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현의 소재 탐구] 전동화 열관리 솔루션으로 부상…정유4사 ‘실적 효자’

윤활기유(Base oil)·윤활유(Lubricants)가 정유업계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정제마진 악화에도 실적 방어를 해준 데다 인공지능(AI)과 전동화에 필요한 열관리 솔루션의 핵심 재료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엔진 뿐만 아니라 각종 산업용 기계에 광범위하게 쓰일 정도로 물성이 우수한 윤활기유·윤활유가 산업 트렌드 변화에 대응할 잠재력이 크다. 이에 앞으로도 정유사들의 고부가 사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5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4사는 윤활유 사업으로 정유와 석유화학 사업의 실적 부진을 상쇄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정유4사의 윤활유 사업은 매출 비중이 10%도 안되지만 매출 대비 수익성이 높다. 정유4사는 지난해 윤활유 사업 영업이익과 영업이익률은 △SK이노베이션 6076억원(15.8%) △GS칼텍스 4912억원(26.2%) △HD현대오일뱅크 1943억원(18.2%) △에쓰오일 5821억원(19.4%)를 기록했다. 정유4사의 윤활유 사업은 실적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정유 부문과 석유화학 부문의 실적 부진을 상쇄했다. 정유 부문은 상반기 정제마진 하락으로 영업이익이 대폭 줄거나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석화 부문은 글로벌 공급 과잉과 중국과 중동의 석화산업 진출로 수출 부진과 영업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윤활유 부문만큼은 영업흑자를 유지했다. 그간 정유사들은 자동차와 산업용 기계에 들어가는 실린더나 관절 같은 곳에 넣는 윤활유를 만들어왔다. 정유사별로 △SK엔무브의 지크(ZIC) △GS칼텍스의 킥스(Kixx) △HD현대오일뱅크의 엑스티어(XTeer) △에쓰오일의 에쓰오일 세븐(S-Oil 7) 같은 브랜드를 내세워 고품질 경쟁력 강화에 열중하고 있다. 윤활유는 자동차와 산업용 기계의 부품 간 마찰을 줄여 작동을 원활하게 하는 물질이다. 윤활기유는 윤활유 원재료의 80%가량을 차지하는 성분이다. 윤활기유에 첨가제를 넣어 용도에 맞는 물성을 구현하면 윤활유가 된다. 윤활기유는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끓는점이 비교적 낮은 액화천연가스(LPG)나 휘발유, 경유 등을 먼저 고압에서 증류한 뒤 끓는점이 높아 남게 된 무거운 기름(중유 또는 잔사유)을 저압에서 증류해 만든다. 이후 수첨과 탈황 공정을 거쳐 다양한 물성의 윤활기유를 얻어낸다. 윤활기유는 황 함유량, 포화도, 점도지수 등 물성에 따라 그룹 I부터 그룹 V까지로 나뉜다. 황은 정유 제품의 대표적인 불순물로, 정제 과정에서 많이 제거할수록 순도가 높다는 뜻이다. 점도지수는 액체의 끈끈한 정도를 나타내는데, 용도에 따라 적정 수준이 다양하다. 그룹 I은 황 함유율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점도지수가 높아 산업용 기계를 충격과 부하로부터 보호하는 데 쓰인다. 그룹II는 수소 촉매 반응으로 다중결합을 깨 불포화 탄화수소를 줄이고 황 함유율도 낮춰 순도와 산화안정성을 강화한 것이다. 이보다 순도를 더 강화해 산화 안정성과 점도지수를 높인 그룹 III는 맑은 색상을 띠며 고온에도 점도 변화가 적다는 장점을 가진다. 그룹 IV는 원유 증류와 수첨 등 정제 과정만으로 만드는 그룹 I~III와 달리 인공적으로 합성해서 제조한다. 그룹 I~IV를 제외한 나머지 윤활기유는 그룹 V로 분류한다. 윤활기유와 윤활유가 다양한 산업군에 적용된다는 특성은 정유사들의 윤활기유 사업 확장 가능성을 키운다. 새로운 제조업 분야가 성장하면 이에 걸맞는 기계가 필요하고, 기계의 원활한 작동과 수명 연장을 위해서는 정유사들이 품질이 좋은 윤활유 제품을 기업들 수요에 맞게 선보여야 하는 구조다. AI가 발전하고 전동화(electrification)가 두드러지면서 필요성이 높아지는 데이터센터와 배터리가 대표적이다. 데이터센터와 배터리는 전력 소비로 발생하는 열을 외부로 적절히 방출하는 체계로 작동 효율과 안정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 데이터센터와 배터리 냉각 시스템용 윤활기유로는 그룹 III가 가장 적합하다. 불순물이 적고 열 교환 효율이 가장 높으면서 마찰도 작은 수준의 점도를 가지기 때문이다. 기름이라는 특성 때문에 데이터센터나 배터리의 전자부품을 훼손할 가능성도 물 같은 액체보다 낮다. 원유 정제 기술을 토대로 윤활기유 경쟁력을 확보해온 정유4사는 이미 윤활기유를 이용한 열관리 솔루션에서 가능성을 찾아 AI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GS칼텍스는 기존 데이터센터 액침냉각용 유체에 이어 지난해 10월 데이터센터용 직접액체냉각 유체를 출시했다. 중앙처리장치(CPU) 같은 데이터센터의 발열체에 냉각판을 불여 유체를 순환시키는 방식이다. 액체냉각 유체는 그룹III 윤활기유에 부식 방지를 위한 유기산(OAT) 첨가제를 더해 만들어진다.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11월 SK온과 SK엔무브를 합병한 것도 배터리와 윤활유 간 시너지가 의도로 꼽힌다. SK는 이전에 데이터센터 액침냉각용 윤활유 솔루션과 전기자동차 배터리 액침냉각 솔루션을 공개한 적이 있다. 