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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황소를 끌고 올 에너지 정책

소꼬리인 줄 알고 덥석 잡았는데, 그 뒤에 집채만 한 황소가 통째로 딸려 나오는 격이다. 최근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바로 이와 같다. 산업을 도외시한 환경 위주의 정부 조직 개편이나 특정 에너지원 육성 정책이 우리 경제와 산업 전반에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치우친 현재의 에너지 정책은 결국 막대한 비용을 국민과 기업에 떠넘기고, 국가 경쟁력을 심각하게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수순이라 설명하지만, 이는 더 큰 문제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판단에 불과하다. 전기요금 인상은 우리 경제의 연쇄적인 비용 상승을 유발하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모든 산업 활동의 기초 동력인 전기 에너지가 비싸지면, 원자재 가격부터 공장 기계 가동 비용까지 오르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고스란히 제품 생산 원가에 반영되고, 복잡한 물류와 유통 단계를 거치면서 최종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 상승 폭은 훨씬 더 커진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전기요금 인상은 결국 우리 경제 전체를 뒤흔드는 물가 폭등과 경기 침체라는 '황소'를 끌고 올 것이다. 지속적인 전기요금 인상은 우리나라 산업의 경쟁력을 뿌리부터 흔들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요 경쟁국과 비교해 매우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190.4원으로, 미국(121.5원)이나 중국(129.4원)보다 월등히 비싸다. 이런 상황에서 요금을 더 올리는 것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육상선수에게 족쇄까지 채우는 격이다. 특히 AI, 반도체, 철강처럼 전기를 많이 쓰는 국가 핵심 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잃고, 이는 수출 부진, 투자 위축, 양질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로 높은 전기료를 감당하지 못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에너지 정책의 본질은 국민과 기업에 필요한 에너지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중단 없이 공급하는 데 있다. 하지만 현재의 정책은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특정 '수단'을 정책의 '목표' 그 자체인 듯이 착각하고 있다. 수단과 목표가 뒤바뀌면서, 정책은 방향을 잃고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급변하는 치명적인 한계를 가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하고, 비상용으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계속 가동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결국, 꼬리(수단)가 몸통(목표)을 흔드는 격의 정책은 우리 경제를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 이는 마치 항로 없이 망망대해를 떠도는 배와 같다. 이제는 '소꼬리'만 보는 단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그 뒤에 험악한 인상을 하고 선 '황소'의 전체 모습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에너지 정책은 특정 이념이나 단기적 성과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원자력을 포함한 균형 잡힌 에너지 믹스를 통해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 공급 기반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특정 에너지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공급 불안정과 가격 변동성의 위험을 키울 뿐이다. 둘째, 전기요금 인상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산업계와 국민에게 미칠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완충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요금 조정은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니라, 경제 전체를 고려하는 고차원적 정책 설계의 영역이다. 마지막으로, '공급 안정성', '안전성', '경제성', '환경성'이라는 4대 핵심 가치를 조화롭게 달성할 수 있도록 국가 에너지 전략의 목표를 명확하게 재정립해야 한다. 이 네 가지 가치가 바로 우리 에너지 정책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될 것이다. 더 이상 꼬리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며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에너지 정책은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적 결정이다. 우리 경제와 산업,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현명하고 책임감 있는 선택을 해야 할 때다. 문주현

[EE칼럼] ‘착한 성장’이 아닌 ‘똑똑한 성장’

