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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주 칼럼] 불꺼진 나라...모두의 등불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지난 몇 개월, 참 바쁘게 다녔다. 매주 한 번 있는 대학원 강의 틈틈이 때늦은 은퇴여행과 회의 등을 끼워 넣었다.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을 거쳐 일본 도쿄까지의 긴 여정을 겨우 마쳤다. 그 사이 우리나라에서는 어이없고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변란이 있었다. 경제가 망가지고 환율이 치솟으면서 나름 즐거워야 할 여정이 꽤나 힘들어졌다. 연말을 맞아 전 세계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방콕에서는 30도를 넘는 무더위에도 빨간 털모자를 쓴 산타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었고, 인파가 넘치는 야시장 곳곳에 캐롤송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연말의 흥청거리는 분위기는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말레이시아, 베트남, 도쿄의 거리도 현지인과 관광객으로 빼곡히 차 있었다. 우리나라의 조용하게 가라앉은 연말 거리풍경과 대비되어 보였다. 그럼에도 묘한 기시감과 답답함. 우리도 저랬었는데... 그게 언제였더라... 두 번의 경제위기와 선거 때마다 쏟아지던 규제 입법들, 거스를 수 없는 고령화의 해일까지 몰아치면서 우리 경제는 손발이 꽁꽁 묶인 늙은 사자가 되어 버렸다. 이젠 더 이상 한국 경제를 두고 기적이니 뭐니 하는 낡은 레토릭을 말하는 이는 없다. 오히려 이런 질문을 더 많이 받는다. 당신네 나라 괜찮냐는.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이 상황에서 천진난만하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정치인들은 갈등과 분열을 만들거나 이에 편승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했다. 당선된 뒤에는 “다 알면서 왜 그러냐. 공약은 원래 그런 거다."라며 뻔뻔하게 약속을 어겼다. 어떤 경우엔 명백하게 해선 안 되었던 약속을 무리하게 끌고 가는 사고도 쳤다. 방향타를 잡고 기업과 국민을 이끌어야 할 정부는 좌고우면하느라 더듬이만 비대해져서 달팽이처럼 엉금거리고 있다. 이 정부 들어 사법리스크가 대유행을 타면서 통화 녹음이 대세라는 말까지 들린다. 도대체 의사 결정이란 걸 하는 관료가 오히려 이상해 보일 지경이다. 기업은 멀쩡할까? 그렇지도 않다. 분명히 오늘 내일 하는 것 같은데 뭐 그렇게 떳떳하지 못한게 많은지 막상 아픈 부위를 물어도 묵묵부답인 경우가 많다. 창업자인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대부터 유구한 전통으로 이어져 온 대기업들이 초심을 잃고 흔들리고 있다. 젊은 오너의 한마디에 '그렇지 않다'고 말할 용기가 없는 임원들로 가득찬 기업들. 예스맨만 모아서 미래먹거리를 찾는 혁신을 마무리할 순 없다. 협력업체와 경쟁사, 작은 고객사들을 대하는 기업들의 윤리의식도 땅에 떨어져 있단 말을 듣는다. 상생의 룰이 사라진 기업현장은 정글과 같아서 누구도 내일의 생존을 장담하지 못한다. 갑질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기업의 미래는 어둡다. 현실을 진단하고 올바른 여론을 이끌어 주어야 할 전문가 집단 또한 칭찬 받을 구석이 없다. 자기 직역의 이익을 위해 불공정한 장벽을 마구 세우고, 혁신을 왜곡한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죽하면 카르텔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예산이 깎이고 대학 정원을 강제 조정 당하는 일까지 생기고 있을까? 언론은 말할 것도 없다. 국민들이 'ㅇ튜브'에 푹 빠져 있다고 한탄하지만 자기 반성이 먼저다. 제도권 언론이 얼마나 공정하지 못했기에 이토록 외면 당하는지. 노조, 환경단체 등 사회적 행동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자기 이익과 주장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다른 사회적 가치들을 부정해 왔다. 사회의 활력이 소진되고 새로운 미래 가치가 보이지 않게 되면 자신들이 주장하는 가치도 사라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그랬다. 합의와 상호존중이 사라진 사회가 어디까지 황폐해질 수 있는지 우리 사회가 그 답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들도 잘한 게 없는 건 마찬가지. 진영과 지역, 나이대에 따라 산산히 쪼개져서 자기와 생각이 다른 이를 모두 '×××' 이니 'ㅇㅇ'이라며 손가락질해 왔다. 심지어는 부모 자식 사이마저도 그러했다. 이 모든 데카당스의 끝에 그 형편없는 계엄소동까지 벌어진 것이다. 이제 뭐가 더 남았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내일은 오려는지, 2025년 이후 있을 수 있는 조기대선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에게 큰 희망을 걸기에는 우리 앞에 쌓인 과제들이 너무나 험난하고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의외로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전임자' 반대로만 하면 될 거라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러다 또 한 번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 권력에 몇 가지 제언을 드린다. [내편 네편 좀 가르지 말자.] 이 조그만 나라에 뭐 그렇게 먹을 게 많아서 피아를 나누고 쌈박질해야 하는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란 말이 안 들어간 취임사를 본 적이 없지만 그 말을 지키는 대통령을 본 적도 없다. 진보가 강남 은퇴자들의 억울한 사정에도 귀를 기울여 주고 보수가 세월호, 이태원 사태 유족들의 아픔에 공감해 주는 것이 뭐 그렇게 나쁜 일인가? 