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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의 성공 조건

요즘 더워도 보통 더운 것이 아니다. 폭염, 폭서, 열대야, 불볕 더위, 찜통 더위, 가마솥 더위 등 다양한 표현이 있다. 필자는 사우나 더위를 더하고 싶다. 덕분에 다이어트는 잘 하겠지만 건설 근로자, 농부들 등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이럴 때 전력당국은 가장 긴장한다. 전력 예비율이 충분해야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한 달이 지난 이재명 정부에게 에너지 문제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특히 기후에너지 관련 공약에서도 언급한 2030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2050 U 자형 한반도 에너지 고속도로가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 중요한 공약을 보면 RE100 전용 산업 단지 조성, 해상풍력 지원, 전력 수요 분산으로 지역기반 에너지 생태계 구축, 햇빛 소득마을, 농가 태양광 설치 지원으로 햇빛 연금, 그리고 기후관련 행정부서의 조직 등이다. 경부고속도로가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었고 인터넷 고속도로가 IT 강국을 만들었다면 에너지 고속도로는 한국의 탈 탄소 산업의 희망과 미래가 되기를 바란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최초의 고속도로는 이탈리아에서 시작하였으먀 현대적 고속도로는 1908년 뉴욕 롱아일랜드의 모터 파크 웨이가 개인 벤쳐로 시작했다. 잘 알려진 독일의 아우토반은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 네트워크다. 교량, 고가다리, 휴게소 등이 이때 설치되어 전세계에 영향을 미쳤고 우리나라도 1960년대에 고속도로를 만들게 된다. 헌데 경부고속 도로 건설에도 아픈 우여곡절이 많이 있었듯이 앞으로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에도 난제가 수두룩 할 것이다. 첫 번째 재원이다. 건설은 당연히 송배전망을 관리하는 한전이 할 텐데 재원은 충분히 있는가?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재생에너지를 기존 전기와 같은 품질로 사용하려면 기존 설비보다 약 4.9배의 계통 안정화 설비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24년 기준 한전은 적자 31조, 부채 205조의 회사니 투자 여력은 매우 부족하다. 두 번째 국산 기술은 준비되어 있는 가? 특히 변환하는 설비가 잘 되어 있는가? 세 번째 356kv가 많이 있는 내륙망 건설은 어떤가? 네 번째 에너지 고속도로가 건설된다고 해도 기존 제도에서는 송배전 요금은 기존 전기와 재생에너지 간에 역차별이 생기는 구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같은 양의 전기를 써도 재생에너지 직접구매에 대해서는 송배전 요금은 더 비싸게 책정될 수 있을 것이다. 다섯번째 중요한 산업 구조전환과 연계되는데 현재의 전력산업 구조는 발전-송배전-판매를 한국 전력이 한다. 구분하고 싶어도 여러가지 이유로 잘 안되었다. 그러나 공공이든 민관이든 경쟁 체제 도입이 있어야 민간 투자가 들어올 수 있고 그래야 민자 에너지 고속도로가 건설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가? 마지막은 약방의 감초처럼 나오는 전력 요금 자유화로 귀결된다. 최근에 개정된 상법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 있다. 문제는 한국 전력이나 가스공사 한테도 적자가 누적되어 주주 이익에 배치된다고 하는 경우, 소송이 제기될 수 있으니,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전력요금 문제는 조속히 처리하여야 한다. “에너지 고속도로" 멋진 말이다. 국가의 대동맥인 고속도로는 언제나 원활하게 흘러야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유비무환이다.

