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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빈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박규빈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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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 세탁기 전쟁] 美관세·中 기술 도전 ‘압박’ 속 K-가전 ‘초격차만이 살 길’

지난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발동한 수입 세탁기에 대한 긴급 수입 제한 조치(세이프 가드)는 K-세탁기에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 이 조치로 미국 내 세탁기 가격은 약 12%, 대당 86~92달러가량 인상됐다. 이러한 관세 장벽에 대응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수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현지에 대규모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 삼성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에, LG전자는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각각 생산 거점을 마련했다. 이는 단순한 공장 건설이 아니라, 관세 대상인 '수입업자'에서 현지 '생산자'이자 '고용주'로 기업의 정체성을 바꾸는 근본적인 전환이었다. LG전자는 현지 수요 급증에 대응해 인기 모델인 '워시 타워' 생산 라인을 테네시 공장에 증설하는 등 현지화 전략을 더욱 고도화하고 있다. 현지 생산은 완제품에 대한 직접적인 관세 문제를 해결했지만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협의 형태가 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전환됐다. AI DD모터나 반도체 같은 핵심 부품은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향후 관세의 타겟이 완제품이 아닌 부품으로 전환될 경우 새로운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아울러 미국 내 노동 시장의 변화·물류 시스템의 문제·각종 규제 환경 등 현지 운영에 따르는 복잡성에 직접적으로 직면하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하자 보호 무역주의 기조가 다시 강화됐고, 예상대로 정치적 불확실성은 장기적인 투자 계획 수립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가전기업들의 글로벌 전략은 과거의 저가 공세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이들은 수십 년이 걸리는 브랜드 구축 과정을 M&A를 통해 단숨에 뛰어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이얼의 GE 가전 부문 인수다. 하이얼은 54억 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해 GE 가전 부문을 인수함으로써 브랜드 인지도·유통망·생산 기지까지 한번에 확보하며 북미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했다. 메이디가 일본 도시바의 백색가전 사업부를 인수한 것 역시 동일한 맥락의 전략이다. 이러한 대규모 M&A는 포화 상태에 이른 자국 시장을 넘어 해외로 눈을 돌려야만 하는 중국 기업들의 절박함이 반영된 필연적 선택이었다. 인수한 브랜드와 축적된 기술력을 무기로 중국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메이디는 홍콩 증시 상장을 통해 최대 4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해 이를 글로벌 사업 확장과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투입할 계획이다. 하이얼은 유럽 시장에서 정교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캔디(Candy)·후버(Hoover) 등 현지 브랜드를 인수해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유럽의 에너지 위기 상황에 맞춰 스마트 그리드와 연동해 전기 요금이 저렴한 시간대에 자동으로 작동하는 세탁기를 출시하는 등 현지 소비자의 요구에 철저히 부응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을 넘어, 현지 시장에 깊숙이 뿌리내리려는 장기적 포석이다. 이제 '중국산은 저렴하다'는 인식은 위험한 착각이다. 중국은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R&D에 쏟아붓고 있다. 매년 8만 명 이상의 이공계 박사가 배출되고, 전 세계 최고 수준의 AI 인력 중 47%가 중국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들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과거 기술 모방에 그쳤던 하이얼과 메이디는 이제 독자적인 드럼 세탁기 R&D 역량을 갖춘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이들의 기술적 성장은 TV 시장에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TCL·하이센스 같은 기업들은 프리미엄 제품군인 미니 LED TV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과 직접 경쟁하며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는데 이는 세탁기 시장에서도 재현될 수 있는 명백한 선례다. 그럼에도 여전히 K-세탁기의 기술적 우위를 현재진행형이다. 2024년 컨슈머리포트 평가 결과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LG전자는 드럼·통돌이·교반식 세탁기 등 3대 핵심 부문에서 1~3위를 모두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컨슈머리포트는 “LG 세탁기는 뛰어난 세탁 성능, 물·에너지 효율성을 일관되게 제공하며 우리 평가를 지배하고 있다"고 극찬하며 이는 일시적인 성과가 아닌 누적된 기술력의 결과임을 시사했다. 더 나아가, 상위권에 오른 LG 제품들은 모두 '그린 초이스(Green Choice)' 인증을 받았다. 이 인증은 물과 에너지 사용 효율이 특히 뛰어난 친환경 제품에만 부여되는 것으로, 환경 규제와 비용에 민감한 선진 시장 소비자들에게 강력한 구매 요인으로 작용한다. 삼성전자 역시 교반식 모델 등 특정 부문에서 최상위권에 오르며 한국 기업의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함께 증명했다. 지난 10여년 간 기술 혁신과 품질 경영으로 쌓아 올린 K-세탁기의 리더십은 지금 가장 복합적인 시험대에 올라 있다. 기술력으로 무섭게 추격해오는 중국의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도전, 예측 불가능한 보호무역주의의 파고, 그리고 유럽처럼 각기 다른 해법을 요구하는 시장의 다변화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고 미래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프리미엄화·AI 고도화 △초현지화(Hyper-localization) △지정학적 회복 탄력성 구축과 같은 전략적 기둥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단순히 공장에서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 승리하던 시대는 끝났기 때문에 글로벌 세탁기 시장의 미래는 엔지니어링뿐만 아니라 지정학·문화적 통찰력·전략적 선견지명을 갖춘 기업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K-세탁기는 첫 번째 영역에서 이미 세계 최고임을 증명했지만 지속적인 지배력 유지 여부는 나머지 영역을 어떻게 정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획] 대한항공-LIG넥스원 컨소시엄, 2.7조원 국방사업 연전연승 비결은?

