 탄소시장 무결성 위원회(ICVCM)의 핵심 탄소 원칙(CCP) 인증 크레딧은 현재 구매자의 40%가 선호하는 대표 상품이 됐다. 특히 직접 공기 포집(DAC), 바이오에너지-탄소포집저장(BECCS) 등 탄소 제거(CDR) 기반 크레딧에 대한 빅테크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30년 '탄소 네거티브' 달성을 목표로 막대한 제거 크레딧을 선구매하고 있다. 정부는 2026년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 플랫폼 출범을 준비 중이며, 거래 인프라는 한국거래소가 운영할 예정이다. 환경부는 무결성 원칙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국내 크레딧의 국제 신뢰도를 확보할 방침이다. 이 시장은 중소기업과 농가에도 새로운 수익원이 될 것으로 얘상된다. 농림축산식품부·대한상공회의소·NH농협금융은 '농업 분야 자발적 탄소시장' 협약을 지난 9월 체결했다. 논물 관리, 저탄소 농법 등을 통해 감축한 실적이 크레딧으로 발행돼 기업에 판매되는 구조다. ◇ 기업과 개인, 탄소 감축의 '이중 수익 구조' 2026년 본격 시행되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철강·시멘트·알루미늄 등 주요 품목에 사실상 '기후 관세'를 부과한다. EU는 철강·알루미늄 소재가 많이 사용된 완제품인 세탁기와 자동차 도어, 가스레인지, 정원 도구 등도 대상에 포함할 예정이다. 기업으로서는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는다면 수출에 큰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업은 감축 성과에 따라 대출금리 인하, 투자 유치 확대라는 금융 혜택을 얻겠지만, 반대로 탄소 관리가 부실하면 조달금리 상승이라는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이제 탄소는 기업 신용도의 핵심 평가 지표가 됐다. 한경협 등에서 “감축이 어려운 산업은 단기적으로 전환비용 폭탄에 직면한다"며 전환금융 정책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한편, 기후부는 '탄소중립 포인트제'를 확대할 방침이다. 2026년 관련 예산이 181억 원으로 늘었다. 고품질 재활용품, 공유자전거, 베란다 태양광 설치, 나무심기 등 직접 현금성 보상이 강화된다. 특히 주목할 변화는 개인 전기차에도 배출권 할당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기후부는 12월 초 배출권 인증위원회를 열고 전기차 탄소배출권 할당 대상에 개인이 포함되도록 하는 내용의 '탄소배출권 거래제 외부사업 방법론'을 개정했다. 전기차 1대당 연간 평균 감축량은 2~3톤, 배출권 가격이 톤당 2만 원이라고 했을 때, 전기차를 모는 개인도 전문업체에 의뢰해 연간 5만원가량의 돈을 챙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 2026년, '탄소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다 이제 '탄소 경제'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작동하고 있고, 한국 경제도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 2026년은 탄소가 회계·금융·기술·무역을 동시에 지배하는 경제 변수로 완전히 자리 잡는 해가 될 전망이다 '얼마나 성장했는가'보다 오히려 '얼마나 정교하게 탄소를 관리했는가'로 평가받는 시대에 열린 것이다. 이제 기업에게 탄소 관리는 두 가지 의미, 즉 비용 절감과 수익 창출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배출권을 덜 사고, 국경 탄소세를 피하며, 전력 비용과 금융 비용을 낮추는 것이 비용 절감이다. 감축 기술을 팔고, 크레딧을 발행하고, 저탄소 제품에 프리미엄을 붙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은 수익 창출이다. 이제 탄소 감축을 외면하면 세금·관세·금융비용이라는 '3중 비용'을 떠안게 되고, 반대로 적극 대응하면 배출권 수익·신산업 매출·금융 혜택이라는 복합 수익이 열린다. 이제 탄소는 불확실한 미래 변수가 아니라, 오늘의 명확한 경제 자산이다. 다만 과제도 분명하다. ▶배출권 가격의 정상화 ▶자발적 탄소시장의 신뢰 확보 ▶전환 금융의 대규모 공급 체계 정착이 이뤄져야 한다. 김정인 중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환경경제학)는 “EU의 CBAM 시행이나 국내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 강화 등의 상황을 볼 때 기후테크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2026년은 석유화학·철강 등 경제 여건이 어려워 기업으로서는 3중, 4중 딜레마에 처할 수 있다"면서 “기업이 각자도생(各自圖生)하기보다는 힘을 합쳐 기술 투자에 힘 쓰는 것이 팔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환경포커스] 녹조·화학물질·중금속  ‘삼중고’ 낙동강…근본 대책은

