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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홈플러스에서 드러난 MBK의 생각…고려아연 때는 다를까

“투자가 완료된 개별 포트폴리오 회사의 경영에는 관여하고 있지 않아 질의에 대한 충실한 답변을 드리지 못할 것이 염려된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이른바 '홈플러스 사태'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질의를 앞두고 돌연 중국 출장을 떠나며 불출석 사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입장에 따라서 해석이 분분하다 대체적으로 홈플러스 사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지적이 많다. 최근 국내 대표 대형마트인 홈플러스의 급작스런 회생신청이 재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기업의 영속성에 대한 판단을 법원에 구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사안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자구 노력이나 채무재조정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는 것이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MBK가 여전히 비슷한 방식으로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고려아연 측은 최근 입장문을 통해 “MBK 측은 과거 수많은 기업의 인수 과정에서 지속적인 말바꾸기를 진행해왔다"고 지적했다. 고려아연 측은 MBK가 기업을 장악한 이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적극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고 지적했다. 투자금 회수 극대화를 위해 핵심자산을 매각하고 구조조정을 강행해 경쟁력을 훼손하더니, 이후 최종적 매각이 어려워지자 법정관리로 단숨에 손을 떼는 무책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물론 MBK 입장에서도 변명거리가 없지는 않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사태는 오프라인 유통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홈플러스가 매장 등 부동산 자산을 매각해 차입금을 갚아나가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로 보인다. 벌어들이는 돈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홈플러스 입장에선 입지가 우수한 알짜매장을 팔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린 셈이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코로나19 사태와 그에 따른 온라인 이커머스 활성화로 인해 홈플러스는 미처 손 쓸 틈이 없이 악화됐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이 큰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아야만 순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비슷한 처지의 기업들도 저마다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지 홈플러스처럼 신속하게 기업회생의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향후 MBK가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더라도 최근 비철금속 업황 등을 고려하면 넘어야할 난관이 적지 않다. 이 같은 난관에 부딪쳐 크게 흔들릴 때에 경영을 책임져야할 MBK가 '투자가 완료된 개별 포트폴리오 회사'라며 고려아연을 나 몰라라 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이슈&인사이트] 트럼프 관세로 살아난 슈퍼 301조 악몽

트럼프가 공언한 일반관세 부과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주말 관세 부과에 대해 나라마다 유연성(flexibility)를 두겠다는 발언을 했지만 자기가 서명한 미국, 캐나다, 멕시코 관세 자유협정인 USMCA마저 무시하면서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를 부과한 전례를 보면 우리처럼 FTA를 체결한 나라들도 관세 폭탄에 자유로울 수는 없을 거다. 게다가 우리는 협상의 수장의 부재로 미국과 협상할 컨트롤 타워도 부재한데 올 1월 미 에너지부의 민감국가로 지정돼 걱정이 배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의 관세 부과에 따른 인플레 우려, 무역 갈등 그리고 국제 무역의 재편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미국의 주식은 요동을 치고 있다. 오히려 관세 폭탄을 대비하여 금리와 자국 통화를 절하한 유럽과 경기 부양을 공약한 중국, 홍콩의 주가지수는 반사 이익을 얻어 올 초 10% 넘게 상승하였다. 우리 주식시장 또한 레거시 반도체 가격 상승 사이클에 더해 미국으로 갔던 투자 자금이 회귀하고 외인들도 반도체 주식을 매입하면서 미국과 디커플링을 하면서 10% 넘게 상승하였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무역 적자를 줄이고 미국 재정 건정성을 회복하겠다는 목적으로 그의 취임 첫날부터 불도저처럼 밀어 부치고 있다. 하지만 과거 미국이 보호무역과 관세 부과 특히 94년 클린턴 대통령의 슈퍼 301조 관세 부과를 생각한다면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건 당연하다. 