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기자의 눈] 한전-한수원 집안 분쟁, 산업부 방관 괜찮나

모자(母子) 관계인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간의 바라카 원전 비용 분쟁이 국제 중재위원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탄핵정국으로 인한 정권교체 가능성에 눈치를 보는 공무원들의 소극적 태도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전과 한수원 간의 바라카 원전 비용 분쟁은 이미 오랜 시간 지속된 문제다. 그동안 '어련히 합의하겠지'라던 업계의 예측과 달리 두 기업 간의 합의는 쉽사리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제 중재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적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산업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어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산업부가 이 문제에 소극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탄핵과 정권교체 가능성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원전 최강국'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에서는 원전 관련 부서가 힘을 얻었고, 공무원들도 원전 부서를 선호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탄핵정국으로 접어들면서 공무원들은 원전 관련 업무를 기피하고, 차기 정권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특히, 차기 정권에서 원전 업무를 열심히 했던 공무원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정부에서 무슨 일을 했느냐는 식으로 차별하고 불이익을 주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무원들이 정권에 상관없이 주어진 과제를 열심히 수행해야 할 책무만 있다는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폐습이다. 산업부는 한전과 한수원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제 중재로 넘어가기 전에 두 기업 간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산업부는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두 기업 간의 협상을 주도해야 한다. 또한, 정치권에서 먼저 공무원들이 차기 정권을 걱정하지 않고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인사상의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산업부와 공무원들이 국가적 사안을 해결하는 데 있어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고,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기준금리 인하 반영할 때” 금융당국의 손바닥 뒤집기

“기준금리 인하를 반영할 때가 된 것 같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2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은행들의 대출 금리를 또다시 비판했다. 지난해 10월부터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됐지만 은행들이 이를 반영하지 않고 대출 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올해 들어 금융당국은 은행의 대출 금리 인하를 연이어 압박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열린 간담회에서도 “기준금리 인하가 대출 금리가 반영돼야 한다"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 18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은행권이) 올해 신규 대출 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분명히 있다"며 재차 은행의 대출 금리 인하 필요성을 언급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권의 대출금리 산출 근거 점검에 들어갔다. 지난 21일 은행 20곳에 공문을 보내 차주·상품별로 지표, 가산금리 변동 내역과 근거, 우대금리 적용 현황 등의 내용이 담긴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은행권의 대출 금리에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은행들은 지난해 기준금리 인하 흐름에도 역대 최대 이자이익을 기록했다.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해 KB·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의 이자이익은 34조원을 넘어섰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17개 국내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올해 1월 연 5.22%를 기록했는데,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 지난해 10월(연 4.76%)에 비해 오히려 더 높아졌다. 문제는 금융당국도 은행권의 대출 금리 인상에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폭증하자 당국은 은행권에 가계대출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을 주문했고 은행들은 작년 하반기께부터 대출 금리와 한도 조절 등으로 대출 증가에 대응했다.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 후에도 은행들은 당국과 가계대출 관리를 이유로 대출 금리 인하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대출 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은행들도 피하긴 어렵다. 