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에너지가 경제다] 반도체·LLM·데이터센터·전력인프라 생태계가 ‘K-AI 경쟁력’

인공지능(AI)이 산업과 경제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경쟁의 무게중심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더 똑똑한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을 넘어 AI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효율적으로, 지속적으로 운용할 수 있느냐가 기업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기준으로 떠올랐다. 그 과정에서 반도체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대규모 언어 모델(LLM), 데이터센터, 전력기기 인프라, 스마트팩토리와 가전으로 이어지는 에너지 집약형 산업 생태계가 AI 경쟁의 실체로 부상하고 있다. 2026년 새해를 맞아 AI는 더 이상 소프트웨어 산업에 머물지 않는다. 에너지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제조·인프라 경제'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AI 시장이 본격적인 상용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경쟁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초거대 AI 모델을 학습하고 서비스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연산 능력과 전력이 필요하다. GPU 확보, 반도체 공급망, 데이터센터 구축 역량, 전력 인프라까지 갖추지 못하면 AI 전략은 지속될 수 없다. 업계에서는 “AI 경쟁은 결국 누가 더 많은 전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AI를 운영하느냐의 싸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AI 관련 투자가 늘어날수록 전력비용과 인프라 부담이 급증하면서, 기술력 못지않게 운영 효율과 비용 구조가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AI 산업의 핵심 축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며 글로벌 빅테크의 AI 인프라 구축에 필수적인 공급자로 자리 잡았다. 삼성전자 역시 첨단 공정과 AI 반도체 역량 강화를 통해 파운드리와 메모리 전반에서 AI 대응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AI 반도체 경쟁은 단순한 성능 향상이 아니라 전력 대비 성능, 즉 에너지 효율의 싸움이다. 전력 소모가 큰 AI 연산 환경에서 효율이 낮은 반도체는 곧바로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국내 기업들이 AI 반도체를 미래 먹거리로 삼는 이유도, 기술 경쟁력을 넘어 에너지 효율을 포함한 종합 경쟁력 확보에 있다. 해외 빅테크가 주도하는 LLM 시장에 맞서 국내 기업들은 한국어와 산업 특화 모델을 앞세운 '소버린 AI' 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를 기반으로 한국어 특화 AI 생태계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추론 능력을 강화한 '하이퍼클로바X 씽크'를 공개하며 GPT-4.1과 유사한 수준의 성능을 입증했다. 한국어 벤치마크에서는 오픈AI를 앞서는 정확도를 보였다. 특히 소형 모델 '하이퍼클로바X 시드'를 오픈소스로 공개해 출시 한 달 만에 30만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했다. 기존 100B급 모델을 3분의 1 수준으로 경량화하면서도 성능은 개선해 운영비용을 50% 이상 절감하는 성과도 거뒀다. LG그룹은 LG AI연구원에서 개발한 초거대 AI '엑사원(EXAONE)'을 중심으로 '전문가 AI'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각 산업군에 특화된 AI 전문성을 강화해 그룹 핵심 사업의 생산성과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AI 데이터센터(DC)는 더 이상 단순한 서버 공간이 아니다. 대규모 전력을 소비하며 24시간 가동되는 'AI 공장'에 가깝다. 실제로 데이터센터 건설과 운영을 둘러싸고 전력 확보와 지역 수용성, 인프라 투자 문제가 새로운 산업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AI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서는 모델 개발뿐 아니라 데이터센터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에너지 기반 확보가 필수 조건이 됐다. 이 가운데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통신망을 기반으로 한 인프라 경쟁력을 앞세워 데이터센터 설비 확대와 기술 고도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6월 아마존과 공동으로 약 7조원을 투자해 울산에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KT는 삼성SDS가 주도하는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으며, 네이버클라우드·카카오 등과도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경북센터를 비롯해 목동·분당 등 전국 15개 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이다. LG유플러스는 오는 2027년 준공을 목표로 파주에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를 신설하는 한편, 기존 평촌2센터의 2·3단계 증설을 병행하며 수도권 AIDC 경쟁에 본격 가세했다. AI 확산의 또 다른 축은 전력기기 산업이다. AI 데이터센터와 스마트 제조시설이 늘어나면서 변압기, 차단기, 배전 설비 등 전력기기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국내 전력기기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수주를 확대하며 실적 개선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2024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0억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25% 이상 성장했다. 현재 전 세계 80여 개국에 전력기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LS일렉트릭은 2029년까지 미국 동남부 지역 신재생에너지 발전소에 525킬로볼트(kV) 초고압 변압기를 공급한다. 해당 설비는 인근 대형 데이터센터의 주요 전력 공급원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유럽 전력기기 시장에서 고압 차단기 공급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며 입지를 넓히고 있다. 일진전기 역시 영국 데이터센터용 초고압 변압기 수주를 계기로 유럽과 중동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AI 투자가 늘어날수록 전력망 고도화와 고효율 설비 투자는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전력기기 산업은 AI 시대의 조용하지만 확실한 성장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산업계는 제조 공장을 AI 기반 스마트팩토리로 전환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해 자동차, 조선 등 전 산업군에서 AI를 생산라인에 적용하며 미래 제조 혁신을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GPU를 활용해 반도체 공장을 '반도체 AI 팩토리'로 전환한다. 향후 5만개 이상의 GPU를 투입해 AI 팩토리 인프라를 확충하고, 옴니버스 기반 디지털 트윈 제조 환경 구현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고전력 AI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피지컬 AI 애플리케이션 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로봇과 AI를 결합한 산업 기술을 검증하고, 이를 실제 제조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사전 단계다. 조선업계 역시 AI와 로봇을 앞세운 스마트 조선소 전환 경쟁에 돌입했다. 가전 분야에서도 AI는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냉장고·세탁기·에어컨·TV 등에 AI를 적용해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학습하고 에너지 소비를 자동으로 최적화하는 기능을 고도화하고 있다. 사용자가 부재중일 때 전력을 조절하거나, 요금이 높은 시간대를 피해 작동을 분산하는 기능은 가전이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가정용 전력 관리자'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장 예측과 부품 수명 관리, 에너지 사용 리포트 기반의 서비스 확장 역시 AI 가전의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AI 시대의 경쟁은 결국 에너지와 산업 인프라를 누가 선점하느냐로 귀결된다. 반도체에서 시작해 데이터센터, 전력기기, 제조와 가전으로 이어지는 AI 연관 산업은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며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다. 2026년, AI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리고 그 AI를 움직이는 힘은 전력과 산업 기반이다. AI 시대, 에너지가 곧 경제다. 국내 기업들이 축적해온 제조 역량과 인프라 경쟁력이 AI 시대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지,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AI시대, 에너지가 경제다] 나라도, 기업도 ‘AI 패권 경쟁’…한국 ‘3강 도약’ 사활 걸었다

