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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의 체인지] 벌써 ‘레임덕’이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이유

대통령의 집무실에는 문이 많다. 그 문을 통과하려는 사람도 많다. 칭찬을 들고 오는 사람, 좋은 숫자를 들고 오는 사람, 대통령의 생각이 옳았다는 보고서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다.정작 대통령에게 필요한 사람은 따로 있다.“대통령님, 그건 아닙니다." 이 말을 들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강한 대통령이다. 판단이 빠르고 결정하면 밀어붙인다. 디테일까지 직접 챙기는 '일잘러' 이미지도 두드러진다. 여당의 의석도 든든하고 뚜렷한 2인자도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마음먹으면 정책을 움직일 힘이 충분하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권력이 강할수록 대통령에게 “아닙니다"라고 말하기 어려워지 때문이다.처음에는 참모가 반대한다. 대통령이 듣지 않으면 다음에는 표현을 순화한다. 그래도 소용없으면 보고서에서 빼버린다. 결국 대통령 책상에는 좋은 뉴스만 올라온다. 현장에는 빨간불이 켜졌는데 대통령 보고서는 초록색이다. 지지율도 계속 빠지는 추세로 돌아선지 꽤 됐다. 권력의 위기는 여기서 시작된다.최근 정치권 일부에서 벌써 '레임덕'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집권 초반의 대통령에게는 지나치게 빠른 표현이 분명한데도 그렇다. 더구나 대통령의 권력 자체가 약해진 것도 아닌데…. 레임덕을 단순히 권력이 빠져나가는 현상으로만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진짜 위험은 국민의 목소리가 대통령에게 도착하지 않는 순간부터이다. 인사도 그래서 중요하다. 첫 조각에서 이재명 정부는 외교·안보와 산업·과학 분야 등에 경험과 실무 능력을 갖춘 인사를 배치하며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진영보다 능력을 보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 초심이 필요하다. 최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서 청와대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야당이 왜 공격하느냐가 아니다.왜 이 사람이어야 하는가. 장관 후보라면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분야에서 무엇을 해봤는가.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가. 대통령에게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충성은 능력을 대신할 수 없다. 유명세도 성과를 대신할 수 없다. 대통령과 가깝다는 것이 국가의 일을 맡길 자격증일 수도 없다. 특히 지금은 더욱 그렇다. 반도체가 경제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반도체의 봄이 대한민국 전체의 봄은 아니다. 서울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온도는 다르다. 청년은 일자리와 집값을 걱정하고 지방은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걱정한다.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좋은 숫자를 설명해 줄 사람이 아니다. 숫자 밖의 국민을 보여줄 사람이다.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면 “그런데 왜 골목은 춥습니까"라고 물을 사람, 부동산 대책이 나왔을 때 “정책은 맞지만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사람, 대통령이 아끼는 사람이라도 자격이 부족하면 “이번 인사는 접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대통령도 달라져야 한다. 잘못된 정책을 고치는 것을 패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사를 철회하는 것도 굴복이 아니다.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체면 때문에 계속 달리는 것이 더 위험하다. 자동차가 시속 50㎞로 달릴 때는 엔진이 중요하다. 200㎞로 달릴 때는 브레이크가 더 중요하다.이재명 대통령에게 성능이 뛰어난 엔진은 이미 있다. 추진력도 있고 권력도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브레이크다. 정치에서 가장 좋은 브레이크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자신과 생각이 다른 유능한 사람을 쓰고, 그 사람이 반대할 자유를 주는 것. 대통령이 말해온 '통합'도 거기서 시작될 수 있다.통합은 여야 인사 몇 명을 섞어 사진을 찍는 일이 아니다.나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다.권력은 대통령에게 사람을 고를 힘을 준다. 그러나 좋은 대통령은 그 힘으로 자신에게 좋은 사람만 고르지 않는다. 나라에 필요한 사람을 고른다.그리고 그들에게 말할 자리를 내준다.“대통령님, 아닙니다." 그 한마디가 대통령의 귀에 계속 들리는 정부라면 아직 건강하다. 대통령의 귀가 열려 있는 동안 권력은 쉽게 늙지 않는다.레임덕은 권력이 약해질 때가 아니라, 대통령이 쓴소리를 듣지 않기 시작할 때 문앞에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김한성의 AI시대] 똑똑해진 AI, 이제 무엇을 맡길 것인가

