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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우리는 산불을 진정 심각하게 여기는가

역대 가장 큰 산불로 기록될 '경북산불'이 지난달 진압된 이후 산불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여러 주장이 나온다. 일부 환경단체선 산림청이 불에 잘타는 소나무를 인위적으로 심어서 문제라고 한다. 반대쪽에선 환경단체 반대로 산림의 길인 임도를 못 만들어서 산불을 끄기 힘들었다고 한다. 인력·장비 부족은 고질적으로 등장하는 문제다. 잔가지 등 산불을 키우는 연료들이 산림에 즐비해 숲가꾸기로 제거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리는 있어 보이나 주장을 계속 듣다보면 자신들과 관련된 조직의 영향력을 키워달라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산림청을 부로 승격해 인력과 예산을 늘리고 임도를 건설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지금 상태에서는 산림부가 된다고 환경단체 반대를 뚫고 임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산림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 공감대와 산림청 위상이 함께 커지면 저절로 부 승격으로 이어질 것이다. 산림청의 산불 진화 업무를 소방청으로 이관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는 산림청 규모를 축소시키고 대신 소방청 힘을 키울 수 있다. 산불 진화의 주인공을 두고 벌이는 신경전 아닌가. 일부 환경단체는 임도 건설, 숲가꾸기, 인공 산림조성 등으로 생태계를 건들지 말고 최대한 보전하자며 산림청을 압박하는 시도도 보인다. 한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 산불의 외부효과, 즉 탄소배출에 따른 피해가 제대로 파악 및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산불로 희생된 주민, 동물과 고생하는 공무원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연예인들의 기부행렬에 박수를 친다. 그러나 대도시에 거주하는 대다수 국민에게 산불은 나와 상관 없는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일 뿐이다. 산불은 결코 우리와 상관 없지 않고 한반도 온실가스 농도를 높인다. 유럽연합(EU)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의 글로벌 산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3월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산불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230만톤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는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정했고, NDC 달성을 위해 탄소배출권 제도를 운영 중이다. 온실가스 한톤이 아쉬운 상황이다. 산불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발전(전환), 산업, 건물, 교통 등에서 배출량을 더 줄여야 한다. 현재 국내 배출권 가격대인 톤당 만원을 적용하면 230만톤은 약 230억원의 가치를 갖는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배출권 가격이 유럽연합(EU)처럼 10만원대로 오른다하면 230만톤은 2300억원가량이다.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일 대표발의한 탄소중립법 개정안이 눈에 들어온다. 개정안은 온실가스 배출의 사회적 손실을 정부가 산출해 공시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불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손해액이 집계되고 이를 온 국민이 함께 책임져야 한다면, 지금보다 산불 대응을 위한 논의가 더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믿는다. 장마철까지는 멀었고, 산불 위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이슈&인사이트] 성조기를 흔든다고 해서 미국이 손을 내밀지 않는다

광장에서 그들은 외쳤다. “대통령을 지켜라!" “공산세력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구하자!" 그들의 손에는 두 개의 깃발이 들려 있었다. 한쪽에는 태극기, 다른 한쪽에는 성조기. 그 깃발이 흔들릴수록, 그들의 목소리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논리는 더욱 허약해졌다. 극우는 늘 그랬다.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할 도덕적 자산이 없을 때, 외세의 이름을 빌린다. 그것이 1980년 광주 학살 당시 '반공'을 외치던 전두환의 논리였고, 2025년 탄핵 직전 계엄령을 검토한 윤석열의 마지막 언어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에 그 손에 들린 성조기와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백악관은 말했다. “미국은 한국의 헌법기관이 내린 결정을 존중한다." 국무부는 덧붙였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헌정 절차에 대한 미국의 신뢰는 확고하다." 즉, 미국은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와 헌법재판소 파면 사태를 두고 어느 한 인물이 아닌, 대한민국 헌법과 제도, 그 민주적 절차를 지지한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성조기를 휘두르는 군중의 편에 서지 않았다. 그 깃발은 더 이상 광장의 선동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1961년, 1980년, 2025년,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 윤석열. 세 명의 권력자는 공통된 궤적을 그린다. 자유와 정의, 반공을 기치로 등장했으나, 자신에게 불리해지자 헌법을 짓밟고,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며, 군 혹은 검찰 권력을 동원해 체제를 전복하려 했다. 박정희는 1961년, 장면 내각을 탱크로 밀어버렸다. 전두환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군을 장악하고 1980년 계엄령을 전국에 확대하며 광주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윤석열은 2025년, 자신의 일방적인 독주에 브레이크를 건 거대 야당을 손보고, 자신의 범법 사실을 감추기 위해 계엄령 선포와 군 동원을 은밀히 논의했다. 그들의 언어는 항상 비슷했다. “혼란을 수습하겠다."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겠다."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 그러나 그 실체는 헌법의 절차를 부정하고, 권력 연장을 위한 체제 전복 시도였다. 미국은 항상 그들을 지지했는가? 박정희 쿠데타 당시 미국은 분명히 반대했다. 매그루더 장군은 한국군에 장면 총리 정부만을 따르라고 명령했고, 대리대사 마셜 그린은 헌정질서를 지지하는 공개 성명을 냈다. 그러나 냉전 속에서 미국은 곧 박정희 정권과 손을 잡았다. 원칙과 현실 사이의 타협이었다. 1980년, 전두환이 광주 시민을 학살했을 때, 미국은 침묵했다. 카터 행정부는 인권을 중시했지만, 한반도에서의 정권 안정이라는 명분에 밀려 비극을 묵인했다. 그 침묵은 미국의 오점으로 남아 지금도 비판받는다. 그리고 2025년,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검토한 사실이 드러나고, 헌법재판소가 그의 탄핵을 결정하자, 미국은 이번엔 확실히 말했다. 그 누구의 편도 아닌, 헌법의 편에 서겠다고. 이는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침묵과 타협을 반성한 메시지이며, 한국의 시민들이 세운 민주주의의 진화에 대한 존중이다. 윤석열을 지지한 극우 군중은, 자신의 주장이 미국의 가치와 일치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들고 흔든 성조기는, 사실상 그들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 깃발이 상징하는 것은 헌정질서에 대한 폭력적 전복이 아닌, 민주주의와 절차에 대한 신뢰였기 때문이다. 성조기를 흔든다고 미국이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태극기를 두른다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헌법을 지키고, 국민의 뜻을 따르며, 법과 제도에 따라 권력을 이양하는 것. 그것이 미국이 한국에게 바라는 동맹의 조건이며, 대한민국이 스스로 쟁취한 민주공화국의 핵심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윤석열까지 헌법을 파괴한 자들은 권력을 가졌을지언정, 역사의 편에 서지 못했다. 그리고 미국은 이제, 그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는다. 성일권