새해에도 인공지능(AI) 시장은 빠르게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빅테크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AI 열풍'이 지속되는 가운데 제조업 분야에서도 본격적으로 AI를 공급망 전반에 접목하기 시작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먼만큼 민·관·학 협력에 조금 더 속도를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주요국은 AI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미국이 기술력과 자본 측면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는 가운데 중국이 뒤를 추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3강 도약'을 목표로 활로를 모색 중이다. 지난해 기준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의 AI 관련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55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아마존 한 곳의 연간 투자액만 놓고 보면 미국 전체에서 석유·가스 시추 등을 위해 쓴 에너지 섹터 총지출보다 큰 수준이다. AI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넘어 전력망과 데이터센터라는 거대 물리 인프라를 독점하려는 '에너지 및 영토 전쟁'으로 변모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AI 연산 능력을 H100 환산 수치로 비교해 보면 미국이 약 3970만개로 1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은 약 510만개 수준으로 글로벌 4~5위권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고,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도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다만 2024년 AI 민간 투자액 상위 10위를 국가별로 뽑았을 때 우리나라는 10위권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이 시기 미국의 AI 민간 투자 규모가 1090억달러로 한국(13억달러)의 80배를 넘는 수준이다. 미국을 제외하면 중국, 영국, 스웨덴, 캐나다, 프랑스, 독일, UAE,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등이 경합하고 있다. 전세계 우수 인력과 자본이 집중된 미국 실리콘밸리는 AI를 통해 재도약을 도모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경제연구소인 The Bay Council Economic Institute 소속 션 란돌프 시니어 디렉터는 지난해 11월 대한상공회의소와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개최한 '한-미 혁신생태계 및 AI 미래전략' 세미나에 참가해 미국의 현 상황을 전했다. 란돌프는 “2024년 전세계 벤처투자액 중 AI분야가 37%를 차지하며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며, 특히 미국 내 AI 투자의 76%가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집중됐다"며 “2024년 전세계 AI 투자 유치액 기준 상위 5위를 기록한 기업들도 모두 이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 등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161개사 중 64개사(40%), 펜타콘 기업(기업가치 50억달러 이상) 79개사 중 45개사(57%)가 소재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혁신생태계가 가장 잘 구축된 지역으로 꼽힌다. 미국, 중국, 프랑스 등 주요국은 안정적인 정책 환경에서 AI에 자본을 집중 투자해 왔다. 반면, 한국은 AI 투자 속도가 뒤처져 있는 실정이다. 우리 정부가 최근 1만3000여장의 최신 그래픽장치(GPU)를 확보한 것과 달리 미국은 민간기업인 오픈AI 한 곳에서만 2024년 기준 GPU 모듈 H100를 72만장을 가동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더 눈여겨봐야 할 부문은 2026년부터 AI와 제조업의 접목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인력·자본 부족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는 형국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504개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해 말 발간한 '기업의 AI 전환 실태와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82.3%가 'AI를 경영에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대기업(49.2%)보다는 중소기업의 활용도(4.2%)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투자비용에 대한 부담 수준을 묻는 질문에 기업의 73.6%는 '부담이 된다'고 답했다. AI 전환 수요가 늘면서 '인재 구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AI 활용을 위한 전문인력이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기업의 80.7%가 '없다'고 했다. 'AI 인력을 어떻게 충원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도 응답기업의 82.1%가 '충원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대한상의 보고서는 한국의 AI 인재가 2만1000명 수준으로 △중국 41만1000명 △인도 19만5000명 △미국 12만명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 우리 정부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단 오는 2030년까지 피지컬 AI 분야 1위 달성을 목표로 핵심 기술과 데이터를 확보해 나가기로 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최근 'AI 액션플랜'을 발표하고 관련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정부의 계획은 제조업 등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분야의 인공지능전환(AX)을 가속화하고 AI 전주기와 연관된 수출 확대에 힘쓴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방 AI 데이터센터 구축 등 국방 AX를 가속화하고, AI 기반의 K-콘텐츠 창작·제작 생태계를 활성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부는 AI 학습에 필요한 원본 개인 정보와 저작물 활용이 권리 침해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제를 정비하기로 했다. 관련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여러 부처에 걸친 중복 사업을 효율화하고 초·중·고 학교의 연속적인 AI 필수 교육 체계를 수립하기로 했다. 나아가 'K-AI' 특화 시범도시를 단계적으로 조성하는 한편 노동, 복지, 교육, 기본 의료 등을 포함한 'AI 기본사회 추진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글로벌 성과가 있었다. 지난해 10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부대행사 'APEC CEO 서밋'에 참석한 엔비디아 젠슨 황 CEO와 '국가 차원의 AI 동맹'을 체결한 것이다. AI 동맹에 따라 엔비디아는 우리나라 정부 및 4대 기업에 블랙웰 등 최신 GPU 총 26만장 이상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는 전세계 국가 단위 인프라 중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엔비디아도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AI 허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결과로 풀이된다. 