[기자의 눈] 공사장 안전 강화, 협박으로는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근로자 사망사고가 계속 일어난 포스코이앤씨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서 똑같은 방식으로 계속 사고가 나는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산재 사망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은 온 국민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자칫 '산업계에 대한 협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발언까지 했다. 당시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똑같은 사망사고가 상습적·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는 것을 검토해봐도 좋을 것"이라며 “산재 사망사고가 상습적으로 발생하면 여러 차례 공시해서 주가가 폭락하게 하라"고 말했다. 산재가 지속된 기업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경각심을 강하게 줄 필요는 있다. 그러나 의도적인 공시 반복으로 주가를 폭락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정 의도로 어떤 기업의 주가를 폭락하게 만든다면 문제가 되는 기업 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에 주식을 투자한 일반 국민들도 피해를 입는다.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일부 인사들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주가 조작 등 주식 시장을 어지럽힌 바 있다. 이재명 정부가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본시장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경우 결국 해당 기업에 투자한 일반 국민들이 선량한 피해자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특히 현 정부는 그 어느 정부보다 주식 시장 투자를 장려하는 정부가 아니던가. 부동산에 치우친 가계 자산을 주식 시장으로 유도해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신음하는 코스피와 코스닥의 가치상승을 꾀하고자 하는 것이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다. 정부가 주가 부양을 외치면서 정작 특정 기업에 산재 발생을 이유로 페널티를 주기 위해 주식시장에 개입하려는 것은 옳바른 방향이 아니다. 심지어 포스코이앤씨는 주식시장에 상장되지도 않은 비상장 건설사다. 그렇지 않아도 노란봉투법 및 법인세 강화 등 세제 개편으로 재계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주가를 떨어뜨려 특정 기업을 벌주고자 한다면 산업계 전반이 투자 동력을 잃는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 기업들은 미국에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전제조건으로 한 관세 협상이 타결되면서 큰 출혈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사기가 떨어진 산업계를 복돋아주지는 못할망정, 주가를 폭락시켜 벌주겠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과유불급이다. 이런 말 없이도 이 대통령의 경고에 건설업계는 물론이고, 모든 한국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무회의에서의 주가 폭락 발언은 이번 한 번 경고로 마무리되야 한다. 만약 정부 당국이 특정 기업의 주가를 정말 의도적으로 폭락시킨다면 일반 국민과 개인 투자자들이 입는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임진영 기자 ijy@ekn.kr

[이슈&인사이트] 원화 스테이블코인: 디지털 혁신인가 금융 붕괴의 뇌관인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 의회가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고, 글로벌 자산 발행자들이 제도화된 디지털 화폐 시장으로 진입하는 가운데, 한국도 제도 공백을 해소하고 관련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효과와 부작용, 정책적 조건을 둘러싸고는 여전히 엇갈린 평가가 존재한다. 우선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설득력을 가진다. 세계적으로 디지털 자산 기반 결제, 무역, 자본시장 활동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특히 글로벌 결제 인프라에서 원화의 사용성이 낮아질 경우, 역외 결제 및 자산거래에서 위안화나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종속될 가능성이 커진다. 원화가 이런 흐름에서 소외되지 않고 우리나라의 통화주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분명 필요하다. 더 나아가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디지털 담보 대출, 탈중앙화 거래, 자동화된 환매 구조 등 새로운 금융 생태계를 촉진하는 기반 기술로 작동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원화 기반 디지털자산 시장을 선제적으로 육성하지 않으면, 한국은 디지털 자본시장에서 뒤쳐질 수 있으며, AI의 경우에서와 같이 선점하지 못할 경우 순식간에 변방으로 자리잡게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가장 현실적인 우려는 민간에서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예금을 대체하는 경우다. 은행예금은 대출과 예금을 반복하며 시장 내에서 신용을 창출한다. 최근 GENIUS법, Clarity법, Anti-CBDC감독법의 세 법을 통과시킨 미국과 달리 원화는 국제통화나 기축통화가 아니다. 다시 말해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해외자금의 달러수요를 흡수함으로써, 스테이블코인의 발행량에 비해 미국내의 예금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 반면 해외자금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흘러들어감에 따라 미국 외 국가들의 시중 유동성을 흡수해버릴 가능성이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경우는 해외자금의 수요가 제한적이다. 