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상단)와 탄도 수정 신관, 이를 적용한 155mm 탄약 모델링 이미지. 사진=박규빈 기자·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 전장의 포병 화력 패러다임이 대규모 물량 공세에 의존하던 과거의 '면 표적' 제압 방식에서 벗어나 단 한 발로 '점 표적'을 조준하는 정밀 타격 체계로 급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통해 무유도 포탄의 막대한 낭비와 군수 지원 붕괴라는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가운데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포탄을 스마트 무기로 탈바꿈시키는 핵심 부품 독자 개발에 본격적인 닻을 올렸다.
14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방위사업청과 총 1642억 원 규모의 '155mm 탄약용 탄도 수정 신관 체계 개발 사업' 계약을 체결하고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순수 국내 기술 주도로 진행되는 이번 사업은 오는 2032년 개발 완료를 목표로 추진된다. 이는 향후 양산·획득 비용을 포함해 총 1조5916억 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탄도수정신관은 전 세계 군 탄약고에 대량으로 비축된 기존 155mm 무유도 고폭탄의 전면부 기계식 신관을 스패너로 제거하고 그 자리에 장착하는 최첨단 지능형 유도 모듈이다.
서방 표준인 155mm 곡사포는 30km 밖 표적을 사격할 때 풍향·기압 등 기상 조건과 공기 저항, 강선 회전 편차 등으로 인해 최대 273m에 달하는 탄착 오차(CEP)가 발생한다. 이는 탄약 낭비와 인접 아군·민간인 부수 피해를 유발해 왔다. 하지만 포탄 끄트머리에 탄도 수정 신관을 결합하면 발사 직후 내장된 항 재밍 위성 항법 장치(GPS)와 관성 측정 장치(IMU)가 비행 궤적을 실시간으로 연산하고, 신관 외부에 장착된 소형 조종 날개(카나드)를 능동적으로 구동해 표적을 향한 궤적을 3차원 공간상에서 스스로 비틀어 보정한다.
무엇보다 포탄 발사 시 가해지는 2만G(중력가속도)의 발사 충격과 1초에 200회 이상 도는 초고속 회전 환경을 견디며 정밀 전자 제어를 수행해야 하는 극한의 기술력이 적용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은 “탄도 수정 신관을 장착할 경우 기존 K-9 자주포 무유도 포탄의 탄착 오차 범위를 약 6분의 1 수준인 50m 이내로 축소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탄도 수정 신관의 전술적 가치는 압도적인 '비용 대비 효과'에 있다. 미사일에 버금가는 정밀도를 자랑하는 미군의 전용 정밀 유도 포탄 'M982 엑스칼리버'는 1발당 획득 비용이 최대 1억3000만 원에 육박해 방위 예산의 한계상 정규전에서 다량으로 소모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100만 원대 일반 포탄에 결합해 재활용하는 탄도 수정 신관은 양산 시 엑스칼리버의 10분의 1 수준 비용으로 획득이 가능하다. 155mm 고폭탄 한 발의 치명적 살상 반경이 통상 50m에 달함을 감안할 때, 오차 범위를 50m 이내로만 좁혀도 적 진지 무력화 효과는 충분하다. 군 당국은 고가치 표적에는 정밀 유도 포탄을, 일반 대화력전에는 탄도 수정 신관을 운용하는 '하이-로우 믹스' 전술을 통해 화력 투사의 경제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오차가 6분의 1로 줄어들면 탄착군의 면적은 36분의 1로 좁아진다. 과거 1개 야포 대대(18문)가 동시 탄착 사격(TOT)을 해야 했던 적의 방어 거점을 단 1문 내지 2문의 K-9 자주포가 2~3발만 사격해도 완벽히 초토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최전방으로 이송해야 하는 탄약의 무게와 부피를 급감시켜 고질적인 군수 지원 병목 현상을 단숨에 해소한다. 또한 사격 횟수 감소를 통해 수천만 원에 달하는 K-9 자주포 강선 포신의 수명과 내구도를 보호할 수 있다. 특히 사격 직후 적의 대포병 레이더를 피해 진지를 신속히 이탈하는 '슛 앤 스쿠트' 전술 상황에서 사격 노출 시간을 극단적으로 단축해 아군 포병의 생존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전망이다.
거시적 관점에서 탄도 수정 신관 독자 개발은 K-방산의 글로벌 수출 영토와 수익 구조를 한 차원 높이는 핵심 열쇠다. 글로벌 155mm 포탄 시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국의 무기 재고 확충 강박에 따라 2031년 202억 달러(약 27조 원) 규모로 연평균 19.2%씩 팽창을 거듭할 전망이다.
하지만 현재 서방권 탄도 수정 신관 시장은 미국 노스롭 그루먼(M1156 PGK)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 조달 리드 타임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지는 공급망 병목 현상이 심각하다. 정치적 제약 문제도 발목을 잡아왔다. 미국제 첨단 유도 무기는 국제 무기 거래 규정(ITAR)에 따른 수출 통제를 받아 제3국으로 수출 시 매번 미 국무부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외교적 종속 리스크가 존재했다. 그간 K-9 자주포를 수입한 전 세계 10여 개국 역시 정밀 타격 임무를 위해선 별도로 미국산 신관을 비싸게 구매해 연동해야 하는 '반쪽짜리 수출'의 한계를 겪어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2032년 독자 기술로 탄도 수정 신관 고유 모델 개발을 완료하면 이와 같은 규제의 사슬이 끊어진다. K-방산은 글로벌 고객에게 '세계 최고 성능의 K-9 자주포(플랫폼) + 사거리 60km 연장탄(풍산) + 독자 탄도 수정 신관(한화에어로스페이스)'을 하나로 묶은 'ITAR 프리 원스톱 턴키 패키지'를 100% 자율적으로 제안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전시와 평시에 끊임없이 소모되는 고부가가치 첨단 탄약을 장기 독점 공급함으로써 장기적인 유지·보수·운영(MRO) 영업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산 수출의 새로운 현금 창출원이 될 전망이다.
한화그룹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국방과학연구소(ADD)와 155mm 정밀 유도 포탄 탐색 개발·GPS 복합 재밍 능동 대응 기술 등 선행 과제를 수행하며 항공전자 소형화와 유도 제어의 기초 체력을 다져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탄도 수정 신관은 미래 전장의 화포 체계를 완벽히 지배할 핵심 두뇌를 만드는 기술의 정수"라며 “첨단 방위 기술 국산화를 통해 자주국방과 K방산 수출 확대에 적극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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