양사가 배터리 셀을 모듈 없이 바로 팩 형태로 연결한 셀투팩(CTP) 기술과 액침냉각 윤활유 기술을 통합한 패키지 솔루션의 사업화를 추진 중이다. 전기차부터 에너지 저장장치(ESS), 데이터센터, 선박 등 다양한 산업을 겨냥한다는 의도다. HD현대오일뱅크는 글로벌 석유 기업 쉘사(社)와 세운 합작법인 HD현대쉘베이스오일를 통해 그룹 III 윤활기유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대산 공장에 증설 투자를 단행해 이르면 내년부터 전기차와 데이터센터 액침냉각 같은 고성능을 요구하는 윤활유 시장에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에쓰오일은 2000년대 초부터 그룹 III 윤활기유 대량생산 체계를 구축했고, 2년여 전에는 고인화점(섭씨 250도 이상) 액침냉각유 'e-쿨링 솔루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스마트그리드 기업 지투파워와는 액침냉각형 ESS 상용화와 공동 사업화를 준비 중이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정승현의 소재 탐구] 고부가화로 전기차·로봇산업 ‘성장판’ 자리매김

합성고무 원료인 부타디엔의 가격이 요동치고, 전방산업의 수요가 불확실해지면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합성고무 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고부가 합성고무 제품이 석화기업들의 수익성을 방어하는 효자 노릇을 맡고 있기에 시장 흐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와 의료기기 같은 산업이 발전할수록 더 고도화된 합성고무 제품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범용 제품의 수익성 부진에도 전방 산업의 수요에 따라 견조한 실적을 낼 수 있다. 합성고무가 첫 발명 당시 인류의 난제를 풀어줬던 것처럼 앞으로 첨단산업의 발전을 견인할 핵심 소재가 될지 주목된다. 9일 석화업계에 따르면, 중국 원자재 정보업체 선서스는 지난 7일 중국 시장에서 부타디엔의 톤(t)당 가격이 1만33.33위안(RMB/t)으로 석 달 전(11월 10월)과 비교해 45.4% 상승한 것으로 집계발표했다. 스티렌 부타디엔 고무(SBR)는 22.5% 상승한 1만3125위안으로 집계됐다. ◇NCC 폐쇄하려다 부타디엔도 공급 줄까 '주시' 부타디엔은 탄소 4개와 수소 6개로 이뤄지며, 탄소들 간 결합 중 양쪽 두 개가 이중결합(양쪽 원자가 전자 두 개씩 공유)으로 이뤄진 형태를 띤다. 부타디엔을 기본 원료로 다양한 반응을 거쳐 SBR이나 니트릴 부타디엔 고무(NBR) 등 여러 종류의 합성고무를 만든다. SBR은 스티렌과 부타디엔을 유화중합해 만든다. 물에 잘 안 녹는 두 물질을 계면활성제(비누 역할)과 함께 물에 넣으면 개별 분자 형태로 흩어지면서 서로 반응하는 식으로 폴리머(고분자) 형태가 된다. NBR은 아크릴로니트릴과 부타디엔을 유화중합하면 생성된다. 아크릴로니트릴의 질소 원자와 탄소 원자 간 강력한 '삼중 결합'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그동안 나프타분해설비(NCC)에서 나오는 에틸렌과 프로필렌, 부타디엔 같은 기초 유분과 SBR을 비롯한 범용 석화소재가 글로벌 석화시장에서 과잉공급되는 흐름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NCC 감축 기조가 나타나면서 부타디엔 공급이 덩달아 줄어들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1~10월 기준 부타디엔 수입량이 전년 동기보다 39% 증가했다. 동시에 유럽에서는 남부와 북서부 지역에서 NCC 4곳이 문을 닫았고, 내년 말까지 다우의 뵐렌 NCC와 토탈의 엔트워프 NCC를 폐쇄한다. 미국은 최대 수요처인 중국을 향해 관세 10%를 부과하고 있어 수출 여건이 녹록지 않다. 중국 내에서도 석화 생산설비 증설이 이어지지만 글로벌 공급 둔화 조짐에 시장 상황이 흔들리는 것이다. ◇EV 타이어부터 고성능 장갑까지…'고부가' 합성고무 그럼에도 합성고무가 첨단산업의 핵심소재 중 하나라는 점에서 석화기업들의 성장동력으로 꼽힌다. 대표적으로 금호석유화학은 고부가가치 합성고무 소재로 성장해 왔다. 지난해 매출 6조9151억 중 38.6%(2조6712억원)을 합성고무에서 냈고, 영업이익도 전체 2718억원 중 37.3%를 합성고무가 냈다. 범용 합성고무인 SBR과 니트릴-부타디엔 고무(NBR)는 각각 연간 26만3000톤, 9만2000톤을 생산할 수 있다. 고부가가치 품목인 용액 스티렌-부타디엔 고무(SSBR)과 니트릴-부타디엔(NB) 라텍스는 15만8000톤, 94만6000톤의 생산 능력을 보유했다. NCC를 기반으로 범용 소재부터 고부가 석화소재까지 생산하는 LG화학도 △부타디엔 고무(BR) 22만톤 △SSBR 8만톤 △NB라텍스 27만톤 규모의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다. 지난해에는 충남 대산 SBR 생산 설비를 멈추며 고부가 중심의 합성고무 사업 재편에 나섰다. 범용 소재 비중을 줄이고 고부가 소재 중심으로 석화산업 구조를 재편하면서 SSBR와 NB라텍스에 대한 주목도가 더 높아졌다. SSBR은 전기자동차(EV) 타이어에 적합하고,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에도 연비 효율을 높여주는 등 고성능 타이어 제조용으로 쓰인다. 