즉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국내의 유동성을 흡수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자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몰리면 이는 준비자산인 국채나 현금성 자산으로 묶이게 되며 시중에서 유통가능한 유동성을 창출하지 못한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민간은 은행이 아닌 이상, 여수신업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부채권 발행을 위한 자금 조달은 쉬워지지만, 기업과 가계가 필요로 하는 민간 신용이 위축되는 전형적인 구축효과(crowding out)로 이어질 수 있다.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한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미국처럼 자본시장과 비은행금융이 발달해 있는 구조라면 예금 이탈이 금융시장 전체에 미치는 파장을 일부 완충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예금 기반을 침식하여 실물경제에 유입되는 신용 총량 자체가 줄어들게 되면 중소기업이나 신용등급이 낮은 가계부터 자금 부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통화정책의 유효성도 문제다. 앞서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이 통화량 관리와 금융중개 기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한은의 지적과 같이 시중에 풀린 원화의 상당 부분이 중앙은행이 통제할 수 없는 디지털 민간 채널로 빠져나가게 되면, 은행시스템을 경유하는 통화정책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 또한 줄어든게 된다. 이는 거시경제정책의 양대산맥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중 통화정책의 실효성을 훼손할 수 있는 위험을 야기하는 것이다. 법제도적 과제도 만만치 않다. 스테이블코인을 자산연동형 디지털 자산으로 볼 것인지, 전자화폐나 결제수단으로 정의할 것인지에 따라 적용되는 법 체계는 달라진다. 특금법, 전자금융법, 자본시장법, 외국환거래법 등 현행 법률 간의 정합성 확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전 정비해야할 선결과제다. 특히 해외 송금, 디파이(탈중앙화금융)와의 연계를 고려할 때, 외환규제와의 충돌은 제도 설계 초기부터 해결해야 할 핵심 쟁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도적 위험과 부작용을 이유로 도입을 유예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도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접근이다. 스테이블코인의 혁신성과 파급력을 인정하되, 그 확산이 통화정책이나 금융안정을 훼손하지 않도록 제도적, 기술적, 행정적 방어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을 전액 국채로 고정하지 않고 일정 부분을 은행 예금이나 지급준비금 형태로 유지하게 하거나, 발행 총량을 중앙은행이 직접 규제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발행 기관에 대해 엄격한 라이선스 요건과 회계공시 기준을 적용하고, 실시간 준비금 검증 시스템을 기술적으로 의무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스테이블코인은 단지 하나의 새로운 자산이나 결제시스템이 아니다. 그것은 디지털 경제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화폐 형태이다. 또한 거래방식과 금융인프라, 자산 유통 메커니즘을 전환시킬 수 있는 촉매제이며 혁신임에는 틀림없다. 제도적 혼란이나 정책 충돌의 가능성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향성을 선점하고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디지털 금융시대의 정책이 갖춰야 할 태도라고 본다. 김수현

[EE칼럼] 우리가 잊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들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The trouble with most folks isn't so much their ignorance; it's know'n so many things that ain't so. (보통 사람들의 문제는 모른다는 것이 아니고 잘못된 내용을 아주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 조쉬 빌링스(Josh Billings), 19세기에 활동한 미국 작가/유머리스트 온 국민이 무더위에 지쳐가고 있다. 냉방에 사용하는 전기가 부족해져 단전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지 걱정이 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체 사용량 중 전기의 사용량이 겨우 2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에너지전환, 탄소중립 등등 수많은 논의와 정책이 있어 왔지만, 막상 전기의 사용 비중은 21세기가 시작할 때의 15% 수준에서 지난 25년간 그리 늘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전기보다는 열과 수송용 에너지가 주요 소비 방식이다. 서울특별시에는 발전 시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서울특별시의 2023년도 전력 자급률은 10.4%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같은 수도권인 경기도는 전력 자급률이 62.5%이며 인천광역시의 경우는 무려 186.3%나 된다는 사실은 다들 잘 모른다. 재생에너지 생산량에서조차도 서울은 인천의 75% 수준이다. 길거리에 있는 전기 배전반에 쓰여 있는 글이 있다. '전기는 국산이지만 원료는 수입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6~7위 수준으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데, 실제로는 그 에너지의 95% 이상을 수입한다는 사실 역시 대부분 잊고 살고 있다. 하지만 1970년만 해도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급자족률이 50%를 넘었다는 것도 잊고 살고 있다. 그때 우리 소비의 절반을 책임졌던 국산 에너지원은 바로 무연탄(anthracite)이다. 1988년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던 그때까지도 가정용 난방 연료의 80%가 무연탄으로 만든 연탄이었다. 이젠 연탄구이집에 가서야 볼 수 있는 연탄은 6.25 전쟁 이후 20세기 말까지 수십년간 우리의 겨울을 따스하게 해준 에너지원이었음도 잊고 지내고 있다. 