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일 정상회담 자리에서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언급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나온 이 같은 돌발 발언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애써 미소를 유지했지만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왜 이란 공습을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에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너무 많은 신호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며 “공격에 나설 때 강하게 나섰고, 서프라이즈(기습)를 원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서프라이즈에 대해 일본보다 더 잘 아는 나라가 있느냐"며 “왜 나에게 진주만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냐"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일본은 우리보다 서프라이즈를 훨씬 중시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발언이 나오자 현장에서는 웃음이 흘렀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눈을 크게 뜨고 잠시 숨을 고르는 등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굳은 표정으로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진주만 공습은 1941년 12월 일본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 기지를 기습 공격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미국인 2390명이 목숨을 잃자 미국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며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를 '치욕의 날'로 규정하기도 했다. 일본은 결국 본토에 미국의 핵폭탄 2발을 맞고 항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이란에 대한 기습 공격의 필요성과 효과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는 “우리는 그들(이란)에게 서프라이즈를 안겼어야 했고 그렇게 했다"며 “그 서프라이즈 덕분에 우리는 첫 이틀 만에 기대했던 것보다 50% 이상 큰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를 모두에게 알렸다면 서프라이즈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란에 대한 기습 공격이 효과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그 과정에서 일본 총리와 고위 관계자들 앞에서 뼈있는 농담을 던진 것이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통신은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했고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금기를 깼다"고 지적했다. NYT는 이어 “미국 역대 대통령들은 수십 년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비판하는 발언을 자제해왔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과의 동맹 관계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달랐다"고 짚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발언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진주만은 예상 밖이었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이날 미일 정상회담은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금 선거에서 기록적인 승리를 거둔 매우 특별한 인물을 모시게 됐다"며 “다카이치 총리를 지지하게 돼 매우 자랑스럽고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어 “매우 인기 있고 강력한 여성이며 훌륭한 지도자"라고 강조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도널드'라고 부르며 “당신만이 전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고 화답했다. 한편, 이날 미 백악관이 공개한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일 정상은 일본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총 730억달러(약 109조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구체적으로 미국 에너지기업 GE 버노바와 일본 히타치가 400억 달러(약 60조원)를 투입해 테네시주와 앨라배마주에 BWRX-300 소형모듈원자로(SMR)를 건설하기로 했다. 아울러 일본은 펜실베이니아주와 텍사스주에 330억 달러(약 49조원)를 투자해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에도 나설 계획이다. 미일은 앞서 지난달 360억 달러(약 54조원) 규모의 1차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발표한 바 있다. 일본은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낮추는 대신 미국에 5500억 달러(약 819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일본이 미국의 대이란 군사적 요구를 최소화하는 대신 경제적 협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택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일본은 한국, 중국,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받은 국가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서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언급하며 주일 미군 4만5000명 규모와 일본의 원유 수입 중 90% 이상이 해당 해협을 통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일본이 나서주길 기대한다"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다카이치 총리는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 확보는 에너지 공급 안정 측면에서 중요하다"며 “일본 법률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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