스티렌과 부타디엔을 유화중합 대신 리튬계 촉매를 이용한 용액중합 방식으로 반응시켜 만들기 때문에 최종 완성된 소재에 불순물이 별로 남아있지 않고 성분 조절이 더 쉽다. NB라텍스는 얇으면서도 내구성과 내화학성, 내유성이 뛰어나다는 특성 때문에 의료용·산업용 장갑의 핵심 원료로 쓰인다. ◇20c 천연고무 대체제…21c 휴머노이드 필수재 '주목' 합성고무는 첨단산업 발전이라는 흐름과 같은 궤적을 밟아왔다. 합성고무가 호스 등 일상용 제품뿐만 아니라 차량 타이어, 의료용 장갑 같은 산업용 제품의 기초 재료로 쓰였기 때문이다. 원래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대량으로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고무나무 껍질에서 나오는 천연고무가 부족해지면서 개발됐다. 당시 자동차 타이어 같은 제품은 내열성과 고탄성 확보를 목적으로 유황을 섞은 천연고무로 만들었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독일과 미국이 석유를 이용한 고무 개발에 나서면서 SBR과 NBR이 탄생했다. 그랬던 합성고무가 최근 들어서는 SSBR로 EV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6년 전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할 때 의료용 장갑의 필수 소재인 NB라텍스 형태로 의료 체계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았다. 합성고무의 성분을 조절하거나 새로운 제조 방식을 발견한다면 물성이 더 우수한 것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합성고무의 역할이 더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휴머노이드 로봇 중심의 생산 체계인 '피지컬 AI'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외장재나 부품 연결 소재를 비롯해 로봇의 정교한 움직임과 전자부품 기밀성을 구현하는데 첨단 합성고무가 필요해졌다. 화학 반응과 외부 압력을 잘 견디면서 두께를 얇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합성고무가 최적의 소재로 꼽히는 것이다. 이충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리포트를 통해 “현재 자동차 연관 수요가 60~65%에 달하는 합성고무 산업에 로봇이라는 새로운 수요 시장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우리나라 합성 고무 생산 업체들의 미래에 긍정적 요소"라고 말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정승현의 소재 탐구] 전기차 움직이는 영구자석…中 탈피 ‘공급망 다변화’ 급선무

한국 제조업이 영구자석을 둘러싼 공급망 경쟁을 마주하고 있다. 전기자동차와 휴머노이드, 재생에너지 인프라 등 글로벌 전동화·저탄소 전환의 핵심 제품 속에서 영구자석이 전기를 동력으로, 동력을 전기로 바꾸는 필수장치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구자석의 강력한 자성을 구현하는 네오디뮴 등 희토류 자원 공급망이 가공 경쟁력을 내세우는 중국으로 쏠려 있어 한국을 비롯해 주요 제조국가들이 공급망 다변화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과 서구권 국가들이 뭉쳐 공급망 협력체를 모색하고, 미국이 핵심 광물과 희토류가 풍부한 그린란드를 넘보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제조업 강국인 한국은 정작 공급망 다변화를 통한 자원안보 대비가 부족했던 탓에 영구자석 공급망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다른 우방국가들의 공급망 다변화 노력에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지 영구자석 같은 핵심 제품의 전·후방 산업을 포괄한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전동화 핵심 소재…휴머노이드에도 쓰인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약 3억6353만달러어치의 영구자석을 수입했다. 영구자석은 말 그대로 자동차 같이 무거운 물체를 움직일 정도로 강력한 양극과 음극(자성)을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는 자석이다. 보통 자석은 산화철로 이뤄진 자철을 재료로 만들지만, 영구자석은 산화철 뿐만 아니라 여러 희토류를 더한다. 네오디뮴과 디스프로슘을 첨가한다. 네오디뮴은 강력한 자성을 만들어주고, 디스프로슘은 고온에서도 자성을 잃지 않게 해준다. 영구자석은 내연기관에서 벗어나 전기자동차 이용이 늘어나면서 전략적 중요성이 커졌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휘발유나 경유를 실린더 안에서 폭발시켜 동력을 확보하지만, 전기자동차는 배터리에 충전한 전기를 이용해 모터를 돌려야 동력을 낼 수 있다. 전기자동차 제조 역량과 배터리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영구자석이 없으면 완성차를 못 만든다. 