당시 젠슨 황 CEO는 최태원 SK그룹 회장(대한상의 회장)으로부터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웨이퍼를 선물 받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는 “삼성의 제조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며 로봇 칩 생산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정상회의 결과물로 채택된 'APEC AI 이니셔티브'도 눈길을 끈다. 당시 회의에서는 21개 회원국이 사상 최초로 AI 공동 비전에 합의했다. 그 중심에 한국의 제조 역량과 엔비디아의 기술력이 결합된 모델이 제시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미국과 중국이 'AI 패권'을 놓고 격돌하는 가운데 한국이 엔비디아와 결속을 통해 AI 중립 지대이자 핵심 거점으로서의 지위를 굳혔다는 평가로 일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일단 한국이 AI 벤처투자 유치 세계 9위인데 글로벌 시장 비중은 1%에 그친다는 사실이 부각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운영하는 'AI정책저장소'(AI Policy Observatory) 자료를 보면, 지난해 1~3분기 기준 전세계에서 AI 분야에 투입된 벤처투자액은 총 1584억달러로 집계됐다. 10년 전인 2015년 400억달러에 비해 약 4배 증가한 수치다. 전체 벤처투자액 중 AI 분야에 투자된 비중은 2015년 20%에서 지난해 55.7%까지 뛰었다. 생성형 AI가 본격화된 2023년을 기점으로 급증했으며, 글로벌 벤처투자의 절반이상이 AI로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별로 보면 2025년 AI분야 벤처투자액 1584억달러 중 72%인 1140억달러가 미국기업에 투자됐다. 직전 2024년에 해당비중이 64.4%였는데 쏠림이 더욱 커진 것이다. 지난해 기준 AI 분야 벤처투자 유치 2위 국가는 영국으로 115억달러를 기록했다. 3위는 90억달러의 중국이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15억7000달러로 9위를 기록했고, 이는 미국의 약 1.4%, 중국의 17.4% 수준에 해당한다.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에서 우리 스타트업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내 여건을 고려한 스타트업 집중 육성과 규제환경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자현 KDI 연구위원은 “AI 반도체 팹리스와 로보틱스·제조 현장에 결합된 피지컬 AI 등 우리나라가 상대적인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중심으로 유망한 AI 스타트업의 스케일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구 연구위원은 “거대언어모델(LLM) 및 AI 활용 서비스 분야에서는 정부의 보다 과감한 선구매를 통해 기업들이 실질적인 트랙 레코드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글로벌 대규모 투자 유치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선도적인 스타트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는 모험자본의 확충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AI시대 기술 발전 속도에 맞는 경쟁정책 패러다임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지난해 11월 한국공정거래조정원, 한국산업조직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AI·디지털 혁신과 경쟁정책' 정책심포지엄에서 정철 한경연 원장은 “AI가 산업지형을 바꾸는 만큼 정부와 기업이 함께 '공정하면서도 유연한 경쟁의 새 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적극 공감했다. 유민희 한경연 연구위원은 “복잡한 경쟁이슈로 인해 시장 불확실성 확대와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 정부는 공정성과 투명성을 원칙으로 하되 산업계의 자율규제와 공동협약을 병행해 혁신과 공정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AI 경쟁정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경쟁당국은 예측가능성과 신뢰를 높여 혁신을 지원하는 파트너로 발전하고 AI 산업의 특성과 데이터 분석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신년호]탄소로 돈 버는 시대: 2026년 대한민국 ‘탄소 자본주의’ 원년

21세기의 4분의 1을 뒤로 하고 새로 시작하는 2026년. 세계 경제는 '탄소'라는 말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탄소가 새로운 '화폐'로 등장하고 있다. 한때 무거운 짐이자 골칫거리로만 여겨지던 온실가스는 이제 기업의 손익계산서에 직접 반영되는 비용이자 동시에 핵심 자산이 됐다. 온실가스를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하고 줄이느냐가 기업가치와 생존을 가르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배출권 거래제(ETS)의 본격적인 강화, 기후테크(기후관련 기술)의 산업화, 자발적 탄소시장의 신뢰 회복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탄소를 줄이면 돈이 된다'는 공식이 현실이 되고 있다. 2026년은 이 거대한 탄소 경제가 제도·산업·금융 전반에서 완성형으로 진입하는 이른바 대한민국 '탄소 자본주의'의 원년이 될 전망이다. ◇ETS의 룰이 바뀐다: 탄소, 가장 직접적인 '자산'이 되다 탄소가 가장 명확하게 '돈'으로 바뀌는 무대는 역시 ETS다. 한국은 2026년부터 제4차 배출권 거래제 계획기간(2026~2030년)에 진입하면서 지난 20년 동안 운영했던 제도의 골격 자체를 바꾼다. 한국은 2015년부터 ETS를 시행하고 있는데, 현재 철강·시멘트·정유·발전·화학 등 700여 개 기업이 대상이다. 그동안 한국 배출권시장은 과잉 할당 문제로 톤당 1만 원 내외의 '글로벌 최저가' 시장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었다. 이는 유럽연합(EU)의 톤당 약 10만 원을 넘는 가격에 비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기업이 온실가스를 줄이도록 하는 실질적 감축 유인으로 작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제4차 ETS 계획기간 동안 배출허용총량을 이전보다 22.5% 줄인 23억6299만 톤으로 설정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 관계자는 “과도한 총량 설정과 무상할당 관행이 내재적 공급 과잉을 초래했다"면서 “공짜 배출권이 남아도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배출권을 돈 내고 구매해야 하는 유상할당의 대폭 확대다.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은 2026년 15%에서 2030년 50%까지 단계 확대되고, 비발전 부문 역시 10%에서 15%로 상향된다.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 누출 업종은 무상할당이 유지되지만, 판단 기준이 기존의 '비용 발생도'에서 '탄소집약도' 중심으로 정교화됐다. 새로운 탄소 감축 기술을 적용했을 때의 탄소집약도(단위 제품당 실제 배출량)를 무상할당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탄소누출 업종이란 기후 규제가 강화될 경우 생산비 상승으로 공장이 규제가 느슨한 해외로 이전해 버리는 산업을 말한다. 가격 신호도 급변하고 있다. 에너지·환경 컨설팅기업인 나무이엔알(NAMU EnR)은 국내 배출권 가격이 2026년 말에는 2만8680원, 2030년에는 5만3699원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 역시 “톤당 4만~5만 원은 돼야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감축 기술에 투자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오는 11월 24일부터 배출권의 증권사 위탁거래가 허용되면서 시장의 성격도 급변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할당 기업뿐 아니라 은행과 보험사,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 금융기관이 직접 배출권 시장에 참여하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시장 활성화 수준을 고려해 배출권 선물시장 도입도 추진 중이다. 한편, 유상할당 수익금은 전액 기업 탈탄소 전환 지원 재원으로 투입된다. 정부는 이 재원을 활용해 탄소차액계약제도(CCfD) 도입도 본격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일정 기간 고정 탄소 가격을 보장하는 이 제도는 미래 탄소 가격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탄소산업에 대한 투자를 촉진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 기후테크, 탄소를 줄여 '매출'로 바꾸는 산업 탄소 감축이 비용이 아니라 신규 매출로 전환되는 중심에는 기후테크 산업이 있다. 