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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대통령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변하지 못한 기후부

지난 17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의 업무보고에서 당혹스러운 장면이 연출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재생에너지와 관련하여 던진 상식적인 질문에 아무도 명쾌한 답변을 내지 못한 것이다. 이날 업무보고에서 기후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균등화발전단가(LCOE, kWh) 목표로 해상풍력은 330원에서 250원이하로, 육상풍력은 180원에서 150원 이하로, 태양광은 150원에서 100원 이하로 하겠다고 보고를 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근본적인 질문'이라며 “태양광이 100원 수준이면 태양광에 집중 투자하지 왜 굳이 250원짜리 해상풍력을 해야 하느냐, 밤에 생산해서 그러느냐, 장기적으로 봐서 200원 이하로 내려가도 태양광 100원보다 비싼데 왜 이렇게 해상풍력에 매달리는지 모르겠다"고 질의했다. 이에 장관, 차관, 국장은 해외 사례를 소개하면서 해상풍력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산업적 기여도가 높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는 재생에너지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상식적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이다. 답은 간단하다. 태양광과 풍력발전은 상호간에 보완재이기 때문이다. 우선 태양광과 풍력발전은 가동 시간 상 서로가 서로를 보완한다. 태양광은 명백하게 해가 뜬 시간에만 발전이 가능하다. 7시부터 발전을 시작해 13시에 피크에 도달하고 16시 이후 급감한다. 또한 겨울에는 일조시간이 짧아 발전 시간대가 좁다. 해상풍력은 일반적으로 낮 보다 저녁에서 밤 사이 발전량이 많고, 특히 여름보다 겨울의 발전량이 많다. 태양광의 시간대별, 계절별 공백을 보완해주는 것이다. 설비 투자 측면에서도 태양광과 풍력은 상호보완적이다. 태양광은 공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소규모로도 얼마든지 설치가 가능하므로 장거리 송전 부담을 줄여준다. 하지만 부지 확보, 미관 등의 문제로 대규모 개발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높은 변동성으로 인해 추가적인 계통 안정화 설비 비용이 발생한다. 반면 풍력은 대규모 설비로 인해 초기 투자 부담이 크고 장거리 송전망이라는 추가적인 인프라 구축을 필요로 하지만, 한번에 높은 용량의 발전시설을 지을 수 있고 동시에 제조업 등 연관산업 육성에 탁월하다. 태양광은 한번 설치하면 수명을 다 할 때까지 연관산업 유발효과는 크지 않다. 그러나 풍력, 특히 해상풍력은 연관산업 효과가 뛰어나고 지속적이다. 제주대 김범석 교수 자료에 의하면 1GW 해상풍력개발에 필요한 총 수명비용은 약 9조원으로 추정되는데, 이 금액은 사업개발(2%), 해상풍력터빈(26%), 보조설비(19%), 설치시공(14%), 운영 및 유지(39%)로 구성된다. 해상풍력터빈은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큰 타워다. 블레이드, 베어링, 기어박스, 발전기 등으로 구성된 핵심부품으로 풍력 설비기술의 핵심이다. 기술성숙도가 중요한 분야로 국내 정책 연속성의 부재로 주춤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들이 있다. 보조설비는 해저케이블, 해상지지 철 구조물, 해상변전소 등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설치 시공 역시 우리나라의 건설 역량이 빛을 발하는 분야이다. 운영 및 유지 분야의 경우 20년 이상 장기간 지속되기에 고용창출, 산업유치 등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 기여도가 높으며, 충분히 육성될 경우 자동화 등의 기술 고도화를 통해 LCOE 하락을 유도한다. 이날 기후부 관료들은 해상풍력이 가지는 이러한 산업적 효과를 부각하려고 노력했지만 근본적인 상호보완성은 말하지 못했다. 심지어 이 대통령이 '밤에 생산해서 그러느냐'라고 의도치 않은 힌트까지 줬음에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기후부 관료들이 평소 전력시장 이슈에 보여주는 뿌리 깊은 '경직성'이 드러난 사례가 아닌가 필자는 우려한다. 태양광과 풍력발전의 상호보완성에는 주목하지 않고 “태양광은 이러한 장점이 있으니 몇 년도까지 몇 GW(%) 보급하자," “해상풍력은 저러한 장점이 있으니 몇 GW(%) 보급하자"와 같은 담론이 등장한다. 재생에너지를 늘리자는 것은 좋지만 찝찝하다. 이들 관료들이 아직도 국가 주도적인 공급 계획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전력시장과 같이 각종 기술과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일수록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방식은 비효율로 이어진다. 정부가 전기 소매가격(P)과 전기 공급계획(D) 둘 다 손에 쥐고 정치 · 행정 편의적으로 통제해왔기에 한전은 200조원이 넘는 부채에 허덕이고 있고 재생에너지 보급률은 OECD 꼴찌에 머물고 있는 것 아닌가. 재생에너지 시대를 맞아 정부는 '판을 엎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 정부와 공기업(한전)이 때로는 편을 먹고, 때로는 공기업의 희생을 강요하며 시장을 일방적으로 '계획'하는 방식은 한계에 봉착했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 가깝게는 도매 시장의 지나치게 경직적인 가격 체계를 손봐야 한다. 실시간 가격 제도와 용량 시장 제도를 실시하고 보조서비스에 대한 보상을 높여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할 설비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 큰 틀에서는 변동비 (연료비) 평가 방식의 SMP 제도 역시 가격입찰제로의 전환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도매 가격이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왜곡 없이 제대로 반영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수익성에 맞춰 시장이 반응하니 복잡다단하게 인센티브와 규제를 설계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인식이 관료들에게 부족하니 해상풍력을 두고 인허가 완화, 금융 지원, 항만 인프라 구축 같은 논의만 요란하다.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해주는 것은 좋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전력시장 개편은 뒷전이 될까 걱정된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계기로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김경식

