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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사상 최고치 코스피…외국인·기관이 끌고 개인은 빠졌다

코스피가 사상 처음 3400선을 넘어섰다. 지수는 4거래일 연속 최고치를 경신하며 '전인미답'의 영역에 들어섰다. 이번 랠리의 힘은 외국인과 기관이었다. 개인은 오름세 속에서 매도에 나섰다. 9월 들어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6조6331억원을 순매수하며 지수 상승을 주도했다. 기관도 9230억원가량을 순매수했다. 반대로 개인은 같은 기간 8조3650억원을 순매도했다. 사상 최고치 랠리가 외국인과 기관의 매수세에 의해 끌어올려졌다는 사실이 수치로 확인된다. 투심을 자극한 정책 변수도 있었다. 지난 8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을 현행 50억원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건의했고, 이재명 대통령이 이에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나흘 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석 민생안정대책 당정협의에서 대주주 기준 50억원 유지를 공식화했다. 세제 불확실성이 걷히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고, 8일부터 6거래일 동안 코스피는 6.31% 올랐다. 업계는 이번 상승을 한국 증시 밸류에이션 회복으로 해석한다. MSCI 기준 코스피의 PBR은 지난해 말 0.87배에서 최근 1.2배로 뛰었다. 10년 평균(1.04배)을 웃돌았지만, 미국(3.9배), 선진국(2.8배), 신흥시장(1.7배)에 비하면 여전히 낮다. 추가 상승 여력도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외국인 의존형 상승'은 언제든 변동성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상반기 상장사 영업이익은 역성장을 기록했다. 대외 불확실성과 정책 부담까지 고려하면, 이번 랠리가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코스피가 외국인 매수세에 좌우되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주주 양도세 완화 같은 정책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외국인 자금이 먼저 반응하고, 개인은 뒤따라 움직이는 패턴이 반복돼 왔다. 한국 증시가 스스로의 펀더멘털이 아니라 외부 자금 유입에 따라 등락하는 '외국인 의존형 시장'이라는 현실은 제도와 구조의 한계를 드러낸다. 진정한 체질 개선 없이는 이번 3400 고지도 또 한 번의 '외국인 장세'로만 기록될 수 있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규제 개혁의 성공 열쇠는 ‘넛지’

역대 대통령 중에 '규제 개혁'을 이야기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 “규제는 없애는 게 원칙이고 존치하는 것은 예외"(김대중 전 대통령 1998년 3월 규제개혁위 출범식) “불합리한 규제는 없애고 시장 감시와 견제 기능은 강화"(노무현 전 대통령 2004년 4월 규제개혁위 회의) “전봇대를 뽑겠다는 심정으로 규제 없앨 것"(이명박 전 대통령 2008년 2월 대통령직인수위) “규제는 손톱 밑 가시, 암 덩어리 규제"(박근혜 전 대통령 2014년 3월, 규제개혁 장관회의) “규제 혁신은 선택이 아닌 생존 문제"(문재인 전 대통령 2019년 2월 규제 샌드박스 현장 방문 중에) “혁신 가로막는 규제는 기업의 모래주머니"(윤석열 전 대통령 2022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재명 대통령도 “거미줄처럼 얽힌 규제를 확 걷어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5일 열린 '제1차 핵심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다. 눈길을 끄는 발언도 나왔다. 산업 재해에 대해 기업인 처벌보다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것과 경영 판단에 배임죄 적용은 과도하다는 대목이다. 하지만 기존 규제를 바꾸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모든 규제는 이해당사자가 있고 이들의 생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규제가 사라져 대다수 국민이 혜택을 보더라도 불이익을 보는 쪽이 있게 마련이다. 규제 개혁에 저항하는 이들을 '기득권자'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사회적 약자 중에도 규제 개혁으로 타격을 입는 이들이 있다. 오랜 기간 굳어진 '관행'에 순종하는 사람들의 성향과 현장 분위기도 걸림돌이다. 많은 이들이 불합리한 규제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바뀌거나 사라졌을 때 발생할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공무원 복지부동'이란 말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이 대통령 역시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이날 회의에서도 “복잡한 이해관계와 입장 차이로 규제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잘못하면 회의 몇 번 하고 끝나버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어느 정부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한 이 난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중국 춘추시대 5대 패자 중 한명인 초나라 장왕의 참모 손숙오 일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초나라 수레는 문제가 많았다. 