김한성 투비유니콘 최고철학책임자(CPO) 9월 들어 주요 AI 기업들의 발표를 보면, 우리가 AI에 맡길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오픈AI는 GPT-6 Astra가 컴퓨터와 브라우저를 사용해 작업을 수행하고, 새로 주어진 조건에 맞춰 다음 단계를 조정하는 능력을 강조했다. 앤트로픽은 Claude Fable 5.1의 장시간 문제 해결을, 구글은 Gemini 3.8 Flash의 여러 단계에 걸친 추론과 반복적인 도구 활용을 앞세웠다. 개발사들의 자체 발표라는 한계는 있지만 변화의 방향은 눈여겨볼 만하다. 경쟁의 기준이 '얼마나 잘 답하는가'에서 '얼마나 복잡한 일을 해내는가'로 넓어지고 있다. 그 바탕에는 여러 일에 두루 쓰이도록 학습한 '파운데이션 모델'의 발전이 있다. 지시를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능력에 검색·계산 도구와 실행 환경이 결합하면서, 중간 결과를 확인하고 다음 행동을 이어가는 일이 가능해지고 있다. 주목할 것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서로 다른 일을 연결해 가는 AI의 능력이다. 다만 성능 시험이나 시연에서 높은 성능을 보였다고 현실의 업무까지 사람의 감독 없이 끝낼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 업무에는 빠진 정보나 서로 충돌하는 조건이 있고,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누군가 감당해야 한다. 가족여행을 준비한다고 하자. “부모님이 오래 걷지 않으면서 예산에 맞는 여행을 계획해 달라"는 부탁에는 여러 일이 담겨 있다. 관광지를 찾고 이동시간을 계산하며 숙소의 위치와 가격을 비교해야 한다. 지도상 가까운 숙소라도 가는 길에 계단이나 가파른 언덕이 있다면 부모님께는 불편할 수 있다. 가격을 낮추려고 이동 횟수를 늘려도 여행의 목적과 어긋난다. 예약 단계에서는 취소 조건을 확인하고 결제 여부도 물어야 한다. '오래 걷지 않기'를 '한 번에 15분 이내로 걷고 중간에 쉬기'처럼 구체화하면 비교 기준도 선명해진다. 하나의 부탁 안에 성격이 다른 작업과 판단이 들어 있는 셈이다. 이런 작업 배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념이 '에이전틱 라우팅'이다. 작업의 성격과 진행 상황에 따라 어떤 AI 모델이나 도구로 처리를 이어갈지 선택하는 방식이다. 최신 정보는 검색으로 확인하고 비용은 계산 도구로 따지는 식이다. 실제 업무에서는 각 결과를 연결하고, 중요한 결정은 사람에게 넘기는 절차도 필요하다. 예산 안에서 보행 조건을 충족할 숙소를 찾지 못했다면, AI가 조건을 슬쩍 바꾸기보다 예산을 늘릴지 여행지를 바꿀지 물어야 한다. 어느 한 모델이 똑똑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적절한 곳에 일을 맡기면서 처음의 목적과 조건을 유지해야 한다. 물론 모든 일에 여러 모델과 도구를 동원할 필요는 없다. 간단한 일은 정해진 절차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 작업에 맞는 복잡성을 선택하는 것도 설계의 일부다. AI를 고르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답변 가격이 싸더라도 오류를 고치느라 여러 번 다시 시키고 사람이 오래 검토해야 한다면 전체 비용은 커진다. 보고서 초안을 빨리 받았어도 출처와 수치를 다시 확인하느라 반나절을 썼다면 그 시간까지 비용에 넣어야 한다. 복잡한 과제를 풀면서 추론과 도구 사용을 반복해 이용료가 늘 수도 있다. 성능 향상이 곧바로 작업당 비용 감소를 뜻하지는 않는다. 처리 속도와 이용료뿐 아니라 원하는 수준까지 일을 끝냈는지, 재작업과 검토에 시간이 얼마나 들었는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 싼 답변과 싼 업무 완료는 같은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일을 배분하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여행자에게 편안한 일정과 서비스 제공자에게 수수료를 많이 남기는 일정은 다를 수 있다. 일을 배분하고 결과를 선택하는 과정에는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라는 가치 판단이 들어간다. 학교와 일터, 공공서비스에서도 비용 절감 때문에 특정 이용자의 서비스 품질이 낮아지지는 않는지 살펴야 한다. 예컨대 설명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짧은 자동 응답만 제공한다면, 처리 건수가 늘어도 좋은 서비스라고 하기 어렵다. '무엇을 맡길 것인가'만큼 '어떤 기준으로 맡길 것인가'가 중요하다. 개인은 원하는 결과와 지켜야 할 조건을 분명히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조직은 무엇을 성공으로 볼지 정하고, 어느 단계에서 사람의 판단을 구할지도 정해야 한다. 어디서 잘못됐으며 왜 수정했는지 기록하면 다음 업무의 기준도 고칠 수 있다. 사람의 승인을 마지막에 한 번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판단 근거를 확인할 수 있고, 검토할 시간과 수정하거나 중단할 권한이 있어야 승인이 제 역할을 한다. 완성된 결과만 보여 주며 승인 버튼을 누르게 해서는 어떤 조건이 빠졌는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용자에게도 자신에게 적용된 기준을 이해하고 잘못된 결과에 대해 재검토를 요구할 통로가 필요하다. AI는 개인과 작은 조직에도 시간과 비용 때문에 미뤘던 일을 시도할 기회를 넓혀 준다. 자료 조사와 계산, 문서 작성의 부담이 줄면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던 일도 시작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누리려면 다음번 부탁에서 세 가지를 분명히 해보자. 무엇을 이루려는가, 무엇은 양보할 수 없는가, 무엇을 확인해야 일이 끝났다고 할 수 있는가. 가족여행의 목적은 정교한 일정표를 받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부모님이 실제로 무리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AI의 성과도 우리가 바라던 현실의 변화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명절은 간소화됐는데, 왜 지갑은 가벼워질까

