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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오천피·천스닥 달성 이후 남은 과제는

코스피 5000, 코스닥 1000. 한국 증시가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장중 변동성은 있었지만 지수는 결국 사상 최고치에서 거래를 마쳤다. 시장 분위기도 단기 조정 우려를 밀어내는 쪽으로 기울었다. 다만 지수 상승과 동시에 원/달러 환율이 함께 오른 점은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지점이다. 코스피가 5000선을 처음 넘긴 날에도 환율은 상승했다.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은 1479원까지 올랐다. 주가와 환율이 동시에 오르는 장면은 한국 자본시장에서 익숙하지 않은 조합이다. 환율이 오른다는 건 원화 가치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뜻이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외국인 자금 흐름과 기업들의 비용 부담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예전처럼 환율 상승이 곧바로 수출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구조도 아니다. 해외 생산 비중이 커진 만큼 환율 변동이 오히려 기업 실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떄문이다. 지수 상승의 내용 역시 점검이 필요하다.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반도체 대형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1년 사이 빠르게 커졌다. 글로벌 반도체 사이클과 인공지능(AI) 투자 기대가 지수를 끌어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한국 경제 전반의 체력 강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또 지수 흐름과 달리 기업들이 느끼는 경기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은행 조사에서도 기업심리지수는 기준선인 100을 밑돌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내수와 서비스업 회복은 여전히 더딘 편이다. 기업들은 원가 부담과 경기 불확실성을 쉽게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주식시장의 기대가 아직 실물경제 전반으로 퍼졌다고 보긴 어렵다. 코스닥도 4년 만에 1000선에 도달했고 숨 돌릴 틈 없이 1100까지 달려왔다. 지속성을 장담하기엔 갈 길이 멀다. 기술력과 사업 모델을 선별할 수 있는 시장 평가 기능, 부실 기업에 대한 정리, 중소형 성장주에 대한 장기 투자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수 상승은 일시적 흐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주식시장은 늘 기대를 선반영한다. 다만 지수가 앞서가는 동안 환율과 실물경제가 보내는 신호를 함께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기록 경신 자체에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그 숫자를 떠받치는 기업의 수익 구조와 경제 여건이 함께 개선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오천피와 천스닥이 일시적 이정표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지수의 높이보다 그 기반을 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이슈&인사이트] 기후금융의 재정렬과 한국 금융의 선택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금융이 기후변화 대응의 선봉에 서야 한다는 선언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기후금융 진영에 의미심장한 지각변동이 있었다. 미국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주요 대형은행들이 넷제로 은행 동맹(NZBA·Net-Zero Banking Alliance)을 떠났다. 블랙록, 뱅가드 등 자산운용사와 알리안츠 등 보험사 역시 유사한 행보를 보였다. 2025년 1월 17일 미국 연준(Fed)도 글로벌 중앙은행 간 모임인 녹색금융협의체(Network for Greening the Financial System)에서 전격 탈퇴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기후금융 이니셔티브가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 이후 바이든 전 대통령 시절 유행하던 '깨어있는 자본주의(woke capitalism)'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공화당이 장악한 텍사스, 웨스트버지니아 등 다수 주 정부는 ESG를 추진하는 금융기관에 노골적인 제재와 경고를 가하고 있다. 예컨대 텍사스의 경우 금융기관이 화석연료 산업에 대출을 줄이면 '텍사스 연기금'의 투자를 받지 못한다. 기후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반독점 소송과 정치적 리스크로 연결되는 환경에서 미국 금융기관들이 방어적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기후금융의 실패"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겉으로 보면 기후금융의 후퇴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단순한 이탈이라기보다 정치·제도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나타난 '재정렬'에 가깝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장은 여전히 저탄소 전환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하며 재생에너지와 저탄소 전환 투자의 필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정치와 시장이 엇갈리는 국면이다. 