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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공정위의 ‘털고 보는 조사’에 발 묶인 기업들

공정거래위원회 중점조사기획단이 출범 2주 만에 첫 사건으로 식품업계 담합을 택했다. 조사국 폐지 21년 만에 부활한 조직으로, 지난 14일 CJ제일제당·대상·오뚜기 등을 현장조사하면서 김치·두부·유지류·선물세트·즉석밥·장류 6개 품목을 한꺼번에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에서 공정위는 2018년 이후 가격 담합과 2020년 이후 재판매가격 유지 여부까지 살피고 있다. 8년 전 과거부터 거슬러 올라가 훑는 조사다. 담합 조사는 조사공문에 법위반 혐의를 적지 않아도 된다. 기업으로서는 혐의도 모른 채 지나치게 광범위한 조사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이번에 조사를 받은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공정위가 받을 수 있는 자료를 다 받아 보다 보면 하나는 걸리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뒤져보고 나오면 하고 없으면 마는 조사라는 설명이다. 아무것도 안 나와도 기업이 공정위를 무고로 고소할 수는 없다는 하소연이다. 이번 조사 대상에는 이미 올해 굵직한 담합 제재를 받은 기업들이 포함됐다. 설탕·밀가루·전분당 담합 과징금은 공정위 발표 기준 1조8000억원을 넘고 현장조사 당일에는 밀가루 부산물 담합 심의도 시작됐다. 원재료에 이어 별도 증거로 따질 사안인 완제품까지 조사 대상에 올랐다. 가격이 비슷하게 움직였다는 것만으로 담합을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은 이미 나와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 라면 가격 담합 사건에서 사실상 정부 관리 대상인 라면은 1위 업체를 따라 값을 올리는 데 합리적인 면이 있다고 판결했다. 이에 공정위는 농심 1080억원을 비롯한 과징금 처분을 직권 취소했다. 정부가 식품 가격을 관리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최근 열린 물가당국와 식품사 간담회에서 한 업체 참석자는 농식품부가 업계에 가격 안정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마련한 이 간담회 자리에 국세청·공정위 직원도 나란히 앉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게 무슨 의미겠느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지난 12일 국정감사에서 식재료 등 민생 밀접 분야의 담합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원가와 인건비가 함께 오르고 정부가 가격을 관리하는 시장에서는 인상 시기와 폭이 비슷해지기 쉽다. 담합 조사가 물가를 누르기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더욱이 이번 조사가 이어지는 동안 기업들은 내년 사업계획을 짜느라 바쁜 시기임에도 공정위 조사에 신경을 쏟아야 한다. 업계에서는 차라리 처벌받을 게 있으면 빨리 받고 정상 업무로 돌아가고 싶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드러난 담합은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올해 잇따른 제재도 업계가 자초한 일이다. 다만 조사는 혐의를 좁혀 들어가고 결론은 서둘러 내야 한다. 그래야 담합 조사가 물가 대책으로 악용된다는 의심도 덜 수 있다.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박영범의 세무칼럼] ‘선박왕’도 피하지 못한 세금의 무게

국세청이 오랜 난제였던 이른바 '선박왕' 권혁 시도그룹 회장의 천문학적인 체납액을 징수하며 조세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고액 체납액 회수를 넘어, 과세당국의 집요한 추적 의지와 고도화된 글로벌 공조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나아가 이는 앞으로 전개될 기업 사주 일가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대한 강력한 철퇴를 예고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지난 7일 세무업계를 뒤흔든 이번 소식의 중심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총 7,902억 원에 달하는 권혁 회장의 체납 청산 약속이 있다. 국세청은 지난 2011년 역외 탈세 혐의로 권 회장에게 종합소득세 등 4,101억 원의 세금을 고지한 바 있다. 이후 오랜 조세 불복 소송 끝에 3,938억 원의 개인 납부액이 최종으로 확정되었으나, 무려 15년 가까이 징수는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납부의 '현실화'다. 권 회장은 지난 7월 이미 현금 1,000억 원을 납부했는데, 이는 종전 최고 납부액(500억 원)의 두 배에 달하는 역대 최고 현금 납부 기록이다. 또한, 나머지 2,938억 원의 잔액에 대해서는 납부 계획서와 함께 해외 소재 선박 5척을 담보로 제공했다. 국내에 본인 명의 재산이 없는 체납자로부터 해외 선박을 담보로 확보한 것은 국세청 역사상 최초의 사례다. 개인 체납액에 더해 제2차 납세의무자로 지정된 시도탱커홀딩, 시도홀딩 등 관련 법인의 체납액까지 합치면 사실상 약 8,000억 원의 장기 미제 체납액이 국고로 환수되거나 소멸하는 셈이다. 국세청은 담보물의 적정성을 신중히 평가하기 위해 감사원의 사전 컨설팅을 병행하는 등 치밀함을 보이고 있으며, 선박 가치가 잔여 체납액을 충분히 웃돌 것으로 전망한다. 이러한 유례없는 징수 이면에는 올해 1월 출범한 국세청 '고액 체납 특별 대응 TF'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국내 재산이 없는 권 회장을 상대로 국세청은 일찌감치 해외 재산으로 눈을 돌렸다. 자산 은닉 위험이 큰 해외 정보 확보를 위해 영국, 뉴질랜드, 헝가리, 벨기에 등과 실무 협약을 맺고 글로벌 공조망을 촘촘히 짰다. 