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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가격 인상보다 무서운 건 ‘익숙해진 소비자’다

또 올랐다. 라면, 과자, 만두, 콜라, 사이다, 참치, 케첩 등 가격이 모두 뛰었다.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코카콜라를 비롯해 CJ제일제당, 오뚜기, 농심, 사조 등이 최근 주요 제품 판매가를 조정했다. 눈에 띄는 것은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예전 같으면 “또 오른다고?"라는 불만이 쏟아졌겠지만, 이제는 “이번엔 뭐가 올랐지"라는 체념에 가까운 태도를 많이 보인다. 가격 인상이 잇따르면서 이제는 놀라움보다 익숙함이 먼저 느껴진다. 기업들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원재료 가격과 환율, 물류비, 인건비, 에너지 비용 등이 동시에 상승했다. 전세계적인 보호무역 기조와 지정학적 리스크 탓에 경영 관련 불확실성 역시 최고조에 이르렀다. 문제는 원가가 오를 때 제품 가격이 빠르게 오르지만, 안정되거나 내려가도 좀처럼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번 오른 제품가는 새로운 기준이 된다. 이후에는 또 다른 비용 상승을 이유로 다시 올라가는 일이 반복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언제 내릴지'보다 '이번에는 얼마나 오를지'를 먼저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 판매가 인상이 일상이 되면 소비자의 선택권은 점점 줄어든다. 외식을 줄이고, 자체브랜드(PB) 상품을 찾고, 할인 행사만 기다리는 소비가 일상화된다. 그럼에도 결국 생활 필수품은 살 수밖에 없다. 가격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부담을 감내하는 것이다. 기업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격을 무작정 올리면 자칫 소비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가격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업계 전반에서 비슷한 시기에 제품가를 조정하며 소비자들에게 '어차피 다 오른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가격 경쟁보다 인상이 더 자연스러운 시장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가를 움직이는 것은 기업이지만 그 결과를 가장 오래 감당하는 것은 소비자다. 가격 인상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소비자의 일상은 달라진다. 가격 인상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같은 상황이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 사회다. 소비자가 “또 올랐네"라는 말 한마디로 넘기기 시작한 순간 물가 상승은 일상이 돼버린다. 수요를 이기는 정책이 없듯, 소비자의 체념 위에 세워진 시장도 오래 건강할 수 없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박영범의 세무칼럼] 창업 초기 세금 걱정 끝…청년 창업자 맞춤형 세정 지원 확대

국세청은 청년들의 창업 활성화와 안정적인 정착을 돕기 위해 전방위 세정 지원 정책인 '스타트업 세금든든케어'를 발표했다. 인공지능과 로봇, 바이오 등을 접목해 K-푸드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청년들이 복잡한 세무 행정 앞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든든한 지원군을 자처한 것이다.15세 이상 34세 이하의 청년으로서 창업한 지 2년이 지나지 않은 신규 사업자라면, 국세청이 제공하는 구체적이고 파격적인 세정 지원 혜택을 반드시 확인해 보아야 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혜택은 창업 초기 가장 큰 진입 장벽으로 꼽히는 세무 및 행정 업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신설된 맞춤형 케어 서비스다. 종합소득세 신고 시 복잡한 공제 및 감면 요건을 잘못 적용해 불이익받지 않도록, 국세청이 신고 검증시스템 등을 통해 적정 여부를 신속하게 사전 검토해 준다. 만약 오류가 발견되더라도 선제적으로 수정신고를 안내하여 가산세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단, 유흥 주점 등 소비성 서비스업이나 부동산 임대업, 전문직 업종은 제외되며, 농·임·어업은 3억 원 미만, 제조업 등은 1.5억 원 미만 등 수입 금액이 일정 기준 이하인 영세 중소 창업자에게만 적용된다. 아울러 전국 17개소의 '스타트업 원스톱 지원센터'와 연계하여 세금 안심 교실과 현장 상담실을 운영하며, 이 교육을 이수한 기업에는 공제·감면 컨설팅 우선 처리 등의 혜택을 부여한다. 