트럼프와 그의 내각들은 관세 부과로 인한 인플레는 일시적이고 향후 재정이 건전화 되면서 개인들의 세금을 줄여 주면 가용할 돈이 많아져 오히려 소비가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관세 부과로 나타난 일반적 현상들은 제조업 생산 비용 증가, 산업 경쟁력 저하, 정책 불확실성 증가, 공급망 재편성 그리고 무역 분쟁이었다. 트럼프가 8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리먼 사태 같은 부작용을 과감하게 정리할 목적이 아닌 단순히 맥킨리 시대로의 회귀를 원한다면 그의 관세 정책은 성공하기 힘들 거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94년 클린턴이 발효한 슈퍼 301조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당시 슈퍼 301조로 인해 세계 무역은 위축되고 미국의 재정 건전화를 위한다고 달러의 공급을 줄이면서 3년 후 동남아시아와 우리 나라에 IMF 사태를 유발하였다. 그 악몽이 다시 살아나지는 않을까? 미국은 당시 우리나라에 자동차 산업에 대해 슈퍼 301조를 부과하여 자동차 수출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고 당시 20%에 가까운 국내 금리 대비 달러의 낮은 이자만 생각하고 환율의 변동을 무시한 채 단자사들이 차입한 단기 달러 부채로 인해 온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준 IMF 사태가 발생했었다. 글로벌 경제를 고려하지 않고 미국이 자기네 1등 수출품인 달러의 수출 즉 공급을 줄이는 순간 달러의 패권은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증가한다. 그리고 달러의 유동성이 줄어든다는 것은 세계 무역의 축소와 자산 가치의 하락을 예고하는 예고편이 될 수 있을 거다. 우리의 핵심 산업은 역시 반도체와 2차 전지다. 미국 반도체를 살리기 위해 우리와 대만의 반도체 물품에 얼마나 많은 관세를 부과하는 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과거 슈퍼 301조의 부과로 국내 자동차 산업이 위축되어 IMF를 겪었듯이 반도체에 대한 관세가 생각보다 과하게 부과된다면 민감국가로 분류돼 원전과 4차 산업의 핵심 기술 협력이 힘든 상황에서 또 다시 슈퍼 301조와 같은 트럼프의 보편적 관세 폭탄으로 다시금 3년 후의 경제 불황이라는 공포가 살아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모든 걱정이 기우일지 아니면 T.S.엘리옷의 말처럼 4월은 잔인한 달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용

[EE칼럼] “데이 제로(Day Zero)”를 대비하자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을 기념하여 유네스코(UNESCO)는 “산과 빙하: 인류의 급수탑"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고산 지대의 빙하, 즉 만년설은 계절별로 녹는 속도가 달라지며 지속적으로 강과 호수에 물을 공급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데, 전 세계 강물의 약 60%는 만년설에서 나오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인해 만년설이 사라져 가고 있고, 2024년 기준 전 세계 약 22억 명이 마실 물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물경제위원회(GCEW)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 물 수요가 공급을 40% 초과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이로 인해 세계 GDP가 8% 줄어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은 오랜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 문제로 2018년, 도시의 상수도 공급을 차단하고 시민에게 단지 1인당 하루 25리터의 물만 제공하는 “데이 제로(Day Zero)"를 선언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2022년 기준 1인당 하루 평균 306리터를 사용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사태가 심각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30년 전인 1995년, 당시 세계은행 부총재였던 이스마일 세라겔딘(Ismail Serageldin)은 “20세기의 전쟁이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었다면, 21세기의 전쟁은 물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될 것이다."라며 물은 국제사회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안전한 수돗물을 공급받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일상에서 물 부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고, 필요할 때 얼마든지 물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과 달리, 대한민국은 물 부족 위험성이 높은 '물 스트레스 국가'이다. 이는 우리가 사용 가능한 수자원 대비 물을 소비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세계 평균보다 많지만, 여름철에 집중되어 있고 산악지형이라는 국토의 특성으로 많은 수자원이 빠르게 바다로 흘러간다. 아울러 국토면적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아서 한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수자원량은 세계 평균의 1/6 수준에 불과하다. 인구가 증가하여 1인당 사용가능한 수자원의 양이 감소하더라도 사람들의 물 사용량이 적어지거나 물을 이용할 수 있는 기반시설이 제대로 설치, 관리되고 있다면 물 부족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을까? 