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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패권 키플레이어 K-조선 (하)] 미국이 일본 아닌 한국에 ‘핵잠 카드’ 먼저 건넨 이유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동북아시아의 핵심 동맹국인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의 핵추진 잠수함(SSN) 건조를 승인했다. 이 결정은 21세기 인도-태평양 전략 지형을 재편하는 다층적 대전략의 핵심 기동이다. 이의 표면적 명분은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동맹의 억제력 강화이고 행정부의 성향에 따라 수사(Rhetoric)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공세적 현실주의(Offensive Realism) 이론에 입각한 미국의 일관된 대전략(Grand Strategy)에 입각한 정교한 계산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일관된 대전략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단일 '지역 패권국(regional hegemon)'의 등장을 저지하는 것이다. 오늘날 그 대상은 명백히 중국이다. 미국은 직접 개입 대신 동맹국에 안보 책임을 떠넘기는 '역외 균형(Offshore Balancing)'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2/AD) 방어막 내부에서 생존하며 작전할 수 있는 핵추진 잠수함은 부담 전가 전략의 가장 이상적인 무기체계로 꼽힌다. 미국의 고민거리는 이 치명적인 카드를 어느 동맹에게 쥐여줄 것인가였다. 표면적으로 일본은 미국의 최고 해군 동맹이지만 핵추진 잠수함 파트너로서는 4가지 결정적 장벽을 가진 '고비용-고위험' 선택지이다. 일본의 평화 헌법 9조는 '전력 보유'를 금지하며, 핵추진 잠수함과 같은 공세적 플랫폼 도입은 헌법 개정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비용을 요구한다. 보유·생산·반입 금지로 요약되는 '비핵 3원칙'은 일본의 국시이고,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핵연료에 대한 국민적 트라우마와 저항이 극심하다. 일본은 지역 패권국으로서의 요건인 경제력·해군력과 제국주의의 역사 등 다방면에서의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은 일본이 중국을 견제할 만큼 강해지기를 원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 패권국으로 성장하는 것은 막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현재 일본은 이미 미국과의 협정을 통해 독자적인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수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47톤 이상의 막대한 플루토늄 재고를 합법적으로 보유 중이다. 만약 미국이 이런 일본에 핵추진 잠수함의 원자로 기술을 제공한다면 일본은 미국의 통제를 벗어난 '완전한 독자 핵 잠재력'을 완성할 수 있다. 때문에 일본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게 승인하기에는 정치적 장벽이 너무 높고, 이를 넘도록 도와주기에는 통제 불능에 빠질 가능성에 해당하는 전략적 위험도거 너무 큰 파트너라는 평가다. 반면 한국은 미국의 '부담 전가' 전략을 수행할 최적의 파트너인 '저위험-고효과' 선택지이다.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막는 것은 헌법이 아닌 '한미 원자력 협정(123 Agreement)'이다. 이는 미국에게 완벽한 통제 수단을 제공한다. 미국은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하되, 일본과 달리 한국의 핵연료 농축·재처리를 원천 금지하고, '밀봉형 원자로(Sealed-Reactor Model)' 형태로 핵연료 공급을 독점함으로써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프로그램을 영구적 통제 하에 둘 수 있다. 한국은 '중견국(Middle Power)'으로 일본과 같은 지역 패권 야망이나 잠재력이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또한 '북한'이라는 실존적 위협에 군사력이 묶여 있어 핵추진 잠수함을 미국의 통제 밖에서 독자적으로 투사할 위험이 극히 낮다. 한국은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위협 대응'이라는 '방어적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이는 중국과 일본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외교적 방패막이로 작용한다. 아울러 'K-조선'의 역량은 호주-영국-미국 핵추진 잠수함 동맹인 AUKUS로 인해 포화 상태인 미국 조선업의 부담을 덜어줄 유일한 대안이다. 특히 '미국의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기조 하에 한화그룹 방산 계열사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의 필라델피아주 필리 조선소 투자는 '미국 우선주의'와 '거래적 동맹관'을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에 완벽히 부합했다. 미국의 한국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결정은 북한 군사력 억제를 넘어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관리하려는 다층적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첫 번째 노림수는 대만 유사시 중국의 군사적 옵션을 사전에 무력화하는 것이다. 각종 워 게임 시나리오는 대만 침공 시 중국 북해 함대가 주일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개입을 차단하는 핵심 역할을 맡는다고 분석한다. 한국은 대만 유사시 중국의 경제 보복과 북한의 도발을 우려해 '전략적 모호성'이나 '중립'을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정치적 선언'이 아닌 '군사적 존재'에 주목한다. 한국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대는 북해 함대의 심장부인 서해(황해)에서 작전하게 된다. 양안 전쟁 발발 시 중국 지휘부는 '중립'을 선언한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전력을 무시하고 북해 함대를 남하시킬 수 없다. 적국인 미국의 핵심 동맹국의 최첨단 전략 자산이 바로 배후에 존재하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은 북해 함대 전력의 상당 부분을 한국 핵추진 잠수함 감시와 봉쇄를 위해 서해에 잔류시킬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의 정치적 의사와 무관하게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이 그 존재 자체로 중국 북해함대를 묶어두는 '전략적 족쇄(strategic shackle)' 역할을 수행하게 됨을 의미한다. 