명절이 예전보다 간소해졌다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차례상을 차리는 가정이 줄고 가족 규모가 축소됐다. 명절 음식을 직접 장만하기보다 필요한 만큼 사서 먹는 경우도 늘었다. 유통업계가 추석을 앞두고 '소포장'을 확대하는 이유다. 그러나 명절을 간소하게 보낸다고 지출 부담까지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올해 추석 선물세트 시장을 보면 이런 변화가 더욱 뚜렷하다. 현대백화점은 올해 1++등급 한우와 특수부위를 200g 단위로 나눈 소포장 상품을 확대했다. 한우 선물세트에서 소포장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25%에서 지난해 34%까지 높아졌고, 올해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핵심은 '적게'가 반드시 '싸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소포장은 필요한 만큼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고급 상품을 소량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실제 현대백화점은 200g 단위의 1++ 한우와 함께 수백만원대 최고급 한우 선물세트도 선보였다. 신세계백화점 등 다른 백화점들도 프리미엄 식품과 희소성 높은 상품, 소포장 제품을 앞세우고 있다. 과거처럼 선물세트의 크기와 구성품을 늘리기보다 품질과 취향, 희소성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런 소비 변화가 물가 부담과 맞물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일 기준 한우 등심 100g당 소비자가격은 지난해보다 22.6% 올랐다. 안심은 19.9%, 양지는 17.7% 상승했다. 한우 사육 마릿수 감소로 공급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결국 명절 소비는 '많이 사서 풍성하게 차리는 방식'에서 '필요한 만큼 사고, 대신 좋은 것을 고르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유통업계가 달라진 소비 방식에 맞춰 소포장과 프리미엄 상품을 내놓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소비자 역시 적은 양이라도 품질 좋은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다만 '소포장'과 '프리미엄'이 가격 부담을 정당화하는 수식어가 돼서는 곤란하다. 적게 사는 것이 반드시 지출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사느냐'가 아니라 '무엇에 얼마를 지불하느냐'다. 올해 추석이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 변화다. '간소화'가 소비자의 부담을 줄인 것인지, 아니면 부담의 방식을 바꿔놓은 것인지 돌아볼 때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신율의 정치 내시경] 호르무즈 파병, 노무현의 교훈과 이재명의 숙제

최근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정국과 맞물려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가 정치권의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노무현 정권 당시의 이라크 파병 논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자 여권과 이른바 진보 진영에서는 즉각 반발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핵심 지지 기반인 진보 진영의 반발에 직면하자,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파병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2003년 4월 2일 임시국회 국정연설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굳건한 한미공조가 중요하다"며 파병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아울러 “한미관계의 갈등 요소를 (투자자들은) 더 큰 불안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라는 경제적 이유도 함께 제시했다. 한마디로 안보와 경제를 위해 미국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런 노 대통령의 당시 인식은 지금의 상황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이재명 정권 역시 '원활하지 못한' 한미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압박도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16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최근 이재명 대통령에게 미국의 이란 비핵화 노력에 한국이 동참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으나, 한국 측이 “No thanks!"라고 답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에는 한국산 천궁-II를 우크라이나에 판매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칼럼을 자신의 SNS에 공유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일련의 행동은, 한마디로 '한국은 미국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불만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인식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해야만 한미 공조를 통해 안보 불안을 완화하고, 경제적 차원의 문제 역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라크 파병 당시 노무현 정권과 현재 이재명 정권이 직면한 고민 사이에는 분명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뚜렷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노무현 정권이 파병을 결정한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었다면, 지금의 대북정책 기조는 당시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3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북한 비핵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선 비핵화'론을 사실상 폐기하고, 핵 동결을 의미하는 '우선 중단'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정 장관의 언급에 비추어 보면, 과거 노무현 정권은 북한의 비핵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 주안점을 두고 파병을 결정했던 반면, 지금은 북한의 즉각적인 비핵화보다 우선적인 핵 활동 중단을 추구하는 국면에서 파병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한데, 