[EE칼럼] 에너지 해결과제들의 구조 변화

요즈음 에너지학습과제들은 AI(인공지능) 관련이 많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우리 정부의 내년도 업무보고내용을 유의할 필요가 많다. 산업통상부는 지역 성장과 제조업의 인공지능(AI) 대전환을 통한 산업 경쟁력 극대화를 강조하였다. 물론 신-통상전략 추진도 밝혔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6~2040) 수립전략 재점검을 중심과제로 제시하였다. 2040년까지 탄소발전에서 재생에너지 전력의 전환기반구축을 검토하고 있다. 전력망을 적기에 보강하고 시장제도 개편도 함께 한다. 구체적으로는 석탄발전의 감축, 적정 LNG(액화천연가스) 발전 비중 유지와 재생에너지발전 확대에 필수적인 ESS(에너지저장장치), 양수발전 등을 통한 전력시스템 유연성 확충을 기한다. 그러나 지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윤석열 정부 확정) 발전원별 비중인 2038년 원전 35.2%, 10% 대인 석탄과 LNG 발전, 그리고 재생에너지발전 29.2% 수준에서 큰(?) 변동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재생발전의 세부 내용조정은 불가피한 것 같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업무보고 석상에서 2035년 태양광 발전가격이 100원/㎾h 이하 하락이 가능한데도 330원대 해상풍력과 250원대 육상풍력 육성 당위성 검토지시는 유의해야 할 것이다. 원자력 발전 발전원가는 40~50원대라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하였다. 물론 관련 부처에서는 2035년 무렵 해상풍력 규모가 20GW을 초과하면 그 '규모의 경제' 효과로 150원/㎾h 수준 하향 가능성을 제시하고는 있다. 이와 함께 대통령은 한국석유공사의 동해 해상자원개발사업(대왕고래)의 정밀검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설령 성공하여도 국제 유가 70~80달러 수준에서는 그 개발 타당성 미흡을 걱정하였다. 미래예측의 동태적 엄정성과 가치 중립적 평가수준에 대한 우리의 실무능력 한계와 고민을 반영한 것이다. 영혼 없는 'AI 논리' 구성은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우리의 고민은 최신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발표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IEA가 지난 14일 밝힌 10년 후 세계 에너지 시스템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란다. 그만큼 빠르게 변한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의 주종 요인은 세계 경제의 전기화(電氣化: Electrification) 증가이다. 전기 자동차, 히트 펌프, 그리고 디지털로 연결된 스마트 가전제품 급증에 따른 것이다. 전력 소모가 큰 '데이터센터' 급증도 또 다른 요인이다. 이들 상당수는 AI 구동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2035년까지 세계전력수요는 전체 에너지 대비 6배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IEA는 전망하고 있다. 당연히 에너지 공급부문 역시 빠르게 변화한다. 특히 태양광 등 재생 에너지발전원들의 역할증대가 주목된다. 이를 통해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전력망 관리의 복잡성 문제 해결 필요성을 제기한다. 가변적인 신재생 전력 흐름을 고려하는 동시에 소비자에게 신뢰성과 경제성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전력시스템의 '디지털'화가 이런 문제 해결의 주역이 될 것 같다. '디지털'화는 효율성을 개선하고, 경제성을 높이며,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 특히 AI는 전력시스템 효율화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 대부분이 독자적 특성을 강조하는 디지털 기반이다. 따라서 다른 시스템과 연계 강화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독점적인 설계특성으로 '인터페이스'가 부족하며, 상호 연계기능이 부족할 수 있다. 이를 단편화(斷片化)에 따른 비효율성이라 할 수 있다. 비용 증가, 혁신 저해 등 '디지털'화의 장점을 저해한다. 따라서 에너지 시스템에 단순히 디지털 기능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원활하게 통합할 수 있도록 상호연계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전력-에너지 부문 한계점들은 '고갈성' 자원의 가치를 금융시장에 인위적 척도인 화폐로 전환-평가하는 과정에서 유발된다. 2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 질서의 기반은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공급망 구축으로 비용 절감과 공동 성장이다. 지난 70년대 석유 위기 이후 자원공급한계는 익히 알려진 세계공영 체제의 위기 전형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금융 위기이다. 화석 연료 고갈, 에너지 가격 급등, 공급망 취약성, 지정학적 긴장 등으로 인해 세계금융 시스템 붕괴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각국 정부의 심각한 재정적자 때문이다. 이에 세계 에너지 공급 시스템과 각국 정부 부채관리능력이 동시에 위기(?)상황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에너지 공급과 경제성장 양 부문이 동반 위축단계에 진입할 우려도 있다. 이러한 우려는 '새로운' 자원 고갈과 성장한계론(Finite World)이랄 수 있다. 시의(時宜)에 적절한 논리개발과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최기련