최근 대한항공-LIG넥스원 컨소시엄이 총 2조 7388억원 규모에 이르는 정부의 전자전기(EWA:Electronic Warfare Aircraft)사업에서 항공기 개발(1조7775억원)과 UH-60 블랙호크 헬리콥터 성능개량 사업(9613억원) 등 2건의 핵심 국방사업을 잇따라 수주했다. 업계에서는 경쟁사를 압도하는 LIG넥스원의 성숙하고 검증된 전자전(EW) 기술력과 특정 플랫폼에 대한 대한항공의 깊이 있는 정비(MRO) 및 개조 전문성, 경쟁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전략적 판단 착오와 결정적 시기에 발생한 리더십 공백 등 복합적 요인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풀이한다. 또한, 전통적인 항공기체계 종합기업 중심의 방산 구도에서 벗어나 핵심기술을 보유한 전문기업이 대형 플랫폼사업을 주도할 수 있음을 입증한 분기점이라는 평가도 나와 한국 방산 생태계 내 근본적인 '힘의 이동(Power Shifts)'이 이뤄졌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28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LIG넥스원 컨소시엄은 최근 방위사업청의 EWA사업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이번 수주는 본질적으로 두 컨소시엄 간의 핵심 임무장비 기술 격차에서 비롯됐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방위사업청(DAPA)의 평가가 항공기 플랫폼 자체보다 탑재되는 전자전 시스템의 성능과 신뢰성에 더 큰 비중을 뒀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갖춘 LIG넥스원의 승리는 예견된 결과였다는 것이다. 한국형 EWA 도입의 시급성은 북한의 고밀도 방공망 위협에 직접적으로 기인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조차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하는 북한의 방공망은 평양 일대에 4중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최대 사거리 300㎞급 SA-5를 비롯해 SA-2·SA-3 등 다양한 지대공 미사일이 거미줄처럼 구축돼 있다. 현대 공중전에서 이러한 위협을 뚫고 아군 전투기의 생존성을 보장하며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EWA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EWA는 전투기 편대보다 먼저 적진에 침투해 강력한 전파 방해(Jamming)를 통해 적의 레이더와 통신 체계를 무력화시키는 '창의 끝' 역할을 수행하는 핵심 국방전략자산이다. 과거 한국 공군은 F-35 스텔스 전투기 도입 과정에서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 도입 기회를 놓친 이후 독자적인 전자전 능력 확보를 숙원사업으로 추진해 왔다. 미군 자산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의 안보 공백을 메우기 위한 주권적 역량 확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방산업계는 이번 방위사업청 EWA사업의 승패를 가른 요인으로 LIG넥스원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전자전 분야의 독보적인 기술 포트폴리오를 꼽고 있다. 경쟁사인 한화시스템이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깊이와 폭을 가지고 있었다는 평가다. LIG넥스원은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21 보라의 핵심 장비인 '내장형 통합 전자전 체계(EW Suite)' 개발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이는 최첨단 전투기 플랫폼에 적용되는 고도로 복잡한 시스템 개발 능력을 입증한 가장 결정적인 이력이다. 이밖에 △항공기용 전자전 장비(ALQ-200) △해군 함정용 전자전 장비 '소나타(SONATA)' △지상 전술 전자전 장비 등 육·해·공 전반에 걸친 다양한 전자전 시스템을 개발하고 실전 배치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점도 거론된다. 특히, 소나타는 2011년 우리 해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한국선박 선원 21명 전원을 구출한 군사작전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해적의 레이더를 무력화하며 그 성능을 실전에서 입증했다. 또한,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함께 47년 간 전자전 핵심기술을 연구·개발(R&D)해 온 역사는 LIG넥스원에게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제도적 지식과 기술적 깊이를 제공했다. 방위사업청이 이번 사업 평가에서 기체 개조 능력보다 탑재될 전자전 장비의 기술적 성숙도와 성능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둔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LIG넥스원의 기술력이 승패를 결정지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LIG넥스원과 대한항공의 파트너십은 상대의 강점을 극대화한 전략적 결합이었다. LIG넥스원이 사업의 핵심인 '두뇌'를 제공했다면, 대한항공은 항공기라는 '신체'에 두뇌를 이식하는 정밀한 '외과 수술'을 담당할 최적의 파트너였다. 대한항공은 과거 P-3C 해상 초계기 성능개량 사업과 '백두' 정찰기 개발 사업 등을 통해 민항기를 특수임무 항공기로 개조해 본 풍부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조합은 방위사업청에 핵심임무 시스템의 기술적 우위뿐만 아니라 플랫폼 통합·감항 인증 과정에서의 리스크를 최소화한 안정적인 제안으로 평가받았다. 더욱이 이번 수주 결과는 한국 방산업계의 전통적인 위계 질서를 뒤흔드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에 주목받고 있다. 과거 KAI와 같은 체계종합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던 하위 협력사(Subcontractor)의 위치에 있던 LIG넥스원이 이번 사업에서는 항공 플랫폼사업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주계약자(Prime Contractor) 수준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는 LIG넥스원이 현대 무기체계의 가치가 기체의 기동 성능과 같은 하드웨어에서 △센서 △소프트웨어 △네트워크와 같은 전자 시스템으로 현대전이 '네트워크 중심전(NCW)'으로 이동하는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낸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즉, 플랫폼의 '두뇌'와 '신경망'이 '근육'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방사청의 평가 기준이 이러한 흐름을 반영함에 따라 LIG넥스원의 전략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이는 향후 한국 방산시장에서 핵심기술을 보유한 전문기업이 대형 플랫폼 사업을 직접 주도할 수 있는 '킹 메이커'이자 스스로 왕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선례를 남겼다. 이는 한국 방산 생태계 전반의 '힘의 균형(Power Balance)'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화이며, 전통적인 체계종합기업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기한다. UH-60 블랙호크 헬리콥터 성능개량 사업에서 대한항공의 승리는 신규 플랫폼 설계 능력보다 기존 플랫폼에 대한 깊이 있는 유지·보수·운영(MRO) 경험이 더욱 결정적인 경쟁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이는 방산 시장, 특히 수명 연장과 성능 개량 분야에서 MRO 역량의 전략적 가치가 재평가되는 계기가 됐다. 9613억원에 이르는 이 사업은 육군 특수전사령부·공군 탐색구조부대가 운용하는 핵심 자산인 블랙호크 헬리콥터 36대의 성능을 대대적으로 개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업의 핵심은 기존의 아날로그식 조종 시스템을 완전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최신 디지털 조종석·통합 항전 장비·생존 장비 등을 탑재해 야간 및 악천후 침투 능력을 강화하고, 조종사의 임무 부담을 줄여 특수 작전·전투 탐색 구조(CSAR) 임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는 미군의 최신 개량형인 UH-60V와 동등한 수준의 작전 능력을 확보해 한미 연합작전 상호운용성을 높이는 데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대한항공이 이번 사업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제치고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십 년간 축적해온 독보적인 플랫폼 특화 경험이 자리잡고 있다. 