포용(Inclusion)은 UN에서도 강조하는 세계적 덕목이지만, 소외된 이들을 찾아 챙기는 것보다 먼저 할 일은 소외시키는 행위 자체를 안 하는 것이다. [국민보다 우선하는 이념은 없다.] 좋은 말도 너무 많이 들으면 지겹다.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면 다른 뜻이 있는지 의심도 하게 된다. 지난 2년반 동안 대통령이 '자유'라는 말을 무한 반복하는 것을 들으며, 우리나라가 그토록 자유롭지 못한 나라라는 것을 처음 알았는데, 바로 그 대통령이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해 국회의사당에 특전사 무장군인들을 투입했다. '수거'니 '사살'이니 하는 험악한 말들까지 보도되고 있다. 국민의 자유보다 '자유'의 자유 또는 대통령의 자유가 더 중요했던 것일까? 구소련의 붕괴 이후로 이념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가 되는 나라는 찾아 보기 어려웠다. '자유'주의 이념의 종주국인 미국마저도 자국의 이익앞에서라면 얼마든지 WTO의 룰을 무시하는 세상이 왔는데, 왜 우리는 철지난 이념 논쟁 앞에 무너져 버린 것일까? 국민의 이익만 생각해 주는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 [사람 좀 똑바로 써라.] 눈앞의 위기가 하루 아침에 끝날 일이 아닌 이상 국정을 책임지는 이는 끊임없이 문제를 들여다보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고, 제대로 일할 인재는 귀하기 그지 없다. 그럼에도 삼고초려를 했다는 대통령은 본 적이 없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국민이 월급 주는 샐러리맨이다. 유능한 월급 CEO는 자기와 친한 사람만으로 팀을 구성하지 않는다. 일 잘하는 사람들을 모아 최고의 성과를 내려 한다. 한 손이라도 아쉬운 위난의 시기에 진영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인재를 모아 통합으로 위기를 이겨내는 통 큰 지도자를 보고 싶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해 달라.] 새로운 희망으로 국민들을 이끌어 주는 것은 고맙지만 되지도 않을 거짓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것은 맞지 않다. 국민들은 원숭이가 아니니 조삼모사는 답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담담하게 설명하고 어떤 어려움을 감당해야 할지도 말해주어야 한다. 많은 경제문제들이 눈앞의 정치적 고려 때문에 미루어져서 지금의 파행을 만들지 않았는가. 이젠 좀 솔직하게 답을 만들어 낼 때가 되었다. [책임은 당신의 몫이다.] TV에서 대통령이 집무실을 소개하면서 “The buck stops here."라고 적힌 팻말을 보여주는 것을 본 적 있다. 미국을 따라 한 모양인데 솔직히 좀 웃겼다. 우리 국정의 책임자가 스스로 책임을 져 왔다면, 국정과제를 수행하다 법정에 서야 했던 그 많은 공무원들은 뭐고, 지금 정부 부처들이 책임을 안 지려고 의사결정을 미루는 모습은 도대체 뭔가? 공무원이든 기업이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다치는 세상은 정의롭지도 유망하지도 못하다. 책임과 열정은 모두 국가사회의 중요한 가치이지만 서로 부딪히는 부분도 많다. 부하들에게 열정만 요구하다가 책임질 일 앞에서 외면한다면 복지부동만이 살 길이 된다. [결단은 나중에, 설득부터 하라.] 최근 뉴스에서 결단이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었다. 대통령이 주변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하는 것을 결단이라고 정의하는 거라면 그런 사전은 갖다 버리는 것이 좋겠다. 평소에 존경하던 전직 장관 한 분이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그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자유라는 동전의 뒷면에는 책임이라는 말이 쓰여있다. 자기 뜻대로 결단을 했을 때는 주변의 의견을 무시한 무거운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의 안전, 생명, 재산은 타협할 수 없는 가치이다.] 최근 일련의 사태는 우리에게 치명적인 물리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상상도 못했던 전쟁의 위기가 우리곁에 있었고, 수십년전 무덤으로 보낸 줄 알았던 군부독재의 망령이 법치의 탈을 쓰고 주변을 횡행하고 있었다.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금의 우리는 잃을 것이 많은 국민이다.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이를 교란하는 자는 누구라도 용납할 수 없다. [일은 항상 열심히, 술은 그만둔 뒤]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모든 정보와 마찰, 이해관계가 한데 모이는 지점이다. 항상 긴장해야 하고, 항상 복잡한 사회적 갈등을 조율해야 한다. 필자가 보았던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극도의 일벌레였고, 만족스러운 해답이 나올 때까지는 쉬임없이 파고드는 소명의 화신들이었다. 그중엔 애주가도 있었지만 현직에 있는 동안 마음 놓고 술잔을 드는 이를 본 적 없다. 그런 모습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노파심에 한 마디 더해 본다. 대통령은 자신의 목숨을 태워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이라고. 소명을 마치고 다 타들어간 촛불처럼 시들어진 어깨로 물러날 때 국민들이 진심으로 박수 쳐 주는 자리라고. 지도자가 국가사회의 운명을 온전하게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회가 처한 상황과 사회 전체의 역량, 거쳐온 역사와 문화의 지향점이 대세를 정한다. 그럼에도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국민앞에 명료한 방향을 보여주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결국 지도자의 역할이다. 2025년 새해에는 길고 긴 어둠의 끝을 밝히는 새로운 빛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원주