[EE칼럼]中 ‘자원무기화’ 대비해 우크라이나 광물개발 참여를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의 대가로 희토류 등 광물개발 지분 50%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 외교의 지향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NBC, NYT 등 외신에 따르면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2월 1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러시아의 침공 이후 그 동안 미국의 군사 지원을 해준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매장되어 있는 희토류 등 광물 소유권 절반을 요구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약 5,000억 달러(약 720조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희토류를 갖기 원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그토록 희토류를 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희토류는 대중 관계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약점으로 거론 된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희토류 매장량과 생산량은 각각 4400만톤, 27만톤이다. 모두 세계 1위다. 반면 같은 해 미국의 매장량은 190만톤(세계 6위), 생산량은 4만5000톤(세계 5위)이다. 2020~2023년 미국의 희토류 수입량의 70%가 중국산이다. 그래서 희토류 부문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과제가 미국에 시급한 이유다. 현재 전 세계 흐름은 전기화이고 전기화는 기후 변화 문제 해결을 위한 필수적인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기차의 모터 및 배터리 같은 핵심 기술개발에 희토류의 사용이 불가피해 졌다. 하지만 희토류 채굴은 환경파괴, 자원고갈, 매장지역의 편재성, 국제적 갈등 등이 심각한 문제를 불러오고 있다. 특히, 희토류 영구자석은 전기차, 풍력터빈, 로봇공학, 드롯, 방위산업 등의 다양한 기술에 사용되며 대부분이 희토류에 의존하고 있다. 2023년 유럽연합(EU) 보고서에 따르면 희토류에 대한 수요는 유럽에서만 2030년까지 지금보다 5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 희토류를 대체할 광물이 없다는 것이다. 희토류에 대해서도 영구자석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희토류는 중국에 가장 많이 매장되어 있다. 이로 인해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며 희토류를 중국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한 게임임을 세계가 깨닫고 있다. 결국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 필요한 희토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희토류 및 광물자원 지분의 절반을 요구하는 제안서를 냈다. 제안서는 “재건 투자기금 협정" 초안이다. 우크라이나는 EU가 지정한 34개 핵심광물 중 희토류, 리튬, 티타늄, 천연흑연 등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광물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광물 생산 기준 24위, 생산 가치 210억 7300만 달러(약 30조원)로 전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전체 석탄 매장지의 63%, 석유 매장지의 11%, 가스 매장지의 20%, 금속광물 매장지의 42%, 희토류. 리튬을 포함한 주요 광물의 33%가 전쟁 지역으로 쉽게 접근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미국은 구체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자원개발과 관련해 광물자원 채권 수입의 50%, 자원 수익화와 관련해 제3자에게 부여되는 모든 신규 허가가 지닌 경제적 가치의 50%, 해당 수입에 대한 유치권 등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수출 가능한 광물에 대한 우선 매수 청구권도 요구사항에 포함되어 있다. 우크라이나는 협약에 따른 채무나 가압류 조치에 대해 국가 면세를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은 우크라이나 방위에 기여하지 않은 국가는 재건기금을 통한 투자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재건 사업비 배분을 총괄 관리 하겠다고도 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재건 비용을 마련한다는 기금의 목적이 뚜렷하다면 고용을 창출하는 측면에서 이익이 될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점에서 재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우리 입장에선 미국과 함께 우크라이나 재건사업과 광물개발에 참여하는 것이다.한국과 미국이 서로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맡아 우크라니아 광물개발에 뛰어 든다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와 미국의 최대 과제는 중국의 자원 무기화를 넘어서는 일이다. 중국은 희소광물을 무기 삼아 무역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우방국인 캐나다에 관세 부과를 예고하는 이유는 희토류 등 핵심광물 확보를 위한 전략이다. 따라서 우리도 핵심광물의 확보는 국가안보에 직결 된다. 미국과 중국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보여주는 자원 확보 경쟁은 각국이 생존과 직결된 전쟁을 수행하는 것으로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원이 없는 우리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을 할려면 반드시 자원 확보가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광물개발은 우리 산업 발전에 있어 다시없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민간과 공기업, 정부가 함께 우크라이나 광물개발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강천구