두 번째 노림수는 일본을 향한다. 미국은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더 강력해지기를 원하지만, 일본 국내의 강력한 평화주의 여론과 헌법 9조가 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미국의 한국 핵추진 잠수함 승인 결정은 일본 안보 엘리트들에게 '어떻게 한국이 먼저?'라는 '코리아 쇼크'를 안겼다. 이 전략적 충격과 불안감은 일본 내 강경 재무장파에게 헌법 개정 반대 여론을 무력화할 강력한 정치적 명분을 제공한다. 실제로 이 결정 직후 일본 정부는 핵추진 잠수함을 완곡한 어법으로 부르는 '차세대 추진 시스템' 도입을 공식화하고, 국방 예산 증액 목표를 앞당기는 등 재무장 가속화에 나섰다. 미국은 일본을 직접 압박하는 대신 동맹 간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일본이 스스로 족쇄를 풀고 나오도록 유도한 것이다. 세 번째 노림수는 앞선 두 전략을 완성하는 '마지막 수'이다. 이는 일본의 재무장을 유도하되, 독자 핵무장과 같은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코리아 쇼크'로 조급해진 일본은 필연적으로 미국에 “우리에게도 핵추진 잠수함을 달라"고 요구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이 요구하기 전에 동맹국 핵추진 잠수함 제공의 '표준 절차'를 선제적으로 확립했다. 기술적 측면에서 AUKUS의 동맹국인 호주는 핵연료에 접근할 수 없고 미국이 '밀봉형 원자로'를 '블랙 박스' 형태로 제공하고 관리한다. 산업적 선례로 꼽히는 한국의 MASGA 모델은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원하는 동맹국으로 하여금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 미국 내 조선소에 막대한 투자를 하도록 한다. 이는 일본을 '전략적 함정'으로 유도한다. 일본이 핵추진 잠수함을 얻는 유일한 길은 자국이 보유한 막대한 플루토늄과 재처리 권한 을 포기하고 'AUKUS-MASGA'라는 미국의 통제 모델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언 그레이엄 호주전략정책연구원(APSI) 방위전략 프로그램 수석 연구원은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은 대한민국 외교의 역사적 승리이자 K-조선이 해군력의 질적 도약을 이룰 결정적 기회"라고 언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한국을 미중 패권 경쟁의 최전선인 서해와 대만 해협의 '체스판' 위로 끌어올렸음을 의미한다는 게 해양전략연구소 김주형 박사의 관측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이 한국의 의지와 무관하게 중국과의 군사적 긴장에 휘말릴 수 있는 '전략적 위험'과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아울러 일본의 재무장을 가속화시키며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동북아 전체의 군비 경쟁을 한 단계 더 격화시킬 촉매제로 작용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같은 이유로 한화오션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는 동북아 안보 지형 전체를 재편하려는 미국의 정교한 '대전략적 기동'의 핵심 축으로 기능하게 돼 무기 체계 도입 이상의 의미를 지닐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새로운 지정학적 현실 속에서 얻게 된 강력한 힘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익히고, 다가올 파고를 헤쳐나갈 것인지에 대한 심대한 전략적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 의지를 과시하고 대외 협상력 강화를 위해서는 기존처럼 비닉 사업으로 진행할 게 아니라 기밀을 해제하고 공개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또 핵추진 잠수함 도입은 전술핵, 중거리 미사일, 사드 배치 등과는 달리 주변국의 민감한 반발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도입 명분도 충분하다고 부연했다.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 연구원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어디까지나 우리 전력이라는 점에서 주권적 권리에 속하는 문제"라며 “북한이 국방 핵심 5대 과업 중 하나인 전략 핵잠수함 건조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대응 전력으로 우리의 원자력 잠수함 도입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고 설파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KAI-삼성전자, 국방 AI 반도체 동맹 결성…국산 전투기 MUM-T 고도화 박차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삼성전자와 손잡고 미래 무기 체계의 핵심인 '국방 AI 반도체' 국산화에 나선다. 14일 KAI는 경남 사천 본사에서 삼성전자와 '항공우주산업과 방위산업 적용을 위한 AI 및 무선 주파수(RF)용 국방 반도체 개발 및 생산'을 위한 업무 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날 협약식에는 차재병 KAI 대표이사와 한진만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사장 등 양사 주요 경영진이 참석해 국방 반도체 기술 자립을 위한 전략적 협력을 다짐했다. 이번 협약은 그동안 해외 의존도가 높았던 무기 체계 반도체의 국산화율을 높이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해 자주 국방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양사는 워킹 그룹·협의체 운영과 공동 연구·개발(R&D) 추진 등을 통해 방위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맞춤형 반도체를 개발한다. 높은 신뢰성과 보안성이 필수적인 국방 규격에 맞춰 설계부터 양산까지 전 과정을 협력할 방침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세계적 수준의 파운드리 공정 역량과 에코 시스템(SAFE™)을 기반으로 국방 AI 반도체의 설계와 공정, 양산에 이르는 통합 기술 솔루션을 제공한다. 한진만 삼성전자 사장은 “이번 협약은 국방 AI 반도체 국산화와 함께 국내 반도체 생태계 전반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KAI는 이번에 개발되는 국방 AI 반도체를 활용해 미래 전장의 핵심인 '유·무인 복합 체계(MUM-T)'를 고도화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AI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온디바이스(On-Device) 형태의 '자율 제어 시스템(ACS)'을 개발하고, 이를 AI 파일럿이 탑재된 무인기에 적용한다. 