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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기후리더십은 희생이 아니라 성장 전략이다

파리협정에 따라 국제 사회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올 해 말까지 결정해야 한다. 현재까지 영국 미국 일본 호주 등 59개국 외에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많은 국가들은 결정을 미루고 있다. 이렇게 주춤하는 이유는 2035 NDC가 단순한 환경 공약이 아니라 한 나라의 경제・산업구조, 에너지 시스템, 사회적 비용 분담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국가 차원의 중대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금까지의 감축경로와 유사한 형태의 48% 감축안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배출책임과 경제적 역량 등을 고려하여 65% 감축이라는 야심찬 감축안까지 4가지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에 대해 산업계는 “과도한 감축 목표는 국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시민단체는 “지금의 속도로는 기후위기 대응 기회를 놓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과 사회적 갈등은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각 국이 처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2035년을 새로운 기후전환의 분기점으로 삼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은 2035년까지 1990년 대비 81% 감축을 공식 선언했고, 미국은 2005년 대비 61~66% 감축을, 일본은 2013년 대비 60% 감축을 설정했다. 2035 NDC를 제시한 국가들 중 유일하게 파리협정 목표인 1.5도 억제시나리오에 부합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영국의 경우, 자국의 기후변화위원회를 비롯한 과학계와 고문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야심찬 목표를 설정하였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산업・일자리 창출, 법적 일관성 유지, 에너지안보 강화 그리고 글로벌 기후 리더라는 위상을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둔 정부의 입장은 실현가능한 야심찬 감축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짚어봐야 할 사안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전력 구조는 2024년 기준 원자력 32%, 석탄 28%, 가스 28%, 재생 10% 수준이다. 원자력 비중이 높다는 강점이 있지만, 재생에너지의 확대 속도와 송전망 확충이 뒤따르지 않으면 탄소중립 경로는 불안정하게 된다. 또한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는 여전히 에너지다소비 업종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제조업 부가가치의 절반 이상이 철강·석유화학·시멘트·정유 등 고탄소 산업에서 발생한다. 이 부문이 변하지 않으면 전력 믹스를 청정하게 바꿔도 전체 온실가스 배출은 크게 줄지 않는다. 따라서 야심찬 NDC는 단순한 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산업구조 전환 전략이 뒤따라야만 한다. 독일의 씽크탱크, 아고라 에너지전환연구소(Agora Energiewende)는 한국이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약 1,330조원의 투자비용이 필요하며, 2035년까지는 약 280조원이 필요하다고 발표하였다. 최근 한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 감축하는 경우 2035년 GDP는 최대 2.3% 감소하며, 온실가스 1톤을 감축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최대 9만원으로 전망하였다. 이처럼 야심찬 NDC를 추진할수록 단기적으로는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전기요금 및 세제 부담이 상승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이러한 단기적 비용 상승은 재생에너지 확대, 저탄소 산업구조로의 전환 과정을 거치면서 화석연료 의존도 하락, 에너지 수입 비용의 감소, 에너지 안보 증가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국가 차원에서 순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는 에너지 전환과 함께 에너지다소비 산업의 구조 전환을 이뤄낸다면 국민의 부담은 일시적 비용이 아닌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로 바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외에 중요한 이슈는 비용의 투명한 공개와 공정한 분담이다. 누가 어떤 비율로 전환비용을 부담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탄소감축은 국민의 세금과 기업의 투자로 이뤄지며, 이를 감추거나 미루면 미래 세대가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 때 전기요금 인상 없는 탈원전・탈석탄 중심의 에너지전환정책 추진이 사회적 갈등을 불러왔던 아픈 경험을 되살려, 정부는 요금 인상폭·세제 조정·산업 지원 규모 및 계획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관련된 비용에 대한 정의로운 분담구조를 설계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2035 NDC 설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단순한 감축 목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한국 사회의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기후리더십은 희생이 아니라 성장 전략이다." 영국 총리 Keir Starmer가 작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한 말이다. 이 말에서, 왜 영국이 1990년 대비 2035년 81% 감축이라는 강력한 목표를 설정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2035년 NDC는 성장의 제약이 아니라 도약의 기회이다. 현실적 야심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한국은 기후 리더십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용성

[기후 리포트] “온실가스 감축 앞당기면 건강· 경제 손실 크게 줄여”

