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면 숨통, 더 길어지면 충격”...韓 경제 ‘시간과의 싸움’ [미-이란 전쟁 한달]

중동전쟁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로 자리잡았다. 최근 미국과 이란에서 우호적인 시그널이 나오면서 리스크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불거지고 있으나, 이미 미국이 당초 예상했던 작전 기간을 넘기고 '플레이어'가 늘어나는 등 전쟁이 길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맞서는 모양새다. 환율과 금리를 비롯한 경제지표들이 받는 타격도 전쟁 기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1504.5원으로 전날 대비 0.4% 하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국 대통령이 대이란 군사작전을 2~3주 안에 종료할 수 있다고 발언하고,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도 조건부 분쟁 종식 의지를 표명한 영향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이란 탄도미사일 시설 파괴와 수뇌부 제거 등을 언급했다. 전쟁을 지속할 이유가 줄었다는 것이다.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되면 안전자산 선호 심리 등으로 치솟은 환율 안정화를 기대할 수 있다. 유조선 통항 재개는 기름값도 낮출 수 있다. 현재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국제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60~70달러)으로 돌아오면 주유소를 찾는 고객 뿐 아니라 산업현장의 원가 부담이 완화된다. 환율과 물가 등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기반이 무너진다는 의미다.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높아진 시장금리 역시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 23일 2023년 11월28일 이후 처음으로 3.6%를 상회했다. 최근에도 기준금리를 100bp(1%포인트) 가량 웃돌고 있다. 2년 만에 4%대로 진입한 여전채 금리(AA+ 등급 3년물 기준) 때문에 이자 부담을 걱정하는 카드사·캐피탈사의 어깨도 가벼워질 전망이다. 반대로 전쟁이 장기화되면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이 약화되며 △추가적인 환율 상승 △기준금리 인상 △경상수지 하락 등에 직면할 수 있다. 앞서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내외로 형성되면 경상수지가 260억달러 감소하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1%포인트(p) 가량 상승할 것으로 추정했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전쟁에 대한 비관적 시나리오가 시장을 지배하며 미 달러 강세가 지속되고 있고, 외국인들의 국내주식 투매가 심화되며 환율 상승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예멘 후티 반군이 전쟁에 뛰어들며 상황이 복잡해졌고, 쿠에이트 전력·담수시설을 비롯한 중동 국가들의 피해가 지속되는 탓이다. 예멘 후티 반군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증권은 연평균 환율 전망을 1460원(2분기 1490원, 3분기 1440원, 4분기 145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70%에 달하는 취약성 등을 고려해야한다는 논리다. 원화 절하율이 다른 통화에 비해 과도하지만, 외국인의 유가증권시장 순매도 규모가 35조원 등을 넘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고유가 여파가 본격적으로 우리 경제에 녹아들면 이미 6개월 연속 이어진 생산자물가지수 상승세도 연장된다.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한국은행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거세진다는 뜻이다. 장현상 KB국민은행 자본시장사업그룹 연구원은 정부가 물가안정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기준금리 인상폭이 3.5%(지난 인상 사이클의 최고점)까지 도달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신현송 차기 한국은행 총재 후보도 지난 16일 언론 인터뷰에서 국제유가 상승 같은 공급 충격에 대해서는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는 것보다 관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3조원 규모의 국고채 단순매입을 실시한 데 이어 5조원 규모의 바이백을 발표했고, 국고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효과가 더해졌음에도 금리 상승세를 막지 못했다는 반론이 따른다. 이같은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기존 스탠스가 유지될 수 있냐는 의문도 따른다. 장 연구원도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은 공급 충격으로 인한 2차 파급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를 차단하기 위해 한은이 하반기부터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인플레 불씨 키웠다…금리 인하 ‘제동’ [미-이란 전쟁 한달]

미국과 이란 전쟁이 한 달 이상 이어지며 미국과 한국의 통화정책 방향이 흔들리고 있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커졌고 당초 예상됐던 금리 인하 기조에도 제동이 걸렸다.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은 지난달 17~18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 목표 범위를 연 3.5~3.75%로 유지했다. 지난해 세 차례 연속 인하한 후 올 들어 두 차례 연속 동결했다. 연준은 중동 전쟁으로 물가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규모와 기간을 알 수 없는 에너지 충격에 직면했다"며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실제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격히 오르면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국제 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6월물은 지난달 31일 배럴당 103.97달러로 마감했다. 브렌트유 5월물은 3월 한 달간 63%나 급등하며 1988년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유가 상승은 미국 물가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3.78ℓ)당 4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소비자들의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구간으로, 해당 수준에 도달한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던 2022년 이후 처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4.2%로 대폭 올려 잡았는데, 연준 목표치인 2%를 두 배 이상 웃돈다. 또 미국의 경제 조사 단체인 콘퍼런스 보드에 따르면 12개월 기대 인플레이션은 7.1%로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시장은 오는 6월 케빈 워시 차기 연준 의장이 취임하면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으로 봤지만, 최근에는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다만 파월 의장은 인상 가능성에 선을 그은 상태다. 그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하버드대 강의에서 “인플레이션 기대는 단기 시계를 넘어 잘 고정돼 있다"며 “현재 통화정책은 (전쟁) 상황을 지켜보기 좋은 위치에 있다"고 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물가 압력이 높아지겠지만 전쟁 지속 여부에 따라 물가 압력 상승이 단기간에 그칠 수 있어 연준이 동결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은 역시 통화정책 방향 설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가와 환율 상승 압력이 커지며 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은은 그동안 기준금리 인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동결 기조를 한동안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 2월 한은이 새로 도입한 점도표에 따르면 금융통화위원들은 6개월 내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이창용 한은 총재를 포함한 금통위원 7명은 각각 3개씩 총 21개의 점을 찍어 6개월 후 기준금리를 예상했고, 16개는 금리 동결, 4개는 금리 인하(연 2.25%), 1개는 금리 인상(연 2.75%)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는 중동 전쟁 이전에 제시된 것으로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수형 금통위원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2월에 발표한 점도표는 전쟁이 고려되지 않은 결과"라며 “현재는 물가 상방 압력과 성장률 하방 리스크가 커져 2월 결과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국내도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2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6% 높아지며 6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간 긴장감이 고조되며 국제 유가가 크게 높아진 영향으로, 3월에도 상승세가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OECD 또한 올해 한국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1.8%에서 2.7%로 상향 조정했다. 