이렇게 개발된 기술은 T-50과 FA-50, 수리온 등 KAI의 주력 유인기 플랫폼과 연동되어 수출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차재병 KAI 대표이사는 “국산 항공기 플랫폼을 보유한 KAI와 반도체 선도 기업 삼성전자의 만남은 방산 분야 온디바이스 AI 반도체 개발의 핵심"이라며 “성공적인 개발을 통해 대한민국 방위산업과 소버린 AI(Sovereign AI)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한편 KAI는 지난 5월 산업통상부·주요 팹리스 기업들과 'K-온디바이스 AI 반도체 기술개발 협력 MOU'를 체결하는 등 미래 모빌리티와 방산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한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해상패권 키플레이어 K-조선 (상)] 한화오션·HD현대, 中견제 美전략 ‘핵심 병기창’ 급부상

세계 조선산업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종전까지 국내 조선사들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상업용 선박시장의 '규모의 경제'와 기술력을 중심으로 경쟁해 왔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간 패권경쟁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소용돌이의 한복판에서 '전략자산(Strategic Asset)'으로서 존재 가치가 재정의되고 있다. 최근 한화오션의 미국 필라델피아(필리)조선소 인수와 우리 정부의 핵추진 잠수함(SSN) 사업 추진, HD현대중공업의 인도 해군 대형 상륙함(LPH) 사업 참여는 표면적으로 개별 기업의 대형 수주활동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K-조선업계가 '글로벌 멀티 야드(Global Multi-Yard)' 전략을 채택해 미국의 핵심 대외정책인 인도-태평양지역의 중국 해양굴기를 억제하기 위한 강력한 압박 기조에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 조선업의 재건과 동맹국 역량의 결집을 목표로 하는 '미국의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Making American and Allied Shipbuilding Great Again)' 정책은 K-조선의 글로벌 멀티 야드 전략과 필연적으로 조우하며 전략적 동조화를 이루고 있다. 현재 미국은 심각한 전략-자원 간 불일치 상태에 직면해 있다. 중국의 해군력 증강에 맞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해양패권을 유지해야 하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자국의 조선 산업 기반은 쇠퇴한 상태다. 미국 조선업은 신규 함정 건조 역량의 부족은 물론, 기존 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병목 현상 탓에 미 해군의 전력 유지에 치명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이 같은 배경 아래 등장한 마스가(MASGA)는 미국 조선업 부흥을 집권 2기 핵심 과제로 설정한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적 구상이다. MASGA는 2021년 출범한 미국·영국·호주의 3자 안보 파트너십인 'AUKUS'의 한계를 보완하는 '산업적 확장판'으로 해석할 수 있다. AUKUS는 미국이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이전하는 '엘리트 소수' 간의 기술 공유 모델이었으나, 미 조선소의 건조 역량에 심각한 부담을 안겼고 한국 등 다른 핵심 동맹을 배제하는 한계를 노출했다. 반면에 MASGA는 동맹국의 산업 기반 자체를 미국 주도의 안보 네트워크에 통합하려는 더 큰 규모의 전략이다. 미국은 자본과 더불어 핵 우산·핵 연료 등 안보의 바탕을 제공하고, 한국은 기술과 생산력을 제공하는 '전략적 빅딜'의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MASGA의 성공이 사실상 K-조선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한국은 LNG 운반선·잠수함 등 첨단 선박 분야에서 세계 1위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고, 이는 MASGA 성공의 핵심 동력이 될 수 있다. 이미 한화오션·HD현대 등 한국 기업들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MRO 사업을 추진하며 프로젝트 이행에 기여하고 있고, 한국 정부는 이를 통해 약 1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MASGA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흐름과 별개로 K-조선은 '글로벌 멀티 야드' 전략을 구사하며 자체적인 생존 전략을 모색해 왔다. 포화 상태인 국내 시장과 단순 수출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해외 핵심 거점에 생산·서비스 기지를 확보하는 다각화 전략이다. 이는 선박 건조 뒤 판매를 넘어 △유망 야드 직접 인수·합병(M&A) △현지 조선소와 파트너십 체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거점 확보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 전략의 목적은 군함 등 특수선과 같은 신규시장을 개척하고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에 대응하며 MASGA와 같이 현지 정부의 정책과 안보 수요에 선제대응 하는데 있다. 한화그룹은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을 동원해 글로벌 멀티 야드 전략의 가장 공격적인 형태인 '직접 투자 및 인수(M&A)' 방식을 선택해 미국 필라델피아주 소재 필리 조선소를 인수했다. 한화오션은 필리 조선소를 전략적 거점으로 삼아 미국 상선 시장은 물론 진입 장벽이 극도로 높은 미 군함 건조 및 MRO 시장에 직접 진출한다는 구상이다. 이 모델은 MASGA의 핵심 목표인 '미국 본토 조선업 재건'이라는 요구에 가장 직접적으로 부응하는 방식이고, 한화오션이 MASGA의 핵심 파트너로 급부상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한화와 달리 HD현대그룹은 상대적으로 '자본 경량화'와 '네트워크 확장' 모델을 추구한다. 조선 부문 핵심 계열사인 HD현대중공업은 필리핀·페루·인도 등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중요한 전략적 거점국가들의 현지 국영조선소에 함정 설계 기술과 생산 노하우를 이전하고, 공동 생산을 통해 현지 방산 수요에 효과적으로 진입한다. 이 파트너 국가들은 모두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외관상 한화그룹의 미국 조선소 M&A와 HD현대그룹의 인도-태평양 지역 파트너십은 상이한 전략처럼 보이지만 모두 각자 방식대로 MASGA에 입각한 것이다. 