다만 지금의 금리가 형성되기까지 금융당국의 입김이 얼마나 작용했는지 당국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말 바꾸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대출 금리도 가격이기 때문에 시장 원리가 작동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말처럼 시장 원리가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해서 금융당국은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임기 채워라” 이사회 역할 자처한 이복현 금감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022년 6월 취임 이후 항상 금융권 내 화제의 인물이었다. 1972년생 검찰 출신, 윤석열 대통령의 초대 금융감독원장, 윤석열 사단 막내 등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은 언제나 화려했다. 금융위원회 산하 특수기관으로 기를 펴지 못했던 금감원의 위상이 한층 강화된 배경에는 단연 이 원장의 힘이 컸다. 이 원장은 자신이 윤석열 정부의 실세라는 세간의 평가를 굳이 부인하지도, 의식하지도 않은 듯 했다. 오히려 각종 사안마다 금융위원회 패싱, 월권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금융권의 사사로운 일까지 세세하게 관여했다. 이 원장은 재임 기간 금융권에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CEO의 책임론을 강조하는 한편, 사안과 무관하게 CEO의 거취나 지배구조에 대해서도 서슬 퍼런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 원장은 오는 6월 임기가 만료되지만, 여전히 자신의 '세'를 과시하고 있다. 이 원장의 도 넘은 발언도 재임 기간 내내 계속됐다. 급기야 이 원장은 이달 1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임기를 채우시는 게 좋겠다"고 강조했다. 우리금융지주, 우리은행에 부당대출이 발생하는 등 내부통제 부실이 드러났지만, 임 회장이 책임지고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기업 CEO의 거취는 금융, 산업 등 업종 불문하고 해당 기업의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는 경영진의 성과, 역량을 평가하고, CEO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견제하는 한편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소위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금융지주사 CEO들의 거취를 결정하는 기구도 단연 이사회다. 특히 CEO 거취를 향한 금감원장의 발언은 금융사 이사회의 의사결정에도 단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원장도 자신의 발언에 대한 무게감을 결코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원장의 기세등등한 모습과는 달리 금감원도 내부통제 부실과 임직원들의 일탈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금감원 직원 8명은 지난해 11월 증권선물위원회에서 금융투자 상품 매매 제한을 위반한 혐의로 과태료 1370만원 등의 제재를 받았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 임직원이 신고대상 금융투자상품 관련 법, 행동강령을 위반한 사례는 최근 5년간 총 97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원장 특유의 철학과 잣대를 그대로 적용하자면, 이 원장 역시 이같은 직원들의 일탈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만일 이 원장이 금감원의 위상을 올리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았다면, 내부 사안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단연 1순위로 삼고, 금감원에서 발생한 각종 일탈에 대해 몸을 낮춰야 한다. 금감원장으로 해야 할 역할과 금융사 CEO 및 이사회의 역할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이를 지키는 것은 거론하는 것조차 불필요할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다. 이 원장 퇴임 이후에도 금감원과 이 원장 본인의 기세가 지금과 같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소액주주의 유상증자 반대, 기업은 귀 기울여야 한다

누구도 타인을 위한 '현금인출기' 역할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최근 차바이오텍, 티웨이항공, 고려아연, 현대차증권, 테라사이언스, 이수페타시스 등 여러 기업이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기업은 성장과 확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하지만, 소액주주들의 반대도 단순한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나름의 합리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 소액주주들이 유상증자에 반대하는 원인은 기업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분이 희석되면서 주주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유상증자는 새로운 주식을 발행해 추가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기존 주주들이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으면 보유 지분율이 낮아진다. 