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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참사의 기억법, 한국 사회는 성숙해졌나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2022년 이태원 압사 사고, 2024년 제주항공 2216편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이탈 사고. 10년 새 국내에서는 이와 같은 대형 참사들이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1인 미디어의 발달로 매 사건마다 유언비어가 삽시간에 퍼지고, 명예 훼손 우려가 큰 악성 게시물들이 판을 쳐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모습이 반복된다. 이런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고 객관적으로 보도해야 할 언론은 사실 관계 파악을 소홀히 해 조회수와 속보 경쟁에 목을 맨다. 그러다보니 299명이 사망하고 실종된 5명은 아직도 수습하지 못한 세월호 사고 당시에는 탑승자 전원을 구조했다는 대형 오보가 났다. 무안공항에서 생겨난 제주항공 참사에선 '기장·객실 승무원 6명 구조'라는 제목의 속보가 나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큰 사고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줬지만 결국 179명이나 사망한 대형 참극으로 귀결됐다. 또 여권 번호와 성별 등 개인 정보가 적힌 탑승객 명단을 사진으로 찍어 여과 없이 속보로 내보내는 부끄러운 행태도 목격됐다. 방송사들은 활주로에 동체 착륙한 제주항공 여객기가 흙무더기에 덮힌 콘크리트 구조물에 충돌해 폭발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내보내 자극적인 보도를 했다. 일부 몰상식한 시민들이 유가족을 참칭하며 가짜 인터뷰를 진행해 진짜 유가족들이 반발하는 일도 있었다. 한국기자협회 재난보도준칙 2장 제3조는 '정확한 보도'를, 제10조는 '무리한 보도 경쟁 자제'를, 제11조는 '공적 정보의 취급'을, 제12조는 '취재원에 대한 검증'을, 제15조는 '선정적 보도 지양'을 명시하고 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무시되기 일쑤다. 시간이 지나도 참사를 대하는 자세는 변하지 않아 '정론직필'은 공염불에 불과한 모습이다. 미국에서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언론과 시민 사회의 대대적인 변화가 나타났고, 독일·일본은 재난 관리 시스템을 전면 개혁하고 재난을 역사적 교훈으로 삼는 문화를 구축했다. 참사를 기억하는 방식이 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하는 법이다. 그런 만큼 이를 기록하고 교육하는 방식을 고쳐야 하고, 언론과 시민들의 자성을 통한 의식 수준 제고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국정혼란 때마다 춤추는 ‘물가 인상’

물가 인상엔 권력 공백기가 적기인가. 계엄령 파동과 탄핵정국에 따른 국정 불안의 어수선한 틈을 타 지난해 말부터 식품·화장품·패션 등 업종에서 가격인상 물꼬가 터졌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줄인상에 나섰던 유통업계에 또 다시 국정 불안이 호재로 작용하는 있는 분위기다. “원부자재·물류비 상승으로 불가피하게 가격을 올렸다"는 업계의 해명마저 8년 전과 '판박이'다. 더욱이 물가 안정을 내걸고 몇 년 간 가격 동결의 뚝심을 보였던 업체마저 인상 카드를 꺼내든 것이 시기의 우연이라 보기엔 찝찝한 느낌을 남긴다. 물론 업체들 속사정을 들어보면 나름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글로벌 통상 환경 등 대외변수까지 맞물리며 원달러 환율 1500원(6일 오전 현재 1469.5원)을 넘보고 있어 기업의 가격 인상은 수익성 보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지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소득은 제자리걸음인 상황에서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가격만 치솟고 있어 국민들의 생계를 더욱 옥죄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시급)은 지난해(9860원)보다 170원(1.7%) 찔끔 오른 1만30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확산세로 위기 상황이던 2021년(1.5%) 이후 역대 최저 인상률이며,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2.3%)에도 못 미친다는 점에서 '최저임금 1만원대 시대'라는 의미 부여는 서민생활과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물가 인상이 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구조에서 진행되는 점도 문제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1인 4역을 소화해야 하는 형국인지라 물가 안정을 포함한 주요 민생현안이 뒷전으로 밀리고, 민간시장의 동향을 실효적으로 제어할 조치 능력마저 버거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4개월 연속 1%대 물가 상승률을 유지중이지만 환율 급등 여파로 1월 소비자물가가 다시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는 한국은행의 진단이 나왔다. 