이러한 글로벌 흐름은 국내 금융권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 은행들은 이미 금융배출량(financed emissions)을 기후 리스크 관리의 핵심 지표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수 은행이 2050년 넷제로 목표와 2030년 중간 감축 목표(기준년도 대비 30~40% 감축)를 설정했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비중(25.6%, '22년 기준)이 다른 나라(OECD 평균 13.4%)보다 높다. 더욱이 중소기업 대출이 은행 기업대출의 대부분을 차지(중소기업대출/기업대출=80%)하는 구조다. 금융배출량을 단기간에 줄이기 어려운 이유다. 중소기업은 감축 유인이 약하고 친환경 기술에 투자할 여력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건에서 2030년 중간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은행들이 대출을 줄이면 그 피해는 중소기업에 집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의 시각은 분명하다. 작년 금융감독원의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기후금융 컨퍼런스, 2025년 3월 18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탄소 감축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시나리오가 무대응 시나리오보다 장기 경제성장률이 높고 금융권 손실도 더 적게 나타났다. 이는 기후 대응이 비용이 아니라 '위험 관리이자 성장 전략'임을 보여준다. 한은 총재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단기적으론 고탄소 산업의 자산 가치 하락이라는 충격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기술 혁신과 기후 리스크 완화를 통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금융은 더 이상 선언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 구호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 언어로 재정의돼야 한다. 미국 금융기관들의 이탈은 기후금융의 종말이 아니다. '이념 중심 동맹'에서 '실질적 위험 관리'로의 전환 신호일 수 있다. 한국 금융권 역시 글로벌 정치 지형 변화에 흔들리기보다 국내 산업 구조와 지역 경제 특성을 반영한 현실적 기후금융 전략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시점이다. 기후 리스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외면할 것인가 관리할 것인가"다. bienns@ekn.co.kr

[EE칼럼] 세계적 전력공급 부족의 원인

미국 PJM이 지난달 실시한 용량 경매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이 경매는 미국 13개 주와 6,500만 명에 공급할 피크 전력 자원 가격을 결정한다. 2027~2028년 공급용량 가격은 164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로 인해 2026년 일부 PJM 고객 전기요금이 최대 5% 상승할 것이며 추가 상승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전기요금 상승 요인은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급증에 기인한다. PJM은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최대 수요가 32기가와트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며, 이 중 2기가와트를 제외한 전량이 데이터 센터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급용량 충족은 말처럼 쉽지 않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7월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전력 공급원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2030년 광역정전 위험이 100배 증가할 것이라 경고했는데 209기가와트의 신규 발전용량 중 기저발전이 22기가와트에 불과하다는 점을 신뢰성 위험요소로 짚었다. 에너지부가 또 하나 지적한 중요한 점은 104기가와트의 기저 용량 폐지 경고였다. 이 안정적 공급원을 적시에 대체 없이 폐지하게 되면 풍력과 태양광이 기대했던 전력을 공급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정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주장했다. 실제 미국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발전소를 총동원해 공급부족에 대응하고 있음에도 전력수요 충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이 공급부족은 바다 건너 유럽에서 먼저 경고등이 켜졌다. RWE 마르쿠스 크레버 CEO는 2024년 11월 링크드인에 올린 글에서 도매전력가격이 메가와트시 당 800유로 이상 상승한 이유로 바람과 햇빛이 없는 '둥켈플라우테'를 메꿀 전력 공급원이 10기가와트 이상 부족한 상황을 언급하며 공급 안보 구축을 위해 발전소 용량을 추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과 독일은 실제로 탈원전과 탈석탄 정책으로 기존 발전소를 다른 안정적 대체원 없이 폐지하면서 이를 태양광 풍력발전용량 증대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온 건 정전위험과 전기요금 상승이었다. 