지구 온도 상승 저지선이 일시적으로 밀리는 이른바 '기후 오버슈팅(Overshooting)' 경로가 현실화하면 실외 대기오염으로 인한 보건 및 경제적 피해가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 완화 정책을 시급히 추진하고 엄격하게 이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스페인 바스크 기후변화센터와 이탈리아·오스트리아 국제연구팀은 최근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저널에 '온도 목표 초과로 인한 대기오염 피해 추정'을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했다. 온도 목표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억제하는 한계선(저지선)을 말하는데, 온도 목표 초과는 이 기후 저지선이 일시적으로 밀리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이왕 온실가스를 줄일 것이라면 앞당겨 서둘러 줄인다면, 지구온난화도 예방하면서 대기오염으로 인한 건강과 경제 피해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실외 대기오염은 전 세계 공중 보건에 가장 큰 환경 위험 요소로 꼽힌다면서 2021년에만 세계적으로 470만 명 이상이 대기오염 탓에 조기 사망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대기오염은 인명 손실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기후변화 완화 정책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임으로써 초미세먼지(PM2.5)와 오존(O3) 같은 유해 대기오염 물질의 농도를 낮추는 '공동편익(cobenefits,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 저지선 초과 달성의 함정: 대기 오염 피해 증대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6차 보고서(AR6)에서 제시된 시나리오 중에는 '초과 달성(EoC)' 궤적, 즉 기후 저지선이 일시적으로 밀려나는 오버슈팅 궤적이 포함돼 있다. 지구 온도가 설정된 한계를 일시적으로 초과한 후 21세기 후반에 '넷네거티브 배출(net-negative emissions)'을 통해 한계 안으로 기온이 낮아져 안정화되는 시나리오다. 이 EoC 경로는 종종 기후변화를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지연시키고, 예방보다는 사후처리인 탄소 제거(CDR) 기술에 크게 의존함으로써 기후 관련 위험을 증대시키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1.5°C 목표치 초과를 피하도록 설계된 '넷제로(NZ) 경로'는 CO2 배출량을 넷제로로 조기에 감축하고, 이를 통해 온도 상승을 최대한 막는 시나리오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오버슈팅을 피하는 것이 기후 완화 노력을 앞당기는 효과를 가져오며, 이는 초기에 (특히 2030년에) 훨씬 더 큰 대기오염 혜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NZ 경로는 EoC 경로에 비해 일관되게 더 낮은 조기사망 예측치를 제시한다. ◇엄격한 넷제로 정책, 막대한 편익으로 돌아와 오버슈팅을 피하고 지구 온도 상승을 2°C 미만으로 유지하는 엄격한 기후 정책(NZ)은 막대한 보건 및 경제적 공동 혜택을 제공한다. 우선, NZ 경로를 따를 경우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20만7000명의 조기 사망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NZ 정책은 또한 모든 지역에서 극도로 높은 조기 사망이 나타날 가능성도 상당히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혜택도 크다. 2030년까지 총 2조2690억 달러(2020년 기준, 약 3267조원)의 경제적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EoC에 비해 NZ 정책 시나리오를 따를 경우 모든 지역에서 일관되게 더 많은 공동 편익을 얻게 된다. ◇중국,인도가 가장 큰 혜택 예상 특히, 중국과 인도는 이러한 비(非)오버슈팅 기후 정책으로부터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지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까지 NZ 경로를 따를 경우, 중국은 8만4000명, 인도는 7만3000명의 대기 오염 관련 조기 사망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은 2030년에 8490억 달러에서 1조770억 달러에 이르는 가장 큰 경제적 공동 편익(중앙값 9220억 달러)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팀은 “중국과 인도가 현재 전 세계 배출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대기 오염으로 인한 가장 높은 보건 부담을 겪고 있다"면서 파리 기후 협정 제6조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재정 및 기술 지원이 이뤄진다면 이들 지역의 탈탄소화와 대기질 개선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파리협정 제6.2조는 국가 간 감축량 이전을, 제6.4조는 국제 탄소시장 메커니즘을, 제6.8조는 비시장적 접근으로 거래가 아닌 정책·기술 협력·재정 지원 형태의 감축 협력을 규정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는 기후변화 완화 노력을 앞당기는 비오버슈팅 시나리오가 가까운 미래(2030년)와 세기 중반(2050년)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입증했다"면서 “이러한 전략은 기후 변화를 억제할 뿐만 아니라 공중 보건을 개선하고 경제적 번영도 증진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김성우 시평] ESG, 위기를 돌파하는 아시아의 새 해법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기후대응기금 운용심의위원 지난 10월 13일~14일 양일간 싱가포르에서 캠브리지 포럼이 열렸다. 글로벌 회사와 국제 로펌 소속 ESG 전문가들 중 약 30명 내외로 선발해 ESG관련 정부 정책이나 기업 전략에 대한 각 국가별 경험과 인사이트를 공유하면서 향후 대응방안을 토론하는 자리였다.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렸는데, 중국∙호주∙일본∙대만∙인도∙싱가포르∙말레이지아 등 아시아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미국∙영국 전문가도 참여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변호사로 채텀하우스 규정 아래 구체적인 사례들 중심의 논의였다. 필자가 토론 과정에서 느낀 아시아의 ESG 흐름은 의무화/현실화/가치화라는 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첫째, 아시아의 ESG규제가 자율에서 의무로 점진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예컨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일본 등이 국제공시표준에 연동해 단계별 ESG 의무공시 체계로 전환 중이다. 