[EE칼럼] 미래 전장의 승패, 배터리가 아닌 원자력에 달렸다

SF 영화를 보면 레이저 광선이 적의 미사일을 격추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던 이 레이저 무기가 최근 이스라엘의 아이언 빔이나 미국의 함정 탑재 레이저처럼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이 첨단 무기들이 실전에서 위력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가 하나 있다. 바로 막대한 양의 전기를 끊김 없이 공급해 줄 강력한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일이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원자력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많은 사람이 소형모듈원자로(SMR)를 그 해답으로 꼽는다. SMR은 대형 원전보다 훨씬 안전하면서도 활용도가 높아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SMR 하나만으로는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빈틈을 채워줄 주인공이 바로 초소형모듈원자로(MMR)이다. MMR은 쉽게 말해 트럭에 싣고 다닐 수 있는 움직이는 발전소다. SMR보다 훨씬 작게 만들어져 공장에서 완제품으로 찍어낸 뒤 트럭이나 수송기로 필요한 곳 어디든 배달할 수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깊은 산속 오지나 고립된 섬, 재난으로 모든 게 파괴된 현장에도 즉시 전력을 공급한다. 기존의 덩치 큰 발전소는 꿈도 꾸지 못했던 장소에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은 MMR이 가진 독보적 능력이다. MMR은 우리 군의 전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K-국방의 핵심 열쇠가 된다. 앞서 언급한 레이저 요격 무기가 제 역할을 하려면 순간적으로 엄청난 전기를 쏟아부어야 한다. 디젤 발전기나 배터리로는 이 막대한 전력을 감당하기 어렵지만, MMR은 연료 교체 없이 수년 동안 거뜬히 가동된다. 적의 공격으로 국가 전력망이 마비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 군의 지휘부와 작전 기지를 지켜줄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준다. 미국은 이미 MMR의 군사적 가치를 인식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국방부의 '프로젝트 펠레(Project Pele)'다. 과거 전쟁에서 미군은 디젤 연료를 싣고 가던 수송 부대가 적의 공격을 받아서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프로젝트 펠레는 이 위험한 연료 수송 작전을 이동형 원자로로 대체해 병사들의 목숨을 구하려는 시도다. 미국은 MMR을 단순한 기계 장치가 아니라 전장에 나간 젊은이들을 보호하는 필수 안보 자산으로 여긴다. 우리가 이 좋은 기술을 국방에 활용하려면 먼저 외교적 매듭을 풀어야 한다. 현재 우리가 맺고 있는 「한‧미 원자력협정」은 원자력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막고 있다. MMR을 군사 기지의 전력원으로 쓰는 것은 핵무기를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비폭발적(Non-explosive) 이용이다. 시대가 변하고 안보 환경이 달라진 만큼 우리도 족쇄를 풀고 당당하게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기술 활용을 가로막는 또 다른 벽인 규제 체계도 안보 현실에 맞게 뜯어고쳐야 한다. 지금의 원자력 규제는 일반 대중의 안전과 투명성을 최우선으로 하기에 검증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군사 작전에 쓰일 MMR은 적보다 앞서나가는 신속성과 보안이 생명이다. 미국이 지난 60년 동안 일반 원전과 군사용 원전의 규제를 완전히 분리해서 운영해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도 미국의 방식처럼 군사 안보용 MMR만큼은 별도의 트랙을 만들어 규제 절차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군사용 규제를 따로 만든다고 해서 안전을 포기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MMR은 기술적으로 대형 원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험도가 낮다. 출력이 매우 낮을뿐더러 사고가 나더라도 외부 전원이나 사람의 조작 없이 스스로 식어서 멈추는 피동형 안전 개념이 적용된다. 위험도가 현저히 낮은 기술에 대형 원전에나 적용할 법한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며 발목을 잡는 것은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결국 SMR과 MMR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날게 할 두 개의 날개와 같다. SMR이 기후위기를 막고 국가 산업을 이끄는 주력 함대라면, MMR은 험지와 전방을 누비며 안보를 지키는 특수부대다. 이 두 날개가 튼튼하다면 우리나라는 진정한 에너지 강국이자 안보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다. 레이저 무기를 움직일 심장이 없다면 그 무기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SMR과 MMR이 서로를 보완하며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도록 낡은 규제와 협정을 과감히 혁신하는 일을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 문주현

[EE칼럼] 국산 가스터빈 발전기의 미국 수출에 대한 소고

에너지 공학에서 효율(Efficiency)은 투입된 에너지 대비 활용된 에너지의 비율이며 에너지 변환 상의 손실이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하는 데 사용한다. 효율의 단위는 무차원수 혹은 %로 표현될 수 있다. 분모와 분자의 성분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시스템의 우수성을 효율만으로 판단할 수가 없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조명의 경우는 투입되는 전기 에너지 대비 조명의 밝기 같은 것이다. 적은 에너지를 투입하고 더 밝은 조도를 발생시킬 수 있다면 그 조명기기는 우월한 것이다. 이때 그 단위는 %로 표현할 수가 없는데 분모(전기)와 분자(조도)가 상이한 단위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변환 상의 손실량이 얼마인가 보다는 원하는 현상이 얼마나 잘 발현되는 가를 평가하는데 사용되며 효능(efficacy)이라고 한다. 전력 시스템에서 효율과 효능은 비슷한 듯 하나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해석된다. 전통적 석탄 발전소에서 발전된 전기가 집안의 백열등까지 전달되어 사용될 때의 에너지 효율은 5% 미만으로 황당할 정도로 낮은 효율을 가지고 있지만, 최종 결과물인 방 안의 밝기는 그 비효율성을 용인한다. 손실된 에너지의 비용은 소비자가 원하는 바를 얻게 해준 것에 대한 보상을 넘어서는 가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에너지 시스템에서 효율은 공학도들의 관심사고 효능은 소비자들의 관심사이다. 지난 200년 석탄과 석유의 시대는 단지 에너지 생산력의 증가 뿐만이 아니라 그 원료 가공물에 의한 문명의 전환을 이룬 시기였다. 탄소 함유 물질은 에너지 연료 이외에도 플라스틱, 아스팔트, 화학 섬유, 합성 고무 등 인류 생존과 생활의 필수품에 영향을 주고 시장과 산업생태계를 만들어 왔다. 특히 물질을 산소와 화학 결합시키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고온의 열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연소 엔진 기술은 인간을 지구 위의 '겸손한' 존재에서 삶의 환경을 지구 밖 우주에서 탐색할 수 있는 '괘씸한' 존재로 만들었다. 지구 위의 바람과 태양 에너지의 일부를 수거하여 겸손히 살아가자는 것과 물질에서 신이 숨겨놓은 에너지를 뽑아내어 경계의 벽을 넘어 날아가자는 것은 전혀 다른 가치의 효율과 효능이다. 연소 엔진의 폭발적 효율성은 연료를 수소로 바꾸면 친환경적 효능성을 가지면서도 유지될 수 있다. 얼마 전 미국에 수출한다고 보도된 두산 에너빌리티의 가스 터빈 발전기는 그러한 경계를 넘어서는 효율성과 친환경성을 확보하는 궁극의 연소 엔진 기술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탄소중립 정책과 더불어 화석 연료 에너지 시스템의 좌초 자산화라는 인식으로 인해 가스 터빈 기술을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미래의 에너지 시장은 재생 에너지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예측과 기대가 있다고 해서 천연가스 시대가 바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미래 수요를 잘못 예측하면서 현재의 주력 기술에서의 혁신을 소홀히 하는 경우는 20 여년전 일본이 메모리 반도체에서 시스템 반도체로 투자 방향을 바꾸면서 벌어진 결과를 생각나게 한다. 그 당시 일본은 단순히 메모리 용량을 늘리는 반도체 기술 보다는 뭔가 더 복잡하고 어려운 시스템 반도체 분야가 더 부가가치가 높아질거라 기대했었다. 한국은 오히려 단순하다는 메모리 용량 늘리기에 초격차 기술을 개발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게 되었다. 일본은 시스템 반도체 시장 수요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었고 산업생태계 전반에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오늘 내가 하는 것은 단순하고 쉬우니 미래 더 높은 가치를 위해 새로운 것을 하자는 것은 리스크가 작지 않다. 일본 반도체 산업의 투자 전략과 결과는 시장의 수요 예측의 타이밍과 종합적 대응 방안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김재민