현대자동차그룹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와 미국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옵티머스 가 등장하면서 주목받는 피지컬 AI도 영구자석 없이 국내 제조업에 안착하기 어렵다. 사람의 행동을 그대로 구현하려면 배터리 속 전기를 손, 발, 다리로 전달해 움직임으로 바꾸고, 센서로 주변 환경과 물체를 감지하면 영구자석을 통해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정교한 움직임을 여러 영구자석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에도 영구자석이 필수다. 원거리 전력망을 구축하는 데 주로 도입되는 풍력발전은 자연의 바람으로 돌아가는 날개의 움직임을 전기로 치환하는 식으로 전력 에너지를 생산한다. 자석의 자성이 강력할수록 전력 생산 효율이 더 좋다. ◇ 영구자석 수입 中 의존도 약 90%…'제2 요소수 사태' 올 수 있다 이처럼 영구자석은 전동화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하는데 필수다. 불행히도 영구자석의 필수 원료인 네오디뮴과 디스프로슘 뿐만 아니라 영구자석의 중국 의존도가 높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자석용 희토류 제련의 91%가 중국에서 이뤄졌다. 2035년에는 75%로 떨어질 전망이다. 말레이시아는 4%에서 9%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고, 오스트레일리아는 1%도 안 되는 비중에서 3% 수준으로 올라올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25일 낸 보고서 '글로벌 로보틱스 산업 지형 변화와 한일 공급망 비교 및 시사점'에 따르면 한국은 영구자석 주요 수입국 중 중국이 금액 기준 88.8%를 차지했다. 희토류 금속과 화합물 수입은 59.8%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 산업계는 배터리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공급망 다변화에 나섰다. 배터리는 리튬과 니켈, 흑연 등 주 원료를 어느 정도 호주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다변화할 수 있지만 광물 제련 면에서는 중국의 가격 경쟁력을 따라갈 수가 없다. 일본은 지난 2010년부터 광물 자원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영구자석의 경우 수입 국가를 필리핀과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로 다변화한 결과 지난해 1~11월 기준 대중 수입 비중을 23.9%로 낮췄다. 강천구 인하대 제조혁신전문대학원 교수는 “희토류 17종 중 영구자석에 쓰이는 5종에 대해 일본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목적으로 자체 가공 기술을 키워왔다"며 “2010년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분쟁을 겪은 이후 희토류와 핵심 광물 제련 기술과 재활용, 자원 투입 최소화 등 다방면으로 기술 역량을 준비해왔다"고 설명했다. ◇ 中 '수출 통제', 美 '그린란드 야욕' 등 글로벌 광물 공급망 불확실성 가중 미·중 패권경쟁 국면에서는 핵심 광물과 희토류 확보라는 의도 속에서 무역 분쟁과 지정학적 불안을 초래하기도 했다. 중국은 이미 핵심광물과 희토류 공급망에서 우위에 있다는 점을 외교·통상 무대에서 이용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 이후인 지난해 4월 대중 무역적자를 이유로 중국에 145%의 관세를 부과했지만 얼마 안가 30%로 낮춰 3달간 유예기간을 두고 협상하는 식으로 태도를 바꿨다. 이 배경에는 중국이 핵심 광물과 희토류 수출 통제로 미국 첨단 산업에만 피해가 올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미국의 오랜 그린란드 야욕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덴마크 그린란드령을 '52번째 주'로 만들겠다며 나섰다가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샀다. 현재는 주권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협력하자고 하면서 미국과 그린란드 간 갈등이 일단락됐다. 광물과 희토류 협력도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그린란드에는 EU이 핵심원자재(CRMs) 34종 중 25종이 발견될 정도로 자원이 풍부하다. 희토류 매장량은 3610만t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 광물 협력체 합류 모색해야…비축·재자원화 대책도 이러한 공급망 경쟁 속에서 한국이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이 핵심 광물 공급망 우위를 차지한 배경에는 생산 기술 경쟁력이 있다는 점을 상기하자는 것이다. 