이는 향후 배당과 의결권 행사에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조달한 자금이 계열사 지원에 활용될 경우, 주주들은 자본 이득을 누리지 못한 채 지분 희석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소액주주들이 반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유상증자의 필요성을 느낄 수 없는 상황이다. 고려아연과 현대차증권의 유상증자 계획에 주주들은 '왜 지금 유상증자가 필요한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반발했다. 기업의 재무상태는 유상증자 반대의 핵심 논거 중 하나다. 현대차증권은 재무적으로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상증자를 추진했다는 지적을 계속해서 받아왔다. 기업이 유상증자를 통해 추가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면, 기존 현금흐름과 자금 운용 계획을 명확하게 공개하고, 주주들에게 설득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재무적으로 여유가 있는 기업이 단순히 대규모 투자를 이유로 유상증자를 추진할 경우, 주주들의 반발은 더욱 거셀 수밖에 없다. 소액주주들의 유상증자 반대는 단순한 불만 표출이 아니다. 이는 기업 경영진에게 보다 투명하고 신중한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일종의 견제다. 기업이 경영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주주의 신뢰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또 주주 신뢰를 잃으면 향후 기업의 다른 경영 활동에서도 주주들의 협력을 얻기 어렵다. 기업의 성장과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유상증자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소액주주와의 소통이 부실한 상태에서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다면, 이는 결국 기업의 평판과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진다.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상증자의 필요성과 그 효과를 주주에게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소액주주의 의견을 검토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소통과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애초에 주주 반대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업은 주주와 소통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해야 한다. 어쩌면 '과한 소통'이 기업과 주주의 '의견 일치'를 이끌어내는 가장 편한 방법일 수 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반년 가까이 지속되는 후판 협상…경쟁력 고민은 뒷전

“차라리 정부에서 나서 조정자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지난해 9월부터 이어진 후판 협상이 반 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지만 출구가 없다는 목소리다. 철강·조선업계가 각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는 다소 엇나간 의견마저도 힘을 얻고 있다. 후판은 두께 6mm의 두꺼운 철판으로 주로 선박 건조에 쓰이는 철강재다.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철강과 조선업계 사이에서 진행되는 후판 가격 협상이 갈수록 장기화되는 추세다. 현재 철강업계의 경우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글로벌 경기 둔화, 중국산 철강 제품의 밀어내기 공세까지 겹치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된 탓에 후판 가격 인상이 필요불가결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조선업계가 불황을 겪던 시절, 상생 차원에서 후판 가격을 낮춰 줬던 만큼 이제는 조선업계가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조선업계는 3~4년 동안 지속된 장기 불황의 터널을 지나 겨우 수익성 회복을 시작하는 시점이라 원가 절감이 간절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최근 국내 철강사의 후판보다 훨씬 값싼 중국산 후판이라는 대체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국산 후판의 가격이 인상될 경우 그만큼 중국산 후판을 많이 활용할 수밖에 없어 후판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실익이 없다는 주장이다. 양 측의 입장의 옳고 그름도 중요한 문제이나 결국 이번 가격 협상의 본질은 '경쟁력'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철강·조선업계 모두 가격을 제외한 다른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한 탓에 사활을 걸고 가격 협상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조선업계는 대규모 수주 성공으로 눈에 띄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글로벌 무대에서 위상은 더 이상 과거처럼 압도적이지 않다. 지난해 9월 20일 기준으로 8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의 수주 집계를 살펴보면 중국 조선사가 70%를 차지했으나 국내 조선사는 25%를 수주하는데 그쳤다. 지난 2011년 국내 조선사는 8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의 75%를 수주에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3년 만에 점유율이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압도적이었던 기술 경쟁력이 점차 따라잡히는 상황에 국내 조선업계도 원가 절감을 통한 가격 경쟁력에 집중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이와 유사한 문제를 더욱 가혹하게 체험하고 있다. 