세계 전력시장이 대세 전환의 임계점을 통과하고 있다. 2024년 전 세계 신규 발전설비 용량의 92.5%가 재생에너지로 채워졌으며, 이 중 태양광과 풍력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태양광은 2022년 신규 발전설비 용량의 50.6%로 처음 절반을 넘어선 이후, 2023년 61.9%, 2024년 69.3%를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풍력은 2020년 34.4%로 정점을 찍은 후 2024년 17.4%로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신규 설비에서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누적 발전설비 용량을 보면 2024년 재생에너지 설비 비중이 46.4%에 달했고, 2024년 증가율 정도만 기록해도 2025년에는 화석연료 발전설비와 비슷하거나 역전하게 된다. 2025년은 재생 발전설비 용량이 화석연료를 추월하는 첫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재생 발전량 점유율도 2024년 31.8%에서 2025년 34%를 넘어설 전망이다. 영국의 싱크 탱크 엠버(Ember)의 통계에 따르면 2025년 8월까지 재생 점유율은 34.0%, 태양광 9.1%. 풍력 8.6%, 태양광+풍력은 17.7%였다. 태양광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전력원이다. 2025년 상반기 신규 태양광 발전설비 용량은 전년 대비 64% 급증했으며,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2025년 연간 신규 용량은 700~800GW에 이를 것이다. 이는 2024년 말 기준 전 세계 원자력 발전설비 용량의 약 두 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최근 발표된 Ember의 한 연구가 화제가 되었다. 이 연구에 따르면, 1억 달러로 천연가스를 수입해 1년간 1.5TWh의 전기를 생산하는 것과 비교해, 같은 금액으로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면 30년간 매년 1.5TWh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이는 태양광이 천연가스보다 약 30배의 비용 효율성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다. 화석연료 수입은 국가에 반복적인 경제적 부담을 안기지만, 태양광은 일회성 투자로 장기적인 에너지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보장한다. 그럼에도 태양광의 확산 속도가 더딘 현실은 아쉬움을 남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 주요 기관의 시나리오를 종합하면 2050년 전력 수요는 지금의 2~2.5배 수준 즉, 발전량 기준으로 2024년 30PWh에서 2050년 60~75PWh가 될 것이다. 전기차 보급 확대, 산업 부문의 전기화, 데이터센터 및 AI 관련 수요 증가가 주된 요인이다. 여기서 태양광은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2024년 전 세계 전력생산에서 태양광 점유율은 7%, 발전량 2PWh 수준이지만, 2050년에는 최대 50%, 30~37PWh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광 발전설비 용량도 최대 14TW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태양광은 2030년 이전에 원자력, 풍력, 수력을 제치고, 2033년에는 석탄을 넘어 세계 최대 단일 발전원이 될 것이다. 최근 우리 정부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조직개편,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 2030 재생에너지 목표 상향, 재생에너지 생산 세액공제 제도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속도는 느리기만 하다. 여전히 재생에너지 발전량 점유율은 몇 년째 OECD 최하위이며 아시아에서도 하위권, 아프리카 주요국에도 뒤진다, 태양광 발전량 점유율 순위도 2023년 OECD 24위에서 2024년 26위로 오히려 두 계단이나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흐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결과다. 한국이 갖고 있는 반도체·이차전지·정밀화학·기계·조선·철강 등에서 축적된 능력과 세계적인 레버리지는 더딘 탄소중립 이행과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으로 인해 과소 평가받고 있다. 탄소중립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도덕 프레임으로 볼 때 생기는 허상에서 벗어나, 국가 경쟁력과 수출, 일자리,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잡는 국가 산업 전략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똑똑한 성장'이란 탄소중립으로 가는 성장이 착하냐, 나쁘냐라는 '착한 성장'의 문제가 아니라 그 길이 국익을 위해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똑똑한 성장의 경로이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은 이미 '탈탄소 프리미엄'을 가격과 정책, 공급망 규칙에 내재했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 유럽의 탄소국경조정, 중국의 규모 공세까지 겹치며, 저탄소·고효율 기술을 내재화하지 못한 산업, 기업, 국가는 수출 문턱에서 비용과 리스크를 떠안게 될 것이며, 반대로, 탄소중립을 위한 재생에너지 전환은 우리 제조업의 구조적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도구가 될 것이다. 이제 새로운 거버넌스가 만들어지게 됐으니 탄소중립 및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특히 태양광, 풍력 보급에 속도 높이기 위해 인허가 절차 간소화,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지역 주민과의 협력 강화 등을 서둘러 추진할 할 때다. 탄소중립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확대는 '착한 에너지'라는 도덕적 프레임을 넘어 국익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정책이자 '똑똑한 성장' 전략이다.

[EE칼럼] AI가 여는 에너지 뉴노멀

우리나라는 지난 9월 이재명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로 대변되는 'END 구상(構想)'을 천명하였다. 포괄적 대화를 통해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의 새 시대를 열어가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한국은 미국-중국 양극 구조 속에서 글로벌 AI 생태계 개편의 제3의 축을 형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이를 'AI 뉴노멀(AI New Normal)'이라고 명명하였다. 특히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검증 수단으로, AI를 기반으로 한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발전 개념을 연계한 통합적 접근을 제시하였다. “AI가 주도할 기술혁신은 기후 위기와 같은 전 지구적 과제를 해결할 중요한 새로운 도구가 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언급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는 생존의 필수재이자 모든 경제·사회 활동의 기반이다. 정보통신기술과 신재생에너지의 결합이라는 제3차 산업혁명에서 에너지 부문 성과는 크지 않았다. 혁신 속도가 약화되는 '진입 제약(lock-out)' 현상 때문이다. 원전 안전성 문제나 신재생 전력 부문의 경제성 논란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 청정에너지 확대 정책은 단기적으로 직접 비용 증가라는 새로운 사회 갈등 요인이 되었다. 기후변화 대책에 미치는 영향 역시 혼란스럽다. 실제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 37% 감축을 공약한 파리협약 이행이 불투명하다는 국내외 의견이 많다. 이 과정에서 민간기업이나 가계보다 국민 부담으로 공기업이 책임을 떠맡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결과, 누적된 시장 실패에 더해 새로운 정부 실패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중국의 존재와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은 미국이 탈퇴한 이후 파리기후변화협정의 '구원자'를 자처하며, 세계 에너지 질서 재편을 주도하는 이른바 '에너지 굴기(崛起)'에 매진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EU) 등과 경쟁하면서도 막강한 자금력과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배경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제 원전 수출에도 적극적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경계하지만,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에너지 굴기'이다. 현재 국내 태양전지 패널의 대부분이 중국산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의 에너지 다소비 국가로, 2024년 기준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3.7%에 이른다. 에너지 수입액은 약 230조 원으로, 국제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에 매우 취약하다. 특히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등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는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에너지 공급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가정용 등 민생 에너지보다 국민이 체감하기 어려운 산업 에너지 안보는 곧 한국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직결된다. 이에 우리만의 특별한 대응 조치가 불가피하다. 바로 강력한 '디지털 경영' 혁신을 통한 에너지 산업 경쟁력 확보다. 에너지 여건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경제·산업 구조를 만드는 것보다, 지금부터 에너지 산업 구조의 혁신적 변환을 추진하는 것이 현명하다. 특히 가상현실을 활용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법을 도입하면, 복잡한 에너지 산업 기술체계를 스마트화하여 획기적인 비용 절감과 구조 혁신의 동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AI 기반의 디지털화는 에너지 산업 장기 혁신의 3대 과제인 ▲스마트화, ▲대규모 데이터 분석능력 향상, ▲자동화 추진의 기반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에너지 산업의 본질적 특성인 장기 탈탄소화 추세에 주목해야 한다. AI는 단기적으로 미·중·EU 등 강대국의 지정학적 경쟁 도구가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어느 한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탈중앙화(decentralizing shift) 속성을 지닌다. 최근 주목받는 디지털 화폐(코인) 현상도 이와 유사하다. 에너지 산업의 미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탄소배출권(Carbon Credit)' 거래 역시 디지털 화폐와 같은 속성을 공유한다.따라서 에너지 산업은 AI 기반 디지털화를 적극 활용해, '굴뚝 산업'의 표본에서 '청정 4차 산업'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최기련

