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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강찬수 기자 입니다.
  • 기후에너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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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리포트] 풍력·파력 동시 수확하는 해상 하이브리드 발전 ‘주목’

기후 위기가 깊어지고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해상 재생에너지는 전 세계 에너지 전환 전략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해상 풍력에 파력(波力)과 조류(潮流) 에너지를 결합한 해상 하이브리드 발전 시스템(hybrid offshore renewable energy harvest system, HOREHS)은 단일 에너지원의 한계를 극복할 차세대 해양 에너지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파력 발전은 파도의 상하·전후 운동에 담긴 에너지를 기계적 운동으로 변환해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밀도가 높지만 파도의 불규칙성으로 인해 제어와 내구성이 기술적 과제로 남아 있다. 조류 발전은 밀물과 썰물로 발생하는 바닷물의 흐름을 터빈으로 회전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조류 주기가 규칙적이어서 발전 예측성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영국 서리대학교 공학부와 중국 광저우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에너지 보존과 관리 (Energy Conversion and Management)'에 발표한 종설 논문을 통해 해상 하이브리드 재생에너지 시스템의 기술적 진화와 남은 과제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이들은 풍력과 파력, 나아가 조류 에너지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통합적으로 수확하는 접근이 기술·경제·환경 측면에서 모두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이브리드 해상 발전의 핵심 이점 ① 비용 절감과 경제성 향상 =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가장 큰 강점은 기초 구조물과 플랫폼의 공유다. 풍력 터빈과 파력·조류 발전 장치가 동일한 기초를 사용함으로써 개별 설치 대비 초기 투자비용(CAPEX)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해저 케이블과 계통 연계 설비를 공동으로 활용해 에너지 균등화 비용(LCOE)도 낮출 수 있다. ② 에너지 생산의 안정성 = 풍력과 파력, 조류 에너지는 시간적 특성이 서로 다르다. 바람이 약한 조건에서도 파랑이나 조류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복수의 에너지원 결합은 발전량의 변동성을 줄이고 전력망에 보다 안정적인 출력을 제공한다. ③ 해양 공간 효율성과 환경 영향 저감 = 단일 플랫폼에 여러 발전 장치를 통합하면 해양 점유 면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는 해양 생태계에 대한 간섭을 줄이고, 항로·어업 활동과의 공간적 충돌을 완화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④ 구조적 안정성 증대 = 특히 파력 발전 장치(WEC)를 부유식 해상 풍력 플랫폼에 통합할 경우, 파력 장치의 운동이 플랫폼의 피치(pitch)나 히브(heave) 운동을 억제하는 동적 댐퍼 역할을 수행한다. 수치해석과 실험 결과, 이는 풍력 터빈의 피로 하중을 줄이고 구조물 수명을 연장하는 부수적 효과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이로스코프 파력 발전기의 기술적 돌파구 파력 발전의 효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성과도 주목된다. 일본 오사카대학의 이이다 타카히토 교수는 최근 '유체역학 저널(Journal of Fluid Mechanics)'에 발표한 연구에서 자이로스코프 파력 발전기(GWEC)가 광대역 파랑 주파수에서 이론적 최대 흡수 한계인 입사 에너지의 50%에 도달할 수 있음을 선형 이론으로 증명했다. 자이로스코프는 회전하는 물체가 각운동량 보존 법칙에 따라 자신의 회전축 방향을 유지하려는 성질을 이용해, 방향 변화나 기울기를 감지하고 안정화에 활용되는 장치이다. GWEC는 파도로 인해 흔들리는 해상 구조물의 움직임을 내부 자이로스코프의 세차 운동으로 전환하고, 이 회전 에너지를 발전기에 전달해 전기를 생산하는 파력 발전 장치이다. GWEC는 플라이휠 회전 속도라는 추가 제어 변수를 활용함으로써, 특정 공진 주파수에만 의존하던 기존 파력 발전기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 핵심이다. 나아가 부유체를 비대칭 구조로 설계할 경우, 이론적으로는 더 높은 에너지 흡수 가능성도 제시된다. ◇풍력과 조류 에너지의 결합이 만드는 시너지 풍력과 조류 에너지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 역시 뚜렷한 장점을 보인다. 조류 터빈은 에너지 밀도가 높고 예측 가능성이 커, 풍력의 간헐성을 효과적으로 보완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풍력 터빈과 조류 터빈이 동일 기초를 공유할 경우, 전체 발전량은 조류 단독 시스템 대비 약 70% 증가하고, LCOE는 10~12% 낮아질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조류 터빈은 플랫폼 운동을 억제해 구조적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도 수행한다. 전문가들은 해상 하이브리드 발전이 단순한 전력 생산을 넘어, 해상 수전해 기반 그린수소 생산과 결합될 경우 진정한 '해상 에너지 허브'로 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풍력·파력·조류라는 복수의 해양 에너지를 통합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은, 향후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해양이 수행할 역할을 근본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한반도 해역의 파력 잠재량과 하이브리드 발전의 현실성 해상 하이브리드 재생에너지의 가능성을 논의할 때, 실제 해역 조건에 대한 정량적 분석은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내 연구진이 한반도 주변 해역의 파력 에너지 분포를 고해상도로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한양대 정재홍 교수팀은 '확률적 환경 연구와 리스크 평가(Stochastic Environmental Research and Risk Assessment)'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수치 파랑 모형과 장기 해상 관측 자료를 결합해 한반도 전 해역의 파력 밀도(spatial wave power density)를 체계적으로 평가했다. 분석 결과, 동해 외해와 제주 남방 해역이 연중 평균 파력 에너지가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특히 겨울철에는 단위 길이당 수십 kW/m 수준의 파력 잠재량이 형성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해역 특성이 부유식 해상 풍력과 파력 발전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특히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바람과 파랑이 동시에 강해지는 계절적 특성이 뚜렷해, 단일 에너지원 대비 발전량 변동성이 줄어들고 설비 이용률(capacity factor)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유럽 연구진이 제시한 풍력–파력 상보성 이론이 동북아 해역에서도 실증적으로 적용 가능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주목할 논문 ‘보수층은 왜 재생에너지 싫어하고, 원전 선호할까’