국정이 혼란스러울수록 빨리 수습하고, 국민생활을 안정시키는 게 정부의 책무다. 물가 변동성이 확대되는 설 명절이 3주 앞으로 다가왔다. 과일을 비롯해 국내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으며, 수입가공식품도 고환율로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가격인상 충격을 최소화하는 실효성 높은 물가대책이야 말로 국정 혼란을 막고 민심을 진정시키는 상책(上策)이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기자의 눈] 고려아연, 집중투표제 ‘묘수’로 유상증자 ‘무리수’ 뒤집다

고려아연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주주들에게 '산타'가 되어 깜짝 선물을 내놓았다. 바로 이번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지배주주의 전횡과 방만한 경영이 경제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자생적 노력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소액주주가 지배주주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재계를 중심으로 대기업들이 이 제도를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자 실제로는 도입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았다. 상법에 도입됐으나, 기업들이 정관에 반영해야 한다는 단서가 달렸기 때문이다. 즉, 원치 않는 기업들은 적용하지 않아도 됐다. 재계가 집중투표제 도입을 강력히 반대한 배경에는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과 외부 인사의 이사회 진입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처럼 재계가 사활을 걸고 저지하려 했다는 점은 오히려 이 제도가 얼마나 선진적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책인지를 반증한다. 그런데 이번에 고려아연은 상식을 뒤집는 선택을 했다. 그들은 오히려 이사진을 열어주는 선택을 했다. 최윤범 회장 측의 지분율이 낮아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 국내 상장사 중에는 낮은 지분율에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상대방의 지분을 인정하지 않고 승리한 경우가 많다. 지난달 상장사 주총에서는 법원이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을 인정했음에도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의결권 수거함을 들고 도망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MBK파트너스가 지분율을 높이더라도 이사회 문턱을 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 것이 K-주주총회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최 회장은 MBK에게 이사진을 열어주는 통 큰 선택을 했다. 이는 고려아연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회사로 격상시킬 전망이다. 우선, 주주권이 한 단계 격상됐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된다면 1주의 가치는 예전보다 제고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해 이사회 중심의 선진 경영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MBK와 같은 동아시아 1위 사모펀드가 엄선한 걸출한 이사 후보들이 이사진에 합류하면, 회의체 기구인 고려아연 이사회에서는 다양한 의견 교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최 회장은 집중투표제를 들고 나오며 이미지 쇄신에도 성공했다. 그간 최 회장은 유상증자라는 '최악의 수'를 둔 경영자로 인식됐으나, MBK 등 주주와의 공생을 선택함으로써 '대인배의 풍모'를 지닌 인물임을 보여줬다. 박기범 기자 partner@ekn.kr

[기자의 눈] 정쟁 몰두해 민생 에너지법안 외면, 국회의원은 탄핵 안되나?

