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美 마두로 축출, 중국 대만 침공 명분?…손익 따져보니

미국 정부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축출을 선례로 삼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중국은 필요하다면 무력을 통해서라도 대만을 편입시키겠다는 입장을 반복적으로 강조해온 데다, 대만 문제를 '자국 영토 문제'로 규정해 국제법 논란의 여지가 크지 않다고 간주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전략적 초점을 '앞마당'으로 여기는 서반구로 이동시키면서 대중(對中) 견제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단, 경제적·외교적 측면을 감안했을 때 중국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만을 침공할 경우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통 자오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최근 행동을 국제사회가 용인하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은 대만에 대한 행동도 세계가 훨씬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의 제임스 차 교수도 “현재 국제 환경 속에서 미국이 해외 지도자를 납치하는 것은 '힘이 곧 정의'라는 중국의 인식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도 미국의 이번 군사 작전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국제적 '분쟁 억제 규범'이 취약해질 수 있다며 “공격적 군사개입이 용인된다면 대만 등 다른 곳에서도 그러한 개입이 더욱 쉽게 가능해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2024년 미국 대선을 계기로 큰 주목을 받았던 세계 최대 베팅사이트 폴리마켓에서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에 대한 베팅이 최근 소폭 증가했다. '2026년 말까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까'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에 대한 베팅이 지난 2일 최저치인 9%로 떨어졌지만 현재 13%로 반등했다.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선 지난 3일 밤 미국의 마두로 체포가 실시간 1위에 올랐고, 이 주제는 약 4억4000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앞으로 대만을 되찾는 데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자", “미국은 국제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데 왜 우리가 신경 써야 하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 미국 정부가 '돈로주의'(19세기 미 고립주의를 대표하는 먼로주의에 도널드 트럼프를 더한 합성어)로 불리는 트럼프식 신고립주의 기조 속에서 서반구 패권 강화에 나서고 있는 점도 대중 견제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서반구에서 미국의 지배력은 다시는 의문시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행정부가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해 미국의 군사력을 사용한 것은 서반구로의 '하드 파워' 전환을 확고한 것"이라며 “이는 중국이 제약 없이 부상할 수 있다는 우려를 미 국방부 내부에서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항공모함 제럴드 R. 포드를 포함해 12척 이상의 함정이 지난해 10월부터 카리브해에 배치되어 있다. 이 항공모함은 원래 지중해에서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고 함정 대부분은 유럽과 태평양 지역에서 동원됐다. 이로 인해 아시아, 유럽 등 다른 지역에서 전력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블룸버그도 오피니언을 통해 “미국이 베네수엘라 문제에 집중할 경우 장기적 지정학적 판도는 중국에 유리하게 기울 수 있다"며 “중국이 대만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에 압박을 강화할 시간과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반구 패권을 강화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는 최근 중국의 대만 포위 훈련에서도 드러났다. 중국은 2022년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지금까지 대만 포위 훈련을 여섯 차례 실시했다. 중국은 매 훈련마다 서방의 비판을 무시해왔지만 이번 훈련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이 특히 늦었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다만 중국이 실제로 대만을 무력 침공할 경우 그에 따른 대가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장 큰 위험은 서방의 제재다. 중국이 대만을 점령하거나 봉쇄할 경우 미국과 유럽 등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와 유사한 수준의 광범위한 경제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부동산 침체로 이미 휘청이는 중국 경제에 추가적인 충격이 될 수 있다. 