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이미지

전지성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전지성 기자 입니다.
  • 기후에너지부
  • jjs@ekn.kr
[자원경제학회 세미나] 산업 탈탄소화, 경제성 있는 수소 확보가 관건…“수소고속도로 필요”

AI와 전력 대전환 시대를 맞아 산업 탈탄소화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의 '마지막 퍼즐'로 부상했다. 에너지와 산업 현장에서는 '기술이 아니라 원료가 문제'라고 진단하고 있었다. 6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자원경제학회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난(難)감축 산업(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의 탈탄소는 결국 안정적인 청정 연‧원료 공급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발표에서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의 54%가 산업부문에서 발생하며, 그중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기초소재산업이 핵심"이라며 “산업구조상 탈탄소화는 단순히 공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산업 생태계 전체의 구조개편 과제이다. 2035 NDC가 제시하는 선형적 감축경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정 연구위원은 또 “EU와 미국은 탄소중립을 산업재편의 성장전략으로 보고 청정산업딜(Clean Industrial Deal)과 전환금융 등 지원책을 앞세우지만, 한국은 여전히 기술과 제도 간 불일치로 실행이 지연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현재 우리 산업은 고효율 설비를 갖추고 있음에도 추가 감축의 한계비용이 매우 높다"며 “정부가 탈탄소화 기술의 상용화를 지원하는 동시에, 연료·원료 전환 비용을 흡수할 금융 인프라를 시급히 확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상준 서울과기대 교수는 '산업 탈탄소화를 위한 친환경 원료 공급체계의 중요성' 발표에서 “難감축 산업은 결국 연료의 문제로 귀결된다"며 “저탄소 철강, 저탄소 플라스틱 크래킹, 저탄소 시멘트, 저탄소 암모니아 합성 등 핵심 공정이 모두 안정적 청정수소 공급망에 의존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수소환원제철 실증사업(한국형 유동환원로 기반)을 예로 들며 “그린수소 공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증이 완료돼도 상용화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포스코가 2050년까지 연간 300만톤의 수소가 필요하다고 전망하는데, 현행 청정수소 공급능력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하다"며 “결국 '수소고속도로' 구축과 원전수소(Pink Hydrogen) 활용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날 '수소고속도로' 구상도 공개했다. 그는 “동해·남해·서해 등 3개 권역에 청정수소 생산기지와 배관망을 구축해 산업·발전·도시가스를 잇는 국가급 인프라를 만드는 방안"이라며 “철강·석화·천연가스 혼입 등으로 연간 1억톤 이상의 CO₂ 감축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또한 “수소 인프라 구축은 지방소멸 대응의 새로운 성장축이 될 수 있다"며 “전남·경북·충남 등 고위험 지역에 산업단지·창업 생태계를 결합하면 일자리 1만 개 이상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정은미 연구위원은 발표를 마치며 “산업 탈탄소화는 환경정책이 아니라 산업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탈탄소 기술을 단순히 규제대응 수단이 아니라 신산업 성장동력으로 재정의해야 한다"며 “산업 간 융복합, 순환경제, 전환금융을 연결하는 국가 차원의 '산업전환 청사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제주도, ‘그린수소’로 대한민국 에너지 대전환 이끌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이산화탄소가 만들어낸 기후 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환경운동가이자 《6도의 멸종》의 저자 마크 라이너스는 지구 평균 기온이 단 1도만 올라가도 킬리만자로와 알프스의 만년설이 녹고 전 세계적으로 가뭄이 찾아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호주 기후위원회가 지난 2014년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2010년이 되면 제주 용머리 해안이 수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반복되는 가뭄과 폭염, 사라져가는 계절, 계속해서 높아지는 해수면 등을 통해 지구의 경고를 직접 체감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뒤덮은 기후 변화의 파고에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길은 결국 탄소를 줄이는 일이다. 그 해법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기자는 대한민국에서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를 결합해 지속 가능한 에너지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제주를 찾았다. 바람과 햇빛이 만든 전기, 그리고 그것을 수소로 바꾸어 저장하는 기술까지. 제주는 섬이라는 한계를 오히려 실험의 무대로 삼고 있었다. 