[이상호 칼럼] 트럼프 2기 방위비 분담금 압박에 대비한 한국의 선택

트럼프 당선인의 제47대 미국 대통령 취임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는 미국 중심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할 것이 거의 확실하며 이미 자신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충실한 예스맨을 중심으로 내각을 구성하고 있다.트럼프는 선거 기간 동안 지속해서 한국을 곤란하게 하는 강성 발언을 쏟아낸바 있어 그의 취임을 앞둔 한국 정부가 크게 진장을 하고 있다. 경제, 통상 등에서 많은 도전이 있겠지만 한국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안보 문제다. 무엇보다 미국은 주한미군 분담금 인상 압박을 강하게 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미 트럼프 1기 때 미군 철수까지 운운하며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5배 인상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양상과 규모가 다를 것으로 예상한다. 트럼프는 유세 중 한국을 “머니머신(현금인출기)"라고 지적하며 방위비 분담금을 100억 달러(한화 14조 원)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년 한국의 국방예산인 61조 5,878억 원의 23%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한국은 국가 GDP 대비 2.8%를 국방비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동맹국 중 4위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나토 회원국과 대비해도 높은 수준의 지출이다. 방위비 분담금도 2026년에 8.3%를 인상하기로 합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며 기여도를 높이고 있다. 문제는 많은 한국민이 미국의 기여와 희생을 알고 있고 앞으로 점차 방위비 분담금을 늘려가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트럼프식 거친 압박으로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과도하게 요구하면 한국민들이 반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러시아와 동맹관계를 맺은 북한이 핵 공갈 수위를 계속 높혀가는 상황이다. 이에 미국의 확장억제력에 대해 충분한 신뢰가 부족한 한국민 일부가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까지 주장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방위비 압박은 이런 한국에 불만에 불을 지피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트럼프가 주한미국 철수를 담보로 방위비 분담금 14조 원을 계속 요구하면 이에 감정이 상한 한국민이 미군 철수를 받아들이고 독자 핵무장을 추진하자는 여론이 형성될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 한국이 핵무장을 통해 얻는 심리적 안정감은 있지만, 핵무기 보유가 만병통치약이 아닌 상황에서 핵 보유로 인한 국방비 압박 확대와 미국과의 관계 파탄으로 한국은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은 한국 경제가 파탄 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북한,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국가는 주한미군 철수를 꾸준히 주장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과의 방위비 갈등으로 주한미군 철수 용인한다면 이들 국가는 반색하며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이게 실현되는 날 숙원을 이룬 북한의 김정일은 인생 최대의 파티를 열어 축하할 것이다. 이들 국가는 과거에는 미군 철수라는 구호를 열심히 외쳤지만, 이제는 핵무장과 미군을 바꿀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으로 한국민을 현혹할 수 있다. 이에 한국은 냉정하게 핵무장과 주한미군 중 어떤 선택이 한국의 안보를 항구적으로 보장하는지 판단해 봐야 한다. 언제라도 바뀔 수 있는 게 동맹 관계라지만 아무리 핵무장이 주는 유혹이 강해도 주한미군 전면 철수의 대안일 수 없다. 이에 대한 대안은 한국이 미국의 분담금 인상을 최대한 수용하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한적 핵무장, 전술핵 공유 또는 핵 잠재력 확보 등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타협안을 도출하는 것이다. 이외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방위비 인상을 대신해 경제와 통상 등 분야에서 보상을 받는 대안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동맹을 굳건히 지키면서 핵 잠재력 확보로 북한 및 주변국의 핵 위협으로부터 최소한의 억제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효용성이 큰 결과물이라 판단한다. 한국 정부는 트럼프 2기의 안보 불안 요소에 적극적으로 현명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모색하여 한국의 안보를 최대한 보장하는 결과를 도출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상호

[이슈&인사이트] 2025년 부동산시장 생존 전략은

2025년을 앞두고 불확실성의 안개가 부동산시장을 덮쳤다. 경기침체 우려 속 미국의 트럼프 불확실성에다 탄핵으로 인한 국내정치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한치 앞을 내다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올 한해 부동산시장의 특징을 한단어로 꼽으라면 '양극화'이다. 비 주거용 부동산과 지방 아파트는 여전히 회복을 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임에 반해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시장은 등락을 거듭하면서 일부 지역은 전고점을 뚫고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주택 보유자가 아닌 무주택자나 갈아타기 1주택자 실 수요자들이 신축아파트 위주로 적극적인 구입에 나섰고 전 고점 가까이 도달한 단지들은 수요자들이 이탈하였는데 이는 집을 팔려는 매도자들과 집을 사려는 매수자들 간 팽팽한 줄 다리기를 하면서 등락을 거듭하는 조정 장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이다. 매도자들은 서울아파트 공급부족과 전세가격 상승, 물가상승에 따른 분양가 인상, 금리인하 등의 이유로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반면 매수자들은 고 평가된 집값 부담과 지난 7,8월 단기급등에 대한 피로감, 대출규제 영향, 경기침체 우려 등의 이유로 집값 상승의 동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판단에 매수를 주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발 트럼프 불확실성과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내 정치 불확실성 두개의 큰 파도가 부동산시장을 덮쳤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듯 불확실성이 가득한 부동산시장에서 매도자와 매수자 모두 가던 길을 멈추고 관망에 들어갔다. 트럼프 2기에 대한 불확실성의 실체는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고 금리, 강 달러 시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걱정에서 기인한다. 트럼프의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은 단연코 관세인상과 세금감면이다. 중국 60%, 우방국도 최대 20%까지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의 수입품 가격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레 물가가 올라간다. 올라간 물가 즉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또 세금감면으로 줄어든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게 되면 금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돈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흘러간다. 미국이 고금리가 되면 미국 달러 수요가 늘어나 달러가치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상원과 하원의회까지 장악한 트럼프의 거침없는 질주로 발생한 강달러로 인해 우리나라 환율은 올라가고 자금유출 가능성은 높아져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제동이 걸리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두 번 보는 공포영화는 무섭지 않다. 2016년 11월 트럼프 당선 이후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리가 급등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트럼프 1기 동안 오히려 금리와 달러가치는 하락했다. 당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관세를 올렸고, 법인세도 35%에서 21%로 대폭 감면을 하였음에도 실제 금리와 달러가치는 하락했고 서울 아파트 가격은 올라갔다. 관세를 올리면 인플레이션이 온다는 공식은 1930년 말고는 맞지 않았다. 지갑을 닫는 불경기에는 관세를 올려도 판매가격을 올리지 못해 손실을 보게 본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주가가 하락을 한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민생경제가 힘들어지면 반드시 선거결과로 심판을 받게 된다. 2018년 미국 하원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하였으며, 2024년 대선에서 물가를 잡지 못한 바이든 정부는 패배하였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트럼프가 무리한 관세부과나 세금감면에만 몰두하지는 않을 것이고, 미국의 엄청난 재정적자를 감안하면 공화당이 트럼프의 감세정책에 반기를 들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2.0 시대, 철저한 준비는 필요하겠지만 지나친 걱정과 공포를 가질 이유는 없다. 2024년 12월 의 경우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헌재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투자심리 위축에 따른 거래절벽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불확실성을 분석하기 위해서 지난 2016년 탄핵시절로 잠시 돌아가 보자. 2016년은 서울 집값이 2013년 바닥을 찍고 올라가던 상승 장으로 특히 강남 재건축을 중심으로 상승속도를 높이던 상황이었다. 집값이 오르자 2016년 11월 첫 규제대책이 나왔고 트럼프 당선으로 미국 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그해 12월 탄핵이 발생하자 부동산시장은 순간 얼어붙었다. 탄핵기간 동안 소폭 조정을 받다가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불확실성이 제거되자 큰 폭으로 반등했다. 서울아파트 거래량은 2016년 10월까지 1만건 이상 거래가 되다가 규제대책이 나오고 트럼프가 당선된 11월과 탄핵의 시간이었던 12월부터 2017년 3월까지 크게 떨어졌고 불확실성이 제거가 된 이후 다시 빠르게 증가했다. 탄핵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거래량은 급감했지만 불확실성이 빠르게 제거되면서 큰 가격하락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4개월 정도 짧게 지나갔으니 망정이지 6개월 이상 불확실성이 지속이 되었다면 공포의 지배를 받으면서 크게 하락했을 것이다. 2025년 부동산시장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정치적 불확실성의 제거 시점이다. 1분기까지는 투자심리 위축에 따른 거래량 감소는 각오하여야 한다. 2분기에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가 된다면 하반기는 충분히 반등할 수 있다. 2026년 서울아파트 입주물량 급감에 따른 전세가격 상승, 2-3차례 정도 인하여력이 있는 기준금리 인하 등 긍정의 요인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상반기에 제거되지 않고 하반기로 전이되면서 장기화되면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며 2차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실 수요자들은 오히려 조정을 받는 2025년 상반기가 내 집 마련하기 좋은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막상 집값이 떨어지면 무서워 투자심리가 위축이 되지만 어차피 한번 구입을 하면 평균 7년 이상을 보유하기 때문에 단기 흐름에 너무 일희일비 할 필요는 없다. 자금력이 되고 필요한 실 수요자분들이라면 집값 조정이 될 때 용기를 내보는 것이 좋겠다. 김인만