대만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미국의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출 봉쇄는 최대 구매국인 중국에 국한된 타격이지만, 첨단 반도체 공급 차질은 글로벌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쳐 국제사회의 훨씬 강한 반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중국군은 아직 대규모 실전 전투 경험이 없으며, 미국의 주요 동맹인 일본·호주·한국 등과의 대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으로 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다. 외교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사태를 계기로 중국이 구축한 '평화로운 국가'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어서다. ABC방송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5일 베이징에서 미할 마틴 아일랜드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첫 공개적 입장을 냈다. 시 주석은 “오늘날 세계는 혼란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일방적이고 패권적 괴롭힘이 국제 질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모든 국가는 다른 나라 국민들이 독립적으로 선택한 발전 경로를 존중하고 국제법과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을 준수해야 하며 주요 강대국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중국과 아일랜드를 두고 “평화를 사랑하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국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중국 싱크탱크 중국세계화센터(CCG)의 빅터 가오 부소장은 “중국은 대만과의 통일에 대해 나름의 일정과 논리, 그리고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며 “트럼프의 행동에 휘둘리기보다는 자국의 속도와 논리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이슈+] 2026년 中 경제, 싹 달라진다…‘성장판 교체·머니무브’

2026년 중국 경제와 증시는 과거 부동산 의존형 모델에서 벗어나, 제조업 고도화와 기술 자립 전략이 중심축으로 공고해지는 시점을 맞을 전망이다. 15차 5개년 계획(15.5 계획)의 첫해를 맞이한 만큼, 산업 고도화가 정책 구호를 넘어 실질적인 이익 구조 변화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다. 저금리와 부동산 침체 속에서 갈 곳을 잃은 가계 자산의 증시 유입, 이른바 '차이나 머니무브'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가 바라보는 2026년 중국의 핵심 변화는 정부의 단순한 경기 부양 여부가 아니다. 부동산 중심의 성장 모델이 사실상 종료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제조업 고도화와 기술 자립 전략이 중국 성장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는 흐름이 공고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하나증권은 2026년 중국 주식 투자를 '성장모델 전환의 성과를 가격에 반영하는 국면'으로 규정했다. 지난해부터 중국 증시는 탈부동산과 제조업 고도화, 해외 진출과 수출 경쟁력, 인공지능(AI)·테크 부문의 구조적 성장을 단계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실제 상장기업의 이익 구조는 빠르게 바뀌고 있다. 테크와 첨단 제조업의 매출 비중은 2020년 각각 10%에서 2025년 20%로 확대됐고, 순이익 비중은 25%까지 상승했다. 수출·해외 진출·AI·친환경으로 연결되는 신흥 제조업의 순이익 비중은 38%에 달한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15.5 경제계획이 있다. 15.5 경제계획으로 세 번째 전환기인 '첨단 제조 국산화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게 국내 증권가 중론이다. 앞서 중국은 개혁개방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거치며 두 차례 고성장 사이클을 마무리했다. 현재는 반도체와 항공우주, 로봇 등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기업공개(IPO) 확대에 역량을 쏟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자본 조달을 넘어 증시 구조 자체를 바꾸는 수단으로 해석된다. 삼성증권은 15.5 계획을 “산업 고도화를 위한 정책 모멘텀이 강하게 작동하는 구간"으로 진단했다. 성장률 자체는 둔화되지만, 하향 리스크는 과거보다 크게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주택시장 부진과 제조업 투자 둔화에도 불구하고 미·중 무역분쟁의 완화, 제조업 공급 과잉에 대한 정부 관리 강화가 하방을 지지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삼성증권은 2026년 중국 성장률을 4.3%로 제시하며, 하향보다 상향 리스크가 더 크다고 평가했다. 전종규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두 차례 고성장 국면을 지나 현재 세 번째 전환기에 진입했다"며 “15.5 경제규획의 정책 목표는 산업 고도화이며, 2026~2027년은 정책 모멘텀이 강하게 작동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정책의 방향성도 분명하다. 소비 부문에서는 국가보조금이 연장되며 구조가 조정됐다. 