제주가 만들어 가는 탄소중립의 현장은 단순한 실험을 넘어, 대한민국 미래 에너지의 답안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주 제주시 구좌읍 CFI에너지전시관에서 제주도의 '에너지 대전환 계획'을 보여주는 지도가 펼쳐졌다. 제주도 관계자는 지도 위에서 제주가 앞으로 10년 동안 밟아갈 에너지 전환 경로를 설명했다. “제주도는 2035년 탄소중립을 목표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석유, 석탄 같은 화석연료 대신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를주 에너지원으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전시관 벽에는 제주도의 에너지 전환 계획이 단계별로 정리돼 있다. 2026년까지 해상풍력 100㎿를 설치하고, 수소 생산 시설 15㎿를 운영한다. 2030년까지 해상풍력 150㎿와 30㎿ 규모의 수소 생산 국가사업을 추진하며, 2035년에는 해상풍력 3GW와 수소 100% 발전 체계를 완성한다는 목표다. 해상풍력 3GW는 약 300만 가구에 전기를 동시 공급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로, 제주 섬의 전력 수요를 충분히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주도의 에너지 전환 계획에는 에너지 저장장치(BESS) 확충, 분산형 에너지 특화 지역 조성, 가상발전소(VPP) 구축, RE100 거래 제도 개선 등 구체적인 실행 전략도 포함돼 있다. 이러한 전략은 제주의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고, 전력 공급의 안전성을 강화하며, 지역 주민과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생태계의 기반을 구축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제주 바람으로 만든 전기로 물을 분해해 그린수소 만드는 수전해 방식 활용 전시관에서 확인한 제주도의 에너지 전환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전체 전기의 70%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고, 둘째, 부족한 20~30% 가량의 기저전원은 그린수소로 전환한다. 마지막으로, 수소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설비와 전기를 저장하는 장치(ESS), 전기차와 연계된 시스템(V2G) 등 유연한 에너지 자원을 늘려 효율적인 전력 사용을 추진한다. 이 세 가지 전략을 통해 제주도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지속 가능한 전력 공급 체제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전시관을 나와 방문한 3.3㎿ 규모의 그린수소 생산 시설은 제주도의 에너지 전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장이다. 이 시설은 낮 동안 남는 전기로 수소를 만들어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다시 전기나 수소차 연료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한 가정 평균 소비 전략을 약 3㎾로 본다면, 3.3㎿는 약 1100가구에 전력을 동시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이 시설은 두 가지 수전해 방식(AEC 2㎿, PEM 1.3㎿)을 동시에 운전하는 하이브리드 실증 현장으로, 국내 최초의 사례다. 저장탱크는 최대 600㎏의 수소를 보관할 수 있고, 2㎿h 규모의 ESS를 통해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한다. 낮 동안 풍력과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수소로 저장했다가, 실제로 운영되는 모빌리티에 그린수소를 공급하는 순환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고, 이는 국내 최초의 사례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1일부터 함덕 충전소에 1㎏당 1만5000원으로 상업 판매를 시작했다"며 “그린수소는 출력제어의 한계를 풀어내고 재생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제주도는 바람과 태양으로 전기를 만들고 남는 전기를 수소로 저장하며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바다에서 파도의 에너지로바람으로 전기를 만들어 수소를 생산하는 '해상 그린수소 생산 시스템'도 국내 최초로 실험 중이다.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앞바다에 설치될 이 시스템은 바닷바람으로 전기를 만들어 수소로 전환하는 기술로, 올해 해상 실증과 관련 규제 완화를 통해 해상에서의 에너지 전환·저장·활용 사이클을 완성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또 다른 핵심 사업은 10.9㎿ 규모의 대규모 그린수소 실증 프로젝트다.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진행되는 이 사업은 네 가지 수전해 기술(PEM,AEC, AEM, SOEC)을 한 곳에 모아 비교 실험한다. 생산된 수소는 청정수소 인증과 RE100 거래 모델에 활용되어, 기업과 지역사회가 재생에너지와 수소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 마지막 방문지는 함덕 그린수소 충전소다. 국내 최초로 '그린수소'를 공급하는 충전소로, 하루에 버스 4대 또는 승용차 20대를 한 시간 안에 충전할 수 있으며, 2024년 11월부터 상업 판매를 시작했다. 