사업자등록증 발급 시에는 부가가치세 등 주요 신고 일정과 납세자 세법교실 일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QR코드 시각 자료를 제공하고, 놓치기 쉬운 원천세 신고 일정 등은 모바일 문자로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청년 창업 기업을 위한 직접적이고 파격적인 세액감면 혜택도 빼놓을 수 없다. 요건을 갖춘 청년 창업 중소기업은 사업장 위치에 따라 5년간 차등적인 세액감면을 받게된다. 올해 1월 1일 이후 창업을 기준으로,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내에서는 50%, 수도권 내 과밀억제권역 밖에서는 75%, 수도권 밖의 지역에서는 무려 100%의 전폭적인 감면율이 적용된다. 특히 2025년 귀속 종합소득세 신고분부터는 세금 신고 단계에서 바로 '절세 혜택'안내를 제공하여 청년들이 혜택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꼼꼼하게 챙길 예정이며, 국세청 누리집 내 「청년 세금」 코너를 개선해 정보 접근성도 높였다. 초보 사장님들이 일상적인 지출 과정에서 가장 헷갈리는 영수증 처리와 적격 증빙에 대한 실무 지침도 명쾌하게 제공된다. 사업과 관련된 지출이라면 현금 결제 시에도 현금 영수증 등 적격 증빙을 챙겨 비용 처리가 가능하며, 신용카드는 원칙적으로 사업자 본인 명의여야 하지만 객관적인 사업 관련 비용임이 확인되면 가족이나 종업원 명의의 카드 사용분도 경비로 인정받을 수 있다. 주말 카드 결제 역시 실제 업무 목적이었다면 요일에 무관하게 경비로 인정되나, 사적 사용 오해를 피하고자 명확한 증빙을 갖추는 것이 좋다. 3만 원 이하 소액 거래는 세금계산서나 신용카드 매출전표 등 적격 증빙 수취 의무가 면제되지만, 간이 영수증 등은 구비해야 한다. 또한 직원 경조사비는 복리후생비로, 거래처 경조사비는 20만 원 한도 내에서 기업 업무추진비로 인정된다. 사업자번호가 없는 인플루언서 등에게 대금을 지급할 때는 계약서나 금융 증빙을 남겨야 하며, 원천징수 후 원천세 신고납부와 함께 지급명세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초기 자금 융통을 돕고 규제 및 세무조사 부담을 대폭 완화하는 정책도 시행된다. 청년 사업자의 주류 시장 진입을 돕기 위해 소규모 주류 제조장 시설 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신규 사업자의 납세증명 표지 부착 의무 면제와 시음주 제공 한도를 확대했다. 청년층의 원활한 사회 진출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학생 및 퇴직자, 재난 피해자 등을 대상으로 선제적인 학자금 상환 유예 안내문도 제공한다. '일자리 창출 청년 창업 기업'과 음식업·미용업 비중이 높은 '물가 안정 기여 소상공인'에 대해 정기 세무조사를 최대 2년간 유예한다. 수출 중소기업의 조사 유예기간도 최대 2년으로 연장되었으며, 특히 스타트업 기업의 조사 유예 적용 기준은 기존 사업 개시일 5년에서 10년으로 대폭 확대됐다. 지난 4월부터는 세무조사 대상자가 직접 3개월 범위에서 희망 시기를 선택할 수 있는 '정기 세무조사 시기 선택제'를 시행하여 경영의 불확실성을 낮췄다. 국세청은 청년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재도전 생태계 구축에도 힘을 쏟고 있다. 폐업 후 재기에 나서는 영세 사업자의 징수 곤란 체납액에 대해서는 납부 지연 가산세 및 가산금 납부 의무 면제 적용 대상을 지난 1월부터 확대 운영중이다. 아울러 사업 실패 등 불가피한 사유로 세금을 체납하게 된 생계형 체납자의 경우, 아예 체납액 납부 의무를 소멸시켜 주는 특례 제도를 신설하여 경제활동으로의 원활한 복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청년 창업의 동반자로서 리스크를 함께 나누겠다는 강력한 제도로 청년 창업자는 적극적으로 지원받기 바란다. ekn@ekn.kr

[EE칼럼] 전력 공급원의 세대교체

지난 6월 유럽을 강타한 폭염은 단순한 '더운 여름'이 아니었다. WHO와 주요 언론에 따르면 6월 22~28일 27개국에서 열사병 등 온열질환과 관련된 초과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독일 5,753명, 프랑스 2,025명, 영국은 5~6월 두 달간 2,700명, 스페인은 6월 한 달에만 1,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독일은 41.7℃, 폴란드는 40.5℃까지 치솟으며 6월 기록을 갈아치웠고, 학교 폐쇄와 철도 운행 중단, 도로 파손, 산불, 원전 가동 제한까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노인과 어린이, 야외 노동자 등 취약계층의 피해가 특히 컸다. 유럽은 이미 지구 평균의 두 배 속도로 뜨거워지고 있고, '한 세대에 한 번' 있을 법한 폭염이 이제 매년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폭염 속에서 태양광이 유럽 전력 시스템의 영웅으로 떠올랐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mber에 따르면 올해(2026년) 6월 EU 전력 생산에서 태양광은 25.0%(52.2TWh)를 차지하며 사상 처음으로 단일 발전원 1위에 올랐다. 