스마트 제품을 중심으로 지원 대상이 재편되고, 재화 소비에서 서비스 소비로 정책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도이치뱅크는 올해에도 소비가 중국 성장의 핵심 엔진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8%포인트를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부동산은 반등의 주체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 대상이다. 2026년부터 주택 보유 기간에 따른 부가가치세 완화가 시행되지만, 이는 가격 상승을 유도하기보다는 거래 비용을 낮춰 경착륙을 방지하는 성격이 강하다. 부동산이 차지하던 성장의 자리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증권가의 공통된 시각이다. 성장판 교체와 함께 주목되는 또 하나의 변화는 자금의 이동 방향이다. 저금리 기조와 장기화된 부동산 침체는 중국 가계 자산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예금과 부동산에 머물던 자금이 채권과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증시는 구조적인 유동성 유입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증권은 이를 '차이나 머니무브'로 규정했다. 역사적 초저금리와 부동산 장기 침체로 갈 곳을 잃은 가계 자산이 증시로 이동하고, 외국인 자금 역시 홍콩 시장을 중심으로 재유입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15.5 경제규획이 시작되면서 구조 개혁의 성과가 주식시장 상승 동력으로 작동할 가능성도 제시됐다. 지수 측면에서 삼성증권은 2026년 상해지수 밴드를 3600~4500pt, 홍콩 H지수는 8500~12000pt로 제시했다. 본토 증시는 밸류에이션 매력이 낮아진 반면, 홍콩 H지수는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 기준 14배로 글로벌 대비 할인 구간에 머물러 있다. 이 때문에 자금 유입의 중심은 홍콩과 차이나 테크로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다만 모든 환경이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외생 변수는 비용 측면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대신증권은 최근 베네수엘라 정세 불안을 글로벌 유가보다 중국 원가 구조의 리스크로 해석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대폭 할인된 가격에 수입해온 중국 산둥 지역 민간 정유사(Teapot)들의 조달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Teapot 기업들은 한국 증시에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처럼 지수 방향성을 직접 좌우하는 대표 종목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 기업이 처한 위기는 단순한 업종 이슈를 넘어, 중국 실물 경제의 원가 구조와 물가 흐름에 직결되는 변수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원유 조달 비용 상승이 정유·화학을 거쳐 제조업 전반으로 전가될 경우, 이는 기업 이익률과 소비 여건에 영향을 미치며 증시 전반의 심리에도 간접적인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량은 글로벌 공급의 1% 미만으로 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도 “이번 사태로 손실이 불가피한 대상은 중국,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통제권이 흔들리면서 중국 Teapot 기업들이 저가로 원유를 조달하던 구조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가능성과 대러 제재 해제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중국의 원유 수입 비용은 중장기적으로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부연이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이슈+] 美 마두로 축출, 국제유가 파장 적을듯…내년부터 추가 하락 전망도

미국이 군사작전을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전격 축출하면서 국제유가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글로벌 원유시장이 이미 과잉 공급 국면에 접어든 데다, 베네수엘라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제한적인 만큼 유가에 미치는 직접적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이 중장기적으로 회복될 경우 유가 하방 압력이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마두로 대통령의 체포가 글로벌 원유시장에 미치는 단기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분석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창립국인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다. 미 에너지정보청(EIA)는 베네수엘라의 확인 매장량이 3030억 배럴로 전 세계의 약 17%를 차지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은 1990년 후반대 하루 350만배럴로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낙후된 인프라와 미국 정부의 제제 등으로 현재는 전 세계 생산량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베네수엘라산 원유는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돼 왔지만 미국 정부가 해상 봉쇄에 나서면서 이달 1일부터 사실상 수출이 중단됐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이 여파로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 PDVSA는 일부 합작법인에 원유 생산 감축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원유에 대한 금수 조치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만큼 단기적으로 베네수엘라가 원유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제한될 전망이다. 