올해 9월 기준, 수소버스 22대, 수소청소차 1대, 승용차 68대가 그린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제주 도로를 달리고 있으며, 생산기지가 더욱 안정화되면 그린수소를 이용한 차량 운행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제주는 전국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저탄소 중앙계약', '실시간 전력거래'와 같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며, 에너지전환의 실험장이자 현장 연구소 역할을 하고 있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활용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수소 저장 기술로 보완하며, 탄소중립을 향한 미래를 실험하는 것이다. 또한 RE100 수소시범단지, 5MW 플랜트형 PEM 수전해 기술개발, 수소특화단지 지정 추진, 대규모 청정수소 생산 기술개발 추진 등 명실상부 그린수소 글로벌 허브로 나아가고 있다. 파도가 치는 바다 위 풍력발전기, 전기로 물을 나누어 수소를 만드는 장치, 함덕 충전소에서 조용히 달리는 수소버스까지. 제주도는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를 결합한 대한민국 첫 탄소중립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섬이기에 가능했고, 섬이기에 더 절실한 도전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경동원, KAFF 2025서 ‘프리미엄 방화문 세이프도어 포함 내화단열 통합 솔루션’ 선봬

'쾌적한 생활환경 파트너' 경동원이 대한건축사협회가 주최하고, 코엑스와 공동 주관하는 '한국건축산업대전 2025(KAFF 2025, Korea Architecture Fair & Festival 2025, 이하 전시회)'에 참가해 차별화된 내화단열 통합 솔루션을 선보인다. 경동원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건물의 화재 안전성과 단열 성능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솔루션을 대거 전시한다. 전시 제품으로는 △6대 복합성능 고성능 방화문 '세이프도어'를 비롯해 △보드 타입의 준불연 우레탄 단열재 '세이프보드' △스프레이폼 형태의 '세이프폼' △심재 준불연 우레탄 샌드위치 패널 '세이프패널' △철골 내화 피복재 '에스코트' 등이다. 특히, 전시회에서 3세대 프리미엄 방화문 세이프도어 플러스(이하 세이프도어 플러스)를 공개한다. 세이프도어 플러스는 준불연 우레탄을 적용해 허니컴, 미네랄울을 적용한 기존 방화문 대비 장기 사용 시 변형이 적고 내구성이 좋으며, 단열성능 강화된 제품으로 제로에너지 건축물에 적합하다. 또한, 복합적인 내화 성능을 갖춘 제품으로, 최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방화문의 품질 인정서'를 획득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전시회는 11월 5일부터 7일까지 코엑스 B홀에서 진행되며, 참관 등록 및 브로셔 열람 등 자세한 정보는 전시회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동원 김종욱 대표이사는 “화재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내화단열 기술을 통해 건축물의 안전성과 품질을 동시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제품 혁신을 바탕으로 보다 쾌적하고 안전한 생활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가스공사, 협력사와 LNG 부품 국산화 위한 상생협력 강화

한국가스공사(사장 최연혜)가 11월 4일부터 5일까지 이틀간 대구 본사에서 '2025년 부품 국산화 기술개발 협력사 상생협의회'를 개최했다. 가스공사는 정부 국정과제인 '미래 신기술로 성장하고, 글로벌로 도약하는 중소기업'에 발맞춰 LNG 부품 국산화 성과를 공유하고 신규 기술개발 협력 과제 추진 방향을 논의하고자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이번 협의회에는 본사 생산운영처 및 전국 5개 LNG 생산기지(평택·인천·통영·삼척·제주)의 분야별 전문가와 7개 협력사 관계자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가스공사는 이 자리에서 △중소기업 지원 사업(기술개발·생산성 향상·판로 지원 등) 소개, △2025년 국산화 기술개발 사업 추진 현황 공유, △R&D 기술개발 및 실증 등 신규 사업 제안, △협력사 의견 청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특히, 초저온 LNG 펌프·가스 베어링 피스톤·저녹스 버너 등 핵심 국산화 과제 진행 현황과 성과를 점검하고, 기기 단위 기술개발 및 상용화 확대 방안에 대해서도 집중 논의했다. 가스공사는 이번 협의회에서 나온 여러 의견을 향후 국산화 기술개발 전략 방향 수립에 적극 반영하는 한편, 중소 협력사 개발 제품에 대한 실증 테스트베드 제공과 판로 확대를 위한 국내외 전시회 참가 지원도 꾸준히 이어나갈 계획이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LNG 부품 국산화는 에너지 공급망 안정과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한 핵심 기반"이라며, “앞으로도 국내 중소기업이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생산성을 혁신할 수 있도록 상호 긴밀하고 지속적인 기술 협력 체계 강화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지역난방공사, ABB와 ‘AI형 플랜트 구축을 위한 AX 업무협약’