물을 얼마나 가치 있게 사용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로 “물이용 효율성(water use efficiency)"이 있다. 이 지표는 1톤의 물이 사용되면서 얼마만큼의 경제적 가치를 가져오는 지를 나타낸다. UN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20년 기준 OECD 회원국들은 평균적으로 1톤의 물을 사용하여 123.7달러의 부가가치를 가져오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54.4달러 수준으로, 38개 회원국 중 22번째에 머물러 있다. 또한 우리의 물 소비량은 영국, 독일, 프랑스, 국민 한 사람이 사용하는 물의 양보다 약 2배 많고, 매년 물 소비량은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댐을 건설할 계획이다.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물을 담는 시설용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새는 물을 막거나 물 사용량을 줄이지 않는 한 물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댐 건설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지불하고 있는 수도 요금은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공급비용의 약 73%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국 상수도관의 35%는 설치된 지 20년 이상 되었고, 한 해 사라지는 물(누수율)은 전체 공급량의 10%에 달하고 있다. 오래된 상수도관을 매년 교체하고 있지만 1%대에 불과하며, 재정적자가 누적된 일부 지자체에서는 새로운 시설 투자가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미래의 기후변화는 물 부족 문제를 한층 더 어렵게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의 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낭비를 줄이지 않는 이상 미래에 예견된 물 부족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2018년 “데이 제로(Day Zero)"가 선언되었을 당시 케이프타운은 물 경찰(water police)을 운영해 물 제한정책이 잘 지켜지는지 감시하였고, 시민들도 물 절약에 적극 참여하였다. 당시 “샤워는 2분이면 충분합니다"라는 샤워 송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케이프타운의 물 사용량은 평상 시 사용량의 절반까지 줄었고, 물 부족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수돗물 공급이 제한되고 하루 물 사용량이 거의 0에 가까워지는 상황, “데이 제로(Day Zero)"는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현상이다. 모쪼록 물을 아껴 쓰고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길 기대한다. 조용성

[이슈&인사이트] 상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권이 행사되어야 하는 이유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 경제계가 반대하던 상법 개정안 국회를 통과했다. 그간 경제단체와 기업들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투자 저해, 소송 증가, 투기자본에 의한 경영 간섭 등을 이유로 반대해 왔다. 이러한 노력에도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니 이제 남은 방법은 재의요구권이 유일하다. 대중적으로는 '거부권'이라고 불리는 재의요구권은 행정부가 입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정책수단으로 우리 헌법 제52조 제2항에 규정되어 있다.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유에 대한 명문규정은 없지만, 학계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6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①헌법 위반, ②집행 불가능, ③국익에 반함, ④정부에 부당한 압력, ⑤예산문제․재정적 부담, ⑥법률의 체계 정합성 위반 견제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위의 사유를 바탕으로 상법 개정안을 살펴보면 재의요구권을 행사해야 하는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첫 번째로 헌법 위반(사유①)과 집행 불가능(사유②)이다.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국회 상임위원회가 행정입법에 대해 수정․변경 요구권 또는 시정요구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의안번호 1915336)에 대해 “국회법 개정안은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이미 해석상 큰 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재의요구권을 행사하였다. 이를 상법 개정안에 대입해 보면 상법 개정안 제382조의3에 주주, 총주주, 전체 주주 등 유사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개념이 불분명해 해석에 있어 혼란을 피할 수 없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할 소지가 있다. 총주주라는 용어는 상법 제287조의43(조직변경), 제360조의9(간이주식교환) 등 5개 조문에 사용되고 있는데, 해당 조문에서의 총주주는 모든 주주, 즉 100% 주주를 의미한다. 만일 상법 개정안 제382조의3에서의 총주주의 의미를 100% 주주로 해석한다면 현실에서 작동이 불가능하다. 