중국 철강사들이 글로벌 수출처를 가져가는 것을 넘어 국내 시장까지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중국산 후판 수입은 지난해 상반기 68만8000t(톤)으로 2023년 상반기보다 12% 늘었다. 안방마저 내주고 있을 정도로 경쟁력이 흔들린 상황이기에 가격만큼은 유리한 구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격이 이토록 중요해진 상황에서 양 측에 상생을 강조하더라도 우이독경(牛耳讀經)에 그칠 뿐이다. 가격 협상에 사활이 걸린 상황이라 상생은 자연스레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양 측이 가격 협상을 반 년 가까이 지속할 정도로 치열하게 하는 만큼 다른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크게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 아쉽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기자의 눈] ‘한국형 AI’의 개념·방향성 재점검할 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말에서 따온 이 문장은 우리 고유 개성이 세계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표현을 함축한다. 오랜 기간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켜온 가치는 이른바 'K-○○'로 치환돼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K-팝(POP)과 K-콘텐츠는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국제적 위상과 품격을 높였다. 이제 K-게임, K-반도체, K-푸드, K-스포츠, K-문학 등으로 외연을 넓히는 모습이다. 알고리즘은 자연스럽게 봉준호 감독과 한강 작가, 손흥민 선수, 불고기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한국적(K) 인공지능(AI)의 정의는 아직 명확히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 떠나서 추상성을 물성으로 변환할 수 있는 큰 틀이 없다. 최근 국회 문턱을 넘은 AI 기본법엔 '한국형 AI'의 개념과 기준이 명시적으로 포함돼 있지 않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경쟁력 제고 방안을 모색해 오고 있지만, '가장 한국적인' AI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그렇다 보니 기업의 구상에 따라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한국어를 가장 잘 아는, 한국인의 감정을 가장 섬세히 고려한, 한국 문화·법규 등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는, 한국인의 일상에 가장 최적화된… 일견 엇비슷한 듯 보여도 추구하는 결과값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다른 국가와의 차별점을 설명하기 힘들다. 이를 뒷받침해야 할 기능 구성은 전체적으로 대동소이한 탓이다. 우리나라 정체성을 가장 정확히 반영한 대표주자를 떠올리기 어려운 건 이 때문이다. 대중은 '한국적이어서 믿을 수 있는' 게 아닌 '성능 좋은' AI를 찾게 되고, 국내 기업의 AI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자체 모델과 외부 모델을 동시 활용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이 주류가 된 양상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나오는 이유다. 합종연횡을 통한 비용 절감·기능 고도화로 해석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빅테크의 AI를 활용한 앱 서비스를 개발하는 수준에 그칠 뿐이란 비판도 적잖다. 이는 AI 개발 방향이 성과와 편의에 치우쳐진 결과다. AI에 대한 철학을 정립하면서 개발이 이뤄져야 하는데, '일단 하고 보자'는 생각에 준비 없이 진행되다 보니 갈피를 못 잡게 된 것이다. 독자적 경쟁력을 확보하기보단 빅테크의 움직임에 편승한 모양새가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밀려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K-콘텐츠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독창적인 매력에 진정성을 더했기 때문이다. 세계에 'K-AI'를 새기기 위해 우리나라가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을까'보다도 '한국만의 AI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궁리해야 한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기자의 눈] BYD부터 딥시크까지… ‘반중 감정’ 아닌 ‘기술’이 필요

자동차부터 AI까지 중국 기업들의 파죽지세가 연일 들려오는 가운데 우리 기업, 정부는 뚜렷한 대비책보단 '반중감정'을 활용한 민심잡기 수준의 대응책만 내놓고 있다. 우리 국민 뼛속 깊이 박힌 중국 제품에 대한 불신을 통해 내수 시장을 아직까진 지키고 있지만, 이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막아도 싸고 좋은 제품은 시장에서 승리하기 마련이다. 최근 중국 기업들은 산업 전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히 한국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자동차, AI 쪽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전기차 브랜드 BYD와 최근 AI 시장을 뜨겁게 달군 딥시크다. 전기차 브랜드 BYD는 지난해에도 친환경차 판매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 미국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테슬라, 현대차 등 유려한 기업들을 제치고 달성한 성과다. 