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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고환율이 짓누르는 민생의 현실과 대책

최근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는 등 고환율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물가와 월세, 카드값을 마주하는 서민의 일상에서 고환율은 이미 하나의 생활고로 체감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고환율을 단순한 일시적 충격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과 이에 비해 동결을 지속해온 한국의 통화정책은 한·미 금리차를 크게 벌려 놓았다. 자본은 이자율이 높고 안전하다고 평가되는 곳으로 이동한다. 결과적으로 원화 자산의 매력은 떨어지고, 글로벌 자금은 달러 자산으로 이동하며 원화 가치는 구조적으로 약세 압력을 받게 되었다. 외화 수급 구조의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한국 경제는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로 들여와 환전하는' 패턴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 대기업의 해외 직접투자, 연기금과 금융기관의 해외 포트폴리오 투자, 개인의 해외주식·부동산 투자까지 겹치면서 달러는 밖으로 나갈 채널이 늘어났다. 여기에 미·중 갈등, 지정학적 분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외부 요인이 결합했다. 불확실성이 커질 때마다 전 세계 자금이 '달러'라는 안전자산으로 몰리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고, 그 여파는 원화와 같은 신흥시장 통화에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고환율은 물가를 통해 민생을 압박한다. 에너지와 식량,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에서 환율 상승은 곧바로 기름값, 전기·가스 요금, 식료품과 공산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장바구니 물가만 치솟는 상황에서 고환율은 실질임금 삭감과 다름없다. 내수 의존도가 높은 자영업과 중소기업에도 고환율은 구조적인 부담이다. 대기업 수출업체는 일정 부분 환헤지와 공정 자동화 등으로 원자재 비용 증가를 최소화할 수 있지만, 수입 원재료와 부품을 쓰는 영세·중소업체는 오른 원가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또한, 고환율로 인한 영향은 계층·세대별로 차별적으로 나타난다. 해외 자산을 충분히 보유한 고소득층이나 글로벌 기업은 환차익을 누리거나 피해를 일부 상쇄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 생활 기반이 묶인 서민·청년층은 생활비 상승과 실질소득 감소를 회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고환율의 악영향을 완화하고, 중장기적으로 안정적 환율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보다 정교한 통화정책이 요구된다. 고환율과 물가 불안을 고려할 때, 한국은행의 긴축적 통화정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과제가 되고 있다. 고환율이 수입 물가를 자극해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국면에서 기준금리를 충분히 인상하지 못하면, 환율과 물가가 동시에 불안해지는 '이중 불안정'에 빠질 위험이 크다. 특히, 한국처럼 가계부채가 많은 경제에서는 금리 인상의 부작용만을 우려해 통화긴축을 주저하기 쉽지만, 물가와 환율에 대한 신뢰를 잃는 순간 증시하락, 소비부진 등 더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과 환율 기대를 확실히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긴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외환시장 제도와 헤지 인프라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의 고환율은 그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환율 변동성이 커질수록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경제주체와 그렇지 못한 주체 사이의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는 점이다. 정책금융기관이 제공하는 환변동보험과 같은 수단이 대기업 위주가 아니라 중소 수출·수입업체에도 실질적인 안전망이 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고환율은 더 이상 외환시장에만 존재하는 숫자가 아니다. 마트 영수증, 전기·가스요금 고지서, 전세·월세 계약서에 직결된 생활 변수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환율의 변동이 민간 소비, 자영업·중소기업의 비용 구조, 실질임금과 소득분배,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통합적으로 측정하는 지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환율이 실물·금융 변수에 미치는 파급경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통합 환율 영향지수(가칭)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런 통합 지표는 통화정책 결정 과정에서 환율과 물가뿐 아니라 민간 소비, 자영업·중소기업, 금융안정에 대한 '부담의 분포'를 동시에 고려하게 해 주고, 정책 결정 과정과 결과를 국민에게 설명할 때도 설득력 있는 근거 자료로 기능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고환율은 한·미 금리차 확대, 외화 수급 구조 변화,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구조적 현상이며, 그 부담은 물가 상승과 내수 위축, 금융 불안 형태로 민생에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와 한국은행은 정기적으로 생활물가·가계부채·중소기업 비용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통합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앞으로의 환율·통화 정책은 수출지표가 아니라 국민 삶의 질을 기준으로 설계되고 진행되어야 한다. bienns@ekn.kr