[EE칼럼] 중동의 구조 변화와 우리 에너지 안보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러 에너지“이슈'들의 시발점인 것 같다. 러시아산 석유/가스 등 에너지 구매제한을 포함한 시장 왜곡을 심화하였기 때문이다. 유럽은 미국 석유/가스 구매확대로 수급 균형을 꾀하였다. 여기다 미국과 원전 개발 등으로 대립 중인 이란은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보인 중국- 북한-러시아 반미(反美)연대의 새로운 한 축으로 등장하는 것 같다. 이란-러시아- 중국 간의 가스관(시베리아의 힘) 등 가스 연대가 새로운 연대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원유시장이 에너지 여건을 반영하는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미국 서부 택사스 중(中)질유(WTI: West Texas Intermediate) 최근 가격은 62달러 대(현지 9월 8일 기준)로 1년전 69달러 대에서 10%쯤 하락한 것이다. 원유시장의 심한 가변성을 고려하면 비교적 안정적인 셈이다. 지난 2년여 공급과잉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신중한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마저 중국 등 선발 개도국의 수요둔화와 러시아를 포함한 주요 산유국(OPEC+)들의 증산, 미국 등 비(非)OPEC 산유국 증산 가능성 등으로 공급과잉이 2026년 1/4분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골드만삭스사는 내년도 유가를 55달러 이하로 예측하였다. 그러나 좀 더 긴 시각에서는 강세 전환을 예상하는 의견도 많다. 이들은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된 소비자 유가에 대한 국가의 하향 전략(=시장 왜곡)에 주목하고 있다. 시장경제 체재 아래 시장 왜곡에 따라 발생하는 중산층 이하의 제한된 부(富) 축적은 구매력증가 한계로 연계된다. 특히 가격 탄력성이 큰 석유 다소비 제품군의 판매 부진으로 쉽게 연계된다. 통상적으로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임기연장을 위해 이자율 높이기 등을 통해 유가와 직접 연계되는 식료품 가격 인하 유도전략을 구사한다. 특히 미국이나 서구 등 선진 경제에서 고율의 석유제품세금 부과는 세계원유가 하락을 유도한다는 분석 결과가 많다. 저소득층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 70년대의 석유파동이나 80년대 금융위기보다도 심하다는 의견이 속출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근본적 변혁을 의미하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우려된다는 견해도 나온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최근 들어 2차 대전 이후 세계질서의 근간인 자유 무역 시스템과 국제 분업체계를 훼손하는 정책들을 무작정 추진하고 있다. 무차별적인 관세전쟁이 대표적이다. 에너지 시장의 투명성도 훼손하고 예측 가능성마저 크게 불확실서을 높히고 있다. 그동안 트럼프 정부는 철강·알루미늄, 자동차 등에 대한 각 25%의 품목별 관세와 보편 관세 성격의 10% 기본관세를 도입했다. 더욱이 미국 관점과 이익 차원에서 관세 부과조건을 자의적으로 변동시키고 있다. 시장경제 기본논리 저해하는 지독한 국수주의 행태이다. 세계 최강국이자 자유민주주의 리더로서 미국이 맡아온 국제사회의 공공재 제공자 역할이 당연히 퇴색되고 있다. 이런 상태가 더 심회되면 모든 개별 국가들과 EU 등 지역공동체는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할 것 같다. 이를 단적으로 'From Cold War to Hot Peace( 냉전에서 격렬한 내홍 속의 평화로)'라고도 한다. 세계 공영보다 지역별, 국가별로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문명 충돌마저 우려된다. 천안문 집회에서 '시진핑' 중국주석의 '평화와 전쟁 중 선택'이라는 연설 내용과도 상통한다. 에너지-자원 수입의존도가 세계 최상위권인 우리는 걱정이 많다. 에너지의 95% 이상과 80%가 넘는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안보 협력뿐 아니라 무역·경제 건전성 유지까지 걱정이다. 중국, 러시아와 연계를 강화하는 북한과의 관계설정도 새로운 고민이다. 물가상승과 경기침체의 전제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가장 걱정된다. 향후 서방의 러시아 제재는 직접 군사개입보다 금융과 국제교역부문을 중심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 혹여 다가올 신(新)냉전이 걱정이다. 그레서 향후 석유 등 자원가격 예측은 불가능한 지경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는 벌써 2022년 중반에 세계는 1973년 석유파동 이래 최대 자원 파동을 겪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당연히 경제 약국들의 폐해가 상대적으로 클 것이다. 에너지-자원시장 측면에서는 우리나라는 가장 약한 수준이다. 이에 우리가 원유수입의 60% 이상을 의존하는 중동지역 지정학(地政學; Geoscience) 변화를 면밀하게 주시할 필요가 더욱 커진다. 과거 우리 원유공급의 80% 넘게 담당해온 중동은 미국산 원유수입 증대로 그 비율이 낮아졌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유럽에 대한 미국의 LNG 공급 확대 등으로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알라스카 가스전에 대한 우리 투자 압력의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든 돈만 주면 얼마든지 외국 기름과 가스를 사 올 수 있다는 오랜 관념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가장 먼저 닥칠 세계적 공급 장애 대상이 중동 석유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 행복을 위한 최상의 에너지전략은 미리 대비하되 탄력적이라야 한다. 우리 여건을 충분히 반영하는 지정학적 심층분석 능력이 필요하다. 최기련

