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푸른빛 잃고 붉고 회색으로…충남 소나무숲 ‘집단 고사’](http://www.ekn.kr/mnt/thum/202608/news-p.v1.20260811.fe4b9eecce684098aff9b4dfbae49502_T1.jpg)
충남=에너지경제신문 김은지 기자 푸른 소나무숲이 적갈색과 회색으로 변했다. 적갈색 잎을 매단 나무 사이로 잎이 모두 떨어져 회백색 가지만 남은 고사목이 이어졌다. 충남 보령과 청양을 지나 태안 해안으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서 말라 죽은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고사목은 산속에만 머물지 않았다. 도로와 주택 주변, 마을 뒷산과 사찰, 해수욕장과 국립공원 구역까지 이어졌다.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동안 마을을 감싸고 바닷바람을 막아온 소나무숲이 불과 1∼2년 사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주민들은 이를 단순한 산림병해충 피해가 아닌 '재앙'이라고 표현했다. 주민들이 '재앙'이라고 부르는 피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충남도가 정밀 예찰한 결과 올해 도내 소나무재선충병 감염목은 13만9000여 그루로 조사됐다. 지난해 5331그루보다 약 26배 늘었다. 올해 조사 방식이 확진목 중심에서 집단 고사지를 반영하는 표준지 방식으로 달라진 점은 고려해야 한다. 조사 방식의 변화만으로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보령·태안·청양·서천 등 4개 시·군에 전체 발생량의 92% 이상이 몰렸다는 점은 피해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아직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감염목과 주변 감염 우려목까지 포함하면 실제 방제 대상은 조사 물량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 ◇솔향 사라진 태안…생활권까지 고사목 확산 태안군 남면 몽산포 일대에서는 푸른 해송보다 붉게 말랐거나 회백색 가지만 남은 소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이 적지 않았다. 마을 진입도로와 주택·펜션 주변, 해수욕장과 항구, 해안 산자락을 따라 고사목이 이어졌다. 태안해안국립공원 구역에서도 붉게 변하거나 말라 죽은 소나무가 확인됐다. 한동안 고향을 떠나 살다가 7년 전 몽산1리로 돌아온 한 60대 주민은 “처음 돌아왔을 때만 해도 집 주변에서 솔향이 진하게 났는데 소나무가 한꺼번에 말라 죽으면서 이제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며 “어떻게 그렇게 짧은 기간에 숲 전체가 죽음의 공간으로 변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잃은 것은 솔향과 해안 풍경만이 아니다. 고사목이 생활권까지 번지면서 안전에 대한 불안도 커지고 있다. 남면 해안지역을 자주 다닌다는 한 주민은 “바람이 불면 마른 가지가 '따닥따닥'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때로는 나무가 넘어가는 큰 소리도 난다"며 “집이나 도로 쪽으로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위험목 일부는 벌채됐지만 잘라낸 소나무가 현장에 쌓인 곳도 확인됐다. 다만 적재된 나무가 모두 재선충병 감염목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태안군과 관계기관은 감염 여부와 수거·파쇄 일정을 주민들에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태안은 충남에서 피해가 가장 심각한 지역으로 파악되고 있다. 남면 해안과 마을, 국립공원 구역까지 고사목이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산림청도 현장의 심각성을 반영해 지난달 30일 태안군을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했다. 충남 피해지역 가운데 첫 지정이다. 특별방제구역에서는 일반적인 집중 방제기간에 제한받지 않고 연중 방제작업을 할 수 있으며 추가 국비 지원도 받을 수 있다. ◇보령 피해목 3만1801그루…잠재 피해 최대 20만 그루 보령에서는 2012년 2월 20일 청라면 소양리에서 재선충병이 처음 확인됐다. 이후 피해는 화산동과 청라면, 봉황산 일원 등으로 확대됐다. 지난해 720그루였던 피해목은 올해 5월 3만1801그루로 늘었다. 1년 만에 44.2배로 불어난 규모다. 보령시가 화산동과 청라면, 봉황산 일원의 정사영상을 분석한 결과 재선충병 의심목은 5만4982그루로 파악됐다. 시가 예상한 잠재 피해 규모는 최대 20만 그루다. 다만 의심목과 확진 피해목은 구분해야 한다. 의심목 가운데 실제 감염목이 얼마나 되는지, 피해 예상치 20만 그루는 어떤 기준으로 산출했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수치로 나타난 확산세는 화산동 현장에서 그대로 확인됐다. 큰골 마을 뒷산에서는 붉게 말라 죽은 소나무가 능선을 따라 이어졌다. 주택과 도로 주변, 집 정원과 사찰을 둘러싼 소나무도 피해를 피하지 못했다. 평생 화산동에서 살았다는 한 70대 주민은 “수십 년, 수백 년 된 소나무가 집 주변부터 산 전체까지 붉게 말라 죽었다"며 “평생 이곳에 살았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 재앙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두 그루씩 죽기 시작했을 때 원인을 확인하고 막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왜 이렇게 번질 때까지 막지 못했는지 답답하다"고 했다. 보령시는 급증한 피해에 대응해 올해 방제 예산과 고사목 제거 면적을 확대했다. 올해 재선충병 방제비는 24억6300만원으로, 지난해 10억1900만원보다 2.4배 늘었다. 고사목 제거 계획 면적도 지난해 45㏊에서 올해 186㏊로 4.1배 확대됐다. 