한화오션이 MASGA의 미국 본토 조선 경쟁력 재건에 직접 베팅했다면, HD현대는 MASGA의 동맹국 역량 강화를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K-조선이 가격·물량 경쟁을 뛰어넘어 안보와 기술의 영역에서 중국 조선업과 경쟁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한화오션의 전략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필리 조선소에서의 한국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하면서 지정학적 폭발력을 갖게 됐다. 이로써 한화오션은 명실상부한 MASGA 프로젝트의 주요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정치적 선언과 필리 조선소의 산업적 현실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현재 필리 조선소는 주로 수리·개조 등 MRO 중심의 역할을 맡아왔고 핵추진 잠수함과 같은 고도의 특수선을 건조할 시설이나 인력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반면에 한화오션은 23척 수주·17척 인도 등 국내 최다 잠수함 실적을 보유한 강자이고, 한국은 이미 20여 년 전 핵추진 잠수함용 소형 원자로 기본 설계 연구를 완성 단계까지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한화오션은 핵추진 잠수함 건조 시뮬레이션까지 실행해본 경험이 있다는 전언이다. 업계에서는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선 한화오션의 잠수함 건조 기술력·자본 투자와 미국 정부의 핵연료·핵심 원자로 기술 제공이라는 거대한 빅딜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본 사업이 '한화에 의해 미국에서 만들어짐(Made in USA by Hanwha)'이라는 미국 주도의 핵추진 잠수함 공동 건조 사업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HD현대의 '글로벌 멀티 야드' 전략은 인도-태평양의 핵심 거점인 인도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약 13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인도 해군의 차세대 상륙함 4척 도입 사업을 위해 인도 최대 국영 조선소인 코친 조선소(CSL)와 전략적 협력 MOU를 체결했다. 이 사업의 핵심은 HD현대가 함정의 설계와 기술 지원을 담당하고 건조는 코친 조선소에서 현지 공동 생산'으로 추진된다는 점이다. 인도는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거점이자 중국 견제의 최전선에 위치한 국가다. 인도 정부는 군 현대화 계획을 통해 해군력 증강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K-조선이 대 중국 억지력 강화와 직결되는 인도의 해군력 증강에 나선 것은 자국의 전략적 이익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HD현대의 전략은 인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필리핀(해외 특수선 엔지니어링 오피스 개소)·페루(함정 4척 공동 건조) 등 함정 건조 협력을 동시다발적으로 이어가며 '환태평양 벨트화 비전'을 구축하고 있다. K-조선의 '글로벌 멀티 야드' 전략이 MASGA와 동조화되는 현상은 막대한 기회인 동시에, 치명적인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다. 가장 큰 위험은 기술 유출과 종속 문제다. 과거 대만 등에 잠수함 설계 도면이 유출되는 심각한 보안 사고를 겪은 바 있고, MASGA 협력 과정에서 원자로·핵연료 등 핵추진 잠수함 핵심 기술에 대한 미국의 통제로 기술적 종속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 정부가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들을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가 결국 유예했지만 '안미경중(安美經中)'사이의 딜레마는 여전히 경영상 가장 큰 리스크로 남아있다. 또한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이나 '존스법(Jones Act)' 등 미국의 강력한 자국 산업보호법과 규제는 여전히 가장 큰 걸림돌이다. 최악의 경우, K-조선이 막대한 자본과 기술을 투자하고도 핵심 사업에서 배제되고 단순 하청 기지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이러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가드레일' 설치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기업 주도적 접근을 넘어 '한·미조선협의체(SCG)' 설립과 같은 공식 컨트롤 타워를 구축함으로써 미국 규제와 충돌을 조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산 기자재의 현지 조달 비중을 보장받고, 기술 이전 범위와 보안 규제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피터 리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군함 건조와 관련, MASGA를 계기로 한국은 미국과 중단된 국방상호조달협정(RDP-A) 협상을 재개하고 미국산 우선 구매법 일부 조항의 면제를 받는 '적격국' 지위를 획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법(10 U.S. Code § 4801)에 따라 운영되는 미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영국 공동 방위산업 협력 체제인 국가기술산업기반(NTIB)에 '국내 공급자'로 포함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피터 리는 한국이 다른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해 백악관과 미 의회를 상대로 조선 및 유지보수 협력에 대한 법 개정을 설득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LIG넥스원, 태국 D&S 2025서 육·해·공 종합 방위 솔루션 제시…6·25 용사엔 ‘보은’