중국은 인건비가 저렴한 데다 인권·환경 규제 수준이 낮아 원가 비용 면에서 다른 나라들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다. 1992년 당시 덩샤오핑 중국 주석이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희토류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이달 초 영국과 유럽연합, 캐나다, 일본 등 주요 7개국(G7)에 더해 한국, 호주, 인도 멕시코 재무장관들을 모아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 논의를 하기도 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핵심 광물과 희토류 같은 자원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광산 투자를 통해 화보해야 할 문제"라며 “한국은 중국만 바라보는 대신 미국과 EU, 일본 같은 국가들 중심의 광물 공급망 협력 체제를 기반으로 원자재 확보 경쟁을 헤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아직 자원 확보에만 치우친 것이 현실"이라며 “광물 공급원 확보 뿐만 아니라 제련과 생산 기술 개발도 함께 해나가며 전후방 산업에 걸친 전체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천규 교수도 “특정국가에 의존도를 50% 아래로 낮출 정도로 자원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정부와 민간기업을 포괄해 자원 비축과 재자원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며 “핵심광물과 희토류는 수요와 공급 변동성이 다른 자원들에 비해 심하므로 세밀한 자원 모니터링 체계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정승현의 소재 탐구] “NCC 줄여라” 석화 애물단지 불구 ‘고부가가치 핵심소재’

실적 부진, 가동률 저조, 미래 경쟁력 약화라는 파고에 부딪힌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미래를 재설계하기 위해 석화사들이 '에틸렌 생산설비 감축'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고부가가치 소재가 아니라고 에틸렌 생산을 무작정 줄이면 공급망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다는 게 석화업계가 처한 딜레마다.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데도 석화사들이 에틸렌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에틸렌이 주요 석화제품을 제조하는 '쌀'이기 때문이다. 석화사들이 연말 사업 재편안 제출 시한을 앞두고 애타게 찾는 것은 에틸렌 축소와 고부가 확대 사이의 접점이다. 1일 석화업계에 따르면, 석화사들은 연말까지 에틸렌 생산 감축을 포함한 사업 재편 자구안을 산업통상부에 제출해야 한다. 전체 생산량의 18~25%인 연간 270만~370만톤을 어느 기업이 얼만큼 감축하고 설비를 통폐합할 것인지를 두고 석화사들이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에틸렌은 수소 2개가 달린 탄소 2개가 이중결합한 물질로, 원유를 섭씨 30~200℃에서 증류하면 나오는 나프타를 열분해(크래킹)해 얻는다. 탄소 개수와 결합 구조에 따라 다양한 물질이 섞여 있는 원유를 가열하면 끓는점에 따라 개별 물질을 증류한다. 이 중 탄소를 5~12개 가진 물질들을 나프타라고 한다. 이 나프타에 열을 가해 쪼개면 나오는 물질 중 하나가 에틸렌이다. 얼핏 제3자 입장에서는 과감한 NCC(나프타 분해설비) 폐쇄로 에틸렌 생산을 확 줄이면 될 일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에틸렌 생산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산업통상부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11월 기준 에틸렌 판매 가격과 나프타 생산 가격의 차이를 나타내는 에틸렌 스프레드의 평균은 톤당 118.27달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가까이 작다. 업계는 에틸렌 스프레드의 손익분기점은 대개 톤당 300달러로 보고 있다. 석화 산업 위기가 한창 불거지기 시작하던 2022년 하반기에도 200달러선 아래쪽에 걸쳐 있었다. 석화사들은 석화부문 기준 분기별로 천억원 넘는 영업적자를 내오기도 했다. 하지만 석화사들이 에틸렌 생산 감축을 머뭇거리는 이유는 석화산업의 생산 구조 때문이다. 에틸렌은 다양한 석화 소재를 탄생시키는 대표적인 기본 단위다. 에틸렌을 여러 모양으로 연결하고 다른 물질을 첨가하는 방식이다. 이는 탄소라는 물질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탄소는 다른 원자와 연결하는 '팔'을 4개 가지고 있다. 주로 수소와 결합하는 것을 좋아하고, 산소나 질소 등 등 다른 원자와 연결해 소재 특성을 강화할 수 있다. 탄소들끼리 선형으로 길게 연결하거나, 5~6개 탄소가 모여 하나의 고리를 만들기도 한다. 첨가물, 반응 촉매, 가열 방식 등에 따라 수백개에 이르는 무궁무진한 소재를 만들 수 있다. 에틸렌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물질은 폴리에틸렌(PE)과 폴리염화비닐(PVC) 등이다. PE는 에틸렌 분자 여러 개를 죽 연결하는 '중합반응'으로 얻는 물질이다. 고온에서 반응시키면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이, 저온에서 반응시키면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을 얻을 수 있다. PVC는 에틸렌에 있는 수소 원자 하나를 염소로 바꾼(치환) 것을 중합반응으로 줄줄이 이어 만든다. 