원자력(21%), 가스(15%), 풍력(14%), 수력(12%), 석탄(8%)을 모두 앞선 결과다. 룩셈부르크(58.3%), 독일(35.5%), 스페인(34.3%) 등 14개국은 6월 한 달간 태양광 비중이 30%를 넘었고,, 덴마크·프랑스·독일·그리스 등은 태양광 발전량 월별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독일·스페인·네덜란드·헝가리 등 13개국에서는 태양광이 이미 최대 발전원 자리를 차지했다. 이는 단순한 월간 통계가 아니라 EU 에너지 전환의 역사적 전환점을 상징하는 사례다. Energy Institute(EI)의 최근 보고서도 같은 흐름을 확인해 준다. 기록적인 전력 수요 증가와 태양광 및 재생에너지의 눈부신 성장, 그리고 지역별로 극명하게 엇갈리는 발전 경로가 잘 드러난다.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속도는 빨라지고 있지만, 전 세계 배출량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으며 에너지 안보에 대한 압박도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효율성 향상, 전력화, 그리고 재생에너지 기술 투자 가속화가 전 세계적으로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2025년 태양광 발전량은 2,811TWh로 2024년 2,167TWh보다 644TWh 늘어, 전 세계 전력 수요 증가분의 75.2%를 태양광 홀로 감당했다. 2024년의 35.6%에서 두 배 이상 뛰어오른 수치다. 발전설비 용량 측면에서는 더 극적이다. 2025년 태양광은 2,391GW를 기록하며 오랜 기간 세계 1위를 지켜온 석탄(2,242GW)과 가스(2,088GW)를 제치고 사상 처음 전 세계 최대 발전원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태양광은 2019년 신규 설치 발전원 1위에 오른 이후 2025년까지 그 자리를 놓치지 않았으며, 2025년 한 해에만 511GW가 새로 추가되어 다른 모든 발전원을 합친 신규 설치량의 두 배에 달했다. 2025년 기준 독일·일본·스페인·호주 등 24개국에서 태양광이 발전 용량 기준 1위 전력 공급원이 됐다. 주목할 점은 이 흐름의 무게중심이 이제 아시아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2025년 정부 지원 없이 기업과 일반 가정의 옥상 태양광만으로 '조용한 태양광 혁명'을 일으킨 대표 사례가 파키스탄이었다면, 2026년에는 필리핀이 그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파키스탄은 여전히 태양광 혁명이 진행 중이며, 2026년 1분기 태양광 발전 비중이 32.3%로, 전년 동기 25.6%에서 크게 뛰어올라 태양광이 최대 발전원인 아시아 국가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 3월 전력난으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했던 필리핀은 올해 5월까지 4.7GW 규모의 중국산 태양광 패널을 수입했다. 중계무역 국가인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사실상 세계 1위 수입국으로 올라섰다.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 늘어난 수입 규모로, 같은 기간 파키스탄(4.6GW), 태국(2.9GW)은 물론 일본(2.5GW)과 한국(2.1GW)보다 많았다. 이처럼 세계가 태양광을 중심으로 전력 공급원의 세대교체를 빠르게 이행하는 사이, 한국의 상황은 초라하기만 하다. 태양광 발전량은 2024년 37.4TWh에서 2025년 37.9TWh로 늘었을 뿐이다. 증가율로는 고작 1.37%로, EU를 포함한 82개국 가운데 72위에 불과하며, 세계 평균 증가율 30.08%의 약 1/22 수준이다. 특히 2025년 태양광과 풍력을 합친 발전 비중은 6.6%에 불과해 아시아 평균(17.5%)의 약 1/3 수준이며, 심지어 아프리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2025년 기준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2.9%에 달해 매년 약 200조 원의 에너지를 해외에서 사들이면서도, 정작 잉여 재생에너지는 계통 제약으로 버려지는 모순을 겪고 있다. OECD 국가 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최하위라는 불명예와 국제사회에서 '기후 악당'이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태양광이 여러 국가에서 이미 단일 발전원 1위로 올라선 지금, 태양광은 더 이상 보조 에너지가 아니라 전력 공급원의 세대교체를 이끄는 핵심 에너지원이 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유럽이 폭염 속에서 증명했듯, 아시아 신흥국들이 시장의 힘으로 이미 증명하고 있듯, 우리도 태양광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로의 전력 공급원 세대교체에 전력을 다해야 할 때다.