고환율도 부담 요인이다. 원·달러 환율은 전쟁 발발 후 1500원을 웃돌면서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예상보다 빨리 기준금리를 높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중동 전쟁이 단시일 내 종전 또는 휴전되더라도 에너지 공급 정상화까지는 상당기간 소요될 것"이라며 “오는 5월 점도표와 물가 상승률 전망치 상향 조정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어 “한은 기준금리는 오는 7월 포함 두 차례 인상을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다만 오는 4월 이창용 총재의 임기가 종료되고 신현송 총재 후보자가 취임할 경우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성급하게 금리 방향성을 돌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물가 상승 속에 경기 하방 위험도 커지고 있지만 정부가 26조원 규모의 '전쟁 추경'을 통해 경기 대응에 나선 만큼 금리 인상을 섣불리 단행할 시기는 아니란 분석이다. 신 후보자는 지난달 31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향하던 중 기자들과 만나 평소 실용적 매파(통화긴축 선호)로 평가되는 것에 “매파냐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냐의 이분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또 중동 전쟁에 따른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중동 상황이 불확실성이 큰 만큼 좀 지켜봐야 한다"며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끝모를 중동 지옥...금융권, ‘장기 리스크 모드’ 전환 [미-이란 전쟁 한달]

국내 금융시장이 중동전쟁에 연일 출렁이면서 금융권도 '장기 리스크 모드'로 전환하고, 산업 전반과 기업, 개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금융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란 전쟁 여파로 국내 주력 제조업의 수출이 둔화돼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하방압력이 커지고, 시장금리가 올라 취약 기업들의 채무 상환 능력이 악화될 수 있어 전방위 금융지원을 가동하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중동사태로 '비상경영'에 직면한 업종은 단연 석유화학 기업이다. 중국발 과잉 공급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중동 지역 원료 공급까지 단절되면서 가동 중단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중국을 중심으로 대규모 증설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가격경쟁력이 크게 떨어졌고, 적자 수출 장기화로 업계 전반의 현금창출력이 위축되고 차입 부담도 확대됐다. 지형삼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석유화학 설비는 연속공정 및 연계 생산 구조상 수익성이 저조한 제품만 선택적으로 생산량을 축소하기가 어렵다"며 “일시적 감산으로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서 저효율 설비의 가동 중단, 폐쇄를 수반하는 실질적 공급능력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중동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와중에 3월 수출액이 861억3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48.3% 증가하며 사상 최대 수출 실적을 올린 점은 고무적이다. 이 중 반도체 수출은 328억3000만 달러를 기록해 사상 최초로 3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다만 중동전쟁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서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공급망 불안이 심화하는 등 수출 여건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산업계는 가시밭길이다. 성동원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반도체 산업은 공정에 필요한 정밀 화학 소재를 조달하는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며 “공급망이 단절되면 생산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업들의 체감경기는 비상계엄 사태 여파가 컸던 작년 초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전산업 기업심리지수(CBSI) 전망치는 93.1로 전월 대비 4.5포인트 내렸다. 계엄사태 직후였던 작년 1월(-7.2포인트) 이후 낙폭이 가장 컸다. CBSI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가운데 제조업 5개, 비제조업 4개 등 주요 지수를 바탕으로 산출한 심리지표다. 100을 상회하면 경제 전반에 대한 기업 심리가 낙관적, 100을 하회하면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기업들의 수익성 하락은 취약기업의 채무상환 능력 약화로 이어져 금융사들의 자산건전성이 저하되거나, 회사채 차환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만기가 도래한 회사채를 신규 회사채 발행으로 상환하는 과정에서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서울채권 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연 2.935%로, 3%를 하회했지만, 최근 이란 전쟁 등의 영향으로 상승폭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3.617%까지 치솟아 2023년 11월 이후 2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후 1일 오전부터 우리나라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 시작되면서 3년물 금리는 연 3.370%까지 하락했다. 채권금리 하락은 채권가격 상승을 뜻한다. 3년물 금리가 3.5%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달 20일(3.410%) 이후 약 열흘 만이다. 원·달러 환율도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동성이 확대됐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31일 장중 1536.9원까지 올라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9년 3월 10일(장중 최고 1561.0원) 이후 17년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1일에는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 전날보다 28.8원 내린 1501.3원을 기록했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기대감이 환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은행권은 혹시 모를 중동 상황 장기화에 대비해 비상대응체계 수위를 끌어올리고, 국내 기업들의 대출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중동 지역 정세 불안에 따른 금융시장 변동성과 실물경제 영향을 최소화하고자 금융지원 프로그램도 가동 중이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원자재 가격, 환율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 및 개인고객을 신속하게 지원하고자 '중동 상황 관련 긴급 점검 회의'를 소집하고, 총 18조4000억원 규모의 '중동 대응 비상경영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했다. 