결국 2023년 탈원전을 감행한 독일의 선택은 2031년까지 석탄발전 폐지 금지와 함께 10기가 이상의 가스발전소를 추가하는 것이었다. 올해 4월 대정전이 발생했던 스페인은 아예 '안전모드'를 통해 재생에너지의 출력을 크게 줄이고 이를 기존의 가스 발전으로 메꾸고 있는데 산체스 정부는 이 안전모드를 2026년 내내 운용할 예정에 있다. 스페인의 이베르드롤라와 엔데사는 알마라즈 원자력발전소 수명연장을 신청했는데 이들은 정부가 연장을 허가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안정적인 신규용량 확보까지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산적해있다. 빠른 건설이 가능한 가스발전소의 경우 공급망 비용상승으로 건설비용이 3배 이상 올랐으며 가스 터빈 보틀넥으로 대기시간이 최대 7년 소요될 수 있다. 신규 원전 역시 인허가부터 건설까지 10년이 걸리며 SMR은 당장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재생에너지를 24시간 365일 초단위 정전도 용납하지 않는 데이터센터의 연료로 생각하는 사업자는 거의 없다. 결국 세계는 기존 발전소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비용이 적게 들면서 사회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는 중국 에너지 정책 대원칙인 선립후파(先立後破)와 일맥상통한다. 2024년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기후수석 협상가 쑤웨이는 이 원칙을 설명하며 신뢰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기도 전에 전통 에너지를 퇴출하는 것을 경계한 바 있다. 중국은 기존 발전소를 유지하면서 올해에만 80기가와트의 신규 석탄발전을 승인했다. 전력수요 급증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공급부족의 원인은 하나같이 신뢰할 수 있는 기존 발전소의 대안 없는 폐지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유일하게 탈원전과 탈석탄, 탈가스를 한꺼번에 실행하려 하고 있으며 이를 간헐성 자원인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발 정전 위험 해소와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면 한국은 단 하나의 기존 발전소도 함부로 성급히 폐지해서는 안 된다. 이 간단한 교훈을 잊은 세계는 전력부족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기자의 눈] ‘반도체 실적’에 취할 때가 아니다

국내 증시 사상 최초 시가총액 1000조원 돌파,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20조원. 삼성전자가 불가능해 보이던 기록을 새롭게 동시에 달성한 두 개의 실적이다. 삼성전자의 화려한 기록의 배경은 비교적 분명하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로 반도체 업황이 빠르게 회복된 영향이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메모리 슈퍼 호황에 힘입어 16조~17조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번 호황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마냥 낙관하기가 어렵다. 현재의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AI 투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를 견인한 결과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생산 공백'이다. 메모리 제조사들이 HBM 생산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들어가는 범용 D램 공급이 줄었고, 이것이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며 실적을 떠받쳤다. 수요의 폭발적 증가라기보다 공급구조 변화에 따른 가격 효과라는 점에서 이번 호황의 지속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영원하지 않다는 점은 과거 전례가 증명한다. 업계는 코로나19 특수로 2021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2년 뒤인 2023년 정반대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연간 영업이익 51조원을 웃돌던 삼성전자는 2년 만에 7조원 안팎으로 크게 쪼그라들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수익 구조다. 삼성 반도체 실적은 여전히 메모리에 과도하게 쏠려 있다. 파운드리와 시스템LSI를 아우르는 비메모리 사업은 적자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TV·가전 사업부 역시 지난해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이들 사업은 중국 기업들의 공세에 정면으로 노출돼 있다. 최근 중국 TCL이 일본 소니 TV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한 결정은 상징적이다. 한때 TV시장을 호령하던 소니가 중국기업에 경영권을 넘기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글로벌 TV산업의 판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20년 연속 세계 TV 시장 1위를 지켜온 삼성전자 역시 안심할 수 없는 대목이다. 지금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메모리 호황에 가려진 다른 사업의 위기를 직시해야 한다. 메모리 이후를 책임질 성장축이 무엇인지, 그리고 비메모리·가전 사업에서 다시 한 번 '초격차'를 만들 수 있는 전략을 찾아내는 답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김병헌의 체인지] 증시는 앞서가고 경제는 멈췄다… 코스피 6000의 조건