탄소 포집 이용 및 저장(CCUS), 수소, 에너지저장장치(ESS), 인공지능(AI) 에너지관리, 저탄소 소재는 이제 명백한 '차세대 성장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미국·중국·유럽을 중심으로 100개 이상의 기후테크 유니콘 기업이 탄생, 기술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실리콘밸리의 딥테크 생태계를 기반으로 핵융합, 에너지 플랫폼 등 전 분야에서 47개의 유니콘을 배출했다. 중국은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과 거대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전기차·배터리 분야에서 유니콘의 70%를 차지하는 등 35개의 유니콘을 키워냈다. 미국 보스턴메탈의 경우 전기를 이용한 무탄소 제철 공정을 개발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브림스톤, 아일랜드의 에코셈은 석회석 대신 규산염을 활용해 공정에서 CO₂가 배출되는 것을 막는 시멘트를 상용화하고 있다. 캐나다 카본큐어는 콘크리트에 CO₂를 주입해 강도는 높이고 탄소는 영구 저장하는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 저탄소 공정을 선점한 기업은 배출권 비용을 절감하면서 '그린 프리미엄' 가격까지 확보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안토라에너지는 재생에너지를 고체 탄소 열배터리로 저장해 중공업 열원으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스웨덴의 하트 에어로스페이스는 순수 전기 기반으로 최대 200㎞ 비행이 가능한 하이브리드 항공기를 개발 중이다. 국내에서도 경기도가 2030년까지 기후테크 유니콘 3개사 육성을 목표로 클러스터·펀드·센터 3대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일부 국내 스타트업들도 글로벌 기술력을 입증하고 있다. 고려대 강용태 교수팀은 압축기 없는 냉각 기술로 냉장·냉방 전력 사용량을 최대 65% 감축하는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구현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 8월 한 보고서를 통해 “빌 게이츠 등 글로벌 벤처펀드 기관들이 기후테크 육성을 통한 글로벌 탄소 중립의 미래지도를 그리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관련 스타트업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테크는 향후 우리 산업구조 전환과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전략적 투자 분야라는 것이다. ◇ 자발적 탄소시장: '감축을 팔아 돈을 벌다'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ETS 밖에서도 '감축 실적을 현금화하는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기업과 개인이 자발적으로 감축한 성과를 탄소 크레딧(배출권)으로 발행해 거래하는 자발적 탄소시장(VCM)이다. 그동안 VCM은 '그린워싱' 논란으로 신뢰 위기를 겪었지만, 최근 시장은 '고품질 크레딧'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국제 자발적 탄소시장 무결성 위원회(ICVCM)의 핵심 탄소 원칙(CCP) 인증 크레딧은 현재 구매자의 40%가 선호하는 대표 상품이 됐다. 특히 직접 공기 포집(DAC), 바이오에너지-탄소포집저장(BECCS) 등 탄소 제거(CDR) 기반 크레딧에 대한 빅테크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30년 '탄소 네거티브' 달성을 목표로 막대한 제거 크레딧을 선구매하고 있다. 정부는 2026년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 플랫폼 출범을 준비 중이며, 거래 인프라는 한국거래소가 운영할 예정이다. 환경부는 무결성 원칙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국내 크레딧의 국제 신뢰도를 확보할 방침이다. 이 시장은 중소기업과 농가에도 새로운 수익원이 될 것으로 얘상된다. 농림축산식품부·대한상공회의소·NH농협금융은 '농업 분야 자발적 탄소시장' 협약을 지난 9월 체결했다. 논물 관리, 저탄소 농법 등을 통해 감축한 실적이 크레딧으로 발행돼 기업에 판매되는 구조다. ◇ 기업과 개인, 탄소 감축의 '이중 수익 구조' 2026년 본격 시행되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철강·시멘트·알루미늄 등 주요 품목에 사실상 '기후 관세'를 부과한다. EU는 철강·알루미늄 소재가 많이 사용된 완제품인 세탁기와 자동차 도어, 가스레인지, 정원 도구 등도 대상에 포함할 예정이다. 기업으로서는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는다면 수출에 큰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업은 감축 성과에 따라 대출금리 인하, 투자 유치 확대라는 금융 혜택을 얻겠지만, 반대로 탄소 관리가 부실하면 조달금리 상승이라는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이제 탄소는 기업 신용도의 핵심 평가 지표가 됐다. 한경협 등에서 “감축이 어려운 산업은 단기적으로 전환비용 폭탄에 직면한다"며 전환금융 정책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한편, 기후부는 '탄소중립 포인트제'를 확대할 방침이다. 2026년 관련 예산이 181억 원으로 늘었다. 고품질 재활용품, 공유자전거, 베란다 태양광 설치, 나무심기 등 직접 현금성 보상이 강화된다. 특히 주목할 변화는 개인 전기차에도 배출권 할당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기후부는 12월 초 배출권 인증위원회를 열고 전기차 탄소배출권 할당 대상에 개인이 포함되도록 하는 내용의 '탄소배출권 거래제 외부사업 방법론'을 개정했다. 전기차 1대당 연간 평균 감축량은 2~3톤, 배출권 가격이 톤당 2만 원이라고 했을 때, 전기차를 모는 개인도 전문업체에 의뢰해 연간 5만원가량의 돈을 챙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 2026년, '탄소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다 이제 '탄소 경제'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작동하고 있고, 한국 경제도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 2026년은 탄소가 회계·금융·기술·무역을 동시에 지배하는 경제 변수로 완전히 자리 잡는 해가 될 전망이다 '얼마나 성장했는가'보다 오히려 '얼마나 정교하게 탄소를 관리했는가'로 평가받는 시대에 열린 것이다. 이제 기업에게 탄소 관리는 두 가지 의미, 즉 비용 절감과 수익 창출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배출권을 덜 사고, 국경 탄소세를 피하며, 전력 비용과 금융 비용을 낮추는 것이 비용 절감이다. 감축 기술을 팔고, 크레딧을 발행하고, 저탄소 제품에 프리미엄을 붙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은 수익 창출이다. 이제 탄소 감축을 외면하면 세금·관세·금융비용이라는 '3중 비용'을 떠안게 되고, 반대로 적극 대응하면 배출권 수익·신산업 매출·금융 혜택이라는 복합 수익이 열린다. 이제 탄소는 불확실한 미래 변수가 아니라, 오늘의 명확한 경제 자산이다. 다만 과제도 분명하다. ▶배출권 가격의 정상화 ▶자발적 탄소시장의 신뢰 확보 ▶전환 금융의 대규모 공급 체계 정착이 이뤄져야 한다. 김정인 중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환경경제학)는 “EU의 CBAM 시행이나 국내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 강화 등의 상황을 볼 때 기후테크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2026년은 석유화학·철강 등 경제 여건이 어려워 기업으로서는 3중, 4중 딜레마에 처할 수 있다"면서 “기업이 각자도생(各自圖生)하기보다는 힘을 합쳐 기술 투자에 힘 쓰는 것이 팔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신년호] 전력 블랙홀 AI, 원전·재생에너지·수소 ‘총동원’ 필요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기술 산업에 머물지 않는다. 초거대 데이터센터와 AI 반도체 공장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전력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부상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AI를 두고 '전력 블랙홀'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문제는 이 블랙홀이 단순히 많은 전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24시간·365일 끊김 없는 안정적 공급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변화 앞에서 기존 전력 정책의 전제는 흔들리고 있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확대 전략만으로는 AI 산업이 요구하는 전력의 질과 양을 동시에 충족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진단이 잇따른다. 