한국지역난방공사(사장 정용기, 이하 '한난')가 ABB(아시아 총괄대표 앤더스 마테센) 와 함께 집단에너지설비의 인공지능 전환에 관한 기술 교류 및 상호 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협약은 정부의 공공기관 AI 추진 강화 정책에 발맞춰 한난이 추진 중인 Smart:한난 및 AX(Artificial Intelligence Transformation, 인공지능 전환) 전략의 일환으로, AI 기반 지능형 플랜트 구현을 가속화하기 위한 글로벌 기술 협력의 첫걸음이다. ABB社는 글로벌 산업 자동화 선도기업으로, 지난달 한난이 세종시 소재 누리열원의 자동화에 성공하고 중부·남부발전과 함께 'DX(디지털 전환)를 위한 자동화 추진 MOU'를 체결한 데 이어 ABB社와도 손잡음으로써 플랜트 운영의 DX를 넘어 AX 전환을 본격화하게 됐다. 한난과 ABB는 이번 협약을 통해 △AI형 플랜트 구축 관련 인공지능 기술 협력 △AI 솔루션 최적화 협력 △AI 테스트베드 구축 검토 등을 공동으로 추진할 계획이며, 향후 정기적으로 워크숍과 기술세션을 개최하며 상호 협력체계를 공고히 할 계획이다. 정용기 한난 사장은 “AI는 이제 기업의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 요소이며, 2030년까지 전국 주요 플랜트에 AI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라며, “ABB와의 협력을 통해 한난 플랜트의 지능화·능동화를 앞당기고, 이를 통해 국가 전력망 안정화와 에너지 효율 혁신을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AI와 송전망 딜레마 中] 文·尹도 못했는데 李는 할까…관건은 ‘주민수용성’

한국이 AI·반도체 3대 강국 도약을 선언하면서, 그 핵심 인프라인 '에너지 고속도로'(초고압직류송전망, HVDC) 구축 사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문재인·윤석열 정부 모두 추진 의지를 밝혔음에도 속도를 내지 못한 대표적 난제로 꼽힌다. 핵심 원인은 분명하다. 송전선로가 지나는 경과지 주민들의 반발이다. 특히 2014년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 사실상 모든 건설이 멈춘 상태다. '송전탑은 들어오면 평생 고통만 남는다'는 인식이 뿌리 깊고, 환경·경관 훼손, 전자파 우려, 재산가치 하락 등으로 민원과 소송이 반복돼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전력망 확충 조기 착공"이 국정과제로 포함됐지만, 실제 사업은 대부분 타당성 조사 단계에서 멈췄다. 윤석열 정부 역시 “AI 시대 대비 전국 송전망 확충"을 강조했으나, 한국전력공사(한전)의 재정 악화와 주민 반발로 인해 진척이 없었다. 정부는 전문가들이 제안한 민간참여 모델이나 특수목적법인(SPC) 방식 도입에도 소극적이었다. 결국 “정부는 추진 의지만 있고, 한전은 여력도 명분도 없으며, 주민은 끝까지 반대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AI 산업과 재생에너지 확산을 뒷받침할 송전망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고 강조하며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을 '국가 전략 인프라 프로젝트'로 격상시켰다.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한전의 단독 추진 구조를 개편해 민간 발전사·투자기관이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송전망 사업 구조'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법적 근거가 명확치 않아, 실제 민간 참여가 가능하려면 전기사업법 및 송전특례제도 개정이 필요하다. 결국 이번 정부가 속도를 내기 위해선, 정치적 결단과 사회적 설득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대규모 전력망 건설은 단순한 기술·재정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송전망 건설에 속도를 내기 위해선 결국 '주민수용성(Community Acceptance)'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2014년 밀양 송전탑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한전이 밀양지역에 송전탑 52기 설치에 나서자 일부 주민들과 환경·시민단체들이 건설 반대시위를 벌였다. 반대시위가 격해지면서 경찰과 격한 상황까지 벌어졌고, 주민이 자살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주민수용성을 해결하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은 세 가지로 꼽힌다. 직접보상 강화로 토지보상 외에도 발전이익 일부를 지역 주민에게 배분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이다. 기부채납 방식도 있다. 송전설비 경과지 주민이 원하는 공공시설(체육관, 도서관, 의료시설 등)을 송전사업자 측이 제공하는 방식이다. 주민 참여형 모델 도입도 검토할만 하다. 주민들이 송전망 운영 수익 일부를 배당받는 '에너지 협동조합형 구조'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같은 방식들은 이미 해외에서는 여러차례 적용된 바 있다. 독일·덴마크 등은 대규모 송전선 건설 시 지역주민이 일정 비율의 지분을 보유하게 하여, '피해의 당사자'에서 '이익의 주체'로 전환시키는 방식을 채택했다. 국내에서도 전남 신안, 경북 영천 등 일부 지역에서 주민참여형 태양광·풍력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둔 사례가 있다. 송전망도 이와 유사한 '이익공유형 모델'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한전은 이미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송전망 사업을 추진할 여력도, 정치적 리스크를 감당할 이유도 없다"고 토로한다. 한전 내부에서도 “정부 정책은 속도전을 외치지만, 정작 실행 주체에게는 수단도 책임도 불분명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송전망 사업을 민간에 개방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통신망이나 철도처럼 일정 기준을 충족한 민간 사업자가 송전선 건설·운영을 맡고, 정부와 한전이 이를 감독하는 구조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 기반망의 민영화 논란'을 우려해 아직까지 문을 열지 않고 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기술도, 예산도 아닌 사회적 수용성이다. AI·데이터센터·반도체 산업이 전력 대전환기를 맞이한 지금, 송전망 확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송전탑이 아니라, 신뢰의 탑을 먼저 세워야 할 때"라며 이재명 정부가 과거 정부들이 넘지 못한 '주민의 벽'을 넘는다면 '에너지 고속도로'를 통한 AI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학생 기고] 원전 해체 시대, 청년 기술자의 미래와 책임