특히 선박이 많이 등록된 라이베리아, 파나마 당국과의 국제 공조를 통해 권 회장의 선박 소유 현황을 철저히 파악하고 본격적인 압류를 추진했다. 이러한 촘촘한 그물망은 권 회장에게 강한 심리적·사업적 압박으로 작용했다. 한때 일본과 홍콩 등지에서 170여 척의 선박을 굴리며 “대한민국의 장보고가 되길 원했던" 권 회장에게 있어, 글로벌 과세당국의 공조로 인한 해외 사업 리스크 가중은 뼈아픈 대목이었다. TF팀은 전방위적인 압박과 함께 “세금을 정당하게 내고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당당하게 사업을 해달라"는 명분으로 지속적인 설득을 병행했고, 결국 이 강온 양면 전략이 권 회장의 결단을 끌어냈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단발성 징수 성과가 아니라, 국세청이 보여준 향후의 '시스템적 진화'와 '엄중한 조사 기조'다. 국세청은 이번 특별 대응 TF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 지방청(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등)에 '세무조사·체납 추적 연계 특별조사 팀'을 최초로 신설하기로 했다. 다가오는 11월과 12월, 역외 정보 수집 및 사주 재산조사 분야의 최정예 요원들을 선발해 악의적 고액 체납 및 탈세 혐의 법인에 대해 상시적이고 강도 높은 조사를 펼칠 계획이다. 특히, 지난 8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임광현 당시 국세청장은 기업 사주 일가의 '법인 자금 사적 유용'에 대한 전면전도 선포했다. 최근 국세청이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한 19개 법인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그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직원 임금은 수년째 동결하면서 36억 원대 슈퍼 카 굴리는 사주 탈루 유형으로 최근 적발된 제조업체 A 사는 막대한 이익잉여금을 쌓아두고도 직원 급여는 철저히 동결했다. 그러면서도 시가 3억 원이 훌쩍 넘는 슈퍼 카 6대(총 36억 원 상당)를 포함해 총 45대의 수입차를 법인 명의로 사들여 사주 일가의 개인 전용차로 굴린 사실이 드러났다. 자녀 유학 복귀 선물로 법인 슈퍼 카 제공 탈루 유형으로 해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자녀를 위해 법인 명의로 최고급 슈퍼 카를 구매해 사적으로 사용하게 하고, 수십억 원대 빌딩 취득 자금까지 증여세 없이 편법으로 넘긴 사주 일가도 철퇴를 맞았다. 회삿돈 10억 원으로 최고급 자택 인테리어 탈루 유형으로 사주 C 씨는 자신이 거주하는 최고급 주택의 인테리어 비용 약 10억 원을 고스란히 회삿돈으로 결제하는 등 법인 자금을 마치 개인 쌈짓돈처럼 유용했다. 국세청은 이러한 행태에 대해 “정상적이면 사주가 급여를 받아 소득세를 내고 본인 돈으로 취득해야 할 것들을 법인 돈으로 몰래 해결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관행"으로 보고 연두색 번호판을 단 슈퍼 카를 사주 일가가 개인적으로 남용하거나, 한강 뷰가 보이는 강남권 초고가 법인 주택 및 직원 복지용 콘도를 이른바 '황제 사택'처럼 독점하는 행태가 온전히 바로 잡힐 때까지 2차, 3차 고강도 세무조사를 멈추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해외로 교묘히 재산을 빼돌리거나 차명으로 자산을 은닉해 과세 망을 빠져나가려는 꼼수는 이제 진일보한 징수 기법과 글로벌 공조망 앞에 속수무책이 되고 있다. 국세청의 이번 '선박왕' 체납 징수와 사주 일가의 일탈을 향한 날 선 경고는 단순한 세수 확보를 넘어, “성실 납세자가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 공정하고 투명한 조세 정의 실현"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기업에 던지고 있다. ekn@ekn.kr

[EE칼럼] 겨울을 앞둔 전 세계의 선택과 미래 에너지 믹스

1주일 만에 끝난다던 이란 전쟁이 8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역시 1주일 만에 끝난다던 러우 전쟁은 4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세계는 2번의 글로벌 위기를 겪고 있다. 브렌트유는 연초에 비해 79% 오른 109달러를 기록하고 있고 유럽 천연가스는 179% 오른 89유로다. JKM 가스는 에너지 공황이 우려된다는 30달러를 넘어섰다. 문제는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고 플레이어들은 장기전을 대비하며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탈리아는 ETS 폐지 카드를 거둬들이는 대신 유럽연합으로부터 가스 가격 상한제를 받아냈다. 도매전력 가격을 결정하는 천연가스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춰 국민들의 전기요금 부담을 일시적으로라도 줄이기 위함이다. 이탈리아는 현재 MWh당 200유로가 넘는 도매전력가격이 이 제도 시행으로 10%가량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낮은 도매가격은 주변국 전력수출로 이어져 효과가 반감되고 정부 재정 유출과 소비자 부담이 추후 늘어난다는 우려가 있지만 눈앞에 닥친 위기가 더 급한 이탈리아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미국은 유럽에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을 통한 러시아 가스 수입을 제안했다. 러우 전쟁 이후 유럽은 미국 LNG 수입으로 위기를 넘겼고 미국은 이를 레버리지로 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점을 고려하면 뜻밖이다.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이번 전쟁이 “유럽 전역의 에너지 가격을 상승시키고 있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 모두에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 적극 반대하는 움직임과 달리 유럽 국민이 결국 저렴한 에너지를 원하게 될 것이라 유럽 관료들은 말하고 있다. 