상장기업·대기업의 기후 정보 의무 공개부터 추진 중인데, 싱가포르 및 말레이시아는 2028년부터 단계적으로 공시를 본격 의무화할 예정이고, 일본도 2027년부터 의무화를 시작할 계획을 갖고 있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에서 선진국의 규제가 아시아 지역 기업에 미치는 압력도 체감되고 있다. EU의 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으로 기업이 전 세계 공급망 상의 인권·환경 리스크를 식별·시정하도록 의무화)나 EU Deforestation Regulation(EU 산림파괴 방지 규제로 팜유·커피·목재 등 상품의 수입 시 원산지의 산림 훼손이 없음을 입증) 등에 대응하기 위해 대만∙중국 등도 자국 공급망 투명성, 인권 실사 체계를 갖추기 위한 현지 법령을 준비 중이다. 둘째, ESG규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현실적 제약을 고려해 규제 시기나 강도를 조절하고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본래 올해부터 상장기업의 배출량 보고를 의무화할 계획이었으나, 경제 불확실성 및 기업들의 준비 격차를 이유로 지난 8월 의무화 시기를 조절하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아시아가 국가별 상황에 맞게 정책을 현실화하는 배경에는 미국 및 EU의 ESG규제 속도 조절이 자리하고 있다. 다만, EU의 규제 간소화는 ESG 목표의 후퇴라기 보다는 규제 이행의 현실화가 주된 이유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예컨데, EU의 탄소국경세 규정 완화로 많은 회사들이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전체 배출량의 99%를 차지하는 회사들은 여전히 대상으로 남아, 정책 목표는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중소기업 등에 대해 준비할 시간을 주거나 면제를 해 주는 현실적 조치라는 뜻이다. 셋째, ESG를 통해 실질적 회사 가치를 높이거나 가치가 낮아지지 않도록 방어하는 노력이다. ESG 거품이 빠지면서 오히려 ESG 관련 비용에 민감하게 되자, ESG를 통한 실질적 가치 제고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단순한 ESG 정보 공개 자체 보다는 실질적 데이터의 품질이나 적합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실질적 이행 없이 홍보 목적의 공개만 하거나 목표를 과하게 제시했다가 이행 추적으로 그린워싱 시비에 휩싸여 회사 가치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ESG로 직접적인 가치를 창출한 사례들도 늘고 있다. 에너지전환 추세하에서 인도의 전기차 회사는 적기에 프리미엄 전기차 시리즈 개발에 투자함으로서 9월 기준 인도 내 전기차 판매 점유율 40%로 승용 전기차 시장 1위를 기록했다. 직접적 재무효과 외에도 평판, 자본 유치, 보험(ESG·리스크 관리 수준이 낮으면 보험사가 계약을 거절), 정부 보조금·세제혜택 활용 등 다층적 가치요인도 발생한다. 한 투자회사가 투자대상회사들을 대상으로 ESG 진단을 실시한 결과 우수 등급의 투자대상회사들이 보통 등급의 투자대상회사들에 비해 평균 168% 더 많은 자금을 유치했고 기업 가치도 62% 높았다는 예시가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대외 경제여건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데, 이미 유행이 지나간 ESG에 대해 한가하게 논의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와 경쟁을 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사례를 상세히 들어 보니, ESG를 의무화하되 현실을 고려해 이행하고 이를 회사 가치로 연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혹시 이들은 아시아가 마주하고 있는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수단 중 하나로 ESG를 활용하려는 것은 아닐까? 김성우

[기후 신호등] 생분해성 플라스틱, ‘환경 구원투수’인가 ‘또 다른 재앙’인가?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기존 석유 기반 플라스틱의 대안으로 생분해성 플라스틱(biodegradable plastics, BP)이 급부상하고 있다. BP는 보통 미생물 활동을 통해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₄), 물(H₂O), 바이오매스로 완전히 분해될 수 있는 플라스틱을 말한다. 제조사와 많은 소비자는 BP가 기존 플라스틱의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해 줄 '녹색 대안'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에 따라 음식물 포장재나 일회용품, 농업용 멀칭 필름 등 환경 유출 위험이 높은 분야에서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BP가 과연 플라스틱 오염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라는 과학계의 비판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국내외에서 발표된 관련 연구를 종합하면, BP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특히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나노플라스틱(MNPs) 문제, 독성물질 배출,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 관리의 어려움 등 여러 면에서 심각한 도전 과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생분해(biodegradable)'라는 함정 BP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제품에 '생분해성'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으면 어떤 환경에서든 빠르게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오해는 소비자들이 특정 제품의 과도한 소비를 장려하고, '생분해성'이라고 표시된 제품을 무단으로 투기하는 행위를 증가시킬 수도 있다. 실제로 생분해가 일어나려면 환경 조건이 맞아야 한다. 생분해는 자연에 존재하는 미생물(세균·곰팡이 등)의 효소 작용을 통해 고분자가 분해되는 생물학적 과정이다. 생분해 속도는 산소 함량, 주변 온도, 산성도(pH), 수분 함량, 미생물의 종류와 풍부도, 고분자 특성(결정성·분자량) 등 다양한 환경적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대표적인 BP인 폴리젖산(polylactic acid, PLA)의 분해는 산업 퇴비화 시설의 조건(높은 온도, 높은 습도, 충분한 산소)을 전제로 한다. 