행정부와 사법부를 대상으로 한 국회의 탄핵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뉴스의 중심이 되고 있다.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한 국회는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이어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까지 연이어 통과시켰다. 또한 민생과 내수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연봉은 1억6000만원으로 그들이 대표한다는 국민들의 동의 없이 셀프인상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민생법안이라는 에너지 관련 현안 법안들 통과에는 이런 막강한 힘을 사용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실소가 나온다. 실제 국회는 지난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전력망특별법, 고준위특별법 등 국가경제에 시급한 현안들을 차일피일 방치하고 있다. 끝없는 정쟁과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의 소용돌이로 빠져들며 주요 현안들은 또다시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이후 개최한 국무회의에서 각부처 장관들에게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은 기업현장의 애로사항들을 적극 청취하면서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고 반도체특별법, 인공지능기본법, 전력망특별법 등 기업 투자와 직결되는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국회와 적극 소통해 주기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법안을 상정하지도 못하고 국회로 부터 탄핵당했다. 민생법안을 챙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국회의 요구대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국회의원은 헌법 제65조에 따라 대통령·국무총리·장관·헌법재판소 재판관·감사원장 같은 공무원들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할 때 탄핵심판에 소추할 수 있다. 국민들의 대표라는 명분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민생에 필요한 입법 활동을 하지 않거나 당리당략에 따라 민생과 국가경제에 필수적인 법안들을 통과시키지 않거나, 국회 상임위원회나 본회의, 국정감사 등에 출석하지 않거나 성실히 임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고준위 특별법은 고준위 방폐물(사용후핵연료)을 영구 처리할 수 있는 방폐장을 구축하기 위한 법안이다. 해상풍력 특별법은 풍력발전 촉진방안을, 전력망특별법은 국가 핵심 전력망의 적기 확충 방안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모두 2050탄소중립은 물론 산업계와 민생의 근간이 되는 발전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법안들이다. 그러나 국회의 외면 속에 업계의 어려움은 점점 커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기업들과 국민들에게 큰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큰 사황이다. 탄핵안은 빛의 속도로 통과시키고 민생법안은 뒷전인 게 우리 국회의 현주소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韓 기술 노리는 ‘뱀’, 신속·강경 대응이 옳다

푸른 뱀의 해가 열렸다. 문제는 우리 기업들과 연구기관들이 피땀흘려 개발한 기술을 노리는 뱀들이 들어오는 문도 열렸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나섰으나, 산업스파이 규제를 위한 형법 제98조 개정안이 야당의 반대로 정기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탓이다. 올해 열리는 임시국회에서도 통과될지 의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바꾸는 것이 조항 남용과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선진국을 중심으로 각국이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막기 위해 기술 장벽을 높이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리나라가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할 필요성이 큰 것도 고려 대상이다. 부존자원이 극히 적고, 내수시장도 작은 탓에 '가성비'를 갖춰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해야 경제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들게 확보한 기술을 빼앗기면 이같은 강점을 지닌 나라들과의 경쟁이 힘들어진다. 경제적 손실이 크게 나타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말 웨이퍼 생산 기술 유출 혐의로 진행 중인 경찰 조사건의 피해액은 4조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기술 탈취에 열을 올리는 나라로는 중국이 가장 먼저 언급된다. 이들은 국내 대기업 임원 출신 인사를 영입하는 등의 방식을 활용하는 중으로, 반도체 뿐 아니라 디스플레이·조선·2차전지를 비롯해 경쟁을 펼치는 분야를 중심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조선의 경우 대형 컨테이너선 등의 선종을 중국이 사실상 독점하는 상황으로, 대형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시장도 뺏기면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잃을 수 있다. K-방산도 타겟으로 꼽힌다. 