[이슈&인사이트] 일본 반도체 산업사를 보면 한국 반도체 미래가 보인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1953년 소니가 벨 연구소로부터 트랜지스터 기술을 도입하여 시작되었다. 1970년대 말 일본 통상산업성은 전자진흥법을 제정하고 'VLSI 연구조합'을 발족하여 DRAM 대량생산 기술 고도화를 달성했다. 1985년 일본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미국을 추월했고 특히 메인 컴퓨터용 DRAM 분야에서 세계 시장의 80% 이상을 독점했다. 1988년에는 전 세계 반도체 매출 10대 기업 중 6개 기업이 일본계 기업으로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이에 미국은 심각한 무역 적자와 위기의식으로 슈퍼 301조를 발동하여 1985년 플라자 합의, 1986년 1차 미·일 반도체 협정, 1991년 2차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일본 반도체의 몰락을 유도했다. 한편, 2천년대 초 PC 보급 확산으로 고품질·고가격 DRAM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고품질 수요로 전환하면서 삼성전자와 TSMC 등 후발주자에 저가격·적정품질의 틈새시장을 허락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1988년 50%를 넘어섰던 시장 점유율이 1999년 엘피다 메모리를 출범시키는 등 분전에도 불구하고 2천년대에는 10% 미만으로 추락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에 “지금 메모리 가격은 비정상적"이라며 “가격이 내리지 않으면 옛날 일본과 똑같은 상황을 겪을 수 있다."라고 언급한 것은 시의 적절한 지적이다. 일본이 세계 반도체 산업을 석권하던 1986년과 한국이 세계 반도체 산업을 석권하고 있는 2026년의 상황이 판박이다. 1986년 반도체 초호황이 PC 보급 확산에 의한 것이었다면 현재의 초호황은 인공지능에 의한 것이 유사하다. 1980년대 반도체 초호황에 의한 메모리 가격 폭등이 삼성전자와 TSMC의 출현을 앞당겼다면 현재의 메모리 가격 폭등은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등장을 가능케 한다. 2016년 창업 이래 10년간 적자로 파산 지경에 헤매던 CXMT는 최근의 반도체 초호황 덕에 2025년 첫 흑자를 냈고, 2026년에는 매출이 전년 대비 7배 급증했고 상하이 증시에 상장하여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이는 삼성전자가 1986년까지 누적 적자가 2,000억 원에 달해 파산 지경에 이르다가 초호황으로 1988년 한 해에 3,200억 원의 순이익을 내 회생한 것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CXMT가 한국 기업에 실제 위협적 존재인가. 한국 업계에선 아직은 아니라는 분위기다. CXMT는 최첨단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확보하지 못해 HBM3 8단 제품조차 수율 안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것은 1980년대 일본이 삼성전자에 가졌던 안이함과 판박이다. 청와대는 'AI 서밋'을 계기로 한국 기업들이 미국 빅테크와 9,500억 달러 규모 공급 협력을 이뤘다고 홍보한다. 증권가는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2026년, 2027년의 영업이익은 600조 원, 800조 원 수준으로 추정하는 등 핑크빛 전망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2026년 상반기 코스피에서 외국인의 삼전닉스 순매도액이 130조 원에 달한다. 무차별 투매로 2026년 7월까지 사이드카 발동이 68회로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 연간 기록 28회를 크게 넘어섰다. 증시 전문가 중에는 삼전닉스의 기반이 무너졌다기보다는,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과 환율·글로벌 기술주 변동성에 따른 수급 조정이라고 에둘러 말한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핑크빛 전망이 한국판 플라자 합의, 미·한 반도체 협정의 부메랑이 될 것을 우려한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핑크빛 전망을 부풀리기 전에 부자 입조심·몸조심이 필요하다. 또한 CXMT 등장에 긴장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일본 반도체 산업 붕괴의 기폭제였듯 CXMT도 한국 반도체 산업 붕괴의 기폭제일 수 있다. 2026년 기준 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1~3위가 삼성전자(38%), SK하이닉스(29%), 마이크론(22%)이고, CXMT(8%)가 4위로 미미하지만, 내년에는 마이크론을 추월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선제적 대처로 삼전닉스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기원한다. bienns@ekn.kr

[EE칼럼] 사우디의 선택, 원자력 지도를 바꾼다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지난 7월 22일,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민수 원자력 협력 협정인 이른바 '123 협정'에 서명하면서 세계 원자력계의 관심이 쏠렸다. 특히 이번 협정에는 자국 내 농축과 재처리를 포기한 2009년 미·UAE 협정의 '골드 스탠더드'와 같은 기준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이 큰 주목을 받았다. 사우디와의 협정을 계기로 중동의 비확산 규범뿐 아니라 신규 원전 시장의 판도가 영향을 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런데 협정의 정치적 앞날은 아직 불투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 직후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해야만 협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사우디는 공식적인 수용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어, 123 협정과 아브라함 협정이 어떤 방식으로 정리될지는 아직 선명하게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사우디 원전 사업의 향방은 세계 원자력 지도를 다시 그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에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사우디는 전력 생산을 거의 전적으로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으며, 산업화와 담수화, 인공지능 및 데이터센터 확대에 따라 전력수요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사우디는 첫 대형 원전 사업으로 UAE와 카타르 국경 인근인 코르 두와이힌(Khor Duwaiheen)에 약 1.4GW급 원자로 2기를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 다시금 상기해야 할 것은 123 협정 체결이 곧 미국 원자로 수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23 협정은 미국의 핵물질과 기술을 이전할 수 있도록 법적 문을 여는 장치일 뿐, 원자로 구매계약을 보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도는 핵확산금지조약(NPT) 비가입국임에도 미국과 2008년 123 협정을 맺었지만, 그 이후에도 쿠단쿨람(Kudankulam) 원전 후속 사업을 위해 러시아와의 협력을 확대해 왔다. 