[이슈&인사이트]미 국무부, 야권에 ‘불법 대북송금’에 강한 메시지...이재명 대표 강력 경고?

수원고법 형사1부가 항소심에서 이재명 대표의 방북비용을 쌍방울그룹이 대납하도록 한 혐의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하자, 미 국무부는 “대북제재를 이행하라"고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한국 야권에 촉구했다. 그간 미 국무부는 대북 송금 의혹 수사에 대해서 주목해 왔다. 미국은 대북제재가 여전히 유효한 만큼 북한이 무모한 행동을 중단할 수 있도록 모든 나라가 강력하고 단합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번 미국의 경고는 북한을 지원해 온 중국과 러시아가 아닌 혈맹국인 한국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이례적이고 충격적이다. 미국이 북핵 위협의 대상국가로서 북핵문제에 앞장서야 할 한국의 야권을 직접 비판하면서 대북제재 관련 파장이 예상된다. 대북제재는 수십년 전방위적으로 지속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진 못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훼방으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유력 차기 대권 주자가 대북제재를 위반한 것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경기도 지사로 있던 시절에 경기도 스마트팜 사업비 500만달러와 이 대표의 방북비용 300만달러를 쌍방울그룹이 대납하도록 한 혐의를 받아왔다. 이 전 부지사는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1심 재판에서의 김성태, 방용철의 법정 진술에 신빙성이 있고, 사건 관계인들의 진술과 부합하는 여러 사정이 존재하는 등의 이유를 들어 “김성태가 이 전 부지사 요청에 따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방북 비용을 대신 지급한 사실과 공모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재판부는 쌍방울그룹에게 대북 비용을 대납시킨 혐의로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에게 징역 7년 8개월을 선고했다.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 항소심 선고로 인해 방북용 대납 목적 관련 외국환거래법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 역시 향후 법원에서 유죄가 나올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 상태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 재판은 이 대표 측의 재판부 기피신청으로 중단되었다. 시민단체에서는 유엔 제재지침을 어긴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유엔안보리에 제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는 북한을 경제적으로 가혹하게 제재하여 협상 테이블로 유인하고 궁극적으로는 북핵을 포기하게 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북한의 개인과 단체, 기관은 물론 북한 전체를 포괄적으로 제재 대상으로 규정해 숨통을 조이는 가혹한 경제 제재 조치이다. 북한에 대한 무상원조와 재정지원은 물론 인도주의 지원을 제외한 유상원조를 일절 금지하고 있다. 금융 서비스와 무역 관련 공적 금융지원도 금지하여 북한 정권 유지를 위한 돈줄을 아예 틀어막겠다는 구상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한국은 독자제재를 발효해 북한의 개인과 선박, 단체를 제재해왔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 제제 위반을 매우 엄격하게 다룬다. 한국 재판부 항소심이 이화영 전 경기도 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한 데 대해 미 국무부가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 촉구 메시지를 냈지만, 이재명 대표의 유죄가 나오면 미국은 더 강력한 입장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대표는 800만 달러나 되는 거금을 북한에 불법 송금한 혐의에 관한 확정 판결이 나면 유엔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국제형사재판소 처벌을 받을 수 있고 미국 법정에 서야 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기피인물로 될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 이강국