영남권의 젖줄 낙동강이 녹조·유해화학물질·중금속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며 심각한 환경 위기에 처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낙동강은 영남지역 수 백만 주민에게 식수를 공급하는 핵심 상수원이지만, 과거의 산업 유산과 현재의 기후 변화가 겹치면서 생태계와 인간의 건강을 동시에 위협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녹조 현상의 심화: 기후 변화와 보 건설이 맞물린 탓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박준홍 교수팀은 지난해 9월 국제학술지 환경 공학 연구(Environmental Engineering Research)에 발표한 논문에서 낙동강이 유해 남세균(Cyanobacteria, 남조류) 발생 측면에서 이미 매우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진단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4대강 사업 이후 낙동강의 평균 유속은 과거에 비해 3배에서 최대 8배까지 감소했으며, 이로 인해 물의 체류 시간이 길어지면서 강이 사실상 '거대한 호수'와 같은 상태로 변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이 2100년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적용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기온 상승이 지속될 경우 녹조 밀도는 현재보다 수 배 이상 증가해 대규모 남조류 발생 기준인 mL당 100만 세포(cells)를 초과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보를 개방해 유속을 회복하는 조치가 필요하지만, 이미 가속화된 온난화 상황에서는 이마저도 충분한 해법이 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더욱이 12월 중순에는 경남 창원 지역 상수원인 칠서취수장~창녕함안보 인근 2㎞ 구간 낙동강에서 양치식물인 물개구리밥이 긴 띠를 형성한 것이 육안으로 확인됐다. 창원시 측은 “낙동강 물개구리밥은 칠서 취수장 부근에서 약 4-5일간 체류 후 하류로 이동했고, 정수장 취수구는 오탁방지막으로 차단해 체류기간 동안 원수 수질 악화와 그로 인한 칠서정수장 수돗물 수질에 미치는 영향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호수나 늪에서나 발견되는 식물이 강을 뒤덮은 것은 예사롭지는 않다. ◇'영원한 화학물질' PFAS: 눈에 보이지 않는 오염 부경대학교 지구환경시스템과학부 양민준 교수팀은 최근 '분석 과학 기술 저널(Journal of Analytical Science and Technology)'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낙동강 수계의 화학적 오염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밝혔다. 낙동강 본류와 지류 23개 지점을 조사한 결과, 총 11종의 과불화화합물(PFAS)이 검출됐으며, 특히 구미 산업단지 인근 지류에서는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기준을 크게 초과하는 과불화옥탄산(PFOA)과 과불화옥탄술폰산(PFOS)가 확인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 물질이 일반적인 정수 처리 과정은 물론 고도정수 처리에서도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건강 위해성 평가 결과, 0~5세 어린이 집단의 경우 일부 지점에서 유해 지수가 위험 임계치를 초과해, 미래 세대의 건강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과불화화합물은 자연계에서 거의 분해되지 않아 '영원한 화학물질'로 불린다. 낙동강에서는 공장 외에도 폐기물 매립시설이나 소화제를 사용하는 미군기지 등에서도 유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2025년 초 '노출 과학과 환경 역학(Journal of Exposure Science & Environmental Epidemiolog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수돗물 내 PFAS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구강·인두암, 소화기계·호흡기계 암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EPA의 새 기준(4ng/L 이하)을 초과할 경우 매년 6,800건 이상의 암이 PFAS 노출로 발생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오래된 오염: 호수 바닥에 쌓이는 중금속 충남대학교 해양환경과학과 최만식 교수팀은 최근 '유해 물질 최신 연구 저널 (Journal of Hazardous Materials Advances)'에 발표한 논문에서 낙동강 상류 안동호 퇴적물이 과거 광산 개발과 현재까지 이어진 제련소 운영의 영향으로 독성 금속의 거대한 저장고가 됐다고 밝혔다. 