염소를 첨가해 내구성을 키우고 부식에 강하다. 비닐봉지가 대표적인 PVC 제품이다. 이들 제품은 범용성을 띠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석화사들의 수익성을 높여왔다. 한국이 효율과 품질이 우수한 생산 설비를 갖췄기 때문이다. 산유국에서 석유를 들여와 세계 각국의 제조기업들이 쓸 수 있는 형태로 수출하는 구조가 탄생했다. 특히 산업화로 성장하는 중국에서 수요가 늘며 성장세가 가팔랐다. 그러나 산유국이 모여 있는 중동과 원가 경쟁력이 우수한 중국이 이 사업에 뛰어들면서 한국 석화사들에게 적자 품목이 돼버렸다. 하지만, 에틸렌 생산을 줄이기 위해 NCC를 끄면 다른 고부가가치 품목에 해당하는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게 된다. NCC에서는 나프타 분해 방식에 따라 에틸렌 뿐만 아니라 프로필렌, 부타디엔 같이 기초 유분을 생산한다. 에틸렌은 800도 이상으로 가열해 열분해하는 방식으로 생산되는 반면, 탄소가 3개인 프로필렌과 4개인 부타디엔은 이보다는 낮은 500도 수준의 온도에서 촉매를 가해 얻어낸다. 대표적으로 프로필렌에 물을 첨가하는 수화반응으로 만들어지는 이소프로필 일코올(IPA)은 접착제나 페인트 용제, 세정제 등으로 쓰인다. 반도체 산업에 이를 적용하면 먼지 하나 들어가선 안 되는 웨이퍼를 세정하는 물질로 쓰인다. 부타디엔은 탄소 8개가 3중결합으로 연결된 스티렌과 함께 타이어와 신발 등을 만드는 합성고무의 원료로 쓰인다. 스티렌-부타디엔 고무(SBR)와 용액 스티렌-부타디엔 고무(SSBR)는 부타디엔과 스티렌을 화학 반응으로 혼합해 여러 개를 연결하면 생기는 고분자 제품이다. 전기자동차 특성에 적합한 합성고무 재질을 만들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석유화학 기업들이 요구받는 고부가가치·스페셜티 중심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은 기초유분이라는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전동화나 인공지능(AI) 같이 새로운 산업 트렌드에 맞춘 석화 소재를 개발해낸 뒤 생산 단계로 넘어가려면 핵심 원료 조달이 문제로 떠오른다. 석화사들이 기초유분 공급 과잉으로 수지타산이 안 맞아 손해를 보면서도 NCC 가동을 멈추기 어려운 이유는 고부가가치 소재 생산을 염두에 둔 것이다. NCC는 가동을 멈춘 뒤 다시 돌리려면 고온 가열을 위해 에너지를 더 투입해야 한다. '석화 빅딜 1호' 타이틀을 안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추가 논의해야 할 과제도 NCC 축소와 고부가가치 소재 생산 사이의 접점 모색이다. 두 회사는 지난달 26일 산업통상부에 충남 대산에 보유한 공장들의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방안을 제출했다.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을 물적 분할 형식으로 떼어내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각각 60%, 40%씩 출자해 만든 HD현대케미칼에 합병하고, 합병 HD현대케미칼의 양측 지분을 절반씩으로 조정한다는 계획이다. 롯데케미칼 대산공장과 HD현대케미칼은 에틸과과 프로필렌, 벤젠 같은 웬만한 기초 유분과 저밀도폴리에틸렌(LDPE), 폴리프로필렌(PP) 같은 합성수지를 생산해왔다. HD현대케미칼의 경우 판매 제품을 전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에 판매해 왔다. 원유 정제부터 기초유분 생산, 고분자화합물(폴리머) 형태의 석화 소재 공급에 이르는 과정을 어떻게 설계할지에 합병 법인의 수익성 개선 여부가 결정되는 구조다. 이는 각 단계별 원료 투입량과 기초 유분·고분자 제품 생산량, NCC 세부 공정 조정을 세밀하게 계산하는 문제다. 법인을 합치고 NCC 한 기를 멈춘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롯데와 HD현대의 사업 재편안 제출에 관해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기업들이 보유한 설비를 줄이기만 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외부인이 세부 공정 같은 기업 기밀을 알 수 없겠지만,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설비 통합과 효율화를 어떻게 할지, 사업 경쟁력을 개선할 가능성은 있는지 등을 충분히 검토해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빅딜 1호의 교훈은 전남 여수 산단과 울산 산단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수에서는 LG화학과 GS칼텍스, 롯데케미칼과 여천NCC가 사업 재편안을 논의하고 있다. 울산에서는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 에쓰오일이 머리를 맞댔다. 석화 산단 3곳 중 에틸렌 생산 능력이 가장 큰 여수도 NCC 규모를 축소하되 부동액 같은 데 쓰이는 에틸렌글리콜(EG)나 수술용 장갑 등 특수 용도에 많이 쓰이는 라텍스 등 고부가 소재의 생산 능력을 유지하는 중간 지점을 찾아내는 과제가 풀려야 한다. 석화업계 한 관계자는 “석화산업 구조재편은 NCC를 멈춘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충남 대산이 석화 사업 재편에서 진도를 가장 빨리 냈지만, 설비 최적화 방안을 비롯해 추가 논의할 게 남아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정승현의 소재 탐구] 철강 저탄소 전환 ‘마중물’ 역할…해외 생산전략에도 중요