대한항공은 1991년부터 1999년까지 130여 대의 UH-60 헬리콥터를 생산해 우리 공군에 납품했다. 이는 단순히 정비하는 것을 넘어 헬리콥터의 조립부터 최종 검사까지 전 과정을 수행하며 기체 구조와 시스템에 대한 '설계도 수준'의 이해를 갖추게 했음을 의미한다. 이후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한항공은 블랙호크 헬리콥터에 대한 창정비(Depot Maintenance)와 지속적인 부분 성능 개량을 거의 독점적으로 수행해 왔다. 이러한 장기간의 실질적인 운용·유지 경험은 기체의 노후화 특성과 부품별 수명 주기,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점 등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게 했고, 이는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성능 개량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핵심자산이 됐다. 블랙호크에 대한 전문성은 F-4, F-15, C-130 등 다양한 군용 항공기의 정비 및 성능 개량 사업을 수행하며 다져진 대한항공의 세계적 수준의 MRO 인프라의 일부다. 1972년부터 시작된 항공기 엔진 정비 사업은 그 깊이를 더한다. 블랙호크 헬리콥터 성능개량 사업을 놓고 벌인 이번 경쟁은 '기존 플랫폼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개량하는 능력'과 '새로운 플랫폼을 창조하는 능력' 간의 대결로 요약될 수 있다. KAI는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을 독자 개발하며 쌓은 뛰어난 설계·제작 능력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이는 분명 훌륭한 역량이지만 노후화된 기존 기체를 분해하고 구조를 보강하며 완전히 새로운 디지털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통합하는 성능개량 사업의 특수성 앞에서는 대한항공의 '유지·보수' 경험에 밀린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일각에서 KAI가 원제작사와 협력을 내세워 기술적으로 앞선다고 자신했기에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대한항공의 승리는 MRO사업을 방산 수주경쟁의 핵심 전략무기로 격상시켰다. 전 세계적으로 군용 플랫폼의 수명 주기가 길어지고 신규 도입 예산 확보가 어려워짐에 따라 기존 자산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개량사업 시장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에서 가장 신뢰성 높은 제안을 할 수 있는 기업은 플랫폼의 이력과 상태를 가장 잘 알고 깊이 있는 MRO 경험을 가진 기업이다. 대한항공의 수주 성공은 MRO 역량이 단순한 사후지원 활동을 넘어 수조 원대 사업을 수주할 수 있는 핵심 경쟁력임을 증명했다. 나아가 이번 수주는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가 안정적인 MRO·부품 공급업체에서 벗어나 복잡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대형 국방사업을 주도하는 핵심 플레이어로 도약했음을 의미해 위상이 재정립된 전환점이 됐다. 최근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는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와 수주 잔고 증가, 해외기업과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 등을 보여주고 있고, 이는 방산업계 최상위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려는 확고한 의지로 해석된다. 또한, 변동성이 큰 여객운송사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방산 부문을 그룹의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려는 한진그룹의 장기전략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번 승리는 계약 금액 이상의 '장기적인 이익'을 보장한다. 수십 년 간 지속될 고부가가치 MRO 및 후속 성능 개량 사업을 확보했으며, 독자적인 전자전기라는 전략 자산은 'K-방산'의 핵심 수출 품목으로 부상할 잠재력을 지닌다. 또 대한항공의 방산 부문 성장 전략이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검증됐음을 뜻한다. 반대로 KAI의 연이은 패배는 단순히 경쟁자의 우수성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을 잡은 내부적 취약성, 특히 심각한 '리더십 공백'이 사업 수주 실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안팎의 분석이다. KAI는 전임 강구영 사장이 임기를 남기고 사임한 뒤 3개월 이상 CEO 공석인 상태로 이번 대형사업 입찰을 치렀다. 이러한 리더십 위기는 KAI의 구조적 문제와 깊이 연관돼 있다. 최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을 통해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배구조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CEO가 교체되는 이른바 '사장 잔혹사'를 반복하게 만들었다. KAI의 리더십 부재는 이번 입찰 과정에서 실질적인 불이익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최종 의사결정권자의 부재는 사업 전략의 구심점을 잃게 하고, 컨소시엄 파트너와 협상력을 약화시켜 발주자인 정부와 군에 불안정한 인상을 줬을 가능성이 컸다는 설명이다. KAI 노동조합조차 “사장 부재로 인해 협상력이 떨어졌다"고 주장하며 리더십 공백이 수주 실패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했다. 다가오는 국내 최대 방산전시회 'ADEX 2025'에 주요 방산기업 중 유일하게 CEO 대행체제로 참가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KAI의 위상 하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자전기(EWA)사업에서 KAI는 국내 유일의 항공기 체계종합 개발사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이는 파트너인 한화시스템이 LIG넥스원에 비해 항공 전자전 공격 시스템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상쇄하지 못했다. 사업의 핵심기술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파트너를 선정하는 데 실패한 전략적 판단 착오가 패배의 또 다른 원인이 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공군 조종사 출신이었던 강 전 KAI 사장이 윤석열 캠프에도 몸 담았었고, 파트너인 한화시스템의 모기업인 한화그룹이 직전 정부의 수혜를 받아 크게 성장했다는 이미지까지 겹쳐 탈락에 이른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2건의 대형사업 실패는 KAI에 재정적 부담을 안기는 동시에 '대한민국 항공우주 대표 기업'이라는 정체성마저 흔들고 있다. 현재 KAI 내외부에서는 위기 극복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전문성과 비전을 갖춘 CEO의 조속한 선임을 꼽고 있다. KAI는 안정된 리더십을 바탕으로 미래 항공기체(AAV)·우주·무인기 등 장기성장 전략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KAI의 사례는 기업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예시다. 