[EE칼럼] 석유화학 구조조정, 부생수소 공백이 온다

12월 12일 여천NCC는 한화솔루션·DL케미칼과의 2025~2027년 장기 원료 공급계약을 이사회에서 의결했다. 이 과정에서 90만~140만 톤 수준의 감산(공급 조정) 가능성이 언급되며, 국내 석유화학 구조조정이 본격화됐다는 신호를 시장에 던졌다. 앞서 산업통상부와 10대 석유화학사는 자율협약을 통해 국내 NCC(나프타 분해설비) 설비의 18~25%(270만~370만 톤) 감축 목표를 공식화했고, 롯데케미칼·LG화학 등도 박스업·통합·매각을 검토하며 최소 3~5개 NCC 라인의 폐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대산·울산 산단에서도 대형 통합과 '빅딜' 시나리오가 병행 검토되며 업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탄 배경은 명확하다. 글로벌 올레핀 공급체계 재편과 국내 NCC의 구조적 원가 한계가 맞물린 결과다. 2010년대 후반 이후 COTC, ECC, CTO/MTO 등 대체 공정이 확산하면서 미국과 중동은 저가 에탄·원유 기반 생산시설 증설로 원가 경쟁력을 크게 높였다. 특히 ECC(에탄 분해설비)는 에틸렌 수율이 80% 이상으로, 나프타 NCC와의 원가 격차가 구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중국 역시 에틸렌 생산능력을 2018년 약 2,600만 톤에서 2027년 약 7,000만 톤대로 확대하며 저가 물량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국내 NCC는 나프타 의존과 원료비 변동성 탓에 수익성이 악화해, 가동률이 70%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문제는 이 구조조정이 석유화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프타 분해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생수소는 국내 수소공급의 핵심축이다. 2023년 기준 국내 수소 생산량은 약 248만 톤으로, 이 중 부생수소가 57%(약 141만 톤)를 차지한다. 특히 석유화학 NCC 공정에서 나오는 부생수소만 109만 톤으로 전체의 44%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2026년 전후 대산·여수·울산에서 일부 NCC 라인이 가동 중단되거나 폐쇄될 경우, 국내 수소공급이 당장 20~30만 톤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공급 축소는 곧바로 가격 문제로 이어진다. 부생수소는 공정 부산물로 생산단가가 kg당 1,500~2,000원 수준의 가장 저렴한 수소다. 반면 천연가스 추출 수소는 2,000원대 중반 이상, 수전해 기반 그린수소는 kg당 1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 현재 차량용 수소 소매가격이 약 1만 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부생수소 비중 축소는 수송용 수소 가격 상승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가격 탄력성이 낮은 수소차 시장에서 연료비 상승은 곧 경제성 악화로 이어지고, 이는 수소경제 전반의 추진 동력을 약화하는 리스크가 된다. 물론 NCC 구조조정은 산업 경쟁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문제는 속도와 순서다. 수소공급 기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구조조정과 대체 공급원 확보를 병행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정부는 부생수소 의존도가 높은 지역에서 NCC 폐쇄 시점과 신규 수소 생산기지 구축 시기를 연계해 조율할 필요가 있다. 산업부문 사업재편 승인 과정에서 부생수소 감소 영향 평가를 시행하고, 기업에 대체 수소 공급원 확보 방안을 함께 제출하도록 하는 방식도 검토할 만하다. 감축 대상 NCC 부지에 블루수소 플랜트를 전환 설치하거나, 폐쇄 설비를 수소 저장·물류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공급 다변화와 가격 안정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청정수소와 수입 수소를 조합해 공급원을 넓히고, 배관·저장 인프라를 확충하며, 청정수소 인증과 연계한 생산 지원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구조조정은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다. 동시에 수소경제로의 이행 역시 시간을 다투는 과제다. 부생수소라는 기존 기반이 흔들릴 경우, 수소차·수소발전·산업 탈 탄소화 계획 전반이 압력을 받을 수 있다. 그만큼 구조조정과 수소 수급 안정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설비 감축이 곧바로 수소공급 부족과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와 업계가 두 과제를 하나의 전략으로 묶어 접근해야 할 시점이다. 김재경