[EE칼럼]조직과 사람, 계획과 실행, 무엇이 중요할까?

새 정부에서 기후와 에너지를 총괄하게 될 새로운 정부조직을 두고 우려의 말이 많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후와 에너지를 한데 묶어서 효과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기후에너지부를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규제 중심의 환경부와 산업진흥 중심의 에너지가 같은 울타리에 넣다 보니 서로 발목을 잡아 실효성 있는 정책추진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많은 것 같다. 세계적인 추세인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의 시작은 화석연료의 고갈이 아니라 기후변화였다. 중요한 핵심은 기후변화를 고려한 에너지 전환 정책이 뒷걸음질 않고 효율적으로 또한 장기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에너지정책을 연계한 기후 에너지정책의 컨트롤 타워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이다. 에너지원의 9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고 AI 시대로 접어들어 폭발적인 전력수요를 감당하면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획기적인 탄소배출 감축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기에 더하여 국가 산업 경쟁력까지 고려해야 하니 국가의 기후 에너지문제는 복잡할 수 밖에 없고 해결책 또한 분야별로 사람별로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정부조직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 마다 바뀌게 마련이다.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그냥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라 이해하고 싶다. 분위기 쇄신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문패만 바꿔달아서 집안이 잘 돌아가면 백번이고 문패를 갈아치우겠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정책 수립과 효과적인 업무 추진이 가능한가에 있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잡으면 되는 것이다. 조직의 시스템과 이를 운영하는 사람 중에 무엇이 중요할까? 계획 수립과 실행 중 무엇이 중요할까? 같은 시스템에서도 누가 어떤 철학을 갖고 일을 추진하느냐에 따라 일의 성과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과거에 일어난 국정농단도 따지고 보면 시스템의 부재라기보다는 있는 시스템을 무시하고 국가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한 무책임한 사람들의 국정 운영에서 기인한 것 아닌가. 올바른 시스템을 갖추는 것과 이를 제대로 운영하는 사람 간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성공적으로 일이 완수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부서별 정책 조율은 국무총리와 대통령의 역할 이기 때문에 관련된 모든 조직을 반드시 한 부서내에 둘 필요는 없다. 단지 걱정해야 될 것은,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분야의 일이 혹시나 정부 부서 담당 업무에서 빠져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국가와 개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 에너지, 자원, 환경 문제는 복잡하고 서로 관련되어 있어 개인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가장 큰 특징은 문제가 눈앞에 다가오기 전까지는 문제인식이 어렵고 문제가 발생되었을 땐 이미 늦었거나 해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투자의 시급성과 효율성에서 상대적으로 뒤지는 것으로 평가 받아 정부 정책 우선순위에서 항상 뒤처지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리더의 관심이 없으면 국가 시스템에 의해서는 어느 정부도 이 분야 정책을 제대로 꾸준히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한복판에 기후와 에너지자원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 조직이 어떻게 되든 국가 차원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고려한 탄소중립 정책과 국민경제를 고려한 에너지 전환 정책이 조화롭게 추진되길 바랄 뿐이다. 일관성 있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최소한의 시스템과 유능한 사람 간의 실질적 융합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신현돈