재생에너지냐, 원자력 발전이냐를 둘러싼 에너지 논쟁은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이념 대립의 상징처럼 작동해 왔다. 원전은 보수 진영의 '경제와 안보'의 언어로, 재생에너지는 진보 진영의 '환경과 도덕'의 언어로 고착되면서, 에너지 전환 논의 자체가 생산적 토론의 장을 잃어버렸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보수층은 왜 원자력에는 우호적이면서 재생에너지에는 냉담한지, 그리고 이 간극을 좁힐 실질적 해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실증 연구가 나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이다솜 교수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에너지 정책 (Energy Policy)'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한국 에너지 정치의 깊은 양극화 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전략적 접점을 제시했다. ◇한국 보수층의 에너지 인식 관련 설문 조사 연구의 핵심은 정치적 보수성과 청정에너지 지지 사이의 상관관계를 정밀하게 검증하는 데 있었다. 논문에서 이 교수팀은 국내 성인 180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분석했다. 설문조사는 2024년 10월 29일부터 11월 11일까지 진행됐다. 분석 결과, 응답자가 보수적일수록 원자력 발전에 대해 일관되게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원전 확대 정책에도 강한 지지를 나타냈다. 특히 보수층이 원전을 지지하는 핵심 동기는 환경이나 기후 대응이 아니라, 명확하게 '경제적 요인'이었다. 원자력은 이들에게 안정적인 기저부하 전원이자, 산업 경쟁력과 국가 성장의 기반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다. 보수적 성향이 강할수록 재생에너지에 대한 호감도와 정책 지지 수준은 뚜렷하게 낮아졌다. 주목할 점은, 재생에너지의 비용 절감이나 시장 창출 가능성 같은 경제적 논리가 한국 보수층의 태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금 감면이나 시장 자유화 논리를 통해 재생에너지를 수용하는 서구권 보수주의와 뚜렷이 대비되는 지점이다. ◇재생에너지는 왜 '비경제적'으로 인식되는가 연구팀은 한국 보수층이 재생에너지를 '비경제적'이라고 인식하는 이유를 실제 발전 단가나 기술 성숙도의 문제로만 설명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보다는 재생에너지가 오랫동안 환경 보호, 도덕적 책임, 진보적 가치라는 프레임 속에서만 다뤄져 왔다는 점이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에너지 정치에서는 원자력이 보수 정당의 상징으로, 재생에너지는 진보 정당의 핵심 의제로 각인돼 왔다. 이 과정에서 재생에너지는 기술 혁신이나 산업 전략의 대상이 아니라, 특정 진영의 정치적 메시지로 소비됐고, 그 결과 보수층에게는 실용적 경제 정책이 아닌 '이념적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강한 정치적 양극화가 경제적 합리성조차 작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원전, 기술적 상생의 가능성 논문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본질적으로 충돌하는 관계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충분히 상호 보완적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핵심은 두 에너지원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하나의 전력 시스템 안에서 결합하는 접근이다. 원자력은 안정적인 기저부하 전원으로 전력 시스템의 뼈대를 담당하고, 재생에너지는 피크 수요 관리와 지역 분산형 발전에 기여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원전 전력을 활용한 수소 생산을 결합하면, 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는 발전 변동성 문제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력망 현대화 과정에서 이들 두 가지 에너지원과 더불어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송전 인프라를 통합 운영하는 모델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기술적 결합이 원전 지지 성향이 강한 보수층에게도 재생에너지를 '원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 '시스템 안정성을 높이는 파트너'로 인식하게 만드는 전략적 교두보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재생에너지의 탈이념화, 해법은 '실용주의' 연구팀은 아울러 에너지 정책의 정치적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네 가지 핵심 전략을 제시했다. 첫째, 상호 보완성의 강조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대립 구도로 설명하는 대신, 각자의 기술적 강점을 결합한 시스템 설계를 지속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둘째, 비정치적 프레임으로 재(再)정의하는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도덕적 의무나 환경 담론에서 분리해 '실용주의', '현대화', '기술 혁신'의 언어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해상풍력을 기후 정책이 아니라 국가 기술 경쟁력 전략으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셋째, 지역적 공동 혜택(co-benefits)의 발굴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녹색 일자리보다 미세먼지 저감, 대기질 개선, 지방 소멸 대응과 같은 초당적 과제와 연결할 때 보수층의 수용성이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넷째, 제도적 구조화다. 정권 교체에 따라 에너지 정책이 흔들리지 않도록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의 강화, 기업의 재생에너지 구매 계약 확대 등 장기적 규제 틀을 통해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에너지 전환의 성패는 '정치'가 아닌 '설계'에 달려 있다 연구팀이 제시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에너지 갈등은 기술이나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프레임과 정치의 문제에 가깝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어느 진영의 상징으로 소비하는 한 사회적 합의는 요원하다고 지적한다. 연구팀은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논의를 이념 대결의 장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논란의 핵심을 기술적 시너지와 국가 경쟁력, 그리고 지역 사회의 실질적 이익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재구성할 때 비로소 출구가 보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원전이냐, 재생에너지이냐 여부를 정치적 선택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용적 차원에서 어떻게 공존하도록 설계할 것이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일본 후쿠시마 사고가 남긴 ‘혼종 멧돼지’…생태계가 보내는 경고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인간 사회를 넘어 지역 생태계의 구조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주민 대피로 비워진 땅을 차지한 것은 야생동물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가축 돼지와 야생 멧돼지가 뒤섞인 '혼종(hybrid) 멧돼지'의 등장이었다. 이 현상의 발생 메커니즘과 생태적 의미를 분석한 연구 결과가 최근 국제 학술지에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연구는 히로사키대학교 방사선 비상 의학 연구소의 도노반 앤더슨 박사와 후쿠시마대학교 가네코 신고 교수 연구팀이 수행했다. 연구 결과는 '후쿠시마에서 재야생화된 돼지의 모계 혈통이 멧돼지 개체군 내 유전적 혼입 가속화에 기여하다'라는 제목으로 지난달 국제학술지 '산림 연구 저널(Journal of Forest Research)'에 게재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원전 사고 이후 대피 과정에서 사육 돼지들이 방치되거나 탈출했고, 이들은 농경지와 산림에서 빠르게 야생화됐다. 