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에 여객기들이 서있는 모습. 사진=박규빈 기자
국내 항공업계가 거시경제 지표의 극단적 변동성 속에서 심각한 실적 양극화를 겪고 있다. 1년 8개월 만에 100엔당 800원대로 진입한 '슈퍼 엔저' 현상으로 일본 노선 여객이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저비용 항공사(LCC)들은 달러 강세 현상과 고유가의 이중고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규모 적자 위기에 처했다. 반면 화물과 장거리 노선으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 대형 항공사(FSC)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해 항공 산업의 구조적 재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한국항공협회 내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12개 주요 항공사의 2026년 2분기 합산 영업손실 추정치는 7613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글로벌 항공망이 사실상 마비됐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연간 적자 규모에 맞먹는 수치다.
이러한 무더기 '어닝 쇼크'의 핵심 원인은 글로벌 통화 비동조화에 따른 '환율 비대칭성'에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매파적 금리 정책과 일본은행(BOJ)의 완화 정책이 엇갈리며 달러·엔 환율은 장중 163.69엔을 돌파해 40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다. 반면 SK하이닉스 ADR 상장 등 수급 요인으로 원·달러 환율이 최근 하락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450~1500원대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항공사는 산업 특성상 △항공기 리스료 △엔진 정비비 △항공유 등 핵심 영업 비용의 대부분을 달러로 지불한다. 하지만 단거리 노선에 집중된 LCC들의 수익 원천은 원화와 가치가 사상 최저점으로 하락한 엔화다. 비행기를 만석으로 띄워 원화와 엔화를 벌어들여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달러로 원가를 결제하는 순간 막대한 외화 환산 손실과 환차손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 여객 수요 '초양극화'…일본 쏠림 속 LCC 출혈 경쟁 심화
거시 경제의 불안정성은 여객 수요의 극단적 편중을 야기했다. 국토교통부 항공 통계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전체 국제선 여객은 5048만7371명으로 반기 기준 사상 최초로 5000만 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상반기 여객 증가분 466만 명 중 92.3%가 일본과 중국 두 국가에 집중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엔저가 가져온 체류비 절감 효과에 힘입어 상반기 일본 노선 탑승객은 전년 동기 대비 19.1% 폭증한 1592만7816명을 기록했다. 국제선 승객 3명 중 1명이 일본행을 택한 셈이다. 반면 전통적 LCC 수익원이었던 동남아 노선은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온라인 사기(스캠) 등 현지 치안 불안이 겹치며 캄보디아(-35.4%), 라오스(-24.4%), 말레이시아(-10.9%), 태국(-9.5%), 베트남(-3.6%) 등 주요 노선이 일제히 역성장했다.
살길이 근거리 노선밖에 남지 않은 LCC들은 앞다투어 하코다테·고베·삿포로 등 일본 지방 소도시까지 한꺼번에 기재를 투입하며 좌석 공급 폭탄을 쏟아냈다. 그 결과 한정된 파이를 둘러싼 '박리다매'식 출혈 경쟁이 벌어지며 운임 단가의 하방이 넓어졌다.
◇ 엇갈린 명암…장거리·화물 '자연 헤지' 내세운 대한항공 사상 최대 실적
단거리 노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LCC들은 거시 경제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업계 1위 제주항공은 2분기 932억 원 규모의 막대한 별도 기준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추정된다. 직전 분기 양호한 실적을 거뒀던 대한항공 자회사 진에어는 481억 원에 이르는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에어부산은 355억 원 영업손실을 확정했다. 장거리 특화 하이브리드 항공사를 표방했던 에어프레미아는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져 1100억 원 수준의 유상 증자를 실시한다. 에어로케이와 파라타항공 등 신생 LCC들도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고강도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LCC 관계자는 “엔화 약세 덕분에 수요 자체는 늘었지만 달러 지출은 점점 커져 회사 경영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반면 업계 맏형인 대한항공은 재무 방어력을 과시하며 실적 양극화의 정점을 찍었다. 대한항공의 2분기 잠정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조340억 원 급증한 5조199억 원으로 역대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유가 상승 압박 속에서도 영업이익 2618억 원의 굳건한 흑자를 수성해 냈다.
생사를 가른 것은 포트폴리오의 질적 차이다. 대한항공은 진입 장벽이 높은 미주, 유럽 등 장거리 노선에서 글로벌 환승 수요와 비즈니스석 등 프리미엄 상용 수요를 선점하며 강력한 가격 방어력을 유지했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인 인공 지능(AI) 인프라 투자 광풍과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발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의 초과 물량을 싹쓸이한 화물 사업 부문이 2분기에만 1조5419억 원의 매출을 냈다. 달러로 책정되고 결제되는 화물 운임이 리스료 등으로 빠져나가는 달러 비용을 상쇄해 낸 것이다.
◇ “엔저는 단기 진통제"…메가 LCC 출범 등 고강도 체질 개선 시급
전문가들은 800원대 초엔저 현상이 LCC들의 자금줄이 마르는 것을 당장 막아주는 일시적인 '진통제' 역할에 그칠 뿐, 외화 부채 비중이 높은 재무 구조를 치료할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원·달러 환율이 안정화되지 않는 한 자력으로 수익성 악화의 깊은 터널을 온전히 벗어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엔화 가치 폭락은 일본인의 한국 방문(인바운드) 수요를 극단적으로 억제시켜 항공사들이 텅 빈 귀국편을 울며 겨자 먹기로 운항해야 하는 역효과까지 낳고 있다.
때문에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의미한 단가 인하와 소모적인 외형 확장 경쟁을 지양하고 구조적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가장 시급하고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과 맞물려 추진되는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의 '메가 LCC' 통합 출범이 꼽힌다. 내년 1분기 중 완료를 목표로 3사를 단일 법인으로 묶어 60대 이상의 매머드급 기단을 확보하고, 중복 노선 통폐합·정비 인프라 공동 구매망을 단일화해 달러 지출 고정비 규모를 획기적으로 낮춰야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의 신규 운수권 배분 정책을 바탕으로 중견 LCC들의 장거리 노선 다각화 촉진과 함께 한계 상황에 다다른 부실 LCC들에 대해서는 인위적 연명을 멈추고 자연스러운 시장 퇴출과 인수·합병(M&A)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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