애초 노르트스트림 아이디어를 먼저 제안한 건 유럽이었다. 아시아로 오면 저렴한 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석탄발전 증가로 이어진다. 인도 산업단지가 밀집한 구자라트주에선 태양광과 풍력이 3기가와트 이상의 전력공급을 하고 있음에도 오후 5시 이후 전력수요가 폭증하면서 전력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도 정부는 2030년까지 전체 15% 늘리기로 한 가스발전을 좌초자산화하고 90기가와트 늘리기로 한 석탄발전을 150기가와트까지 증가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피크 석탄을 지적했던 중국은 올해 석탄 소비가 3.4% 늘어났으며 가스 발전량은 12%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겨울철 가스소비를 줄이고 원전과 석탄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가 이번 겨울을 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은 다를 수 있지만 대원칙은 '보다 저렴한 에너지원 확대'다. 5년 전 에너지 위기와 달리 이번 위기엔 완충장치가 사라졌다. 유럽은 가스 재고가 부족하고 이란 전쟁은 전략비축유와 가솔린, 디젤은 물론 원유와 제품을 실어나를 유조선과 정제 인프라까지 고갈시키고 있다. 유럽을 충격에 빠뜨린 프랑스 폭력시위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저엔 지난 에너지 위기 이후 급등한 물가와 이로 인한 생활비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반면 유럽 각국 정부는 재정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분노한 시민들이 곧바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중 하나가 에너지 요금을 낮추는 일이다. 두 번의 에너지 위기를 겪은 세계는 미래 에너지믹스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5년 전 위기는 재생에너지가 기대했던 전력을 생산하지 못해 발생했고 이번 위기는 호르무즈 화석연료 흐름이 끊기며 일어났으며, 그 결과 폭염과 AI 등으로 인한 전력수요 급증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며 에너지가 부족해졌다. 이제 세계는 흐름이 끊기지 않으면서도 안정적 공급을 담보할 저렴한 에너지원을 늘려나갈 것이며 새로운 에너지원보다 검증된 기존 연료와 인프라를 지킬 것이다. 과도한 해외 의존을 줄이는 과정에서 국내 화석연료 개발과 탐사를 늘리고 연료 비축을 강화할 것이다. 유럽은 일시적이라던 화석연료 보조금을 또다시 꺼내며 국민을 달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적으로 목격한 유권자는 정권을 바꾼다. 에너지 비용상승과 지지율은 반비례한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은 이제 극우 정권 교체를 걱정하고 있다.

[기자의눈] 삼성 겨눈 공정위의 이상한 뒷북 칼춤

조선시대 형장의 망나니는 칼을 휘두르기 전에 춤부터 췄다. 입에 머금은 술을 칼날에 뿜고, 칼을 돌리며 형장을 몇 바퀴 돈다. 형 집행에는 필요 없는 몸짓이다. 그 칼춤은 죄인이 아니라 구경하는 이들을 향했다. 그래도 망나니의 칼춤에는 순서가 있었다. 죄인이 형장에 끌려 나와 있을 때 춤을 췄다. 형이 끝나고 죄인이 풀려나 형장이 텅 빈 뒤에 홀로 칼을 돌리는 망나니는 없었다. 그런데 주병기의 공정거래위원회가 그 일을 했다. 공정위는 27일 삼성전자 갤럭시 S21·S22와 갤럭시탭 S8 광고가 소비자를 속였다며 과징금 201억1400만원(잠정)을 매겼다. '고사양 게임도 거뜬하다'고 광고하면서, 게임만 켜면 성능이 묶인다는 사실은 숨겼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 광고가 마지막으로 나간 건 2022년 3월이다. 삼성은 그달 업데이트로 성능 제한을 풀었고, 공정위 심사보고서도 그날을 위법 행위가 끝난 날로 적었다. 소송을 냈던 소비자 1690명은 올해 법원 조정을 받아들이고 공정위 신고마저 거둬들였다. 국내외 소송 8건도 지난달로 모두 끝났다. 죄인이 끌려 나왔던 형장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공정위는 그 빈 형장에 4년 반 만에 들어와 201억원짜리 칼을 돌렸다. 이번에 칼을 든 근거도 묘하다. 공정위는 일부 게임 성능이 최대치의 30%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자체 실험으로 검증하지 않았고, 조건도 통제되지 않은 일부 유튜버의 테스트 영상을 사실상 근거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초 대신 장터에 떠도는 소문을 받아 적어 판결을 내린 꼴이다. 법원에서 이미 다툼이 정리된 사안에 다른 결론을 내리려면, 그보다 무거운 증거가 있어야 한다. 4년 반을 들여 내놓은 근거가 그 정도라면 궁색하다. 죄의 무게도 달아보자. 발열·배터리·성능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최적화는 세계 모든 제조사의 숙제다. 그 사실을 광고에서 뺀 건 잘못이지만, 죄목의 실체는 기술을 속인 게 아니라 설명을 빠뜨린 것이고, 그마저 2주 만에 스스로 바로잡았다. 이미 고친 잘못에 뒤늦게 201억원의 칼이 내려온다면, 어느 기업이 새 기능을 선뜻 내놓겠나. 기준이 보이지 않는 시장에서 기업은 새 기능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고, 그 부담은 결국 새 기능을 기다리던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그럼 칼춤을 출 만큼 죄가 컸는가. 표시광고법은 경쟁 질서를 크게 해치거나, 소비자 영향이 크거나, 부당이득이 생긴 경우에 과징금을 매기도록 한다. 그런데 GOS 부가설정이 적용된 게임에 한 번이라도 다시 접속한 S22 사용자는 1.47%로 추정된다. 명백한 거짓·과장 광고도 자진 종료를 감안해 경고로 끝낸 선례가 적지 않다. 곤장 몇 대로 끝날 일에 칼을 뽑아 든 격이다. 국민이 공정위에 칼을 맡긴 건 그 칼이 시장의 진짜 죄를 베어주길 바라서다. 담합을 끊고, 진입장벽을 허물고, 속은 소비자를 구제하는 칼이다. 지금의 GOS 처분은 이상한 뒷북 칼춤 공연처럼 보인다. 한 야당 의원의 지적처럼 '경제를 살리는 칼'이 아니라 '기업을 잡는 칼'로 비치는 것도 그래서다. “한번 찍히면 4년 뒤에도 형장에 다시 선다"는 수군거림 말고는 남는 게 없다. 이럴 바엔 칼끝을 거두고 판관석부터 돌아보길 권한다. 빈 형장의 칼춤은 집행이 아니다. 뒷북이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이슈&인사이트] 전자투표가 바꾸는 재개발·재건축의 민주주의