[EE칼럼] 한・미 원자력 협상, 선장이 필요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옛말이 있다. 뱃길을 잘 아는 사람이 여럿이어도 방향을 정하고 책임지는 이가 없으면 배는 결국 목적지를 잃는다는 뜻이다. 정부 간 협상도 다르지 않다. 여러 부처가 저마다 목소리를 내더라도 방향을 잡고 끝까지 밀고 나갈 선장이 없다면 표류할 수밖에 없다. 6월 첫 주 한·미 안보 분야 합의 이행을 위한 후속 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농축과 재처리를 포함한 핵연료주기 전반에 대한 논의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한・미 협상은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기회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의 93.4%를 수입했다. 원전 연료인 농축우라늄은 전량 수입한다. 2025년 기준 약 37%를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여기에 고리와 한빛 등 주요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에 가까워지고 있다. 핵연료주기의 앞단인 연료 공급과 뒷단인 사용후핵연료 관리 모두 국내외 제약에 묶여 있는 셈이다. 이번 협상에서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에 실패하면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려되는 것은 협상 자체가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국가 차원의 통합 지원체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교부가 협상 테이블에 앉지만, 핵심 의제인 농축과 재처리 관련 업무는 다수 부처에 걸쳐 있다. 이렇게 분절된 방식으로는 미국을 설득할 촘촘하고 강력한 논리를 짜기 어렵다. 핵연료주기는 우라늄 확보와 농축, 핵연료 제작과 사용, 사용후핵연료 저장·재처리·처분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연속된 체계다. 어느 한 부분만 떼어놓고 접근해서는 국가 전략이 될 수 없다. 이 전체를 한눈에 꿰는 범부처적 밑그림이 있어야만 비로소 대미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이처럼 부처마다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는 나라와 범부처 합의를 바탕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단일한 전략을 제시하는 나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 신뢰를 얻겠는가. 협상 테이블에서 신뢰는 말이 아니라 준비된 국가 체계로 증명된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준비다. 한·미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우리나라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미국은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국가 차원의 핵연료주기 전략이 있는지를 확인하려 할 것이다. 일본이 1988년 포괄적 사전동의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도 수십 년간 유지된 장기계획이 미국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1970년대 재처리 추진 중단, 2004년 미신고 핵물질 실험 파동 등을 거치며 비확산 분야에서 적지 않은 불신을 자초해 왔다. 이번에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협상에 임한다면 결과는 선언적 합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기껏해야 구색 맞추기용 성과에 그칠 뿐, 실질적 에너지 자립과는 거리가 먼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한·미 원자력협정의 유효 기간은 수십 년에 이른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나라의 농축우라늄 공급망 취약성은 장기간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발 공급 부족이나 지정학적 위기 가운데 어느 하나만 발생해도 원전 운영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유용한 물질을 회수하고 처분 부담을 줄이는 선택지 역시 상당 기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대책은 분명하다. 범부처를 아우르는 '핵연료주기 자립 통합 태스크포스'를 조속히 구성하고 총괄 부처를 지정해야 한다. 대외협상 창구는 외교부가 맡더라도, 기술·산업·안전 논리를 하나의 목소리로 정리할 총괄 부처가 꼭 있어야 한다. 아울러 올해 수립될 「제7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에 농축·재처리 통합 로드맵을 반영하고, 이를 원자력진흥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국가 정책으로 확정해야 한다. 이러한 법정 계획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미국도 우리 정부의 정책적 지속성과 이행 의지를 신뢰할 것이다. 핵연료주기 자립은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의 마지막 퍼즐이다. 그 퍼즐을 완성할 기회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항로가 열렸다고 해서 목적지에 자동으로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사공이 아니라 선장이다. 국가 명운이 걸린 협상을 앞두고 선장 없이 배가 망망대해를 표류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정치 프레임과 별개로 국민은 쿠팡·스타벅스에 화가 났다