올해면 마지막 국영 탄광이 문을 닫는 우리나라와 달리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무연탄이 최대 에너지원이며, 지금도 무연탄을 생산하여 중국에 수출하여 외화를 벌고 있음도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생산지 대부분이 북쪽이라서 2000년대 초반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활발할 때 북한의 산림 황폐화 방안의 일환으로 우리나라가 북한 금강산 지역 등에 상당한 양의 무연탄을 공급하기도 하였다. 미국과 유럽이 21세기 초반부터 OPEC으로부터의 수입을 줄이고 자기 영토 내 에너지 개발에 주력하여 에너지 자급자족과 온실가스 감축에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다. 유럽은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절약으로 전력 문제를 해결하였으나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수입하다가 그만 발목을 잡혔다. 그 반면 미국은 자국 내에서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을 대량 생산하면서 기존 석탄발전을 가스발전으로 바꾸어 온실가스를 줄였음을 다들 잘 모르고 있다. 또한 미국은 이제 천연가스의 수출국이 되었으며, 그 때문에 지난달 말에 이루어진 한-미 협상에서 우리나라가 상당량의 미국산 천연가스를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 1902년 7월 16일 무더운 여름밤, 미국 뉴욕의 25세 청년 윌리스 캐리어(Willis Carrier, 1878~1950)는 밤을 지새우며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지금의 에어컨디셔너(air-conditioner)에 대한 설계도를 완성하였다. 이후 여러 대기업 취업 문턱에서 낙방한 그가 1915년에 본인이 세운 회사가 바로 세계 최초의 에어컨 제조업체이자 지금도 유명한 공조기기 전문업체인 '캐리어(Carrier) 엔지니어링'이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열대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편히 살 수 있게 해주는 최고의 발명품이라 극찬하였으며, 미국 공학한림원도 '인류의 삶을 바꾼 위대한 발명' 중 10위로 선정한 바 있는 에어컨의 탄생이 바로 대기업 대신 창업을 선택한 그의 용기 덕분이었음도 잊고 있는 사실이다. 올해 여름의 무더위도 바로 캐리어의 발명 덕분에 조금이나마 무더위를 피할 수 있어 그저 고마울 뿐이다. 허은녕

[기자의 눈] ‘정상화’의 길 위에 선 상법 개정

“미국에서는 경영자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해치는, 이른바 '뒷통수를 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 의사결정에 대해 주주들이 일정 수준의 신뢰를 보내는 것도 자연스러운 분위기다. 엄격한 제재가 뒤따르고, 제도적으로도 강력한 견제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자본시장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대목이다. 한국은 그간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일부 대주주 일가가 전체 주주 이익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회사 자금을 사익추구에 동원하거나,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비지배주주를 희생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는 '뒷통수를 맞는' 존재로 전락했고, 기업 의사결정에 대한 신뢰는 좀처럼 쌓이지 않았다. 최근 상법 개정 흐름은 이 오래된 관행을 끊어내기 위한 시도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집중투표제 확대 등 비지배주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하나둘 마련되고 있다. 덕분에 경영자나 기업이 이제는 비지배주주의 눈치를 실질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승계를 위한 인적분할'이라는 의심이 팽배했던 하나마이크론, 파마리서치, 빙그레 등이 경영진의 결정을 철회한 사례는 이러한 변화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그동안 '선택적 고려'에 그쳤던 주주들의 권리가 비로소 법과 제도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다. 눈치를 봐야 할 대상이 늘어나면 경영 자율성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변화다. 기업 운영의 왜곡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고,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도 높아진다. 정상화로 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유다. 이번 상법 개정은 하나의 변곡점이다. 한국 자본시장이 '특이하게 발전한' 기업 운영 형태에서 벗어나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출 수 있을지 가늠하게 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단기적으로는 부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가치 제고와 안정적인 투자 유치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는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주 모두의 이익을 향한 진정한 정상화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데스크칼럼] 관세협상 후폭풍 대책 마련 나서야

이재명 정부가 미국 트럼프 정부와 관세협상을 마쳤다. 상호관세는 일본, 유럽연합과 같은 15%에 3500억달러 대미 투자와 1000억달러의 미국 에너지를 수입하기로 했다. 한미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이란 점에 비하면 불리하게 체결됐다는 평도 있지만, 주요 동맹국들과 같은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번 협상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다. 트럼프 정부의 남은 임기인 향후 4년간 1000억달러의 미국산 에너지를 수입하기로 한 점이다. 연간 250억달러 규모다. 2024년 우리나라의 대미 에너지 수입액이 232억달러이므로 이보다 18억달러(약 2조5000억원)가량 더 늘어나는 셈이다. 우리나라가 추가 수입하기로 한 대부분은 LNG로 알려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수입품목 가운데 LNG만 공기업 분야이고, 나머지는 모두 민간 분야이다. 정부가 민간에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늘리라고 강요할 순 없으므로,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를 통해 LNG 수입을 늘린 것으로 추정된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LNG 약 564만톤을 수입했다. 