2025년 6월 26일, 고리 1호기의 해체가 승인되면서 대한민국은 본격적인 원전 해체시장의 막을 올렸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안전성 및 사회적 수용성 확보를 위해 즉시해체를 해체 전략으로 선정했으며, 건축물 철거 이후 부지 복원, 해체 종료, 그리고 규제 해제 신청에 이르는 전 과정은 약 12년에 걸쳐 진행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월성 1호기에 대한 해체 허가 심의가 본격적으로 착수됐고, 한빛 1·2호기와 한울 1·2호기 또한 2025년부터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설계 수명이 만료된다. 이는 향후 수십 년간 원전 해체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임을 시사하며, 관련 기술과 인력의 중요성 역시 날로 증대될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원전 해체 과정에서 방사선 노출 위험이 큰 작업은 인간이 직접 수행하기 어려운 만큼, 원격 로봇 기술의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최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200kg 고하중 양팔 로봇인 '암스트롱'은 이러한 기술 발전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 로봇은 원전 해체 현장과 방사선 환경에서 작업자를 보조하는 원격 제어 기술을 보유한 '빅텍스'에 기술 이전이 진행돼 원전 해체 현장에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이와 같은 원격 로봇은 작업자의 직접적인 방사선 노출을 최소화하면서도 정밀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역시 로봇, 드론, 인공지능을 포함한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원전 해체 프로젝트를 고도화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IAEA 사무차장이자 원자력 에너지 부서 책임자인 미하일 추다코프(Mikhail Chudakov)는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전과 같은 사고 현장에서 방사성 물질을 피해 작업하는 로봇이든, 노후 발전소의 해체 계획을 수립하는 데 사용되는 3D 모델링이든, 원자력 해체 시장은 기술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처럼 고도화된 기술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로봇과 인공지능, 드론을 설계하고 운용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며, 이러한 기술 혁신의 흐름은 미래를 이끌어 갈 청년 기술자들에게 새로운 역할과 막중한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1호기 해체 인력이 2023년 기준으로 한수원 599명, 협력업체 인력 약 2300명이 확보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리 1호기의 해체 작업이 12년간 진행될 예정이며, 4년 뒤에는 4개 원전의 설계 수명이 순차적으로 만료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재 원전 해체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해체 시장의 본격적인 확대를 앞둔 지금, 단순한 인력 수급을 넘어 체계적인 인재 양성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대학에서는 관련 학과 학생들이 로봇, 인공지능, 데이터 과학과 같은 첨단 기술을 깊이 있게 학습할 수 있는 융합 전공 트랙이나 연계 과정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정부와 산업체는 협력을 통해 현장 중심의 실무 경험과 인턴십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청년 기술자들 또한 스스로 원자력 분야의 전문성을 기르는 동시에, 첨단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융합적 사고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주어진 기술을 실행하는 수준을 넘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해체 과정을 설계, 이행하며 원전 해체 시장을 이끄는 주역으로 성장해야 할 것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AI와 송전망 딜레마上]AI 3대 강국 속도전…‘에너지 고속도로’ 탄력

AI 수요 폭증과 데이터센터 인프라 확대가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인 에너지 고속도로, 즉 전력망 혁신을 부추기고 있다. 경주 APEC 정상회의 이후 한국이 AI·반도체 핵심 허브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엔비디아의 GPU(그래픽처리장치) 투자발표까지 더해지면서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전력망·송전 인프라 혁신도 신속하게 추진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경주에서 마무리된 2025 APEC 정상회의는 단순한 외교 행사를 넘어 한국이 AI·반도체 경쟁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신호탄이 됐다. 행사 기간 중 젠슨 황 NVIDIA(엔비디아) CEO의 한국 방문과, 국내 반도체 기업들과의 GPU 공급 및 공동 투자 계획 발표도 관심을 모았다. 