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현 금융부 기자.
정부가 최근 이슈가 된 기업 중대재해사고의 해결책으로 '자금 옥죄기'를 이용하겠다고 선언한 뒤 은행권의 짐이 늘어난 모양새다.
최근 정부는 금융권에서 한 단계 구체화 된 심사 반영안을 꺼냈다. 대출의 신규 취급과 만기 연장 과정에서 기업의 안전관리 수준을 따져 금리와 한도를 조정하는가 하면 기존 대출도 약정 변경 시 한도 축소나 인출 제한에 처해질 수 있도록 했다.
중대재해 이력이나 안전 관리 수준에 따라 정책금융 평가도 달라진다. 공시나 ESG평가에 반영함으로써 투자자 판단에도 영향을 주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은행권은 최근 신용평가 체계 확립을 위해 구체화 단계에 돌입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정부의 '중대재해 뿌리뽑기'라는 짐을 돌연 은행권이 떠안게 된 게 아니냐는 시각이 존재한다. 아무래도 대출과 관련된 변화가 이번 제도의 핵심축이므로 은행에서 직접 수행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은행권 내부에선 무엇보다 새로운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는 데 대한 불만과 우려가 높다. 기업에겐 목숨과도 같은 대출 문제를 은행이 평가하고 판단하게 되면서 기업과의 첨예한 갈등 문제가 따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특정 산업군에 집중된 문제를 갑작스레 금융권이 뛰어들어 해결하는 모양새기에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며 “그 과정에서 안전문제라는 비재무적 요소를 두고 기업의 책임을 가려내야하고,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점까지 모두 은행이 갑작스레 떠안은 리스크"라고 말했다.
정부가 여러 방향에서 정책을 밀어붙이는 통에 정부의 또 다른 기조와 부딪히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은행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산재가 많은 업종이나 기업에 대출을 꺼리게 된 현실이지만, 이는 정부가 기업에 자금을 흘려보내라는 기조와 반대되는 행보다. 은행은 비슷한 문제로 상생금융 지원 규모를 다방면으로 늘려야하는 분위기 속에 밸류업 정책도 이뤄내야 하는 이슈에서 고민이 많다고 토로한다.
기업의 생명줄인 자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면 기업들이 안전 관리에 있어 확실하고 빠른 변화를 보이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를 빠르고 확실하게 해결하기 위해 목표만 바라보면 필연 다른 곳에서 탈이 나기 마련이다. 속도와 강도도 중요하지만 조화와 균형을 고려한 정책도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