코스피가 장중 5000을 넘어섰다. 다음 고개는 6000일까, 아니면 숨 고르기일까. 증시는 늘 미래를 앞서 달리지만, 지금 한국 경제의 현재 시제는 결코 밝지 않다. 수출 대기업의 실적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지만, 내수와 민생의 체감 온도는 여전히 영하권이다. 주가는 질주하는데 성장률은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코스피 5000이라는 숫자는 환호와 함께 불편한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이 상승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그리고 누구를 위한 상승인가. 코스피 5000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1980년 지수 100에서 출발한 한국 자본시장은 반세기 동안 제조업을 축으로 성장해 왔다. 고도성장기에는 건설과 철강이 국가 성장을 떠받쳤고, 중국의 고속 성장기에는 조선·해운·중후장대 산업이 수혜를 입었다. 코로나 이후 유동성이 풀리자 배터리와 바이오, 플랫폼 기업이 각광받았고, 최근의 급등은 AI 반도체와 로봇 기술, 방산 산업이 이끌었다. 코스피의 궤적은 곧 한국 산업의 진화 과정이었다. 그러나 지수는 늘 평균을 말할 뿐, 현실의 균열을 모두 보여주지는 않는다. 코스피가 5000에 도달하는 동안 상장 종목의 절반 이상은 오르지 못했다. 소수 초대형주의 상승이 지수를 끌어올렸고, 다수 기업은 제자리걸음이거나 후퇴했다. 수출 대기업은 환율 효과로 웃지만, 내수 기업은 매출 감소와 인건비·금융비용 부담에 시달린다. 성장률은 다시 역성장을 기록했고, 개인 투자자들은 250조원이 넘는 자금을 들고 해외 증시로 향했다. 국내 시장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이 같은 괴리는 해외에서도 반복돼 왔다. 미국은 팬데믹 이후 나스닥과 S&P500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중산층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기술주 주가는 폭등했지만 주거비와 의료비, 교육비 부담은 가계의 소비 여력을 갉아먹었다. 일본은 최근 증시가 30년 만에 활황을 맞았지만, 지방 상권은 여전히 침체돼 있고 실질 임금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자사주 소각은 주가를 끌어올렸지만, 생산성 낮은 기업을 과감히 정리하지 못한 한계가 남아 있다. 유럽 역시 금융 완화로 자산 가격은 방어했지만, 경직된 노동시장과 느린 산업 전환 탓에 성장 동력이 약해진 국가들이 적지 않다. 이 해외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증시는 정책과 유동성에 반응해 오를 수 있지만, 실물 경제는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코스피 6000, 7000을 이야기하려면 '다음 테마'보다 '다음 구조'를 먼저 봐야 한다.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이 시장에 남아 자원을 소모하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이른바 좀비 기업의 연명은 단기적 고용 안정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 산업의 자본과 인력을 빼앗는다. 동시에 AI·바이오·차세대 에너지 같은 미래 산업에서는 규제를 줄이고, 실패를 용인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연구개발이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어야 혁신이 쌓인다. 노동시장 역시 산업 전환의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 이동은 유연하게, 안전망은 두텁게 설계해야 한다. 한 산업에서 다른 산업으로 옮길 수 있어야 구조조정이 곧 사회적 충격이 되지 않는다. 공공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효율과 책임이 뒷받침되지 않는 재정 지출은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기업 역시 투명한 지배구조와 주주 친화적 경영으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배당과 투자, 성장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될 때 증시는 실물 경제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코스피 5000은 도착점이 아니라 시험대다. 숫자만 앞서가면 언젠가는 멈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상승이 아니라 더 단단한 토대다. 주가 상승이 고용과 소득으로 이어지고, 그 성과가 다시 소비와 투자로 되돌아오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을 때, 코스피의 다음 숫자는 목표가 아니라 결과가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구조 개혁은 언제나 고통스럽고, 그래서 늘 미뤄진다. 그러나 증시가 강할 때야말로 개혁의 정치적·사회적 비용을 분산시킬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코스피 5000이라는 호황의 순간을 놓친다면, 다음 조정 국면에서는 선택지가 훨씬 줄어든다. 지금의 상승을 '운'으로 흘려보낼 것인지, 아니면 경제 체질을 바꾸는 전환점으로 만들 것인지가 향후 10년 한국 증시의 경로를 결정할 것이다.