내부 관리 부실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거대 유통업체의 수장들이 신뢰의 시험대에 올랐다. 허술한 경영의 대가로 조직 쇄신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안게 된 김범석 쿠팡Inc 의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다. 이들이 기업의 체제 결함뿐 아니라, 지휘탑으로서의 자질까지 따져 묻는 비판적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까. 쿠팡 고객정보 유출·스타벅스 5·18 민주화운동 폄훼 마케팅이라는 각자의 문제가 발단이 됐지만,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대응 과정에서 민심을 읽지 못한 실수가 더 화를 키웠다. 두 수장 모두 공통적으로 본인 명의로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부적절한 언행으로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김 의장은 정보유출 사태에 따른 국회 부름에 외국 국적·해외 체류를 이유로 수차례 불출석 입장을 밝히며, 뒤늦게 발표한 서면 사과문으로 무마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기존에도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이와 비슷한 행보를 보여줬던 터라, 돈은 한국에서 벌지만 책임은 회피하는 검은머리 외국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정 회장은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에 대해 직접 연단에 올라 머리숙여 사과했지만, 사과문 발표 도중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고 더 나은 세상을 미래 세대에게 남겨주고 싶은 마음만큼은 우리 모두 같다"고 언급해 또 다른 불씨를 지폈다. 5.18 민주화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폄훼를 견해의 차이로 치부하는 것이냐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두 기업에 대한 정치적 마녀사냥이 도를 넘었으며 시장 질서까지 해치고 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정치권이 오너 리스크를 앞세워 어떻게 프레임을 짠다 한들, 당장에 두 수장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국민들의 도덕적 분노다. 탈팡(쿠팡 탈퇴)·탈벅(스타벅스 탈퇴)이라며 불매운동 바람이 부는 것이 그 방증이다. 한 대학 교수는 기자에게 “우리나라 소비자는 정서적 자극에 민감하지만 사리 분별 못하는 바보는 아니다"고 했다. 소비자들은 착한 소비를 하고싶어 하고 올바른 기업·기업인을 알아 볼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기업인의 리더십은 실적에서 드러나지만 책임 회피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빛을 발한다. 두 기업 모두 정치 쟁점화된 상황을 떠나, 기업 수장으로서의 역할과 조직 쇄신에 집중하지 않는 한 소비자 신뢰를 지켜낼 수 없을 것이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이슈&인사이트] 6.3 지방선거와 교차투표

6.3 지방선거에서는 교차투표가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하게 발생했다. 교차투표(split voting)란 같은 선거일에 함께 출마한 후보 사이에 시장은 '가' 정당, 구청장은 '나' 정당, 시의원은 '가' 정당 ... 하는 식으로 서로 다른 직책에 서로 다른 정당 후보를 찍는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는 이른바 줄투표라고 하는데 일관투표(straight voting)라는 용어와 함께 쓰인다. 일관투표는 같은 선거일에 모든 후보를 하나의 정당만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정치학계에서는 교차투표나 일관투표는 모두 합리적인 행위라고 본다. 교차투표는 유권자가 직책에 따라 적합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각자 골라서 찍는 것이다.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라는 의미가 있다. 한편으로는 이성적이지만 결정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교차투표에 비하여 일관투표는 자기가 좋아하는 정당을 기준으로 삼아 매우 짧은 시간에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다. 일관투표 결과 선출된 공직자들은 함께 같은 이념과 정책적 관점에서 효율적인 정부 운영이 가능해진다. 6.3 지방선거를 보면 대통령 임기 초기의 밀월기 효과(honeymoon effect)가 기대보다 약하다. 행정부와 입법부에 더해 지방정부까지 독식하는 데 대한 일종의 견제라고 여겨진다. 다시 말하자면 대통령의 지지율은 60%도 넘는데, 전국적인 광역의원 비례대표 득표율로 볼 때 민주당의 득표율은 47.06%에 그쳤다. 2025년 대선에서 받은 이재명 대통령의 득표율(49.42%)보다 낮다. 줄곧 2-3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던 국민의힘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41.63%를 확보했다. 지난해 김문수 후보의 득표율(41.15%)과 비슷하다. 대표적인 교차투표는 먼저 서울에서 확인된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49.22%)가 민주당 정원오 후보(48.07%)를 이기며 서울시장을 차지했다. 하지만 서울의 구청장 25명은 민주당 17명, 국민의힘 8명으로 나누어졌다. 서울시의회도 민주당이 118개 의석 가운데 80개, 국민의힘이 38개로 각각 나누어졌다. 그리고 부산도 이변을 보여주었다. 투표율이 70.2%로 부산 전체 투표율(62.1%)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부산 북구에서 부산시장은 민주당의 전재수, 국회의원은 무소속 한동훈, 구청장은 민주당의 정명희가 각각 차지했다. 