이후 기존에 서식하던 일본 토착 멧돼지와 자연 교배가 이뤄지며 유전적으로 혼합된 개체가 출현했다. 2015~2018년 사이 후쿠시마 일대에서 수집된 샘플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 멧돼지 개체에서 이미 가축 돼지의 유전자가 확인됐다. ◇가축 유전자는 왜 '빠르게 사라지는가' 가축 돼지와 야생 멧돼지는 모두 같은 종(Sus scrofa)으로, 아종 수준의 차이만 있을 뿐 자연적으로 교배가 가능하며 자손도 생식 능력을 가진다. 분류학적으로는 동일한 종이지만, 가축 돼지(Sus scrofa domesticus)는 인간의 선택에 의해 번식력과 성장 속도 등이 강화된 집단이고, 야생 멧돼지(Sus scrofa leucomystax)는 자연 선택을 통해 생존과 적응력이 유지된 집단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선택 압력 아래 형성된 유전적 성격 때문에, 두 집단의 교배는 단순한 개체 교류를 넘어 생태적 의미를 갖는다. 이들을 '혼종'으로 부르는 이유는 종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형성된 유전 형질이 야생 개체군의 진화 경로와 개체군 동태를 교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세대가 거듭될수록 가축의 유전적 특징이 빠르게 희석된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그 핵심 원인으로 '번식 주기'를 지목했다. 야생 멧돼지는 보통 연 1회 번식하지만, 가축 돼지는 인위적 개량을 통해 연 2회 이상 번식하는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가축 돼지의 번식 특성은 혼종 개체에도 일부 전달됐고, 이로 인해 혼종들은 빠른 세대교체를 거치며 다시 야생 멧돼지와 반복적으로 역교배됐다. 그 결과, 세포 내에서 가축 돼지의 유전자는 급속히 줄어드는 반면, 멧돼지 유전자는 개체군 전체에 빠르게 재흡수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다만, 세포질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수정 시 난자에서만 전달되기 때문에, 가축 돼지 암컷에서 시작된 모계 혈통은 세대가 지나도 그대로 유지된다. 겉으로 보면 해당 개체는 '가축 모계 유전자(미토콘드리아)를 지닌 멧돼지"로 남는다. 이때 핵 유전자는 매 세대마다 부모 양쪽에서 재조합되므로, 혼종이 다시 야생 멧돼지와 반복적으로 교배할수록 가축 유래 핵 유전자는 빠르게 희석되고 멧돼지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커진다. 결국, 가축 돼지의 모계 혈통은 미토콘드리아 수준에서 '기록'처럼 남아 있지만, 실제 개체의 생리·형태·행동을 좌우하는 핵 유전체는 이미 대부분 멧돼지 쪽으로 대체됐다. 그래서 연구팀은 이를 “가축 모계 혈통이 오히려 핵 유전체의 빠른 멧돼지화(野生化)를 촉진했다"는 다소 역설적인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유전자 외곽 확산이 방사능 확산으로 이어질까 이러한 유전적 혼합은 단순한 진화 현상을 넘어 심각한 생태계 관리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우선, 가축 유래의 높은 번식력이 유입되면서 후쿠시마 피난 구역 내 멧돼지 개체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실제로 사고 1년 뒤 약 6000마리 수준이던 포획 개체 수는 9년 만에 3만6000마리로 6배로 늘어났다. 더 우려되는 점은 방사성 물질의 확산 가능성이다. 혼종 멧돼지들은 방사성 세슘을 체내에 축적한 채 이동하며, 오염 지역과 비오염 지역을 잇는 '생물학적 매개체' 역할을 한다. 유전적 분석 결과, 원전 인근에 집중돼 있던 가축 유전자 분포가 점차 외곽으로 확산되는 경향이 확인됐는데, 이는 방사능 오염 확산 경로와 겹칠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유전자가 여러 세대에 걸쳐 외곽으로 확산된다는 사실만으로 방사능도 외곽으로 확산할 것으로 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논문에서도 이를 '가능성' 수준에서만 언급하고 있다. ◇재난이 남긴 '진화의 흔적' 연구팀은 가축 유전자의 비율 자체는 제한적일 수 있지만, 소규모 유전자 유입만으로도 토착종의 유전적 구조와 생태계 관리 체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방사능 오염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개체 이동과 번식 패턴을 장기적으로 추적·관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연구는 원전 사고가 단순한 환경 오염을 넘어, 야생동물의 진화 경로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1986년 4월 방사능 오염 사고 있었던 구소련(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도 '배제구역' 내의 인간 활동이 중단되면서 늑대·멧돼지·사슴 등 대형 야생동물이 급증하고, 이들 개체에서 방사성 물질의 체내 축적이 관찰되기도 했다. 이 점에서는 후쿠시마와 마찬가지로 '인간 부재가 생태계를 빠르게 재편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체르노빌 사고 직후에는 가축이 대부분 도살·제거돼 숲으로 방치되지 않았고, 그 결과 가축과 야생동물 사이의 지속적인 교배나 유전적 혼입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체르노빌 연구의 초점 역시 가축 유전자 유입이 아니라, 방사선 노출에 따른 돌연변이율 증가나 생식·형태 이상 여부에 맞춰져 있었다. 반면 후쿠시마는 농경지와 축산 지역이 넓게 분포한 상태에서 대피가 단계적으로 이뤄지며 가축 방치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방사능 오염과 인간 부재, 가축 야생화가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적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 차이 때문에 후쿠시마에서는 체르노빌과 달리, 재난 이후의 관리 방식이 야생동물의 유전 구조와 진화 경로까지 바꾸는 사례가 나타났다. 인간이 초래한 재난이 자연 생태계에 어떤 '유전적 흔적'을 남기는지, 그리고 그 영향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앞으로의 관찰과 연구에 달려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지난해 경북 대형 산불…대기오염으로 주민 건강도 크게 손상 가능성

지난해 3월 경북 지역을 휩쓴 대규모 산불은 단순한 산림 소실을 넘어 해당 지역에 심각한 대기오염을 초래했고, 주민 건강에도 해로운 결과를 낳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산불은 이는 국내외 여러 연구가 증명하듯 호흡기 질환부터 심혈관 질환, 나아가 사망 위험까지 높이는 중대한 보건 위기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산불 발생 시 대기오염으로부터 주민, 특히 농촌 지역 고령자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정교한 대응 체계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기록적인 미세먼지 농도와 광역적 오염 먼저 일본 후쿠오카여자대학교 환경과학과 마창진 교수와 원광보건대학교 보건의료행정과 강공언 교수가 지난해 여름 '한국대기환경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당시 산불은 과거 최대 피해였던 2000년 동해안 산불을 뛰어넘는 4만8239ha의 산림을 태웠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대기오염물질이 배출되었는데, 산불 기간 중 안동시의 초미세먼지(PM2.5) 평균 농도는 ㎥당 119.05㎍(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에 달해 국가 대기환경 기준치인 35㎍/㎥의 3배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불의 영향은 발생 지역에만 머물지 않고 수백 ㎞ 떨어진 곳까지 미쳤다. 연구팀은 산불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충남 서산에서도 미세먼지(PM10) 속의 원소 농도가 평상시보다 88.77%나 증가했으며, 인체에 해로운 중금속인 납(Pb) 농도 역시 14.05% 상승했음을 확인했다. 