다양한 생각을 가지는 모든 주주를 만족시키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이는 이사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렇다고 현행 상법 조문의 총주주와 상법 개정안 제382조의3에서의 총주주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게다가 총주주가 모든 주주를 의미한다면 전체 주주와는 어떤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두 번째, 법률의 체계 정합성(사유⑥)이 재의요구권 행사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시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안번호 1902718)에 대한 재의요구서를 보면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추가하는 것에 대해 “개별 교통수단인 택시를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에 포함시키는 것은 대중교통법의 입법취지에 맞지 않고, 외국의 입법례도 없음"을 근거로 이유를 들고 있다. 이 이유를 상법 개정안에 대입해 보면 이번 상법 개정은 소수주주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상법 개정안이 보장하는 권리를 침해하였다고 하여 개미주주가 소송을 하고자하더라도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게 들기 때문에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을 수 있다. 이 점에서 소수주주 보호라는 입법취지는 달성하기 어려운 반면, 자본력이 있는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와 주주로 규정한 해외 입법례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상법 개정을 찬성하는 측에서 주장하는 미국, 영국 사례도 이사 충실의무를 원칙 회사로 한정하되 예외적인 경우 법원의 판단으로 주주에게 적용한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 상법 개정안은 헌법 원칙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법 체계상 혼란을 초래할 우려도 높다. 재의요구권 행사를 통해 국회에서 재논의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유정주

[EE칼럼]AI 적용 확대와 전기화(electrification) 추세에 따른 전력수요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기존 조치들을 대부분 폐지하는 동시에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앞으로 어떻게 에너지 산업을 꾸려나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기존과는 다른 방향의 행정명령들이 나왔다. 여기에는 전통 화석에너지의 생산이나 개발의 지원을 골자로 하는 에너지 설비 신속 인허가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중국에서 기존 재생에너지 계획의 시행을 위해 발표한 지침을 살펴보면, 재생에너지의 소비를 크게 늘리되 단순한 용량 증대보다는, 산업 전반에 걸친 전기화(electrification)와 인프라의 고도화를 이루고 여기에 재생에너지 활용을 극대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처럼 주요 전력소비 국가들이 기존의 에너지 계획을 선회하거나 더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 전력소비 7위(2023년 소비량 기준)인 우리나라도 전력정책의 기본뼈대라고 할 수 있는 전력수급기본계획(제11차, 2024~2038)을 지난달에 확정하였다. 여기에는 AI의 산업 적용범위 확산과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을 감안한 전력수요 증가에 대응하되 재생에너지와 수소, 그리고 원자력 등의 무탄소 전원을 활용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 내용을 약 2년 전에 확정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일부 비교하여 보면, 2036년을 기준으로 수요관리를 감안하기 전의 수요(기준수요)를 제10차에서는 모형 기반 전망에 전기화 및 데이터센터의 영향을 더하여 135.6GW로 예측한 반면 제11차에서는 138.2GW로 예측하고 있다(참고로 2038년은 145.6GW로 예측). 여기에는 제10차 계획과 마찬가지로 거시변수를 기반으로 산정한 모형수요에 산업 부문의 전기화와 데이터센터 증가 등을 감안한 추가수요가 반영되어 있다. 기준수요(모형수요+추가수요)에서 수요관리 분을 차감한 목표수요의 경우, 제10차에서 예측한 2036년의 값(118.0GW)과 2038년의 값(129.3GW)이 2년의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11GW 이상 차이 난다는 부분에서 전력 수요가 과다 예측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에 가장 큰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추가수요 부분이다. 기존 제10차 계획에서 10.5GW만 반영되었던 추가수요는 제11차 계획에 16.7GW로 확대 반영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데이터센터로 인한 수요와 산업 부문의 전기화가 각각 한 몫을 하고 있다. 추가수요에 반영되어 있는 국내 데이터센터는 1990년대부터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꾸준히 증가해 왔는데, 그 추이를 보면 2010~2020년에 비하여 최근 3년 동안의 증가 폭이 상대적으로 크다. 그만큼 성장 속도가 점점 가파른 모양이 되고 있는데, 2023년 150개를 넘어선 이후에 2029년까지 예정된 데이터센터만 700개가 넘는다. 