이들의 경쟁력은 단연 가격이다. 100만명이 넘는 직원, 정부의 든든한 지원, 완벽하게 지은 자동화 공장까지 전기차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갖춰졌다. BYD는 지난 1월 한국 진출을 공식화했고 2000만원대 전기차 아토3 출시를 확정했다. 딥시크는 중국의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소비자들이 흔히 알고 있는 오픈AI의 '챗gpt'와 유사한 기술이다. 딥시크가 주목받은 것은 약 80억원이라는 파격적인 개발비용 때문이다. 오픈AI 등 기존 업계에선 수천억원을 투자해 만들던 것을 이들은 10분의 1 수준의 금액을 투자해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중국 기업들이 최첨단 기술 공세를 퍼붓고 있는데 한국 업계는 '중국은 위험해'란 감정으로 방어에만 급급하다. BYD 전기차에 대해 소비자 및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산을 어떻게 믿냐, 목숨걸고 타다 죽을 일 있냐 등 추상적인 반응만 보이고 있다. BYD의 배터리 기술이 한국 기업보다 뛰어나고, 이미 이들이 세계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는 사실은 흐린 눈으로 보고 있다. 딥시크는 정부가 나서서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며 서비스를 제한했다. 우리 기술이 더 뛰어나고 우리가 먼저 개발했다면 국가적으로 나서서 이런 제한을 걸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중국을 넘기 위해선 한국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BYD 전기차는 못미더워", “딥시크 쓰면 개인정보 다 털려" 같은 회피적인 태세를 취할 때가 아니라, “BYD, 딥시크보다 더 경쟁력 있는 기술을 만들어야 해"라는 혁신적인 자세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기업의 적극적인 R&D, 소비자들의 깨어있는 인식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기자의 눈] 유가족 요구가 전문성 삼킨 제주항공 2216편 사고 조사

어제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2216편 참사 사망자 179명에 대한 49재가 열렸다. 유가족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강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 해당 사고 조사를 이끌어야 할 장만희 전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장이 “건설교통부·부산지방항공청장 출신이어서 셀프 조사의 우려가 있어 이해 관계가 의심된다"는 유족 측 주장을 국토교통부가 적극 받아들여 제척됐다는 점이다. 항공기계공학을 전공한 장 전 위원장은 대한항공 정비본부에서 경력을 시작해 건교부에서는 항공기 안정성·항공사 안전 감독·사고 조사 등을 담당한 바 있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항행 위원 활동 이력이 있다. 그런 만큼 일평생 항공 사고와 예방 분야에 몸 바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에서도 “국내 최고 전문가를 배척하면 조사를 어떻게 하느냐"며 말이 많았다. 항공 사고 조사는 철저한 데이터 분석과 고도의 기술적 검토가 필요한 영역이어서 △기계적 결함 △조종사 과실 △정비 문제 △기상 요인 등 다양한 변수를 종합 고려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분석하려면 관련 경험과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이 필요한데, 논리나 합리성이 아니라 유가족의 일방적 요구가 전문가를 밀어낸 꼴이다. 국토부는 항공 산업 진흥·규제·사고 조사까지 전권을 가진 기관이 맞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적인 문제는 분명 개선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토부가 모든 인력 풀을 가진 상황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단순한 출신 배경 하나로 배척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심지어 유가족은 국토부를 못 믿겠다며 사고 조사에 자신들이 추천한 인사를 넣어달라고까지 했지만 당국이 국제 기준에 어긋난다며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항공 선진국들은 사고 조사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기하고자 전문가를 투입해 철저히 검증한다. 그 덕에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세계 최고의 항공 사고 조사 기관이라는 권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누가 조사하느냐를 두고 예송 논쟁이 벌어지고, 정작 중요한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일이 반복된다. 항공 사고 조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 원인 분석이 아니라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특정 집단이나 정서가 개입해 조사 과정을 좌우한다면 결과의 공정성은 물론 재발 방지 대책도 신뢰를 얻기 어렵다. 전문가를 무시하는 반 지성주의적 사회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사고 조사에서 중요한 건 당국을 믿고 차분히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언제 일어날지 모를 다음 번 사고에서도 같은 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소통 없는 금융위의 상폐 간소화 정책