산불 연기는 서풍을 타고 동해를 건너 일본 이시카와현과 시마네현의 초미세먼지 농도까지 각각 20.83%와 5.75% 상승시킨 것으로 관측됐다. ◇농촌 지역과 고령 농업인에게 더욱 치명적 산불로 인한 대기오염은 농촌 지역에 더 깊은 상흔을 남겼다. 지난해 3월 경북 산불 발생 기간에 전국 8개 농업 지역의 대기질을 분석한 결과, 산불 기간 중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평균 PM2.5) 농도가 평상시보다 각각 47.3%와 24.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김기연 교수와 국립농업과학원 기후변화평가과 김진호 박사가 최근 국제 학술지 '화재(Fire, MDPI)'에 발표한 논문 내용이다. 연구팀은 특히 한국 농촌 특유의 분지 지형과 새벽 시간대의 높은 습도가 미세먼지 농도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을 지적했다. 초미세먼지는 상대습도와 강한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는데, 이는 대기가 정체된 상태에서 미세먼지가 수분을 흡수해 입자가 커지거나 2차 생성을 통해 농도(㎥당 질량)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고령층 비중이 높은 농촌에서 농업인들이 연기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대기 정체가 심한 새벽 시간에 야외 작업을 할 경우 고농도의 유해 물질에 그대로 노출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해외 연구: 산불 연기의 치명적인 건강 영향 산불로 인한 대기 오염이 사람의 건강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는 미국과 캐나다의 사례를 통해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기계공학과 연구팀이 지난해 12월 '환경 과학 기술 회보(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 Letter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025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발생한 산불 당시 연기 노출로 인한 초과 사망자가 14명으로 추산됐다. 이는 화재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자 수(30명)의 약 47%에 해당하는 수치로, 산불 연기가 직접적인 불길만큼이나 치명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하발라 파이 박사팀이 지난달 같은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23년 캐나다 산불 당시 연기가 캐나다와 미국 전역에 퍼져 약 500건의 추가 암 발생 사례를 초래할 정도로 발암 위험을 높인 것으로 추정됐다. 캐나다 내에서만 미세먼지와 오존 노출로 인해 약 7800명의 조기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 아이칸 의과대학 연구팀은 최근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논문에서 산불 미세먼지가 미국 내에서 연간 약 2만4100명의 사망 원인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산불 미세먼지가 신경계 질환 사망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며, 순환계 질환과 암 사망률도 높인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했다. 심혈관계 질환과의 연관성도 심각하다. 미국 에모리 대학교 환경보건학과 연구팀이 지난달 '유럽 심장 저널(European Heart Journal)'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 65세 이상 노인 약 2500만 명을 대상으로 10년 이상 추적 조사한 결과, 산불 미세먼지에 장기간 노출될수록 뇌졸중 발생 위험이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특히 산불 미세먼지 농도가 1㎍/㎥ 증가할 때마다 뇌졸중 위험이 1.3%씩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나, 일반적인 미세먼지보다 산불에서 유래한 먼지의 독성이 더 강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피해 예방을 위해 1년에 한번 대피 훈련 필요" 대기오염으로 인한 건강 문제나 산불로 인한 직접적인 인명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세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산불을 둘러싼 구조적 쟁점 2차 포럼'에서 토론자로 나선 이다솜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국가 차원의 산불 대피 체계를 마련하고, 시장·군수 주관으로 각 읍면 단위로 연 1회 이상 실제 대피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상청과 산림청, 지자체 등의 자동기상 관측망(AWS)을 통합 운용해 국민들이 산불로부터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강오 경북대 초빙연구교수(충북산림포럼 이사장)는 “산불 예방 관리를 공공 기후서비스로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산불 예방을 기후 대응·적응 사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읍면이나 마을 단위로 '마을숲관리단'을 조직해 감시 순찰과 초기 대응, 교육홍보 업무를 맡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리포트]美 트럼프 행정부, 온실가스 규제 근거 폐기…국내외 파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온실가스 규제의 법적 토대가 되어온 '위해성 판단(endangerment finding)'을 공식 폐기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 2기 들어 가장 공격적인 규제 완화 조치로 평가된다. 미국 환경 규제 체계를 근본에서 흔드는 결정으로,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대대적인 후퇴를 예고한 셈이다. 국제 사회와 글로벌 산업 전반에 미칠 파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미국 환경보호청(EPA) 수장인 리 젤딘 청장과 함께 “EPA가 완료한 절차에 따라 이른바 '위해성 판단'을 공식 종료한다"고 밝혔다. 그는 2009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도입된 이 판단을 두고 “미국 자동차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소비자 가격을 끌어올린 재앙적 정책"이라고 비난하면서 “미국 역사상 단일 조치로는 최대 규모의 규제 완화"라고 강조했다. '위해성 판단'은 이산화탄소(CO2)와 메탄(CH4) 등 6종의 온실가스가 공중보건과 국민 복지에 위해를 가한다는 연방정부 차원의 과학적 결론으로, 지난 17년간 차량 연비 기준과 발전소 배출 규제 등 미국 기후 정책의 핵심 근거로 기능해 왔다. 젤딘 청장은 이날 이를 연방 규제 과잉의 '성배(聖杯, Holy Grail)'에 비유하며 “관료적 규제, 이른바 레드테이프가 잘려 나갔다"고 선언했다. ◇배출 급증 전망… 보건·기후 피해 우려 확산 규제 근거가 사라지면서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대폭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비영리 환경단체인 환경방어기금(EDF)은 이번 위해성 판단 폐기로 인해 미국이 2055년까지 최대 180억톤의 온실가스를 추가로 배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미국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배에 달하는 규모다. EDF는 이로 인해 2055년까지 최대 5만8000명의 조기 사망과 3700만 건의 천식 발작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 변화로 인한 극단적 폭염과 대기질 악화가 보건 부담을 크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의 반발도 거세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같은 날 소셜미디어 엑스(X)에 “이번 결정으로 우리는 덜 안전해지고, 덜 건강해지며, 기후 변화에 맞설 능력이 약화될 것"이라며 “결국 화석연료 산업만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역시 “기후 변화로 인한 보험료, 식료품, 에너지 비용 상승의 부담은 고스란히 미국 가정에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州) 정부 차원의 법적 대응도 예고됐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성명을 통해 “명백히 불법적인 조치"라며 소송 제기를 공식화했다. 