핵무기가 없는 우리로서는 파병을 통해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혹은 전략 핵무기의 한국 배치를 확실히 보장받는 것을 반드시 관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 국방력이 세계 5위 또는 6위 수준이라는 점을 자주 언급하지만, 이는 재래식 무기만을 기준으로 한 순위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재래식 무기에 핵무기까지 더해 국방력 순위를 다시 계산하면, 오히려 북한이 우리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진보 세력 일각에서는 미국의 '침략 전쟁'에 우리나라가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아마도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국의 전략 핵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에도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핵 방어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미국의 요구마저 들어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어떤 방식으로 실효적인 방어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평화가 이상주의만으로 구현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이미 고대 플라톤부터 나온 이야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말자는 식의 이상주의적 주장에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이 호응할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bienns@ekn.kr

[이슈&인사이트] 포용금융의 빈틈, 사라지는 은행 점포를 우체국 금융으로 메워야

정부와 금융당국은 포용금융을 핵심 정책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시중은행의 오프라인 점포 축소는 해당 기조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금융의 디지털 전환 자체는 불가피하지만, 고령자·저소득층·농어촌 주민·이주노동자처럼 대면 금융서비스 의존도가 높은 계층까지 일률적으로 비대면 채널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 금융 접근성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가계의 위기 대응력과 국민경제의 안정성을 좌우하는 사회적 기반이다. 최근 1년간 4대 시중은행의 영업지점은 51개나 줄어들었다. 점포 통폐합은 은행 입장에서 비용 절감과 디지털 전환에 부합할 수 있다. 모바일뱅킹 이용이 보편화되고 단순 입출금 업무가 줄어든 현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고령자는 인증·앱 설치·비밀번호 관리·비대면 본인확인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장애인과 저소득층은 스마트기기·통신환경의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는 언어 장벽, 체류자격 확인, 금융 이력 부족 등으로 대면 설명과 상담의 필요성이 더 크다. 특히, 대출, 채무조정, 보이스피싱 피해 대응, 정책 서민금융 신청은 단순 앱 거래와 다르다. 소득과 부채, 신용상태를 설명하고 적합한 상품을 비교·선택해야 하며, 취약계층일수록 대면 상담의 가치가 커진다. 지점 폐쇄가 금융비용을 줄이는 대신 취약계층에게 이동시간·교통비·정보탐색비용이라는 추가 비용을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금융 접근성 약화는 취약차주 가계의 부실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갑작스러운 실직, 질병, 임대료 상승, 교육비, 영세사업 손실 같은 충격이 발생했을 때, 가계가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적시에 상담받고 적정한 신용대출·정책금융·채무조정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선택지는 제한된다. 고금리 대출이나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하거나, 연체가 누적된 뒤에야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진 가계는 식료품·외식·의류·문화·교육·내구재 등 재량적 소비부터 줄인다. 취약가계의 소비 감소는 지역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매출 부진으로 이어지고, 다시 고용과 소득을 압박하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 가계부채가 높은 경제일수록 금융 접근성은 신용 공급 확대의 문제가 아니라, 부실을 예방하고 상환 가능성을 높이는 금융안전망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포용금융의 성과는 '얼마나 많은 대출을 공급했는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금융 소외지역에서 필요한 사람이 적시에 금융상담을 받았는지, 정책 서민금융과 채무조정으로 실제 연결됐는지, 대면 지원이 필요한 계층의 접근권이 유지됐는지를 함께 측정해야 한다. 금융선진국인 영국은 은행 지점 폐쇄를 완전히 금지하지는 않지만, 지역사회의 금융서비스 접근성이 크게 훼손될 경우 금융회사가 대체수단을 평가하고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대체수단으로는 무료 ATM, 우체국 네트워크 등이 활용된다. 특히, 지역 주민이나 지역단체도 접근성 평가를 요청할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은행의 영업망 조정을 단순한 민간기업의 경영 판단으로만 보지 않고, 지역사회 금융 인프라의 유지 문제로 다루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우체국 지점을 통해 현금 입출금, 잔액조회, 공과금 납부, 수표 현금화 등 일상 금융서비스를 보완하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원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은행이 점포를 폐쇄하기 전에 해당 지역의 고령 인구 비중, 대중교통 여건, 인근 대체점포까지의 이동 거리, 외국인 주민 비율, 디지털 취약성, ATM 및 우체국 접근성, 대면 대출상담 수요를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 우체국은 전국적 네트워크와 높은 지역 접근성,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를 갖춘 생활밀착형 인프라이다. 