이에 따라 기후에너지부를 중심으로 원전·재생에너지·수소를 모두 동원하는 '청정 전력 총공세' 전략이 신년 에너지 정책의 핵심 방향으로 부상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한 곳이 소비하는 전력은 중소 도시 하나에 맞먹는다. GPU 서버 수만 대가 상시 가동되며 만들어내는 전력 수요는 단순한 피크 부하가 아니라, 연중 지속되는 기저 수요에 가깝다. AI 산업이 요구하는 전력 조건은 명확하다. kWh당 100원 이하의 가격, 무정전 공급, 그리고 저탄소·무탄소 전원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지 못할 경우, AI 기업들은 전력 조건이 유리한 해외로 이전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미국과 프랑스, 캐나다 등은 AI 전력 확보를 국가 전략 차원에서 다루며 원전과 수소, 재생에너지를 결합한 전력 공급 모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에너지 전환의 핵심 축이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은 본질적으로 간헐성을 가진다. 태양광은 낮에만 발전하고, 풍력은 기상 조건에 따라 출력이 급변한다.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결합하더라도 대규모·장시간 저장에는 막대한 비용이 따른다. 이 때문에 재생에너지는 AI 전력의 '주력 전원'이라기보다, 확대 가능한 보완 전원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업계에서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되, 이를 받쳐줄 안정적 청정 기저전원이 없으면 AI 산업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맥락에서 원전과 수소연료전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원전은 대규모·저비용·무탄소 전력을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전원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원전과 직접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하고, AI 데이터센터를 원전 인근에 배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형모듈원전(SMR)은 AI 시대에 특히 주목받는 대안이다. 기존 대형 원전보다 입지 유연성이 높고, 장기 고정 전력 계약에 적합해 데이터센터 전용 전원으로 활용 가능성이 크다. 수소연료전지는 분산형 전원으로서의 장점을 가진다. 도심이나 산업단지 인근에 설치할 수 있어 송전망 부담을 줄이면서도 24시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일본과 미국에서는 이미 데이터센터용 연료전지가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글로벌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노동석 서울대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원전과 수소연료전지는 재생에너지의 한계를 보완하는 핵심 전원"이라며 “AI 시대에는 전원 간 역할 분담이 아니라, 총동원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에너지부 내부에서는 전력 정책의 기준을 '탈원전'이나 '재생에너지 우선'과 같은 이념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AI 산업 대응이라는 현실적 기준으로 재설정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재생에너지·원전·수소는 서로 대체 관계가 아니라, 역할이 다른 보완적 전원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특정 전원을 배제하는 정책은 단기적인 정치 메시지는 될 수 있어도, AI 시대 산업 전략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전원 선택'이 아니라, '전원 총동원' 전략이라는 평가다. AI 전력 수요 대응은 향후 10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변수다. 전문가들은 신년을 맞아 국회와 정부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전력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선, 전력 정책의 목표를 RE100을 넘어 24시간 무탄소 전력(24/7 CFE)으로 전환해야 한다. 장부상 재생에너지 사용이 아니라, 실제로 연중 모든 시간대에 무탄소 전력을 사용했는지를 기준으로 산업 정책과 전력 조달 체계를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AI·데이터센터를 위한 전용 전력 공급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장기 고정가격 청정전력 계약, 원전·수소·재생에너지를 결합한 전력 패키지, 데이터센터 특화 전력 시장 등 새로운 제도 설계가 요구된다. 전원별 로드맵도 명확히 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원전 계속운전을 통해 가용 전력을 확보하고, 중기적으로는 신규 원전과 SMR 도입을 병행하며, 장기적으로는 수소연료전지와 재생에너지의 역할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아울러 한전 중심의 중앙집중형 전력 거버넌스, 정치화된 전기요금 결정 구조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지적된다. 전력거래소와 전기위원회의 독립성 강화, 송·배전망의 중립적 운영, 시장 신호를 반영한 요금 체계 개편 없이는 AI 시대 전력 시스템이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력은 이제 환경 정책을 넘어 산업 정책이자 안보 정책이다. 전문가들은 “신년 국회가 전기요금 논쟁이나 단기 수급 대책을 넘어, AI 시대 국가 전력 전략을 핵심 의제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AI 시대의 질문은 단순하다. 어떤 전원을 선호하느냐가 아니라, 이 전력으로 산업을 살릴 수 있느냐다. 2026년을 앞둔 지금의 선택이, 향후 10년 한국 산업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 정부가 제시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전력 정책의 기준을 '탈○○'이 아닌 'AI·산업 생존'으로 재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본 전제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원전·수소·저탄소 가스 등 모든 선택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조합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전문가들은 AI 전력 수요 대응이 향후 10년간 에너지 정책의 성패를 가를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공급 안정성, 가격 경쟁력, 탄소 감축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지 못하면 AI 산업은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AI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산업이다. AI를 키우겠다면 전력 정책도 그에 맞게 현실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청정 전력이라면 가리지 않고 활용하는 유연한 전원 믹스 전략이 신년 에너지 정책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신년 단독인터뷰] 우원식 “민생·경제·외교 안정이 국회 역할…탄소중립 모범 보일 것”