글로벌 원유시장이 과잉공급 국면에 접어든 것도 유가 상승의 압박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달 발표한 월간 보고서에서 올해 글로벌 원유 공급이 수요를 하루 384만배럴 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11월 전망치(409만배럴 초과)보다는 낮아졌지만, 세계 원유 수요의 거의 4%에 가까운 규모다. 여기에 OPEC과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는 이날 회의에서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기 위해 올 1~3월 증산을 일시 중단하기로 한 결정을 이어가기로 합의했다. OPEC+이 다시 감산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으로 전문가들은 원유 시장의 과잉공급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을 유지하고 있다. OPEC+의 주요 8개국은 하루 220만 배럴 감산분을 지난해 9월까지 모두 되돌렸고 165만 배럴의 또 다른 감산분도 지난해 10~12월 매달 하루 13만7000배럴씩 늘렸다. 캐피탈 이코노믹스의 닐 시어링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투자노트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베네수엘라의 생산 차질은 다른 지역에서의 공급 증가로 상쇄될 수 있다"며 “글로벌 원유 공급이 향후 1년에 걸쳐 더 늘어나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삭소뱅크의 올레 한센 원자재 리서치 총괄 역시 “베네수엘라와 이란과 관련된 지정학적 갈등과 공급 차질 리스크로 유가가 소폭 오를 수도 있겠지만 글로벌 원유공급이 넘쳐 당분간은 상승 리스크가 제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베네수엘라 산유량이 중장기적으로 회복될 경우 유가 하락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댄 스트류벤 애널리스트는 이날 투자노트에서 “최근 러시아와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시장 예상을 웃돌고 있는 상황에서 베네수엘라의 장기적 생산 증가 가능성까지 더해져 2027년 이후 유가 전망에 대한 하방 위험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량이 2030년까지 하루 200만 배럴로 늘어날 경우 유가가 배럴당 4달러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RBC 캐피탈의 헬리마 크로프트 원자재 리서치 총괄은 “베네수엘라 정권이 질서있게 이양될 것이란 가정 하에 미국의 제재가 전면 해제될 경우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이 12개월에 걸쳐 수십만 배럴 증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거대한 미국 석유 기업들이 들어가서 수십억 달러를 들여 심각하게 파손된 석유 인프라를 복구할 것"이라며 “(그 회사들은) 그 나라를 위해 돈을 벌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전용기에서도 베네수엘라의 매장된 석유 자원이 어떻게 되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우리가 모든 것을 운영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따라 미국 주도로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이 다시 늘어날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다만 전문가들은 대형 석유회사들이 당장 베네수엘라에 진입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공급 과잉으로 저유가 국면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다양한 요인들이 맞물려 기업들 입장에선 위험이 더 클 것이란 분석이다. 가장 먼저 정정 불안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체포 이후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이 정상 역할을 대행하게 됐지만 미국과 원만한 협력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가 “처신을 잘하지 않으면 우리는 2차 공습을 하겠다"고 경고한 상태다. PDVSA에서 관리직으로 근무했던 리노 카리요는 “석유 기업들이 실제로 베네수엘라에 본격적인 투자를 검토하려면 새로운 의회 또는 국회가 구성돼야 한다"며 “지금은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 않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베네수엘라가 과거에 석유 자산을 몰수한 전력도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에 진출해 있는 미국의 메이저 석유회사는 셰브론이 유일하다. 우고 차베스 정권 당시 베네수엘라가 석유 회사들의 자산을 국유화한 뒤 2007년 베네수엘라에서 철수했다. 이후 코노코필립스와 엑손모빌은 베네수엘라 정부를 상대로 각각 200억달러 이상, 120억달러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일부만 배상받았다. 시설 복구에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싱크탱크 베이커 공공정책연구소의 프란시스코 모날디 중남미 에너지정책 국장은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엑손모빌이 향후 10년 동안 매년 100억달러씩 투자해야 베네수엘라 산유량이 과거 정점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블룸버그는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석유 부흥 계획은 1000억달러짜리 도박"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카드업계 또 정보유출...“내부통제 프로세스 개선해야” [이슈+]