민주당의 전재수 후보가 50.52%의 득표율로 47.90%의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를 제치고 부산시장에 당선되었지만, 부산의 16명 구청장 가운데 국민의힘이 9명을 차지하여 민주당(7명)보다 더 많은 상황이다. 또한 인천에도 교차투표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시장선거에서는 민주당의 박찬대 후보가 52.84%를 확보하여 유정복(46.06%) 현 시장을 이겼다. 인천에서는 기초자치단체장 11명 가운데 민주당이 8명을 확보했는데 국민의힘이 3명을 가져갔다. 45명 규모의 인천시의회도 민주당이 38명을 차지했는데 국민의힘은 7명만 나누어 가졌다. 관심은 연수구청장 선거이다. 박찬대 시장을 배출하고 6선의 거물급 송영길 후보가 보궐선거 승리로 국회에 입성하게 된 연수구에서는 국민의힘 이재호 현 구청장이 52.48%를 얻어 민주당의 정지열(47.51%) 후보를 이겼다. 연수구는 박찬대 시장 당선인이 50.75%를 얻어 유정복 현 시장(47.98%)을 이겼기 때문에 민주당 구청장 후보의 패배는 전형적인 교차투표의 사례라고 하겠다. 서로 견제하라고 각기 다른 정당의 후보를 뽑아주었거나, 혹은 후보가 마음에 안 들어서 표를 안 주었거나 유권자의 선택은 정말 무섭고 냉정하다. 당선된 이들 앞에 남겨진 일은 당선 뒤에도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유권자를 하늘같이 받드는 일이다. 4년 뒤에는 또 얼마나 절묘한 교차투표가 나타날까. bienns@ekn.co.kr

[기자의 눈] 중복상장은 무조건 나쁜가

중복상장은 어느새 한국 자본시장에서 금기어가 됐다. 계기는 분명하다. LG화학의 물적분할과 LG에너지솔루션 상장이다. 당시 LG화학 주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평가받던 배터리 사업이 분리 상장됐고, 주가는 한때 100만원을 웃돌던 수준에서 반년 만에 반토막났다. 투자자들은 '우리가 키운 사업의 과실을 다른 투자자들이 가져갔다'고 느꼈다. 이후 중복상장은 개인투자자들에게 사실상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제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이재명 대통령이 “송아지 밴 암소를 또 시장에 내놓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중복상장 원칙 금지' 방침을 밝힌 것도 이런 여론을 반영한 결과다. 최근 만난 기업 관계자들은 자회사 상장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했다. “괜히 정부에 낙인찍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상장을 검토하던 기업은 계획을 미루고 있다. 증시는 활황인데 IPO 시장은 좀처럼 온기를 찾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모든 중복상장은 막아야 하는가. 벤처투자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한국에서 IPO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투자금 회수 수단이다. 그런데 상장 문은 좁아지고 국내 M&A 시장은 충분히 크지 않다. 회수시장이 막히면 결국 스타트업과 신산업으로 흘러갈 자금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복상장 규제가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성장 자본의 흐름까지 위축시키고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결국 논쟁의 핵심은 중복상장 자체가 아니다. 분할 과정에서 만들어진 가치를 누가 가져가느냐다. LG에너지솔루션 사례에서 투자자들이 분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터리 사업이 적자를 내고 대규모 투자가 필요했던 시절 위험을 부담한 것은 LG화학 주주들이었다. 그런데 사업이 성장해 상장 단계에 이르자 그 과실이 신규 투자자들에게 배분된다고 느낀 것이다. 중복상장 논란은 상장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 배분의 문제에 가깝다. 그렇다면 예외는 어떻게 정해야 할까. 결국 기준은 주주가치 훼손 여부가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여기서부터 또 다른 논쟁이 시작된다. 무엇이 주주가치인지, 주주 동의는 어느 수준이어야 하는지, 어떤 보호장치가 충분한지에 대한 답은 아직 없다. 중복상장 논쟁에는 정답이 없다. 투자자 보호와 성장 자금 공급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몇몇 실패 사례를 이유로 중복상장 자체를 사실상 금지하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허용과 금지의 이분법이 아니라, 기존 주주가 정당한 몫을 보장받으면서도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교한 기준이다. 그 답은 결국 시장의 경험과 사회적 논의를 통해 만들어질 것이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이슈&인사이트] 중소기업 정책, ‘지원’보다 ‘혁신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이 글은 필자가 지도한 장영재 박사의 논문 '중소기업의 역량과 혁신성과의 순차적 매개효과에 관한 연구'에서 얻은 정책적 시사점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다. 그동안 중소기업 정책은 자금, 세제, 인력, 판로, 연구개발 지원을 각각의 사업 단위로 제공해 왔다. 물론 이런 지원은 필요하다. 문제는 지원이 기업 내부의 역량 강화, 혁신활동 실행, 경쟁우위 확보, 성과 확산으로 연결되는지를 끝까지 추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은 많지만, 그 지원이 실제로 제품혁신이나 공정혁신으로 이어졌는지, 나아가 시장에서 차별적 위치를 확보했는지는 충분히 관리되지 않았다. 본 연구 결과가 중기부 정책에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기부는 '지원금 배분 기관'에서 '역량 진단 기관'으로 역할을 바꿔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업의 신청서가 잘 쓰였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이 아니다. 