반면 올해 5월까지 확인된 피해목은 지난해 전체의 44.2배에 달했다. 예산과 작업 면적 확대만으로 확산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청양 화강리 노송도 고사…숲 통째로 바꾼다 보령과 맞닿은 청양군 화성면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강리에서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된 노송까지 재선충병으로 쓰러졌다. 약 90가구가 모여 사는 화강리 주민들에게 소나무는 조경수나 목재가 아니었다. 외지인이 좋은 값을 주겠다며 팔라고 해도 내놓지 않았던, 선조 때부터 이어진 마을의 역사였다. 안길수 화강리 새마을지도자는 2010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화강리로 귀촌했다. 마을을 에워싼 울창한 솔숲이 그의 마음을 붙잡았다. 그러나 16년이 지난 현재 소나무가 집단으로 고사한 산자락에는 넓은 벌채지가 생겼다. 안 지도자는 “처음에는 한두 그루씩 보였다. 그때부터 빨리 손을 써야 한다고 계속 얘기했다"며 “한번 번지기 시작하면 막기 어렵다고 했는데 지난해부터 정말 심해졌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초기 대응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이 청양의 피해 규모도 수만 그루로 불어났다. 올해 청양에서 확인된 피해목은 3만1717그루다. 군은 약 37억원을 투입해 피해목 제거와 예방나무주사, 수종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피해가 집중된 화강리에서는 감염목을 한 그루씩 골라내는 방식 대신 일정 구역의 소나무를 모두 벌채한 뒤 편백과 낙엽송 등을 심고 있다. 청양군은 보령 경계지역의 피해가 공주 방향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차단 방제도 추진할 계획이다. 안 지도자는 “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지만 지금 심은 편백이 잘 자라 산을 덮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소나무숲은 잃었지만 편백이 울창해지면 그 나름대로 주민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치료제 없는 재선충병…방제 속도는 확산세 못 따라가 보령·태안·청양에서는 소나무재선충병이 확산하면서 집단 고사가 이어지고 있다. 소나무재선충은 길이 1㎜ 안팎의 선충으로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 등을 통해 소나무류로 이동한다. 재선충이 나무 안에서 번식하면 수분과 양분의 이동 통로가 막힌다. 감염된 나무는 잎이 적갈색으로 변한 뒤 수개월 안에 대부분 말라 죽는다. 현재 감염목을 되살릴 치료제는 없다. 충남도는 기온 상승으로 매개충의 생존율이 높아지고 활동 기간이 길어진 점을 피해 확산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다만 기후변화만으로 피해 급증의 원인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매개충 밀도와 소나무림 분포, 감염목 제거 시기, 방제구역과 누락지역, 감염목 이동 가능성 등을 함께 조사해야 한다. 충남도는 올해 기존 예산 174억원에 재난대책비 184억원을 더해 모두 358억원을 재선충병 방제에 투입한다. 지난해 108억원보다 약 3.3배 늘어난 규모다. 충남도는 지난해 감염목과 감염 우려목 약 3만7000그루를 제거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약 4만1000그루를 처리했다. 집계 기준에 차이는 있지만 올해 확인된 감염목 13만9000여 그루와 비교하면 제거해야 할 물량이 방제 속도를 크게 앞서고 있다. 도는 오는 9월부터 내년 4월까지 집중 방제에 나선다. 헬기와 드론, 산림재난대응단을 연계한 예찰망을 가동하고 피해목 제거와 예방나무주사, 집단감염지역의 수종 전환을 병행할 방침이다. 태안에 이어 보령·서천·청양을 특별방제구역으로 추가 지정하는 방안도 산림청에 건의한다. 내년도 국비 확보 목표는 200억원이다. 구본영 충남도 정무부지사는 12일 산림청을 방문해 특별방제구역 확대와 국비 지원, 방제 인력·장비 확보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박수현 충남지사도 지난 3일 실국원장회의에서 “재선충병 피해를 도민들이 직접 체감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며 “현장 대응을 강화하고 산림청과 협의해 방제와 산림 회복에 필요한 국가 지원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충남도와 산림청이 예산과 방제구역 확대에 나섰지만 주민들이 체감하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생활권 안전이다. 주민들은 말라 죽은 나무가 강풍에 쓰러지거나 산불 위험을 키울 수 있다며 주택과 도로 주변의 위험목부터 제거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보령에서는 잠재 피해목이 최대 20만 그루로 예상된다. 청양에서는 선조 때부터 지켜온 노송이 사라졌고, 태안에서는 바닷바람을 막아온 해송림이 붉은 갈색과 회색이 뒤섞인 고사목 지대로 변했다. 수십 년 된 소나무를 베어내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다. 그러나 어린 묘목이 다시 울창한 숲을 이루려면 한 세대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숲이 모두 사라진 뒤 시작하는 복구는 방제가 아니라 사후 수습이다. 산림청과 충남도, 피해 시·군은 얼마를 투입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숲을 살렸는지로 대응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김은지 기자 elegance4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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