특히, 은행 점포가 사라진 군 단위 지역과 농어촌에서 우체국은 단순한 우편 서비스 기관이 아니라 지역 금융접점이 될 수 있다. 이미 정부는 2026년 7월부터 전국 20개 총괄우체국에서 은행대리업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해당 우체국에서는 4대 은행의 개인신용대출과 정책 서민금융상품인 새희망홀씨 등 총 8개 상품을 상담·신청할 수 있다. 향후 시범사업을 20개소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은행이 없는 군 지역, 고령화가 심한 읍·면, 농어촌과 도서산간 지역부터 우체국 은행대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개인신용대출뿐 아니라 새희망홀씨, 햇살론 등 정책 서민금융의 상담·신청·사후관리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다국어 안내, 통역 연계, 체류·소득 증빙 서류 안내도 제공해야 한다. 디지털 금융은 확대되어야 하지만, 디지털화가 곧 포용금융은 아니다. 4대 은행의 지속적인 지점 축소는 고령자·취약차주·농어촌 주민·외국인 노동자에게 금융 접근의 장벽을 높일 수 있으며, 이는 가계부실과 소비위축을 거쳐 지역경제와 국민경제 전반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점포 축소의 경제적 효율성과 금융 접근성의 사회적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체국 금융망을 은행대리업, 정책 서민금융, 채무조정 연계, 다국어 금융상담의 거점으로 확장한다면, 지역 금융 공백을 현실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 bienns@ekn.kr

[EE칼럼] 글로벌 에너지 투자, 청정에너지 중심으로 재편

넷제로 목표를 모든 나라가 달성하는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1.8도에 이를 전망이라는 UNEP 보고서가 발표된 가운데, 글로벌 에너지 투자 시장의 중심축이 화석연료에서 청정에너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World Energy Investment 2026」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에너지 투자는 총 3조 4천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이 가운데 청정에너지 투자는 2조 2천억 달러로 전체의 약 65%를 차지하며, 화석연료 투자(1조 2천억 달러)의 1.8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에너지 투자는 2015년 2조 7천억 달러에서 2020년 2조 2천억 달러까지 감소했으나,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과 에너지 안보 강화,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맞물리며 다시 가파른 증가세로 돌아서 2024년 3조 2천억 달러를 거쳐 2026년 사상 최대인 3조 4천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청정에너지 투자는 2015년 1조 2천억 달러에서 2020년까지 정체되다가 이후 급격히 성장해 2024년 처음으로 2조 달러를 넘어섰고, 2026년에는 2조 2천억 달러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반면 화석연료 투자는 2015년 1조 4천억 달러에서 2020년 9천억 달러까지 줄었다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일부 반등했지만, 2026년에도 1조 2천억 달러 수준에 머물러 청정에너지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이는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등 청정에너지 관련 분야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에너지 투자의 핵심 경쟁이 단순한 발전설비 확대를 넘어 전력망과 저장장치, 에너지 효율,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 확보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중이 높아질수록 변동성 전원을 안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전력망과 ESS 투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전력시장도 대세 전환의 임계점을 통과하고 있다. 2025년 신규 발전설비의 85.6%가 재생에너지로 채워졌다는 사실은, 추가 발전원의 거의 대부분이 태양광·풍력 중심으로 설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누적 발전설비 중 재생 용량 비중은 49.4%에 도달해 2026년 말에는 50%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재생발전량 점유율도 2024년 31.8%에서 2025년 33.8%로 늘었으며, 태양광은 단일 발전원 중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세로 2025년 발전량 기준 8.8%를 기록했다. Ember에 따르면 2026년 7월까지 재생 점유율은 35.7%(태양광 10.1%, 풍력 9.3%)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재생에너지 정책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2025년 6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대전환'이 국정 과제로 선정되었고, 같은 해 10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하여 관련 정책 추진 체계를 강화했다. 2026년 3월에는 재생에너지법 개정을 통해 신재생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분리하고, 이격거리 규제를 법제화하여 합리화했다. 