LIG넥스원이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국제 방산 전시회 '디펜스 앤 시큐리티(D&S, Defense & Security) 2025'에 참가해 육·해·공을 아우르는 종합 방위 솔루션을 선보인다. 이와 함께 구본상 LIG그룹 회장 등 경영진은 전시회 기간 중 현지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직접 방문해 감사의 뜻을 전하는 '보은 외교' 행보도 가졌다. 11일 LIG넥스원은 이달 10일부터 13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D&S 2025'에 참가한다고 밝혔다. 격년제로 개최되는 태국 D&S 전시회는 육·해·공 종합 방위산업 전시회로, 올해 12회째를 맞았으며 50개국 500개 이상의 방산업체가 참가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LIG넥스원은 함정 전투 체계(CMS)와 해궁·해성·청상어 등 해군 방위 시스템을 중심으로 신궁·천궁·현궁·한국형 GPS 유도 폭탄(KGGB) 등 육군과 공군까지 확장된 종합 방위 솔루션을 제시한다. LIG넥스원 관계자는 “'파트너의 힘'이라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처럼 단순한 무기 체계 판매를 넘어 태국 군은 물론 현지 방산업체 파트너들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시회 참가를 위해 태국을 방문 중인 구본상 회장을 위시한 경영진은 같은 날 방콕에 위치한 '한국전 참전용사협회'에 방문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운 참전 용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기념품을 전달했다. 태국군은 한국 전쟁에 6326명을 파병했다. 이 중 136명이 전사하고 1200여 명이 부상하는 등 큰 희생을 치렀다. 지난해 11월에는 태국군 의무대 소속 참전 용사 롯 아사나판 씨의 유해가 태국 참전용사 중 처음으로 부산 유엔(UN) 기념 공원에 안장된 바 있다. LIG넥스원은 미국·콜롬비아·프랑스·영국 등 참전 용사 초청 행사와 재한 유엔 기념 공원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참전 용사 지원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LIG넥스원 관계자는 “한국전 참전 용사들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있을 수 있었다"며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잊지 않도록 계속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단독] 대한항공 무인 스텔스기, 2029년부터 ‘한화 국산 엔진’ 달고 난다

K-방산의 미래 핵심 전력인 대한항공 '저피탐(스텔스) 무인 편대기(LOWUS, Low Observable Wingman UAV System)'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작한 '국산 심장'을 달고 오는 2029년 이후 본격 작전에 투입된다. 8일 본지 취재 종합 결과, 대한항공은 이르면 2029년 자사 저피탐 무인 편대기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5500파운드(lbf)급 터보젯 엔진을 탑재할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사업에 정통한 업계의 익명 관계자는 “국방과학연구소(ADD, 국과연)와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가 공동 개발하고 비행 시험 중인 저피탐 무인 편대기에 들어갈 해당 엔진의 최종 시험은 2029년 중에 끝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시제품은 내년 상반기 중 나온다"고 부연했다. 국과연에 따르면 이 엔진은 내년 1월부터 △항공기 시스템과의 연동 상태 △추진 계통 신뢰성·안정성 △향후 비행 시험을 위한 감항 인증까지 검증하는 과정인 지상 시험을 받는다. 대한항공이 개발 중인 저피탐 무인 편대기 시제기는 현재 시험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이브첸코-프로그레스의 5500파운드급 AI-222 엔진을 임시 탑재해 시험 비행 중에 있다. 2029년 최종 시험 완료는 2027년 검증이 끝날 기체와 내년부터 약 3년 간 혹독한 검증을 거치게 될 엔진이 마침내 하나로 합쳐지는 것으로, 저피탐 무인 편대기 무기 체계 개발 완료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후부터 국산 스텔스 무인기 작전 비행과 양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엔진 국산화가 이처럼 시급한 국가적 과제로 추진되는 데에는 △공급망 안보 △수출 주권 △미래 전장 교리 실현 문제 등 세 가지 핵심 이유가 있다. 현재 시제기에 탑재된 AI-222 엔진 제조사 이브첸코-프로그레스는 우크라이나 자포리아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최전선이어서 고강도 분쟁에 노출돼있는 지역이다. 때문에 관계 당국은 2030년대 중반 양산 계획을 분쟁 지역의 부품에 의존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을 내리게 됐다. 또 K-방산의 핵심 수출품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 경공격기는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엔진을 사용해 수출 시마다 미국의 국제 무기 거래 규정(ITAR)에 따른 승인이 필요하다. 이는 K-방산 수출에 족쇄로 작용해왔다. 2029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엔진의 최종 탑재는 대한항공 저피탐 무인 편대기가 ITAR 규제에서 자유로운 제품임을 인증하는 것으로, K-방산의 독자적인 수출길을 여는 핵심 열쇠다. 아울러 저피탐 무인 편대기는 KF-21 보라매 전투기를 호위하는 '로열 윙맨(Loyal Wingman)' 으로, 유인기 대신 위험에 노출되는 '소모성(expendable)' 또는 '감손성(attritable)' 자산 개념으로 운용된다. '벌떼(Swarm)' 혹은 '모자이크전(Mosaic Warfare)' 으로 불리는 이 교리는 저렴한 자산을 대량으로 투입하는 '저렴한 대량 생산(affordable mass)' 을 전제로 한다. 일각에서 추정하는 대당 70만 달러 수준의 파격적인 가격은 값비싼 외산 엔진으로는 불가능하고, 1000시간 이상 운용 가능한 '장수명' 국산 엔진의 대량 생산을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2029년 파이널 테스트 완료'라는 일정은 2013년부터 시작된 엔진 국산화 노력이 2026년 1월 첫 지상 시험을 거쳐 2030년대 중반 양산 으로 이어지는 K-스텔스 무인기 개발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음을 의미한다. 이명섭 국과연 책임 연구원은 “당 기관을 포함, 저피탐 무인 편대기 개발 체계단의 인력이 많이 부족해 여건이 좋지 않지만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임종묵 대한항공 대한항공 기술연구원 팀장은 “저피탐 무인 편대기를 기점으로 우리나라가 전 세계 무인기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숨 가쁘게 연구해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방산 수출 확대, 수은법 개정에 그쳐선 안 된다