[데스크 칼럼] 일곱 번째 거부권…기업의 봉건제 언제까지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오랫동안 '왕과 신하'의 관계와 다를 바 없었다. 소유지분이 미미한 총수 일가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동안, 다수의 일반 주주들은 그저 '납세하는 백성'에 불과했다. 이사회는 총수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충성스러운 신하'들로 채워졌고,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주주 전체가 아닌 지배주주의 이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상법 개정안은 이러한 봉건적 지배구조에 '주주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리려는 시도였다. 윤석열 정부 들어 41번째, 한덕수 권한대행 개인으로는 7번째 거부권이 상법 개정안을 향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이 개정안은 지배주주 중심의 기업 운영에 견제를 가하고 일반 주주의 권익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한 대행은 “기업 경영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국회의 결정을 뒤집었다. 한 대행의 거부 논리는 재계와 국민의힘이 줄곧 주장해온 것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여기에 “일반 주주 보호에 역행할 수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상법 개정의의 본질이 바로 '일반 주주 보호'임을 고려하면,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 우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재계는 늘 개혁에 저항해왔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일감몰아주기 규제, 소비자 피해구제 확대 등 모든 개혁조치에 “경영 위축"과 “투자 감소"를 우려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이 이루어진 후에도 한국 경제는 성장을 지속했고, 기업들은 적응하며 발전했다. 오히려 개혁의 지연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더욱이 '권한대행'이라는 직무의 무게를 생각하면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권한대행은 차기 정부 출범까지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민생 현안을 챙기는 '관리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국회가 숙고 끝에 통과시킨 법안, 특히 오랜 개혁 과제와 맞닿아 있는 법안에 대해 선뜻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과연 그 역할에 부합하는 모습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혹자는 이번 결정을 '원칙과 소신에 따른 결단'이라 평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원칙이 과연 누구를 위한 원칙이며, 그 소신이 시대정신과 얼마나 발을 맞추고 있는지 냉철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환경이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질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특정 이해관계자의 목소리에 과도하게 귀 기울인 나머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개혁의 방향키를 되돌리려 한 것은 아닌가. 한 대행의 논리에서 너무나 익숙한 기득권의 그림자를 보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한 대행의 이번 결정은 당장의 파도를 잠재우는 미풍(微風)처럼 보일지 모르나, 역사는 이를 개혁의 흐름을 거스른 역풍(逆風)으로 기록할지도 모를 일이다. 부디 이번 거부권 행사가 던진 질문 앞에서,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하고 성숙한 논의를 이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한 대행의 '신중함'이 향후 국정 운영에서는 '시대의 요구에 대한 깊은 통찰'로 발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찻잔 속 미풍이 역사의 역풍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박원주 칼럼]관세 폭탄, 대한민국이 트럼프에 대처하는 법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쏘아 올린 관세 폭탄이 드디어 터졌다. 2025년 4월 5일부로 모든 수입 대상국에 적용되는10%의 기본관세가 시행되었다. 9일부터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소위 '최악의 침해국'으로 분류된 60 여개국에 국가별 상호 관세가 발효된다. 우리나라가 적용 받게 되는 최종 관세율은 25%, 미국과 FTA가 체결된 국가중에선 최고 수준이다. 2012년 한미 FTA가 체결된 이후 양국간 교역 품목에 대한 관세는 대부분 사라진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한국이 비관세 장벽과 환율 조작을 통해 인위적으로 무역 흑자를 유지해 왔다며, 한국이 사실상 미국에 대해 50%의 관세율을 유지해 왔지만 이중 절반만을 이번 관세율 계산에 반영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에 부과했다는 50% 관세율의 계산 근거를 보면 좀 어이가 없다. 실제 우리나라의 비관세 장벽이 수출입에 미친 영향을 본 것도 아니고, 대한무역적자 총액을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수입한 총금액으로 나눈 것을 관세율이라고 보았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에게 미국을 상대로는 무역흑자를 내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이건 관세가 아니라 '흑자세(Trade Surplus Tax)'이다. 이렇게 해서 2012년 FTA 체결 이후 활발하게 성장해 온 한미간 교역은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에 더해서 18세기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이후 세계 인류가 유사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물질적 성장을 구가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자유무역과 국제분업의 역사와 상호신뢰에도 치유하기 어려운 금이 갔다. 2차 세계대전 후 솔선해서 전 세계의 자유무역 질서를 만들고 지켜왔던 그 미국이 바로 그 파괴자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당장 미국이 직면한 어마어마한 재정적자와 누적부채, 미국 제조업벨트 근로자들의 일자리 등 지금까지 쌓여 온 많은 문제들을 생각해 보면 미국도 어쩔 수 없어서 이러는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번 조치가 미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당장 미국 국민들은 관세로 인해서 높아진 수입 물가를 직면해야 한다. 관세가 직접 원인은 아니라지만 이미 계란값을 비롯한 필수 소비재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 고통받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수입 원자재를 생산에 투입하는 미국 기업들도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할 수밖에 없고 이는 수요 위축으로 이어진다. 비즈니스에 악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주가도 큰 폭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가 하락은 미국 소비자들의 씀씀이를 더 위축시킬 것이고 기업들은 더 어려워 질 것이다. 일자리도 줄어들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과거 대공황 때처럼 교역 상대국들도 보복 관세로 대응한다면 전 세계가 심각한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없다. 