정치적 외풍에 취약한 지배구조는 예측 가능한 경영 공백을 낳고, 이는 경쟁자들에게 KAI의 취약성을 공략할 기회를 허용하는 모양새가 됐다. 2조7000억원이 넘는 수주 실패는 이러한 '거버넌스 리스크'가 초래한 값비싼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패배는 KAI에게 기존의 독점적 지위에 안주하지 않고, 기술 중심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경영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 KAI는 리더십을 조속히 안정시키고, 미래 무인 및 유·무인 복합 체계(MUM-T)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임무 시스템을 자체 개발하거나 이를 보유한 파트너와 강력한 연대를 구축하는 전략적 선택이 시급한 상황이다. 수주 성패와는 별개로 이번 2건의 사업 결과는 단순한 기업 간 승패를 넘어 한국 방위 산업이 더욱 성숙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관측도 존재한다. 이는 향후에 더욱 치열해질 국내 경쟁과 변화하는 기업들의 정체성 속에서 새로운 방산 시대의 서막을 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민관 협력 결실…한화에어로스페이스, ‘K-방산 핵심’ 한국형 수직 발사 체계-II 개발 완료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ADD)·국방기술품질원(DTaQ) 등과 함께 '한국형 수직 발사 체계(KVLS)-II' 개발을 5년 만에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이는 정부와 기업이 '원팀'이 되어 다양한 유도무기를 단일 플랫폼에서 운용할 수 있는 K-방산의 핵심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민관 협력 연구·개발(R&D)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경남 창원시 창원2사업장에서 전날 KVLS-II 체계 개발 종결식을 개최했다고 26일 밝혔다. 행사에는 방극철 방위사업청 기반전력사업본부장을 비롯, 해군본부·국과연·기품원·국방신속획득기술연구원 등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해 개발 성공을 축하했다. 이번 KVLS-II 개발은 민간기업이 개발을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민관 협력' 모델의 첫 성공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방사청은 2020년 개발 사업의 주관을 정부에서 민간으로 전환하며 새로운 협력 모델을 정립했다. 이후 방사청은 사업 과정의 위험 요소를 사전에 분석하고 관리했으며 국과연은 기술 지원과 함께 민간이 확보하기 어려운 시험 시설을 제공했다. 기품원은 개발 전담 인력을 배치해 발생 가능한 품질 문제에 신속히 대응했다. 이러한 유기적인 협력 체계 덕분에 사업은 개발 기간 연장이나 추가 비용 발생 없이 당초 계획대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KVLS-II는 기존 수직 발사 체계보다 성능이 대폭 향상됐다. 갈수록 대형화되는 신형 유도 무기를 탑재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발사 시 발생하는 강력한 화염에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가장 큰 강점은 '하나의 발사관에서 어떤 미사일도 발사(Any Cell, Any Missile)' 개념이 적용된 점이다. 유도 무기 연동 표준화 설계를 통해 하나의 발사관(셀)에서 함대지·함대함·함대공 미사일 등 다양한 무장을 작전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탑재·운용할 수 있다. 또한 특정 셀에 문제가 발생해도 다른 셀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이중화 설계'를 적용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투 지속성을 보장한다. 개발이 완료된 KVLS-II는 올해 말 전력화를 앞둔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 '정조대왕함(KDX-III 배치-II)'에 우선 탑재된다. 이후 건조될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등 해군의 최신예 함정에도 순차적으로 장착될 예정이다. 김동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S사업부장은 “정부 기관의 전폭적인 지원과 유기적인 협력이 있었기에 첫 업체 주관 개발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R&D 역량을 더욱 강화해 대한민국 자주 국방에 기여하겠다"고 언급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소비자 보호 앞장”…수입협회-알리익스프레스, 878개 판매 상품 안전성 검사 완료

한국수입협회(회장 윤영미)는 해외 직구 상품에 대한 소비자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대표 레이 장)와 협력해 총 878개 제품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완료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검사는 지난해 9월 협회가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와 체결한 '해외 직구 상품 안전관리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의 후속 조치로, 지난 1년간 KTR·KCL·KATRI·FITI·KOTITI 등 국내 주요 시험·검사 기관 5곳을 통해 진행됐다. 협회는 검사 결과 안전 기준에 미달한 제품에 대해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측에 판매 중단을 요청했으고, 해당 플랫폼은 이를 즉각 반영하고 동일 상품의 재등록을 막는 등 소비자 보호 조치를 실행했다. 검사 결과에 따르면 식품 용기·캠핑·스포츠·의류·생활용품 등은 비교적 높은 적합률을 기록했다. 반면 화장품·유아·아동용품·물놀이 제품 등은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기준이 적용 지속적인 품질 개선이 요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협회는 유아·아동용품을 중점 관리 대상으로 지정해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와 함께 매월 정기 검사를 시행하며 안전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수입협회 관계자는 “이번 협력은 민간 차원에서 해외직구 상품의 안전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며 “소비자가 안심하고 해외직구를 이용할 수 있도록 사전 검증 체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확대해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협회는 앞으로도 오는 10월 할로윈 용품을 시작으로 겨울철 생활용품과 크리스마스 용품 등 시기별 주요 품목에 대한 정기 검사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와의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건전한 해외 직구 환경을 조성하고 소비자 권익 보호에 앞장선다는 방침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우주양자연구소’ 개소