우원식 국회의장은 현재도 '국가 의전 순위 2위'의 요인(要人)이지만, 지난해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 해제 의결 절차를 차분히 이끌어 단숨에 '잠재적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우 의장은 특히 환경이라는 단어 조차 생소하던 1980년대부터 환경과 기후, 에너지 문제에 천착해 의정활동을 펴왔다. 이날 만난 우 의장은 최근 국회의 필리버스터로 인한 장시간 사회와 해외 출장 등으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기후와 에너지라는 '미래 지향적' 의제를 주제로 한 에너지경제신문의 이번 신년 인터뷰 요청에 국내 언론 중 유일하게 흔쾌히 응해줘 해당 사안에 대한 평소의 열정과 관심을 보여줬다. 우 의장은 이번 인터뷰에서 탄소 중립에 대한 기업들의 진정성있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년 지방선거에선 12.3비상게엄 주동자 사법처리 일단락·민생 경제 등이 주요 변수가 될 것이며, 개헌 문제도 반드시 논읙·처리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우 의장과의 일문 일답이다. - 요즘 피곤하실 텐데. ▲지난 3박 4일 동안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렸던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회의장 회의를 막 다녀와서 바로 또 필리버스터를 하니까, 2주일 동안 잠을 잘 못 잤다. 어제는 더 힘들었다. - 민생과 경제가 가장 중요한데, 12.3 비상계엄 전후 무엇이 달라졌나? ▲중요한 게 안정성이다. 나라가 안정돼 있다고 (인식되게)하는 게 중요하다. 비상계엄 전후의 환율을 봐라. 직전과 직후에 확 달라졌다. 나라의 안정성을 외국에서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따라서 국가 경제가 매우 다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일단은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돼서 한미 관세 협상이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 정상회의도 그렇고(잘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제 안정돼 있다고 보는 거 같다. 이제 거기서 한 발 더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도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해왔는데, 중국이 부상하고 미중간 갈등이 커지면서 어려움이 많아졌다. 석유화학같은 경우 중동에서 직접 제품을 만들어면서 우리의 경쟁력이 떨어졌다. 크게 봐서도 기존의 산업으로는 더 이상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라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중국 등 몇면 나라에 수출을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저나 이 대통령은 이것들을 다변화하고 미래 성장 기반으로 만들기 위해 인공지능(AI)이나 요즘 주목받는 방위산업 등을 육성하고 교역망을 다변화하는 것이 중요한 전환기에 있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시절에)글로벌한 기후위기 문제나 저출산·지역소멸 등의 위기에도 대응을 잘 못했다. RE100(신재생에너지100%)이나 탄소국경세라든지 이런 새로운 수출 규제가 만들어져가고 있는데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다. 재생에너지를 만드는데 있어서도 좋은 기술을 갖고 있지만 굉장히 뒤처져 있다. 국가가 그것들을 못하게 하고 어렵게 만든 측면이 있다. 이런 신산업들을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잘 만들어가는데 집중해야 한다. 불안정성이 굉장히 높던 상태를 안정화시켜가고 있는 전환기에 있다. 그런 면에서 이재명 정부가 방향을 잘 잡고 있다. - 내년 예산안 합의가 잘 이뤄졌다. 앞서 말한 점들이 잘 반영돼 있나? ▲그렇다고 본다. 새롭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으로 예산이 많이 배치되도록 했다. - (기후위기와 관련해) 미국이 발목을 잡지만 국제사회가 탄소 제로 쪽으로 가고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한다고 하는 거는 지구도 살리고 돈도 벌자 이거 아니냐? 탄소 중립으로 얼마큼 빨리 가느냐, 재생에너지를 얼마큼 많이 만들어내느냐 이런 것들이 앞으로 우리 산업 경쟁력하고 직결돼 있는 거다. 우리나라도 재생에너지를 확장하는 쪽에 집중해서 노력을 해야 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풍력산업법도 통과시키고 지금은 영농형 태양광 사업 활성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올해 확실히 속도를 내도록 준비하고 있다. - 취지는 좋지만 기업들이 각종 규제로 힘들어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기업들의 그런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마치 탄소 감축 활동이 큰 문제라도 되는 냥 접근했었다. 이제는 기업들도 재생에너지 전환 문제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다. 세계적인 무역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다는 걸 기업들도 잘 안다. 기업들이 조금 어렵다고 정책을 뒤로 미루거나 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다. 우리나라가 또 한다고 결정하면 굉장히 빠르지 않나. 이미 기술력도 있다. - 12.3 비상게엄때 담장도 넘고 긴급한 상황에서 신중하고 안정적으로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켜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그때 심정은? ▲'이거 잘못하면 죽는다' 싶었다. 내가 공관에서 잡히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냐. 국회에 오면서 혹시 여기 가다가 잡히는 거 아니냐(고 걱정을 많이 했다). 국회 3문으로 들어오다가 경찰이 있어서 억지로라도 들어가볼까 하다가 잡히면 안 될 것 같아서 담을 넘게 됐다. (해제 결의안 처리 과정에선) 국회의원들이 빨리 하자고 막 그러는데, 절차가 잘못되면 상대방도 다 검찰 출신들인데 다 무효라고 하지 않겠냐. '절차가 잘못되서는 안 된다, 이럴 때 일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했다. 또 시작할 때부터 새벽 동트기 전에 (해제 결의안을 처리해) 국회가 계엄군에 의해서 둘러 싸여 있는 것을 해소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만약 그때까지 상황이 계속되면 출근하는 시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고 그러다 보면 유혈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다. - 그 후 잠재적 대권 주자로 인식될 정도로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졌는데, 어떻게 보나? ▲(웃음) 그냥 내 일 잘하면 되는 거다. - 내년 6월 3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는데? ▲ 가장 주목할 것은 1월 중순 예정된 내란 관련 재판의 결과다. 현재의 정치적 대립은 평행선을 달리는 정쟁의 양상을 띠고 있지만, 사법부의 공식적인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 논란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국민들은 이 판결을 기준으로 현재까지의 정치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리실 것이고 향후 주요 정치 일정에도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12.3 비상계엄과 같은 위헌적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개헌 논의의 필요성도 커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권자들의 선택을 좌우할 핵심 기준은 '민생'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지속된 정치적 격랑 속에서 국민들은 일상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내란 국면에서 정국을 질서있게 개편하고 그 에너지를 민생 회복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역량과 비전을 제시하는 정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1월의 사법적 판단이 정국의 불투명성을 제거하고 지방선거를 통해 민심의 척도가 명확히 확인된다면, 현재의 극단적 대립 구도는 상당 부분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 정치권이 진영 논리에 휩싸여 갈등이 심각하다 ▲ 민주주의는 의견이 하나일 때 작동하는 제도가 아니라,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결정하고, 어디까지 서로를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약속이다. 지금처럼 사회적 갈등이 깊어질수록 그 기준은 더 분명해야 한다. 이제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양성 그 자체를 넘어,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다. 그 최소한의 기준은 크게 헌법과 법치에 대한 존중이고, 국회의 입장에서 보면 국회법이다. 국회의장 당선 이후, 첫 인사에서 정치권에 서로 의견이 달라도 합의된 최소한의 기준은 따르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헌법은 국회의 모든 의사결정이 국민주권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국회법은 이러한 헌법의 원칙을 실제 정치 과정에서 구현하는 규칙이다. 