오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가 2018년 대비 53~61% 줄이는 것으로 사실상 정해지면서 철강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석탄을 원재료로 쓰는 '고로 공정'에서 벗어나 '저탄소 공정'으로 전환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저탄소 공정의 핵심 역할을 할 수소환원제철을 철강업계가 상용화하려면 최소 2037년께 도달해야 한다는 전망이다. 직접환원철(DRI)은 철강사들이 수소환원제철로 나아가는 과정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 기존 고로 방식에서 필수인 코크스(석탄)를 태우는 과정을 없애고 기체를 직접 주입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환원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DRI를 최대한 녹슬지 않게 형태를 조개 모양으로 가공한 것이 열간성형철(HBI)이다. 철강사들이 철광석이 풍부한 나라에 제철소를 확보하려는 행보가 당장은 높은 관세 장벽을 극복하려는 목적이지만, 멀리 내다보면 DRI와 HBI 공급망과도 연관이 있다. 철강 제품을 다양한 형태로 만들기 전, 철광석에서 산소 등 불순물을 떼어내는 조강 과정이 있다. 기존 고로 방식에서는 조강 과정에서 코크스를 태워 발생하는 열과 일산화탄소 가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철의 녹는점인 섭씨 1538도보다 높은 약 1600도에서 철광석을 열로 녹이고, 일산화탄소가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 이산화탄소로 배출된다. 석탄을 태우면서 온실가스를 내뿜고, 환원 과정에서 일산화탄소가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로 변하면서 온실가스가 더 배출된다. DRI는 철광석을 작은 알갱이 모양으로 가공한 펠릿에 열을 가한 뒤 기체로 직접 환원 작용을 해 만든 것이다. 기체는 천연가스에서 나온 일산화탄소와 수소가 주로 쓰인다. 철을 액체로 완전히 녹이지 않고 800~900도 수준의 스펀지 형태에서 환원 작용이 이루어진다. DRI는 전기로에서 녹은 뒤 불순물을 제거해 강으로 제련된다. 환원 과정의 온도가 낮고 열을 전기로 가하기 때문에 탄소 배출량이 고로보다 적다. 전기로는 기존 철강 제품을 재활용한 철스크랩을 DRI 대신 사용할 수 있어 자원 절약이 용이하다. 수소환원제철은 이 공정에서 천연가스를 수소로 대체한 것이다. 수소로만 철광석에 환원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탄소 배출이 없다. 수소와 전력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단계까지 나아가면 철강산업은 탄소 다배출 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게 된다.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철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가량이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의 14.5%가 철강에서 나왔다. 다만, 아직은 개발 속도가 더딘 편이다. 진도가 가장 빠른 곳은 스웨덴이다. 스웨덴 SSAB가 철광석 생산 기업 LKAB, 에너지 기업 바텐폴과 합작해 '하이브리트' 프로젝트를 진행해 샤프트로 방식의 수소환원제철 설비를 개발했다. 2020년 세계 최초로 수소환원철을 생산했다. 올해 9월에는 SSAB 수소환원철이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요구하는 무탄소 철강 기준을 세계 최초로 충족했다고 발표했다. 한국도 고삐를 죄고 있다. 오는 2030년까지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개발하고, 2037년을 상용화가 가능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 수소환원제철 실증 사업을 위해 정부와 철강사들이 총 8100억원을 투입한다. 포스코는 고온의 가스를 분사해 철광석 가루를 공중에 띄워 환원 반응을 일으키는 '유동환원로' 방식에 기반을 둔 수소환원제철 브랜드 '하이렉스'를 내세워 기술 실증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대제철은 대형 전기로 기술 '하이아크'를 기반으로 자체 수소환원제철 기술 '하이큐브' 개발을 준비 중이다. 국내 철강사들도 전기로를 가동하고 있거나 건설 중이다. 아직은 건축물 철거로 나온 철근 같은 철강재 폐기물을 전기로에 녹일 수 있는 형태로 재활용한 '철스크랩'을 주로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전기로 도입이 늘며 철스크랩 공급 부족 우려도 커지고 있다. DRI 공급망이 탄탄하면 이런 걱정을 덜 수 있다. DRI 공급망에 필요한 것이 열간성형철(HBI)이다. HBI는 DRI를 조개 모양으로 뭉쳐놓은 것이다. DRI를 그대로 두면 공기 중 산소가 붙어 순도가 떨어지므로 HBI로 가공해 먼 거리를 운반한다. 