이처럼 한국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세계 3대 강국 진입'이라는 속도전을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전략이 현실로 작동하려면 전력의 공급 체계, 즉 송전·전원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 에너지업계에서는 AI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한국의 에너지정책은 전력 인프라 혁신, 즉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없이는 투자 속도와 산업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경고도 동시에 제기된다.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은 채 산업 확장만 앞선다면 경쟁력 확보는 허상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4일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 동안 발전설비는 18.7%가량 늘어난 반면 송전선로 확충은 2.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고속도로'나 '대형 발전소의 대량 전력'을 실어나르는 송전망이 부족하다고 할 때, 가장 핵심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765kV 송전망과 345kV 송전망을 포괄하는 초고압 기간 송전망이다. 특히, 대용량 전력 수송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765kV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게 부각된다. 에너지 고속도로의 목표는 먼 지역(주로 해상 풍력, 태양광 단지)이나 대형 발전소(원자력 등)에서 생산한 대량의 전력을 수도권이나 대규모 산업단지로 손실을 최소화하며 빠르게 전달하는 것이다. 765kV는 한국에서 사용되는 가장 높은 전압 레벨로, 가장 많은 양의 전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장거리 송전할 수 있는 '고속도로' 역할을 한다. 345kV 대비 송전 용량이 약 3.4배 크기 때문에, 대규모 전력망 확충이 필요할 때 765kV 건설이 핵심이 된다. 현재 국내에 건설 중인 대규모 반도체 생산설비와 AI 데이터센터에는 이같은 전력망이 발전원으로부터 연결돼야 한다. 먼저 반도체 측면에서는 경기 용인시에 조성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대표적이다. 해당 클러스터는 지난해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됐고, 총 면적 728만㎡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이 약 360조원 규모의 민간투자를 단행할 계획이다. SK 하이닉스는 이 클러스터 내 첫 공장(fab)을 2027년까지 완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AI 데이터센터 측면에서도 대형 투자가 진행 중이다. 인천·경기 지역에서 신규 AI 데이터센터가 구축되고 있으며, 미국의 Amazon Web Services(AWS)가 한국에 대한 투자액으로 50억달러(약 7조원)를 추가 투입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도 나왔다. 또한 전라남도에는 3GW 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도 있다. 이처럼 반도체 및 AI 인프라 구축은 산업정책의 중심에 자리 잡았지만, 여기에는 전력 공급이라는 근본조건이 따라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전부터 '에너지 고속도로(energy expressway)'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고압직류송전(HVDC) 등 차세대 송전기술을 활용해, 장거리·대용량·저손실 전기를 전국적으로 공급하는 인프라 구축 계획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송전선로 길이를 현재 약 3만7169 circuit km에서 4만8592 circuit km로 약 30% 이상 확대할 예정이다. 이는 단지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AI·데이터센터·반도체처럼 24시간 고품질 전력을 요구하는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기반이다. 산업계에서는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 전력 공급이 생존조건이며 반도체 공장도 대형 전력 수요처로, 전력 가격·안정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엔비디아를 포함해 오픈AI 등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이 AI 인프라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한 이유 중 하나는 전원믹스와 송전망의 상대적 우위 때문이다. 이는 반대로 해석하면, 송전망이 빠르게 확충되지 않거나 전원믹스가 불안정해질 경우 투자가 지연되고 사업비용이 증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정부는 반도체·AI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이어가면서도 에너지 정책은 다소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탈원전·탈가스 기조가 여전히 강하며, 이러한 전원전략이 고출력·연중가동 산업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송전망 혁신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반도체 클러스터가 '전력난·요금상승' 등 비용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업계 전문가들은 향후 정부의 에너지계획 수립에서 반도체·AI 