지난해 2월 말, 국회는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의 법정 자본금 한도를 기존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증액하는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30조원 규모의 폴란드 2차 방산 수출 계약이 금융 지원 한도에 막혀 좌초될 수 있다는 업계의 절박한 호소가 6개월 만에 수용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K-방산의 가장 큰 장애물이 제거된 듯 보이지만 이는 '응급처방'일뿐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K-방산이 진정한 '세계 4대 강국' 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수은법 개정 너머의 구조적 문제들을 직시해야 한다. 특정국가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자기자본의 40%'로 제한한 핵심 규정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10조원 증액은 또 다른 리스크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K-방산이 제2의 폴란드급 수주에 성공하면 K-방산은 또다시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또한 이 10조원은 즉각 활용 가능한 실탄이 아니라 정부가 예산으로 채워 넣어야 할 '그릇'을 늘린 것뿐이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 신임 국방부 장관이 “금융 조건이 수용 가능하길 바란다"고 압박했듯 K-방산의 금융 지원 역량 한계가 전 세계에 노출됐고, 향후 협상 비용만 영구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 핵심부품의 해외 의존도는 가장 큰 문제다. K-방산의 대표 상품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 자주포는 오랜 기간 엔진과 변속기(파워팩)를 독일산에 의존해 왔다. 이 때문에 독일 정부의 수출 허가 없이는 우리가 수주한 물량도 팔지 못하는 기술종속 상태에 놓였었다. 최근에야 엔진 국산화에 성공하며 한숨을 돌렸지만 현대로템 K-2 전차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 등 여전히 많은 주력무기체계가 핵심부품 해외 의존도라는 아킬레스건을 안고 있다. '폴란드 원 툴'이라는 심각한 편중 현상도 해소해야 한다. 2020년부터 2024년 사이 K-방산 수출 물량의 46%가 폴란드 단 한 국가에 집중됐다. 이는 K-방산 전체의 지속 가능성이 폴란드의 정치·경제 상황에 좌우된다는 의미다. 실제 2023년 폴란드 정권 교체 후 계약 재검토 가능성이 거론되며 업계 전체가 흔들렸다. 중동·미주 등 시장 다변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정부의 역할 재정립도 시급하다. 수출 규모가 커지며 기업 간 각개전투나 갈등이 발생해도 방위사업청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방조자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미국의 경우 대외 군사 판매(FMS)를 통해 정부가 계약을 보증하고, 이스라엘은 SIBAT을 통해 마케팅과 G2G 계약을 직접 지원한다. 이처럼 우리 정부도 K-방산 '수출 전담 기구'로서 전면에 나서야 한다. 수은법 개정은 K-방산이 넘어야 할 수많은 허들 중 첫 번째를 넘은 것에 불과하다. '금융·기술·시장·거버넌스' 네 바퀴가 함께 굴러가지 않는 한 'K-방산 르네상스'는 모래성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한화, 방산·조선·미래기술에 ‘인재 파워’ 쏟아붓다

한화그룹이 지난 5일 단행한 2026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그룹의 핵심 역량을 방산과 해양으로 완벽히 재편하려는 전략적 의도를 명확히 드러냈다. 한화오션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등 핵심 방산·해양 계열사에 승진이 집중된 것은 대규모 수주에 대한 안정적 이행과 글로벌 멀티 야드 구축, 미국 시장 선점을 위한 장기적 포석이라는 김동관 부회장 체제의 3대 핵심 과제를 가속화하려는 강력한 신호로 해석된다. 이번 임원 인사에서 한화는 13개 계열사의 총 76명 신규 임원들을 선임한 가운데 그룹의 신성장 동력인 한화오션이 12명의 승진자를 배출하며 그룹 내 최다 인원을 기록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6명, 한화시스템 4명을 각각 발탁하며 글로벌 방산·조선·해양 사업에도 힘을 실었다. 반면에 ㈜한화(건설부문)가 4명의 승진자를 내는 데에 그쳐 그룹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 지를 명확하게 나타냈다. 때문에 이번 인사는 김동관 부회장 체제 하의 '뉴 한화'가 방산과 조선업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그룹의 성장 동력원으로 더욱 공고히 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6명의 임원 승진을 단행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배경에는 폭발적인 실적과 기록적인 수주 잔고가 자리한다. 올해 3분기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 로켓 등 지상 방산 부문의 수출 호조와 자회사 한화오션의 액화 천연 가스(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등 호실적 편입에 힘입어 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이 덕분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147%, 영업이익은 79% 증가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수주 잔고다. 3분기 말 기준 총 수주 잔고는 31조 원을 돌파했다. 이는 중동향 유도 무기 공급 계약과 노르웨이향 K-9 추가 공급 계약 등이 포함된 수치로, 한화에어로 IR 담당 전무의 발언처럼 4년치 매출이 확보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신규 임원 인사는 단순 '수주 성공'에 대한 보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31조원 어치 수주 잔고는 거대한 자산인 동시에 반드시 이행해야 할 '계약 부채'라서다. K-9과 천무 등은 폴란드·중동·노르웨이 등 다수의 글로벌 고객에게 전례 없는 규모로 동시 납품돼야 한다. 따라서 이번 인사의 무게 중심은 '영업'에서 '생산·관리'에 방점이 찍혔음을 시사한다. 신규 임원들의 직책은 사측이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거대한 생산·납품 프로세스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품질 문제를 방지하며, 원가 관리를 통해 수익성을 확보하는 실행·리스크 관리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상 방산을 넘어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미국 제너럴 아토믹스 에어로노티컬 시스템(GA-ASI)과 공동 개발하는 단거리 이착륙 무인기(GE-STOL)는 기존 1km 이상의 활주로가 필요했던 동급 무인기와 달리 약 100m만 확보돼도 이·착륙이 가능하고, 헬파이어 미사일 16발 탑재와 대잠수함전·전자전 수행이 가능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엔진·랜딩 기어 등 핵심 부품 공급뿐 아니라 기체 조립·생산을 위한 국내 생산 시설 구축을 담당할 계획이다. 