수입단가는 톤당 548.6달러이다. 이를 기준으로 늘어나는 수입액 18억달러를 LNG로 환산하면 약 328만톤이 된다. 즉, 미국산 LNG 수입량은 거의 900만톤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이 협상의 후폭풍을 감당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이제 LNG 소비 감소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올해 상반기 LNG 총 수입량은 약 2306만톤으로, 지난해 상반기의 2345만톤 대비 39만톤(1.7%) 줄었다. 정부가 올해 3월 확정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LNG 소비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LNG발전량은 2023년 157.7TWh에서 2035년 101.1TWh, 2038년 74.3TWh로 대폭 감소하는 것으로 전망됐다. 앞으로 LNG 소비량은 계속 감소하는데, 정부는 LNG 수입을 늘리는 협상을 했으므로, 정부와 국민은 남는 LNG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그에 따른 경제적 피해는 누가 부담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선 가스공사가 다른 나라의 수입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는 경제성 수입 원칙에 어긋난다. 가스공사가 반강제적으로 미국산을 더 수입하는 만큼 경제성이 더 좋은 물량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 부담은 가스공사가 자체 부담하던가 요금 인상으로 보전받아야 하는데 자칫 경영진의 배임혐의가 될 수 있어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 가스공사가 늘어난 수입물량을 제 3국으로 트레이딩하거나 국내 다른 기업에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은 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국가 대부분이 관세협상을 위해 미국산 LNG 수입을 늘리기로 했고, 심지어 중국도 늘릴 예정이다. 우리가 판매할 곳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가스공사는 국내 다른 기업에 판매하기도 힘들다. 공공과 민간 간 거래가 규제에 막혀 있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정부가 가스 소비를 늘리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에너지 전문가들이 가장 현실적으로 보는 방법이기도 하다. 11차 전기본 등 국내 에너지정책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전제로 짜여졌는데,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많다. 경제발전은 곧 탄소 배출인데,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하자는 것은 경제발전을 포기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관세협상은 타결됐지만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오고 있다. 후폭풍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박원주의 경제읽기] 관세 폭풍 속 막판 타결…韓·美 협상의 득과 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한미 관세협상이 30일 타결되었다. 25% 상호관세 부과시한이었던 8월 1일 을 겨우 이틀 앞두고 급박하게 결론이 내려졌다. 이미 일본, EU 등에 대한 15% 상호관세 부과가 확정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판을 뒤집을 수 있는 특별한 묘수는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소한 일본, EU보다 못하지 않은 결과를 얻어 내는 것이 우리의 가장 시급한 목표였을 것이고, 미국 또한 다른 나라들과 차별화된 내용을 우리에게 제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내용으로 협상을 마무리 지은 우리 협상팀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미국은 우리나라에 대한 상호관세와 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15%로 낮춰주기로 했고, 반도체나 의약품 등의 수출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조건의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우리나라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해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 중 1,500억 달러는 미국과의 조선산업 분야 협력을 위한 투자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이 펀드가 미국이 원하는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고 그 수익의 90%가 미국에 남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유재산권과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투자를 집행하겠다는 뜻은 아니리라 믿는다. 또한 우리나라는 1,000억 달러 상당의 천연가스 등 미국산 에너지를 수입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농산물시장 개방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는 쌀과 소고기시장을 지켰다고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산 농산물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고 말하고 있어서 구체적인 협상의 내용이 더 소명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반도체·조선…'잃은 것'과 '얻은 기회' 전체적으로 보면, 2007년 4월 한미FTA 타결 이후 18년간 자유무역의 깃발 아래 미국 시장에서 마음껏 보폭을 넓혀 온 우리 기업들이 앞으로는 일본, EU 등 경쟁국들과 맨바닥에서 치열하게 경합해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그간 무관세 혜택 아래 다른 나라 기업들보다 탁월한 가격경쟁력을 구가했던 우리 자동차 기업들이 2.5%의 핸디캡을 더 이상 얻지 못하게 된 점이 꽤나 뼈아프다. 하지만 반대로 새롭게 시장 기회가 열리는 부분도 있다. 