2026년 5월에는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보급 조기 달성과 2035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30% 이상 확보를 목표로 제시했다. 2026년 8월에는 RPS(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를 폐지하고 장기 고정가격 계약시장 중심으로 전환해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 안정성을 높이기로 했으며, 기후에너지환경부의 2027년도 예산은 전년 대비 18.3%(3조 9,737억 원) 증가한 25조 7,319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했다. 하지만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로 대기업과 데이터센터 개발사업자들이 축포를 쏘아 올릴 때, 어렵게 명맥을 이어온 국내 중소·중견 재생에너지기업들은 역대 최악의 경영난으로 도산 위기에 몰려 있고, 소규모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은 그나마 있던 지원제도인 RPS 폐지로 수익성이 악화될까 걱정하고 있다. 태양광 관련 협동조합들은 4~5년이 지나도 자립 기반을 잡지 못하거나 배당조차 하지 못하는 사례가 다수이며, 한전 접속용량 부족으로 사업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정부의 야심찬 계획과 정책에도 불구하고 2026년 8월까지 신규 태양광 설치량은 2.38GW로 전년 동기(2.47GW)보다 오히려 줄었다. 중국 역시 2025년 6월 재생에너지 가격 시장화 개혁(136호 문건) 시행 이후 신규 태양광 설비가 1~7월 기준 61.3% 급감(2025 223GW, 2026년 86GW)했다. 신규 프로젝트는 경쟁입찰을 통해 가격이 결정되도록 함에 따라 수익 예측이 어려워지면서 개발업체의 투자 심리가 위축된 결과로 정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관건은 정책의 방향이 아니라 그 방향이 현장 어디까지 미치느냐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재생에너지 정책이 진짜 성과로 이어지려면, 대형 프로젝트만이 아니라 현장의 중소·중견 기업과 태양광발전협동조합 등이 자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익 기반과 계통 접속 여건부터 함께 챙기는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

□ 보임 ▲ 고윤석 전략본부장 ▲ 남미정 해외사업본부장 ▲ 최수진 홍보실장 ▲ 심규헌 경영관리처장 ▲ 이태형 해외사업기획처장 ▲ 손재익 안전총괄실장 ▲ 오권택 가스연구원장 ▲ 황규범 신성장사업처장 ▲ 김차환 생산운영처장 ▲ 주노철 인천기지본부장 ▲ 임성탁 통영기지본부장 ▲ 이동진 삼척기지본부장 ▲ 최선환 제주LNG본부장 ▲ 남석우 공급운영처장 ▲ 송학린 인천지역본부장 ▲ 김상기 경기지역본부장 ▲ 안중길 대구경북지역본부장 ▲ 이재훈 부산경남지역본부장 ▲ 신관철 감사실 기술감사부장 ▲ 최승 법무실 국내법무부장 ▲ 채익근 경영지원처 인사부장 ▲ 최혜경 상생협력처 상생기획부장 ▲ 신재욱 상생협력처 자재계약부장 ▲ 강민규 건설사업단 전남안전건설사무소장 ▲ 이과형 당진기지안전건설단 관리부장 ▲ 방상훈 생산운영처 당진기지시운전부장 ▲ 성기찬 제주LNG본부 관로시설부장 ▲ 신상민 공급운영처 공급진단부장 ▲ 강택수 서울지역본부 양주보전부장 ▲ 한동욱 인천지역본부 설비운영부장 ▲ 김태중 전북지역본부 설비보전부장 ▲ 조시균 전북지역본부 관로보전부장 ▲ 정인호 광주전남지역본부 순천지사장 ▲ 김진철 대구경북지역본부 설비운영부장 ▲ 윤성욱 대구경북지역본부 설비보전부장 ▲ 윤성식 대구경북지역본부 안동지사장 이상 36명. 2026년 9월 14일자.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기자의 눈] 기업에만 ‘초과이익’ 배분? 고위공직자 부동산 차익은?

정부가 기업의 초과이익을 사회적으로 나누자는 화두를 던졌고 이로 인한 기업들의 노사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인공지능(AI)·반도체 호황으로 일부 대기업에 막대한 이익이 집중되는 만큼 노동자와 협력업체, 지역사회가 성과를 함께 누릴 방안을 찾자는 취지다.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다만 정부가 기업에 '초과이익'의 사회적 배분을 요구하려면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그 원칙은 기업에만 적용되는가.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부인 김혜경 여사와 공동 보유해온 분당 아파트를 약 29억원에 매각했다. 1998년 약 3억6000만원에 매입한 주택으로, 단순 매입·매각가격만 비교하면 25억원가량 차이가 난다. 물론 이를 부당한 이익이라고 할 이유는 없다. 20년 넘게 보유하고 실제 거주한 집의 가격이 오른 것이고, 매각에 따른 세금도 법에 따라 내면 된다. 그렇다면 기업은 다른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오랜 연구개발과 천문학적인 설비투자를 거쳐 반도체 호황기에 큰 이익을 낸다. 법인세를 내고 남은 이익을 다시 공장과 기술에 투자한다. 그런데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익이 지나치게 많다는 이유로 '초과이익'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회적 배분을 논의하자고 한다. 최근 장관 후보자들을 둘러싼 논란도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과천 아파트를 17년간 보유하면서 실제 거주 기간이 짧았다는 '비거주 1주택' 논란에 휩싸였다. 이 후보자는 “거주 중심 주택시장 정착은 확고한 원칙"이라면서 현재 해당 아파트가 재건축으로 멸실 중이며 자세한 경위는 청문회에서 밝히겠다고 했다. 홍지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해 서울 아파트를 10억500만원에 사면서 주택담보대출 3억6700만원과 장모에게 빌린 1억7000만원을 활용했다. 해당 평형의 최근 거래가격은 14억원대로 올랐다. 홍 후보자는 현 정부 출범 전 실거주 목적으로 매입했고 실제 거주하고 있다며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 역시 위법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경제활동이다. 