한국항공대학교(총장 허희영)는 오는 29일 16시 교내 항공우주센터 2층 비전홀에서 '항공우주양자연구소' 개소식 및 기념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25일 밝혔다. 국내 최초로 항공·우주 분야에 특화된 양자연구소로서 학계와 산업계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허희영 총장은 “세계 과학 기술의 중심에 서 있는 양자 기술은 앞으로 항공우주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것"이라며 “본교는 항공·우주 분야에서 축적한 경험과 전문성을 양자 기술과 융합시켜 국가 전략기술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기 위해 연구소를 설립하게 됐는데, 이는 또 다른 도전"이라고 언급했다. 항공우주양자연구소는 기존 컴퓨터로는 처리하기 어려운 항공·우주 분야의 난제를 양자 컴퓨터를 활용해 해결하는 데 주력한다. 항공 분야에서는 기상·항로·연료를 종합 고려한 실시간 최적 항로 설계, 양자 시뮬레이션 기반 항공기 구조설계 최적화 등이 가능해진다. 우주 분야에서는 위성 군집 궤도 제어와 충돌 회피, 심우주 탐사 시뮬레이션 등에서 활용될 전망이다. 연구소는 나아가 △신약 개발 △금융 시장 리스크 최적화 △스마트 제조 공정 제어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도 양자 컴퓨팅 기술의 적용 가능성을 검증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핵심 산업 전반의 성장을 견인하고 글로벌 양자 연구 경쟁에서 주도적 위치를 확보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초대 연구소장에는 한국항공대 인공지능(AI) 전공 정재훈 교수가 임명됐다. 그는 AI의 신뢰성과 양자 인공신경망 등을 연구해왔으며, 2024년에는 인공지능 분야 세계 최고 권위 학회인 'NeurIPS'에 논문을 게재하는 등 국제적 연구 성과를 쌓아왔다. 정 소장은 “양자컴퓨터는 인류가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라며 “항공기 설계와 위성 궤도 제어 등 구체적인 응용 분야에서 양자 기술의 실용성을 증명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내비쳤다. 이날 행사는 1부 개소식과 2부 세미나로 나뉘어 진행된다. 1부에서는 허희영 총장의 환영사와 내빈 축사, 정재훈 소장의 연구소 비전 선포가 있을 예정이다. 이어지는 2부 세미나에서는 '양자 컴퓨팅과 항공우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주제로 한국IBM 표창희 상무가 '하늘과 우주를 잇는 미래: 통신과 양자 컴퓨터의 도전'을 주제로 정재훈 소장이 특별 강연을 진행한다. 이번 개소식은 고양특례시,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차세대통신 혁신융합대학사업단, 한국IBM(주), 텔레픽스(주), (주)솔루텍시스템, (주)레이시오, 소프트온넷(주), Amazon 등 국내외 여러 기관과 기업이 후원한다. 연구소는 향후 지역 사회 및 산업계와 협력하는 개방적인 양자 연구 허브로서 실질적인 연구 성과를 창출할 계획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단독] 삼성중공업, ‘육상 이동형 원자로’ 기술 특허출원

조선·해양 플랜트 분야 글로벌 강자 삼성중공업이 기존 해양 중심 소형모듈 원자로(SMR:Small Modular Reactor) 전략을 넘어 '육상 이동형 원자로' 사업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25일 본지 취재 결과,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3월 11일 '이동형 원자로'에 관한 기술 특허를 특허청 정보검색 서비스 '키프리스'에 출원했고, 특허청은 1년 6개월이 경과한 이달 18일 공개특허공보를 통해 삼성중공업의 출원 기술을 공개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직 '등록특허공보'가 아니라 특허 출원 후 18개월이 지나면 해당 기술 정보가 출원 공개 제도에 따라 공표하도록 돼 있는 '공개특허공보' 단계이기 때문에 삼성중공업의 이동형 원자로 기술이 최종 특허 인증을 받은 건 아니다. 그럼에도 특허청의 공개특허공보 이행은 삼성중공업이 육상 이동형 원자로 기술을 얼마나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공개특허공보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이 출원한 이동형 원자로 기술특허 내용의 핵심은 5메가와트(㎿e)급의 초소형 모듈 원자로(MMR:Micro Modular Reactor)를 현장에 배치할 때 발생하는 고질적인 물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MMR은 모듈러 제작으로 시공 기간이 짧고, 모듈을 추가 설치하는 방식으로 전력과 열 출력을 더 많이 늘릴 수 있다. 아울러 소규모로 형성되기 때문에 선박이나 트레일러, 기차 같은 육상 이동수단에 설치돼 운용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원자로 설치 목적 지점에 도착해 컨테이너를 하역하기 위한 크레인 등 별도의 장비가 필요하고, 설치 지면이 고르지 못하거나 경사가 심한 경우 원자로의 수평이 유지되지 못해 전복과 같은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존한다. 원자로에 수용된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누출돼 주변을 오염시킬 심각한 우려도 있다. 이 외에도 원자로 운반 작업을 마친 차량을 더 이상 활용할 수 없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발명자로 이름을 올린 이상민·김정·김종원·임채욱·전상배·전준환 삼성중공업 연구원 6명은 원자로 모듈이 운송차량에서 스스로를 들어 올리고, 고르지 않은 지면에서도 자동으로 수평을 유지할 수 있는 독립적인 유압식 승강 시스템을 고안했다. 이 기술은 외부의 대형 하역장비 없이도 원자로를 안전하게 설치할 수 있게 하며, 임무를 마친 운송차량은 즉시 다른 용도로 재사용할 수 있어 경제성과 운용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삼성중공업 연구원들은 “원자로 운용에서 안정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배치 시스템은 중후장대 산업에 속한 삼성중공업의 정체성과 핵심 역량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삼성중공업의 핵심사업은 선박·해양 플랜트와 같은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물을 제작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수천 톤에 이르는 거대 블록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막대한 중량 관리 기술과 복잡한 유압제어 시스템, 파도 치는 가혹한 해상 환경에서도 구조물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고도의 엔지니어링 전문성이 요구된다. 이 특허에 담긴 '독립형 유압식 배치 시스템'의 개념은 삼성중공업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핵심 역량을 '육상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응용 분야에 직접적으로 이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원자로 자체보다 이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송하고 배치하는 '플랫폼' 기술에 집중함으로써 자사의 강점을 극대화하고자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중공업은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과 LNG 운반선 추진용 용융염원자로(MSR) 개념 설계를 공동 진행했고, 덴마크 시보그(Seaborg)와는 콤팩트 용융염원자로(CMSR)에 관해 협력한 바 있다. 따라서 추후 종류에 관계 없이 MMR을 탑재할 수 있도록 설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특허 출원이 회사 차원의 일회성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점은 지난해 발표된 학술 연구 논문을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삼성중공업 연구원들은 특허청에 출원하기 5개월 전인 지난해 4월 한국기계기술학회지에 '이동형 열원발생기 수송 기술 개발을 위한 국내외 관련 법률 및 인허가 규정 검토'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은 이동형 원자로를 도로로 수송할 때 적용될 수 있는 △도로교통법 △핵물질 운반 규정 △가속도·진동 기준 등 국내외 법률과 인허가 요건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이는 삼성중공업이 단순히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고 법·제도 검토까지 선제적으로 진행해왔음을 알려주는 단서다. 삼성중공업 연구원들은 해당 연구가 2022년 방위사업청의 재원으로 국방기술진흥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차세대 다목적 고출력 전력 생산 기술 연구' 과제의 일부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한편,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아직 시제품도 없고, 실제 사용 여부는 10여년 후에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아직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 있지는 않다"며 “SMR 기술이 선박에 적용될 가능성에 대비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보호하기 위한 방어 차원에서 선제 출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봉화·태백 주민들 “석포 제련소 이전은 지역 소멸”…생존권 걸고 대규모 집회