국제정치적 관계와 원전 공급자의 선택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원전을 처음 도입하는 국가는 원자로의 성능만 놓고 비교하지 않는다. 건설비와 금융 조건, 정해진 공기를 지킬 능력, 연료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공급, 현지 산업 및 인력 참여, 운영과 정비, 사용후핵연료 관리까지 모두 검토할 수밖에 없다. 원전은 건설에서부터 수십 년간의 가동, 폐쇄 후에도 해체와 폐기물 관리까지 포함하면 한 세기에 걸친 국가사업이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판단은 크지만 절대적이지도 않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튀르키예는 첫 원전인 아쿠유(Akkuyu)에 러시아 원자로 4기를 도입해 건설 중이다. 미국 및 서방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이집트도 엘다바(El Dabaa) 원전 4기 건설을 러시아에 맡겼으나, 한국수력원자력도 터빈 아일랜드(Turbine Island, 2차측)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이 사례들은 원전 수출 경쟁력이 단순히 정치적 영향력에서만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신규 도입국이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금융·연료·운영·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를 하나의 국가 패키지로 묶어 제공한다는 것이 러시아 경쟁력의 핵심이다. 역으로 위 나라들이 러시아와 협력하고 있다 해서 러시아 진영에 완전히 편입되는 것도 아니다. 사우디의 선택은 한 국가의 신규 원전 사업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사우디는 걸프 지역 최대 경제권 중 하나이며, 국부펀드와 개발금융을 통해 중동과 아프리카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우디가 어떤 원자로와 금융·연료주기 모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향후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 신규 원전국들의 선택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원자력계도 사우디 사업의 향방을 면밀히 주시하며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미·사우디 123 협정이 체결됐다고 해서 미국이 사업을 가져가는 게 보장되지 않듯이, 반대로 아브라함 협정과의 연계가 꼬인다고 해서 미국의 수주 가능성이 약해졌다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필요한 것은 낙관이나 비관이 아니라 구체적인 전략이다. UAE 바라카(Barakah) 원전에서 입증한 건설 능력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바라카 원자로 4기를 성공적으로 건설·상업 운전한 경험을 객관적인 수치와 함께 제시하되, 현지 인력과 산업을 얼마나 육성할 수 있는지도 제안해야 한다. 또한 국제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연료 조달 방안과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해서도 발주국의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프랑스 등 우방국 기업과 경쟁하면서도 필요할 경우 공급망 차원의 협력 모델을 만드는 유연성도 요구된다. 사우디의 선택은 중동 나아가 글로벌 사우스의 원자력 지도를 바꿀 수 있다. 한국도 사우디 원전 사업을 향후 세계 원전 시장의 주도권을 좌우할 전략사업으로 보고 구체적인 계획들을 마련해야 한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폭염의 일상화, 산업계 ‘일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폭염이 더 이상 한여름의 일시적인 이상기후가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일상이 되고 있다. 기온이 오를 때마다 냉방기기 사용을 자제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는 권고가 나오지만, 기록적인 더위 속에서 에어컨과 자동차 사용을 무조건 줄이라고 요구하기는 어려워졌다. 탄소중립의 필요성과 별개로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냉방은 이제 사치가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그런데도 관공서와 기업의 폭염 대응은 여전히 실내온도를 제한하거나 점심시간 야외활동을 자제하도록 안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에너지 절약을 명분으로 냉방을 지나치게 제한하면 직원들의 집중력과 생산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다. 냉방비를 아끼려다 업무 효율과 노동자의 안전이라는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얘기다. 폭염이 일상화됐다면 산업계의 '일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사무직 근로자에게는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시차출퇴근제와 유연근무제를 확대하고, 폭염이 절정에 달하는 시간대에는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당시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재택근무를 대대적으로 시행했던 것처럼 폭염 역시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재난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휴가를 늘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근무시간과 장소만이라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 폭염특보가 발령된 날에는 출근 시간을 앞당기거나 늦추고, 불필요한 외근과 대면회의를 줄이는 방식이다. 업무 특성상 재택근무가 어려운 생산·건설·물류 현장에서는 작업시간 조정과 충분한 휴식, 냉방시설을 갖춘 휴게시설 제공이 뒤따라야 한다. 업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대책으로는 폭염 피해를 막기 어렵다. 복장 규정도 바뀔 필요가 있다. 여름철에도 정장과 긴소매 셔츠를 사실상 요구하는 조직문화는 에너지 절약과 업무 효율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소매와 운동화 등 간편한 복장을 폭넓게 허용하면 체감온도를 낮추고 냉방 수요도 줄일 수 있다. 형식적인 '쿨비즈' 캠페인보다 구성원이 눈치 보지 않고 편한 옷을 입을 수 있는 문화가 중요하다. 