특히 국회법은 여야의 갈등이 첨예할수록 의사결정의 마지막 기준이 되는 만큼, 국회의장으로서 국회법의 틀 안에서 국회를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께서 정치권의 갈등을 보며 느끼시는 걱정이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정치에 필요한 것은 헌법과 국회법 등 우리가 정한 최소한의 원칙 안에서 갈등을 관리하고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의장으로서, 정치권이 치열하게 다투더라도, 최소한의 선만큼은 넘지 않도록 스스로 절제하고, 국민 앞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이 지켜지도록 역할을 다하겠다. - 지난해 취임 이후 개헌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지금의 87년 헌법 체제는 지난 38년간 변화된 대한민국의 사회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휴대전화는커녕 삐삐도 사용되지 않던 시절에 만든 헌법으로는 미래로 나아가기 어렵다. 헌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국민이 입게 된다. 인공지능(AI), 기후위기, 지방소멸, 저출생 고령화와 같은 새로운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헌법이 필요하다. 제10차 개헌에 대해서는 정치권, 시민 사회 등에서 여러 의제를 놓고 수많은 논의를 거쳤기에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다.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할 때는 모든 의제를 다 논의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에 국민적 공감대가 높은 최소한의 의제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국민적 공감대가 높은 광주 5·18과 부마 민주항쟁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지방소멸·지방균형발전을 위한 지방분권 강화와 같은 최소한의 의제 등은 여야가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6개월 정도 지났고, 12.3 위헌적 비상계엄 관련 재판 등의 1심이 결론을 향해 가고 있는 만큼, 곧 본격적인 개헌 논의가 이뤄지길 희망한다. -한국경제가 매우 어렵다. 앞으로 어떤 경제발전 모델과 글로벌 외교정책을 가져가야 하며, 국회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나? ▲ 경제와 외교 분야에서 국회가 해야 할 역할의 본질은 민생과 국익을 중심에 두고 갈등을 중재·조정하는 데 있다다. 사회 구성원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가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국회의 기능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2024년 비상계엄 사태 이후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한층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경제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를 복원해야 할 때다. 국가의 안정성을 높이는 일은 단지 갈등 관리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이자 앞으로의 국가 경쟁력이 될 것이다. 그 중심에는 국회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는 지난해 10월 15일 노사 대표단체가 참여하는 '국회 사회적 대화 기구'를 출범시켰다. 앞으로 국회는 노사 현안뿐 아니라 폭넓은 사회·경제 분야 의제에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제도화하고 안착시켜, 국가 안정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외교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한 실용적이고 실리적인 의회외교를 위해 노력하겠다. 비상계엄 선포에서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국가 위기 상황 속에서도, 국회는 중심을 잡고 건설적인 의회외교를 이어왔다. 비상계엄 해제 직후에는 주한 미국 대사와 소통하여 미국의 대한민국 의회에 대한 지지를 확인했고,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을 포함한 미국 블링컨 국무장관, 일본 이와야 외무대신 등을 만나며 대한민국의 대외신뢰도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이 있다면, 외교안보는 특정 정권이나 정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국가를 살리는 생존전략이라는 점이다. 중국, 몽골, 루마니아 등과의 의회외교가 보여주었듯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에도 한반도평화·기후·에너지·공급망·인적교류를 아우르는 포괄적 의제와 관련해 여러 국가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한국 기업을 비롯한 여러 경제 주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오랫동안 환경·기후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각종 활동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4대강과 물관리 일원화,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 가습기살균제 참사 등 의정 활동의 근간 중 하나가 환경이었다. 2011년에 발생한 노원구 방사성 아스팔트 사건으로 원전 안전에 대한 문제의식이 지속가능한 에너지정책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2018년 민주당 내 '기후변화대응 및 에너지전환산업육성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으로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활동을 했다. 국내 최초로 '민관협의회'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 수산업과 해상풍력의 공존이라는 성과를 만들어 내 '갈등 해결의 교과서'로 평가받고 있어 매우 뜻깊다. 최근에는 영농형태양광 갈등 해소를 위해 '광주 본량동 영농형태양광 민관협의회'를 구성해 농민들과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회가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국회의장에 취임하면서 22대 국회를 '기후국회'로 만들고, 그 첫 번째로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드렸었다. 지난 21대 국회에도 기후특위가 있었지만, 입법권과 예산심사 권한이 없어 단순한 업무보고만을 받으며 활동해 효용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번에 구성된 기후특위에는 탄소중립기본법, 배출권거래법에 대한 입법권과 기후대응기금에 대한 의견제시권을 부여해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정책을 만들고 큰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은 하나하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수소충전소 한 귀퉁이에 설치돼 있던 '기후위기시계'를 본관 앞 잔디로 옮기는 것을 시작으로, 경내 카페 다회용컵 전면 도입을 통해 지금까지 일회용컵 120만개를 줄였고, 공공기관 보다 5년 빠른 '2035 국회 탄소중립로드맵'을 수립했다. 내년부터는 국회 운동장과 주차장, 건물 옥상에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하고, 국회 도서관 그린리모델링도 시작하게 된다. 국회가 공공부문의 탄소중립 모범이 될 수 있도록 하나하나 차곡차곡 챙겨나갈 생각이다. - 신규 원전 건설을 놓고 여론이 나뉜다. 이재명 정권에서 공론화 통한 재결정을 얘기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 몇 년간 에너지정책이 너무 이념화, 정쟁화되어 버렸다. 객관적이고 투명한 논의가 필요하다. 정부가 공론화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충실한 공론화를 통해 국민의 집단 지성을 잘 모아내기 바란다. - 미국의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로 세계 탄소중립 연대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트럼프 1기 때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전 세계에 기후변화로 인한 실질적 피해 속출하는 상황에서 탄소중립의 가치가 RE100,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과 같이 실질 경제체계에 녹아들고, 녹색 산업을 위한 자본 투자가 꾸준히 확대되는 상황이다. 또한 많은 나라에서 재생에너지가 가장 저렴해지고 있어 이제 당위의 문제가 아닌 경제적 관점에서 국가와 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 되고 있기에 지금 잠깐 주춤하는 듯 보이는 현실은 일시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처지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꼴찌 수준의 재생에너지, 제조업 기반의 어려운 탄소 감축 여건 등 어려운 조건이지만, 지금을 '대전환의 골든타임'으로 삼아 성장 동력을 창출해야 한다. 김봉수 기자 bskim2019@ekn.kr