환경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온도에서는 토양에 버려질 경우 분해가 되지 않아 토양을 오염시킨다. 반면, 폴리하이드록시알카노에이트(polyhydroxyalkanoates, PHA)와 전분 블렌드(starch blends)는 산업 퇴비화 조건에서는 물론 토양이나 해양 환경 등 다양한 환경에서 분해 가능성을 보인다. 그렇지만 PHA나 전분 블렌드조차도 해양 환경에서는 분해가 느리거나 제한적일 수 있다. 실제 실험 데이터에 따르면 해양 환경에서의 분해율(중앙값)은 전분 블렌드가 43%, PHA가 9.0%로 낮은 수준을 보였다. PHA는 토양 환경에서 분해 잠재력(중앙값 38%)을 보였으나, 해양 환경에서는 낮은 온도와 낮은 용존산소 농도로 인해 분해율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말레이시아 파항대학의 타오픽 모스후드 교수 연구팀은 2022년 '녹색 및 지속가능 화학 분야 최신 연구(Current Research in Green and Sustainable Chemistr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대부분의 BP는 특정 조건에서만 분해되며, 자연 상태에서는 수십 년간 잔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존 플라스틱 재활용 시스템에 섞여 들어간다면 BP가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기존의 재활용 시스템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생분해성 물질이 기존 플라스틱 재활용 공정에 섞여 들어가면, 재활용된 물질의 특성이 바뀌어 제품 불량을 초래할 수 있다. PLA가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olyethylene terephthalate, PET) 재활용 공정에 섞여 들어가더라도 재활용된 PET의 품질 유지를 위해서는 PLA 오염 수준이 0.1% 미만이어야 한다. 폴리프로필렌(PP) 재활용에서는 5% 미만으로 유지해야 한다. BP는 재활용될 수 있지만, 기존 플라스틱과는 별도의 흐름으로 분리돼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대부분의 지역에는 BP를 기존 플라스틱과 분리해 수거할 수 있는 전용 인프라가 미흡하다. 이로 인해 BP는 재활용되지 못하고 매립 또는 소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BP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재활용 및 퇴비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제품 회수 및 재활용에 대한 생산자 책임제도(EPR)를 도입하는 정책적 책임이 필수적이다. ◇분해돼도 문제: 미세 플라스틱 및 독성 물질 배출 BP가 기존 플라스틱보다 환경에 덜 유해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성물이 생태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BP는 특정 환경에서 기존 플라스틱보다 더 빠르게 쪼개져서 미세 플라스틱(MNPs)과 나노 플라스틱(NPs)을 생성한다. 중국 칭화대와 시안교통대 연구팀은 2020년 '환경 오염(Environmental Pollution)' 저널에 게재한 논문에서 자외선이 내리쬐는 담수 및 해수 환경에서 생분해성인 폴리부틸렌 아디페이트 테레프탈레이트(polybutylene adipate terephthalate, PBAT)의 미세·나노플라스틱 생성률이 비(非)생분해성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보다 2.6배에 이르렀다고 보고했다. 이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노화(aging) 과정에서 표면 균열과 구멍이 생겨 더 빨리 붕괴하기 때문이다. 생분해성 미세·나노 플라스틱은 기존 미세·나노 플라스틱과 유사하거나 더 큰 독성을 나타내고, 생태계에 축적될 가능성도 있다. PLA 및 PBS(polybutylene succinate)에서 나온 미세플라스틱은 해양 조류 일종인 클로렐라(Chlorella vulgaris)의 성장을 억제했는데, 성장 억제 효과가 기존 폴리에틸렌(PE) 및 폴리아미드(PA, 나일론)와 비슷했다(PLA는 48%, PE 는 47%). PLA 미세플라스틱은 에쁜꼬마선충(C. elegans)의 번식 능력을 감소시키고 DNA 및 생식선 발달에 손상을 입히는 것으로 보고됐다. 노화된 BP는 표면에 산소(O)를 함유한 작용기가 늘어나게 돼 기존 플라스틱보다 오염물질을 흡착하는 능력이 더 높을 수도 있다. 생분해성 미세·나노 플라스틱이 유해물질을 생물체로 운반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PLA 미세 플라스틱은 구리·납 이온을 흡착해 메기 조직에 축적됐고, 성장 억제와 면역 억제를 유발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BP의 또 다른 위협은 단량체(monomers)와 올리고머(oligomers, 2~40개의 단량체가 붙어 있는 형태)다. BP는 분해가 상대적으로 빠르기 때문에 분해 중간 생성물을 환경에 고농도로 방출할 수 있다. 올리고머와 단량체는 분자량이 작아 세포막을 더 쉽게 통과해 조직과 장기로 이동할 수 있다. PCL가 분해된 올리고머는 담수 미생물과 해양 조류·포유류 세포에 대해 PCL 입자 자체보다 더 큰 독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됐다. BP도 기존 플라스틱과 마찬가지로 기능성 향상을 위해 안정제·가소제·색소 등첨가제를 사용한다. 첨가제가 환경에 용출되면 유해성을 유발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과 폐기물 처리의 딜레마 BP가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 즉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 CF)은 원료 조달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 평가(life cycle assessment, LCA)로 파악할 수 있다. 바이오매스에서 유래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예: PLA)은 원료 조달 단계에서 CO₂를 흡수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이는 기존 석유 기반 플라스틱(PE, PP)이 원료 단계에서 탄소 흡수가 없는 것과 대비된다. 생산 단계는 일반적으로 모든 플라스틱 제품의 전 과정(life cycle) 중 탄소가 가장 많이 배출되는 과정이다. PLA와 같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모노머 생산과 중합 공정에 천연가스·전기 등 상당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PBAT는 부분적으로 석유 기반 원료를 사용하고 생산 공정이 복잡해 탄소 배출량이 높은 편이다. 어쨌든 생산단계까지 PLA 제품의 총 탄소 배출량은 PP 플라스틱 제품보다 61.43%~73.75% 낮아 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폐기 단계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바로 온실효과가 큰 메탄(CH₄) 배출 가능성이다. 