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최근 공개한 차세대 인공지능(AI) 모델 '제미나이3'가 추론 성능 등에서 '챗GPT'를 뛰어넘었다는 호평을 받으면서 AI 산업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특히 구글이 AI모델 훈련에 자체 개발한 칩을 활용함으로써 그동안 그래픽처리장치(GPU)로 AI 시장을 장악해온 엔비디아의 아성까지 흔들고 있다. 시장에서는 제미나이3의 등장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AI 거품론'을 일축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구글이 새로운 AI 생태계를 구축해 엔비디아·오픈AI의 대항마로 부상할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25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는 전장 대비 0.67% 상승한 2만3025.59에 장을 마감했다. 전날엔 2.69% 급등하면서 지난 5월 12일(4.35%)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구글이 지난 18일 공개한 제미나이3에 대한 업계의 호평이 잇따르자 모회사인 알파벳 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4일엔 사상 처음으로 종가 기준 300달러선을 넘어섰고 시가총액은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고 3위에 올랐다. 알파벳 주가는 이날에도 1.62% 오르면서 시총도 약 3조9000억달러로 불어나났고 4조달러 돌파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알파벳의 강세 속에 기술주 전반이 동반 상승하며 최근 불거진 AI 과열 논란도 잠잠해진 모습이다. '제미나이3 프로'는 현존 가장 똑똑한 AI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AI 모델 평가사이트인 LM아레나 리더보드에서 제미나이3 프로는 지난 21일 기준 1495점을 기록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xAI가 선보이는 '그록4.1 씽킹'과 '그록4.1'가 각각 1481점, 1462점으로 2·3위를 차지했고 '챗GPT5.1 하이'(1454점)는 4위에 그쳤다. 구글은 제미나이3를 기반으로 한 이미지 생성·편집 도구인 '나노 바나나'의 새로운 버전도 주목을 받고 있다. 나노 바나나는 현실적 이미지를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주는 성능이 탁월해 인터넷에서 '내 사진으로 피규어(모형) 만들기' 유행을 일으키고 있다. 오픈AI의 공동 창업자인 안드레이 카파시는 소셜미디어 엑스(X)에 제니마이3를 “확실한 1티어(최상위) 대형언어모델(LLM)"라고 극찬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의 공동 창립자인 닐 샤는 “구글은 AI 경쟁에서 항상 다크호스에 불과했다"며 “잠자던 거인이 이제 완전히 깨어났다"고 평가했다. 구글은 수년간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로 검색 시장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오픈AI의 챗GPT가 3년 전 등장하자 구글의 검색 엔진은 처음으로 실질적인 위협을 맞았다. 당시 수많은 애널리스트들과 전문가들, 심지어 구글 엔지니어와 전 최고경영자(CEO)조차 구글이 AI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구글은 또 챗GPT 등장 이후 AI 챗봇 '바드'를 내놨지만, 성능이 들쭉날쭉하고 틀린 답을 내놓는 경우가 많아 체면을 구겼다. 그럼에도 구글이 짧은 기간 내 유력한 대항마로 부상한 배경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모두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은 검색 엔진, 크롬 브라우저, 유튜브,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등에서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를 AI 모델 학습에 활용했다. 또한 자체 클라우드·데이터센터 인프라를 운영하고, 텐서처리장치(TPU)라고 불리는 AI 칩을 직접 제조하고 있다. 이는 AI 학습과 서비스 제공 과정 전체를 구글 생태계 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구조로, 경쟁사들과 경쟁에서 우위 요소로 꼽힌다. 오픈AI는 챗GPT에서 나오는 사용자 데이터 외 다른 데이터는 다 외부에서 가져와야 한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우리는 AI에 대해 완전하고 깊은 풀스택 접근을 해왔다"며 “이 전략이 성과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포레스터의 토마스 허슨 애널리스트는 “제미나이3 출시로 구글이 다시 경쟁에 복귀했다는 평가가 타당하다"고 말했다. 특히 제미나이3가 TPU만으로 개발됐다는 사실은 AI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우위를 위협할 수 있는 '게임체인저'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온라인 매체 더 인포메이션은 “메타플랫폼이 2027년 자사의 데이터센터에 구글의 TPU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메타는 그간 엔비디아의 GPU를 대량으로 구매하던 '큰손'이었다. AI 챗봇 '클로드'를 운영하는 앤트로픽도 지난달 말 구글의 TPU 100만 개를 탑재한 클라우드 이용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구글 TPU의 확장 가능성에 이날 뉴욕증시에서 엔비디아가 '매그니피센트7' 중 유일하게 하락한 종목이다. 장중 7% 이상 급락하기도 했으며, 마감 때 낙폭을 2.59%로 줄였지만 AI 시장이 더 이상 엔비디아 중심으로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경계심은 커진 상태다. AMD 또한 이날 4% 이상 내렸다. 오픈AI에 305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일본 소프트뱅크 주가도 25일 일본증시에서 10% 가까이 급락했다. 영국 자산운용사 퀼터 체비엇의 벤 바링어 기술 리서치 총괄은 “수많은 기업들이 맞춤형 칩을 개발하려다 실패했지만 구글은 이 분야에서 새로운 강점을 추가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구글이 AI 경쟁에서 최종 승자가 될지는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선발주자인 챗GPT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구글은 제미나이 사용자가 6억5000만명이라고 지난 주 밝혔다. 반면 오픈AI는 챗GPT 사용자가 8억명을 넘어섰다고 최근 발표했다. 리서치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제니나이 앱 다운로드 건수는 월 7300만회로, 챗GPT(9300만회)를 크게 밑돌았다. 또한 메타·앤트로픽처럼 대규모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구글 TPU가 시장 전반에서 선택지를 넓히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TPU는 구글 클라우드에서만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환경에서 활용될 수 있는 엔비디아 GPU보다 제약적이다. AI 스타트업 더블워드의 메리엄 아릭 CEO는 “TPU를 도입하는 순간 구글 생태계에 묶이게 된다"며 “반도체 산업은 단일 승자가 존재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