중동 상황의 직·간접 영향권에 있는 기업을 위해 유동성 지원 17조5000억원, 수출입지원 8000억원 등 총 18조3000억원을 공급하고, 고물가·고금리로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개인 고객과 금융 취약계층을 위해 약 1000억원 규모의 민생 안정 금융지원에도 나선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피해 최소화를 위해 적극 노력하고,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재고로 버티지만…식품·유통업계도 ‘원가 쇼크’ [미-이란 전쟁 한달]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한 달을 넘기면서 기초 원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내수 식품·유통업계에 '원가 쇼크' 우려가 커지고 있다. 플라스틱 및 비닐 포장재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가격은 전쟁 직전인 지난달 27일 1메트릭톤(1MT) 당 640달러에서 지난 23일 1220달러로 2배 가까이 급등했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 차질로 인한 해상 물류비 상승 등 공급망 리스크도 점차 가중되는 추세다. 나프타는 플라스틱 용기, 비닐 포장재 등 식품·유통 현장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부자재의 기초 원료다. 국내 기업들의 나프타 중동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만큼, 운송로의 불안정성은 포장재 조달 단가 인상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유통업계 현장에서는 나프타 수급 불안 우려가 선반영되며 선제적으로 비닐류 품귀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한 수도권의 편의점주는 “어제(30일)까지도 종량제 쓰레기 봉투의 발주가 막힌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부터 25일까지 편의점 CU의 일반 및 음식물 종량제 봉투 매출은 전월 동기 대비 각각 59.5%, 45.0% 증가했다. GS25 역시 지난 22일에서 26일 사이의 판매 동향을 살펴보면, 직전 주 같은 기간보다 일반 종량제 봉투는 325.7%, 음식물 쓰레기 봉투는 277.7%나 폭증하는 등 사재기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대형마트도 위생장갑과 위생백 등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관련 상품의 발주량을 평소보다 크게 늘리고 있다. 다만 업계는 당장의 치명적인 타격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한 편의점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재고를 넉넉히 준비해두는 터라 당장 납품이 지연되거나 단가가 급등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며 “사태 장기화 여부를 차분히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해 당장의 수급 불안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수입 가공식품 및 신선식품의 공급망도 영향을 받고있다. 일부 수입 가공식품은 선박 우회 등으로 납품이 최대 1주가량 지연되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직접 노출된 이스라엘산 자몽과 중동산 오렌지 등은 수급 불안에 대비해 비축분을 선제적으로 늘리고 국내산 품종으로 대체를 검토 중이다. 다만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선박 스케줄 변경에 따른 1주가량의 지연은 평시에도 생기는 일로 심각한 납품 지연이나 중단 사태는 아니다"라고 설명해 당장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님을 강조했다. 식품 제조사들 역시 포장재 여유분을 2~3개월치 미리 확보해 둬 당장의 영향은 없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실적 자료를 분석한 결과, 주요 22개 식품사의 가중평균 매출원가율은 2024년 74.3%에서 지난해 75.2%로 0.9%포인트(p) 상승했다. 원가 부담이 전년보다 상승한 상황에서 글로벌 공급망 쇼크가 길어지면 수익성 방어가 점차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주요 산지의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대두나 밀, 팜유 등 주요 원재료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여기에 중동 정세가 악화하면서 환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점도 악재다. 지난 30일 서울 외환시장 야간 거래에서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1520원대까지 치솟았다. 환율 급등은 원화 환산 수입 단가를 구조적으로 높여 국내 기업의 원가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소비 심리 위축과 맞물려 '가성비' 중심의 유통 구조로 재편되는 현상이 고착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일반 브랜드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체 브랜드(PB) 상품 등으로 수요가 쏠릴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 편의점 관계자는 “아직 PB 상품으로의 뚜렷한 소비 이동 현상은 없다"면서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식품 제조사들 역시 섣부른 판매가 인상 대신 유통가의 이 같은 변화 기조에 발을 맞출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미 지난해 수익성 악화를 겪은 상황에서 중동발 악재로 인한 추가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경우 내수 판매량 자체가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중동 전쟁 장기화 우려는 단순한 일회성 원가 쇼크를 넘어, 국내 식품·유통 생태계가 비용 통제와 가성비 중심으로 체질을 바꿀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전쟁發 상승’ 되돌림, 유가·환율 변수 확대…코스피 과열 논쟁 재점화 [미-이란 전쟁 한달]

중동 전쟁으로 롤러코스터 장세를 반복하던 국내 증시가 최근 다시 방향성을 모색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전쟁 직후 급등했던 방산·에너지 업종은 차익실현 흐름 속에 조정 국면으로 전환됐다. 지수를 이끌던 반도체 업종은 기존 상승 흐름 안에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시장에서는 전쟁 관련 기대가 상당 부분 주가에 먼저 반영된 이후 되돌림이 나타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기간 급등에 따른 '거품(버블) 논쟁' 역시 확산하고 있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일 KRX 반도체 지수는 -4.47% 하락했고, 에너지화학 (0.77%) 역시 약세로 전환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2%대)를 비롯해 LIG넥스원(-7%대), 한화시스템(-2%대) 등 전쟁 수혜 기대를 받던 방산주들도 일제히 하락하며 차익실현 흐름이 뚜렷해졌다. 전쟁 발발 후 급등락을 반복하던 주요 지수는 최근 들어 낙폭이 확대되며 하락 속도가 빨라지는 모습이다. 이에 코스피지수는 약 한 달 만에 15%가량 하락했다. 이 같은 흐름은 전쟁 초기 형성됐던 상승 동력이 상당 부분 주가에 선반영된 이후, 이를 되돌리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전쟁 발발 직후 시장은 유가 급등과 공급 차질 가능성을 반영하며 방산과 에너지 업종을 중심으로 강한 상승 흐름을 보였다. 다만 최근에는 상승 속도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단기 차익실현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증권가는 현재 국면을 상승 흐름이 꺾였다기보다는 속도 조절 구간으로 보고 있다. 조정이 이어지면서 코스피는 최근 3개월 평균 가격 수준까지 내려왔고, 이 구간에서는 추가 하락보다는 매수세가 유입되며 지수가 버티는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종민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현재 국면은 펀더멘털의 훼손보다는 심리적 공포가 과도하게 반영된 하락 구간"이라며 “전쟁의 격화보다는 협상 진행 가능성에 무게를 두며 낙폭 과대에 따른 매수세가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조정을 겪고 있는 반도체 업종에 대해서도 펀더멘털은 여전히 견조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교보증권은 중동 리스크로 단기 변동성은 확대됐지만 반도체 업황 자체는 견조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DRAM과 NAND 가격 상승, 낮은 재고 수준 등으로 공급이 타이트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실적 기반은 유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중동 긴장이 재차 고조되면서 변수는 다시 확대되는 양상이다. 