요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주택 매매가 상승과 전세 물량 급감으로 주거 안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런 우려에 대응해 다양한 정책 수단으로 주택 수요 조정과 공급 확대를 통한 해결책을 찾고 있다. 다만, 기존 신도시 개발처럼 신규로 대규모 택지 개발을 하기에는 이미 수도권에 개발할 나대지, 임야, 농지가 별로 없다. 국공유지 중 일부 시설을 철거하고 주택 건설 부지를 확보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특정 용도로 이용되고 있거나 이용 계획이 있는 경우 반대 의견을 설득해야 하는 또 다른 노력과 시간이 요구된다. 결국 현재 상황에서 수도권에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민간 주택과 상업시설 등을 철거하고, 그 부지에 신규 주택을 건설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통상 재개발·재건축 사업이라고 부르는 민간의 도시정비사업이 바로 그 주된 해결 수단이다. 이런 현실을 인식해서인지 최근 들어 정치권을 비롯한 정부에서는 재개발·재건축 조합 설립이나 공공 시행자 지정 동의 요건을 완화하거나 시공사 선정 등 사업 절차와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지원책의 하나로 서울시에서도 정비사업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조합 총회의 전자투표와 온라인 총회 비용을 최대 100%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이를 통해 총회에 소요되는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사업 진행 과정에서 수시로 개최가 필요한 총회 개최 준비 기간을 단축해 궁극적으로 정비사업 기간 단축까지도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시정비사업 조합의 총회 개최와 운영 관련해서는 비단 사업 기간 단축이란 이유 외에도 종래 개선을 요구하는 의견들이 많았다. 조합 총회일 전에 홍보요원들, 일명 OS를 통해 징구하는 서면결의서로 사실상 이미 총회 안건을 통과시킨 후 총회 개최 일자에 요식행위로 조합 총회를 진행한다는 비판이었다. 이렇게 홍보요원들이 조합원 대다수를 상대로 서면결의서를 걷어 총회 의결이 이루어지면, 사실상 도시정비법과 실무를 잘 알지 못하는 조합원들은 총회 자료집만 보고 제대로 된 토론도 없이 투표하게 된다. 사실 총회 자료집도 전문적이고 축약된 내용이 많아 일반 조합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실제 현장으로 조합운영 실태점검을 나가 보면 조합 집행부가 큰 비용을 들여 홍보요원들을 고용한 후 총회 안건에 대해 조합 집행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설명하거나 안건 찬성을 유도하는 경우들이 있어 조합원들의 불만이 많다. 또한, 총회에 참관해 총회 진행 절차를 보다 보면 미리 걷어 둔 서면결의서를 넣어 둔 봉투를 총회 일자에 개봉해 개표하는 것이 원칙인데도 미리 서면결의서를 개봉해 개표하기 쉽게 봉투와 분리해 모아 두거나, 심지어 편의를 위해 집계까지 미리 해둔 경우도 보게 된다. 이런 경우는 조합원들로부터 그 서면결의서의 위조 여부까지도 의심을 받게 될 수 있음에도, 조합 집행부는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을 때도 있다. 이런 점에서 도시정비법령 개정으로 오프라인과 병행으로라도 온라인 총회 개최가 가능해지고, 전자투표로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조합원 입장에서도 바람직하다. 구조적으로 보면 도시정비사업 조합은 자기 재산을 출자한 조합원이 주인인데도,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조합원들이 소외된 경우가 많다. 주주자본주의도 아직 제대로 관철하지 못한 우리 경제의 구조와 인식이 도시정비사업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도시정비사업에서 온라인 총회와 전자투표가 가능하게 되면 기존의 서면결의서 제출 방식보다 많은 조합원들이 총회 개최일에 총회에 참석해 상정된 안건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고 논의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불어 도시정비법 시행령에서 정한 것처럼 총회 개표 전에는 전자투표 결과에 대해 집계 결과를 알 수 없도록 제한을 두어 공정성도 확보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합 집행부의 전횡 역시 적절히 제어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정치적 영역에서만 참여권과 공정한 투표 등 절차권 보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도시정비사업이란 경제적 영역에서도 조합의 주인인 조합원들의 의사를 반영한 조합 운영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신속한 도시정비사업 추진을 통한 주거 안정이라는 국가 정책적 필요성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재산권 보호와 적법 절차에 따른 권리 행사라는 이상을 실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양희철

[EE칼럼] 전력시장 개혁이 먼저다