다양한 산업으로 그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은 대규모의 복잡한 데이터 처리에 필요한 고성능 컴퓨팅 등을 위해 기존보다 많은 전기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추가수요에 데이터센터보다 더 큰 수치로 반영되어 있는 전기화 현상은 우리나라 제조업 및 모빌리티 산업 등에서 주요 흐름이 되고 있으며, 점차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여기에는 현재 캐즘(chasm) 현상을 보이고 있는 전기차 보급의 확대와 국내에서의 수소 생산에 필요한 전력 수요 등도 반영되어 있다. 데이터센터의 증가나 전기화의 직접적인 영향인지는 몰라도 최근 1~2년 동안의 전력사용량 증가 추이를 살펴보면 그 모양이 상당히 가파른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최대 전력 실적 기준으로 코로나19의 Pandemic 종식 후인 2023년 8월에 93.6GW를 기록한 이후, 바로 다음 해인 2024년 8월에 97.1GW를 기록하는 등 단 1년 만에 3.5GW가 증가한바 있다. 이러한 흐름 등을 감안할 때에 전력수요를 과소 예측하여 블랙아웃의 가능성을 높이거나 급하게 후속 조치를 하게 되는 것보다는, 조금 여유 있게 예측하고 대응을 준비해 가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확정됨에 따라, 이후에 이어질 송·변전 설비계획 등이 주목되고 있다. 후속계획인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이나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 등의 수립은 연내에 진행될 예정이다. 아무쪼록 관련 전문가들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여, 집단지성이 십분 활용된 최상의 결과물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손성호

[기자의 눈] 디지털 시대, 노인 배려가 필요하다

“아무 자리나 좋으니 남는 표 있으면 제발 한 장만…" 때아닌 더위에 국내 프로야구(KBO) 개막 열기가 더해진 지난 22일 야구장 앞을 서성이던 한 남성은 이같이 호소하고 있었다. 이마에 깊이 패인 주름에 머리 희끗한 그의 나이는 어림잡아 60대 중후반대. 입장권을 구매할 돈이 없어서 응원석 한 자리를 구걸한 게 아니었다. 선착순 온라인 예매가 보편화되면서 현장으로 들어설 길목이 가로막힌 것이다. 이같은 일을 겪는 건 고령층 야구 팬뿐만이 아니다. 디지털 기기의 발전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중·장년층에게는 혜택이 아닌 장벽이 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지 않은 이들로썬 낯선 용어들과 복잡한 기기 조작, 분초 단위를 요구하는 단계별 승인 절차는 편리함이 아닌 좌절감을 높일 뿐이다. 물론 이들을 위한 조치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눈이 침침한 이들을 위해 글씨를 크게 볼 수 있도록 조정했고, '쉬운 사용 모드'를 도입해 자주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을 큼직하고 깔끔하게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며 동작이 한층 느려진 이들이 '초 단위 스피드'를 필요로 하는 온라인 티켓팅을 스스로 하거나, 주변의 인내심 없이 키오스크로 주문을 빠르게 완료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최근엔 사회 모든 구성원이 차별 없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디지털 포용' 개념이 자리잡으며 기업 차원의 맞춤형 서비스 개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기술이 장애인의 신체적 특성에 기반해 일부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활용 역량을 일부 개선할 순 있어도 노년층의 괴리감을 좁힐 수 있는 근본 대책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혹자는 '노인들도 기술 트렌드를 수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으나, '디지털'이란 개념을 채 익히기도 전에 바뀐 시스템을 맞닥뜨린 이들에겐 다소 부적절한 지적이란 생각이다. 사전 교육 하나 없이 실전에 투입된 신입사원에게 유의미한 성과를 기대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달부터 제공되는 '114 택시 대신 불러주기 서비스'에 눈길이 갔다. 노년층에게 익숙한 '114' 시스템을 활용해 어려움 없이 택시를 예약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다. 서비스 지역 전면 확대까진 시간이 다소 걸리겠으나, 올 연말부턴 전국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년층 대상 교육도, 특화 기술 개발도 중요하겠지만 현재로썬 이들의 적응 속도에 발맞춘 서비스 도입이 시급하다. 시니어 전용 좌석 입장권을 현장에서 별도 판매하거나, 키오스크 보조인력을 배치해 주문을 돕는 것과 같은 '배려' 말이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기자의 눈] 이 상황에 또 디젤을?…폭스바겐 ‘재고떨이’ 논란