후티 반군 개입과 미국의 지상군 투입 가능성 등이 거론되며 국제유가는 다시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이날 아시아 시장이 개장한 직후,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 가격은 3.5% 오른 배럴당 103.13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도 2.98% 오르면서 배럴당 115달러를 넘어섰다. 원·달러 환율도 1500원대를 웃돌며 외환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가 상승이 달러 수요를 자극하고, 이는 환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재차 나타나는 모습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증시 버블 논쟁도 수면으로 떠올랐다. 일부 외국계 기관은 최근 국내 증시 흐름을 과거 금융위기 국면에서 나타났던 불안정한 패턴과 유사하다고 평가하며 과열 가능성을 경고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최근 보고서에서 국내 증시의 최근 흐름을 전형적인 버블 양상으로 평가했다. 지수가 단기간에 두 자릿수 급락 이후 곧바로 급반등하는 등 극단적인 변동성을 보이는 점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닷컴 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나타났던 불안정한 가격 움직임과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증시 환경도 우호적이지 않다. 미국 증시는 지정학적 긴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요 3대 지수가 일제히 하락 마감하며 약세 흐름을 이어갔다. 최근 5주 연속 하락세가 이어진 것으로, 인플레이션 기대 상승과 소비심리 둔화 등 거시 변수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수급 측면에서도 부담 요인이 누적되고 있다.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8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가며 누적 18조원 규모를 순매도했다. 외국인 지분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매도 강도와 함께 향후 수급 변화 속도에 대한 경계감도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주요 경제지표와 지정학 변수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ISM 제조업 지수와 고용 지표 발표, 미·이란 협상 관련 뉴스 흐름 등이 증시 방향성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특히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부각될 경우 변동성 확대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임정은 KB증권 연구원은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확산되는 국면인 만큼 주요 지표에 대한 증시 민감도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미-이란 협상 관련 소식도 시장 방향성에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돼, 전반적인 변동성 확대 국면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에너지안보 홀대한 대가 톡톡히 치른다 [미-이란 전쟁 한달]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한 달,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요동치면서 국내 에너지 정책도 다시 '비상 모드'에 들어갔다.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동반 상승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 비축유 방출 검토, 대체 물량 확보, 원전 재가동, 석탄발전 확대, 에너지 절약 대책까지 사실상 모든 대응 수단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위기가 단순한 외부 변수 충격이 아니라, 그동안 누적된 에너지 정책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정책 역량이 집중되는 사이 에너지 안보와 공급 안정성에 대한 대비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점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30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된 이후로 정부가 확보한 아랍에미리트 2400만배럴 원유를 제외하고 중동산 석유, 가스(LNG) 수급이 대부분 중단된 상태다. 다만 중동산 수입의존도가 70%인 원유는 국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반면, 수입의존도가 15%인 가스는 대체 수입선 확보를 통해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진 않고 있다. ◇수급 위기인데 최고가격 제한, 차량 운행 늘었다 석유시장은 대란 직전에 놓여 있다. 우선 기름값이 치솟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전쟁 전인 2월 27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격은 리터당 1693원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전쟁이 터지면서 가격은 급등해 3월 10일 1907원까지 올랐다. 13일 0시부터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되면서 가격은 안정세를 보여 26일 1819원으로 내렸지만, 2차 최고가격제가 시행된 이후인 29일 11시 현재 1862원으로 올랐다. 경유 평균가격도 2월 27일 1597원에서 3월 10일 1932원까지 올랐다가 이후 계속 하락해 26일 1816원을 기록한 뒤 29일 현재 1855원으로 오른 상태다. 그나마 이 가격은 정부의 유류세 인하, 기름값에 상한을 두는 최고가격제 영향으로 상승폭이 제한된 것이다. 이 대책이 없다면 실제 가격은 휘발유 2000원, 경유 2800원 수준까지 오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고도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전쟁 전 국내 석유비축량은 민간 9000만배럴, 정부 1억배럴이다.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으로는 208일분이지만, 지난해 국내 하루 소비량(255만배럴) 기준으로는 약 75일분에 그친다. 현재는 민간 재고부터 소진하고 있으며, 4월 중순부터는 정부 방출키로 한 2246만배럴을 방출할 예정이다. 그러나 가격 억제 정책은 소비 절감 유인을 소멸시켜 오히려 수급 위기를 부채질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 데이터포털에 따르면 서울톨게이트부터 신갈TG까지 통행량을 보면 2월 28일 9만8749대에서 3월 28일 9만9409대로 오히려 늘었다. 정부가 석유 소비를 낮추기 위해 차량 5부제를 도입했지만, 차량 2대 이상을 보유한 가구 수가 크게 늘어 실제 절감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고가격제로 정유사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져 이에 대한 정부의 손실보전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휘발유와 경유 소비량을 지난해 3월 수준으로 가정했을 때 정유사 손실액이 리터당 100원이라면 총 손실액은 약 3400억원이다. 현재 국제 경유가격이 2200원을 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유사 손실액은 5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중동 자본 지배받는 정유업계, 중동산 비중 70% 고착화 원인 이번 중동 사태는 우리나라의 석유 에너지 안보가 매우 취약한 상태임을 드러냈다. 국내 정유업계는 중동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것이 중동산 원유 수입비중이 70%로 고착화된 이유로 꼽힌다. 정유 설비도 중동산 원유에 최적화돼 있어 단기간 내 수입선을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비중동산 원유 수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지만, 중동 의존도는 전혀 줄지 않고 있다. 결국 중동 리스크가 발생할 때마다 가격과 수급이 동시에 흔들리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중동산 가스 수입의존도는 카타르 물량 15%이다. 특히 카타르는 LNG 생산시설을 이란군에 폭격 맞아 최대 5년간 공급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가스공사는 대체선 확보가 충분해 수급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유와 가스의 수입선 차이는 수급 리스크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단번에 보여주고 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비중동산 원유 수입 의무화 내지는 인센티브 확대, 석유 의무비축 강화, 바이오연료 사용 활성화, 전기 또는 LPG 등 수송연료 다양화 등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왕고래 시추비 1000억 아깝다는 李정부, 대가는 수조원 가장 확실한 에너지 안보는 국내에 석유, 가스전을 확보하는 것이고, 해외에도 우리 기업의 자산을 확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를 비롯해 역대 정부는 자원개발에 철저히 소홀했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은 대선 전 동해심해 가스전(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시추비 1000억원이면 인공지능을 위한 GPU(그래픽처리장치) 3000장을 확보할 수 있다며 예산 배정을 거절했다. 