너무 낮아 말이 끌기 어려웠다. 이는 기동성을 떨어뜨리는 치명적 약점이었다. 이에 초장왕은 수레바퀴를 더 크게 만드는 규제를 시행하도록 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게 불 보듯 뻔했다. 수레를 보유한 권문세족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손숙오는 고민 끝에 바퀴 교체를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수레가 높아지는 개혁안을 착안했다. 성문과 관청 문지방 턱을 높인 것이다. 그 결과 작은 바퀴를 단 기존 수레로는 문턱을 넘을 수 없게 됐다. 관청을 드나들기 위해선 큰 바퀴로 교체해야만 했다. 이런 식으로 손숙오는 직접 규제하지 않고 왕이 명한 정책 목표를 달성했다. 이는 전형적인 넛지(Nudge)에 해당한다. 넛지는 옆구리를 슬쩍 찔러 특정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말한다. 넛지 이론 주창자인 미국 시카고대 리처드 세일러 교수가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으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는 대표 저서인 '넛지'에서 몇 가지 성공 사례를 소개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의 남자 화장실 소변기 중앙에 파리 그림을 그려 넣은 게 대표적이다. 남성들이 소변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파리를 조준하면서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 양이 80% 줄었다. 화장실은 청결해졌고 청소비용도 절감됐다. 장기기증 서약을 늘리기 위해 운전면허증 갱신 때 '장기기증에 동의함'을 기본 값으로 설정한 디폴트 옵션, 학교와 회사 구내식당에서 건강에 좋은 샐러드나 과일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하는 아이디어, 전력 회사가 각 가정에 보내는 고지서에 해당 가구의 전기 사용량과 함께 이웃의 평균 사용량을 함께 표시한 것 등도 넛지를 활용한 정책이다. “만약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만들고 싶다면 그들에게 더 쉬운 길을 만들어줘라." “선한 의도를 가진 정책이라도 그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번거롭다면 사람들을 돕는 게 아니라 방해하는 '슬러지'에 불과하다." '넛지'에 나온 대목인데 이재명 대통령이 역대 정부와 달리 규제 개혁에 성공하려면 꼭 새겨들어야 할 명언들이다. 장박원 기자 jangbak@ekn.kr

[EE칼럼] 중동의 구조 변화와 우리 에너지 안보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러 에너지“이슈'들의 시발점인 것 같다. 러시아산 석유/가스 등 에너지 구매제한을 포함한 시장 왜곡을 심화하였기 때문이다. 유럽은 미국 석유/가스 구매확대로 수급 균형을 꾀하였다. 여기다 미국과 원전 개발 등으로 대립 중인 이란은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보인 중국- 북한-러시아 반미(反美)연대의 새로운 한 축으로 등장하는 것 같다. 이란-러시아- 중국 간의 가스관(시베리아의 힘) 등 가스 연대가 새로운 연대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원유시장이 에너지 여건을 반영하는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미국 서부 택사스 중(中)질유(WTI: West Texas Intermediate) 최근 가격은 62달러 대(현지 9월 8일 기준)로 1년전 69달러 대에서 10%쯤 하락한 것이다. 원유시장의 심한 가변성을 고려하면 비교적 안정적인 셈이다. 지난 2년여 공급과잉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신중한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마저 중국 등 선발 개도국의 수요둔화와 러시아를 포함한 주요 산유국(OPEC+)들의 증산, 미국 등 비(非)OPEC 산유국 증산 가능성 등으로 공급과잉이 2026년 1/4분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골드만삭스사는 내년도 유가를 55달러 이하로 예측하였다. 그러나 좀 더 긴 시각에서는 강세 전환을 예상하는 의견도 많다. 이들은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된 소비자 유가에 대한 국가의 하향 전략(=시장 왜곡)에 주목하고 있다. 시장경제 체재 아래 시장 왜곡에 따라 발생하는 중산층 이하의 제한된 부(富) 축적은 구매력증가 한계로 연계된다. 특히 가격 탄력성이 큰 석유 다소비 제품군의 판매 부진으로 쉽게 연계된다. 통상적으로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임기연장을 위해 이자율 높이기 등을 통해 유가와 직접 연계되는 식료품 가격 인하 유도전략을 구사한다. 특히 미국이나 서구 등 선진 경제에서 고율의 석유제품세금 부과는 세계원유가 하락을 유도한다는 분석 결과가 많다. 저소득층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 70년대의 석유파동이나 80년대 금융위기보다도 심하다는 의견이 속출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근본적 변혁을 의미하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우려된다는 견해도 나온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최근 들어 2차 대전 이후 세계질서의 근간인 자유 무역 시스템과 국제 분업체계를 훼손하는 정책들을 무작정 추진하고 있다. 무차별적인 관세전쟁이 대표적이다. 에너지 시장의 투명성도 훼손하고 예측 가능성마저 크게 불확실서을 높히고 있다. 그동안 트럼프 정부는 철강·알루미늄, 자동차 등에 대한 각 25%의 품목별 관세와 보편 관세 성격의 10% 기본관세를 도입했다. 더욱이 미국 관점과 이익 차원에서 관세 부과조건을 자의적으로 변동시키고 있다. 