전력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투자 규모만큼 전력 수요를 전망하고 전원·송전 인프라 동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에너지 고속도로 조기 착공을 통해 서부해안·남부권 등 반도체·AI 클러스터 인접 지역 위주로 HVDC 전송망을 우선 구축하고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기저부하인 원전·가스·수소 연계 전원 확보, 송전망 구성 최적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각각의 반도체 팹, AI 데이터센터마다 지리·전력조건 다른 만큼 맞춤형 인프라 구축, 고전력 수요처를 위한 전력상품·계약체계 정비, 탄소배출 저감까지 고려한 시장 설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이슈] AI·반도체 APEC이 드러낸 ‘에너지 현실’…정부 탈원전·탈가스 기조 재점검 필요

지난 주말 경주에서 막을 내린 2025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인공지능(AI), 에너지, 안보가 서로 맞물린 새로운 시대로의 방향성이 분명히 드러났다. 한미 양국은 이번 APEC을 통해 AI 인프라 확대와 핵잠수함·원자력 협력, 액화천연가스(LNG)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미국 역시 희토류 수출 통제를 일정 기간 유예하기로 합의하며 산업 기반 자원이 경제와 안보에 미치는 중요성이 부각됐다. 한편 한국 정부는 APEC 기간과 맞물린 국정감사에서 '기후·탄소 중심'의 에너지정책 기조를 유지하며 '탈원전·탈가스' 방향을 재확인했다. 이에 대해 3일 에너지업계를 중심으로 이번 APEC을 계기로 드러난 세계의 흐름은 “탄소보다 전력, 이상보다 실용"에 초점이 옮겨지고 있음을 보여준 만큼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AI 산업, 반도체 슈퍼사이클, 핵잠수함 연료 협력 등 한국의 주요 전략 산업이 모두 '전력공급 안정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엔비디아 젠슨 황 CEO의 방한과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과의 그래픽처리장치(GPU) 협력 공식화는 AI 반도체 산업이 다시 슈퍼사이클 국면에 진입했음을 알렸다. 지난 정부부터 시작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착공도 이같은 흐름을 미리 대비한 사업이다. 문제는 AI 산업의 확장은 곧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생산공장과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무정전 전력공급이 전제돼야 한다. 이는 탄소중립에는 강점이 있지만 안정적인 고품질 전력 공급에는 간헐성이라는 약점이 뚜렷한 재생에너지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한국이 AI 인프라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안정적인 전력망과 다양한 전원 믹스 구조 덕분이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 중인 탈원전·탈가스 병행 기조는 이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AI 경쟁력의 본질이 '전력 품질'이라는 점에서 정책 방향이 산업 현실과 어긋나 있다는 지적이다. 전 세계가 다시 LNG와 원전, 소형모듈원전(SMR)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단지에 필요한 24시간 전력공급을 위해선 단기 대응성·기저 안정성·분산형 유연성을 모두 갖춘 전원이 필요하다. LNG 발전은 단기간 착공이 가능하고 기동·정지가 유연하다는 장점이 있다. 대형 원전 또한 기저 부하 유지 전원이자 무탄소 고효율 전원이다. 개발 중인 SMR은 산업단지·도시형 열병합·수소 생산 등 융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미 미국 데이터센터용 가스터빈과 SMR을 대량 수주했다. 한국도 이번 관세협상을 통해 미국산 LNG를 대거 수입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안전과 탄소중립 논리를 이유로 원전과 LNG 신규 사업이 동시에 제약을 받고 있다. 이는 곧 양국 간 협력은 물론 AI 산업용 전력 공급 불확실성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정부는 최근 미국으로부터 핵잠수함 연료 기술협력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원전 업계는 즉각 “군사용 핵연료는 안전하고 발전용은 위험하다는 논리는 모순"이라며 지적했다. 핵잠수함 추진체계는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데, 이는 민수용 원자력의 연료주기와 직접 맞닿아 있다. 즉, 안보 목적으로는 핵기술을 활용하면서 발전용 원전은 억제하는 이중 기준이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다. 한편 APEC 기간 중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차 “기후위기는 사기"라며 이달 10∼21일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에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 위기를 '거짓말' 내지 '사기'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2기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각국이 지구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실천적 노력을 하기로 약속한 파리기후협정에서도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 연설에서도 외국 지도자들에게 “이 녹색 사기극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당신들 나라는 실패할 것"이라면서 재생에너지 의존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했다. 