광산을 보유한 제철소가 HBI를 다른 국가로 수출하면 수익 창출이 가능하고, HBI를 받는 제철소는 전기로에 투입할 원재료 확보 부담을 줄일 수 있다. HBI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해외 현지 진출 전략과도 관련이 있다. 포스코는 인도와 호주, 미국에서 현지 생산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철광석이 풍부하며 광산을 보유한 제철소가 많다. 광산을 가진 제철소와 협력하면 한곳에서 DRI를 생산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이곳에서 HBI를 가공해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로 공급하는 구상이 가능하다. 인도에서는 JSW와 연간 600만 톤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기로 하고, 철광석이 풍부한 오디샤주를 잠재적 부지 후보로 물색했다. 호주에서는 다른 철강사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남부 와일라 제철소 인수를 검토 중이다. 미국은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위한 지분 투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와일라 제철소와 클리블랜드 클리프스 모두 자체 광산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제철 또한 저탄소 전환의 핵심 설비로 전기로를 택했다. 올해 3월 발표된 미국 루이지애나주 제철소 건립 사업은 DRI 기반 전기로를 염두에 둔 것이다. 2029년 가동을 목표로 준비 중이며, DRI를 직접 생산하거나 HBI를 조달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준호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포스코의 대미 전략에 관해 “미 철강사도 차량용 강판 품질 수준이 높다는 점에서 포스코가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와 손을 잡으려는 의도는 관세 회피 전략과 현지 일관제철소 확보에 더 가까울 것"이라며 “클리블랜드 클리프스가 광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DRI와 HBI 조달로 양사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다만 지금 미국 행정부가 저탄소 산업 전환 같은 움직임에 소극적이어서 당장 이 효과를 내세우진 않을 것"이라며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돼 저탄소 정책 기조가 뚜렷해진다면 DRI, HBI 확보를 전면에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현대제철의 루이지애나 제철소를 두고 이 교수는 “같은 루이지애나 주에 있는 뉴코어(Nucor) 전기로 제철소 모델에 더 가깝다"며 “현대제철의 전기로도 현지에서 DRI를 확보해 차 강판 등의 제품을 자체 생산하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철 스크랩(고철) 등을 기반으로 전기로 운영 능력을 쌓아온 뉴코어는 루이지애나주에 DRI와 HBI로 운영하는 전기로 제철소를 조성하고 있다. HBI 확보는 한국 철강산업의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HBI를 외국에서 조달하면 국내 탄소 배출 부담이 줄어든다. HBI가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DRI 전기로 공정이 정착될 수 있고,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완성되면 철강업의 탄소중립 달성이 가능해진다. 국내에서도 기술 확보를 통해 HBI를 생산할 수 있지만, 철광석을 전량 수입하는 만큼 해외 생산품을 들여오는 것보다 효율이 낮을 수 있다. HBI 생산 과정에서 막대한 전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한국에서 최근 10년간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이 커지고 있어 국내 HBI 생산이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력 생산 과정에서 재생에너지 등 무탄소 비중을 크지 않아 막대한 전력 소비가 이산화탄소 배출 확대로 이어지기도 한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5일 열린 한국철강협회 주최 '스틸 코리아'의 기조연설에서 “HBI는 생산 비용이 크고 전력을 더 많이 쓴다는 한계가 있지만, 한국에는 (탄소 배출이 적은) 녹색전력의 대안이 없는 채로 들어왔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혁신기술 개발과 실적용의 차질 없는 추진과 기업의 적기 투자를 위한 그린 에너지, 그린수소 등 인프라 확보해 저탄소 제조 시장의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고 정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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