시장경제 기본논리 저해하는 지독한 국수주의 행태이다. 세계 최강국이자 자유민주주의 리더로서 미국이 맡아온 국제사회의 공공재 제공자 역할이 당연히 퇴색되고 있다. 이런 상태가 더 심회되면 모든 개별 국가들과 EU 등 지역공동체는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할 것 같다. 이를 단적으로 'From Cold War to Hot Peace( 냉전에서 격렬한 내홍 속의 평화로)'라고도 한다. 세계 공영보다 지역별, 국가별로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문명 충돌마저 우려된다. 천안문 집회에서 '시진핑' 중국주석의 '평화와 전쟁 중 선택'이라는 연설 내용과도 상통한다. 에너지-자원 수입의존도가 세계 최상위권인 우리는 걱정이 많다. 에너지의 95% 이상과 80%가 넘는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안보 협력뿐 아니라 무역·경제 건전성 유지까지 걱정이다. 중국, 러시아와 연계를 강화하는 북한과의 관계설정도 새로운 고민이다. 물가상승과 경기침체의 전제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가장 걱정된다. 향후 서방의 러시아 제재는 직접 군사개입보다 금융과 국제교역부문을 중심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 혹여 다가올 신(新)냉전이 걱정이다. 그레서 향후 석유 등 자원가격 예측은 불가능한 지경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는 벌써 2022년 중반에 세계는 1973년 석유파동 이래 최대 자원 파동을 겪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당연히 경제 약국들의 폐해가 상대적으로 클 것이다. 에너지-자원시장 측면에서는 우리나라는 가장 약한 수준이다. 이에 우리가 원유수입의 60% 이상을 의존하는 중동지역 지정학(地政學; Geoscience) 변화를 면밀하게 주시할 필요가 더욱 커진다. 과거 우리 원유공급의 80% 넘게 담당해온 중동은 미국산 원유수입 증대로 그 비율이 낮아졌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유럽에 대한 미국의 LNG 공급 확대 등으로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알라스카 가스전에 대한 우리 투자 압력의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든 돈만 주면 얼마든지 외국 기름과 가스를 사 올 수 있다는 오랜 관념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가장 먼저 닥칠 세계적 공급 장애 대상이 중동 석유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 행복을 위한 최상의 에너지전략은 미리 대비하되 탄력적이라야 한다. 우리 여건을 충분히 반영하는 지정학적 심층분석 능력이 필요하다. 최기련

[기자의 눈] AI시대, 활용 능력이 경쟁력이다

최근 주요 기업들의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쏟아지는 발표 내용을 들어보면 비슷하다. 'AI로 업무 혁신', 'AI로 고객 만족도 제고' 등이다. 그러나 직접 현장에서 들은 사례들은 예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지난달 열린 LG유플러스 기자간담회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AI는 1조 개에 달하는 고객 데이터를 단 6시간 만에 분석했다. 숙련된 전문가가 7만 시간, 무려 8년 이상 걸릴 일을 하루도 안 걸려 끝내버린 것이다. '이쯤 되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최근 열린 삼성SDS의 '리얼 서밋 2025'에서는 더 직접적인 위기감을 느꼈다. AI 통역·회의록 자동생성 등 기능이 소개되자 곧 사라질 직업군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수년간 언어 능력을 갈고닦은 동시통역사가 이제는 10개국 이상의 언어를 한 번에 소화하는 AI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인과 이 얘기를 나눴을 때 돌아온 대답은 “기우(杞憂)"였다. 결국 AI를 만든 것도 인간이니, 인간 스스로 자리를 위협할 만큼 발전시키지 않을 것이란 논리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AI는 이미 사람의 영역을 넘보고 있었다. 전문가들 역시 “AI는 거품이 아니라 지속 발전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 'AI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언제 여기까지 올까'를 묻는 게 더 현실적인 질문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AI를 두려워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단순한 도구가 아닌 경쟁의 룰을 바꿀 무기가 됐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AI를 자신의 일에 맞게 접목하고 최적화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삼성SDS 행사에서 강연자로 나선 프로바둑 기사 출신의 이세돌 울산과학기술원(UNIST) 특임교수의 말은 이런 흐름을 잘 대변해 준다. 그는 “AI 시대의 경쟁력은 활용 능력에서 갈린다"고 강조했다. 바둑계도 AI 프로그램 보급으로 평준화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AI를 이해하고 잘 다룬 이들이 더 큰 성과를 거뒀다는 설명이었다. AI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중요한 건 'AI가 인간을 대체할까'가 아니라 '누가 AI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는가'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다. AI 활용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일자리 위협을 기회로 바꿀 수 있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김병헌의 체인지] 역사의 기시감과 이재명 대통령