[EE칼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대한 우려

정부는 9월 7일 조직개편안을 통해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정책 분야를 환경부가 흡수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개편했다. 정부는 에너지 전환과 기후 위기 대응은 환경부가 맡고, 자원과 수출은 산업부가 담당해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재생에너지 일방향 정책에 속칭 '올인'하겠다는 의도를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탈원전에 대한 언급이 없으니 탈원전이 아니란 주장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국가 에너지믹스를 재생에너지 위주로 만들기 원하는 입장에서는 원전을 비롯한 다른 에너지원에 들어가는 정부 지원은 독극물과 같다. 스웨덴 국영기업 바텐폴은 400메가와트 갈렌 해상풍력 투자 결정을 연기한 이유로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꼽았다. 유럽 에너지 언론 몬텔은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양립할 수 없다'라는 내용의 기사에서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기저, 중간, 피크부하 발전의 변화가 아니라 재생에너지가 대부분의 에너지를 충족하며 역할을 마친 후 남은 역할을 수행하는 '잔여 부하'로의 변화라고 언급했다. 따라서 국내 에너지원에서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위해 전력 부문의 원전은 진흥이 아닌 억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국내 에너지산업 정책과 해외 원전 수출이 이원화된 이유다. IEA는 2050년 에너지 믹스에서 66%가 재생에너지이며 원전은 11%, 석유 등 화석연료는 22%에 불과하다는 넷제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복잡하고 할 일은 많지만 정책 집행 효능감은 떨어지는 화석연료 자원산업 같은 '잔여 업무'는 산업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스웨덴 대정전 같은 사례에서 배운 것이 없을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의 과잉 공급으로 발생한 정전 역시 재생에너지 우호적인 백업 시스템을 추가로 구축하고 보조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관성과 안정적 전력을 제공할 수 있는 기존 발전소 대신 아직 상용화도 되지 않은 그리드 포밍 인버터, 플라이휠로 관성을 제공하고 보조 서비스 시장에 진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페인은 2022년 이후 보조 서비스 시장 가격이 15배나 올랐으며, 영국 리버풀에 설치된 플라이휠 1대 가격은 470억, 영국 재생에너지 100%에 필요한 플라이휠 동기조상기 설치엔 9조 4천억 원이 넘게 들어간다. 물론 이를 운영하는 보조 서비스 시장 비용은 별도다. 스페인은 현재 전력시장을 강화 모드 – 재생에너지를 대폭 축소하고 가스 발전을 대거 늘려 운영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스페인은 2026년까지 이 강화 모드를 지속할 예정이다. 문제는 우리보다 앞서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추구했던 유럽과 서방세계가 전기요금 인하정책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체코 전 총리 바비스가 이끄는 최대 야당 ANO는 에너지 가격 상한제와 EU 탄소배출권 거부로 저렴한 에너지를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독일 메르츠 정권은 연간 100억 유로를 들여 전력망 요금과 전력세 인하를 위한 법안을 승인했다. 체코는 한국의 원전을 도입하기로 했고 독일은 2031년까지 탈석탄을 금지시켰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반값 전기요금'을 공약했고 중국 상하이 등 지방정부는 올해 초 기업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 메가와트시 당 최대 16%의 전기요금을 인하했다. 일본은 물가 상승 부담으로 재생에너지 부과금을 폐지하겠다는 정당까지 등장했다. 이런 전 세계의 흐름에서 역행하는 건 한국이 유일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전기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럽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요금으로 제조업이 말 그대로 녹아내리고 있다. 앤트워프 선언으로 뒤늦게 제조업 경쟁력확보를 도모하고 있지만 제조업 이탈을 막지 못하고 있다. 한국 역시 2022년 이후 70% 이상 오른 '전력 인플레이션'으로 탈한전은 물론이고 제조업 탈한국을 앞두고 있다. 이미 한국은 수출경쟁을 해야 할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보다 전기요금이 40% 가까이 높다. 가야 할 길은 무작정 가는 길이 아니다. 이미 유럽이라는 훌륭한 반면교사가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EE칼럼] 이차전지 산업, 다시 일으켜야 한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세계 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기대되던 이차전지 산업이 관련 기업들의 대규모 적자와 가동률 저하로 추락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이차전기 산업에서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이 2025년 상반기 기준 16.6%에 그치면서 작년 대비 5.4% 포인트 하락했다. 배터리 세계 10대 기업을 살펴보면 1위 CATL( 중국, 37.9%), 2위 BYD(중국, 17.8%), 3위 LG에너지솔루센(한국, 9.4%), 4위 CALB(중국, 4.3%), 5위 SK온(한국, 3.9%, 6위 파나소닉(일본, 3.7%), 7위 고타온(중국, 3.6%), 8위 삼성SDI(한국, 3.2%), 9위 EVE(중국, 2.7%), 10위 SVOLT(중국, 2.6%) 이다. 세계 10대 기업 중 중국 기업이 6곳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한국은 3곳에 불과하다. 글로벌 이차전지 시장은 크게 전기차용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 ESS)로 나뉜다. 시장 규모는 아직은 배터리가 68%로 앞서지만 최근 태양광발전 등 재생에너지 시장이 성장하면서 ESS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ESS는 잦은 충전과 방전을 견뎌야 하며,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관리돼야 하는 특성이 있다. 또한 대규모로 설치돼야 하기 때문에 낮은 비용이 중요하다. 한국의 이차전지 산업은 대부분 제조업 형태에서 시작 되었다. 성능은 낮지만 비용은 휠씬 저렴한 제품을 빨리 만들어 내는 것이 한국 제조업의 특징이다. 그래서 생산비가 낮은 지역에 대규모 플랜트를 건설했고. 이차전지 산업도 제조업 성장 방정식이었다. 우리나라는 2003년 김대중 정부때 10대 차세대 성장 동력 산업 전략을 발표하면서 이차전지를 포함 시키고 육성에 나섰다. 이후 2011년 이명박 정부는 미래 핵심 산업은 전기차이며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원료 확보부터 나섰다. 리튬을 포함 배터리 소재의 40%를 차지하는 양극재 생산에 필요한 전구체 원료 화보에 주력했다. 전구체는 양극재의 원료가 되는 물질이다. 어떤 원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기차의 성능이 결정된다. 전구체에는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의 원재료가 필요하다. 특히 원료 중 니켈은 에너지 밀도를 죄우한다. 에너지 밀도가 높을수록 1회 충전시 주행 가능한 거리도 늘어난다. 2018년부터 전기차 전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배터리 시장이 커졌다. 한국은 그 때만해도 이차전지 시장은 우리것이 될 것으로 봤다. 하지만 불과 몇 년만에 중국 업체들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급성장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장악했다. 가격 경쟁력, 상품의 다양성, 기술력 등에서 중국은 한국을 압도했다. 한국은 배터리의 중요한 소재인 양극재 부문에서 고성능 삼원계(니켈-코발트-망간)가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사용해 보니 삼원계가 들어간 배터리는 화재 위험이 높고 특히 타제품과 가격 경쟁에서 뒤쳐졌다. 그 사이 중국은 인산철(리튬-철-인, LFP) 배터리를 개발했다. LFP는 처음엔 저가, 저성능이였지만 기술개발을 통해 성능이 급속히 향상됐다. 뿐만아니라 중국은 LFP를 앞세워 ESS 시장도 장악했다. 이제 중국은 더 저렴하고 화재 위험이 없는 나트륨 배터리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이 중국의 배터리 기술을 따라 잡을려면 우선 기술개발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어서 정부의 체계적이고도 예측 가능한 전략이 수반 돼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 지원이 중구난방이면 안된다. 매년 발표되는 미래 기술 선정은 지원도 분산되고 체계적 관리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중국의 이차전지 산업은 우리보다 체계적이며 일관된 정책과 기업간의 치열한 경쟁이 결합되면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는 이차전지 산업에 필요한 광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데도 많은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중국은 리튬 이외에 니켈, 코발트, 망간, 흑연 등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광산개발에 나서 원료 광물부터 채굴, 정련, 생산, 판매 등 사실상 전 분야를 내재화 했고, 독점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이차전지 경쟁력은 앞으로도 유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은 정부와 기업이 다시금 힘을 합쳐야 한다. 우선 인력 확보를 위한 효과적인 시스템을 도입하고 제대로 된 연구를 해야 한다. 또한 시장을 보호하면서 이차전지 산업을 육성할 정책을 정교하게 마련해야 한다.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고려아연, 중소기업이지만 과감히 필리핀 니켈 광산개발에 뛰어든 제이스코홀딩스 같은 기업에 정부의 각별한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의 이차전지 산업 기반은 여전히 세계적이고 충분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 강천구