송전망이 제대로 갖춰졌다면 전기는 하나의 가격으로 거래되어야 한다. 하지만 송전망이 부족한 전기는 어디서 생산하고 소비하느냐에 따라 공급비용이 달라진다. 그래서 송전혼잡과 손실을 가격에 반영하는 지역별 도매가격제(LMP, Locational Marginal Price)가 타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좋은 취지가 좋은 제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송전망을 독점하는 한전체제하에서 비용기반 도매시장과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소매요금, 불투명한 정산구조를 그대로 둔 채 지역만 나누면 시장개혁은 할인 재원을 마련하는 수단으로 변질된다. 전력시장의 가격기능을 회복하고 제대로된 시장개혁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전력시장의 도매가격 차등제는 몇 가지 문제와 전제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 첫째, 소매요금을 미리 지역적으로 차등하겠다고 발표하고 도매가격을 여기에 끼워 맞추고자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소매를 어느 곳도 올리지 않고 지역을 전부 차등이라는 명목으로 할인해 준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지역별 발전비용과 송배전·계통운영 비용을 계산하고, 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나누고 누가 얼마나 부담할지 정한 뒤 소비자 요금을 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인하 폭을 먼저 약속하면 도매가격은 실제 전력의 가치를 발견하는 가격이 아니라 그 약속을 충당하는 수단이 돼버린다. 지지난 정부에서 한번도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았고, 지난 정부는 산업용만 7번이나 인상했다. 올리기는 너무나도 어려운 부담이지만 깎아주는 일은 국민들이 반대할 이유도 없고 너무나도 수월한 정치적 선택이다. 지극히 포퓰리즘의 극치이다. 가격을 안올리고 시스템이 유지될 수만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한전은 여전히 210조의 부채를 짊어지고 부채한도의 법적 줄타기를 하고 있다. 앞으로 재생에너지 확충과 전기국가를 외치면서 송전망 건설을 위한 요금인상이 필요하다는 요구에는 전혀 반응이 없다. 가스공사도 14조원의 미수금을 여전히 회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 미래 세대의 몫이고 여전히 이자를 내고 있는 소비자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방치되고 있다. 지역적으로도 수도권의 비용 부담은 그대로 두고 다른 지역의 요금만 낮춘다면 부족한 재원의 부담 주체를 밝혀야 한다. 산업용만 할인하는 정책 역시 공급원가에 맞는 정책인지? 가정용과 일반용 등의 원가와 합치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균형발전 지원은 목적과 재원을 명확히 하고 전기요금 속에 숨겨서는 안 된다. 둘째, 도매가격 차등과 소매요금 차등의 연결고리가 약하다. 도매시장을 수도권·비수도권·제주로 구분하지만, 소매요금 논의는 별도의 권역과 지역우대 기준을 사용한다. 전기적 혼잡을 반영한 구분과 지역균형 발전정책은 엄연히 다른데 지역균형에 모든 것을 올인해 버린 실정이다. 도매가격에 망 이용비와 계통운영비를 합산해 소매요금으로 전달하는 원칙 없이 지역 차등의 효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가격을 좌우하는 계통운영 기준의 투명성이 부족하다. 원칙적으로 수도권 융통한계와 발전기별 선로민감도를 활용한다는 방향이 제시돼 있다. 문제는 원칙의 부재보다 구체적 적용을 검증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송전한계량을 어떤 고장과 안전도 가정으로 산정하고, 제약발전기의 가격결정 자격과 예비력 확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지역가격은 달라진다. 중앙급전 발전기는 전기적 영향으로, 비중앙급전 발전기는 소재지로 구분하는 차이도 설명이 필요하다. 입력자료·산식·급전결과와 민감도 분석을 공개하고 독립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송전망 건설 지연의 책임까지 발전사업자의 가격 하락으로 대체해서도 안 된다. 넷째, 저렴한 연료를 확보한 발전사가 그 성과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의 비한계 발전기는 비용을 낮추면서 기대이윤을 늘림과 동시에 SMP를 낮춰서 국민 전체에 편익을 제공한다.그런데 지역의 한계가격을 정하는 발전기가 연료비를 낮출 때 판매가격도 함께 하락하거나, 절감 이익을 회수한다면 노력의 보상이 줄어든다. 반대로 비싼 연료와 비효율은 보전해 주면서 절감 성과만 거둬들이면 비용을 낮출 이유가 약해진다. 이런 왜곡이 누적되면 단기 도매가격 인하와 달리 장기 공급비용과 전기요금에는 상승 압력이 생긴다. 연료조달 경쟁과 효율투자를 보상하는 가격입찰제로 이행하는 정산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다섯째, 지역가격을 적용한다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는 정부 정책과도 위배된다. 대부분 재생이 많은 곳이 공급이 넘치고 송전이 막힌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LMP로 낮아지는 발전단가를 적용받는 대부분은 지역 발전기는 재생에너지 발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장기 고정가격계약에서는 LMP를 적용하여 낮은 단가 계약이 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과도 결이 맞지 않는다. 단가는 낮추고 공급을 늘리라는 정책은 경제원론 수준도 안되는 비상식적인 원칙이다. 영국, 호주 등 노드별 가격제(nodal Price)를 실시하려다가 실패한 사례들은 다 재생에너지 확대의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역별 가격제는 소매 할인의 재원 마련이거나 일방적인 소수 발전사의 수익을 깎는 제도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전력공급 비용을 낮추는 제도여야 한다. 비용기반 시장의 한계를 넘어 가격입찰과 경쟁을 확대하고, 정산조정의 자의성을 줄이며, 송전망 투자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도매·소매·계통·계약을 따로 고쳐서는 정직한 가격이 나오지 않는다. 전력시장 전체를 함께 개혁할 때 지역별 가격도 산업경쟁력과 에너지 전환을 뒷받침할 수 있다. 조홍종