[EE칼럼] 탄소중립의 핵심 기술, 국내 CCS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마라

전 세계적으로 반복되는 기후재난과 이로 인한 피해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지구의 나이 약 46 억 년 동안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있다. 10만 년 주기로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와 지구 온난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과학적 증거도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기후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산업화 이후 폭발적인 화석연료 사용 증가로 인한 탄소 방출의 급증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범지구적인 2050 탄소중립 정책이 성공하면 정말로 기후변화가 멈출 것인지에 대한 과학적 다툼과 찬반은 뒤로 하고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에너지전환으로 탄소 방출을 줄이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중립의 길은 어렵고 멀지만 꼭 가야 하는 길인데 우리의 발걸음은 여전히 잰걸음에 불과하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에너지 효율 향상을 통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거나, 원전 또는 수소와 같은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에너지전환을 실행하고, 또한 산업체에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지층에 저장하거나 유용한 물질로 전환하여 재활용하는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기술을 활용해야한다. 에너지전환은 국민 경제 및 국가 산업 문제와 에너지 인프라 구축 등의 문제로 장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반면에 당장 활용이 가능한 방법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검증되고 활용 중인 CCS 기술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50개의 CCS사업이 운영 중에 있다. 2030년에 4억 톤, 2050년엔 10억 톤 저장을 목표로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탄소중립의 선두 주자인 노르웨이의 탄소중립 실천 과정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르웨이는 북해에서 석유 하루 200만 배럴를 생산 중이며 가스를 포함하면 석유환산으로 약 385만 배럴 규모를 생산하고 있는 산유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 35년 전인 1991년에 탄소세를 도입하여 꾸준히 탈탄소 정책을 추진한 결과 대표적인 유럽의 탄소저장 허브 국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인구 500만인 이들은 어떻게 과감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을까? 먼저 꾸준히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하는 북해의 유전으로부터 확보된 자금으로 장기적인 에너지전환 부문에 투자가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국가 에너지원 믹스를 살펴보면 재생에너지 비율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전력의 90% 이상을 수력이 공급하고 있어 풍력을 포함하면 전력의 100% 가까이 신재생 에너지로 공급이 가능한 국가이다. 즉, 풍부한 신재생에너지원과 막대한 자금의 바탕 위에 탄소세와 같은 정부 정책이 함께 작동되었기 때문에 탄소중립의 선두 주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은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다. 2025년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한국 정부도 여러 차례에 걸쳐 청사진을 발표했다. 2010년 계획에는 CCS를 통해 2030년까지 연간 3천만 톤을 감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2023년 계획에서는 2030년까지 연간 5백만 톤, 2050년에 약 5천만 톤을 감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은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국내에서 첫 번째 CCS 저장소로는 생산이 종료된 동해-1 폐가스전이 검토되고 있지만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030년 목표를 맞추려면 1백만 톤 규모의 저장소가 5개 필요하고 2050년 목표를 맞추려면 1백만 톤 규모의 저장소가 50개 이상이 준비되어야 한다. CCS 사업도 자원개발처럼 지하의 저장소를 찾아서 주입 설비를 건설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어도 5년~10년 전에 미리 준비를 해야한다. 실행력 없는 계획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언제까지 계획만 수정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신현돈

[EE칼럼] 미국 전력망 논의에서 배우는 교훈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다른 에너지와는 달리 전력망 운영과 전기 공급 관련해서는 유난히 사회적인 논의가 많다. 미국에서도 정말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고, 최근에는 큰 변화가 관찰된다. 이러한 움직임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우리나라에 참조가 될 만한 사례가 많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원자력 에너지를 향한 회귀가 강력한 동인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여부에 따라서 그리고 주 별 에너지 산업 현황에 따라서 입장이 다 달랐는데 이제는 거의 통일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불과 몇 년사이의 변화다. 에너지 자급 자족이 가능한 정말로 드문 선진국에 해당하는 미국에서는 가능한 선택지가 여럿이고 그 조합도 다양하니 여러 의견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뉴욕주나 매사츠세추주처럼 오랫동안 재생에너지 보급에 적극적이었고 상대적으로 원자력에 비 우호적이었던 주에서 원자력 발전소 신규 건설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뉴욕주에서는 주지사가 이미 주 전력청을 통해 1기가와트급의 신규원전 건설을 추진할 것을 정하였고 현재 자기 지역에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고자 하는 지자체를 상대로 신청을 받고 있다. 매사추세츠에서도 주지사 지시에 따라 원자력 로드맵을 만들기 위한 공청회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사실 이 뒷면의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하다. 그 동안 미국 동부의 대표적인 부유한 주였던 이 두 주에서는 적극적으로 보조금을 제공하고 태양광과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여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정책을 펼쳐왔는데, 그러다보니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이 큰 문제가 되었다. 이것은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어느 나라에서나 겪는 문제이다. 이 간극을 매우기 위해서 뉴욕주는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에서, 매사추세츠주는 퀘벡주에서 수력으로 생산된 많은 양의 전기를 수입해 왔다. 즉, 해가 뜨고 바람이 부는 시간에는 생산된 전기를 직접 사용하고 그렇지 않은 시간에는 출력조절이 쉬운 캐나다의 수력에 의지하여 전력망을 유지한 것이다. 이것은 독일이 재생에너지 정책을 펴면서, 유럽 11개국에 연결된 전력망을 통해 모자라는 전기를 수입해서 해결한 것과 매우 비슷한 정책이다. 만약 노르웨이의 피요르드에 설치된 수력발전소들이 없었다면 독일의 재생에너지 정책도 성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미국이 당면한 문제는 최근에 전력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캐나다의 각 주에서 자신들이 소비할 전기도 모자라는 지경에 이르러 미국에 공급할 여력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전기가 어떻게 공급되고 있는지를 몰랐다가 이제야 그 심각성을 이해해 가는 과정에 있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민주당 정부에서 진행되었던 전기화 정책이다. 자동차를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교체하기 위해 세금으로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였는데 여기에 가정에서 사용하는 스토브까지 모두 전기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 이미 보스턴의 공공 건물에서는 가스나 화석연료 사용이 금지되었고, 곧 신규 주택에서의 가스레인지 설치가 금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가스나 석유 난방에서 전기를 이용한 히트펌프로 교체하면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정원일에 필요한 기계들도 전기로 작동하는 제품을 구입하면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렇게 해서 가정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원을 거의 전기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전력 소모량이 많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주민들은 이제 전기 요금에 매우 민감해 질 수 밖에 없다. 미국 내의 여러 곳에서 데이터센터 설치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기저에도 전기 공급과 관련한 문제가 깔려 있다. 즉,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데이터센터가 들어오면 그 주에서 전기가 모자라게 되니 외부에서 비싼 가격으로 구입하는 전력량이 많아져서 전기 요금이 올라가게 되고,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AI가 신 경제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이 되니 반드시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어서 이런 문제의 해법으로 원자력에너지가 부각되고 있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원자력발전소에 직접 투자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는 에너지 지배력(Energy Dominance)이라는 주제를 들고 나왔다. 지난 달에 발간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미국의 에너지 지배력(석유, 가스, 석탄, 원자력)을 회복하고 핵심 에너지 부품을 자력 공급할 수 있도록 소위 말하는 리쇼어링하는 것을 최우선 전략으로 제시하였다. 그 논리를 좀 더 들여다 보면, 미국의 국력은 평시와 전시에 모두 생산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강력한 산업 부문에 달려 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산업 기반을 구축하기 원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에너지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전기에 관해서는 원자력을 활용한 전력 생산을 통해 제어할 수 있는 양질의 전기를 원하는 때에 적절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러 가지 문제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는데, 공개된 논의를 통해 국민들이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사실과 과학에 기반한 미래 전략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여기에서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것이 적지 않다. 강현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EE칼럼] 빌 게이츠의 방향 전환과 에너지 지정학