[EE칼럼] 탄소세와 탄소 기본 소득

이재명 정부 들어서서 탄소세 논의가 재점화 되었다. 세계은행의 '2025년 탄소 가격제 현황과 동향'에 의하면 2024년 전 세계 탄소가격제가 창출한 세수는 약 140조 원이며, 50% 이상이 환경·개발사업 등에 재투자 됐다. 또한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8%가 가격규제를 받았으며, 탄소 배출권 수요가 2023년 대비 3배 이상 급증했다. 탄소세는 1990년 핀란드가 처음 도입했으며 유럽에서 탄소세 도입 국가는 23개국, 배출권거래제는 34개국, 탄소세와 거래제를 동시에 하는 국가는 21개국이다. 최근에는 네덜란드(2021), 룩셈부르크(2021), 헝가리(2023)가 탄소세를 도입하였다. 유럽에서 탄소세의 과세대상이 되는 온실가스는 전체 배출량의 평균 40퍼센트 수준으로, 주로 수송이나 건물(난방) 등에 적용된다. 거래제도에 참여하면 일부 혹은 전부 탄소세를 감면하거나, 비할당 부문일때에는 대상에서 제외하여 이중부담을 없애고 있다. 흥미로운 나라들은 스위스, 영국, 네덜란드다. 영국은 거래제에서 발생하는 가격변동성을 보완하기 위하여 탄소가격 하한제를 운영한다. 발전에 한정하여 운영하며 배출권 가격이 정부에서 정한 가격하한보다 낮으면 배출권 가격과 정부의 가격 하한값의 차이만큼 기후변화세에 추가하여 부과한다. 네덜란드는 목표 배출량을 초과하는 온실가스 배출 사업자는 거래제에서 배출권을 구입하는 비용에 더하여 탄소세까지 지불함으로 탄소 비용이 가중된다. 그러나 목표 감축량보다 초과하면 초과 감축분만큼 과거에 납부했던 탄소세를 최대 5년치까지 환급받는다. 스위스는 가장 독특하다. 2024년 3월 15일, 개정된 CO₂법은 2025년 1월 1일부터 발효되어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50% 감축하며 재정유인, 기후보호 투자, 기술혁신을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올해부터 '넷제로 로드맵 지침(Net-Zero Timetables Directive)'이 시행되어, 농업 이외의 모든 기업은 Scope 1, 2 배출을 반영한 탈탄소화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스위스는 가칭 탄소세(CO₂ -Abgabe)보다는 일부에서는 “탄소 기본소득 또는 탄소 배당"이라고 하는데 2018년 탄소세가 1 tCO² e당 96프랑(약 118,400원)에서 2025년 기준, 120 스위스 프랑(약 20만원)이다. 세율 인상은 탄소 시행령에 미리 규정되는데 감축 중간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목표 미달성의 정도에 따라 인상될 세금 액수가 정해져 있다.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재원 활용이다. 탄소세의 연간 세수입은 약 14억 스위스프랑(약 2조 4천억)에 달하는데 이 중 2/3는 개인·기업에 대한 사회보험료를 감면하거나 환급되고, 1/3은 건물에너지 효율화, 신재생 에너지 개발 프로그램이나 환경부 의 친환경 기술보증기금에 출연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스위스는 2000년 1월부터 '환경보호법'에 의거하여 휘발성 유기화합물(VOC) 배출을 감축하기 위하여 VOC 부담금(VOC-Abgabe)을 징수하고 있으며 현재에도 균등하게 국민들에게 환급해주고 있다. 탄소세를 통한 탄소 기본 소득이나 배당도 이러한 사례를 준용한 것이다. 개인 대상자는 3개월 이상 체류하는 사람은 국적 불문하고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기초 건강보험 가입자가 대상이며 탄소세수가 균등하게 배분된다. 이때 개인은 탄소 배당과 함께 VOC 배당금도 함께 받는다. 2024년 개인 탄소 배당금은 64.20 프랑(약 10만원)이다. 기업배당은 징수한 탄소세액을 고용주에게 배분하는데, 배당금액은 모든 기업에 균등한 것이 아니라 피고용자의 노령연금 납부를 위한 임금 총액에 비례한다. 이 배당은 환경부가 위탁한 지역 노령연금 담당기관이 실시한다. 고용주의 노령연금 보험료를 정산하거나 배당금액이 많으면 차액을 지급한다. 스위스는 탄소세 도입으로 건물에너지 개선이 기존 프로그램보다 2~3배 효과를 가져왔고 가계에서 저탄소⋅무탄소 에너지로 전환 투자가 증대하고,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소득 대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탄소세액이 증가하는 것은 양날의 칼이다. 세수가 약 2조원 정도인데 건물 부분이나 신재생 에너지 전환 지원을 위해서는 적다고 본다. 적정 세율을 설정하는 것도 과제라고 본다. 스위스식 탄소세는 건물, 가정이 취약한 한국은 연구할 가치는 있지만 발전이나 산업부분이 포함 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점도 고려해야 한다. 세금 하면 누구나 싫어한다. 부정을 긍정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플러스가 마이너스를 훨씬 초과할 때 가능하다. 탄소 기본소득에 관한한 탄소중립이 아니라 모두에게 탄소 플러스가 되어야 한다.