매립지(landfill) 땅속에서 산소가 없는 혐기성 조건에서 분해될 때 메탄이 발생하는데, 메탄은 CO₂보다 지구 온난화 지수(GWP)가 20배가 넘는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매립될 경우, 기존 플라스틱보다 더 심각한 기후 변화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농업용 멀칭 필름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주요 응용 분야 중 하나다. LCA 기반 연구에 따르면, 생분해성 멀칭 필름은 기존 플라스틱 멀칭 필름보다 탄소 발자국이 낮다. 이는 생분해 멀칭 필름의 생산과정에서 화석연료 소비가 적고, 폐기 때 수거할 필요가 없어 인력 투입 비용과 관련한 탄소 배출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업용 필름 사용이 늘면 그 자체가 토양 환경을 변화시켜 온실가스 배출을 증가시킨다. 필름 멀칭 처리는 토양의 온도와 수분을 높여 미생물 활동을 촉진하고, 이는 강력한 온실가스인 아산화질소(N₂O) 배출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 물론 생분해성 멀칭 필름은 기존 플라스틱 필름보다 N₂O 배출량을 낮출 수 있지만, 필름을 남용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증가시킬 수 있다. ◇비싼 가격도 장벽으로 작용 BP의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높은 생산 비용이다. 현재 BP의 가격은 기존 석유 기반 플라스틱의 3~10배에 이르고 이로 인해 시장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원료 혁신, 생산 공정 최적화 및 생산 규모 확대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BP는 불투명한 관리 시스템과 환경적 한계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무엇보다 정보의 투명성, 표준화된 테스트 방법론의 확립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연구가 표준화된 테스트 방법(standard test method)을 따르지 않거나, 동일한 환경(예: 퇴비화)에 대해 여러 가지 다른 표준을 사용하고 있어 결과의 비교 가능성이 떨어진다. 또, 대부분의 BP의 분해도 테스트는 실험실 조건에서 최적화된 조건으로 진행되고, 실제 환경 조건(field conditions)에서 이뤄지는 테스트는 부족한 실정이다. 더욱이 순수 고분자 상태로 테스트하는 경우가 많아, 첨가제까지 포함된 실제 최종 소비자 제품의 분해도를 정확히 반영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분해 연구는 반드시 생태독성 연구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하는데, BP도 마찬가지다.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나노 플라스틱, 올리고머와 단량체 등 분해 중간 생성물의 독성을 평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근본 해결책으로 기대하긴 어려워 BP가 기존 플라스틱의 대안으로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PLA와 PHA와 같은 제품은 환경 오염을 줄이고 에너지를 회수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BP가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고, 기존 플라스틱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BP의 도입이 마치 환경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처럼 오인되고, 무단 투기 행위를 장려하는 쪽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생분해성 제품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부적절하게 폐기된다면 환경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명확한 라벨링 시스템을 개발하는 한편, 소비자가 플라스틱 사용 자체를 줄이고, 사용한 플라스틱을 올바르게 폐기하도록 행동 변화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결국, BP는 문제 해결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BP를 통해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소재 개발과 함께 폐기물 분류 기술에 대한 투자, BP와 음식물쓰레기 등 유기 폐기물 처리 시설의 확충,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의 환경적 책임 의식 향상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알래스카 덮친 태풍 ‘할롱’의 경고: “눈앞에 닥친 기후 위기”

태평양 괌 북쪽에서 발생한 제22호 태풍 '하롱(Halong)'이 멀리 알래스카까지 진출해 큰 피해를 남겼다. 태풍이, 그것도 10월 중순에 알래스카까지 진출해 피해를 낸 사례가 과거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기후 변화의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11~12일 (현지시간) 알래스카 유콘-쿠스코크윔 삼각주 지역에 최대 풍속이 시속 161㎞(초속 45m)에 이르는 태풍이 밀어닥쳤다. 특히 해안 마을인 킵눅과 크위길링옥이 직격탄을 맞았다. 초기 피해 조사에 따르면, 킵눅에서는 구조물 90%가 파괴되거나 거주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크위길링옥에서도 주택 3분의 1 이상이 파괴됐다. 이 재난으로 인해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고, 1500~2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주민들은 군용기를 통해 앵커리지와 벳헬 등으로 긴급 대피했다.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연방 재난 지역 선포를 요청했고, 피해가 워낙 막심하여 많은 이재민이 최소 18개월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던리비 주지사는 특히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피해 지역의 일부 공동체는 혹독한 북극 기후 속에서 겨울철 거주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온대성 저기압 변질 후에도 세력 유지: 이례적 현상 알래스카 도달 시점에 '할롱'은 이미 '전(前)태풍(ex-typhoon)', 즉 열대성 특성을 잃은 온대저기압이었지만, 중심 부근 풍속은 여전히 허리케인 2등급 수준(시속 약 160km, 초속 45m)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롱'은 원래 북서태평양(경도 100°E~180°E) 에서 발생한 전형적인 태풍이었다. 