SK텔레콤·KT·쿠팡에서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카드업계에 또다시 정보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외부의 공격 또는 퇴사자가 원인이었던 이전 사례와 달리 카드사 직원의 일탈로 벌어진 사태인 만큼 내부통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기업·업계 자체적인 노력 뿐 아니라 외부의 가이드라인도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카드는 앞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에 19만건에 달하는 가맹점 대표의 정보가 유출됐다고 신고했다. 구체적으로는 휴대전화번호 18만1585건, 휴대전화번호+성명 8120건, 휴대전화번호+성명+생년+성별 2310건, 휴대전화번호+성명+생년월일 73건 등 총 19만2088건이다. 금융위원회가 신한카드 정보유출 사고 관련 긴급 대책회의를 여는 등 금융·경찰당국 차원의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사이버테러대응과는 지난 23일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과에 내사를 지시했다. 금융감독원은 추가 정보 유출 가능성과 정보보호 관련 내부통제 시스템 조사를 목적으로 현장검사를 단행하기로 했다. 신한카드는 주민등록번호·카드번호·계좌번호 등 개인 및 신용정보가 유출되지 않았다고 파악했으나, 피해 범위가 예상을 벗어나면 적용되는 법령과 과징금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신한카드 임직원 12명은 2022년 3월부터 올 5월까지 신규 회원 등록 등 영업실적 증대를 목적으로 일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산을 활용한 대규모 데이터 유출이 불가능했던 탓에 카메라 촬영과 수기 작성을 비롯한 방법으로 소량의 정보를 꾸준히 유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맹점 대표가 개보위에 신고하고, 조사 착수 전 사전 자료 요청이 있기까지 유출 사실을 알지 못했던 이유로 보인다. 현재는 업무에서 배제된 상태로, 추가 조사 및 이에 따른 징계가 이뤄질 전망이다. 카드사의 내부정보가 새어나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개보위는 올 3월 우리카드에게 가맹점 정보 유출을 이유로 과징금 135억원을 부과한 바 있다. 경기침체 장기화 등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직원들이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은 맞으나,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금융업의 근간인 신뢰가 더욱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전문가들은 다각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서지용 한국신용카드학회장(상명대 교수)은 최소 권한 원칙 미준수와 접근 로그 실시간 모니터링 부재를 이같은 사고의 원인으로 해석했다. 서 회장은 정기감사·암호화 의무화 및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 등 재발방지를 위한 금융당국의 역할을 촉구했다. 기업 차원에서는 내부통제 프로세스를 재점검하고 정보보호 관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명예교수는 “내부직원에 의한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최소 권한을 부여하고, 취급자에 대한 철저한 접근 통제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고가 내부 취급자의 일탈이었다는 점을 들어 임직원에 대한 교육 및 취급자에 의한 개인정보 외부 유출 차단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신한카드는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이를 위해 시스템과 제도 보완을 진행한다는 방침을 표명했다. 임직원 정보보호 경각심과 인식을 제고하고 관련 교육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관련 사고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특히 △접근권한 최소화 △개인정보 관련 조회 프로세스 강화 △탐지 모니터링 체계 강화 등을 추진할 예정으로, 이번 사고에 쓰였던 수단들을 추적관리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신한카드는 유출된 정보가 가맹점 정보로서 개인정보와는 무관하고, 다른 곳으로 추가 확산될 염려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가맹점 대표들에게 이번 사고를 알리고 정보유출 여부를 확인 가능한 페이지를 운영 중으로, 피해발생시 적극적으로 보상한다는 계획이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부패한 이너서클” 한마디에…금융지주 회장 ‘연임 공식’ 흔들 [이슈+]