뻔한 스토리다. 트럼프도 바보가 아닌데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 자국민 상대 모종의 딜(Deal)을 건 트럼프 당장 드는 생각은 트럼프가 전 세계, 그리고 미국 국민들을 상대로 모종의 딜(Deal)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의 예전 경험 한 자락을 꺼내 보려 한다. 1996년 산업부의 에너지 정책 부서 실무자였던 필자는 연 2조원 규모에 약간 못 미쳤던 에너지특별회계 예산의 편성을 맡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 규모를 생각해 보면 적지 않은 돈인데, 늘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사업이라서 그런지 업무를 맡게 된 첫 주 필자에게 와서 자기 사업예산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와 달라 해도 다들 바쁘다며 소식이 없었다. 사업비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고 세출과 세입의 아귀도 맞추어야 하는데 아무도 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협상도 불가능. 답답할 지경이었다. 생각 끝에 각 기관에 통보했다. 세입 여건이 좋지 않아 다음해 각 기관의 사업비 예산을 일률적으로 절반씩 삭감하겠노라고. 다음 날 아침, 일요일이었는데, 출근하면서 보니 필자가 일하는 사무실 바깥 복도까지 사람들이 가득 늘어서 있었다. 사무실 안쪽으로도 필자의 책상앞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모두 자기 기관의 예산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반을 삭감하면 어떤 큰 일이 나는지 절절하게 설명하러 온 분들이었다. 의도치 않았던 갑질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덕분에 몇 주만에 깔끔하게 차년도 예산편성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증액 요구를 거절 당했어도 감액 안 된 것만 해도 다행이라며 다들 안심하는 분위기라 고객 만족도가 의외로 높았다는 것은 덤이었다. 일대다의 협상에서 막무가내 전략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트럼프는 이번에 막무가내식 관세 폭탄을 던져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관세를 많이 거둬 재정을 충실하게 해서 미국인들이 내는 세금을 줄여준다는 거지만 계속 이러다가는 다 망할 거라는 걸 트럼프도 잘 알고 있으니 이렇게 단순할 리가 없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외국인 투자다. 관세를 피하려면 미국 영토에 공장을 짓고 근로자들을 고용해서 생산 활동을 하면 된다. 우리 반도체 기업과 2차전지 업체들이 미국에 투자했고 이번에는 자동차 업체도 미국 투자를 약속했다. 미국에서 생산하면 관세가 없는 게 당연한데 자동차 생산시설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No Tariff'라며 생색내듯 말하는 트럼프의 모습이 참 '거시기'했다. 트럼프는 이렇게 해서 외국의 고부가가치 산업과 일자리를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가져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다음으로는 미국산 제품에 대한 시장 수요를 늘리고자 하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예의 '상호 관세'를 때려 맞지 않으려면 흑자가 최소화될 필요가 있고 그러려면 미국에서 더 많은 상품을 수입해야 한다. 늘어난 수요는 미국 국내에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줄 것이고, 경제 활동이 늘면 세금도 늘어날 것이니 일석이조처럼 보이기는 한다. 또 하나는 미국의 많은 국제관계 이슈를 푸는 것이다. 멕시코 등으로부터의 고질적인 불법이민과 국경경비 문제, 중국에서 대량으로 밀반입되는 신종마약 펜타닐, 우방국들과의 군사비 분담 문제, 우크라이나나 중동 등의 국제 분쟁, 중국의 반도체 굴기, 그린란드의 희토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국의 버킷 리스트들을 이거 한방으로 해결하려는 속셈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트럼프와 미국이 얻고자 하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트럼프는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기축통화 발행국인 미국은 달러만 찍어내도 전 세계가 상품을 만들어서 보내는 나라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풍요롭고 물가가 저렴한 나라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미국의 고질적인 무역 적자는 이러한 발권력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기축 통화국 미국의 위상을 현저하게 떨어뜨릴 것이다. 달러에 대한 수요가 엔이나 위안, 심지어는 금으로 옮겨가는 추세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앞으로 미국인들은 더 비싼 물가를 감수해야 하고 상대적으로 더 싼 임금으로 일해야 할 것이다. 누적된 재정적자의 큰 원인으로 방만한 사회보장지출을 꼽고 있는 트럼프라면 국민들이 놀고 먹는 것을 그대로 둘 생각도 없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보아 온 트럼프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특유의 '예측불가능성'이다. 그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부동산 기업인이었고 리얼리티쇼의 쇼호스트이기도 했다. 연간 매출액 6,000만 달러 이상인 트럼프 브랜드의 주인이며 세계 도처에 골프장을 소유한 스포츠 재벌이기도 하다. 요컨데 그는 평생을 딜과 배팅을 통해 성장한 승부사이다. 지금의 관세폭탄 또한 세계를 상대로 한 그의 승부수이며 그는 목적을 이룰 때까지 사방에 관세의 깃발을 휘둘러 댈 것이다. 트럼프발 관세폭탄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2024년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은 1,280억 달러 수준으로 전체 수출의 18.7%에 달했다. 최대 수출 대상국인 중국에 버금가는 규모이며, 무역수지는 557억 달러 흑자로 우리 전체 흑자보다도 컸다. 이처럼 우리의 거대 무역 파트너인 미국의 시장 문이 닫힌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대기업들의 수출 규모가 뭉터기로 깍여 나갈 것이고, 납품 중소기업들의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다. 기업 생태계가 위축되면 그 여파는 내수시장으로 이어져 서민과 소상공인의 삶에도 큰 주름이 잡힐 것이다. 일자리에도 어려움이 커질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관세 전쟁이 무역 상대국들의 보복으로 비화되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초래된다면 미국 시장만이 아니라 전 세계 시장에서 우리 수출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작은 개방경제에 불과한 우리로서는 그저 트럼프가 빨리 원하는 것을 이루고 이 광기의 행진을 멈추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다 트럼프는 동맹과 적을 가리지 않고, 친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를 구별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무역 상대국은 돈을 의미할 뿐이다. 우리나라가 어려운 만큼 우리 경쟁국들도 어렵다는 이야기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을 맞춰줄 수 있다면 어느 나라든 그의 공격의 사각(안전지대)에 머무를 수 있다. 