과학계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기후과학자 프리데리케 오토는 이번 결정을 “가장 기본적인 물리학 법칙에 대한 거부"라고 평가했다. ◇국제 기후 거버넌스의 균열… “미국 없는 감축 체제" 가속하나 이번 '위해성 판단' 폐기는 미국 국내 정책 변화에 그치지 않고, 국제 기후 거버넌스 전반에 구조적 균열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자 산업혁명 이후 누적 배출량 기준으로는 최대 배출국이다. 이런 국가가 온실가스 규제의 과학적·법적 근거 자체를 부정하면서 다자 기후 체제의 신뢰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이번 조치는 미국이 지난해 이미 재탈퇴를 선언한 파리 기후협정의 실질적 이행 기반을 더욱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파리 협정은 각국이 자발적 감축 목표(NDC)를 설정하는 '하향식·자율형 체제'에 기반하고 있어, 주요 배출국의 이탈이나 정책 후퇴가 연쇄적으로 다른 국가들의 감축 의지를 저하시킬 수 있다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 국제기구 차원에서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중심으로 한 다자 협상 체제는 과학적 합의와 법적 연속성을 전제로 작동해 왔다. 하지만, 미국이 '위해성 판단'을 폐기함으로써 과학적 합의 자체를 정치적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셈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향후 기후 협상에서 미국의 발언권과 신뢰도는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기후 리더십 공백을 누가 메울 것인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 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미국을 제외한 기후 거버넌스"를 가속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실제로 유럽연합(EU)과 중국은 미국과 무관하게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재생에너지 확대, 전기차 전환 전략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는 기후 규범이 더 이상 미국 중심의 합의 체제가 아니라, 지역 블록별 규범 경쟁 구도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한국 자동차 산업에도 파장 예상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단기적으로는 화석연료 산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저탄소 산업 질서에서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전략적 자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 시장이 탄소 규제를 기준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미국만 규제 완화 노선을 고수할 경우 오히려 무역 장벽과 기술 고립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번 결정은 한국 자동차·배터리 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전동화 정책 후퇴로 전기차(EV) 전환 속도가 둔화되면서, 국내 업체들의 미국 시장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전기차 수출은 전년 대비 86.8% 급감한 1만2166대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미국 소비자 수요가 내연기관차로 완전히 회귀하기보다는, 전기차의 대안인 하이브리드차(HEV)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전문가들은 “미국 시장에서 하이브리드 차량의 인기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현대차·기아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하이브리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현지 판매와 수출에서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달콤한 독’과의 전쟁 선포…“정부의 공적 개입 불가피”

시민 건강을 위협하는 과도한 당류 섭취 문제를 해결하고, 이른바 '설탕세'로 불리는 '설탕 과다 사용 부담금' 도입을 논의하기 위한 국회 토론회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국회 정태호 의원(더불어민주당)과 대한민국헌정회,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이 공동 주최했다. 토론회에서는 설탕 소비 억제를 위한 정책적 공감대 형성과 부담금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마련됐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업계 입장을 대변한 패널을 제외하고 주제발표자와 토론자 모두 부담금 도입의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 윤영호 단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주제 발표에서 “청량음료나 주스, 커피 등에 들어가는 첨가당은 충치·비만·당뇨·심경색·뇌졸중·암 등 만성 질환을 유발한다"면서 “치매와 우울증 위험과도 관련성이 높다"고 말했다. 윤 단장은 “지난 2023년 기준으로 우리 국민 5명 중 1명, 어린이·청소년 3명 중 1명이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에 비춰 당류를 과다 섭취하고 있다"면서 “첨가당 과다 섭취는 건강 악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이어지고, 이로 인한 의료비 증가는 건강보험 재정 악화와 보험료 인상으로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그는 “WHO는 지난 2016년 설탕세 도입을 각국에 권고했는데, 2023년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120여 개국 혹은 지방 정부에서 이를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경우 2018년 '청량음료 산업부담금(SDIL)'을 도입해 음료 100mL에 첨가당이 5~8g이 들어가면 18펜스(약 350원), 8g 이상 들어 있으면 24펜스(약 470원)의 부담금을 징수한 결과, 첨가당 음료 소비자 매출이 33% 감소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기준을 4.5g으로 강화하고, 모든 가공식품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단장은 “설탕 과다사용 부담금 징수를 위해서는 가칭 '건강공동체문화위원회' 같은 사회적 합의 기구를 설치하고, '건강 친화 경영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발표에 나선 김초일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특임교수는 “최근 국내에서 탄산음료 소비가 줄어들고 당 섭취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로 칼로리 음료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인공 감미료의 사용으로 인한 문제점을 우려했다. 