[이슈&인사이트] 베센트가 원화와 엔화의 환율 상승을 걱정하는 이유

주가지수 5천을 앞둔 지금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면서 우리 경제에 우려를 주고 있다. 환율의 상승 요인을 한은은 서학 개미의 탓으로 경제 관계자는 너무 많이 풀린 유동성이라고 주장 중이다. 지난달 한은과 기획재정부, 베센트 미 재무장관 그리고 올 초 대통령의 구두개입에도 불구하고 다시 올라온 환율은 지난 금요일 BOJ 금융정책결정회의 이후 미일 공조 개입 얘기가 나오면서 엔화가 158대에서 155대로 강세 전환되자 원/달러 환율도 달러 당 1450원 수준으로 하락 전환했다. 미국은 엔화와 원화의 약세에 신경이 거슬리는 중이다. 베센트 재무장관이 원화가 펀더멘탈 대비해서 과도하게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발언한 속내는 투자자금 200억 달러의 집행이 늦어질 걸 우려한 발언으로 유추할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일본 엔화의 약세를 걱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주 다보스 포럼에서 베센트 장관이 기자들에게 말한 답변에 그 답이 있다. 그린란드 사태로 인한 셀 아메리카로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한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베센트 재무장관은 최근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은 그 이유가 아니라 일본 국채 금리 급등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시장 붕괴는 그린란드 때문이 아니라, 최근 이틀간 6시그마짜리 변동이 발생한 일본 10년물 국채 때문"이라고 하였다.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는 이틀 새 19bp나 치솟았으며, 30년물 금리는 2003년 이후 하루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라고 로이터 통신 또한 일본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와 유동성 감소 가능성이 금리 급등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이례적인 일본 시중 금리의 상승때문에 미국 금리가 올라갔다는 주장이다. 베센트는 계속해서 일본에게 금리 인상을 종용하고 있다. 작년 8월 13일 베선트 장관은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인플레이션 문제를 안고 있다.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 문제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작년 10월에는 “美 재무, 日에 금리 인상 촉구. 아베노믹스 때와 상황 달라져" (뉴데일리, 25. 10. 29)의 기사 제목처럼 작년 8월에도 10월에도 베센트는 일본의 금리 인상을 종용했었다. 미국 재무장관이 일본의 통화 정책에 개입하는 이유는 일본이 엔 약세를 유지하려고 금리 인상을 늦추게 되면 엔 약세 심화로 인해 물가가 뛰어오르게 되고 인플레이션 기대로 일본의 장기 금리가 올라가게 된다. 그래서 일본 장기 금리의 상승은 미국과 독일 등의 장기 금리를 밀어올리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다보스 포럼에서 베센트가 한 말을 상기해 보면 결국은 일본에게 계속해서 금리 인상을 하라는 얘기다. 금리 인상을 통해 엔 약세를 방어하고, 인플레이션 기대를 꺾게 되면 일본의 장기 국채 금리가 내려올 테니 이는 미국 장기 국채 금리 상승 압력도 낮아지게 될 거라는 주장이다. 금요일 미국과 일본의 공조 발언으로 실제 일본 장기 금리는 한 때 4%를 넘었다가 3%대 후반으로 밀렸고 미국 30년 금리도 4.9%를 상회하다가 밀려 내려왔다. 이렇게 되니 BOJ 통화정책 회의를 전후해서 일본 중앙은행이 4월에 조기 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는 얘기도 회자되고 있다. 엔 약세로 미국의 장기 국채 금리를 건드리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에게는 눈에 가시가 되고 있다. 모기지 금리를 내리려고 파월을 압박하고 있는데 갑자기 일본에서 발목잡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 대한 금리 압박의 강도가 커질 거라 예상한다. 엔화에 연동된 원화도 어부지리를 얻게 될 거지만 셀 아메리카를 걱정했던 것처럼 세계의 증권 투자자들과 특히 코스피 5천 이후를 바라보는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혹시나 하는 엔 캐리 청산이 두려울 거다. bienns@ekn.co.kr

[EE칼럼]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신뢰와 실행으로 함께 해야