경북 봉화군과 강원 태백시 주민 수백 명이 정부와 경상북도가 추진하는 영풍 석포 제련소 이전에 맞서 생존권 사수를 외치며 대규모 궐기 대회를 열었다. 주민들은 '제련소 이전은 곧 지역의 소멸'이라며 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계획이 철회될 때까지 결사 항전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25일 오후 봉화군 석포면에서 열린 집회에서 '봉화·태백 생존권 사수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는 제련소 이전 계획에 대해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는 폭거이자 지역 말살 정책"이라며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1970년 설립 이후 반세기 넘게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 돼온 석포 제련소가 사라지면 수많은 일자리가 없어지고 봉화와 태백의 공동체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재한 공동투쟁위원장(봉화청년회의소 회장)은 “석포 제련소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초석이었고 지난 50년간 우리 지역의 생명줄이었다"며 “정부가 일부 환경단체의 주장만 듣고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방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도 환경의 중요성을 외면하지 않으며, 제련소 역시 친환경 공정 개선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면서 “합리적인 대화 대신 이전과 폐쇄라는 극단적 처방을 내세우는 정부의 태도에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임광길 석포면현안대책위원장 역시 “이 투쟁은 단순히 제련소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내는 싸움"이라며 “우리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주민들은 제련소 이전을 환경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 이들은 제련소가 무방류 시스템과 대기·수질 개선 설비 등 수십 차례에 걸쳐 환경 투자를 진행해왔다며 현 시점에서의 이전 추진은 환경 개선 목적이 아닌 정치적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공동투쟁위원회는 이날 집회에서 △영풍 석포제련소 이전 및 폐쇄 계획 즉각 중단 △영풍 측의 이전·폐쇄 관련 명확한 입장 표명 및 문서화 △이전 강행 시 주민 생존권과 지역 경제 붕괴에 대한 완벽한 보장 대책 및 환경 원상 복구책 제시 △경상북도 '영풍 제련소 이전 TF팀' 즉각 해체 및 이철우 경북지사의 사과 등 4개의 요구 사항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하고 중앙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한편 경상북도는 석포제련소 이전을 위한 전담팀(TF)을 구성해 타당성 조사와 종합 대책 수립을 진행 중이어서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과 충돌이 예상된다. 주민들은 앞으로도 지역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의 강도를 더욱 높여갈 방침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KAI 노조 상경 집회…“사장 부재 탓 사업 전반 제자리 걸음 넘어 흔들려 경영 위기”

“경영 정체 책임져라! 사업 차질 각성하라! 내부 혼란 끝장내자! 신뢰 하락 방치 말라!" 24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노동조합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소재 한국수출입은행(KEXIM) 본점 앞에서 사장 인선 촉구를 위한 상경 결의 대회를 열었다. 김승구 KAI 노조 위원장은 “지난 7월 1일 강구영 전임 사장이 퇴임한지 100일이 다 돼가지만 사장 인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이는 단순 인사 지연을 넘어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의 미래를 뒤흔드는 중차대한 문제"라고 운을 뗐다. 김 위원장은 “KF-21 개발비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초도 양산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폴란드 사업이 흔들리고 전자전기 사업과 미 해군 사업 수주 건 역시 표류하며 회사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실제 KAI는 최근 대한항공-LIG넥스원 컨소시엄과의 대결에서 9613억원 규모의 블랙 호크 성능 개량 사업과 1조7775억원 수준의 한국형 전자전기 사업 등 총 2조7388억원 어치를 놓쳤다. 노조는 사장 공백에 따른 결과물이라며 회사가 무너지는 모습을 묵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완제기 수출 등 KAI의 사업 전반에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지급 보증이 필수적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남병서 KAI 노조 조직쟁의실장은 “사장 자리가 비어있는 탓에 주요 사업 추진과 대외 신뢰 확보가 지연되며 국가 전략 사업과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아덱스(ADEX) 2025가 불과 1개월 앞으로 다가왔는데 사장 공백 상태로 전시회를 맞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우리는 대한민국 항공우주 산업계와 도약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며 “이는 곧 국제적 신뢰를 잃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노조 역시 회사가 문제 없이 수주할 경우 책임있는 자세로 항공기 생산 작업에 임할 것"이라며 “세계 만방에 회사 상태가 이렇다는 것을 적극 알릴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2027년까지 글로벌 방산 4대 강국으로의 진입을 천명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노조 측은 이 대통령이 이와 같은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다면 즉시 업무를 수행하고 사업 수주에 앞장서며, 현장을 존중하고 산업 생태계를 꿰뚫어 보는 전문가를 새 사장 자리에 앉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KAI 노조는 새 사장이 선임될 경우 △실패한 사업부제 철폐 후 본부제로의 전환 △퇴직 임원 복귀 시도 전면 차단 △정치 줄 세우기·기밀 유출 세력에 대한 철저한 응징 등에 화답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편 KAI 노조는 최대 주주인 수은이 결단을 내리지 못할 경우 이번 집회를 시작으로 투쟁을 전면 확대하고 대 정부 압박 수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김 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기벤처위원회·국방위원회·세종 정부 청사까지 직접 찾아가 시위를 전개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전면 투쟁에도 나서겠다"고 투지를 밝혔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보잉코리아 “한국 세계4대 방산수출에 참여하겠다”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제조 역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한다. 