금융권에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편 화살이 겨눠지고 있다. 우리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를 비롯해 회장 선임 결정을 앞둔 금융사에 긴장감이 실리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내놓을 지배구조 개편 방식에 따른 변화에도 이목이 모인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금융사의 연임 관행에 대해 '부패한 이너서클' 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19일 금융 분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금융 지배구조에 대한 투서가 요즘 엄청나게 들어온다"며 “(주요 인사들이) 회장을 했다가 은행장을 했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10년, 20년씩 하는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가만히 놔두니 부패한 '이너 서클'이 생겨 멋대로 소수가 돌아가면서 지배권을 행사한다"고 덧붙였다. 발언의 타깃은 사실상 금융지주와 이사회인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금융지주 회장들의 연임 시도가 관행처럼 여겨지는 부분이나, 이사회를 '회장 라인' 인사로 채운 뒤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우호 세력 중심으로 구성되는 등 사실상 연임이 용이한 구조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과거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3연임으로 9년간 회장 자리를 지켰다. 이 과정에서 현직에 유리한 회장 선임이 가능한 이사회·사추위 구조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신한지주는 진옥동 회장 1기 초반인 지난 2023년 말 9개 계열사 대표 전원을 연임시키며 “전쟁 중 수장 안 바꾼다"는 전략을 내세워 기존 라인을 유지했다. 당시 신한은행·카드·라이프 등 핵심 계열 CEO들이 사실상 '진옥동 사단'이라는 평가가 붙기도 했다. 김정태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에 걸쳐 4연임에 성공하기도 했다. 올해도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등 임기 종료를 앞둔 주요 금융지주 수장들이 속속 연임을 확정한 가운데 금융당국은 이사회 개편을 비롯한 금융권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나서기 위해 이미 별도 전담반(TF)을 구성을 예고했다. 은행·금융지주 CEO 교체 때마다 불거지는 '셀프 연임·코드 인사' 논란에 대해 정면으로 지배구조를 손보겠다는 신호를 낸 것이다. TF는 사외이사 구성 정합성 제고, 최고경영자(CEO) 자격 기준 마련 등 제도 개선 논의를 진행할 방침이다. 이 대통령의 공개 질타 이후 금융지주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BNK금융지주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내달 검사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회장 선임 절차의 공정성 등을 살펴보기 위한 준비를 착수했다는 전언이다. 지난 8일 BNK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는 빈대인 BNK금융그룹 회장을 차기 회장 최종 단독 후보로 확정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회장 선임 절차와 관련해 후보자 접수 기간이 너무 짧다는 비판을 낸 바 있다. 회추위나 임추위가 최종 후보를 선정했거나 압축후보군 대상 면접이 진행 중인 금융지주도 일제히 사정권이다.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현 임종룡 회장 체제에서 지배구조 논란이 지적되고 있다. 올 들어 '이사회 물갈이를 통해 연임 기반을 다진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회장 연임을 염두에 둔 자기 보호형 인사라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회장 후보 추천 이후 검증 과정에서도 후보자를 공개하지 않고 진행하고 있는 점에서 '깜깜이 추천'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내년 이사회 재편과 회장 승계 구도 밑그림이 그려지는 KB금융도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KB금융지주는 현재 사외이사 7명 중 5명의 임기가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종료되며 이사회 구성원의 70%가 같은 시기에 재선임 혹은 교체 절차에 들어간다. 양종희 회장의 임기 만료는 내년 11월로, 이 시기와 약 8개월 간격이다. 3월 사외이사 구성 변화가 연임 심사 및 차기 회장 선임에 곧바로 영향을 줄 수 있어 시선이 모인다. KB금융의 경우 사외이사 전원이 회추위에 참여하는 구조로, 기존 이사회 기류가 강하게 유지되는 부작용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달 진행한 계열사CEO 인사에서도 증권·저축은행 등 일부 계열사 CEO를 교체하고 기존 인사를 유지한 바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은행, 증권사와 같은 지주·주력 계열사 핵심 보직을 내부 출신이나 기존 회장 라인 중심으로 채워 외부 견제나 세력 교체 여지를 줄이는 방식도 견제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회추위가 단독 후보를 최종 추천한 단계라도, 당국의 검사를 통해 중대한 이슈가 불거지면 절차상 정지될 수 있어 긴장감이 높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이슈+] 상폐 결정 속도내면 뭐하나…법원으로 모여드는 ‘좀비들’