이후 글로벌 석유메이저인 영국 BP가 추가 시추를 해볼만 하다며 석유공사의 사업에 참여하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최종 승인권을 갖고 있는 산업통상부 장관이 이를 6개월째 보류하고 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석유가스 자원개발률은 2015년 16%에서 2023년에는 11%로 떨어졌다. 자원개발률은 한국 기업이 국내외에서 개발 및 생산으로 확보한 물량이 전체 수입물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 ◇원전 안전 규제 강화로 당장 가동 어려워 전력 믹스의 구조적 문제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LNG 발전 의존도가 1/3 수준으로 높은 상황에서 가격 변동성이 그대로 전력시장에 전이되고 있지만,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발전원은 충분하지 않다. 원전은 강화된 안전 규제와 장기간 정비 일정으로 즉각적인 가동 확대가 어려운 상황이며, 재생에너지는 간헐성으로 인해 단기 수급 대응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위기 상황에서 석탄과 LNG에 다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에너지 정책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단기적인 가격 통제와 수요 억제 정책만으로는 반복되는 위기를 막기 어렵고, 에너지 수입 구조와 전력 믹스를 포함한 시스템 전반의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는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가격 통제와 단기 처방에 의존하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며 “에너지 안보를 중심에 둔 정책 전환 없이는 같은 위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종전되면 괜찮다?”…국제유가 150달러 전망 나오는 이유는 [美·이란 전쟁 한달]

미국·이스라엘의 전격적인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한 달째를 맞은 가운데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시장이 이번 충돌에서 비롯되는 위험을 여전히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전쟁이 당장 끝나더라도 성장 둔화와 인플레이션 상승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롭 카피토 블랙록 회장은 26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금융 및 혁신 심포지엄'에서 “전쟁이 조만간 끝나더라도 성장률은 최대 2%포인트 하락할 수 있고 인플레이션은 이와 비슷한 폭으로 상승할 수 있다"며 “내일 당장 종전이 발표되더라도 공급망이 정상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러한 공급 차질이 일주일, 6개월, 1년 지속된다면 내가 투자한 기업들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라며 “사람들이 이러한 가능성을 외면한 채 낙관적인 결과를 전제로 가정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카피토 회장은 또 “과거에는 이런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단기채와 금을 사며 주식을 공매도하는 전략이 통했다"며 이번 전쟁에서 나타난 시장 반응의 불균형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실제로 미 뉴욕증시를 대표하는 S&P 500 지수는 이달 들어 약 4% 하락한 반면 대표적 안전자산인 국제금값은 13% 가량 급락했다. 포트폴리오 헤지 수단으로 꼽히는 미 국채 역시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로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달 27일 3.379%에서 현재 3.92%로 0.541%포인트 급등했다. 국채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글로벌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확산되고 있다.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의 짐 젤터 회장은 같은 행사에서 “최근 몇 년간 미국 경제를 지탱해 온 소비가 이미 약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올해 초 두 달 동안 소비자 신뢰가 약화되고 있었는데 유가 상승은 소비자 지출 여력에 추가적인 부담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충격은 금리 쇼크라기보다는 세계 최대 경제에서의 소비 심리 위축에 따른 신뢰 쇼크"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전날 보고서를 통해 브렌트유 가격이 3월 평균 배럴당 105달러, 4월에는 115달러까지 상승한 뒤 연말에는 80달러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약 6주간 공급 차질이 발생한다는 가정을 반영한 것이다. 이 같은 유가 전망 상향을 반영해 골드만삭스는 올해 연말 헤드라인 개인소비지출(PCE) 기준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0.2%포인트 상향한 3.1%로 제시했고,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2.1%로 낮췄다. 또한 경제가 침체로 빠질 확률이 30%로 5%포인트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세금 환급 규모가 지난해보다 12%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다만 이는 당초 예상했던 15~25% 증가에는 못 미치는 수준으로, 이에 따라 올해 소비지출 증가율 전망을 2%에서 1.7%로 낮췄다. 모건스탠리의 아루니마 신하 이코노미스트는 “유가 충격이 기대했던 소비 증가 효과를 사실상 대부분 상쇄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법으로 환급되는 세금이 충격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줬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에너지 비용 급등에 의해 사실상 상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이미 휘발유와 항공권 가격을 통해 전쟁의 영향을 체감하고 있다.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휘발유 가격은 이달 들어 30% 이상 급등해 갤런당(약 3.78ℓ) 약 4달러 수준에 도달했다. 이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여기에 전쟁으로 촉발된 비료 부족 현상이 심화되면서 식품 가격 상승 압력도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일반 휘발유보다 더 빠르게 오른 디젤 가격은 물류비 상승을 자극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전반적인 소비재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BMO 캐피탈 마켓의 제니퍼 리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오늘 당장 갈등이 해결되더라도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20% 확률이 현실로”…오판이 키운 장기戰, 충격은 이제 시작 [美·이란 전쟁 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對)이란 군사작전인 '장대한 분노(Epic Fury)'가 시작된 지 한 달.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은 당초 제한적 군사 작전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글로벌 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미국의 압도적 화력 공세에도 이란은 비대칭 전력을 활용해 세계 에너지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방식으로 버티기에 들어간 상태다. 