1980년 가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발 뉴스는 언론을 점령했다. 국보위는 당시 최규하 대통령 하에서 신군부세력이 정국을 장악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매일같이 국보위의 '새 법률 공포' 속보가 쏟아졌고, 불과 6개월 동안 189건의 법률이 만들어졌다. 법은 권력자의 도구였고, 재판은 각본 있는 연극이었으며, 야당은 허깨비에 불과했다. 국민은 숨죽였다. 그 시절을 살았던 이들은 지금도 황당한 그때의 공기를 기억한다. 45년이 흘렀다. 사람들 사이에서 묘한 기시감이 올라온다. 특히 당시를 겪은 국민들에게는 어디서 본 장면 비슷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최근 행보가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기 때문이다. 노동 편향 입법, 특별재판부 추진, 야당 배제 전략,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움직임 등…. 당시 국보위가 기업만 바라봤다면 지금 민주당은 노조만 바라본다. 방향과 본질은 다를지 몰라도 행태는 얼핏 비슷해보인다. 힘이 원하는 쪽 손만 들어주는 편파 입법. 국보위 시절 판사들은 이미 정해진 결론을 읽고 황급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민주당이 말하는 특별재판부는 구성이 된다면 그 재판의 복사판과 유사해질 것이다. 원하는 결론을 내기 위해 판사까지 직접 짜겠다는 발상은 상식적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야당 배제는 더 노골적이다. 국보위가 반대 세력을 몰아냈듯,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내란 세력'으로 낙인찍는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내란 종식"을 외치며 정치적 몰이를 하는 장면은 80년대 국보위의 언어와 크게 다르지 않아보인다. 현명한 국민들은 다 안다. 잘못된 계엄 선포사태가 빌미였지만 진짜 내란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정치적 내란 상태를 인위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유지하겠다는 정치적 전략의 색채가 짙다. 당시와 다른점은 민주당의 폭주(?)와 달리 이재명 대통령의 언어는 결이 다른다는 대목이다. 정청래 대표가 '내란 척결'을 외치면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 통합'과 '절차적 민주주의'를 말한다. 이 모습도 보기에 따라 1980년의 최규하 당시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게 한다. 최규하 당시 대통령은 명목상이지만 최고 지도자였다. 그래도 국민은 그에게 최소한의 합리성을 기대했다. 전두환이라는 실세는 따로 있었고 역사의 큰 물줄기는 그를 삼켜버렸다. 이재명 대통령은 물론 그와는 확연히 다르다.민주적 절차에 따른 '진짜 대통령'이다. 하지만 최근 겉모습은 적지 않게 닮아 간다. 민주당의 폭주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지만 전적으로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항상 민주주의의 형식을 말하지만, 그 형식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기대를 걸었던 지난 8일 여야 대표와의 회담 이후 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민주당의 폭주를 완충하는 언어만을 제공할 뿐, 근본적으로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규하 당시 대통령과 닮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민주당이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국민은 '야당 없는 정치'의 위험을 체감할 것이다. 보수층은 물론이고 중도층과 청년층도 국보위의 기억을 떠올릴 가능성은 커진다. 그러면 내년 지방선거는 단순한 지역 권력 교체가 아니라 '선거혁명'으로 기록될 공산도 없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의 '내란 프레임'은 역풍이 될 수 있다. 정치적 내란 상태를 선거까지 끌고 가려는 전략은 결국 국민의 심판을 부르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45년전과 무대만 다를 뿐, 주연은 역시 국민이다. 역사는 늘 같은 교훈을 남겼다. 권력은 취하면 무너진다. 국보위가 그랬듯, 권력을 독점한 세력은 이유가 정당해도 국민의 제동에 걸린다. 민주당이 아무리 입법을 밀어붙이고 특별재판부를 주장하고 각종 개혁과 내란 종식을 외쳐도 한계가 있다. 국민은 기시감을 기억한다. 그 기억을 투표장에 가져갈수 있다. 이 대통령의 입장에선 최 전 대통령을 닮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 심기는 몹시 불편할 것이다. 민주정 체제에서의 엇박자는 질서 안의 '주도권 싸움'이라면, 전두환-최규하의 경우는 '권력 찬탈'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폭주의 가운데 있으면서 폭주를 끝내 제어하거나 책임지지 못한다면...이 대통령도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완충 장치로 존재하다가 퇴장할 수도 있다는 가설이 성립한다 . 1980년대의 불행한 상황의 끝이 민주화 혁명이었다면 2020년대 중반의 민주당 행태는 민주주의 균형 보정을 위한 '선거혁명'으로 비화될 수 있다. 새정부 출범이 고작 100일이 막 지난 시점이다. '협치' '경제' '통합'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EE칼럼]조직과 사람, 계획과 실행, 무엇이 중요할까?