우리나라 원자력이 한동안 지속된 진영싸움의 볼모에서 벗어나, 이제는 현실과 필요에 기반한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 것 같다. 에너지 사용의 전기화와 AI·데이터센터 및 반도체 산업이 요구하는 전력 수요는 과거의 예측 범위를 넘어 급증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안보와 산업경쟁력의 핵심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안전성이 확인되는 가동원전의 계속운전과 함께 신규원전 건설도 추진하기로 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원전의 필요성과 안전성, 건설 필요성에 대해 국민의 높은 지지가 확인된 점도 정책 추진의 사회적 기반이 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민간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및 핵추진 잠수함 관련 합의는 원자력 산업기반을 한 단계 격상시킬 수 있는 전략적 기회가 될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정부와 에너지 산업계의 첫 과제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합의 설계'로 다루는 것이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전기요금 안정은 어느 하나만 강조해서는 달성할 수 없다. 원자력은 기상 조건과 무관한 안정적 전력 공급과 계통 안정성에 강점을 갖고, 재생에너지는 분산형 전원 확대와 기술 발전에 따른 비용 하락 가능성을 지닌다. 핵심은 이 둘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계통의 현실과 산업경쟁력을 고려하여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데 있다. 정부는 단순한 발전원 비중 목표를 넘어 예비력, 저장, 수요관리, 송전망 확충을 포함한 통합적인 전력시스템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인허가·규제·지역수용성 문제를 '시간 비용' 관점에서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안전규제는 최신 과학기술을 적용하여 최적화하고, 사업 추진 과정은 일관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기준과 일정이 불확실한 상태가 이어지면 투자도, 지역사회 신뢰도 쌓기 어렵다. 정부는 설계와 운영 안전성을 철저히 확보하되, 투명한 정보 공개와 주민소통을 제도화해 갈등을 사후에 수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히,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중간저장과 최종처분의 로드맵을 국가 책임의 관점에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원전 생태계의 산업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원전산업은 건설뿐 아니라 설계·제조·연료·정비·해체까지 이어지는 장기산업이다. 공급망과 인력은 한 번 흔들리면 복원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신규 원전 건설 재개라는 중요한 신호에 이어, 혁신기술 R&D와 인력 양성, 핵심부품 공급망, 수출 금융과 국제협력까지 포함한 산업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원자력의 미래는 기술경쟁력과 함께 지속 가능한 산업 운영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리더십 강화를 위해 원전 수출의 리더십과 책임체계를 정비하여, 사업 추진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불필요한 갈등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또한 원전 건설·운영에서 민간기업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고, 특히 SMR의 사업화는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양날개' 전략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편 원자력계가 할 일도 분명하다. 무엇보다 국민 신뢰를 더욱 튼튼히 해야 한다. 안전은 전문가 내부의 확신만으로 성립하지 않으므로,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고에 대비해 어떠한 대응체계를 갖추었는지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언어와 데이터로 설명해야 한다. 질문을 피하지 않고 불확실성을 숨기지 않는 태도가 오히려 신뢰를 만든다.