한국의 혁신 정신에 입각해 한국 산업계와 함께 계속해서 성장을 이끌어 나가겠다." 24일 윌 셰이퍼 보잉 코리아 사장은 서울 중구 을지로 소재 롯데호텔에서 열린 '보잉-대한민국 파트너십 75주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이어 “혁신적 성장과 첨단 제조업, 세계적 수준의 기술 인력을 갖춘 한국은 미래 항공우주 산업을 위한 당사의 주요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보잉 측은 지난 75년간 한국과 맺어온 협력의 역사를 조명하고, 한국 산업·기술 역량과 결합해 미래 항공우주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보잉과 한국의 인연은 1950년에 시작됐다. 대한항공의 전신인 대한국민항공이 보잉이 제작한 DC-3 항공기를 도입한 것이 그 시작이었고, 같은 해 한국 공군이 F-51D 머스탱 전투기로 첫 임무를 수행하며 방위 분야의 협력도 막을 올렸다. 이후 양측의 파트너십은 상용기와 방산 부문을 아우르며 꾸준히 발전했다. 현재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및 여러 저비용 항공사(LCC)를 포함, 총 270여대의 보잉 상용기가 한국에서 운용되고 있고, 시장 점유율은 60%를 상회한다. 특히 대한항공은 올해 777-9, 787 등 차세대 보잉 항공기 103대 구매 의사를 밝혔다. 이는 대한항공 역사상 최대 주문이자 보잉이 아시아 항공사로부터 수주한 최대 규모의 광동체 주문이 될 전망이다. 방산 부문에서도 △F-15K △아파치(AH-64) 헬기 △치누크(CH-47) 헬기 등 150여 대의 보잉 플랫폼이 대한민국 국군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하고 있다. 과거 단순 구매에서 나아가 F-15K 프로그램에서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한화그룹·LIG넥스원 등이 부품 공동 개발에 참여했고, 아파치 헬기는 KAI가 동체를 직접 제작하는 등 공동 생산·기술 협력 관계로 발전했다. 셰이퍼 사장은 한국이 단순한 고객을 넘어 핵심적인 공급망 파트너임을 분명히 했다. 보잉은 2024년 기준 약 3억2500만달러(약 4500억원) 규모의 부품을 한국 협력사로부터 구매했다. 이는 보잉의 전 세계 공급망에서 5~6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셰이퍼 사장은 “737과 787 생산량이 늘고 있고, 2026년부터는 777-9의 생산도 본격화될 것"이라며 “향후 한국 공급사로부터의 구매액이 단기적으로 50%가량 증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보잉 측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인도량은 8월까지 누적 385대로 전년 동기 258대 대비 49.2% 증가하며 가파른 생산량 증대를 뒷받침했다. 보잉은 한국의 R&D 역량에도 주목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에 입주한 보잉코리아기술연구센터(BKETC)에는 현재 100명 이상의 엔지니어가 근무하며 차세대 기술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셰이퍼 사장은 “내년까지 BKETC 인력을 약 20% 증원할 계획"이라며 “소프트웨어·인공 지능(AI)·시스템 엔지니어링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의 우수한 인재들과 함께 항공우주 혁신을 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출입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내용. -2024년 3억2500만달러 투자의 의미와 향후 계획은. “투자 개념보다는 한국 내 공급사로부터의 '구매액'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737·787, 내년부터 생산이 늘어날 777-9 등 상용기 프로그램의 생산량 증대에 따라 이 구매액은 향후 50%까지도 증가할 수 있다." -대한항공의 대규모 주문이 영향을 미쳤는가. “직접적인 투자 증대 결정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와 오랜 기간 중요한 파트너십을 유지해왔고, 이러한 긴밀한 관계가 향후 추가적인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쟁사인 에어버스가 LIG넥스원과 협력하는 등 한국 방산업계와의 경쟁이 치열하다. 보잉의 계획은. “앞으로는 '세계 4대 방산 수출국'을 목표로 하는 한국의 성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하고 싶다. 단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공동 개발을 통해 한국과 함께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자 한다. 요컨대 아파치 헬기에서 드론을 발사하는 '런치 이펙트' 같은 기술을 한국과 공동 개발한다면 현재 폴란드·호주·인도 등에서 수요가 높은 아파치 시장에 한국 기업과 함께 진출할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민항기 시장에서 에어버스와의 경쟁 전략과 향후 개발 로드맵, 코로나19 시기 해고했던 숙련공 충원 계획은. “판매 목표는 고객사의 수요에 따라 결정되는데 향후 20년간 전 세계적으로 약 4만3000대의 신규 항공기 수요가 예상된다. 이 중 절반은 동남아·인도 등 신흥 시장의 성장에 따른 것이고, 차세대 기종 개발보다는 현재 주문이 2030년대까지 밀려있는 기존 제품군의 생산 안정화에 집중하고 있다. 시장의 수요가 여전히 견고하고, 엔진 등 차세대 기술의 발전도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기에 인력을 대규모로 감축하지는 않았고, 일부 조정과 은퇴 인력이 있었을 뿐이다. 이후 적극적으로 엔지니어를 신규 채용해 현재 엔지니어 인력의 약 50%가 새로 합류한 인원이다." -지난 3월 취임 후 포부와 보잉코리아기술연구센터(BKETC) 인력 증원 계획은. “사장으로서 고객 지원·인재 개발·한국 정부 및 산업계와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발굴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BKETC의 인력은 내년까지 약 20% 증원할 계획이며, 주로 AI 엔지니어링·시스템 및 생산 엔지니어링·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분야에 집중해 핵심 프로젝트를 수행할 것이다. 또 스마트 팩토리·AI 등 한국이 선도하는 첨단 제조 기술을 보잉의 생산 시스템에 적용하는 방안을 배우고 싶다. 향후 기술 개발·인재 양성·공급망 고도화 등 다방면에서 한국과의 파트너십을 한 단계 격상시킬 계획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韓中 세탁기 전쟁] “세탁기, 중국제가 최고”…대륙의 이유 있는 ‘애국소비’