새 정부에서 기후와 에너지를 총괄하게 될 새로운 정부조직을 두고 우려의 말이 많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후와 에너지를 한데 묶어서 효과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기후에너지부를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규제 중심의 환경부와 산업진흥 중심의 에너지가 같은 울타리에 넣다 보니 서로 발목을 잡아 실효성 있는 정책추진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많은 것 같다. 세계적인 추세인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의 시작은 화석연료의 고갈이 아니라 기후변화였다. 중요한 핵심은 기후변화를 고려한 에너지 전환 정책이 뒷걸음질 않고 효율적으로 또한 장기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에너지정책을 연계한 기후 에너지정책의 컨트롤 타워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이다. 에너지원의 9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고 AI 시대로 접어들어 폭발적인 전력수요를 감당하면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획기적인 탄소배출 감축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기에 더하여 국가 산업 경쟁력까지 고려해야 하니 국가의 기후 에너지문제는 복잡할 수 밖에 없고 해결책 또한 분야별로 사람별로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정부조직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 마다 바뀌게 마련이다.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그냥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라 이해하고 싶다. 분위기 쇄신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문패만 바꿔달아서 집안이 잘 돌아가면 백번이고 문패를 갈아치우겠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정책 수립과 효과적인 업무 추진이 가능한가에 있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잡으면 되는 것이다. 조직의 시스템과 이를 운영하는 사람 중에 무엇이 중요할까? 계획 수립과 실행 중 무엇이 중요할까? 같은 시스템에서도 누가 어떤 철학을 갖고 일을 추진하느냐에 따라 일의 성과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과거에 일어난 국정농단도 따지고 보면 시스템의 부재라기보다는 있는 시스템을 무시하고 국가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한 무책임한 사람들의 국정 운영에서 기인한 것 아닌가. 올바른 시스템을 갖추는 것과 이를 제대로 운영하는 사람 간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성공적으로 일이 완수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부서별 정책 조율은 국무총리와 대통령의 역할 이기 때문에 관련된 모든 조직을 반드시 한 부서내에 둘 필요는 없다. 단지 걱정해야 될 것은,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분야의 일이 혹시나 정부 부서 담당 업무에서 빠져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국가와 개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 에너지, 자원, 환경 문제는 복잡하고 서로 관련되어 있어 개인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가장 큰 특징은 문제가 눈앞에 다가오기 전까지는 문제인식이 어렵고 문제가 발생되었을 땐 이미 늦었거나 해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투자의 시급성과 효율성에서 상대적으로 뒤지는 것으로 평가 받아 정부 정책 우선순위에서 항상 뒤처지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리더의 관심이 없으면 국가 시스템에 의해서는 어느 정부도 이 분야 정책을 제대로 꾸준히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한복판에 기후와 에너지자원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 조직이 어떻게 되든 국가 차원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고려한 탄소중립 정책과 국민경제를 고려한 에너지 전환 정책이 조화롭게 추진되길 바랄 뿐이다. 일관성 있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최소한의 시스템과 유능한 사람 간의 실질적 융합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신현돈

[기자의 눈] 재생에너지 1~2년만에 늘리려면 결국, 민간보다는 공공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당장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데 가장 신속하게 공급할 방법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라며 “1∼2년이면 되는 태양광과 풍력을 대대적으로 건설해야 한다"고 밝혔다. 발언의 타당성 논란과는 별개로,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늘리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재생에너지 전력가격을 무제한으로 풀겠다고 말한 건 아니다. 결국, 재생에너지 전력가격을 억제하면서도, 단기간에 확대하려면 공공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공 주도로 재생에너지를 늘리려는 징조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 이후 한국전력 산하 발전공기업의 통폐합과 재생에너지 전담 기구 신설이 검토될 전망이다. 