해당 기업이 어떤 역량이 부족한지, 제품혁신이 필요한지, 공정혁신이 필요한지, 디자인·브랜드·지식재산 보강이 필요한지, 아니면 시장 접근 전략이 문제인지를 먼저 진단해야 한다. 병원에서 처방 전에 진단을 하듯, 중소기업 지원도 진단 없는 처방에서 벗어나야 한다. 둘째, 정책사업을 단절된 메뉴가 아니라 단계별 성장 경로로 재설계해야 한다. 예컨대 1단계는 역량 진단, 2단계는 혁신활동 실행, 3단계는 비용우위 또는 차별화우위 확보, 4단계는 매출·수익·생산성·지속가능성 성과 확인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렇게 해야 R&D 지원, 스마트공장 지원, 수출지원, 디자인 지원, 지식재산 지원이 따로 노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부처와 사업을 찾아다니는 행정 순례가 아니라, 자기 성장단계에 맞는 정책 경로를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중기부는 혁신성과의 기준을 단기 매출 증가에만 묶어두어서는 안 된다. 논문은 혁신성과를 경제적 성과, 운영 성과, 지속가능성 성과로 나누어 보았다. 이는 매우 중요한 관점이다. 중소기업의 혁신은 당장 매출이 늘어나는 것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불량률 감소, 납기 단축, 생산성 향상, 에너지 효율 개선, 고객 반복구매 증가, 지역사회 기여 같은 성과도 혁신의 중요한 결과다. 정책평가도 이처럼 다차원적 성과를 반영해야 한다. 넷째,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정책의 중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지금까지 정책은 대체로 투입과 산출을 보았다. 얼마를 지원했는가, 몇 개 기업이 참여했는가, 매출이 얼마나 늘었는가를 따졌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그 기업이 지원 이후 시장에서 더 싸게 만들 수 있게 되었는가. 더 좋은 품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는가. 경쟁사가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기술, 디자인, 브랜드, 데이터, 고객관계를 확보했는가. 바로 이 지점이 혁신활동과 혁신성과를 연결하는 핵심 고리다. 다섯째, 납품 중심 산업구조의 한계를 함께 다뤄야 한다. 중소기업이 아무리 혁신해도 원청기업의 단가 압박 속에 성과가 흡수된다면 혁신 유인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기부의 혁신정책은 공정거래, 판로 다변화, 공공조달, 수출, 브랜드 구축 정책과 연결되어야 한다. 기술개발만 지원하고 시장에서 제값을 받을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혁신은 지속되지 않는다. 결국 중소기업 혁신정책의 핵심은 '돈을 더 주는 것'이 아니라 '성과가 나는 경로를 설계하는 것'이다. 역량을 키우고, 그 역량이 혁신활동으로 이어지게 하며, 혁신활동이 경쟁우위로 축적되고, 그 경쟁우위가 경제적·운영적·지속가능성 성과로 확장되도록 해야 한다. 중기부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지원사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이 자기 역량을 정확히 알고, 필요한 혁신활동을 실행하며, 시장에서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확보하도록 정책의 순서를 다시 짜는 일이다. 중소기업 정책이 '지원의 양'에서 '성장 경로의 질'로 이동할 때, 비로소 혁신성과는 숫자가 아니라 기업의 체질 변화로 나타날 것이다. bienns@ekn.kr

[EE칼럼] 햇빛이 마을 복지가 되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 시작되었다

전 세계가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화석연료 중심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당면 과제 앞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질문이 있다. “에너지 전환이 더 깨끗한 미래를 보장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과연 저절로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줄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잘 와 닿지 않지만, 전 세계 수억 명의 인구가 여전히 안정적이고 저렴한 에너지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자산의 소유권과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불균형하게 분배되는 경우가 많다. 기후 불평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기후위기의 피해가 저소득 국가와 취약계층에 집중되는 반면, 정작 이들의 목소리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기 일쑤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정의의 원칙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은 채 기술적 전환에만 매몰된다면, 다가올 재생에너지 시대 역시 기존의 구조적 불평등을 그대로 복제하거나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낳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는 원래 노동조합이 탈탄소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안한 개념이다. 오늘날 이 용어는 단순한 노동자 지원을 넘어, 현재의 기후·사회적 위기를 유발한 정치·경제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 정책 설계 단계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로 분배적 정의, 절차적 정의, 인정의 정의, 회복적 정의, 공간적 정의, 세대간 정의를 제시한다. 