신규 임원들은 이처럼 GE-STOL 국내 생산 기지 구축 등 차세대 사업 기반을 닦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가능하다. 이는 미래 전장의 핵심인 '무인기' 분야에서 글로벌 가치 사슬(GVC)의 핵심 생산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이번 인사를 통해 글로벌 시장 진출 확대와 시장 선도 제품 확보를 가속화해 주요 핵심 지역에서의 경쟁 우위를 선제적으로 확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룹 내 최다인 12명(연구·설계·생산(제조) 분야 7명, 사업 관리·지원 5명)의 신규 임원을 승진시킨 한화오션의 인사 키워드는 △친환경 기술 기반 기술 경쟁력 강화 △멀티 야드(Multi-yard) 제조 안정화 △미래 기술·사업 수행 역량 고도화 등 3가지다. 한화오션의 재무 상태는 한화그룹 편입 전과 대비해 안정화 궤도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1분기 실적은 특정 프로젝트의 종료로 전분기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했으나, 연간 흑자 기조 유지 전망을 밝히며 인수 후 통합(PMI) 과정의 혼란기가 마무리됐음을 나타냈다. 이번 인사의 핵심 전략인 '글로벌 멀티 야드' 경남 거제 옥포 조선소만으로는 생산 능력·인건비·지정학적 리스크 관리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한 만큼 글로벌 거점을 확보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한화오션은 '엔지니어링 허브' 인도에서는 고숙련·저비용 설계 인력을 활용한 연구·개발(R&D)·설계 기지 역할을, 브라질에서는 '해양 프로젝트' 거점으로서 남미 시장 수주·현지 조립·MRO 기지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력 중심 경영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고 전했다. 한화그룹 방산 부문의 다른 한 축인 한화시스템은 올해 3분기 엇갈린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매출은 8077억원으로 전년 대비 26.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25억원으로 60% 급감하는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지난해 6월 인수한 미국 필리 조선소 정상화를 위한 초기 투자·일회성 비용이 반영돼 388억원 상당의 영업손실이 발생해서다. 하지만 필리 조선소의 적자를 제외한 한화시스템의 본업 경쟁력은 오히려 더 견고해졌다. 방산 부문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6% 늘어난 498억원으로 집계됐고, 특히 수익성이 높은 수출 비중이 18%로 확대됐다. 여기에는 UAE 천궁-II 다기능 레이다(MFR)와 폴란드 K-2 전차 부가 체계 등이 포함되며, 여의도 증권가는 수출 사업의 영업이익률이 25% 이상일 것으로 추정했다. 따라서 이번 한화시스템의 신임 임원 4명 선발은 '단기적 잡음'에 흔들리지 않고, '미국 시장 개척'과 '고수익 수출 확대'라는 두 가지 글로벌 전략을 동시에 완수하기 위해 검증된 리더십을 전진 배치한 '전략적 포석'으로 점쳐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은 한화오션의 'AI 함정'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STOL 무인기' 에 탑재될 전투 체계·레이더·항공전자 장비 등 핵심 부품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역할을 맡아 그룹사 간 시너지를 창출해야 하는 핵심 임무도 함께 수행하게 될 전망이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수출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사업 확대를 위한 조직 역량을 한층 공고히 하고, 향후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AI와 클라우드 기반 솔루션은 방산 시설이나 조선소 같은 보안·고위험 현장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영상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이터 비즈니스'로의 확장을 의미한다. 영상 보안 기업을 넘어 'AI·클라우드 기반의 데이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한 만큼 한화비전 신임 임원 2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오션의 'AI 기반 스마트 현장'을 구축하는 시너지 창출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 한화모멘텀은 그룹 내 폭발적인 방산·조선 물량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고효율 자동화·물류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지원할 목적으로 존재해 신임 임원은 해당 계열사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내부 파트너'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KAI 노조 “사장 5개월째 공석, 특검 핑계인가”…정부 ‘정치적 무책임’ 정면 비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노동조합이 5개월째 이어지는 대표이사 공백 사태에 대해 “정부의 정치적 무책임"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6일 노조는 이날 '방산 리더십을 정치 협상 도구로 전락시킨 정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국가 전략산업의 핵심 기업이 장기간 리더십 공백에 놓인 것은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닌 정부의 무책임 그 자체"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사장 부재로 인해 KAI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경영·수출·기술 개발·노사 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의사결정이 멈춰 섰다"며 “특히 방산 수출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해외 파트너 신뢰 저하·신규 계약 지연·기술 인허가 차질 등 직접적인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노조는 이러한 상황이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 전체의 신뢰를 흔드는 국가적 리스크"라고 규정했다. 노조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 관련 특검'이 정치권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특검 수사가 끝나야 KAI 사장 인선이 가능하다"는 비공식적 입장이 흘러나오는 데 대해 정면 반박했다. 