트럼프가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적아를 구별할 것을 요구하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우리가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사실상 단절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해외직접제품규칙(FDPR)을 통해 전략 물자가 아닌 상품이라도 미국 기술이 포함되어 있으면 러시아에 수출하지 못하게 했고, 러시아에서 운영중이던 우리 자동차, 반도체 기업들도 철수해야 했다. 러시아 발주로 짓고 있던 선박들의 인도에도 큰 어려움이 있었다. 그외에 중국 내에서 우리 기업들의 반도체 투자, 북한과의 경제 협력 등 많은 잠재적 비즈니스 기회들이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하는 가치동맹의 틀 안에서 심각하게 제약되었다. 반면 트럼프의 미국은 자기가 앞장서서 이러한 국가들과의 협상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위기 속에서 미국이 저러고 있다면 우리도 새로운 경제협력의 프론티어를 개척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의 미국은 WTO 상소기구의 위원 임명을 지금까지도 거부하고 있다. 사실상 미국의 부당무역행위에 대한 국제기구의 중재와 판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자유무역체제의 요람속에서 성장한 우리에게는 뼈아픈 일이지만 생각을 바꾸어 보면 사소한 자유무역으로부터의 일탈이나 중상주의적인 산업정책이 어느 정도는 묵인되는 시대가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유효한 산업정책의 공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에 더해서, 트럼프가 멋대로 관세 폭탄을 던져댈 수 있는 '별의 시간'이 그렇게 길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칼질은 세계시장 만큼이나 미국 경제에도 큰 상처를 내고 있고 결국 언젠가는 그 부작용이 이익을 넘어서게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가진 카드중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지켜야 할지 정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해야 할 일은 발상의 전환이다. 미국은 우리의 비관세 장벽에 대해 핏대를 올리고 있지만, 사실상 우리 비관세 장벽이 수출입 규모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다. 미국산 소고기나 쌀 수입에 대한 규제는 사실상 이를 풀어도 수입 규모가 크게 늘어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미 쌀 소비량 자체가 크게 줄고 있고, 소고기 월령제한을 푼다 해서 지금보다 미국산 소고기를 더 소비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의 규제는 경제적인 것보다는 농민과 축산농가의 우려를 신경쓰는 정무적인 제스쳐에 가깝다. 한중 FTA 등 여타 양자 무역협상에서도 국내 농어민들의 피해를 우려하여 각종 기금들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집행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이제는 업종을 보호하는 것보다는 그 업종에 속한 사람을 보호하는 쪽으로 초점을 옮길 때가 되었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시장을 열어주고 그 업종에서 피해보는 국민들에겐 충분한 소득 보전을 해준다면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문제를 풀 수 있다. 쓸데없이 행정력을 낭비하고 피해 업종의 국민들에게는 보상도 못해 주면서 무역 상대국으로부터는 대단한 보호무역조치라도 하는 것으로 오해받는 것이 더 손해다. 차제에 무의미한 비관세 장벽들을 정비하고 털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이 무역적자를 신경 쓴다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구매하면 될 일이다. WTO가 제 역할을 하던 때에는 정부 보조금을 통해 교역상대방을 바꾸는 정책이 금기시되었다. 우리의 석유 도입선 전환 보조금이 여러 차례 문제되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지금은 그런 노력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미국 외 국가로부터 도입하고 있는 에너지, 원자재, 첨단기술 제품 등을 조금 멀더라도 미국에서 사 오게 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약간의 물류비 보조만으로도 도입선 전환의 유인은 충분하다. 사실상 우리 정부가 미 국민들의 생산단가를 보조해 주는 셈이지만 그렇게 해서 관세율 산정에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미국외 교역국들과의 협력강화에 주력 미국 이외 교역 상대국들과의 협력을 지금보다 더 심화시켜야 한다. 이번 트럼프 사태의 가장 큰 교훈은 계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아야 한다는 것. 우리는 지금까지 중국, 미국 등 특정 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방식으로 수출의 볼륨을 키워왔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가성비가 뛰어난 시장접근 방법이긴 했지만 위험도 적지 않았다. 중국의 한한령 등 해당 국가의 변심만으로도 우리 수출의 규모가 널뛰기를 하는 불안정성을 피할 수 없었다. 당장은 미국 시장을 지키기 위해 총력을 다 해야겠지만 미국 이외의 다양한 시장으로 교역의 폭과 깊이를 키우는 노력이 시급하다. 그 한 갈래로서 우리 이웃 국가들, 일본, 중국, 러시아, 동남아 등과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데 지금은 잇몸이 서로 깨무는 모양새라 역내 협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게 사실상 어렵다. 산업협력과 시장 개방을 매개로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새로운 부가가치의 기회를 확산시키는 것이 위기에 대항할 수 있는 유효한 처방이다. 지금 트럼프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고립주의에 가깝다. 미국 시장은 앞으로 점차 닫혀갈 것이고 그 시장 잠재력도 더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시장을 다각적으로 준비해 두지 않는다면 우리 위기는 단순한 위협이 아닌 파국이 될 것이다. 첨단산업의 대외 이전에 대해서는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들의 수출 시장을 지키기 위해 미국에 생산 거점을 두는 전략은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에 투자한 한국 자동차업체의 제품이 제 3의 시장에서 국내 수출품과 경합하는 구도는 최대한 피해야 한다. 우리 일자리를 미국에 줄 수는 없지 않나? 트럼프가 그토록 원하는 첨단 산업의 미국 투자는 미국 내수용으로 묶어 두는 것이 우리의 생존 전략이 되어야 한다. 글로벌 무역 규제 염두...전략적 전개 필요 반면, 트럼프의 억지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에 묶어 놓을 수 없는 AI, IT, 플랫폼 등 글로벌 네트워크와 빅데이터를 지향하는 산업의 경우 적극적인 미국 진출을 통해 더 큰 시장의 이익을 최대한 누리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리 국익에도 부합할 것이다. 우리 산업의 주력을 이루어 왔던 중후장대 에너지다소비형 제조업에 대해서는 기후위기, ESG 시대의 글로벌 무역 규제를 염두에 둔 전략적 전개가 필요하다. 최첨단의 친환경 생산인프라는 최대한 국내로 유치하되 과다한 탄소컨텐츠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분야나 설비의 경우 우리보다 저렴한 재생에너지 대안이 풍부하고 기후 변화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트럼프 2.0 시대의 미국을 새로운 비즈니스 무대로 삼는 것도 생각해 볼 만 할 것이다. 14세기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흑사병이 유럽 전역으로 번지면서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이 희생되었다. 흑사병에 버틸 수 있는 강건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살아 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사멸을 피할 수 없었다. 트럼프가 시작한 21세기 관세전쟁은 각국 경제의 건실함과 복원력을 시험하는 또 하나의 흑사병이 될 지도 모른다. 강건하게 버티고 살아 남는다면 또 다른 도약의 기회가 올 것이다. 'Perish or Live & prosper'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 될까? 박원주

