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이하 에교협)가 정부 에너지정책의 전면적인 방향 전환을 촉구했다. 탄소중립과 환경성에 무게가 쏠린 현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 에너지안보, 경제성, 산업경쟁력을 함께 고려하는 실용적 에너지믹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은 에교협은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에너지 정책, 생존의 문제다'를 주제로 토론회를 통해 제기됐다. 참석자들은 특히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목표의 물리적·계통적 한계를 지적하는 한편,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수요와 탄소중립 대응을 위해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대형원전과 소형 모듈원전(SMR) 건설 계획을 명확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 에너지정책을 “환경 우위의 에너지정책"으로 진단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 2040년 탈석탄,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목표 등이 모두 탄소중립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은 현실적으로 난공불락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2026년 6월 15일 기준 매일 130만TOE(석유환산톤)의 화석에너지를 무탄소에너지로 대체해야 하며, 이는 매일 원전 1기 또는 풍력터빈 약 2000개, 태양광 패널 약 400만개를 설치해야 하는 규모라는 것이다. 그는 AI 혁명에 따른 전력수요 급증,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정세 불안, 미국의 에너지 전략 변화 등을 언급하며 “에너지정책은 더 이상 환경정책의 하위 범주가 아니라 국가 안보이자 산업·경제의 핵심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대안으로 △도전적이면서도 실현 가능한 NDC 설정 △원전의 적극 활용 △재생에너지의 점진적 확대 △LNG 비중의 일정 수준 유지 △탄소중립 기술개발 국제공조 △기후변화 적응 능력 향상 등을 제시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의 현실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문 교수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를 달성하려면 매년 12.6~15.7GW를 새로 보급해야 하는데 이는 과거 최대 보급량의 3배 이상"이라며 “물리적으로 매우 어려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 설 연휴 낮 시간대 태양광이 국내 총수요의 47.4%를 공급하며 원전을 추월한 사례를 들며 “재생에너지 확대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낮 시간대 과잉공급과 저녁 시간대 급감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 교수는 독일의 둥켈플라우테와 미국 캘리포니아의 저녁 시간대 재생에너지 급락 사례를 언급하며 재생에너지 확대에는 ESS, 백업전원, 송전망 등 추가 시스템 비용이 반드시 뒤따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순 정산단가나 균등화발전단가(LCOE)만으로 재생에너지 비용을 비교해서는 안 된다"며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비용과 계통 안정화 비용까지 포함한 소비자 부담을 함께 봐야 한다"고 했다. 문 교수는 한국은 유럽·미국과 달리 전력망이 외부와 연결되지 않은 '전력망 섬나라'라며 △계통 수용성 검증 후 단계적 확대 △태양광 편중 완화 △원전·LNG 백업전원 역할 명시 △송변전 인프라 선투자 △총비용 기반 정책평가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세 번째 발제자인 심형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탄소중립과 AI 전력수요 대응을 위해 원자력의 역할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심 교수는 “전 세계 전력시장은 가스, 재생에너지, 원자력이 각자의 우위를 주장하는 3자 대결 구도에 들어섰다"며 “한국처럼 원전산업 경쟁력을 갖춘 국가는 원자력을 에너지안보와 산업경쟁력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변동성 재생에너지의 실제 비용은 단순 LCOE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며 총 전력계통 비용 기준의 전원계획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2050년 원전 발전비중을 35%로 유지하려면 대형원전 20기와 SMR 12기가 추가로 필요하고, 40% 수준으로 확대하려면 대형원전 28기 안팎과 SMR 15기 수준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심 교수는 “전력수급기본계획 개정 때마다 추가 2년 계획에 대형원전 3기 이상, SMR 2기 이상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탄소중립 달성 의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제12차 전기본에 담대한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에 나선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에너지정책 추진체계의 재정립을 주문했다. 홍 교수는 “에너지정책은 국가 생존의 핵심 요소이며 발전소 건설, 송전망 확충, 저장시설 확보 등에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장기계획과 중기 수정계획, 단기 연동계획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22년 탄소중립기본법 시행 이후 기존 에너지기본계획의 법적 근거가 사라진 점을 지적하며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은 탄소저감 목표를 제시하지만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최상위 계획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홍 교수는 특히 에너지정책 기능이 산업통상부에서 기후부로 옮겨간 데 대해 “정책 기능이 환경부처 중심으로 이동하면 환경성 위주의 에너지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며 “안보성, 경제성, 환경성을 통합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에너지정책 추진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에교협은 이번 토론회를 통해 탄소중립 목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제조업 구조와 전력망 특수성, AI 시대 전력수요, 국제 에너지안보 환경을 고려한 현실적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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