[기자의 눈] 오세훈 무죄에도 尹·추경호 남은 국힘 ‘첩첩산중’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국민의힘은 일단 한숨을 돌렸다. 시장직 상실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면서 오 시장도 정치적 부담을 덜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당의 사법리스크 해소로 받아들이기는 이르다. 당의 재정과 정치적 명분을 흔들 재판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오 시장의 무죄는 차기 대권을 비롯한 보수 진영의 권력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가 작지 않다. 이처럼 오 시장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입지를 회복할 계기를 마련했지만, 국민의힘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국민의힘이 진짜 주목해야 할 고비는 따로 있다. 오는 11월 4일 예정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선고다. 윤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과 건진법사 전성배씨 관련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 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당선무효와 함께 국민의힘은 대선 때 보전받은 선거비용과 기탁금 등 약 397억원을 반환해야 할 수 있다. 단순히 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반환 의무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이어지더라도 국민의 세금으로 보전 받은 선거비용을 다시 내놓아야 하는 상황 자체가 부담이다. 그렇다고 반환을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책임 회피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국민의힘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선택지다. 11월 18일 예정된 추경호 대구시장의 12·3 비상계엄 관련 사건 1심 선고도 변수다. 추 시장은 비상계엄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의 국회 계엄 해제 표결 참여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무죄가 나오면 지도부는 '정치적 탄압론'을 앞세워 지지층 결집을 시도할 수 있다. 반면 유죄가 선고되면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의 공세가 거세지고 국민의힘은 계엄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두 재판의 결과가 당의 대응 전략과 정치적 입지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은 이유다. 오 시장의 무죄는 국민의힘에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을 줬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사건은 당의 재정적 부담을, 추 시장 사건은 계엄 책임을 둘러싼 정치적 부담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 한 고비를 넘겼다고 안도하기에는 다음 고비가 너무 가깝다. 국민의힘 앞에는 안도의 시간보다 더 무거운 시험대가 기다리고 있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이슈&인사이트] 꺼진 성장 엔진과 잠들지 못하는 금리

지난 몇 년간 미국 성장을 이끈 건 AI 인프라 투자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냥 엔비디아 칩을 사고 데이터센터를 짓고 전력을 끌어오는 천문학적 CapEx가 GDP를 떠받쳤다. S&P500 이익 증가분의 절반 이상이 Magnificent 7을 포함한 AI 기업에서 나왔다는 통계가 증거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자산 가격이 오르니 소비를 하는, 자산효과에 기대어 만든 성장이었다. 그런데 얼마전 그 믿음에 처음으로 균열이 갔다. 네오클라우드 대장 코어위브의 채권 금리가 15%에 육박했다. 쿠폰 9.625%짜리 2032년 만기 무담보채가 14.8%에 거래된다는 건 채권 가격이 8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는 얘기고, 시장이 신용을 부실 수준으로 본다는 뜻이다. 부채가 350억 달러가 넘는데 그 돈으로 GPU 서버를 사서 빌려주는 모델이니 금리만 올라도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구조다. DA Davidson의 Gil Luria가 말한 것처럼 AI 사이클이 삐끗하면 코어위브가 제일 먼저 가는 구조다. 여기에 가트너가 결정타를 날렸다. 2030년까지 네오클라우드 업체 80% 이상이 독립 운영을 중단할 것이라는 리포트다. AI 최적화 IaaS 지출은 2027년 660억 달러에서 2030년 1740억 달러로 커지지만, 반도체 세대가 교체되기 전에 투자금을 회수할 속도가 아니라는 계산이다. 데이터센터 주인들이 자본비용과 12% 수익률을 맞추려면 2030년까지 8조5000억 달러를 벌어야 하는데, 가트너가 보는 실제 AI 수익은 3조6000억 달러에 불과하다. 3조5000억 달러가 손상될 수 있다는 경고가 그래서 나왔다. 하이퍼스케일러는 버틸 수 있어도 GPU만 빌려주는 네오클라우드는 버틸 재간이 없다. 그래서 코어위브 -15.5%, 네비우스 -10%, IREN -12%, 코스피 하루 7.15% 폭락, 하이닉스 ADR까지 같이 무너졌다. 여기서 제일 이상한 건 금리다. 