단순히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을 넘어, 에너지 전환으로 발생하는 사회적·경제적·환경적 이익이 공정하게 나누어져야 하며, 의사결정에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과거 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공동체를 치유하고, 국가 내부의 지역 격차를 해소하며, 미래 세대에게 기후위기의 짐을 떠넘기지 않는 세대간 형평성 역시 담보되어야 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정의의 원칙들을 우리 현실에 잘 녹여낸 실천적 대안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2030년까지 3,000곳 이상 확대를 목표로 본격 추진 중인 햇빛소득마을이다. 햇빛소득마을은 주민들이 직접 협동조합을 구성해 마을의 유휴부지나 농지 등에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주민 소득과 마을 복지로 환원하는 주민주도형 에너지 자치 모델이다. 경기도 여주시 구양리의 사례처럼 태양광 전력 판매 수익으로 마을회관의 무료 점심을 제공하고 무료 마을버스를 운행하는 식이다. 이 사업이 가진 가장 큰 사회적 가치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에 잘 부합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대규모 외부 자본 중심 개발에서 벗어나, 지역 자원을 활용해 발생한 수익을 마을 공동기금이나 복지사업, 지역경제 활성화에 환원한다. 이는 에너지 전환의 경제적 혜택이 특정기업이 아닌 지역주민들에게 고루 돌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분배적 정의를 실현한다. 마을 공동체가 의사결정의 주체가 됨으로써 에너지 시설을 둘러싼 지역 갈등과 입지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소한다. 태양광 패널이 혐오시설이 아닌 우리 마을의 복지를 책임지는 효자 자산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는 마을 주민을 에너지 전환의 능동적 주체로 자리매김한다는 점에서 절차적 정의에 부합한다. 지방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 주민들의 삶과 권리를 인정하고 소외된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는 측면은 인정의 정의에 해당한다. 아울러 그동안 도시를 위한 에너지 공급처로만 소비되던 농촌 공간이 재생에너지를 매개로 자립적인 경제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은 공간의 소외를 극복하는 공간적 정의의 실현이기도 하다. 물론 이 모델이 전국으로 온전히 확산되려면 송배전망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등 제도적 과제도 남아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설비 교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중의 지지 없는 에너지 전환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국민들이 에너지 대전환의 과정에서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을 체감할 때 지속적인 추진동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은 지속가능한 미래로 걸어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문이다. bienns@ekn.co.kr

[기자의 눈] 지속되는 高환율 ‘범인찾기’, 애꿎은 피해자 늘린다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에도 원/달러 환율이 1500원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역대급 수출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금융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당국에서는 여러가지로 원인을 찾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구조적인 문제의 책임을 특정한 인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앞서 불거진 일명 '서학개미 논란'이 대표적이다. 거주자의 해외투자가 늘어나면서 원화 매도와 달러 매수 수요가 강해지고, 외환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커졌다는 것이다. 해외 투자 물량을 국내로 돌리면 혜택을 주는 제도가 화두로 떠오른 것도 이 즈음이지만, 근로소득으로 내 집 마련 등 자산증식이 어려워진 투자자들의 '동앗줄'을 비난했다는 반론이 일어나면서 최근에는 이같은 표현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정치권과 관료집단의 고위 관계자들이 해외 부동산 자산과 외화표시 유가증권을 보유한 것이 두드러진 것도 거주자의 해외투자를 비난하기 힘든 환경이 됐다. 서학개미 이후 당국이 주목한 것은 은행과 보험사다. 달러예금과 달러보험 마케팅을 자제하라는 방식으로 자금유출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이었다. 해당 상품군이 환투기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도 표명했다. 달러보험은 보험료 납입 및 보험금 지급이 달러로 이뤄진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익을 볼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손실이 발생한다. 현장에서는 이미 상품설명서에 이같은 내용이 기재됐고, 최근 판매량이 감소세를 그렸음에도 최근 '외환시장 관련 보험권 간담회'를 개최한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모양새다. 금융권을 소집할 이유까지는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역외 시장을 향해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다'는 등 발언수위를 높이고 있다.