개인이 주택을 사고 가격이 올라 자산이 늘어나는 것이 잘못이 아니듯, 기업이 투자하고 경쟁해 많은 돈을 버는 것 역시 그 자체로 문제일 수 없다. 물론 기업 영업이익과 개인의 부동산 차익은 경제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정부가 기존 조세제도를 넘어 '많이 얻은 이익은 사회적으로 더 나눠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업의 이익은 노동자와 협력업체, 사회 인프라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배분론의 논거다. 그렇다면 부동산 가격 상승 역시 개인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도로와 지하철, 학교 등 공공 인프라와 정부 정책, 시중 유동성의 영향을 함께 받는다. 더구나 반도체 기업의 이익은 미래 경쟁력의 재원이기도 하다. 오늘 번 돈으로 연구개발과 신규 팹에 투자하지 않으면 다음 반도체 사이클에서 뒤처질 수 있다. 무엇보다 '초과'의 기준부터 불분명하다. 어느 정도까지 정상 이익이고 어디서부터 초과인가. 반도체 불황기에 기업이 수조원대 적자를 내면 그 손실도 사회가 나눠 부담할 것인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업의 정상적인 이익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불공정한 납품단가와 기술 탈취를 바로잡고 원·하청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조세와 복지제도를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면 된다. 대통령도, 고위공직자도 시장에서 형성된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기업 역시 시장에서 경쟁해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초과이익의 사회적 활용을 논의할 수는 있다. 다만 기업에만 '초과'라는 이름표를 붙인다면 정책의 설득력은 떨어진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벌었느냐가 아니라, 같은 원칙을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느냐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이슈&인사이트] 소상공인 AI, ‘몇 명이 쓴다’보다 ‘어떻게 쓰는가’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소상공인 500곳에 물었다. “지금 디지털·AI 기술을 쓰고 있습니까." 열에 여덟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무엇을 쓰고 있는지 뜯어보면 사정이 다르다. 응답자의 83.3%는 키오스크나 SNS 홍보처럼 이미 익숙해진 도구를 쓰는 입문·기초 단계에 머물렀다. AI가 재고를 알아서 채워 주는 자동발주는 3.3%, AI가 가격을 최적화해 주는 경우는 2.2%에 그쳤다. 활용률 80%는 숫자이고, 실제 역량은 그 숫자가 가린 그림자에 가깝다. 이 착시는 낯설지 않다. 중기중앙회가 별도로 실시한 키오스크 실태조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드러났다. 키오스크를 도입한 소상공인의 90% 이상이 경영에 도움이 됐다고 답했지만, 정작 정부 지원을 활용한 경우는 소수였다. 지원제도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도구는 보급됐지만, 그 도구까지 닿는 길은 여전히 좁았던 셈이다. 도입과 활용은 처음부터 다른 과제였다. 올여름 정부는 이 문제를 풀겠다며 다시 움직이고 있다. 금융거래 이력이 없어도 매출·업종·상권 정보로 성장성을 평가해 주는 AI 신용평가체계(SCB)가 8월 말부터 16개 은행에서 순차 시범 도입됐고, 정책과 경영, 상권 정보를 대화로 안내하는 AI 도우미 서비스가 9월 문을 연다. 방향은 맞다. 다만 이번에도 '몇 명이 접속했는가'로 성과를 잰다면, 3년 뒤 우리는 또 다른 활용률 80%짜리 착시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 더 눈에 띄는 숫자가 있다. 같은 조사에서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사업에 참여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곳은 3.2%뿐이었다. 참여하지 않은 이들의 76.2%는 그런 사업이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답했다. 반면 참여해 본 이들의 87.5%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써 본 사람은 만족하는데, 대부분은 써 볼 기회 자체를 얻지 못했다. 도구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 도구까지 닿는 길이 좁아서 생기는 격차다. 정작 소상공인들에게 필요한 것을 물으면 대답은 다르다. 가장 많이 나온 답은 운영비 지원(59.0%)이었고, 맞춤형 교육을 꼽은 비율은 16.6%에 그쳤다. 당장의 현금이 급한 사정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 응답을 그대로 정책에 옮기면, 우리는 다시 돈을 쥐어 주고 활용은 각자의 몫으로 남기는 익숙한 길로 돌아가게 된다. 소상공인이 원하는 것과 진짜 필요한 것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정책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업종별로 들여다보면 격차는 더 뚜렷하다. 교육·여가업의 활용률은 98%에 달했지만 소매업은 46%로 최하위였다. 활용 분야도 회계·문서 작성 같은 경영지원(54.5%)에 몰려 있고, 정작 매출과 직결되는 판매·유통(22.3%)이나 마케팅·홍보(21.3%)는 뒤로 밀려 있었다. 소상공인이 AI를 안 쓰는 게 아니라, 매출에 힘이 되는 곳까지는 아직 손이 닿지 않았다는 뜻이다. 최근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본다. 결과물을 AI에게 그대로 받아 쓴 학습자는 과제는 빨리 끝내지만 정작 그 내용을 설명하지 못한다. 반대로 AI의 답을 검토하고 고쳐 보고 반박해 본 학습자는 시간이 더 걸려도 실력으로 남는다. 도구를 얼마나 자주 켰는가가 아니라, 그 결과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었는가가 진짜 실력을 가른다. 소상공인의 AI 활용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첫째, 성과 지표를 활용률에서 활용 수준으로 바꿔야 한다. 몇 명이 로그인했는지가 아니라, 몇 명이 재고관리나 가격 결정처럼 실제 경영 판단에 AI를 쓰게 됐는지를 봐야 한다. 둘째, 지원사업의 존재를 알리는 일 자체를 별도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열 중 여덟이 모르는 사업은 없는 사업과 같다. 셋째, 맞춤형 교육을 예산의 뒷전이 아니라 설계의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 사장님이 원하는 것이 당장의 현금이라 해도, 정책이 함께 챙겨야 할 것은 그 현금을 내년에도 벌어들일 수 있는 역량이다. AI 신용평가와 AI 도우미가 문을 여는 지금이 이 질문을 던지기 좋은 시점이다. 80%라는 숫자에 안심하기 전에, 그 뒤에 숨은 83%의 '입문 단계'를 먼저 봐야 한다. 도구를 나눠 준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지금 정책이 답해야 할 진짜 질문이다. bienns@ekn.kr