지난주 미국 9월 CPI와 PPI는 모두 예상 밖이었다. CPI YoY 3.7%로 예상 3.6%를 넘었고, PPI는 MoM 0.5% 예상이 1.3%로 뛰었고 코어 PPI도 0.3% 예상에 0.7%를 기록했다. 교과서대로면 금리 폭등이 맞다. 실제로 발표 직후 10년물은 5.329%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10년물이 5.10%까지 내려오면서 13bp가 빠졌다. PPI가 뜨겁다는데 금리가 빠졌다는 건 자산이 SAFE-HAVEN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시장이 느낀 건 물가 부담이 아니라 금리 상승으로 인한 성장 둔화의 공포였다. 외신 헤드라인처럼 AI Credit Fears Eclipse Hot CPI였다. 이게 왜 무서운가. 미국은 수출이 안 되는데도 성장을 했다. 월급이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자산 가격이 오르니 소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GDP 70%인 소비가 자산 가격에 기대어 있는 구조다. 그러니 성장이 멈춰 자산 가치가 꺾이면 곧바로 소비가 꺾이고 GDP가 꺾인다. 약한 고리인 네오클라우드가 먼저 맞았고, 성장이 꺾이면 자산 가격 하락은 순차적으로 올 것이다. 진짜 딜레마는 다음이다. 원래 성장이 꺾이면 금리를 내려 부양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와 인플레가 있다. 브렌트 104달러다. 금리를 못 내린다. 성장이 꺾이는데도 고금리를 유지해야 하는 장기 고금리 시대가 이어질 지 모른다. 성장이 꺾이니 내려야 하는데 고유가와 인플레로 못 내리는 딜레마다. 우리도 금리 상승이 예고된 상황에서 싼 돈 빌려 투자한 부동산이 타격을 받을 것이다. 우리 역시 반도체 주식과 영끌한 아파트로 버텼다. 성장은 꺼졌는데 금리는 잠들지 못하는 아이러니, 이제 한여름 밤의 꿈에서 깰 시간이다. bienns@ekn.kr

[김성우 시평] 에너지전환의 공급망 리스크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필자는 지금 10월 26일부터 27일까지 파리에서 열리는 'Europe-Asia Clean Policy Workshop'에 참석 중이다. 이 행사는 올해 4년차로 유럽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몽테뉴연구소(Institut Montaigne) 주관하에 유럽이 한국과 일본을 초대해 에너지전환 관련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이다. 국가별 관련 정부, 기업, 전문가가 머리를 맞댄 현장의 핵심 화두는 단연 '에너지전환 기술의 공급망 리스크'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을 겪으며 화석연료 의존의 취약성을 뼈저리게 체감한 세계는 자국 내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화석연료 공급망 리스크에서 벗어나려다 재생에너지와 배터리 핵심 공급망의 특정국 의존이라는 새로운 리스크를 마주하고 있다. 이에 3자 모두 에너지전환의 기술 수요가 지속 성장하고 있는 시점에 어떤 수요측 수단(Demand-Side Measures)을 도입하고 함께 협력해 공급망 리스크를 줄여야 할지에 논의가 집중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에너지전환 기술의 대중국 공급망 의존도가 매우 높다. 태양광의 경우, 중국산 모듈 비중은 2023년 29%에서 2024년 58%, 지난해 69%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불과 2년 만에 국내 시장의 주도권이 국산에서 중국산으로 넘어간 셈이다. 심지어 모듈을 구성하는 핵심 부품인 셀의 한국산 비중은 2021년 35%에서 지난해 4%까지 떨어졌다. 이는 국내 태양광 발전소의 80% 이상이 100kW 미만의 소규모 설비로 영세 투자자 입장에서는 가격에 민감하고, 그나마 국내에서 생산되는 셀 제품들도 미국을 향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전기차나 에너지저장장치(ESS)에 활용되는 배터리 역시 사정이 크게 나은 것은 아니다. 8월 한달간 국내에서 판매된 중국산 배터리 탑재 국산 전기차가 40%를 넘어 1년 사이에 16% 포인트 올랐다. 공급망 의존도는 더 심각하다. 지난해 기준 배터리에 필수인 음극재의 핵심 소재인 흑연의 약 98%를 중국에 의존했고, 양극재 핵심 소재인 전구체 의존도도 94%에 달해 상류 소재에 대한 통제가 있을 경우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배터리뿐만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전력망 안전화 요구로 폭발적 성장을 시작한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에너지전환 기술의 공급망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가격 경쟁만으로 승부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이에 우리 정부는 최근 보조금과 세제, 공공시장 제도를 아우르는 다양한 비가격 정책을 구체화하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단의 재생에너지 공급의무 달성을 위한 경쟁입찰에서 탄소배출량 검증 모듈 사용 여부에 따라 차등 배점(630kg·CO₂/kW 이하 모듈에 20점 배점 등)을 부여하고, 기후부의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에도 저탄소 인증 가점을 신설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통해 탄소배출량 655kg 이하 저탄소 모듈을 통합투자세액공제 대상에 포함시켰고, 내년부터는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이차전지 분야의 품목에 대해 국내에서 생산할 경우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할 방침이다. 단순 기술투자를 넘어 발전시설 설치와 품목 생산에 세제 혜택까지 연계한 것은 모든 에너지원을 통틀어 진일보한 시도다. 그러나 에너지전환 기술의 공급망 리스크는 글로벌 차원으로, 자국 중심의 분절된 정책만으로는 리스크 대응에 한계가 있다. 