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통해 원자력 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현실화하기 위한 원자력 연구계와 학계, 산업계의 체계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와 원자력계가 지혜를 모은다면 정말 어렵게 마련된 기회가 결실로 이어져서 에너지 및 국가 안보 기반을 크게 강화시킬 것으로 믿는다. 재생에너지와의 협력은 구호가 아닌 실무로 보여줘야 한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를 위한 상호보완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려면, 정부와 에너지 전문가, 산업계의 동반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조화를 이루는 에너지 믹스의 최적화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정부의 신규 원전 건설 결정은 출발점이다. 이제 정부는 국가 시스템을 정비하고, 원자력계는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실행력을 증명해야 한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활용하는 길은 어쩔 수 없는 타협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생존과 번영을 위해 선택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bienns@ekn.co.kr

[기자의 눈] 지자체에 발전사업 허가권을 주자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과 이를 위한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에너지 분야에서 수도권과 지역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이를 지방선거를 5개월 앞둔 정치인의 욕심이나 지역의 몽니로 치부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지역이 수도권의 에너지 식민지 역할을 하며 감내해온 희생을 외면한 채 국가 발전이라는 명분으로만 이 문제를 덮어두기에는 정치적 갈등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여당 내부 분열로까지 번지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최근 광주·전남특별시 등 광역시와 도를 통합해 특별시로 키우려는 논의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가 정부가 보유한 3메가와트(MW) 이상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에 대한 발전사업 허가권을 넘겨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역 스스로 발전사업의 출발점부터 주도하겠다는 뜻이다. 지자체는 이미 발전사업 인·허가 중간 단계인 개발행위허가권을 통해 사업 성패를 좌우하고 있다. 그들은 중앙정부와 대규모 투자자 위주로 이뤄져 지역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 재생에너지 보급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지자체는 주민 반대를 이유로 재생에너지 설치구역을 제한하는 이격거리 조례를 강화한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보급이 원활히 이뤄질 리 없다. 물론 정부의 발전사업 허가권을 지자체에 넘기는 데에는 전력망 안정에 있어 우려가 크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중앙정부의 발전사업 허가권 관리가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허가가 난발된 결과, 2021~2025년 동안 상업운전 개시일을 넘긴 발전사업 허가 물량은 원전 16기에 해당하는 1만6000MW에 달한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4000MW를 허수물량으로 규정하고 회수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지자체도 개발행위허가 과정에서 전기위원회처럼 한국전력으로부터 전력망 용량을 확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자체가 처음부터 발전사업 허가권을 갖고 지역 여건에 맞는 사업자를 선별한 뒤 개발행위허가를 간소화하는 편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다만, 지자체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 사업을 밀어붙이고 전력망 안정성을 해칠 문제를 보완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사업은 기후부나 전기위원회와 협의하도록 하고 필요시 정부에서 제약을 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시장제도 개편을 통해 전력망 불안정성을 가격에 반영하는 입찰제도를 도입한다면 사업자는 초기 단계부터 전력망 비용을 감안한 사업성을 판단하게 될 것이다. 