한국 기상청에 따르면, 하롱은 지난 5일 오전 3시 괌 북쪽 해상에서 태풍으로 발달했다. 발생 당시에는 초속 18m였는데, 서진 후 북진을 계속했다. '하롱'은 지난 9일 일본 도쿄 남쪽 해상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당시에는 최대풍속이 초속 45m에 이를 정도로 매우 강한 태풍이었다. 기상청은 10일 오후 3시에 태풍 '할롱'이 온대저기압으로 변질됐다고 밝혔다. 이후 '하롱'은 북태평양의 따뜻한 해수면 위를 지나며 에너지를 흡수한 뒤, 제트기류를 타고 북동쪽으로 치달았다. 이동 경로는 일본 동쪽 → 알류샨 열도 → 베링해 → 알래스카 서부 해안이었다. 기상학적으로 태풍에서 온대저기압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은 구조적 변화(열대성 온난핵을 잃고 전선을 동반)를 의미할 뿐, 반드시 세력이 약해졌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하롱의 잔해는 알래스카에 허리케인 2등급 수준의 강풍을 동반하며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온대 저기압은 북위 30°부터 60° 사이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이름에 온대가 붙는다. 처음부터 중위도에서 형성됐다면 중위도 저기압, 열대 저기압이 중위도로 진입하여 생겨났다면 잔존 저기압이라고 부른다. 알래스카대학 기상학자 릭 토먼은 “이러한 현상이 이례적이지만,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2022년 알래스카를 강타했던 태풍 '메르복(Merbok)' 역시 온대저기압으로 전환된 상태에서 강력한 강풍을 유지한 바 있다. ◇기후 변화의 영향: 따뜻한 바다가 폭풍을 키웠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번 폭풍은 해수면 온도 상승 등 기후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설명한다. 북극권 기후 위기에 대한 심각한 경고음이라는 것이다. 이번 폭풍이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며 북쪽 알래스카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북태평양의 비정상적인 해수면 온도 상승이다. 하롱이 알류샨 열도에 도달하기 전 통과한 북태평양 대부분 해역의 수온은 평년보다 훨씬 따뜻했으며, 이 따뜻한 바닷물이 폭풍에 에너지를 공급했다. 실제로 태풍이 지나간 후 알류샨 열도 동쪽의 우날래스카에서는 10월 사상 최고 기온인 20℃를 기록하기도 했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 같은 폭풍은 기후변화의 또 다른 결과인 해빙 감소와 해수면 상승, 연안 침식 등과 결합하면서 피해를 증폭시킨다고 설명한다. 특히 피해 지역인 서부 알래스카의 지반은 매우 평탄한데, 영구동토층이 녹아 지반이 침하하고 있어, 폭풍 해일에 더욱 취약한 상태였다. 한편, 태풍이 세력을 유지한 채 북위 60도 알래스카까지 북상했다는 것은 한반도에도 '경고'가 될 수 있다. 최근 해수온도가 크게 상승한 상태여서 슈퍼태풍이 북위 35도인 한반도 남해안까지 세력을 잃지 않고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는 다행스럽게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가을까지 강하게 유지되면서 한반도로 접근한 태풍은 하나도 없었다. ◇예보의 한계와 관측 데이터 부족 문제 제기 이번 재난을 겪으며 기상 예보 및 대비 대응 시스템의 한계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기상 예보 모델은 폭풍이 베링해 진입하는 경로는 비교적 잘 예측했으나, 알래스카에 접근한 이후에는 예측이 빗나갔다. 태풍 이동이 빨라지고 매우 이례적인 경로로 바뀐 탓이었다. '하롱'의 최종 경로와 강도는 알래스카 해역을 가로지르기 불과 36시간 전까지도 명확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많은 지역에서 대피할 시간이 부족했다. 특히, 상공 기상관측용 풍선 발사 횟수가 줄어드는 등 알래스카 서부와 원격지에서의 기상 관측 데이터 부족 문제가 제기됐다. 예를 들어, 베링해의 세인트 폴 섬에서는 8월 말 이후, 코체부에서는 2월 이후 상공 관측이 없었고, 폭풍이 접근하던 시기 노움에서는 이틀 동안 기상 관측 풍선이 없었다. 이러한 데이터 부족은 수치 모델 예측의 품질을 떨어뜨리고, 특히 열대성에서 온대성으로 전환되는 복잡한 과정에서 예측 오차를 키웠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던리비 주지사의 요청에 따라 초기 2500만 달러의 연방 지원금을 할당했으나, 2022년 메르복 피해액(2,800만 달러)을 고려할 때, 이번 복구 비용은 이를 훨씬 초과할 것으로 주 당국은 예상하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주말날씨] 흐린 가을 하늘…기온 평년 수준

주말 동안 전국이 대체로 구름이 많고 흐린 가을 날씨를 보이겠다. 24일 기상청 단기예보에 따르면 오는 25일에는 전국이 대체로 구름 많다가, 26일 오후부터 차차 맑아지겠다. 25일 새벽에는 강원영동북부와 경북동해안에 가끔 비가 내리겠고, 강원영서와 경북내륙, 부산, 울산에는 0.1㎜ 미만의 빗방울이 떨어지는 곳이 있겠다. 기온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25일과 26일 전국의 최저기온은 각각 9∼16도, 7∼16도, 최고기온은 16∼23도, 16∼21도로 예보됐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서울 노원구, 지자체 탄소중립 선도…제로에너지주택 에너지자립률 99%

지난해 10월 수도권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탄소중립 선도도시로 선정된 서울 노원구가 본격적인 탄소중립 실천에 나섰다. 지난해 환경부와 국토교통부는 탄소중립 선도도시 4곳을 선정하고 발표했는데, 충남 당진시와 보령시, 제주도 등과 함께 노원구가 선정됐다. 윤기돈 노원구 탄소중립과장은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5 노원 탄소중립 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지역 특성을 반영해 수립한 탄소 감축 전략을 소개했다. 이날 행사는 노원환경재단(이사장 동종인)과 한국에너지기후환경협의회가 주최했다. 윤 과장은 “2018년 기준으로 전체 노원구 온실가스 배출량의 73%를 건물이 차지하고, 23%는 수송 분야가 차지하는 점을 고려해 건물 분야의 온실가스 감축을 탄소중립의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노원구는 건물분야에서 2034년까지 총 35만5000톤의 온실가스를 감축, 2018년 대비 29.3%를 줄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2014년부터 지속해온 아파트 베란다 태양광 보급과 노원형 발전차액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노원구에서는 현재 1만5700가구에서 베란다 태양광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윤 과장은 “노원구에서는 '태양광 없는 건물은 없다'라는 녹색 건축 방침을 실천하고 있다"면서 “동부간선도로를 태양광 패널로 덮어 전력을 생산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송 분야에서는 친환경 자동차 전환 등을 통해 2034년까지 12만 3850톤의 온실가스를 줄일 계획인데, 2018년 대비 48.2%를 줄이게 되는 셈이다. 