노조는 “특검은 정치의 문제이고, 사장 인선은 산업의 영역"이라며 “양자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정부가 특검을 핑계 삼아 인사를 미루며 회사를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차기 사장 인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이들은 “정권의 입맛에 맞춘 낙하산 인사"와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과거 경영진과의 연결 고리가 있는 인사"를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노조가 요구하는 리더는 “KAI에서 함께 일하며 현장을 깊이 이해하고, 국내외 항공 사업을 직접 수행해 성과를 만들어온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전문 경영인"이다. 이들은 “권력이 아닌 전문성의 리더십이 지금 KAI가 기다려온 진짜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정부가 즉시 정치적 셈법을 거두고 항공 산업을 이끌 전문 경영인 인선을 단행해야 한다"며 “조속한 결단이 없다면 대의원 의결을 거쳐 대통령실과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앞에서 상경 집회를 준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KAI, 항공 소재 228종 국산화 성공…“2030년까지 1.3조 어치 수입 대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2030년까지 항공 소재 국산화율을 50%까지 끌어올려 약 1조3000억 원 규모의 수입 대체 효과를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KAI는 경남 사천 본사에서 '항공소재개발연합'과 기술 교류회를 열고 현재까지 총 228종의 소재와 표준품 국산화에 성공했다고 6일 밝혔다. 국산화에 성공한 품목은 알루미늄 압출재와 티타늄 압연재 등 항공 소재 69종과 기계류·전장류·배관류 등 표준품 159종이다. KAI는 국산화된 소재를 KF-21과 양산기 등에 적용해 현재까지 누적 715억원의 수입 대체 효과를 거뒀다. 항공용 소재는 가볍고 강도·내구성·내열성이 뛰어나야 해 레이더·엔진 등과 함께 기술 이전이 제한되는 핵심 기술로 분류된다. KAI는 2030년까지 전체 1800여 종의 소재와 표준품 중 사용 빈도가 높은 상위 50%(900여 종)를 국산 소재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약 1조3000억원 어치의 수입 대체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KAI 관계자는 “소재 국산화는 공급 안정화를 통한 원가 경쟁력 확보는 물론, 생산 일정 단축·운송비 절감 등 수출 경쟁력 제고에 핵심"이라며 “부가가치가 커 경제적 파급 효과와 고용 창출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2019년 출범한 '항공소재개발연합'은 KAI를 포함해 경상대, 한국재료연구원, 소재·부품 제조사 43개사 등 총 52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이날 기술 교류회에서는 국민대·부산대·울산대 3개 대학이 추가로 합류했다. 항공소재개발연합은 국산화 성과에 그치지 않고 국내 소재 업체가 보잉·에어버스 등 해외 선진 제작사에 부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수출을 지원해 해외 시장 진출·확대에도 나설 계획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대한항공, 230억 들여 대당 10억 ‘해외 직구’ 무인 표적기 국산화 나선다

대한항공이 우리 군이 전량 해외 수입에 의존해 온 아음속 무인표적기 국산화에 나선다. 1대당 2억에서 10억원에 달하는 고비용 문제를 해결하고, 실전적 훈련을 강화하기 위한 핵심 사업이다. 6일 대한항공은 방위사업청이 공모한 '무기체계 부품 국산화 개발 지원 사업'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오는 2028년 9월까지 정부 지원금을 포함한 약 230억원의 연구·개발(R&D)비를 투입, '다목적 훈련 지원정용 조종·통제 콘솔 등 4종'의 개발 과제를 수행한다. 이번 사업으로 대한항공은 아음속 무인 표적기의 기체와 조종·통제 장비, 발사대 등 핵심 구성품을 국내 기술로 개발한다. 현재 우리 해군이 다목적 훈련 지원정에서 운용하는 해외 구매 표적기를 우선 대체하며, 향후 공군에서도 도입할 계획이다. 무인 표적기는 미사일·대공포·유도탄 등 각종 무기 체계의 실사격 훈련에서 실제 표적 역할을 한다. 유인기 대신 사용돼 훈련 비용과 위험을 크게 줄일 뿐만 아니라 신형 무기 개발 과정에서 명중률·추적 능력 등을 검증하는 데 필수적인 장비다. 이 때문에 선진국들은 유도탄 개발 착수 단계부터 무인 표적기를 동시에 개발하거나 선정한다. 하지만 우리 군은 지금까지 500km/h 이상의 속도를 내는 고속 무인 표적기체와 주요 항전 시스템을 미국·영국·이탈리아 등 해외에서 전량 수입해왔다. 1대당 단가가 2억~10억원에 달하는 고가인 탓에 소모성이 강한 표적기를 활용한 실사격 훈련에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번 국산화 사업의 가장 큰 강점은 '비용 절감'이다. 대당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춰 비용 부담 없이 실전과 유사한 훈련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 관계자는 “대당 단가를 정해둔 상황은 아니지만 최대한 낮게 맞추려 노력 중"이라며 “고가의 무기 체계가 아니라 저렴한 가격대를 책정하는 방향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국산 무인 표적기 개발은 방위사업청 산하 국방기술품질원 부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국기연)의 R&D 사업으로 추진된다. 국기연은 유·무인 복합, AI 등 국방 전략 기술 과제에 예산의 50% 이상을 우선 투자할 계획이다. 대한항공은 이미 확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제기 제원도 일부 공개했다. 대한항공 측에 따르면 시제기는 레이다 횡단면(RCS) 증폭기와 적외선(IR) 생성기, 터보젯 엔진을 갖췄다. 번지 발사대에서 이륙해 낙하산으로 회수하는 방식이다. 시제기 기준 제원은 △전장 2.07m △전폭 2.10m △최대 이륙 중량(MTOW) 35kg △240N 터보젯 엔진 △최대 속도 400km/h △순항 속도 300km/h △작전 반경 50km △체공 시간 30분 등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훈련 지원 무인체계 분야에서 국산화 기반을 마련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그간 쌓아온 기술력과 양산 역량을 바탕으로 무인기 플랫폼의 국방 자주화와 방산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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