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에서 운행 중인 에스컬레이터 두 대 가운데 한 대 이상이 설치된 지 15년을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20년 이상 된 설비도 세 대 중 한 대를 웃돌았다. 노후 설비가 빠르게 늘면서 유지·보수 비용이 급증하고 있지만, 고장이 발생하면 부품 조달 등의 문제로 정상 운행까지 수일에서 수주가 걸리는 사례도 반복되고 있다. 21일 본지가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에스컬레이터 현황'을 분석한 결과, 올해 7월 기준 공사가 관리하는 에스컬레이터 1881대 가운데 설치 후 15년 이상 지난 설비는 974대로 51.8%에 달했다. 이 가운데 25년 이상 사용한 설비만 437대로 전체의 23.2%였다. 20년 이상~25년 미만도 210대로 집계됐다. 전체의 34.4%인 647대가 설치 20년을 넘긴 셈이다. ◇ 7호선 391대 중 229대가 20년 이상 노후화는 일부 호선에 집중돼 있다. 1881대의 설치일을 기준으로 보면, 7호선은 전체 391대 가운데 20년 이상 설비가 229대로 58.6%를 차지했다. 6호선 역시 294대 가운데 201대(68.4%)가 20년을 넘었다. 특히 25년 이상 된 에스컬레이터는 7호선 194대, 6호선 187대로 두 호선에만 381대가 몰렸다. 전체 25년 이상 설비 437대의 87%에 해당한다. 5호선도 본선 기준 351대 가운데 108대가 20년 이상이었고, 2호선은 248대 중 58대가 20년 이상으로 분석됐다. 노후화는 유지·보수 비용 증가로 직결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장기 사용 에스컬레이터의 유지·보수 비용은 신설 설비보다 21배 이상 많이 든다. 올해 중보수 작업의 41%도 노후 설비에 집중됐다. 디딤판 체인 등 안전과 직결되는 주요 부품의 교체가 늘어난 영향이다. ◇ 5년간 절반 이상 고장…한 번 멈추면 최장 24일 문제는 고장이 발생한 뒤 정상 운행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이연희 의원실이 서울교통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 2월까지 서울 지하철 1~8호선 에스컬레이터 1871대 가운데 984대가 적어도 한 차례 고장 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기준 전체 설비의 절반 이상이 5년 동안 한 번 이상 고장을 경험한 것이다. 호선별 고장 건수는 7호선이 302건으로 가장 많았고 6호선 202건, 5호선 189건 등의 순이었다. 복구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같은 기간 고장 난 에스컬레이터를 수리하는 데 평균 2일15시간이 걸렸으며 가장 긴 사례는 24일10시간에 달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제조사와 모델이 다양하고 일부 부품은 주문 제작해야 해 조달에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해왔다. 특정 부품은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의 법정검사를 거쳐야 하는 것도 복구기간이 길어지는 이유로 꼽힌다. ◇ 상반기 끝나기도 전에 보수예산 94% 소진 올해 들어서는 노후화에 따른 비용 부담이 실제 운행 중단으로 이어졌다. 서울교통공사가 올해 편성한 에스컬레이터 중보수 예산은 55억6700만원이다. 지난해보다 2억9500만원 늘었지만 6월까지 52억3900만원, 94.1%가 집행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집행률 42.8%의 두 배를 웃돈다. 예산 소진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난 6월26일 기준 수리를 기다리며 운행을 멈춘 에스컬레이터는 25대까지 늘었다. 이후 서울교통공사는 가용 예산을 조정해 수리가 지연된 25대를 즉시 보수하겠다고 밝혔다. 노후 에스컬레이터가 앞으로 더 늘어난다는 점도 부담이다. 현재 15~20년 사용한 설비가 327대에 달한다. 이들 설비가 순차적으로 20년을 넘기면서 유지·보수와 교체 부담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 설비별 고장·복구 실태는 한눈에 파악 어려워 문제는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어떤 설비에서 얼마나 자주 고장이 발생하고 복구에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를 외부에서 한눈에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본지는 이번 취재 과정에서 서울교통공사에 전체 에스컬레이터의 제조사와 모델, 생산국, 설비별 고장·복구 현황, 장기간 운행 중단 설비, 노후 설비 교체계획, 유지보수 예산 및 집행 현황 등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공사는 이 가운데 전체 1881대의 호선·역명·승강기번호·설치일과 사용연수 현황 등을 공개했다. 제조사와 모델명은 국가승강기정보센터에서 개별 승강기 번호를 입력해 확인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반면 생산국과 설비별 고장·복구 현황, 장기 운행중단 설비, 노후 에스컬레이터 교체계획, 유지보수 예산 및 집행 현황에 대해서는 “별도의 취합 및 가공이 필요한 정보"라고 했다. 공사가 관련 정보를 관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본지가 요청한 형태로 취합된 자료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2019년 이후 99%가 중국산…또 다른 문제 '부품' 노후화만으로 서울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의 장기 운행중단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고장 이후 필요한 부품을 얼마나 빨리 확보할 수 있는지도 복구기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제조사와 모델이 다양하고 오래된 제품일수록 필요한 부품을 바로 확보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국내 에스컬레이터 산업의 구조적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한때 국내 업체들이 직접 생산하던 에스컬레이터는 2000년대 이후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제품이 빠르게 시장을 잠식했다. 현대엘리베이터마저 2014년 국내 생산을 중단하면서 국내 에스컬레이터 제조기반은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안전인증제도가 도입된 2019년 이후 국내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의 99%가 중국산으로 파악될 정도로 시장 구조도 달라졌다. 중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고장이 잦거나 안전성이 떨어진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완제품뿐 아니라 유지·보수에 필요한 부품까지 해외 공급망에 크게 의존하게 된 구조가 장기적으로 적절한지는 별도의 문제다. 서울 지하철에서 반복되는 에스컬레이터 운행 중단은 노후 설비 교체라는 당장의 과제와 함께 국내 제조·부품 공급망이 왜 사라졌는가에 대한 질문도 던지고 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