[이슈&인사이트] 이커머스 위기의 파장과 소상공인의 생존 전략

몇 달 전 국내 이커머스 기업 티몬과 위메프가 판매자에게 판매 대금을 제때 정산하지 못해 발생한 사태는 많은 소상공인들과 소비자들에게 큰 피해를 안겼다. 이 사건은 국내 4위와 5위 이커머스 업체의 경영 위기를 사회적으로 드러낸 동시에, 국내 유통 시장 전반에 걸친 재편 가능성을 시사하는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회사는 현재 법원의 회생 절차에 따라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며, 경영진은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두 기업의 위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과잉 경쟁과 그로 인한 구조적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티몬과 위메프와 경쟁하던 SSG닷컴과 G마켓은 실적 부진으로 인해 최고경영자가 교체되었고, 매년 1000억 원대 적자를 기록해온 롯데온은 희망퇴직을 받으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특히, 중국발 이커머스 기업인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이 초저가와 빠른 배송을 앞세워 한국 시장에 공세를 강화하면서 국내 기업의 경영 압박이 가중되었다. 이러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이 무리한 경영 전략을 택한 것도 티몬과 위메프의 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2023년 국내 이커머스 시장 규모는 약 227조 원에 달하며, 1위는 쿠팡, 2위는 네이버 쇼핑, 3위는 11번가가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티몬과 위메프의 사태를 계기로 이커머스 시장의 판도는 대대적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번 사태는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유통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온라인 유통 자회사를 보유한 유통 대기업들은 부진한 온라인 부문 실적이 모그룹의 수익성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실적이 부진한 오프라인 점포들은 폐점하거나 새로운 업태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유통 산업 전체가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며, 각 기업은 새로운 경영 전략을 모색하는 중이다. 중국의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막대한 자본력, 자동화된 물류 시스템, 그리고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초저가와 빠른 배송을 제공하며 한국 시장에 공세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는 국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국내 유통산업은 전체 사업체 수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종사자 대부분이 소상공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영세성과 과당 경쟁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온라인에서 촉발된 변화의 태풍은 오프라인에 기반을 둔 소상공인의 경영 환경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온라인 기반의 소상공인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중국발 이커머스 기업들의 공세로 인해 이들의 경쟁 환경 또한 점점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특히, 가격 경쟁력이 부족하거나 독창적인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 생존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촉발된 변화는 단순히 온라인에 국한되지 않고 오프라인을 포함한 유통 시장 전체를 재편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소상공인들이 경쟁력을 갖추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소상공인들이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에 적응하는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 경제 불황 속에서 합리적인 소비를 중시하는 트렌드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동시에 개별화된 라이프스타일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소상공인들은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사업 모델을 혁신해야만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정부 역시 소상공인들이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단순히 재정적 지원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와 시장 환경에 맞는 교육과 컨설팅을 제공하는 등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동시에, 소상공인들이 공동으로 구매력을 강화하거나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협업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결국, 이커머스 시장과 유통 산업의 변화는 소상공인과 대기업 모두에게 새로운 도전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소상공인들이 변화에 대응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핵심 전략이 될 것이다. 박주영

[이슈&인사이트] 조선의 수호통상조약, 현대 사회에 주는 교훈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Jean Monnet EU센터 공동소장 19세기 조선은 내부의 모순적 사상과 부패한 관료들로 혼란에 빠져있었다. 당시 한반도까지 밀려온 제국주의로 조선이 가지고 있던 중국 중심의 세계관까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서구와의 직접 교류를 거부하고 청에 의존하던 조선은, 1876년 강화도조약이라고도 부르는 근대적이지만 불평등한 조약인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를 체결하였다. 이후 조선은 1882년부터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시작으로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서구 열강들과 유사한 조약을 체결하여 항구를 열어 외국과 직접 교류하며 공식적인 외교관계도 수립하였다. 조선은 영국의 거문도 점령이 지속되었던 1886년까지 제국주의 국가들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는데, 조선이 서구 열강과 체결한 이 조약은 기존 청 또는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와 유지하였던 외교관계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서구적 방식의 외교관계 수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조약을 근거로 조선에는 그들의 외교공관이 마련되었고, 전문적인 외교관이 파견되었다. 한반도는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던 이들, 과거부터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한 청 그리고 새로운 제국주의를 구현하려는 일본이 복잡하게 경쟁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 정부가 청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종료하고 자주적으로 서구와 교류하려는 자극제가 되기도 하였으나, 당시 조선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다. 예를 들어, 1884년 체결된 조선과 러시아 사이에 체결된 수호통상조약도 양국 직접 교류에 국제법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이 조약의 여러 내용이 불평등한 것이었음을 관찰하면, 양국의 불평등한 외교관계는 예상가능한 것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약은 당시 체결되었던 수호통상조약들과 다른 고유한 규범적 특성도 가지고 있다. 러시아 제국은 청과의 베이징 조약 등으로 극동에서 새로운 영토를 확보하여 부동항을 얻고 조선과 국경을 직접 마주하며 교류하게 되었다. 결국 동아시아 상황을 관망하던 러시아는 조선과 직접 교섭을 하려고 하였고, 이 조약의 배경과 협상 과정은 러시아의 극동이자 한반도 주변에 관한 러시아의 인식과 정책 그리고 당시의 국제 상황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조선과 러시아 사이의 육로 교류에 관한 규정은 청의 반대로 규정화되지 못하였지만, 수년이 지나서 별도의 조약인 육로통상조약의 체결로 해결하였다. 이 조약과 조선이 체결한 다른 수호통상조약의 관세(율)에 관한 규정과 내용들도 차이가 있다.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역사의 산물이 되어버린 조선이 체결한 수호통상조약의 현대적 의미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최혜국 대우의 원칙은 A국과 B국이 서로 좋은 교역 수준을 제공하다가 A국이 제3국인 C국과 더 좋은 (최고의) 교역 수준 혜택(최혜국 대우)을 제공하면, 자동으로 B에게도 C국 수준의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수호통상조약에도 최혜국 대우의 원칙이 명시되었는데, 지금은 WTO 다자주의 무역조약을 포함한 현대 사회의 많은 조약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원칙이 되었다. 다만 이러한 내용이 현재의 한국과는 다르게 당시 현실에서는 조선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후 한반도에서는 조선의 붕괴와 일본의 패망으로 인한 광복, 남과 북의 분열과 이데올로기 경쟁, 경제성장과 평화 그리고 핵무장 위협 등 여러 일들이 벌어졌다. 국제사회도 세계대전과 제국주의의 종료로 인한 신흥국의 출현과 발전, 이념으로 무장된 냉전, 유럽의 분열과 통합, 그리고 소련의 붕괴와 새로운 러시아의 갈등 확산 등이 발생하였다. 한반도의 작은 한국 그리고 서구 열강이었던 국가들은 조선 말기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냉전 시기 이념경쟁과 한국전쟁, 20세기 말부터 이어진 경제협력 그리고 최근의 경제제재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연결된다. 세상이 묘하게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변화에 융통성 있게 대비하고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점을 오래전 조선이 체결했던 수호통상조약들로부터 배우게 된다. 김봉철