조선산업의 경우 글로벌 마켓에서 늘 중국과 박터지는 경쟁을 해야 했고, 시장 점유율 확대가 과잉투자와 수익성 악화,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 협상 결과로 우리와 미국이 조선산업분야의 이해를 공유하게 된다면, 중국을 따돌리고 안정적인 시장기회를 선점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1,500억달러의 소위 마스가 투자펀드가 어떻게 설계되고 집행될지 큰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다. 그러나 이번 협상 결과를 냉정하게 평가해 본다면, '이제 겨우 시작'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많은 부분이 불확실하고, 각국의 손익 계산서 또한 앞으로의 이행 스케줄과 그 내용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예를 들어 각국의 대미 투자펀드 규모에 대해 들여다 보면, 2023년도 일본의 대미 투자 잔액은 7,833억달러에 달하나 우리 투자잔액은 그 10%에 불과하다. 연간 대미투자도 그 액수가 크게 늘었던 2023년 기준으로 66억달러에 그치고 있다. 앞으로 4-5년간 3,500억달러의 투자를 이행하려면 매년 2023년의 10배 이상 미국에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다. 일본이 기존 투자잔액을 제대로 운용한다면 자국경제에 큰 부담없이 용이하게 투자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반해 우리는 생니를 뽑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투자에 매달려야 할 판이다. 이런 투자가 미래 우리 경제의 성과로 이어지게 하려면 미국 마음대로 투자자금이 흘러가게 방치해서는 안된다. 어떻게든 보다 생산적이고 양국간 산업협력이 유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투자의 구체적 내용과 시간표를 설계해야 한다. 관세의 벽에 막혀 망연자실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줘야 한다. 투자·에너지 '천문학적 숫자, 실행의 난제는 없나 미국산 에너지 수입 또한 만만한 일은 아니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가 미국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는 전체 수입량의 12%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미국은 호주, 카타르, 말레이시아에 이은 제 4위 천연가스 공급국이다. 우리가 세계 3위의 천연가스 수입 대국이라고 하지만 연간 총천연가스 수입액은 대체로 500억달러선에 그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산 에너지 1,000억달러를 사오려면 호주, 카타르, 말레이시아 등으로부터의 천연가스 도입을 크게 줄여야 하는데 건드리기 곤란한 장기도입계약 물량을 고려하면 이렇게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호주 등 지금의 대량 공급국들의 반응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자기 시장을 뺏기는 이 나라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에 따라 전혀 엉뚱한 분야에서 우리 시장이 영향을 받을 위험이 적지 않다. 이번 협상에서는 논의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미국에서 대량의 천연가스를 사 오려면 알래스카의 LNG 개발 프로젝트에 코가 꿰일 우려도 적지 않다. 어차피 지 멋대로 협상을 끌고 왔던 미국이 “한국이 책임지고 투자해서 파 가라"고 배짱을 부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나? 구속력이 확보되지 않은 이번 합의의 불안정성에 대해서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어차피 기존에 우방국들과 맺었던 자유무역협정들을 싸그리 무시하고 새로운 관세 협정을 밀어붙인 미국의 입장에서 앞으로 더 무리한 요구를 한다 한들 더 이상 체면이 구겨질 일도 없다. 우리가 약속했던 것들이 이행되는 상황을 보면서, 혹은 새롭게 부각되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맞추어서 또다시 고율관세라는 칼날을 우리 목에 들이댈 가능성은 적지 않다. 트럼프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미국을 상대로 무역 흑자를 내는 이상 우리는 언제까지고 미국의 '불공정 무역국가'일 수 밖에 없다. 우리 정부가 '협상은 이제 막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앞으로도 계속 정보를 모으고 흐름을 읽어가면서 대미교역의 상황을 개선시켜 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불확실성을 이겨낼 후속 전략이 중요 사실 이번 합의에서 평가를 받아야 할 대상은 우리보다는 미국이다. 트럼프는 전 세계를 상대로 미국시장에 들어오려면 고율의 관세나 거액의 투자자금을 내놓아야 한다는 기괴한 '뉴노멀'을 제시했다. 앞으로 트럼프가 사라진다 해도 미국의 정책방향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관세를 통해 새롭게 확보되는 막대한 재정수입을 다른 것으로 바꾸려면 정권을 내놓아야 할 정도의 정무적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미국의 차기 정부가 그 정도로 용기 있는 선택을 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가 휘저어 놓은 이 흙탕물이 가라앉았을 때의 세계 경제질서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리더로서 미국이 지난 100여년동안 쌓아 왔던 막대한 무형자산이 탈탈 털린 미래를 생각해 보면 딱 두 가지 키워드가 떠오른다. '미국이 보이지 않는 세계' 그리고 '각자도생'. 트럼프의 몽니를 피곤할 정도로 오랫동안 지켜 보면서, 천년제국 로마의 영광을 뒤로 한 채 두 아들에게 나라를 쪼개 주는 악수를 두어야 했던 늙은 황제 테오도시우스1세의 외로운 말로를 연상하는 것은 과연 지나친 비약일까? 박원주

[기자의 눈] 통신업계, 흙탕물 싸움 말고 ‘선의의 경쟁’을