전담 기구가 입지 개발·계통 확보·인허가 단축·주민 수용성 제고를 전담하고, 통합된 발전공기업이 설비를 빠르게 설치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올해 풍력 고정가격계약에서는 공공 해상풍력 4건(총 0.7GW)이 모두 낙찰됐다. 반면 민간 해상풍력은 전부 탈락했다. 태양광 고정가격계약은 모집물량 1GW 중 4.6%만 낙찰되며 대부분 미달했다. 이 공백은 공공이 메울 가능성이 크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재생에너지 전력가격을 예상보다 높게 책정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정부의 재생에너지 민간사업자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엄격하게 비칠 수 있다. 환경부는 환경규제 못지않게 기획재정부 눈치를 보며 물가 안정에도 신경을 써 왔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기후위기 대응만을 앞세우지는 않는다. 체감상 산업통상자원부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정도다. 예를 들어 환경부는 전기차 보조금을 지난 2021년 700만원에서 올해 300만원까지 줄여왔다. 공공 전기차 충전요금은 민간 사업자들이 수익성 악화를 항변해도 동결 기조를 유지 중이다. 물 요금은 투자보수비용도 못 건지는 수준인데 9년째 동결이다. 생활폐기물 처리는 소각장이 더 엄격한 환경 규제를 받음에도, 처리비용이 저렴한 시멘트 소성로 의존을 염두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감안하면, 환경부가 재생에너지를 맡더라도 산업통상자원부와 비교해 민간사업자에게 높은 전력가격을 제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전력가격 억제 기조를 유지한 채로 재생에너지를 늘리려면, 사업성에 덜 민감한 공공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 국산 설비를 더 써야 한다는 명분, 지역균형 발전 차원에서 수익을 지역주민에게 공유하는 '햇빛·바람 연금' 구상까지 고려하면, 말을 잘 안 듣는 민간보다 공공이 더 맞는 그릇일 수 있다. 다만, 공공 역할 확대는 공기업 비대화와 한전·발전공기업의 재무 부담 심화라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민간사업자는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다. 공공과 비슷한 조건에서 수익구조를 재설계하든지, 정부에 시장 논리 존중과 민간 참여 위축 완화를 요구하든지로 말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이슈&인사이트] 위기 속 드러난 비자 제도의 허점, 전화위복 삼아야

미국에서 구금됐다가 풀려난 한국인 근로자 등을 태운 대한항공 전세기가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근로자들은 체포·구금된 지 8일 만에 고국 땅을 밟게 됐다. 미 이민당국은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불법 체류자 단속 작전을 벌여 475명을 체포했고, 이 중 한국인이 300을 넘었다. 게다가 이민세관단속국(ICE) 홈페이지에 단속 현장 사진과 영상을 공개까지 했다. 우리 근로자들이 쇠사슬에 묶여 구금당한 사태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다행이 한미 양국간 긴급 협의를 통해 구금된 근로자들이 귀국했지만, 이번 사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첫째, 단속 요원들이 전쟁터(war zone) 들이닥치듯 공장 건설현장에 진입하였는데, 동맹국가 투자기업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전격적, 대규모 작전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경찰이 공장으로 통하는 도로를 막은 뒤 약 500명의 단속요원이 현장을 급습했다. 단속에는 헬기와 군용 차량이 동원됐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고려대에서 개최된 심포지움 기조연설에서 “동맹에 대한 합당한 처사가 아니다. 안타깝고 화난다"고 말했다. 둘째, 한국기업 건설 현장 근로자들은 중남미에서 온 불법 체류자들과 근본적으로 다른데, 심한 대우를 받았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는 현지 인력이 단기간에 기술을 습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초기 생산 안정화를 위해서는 한국의 숙련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제도는 이런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직 취업비자 발급은 제한돼 있고 심사에도 수개월이 걸린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핵심 동맹국임에도 호주, 싱가포르, 칠레가 받고 있는 전용 비자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상당수 기업들은 미국에 직원 출장을 보낼 때 최대 90일 단기 관광 및 출장 시 비자 신청을 면제해 주는 전자여행허가(ESTA)나 비이민 비자인 '단기 상용(B-1)' 비자 등을 활용했다. 바이든 정부에서는 이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으나, 트럼프 정부 들어 엄격해지고 있다. 셋째,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된 지 10일 경과한 시점에서 한국기업 공장에서 대규모 체포·구금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700여조의 선물보따리를 안기고도 한미 제조업 동맹의 상징에서 '뒤통수'를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는 자국에 투자하라고 다그치나 비자 확충에는 미온적이다. 참 이기적이다. 이 와중에서도 러트닉 상무장관은 관세합의 서명을 압박하면서, “한국 근로자 구금 책임은 전적으로 현대차에 있다"며 한국측에 책임을 돌렸다. 넷째, 이재명 대통령이 “주미대사관과 주애틀랜타총영사관을 중심으로 사안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총력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대사관이나 총영사관이 총력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나, 주미대사는 이 대통령이 당선된 후 얼마 안 되어 불러들여 공석이다. 