[이슈&인사이트] 트럼프 2.0시대에도 예상되는 강달러와 고금리

트럼프 대통령 취임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트럼프가 과연 중국에게 60%를 그리고 나머지 나라들에게는 10% 이상의 일반관세를 부과할지 그리고 강달러가 지속될지 세계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트럼프 2.0 시대를 기다리고 있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주요 정책은 감세와 관세다. 관세로 감세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달러 약세와 금리의 인하가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장은 지난 주 하원의 예산안 투표 부결과 연준의 내년 2번 금리인하를 예상하는 점도표를 보면서 과연 트럼프가 강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고 있다. 20세기 이전 미국은 관세만으로 재정을 꾸려 왔다. 트럼프는 19세기 말 맥킨지 대통령 시대가 가장 미국다운 시대였다고 자주 말하면서 그 시대를 오마쥬 하여 관세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당연히 중국은 관세 전쟁을 선포했지만 세계는 관세부과 폭탄을 맞기 전에 트럼프 인수위에 줄을 대고 딜을 시작하고 있다. 각 나라는 트럼프에게 조공으로 미국 물건을 더 사주겠다고 앞다투어 발표하고 있고 우리도 LNG 수입선을 중동에서 미국으로 돌릴 협상을 하면서 트럼프 관세 비율을 줄이는데 각고의 노력들을 하고 있다. 관세의 부과는 미국의 무역불균형을 완화해 무역수지 개선에 도움이 될 거는 물론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트럼프의 주장대로라면 관세가 감세를 만회한다지만 그의 정책을 들여다보면 감세에 따른 국채 발행을 늘릴 수밖에 없을 거다. 지난 목요일 연준회의에서 내년 금리를 2번 정도 밖에 내리지 않을 거라는 점도표 발표 때도 시장이 경기를 일으켜 시중 금리는 오르고 주식은 빠졌다. 시장은 계속해서 높은 금리 (H4L) 시대를 얘기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 시대에는 강달러를 예상하고 있다. 달러가 강세가 된다면 수입 단가를 떨어뜨려 물가에는 도움이 되지만 관세를 올린다고 하니 효과가 상쇄될 수밖에 없을 거다. 미국 달러 강세로 각국이 미국 채권 매수를 늘려 준다면 미국 금리의 하락에 도움이 되겠지만 러-우 전쟁 이후 러시아 달러 자산 동결을 목격한 중국과 중동 국가들의 미 채권 수요가 줄어든 상황이라 이 또한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미국 제품의 가격만 올려 수출에 마이너스 효과와 인플레에 영향을 줄 거라 예상된다. 2022년 러-우 전쟁과 AI 산업의 발달로 미국 자산 가치가 올라 세계의 돈이 미국으로 물밑들 밀려 들어오고 있다. 달러 강세와 경제 성장이 나온다면 물가는 안정되겠지만 돈 유입량이 임계점을 넘어 미국 부동산등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 지금도 인플레가 고집스럽게 끈적거림으로 남아 있는데 잠잠했던 인플레가 다시 발생할 거고 연준은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을 거다. 이는 부메랑처럼 미국 채권 이자에 부담을 주어 미국 재정안정화를 계획하는 트럼프 계획이 빗나갈 거다. 현실은 우려한대로 달러가 지금 이리도 강한데도 미국 물가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강달러로도 미국 물가 상승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번 연준에서 강달러와 고금리로 물가를 진정시키겠다는 의도를 확실히 보였다 트럼프의 의도와는 반대로 시장은 강달러와 고금리를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다. 탄핵 정국으로 환율이 1450원을 넘은 상태에서 우리는 내수 부진으로 금리를 내려야 하는데 미 연준이 내년 금리를 2번만 내린다면 운신의 폭이 줄어들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내린다면 미국과의 금리차와 달러 강세로 인해 외인 자금의 유출과 1500원을 넘는 원달러 환율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거다.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환율과 자본유출을 고려한 금리 동결.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최용