노원구는 지난 7월 전국 지자체 중에서는 최초로 '국(局)' 단위의 탄소중립 이행조직을 구성한 바 있다. 탄소중립국은 탄소중립도시과와 녹색환경과, 자원순환과로 구성됐다. 한편, 2017년에 설립된 노원 환경재단은 재단 산하에 탄소중립지원센터와 노원에코센터, 중랑천환경센터, 노원EZ(에너지제로)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응신 명지대 교수는 이날 포럼에서 “노원 제로에너지 주택을 대상으로 에너지 자립률을 분석한 결과, 실사용량 기준으로 연간 98~99% 범위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비가 많이 내려 태양광 발전량이 적거나 강한 한파가 오면 93% 혹은 그 이하로 떨어질 수 있지만, 거의 100% 자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건물이 에너지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발전소가 되는 도심형 에너지 허브(Hub)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다음주 초 기온 급감 강추위…서울 최저기온 2도

다음 주 초 기온이 급감하면서 강추위가 찾아올 전망이다. 오는 28일 서울의 최저기온은 2℃(도)까지 떨어지고, 일부 강원 산지에는 한파특보가 발령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23일 기상청에 따르면 일요일인 26일부터 우리나라 북서쪽에서 대륙고기압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북쪽의 찬 공기가 남하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다음 주 월요일(27일)과 화요일(28일)에는 강추위가 예상되며, 강원 산지에는 '한파주의보'가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27일부터 29일까지 전국 최저기온은 0∼11도, 최고기온은 10∼19도로 예보됐다. 기온은 다음 주 후반부터 다시 평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말까지는 강원 영동과 동해안을 중심으로 비가 이어지겠다. 오는 24일에는 강원 영동에 비가 계속되며, 오전부터 오후 사이 경북 동해안과 부산·울산 등 곳곳에도 가끔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후 25일 새벽까지는 강원 영동 북부에 비가 이어지겠다. 예상 강수량은 △강원영동 20∼80㎜(북부 최대 100㎜ 이상) △울릉도와 독도 10∼50㎜ △경북북동산지 5∼20㎜ △부산·울산 5㎜ 안팎 △제주 5㎜ 미만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E칼럼] 중국이 수소마저 우리를 추월하게 둘 건가?

수출경쟁력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한때는 노동생산성이나 부존자원 같은 공급 요인이 핵심이었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연구 이후 시장의 크기가 더 중요한 변수로 부상했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환경에서는 내수시장이 큰 나라일수록 생산이 빠르게 늘고, 그 힘이 수출 우위로 이어진다. 이른바 '자국 시장효과(Home Market Effect)'다. 이 원리는 중국의 기후산업 성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태양광, 풍력, 전기차, 배터리 등 어느 분야를 보더라도 중국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태양광 제조의 80% 이상, 풍력 부품의 50~70%, 전기차 배터리의 75~85%가 중국산이다. 거대한 내수시장과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가 결합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을 장악한 결과다. 이제 중국은 태양광·풍력·전기차를 넘어 수소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수소에너지산업 발전 중장기계획(2021~2035)' 아래 수전해 효율 향상과 그린수소 확대를 추진하며, 지방정부는 500건이 넘는 지원정책으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CNPC 등 국유기업은 대규모 그린수소 단지를 조성하고, 허베이–탕산을 잇는 약 1,000km 규모의 세계 최대급 수소 파이프라인 설계를 진행 중이다. 이러한 정부 주도의 지원 속에 중국은 이미 수전해 투자와 제조 능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024년 기준 600여 개의 그린수소 프로젝트가 추진 중이며, 가동 설비만으로도 연간 약 12만5천 톤을 생산한다. 양성자 교환막(PEM)과 음이온 교환막(AEM) 기술은 초기 상업 운전 단계에 진입하는 등 질적 도약 중이며, 설치비는 해외의 절반 수준으로 낮다. IEA는 중국이 2030년 전후로 그린수소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할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은 수소 모빌리티에서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2020년 베이징·상하이·광둥에서 시작한 시범사업을 2022년 50개 이상 도시로 확대하고, 사업자들에게 성과 기반 보조금과 금융 크레딧을 제공 중이다. 광둥성은 광저우–잔장(435km) 구간에 '수소 고속도로'를 조성해 냉장 트럭 물류망을 시험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35년까지 수소차 100만 대 보급을 목표로 삼았으며, 트럭과 버스 등 2024년 기준 전 세계 수소 상용차의 약 95%가 중국에 집중됐다. 이로 인해 도로 운송용 수소의 75%가 중국에서 소비됐고, 한국의 비중은 약 15%에 그쳤다. 반면 한국은 2019년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내세워 세계 선도국을 자처했지만, 추진력과 성과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24년 수소 승용차 판매는 3,000대 미만으로 2022년 대비 75% 감소했다. 수소 버스는 2025년 상반기 기준 약 1,200대 수준으로 중국의 압도적 물량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국내 수소 상용 트럭은 보조금 기준 15대에 불과하다. 장거리 물류와 군수 등 배터리 전기화가 어려운 분야의 탈탄소화를 이끌 핵심 수단이 지금 뒤처지고 있다. 이런 복합적 상황 속에서 한국 수소경제의 앞길은 한층 불투명해졌다. 10월 17일 전력거래소가 '2025년 청정수소발전시장(CHPS) 경쟁입찰'을 돌연 취소하면서 발전용 수소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석탄+암모니아 혼소가 포함된 입찰이 2044년까지 석탄발전을 연장하는 효과가 있음이 취소 사유로 추정된다. 