빌 게이츠의 기후변화에 대한 입장 변화가 화제다. 그는 지난 10월 28일 '기후변화의 혹독한 3가지 진실'이라는 자신의 글에서 기후변화는 인류가 멸망할 정도가 아님에도 인류 종말론적 시각이 단기 탄소 감축에 집착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4년 전 그가 출간한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에서의 종말론적 입장과 반대되는 것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방향 전환 이전에 또 다른 구루의 피벗이 있었다. 대니얼 예긴은 올해 2월 포린 어페어에 '문제에 직면한 에너지전환'이라는 글을 통해 전 세계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 생산량은 기록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석유와 석탄 에너지 생산량 또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면서 장기간에 걸쳐 전 세계 1차 에너지 믹스에서 탄화수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85%에서 2024년 80%로 크게 변하지 않은 상황을 두고 '에너지전환이 아닌 에너지 추가'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2022년 그는 뉴욕타임스 에즈라 클라인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러시아 화석연료 의존도 탈피를 위해 재생에너지가 기존 용량의 3배가 필요하다면서 재생에너지 경로 가속화는 서구 세계가 기억을 잃어버린 에너지 안보에 관한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급속한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느라 세계가 에너지 안보를 고려하지 않았고 에너지 비용과 경제성도 소홀했다고 말하면서 2050 탄소중립 목표를 2030년으로 앞당기려다 더 많은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 주장했다. 빌 게이츠와 대니얼 예긴의 입장 변화엔 포지션 정리라는 뚜렷한 공통점이 보인다. 빌 게이츠는 기후 문제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던 게이츠 재단의 단계적 폐쇄와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기후정책 그룹 해체를 포함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대니얼 예긴은 그의 재생에너지 관점을 통째로 바꿨다. 유럽은 더 많은 전력을 얻기 위해 천연가스보다 풍력에 의존할 것이며 재생에너지가 가장 우선순위에 있기 때문에 많은 양의 가스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이후 신재생에너지가 '과도하게 설정'되면서 화석연료 투자가 줄어들어 에너지전환 목표를 낮추지 않으면 70년대 오일 쇼크보다 더한 에너지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 진단했다. 대니얼 예긴이란 이름이 없었다면 OPEC 관계자 말처럼 들릴 정도다. 빌 게이츠가 새롭게 관심을 두는 분야는 저소득 국가의 에너지와 식량 부문이다. 그는 이들 국가의 화석연료 프로젝트 자금지원 중단이 전 세계 배출량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이들 국가의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졌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아프리카 대륙에 더 이상 에너지전환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천연가스와 석탄 프로젝트가 이들을 더 나아지게 할 것이라는 이유로 지원을 시사했다. 뉴스위크는 '다음 대형거래는 아프리카'란 장문의 기사에서 세계 핵심 광물 30%가 매장되어 있는 아프리카와 2,400억 달러의 무역 관계를 맺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10년 전보다 투자와 대출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든 중국, 사헬지역 및 기타 아프리카 국가들에 안보 측면 지원의 한계가 뚜렷한 러시아를 제치고 미국이 아프리카의 영향력 확대와 더불어 전략 금속과 핵심 광물에 대한 접근권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빌 게이츠와 대니얼 예긴의 방향 전환은 기존 재생에너지 중심 전환이 실패로 돌아갔으며 에너지 정책에 지정학 요소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트럼프의 '기후의제 사기'라는 표피를 걷어내면 미국의 '에너지 지배'를 통한 전 세계 영향력 확대라는 대전략을 마주할 수 있다. 유럽과 일본, 한국은 미국 LNG 수입을 확대할 것이고 아프리카의 자원을 두고 미국은 중국, 러시아와 경쟁할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 장관 크리스 라이트는 넷제로 정책으로 영국이 미국의 가장 가난한 주보다 소득이 낮은 이유로 에너지 전환으로 2005년 이후 28%나 줄어든 에너지 소비 감소를 들었다. 세계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더 많은 에너지가 경제적 번영'을 가져온다는 '에너지 추가' 내러티브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EE칼럼] 남북 경협은 재개돼야 한다