[기자의 눈]사상 두 번째 ‘탄핵’…끝이 아니라 시작

“첫 번째 매듭이 지어졌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후 나오는 말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120여일간 이어진 정치적 혼돈, 사회적 갈등, 경제적 리더십 실종 사태가 이제 막 해결을 위한 첫 번째 단계를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예상보다 심리가 길어졌지만 '8대 0' 만장일치로 국회의 탄핵 소추안이 인용돼 파면 결정이 내려졌다. 일각에선 헌재 재판관들의 진보-보수 성향에 따라 의견이 갈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막상 뚜껑이 열리자 결과는 전원일치였다. 12.3 비상계엄 와중에 윤 전 대통령이 저지른 행위의 위헌·위법성이 그만큼 중대했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의 완패였다. 절차상 문제점·검찰 조서의 증거 능력 인정 여부 등은 모조리 반박됐다. 헌재의 만장일치 선고 덕에 찬반 세력간 극단적 대결을 예방할 수 있었다. 실제 선고 당일 찬반 세력 모두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지만 큰 물리적 충돌이 없어 부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선고일 당시 4명이나 사망한 것을 감안하면 다행한 일이다. 게다가 이번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선 반대 여론이 유독 기승을 부렸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핑계로 든 부정선거론 등 음모론에 자극받아 진영론이 극대화된 덕이었다. 헌재의 전원일치 판결은 자칫 찬반 세력간 폭력 사태로 번질 뻔한 상황을 진정시켰다. 전세계에선 위기에 처했던 한국의 민주주의가 고비를 넘겼다는 평가다. 한때 인구 5000만명 이상·GDP 3만달러 이상 국가 중 1위를 달렸던 K-민주주의가 소생의 기회를 맞이했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각하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법원도 때려 부수는 극우 세력이 나타났다. '윤 전 대통령에게만' 너그러운 검찰·법원의 행태로 사법 불신이 최고조다. 경제도 참혹하다. 미국발 '관세전쟁'에 대응할 국가적 리더십이 실종돼 후유증이 심각할 것 같다. 내수 침체에도 제대로 된 추경 조차 편성하지 못했다. 기업은 망해나가고 자영업자들은 파산 행렬이다. 정치권은 벌써 조기 대선 국면이다. 12.3 비상계엄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과정으로 삼자.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AI) 시대 확 달라진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토론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EE칼럼] 용접공과 원전 르네상스

최근 원전 업계는 이전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에너지 위기 이후 세계는 원전을 다시 찾기 시작했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원전에 거리를 두고 있다. 다수의 서구 국가가 원전 밸류체인 붕괴로 예산 내 적기 시공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원전 르네상스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다. 가장 시급한 건 숙련인력 수급 문제다. 2023년 파이낸셜 타임즈는 프랑스 원전 용접 가능 인력이 500여 명에 불과하며 원전 유지 보수를 위해 미국에서 100여 명의 숙련 용접인력을 불러와야 했다고 밝혔다. 2030년까지 1000여 명의 숙련인력이 필요하지만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기까지 최소 7년의 경력을 쌓아야 한다. 하지만 숙련인력 입장에선 굳이 원전만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없다. AI와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대안으로 부상하는 천연가스의 경우 캐나다에서만 LNG 캐나다, 트랜스 마운틴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에 수백 명의 숙련인력이 필요하며 미국 역시 골든패스를 비롯한 셰일 업계의 동시다발 프로젝트 진행으로 경험 많은 숙련 용접공 수급이 어렵다. 연봉을 4~5배 올려준다고 해도 인력난은 여전하고 배관, 전기 기술인력 추가 부족은 고스란히 공급망 비용 상승에 일조하고 있다. 엑손모빌은 골든패스 프로젝트 지연을 선언했고 참여기업 자크리는 지난해 5월 비용상승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신청을 했다. 국내에서도 조선, 플랜트, 반도체, 자동차 산업의 숙련 인력난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는 용접공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정부는 원전 6기 건설에 엔지니어와 프로젝트 감독, 보일러 제작과 전기 기술자 등 총 10만 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반복 건설 노하우를 쌓을 수 있는 원전 건설 '기회'다. 프랑스 국민전선은 마크롱보다 더 공격적인 20기 원자로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는데 에너지 정책만큼은 정파를 뛰어넘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원전 밸류체인 복구를 원하는 국가들도 이를 뒤따를 것이다.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세계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 물결에서 화석연료 투자 급감으로 인한 셰일과 천연가스, 석탄 보틀넥을 겪었다. 에너지 위기 이후 화석연료 수급 부족으로 유가가 급등했고 미국 셰일에 필요한 프랙샌드와 설비 리스 가격이 3~4배가 급등했음에도 관련 기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유가가 올라가면 관련기업이 모두 '드릴 베이비 드릴'을 실행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현실과 괴리가 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고유가가 아닌 고유가의 '기간'이다. 연봉을 몇 배 더 올려준다고 해도 쉽게 돌아가지 않았던 건 셰일 암흑기에 어렵게 구한 일자리와 터전을 박차고 갈만한 '이유'를 업계가 제시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가 재생에너지냐 아니냐로 싸울 때 '모든 산업에 필요한 전문 인력과 밸류체인'은 인구구조 변화와 함께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한국 원전은 1971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중단 없는 건설 경험으로 강력한 서플라이 체인을 구축하고 있고 UAE를 비롯한 해외 원전 적기 시공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최근 한미 원전 협력을 바탕으로 기존 원전과 SMR 분야에 장밋빛 미래를 그릴 만반의 준비가 끝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국의 생산 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원전 산업 절대 인력 감소, 불가피한 외국인 노동자 활용과 기술 전수, 베이비붐 퇴직인력 활용과 더불어 신규 인력 유치와 양성은 쉽지 않은 과제다. 