김 교수는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당 섭취에서 김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 시중에 판매되는 김치 중에 상당량의 당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배추김치에도 설탕이나 물엿이 적지 않게 들어 제품을 구입할 때 성분·함량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이진수 교수는 “해외에서 'sugar tax'라고 해서 국내에서도 '설탕세'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당류 과다 사용 부담금'이 적절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이 부담금의 납부 의무자는 부과대상 식품의 제조업자가 되고, 이를 통해 (설탕을 덜 사용하는) 다른 방식의 생산을 유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가공식품 중에서 당류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식품, 대표적으로 청량음료 등 가공음료와 간식류 등이 부과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명자 KAIST 이사장은 축사에서 “오늘날 초가공식품이 식탁을 지배하는 형편이라 설탕 과다 섭취를 개인의 절제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정부의 공적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김대중 정부 때 환경부 장관 재직 때 한강 등 4대강 별로 수도요금에 부과하는 물이용부담금을 도입 과정에서 '준조세' 도입에 반대하는 주민 등을 설득하기 위해 3년 동안 300여 차례의 소통을 가졌고, 두 차례 2만4000명에게 장관 명의로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설탕 관련 부담금을 도입할 경우에도 끈질긴 설득을 통해 갈등을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이사장은 “부담금으로 조성한 재원은 건강 인프라 구축에 투입해서 초고령사회의 건강 손실 기간을 줄이고,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도 축사를 통해 “어릴 때 혀가 한번 중독되면 바꾸기 어렵다"면서 “부담금으로 어린이 식생활 개선에도 쓰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설탕 과다 사용 부담금 입법 추진 협의체'도 출범했다. 이날 출범식을 가진 이 협의체에는 대한민국헌정회와 서욿대 건강문화사업단, 한국환자단체연합, 한국심장병환우회, 한국소비자연맹, 한국건강학회 등이 참여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숲 생태계 변했다…꽃은 더 일찍, 단풍은 더디게

최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산림 생태계의 계절적 리듬이 뚜렷하게 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정수종 교수와 국립수목원 김동학 박사 등 연구팀은 2009년부터 2024년까지 국내 산림의 낙엽활엽수의 계절 지표 관측 자료를 분석해 한국기상학회 학술지인 '대기(Atmosphere)'에 최근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국립수목원이 전국 10개 수목원을 통해 체계적으로 수집한 장기 모니터링 자료를 바탕을 두고 있다. 국립수목원은 현재 256종의 식물을 대상으로 잎눈파열과 개화, 단풍, 낙엽 등 총 13개의 식물계절 지표를 7~10일 간격으로 관측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 중 낙엽활엽수 20종을 골라 기후 변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잎눈파열, 개화시작, 개엽시작, 단풍 절정(90~100%) 등 4가지 주요 지표를 핵심적으로 분석했다. 잎눈파열은 눈 안에서 어린 잎이 보이기 시작하는 단계이며, 개엽은 적어도 세 개의 다른 가지에서 잎자루나 펼쳐진 잎이 보일 때를 의미한다. 연구팀이 지난 16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국내 산림의 생장 기간은 평균 17일에서 20일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봄철 식물계절 지표가 앞당겨지고 가을철 단풍 시기가 늦춰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구체적으로 잎눈파열은 연평균 0.94일, 개화 시작은 0.83일, 개엽 시작은 0.79일씩 빨라졌다. 반면 가을의 상징인 단풍 절정 시기는 연평균 0.33일씩 늦춰져, 전체적으로 약 5일 정도 지연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변화는 식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봄철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식물은 산수유로, 잎눈파열 시기가 매년 1.39일씩 앞당겨지는 가장 빠른 조기화 현상을 보였다. 그 외에도 노각나무와 자귀나무 등이 상대적으로 빠른 변화를 보였다. 개엽 시작 단계에서는 산벚나무·졸참나무·히어리 등이 매년 1일 이상 빠르게 잎을 틔우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을 단풍의 경우 종별로 차이가 더 뚜렷했다. 당단풍나무와 산벚나무는 오히려 시기가 앞당겨진 반면 노각나무와 백목련 등은 지연되는 등 종 특이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역별로도 변화의 속도가 달랐다. 봄철 현상의 조기화가 가장 두드러진 곳은 전북과 충북 지역이었고, 국립수목원이 위치한 경기 북부 지역도 개화 시기가 빠르게 앞당겨지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강원도와 제주도 같은 지역은 상대적으로 변화 폭이 작거나 통계적으로 뚜렷한 경향이 나타나지 않아, 고위도 지역이나 해양의 영향을 받는 환경 조건이 식물계절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식물의 계절 시기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기상 요인은 온도였다. 분석 결과, 봄철 현상은 1월에서 5월 사이의 기온 및 지면 온도와 매우 강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특히 개화와 개엽 단계는 기상 요인만으로 변동의 95% 이상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을 단풍은 7월에서 9월 사이의 늦여름 기온과 지면 온도, 이슬점 온도가 높고 습윤할수록 지연되는 특성을 보였다. 이처럼 식물계절 지표가 달라지면 산림 생태계 전반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생장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일시적으로 탄소 흡수량을 늘릴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영양분 재분배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식물과 수분 매개 곤충 사이의 활동 시기가 어긋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는 결국 생물 다양성 감소와 생태계 서비스의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체계적인 산림 생태계 모니터링과 적응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환경포커스] 멸종위기 삵과 수달…도로 위에서 숨을 거둔다

설 연휴를 맞아 전국 고속도로와 국도에 차량 행렬이 이어질 전망이다. 고향을 찾고 가족을 만나는 설렘 속에서 많은 이들이 도로 위에 오르지만, 하나 더 생각할 게 있다. 바로 로드킬(road-kill, 야생동물 교통사고)이다. 로드킬은 차량에 탑승한 사람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인 동시에 멸종위기종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멸종위기 야생포유류인 삵과 수달은 로드킬로 인한 피해가 누적되면서, 개체군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장이권 교수와 충북대 수의과대학 김기윤 교수 등은 최근 국제 학술지 '동물 세포와 시스템(Animal Cells and Systems)'에 국내 멸종위기종 삵과 수달의 로드킬 발생 특성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2019~2021년 국토교통부 로드킬 정보시스템(KROS)에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두 종의 사고 발생 시기와 공간적 특성을 정밀 분석했다. ◇가을철에 집중된 삵 로드킬 분석 결과, 삵(Prionailurus bengalensis)은 조사 기간 동안 총 589건의 로드킬 피해를 입어, 국내 멸종위기 포유류 가운데 가장 많은 희생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200건 가까운 수치다. 삵은 산림과 농경지의 경계 지역을 오가며 생활하는 대표적인 '가장자리(edge) 종'이다. 