북한은 1984년 외국인 투자 촉진을 위해 합영법 제정 이후 지속적으로 경제 발전을 위한 자구적 조치를 취해 왔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때는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을 통해 유엔 대북 제재가 해제될 수 있다는 기대로 남북 간 교류가 활발히 진행될 것처럼 보였다.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고 통일에 이러야 한다는 민족적 당위성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순수한 투자 측면에서 북한은 우리 기업들에게 새로운 투자처이자 혁신적인 이머징 마켓이 될 수 있다. 북한은 다른 이머징 마켓들이 가지고 있는 저렴한 노동력과 임대료라는 장점 외에도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인구의 대부분이 중고등 교육 이상을 수료하여 양질의 노동력 공급이 용이하다는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북한은 2,500만의 북한 시장 뿐만 아니라 1억 4천만 명에 이르는 중국 동북 3성(요녕. 길림. 흑룡강성) 시장 및 러시아 연해주, 중앙아시아 시장 등으로 진출하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추진했던 “한반도 신경제지도"에는 중국 동북러시아 극동지역의 적극적인 협력을 얻어 남북 경제 공동체를 구현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겠다는 구상이 있었다. 과거 우리 기업들의 북한 투자 방식은 주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북한 투자가 다시 재기될 경우 다수의 기업들이 동일하게 채택할 방식으로예상된다. 그러나 남북 관계 악화 시 지난 5.24조치와 같은 전면적인 교류 금지 조치가 다시 취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경우에 대비하여 우리 기업들은 중국에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한 후 북한에 투자하는 아웃 바운드 업무를 포함한 북한 투자 방식 등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남과 북한 사이의 특수성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져 북한이 남한 기업들에게 다른 외국 투자자들보다 더 많은 투자 혜택을 부여하는 상황도 가정해 볼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남한 기업들이 투자하는 경우 일반적인 외국인 투자법이 아닌 북남경제협력법이라는 별도의 법률을 적용했다. 또한 우리 기업들이 주로 진출할 지하자원 개발에 대해선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하는 상황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실제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추진했던 황해도 연안군 정촌 흑연광산 개발은 북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 이런 사례를 볼 때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특구에 북한은 남한에 외국인 투자법 외 별도의 혜택을 부여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외국 기업의 북한 투자 시 직접 투자보다는 이미 관련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고 국제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한국에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한 후 이를 통해 북한에 투자하는 인바운드 업무를 포함한 북한 투자자 방식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한국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 기업들이 개성공단에 투자하는 경우 한국 기업과 동일하게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만약 남북 간 교류가 재개되거나, 아니면 북미 간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유엔 제재가 해제된다면 우리 정부는 어떤 협력 사업을 진행할 지 생각해야 한다. 남북 교류가 잘 진행되었던 2006년 6월 남과 북은 "남북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에 관한 합의“를 체결했다. 북한의 아연, 마그네사이트 등 남북이 합의한 광물 및 광산에 대해 남북이 공동으로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남과 북은 합의에 따라 2007년 7~12월까지 6개월간 북한 함경남도 단천지역 3개 광산(검덕 아연, 대흥 및 룡양 마그네사이트 광산)에 대해 3차례 공동조사를 했다. 남과 북 교류가 재개된다면 이것부터 복원해야 한다. 그리고 2011년 11월 필자가 한국광물자원공사(현, 한국광해광업공단)개발지원 본부장(실무단장)으로 북한을 방문해 북한 민족경제협력련합회 산하 명지총회사로부터 북한산 희토류 샘플 4개를 받았는데 이는 희토류 개발을 남한과 같이 하자는 의미였다. 그 날 광물자원공사와 북한 명지총회사는 “남북 자원개발 합의서"를 체결했다. 주요 내용은 북측에 부존되어 있는 광물 중에서 “희토류, 흑연, 마그네사이트, 연아연, 석회석, 석탄, 철광석" 등 7가지 광물과 북측에서 제공하는 광물(광산)을 공동 개발하기 위해 적극 협력키로 했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합의 사항은 이행되지 못했다. 결론은 이재명 정부의 실용 정책이 북한과의 교류 협력에도 적용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이를 잘 실행할 수 있는 통일부 산하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의 업무가 강화돼야 한다. 2007년 설립된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는 북한 지하자원넷을 통해 지속적으로 북한의 지하자원 관련 각종 현황 정보를 모니터링하여 제공하고 있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어떤 일이 잘 되기를 원한다면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부탁하라"라는 말이 있다. 강천구