에너지경제신문이 주최한 '한미 원전 동맹과 k-원전의 글로벌 선도 전략'에서 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위기 이후 기후변화가 에너지 안보로 바뀌었듯이 데이터센터와 AI 붐 등 원전에 우호적인 상황이 어느 순간 바뀔 수 있다며 일희일비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우려대로 최근 알리바바 조 차이 회장은 AI·데이터센터 버블을 경고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2월에 이어 2기가와트 전력을 소비할 미국과 유럽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과잉공급 우려로 철회했다. 기술과 자본만큼 중요한 건 인력 유치를 위한 향후 40년 원전산업의 비전이다. 수축의 시대, 글로벌 에너지원별 간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할 미래에 이 산업에 수십 년 몸을 맡겨도 된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퍼미안 분지로 돌아오는 인력은 같은 이유로 원전산업에 든든한 힘이 될 수 있다. 누가 더 신뢰할 수 있는 미래를 보여주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며, 시장 상황으로 얻은 것이 아닌 스스로 일궈낸 비전이 가치를 더할 것이다. 최승신 C2S컨설팅 대표

[이슈&인사이트] ‘윤석열 파면’이 남긴 숙제

8년 만이다. 대통령이 또 파면됐다. 사유는 위헌 불법계엄. 군대를 동원해 나라의 정체성을 바꾸려 한 내란이었다. 전 국민이 중계방송을 통해 지켜봤고 파면은 당연했다. 그 당연한 파면 결정을 마음 졸이다가 환영해야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암담하고 참담했다. 헌법재판소 선고문이 명문이라고들 한다. 동의한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법리 해석이나 문장이 좋아서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갖고 있는 상식,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원칙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기에 명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게 당연해지는데 넉 달이 걸렸다 당연한 게 당연해지는데 넉 달이 걸렸다. 우리 정치와 사회의 현 위치와 과제를 직시하게 한 넉 달이었다. 과제는 상식과 원칙, 합리의 회복이다. 과제가 너무 당연하고도 평범해서, “이미 다 이룬 것 아니었던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성에 차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아직 그 상식과 원칙, 합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처절하게 확인한 넉 달이었다. 유감스럽지만 그게 현 주소다. 헌재 선고 두 시간 후 윤석열 피소추인은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합니다"라는 입장문을 내놨다. 승복도, 사죄도 아니었다. 누구의 무슨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건가? 애매하다. 일부러 애매하게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사과는 한국말 깨우친 삼척동자도 의심의 여지없이, 헷갈리지 않고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어야 사과다. 다 떠나서, “야권이 못살게 굴며 빌미를 제공했고 대통령으로서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해서, 군대를 동원한다? 헌재 선고문이 지적했다시피 주권자에 대한 도전이자 민주주의 파괴행위였다. 그런데도 아직도 인식의 변화가 없다. 계엄에 대한 죄의식 같은 것은 일점일획도 없었다. 향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보겠다는 뉘앙스마저 읽힌다. 그래서 더 암담하고 참담하다. 아직도 국민이 만만한가…승복도 사죄도 아닌 '윤석열 입장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힘은 철처하고도 무조건적인 사과와 승복을 천명하는 게 급선무다. 그리고 자신들 지지자들을 끝까지 설득해야 한다. 헌재결정 승복과 폭력적 대응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게 공동체 속에 존재하려는 정당의 기본 모습이다. 헌재의 파면 선고 순간부로 대선 모드에 돌입했다. 국힘은 윤 전 대통령을 제명하고, 내란 옹호/선동에 앞장 선 의원들에 대해 출당 등 징계에 나서야 한다. 그게 사과와 거듭남의 행동표현이다. 사과란 사과받을 국민들이 “됐다, 그만 사과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제명과 추종세력의 축출 없이, 사과와 선 긋기 없이, 무슨 염치로 대선에서 표를 달라고 할 건가. 소속 대통령이 8년 새 두 번씩이나 파면당했으면서 아직도 주권자가 그렇게 만만한가. 민족정기-국가정기 회복 차원에서 계엄내란후유증 정리해야 파면 전까지는 '야권'으로 불리운 제 정파도 각종 정치적 식언과 정당 운영의 비민주성, 극단적 지지자들의 훌리건적 언행/편가르기 등에 대해 반성하고 수권 세력의 정책역량을 입증해야 한다. 그게 내란 후 치르는 대선의 기본 모습이다. 임기를 조기 강퇴당한 전임자의 후임자를 뽑는 '단순 보궐선거'가 돼서는 안된다. 주권자들이 넉 달 간 거리와 광장에서 외친 것은 내란수괴척결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리셋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파면으로 리셋은 끝났다. 다음 정권은 당연히 나, 우리"라며 전리품 획득자처럼 군다면, 미안하지만 번짓수가 틀렸다. 계엄내란의 후유증 청소는 확실히 하되, 민족정기-국가정기 회복 차원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극단주의자들의 정치보복 트집을 제압할 수 있다. 계엄내란의 한 원인이었던 극단주의자들의 발호와 음모론을 제어해야 한다. 사회의 성숙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분파성과 적대성의 위험을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도록 지루함을 견디며 끈기있게 대화하고 인식을 모아나가야 한다.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상식과 합리가 존중받는 풍토, 극단 과격주의자들에게 좌우되지 않는 지적 토대와 의사결정과정 구축이 계엄내란이 남긴 숙제다.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 되는 '역사적인 숫자'가 있다. 3‧1, 8‧15, 4‧19, 5‧16, 10‧26, 12‧12, 5‧18, 87년 6월, 4‧16…. 여기에 12‧3이 추가됐다. 12‧3 비상계엄. '역사의 모르스 부호'가 된 숫자들을 열거하고 보니 쿠데타가 세 번이나 된다. (참고 : 물론 이승만 시절에도 계엄이 여러 번 발령됐지만, 전시거나 준사변일 때도 있어 숫자에서는 일단 제외.) 리셋이 필요한 대한민국…상식과 합리 회복 절실 조기 대선에서 어느 정파가 승리하든 새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금같은 정치적 내전상태가 완화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진영 대결의 정점 구간에 장기 교착돼있기 때문이다. 윤석열비상계엄내란을 제대로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렵고 힘들수록 상식과 원칙, 합리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정치와 사회는 아직 원칙과 상식, 합리가 시대정신이어야 하는 수준이다. 현 상태를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새 정부가 그런 인식에 기초해 양극화해소와, 공교육회생, 저출생극복으로 나아가는 첫 주춧돌을 놓기 바란다. 가족들 건강과 취업걱정, 학비걱정, 물가걱정, 노후걱정…들이 얼마나 평범하고도 다행인 걱정인지 뼈저리게 깨달은 기간이었다. 두 번째 파면이다. 같은 문제로 수업료 두 번 내지 말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이 일상 생활 전 영역에서 확인되는, 아니 확인할 필요조차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통합이다. 아직도 어리둥절한 계엄내란이 남긴 숙제다. 이강윤