[EE칼럼] 액화수소, 기체수소와 같은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까

최근 창원시 액화수소 플랜트를 둘러싸고 여야 시의원단이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국민의힘은 특정감사 결과 공개를 요구했고, 민주당은 사업 정상화를 위한 협의와 해법 마련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적 공방보다 더 중요한 것은, 1,050억 원을 들여 2023년 준공된 이 플랜트가 수요 부족으로 가동이 지연되다 운영사가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지고, 결국 금융권 인수까지 이어졌다는 냉혹한 현실이다. 지난 6월 어렵게 상업운전을 시작했지만, 창원산업진흥원이 하루 5톤 규모, 연간 약 300억 원대의 구매 의무를 떠안으면서 재정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창원의 사례는 결코 예외가 아니다. 인천에서는 SK E&S가 세계 최대 규모인 연간 3만 톤급 액화수소 플랜트를 준공했지만, 가동률 확보가 쉽지 않다. 울산과 삼척 역시 유사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일부는 여전히 시험 운전에 머물러 있고, 일부는 특수목적법인 구성 단계에서 멈춰 있다. 문제의 핵심은 '수요'다. 액화수소는 기체 수소를 영하 –253℃까지 냉각해 부피를 1/800로 줄인 형태다. 덕분에 액화수소 충전소는 기체형보다 더 많은 양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어 수소버스·트럭 등 대형 모빌리티에 적합하다. SK E&S가 2026년까지 전국에 40곳의 액화수소 충전소를 구축하겠다고 밝혔지만, 높은 비용과 까다로운 안전 규제로 보급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충전소 확충이 늦어지면 생산된 액화수소가 소비되지 못하고, 이는 플랜트 가동률 저하와 재정 부담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수소차는 최종적으로 모두 기체 상태의 수소를 충전한다. 그러나 충전소는 고압 기체수소를 직접 공급받을 수도 있고, 액화수소를 기화해 공급받을 수도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모두 같은 '수소'지만, 충전소 운영자에게는 전혀 다른 수소다. 그렇다면 기체수소와 액화수소를 정말 같은 시장의 동일한 상품으로 볼 수 있을까. 이 지점을 이해하려면 '차등된 상품(grades)' 개념을 참고해야 한다. 화학적 성분은 같아도 물리적 상태, 순도, 가공 정도, 용도에 따라 다른 가격과 조건으로 거래되는 경우다. 금은 순도에 따라, 철강은 가공 형태에 따라, 곡물은 품질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원유는 대표적이다. 국제시장에서 원유는 API 중력과 황 함유량에 따라 저유황 경질유와 고유황 중질유로 나뉜다. 미국은 셰일혁명으로 경질유 생산이 급증했지만, 멕시코만 정유공장은 고도화 설비 덕분에 중질유를 선호했다. 이 때문에 미국 내수에서 소화되지 못한 경질유는 2016년 수출 규제 해제 이후 해외로 흘러나갔고, 결국 정유 인프라의 특성 때문에 두 유종은 사실상 대체가 어려운 '차등된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즉, 똑같이 '원유'라 불려도 경질유와 중질유는 서로 다른 시장 논리를 가진다. 수소 역시 인프라에 따라 기체와 액화가 분리된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 두 상품이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때 발생하는 것이 네트워크 외부성 문제다. 네트워크 외부성이란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가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커지는 현상이다. 특정 상품이 임계 규모를 확보하면 다른 상품이 배제되는 '잠금효과(lock-in)'가 나타난다. VHS와 베타맥스의 비디오테이프 경쟁, 휴대전화 초창기 GSM과 CDMA 경쟁에서 승패를 가른 것은 기술력이 아니라 초기 네트워크의 규모였다. 만약 기체수소 충전소가 먼저 임계 규모를 확보한다면, 후발주자인 액화수소는 잠금효과에 막혀 성장 기회를 잃을 수 있다. 따라서 액화수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두 유형 충전소 인프라 간 호환성을 높여 상호 보완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미 전국적으로 보급된 기체수소 충전소에 액화수소 저장탱크와 기화기를 추가해 액화수소를 취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경우 개조 비용, 부지 확보, 안전 규제 등 만만치 않은 제약이 따른다. 따라서 정부의 재정 지원(, 인허가 절차 개선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동시에 신규 액화수소 충전소 건설도 병행되어야 한다. 액화수소가 기체수소와의 경쟁에서 네트워크 외부성의 벽을 넘어 독자적인 시장 기반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다. 그렇지 못한다면 액화수소는 결국 '잠재력만 남긴 채' 사라질지도 모른다. 김재경