테일러 로저스 백악관 대변인은 가디언에 보낸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어 상식적인 에너지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녹색 사기'는 미국을 파멸시켰을 것"이라며 “그 정책은 우리 발밑에 묻힌 액체 금을 활용해 전력망 안정성을 강화하고 미국 가정과 기업의 비용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미국이 기후보다 안보·산업 중심의 에너지정책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한국의 '기후 우선' 기조가 국제 현실과 어긋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세계 주요국들이 전력안보·산업경쟁력 회복을 내세우는 가운데 한국만이 '감축'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AI와 반도체 산업은 모두 에너지 인프라의 질에 의해 연결된다. 한국이 AI 3대 강국을 목표로 하는 이상, 에너지정책은 산업·기술·안보의 기반으로 재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APEC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산업과 에너지의 현실이 재편되고 있음을 알린 국제적 신호탄"이라며 “한국이 'AI 초강국'을 외치며 나아가려면, 먼저 그 기반인 전력정책의 일관성과 실용성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현장] 제주, 친환경 태양광 감귤 탄생...탄소중립 농업의 새 길을 열다

“이 비닐하우스는 단순한 감귤 하우스가 아닙니다. 일반전기를 쓰지 않고도 감귤을 키우는, 전국 최초의 '탄소중립형 농업 실증 현장'이에요." 제주의 가을 햇살 아래 반짝이는 감귤 비닐하우스 위로, 태양광 필름이 부드럽게 빛을 반사한다.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 RE100 감귤생산 실증 현장에서 만난 양철준 미래농업육성과 스마트기술팀장은 손짓하며 말했다.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이 주관하고 제주테크노파크가 협업 중인 '태양광·ESS 연계 RE100 감귤 생산모델 실증 사업'은 농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선도 프로젝트다. 비닐하우스 지붕 위에 태양광 발전 패널(20~24kW급)을 설치하고,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생산된 전기로 하우스의 각종 시설들을 움직이게 한다. 또한 생산된 전력을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저장한 뒤 히트펌프(30~35kW급)를 가동해 냉·난방을 제어할 수도 있다. 이 시스템이 완전히 가동되면, 감귤 재배 전 과정에서 외부 전력 사용이 '제로(0)'가 된다. 말 그대로 100%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감귤농사가 실현되는 것이다. 기술원 강정 시험포의 하우스 내부는 조용했지만, 눈앞의 모니터에서는 실시간으로 발전량이 표시되고 있었다. 양 팀장은 “태양광 발전과 ESS, 히트펌프가 유기적으로 연동돼 자동으로 전력 공급을 조절한다"며 “겨울에는 난방, 여름에는 냉방으로 전환되어 감귤의 생육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우스 위쪽에는 필름름형(24kW) 태양광 모듈이 설치되어 있고, 인근에는 판넬형(20kW) 일체형 태양광도 실증 중이다. “이 필름형 태양광으로 낮에는 생상되는 에너지로, 밤이나 흐린 날에는 저장한 에너지로 감귤 농사에 필요한 전력을 충당할 수 있습니다. 제주가 기술 실증의 전초기지가 되고 있어요." 올해 12월 하순, 실증 하우스에서 첫 RE100 감귤 수확이 예정되어 있다. 양 팀장은 “이번 겨울 감귤이 '에너지 0, 탄소 0'의 첫 결실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증이 완료되면 제주 내 주요 감귤 농가에 이 시스템을 확대 보급하고, 이후에는 잉여 전력을 판매도 할 수있는 발전형 농가 모델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다. 이미 육지 지자체 관계자들이 잇따라 현장을 찾아 벤치마킹 중이다. 이번 사업은 단순한 기술 실증을 넘어, 농업 분야 RE100 실현의 첫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농업기술원은 실증 결과를 토대로 'RE100 감귤 생산 매뉴얼'을 2025년 12월까지 개발, 내년 초 선포식을 열 계획이다. 이어 2026~2027년에는 표준 설계 확립 및 안전구조 진단을 통해 본격적인 보급 단계에 들어간다. 양 팀장은 “제주는 감귤로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첫 섬이 될 것"이라며 “농가의 수익성은 물론, 국가의 2035 탄소중립 목표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주도는 이번 실증이 성공하면, 농가가 직접 발전한 잉여 전력을 판매해 발전사업자 수준의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한 농업용 난방유나 전력 사용을 대체함으로써, 연간 수천 톤의 탄소 배출 저감 효과도 기대된다. 감귤밭 위로 저녁 햇살이 기울자, 하우스 지붕의 필름형 태양광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그 아래에서는 ESS의 잔열이 감귤나무를 부드럽게 덥히고 있었다. 이곳에서 본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농업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생태계'였다. 제주는 지금, 감귤로 탄소중립의 미래를 실험하고 있다. “이제 농업도 RE100으로 간다"는 양철준 팀장의 말이, 석양 속에 오래 남았다. 서귀포=전지성 기자 jjs@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