물론 냉방 확대가 전력 수요와 온실가스 배출을 늘릴 수 있다는 점은 고민해야 한다. 다만 해법은 개인과 노동자에게 더위를 참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고효율 냉방기기 보급과 건물 단열 개선, 태양광·에너지저장장치(ESS) 활용, 전력 수요관리 등을 통해 냉방에 필요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건강과 생산성을 희생하는 절약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후위기 대응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감축'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미 닥친 폭염 속에서 사회와 산업이 어떻게 버틸 것인지에 관한 '적응'도 동등하게 중요하다. 정부와 기업이 과거의 냉방 제한 중심 대책에서 벗어나 쾌적한 근무환경과 유연한 노동체계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폭염이 일상이 됐다면 폭염을 견디는 방식도 일상이 돼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위를 참으라는 캠페인이 아니라, 더위 속에서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제도와 조직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이슈&인사이트] 격차의 시대에서 연대와 포용의 길을 가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140여 명의 전문가와 시민과 함께 청와대에서 '부동산 국민 대토론회'를 주재하였다.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기 위해서 마련되었다. 토론에서 공급 확대를 위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부터 주택 가액·실거주 중심 보유세 개편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참석한 한 대학생은 “서울에 부모 집이 있는 청년과 지방에서 올라와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은 출발선부터 다르다. 서울 부동산을 가진 일부는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는 반면, 성실하게 일하는 청년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불로소득을 억제해 확보한 재원을 지방 인프라와 주거복지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013년 펴낸 에서 소득 대비 자본의 값을 그리스 문자 베타(β)로 표시한 후 이를 분석했다. 피케티 지수, 불평등지수라고 불린다. 토지와 주택 가격의 상승으로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대비 순자산 비율이 9배에 달해, 주요 선진국 평균(5~7배 수준)을 웃돌아 자산 격차가 심화시키고 있다 즉 같은 소득으로 부자가 되기가 선진국보다 5~7배 이상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가파른 양극화와 사회적 균열이라는 심각한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 국민소득 내 자산 소득 집중과 높은 피케티 지수가 보여주듯, 노동 소득의 가치가 자본과 상속의 그늘에 가려진 구조적 불평등은 세대 간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빠르게 해체하고 있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소득과 미래를 좌우하는 '개천 용 불평등지수'의 심화와 저소득층의 고착화 현상은 구성원들에게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과 불신을 안겨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각자도생의 한계를 직시하고, '공생과 공존을 위한 사회'로의 대전환을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할 때이다. 공생과 공존을 위한 사회로 가기 위한 대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첫걸음은 경제적 형평성의 회복에서 출발한다. 제네바주나 프랑스 공기업의 경영진 임금 상한제,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공정한 임금 배율, 그리고 소득 수준에 비례해 벌금을 부과하는 핀란드의 '일수 벌금제'는 사회적 신뢰를 다지는 귀중한 제도적 모델이다. 자산과 소득의 자발적·제도적 균형은 경쟁 지향적 이기주의를 완화하고, 신뢰라는 공동체의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토대가 된다. 둘째, 교육 분야에서의 공존은 '수직의 사다리'를 '수평의 다리'로 전환하는 구조적 개혁을 요구한다.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스펙을 결정하는 불공정한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출발선의 형평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네덜란드 의대의 추첨제 입학 시스템이나 고려대학교의 '정의 장학금' 사례는 기회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소외 계층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로 개인의 노력과 재능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고 있다. 고려대학교는 2016년 성적 장학금을 폐지하고 정의 장학금제도를 만들었다. 이는 경제적 형편(소득 분위)을 우선 고려해 지원하는 대표적인 가계 곤란 맞춤형 복지 장학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셋째, 나아가 시장과 정부의 한계를 보완하는 '제3영역(Third Sector)'의 활성화가 시급하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며 은퇴 시니어의 경험과 지혜를 활용하는 협동조합, 유럽의 순환 경제 네트워크(RREUSE), 취약 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굿윌스토어' 모델은 경제적 생산성과 사회적 통합을 동시에 달성하는 혁신적 길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발달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품는 포용적 고용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 미국·영국 등의 '맞춤형 고용(Customized Employment)'이나 'Project SEARCH' 모델처럼, 개개인의 강점을 고려한 직무 재설계와 현장 지원을 통해 사회적 약자가 시혜의 대상이 아닌 생산적 주체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공존의 완성이다. “내 아이가 행복해지려면 내 아이의 친구도 행복해야 한다"라는 신념은 공생 사회의 본질을 관통한다. 경제적 격차 완화, 교육의 기회균등, 제3영역의 활성화, 약자를 포함하는 포용적 고용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우리 사회는 불평등의 고리를 끊고 더불어 사는 정의롭고 건강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E칼럼] 햇빛소득마을, 패널보다 계통이 먼저다