왕년에 자동차 시장을 주름잡던 '디젤차'는 친환경 정책에 따라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최근 한국시장에선 전기차, LPG차에도 밀리며 점점 사라져 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꾸준히 디젤차를 내놓는 곳이 있다. 지난 14일 폭스바겐코리아는 국내 시장에 '신형 골프'를 출시했다. 최근 부진한 판매실적 회복을 위해 매니아층이 단단한 대중모델을 출시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무리 골프가 인기 많고 역사깊은 차량이라도 디젤차는 한국 시장서 더 이상 메리트가 없다. 여전히 연비성능은 뛰어나지만 이외에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디젤차는 2010년대 뛰어난 연료 효율성, 강한 토크 등으로 인기가 많았다.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은 물론 세단에도 디젤엔진이 탑재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2015년 폭스바겐을 비롯한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디젤차의 배출가스량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난 '디젤게이트' 사건이 발생하면서 인기가 식었다. 게다가 경유의 불완전 연소로 발생하는 미세먼지, 일산화탄소, 질소산화물 등은 인체에 유해한 물질로 밝혀지면서 완성차 브랜드들은 '경유차 판매 중단'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디젤차 보유자에게 6개월마다 '환경부담금'을 부과하는 등 규제를 두고 있어 감소세는 매년 가팔라지고 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에게 디젤차는 환경오염의 주범이자 1년에 두번 세금도 더 내야하는 차로 인식되고 있다. 게다가 이런 단점들이 부각되면서 이로 인해 중고차 감가방어도 어려워졌다. 그런데도 폭스바겐은 한국 시장에 꾸준히 디젤차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출시했던 대형 SUV 투아렉도 디젤이고 이번에 출시한 골프도 디젤이다. 만약 지난해에 냈던 디젤 투아렉이 엄청난 성공을 거둬서 이번에도 같은 전략으로 가는 것이라면 이해하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집계에 따르면 폭스바겐코리아는 지난해 전년 대비 19.3% 감소한 8273대 판매를 기록했다. 지난해 수입차 판매 9위에 그쳤고 올해 1월과 2월에도 각각 14위, 10위에 오르며 판매량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폭스바게코리아가 또다시 수요 없는 디젤차를 내놓으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선 “재고떨이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국 소비자들을 위한 차가 아닌 유럽에서 팔리지 않는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한국으로 차를 보내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다. 폭스바겐코리아의 최근 몇년의 성적과 출시 모델을 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 한 부분으로 보인다. 폭스바겐이 주춤한 사이 렉서스, 토요타, 볼보 등 신흥강자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이들의 판매 모델을 살펴보면 디젤은 단 한대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본사의 정책 아래 움직이는 법인이지만, 정말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적어도 트렌드에 맞는, 한국 소비자들을 위한 모델을 출시하길 바란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EE칼럼] ‘민감국가’ 지정, 한국 원자력의 길을 묻다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지난 15일, 미국 에너지부(DOE: Department of Energy)가 한국을 '민감국가'(SCL: 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로 지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었다. 올 해 초만 하더라도 산업통상자원부가 미국 에너지부 및 국무부와 '한·미 원자력 수출 및 협력 원칙에 관한 기관 간 약정(MOU)'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바 있어 그 충격은 더 컸다.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3국 수출을 위한 '팀 코러스(Team Korea+US)' 출범에 박차를 가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결정이 나왔다는 점은 매우 모순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한미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협력적이었다고 자평하던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말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어서 심리적 타격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지난 17일, 한국 정부가 현 상황에 대해“외교정책 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힌 뒤, 이어서 18일에는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대리도 “민감국가 리스트라는 건 오로지 에너지부의 실험실에만 국한된 것"이라며 "큰 일이 아니다"고 발언하면서 상황은 다소 안정을 찾아가는 듯하다. 그러나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 되었다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에, 안덕근 산자부 장관이 미국을 찾아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에너지부 장관과 면담을 갖고 한미 양국이 절차에 따라 조속히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할 것이다. 