AI 시대, 에너지가 경제다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고, 11월엔 미국 중간 선거가 있다. 정치적으로 작년 못지 않은 격동의 한 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최대 관심사는 역시 경제이다. 올해가 '붉은 말'의 해인 만큼 우리 경제가 역동성을 회복하며 뜨겁게 타오르기를 모든 국민이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내수 침체의 장기화와 높아진 관세 장벽에 고환율까지 악재만 쌓이고 있다. 하지만 위기를 타개할 해법이 없는 건 아니다. 급성장하는 인공지능(AI)에 올라타는 것도 그 중 하나다. AI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활로가 될 수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UP) 등 핵심 AI 기술은 주로 미국이 보유하고 있지만 활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강점을 가진 산업에 AI를 성공적으로 접목한다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AI 시장 규모는 2024년 2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5년 뒤인 2030년 세계 AI 시장은 지금보다 적게는 수배, 많게는 수십 배 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거품론도 투자액 대비 수익 실현 시기가 늦어지고 있어 나온 것이지, AI 시장의 성장 자체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거대한 AI 시장에서 어느 한 분야에서만 주도권을 잡는다면 한국 경제는 다시 비상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역폭 메모리반도체(HBM) 시장에서는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문제가 있다. AI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면 값싼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거대한 양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 AI 컴퓨팅에는 엄청난 양의 전력이 필요하다. 낮은 비용으로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면 AI를 성장동력으로 삼기 힘들다는 뜻이다. AI 경제에서는 '에너지 집약'이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될 게 분명하다. 챗GPT와 제미나이 등 생성형 AI 모델은 기존 포털 검색할 때와 비교해 최대 30배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2022년 약 460TWh(테라와트시)에서 올해 1000TWh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23년 약 300TWh였던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30년에는 1500TWh로 5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해 12월 5일 이재명 대통령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한국은 AI 기술과 반도체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지만 이를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전력이 '약한 고리'라고 조언했다. 옳은 지적이다. 한국은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자원을 대부분 수입한다. 글로벌 물류가 마비되면 곧바로 에너지 위기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 원전과 신재생에너지가 있지만 이것만으로 급증하는 AI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초고압 직류송전(HVDC) 등 전력망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계통의 불균형도 너무 심하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전국 전력의 40%를 소비하면서도 전력 자급률은 60%대에 불과하다. 반면 원전과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는 해안 지역은 전기가 남아돌아 발전을 중단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력망을 더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주민 반발과 보상을 둘러싼 갈등으로 전력망 건설은 장기간 지연되기 일쑤다.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재명 정부는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비와 주민 반발 등을 극복하지 못하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은 에너지 안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화석 연료를 포함해 모든 에너지 자원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싼값의 전력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데이터 센터에 공급할 전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영구 폐쇄됐던 쓰리마일 섬 원전을 재가동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AI시대에는 에너지가 경제를 지탱하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값싼 에너지 확보와 전력망 구축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 가격 경쟁력과 공급의 안정성, 탄소 감축 등 상충하는 목표를 모두 충족하는 에너지 믹스의 '황금 분할선'을 찾는 게 관건이다. 이를 위해선 신재생에너지 뿐 아니라 원전을 포함해 모든 자원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올해는 비상하는 AI의 날개를 달고 우리 경제가 붉은 말처럼 다시 도약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신년 단독인터뷰] 우원식 “대전환의 시기, 기업도 탄소 중립 대비해야”

우원식 국회의장이 2026년 병오년 새해를 맞아 본격화될 탄소중립 규제 강화 흐름과 관련해 기업들에게 “무역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다"고 당위성을 강조하며 적절한 대응을 당부했다. 국회가 먼저 '탄소 중립의 모범'이 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올해 예정된 6·3 지방선거와 관련해선 12·3 비상계엄 관련 사법처리와 민생 문제가 주요 변수라고 예측했다. 또 지방선거에서 정치권에서 '합의 가능한' 최소한의 개헌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우 의장은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신년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환경운동가 출신인 우 의장은 인터뷰에서 기후위기에 따른 탄소 중립·에너지 전환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글로벌 기후 위기나 저출산·지역소멸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면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꼴찌 수준의 재생에너지(생산량), 제조업 기반의 어려운 탄소 감축 여건 등 어려운 조건이지만 지금을 '대전환의 골든타임'으로 삼아 성장 동력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업들도 탄소 중립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 의장은 “세계적인 무역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기업들도 잘 알고 있고 요즘은 굉장히 신경들을 쓰고 있다"면서 “기업들이 조금 어렵다고 (탄소 중립)정책을 뒤로 미루거나 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한번 하자고 결정을 하면 굉장히 빠르지 않나. 이미 기술력도 있다"고 덧붙였다. 신규 원전 논란엔 “에너지 정책이 너무 이념과, 정쟁화됐다"면서 “충실한 공론화를 통해 국민들의 집딴 지성을 잘 모아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내년 지방선거에 대해선 1월 중순 예정된 윤석열 전 대통령 등 주동자들에 대한 1심 판결과 민생 문제가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개헌 논의를 서둘러서 지방선거와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소신도 피력했다. 이밖에 국회 운영과 관련해 기후위기특별위원회 활성화, 태양광발전기 설치, 도서관 그린리모델링 등을 통해 공공부문의 탄소중립 모범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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