새 공고에서는 암모니아 혼소 방식을 전면 배제하고 LNG+수소 혼소, 수소 전소만 제한적으로 허용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도 발전용 연료전지 입찰 물량이 여전히 미공고인 점도 우려를 키운다. 만일 발전용 연료전지와 석탄+암모니아 혼소가 정책 지원 대상에서 실제 배제된다면, 고비용의 수소 전소나 LNG+수소 혼소만으로는 향후 5년 내 시장이 열리기 어렵다. 100% 수소 연소 터빈은 실증에는 성공했지만, 상용화는 아직 초기 단계다. 혼소 역시 비용 부담이 커 지난해 민간 투자자들이 입찰을 포기했다. 정부의 우왕좌왕한 태도까지 겹치며 시장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결국, 향후 5년간 한국이 선택할 길은 수소 모빌리티와 수송 분야의 집중 육성뿐이다. 발전용 수소 시장이 단기간에 열리기 어렵다면, 상용 트럭과 버스 등 교통 부문에서라도 수소경제의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 중국이 '자국 시장효과'를 기반으로 기후산업을 장악하는 상황에서 이 분야마저 뒤처진다면, 한국의 '퍼스트 무버' 비전은 공허한 구호로 남을 것이다. 김재경

건물 스스로 실내공기 CO₂ 흡수·저장하는 기술 나왔다

탄소중립 시대를 향한 길이 한층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와 듀크대, 아르곤국립연구소 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건물 그 자체가 탄소를 흡수하는 구조물로 바뀔 수 있는 기술이 등장했다. 미국 시카고대학과 듀크대학, 아르곤국립연구소, 중국 난양공대 등의 연구팀은 최근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저널에 '탄소 나노섬유 공기 필터를 이용한 분산형 직접 공기 포집'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탄소 나노섬유(Carbon Nanofiber, CNF) 위에 폴리에틸렌이민(PEI)을 코팅한 새로운 공기 필터를 개발, 건물 환기 시스템에 장착함으로써 실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CO₂)를 직접 포집할 수 있도록 했다. ◇“건물이 바로 탄소 싱크로 변신" 연구를 이끈 포춘 슈 시카고대 교수는 “모든 건물의 환기 시스템이 바로 직접 공기 포집(Direct Air Capture, DAC) 장치가 될 수 있다"면서 “이는 탄소중립을 향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앙집중식 대형 발전소가 태양광 덕분에 옥상 패널로 분산된 것처럼, 탄소 포집도 이제는 분산형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필터는 표면적이 넓고 다공성인 CNF 구조 위에 PEI를 입혀 만든 일종의 '탄소 스펀지'다. 대기 중 농도(약 400ppm)에서도 CO₂를 빠르게 흡수하며, 습한 조건에서는 더 잘 흡착이 되는 구조다. 연구팀은 전 세계 건물 환기 시스템에 이 기술이 적용될 경우 연간 5억9600만톤의 CO₂를 제거, 즉 2020년 기준 전 세계 연간 배출량의 약 1.8%를 상쇄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2024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6억9158만톤과 맞먹는 양이기도 하다. ◇태양열과 전기열로 '스스로 정화' 기존 DAC 시스템은 CO₂ 흡착제의 재생에 막대한 열 에너지가 필요했으나, 이번 CNF 기반 필터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재생이 가능한 '저탄소' 기술이기도 하다. CNF는 태양에너지 흡수율이 94.4%에 달해, 단순히 햇빛만으로도 재생 온도인 약 80℃에 도달할 수 있다. CNF는 열 전도성이 높아 열 손실 없이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빠르게 가열할 수 있다. 덕분에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전 과정 평가(Life Cycle Assessment, LCA)에서도 순 탄소 제거 효율이 92.1%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태양열 재생 방식은 CO₂ 1kg 제거당 0.073kg의 탄소만 배출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경제성까지 확보 - “CO₂ 톤당 209달러면 가능" 기술경제성 분석(Techno-Economic Analysis, TEA) 결과를 보면, 이 필터로 공기 중 CO₂ 1톤을 포집·저장하는 데 드는 총비용은 209~668달러 수준이다. 이는 현재의 대형 DAC 설비(톤당 100~1000달러)에 비해 경쟁력이 있으며, 특히 태양열 재생 방식만 고려할 경우 포집 비용은 톤당 약 362달러로 낮아진다. 연구진은 “필터 생산 비용이 총비용의 64%를 차지하는데, 필터의 대량 생산이 이뤄지면 포집 비용의 추가 하락 여지가 크다"고 분석했다 ◇에너지 절약과 건강까지 이 시스템은 단순한 탄소 포집을 넘어 건물 에너지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기존 환기 시스템은 실내 공기질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 공기를 지속적으로 들여와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냉난방 에너지가 낭비된다. DAC 필터가 실내 CO₂를 실시간으로 제거하면 외기 유입량을 줄일 수 있어 난방·환기·공조(HVAC) 에너지 소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HVAC 부문은 전 세계 에너지 사용의 30%, 온실가스 배출의 10%를 차지한다 또한 실내 CO₂ 농도가 1000ppm을 넘으면 인지 능력 저하, 두통, 피로 등의 문제가 보고된 바 있다. 이 필터는 쾌적한 실내공기를 유지함으로써 건강과 생산성을 함께 높이는 효과도 가져온다. 전문가들은 “이 기술은 중앙집중식 DAC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건물 인프라를 활용해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시형 기후대응 기술의 전환점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는 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이 더 이상 거대한 플랜트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건물·학교·사무실로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포춘 슈 교수는 “도시의 모든 환기구가 작은 DAC 장치가 된다면, 인류는 '건물이 숨 쉬는 도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탄소중립 사회에 한 발 다가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Wu, R. et al. Science Advances, 11(42), eadv6846 (2025). DOI: 10.1126/sciadv.adv6846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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