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거래를 투기적 성격이라고 꼬집고 외환거래 변동성을 키웠다는 논리다. 국내에서 '범인'을 찾기 힘들어지자 해외로 눈을 돌린 모양새다. 때때로 기업들에게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라는 압박도 넣고 있다. 수출로 벌어들인 자금을 국내로 환류하면 환율 압박이 줄어들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기업들은 대미투자에 필요한 '실탄'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는 반론이다. 시장에서는 각종 보조금·지원금으로 대거 풀린 통화량을 보고 있다. 원화 공급이 늘어나면서 떨어진 가치가 근본적인 이유라는 것이다. 이를 외면하고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효용성 부족을 넘어 다른 경제주체들의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데스크 칼럼] 부동산 시장 해법, ‘자만’은 금물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적극 지원했던 핵심 '명픽' 인사인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낙선하면서 이 대통령의 정국 주도권은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많은 전문가들과 여론은 서울시장 선거가 결국 부동산으로 귀결됐다고 분석한다. 정부 여당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긍정하는 편보다 부정하는 서울 민심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서울은 집값이 비싼 만큼 전국에서 자가 보유율이 가장 낮은 지역이다. 국가데이터처의 '국민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 가구의 자가 비율은 44.1%에 그친다. 이는 전국 평균 가구 자가 비율(약 58% 수준)보다 10%p 이상 낮은 수치다. 서울시 가구 절반 이상인 56%가 전세나 월세 등 임차 형태로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서울의 부동산 민심은 전월세 시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선거 전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으로 인해 특히 서울에서 전월세난이 심화되면서 서울 민심은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었다. 서울에 자기 집을 가진 44%도 정부 여당의 부동산 정책에 거부감이 높았다. 서울에서도 특히 집값이 높은 강남 3구를 중심으로 한 한강벨트 지역은 오세훈 시장에게 70~80%대 수준의 몰표를 던졌다. 비싼 아파트에 높은 세금을 매기겠다는 정부 여당의 부동산 정책은 고가 주택이 많은 서울 강남과 한강벨트의 정부 여당 비토 성향을 더욱 강화시켰다. 여기에 정부 여당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를 추진하는 등 도시정비사업 규제에 나선 것도 큰 타격이 됐다. 개발 이슈가 많이 걸려있는 서울 집주인들은 정원오 후보가 이길 경우 자신들의 재산권이 침해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오 시장에게 표를 줬다. 이처럼 서울 민심이 현 정부 여당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됐지만, 대통령과 민주당은 여론조사 결과에 취해 이를 가볍게 여겼다. 올해 초부터 이 대통령은 오히려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동산 시장 정상화가 코스피 5000이나 계곡 정상화보다 쉽다면서 자신과 여당에게 돌아선 서울 부동산 민심을 바로 읽지 못하고 더욱 가속화 엑셀을 밟았다. 그 결과는 비단 이번 선거 결과 뿐만 아니라 본지가 리얼미터에 의뢰한 6월 2주차 국정여론 지지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 대통령 지지율은 이번 주 51.5%를 기록하면서 50%선이 깨질 위기에 처했다.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이 44.3%를 기록해 38%에 그친 민주당을 오차범위 밖에서 역전하는 결과가 나왔다. 정부 여당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 봐야 한다. 특히 부동산 이슈가 사실상 선거 결과를 가른 서울 민심에 대해선 더욱 심사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권 초기 높았던 지지율을 까먹고 정권을 내준 것은 결국 부동산 정책 실책 때문이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 패배에는 서울 부동산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정부 여당의 실정과 함께 이재명 대통령의 '부동산 자만'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에 서울 민심은 1순위 '명픽' 정원호 후보를 떨어트리고, 야당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시장을 연임시켜 표로써 심판했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EE칼럼] 자원공기업 혁신, 일본은 했는데 우리는 못하는 이유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이 지났지만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 등 우리나라 3대 자원공기업의 혁신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자원공기업의 혁신은 조직개편이 아니라 국가 에너지.광물 안보를 강화하면서 수익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우리나라와 같은 자원빈국인 일본은 자원공기업에 대한 개혁에서는 비교적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례로 JOGMEC(조그맥)이다. 일본 정부는 2004년 석유,가스 분야와 금속 광물 분야의 기관을 통합해 조그맥을 설립했다. 이후 2012년 관련법 개정을 통해 기능을 더욱 확대했다. 통합 이전 문제는 기관별 업무 중복, 투자 판단 분산, 해외 자원개발 협상력 부족, 민간기업 지원 체계 미흡이었다. 