인도네시아 기술진은 총 8조원이 투입되는 일명 '단군 이래 최대 무기체계 개발 사업'으로 불리는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 관련 자료 유출 혐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이같은 흐름을 끊지 못해 현지 생산을 요구하는 수출 대상국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방산 수출 4강 도약의 꿈도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 현행 형법이 가리키는 적국이 사실상 북한을 의미하지만, 다른 국가가 탈취한 기술이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집에 물건을 훔치러 온 강도를 진압했다고 처벌을 받는 촌극이 벌어지는 나라지만, 우리 기술을 도둑질하는 행위를 국적을 불문하고 처벌 대상으로 포함시켜 경제를 지키겠다는 모습을 보고 싶다.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국내 경제의 저성장이 빚는 어려움이 많다는 점에는 좌우가 없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기자의눈] 과잉보호로 ‘헐값’될까, 시련으로 ‘성장’할까

“PBR 0.3배면 적대적 M&A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발언이 재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닌, 한국 자본시장의 근본적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발언이 제기하는 핵심 문제는 한국 기업들의 극심한 저평가 현상이다. PBR 0.3이란 기업이 보유한 순자산의 30% 가치로만 시장에서 평가받고 있다는 의미다. 1000원어치의 자산을 가진 기업이 300원에 거래되고 있는 셈인데, 이는 시장 가치 평가의 심각한 왜곡을 보여준다. 이 대표의 발언 중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은 “과도하게 평화로운 시장"이라는 문제의식이다. 한국 자본시장은 오랫동안 지배주주의 경영권이 지나치게 안정적으로 보장되어 왔다. 재계는 이를 '안정적 경영환경'이라고 미화하지만, 실상은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압박이 부재한 상태다. 적대적 M&A의 위험이 실질적으로 없는 상황에서 경영진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재계는 통상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 높은 상속세율, 지주사 디스카운트 등 외부적 요인을 저평가의 원인으로 지목해왔다. 하지만 이는 책임 회피에 가깝다. 기업 내부의 변화, 특히 경영진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성찰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런 현실의 근저에는 한국 기업들이 소액주주를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는 구시대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배당을 늘리거나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조차 특별한 혜택인 양 포장해온 것이다. 이는 주주가 회사의 실질적 주인이라는 자본시장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처사다. 기업가치가 적정하게 평가받도록 요구하는 것은 주주의 당연한 권리다. 한국 기업이 진정한 의미의 선진화를 이루려면 '과도한 평화'를 깨고 '건전한 긴장'을 만들어내는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적대적 M&A의 위협은 그 자체로 경영진과 지배주주를 견제하는 효과적인 시장 규율이 될 수 있다. 기업가치가 적정하게 평가받도록 요구하는 것은 주주의 당연한 권리이며, 이를 보장하는 것이 건전한 시장의 기본이다. 이제 재계는 피할 수 없는 질문 앞에 서있다. 저평가 문제를 더 이상 외부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기업가치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권리 보호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기자의 눈] 호화여객선 타고 ‘그린보트’ 캠페인이라니

환경재단의 '그린보트' 캠페인이 환경단체 사이에서 논란이다. 그린보트란 내년 1월 16일~23일, 7박 8일 동안 부산부터 대만, 일본 주요 도시 등을 도는 크루즈 여행을 말한다. 환경재단은 단순 크루즈 여행이 아닌 친환경 교육과 같은 여러 환경캠페인을 그린보트를 통해 하겠다고 한다.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그린보트를 '위장환경주의(그린워싱)'라고 비판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환경캠페인을 호화 여객선인 크루즈에서 한다 하니 이상하다. 환경단체뿐 아니라 환경 쪽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세상 눈치를 본다. 기후 분야를 취재한다는 이유로 플라스틱 컵을 쓰는 것도 조심스럽다. 환경을 다루는 공공기관들도 어느 정도 환경주의자의 마인드를 가진다. 환경단체 사람들이 받는 압력은 더 크다. 이들은 환경캠페인을 하다 보면 '너는 차 안타고 고기 안먹고 사냐'라는 비아냥을 듣기 일쑤다. 환경단체는 사람들의 비난에 적어도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걸 제외하고는 자제하자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사람은 엔진만 넣으면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다. 즐거운 놀이를 찾는 것도 삶의 목적이다. 당장 비난은 피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면 환경운동은 관심을 얻기 어렵다. 에코나우가 최근 개최한 유엔청소년환경총회에서 친환경 E스포츠를 주제로 삼고 청소년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봤다. 게임은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데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친환경으로 해보자는 것이다. 