퇴적층 분석 결과, 1970~1990년대에는 폐광산에서 유입된 카드뮴과 아연이 주요 오염원이었으나, 2005년 이후에는 인근 아연 제련소의 생산량 증가와 맞물려 카드뮴과 아연 농도가 다시 급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러한 중금속은 퇴적물에 쌓여 있다가 홍수나 태풍 등 극한 기상 시 재부유·용출돼 생물 농축을 일으키고, 결국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는 잠재적 '환경 폭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낙동강 수질오염 해법은 없나 정부도 낙동강 수질 개선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녹조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공공하수처리시설 방류수의 총인(TP) 기준을 강화하는 개정 하수도법 시행 규칙을 공포했다. 개정 규칙은 5대강(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섬진강) 수계에 있는 하수처리용량이 하루 1만㎥ 이상인 대형 공공하수처리시설 방류수 수질 기준 중 총인 항목을 상수원보호구역 등의 시설과 똑같이 조정하는 내용이다. 기후부는 또 녹조 등으로 수질이 악화됐을 때 보 수문을 개방할 수 있도록 취·양수장 취수구 시설을 개선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최근 대부·중적포·외삼학 등 경남 합천군에 있는 낙동강 일대 양수장 3곳의 취수구 개선사업이 완료했다. 기후부는 남은 66개 취·양수장의 취수구 개선 사업에도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현재는 취수구가 강 수심 중간에 위치해 보 수문을 개방할 경우 취수가 불가능하다. 기후부는 지난 10월 수돗물 속 PFAS에 대한 수질기준을 2028년까지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경북도는 지난 여름 논란이 끊이지 않는 석포제련소 이전 논의를 위해 '석포제련소 이전 타당성 조사 및 종합대책 수립 용역'에 착수했다. 경북도는 용역을 통해 종합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한 뒤 국회·환경부와 협의를 진행할 방침이다. 한편, 기후부는 지난 12월 17일 강변여과수·복류수 활용이나 취수원 이전, 취수 방식의 다변화로 낙동강 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낙동강 수질을 개선하려면 생태계부터 살려야 최근 발표된 논문 내용을 종합하면 낙동강은 ▶유속 감소로 인한 녹조의 상시화 ▶산업 활동에 따른 미량 유해 화학물질의 지속적 유입 ▶상류에서 누적된 중금속 오염이라는 세 가지 재난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 오염 상태에 놓여 있다. 기후부는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조치는 단기적으로 수돗물의 안전성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낙동강이라는 상수원 자체의 오염을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염된 강을 그대로 둔 채 취수 지점만 바꾸거나 강바닥 아래를 우회해 물을 끌어오는 방식은, 시민들의 불안을 잠시 피해 가는 기술적 해법일 뿐 강의 건강을 회복시키지는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PFAS와 같은 난분해성 화학물질과 퇴적물에 축적된 중금속은 취수 방식을 달리한다고 사라지지 않으며, 홍수나 기후위기로 재부유될 경우 언제든 다시 수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녹조 역시 보로 인해 느려진 유속과 상승하는 수온이라는 구조적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계절 관리나 취수 대안만으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남세균 독소가 수돗물 뿐만 아니라 에어로졸 형태로 공기 중에 떠다닌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상수원 문제를 '식수 공급의 기술'로만 접근하는 한, 낙동강 생태계는 되살아날 수 없고 시민들의 우려 역시 근원적으로 해소되기 어렵다. 논문을 쓴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낙동강을 다시 생명의 강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취수원 논의를 넘어, 보 운영의 전면적 재검토와 물 흐름의 회복, 산업단지와 상류 오염원에 대한 강력한 규제, 그리고 강 자체를 정화·회복의 대상으로 삼는 정책 전환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전한 물은 강을 피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강이 건강해질 때 비로소 확보된다는 점을 이제는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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