이재명 정부는 마을 주민이 태양광 발전소의 설치와 운영에 직접 참여하는 '햇빛소득마을'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그 구상은 단순하다. 마을의 지붕과 유휴부지에서 생산한 태양광 전기를 팔아 수익을 주민 배당, 전기요금 절감, 마을 기금으로 돌리자는 것이다. 방향은 옳다. 그러나 패널을 설치했다고 소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전력망에 연결되지 않으면 생산한 전기를 팔 수 없고, 연결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면 주민에게 돌아갈 몫부터 줄어든다. 현재 논의는 대체로 설비비 지원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사업성을 좌우하는 것은 계통접속비, 마을에서 접속점까지 이어지는 인입선 구축비, 필요한 구간의 지중화비,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비 등이다. 비용은 사업 초기에 발생하지만, 수익은 상업 운전 이후에야 생긴다. 더구나 비용 규모도 미리 가늠하기 어렵다. 주민에게는 태양광 설비보다 “얼마를 더 내야 할지 모르는 전력망"이 더 큰 장벽이다. 핵심은 하나다. 햇빛소득마을의 병목은 패널이 아니라 계통이다. 따라서 질문부터 바꿔야 한다. 접속비를 얼마나 보조할 것인가가 아니라, 계통 관련 비용을 개별 마을의 발전사업비로 볼 것인가, 여러 마을이 함께 쓰는 공익 인프라 비용으로 볼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햇빛소득마을이 지역 소득·에너지복지·주민 수용성을 위한 정책이라면, 그 기반인 전력망까지 마을마다 각자 해결하게 할 수는 없다. 대안은 권역 공동접속이다. 인접한 여러 마을과 공공시설, 농공단지를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 공동 접속점과 변전설비, 인입선을 함께 계획하는 방식이다. 마을마다 선로를 따로 설치하는 중복을 줄이고, 접속용량과 공사 순서도 미리 조정할 수 있다. 공동 ESS를 두면 낮에 몰리는 태양광 출력을 조절해 계통 혼잡과 출력제한도 줄일 수 있다. 프랑스는 재생에너지 접속용량과 전력망 투자를 지역 단위로 사전 계획하고, 호주의 재생에너지구역은 공유망을 먼저 조성한 뒤 발전·저장사업자가 접속하도록 한다. 제도는 달라도 메시지는 같다. 전력망은 개별 사업자의 사후 부담이 아니라 권역 단위의 선행 투자로 다뤄야 한다. 또한, 지중화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주거밀집지역, 학교·복지시설 주변, 산불·침수 취약구간, 관광·경관 핵심구간에서는 지중화가 안전과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비용을 주민에게 전가하면 수용성을 높이려던 지중화가 오히려 참여를 막는다. 전면 지중화보다 꼭 필요한 구간을 선별해 공익 비용으로 처리하는 타깃 지중화가 현실적이다. 다만 공공이 인프라 비용을 맡는다고 발전 사업권까지 가져가서는 안 된다. 발전 사업권과 수익은 마을법인과 주민에게 남겨야 한다. 공공은 공동접속망, 인입선, 타깃 지중화, 공동 ESS에 먼저 투자하고, 정해진 범위에서 장기간 비용을 회수하는 인프라 수탁자에 머물러야 한다. 민간 사업자는 설계·시공·운영을 맡되 주민 수익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핵심은 공공이 사업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마을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 위험만 대신 맡는 데 있다. “주민부담 0원"도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 장치로 설계해야 한다. 주민 개인에게 접속비나 지중화비를 직접 청구하지 않고, 초기 선납금과 의무출자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마을법인이 상업 운전 뒤 내는 공동접속망 사용료에는 상한을 두고, 이를 공제한 뒤에도 주민 배당과 마을 기금의 최소 수준이 보장돼야 한다. 공공 인프라의 적자를 주민에게 자동 전가하지 않는 원칙도 필요하다. 첫걸음은 지자체, 지방공기업, 마을 대표, 정책금융기관이 참여하는 권역 준비협의체를 구성하고, 시범지역에서 공동접속망과 ESS가 비용과 대기 기간을 얼마나 줄이는지 검증하는 일이다. 결국, 햇빛소득마을의 성패는 패널 수가 아니라 비용구조에 달려 있다. 마을마다 접속비를 조금씩 보조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권역 공동망을 공공이 먼저 만들고 마을이 발전 사업권과 수익권을 갖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지중화가 공익이라면 비용을 주민에게 더 물릴 것이 아니라, 주민부담이 생기지 않도록 비용체계부터 바꿔야 한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대기업만 웃은 ‘생산적금융’, 의미 되새길 때

정부의 '생산적금융' 기조에 발맞춰 은행들이 자금 흐름을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다. 부동산 중심의 대출에서 벗어나 벤처·혁신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모험자본 공급도 확대하고 있다. 가계대출을 줄이는 대신 기업대출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변화를 온전히 느끼기 어려운 것 같다. 실상을 보면 정작 자금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아닌 대기업으로 집중되는 '대기업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상반기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약 190조원으로 상반기 동안 약 20조원이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약 7조원이 늘었는데, 이보다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약 683조원으로 상반기 동안 약 8조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상반기(약 2조원)보다는 성장세가 뚜렷했으나, 작년을 제외하면 예년 같은 기간 약 10조~20조원 이상씩 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증가세는 오히려 둔화됐다. 자금난에 금융 지원이 절실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 과연 은행 자금이 흘러가고 있는지 의문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은행들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대출을 무작정 늘리기는 한계가 있다. 경기 둔화, 고금리 등에 연체율이 악화하고 있어 건전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행의 부실 위험이 커지면 금융 시스템 전반의 안정성도 흔들릴 수 있다. 실제 지난 5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67%로 9년 7개월 만에 가장 높게 치솟았다. 특히 기업대출 연체율은 위험 경고등이라고 평가되는 1%로 높아졌다. 