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전&발전공기업 재통합 시나리오

▲과거 삼성동에 한전 본사와 발전자회사 본사가 함께 있던 시절의 간판.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편성을 앞두고 비효율적인 국가예산 집행에 '칼'을 빼들면서 공공기관 구조조정론이 전력·발전 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공공기관이 너무 많아 숫자를 셀 수 없다"며 대대적 통폐합을 주문한 데다, 국정과제 추진 재원 마련을 위한 국채 발행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전력·발전 공기업 전반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쓸 돈은 없다"며 재정난을 직격했다. 그는 국가 재정을 '농사에 필요한 씨앗'에 비유하며 “옆집에서 씨앗을 빌려와 가을에 한 가마 수확할 수 있다면 빌려야 한다"며 국채 발행 필요성을 에둘러 강조했다.
이어 공공기관 개혁과 관련해선 “공공기관 통폐합도 좀 해야 할 것 같다"며 “너무 많아서 숫자를 못 세겠다. 대대적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단순한 내부 개혁을 넘어 기관 수 자체를 줄이는 고강도 조치를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 발언 직후 에너지 업계에서는 기후환경에너지부 신설 논의와 맞물려 발전공기업 재편 가능성이 다시 부상했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 등은 재생에너지 전담 '재생에너지청' 설립을 지속 주장해 왔지만, 여당 내에서는 2040년 석탄발전 전면 폐쇄 과정에서 현재 5개 화력발전 공기업을 2개로 통합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과거 한전이 발전·송전·배전·판매, 원자력까지 총괄하던 '수직통합 체제'로 회귀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이는 발전 자회사 통합과 함께 한전의 기능 재편을 통해 효율성과 투자 여력을 확보하자는 구상이다.

21대 국회에서 김정호 의원이 제안한 발전자회사 구조개편 방안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산자위에서 한전 발전자회사들의 비효율적 경영과 방만 경영, 중복 투자 문제가 지적되면서 이에 대한 개선방안으로 '전력산업 재구조화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원자력발전 및 화력발전 축소, 신재생 발전 확대)도 전력산업 구조개편 추진의 동력이었다.
정부는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0∼2034년) 수립을 통해 2034년까지 원자력발전소를 24기에서 17기로, 석탄화력발전소를 60기에서 30기로 줄이고 2050년에는 전면폐지를 선언했다. 석탄화력발전을 주력사업으로 하는 한전의 자회사인 발전공기업들의 통폐합의 당위성이 커진 것이다.
실제 석탄화력발전을 주력으로 하는 한국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 등 한전 산하 발전 공기업들은 2050탄소중립 목표에 따른 탈(脫)석탄·재생에너지 확대 기조에 기업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발전 자회사 분리 취지는 경쟁체제를 도입해 소비자에게 보다 많은 편익을 제공하기 위함이었지만 현재 상황은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며 “현 정부가 '안전과 환경'이라는 가치를 강화하면서 탈원전·탈석탄, 신재생에너지·액화천연가스(LNG) 확대를 내세우고 공기업인 발전사들이 이에 부응해 좋은 평가를 받기위해 따르려다 보니 비용부담이 커지면서 불필요한 경쟁만 늘어난 게 사실이다. 분리되긴 했지만 사업분야가 비슷하다 보니 통합해서 추진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공공성을 위해서 발전공기업을 운영한다면 5개로 분할할 필요가 없었다“며 “지금 석탄화력발전 줄줄이 폐쇄하고 재생에너지, 수소연료전지 발전 확대,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비율 이행 등 정체성도 모호하다. 발전사 명칭을 에너지정책수행공단으로 바꾸든가 민영화 하는 게 낫다. 한 곳만 매각되면 나머지 회사들도 줄줄이 민영화 될 것"이라고 털어놨다.
현재 민간발전사들은 LNG와 수소 육성 기조에 따라 LNG직도입 터미널을 구축하고 수소산업육성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이에 비해 발전공기업들은 탈석탄·재생에너지 확대 등 정책 수행에만 메달려 미래 먹거리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13일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기후환경에너지부 신설 방향이 제시될 가능성이 높았으나, 최종 발표에서는 빠졌다. 업계 안팎에서는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한미 협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산업·에너지 불가분' 논리가 힘을 얻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통 제조업이 중국발 저가 공세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탄소중립·재생에너지 확대라는 환경 논리보다 산업 경쟁력 회복이 우선이라는 분위기가 확산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기재부·검찰 개편 등 다른 조직 개편이 확정된 이후에야 기후환경에너지부 신설 발표가 이뤄질 것"이라며 “올해를 넘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논의는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 탄소중립·재생에너지 확대라는 환경 논리와 제조업 경쟁력 회복이라는 산업 논리 간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기후환경에너지부 신설과 전력·발전 공기업 통폐합과 여부는 향후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은 물론 국내 발전산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