이 같은 서식 특성상 도로와 접촉할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로드킬 위험에도 상시 노출돼 있다. 특히 삵의 로드킬은 가을철에 집중되는데, 이는 여름철보다 약 6.9배 높은 수준이다. 가을은 어린 개체들이 어미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이동하는 분산기로, 도로 위험에 익숙하지 않은 개체들이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겨울철에도 번식을 앞둔 수컷들이 활동 반경을 넓히면서 로드킬 발생 빈도가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수달(Lutra lutra) 역시 로드킬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았다. 같은 기간 동안 총 228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수달은 하천과 해안 등 수역을 중심으로 생활하며, 물고기를 주 먹이로 삼는 반(半)수생 포유류다. 수달의 로드킬은 여름철에 가장 집중되고, 가을철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번식과 새끼 분산 시기와 맞물려 이동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 집중호우로 하천 수위가 높아질 경우, 수달이 다리 아래 수로를 이용하지 못하고 도로 위로 올라와 이동하다 사고를 당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수달의 로드킬은 해안 도로와 하천을 가로지르는 교량 인근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을 보였다. ◇도로 폭와 차량 속도가 중요한 변수 연구팀 분석 결과, 삵과 수달 모두 3~4차선 도로에서 로드킬 발생 확률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삵 로드킬은 주로 산림과 농경지의 경계에 위치한 4차선 국도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다. 4차선 도로가 한국 국도와 고속도로에서 가장 흔한 형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달 역시 4차선 도로처럼 규모가 큰 도로에서 로드킬을 당할 확률이 높았다. 삵의 경우 차량 속도와의 상관관계에서 특이한 점이 나타났다. 제한속도가 시속 40~50㎞ 구간과 시속 80~100㎞ 구간에서 사고 위험이 높았다. 시속 40~50㎞ 구간은 주로 농어촌 지역의 소규모 도로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관련이 있다. 이에 비해 시속 80~100㎞ 구간은 고속도로나 주요 국도처럼 빠른 속도로 주행하는 구간이고, 이런 도로에서 사고 확률이 급격히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달은 차량 속도 자체보다는 수역과의 거리나 고도 등 서식지 환경 변수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수달 역시 하천을 가로지르는 교량 근처나 해안 도로처럼 차량 속도가 빠른 구간을 지날 때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구조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 결국, 교통량이 매우 많은 도로는 동물이 접근을 기피하게 만들지만, 적당한 교통량과 높은 주행 속도가 결합된 구간은 동물이 도로에 진입했다가 피하지 못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다. ◇도로는 '이동 경로'가 아니라 '장벽'이 됐다 삵과 수달은 단순한 야생동물이 아니라, 생태계의 균형을 지탱하는 상위 포식자다. 이들의 감소는 생태계 전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팀은 로드킬의 근본 원인으로 도로 건설에 따른 서식지 파편화를 지목했다. 야생동물들이 먹이를 찾고 짝을 만나기 위해 이동해야 하는 경로를 도로가 가로막으면서, 도로 횡단이 불가피한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차선이 넓고 차량 속도가 빠른 국도와 고속도로는 동물들에게 사실상 넘을 수 없는 장벽이자 고위험 지대로 작용한다. 이 문제를 개인 운전자의 부주의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다. 연구팀은 로드킬 저감을 위해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표적 관리 전략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삵의 경우, 산림과 농경지 경계부에 위치한 도로 구간을 중심으로 야생동물 유도 울타리와 생태 통로를 집중 설치할 필요가 있다. 수달은 하천과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수중 이동이 가능한 통로나 육상 언더패스를 설치해, 도로 위로 올라오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아울러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대책도 병행돼야 한다. 로드킬 다발 구간에 경고 표지판을 설치하고, 특히 사고 빈도가 높은 4차선 국도 및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속도 제한을 강화해 운전자가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설 연휴에도 수많은 차량이 도로 위를 오갈 것이다. 도로 위에서 아까운 생명이 희생되지 않도록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대형마트 새벽 배송 허용하면 ‘오염 불평등’ 그림자 드리울 수 있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대형마트의 영업 제한 시간 중이라도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이른바 '새벽 배송' 카드를 꺼내 들면서 유통업계의 판도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쿠팡 등 이커머스 기업의 급성장에 대응해 대형마트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배송 시간대의 변화가 환경과 건강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새벽 배송 확대는 단순한 유통 규제 완화가 아니라, 대기 오염과 환경 불평등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을 동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정교한 정책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밤에는 오염이 더 쌓인다"…토론토대 연구의 경고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최근 국제 학술지에 발표됐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의 시민·광물공학과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환경 과학 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에 발표한 '비(非)피크 시간대 상업용 배송이 대기 질 및 환경 정의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연구팀은 상업용 배송 트럭의 운행 시간을 낮에서 저녁·밤 시간대(비피크 시간대)로 전환할 경우, 대기 오염 물질의 농도와 공간적 분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정밀 분석했다. 분석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남부에 위치한 광역 토론토 및 해밀턴 지역(Greater Toronto and Hamilton Area, GTHA)이다. 그 결과, 배송 시간이 밤으로 옮겨지면 낮 시간대 교통 혼잡이 완화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대기 질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절반에 불과했다. 밤 시간대에는 오히려 대기 오염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주목한 핵심 요인은 '대기 안정성'이다. 낮에는 태양 복사열로 인해 공기가 활발히 위아래로 섞이며 오염 물질이 확산한다. 반면 밤에는 지표면이 식으면서 대기가 안정화되고, 오염 물질이 퍼질 수 있는 혼합 경계층이 매우 얕아진다. 이로 인해 디젤 트럭에서 배출된 오염 물질은 공기 중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지표면 근처에 정체된다. 