지난달 21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연구원은 'IPO 및 상장폐지 제도개선 공동세미나'를 개최하고,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상장폐지 기준이 되는 시가총액과 매출액 기준을 높이고 상장폐지 절차도 간소화하기로 했다. 코스피의 경우 상장폐지를 앞두고 주어지는 개선기간이 최대 4년에서 2년으로 줄어든다. 코스닥은 3심제에서 2심제로, 개선기간도 2년에서 1년6개월로 단축된다. 주식시장 내 저성과 기업의 적시 퇴출을 위해 상장폐지 요건은 강화하고, 절차는 효율화한다는 것이 취지다. 하지만 주주연대는 금융위의 정책에 반대했다. 졸속정책이라는 것이 골자다. 조기 상장폐지가 만능은 아니다. 기존 대주주들은 소액주주들에 정보를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은밀히 자산을 유출시킬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소액주주들 입장에서는 재산적인 피해를 받을 수 있다. 금융자산의 손상 사유 중 하나가 활성 시장의 소멸이다. 이를 본 국내 소액주주들은 불안감이 커질 수 밖에 없다. . 지난해 증권사 실적을 서학개미가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투자 이민'은 나날이 늘고 있다. 본질적으로 한국 종목들의 매력이 없는 상황이기에 이해할 만한 부분이 있다. 그래도 충분히 한국거래소의 매력을 높일 방법도 있다. 그 방법 중 하나로는 주주들과의 '소통'을 통한 합리적인 시장 운영이다. 주주친화적인 시장 제도는 투자 이민을 막고, 국내에 자금을 유입시켜 국내 자금 순환에 일조할 수 있다. 그런데 주주연대연합은 공론의 장에 초대받지 못했다. 이화그룹주주연대, 주주연대범연합 등은 2023년 거래정지를 당한 이후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시장의 문제를 환기시켰고, 합리적인 제안도 많이 했다. 그리고 이화그룹 주주들은 30만명에 이를 정도로 대표성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창구에 초대 받지 못했다는 것이 유감이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감사보고서 작성 기준 내 불확정적 요소 배제 △거래정지 종목 단계적 주식 매매 허용 △상장폐지 사유 공개의무화 등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국내 증시가 점점 악화된다면 그 피해는 모두에게 미친다. 자금은 순환되지 않기에 산업은 생기를 잃게 된다. 적시에 자금 공급이 어려워, 국가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사실을 정책 관계자들이 모두 주지하기를 바란다. 박기범 기자 partner@ekn.kr

[기자의 눈] 또 나온 이자장사 의존 논란, 은행 탓일까

4대금융(KB국민·신한·하나·우리) 뿐 아니라 BNK·JB 등 지방금융그룹이 '역대급' 실적을 내면서 또다시 '이자장사'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경기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고객들의 고충을 외면한다는 이유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금리 인하폭을 가산금리에 '충분히' 반영하라고 발언하는 등 금융당국도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다수 은행들의 이자이익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이같은 지적은 타당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은행들도 할 말이 있다. 기준금리 인하로 순이자마진(NIM)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금융지주들이 자사주 매입·소각을 비롯한 주주환원 강화 등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계획을 밝혔음에도 주가가 악영향을 받은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은행들의 이자이익 확대가 가계와 기업향 대출이 불어난 것에 기인한다는 점도 돌아봐야 한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 등을 이유로 사실상 대출금리 인하를 막은 탓에 별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그렇다고 대출금리를 올리면 2금융권을 넘어 카드론을 비롯한 '급전'에 손을 대는 금융소비자들이 불어날 수 있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은행 입장에서도 연체율 상승세 지속에 따른 고민을 안게 된다. 실제로 최근 신용카드 연체율은 '카드 대란' 이후 최고 수준이다. 증권가에서 금리 인하시 연체율이 낮아져 은행들의 건전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 지경이다. 비이자이익 감소도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각에서는 계엄 사태 이후 원·달러 환율 급등이 이뤄졌다고 토로하지만, 환율은 11월 중순부터 이미 1400원대로 진입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속 미국의 선방,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에 따른 통상 갈등 격화 등이 반영된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비기축통화국인 한국 기준금리가 미국 보다 1.5%포인트(p) 가량 낮았으니 외환(FX) 손실은 피할 수 없었다. 다수의 금통위원들이 '기준금리 인하가 경기 부양에 큰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는 입장을 펴면서도 금리 인하 필요성에 공감하는 상황이면 향후에도 고환율 관련 리스크가 지속될 공산이 크다. 은행의 '주력사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결국 비은행 계열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사격이 필요하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 등에 밀려 기대치를 밑도는 개혁이 이뤄진 것은 아쉽지만, 최근 금융지주가 보유 가능한 비금융회사 주식이 5% 이하에서 15%까지 높아지는 등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된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길 바란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