야구계의 불문율 가운데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을 때 과도한 세리머니나 몸짓을 하지 않는 것이 있다. 승리에 과도한 집착보다 상대팀에 향한 배려와 예의가 먼저라는 의미다. 마운드에서 한솥밥을 먹는 프로선수들의 동업자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휴대폰 대리점을 뒤덮은 현수막을 보면서 문득 불문율을 떠올린 이유는 SK텔레콤(SKT)의 대규모 유심정보 해킹사고 이후 공포 마케팅이 활개친 탓이다. 'SKT 위약금 드디어 면제', '번호이동 지금이 기회'와 같은 흔한 광고문구부터 '해킹은 내 인생이 털리는 것', '통신사 안 바꾸면 아이도 위험' 같은 자극적인 문구까지 등장했다. 급기야 SKT가 이를 근거로 경쟁사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하는 촌극도 발생했다. 경쟁사를 저격해 소비자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마케팅이 좋은 인상을 줬을 리 없다. 실제 대리점 현장을 취재하던 중 만난 30대 고객은 “한 번 씩은 개인정보 유출 이슈를 겪었으면서 아닌 척하는 게 더 얄밉다"고 말했다. 시류를 적절히 활용하는 게 마케팅의 기본이라지만, 국가재난으로 번진 사안이라면 조금은 달랐어야 했다. 동업자 정신이 실종된 흙탕물 싸움은 서로에게 강한 생채기를, 소비자에게는 깊은 불신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통신사의 마케팅 방향은 보안체계 강화로 선회한 모습이다. 주요 기업들은 최근 정보보호 투자 계획과 핵심 전략을 앞다퉈 발표했다. 이들이 계획한 보안 관련 투자 규모는 총 2조4000억원에 달한다. 전문 인력 확충과 인프라 확대, 기술 고도화를 통한 '제로 트러스트(지속 검증)' 체계 구축에 방점이 찍혔다. 윤리적 신념이나 사회적 책임 등을 토대로 제품을 구매하는 가치소비가 확산하는 시장 동향을 감안하면 시의적절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보안 수준이 뛰어난 통신사는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고, 이는 기업 경쟁력 제고로 이어진다. 장기적으로는 정보보호 기술 품질과 신뢰도를 전반적으로 향상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굳이 경쟁사를 깎아내리지 않아도 고품질 서비스를 적절한 가격에 제공한다면 가입자는 자연스럽게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통신 3사의 '보안 경쟁'은 공포 마케팅을 펼치는 것보다 훨씬 고무적이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소비자에게 더 나은 편익을 제공하고, 시장 발전을 도모하길 바란다. 통신업계의 '동업자 정신'은 이래야 의미가 있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이슈&인사이트]한국 콘텐츠 산업의 성장과 동남아시아와의 교류 필요성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한국태국학회장 최근 글로벌 문화콘텐츠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각국은 콘텐츠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자국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전략을 모색 중이며, 이 과정에서 한국의 성공 모델을 참고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 콘텐츠 산업의 성장은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거버넌스와 법제도, 민관 협력 기반의 정책 구조 덕분이다. 콘텐츠 산업이 단일 장르가 아닌 융합적 생태계로 구성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통합적이면서도 유연한 정책 설계는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태국은 2024년 3월, 문화 및 창의 산업 전반을 총괄하는 최초의 단일 기관으로 '태국창조문화진흥원(THACCA)' 설립 계획을 공식 발표하며, 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 차원의 정책 체계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THACCA는 한국의 KOCCA와 마찬가지로 태국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고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기구다. 향후 THACCA의 설계와 운영에서 한국의 정책적 경험은 실질적인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한국은 인재 양성과 창의력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며, 이를 콘텐츠 산업 진흥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KOCCA는 국내외 창작 인재를 대상으로 교육, 멘토링, 취업 연계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산업 생태계 전반의 역량 강화를 도모한다. 이는 단순한 인력 양성을 넘어, 콘텐츠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구조로 기능하고 있다. 태국 또한 자국의 문화자산과 창의적 인적 자원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이와 유사한 중장기 전략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은 디지털 전환과 신기술 수용을 정책 중심에 두고 있다. 인공지능, 메타버스, 확장현실(XR) 등 신기술을 콘텐츠 산업 전반에 접목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함께 마련해왔다. 이러한 기술융합 정책은 현재 디지털 생태계 전환기를 맞이한 태국에게 전략적으로 유용한 벤치마킹 모델이 될 수 있다.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KOCCA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 산업계, 학계, 국제기구 등과의 유기적인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정책 집행력을 높여왔다. 태국도 콘텐츠 산업 정책의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 근거법 정비, 거버넌스 체계 구축과 같은 구조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며, 이는 단순한 조직 설립을 넘어 유연하고 통합적인 정책 운용 능력을 요구한다. 정책 설계 및 집행 단계에서 민간 전문가, 창작자, 스타트업 등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행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강화하는 시스템도 구축되어야 한다. 아울러 정책의 집행과 성과 평가를 명확히 구분하여 국민과의 신뢰를 제고하고, 정책 결과를 공유함으로써 지속적인 개선이 가능한 체계 또한 필요하다. 한국과 태국의 콘텐츠 산업 협력은 정책적 교류를 넘어 실질적인 산업 파트너십으로 확장될 수 있다. 공동제작, 현지화 전략, 인재양성, 창업 생태계 조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은 상호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콘텐츠 소비 확대를 넘어 양국의 창작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문화 다양성과 포용성을 증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태국과 같은 동남아 국가들은 한국의 KOCCA 모델을 참고하되, 자국의 문화적 특성과 제도적 현실을 반영한 독자적인 정책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법제도 정비, 이해관계자 협력, 지역 기반 정책 설계, 국제 공동사업 확대 등은 한국과 태국 모두가 공통으로 직면한 과제이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면서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해 나간다면,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문화산업의 지속가능성과 글로벌 경쟁력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전략적 파트너십은 아시아 콘텐츠 생태계의 미래를 견인할 핵심 기반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김봉철