오는 4월 15일 상기 결정이 발효되기 전에 배제 조치가 이뤄지는 것을 목표로 해야겠지만, 행정 절차 상 이유나 시간 제약 등으로 그것이 어렵다면 일단 포함되더라도 조기에 리스트에서 배제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 사건과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이를 계기로 한국 사회를 들끓게 했던 자체 핵무장 주장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의 양립 가능성 차원에서 한국 사회가 다시금 차분하게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정치권의 일부 인사들만 주장하던 자체 핵무장 주장이 점점 더 그 목소리가 커지고, 심지어 여론 지지도 높아지게 된 것은 안보 불안이 커진 탓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북핵 위협이 해를 더할수록 심각해지고 있는데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한 글로벌 정세 불안, 심지어 핵무장 국가가 핵 사용 가능성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상황,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성 등이 중첩적으로 국민적 불안감을 키우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 Nuclear Non Proliferation Treaty)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비확산 레짐의 성실한 구성원으로서 원자력의 평화적인 이용을 증진하고 관련 기술의 수출을 목표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한국 국내에서 NPT 체제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자체 핵무장 주장에 과하게 힘이 실리는 것은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글로벌 비확산 체제의 유지와 존속을 지지하는 많은 국가들 입장에서 우려할 만한 시그널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상황을 둘러싼 논의가 뜨거운 가운데, 그 여파로 세계 곳곳에서 핵무기 체제에 대한 재논의가 점화되는 양상이기는 하지만, 국제적인 논의를 거쳐 핵무기의 배치를 재조정하는 것과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여 보유하겠다는 것은 엄연히 질적으로 다른 문제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결국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원자력 정책이 보다 전략적이면서도 냉철한 접근을 취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의 직접적 원인인 보완 문제 등을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철저히 보강해 나가면서 향후 제3국으로의 수출을 위해 한미 협력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들을 선제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안보적으로는 한미동맹에 기반을 둔 확장 억제를 통해 국가 안보를 공고히 하면서도 글로벌 비확산 레짐이 유지되는 데에도 기여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원자력에너지의 이용 확대와 차세대 기술 개발에 진심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비즈니스 중심의 거래적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 한미 간 원자력 협력을 통해 한국이 미국에 제공할 수 있는 경제적 및 기술적 이익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양국 원자력 협력의 고도화를 추진해야 한다. 특히 신흥국 시장으로의 원자로 수출에 있어서 한국의 제조 능력과 수출 경험을 통해 축적한 기술 및 행정적 노하우는 미국 원자력 업계에는 부족한 부분이라 상호보완성이 높다. 한국이 이번 '민감국가' 사건을 통해 안으로는 정책적 모순을 바로잡고, 밖으로는 한미 원자력 협력을 한 단계 더 성숙하게 하면서 국제사회의 신뢰도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길 바란다. 임은정

[데스크칼럼]시장 초토화한 ‘오쏘공’…욕심 버리고 시민만 보라

“오쏘공(오세훈이 쏘아 올린 작은공)이 시장을 초토화시켰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번복 사태가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첫째, 정책의 신뢰도·예측가능성을 훼손했다. 부동산 투기의 '최후의 장벽'을 정확한 근거도 없이 풀었다가 35일 만에 뒤집자 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해제 후 해당 지역에서 집을 샀거나 팔려던 사람들은 '멘붕'을 호소한다. 정책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좌우돼 불신이 커졌다. 둘째, 부동산 망국론을 고조시켰다. 우리나라는 '불로소득'만 나오는 부동산에 투자가 집중돼 생산성 저하·양극화·가계 부채 등 문제가 심각하다. 집값을 안정화시켜 경제가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임무인데, 오히려 투기를 부추겼다. 기회를 엿보던 전국의 부자들이 돈을 싸들고 몰려들었다. 셋째, 정부 부동산 정책을 무력화했다. 정부는 지난 1월19일 지방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3000가구 매입과 세제·대출 규제 완화 등 대책을 발표했는데, '오쏘공'으로 힘을 잃었다. 인구 감소·양극화로 '똘똘한 한 채', 서울 1급지 아파트가 전 국민의 최우선 재테크 대상이다. 오쏘공으로 강남 아파트가 시장에 등장하니 다른 곳이 팔릴 리가 있나. 넷째,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의 효력까지 제한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3차례나 금리를 인하했다. 그러면서도 가계 부채 관리를 위해 주택담보대출 규제는 강화했다. 