환경운동에는 과격함뿐 아니라 다양함이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본질적으로 여행은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환경에 해악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여행 다니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환경단체의 그린보트 캠페인도 사람들에게 친환경 여행이라는 메세지를 주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감안해도 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린보트를 이야기하는데 크루즈를 직접 타면서 경험을 얻을 필요는 없다. 친환경 E스포츠를 논한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게임을 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전기를 써도 게임은 똑같다. 크루즈가 친환경 연료로 돌아간다 해서 배를 타는 사람들은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업무협약이나 세미나로도 그린보트를 하자고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다. 크루즈 여행이 요즘 싸졌다고는 하나 사치라는 이미지를 벗을 수 없다. 골프치는 사람들이 흔해졌어도 '그린골프'가 어울리지는 않는다. 그린보트도 마찬가지다. 게임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일반 서민들이 해외여행으로 가는 데 7박 8일이나 투자하기 어렵다. 그린보트는 엘리트 환경주의자들이 부를 과시하는 자리로 보이면 안된다. 조용히 혼자 크루즈 여행을 가는 것과 환경운동으로 내세우는 건 완전 다른 문제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린보트는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됐다. 내년이면 벌써 20년을 맞이한다. 환경운동에 대한 사람들 의식도 변하고 있는 만큼 캠페인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 다들 문제라고 하는데 고집을 계속 부리면 저의가 의심될 뿐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계엄·탄핵 연대책임’ 정부·여당, 결자해지 필요하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파동은 한국 민주주의는 물론 국가 경제에 타격을 입혔고, 이후 국가 전반의 혼란과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소상공 자영업자는 계엄 파동과 탄핵 정국 여파로 내수 심리가 더 꽁꽁 얼어붙으며 올해 폐업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마저 나온다. 올해 11월까지 법원에 접수된 중소기업의 파산 신청 건수(1745건)도 이미 지난해 파산 규모(1657건)를 훌쩍 넘어선 상황이다. 일반기업들의 비즈니스 미팅마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계엄 파동 당시 한국에 머무르다 급히 귀국한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국내 기업과 논의하던 29조원의 스마트시티 사업을 백지화하고 중국에 넘기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는 대표 사례다. 더욱이 해외 원자재를 사용하는 제조 기업들에 큰 영향을 미치는 환율도 1480대까지 급등하며 조만간 1500원을 넘기는 게 아닌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주식시장 코스피 지수도 지난 27일 2400선 아래로 무너졌다. 계엄파동을 수습하기 위해 여당 일부가 동조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돼 최종 탄핵 결정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문제는 헌재의 탄핵심판 심리가 적어도 2~3개월 소요될 것이라는 점이다. 곧 2025년으로 해가 바뀐다. 정부를 비롯해 기업, 소상공인, 심지어 국민 개인도 새해 준비를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따라서, 헌재의 윤대통령 탄핵심판 절차가 빨리 진행돼 국정의 불안정성과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줘야 한다. 특히, 윤 대통령 당선으로 구축된 현재의 행정부와 여당 국민의힘은 '대통령 계엄 파동'에 연대책임을 져야 하는 당사자들이라는 점에서 헌재의 정상적인 탄핵심판 절차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그러나 이후 모습에서 권한대행체제 정부와 여당은 국가혼란 사태의 조기 수습보다는 사태의 장본인인 윤 대통령을 지키기에 급급한 모습이었고, 이는 국내외에 대통령 탄핵에 부정적 메시지로 작용해 환율 급등 등 경제 불안감만 증폭시키고 있다. 야당이 국정을 마비시킨다고 비난할게 아니라 '혼란의 연대책임 일원'인 권한대행체제 정부와 여당은 책임지고 '결자해지'해야 한다. 지금 급한 것은 '국정 안정과 민생 책임'의 구두선이 아니라 탄핵정국 조기수습의 초당적 협조라는 실천이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기자의 눈] 기후변화 아닌 기후위기, 지구온난화 아닌 지구가열화