대사가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다. 대사는 주재국 고위인사를 긴급히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통해 필요할 경우 항의하고 해결을 요구할 수 있다. 원래는 후임 대사 임명절차가 끝나 부임할 준비가 되면 기존 대사를 불러들이면 된다. 이것이 관행이고 국익에 부합되며 다른 나라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정부는 특임공관장이라는 이유로 주미대사를 소환해 버려 현장 대응능력을 약화시켰다. 한국인 근로자 대규모 구금 사태가 우여곡절 끝에 자진 출국으로 일단락되면서 이제 관심은 유사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어떻게 제도 개선을 이루느냐에 쏠리고 있다. 한미 외교당국은 워킹그룹을 만들어 신속한 논의를 하자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비자 문제의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고 조만간 미국 내 공장 구축 활동을 위한 단기 파견자 등 비자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논의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국민의 미국 내 작업·취업 등을 위한 비자 확대 문제는 해묵은 이슈로, 지금까지 진전이 없었는데 이번 구금사태를 계기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이강국

[EE칼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대한 우려

정부는 9월 7일 조직개편안을 통해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정책 분야를 환경부가 흡수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개편했다. 정부는 에너지 전환과 기후 위기 대응은 환경부가 맡고, 자원과 수출은 산업부가 담당해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재생에너지 일방향 정책에 속칭 '올인'하겠다는 의도를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탈원전에 대한 언급이 없으니 탈원전이 아니란 주장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국가 에너지믹스를 재생에너지 위주로 만들기 원하는 입장에서는 원전을 비롯한 다른 에너지원에 들어가는 정부 지원은 독극물과 같다. 스웨덴 국영기업 바텐폴은 400메가와트 갈렌 해상풍력 투자 결정을 연기한 이유로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꼽았다. 유럽 에너지 언론 몬텔은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양립할 수 없다'라는 내용의 기사에서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기저, 중간, 피크부하 발전의 변화가 아니라 재생에너지가 대부분의 에너지를 충족하며 역할을 마친 후 남은 역할을 수행하는 '잔여 부하'로의 변화라고 언급했다. 따라서 국내 에너지원에서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위해 전력 부문의 원전은 진흥이 아닌 억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국내 에너지산업 정책과 해외 원전 수출이 이원화된 이유다. IEA는 2050년 에너지 믹스에서 66%가 재생에너지이며 원전은 11%, 석유 등 화석연료는 22%에 불과하다는 넷제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복잡하고 할 일은 많지만 정책 집행 효능감은 떨어지는 화석연료 자원산업 같은 '잔여 업무'는 산업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스웨덴 대정전 같은 사례에서 배운 것이 없을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의 과잉 공급으로 발생한 정전 역시 재생에너지 우호적인 백업 시스템을 추가로 구축하고 보조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관성과 안정적 전력을 제공할 수 있는 기존 발전소 대신 아직 상용화도 되지 않은 그리드 포밍 인버터, 플라이휠로 관성을 제공하고 보조 서비스 시장에 진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페인은 2022년 이후 보조 서비스 시장 가격이 15배나 올랐으며, 영국 리버풀에 설치된 플라이휠 1대 가격은 470억, 영국 재생에너지 100%에 필요한 플라이휠 동기조상기 설치엔 9조 4천억 원이 넘게 들어간다. 물론 이를 운영하는 보조 서비스 시장 비용은 별도다. 스페인은 현재 전력시장을 강화 모드 – 재생에너지를 대폭 축소하고 가스 발전을 대거 늘려 운영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스페인은 2026년까지 이 강화 모드를 지속할 예정이다. 문제는 우리보다 앞서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추구했던 유럽과 서방세계가 전기요금 인하정책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체코 전 총리 바비스가 이끄는 최대 야당 ANO는 에너지 가격 상한제와 EU 탄소배출권 거부로 저렴한 에너지를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독일 메르츠 정권은 연간 100억 유로를 들여 전력망 요금과 전력세 인하를 위한 법안을 승인했다. 체코는 한국의 원전을 도입하기로 했고 독일은 2031년까지 탈석탄을 금지시켰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반값 전기요금'을 공약했고 중국 상하이 등 지방정부는 올해 초 기업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 메가와트시 당 최대 16%의 전기요금을 인하했다. 일본은 물가 상승 부담으로 재생에너지 부과금을 폐지하겠다는 정당까지 등장했다. 이런 전 세계의 흐름에서 역행하는 건 한국이 유일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전기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럽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요금으로 제조업이 말 그대로 녹아내리고 있다. 앤트워프 선언으로 뒤늦게 제조업 경쟁력확보를 도모하고 있지만 제조업 이탈을 막지 못하고 있다. 한국 역시 2022년 이후 70% 이상 오른 '전력 인플레이션'으로 탈한전은 물론이고 제조업 탈한국을 앞두고 있다. 이미 한국은 수출경쟁을 해야 할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보다 전기요금이 40% 가까이 높다. 가야 할 길은 무작정 가는 길이 아니다. 이미 유럽이라는 훌륭한 반면교사가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데스크칼럼] 대통령의 선택적 실용주의