[EE칼럼] 목소리를 내는 유럽 기업, 침묵하는 한국 기업

지난달 아우디, BMW, ZF,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쉐,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들은 독일 연립정부에 구조 개혁의 즉각 시행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 바이에른 금속·전기 산업 노조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노조가 동참했다는 점이다. 노사가 한목소리로 정부를 압박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해 메르츠 정권 출범 이후 지속적인 경제침체 극복을 위한 구조개혁을 발표했고 독일기업들은 2028년까지 6,310억 유로를 투자하는 'made for germany' 이니셔티브를 출범하며 화답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기업들은 메르츠 정부에 구조개혁의 빠른 실행이 아니면 독일을 떠날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해야할까. 2021년 9월 북해의 풍력이 멈추면서 시작된 유럽발 에너지 위기는 천연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부족으로 모든 것의 비용을 빠르게 올리면서 기업을 압박했다. 그해 12월 철강, 비료, 시멘트 등 11개 유럽 에너지 집약기업 협회는 5배나 급등한 에너지 비용과 3배 이상 오른 탄소 가격으로 경쟁력과 수익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공장 폐쇄와 기업의 해외 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신속한 대처를 요구했다. 그러나 유럽 정치권은 뚜렷한 대책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줄이지 못한 채 2022년 러우 전쟁으로 인한 최악의 에너지 위기로 이어졌다. MWh당 평균 20~40유로 수준이던 도매전력가격은 최대 500배가 넘는 1만 1천 유로를 돌파했고 독일 경제성장률은 0%를 기록했다. 2024년 유럽기업들은 '앤트워프 선언'을 통해 높은 에너지 비용 해결과 탈산업화를 통한 탈탄소화는 유럽에 솔루션이 될 수 없다며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다시 한번 요구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치권은 자신들이 만든 기후의제를 포기하지 못하며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자 유권자들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우파와 극우 정당에 표를 몰아주며 기존 정당을 심판했다. 2026년 이란 전쟁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6,350억 유로 매출과 120만 명을 고용하던 유럽 석유화학 기업은 2022년 이후 9%의 생산시설이 폐쇄되었고 2만 명의 직접고용이 사라졌으며, 바스프는 에너지비용이 저렴한 중국 잔장 등으로 비즈니스 거점을 옮겼다. 1,300만 명을 고용하는 유럽 자동차산업 생산은 20%나 감소했고 초기 3천 명이던 폭스바겐 예상 구조조정 인력은 최대 15만 명으로 늘어났다. 니더작센 주지사는 일자리 보존을 위해 중국 자동차 조립이 필요하다 주장했으며, 스텔란티스 렌 공장은 중국 둥펑 자동차를 조립할 예정이다. 2008년 이후 10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진 독일 철강산업도 높은 에너지비용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발루렉 뒤셀도르프 공장은 브라질로 이전했다. 유럽의 기간산업이 뿌리부터 흔들리며 일자리가 사라지고 사회불안으로 이어지며 정치적 양극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은 뒤늦게 반응했다. 2035년 전기차 100% 목표를 포기했으며, 기업공급망 실사지침과 가장 강력한 기후의제 수단인 배출권 거래제(ETS)를 약화시켰다. 폴리티코는 그린딜에서 벗어나 산업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이후 유럽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했다. 반면 한국기업은 조용하다. 유럽기업처럼 앤트워프 선언같은 산업경쟁력 향상을 위한 성명 발표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은 기후의제와 글로벌 에너지위기에 아무 데미지가 없는가. 이미 중국의 2배, 미국의 1.5배나 높은 전기요금을 내고 있고 철강산업은 높은 전기요금으로 공장 가동중단과 폐쇄가 이어지고 있으며, 석유화학은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에너지전환이 정쟁의 도구가 되면서 기업은 침묵과 조용한 탈출이 더 나은 선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은 제조업 인프라가 에너지 부족과 위기 탈출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있다. 현 정부도 에너지정책에 실용주의를 견지하는 분위기다. 한 번 떠나간 공장과 일자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유럽은 이미 늦었지만, 한국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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