특히 블랙 카본(BC)과 이산화질소(NO₂)와 같은 자동차 기인 오염 물질은 밤과 새벽 시간대에 농도가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연구팀은 비피크 시간대 배송 시나리오에서 하루 평균 블랙 카본 농도가 소폭 상승하거나, 낮 시간대의 개선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류센터와 도로 인근은 '오염 핫스팟' 이러한 영향은 모든 지역에 고르게 나타나지 않는다. 물류센터, 대형 유통 허브, 고속도로 인근은 트럭 통행이 집중되며 대기 오염의 '핫스팟'이 되기 쉽다. 연구에 따르면 도로 화물 운송은 전체 주행 거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질소산화물(NOx) 배출의 약 65%, 초미세먼지(PM2.5) 배출의 약 69%를 차지할 정도로 오염 기여도가 높다. 특히 새벽 배송처럼 야간·새벽 시간대에 트럭 운행이 집중될 경우, 이들 지역 주민은 밤의 대기 정체로 인해 더 높은 오염 농도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야외 활동 여부와 관계없이 실내 공기 질 악화로 이어져 장기적인 건강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연구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 문제다. 캐나다의 경우 물류 거점이나 고속도로 인근에는 이민자, 저소득층 등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낮 시간대 배송 감소로 인한 대기 질 개선 효과도 상대적으로 크게 누리지만, 동시에 밤 시간대에 집중되는 오염 증가의 피해 역시 가장 직접적으로 감내하게 된다. 그 결과, 배송 시간 조정이라는 정책 변화가 지역 간, 계층 간 대기 오염 노출의 불평등을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야간과 새벽에 근무하는 배송 노동자들은 업무 특성상 대기 오염 물질이 지표면에 정체되는 시간대에 오염원이 발생하는 도로 위에서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트럭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 물질은 교통 관련 대기 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 사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건강에 해롭다. 짧은 시간의 노출이라도 장기적인 건강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해법은…전기차 전환과 경로 재설계 연구팀은 새벽 배송 자체를 전면 부정하기보다는,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보완책을 전제로 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인 대안으로는 ▶디젤 배송 트럭의 전기차 전환 및 친환경 차량 도입 ▶주거 밀집 지역과 소외 계층 거주지를 피한 야간 배송 경로 재설계 ▶물류센터 주변 지역의 대기 질을 고려한 공간적 형평성 평가 ▶초단기 배송을 당연시하는 소비자 기대치 조정 ▶충전 인프라 구축과 친환경 물류에 대한 정부 인센티브 확대 등이 제시됐다. 특히 배송 차량의 전기차 전환은 블랙 카본과 질소산화물 배출을 거의 제거할 수 있어, 새벽 배송으로 인한 대기 오염과 건강 피해를 구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해법으로 꼽힌다. 대형마트 새벽 배송 허용은 유통 경쟁력 강화라는 경제적 논리만으로 평가할 사안이 아니다. 배송 시간대의 변화는 특정 지역 주민의 건강권과 직결되고, 물류 시스템 전반의 환경 부담을 재편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지적이다. 국내에서도 새벽 배송 확대를 논의할 때, 쿠팡과의 경쟁 구도나 소비자 편의성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대기 오염의 공간적 불평등과 환경 정의 문제를 함께 고려하는 정책적 시야가 요구된다. 지속 가능한 유통 혁신은 속도 경쟁이 아니라, 그 이면의 사회적 비용까지 계산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낙동강변 공기에서 남세균 독소 불검출…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지난해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낙동강 주변 공기 중에서 남세균 독소를 분석했으나, 모든 시료에서 독소가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세균은 녹조의 원인 생물로 마이크로시스틴 등 인체에 해로운 조류 독소를 생산한다. 조류 독소는 간 독성, 생식 독성 갖고 있어 인체에 해롭다. 기후부는 지난해 환경운동연합과 낙동강네트워크, 경북대 등 시민사회단체와 공동으로 낙동강 본류 5개 지점의 공기 중 남세균 독소를 조사한 결과, 모든 조사 지점에서 조류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MC) 6종이 검출 한계 미만(불검출)으로 확인됐다고 10일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조사가 녹조가 수그러든 9월 이후에 진행됐고, 해외에서도 공기 중 조류독소 검출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이번 조사 결과만으로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 공동 조사는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가 지난 2024년 여름 낙동강 주변 주민과 환경활동가 등 97명을 조사한 결과, 46명(47.4%)의 콧속에서 남세균 독소가 검출됐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시민들 사이에 건강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기후부는 지난해 봄부터 시민사회와 공동조사를 추진했고,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난 가을에야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조사는 9월 15~25일 사이 ▶대구 화원유원지 ▶대구 달성보 선착장 ▶경남 창녕 남지 유채밭 ▶창원 본포 수변공원 ▶김해 대동선착장 등 5곳에서 진행됐다. 수변경계로부터 5m 이내에 채집 장치를 설치해 공기 시료를 채취했고, 별도로 강물(상수원수) 시료도 채취했다. 강물·공기 시료는 시민단체 측인 경북대 연구진과 기후부 국립환경과학원의 의뢰를 받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콘트롤센터에서 분석했다. 분석 결과, 5개 지점의 공기 시료 20개 모두 검출한계 미만이었다. 이에 비해 강물(원수) 시료에서는 마이크로시스틴이 불검출부터 최대 328ppb(㎍/L)까지 검출됐다. 분석에 참여한 경북대 이승준 교수는 “녹조가 줄어드는 시기에 조사를 실시했고, 일부 채집일에는 비가 내리는 등 최적의 실험 조건은 아니었다"면서 “공기 속 독소 채집 시간도 2시간으로 짧았다"고 말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17일의 경우 대구는 6.6㎜, 북창원에는 1.1㎜, 기헤에는 2.6㎜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시료 채취 과정에서 풍향이나 풍속 등도 고려하지 않았다. 조사 지점별로 강물에서 검출된 조류 독소 6종의 농도를 보면, 화원유원지가 최대 16ppb, 달성보 선착장에서는 최대 0.36ppb, 남지 유채밭에서는 최대 328ppb, 본포 수변공원에서는 최대 5.34 ppb, 대동선착장에서는 최대 8.94ppb를 기록했다. 이번 강물 조사에서 나온 최대치 328ppb는 기존에 기후부(환경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수치를 크게 웃돈다. 지금까지 정부가 밝힌 수치는 2022년 7월 25일 낙동강 매리지점 수심 0.5m 표층 시료에서 검출된 41.9ppb, 같은해 8월 8일 같은 지점의 혼합시료 47.3ppb가 최고였다. 328ppb일 경우 정수장에서 99.7% 이상 제거해야 세계보건기구(WHO)의 마이크로시스틴 먹는물(수돗물) 수질기준(1ppb 이하)를 달성할 수 있다. 한편, 환경단체는 지난 2022년 여름 낙동강물에서는 조류독소 농도가 최대 3000~4000ppb 수준으로 검출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환경단체는 효소결합면역항체법(ELISA) 키트를 이용해 200여 가지의 마이크로시스틴 전체 농도를 분석했다. 만약 조류 독소 농도가 4000ppb라면 99.9%를 제거해도 먹는물 수질 기준을 초과하게 된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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