이재명 대통령은 본인 성향을 소개할 때 '실용주의'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실용주의는 어떤 이념이나 이론의 진리를 그 실제 효용성이나 결과에 따라 판단하는 철학적 관점으로, 쉽게 말해 실제 도움이 되느냐, 마느냐로 사안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에너지산업은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많은 풍파를 겪었다. 문재인 정부는 뜬금없이 '탈원전'을 선언해 원전업계의 원성을 샀고, 윤석열 정부에서는 태양광 수사를 벌이면서 재생에너지업계가 탄압 아닌 탄압을 받았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에 거는 에너지업계의 기대는 컸다. 실용주의를 표방한다기에 정치적 편견 없는 에너지 정책이 나오길 예상하고 기대했다. 그런데 지난 11일 이 대통령의 100일 맞이 기자회견에서 나온 그의 에너지 인식은 에너지업계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주요 발언들을 보자. “원전은 기본적으로 맹점이 있다. (준공하는 데) 최하 15년이 걸린다. 지을 데도 없다. 딱 한군데 있는데, 지으려다 만 곳이다. 소형모듈원전(SMR)은 아직 기술개발이 안 됐다." “태양광과 풍력은 1~2년 밖에 안 걸린다. 당장 데이터센터에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데, 무슨(어떻게) 원전을 짓겠나. 신속하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로 가야 한다." “화력발전은 탄소제로, NDC(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때문에 추가로 건설할 수 없다." “원전도 있는 건 써야 한다. 가동기한 지난 것도 안전 담보되면 연장해서 써야 한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섞어 쓰는 에너지믹스는 변한 거 없다." “11차 전기본 수립 때 원전 2기와 SMR 신규로 한다고 했을 때 하라고 했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거. 그래서 통과시켰다. 부지 있고, 안전성 확보되면 (신규 건설) 할 수 있겠지만,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는 사실인 것도 있지만, 사실이 아닌 것도 많다. 에너지산업을 조금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아는 것들이다. 우선 원전 건설기간을 보면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고리 1호기는 공사기간이 73개월 걸렸지만, 가장 최근에 지어진 신한울 1호기(2022년 12월 준공)는 153개월, 신한울 2호기(2023년 9월 준공)는 162개월 걸렸다. 공기가 처음보다 2배 이상 길어지긴 했지만, 이 대통령이 말한 최하 15년, 즉 180개월보다는 적게 걸렸다. 이 대통령은 원전 건설기간을 부풀려 말한 셈이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사업은 건설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태양광 발전의 경우 1MW 이하부터 수백MW까지 규모가 매우 다양하다. 당연히 소규모일수록 공기는 짧고, 대규모일수록 공기는 길어진다. 대부분 소규모이기 때문에 건설기간이 짧게 보일 뿐이다. 원전의 1기 용량은 1.2GW이다. 이 규모로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다면 아마 원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 수년의 공기가 소요될 것이다. 이 대통령이 말한 재생에너지 건설기간은 소규모에 해당하므로 원전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화력발전에는 석탄과 가스가 있다. 석탄발전은 퇴출되는 추세이나, 가스발전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최근 유럽연합(EU) 법원은 친환경 에너지를 규정하는 그린 택소노미(Taxonomy)에서 천연가스를 친환경으로 인정했다. 천연가스는 석탄보다 탄소 배출이 적어 궁극의 무탄소에너지 시대로 넘어가는 가교역할로서 가치가 충분하다고 EU법원은 인정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가스발전까지 통틀어 더 이상 화력발전이 설 곳은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에너지 인식은 선택적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재생에너지로 답을 정해 놓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른 에너지에 대해서는 일부러 또는 누군가로부터 잘못된 정보를 습득해 효용성을 축소시켰다. 그리고 그것을 모든 국민이 보는 기자회견에서 사실인 것처럼 말했다. 절대 그것은 실용주의라고 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의 에너지 인식은 참모로부터 잘못된 정보를 받아서 생겼을 수가 있고, 원래 그랬던 것인데 실용주의라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감춰왔을 수도 있다. 전자라면 그나마 희망이 있지만, 후자라면...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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