하지만 통합 이후의 변화는 자원개발 컨터롤타워 구축, 해외 프로젝트 투자.융자.보증 기능 일원화, 기업들의 해외 진출 지원, 국가 차원의 자원안보 전략 수행이다.조그맥은 일본 정부와 민간기업 사이의 “자원개발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일본 정부가 조그맥 설립을 통해 얻은 성과는 첫째, 에너지.광물 안보 강화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LNG 확보를 크게 확대했고, 중동, 호주, 동남아, 아프리카 자원개발 프로젝트에 적극 뛰어 들었다. 특히 일본 기업들은 조그맥의 보증과 금융 지원을 활용해 대형 LNG 사업에 진출했다. 둘째, 민간 협력 모델을 구축했다. 일본은 공기업이 직접 사업을 독점하지 않고 정부가 조그맥으로 그리고 민간 종합상사로 이어지는 연결 구조를 구축해 실행했다. 사례는 미쓰비시, 미쯔이 등 종합상사와 INPEX(국제석유개발제석)가 해외 자원개발에 참여했다. 셋째, 위험 분산 체계를 구축했다. 해외 자원개발은 성공 확률이 낮고 리스크가 큰 사업이다. 따라서 일본은 정부 보증, 정책 금융, 탐사 및 기술 지원 등의 체계를 통해 민간기업의 위험을 줄여줬다. 넷째, 핵심광물 공급망 확보 성과다. 일본은 최근에는 석유보다 리튬, 니켈, 코발트, 희토류, 우라늄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희토류 통제에 대응하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했다. 물론 일본도 해외 자원개발에 있어 실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해외 광산 투자 손실과 자원 가격 하락에 따른 평가손, 정부 재정 부담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정치 논란에 따른 무리한 투자를 상대적으로 적게 하고 전문가 중심의 투자 심사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명확하다. 우리 자원공기업이 가야할 길은 단순히 수익을 내는 공기업이 아니라 국가 에너지안보와 핵심광물 확보를 책임지는 전략기관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정권마다 공기업 혁신을 말하면서 구체적 실행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 몇가지를 지적한다면 첫째, 해외 자원개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석유, 가스, 우라늄과 리튬, 니켈, 구리, 희토류 등 에너지와 핵심광물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 이들 에너지, 광물 확보는 단순 지분 투자보다 직접 운영 역량 확대가 중요하다. 또한 자원부국과 중장기 공급 계약 체결도 해야 한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경쟁이 심화되면서 자원 확보는 경제안보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공기업이 위험성이 큰 초기 탐사를 담당하고, 개발 단계부터는 민간이 참여해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예를들어 배터리, 철강, 반도체 기업과 혐력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둘째, 방만 경영을 개선해야 한다. 중복되는 조직 통폐합과 성과 중심 보상 체계 등을 통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아울러 해외 자산에 대한 정기적 가치 평가를 하며 투자 실패에 대해선 분석을 통해 책임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디지털 AI 기반의 자원개발이다. 세계 주요 에너지 및 광산 기업들은 이미 AI 기반 탐사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넷째, 국가 에너지, 자원안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일본의 조그맥처럼 자원 안보를 총괄하는 기관과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는 산업통상부가 석유공사, 가스공사, 광업공단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한전과 5개 발전공기업, 한수원을 관리하는 이원화 체계에 있어 제각기 역할이 분산되어 있다. 다섯째, 에너지 전환에 대비해야 한다. 석유, 가스 뿐만 아니라 우라늄, 리튬, 니켈, 코발트, 구리 등의 핵심광물 확보를 강화해야 한다. 여섯째, 국가 차원의 자원 안보 컨트롤타워 구축이 필요하다. 공기업과 민간기업, 연구기관 간 협업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또한 해외사업과 자원외교가 연계되어야 하며, 핵심광물 비축도 더 확대돼야 한다. 특히 집중해야 할 분야는 향후 20~30년 동안 에너지.광물 안보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될 우라늄, 천연가스, 리튬, 니켈, 구리, 희토류의 확보가 중요하다. 특히 원전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에 대비해 우라늄 확보가 중요하다.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이 참여하는 해외 우라늄 광산개발 연합팀을 가동해 확보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종합하면 과제 해결은 정부의 의지다. 기업들의 해외 광산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쇼는 “정권 리스크"이다. 자원정책이 정권 교체때마다 냉온탕을 오갔던 트라우마 때문이다. 지금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에 나섰다가 다음 정권에서 기조가 바꿔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 몫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런 업계의 우려에 대해 답을 내놓아야 한다. 우선 정부가 통제 가능한 자원공기업부터 제대로 혁신해야 한다.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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