[EE칼럼] 재생에너지, 미국과 탈동조화 더 서둘러야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여러 기이한 뉴스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특별히 기후위기와 관련한 퇴행을 미국이 선도하는 가운데 최근엔 완공을 앞둔 미국 동부 해안의 대형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중단돼 새삼 주목받았다. AP 등 외신에 따르면 8월 22일 미국 해양에너지관리국은 덴마크 국영기업 오스테드가 미 동부 해상에서 진행 중인 '레볼루션 윈드(Revolution Wind)'의 모든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미국 정부는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 보호를 위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라는 언급 외엔 공사 중단의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로드아일랜드주 남쪽 24km, 코네티컷주 남동쪽 51km, 매사추세츠주 마서스비니어드섬 남서쪽 19km 해상에 짓고 있는 풍력단지 레볼루션 윈드는 전체 공정의 80%를 완료한 상태였다. 65기 중 45기의 터빈이 이미 설치됐고 해상 기초 구조물도 모두 자리를 잡았다. 2023년 착공돼 내년 가동을 목표로 했으며 완공 시 로드아일랜드와 커네티컷을 포함해 35만 가구 이상에 청정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었다.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재집권 첫날 서명한 행정명령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모든 해상풍력 임대와 인허가 절차를 중단하고 기존 사업의 경제·환경적 영향을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트럼프는 지난달 20일, 소셜미디어에서 풍력과 태양광을 “세기의 사기(THE SCAM OF THE CENTURY)"라고 칭하며 “농부를 파괴하는 태양광"은 더 이상 승인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정책 변화는 이미 다른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쳤다. 올해 초 뉴욕 인근 '엠파이어 윈드(Empire Wind)' 프로젝트 역시 중단 명령을 받았다가 뉴욕 주지사 캐시 호컬과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척 슈머의 강력한 개입으로 재개됐다. 로드아일랜드는 '기후법'을 통해 2033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목표로 삼았다. 코네티컷 역시 해상풍력을 포함한 청정 전력 비중 확대를 핵심으로 한 에너지 전환 계획을 진행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로 두 주의 전환 계획이 사실상 원점에서 다시 논의돼야 할 상황에 처했다. 미 환경단체들은 “ 행정부는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석탄 발전을 되살리는 대신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미래를 책임질 에너지원인 태양광과 풍력을 억누르고 있다"라며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미국 국민"이라고 이번 조치를 비난했다. 코네티컷 출신 민주당 상원의원 크리스 머피는 “지난해 당시 트럼프 대통령 후보가 석유 업계 거물들과 모임을 갖고 10억 달러의 선거 자금 지원을 조건으로 규제 완화와 재생에너지 억제를 약속했다는 보도가 있었다"라며 이번 결정을 부패로 규정했다. 미국 정부의 재생에너지 억제는 전방위적이다. 미국 농무부는 지난달 18일 앞으로 생산성이 높은 농지에 입지한 태양광·풍력 프로젝트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브룩 롤린스 농무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 X(구 트위터)를 통해 “수백만 에이커의 농지가 태양광 패널 때문에 사용 불가능해지고 있다"라며 “미래 세대 농민과 국가의 미래를 앗아가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전임 행정부의 노선을 뒤집은 이런 정책 방향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미국 전체 농지의 0.05% 미만이 재생에너지 입지로 활용될 뿐 미국 농지는 온존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며 다행히 미국과는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재생에너지 전환은 돌이킬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기에 미국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나라는 많이 늦어진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 자체의 경쟁력이 확보된 상태에서 정책 불안정성을 제거하고 송전망 등 인프라를 발전설비 증설에 맞춰 갖추려는 섬세한 뒷받침이 필요하다. . 안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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