[EE칼럼] 미국과 관세협상 타결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들과 합의한 글로벌 관세협정의 개요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일본, EU와 미국과의 관세협정 조건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인다. 1일 이후에는 직접적 협상이 진전되지 않은 국가들은 추후 미국 통보로 자동 결정된단다. 이는 '협력과 공존- 번영'을 기축 이념으로 하는 2차 대전 이후 세계질서 기본'틀'인 '브레튼우즈' 체제의 점진적 종말을 의미한다. 사실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金兌換) 중단 선언(닉슨 쇼크)으로 이 체제 붕괴는 시작하였다. 주요국 환율을 유동화와 70 – 80년대 석유파동, 그리고 '코로나 판데믹'사태에 따라 더욱 쇠잔해 졌다. 미국 일방적 관세와 시장개방 압력에다 투자 강요는 쇠잔한 '브레튼우즈' 체제 종말을 재촉하는 것 같다. 따라서 새로운 국제공영의 '틀' 마련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촉구하는 글로벌 움직임이 강하다. 현재 미국 내 일부 지식인 계층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강압적인 '하드(hard)파워'에 집착하면서 그동안 미국의 국력과 국제적 영향력의 기반인 '소프트(soft)파워' 약화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국제정치학에서는 국가의 힘을 군사력, 경제력 등을 강조하는 '하드파워'와 문화, 가치, 이념, 정책 등을 강조하는 '소프트파워'로 구분한다. 민주주의, 인권, 개방성과 같은 '소프트' 요소들이 '미국의 힘'의 원천이라는 의견이 많다. 세계화와 글로벌 상호의존성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이해 부족을 우려한다. 이같은 미국의 글로벌 관세/투자정책 변화가 우리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우선 국제유가는 미국의 일방적 관세 부과의 영향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뉴욕 상업거래소(NYMEX)에서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 9월물은 전 거래일 대비 3.77달러 하락한 배럴당 69달러 수준을 기록하였다. 런던시장에서 9월물 '브렌트'유는 오른 72달러로 수준이다. 1년 전보다 미국과 영국 시장에서 다 같이 10%쯤 하락하였다. 이들 시장은 미-일 무역 합의에 따른 세계경기 회복기대와 서방의 러시아 제재 강화 움직임으로 약간의 강세장 성격을 보이나 완전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의 관심 사항은 국제유가 수준 오르내림이 아니다. 그보다도 중동, 러시아 등 산유국들(속칭 OPEC+)의 반응과 전략변화일 것이다. 글로벌 관세 부과는 OPEC+ 등 주요 산유국 (특히 중동지역)들에게 정부 세수확보와 지역 안정에 저해요소일 것이다. 특히 OPEC+는 감산전략을 포기하고 2025년 말 220만 배럴/일 수준의 증산을 결정하였다. 이에 석유 시장은 가격 인상보다 시장 점유율 확보 경쟁체제로 변모하고 있다. 여기서 특별히 강조할 점은 중동의 아시아 에너지 시장에 대한 큰 관심이다. 그들은 증가하는 동-아시아 상호의존성 증대에 따라 양측 모두의 경기 침체를 우려하고 있다. 이제 걸프 산유국들은 아시아 석유 시장 예의주시가 중요과제가 되었다. 단기적인 측면에서 국제유가는 당분간 안정적일 것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독선적 정책이 에너지 부문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미미한 것 같다. 여기서 미국과 일본의 관세협정 타결을 보고 우리 입장을 살펴보자. 미국은 전통적으로 우리보다 일본을 중시해 왔다. 따라서 냉정하게 우리 입장을 재검토하고 차선의 대책 마련에 냉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품 수출 비중은 36.7%로 G20 국가 중 1위이고, 일본(17.0%)보다 배 이상 높다. 더욱이 2023년 한국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7.6%로 OECD 두 번째이다. 따라서 관세협정이 제조업 성장, 고용 등에 즉각적으로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여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품 수출 비중은 36.7%로 G20 국가 중 1위이다. 일본(17.0%)보다 배 이상 높다. 이러니 수출기업 10곳 중 9곳(92%)은 '상호관세 15% 이상이면 감내가 어렵단다. 시장 규모를 생각하면 민간주도 대규모 미국투자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도 조선, LNG(액화천연가스) 등 미국이 필요로 하는 전략산업 진출도 고려해야 한다. 협상과정에서 '마스가(MASGA;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라는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제안이 데표적이다. 금융 '패키지' 제공 위주의 여타국과는 달리 현지 생산시설에 직접투자(그린필드형) 형태로 실질적 산업육성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이는 우리만이 인력 양성, 기술 이전, 조선소 건설 및 운영까지 실질적인 미국의 조선업 재건추진이 가능하다. 이런 우리 고유의 협력모델 발굴이 긴요하다. 관세협상의 마무리됐지만 국토정보 등도 적정 수준 개방 검토는 고려해야 한다. 전임 '바이든 정부'때의 '인플레 감축법(IRA)'에 의한 대미 투자실적의 적정 반영을 위한 교섭도 필요하다. 국방비와 연계수준도 냉정히 처리해야 한다. 결국, 경제 논리를 벗어난 '힘'에 의한 관세협정, 투자 강압 등 '거악(巨惡)'이 판치는 세상에서 '고식적' 시장실패 보정 노력만을 오래 해온 에너지 부문은 '힘없는 잔챙이'가 된 것 같다. 그래도 석유 위기 방지와 같은 우리 할 일은 꾸준히 해야 한다. 거악들은 언젠가 없어질 것이니까. 최기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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