허가권을 넘기는 만큼 지자체 역시 사업 지연과 계통 부담에 대한 책임을 고려해야 한다. 지역 주도의 기업 유치와 기업을 위한 안정적인 전력공급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자체가 발전사업 허가권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수도권 발전을 위해 희생해온 지역이 이제 그에 상응하는 권한을 요구하는 흐름을 더 이상 막기는 어렵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이슈&인사이트] ‘이혜훈 파동’이 남긴 것…불법여부 조사는 계속 해야

이강윤 정치평론가 결국 이혜훈 씨가 지명철회됐다. 지명에서 철회까지 한 달 걸렸다. 늦었지만 잘 된 조치다. 바람직한 것은 지명철회 전에 이혜훈 씨 스스로 사퇴했어야 했다. 실기했다. 자신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실기였다. 그러니 사퇴 생각은 들지 않았으리라. 상식이 조금만 있다면 인사청문회 말미에 “후보 사퇴한다. 그간의 행적에 문제가 많았다. 해당자와 국민께 사과드린다. 인사청문회를 통해 최소한의 해명 기회가 주어져 감사드린다"며 스스로 매듭지었어야 했다. 그게 본인이나 임명권자에게나 취할 수 있는 마지막 태도이자 기회였다. 그런데 변명이나 핑계밖에 안되는 걸 해명이랍시고 늘어놓으며 끝까지 의혹과 분노를 부추겼다. '사람 고쳐쓰는 거 아니'란 걸 재확인한 게 청문회의 유일한 소득이었다. 계엄내란 전후로 곳곳에서 하도 말도 안되는 일들이 터져대니 후안무치쯤은 흠이 아닌 세상이 되어버렸다. 환멸스럽다. 청문회 후 이 씨는 혹시 '행여나 지명강행'을 기다렸던 건 아니었을까. 그랬다면 일말의 연민조차 베풀 수 없는 '구제불능'이다. 이득을 취하는 게 인간 본능이라지만 그의 행적과 탐욕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유학중인 20대 부부가 국내 부동산투기(본인들은 투자라고 하겠지만)를 하고, 수 십억 들여 인천공항예정지 근처에 수 천 평을 샀다가 팔고, 아파트청약점수 높이려 가족 주민등록지를 수시로 바꾸고, 수 차에 걸쳐 비서에게 언어폭력을 자행했다. 이뿐인가. 은박요정들이 밤새 눈 맞으며 계엄내란에 저항할 때 목청 높여 계엄을 옹호하고 “윤석열탄핵 저지"를 적극 선동했다. 당이 달라서 그랬다고 얼버무렸지만 '전두환노태우 계엄'을 겪었으니 계엄이 뭔지 모를 리 없건만 옹호했다. 장관후보자 지명 후 사과했다지만 진정성은 찾기 힘들었다. '자리가 탐나는데 그 정도 사관들 못할 게 뭔가'라고 생각했을 듯하다. 진영을 떠나, 이 씨 문제로 국민들 정신건강이 크게 상했다. 이것만으로도 국민께 죄를 지은 것이니, 처절하게 깨닫고 뉘우치기 바란다. 지명철회로 대통령 인사권의 권위가 손상되거나 체면이 깍이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상식과 합리에 입각한 비판을 존중해 바로잡았다는 게 중요하다. 실용과 좌우통합에서 지켜나갈 원칙을 서로 다잡고 공감대를 탄탄히 하는 계기로 삼을 일이다. 국민들은 인사에서 뭐 대단하고 특별한 걸 기대하는 게 아니다. “그저 평균 수준의 상식인을 보고 싶다"는 게 그리도 어려운 주문인가. 이혜훈 씨의 강남아파트 부정청약 여부는 끝까지 조사해서 불법 여부 확인하고, 문제가 확인되면 당첨취소 등 법적 조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지명이 철회됐다고 유야무야 넘어갈 일 아니다. 철회로 부정혐의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간 같은 수법으로 아파트 당첨됐다가 취소된 사람들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행정조치가 차별없이 지켜져야 한다. 그래야 행정/정부신뢰도가 향상된다. 국토부는 이 씨 일가의 아파트청약 당시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한 '누락 실수'가 왜 있었는지 전말을 파악해 공표하고 보완책을 내놔야 한다. 그게 국민주권정부의 올바른 자세이자 복무지침이다. 제재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준과 잣대로 적용돼야 합당성이 획득된다. 이혜훈 씨 파동, 상처와 환멸만 남긴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니편내편 가릴 것 없이 부정과 탈법 소지가 있으면 샅샅이 조사해 의법 조치하고, 탐욕과 편법의 결말이 어떻다는 걸 전 국민이 확인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국민통합'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bienns@ek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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