풀린 돈이 생산적인 곳으로 투자되어야 효과가 크다. 하지만 오쏘공이 등장하자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고 주담대도 늘어나면서 '도루묵'이 됐다. 다섯째, 뒤늦지만 오 시장의 '이해 충돌' 논란도 있다. 오 시장은 강남구 대치동에 고급 빌라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미 2023년 11월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제외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해 4월 '부동산거래에관한법률'이 개정돼 '핀셋 지정'이 가능해지자 시가 빌라·다세대 등을 토지거래허가 대상에서 뺐기 때문이다. 땅 투기를 막겠다면서 아파트는 놔두고 토지 지분이 훨씬 큰 고급 빌라를 제외한 이유는 무엇일까? 백번 양보해도 '셀프 해제'에 따른 이해 충돌 논란이 불가피하다. 참고로 몇 년 전 청와대 공직자들은 강남 아파트 소유만으로도 사표를 냈었다. 오 시장은 이번 일로 대권 가도에 큰 타격을 받았다. 정치 지도자로서 실력·비전·철학 부재를 지적받았다. 치명타다. 지난달 올림픽 국내 유치 도시 경쟁에서 전북에게 완패한 것은 실무적 차원이라고 치자. 오쏘공 사태는 지금 이 시대 국민들이 진정 원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는 점에서 아주 큰 결격 사유다. 시민들에게 큰 혼란을 주고 직접적인 경제적 피해까지 끼쳤다. '뉴타운 광풍'으로 대권을 잡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을 모델로 여겼을까?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부동산 규제 완화를 쏟아 낸 것으로 봐 충분히 의심된다. 설상가상 '명태균 게이트' 의혹까지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 2010년 무상급식 반대를 이유로 시장직을 내던져 국민들을 의아하게 했던 기억마저 소환되고 있다. 모든 게 욕심에서 나왔다. 오 시장은 지금이라도 왜 정치에 뛰어들었는지 되새겨 보길 바란다. 오로지 '시민'만 보라. 김봉수 기자 bskim2019@ekn.kr

[기자의 눈] ‘항공판 홈플러스 사태’ 우려…국토부, 안전 감독 강화 시급하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최근 국내 항공업계는 그야말로 대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에어부산·에어서울을, 대명소노그룹은 티웨이항공을 인수했다. 사경을 헤매던 이스타항공은 VIG 파트너스가, 하이에어는 상상인증권 컨소시엄의 사모펀드가 품었다. 에어프레미아와 에어로케이는 각각 JC파트너스와 대명화학그룹의 품에 안겼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익 창출에 있고, 이 같은 대형 인수·합병(M&A)은 사세 확장을 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다. 그러나 복잡다단한 항공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안전'이 등한시 돼서는 안 된다. 중후장대한 항공기를 운용하는 업계 특성상 사고가 발생하면 규모가 크고 비 가역적이기 때문이다. 항공업을 쭉 영위해온 회사들 간 M&A가 이뤄져도 안전에 대한 우려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데, 단기 수익 극대화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닌 사모펀드가 항공사를 인수할 경우 더욱 의구심이 커지기 마련이다. 비용 절감에만 혈안이 돼 필수적인 △안전 관리 △장비 △정비 등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하거나 안전 기준의 최소치만 충족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MBK 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사태는 '먹튀' 논란에 또 불을 붙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불안감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안전 투자 공시'를 명시한 현행 항공안전법 제133조의 2는 항공 안전 증진에 직·간접 영향이 인정된 투자 내역을 주기적으로 공개해 항공 교통 사업자가 이를 유지 또는 개선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규정이다. 그러나 동법이나 시행 규칙 그 어디에도 얼마나 많은 금액을 안전에 출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구는 없다. 매출이나 영업이익 중 일정 비율을 안전에 재투자하도록 한 강행 규정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안전이 뒷받침되지 않은 항공사에는 지속 가능성이 없다.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때 항공사들은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으며,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도 지킬 수 있다. 사모펀드와 같은 외부 자본이 항공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안전 관리가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도록 하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항공의 역사는 피로 쓰여졌고,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국토교통부와 3개 지방 항공청, 항공안전기술원은 더욱 철저한 안전 감독을 통해 항공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길 바란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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