이에 전쟁 초기 '일시적 충격'에 대한 기대는 무너졌고, 에너지·물류·금융시장 전반에 걸친 파급 효과가 각국 통화정책까지 흔들며 구조적 리스크로 번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상과 다르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쉽게 발을 뺄 수 없게 된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이번 협상이 극적인 타협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될지는 중동 정세의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한달 이내 끝난다"…전문가들의 오판 미국 국방부가 명명한 '장대한 분노'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달 28일 이란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작전을 단행하면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8분짜리 영상에서 “조금 전 미군은 이란 내 중대한 전투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 입장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는 이란이 굴복하고 '항복' 수준으로 미국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전문가들도 군사 충돌이 빠르게 완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일 “유가 전망에 대한 리스크는 상방으로 치우쳐 있지만, 역사적으로 지정학적 충격이나 일시적 공급 차질로 인해 급등한 유가는 단기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FGE의 페레이둔 페샤라키 회장은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이란 정권을 “종이 호랑이"로 비유하며 전쟁이 4주 안에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씨티그룹은 중동 에너지 인프라가 피해를 입어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을 확률이 20%에 불과하다고 전망했다. 개전 직후 이란 지도부가 대거 제거되자 트럼프 대통령도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영국 데일리메일 인터뷰에서 “이란이 큰 나라인 만큼 4주 정도, 아니면 그보다 짧게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란은 주변 걸프국을 무차별 타격하는 이른바 '물귀신 작전'을 펼치며 호르무즈 해협까지 봉쇄에 나서자 상황이 점차 반전되기 시작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버티기를 택했고, 전쟁은 장기전 양상으로 번졌다. 중동 주요 에너지 시설까지 공격 대상이 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도 크게 흔들렸다. 그 결과 국제유가는 전쟁 1주차부터 급격히 치솟았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지난 2일부터 6일까지 35.63% 폭등했는데, 이는 집계가 시작된 1983년 이후 최대 주간 상승률이다. 글로벌 벤치마크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20달러 수준까지 도달한 뒤 소폭 진정됐지만 여전히 100달러선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가스 시장의 타격은 더욱 심각하다.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시설인 카타르 라스라판 단지가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카타르에너지는 이번 공격으로 LNG 수출 용량의 17%가 손상됐으며, 복구에는 3~5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로이터통신은 카타르가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과의 LNG 장기 공급 계약에 대해 불가항력을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란 전쟁이 당장 끝난다고 가정해도 에너지 시장이 정상화하기까지 4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분석했다. ◇ “이란 정권 붕괴된다"…트럼프·네타냐후의 오판 이번 전쟁이 처음부터 잘못된 정보와 판단에 기반해 시작됐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대이란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다비드 바르니아 국장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전쟁 초기에 이란 지도부를 제거하고 정권 교체를 유도하면 대규모 봉기가 발생해 전쟁을 신속하게 끝낼 수 있다고 보고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 같은 내용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시작 후 첫 연설에서 이란인들에게 폭격으로부터 대피하라고 당부하면서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이란 내에서 대규모 봉기는 발생하지 않았다. 미국과 이스라엘 모두 이란 정부가 일정 부분 약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건재한 것으로 보고 있다. NYT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대규모 반란을 유도할 수 있다는 판단 자체가 이번 전쟁 전략의 근본적 결함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란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 수시로 바뀌는 점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개전 초기에는 핵무기 개발 저지와 미사일 역량 파괴, 정권 붕괴 등이 목표로 제시됐지만, 최근에는 호르무즈 해협 확보가 새로운 우선 목표로 부상했다. 해협 통제권을 확보해 국제유가를 안정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승리를 선언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최근 중동 지역에 미군 병력이 증파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이어갈 경우 이란 발전소를 초토화하겠다는 '48시간 최후통첩'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이란과의 합의는 무조건 항복 외에는 없다"고 주장했지만, 최근에는 적대행위 종식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히는 등 입장을 바꾸고 있다. 여기에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의 군함 파견을 요구하는가 하면 러시아·이란산 원유 수출에 대한 제재를 일부 완화하는 등 예상 밖의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AP통신은 이를 두고 “명확한 출구 없이 전쟁에 돌입한 뒤 해답을 찾으려는 변덕스러운 전략"이라고 꼬집었다. ◇ 확전이냐 협상이냐…전쟁 중대 기로 당장의 관건은 이란 발전소 공격 유예 시한이 만료되는 27일 이후 미국의 선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결과에 따라 군사행동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동시에 사상 미군 정예부대의 투입 준비가 완료되는 등 양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00명 이상의 육군 82공수사단 병력의 중동 투입을 승인했으며, 주일미군 소속 해병대 병력 약 2500명도 27일께 중동에 도착할 예정이다. 미국은 이와 별도로 캘리포니아 주둔 해병원정대와 군함 3척도 추가로 파견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지상군이 이란의 석유 수출 중심지인 하르그섬을 점령하거나, 농축 우라늄 확보 작전을 지원하고, 이란 해안을 장악해 호르무즈 해협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시나리오를 거론하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국방 전략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마이클 오핸론은 “현재로서는 모든 방안의 성공 확률이 50%보다 낮다고 생각하지만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며 “각각의 방안 모두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란은 미국과 협상 가능성을 부인하면서도 완전히 닫아두지 않은 모양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국영 TV와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과 진행 중인 대화는 전혀 없다"면서도 “이란 지도부가 중재국을 통해 미국이 제시한 평화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한 달째 접어든 美·이란 전쟁…충격은 경제 전반으로 확산 지난달 28일 시작된 전쟁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그 여파는 군사 영역을 넘어 글로벌 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전쟁 초기에는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충격이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최근에는 물가와 금리, 소비까지 동시에 압박하는 복합 위기로 번지는 양상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수개월에 걸쳐 공급망에 영향을 미쳤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원유, 가스, 알루미늄, 비료, 화학제품 등의 가격이 동시에 급등하면서 제조업, 농업, 물류 등 실물경제 전반에 즉각적인 부담을 주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짚었다. 