[이슈&인사이트] 국민연금 개혁과 노인빈곤율

2023년 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0.4%로 OECD 평균인 14.2%의 약 3배에 달했다. 에서는 평균소득 기준 순 연금대체율이 35.8%로 OECD 평균 61.4%보다 훨씬 낮았다. 노인빈곤율은 높고 연금 소득대체율은 낮은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우선 기본적인 연금체계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연금은 3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공적연금으로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이 포함된다. 두 번째는 퇴직연금(혹은 퇴직금)이며, 세 번째는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개인연금 상품이다. 연금체계의 목표는 간단하다. 은퇴 후 생애 평균소득 대비 70%를 소득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국민연금도 출범 당시 이 목표를 설정했다. 그러나 저금리 기조와 기대여명의 증가로 연금제도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번 개혁을 거쳐야 했다. 1998년 1차 개혁에서는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재정추계를 도입했으며, 2007년에는 이를 다시 40%로 낮췄다. 연금을 받는 연령 역시 60세에서 65세로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됐다. 이를 통해 연금 소진 시기를 연기할 수 있었으나, 노인빈곤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2024년 7월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는 약 2,200만 명에 달한다. 이처럼 영향력이 큰 제도를 개선하거나 개혁하는 논의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국민연금 개혁이 '표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국민연금 논의는 대체로 '얼마를 내고 얼마를 받을 것인가'라는 제도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행 국민연금은 사업장 가입자 기준으로 소득월액(월급여) 39만 원에서 617만 원까지를 기준으로 납부한다. 회사와 개인이 각각 4.5%씩 총 9.0%를 부담하며, 이를 40년간 유지하면 소득대체율은 40%가 된다. 그러나 직장인의 평균 근속연수 23~26년을 감안하면 실질 소득대체율은 20%대 중반으로 낮아진다. 국민연금 개혁은 이 9%의 납부율과 40%의 소득대체율이라는 방정식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현재 추계에 따르면, 2040년대 후반에는 기금이 소진될 전망이다. 국민연금 기금은 5년마다 재정추계를 통해 미래의 재정상황을 예측한다. 재정추계는 약 20년 이후의 기금소진 시점을 마치 확정된 것처럼 명확히 제시한다. 이는 납부율과 소득대체율 간의 다양한 조합을 제안하면서도 기금 소진 시기를 연기하기 위한 논리적 근거로 활용된다. 그러나 20년 이상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많은 가정이 수반된다. 따라서 납부율과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제도 개선뿐 아니라 기금 운용 수익률 개선 등 대체 방안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가능한 대안 중 하나는 기준소득월액 상한선을 현재 617만 원에서 건강보험처럼 상한을 없애는 것이다. 이 경우 추가적인 납부금 확보로 납부율을 약 2%포인트 이상 올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다만, 납부 금액 대비 은퇴 후 수령액의 소득비 문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또 다른 대안은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을 1%포인트씩 높이는 것이다. 기금운용 수익률이 1%포인트 상승하면 기금 소진 시점을 약 8~10년 뒤로 미룰 수 있다. 이를 위해 기금운용 거버넌스 선진화, ESG 철학을 포함한 기금운용 정책의 실질적 개선, 전문 인력 확충 및 처우개선 등이 필요하다. 2,200만 명이 가입한 국민연금은 한국 사회의 핵심 노후 복지제도다. 명확한 해결책 없이 OECD 국가 중 최악의 노인빈곤율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어렵다. 지금이 가장 빠른 때다. 국민연금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이재광 ESG모네타 대표

[이슈&인사이트] 새로운 시위 문화는 미래 세대의 신사회운동

엄청난 규모의 시위대가 모인 즉석 거리광장에는 응원봉을 흔들어대며 '다시 만난 세계', '아파트', '삐딱하게', '불타 오르네', '챔피언, 위플레시', '슈퍼노바'와 같은 아이돌의 노래를 떼창으로 부르며 신나게 춤을 춘다. 시위에 적극 참여하기 위해 최소한 몇 곡을 미리 연습해온 사람들도 적지 않다. 10대 중고생은 물론, 20~30대의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시위에 나서 노래와 춤이 한결 경쾌해지고, 곳곳에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심각해야 할 시위 현장에 춤과 노래라니? 그 뿐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어떤 이들은 시험공부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유모차를 이끌고, 어떤 이들은 계엄령을 선포한 권력자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퍼포먼스를 펼친다. 시위 현장에 늘 등장하는 노조나 노총, 동아리, 정당의 구태의연한 깃발은 보기 힘들고, 기상천외한 시위대의 깃발이 휘날린다. “제발 그냥 누워있게 해줘라, 우리까지 나서야겠냐"라는 의미를 지닌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더 이상 미룰 수없다"는 의미에서의 '전국 뒤로 미루기 연합', 시위하다가 물 주는 일을 잊을까 걱정하는 '화분 안 죽이기 실천 시민연합' 등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시위대가 응원봉을 든 이유는 박근혜 탄핵 당시 촛불이 금방 꺼졌다고 망발한 국회의원 때문이고, 재치 있는 상식 밖의 깃발 문구는 역시 탄핵시위 배후가 있다고 퍼뜨리는 음모설에서 '배후는 나 자신이다'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위대의 메시지는 분명해보인다. 기존의 과격한 노동 시위에서 벗어나, 시위대는 무질서하지만 환경운동, 페미니즘, 소수자 권리, 비정규직 권리, 장애인인권, 반려견 및 반려묘 권리 등 다양한 메시지를 신명나게 표출한다. 권력자의 위세 당당한 '처단' 발언에도 시위 현장은 도리어 축제의 큰 마당이 되었다. 여의도 국회 앞 시위 현장에서 뭔가 나사빠진 느슨함을 느낀다면, 당신은 기존의 질서에 익숙한 꼰대다. 당신은 아마도 전국의 시민단체와 노조, 정당, 친목 단체, 대학동아리들이 저마다 전열을 다지며 깃발을 휘날리면서 시위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들여다보면 나 홀로 또는 연인이나 친구끼리 리더도 없이 대오(隊伍)도 흐트러지고, 구호도 제각각 외쳐댄다. 이런 오합지졸의 시위대에 이른바 검찰 정권(?)이 무너지다니, 아마도 어이없이 느껴질 것이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 결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의힘의 의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대면서 '종북세력 축출',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는 시위대에 기대어 권토중래를 꿈꾼다는 것은 시위대의 '무질서함'을 얕잡아 본 탓일게다. 그러나 이 '하찮은' 움직임들이 위압적이던 권력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던 것은 유연한 시위의 놀라운 탄력성 덕택이다. 정치 기획자의 음모 섞인 구호가 없는 시위에는 정해진 울타리와 성역이 없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알랭 투렌은 무정형적(無定形的) 시위문화의 확장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젊은 세대가 훨씬 더 다양한 이슈를 들고 나온 시위 현장은 여당이 우려하는 전통적인 '계급투쟁'의 장이 아니다. 미래의 세대가 꿈꾸는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s)인 셈이다. 정치권은 춤과 노래를 앞세운 미래 세대의 신사회운동에 긴장해야 할 일이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신사회를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광화문 태극기부대와 어깨동무를 할 것인가? 성일권