이는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0.84%)도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은행의 부실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대출을 무조건 늘리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생산적 금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은행에서는 자금을 가계대출 중심에서 기업대출 중심으로 이동시킨다는 점에서 대기업 대출 확대도 생산적금융에 부합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정부가 강조하는 생산적금융의 궁극적인 취지는 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보고 산업 전반에 자금이 공급되도록 금융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소상공인도 함께 자금 흐름이 이어질 수 있도록 금융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은행이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곳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현재 은행들은 리스크 평가 체제를 정교화하고 보증부대출을 확대하는 등 세밀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담보중심의 영업 방식을 바꾸고 기업의 기술성과 성장성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금융 관행의 전환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생산적금융의 평가 잣대를 대출 규모로 우선적으로 보는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대출뿐 아니라 다양한 투자와 모험자본, 금융지원 프로그램 등을 균형 있게 확대해 자금이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실제 자금이 필요한 곳에 은행 자금이 흘러갈 때 생산적금융은 그 의미를 비로소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이슈&인사이트] 유럽의 반이민·반난민 정서 확산의 교훈

전 세계적으로 반이민, 반난민 정서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불법 이민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유럽에서도 이민자들의 범죄와 난동·테러 행위가 급증하며 반이민 정서가 급증하고 있다. 유럽 이민 역사는 나라마다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유럽이 대규모 이민을 수용한 가장 큰 공통의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초래된 인력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전쟁 때문에 일할 수 있는 남성 노동인구가 말 그대로 '증발'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수많은 노동 가능한 연령대 남성을 잃었다. 영국은 이에 전쟁 피해 복구와 경제 활성화를 염두에 두고 인도, 파키스탄, 카리브해 및 아프리카 영연방 식민지 출신 인력을 대량 수용했다. 프랑스는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식민지를 본국과 같다고 보는 프랑스식 '내선일체' 정서가 있었다.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대했던 시각과 유사하다. 프랑스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들 지역 인력의 이주를 적극 장려했고, 여타 아프리카 지역 식민지 출신에도 문호를 활짝 개방했다. 제2차대전에서 850만 명의 인명 손실을 본 독일은 남성 노동 인력 절대 부족 사태 수습을 위해 터키 등지에서 무슬림 이민자를 대규모로 받아들였다. 다른 나라에도 독일로 이민을 적극 장려했다. 1960년대 독일에 간 한국 광부와 간호사도 서독의 인력 부족을 메꾸기 위해서였다. 유럽은 2015년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인도주의적 이유로 약 120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기 전까지 이민에 크게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같은 시기에 더 풍요로운 삶을 기회를 원하는 아프리카 지역 경제 난민이 유럽에 대규모로 유입된다. 이런 '경제 난민'의 대열에 중동, 인도, 중국 출신도 합류했다. 짧은 시간 동안 유럽의 문화와 생활 양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와 난민이 유입되면서 유럽인과 이들 사이 '문화적 충돌'이 발생했다. 이민과 난민은 유럽 경제 부흥에 중요한 기둥이지만, 이로 발생하는 혼란과 충돌, 사회적 비용 급증으로 갈등이 폭발했다. 이런 현상은 포용적이고 관용적이었던 유럽 국가의 정치 지형을 바꿔 놓았다. 2020년 영국이 브렉시트(Brexit)를 단행한 이유도 유럽연합의 이민 정책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 사상을 추종하는 극우 정당 출신 멜로니가 총리가 되었고,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이민을 반대하는 극우파 정당이 정권 쟁취에 근접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유럽의 이민과 난민 정책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부작용이 많지만, 이민자가 제공하는 저렴한 노동력이라는 꿀단지를 못 버리고 있다. 이민을 줄이겠다던 멜로니의 이탈리아는 아프리카 등지에서 유입되는 불법 이민을 묵인하고 있다. 스페인은 아예 불법 이민과 난민을 환영한다고 나섰다. 이민이 싫어서 브렉시트를 단행한 영국은 오히려 비유럽권 이민을 대규모로 수용하는 모순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불법 이민과 난민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과 피해를 줄이겠다고 권력을 잡은 집단이 자신 권력 연장에 불리한 국가 경제 침체를 피하려고 이를 몰래 묵인하는 자가당착적 기만이 더 큰 혼란을 초래하는 상황이다. 한국은 이민과 난민의 정착이 쉽지 않은 나라로 알려졌다. 한국인도 이를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정부도 정식 이민과 난민 수용 모두 엄격히 통제한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 체류 외국인은 280만 명이고, 이 중 40만 명이 불법체류자이다. 현재의 인구구조를 보면 한국은 이민 없이 성장은커녕 현상 유지도 힘든 상황이다. 이제 한국 경제는 외국인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도 이민 문제에 대해 보다 확실한 정책을 수립해야 할 시기이다. 한국과 정서가 비슷한 일본도 이민과 외국인 방문객이 급증하면서 외국인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도 이렇게 될 수 있다. 한국 경제에 외국인의 참여와 기여가 계속 확대되는 현실에서 이민 문제를 방치하면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또 다른 갈등 요소가 될 것이다. 이 문제가 시한폭탄이 되기 전에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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