컨설팅업체 RSM의 삭슨 모즐리 레저 부문 책임자는 “2022년 에너지 위기는 소비자 신뢰가 빠르게 추락하고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현재 상황이 이어질 경우 식품·물류·유틸리티 전반에서 비용 상승 압력이 확대돼 올해 하반기 수요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실물경제 지표에서도 전쟁 충격이 확인되고 있다. S&P 글로벌에 따르면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합산한 3월 종합 PMI는 호주, 일본, 인도, 프랑스, 독일, 유로존, 영국, 미국 등 주요국에서 모두 하락했다. 미국과 유로존 PMI는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고, 호주는 전달 52.4에서 47.0으로 급락하며 경기 수축 국면에 진입했다. 인도의 제조업 PMI도 56.9에서 53.8로 떨어져 202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의 3월 종합 PMI는 51.4로 지난해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내려왔다. PMI는 50을 기준으로 웃돌면 경기 확장을, 밑돌면 경기 위축을 의미한다. 반면 물가 지표는 급등했다. 독일의 투입 비용 상승률은 3년여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높아졌고, 영국 제조업 투입 지표는 1992년 이후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미국에서도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투입 비용이 각각 7개월,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업들이 비용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면서 판매 가격 상승률도 3년 반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제이미 러시 글로벌 이코노믹스 책임자는 “이란 전쟁 이전에는 세계 경제가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PMI 지표는 유가 상승, 금융 여건 긴축, 심리 위축이 결합되면서 회복세가 꺾일 위험이 커졌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과 물가 상승 압력은 각국 중앙은행이 긴축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을 높이며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이르면 다음 달 금리 인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금리 인하 기대가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수주간 지속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경우 유럽과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약 0.5%포인트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은 1%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역시 인플레이션이 전쟁 이전 대비 0.7%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전쟁이 3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유가는 17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으며,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심화되는 충격이 배가될 수 있다고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분석했다. 러시 책임자는 “향후 전망을 좌우할 핵심 변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기간과 중앙은행의 대응"이라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트럼프發 증시 상승은 매도?”…美·이란 휴전 기대감 찜찜한 이유 [이슈+]

이란을 향해 '48시간 최후통첩'을 날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돌연 종전 기대감을 부각시키면서 투자자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협상 타결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데다, 중동 지역에 대한 병력 증강까지 이어지면서 전쟁 향방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어서다. ◇ 협상 기대감 키우는 트럼프…“이란, 선물 줬다" 로이터통신,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이란과) 협상 중이다"라며 J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티브 윗코프 중동특사, 재러드 쿠슈너 등이 협상에 관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란이 협상에서 선의의 표시로 “막대한 금액의 가치가 있는" 선물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그들은 우리와 대화하고 있고, 이성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며 “우리는 실제로 적절한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으며, 그들이 합의를 얼마나 원하는지 당신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48시간 이내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이란 발전시설을 초토화하겠다"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러나 전날에는 협상에 진전이 있었다며 이란에 대한 공격을 5일간 유예했다. 미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는 미국과 중동 지역 중재국들이 이르면 26일 이란과 고위급 종전 협상 개최를 논의하고 있으나, 현재 이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미국은 파키스탄을 통해 이란 측에 15개 항으로 구성된 요구안을 전달했으며, 이란도 이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 매체 채널12는 미국이 해당 안건 논의를 위해 한 달간 휴전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채널12와 CNN 등에 따르면 이란 핵 프로그램 폐기, 친(親)이란 대리세력 지원 중단, 호르무즈 해협 개방, 이스라엘 국가 인정 등이 요구안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 종전 기대감에 증시 환호…국제유가 폭락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기대감을 강조하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증시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국제유가는 급락세를 보였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25일 한국시간 오후 12시 37분 기준, 뉴욕증시 3대 지수 선물은 모두 0.6%대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MSCI 아시아태평양 지수도 2% 가까이 올랐다.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68% 오른 5647.47를 기록했고, 일본 닛케이225지수도 2.54% 상승한 5만3580.90을 나타냈다. 대만 가권지수는 2% 이상 상승했으며 홍콩 항셍지수(+0.1%), 중국 상해종합지수(+0.88%), 호주 S&P/ASX지수(+1.65%) 등도 일제히 오름세를 보였다. 반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각각 3.53%, 4.14% 하락한 배럴당 89.06달러, 96.10달러를 기록했다. 유가 하락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완화되면서 국제 금 선물 가격은 3.82% 상승한 온스당 4603.67달러를 나타냈고,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국 2년물 국채금리는 3.869% 수준으로 하락했다. ◇ 말과 다른 현실…美, 최정예 부대 중동 급파 다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시장 반응이 과도한 낙관에 기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달리 미국 정부는 중동 지역에 대한 병력 증강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지상전 확대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NBC는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 육군 제82공수사단 소속 1000명 이상의 병력 투입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방부가 3000명 규모의 전투부대를 중동으로 보낼 계획이라고 전한 바 있다. 