[이슈&인사이트]금통위의 기준금리 인하와 국민경제

지난 11월말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되었다. 당초 가계대출 증가 및 원달러 환율 상승을 우려한 금융안정 측면에서 기준금리 동결이 예상되었다. 더욱이,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시 해외 원자재 도입단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경우를 감안하면, 물가안정 측면에서도 기준금리 인하는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금통위의 결정은 0.25%포인트 기준금리 인하였고, 인하배경도 당초 기대와 달랐다. 경제성장률 둔화 전망에 대한 원인으로 손꼽히는 내수진작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금통위원장의 인하배경이 나왔다. 통상적으로 이전 금통위원장이 기준금리 인하의 배경으로 거론하던 내용과 사뭇 달랐다. 물가안정 또는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한국은행 본연의 역할과 관련된 상황 설명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경기부양 또는 내수진작 필요성에 화답하는 모양새라 자칫 기준금리 인하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이견이 분분하다. 우선, 물가안정 측면에서 살펴보면, 한국은행이 물가지표로 참고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최근 1.3%로 나타나 한국은행의 인플레이션 목표 2%에 부합한 것으로 확인된다.하지만, 가계입장에서 국내 물가가 안정되었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CPI 상승률과 외식물가 상승률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외식물가 상승률은 최근 3%에 가까운 수준으로 CPI 상승률보다 높은 현상이 3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연준은 노동부에서 집계하는 CPI보다는 상무부에서 발표하는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PCE)를 선호한다. PCE가 도시 이외 농촌 지역의 소비지출 현황을 포함하는 등 적용 범위가 훨씬 넓고, 물가파악을 위한 조사대상 항목도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사대상 항목을 1년 주기로 평가하는 CPI에 비해 PCE는 분기 단위로 조사 항목의 업데이트 속도가 빠르다. 우리의 CPI도 도시 가계의 일상생활 영위를 위해 구입하는 재화 및 서비스를 대상으로 460개 항목을 조사대상으로 하지만, 미 PCE에 비해 조사 대상 항목수가 적고, 소비자 체감 품목 비중이 작으며, 조사대상 품목의 업데이트 주기도 3년으로 긴 편이다. 이로써, 미국 PCE 상승률 2%와 한국의 CPI 상승률 2%는 물가안정 측면에서 수준이 같지 않다. 더욱이, 식자재 및 원자재 가격 상승시 규모의 경제가 어려워 이를 소비자가격으로 이전시킬 가능성이 높은 영세한 자영업 비중이 높은 우리 경제 구조상,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인한 해외도입단가 상승시 국내 물가압력이 다시금 높아질 개연성이 있다. 실제로 외식물가 상승률이 한국은행 물가목표를 초과하고 있으며, 높은 외식물가가 가계의 큰 부담이 되고 있어, 현재 지갑을 닫는 경향이 높다. 한편, 가계대출 증가 측면에서 언뜻 기준금리 인하가 이자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어 민간소비 진작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하는 오히려 부동산 매수를 증가시킬 개연성이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오히려 대출수요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은행도 예금금리 인하 폭보다 훨씬 작은 대출금리 인하를 통해 이자마진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규제로 인해 은행의 이자수익 보존을 위해 시중은행들은 대출금리 인하에 소극적이다. 일부 은행은 여전히 높은 대출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대출 문턱이 높아 오히려 대출시장에서 은행이 갑이 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지난해 금통위가 한번도 기준금리를 높이지 않았던 이유로, 올해까지 가계대출은 급증했고, 올해 2분기 이후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최근까지 대출금리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하가 가계의 이자비용 절감으로 가처분 소득을 늘려, 민간소비 증가로 나타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즉, 금통위가 기대했던 경기부양을 위한 내수진작의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되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기준금리 인하가 국내 증시에 미치는 효과를 살펴보자. 최근 국내 증시는 기업가치라는 펀더멘털(fundamental)요인보다는 환율, 금리, 경기 등 경제환경과 관련된 단기 주가 영향요인인 모멘텀(momentum) 요인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특히, 환율요인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 기준금리 대비 낮은 국내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는 자국 통화인 원화 가치의 평가절하 속도를 빠르게 할 것이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이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하 직후 달러당 1,400원을 넘어서는 등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높은 국내 증시 여건상 국내 증시 수익률이 미국 보다 높지 않은 상황에서 환차손까지 확대될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실제로 올해 10월 한달 동안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도 규모는 4조원을 상회하고 있으며, 3개월 연속 매도세를 유지 중이다. 국내 증시의 부진은 기업들의 자금조달여건을 악화시켜, 투자 부진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 금융감독원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으로 상장기업의 주식발행 실적은 전년 동기대비 약 96%나 감소했다. 증시부진으로 주식발행을 내년으로 미룬 기업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11월 금통위의 기준금리 전격 인하가 당초 기대했던 경기부양 측면의 내수진작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오히려 금통위는 본연의 목표인 물가 및 금융시장 안정에 좀 더 주력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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