[기자의 눈] ‘탄핵선고 뒤탈’ 없어야 서민경제 산다

4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가 나온다. 계엄령 파동과 탄핵 정국에 따른 시국 불안이 종지부 찍을 전망이다. 그동안 4개월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았던 비상계엄과 현직 대통령 구속, 179명 목숨을 앗아간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를 낸 경북지역 산불까지 혼란의 연속이었다. 잠잠해질만 하면 파도처럼 몰아치는 게 놀라울 정도다. 공교롭게도 시국이 어지러울 때마다 그 후폭풍은 꼭 소상공인들이 얻어맞았다. 연말 대목을 앞두고 벌어진 사건·사고에 각종 모임이 줄줄이 취소돼 요식업계 매출이 직격탄을 맞았고, 봄꽃 축제를 앞두고 발생한 '역대급 산불'로 소상공인들은 가슴에 멍이 들고 있다. 최근 소상공인·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선 산불 피해에 놀란 지방자치단체의 축제 취소사태를 두고 상인들끼리 '갑론을박'을 벌이는 안타까운 모습이 연출됐다. 봄꽃축제만 손꼽아 기다려왔던 어떤 상인은 “산불과는 관련 없는 하천가 축제들까지 취소하며 다른 소상공인 숨통을 조여야하나"라며 불만을 토로한 반면, 산불지역 상인들은 “피해지역은 살길이 막막한데 꼭 축제를 해야 하나"라며 분노했다. 산불에 다 타버린 산자락도 참담했지만, 어느 편을 들기 어려울 정도로 소상인들의 안타까운 외침도 서글프긴 매한가지였다. 4일 헌법재판소의 선고 결과가 어떠하든 간에 사회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기업들은 선고 당일 아예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시행하겠다고 밝혔고, 헌법재판소 인근 식당들도 아예 문을 열지 않겠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탄핵선고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든 정치권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정치권이 싸울수록 그 불똥은 민생에 튄다. 정치권이 헌재 결정에 불복한다면, 서민경제의 축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그 후폭풍을 맞게 된다. 탄핵선고 결과에 상관없이 정치권은 민생경제 살리기를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을 조속히 합의해 통과시켜야 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3일 발표한 한국에 상호관세 25% 부과에도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좌고우면할 겨를이 없다. 대통령 탄핵의 리스크를 넘겼으니 이제 사회 안정과 경제 회복에 '올 인'해야 한다. 더이상 정치 불안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가슴에 대못을 박아선 안된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이슈&인사이트] 상호 관세 발효로 사라진 트럼프 풋 기대감

트럼프의 관세가 미국 언론에서 잠시 흘러나왔던 보편 관세 발표가 아닌 원래대로 나라별 상호 관세로 발표되었다. 모든 국가에 기본 관세 10%를 부과하고 EU 20%, 중국 34%, 한국 25%, 일본 24%, 대만 32%로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관세가 부과되었다. 현재 미국 무역 대표부(USTR)의 300명도 안되는 인원을 가지고는 국가별 관세를 정하는데 물리적 시간이 짧아 보편 관세가 발표될 거라 예상했지만 예상을 깬 상호 관세 형태 였다. 관세 발표 후 금과 채권 가격은 오르고 주식은 하락하면서 안전 자산으로 쏠림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도 불확실성이었던 관세는 변수에서 상수가 되었다. Yale Budget Lab 연구소에 의하면 20% 관세를 기준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2% 증가하고 가구당 구매력은 $3,400-$ 4,200로 줄어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번 상호 관세와 자동차에 25% 부과한 관세로 인해 6조 달러의 관세 수입이 생길 것이며 이는 차후 감세 발표안의 재원이 될 거라 전망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Liberation Day"에 발표한 관세 부과가 재정을 튼튼히 하고 감세로 소비자들에게 구매력을 회복시킨다는 그의 생각이 들어 맞을 지 아니면 시장이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후퇴를 가져올 지 이제는 지켜봐야 할 시간이 되었다. 트럼프 1기 때는 중국만을 겨냥한 관세 정책이 이제는 친구도 적도 구분없이 모두에게 그 화살이 날라왔다. 게임이론에서 가장 좋은 전략이라는 팃포택(Tit-for-Tat)으로 세계 각국은 보복을 할 거라 예상한다. EU와 캐나다, 중국, 일본, 우리도 상응하는 보복 관세를 부과할 것이다. 그나마 관세 발표 전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의원 회의에서 “이번 관세가 상한선이 될 것이고 이후에는 협상을 통해 낮출 수만 있다"라는 발언으로 일단 관세를 높게 부르고 깎아 주는 'elevate to deelevate' 전략을 쓰겠다는 힌트를 준 희망 고문은 그나마 다행이다. 주식 시장에 관세 영향이라는 불확실성이 다시 생겨났다. 앞으로의 영향은 아무도 모른다. 미국 주식 시장 참가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는 아이 떡 준다'는 전략을 써서 항상 떡을 얻어먹었다. 우리가 말하는 풋을 끌어냈었던 것이다. 금리를 낮추어 주는 연준 풋(파월 풋), 재정을 푼 옐런 풋이 그 좋은 예다. 풋은 옵션 시장에서 주식 가격이 하락하는 걸 방어하는 데 쓰이는 상품의 명칭이다. 이처럼 시장은 관세 발표전까지도 트럼프 풋 기대가 있었지만 이번 주 베센트 장관의 “빚을 키우면서 소비를 늘려가는 성장을 이어가는 것은 무리"라는 발언과 레빗 백악관 대변인의 “주식시장은 한 시점을 포착한 것에 불과하며 1기 행정부 때 그랬듯이 월가는 이번 행정부에서도 괜찮을 것"이라는 발언에 덧붙여 결정적으로 상호 관세의 발효로 트럼프 풋 기대는 사실상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가 받아 든 성적표는 25% 관세다. 한미 FTA로 사실상 무관세였던 우리 수출품의 가격이 이제는 미국에 수출할 때 25% 오른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경쟁국도 비슷하게 관세가 올랐지만 상대적으로 유리한 나라와 불리한 나라가 생긴 것 또한 사실이다. 베센트 장관의 말처럼 이번 관세가 최고치이고 협상을 통해 관세울을 낮출 수 있다지만 우리는 4월 4일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다면 미국과의 정상적 관세 협상은 6월초 이후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밖에 없을 거다. 기각이 되어도 국정 공백으로 미국과 관세 협상을 할 시간이 필요할 거다. 그동안 예샹되었던 관세에 대해 기획재정부나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얼마나 이에 대한 준비를 잘 하고 있었는지 그 역량을 보여줄 시간이 되었다. 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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