파리 워크숍에서 유럽과 한∙일 참가자들이 치열하게 논의하고 있는 해법 중 하나가 환경성과 신뢰성을 담보하는 '상호인정'과 '신뢰 기반 파트너십'인 이유다. 지원정책, 공공구매, ESG규정 등 서로의 기준을 연계하고 상호 인정함으로써 공동으로 공급망 리스크를 낮추자는 취지다. 예컨대, 탄소국경세 부과나 전기차 보조금 지급에 기준이 되는 제품별 탄소배출량 검증을 상호 인정하는 것이다. 한 국가가 계산한 제품별 탄소배출량을 다른 국가에서도 인정해 주면, 제품별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우대 혜택을 부여하는 공급망 리스크 완화 정책의 효과도 커진다. 제품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전기의 탄소배출량의 경우 중국이 상대적으로 높은 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은 유럽과 이미 건축기자재 등 일부 제품에 대해 환경성적표지 상호인정협정을 체결하고 있는데, 필자는 이 선례를 다양한 제품과 제도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의 태양광 및 ESS 시장규모는 한국의 10배가 넘는다. 에너지전환이 단순한 발전설비의 변경 및 확충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진화가 병행되어야 하는 만큼, 금번 워크숍이 에너지전환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기업의 수출시장 확대에도 도움이 되길 기대해 본다. bienns@ekn.kr

[EE칼럼] 잠기는 섬, 솟아나는 섬

한쪽에서는 섬이 잠기고, 다른 쪽에서는 섬이 솟아난다. 남태평양 투발루와 카스피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새 섬은 땅이 융기한 게 아니라 호수의 물이 빠져 바닥이 드러나며 생겼다. 물이 넘쳐도, 모자라도 삶의 터전은 사라진다. 지구 역사에 늘 있었던 일이지만, 문제는 너무 빨리 진행되고, 원인이 인간이라는 점이다. 투발루의 평균 해발고도는 불과 2m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이곳 해수면은 2023년까지 30년 새 약 15㎝ 상승했다. 이 낮은 나라에서 몇㎝의 차이는 침수의 빈도와 피해 정도를 크게 바꾼다. 투발루는 석호에서 모래를 퍼 올려 바다를 메우고 방어시설을 세우고 있다. 일련의 매립 사업이 마무리되면 주섬에 약 0.21㎢의 땅이 추가된다. 국토가 약 26㎢인 나라가 고향을 지키려고 벌이는 사투다.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금세기 말의 전망치보다 오늘 발을 디딜 땅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세계 최대 내륙 수역인 카스피해에서는 거꾸로 물이 줄었다. 카자흐스탄 관할 수역의 수위는 1996~2025년 약 2.45m 낮아졌다. 바다로 나가는 물길이 없는 이곳에서는 기온 상승에 따른 증발 증가에 댐과 취수로 인한 유입량 변화까지 겹친다. 수심이 대체로 3~6m인 북부 연안에서는 조금만 물이 줄어도 해안선이 멀리 후퇴한다. 항만과 어업의 기반이 흔들리고 습지가 줄어든다. 바닷물의 열팽창과 육상 얼음의 융해로 해수면이 오르는 대양과는 조건이 다르다. 같은 온난화가 지형과 물의 순환에 따라 정반대의 풍경을 만든다. 카스피물범의 사정은 땅이 늘어난다고 살 곳이 늘어나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2021년 수천 마리가 모였던 섬은 이후 육지와 연결됐다. 섬을 둘러싸고 사람의 접근을 막아주던 물의 울타리가 사라진 것이다. 쉴 곳을 잃은 물범은 더 많은 어업과 선박, 석유·가스 사업에 노출된다. 새끼를 낳을 겨울 얼음마저 불안정해진다. 인간이 지도 위에서 새 땅을 발견하는 동안 물범은 제 집을 잃는다. 근본적인 해법은 온실가스 감축이다. 그러나 배출을 줄인다고 내일 당장 수면이 제자리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바다에 축적된 열과 빙상의 느린 반응 때문에 해수면 상승은 오래 이어진다. 감축의 효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살아야 하므로 적응을 함께 추진하는 수밖에 없다. 투발루의 해안 방어와 안전한 거주지 확보, 카스피해 유역의 물 사용 조정과 물범 피난처 보호가 모두 시급하다. 다만 방조제와 매립으로 커지는 위험을 감당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적응은 감축을 미루는 구실이 될 수 없고, 감축 약속도 당장의 생존을 대신할 수 없다. 이 생존에는 돈과 권력이 필요하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앞칸 승객들이 호사를 누리는 동안 꼬리칸 사람들은 추위와 굶주림을 견딘다. 같은 열차에 탔다고 같은 재난을 사는 것은 아니다. 기후위기를 일으킨 책임이 없는 물범, 배출에 기여한 몫이 작은 태평양 빈국이 먼저 삶의 자리를 빼앗기는 현실은 그 장면을 닮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지킬 자원과 결정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탄소를 많이 배출한 사회가 감축의 속도를 흥정하는 사이, 협상력이 약한 이들은 살아남을 비용부터 치른다. 그러므로 적응을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주문으로 남겨두면 안 된다. 많은 탄소를 배출하며 부를 축적한 나라들이 감축을 서두르고 취약국의 적응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적응 지원금을 내고 화석연료 사업을 계속 늘린다면, 한 손으로 방조제를 쌓으며 다른 손으로 물을 밀어 넣는 셈이다. 기후협상에 대표를 보낼 수조차 없는 생물들의 서식지도 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방조제의 높이만큼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누가 보호받느냐다. 투발루와 물범에게 함께 버티자고 하면서 앞칸의 생활을 고집한다면, 지키려는 것은 지구인가, 특권인가.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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