“수입 제품이 우리 것보다 좋지 않냐고요? 아닙니다. 중국 제품의 가성비가 훨씬 좋습니다." 지난 8월 4일부터 8일까지 나흘간 중국 가전제품 시장을 둘러보기 위해 베이징 시내의 현장 곳곳을 찾았다. '애국 소비' 열풍에 힘입어 자국 브랜드가 시장을 장악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그 이유'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현장에서 만난 하이센스(Hisense) 직원의 자신감 넘치는 한마디는 이번 취재의 목적을 관통하는 답변과도 같았다. 중국의 애국 소비는 맹목적인 국산품 사랑이 아닌, 치밀한 현지화 전략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제품 경쟁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매장 곳곳에서 확인한 중국 가전의 현주소는 한국 기업들이 더 이상 '프리미엄'이라는 이름만으로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치열한 격전의 현장이었다. 베이징의 한 대형 가전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하이센스의 '3-in-1' 세탁기였다. 상단에 1kg 용량의 소형 드럼 세탁기 두 대와 하단에 13kg 용량의 대형 드럼 세탁기 한 대가 결합된, 마치 로봇처럼 생긴 독특한 형태였다. 하이센스 매장 직원은 “이 세탁기는 동시에 세 부분을 구동할 수 있다"고 설명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속옷, 아기 옷, 양말 등 소량의 빨랫감을 상단에서 각각 분리 세탁함과 동시에 하단에서는 이불이나 많은 양의 옷을 처리할 수 있다는 말이어서다. 한 번에 최대 15kg의 세탁물을 용도에 맞게 나눠 빨 수 있는 것이다. 이 제품은 최근 중국 사회의 변화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해당 직원은 “요즘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는 1~2인 가구가 급격히 늘었다"며 “이들은 빨래를 모아뒀다 한 번에 하기보다 소량이라도 자주, 그리고 분리해서 세탁하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이 세탁기 하나면 여러 대의 세탁기를 놓는 효과를 누릴 수 있어 공간 효율성도 높다. 단순히 물리적인 결합에 그치지 않았다. 기술력 또한 인상적이었다. 세탁물의 무게와 종류를 감지하는 AI 기능이 탑재돼 물의 양, 세제 투입, 세탁 시간 등을 알아서 최적화한다. 이 직원은 “수천만 가지의 옷감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옷의 재질을 식별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세탁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실크 같은 섬세한 옷감은 스팀으로 부드럽게 관리해주는 식이다. 세탁 성능을 나타내는 객관적인 수치도 제시했다. 그는 “세탁 후 얼마나 깨끗한지를 나타내는 국가 표준 세척도 수치가 있는데, 이 제품은 1.33에 달한다"며 “보통 다른 브랜드 제품은 1.15 수준에 머문다"고 자신했다. 여기에 하이센스의 자체 스마트홈 앱인 '아이자(愛家)'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세탁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원격으로 제어하는 사물 인터넷(IoT) 기능까지 갖췄다. 모터는 무려 12년, 기기 전체는 3년간 품질을 보증한다는 조건은 제품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유독 큰 세탁기와 냉장고를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한국 가서 정말 놀랐어요." 현장에서 만난 한 소비자는 자신이 중국 집에서 8kg짜리 LG 세탁기를 쓴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매장을 둘러보는 내내 20kg가 넘는 대용량 세탁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 8~10kg, 커봐야 13kg 용량의 제품들이 주를 이뤘다. 이는 중국의 세탁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많은 가정이 두꺼운 이불까지 집에서 세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중국의 상황은 달랐다. 현지 직원과 통역의 말을 종합하면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솜이불을 많이 사용해왔고 이는 물세탁 대신 털어서 관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아예 전문 세탁소에 맡기거나 집 근처 코인 빨래방을 이용하는 것이 보편화됐다.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집안에 거대한 세탁기를 들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한국 가전 기업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매장을 찾은 한 소비자는 “삼성전자나 LG전자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력으로 미는 25kg짜리 대용량 프리미엄 제품을 중국에 그대로 가져와서 팔아봤자 그 필요성을 못 느끼는 현지 소비자들에게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현지 수요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글로벌 스탠다드'를 고집하는 전략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현지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오프라인 백색 가전 매장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도 시장 변화와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중국 가전 시장은 하이얼(Haier)이라는 거대한 이름 아래 여러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도였다. 한 매장 직원은 “전 세계 판매량으로 보면 하이얼이 단연 1위"라고 단언했다. 하이얼의 가장 큰 무기는 '가성비'와 '품질'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고장이 적고, 문제가 생겨도 AS가 편리하다'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하이얼이 단순히 가성비 시장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이얼은 '카사디(Casarte)'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별도로 운영하며 고급 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는 “동일한 사양의 제품이라도 카사디 브랜드로 출시되면 디자인과 스크린 등에서 차별화를 둬 2000위안(한화 약 37만 원)가량 더 비싸다"고 전했다. 이는 삼성의 '비스포크 인피니트'나 LG의 '시그니처'처럼, 대중적인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를 이원화 해 시장을 공략하는 고도화된 전략이다. 여기에 샤오티엔어(小天鹅, Little Swan)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중견 브랜드와 샤오미(Xiaomi)처럼 IoT 생태계를 앞세워 가전 시장에 뛰어든 신흥 강자까지 가세해 시장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샤오미는 세탁기뿐만 아니라 스마트 건조대까지 선보이며 집안의 모든 가전을 하나로 연결하는 스마트홈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인상적인 제품들과는 별개로 오프라인 매장의 분위기는 다소 침체돼 있었다. 특히 시내의 한 '궈메이(Gome)' 매장은 불 꺼진 공간이 많고 먼지가 쌓여 있어 마치 창고를 방불케 했다. 이는 중국 역시 온라인으로 소비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오프라인 유통 채널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불황 속에서도 내수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는 강력해 보였다. '이구환신(以旧换新)'이라 불리는 당국의 가전 교체 보조금 정책이 대표적이다. 헌 제품을 반납하면 새 제품을 살 때 일정 금액을 보조해주는 이 정책은 소비자들의 교체 주기를 앞당기고 내수 판매량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책적 지원은 자국 브랜드의 성장에 든든한 발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4박 5일 간의 짧은 취재였지만 중국 가전 시장의 저력과 잠재력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애국 소비'라는 말 뒤에는 자국 소비자의 생활 방식을 꿰뚫는 치밀한 현지화, 글로벌 브랜드를 위협하는 기술력, 그리고 시장을 세분화해 공략하는 노련한 브랜드 전략이 숨어 있었다. 더 이상 '메이드 인 차이나'는 값싼 제품의 대명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한국 기업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강력한 경쟁자의 이름이 됐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됐습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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