현재 2개 해병원정대 소속 약 5000명 병력이 군함을 통해 중동으로 이동 중이며, 여기에 82공수사단 병력까지 추가 투입될 예정이다. 82공수사단은 24시간 내 전 세계 어디든 배치 가능한 최정예 부대로, 공수 작전을 통해 비행장 확보 등 고위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중동 지역 긴장 역시 완화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NBC에 따르면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25일 “IDF는 (이란) 인프라를 겨냥한 공습을 시작했다"고 밝혔으며, 이어 “이란에서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발사된 미사일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산유국들도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사우디는 자국 인프라가 공격받을 경우 이란을 타격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미국에 전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쟁 지속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 “시장 순진하다"…관건은? 블룸버그의 가필드 레이놀즈 전략가는 “투자자들은 잠재적 평화 협상에 대한 미국의 발언에 주목하며 주식과 채권을 끌어올리고 유가를 끌어내리고 있지만, 이는 취약한 전략일 수 있다"며 “전쟁의 주요 당사자인 미국·이란·이스라엘의 실제 행동은 어떤 긴장 완화도 보여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JP모건 수석 전략가 출신 마르코 콜라노비치도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가 이란 제재를 모두 해제하고, 휴전은 트윗하는 정부가 아닌 다른 이란 정부가 보장하며, 미 해병대와 공수부대는 단지 관광을 가는 것인가"라며 “어쩌면 시장이 다소 순진한 것일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협상 자체에 대한 불확실성도 여전히 크다. 블룸버그는 “누가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지, 협상 구조와 합의 윤곽이 무엇인지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요구안을 이란이 수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가디언은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15개 항'이 지난해 5월 핵 협상 당시 제시됐던 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협상안에는 이란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 다수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관건은 호르무즈 해협의 실제 재개방 여부다. 이란은 현재 해당 해협을 장악하며 통제력을 유지하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란은 일부 상선에 대해 통행료를 부과하기 시작했으며, 적대적이지 않은 외국 선박에 대해서는 자국 조건을 따르는 경우 통과를 허용하고 있다. 밀러 타박의 매트 말리는 “결국 모든 것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여부에 달려 있다"며 “협상에서 '좋은 진전'이 언급되더라도 해협이 여전히 제한된 상태라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맥쿼리그룹의 티에리 위즈만은 “미국이 해협을 확보하거나 협상에서 더 큰 지렛대를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낙관론은 여전히 잘못된 판단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美의 진짜 의도…“이란 전쟁은 에너지 패권 장악 위한 조치”

이란 전쟁은 미국의 글로벌 에너지 시장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리스크를 뒤흔들어 세계가 안정적 수급에 집중하게 하고, 특히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을 미국 내지는 미국이 관리하는 지역으로 구매선을 대체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23일(현지시간) 미국 휴스턴에서 S&P글로벌이 개최한 에너지 컨퍼런스 'CERAWeek'에서 이란 전쟁과 관련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 정권을 글로벌 에너지 시장 불안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했다. 특히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시장을 교란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라이트 장관은 “이란 정권은 에너지 시장을 교란하고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왔다. 또한 핵심 목표가 핵무기 개발인 만큼 이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중동 전쟁으로) 단기적 혼란은 있겠지만 수십 년에 걸친 문제를 해결하고 더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은 3주째를 넘어서고 있다. 쉽게 무너질 줄 알았던 이란은 세계로 하여금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원유, 가스 물동량의 20~25%가 드나드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국제 석유, 가스 가격을 급등시키고 있다.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곳은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지역이며, 그 중에서도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국제유가만 봐도 24일 기준 배럴당 미국 91.6달러(WTI), 유럽 103.9달러(브렌트유)인 반면 아시아는 135달러(머반유)~169달러(두바이유)로 훨씬 높다. 이제 미국은 대놓고 요구한다. 수급 리스크가 큰 중동산 대신 미국산 석유, 가스를 수입하라고 말이다. 미국의 '에너지 차르'로 불리는 더그 버검 국가에너지지배위원회(NEDC) 위원장 겸 내무부장관은 지난 21일 자신의 X 계정에 “미국의 에너지 지배 전략은 이 순간(호르무즈해협 봉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의 생산을 늘려 기존 및 새로운 동맹국과 시장에 더 많은 공급을 하려는 것"이라는 X의 게시물을 공유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미국이 이란을 공습한 결과물이다. 결국 미국의 이란 공격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에너지 수급 위기를 맞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산 에너지를 수입하도록 유도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은 지난해 원유 생산량이 하루 1300만배럴로 1위이며, 석유 수출량은 하루 약 400만배럴로 1위 사우디의 435만배럴보다 약간 적은 수준이다. 미국의 지난해 LNG 수출량은 1억1100만톤으로 세계 1위이다. 미국 본토의 석유 생산은 정체된 상태지만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이 미치는 베네수엘라, 수리남, 가이아나 등 중남미 석유는 여전히 풍부하다. 또한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에만 연간 5800만톤의 LNG 프로젝트를 승인했으며 추가로 2000만톤 규모의 알래스카 LNG도 추진되고 있다. 투자 자금도 손쉽게 마련해 놓은 상태다. 미국은 한국, 일본과의 관세협상을 통해 각각 3500억달러, 5500억달러 대미 투자를 확약 받았다. 대부분이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한국과 일본은 미국 에너지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도 하고 그 물량을 수입도 하게 되는 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미국의 에너지 패권 장악 전략은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에 기반한다. 미국발 화석연료 에너지 리스크 확대는 상대적으로 기후위기 이슈를 축소시키고 있다. 라이트 장관은 “전력을 더 비싸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선택은 옳지 않다. 핵심은 실용주의"라며 “조기 폐쇄 예정이던 17기가와트(GW) 규모의 석탄발전소 가동을 유지했는데, 중단했다면 대규모 정전과 수백 명의 사망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최근 미국의 기후 정책 기조 변화와 맞닿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파리기후협약,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녹색기후기금 등 여러 기후 국제기구에서 모두 탈퇴했다. 이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 중심 정책에서 에너지 공급 확대 중심으로 방향을 확실히 하고 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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