'기후변화' 아닌 '기후위기', '지구온난화' 아닌 '지구 가열화.' 단어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생각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단어는 단순한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 그 단어가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게 만들고, 또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게 할지 결정짓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라는 표현을 떠올려보자. 어딘가 완만하고 점진적인 느낌을 준다. 변화라는 단어는 마치 시간이 충분히 있고 천천히 적응하면 될 것 같은 여유가 느껴진다. '지구온난화'라는 말도 비슷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결코 느긋한 표현으로 담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지금은 상황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행동을 촉구하는 단어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기후위기'와 '지구 가열화'라는 표현이 중요한 이유다. 전 세계는 매년 반복되는 폭염과 가뭄, 기록적인 폭우와 산불 같은 기상이변에 몸살을 앓고 있다. 올해만 해도 북반구 곳곳에서 섭씨 50도에 가까운 폭염이 나타났고, 해수면 온도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해양 생태계가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올여름, 서울과 대구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38도를 넘는 폭염이 이어졌고, 강릉에서는 역대 최고기온인 41도를 기록했다. 장마철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는 하천을 범람시키고 마을을 삼켰다. 충청권과 경북 지역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하며 큰 인명 피해를 냈다. 이런 극단적인 날씨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단순히 '변화'라고 표현하기엔 이 모든 현상은 너무나 극단적이다. 지금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온난화'가 아니라 '가열화'라는 표현이 지금의 위기를 더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 위기를 실감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익숙한 단어들이 현실의 위급함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우리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좌우한다. '변화'와 '온난화'가 주는 여유 대신 '위기'와 '가열화'가 주는 경각심이 필요한 이유다. 기후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다음 세대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를 '변화'라고 부르는 건 현실을 외면하는 것과 다름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제 '변화'라는 느긋한 표현 대신 '위기'로, '온난화'라는 부드러운 단어 대신 '가열화'로 선택해야 한다. 단어를 바꾸는 일이 별 것 아닌 작은 변화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인식과 행동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기자의 눈] AI 열풍 꺼지지 않길…K-ICT의 간절한 바람

“내년에도 인공지능(AI) 열풍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최근 만난 한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이 말했다. 그의 말에서 AI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이는 통신, 게임 등 ICT 산업이 녹록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통신 업계는 꾸준히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주력 사업으로 꼽히는 이동통신 사업의 성장이 정체되며 긴장감이 감돈다. 게임 업계도 이용률 감소로 고민에 빠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국민 1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4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59.9%(5988명)가 '최근 1년간 게임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지난해(62.9%)와 비교해 3%포인트(p) 감소한 수치로, 콘텐츠진흥원이 전체 게임 이용률을 집계하기 시작한 2015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코로나19 이후 한때 전체 국민 4분의 3에 이르렀던 게임 이용률이 하락세에 직면한 것. 이러한 상황에서 ICT 업계가 주목하는 해법은 바로 'AI'다. 통신사들은 미래 먹거리로 AI를 낙점하고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다. AI 에이전트 및 AI 데이터센터(DC) 구축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게임 업계의 AI 활용도 눈여겨볼 만하다. 게임 내 캐릭터에 지능을 부여하고, AI와 대화하며 진행하는 추리게임을 개발하는 등 혁신적인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게임 경험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이다. 이를 통해 게임에 대한 이용자들의 관심을 높이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앞서 업계 관계자가 AI 열풍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비친 이유다. 과거 메타버스가 확 떴다가 급격히 관심이 사그라든 것처럼 AI도 메타버스의 전철을 밟게 되지는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하지만 AI와 메타버스는 다르다는 의견이 많아 업계는 희망을 품고 있다. AI의 강점은 실용성과 접근성에 있다. 복잡한 업무를 간소화하고, 개인과 기업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AI는 더 이상 유행의 대상이 아니라 필수적인 기술로 자리 잡았다. ICT 업계는 현재 내년 사업 계획서에 AI 관련 내용을 추가하느라 바쁘다. 이러한 노력과 AI 열기가 맞물려 내년부터 본격적인 시너지를 내기를 기대해본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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