[EE칼럼] 한전홀딩스, 개혁을 가장한 시대역행

최근 전력산업의 논의 지형에 가칭 한국통합발전공사 혹은 '한전홀딩스'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했다. 일부 관계자들이 ㈜한국전력(이하 한전)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한전과 발전 자회사의 역할을 재배열하자는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 등 발전 자회사들 사이의 역할 중복, 100% 모회사로서 한전이 행사해온 수직적 지배구조, 중복된 연구개발(R&D) 투자가 비효율의 원인으로 지적되며, 이를 지주회사라는 새로운 틀 아래서 단번에 정리해야 한다는 논리가 뒷받침되고 있다. 얼핏 보면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구조개편처럼 들린다. 조직을 다시 배열해 기능을 명확히 하고, 한전은 전력공급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며, 발전 자회사들은 지주회사 산하에서 보다 자율적인 체계로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도 덧붙는다.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한전의 수직적 독점 체제를 해체하고, 발전·송전·소매 기능을 분리해 경쟁과 중립성을 도입하려는 미완의 개혁의 첫걸음이었다. 발전부문을 6개 자회사로 나누고, 계통 운영을 한전으로부터 떼어내 전력거래소를 설립한 조치는 장기적으로 송전망 운영의 독립성과 소매시장 경쟁 도입까지 바라본 분권·경쟁 지향의 로드맵이었다. 그러나 최근 제기되는 한전홀딩스 구상은 이러한 개혁의 방향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발전·송전·판매·신재생을 다시 지주회사라는 단일한 우산 아래 묶으려는 시도는, 기능을 분리해 전력시장을 시장답게 만들고자 했던 과거 개혁의 취지를 되돌리는 조치다. 그럼에도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그럴듯한 표현을 앞세우니, 전력시장이나 지주회사 제도 중 하나라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쉽게 호도되고 만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이탈리아, 라틴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재벌의 역사적 궤적을 살펴보면, 순환출자와 복잡하게 얽힌 지배고리는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불투명한 지배 구조를 끊어내기 위해 도입된 장치가 바로 지주회사 제도다. 소유와 지배의 흐름을 드러내고, 얽힌 고리를 정리해 책임의 방향을 명확히 하겠다는 취지가 그 출발점이었다. 지주회사 체제는 얼핏 보면 구조개편의 강한 신호처럼 보인다. 조직을 다시 묶고 역할을 재조정하며 새로운 지도를 그린다는 상징적 제스처는 언제나 '개혁'이라는 단어와 결합해 대중의 눈길을 끌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빛은 얕고 표면적이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지주회사라는 장치는 구조개편의 본질적 문제를 피해가며, 기존 질서에 다시 성벽을 세우는 일종의 복고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개별 대기업이나 금융지주회사에서는 지주회사 체제가 나름의 설득력을 갖는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업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지배구조를 정비하며, 자본을 효율적으로 재배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성패가 끊임없이 갈리는 그들에게 지주회사는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위험을 분산하고 성장동력을 재조정하기 위한 조직적 도구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그 명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전은 다르다. 공익성을 본질로 삼는 국가 단위의 독점 기업에 지주회사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전력산업의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외형적 논리만 빌려오는 셈이다. 한전이 직면한 문제는 재벌기업의 지배구조 문제와는 전혀 다른 층위에 있다. 지금 필요한 개혁은 지배구조를 하나로 묶는 일이 아니라, 운영의 독립성, 시장 참여의 다양성, 계통과 가격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 세 가지가 전력체계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이며, 지주회사 모델은 그 어떤 부분도 해결하지 못한다. 지주회사는 흔히 '컨트롤타워'로 불린다. 거대한 기업집단을 하나의 유기체로 묶어 세밀하게 조정하는 브레인 같은 존재다. 이 체제 아래에서 인사권, 특히 CEO와 임원 선임권은 지주 본사에 집중되고, 중장기 전략도 각 회사의 판단을 넘어 결국 하나의 중심으로 모인다. 자회사들은 성과평가와 자본 배분, 투자 승인이라는 문턱을 넘어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으며, 리스크 관리와 준법감시 역시 지주사가 설정한 틀 속에서만 가능하다. 기업집단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 몸체로 바라보는 사고에서 나온 체계로, 목표는 언제나 부분의 성과가 아니라 전체의 최적화에 맞춰져 있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금융지주— 모두 지주회사는 지배와 감독을 맡고, 자회사는 은행과 보험, 증권을 각자 전문적으로 운영한다. 하지만 예산과 인사, 전략이라는 조직의 심장부가 모두 지주 본사에 소재한다. CEO 및 임원 인선, 중장기 경영전략, 리스크 관리 모두 통합된 지주의 계획대로 운영된다. 이런 구조에서 자회사 간에 '경쟁'이라는 개념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장에서 겨루는 독립된 기업이 아니라, 그룹 전략이라는 큰 지붕 아래서 역할을 분점받은 단위에 가깝다. 지주사가 본래 추구하는 가치 역시 혁신보다 건전성 확보에 더 무게가 실린다. 위험을 분산하고 비용을 통제하며 중복투자를 제거하는 데 주력하다 보면, 자연스레 공격적 혁신이나 시장을 흔드는 모험은 위축된다. 그 결과 지주회사는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명분 아래 권력의 중심을 더 단단히 고정하는 장치가 되곤 한다. 분권의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더욱 정교한 중앙집권의 기술에 가깝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역시 전력산업의 근본적 개편을 요구받았다. 그 흐름 속에서 도쿄전력은 2016년, 개혁의 깃발을 들고 지주회사 체제인 Tepco Holdings로 전환했다. 경영 효율화와 사업 부문별 책임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막상 내부의 작동 원리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본 국민들이 원래 의도했던 건 독점화된 제국을 공고화하는게 아니라, 시장을 시장답게 만들자는 것인데 말이다. 전력산업이 마주한 진짜 개혁은 송전망의 중립성, 계통 운영의 독립, 소매시장 개방, 분권적 에너지 시스템 구축 같은 구조적 변화에 있다. 그러나 지주회사로의 전환은 이러한 본질적 질문을 비껴간 채, 변화하는 듯한 제스처만 취하는 데 그친다. 이름을 바꾸고 조직도를 고쳐 그럴듯한 외형을 갖추지만, 실상은 두꺼운 메이크업으로 문제를 가리는 방식에 가깝다. 그 결과는 명백하다. 개혁을 가장한 포장의 두께만큼, 현상유지는 오히려 더 단단히 고착될 것이다. 유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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