올해 들어 코스닥시장에서 상장폐지 결정을 받은 기업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이 이른바 '좀비기업' 퇴출 절차를 손질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다만 상장폐지 결정을 받은 기업 대부분이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면서 실제 퇴출은 6개월 이상 지연되고 있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상장폐지가 결정된 상장사는 49곳으로 집계됐다. 그중 코스닥 시장 상장 기업이 38곳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코스닥 기업 상장폐지 결정은 지난 3년간 평균(14곳) 대비 2.5배 정도 늘어났다. 올해부터 한국거래소는 코스닥시장 상장폐지 요건을 손봐 좀비기업 퇴출 절차에 속도를 냈다. 상장폐지는 정량적 요건만 판단하는 형식적 상장폐지와 기업의 상장 적격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실질심사로 분류된다. 거래소는 두 기준 모두 높일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7월부터 코스닥시장에서 상장폐지 실질심사 절차를 기존 3심제에서 2심제로 간소화했다. 실질심사 대상기업에 부여되는 개선 기간도 최대 2년에서 1년 6개월로 줄였다. 기존에는 기업에 회생 기회를 부여하는 쪽으로 상장폐지 제도의 초점을 맞췄지만, 앞으로 부실기업은 신속하게 퇴출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상장폐지를 위한 재무 요건도 내년부터 차례대로 강화할 예정이다. 현재 시가총액과 매출액이 각각 40억원, 30억원 이하면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한다. 다만 기준이 낮은 탓에 지난 10년간 해당 요건으로 상장폐지가 이뤄진 적은 없다. 내년 1월부터 시가총액 기준을 먼저 150억원으로 높인다. 2029년까지 시가총액 300억원, 매출액 100억원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 한국거래소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하는 기업 수도 2026년 14곳에서 2029년 165곳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하더라도 바로 상장폐지로 이어지는 경우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상장폐지 결정을 받은 기업 대부분이 상장폐지 결정에 불복해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해당 가처분 신청은 기업이 법원에 상장폐지 절차의 집행을 잠정 중단해달라고 요청하는 임시 조치로, 본안 판결 확정 때까지 상장 폐지 절차가 중단된다. 실제로 올해 코스닥시장에서 상장폐지 결정을 받은 기업 38곳 중 27곳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해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상장폐지 가처분 소송은 대부분 기각되지만, 실제 상장폐지까지는 짧게는 3개월에서 길면 1년 이상 지연된다. 2019년 이후 가처분 소송이 인용된 경우는 두 건에 불과하다. 법원이 가처분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정리매매 등 후속 절차는 진행되지 않는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상장폐지 절차가 멈췄다고 투자자 리스크가 사라진 게 아니다"며 “거래소도 신속하게 심사하겠다고 한 만큼 법원도 '시간끌기용' 가처분은 빠르게 기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이슈+] 수급 불균형에 원·달러 1480원대 고착 우려...당국 “달러 유입 촉진” 대응 전환

원·달러 환율이 8개월 만에 장중 1480원대를 넘어서며 고환율 국면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외환당국의 경계 발언과 시장 안정 조치에도 환율 수준이 좀처럼 낮아지지 않자, 일시적 급등인지 구조적 변화의 신호인지를 둘러싼 해석이 엇갈린다. 외환당국은 '달러 유출 차단'에서 '달러 유입 촉진'으로 대응 방향을 바꿨다. 19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76.3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주 환율은 장중 1482원대까지 오르며 4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달러화 강세와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 연말을 앞둔 외화 수요 증가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달러인덱스 상승과 함께 외환시장의 달러 유동성이 빠듯해지면서 환율이 상승 압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환율 움직임을 변동성 차원을 넘어서 '수준'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안정목표 기자설명회에서 “불필요하게 높은 환율 레벨은 조율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고환율이 금융위기라기보다는 물가와 분배 측면에서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외환당국 수장이 환율의 절대 수준에 개입 의지를 내비친 이례적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다만 시장에서는 단기적인 개입이나 구두 경고만으로 환율 흐름을 되돌리기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환율은 정부 대책 발표 이후 잠시 하락했다가 다시 상승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거시 변수보다 수급 요인이 환율을 좌우하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과거 원·달러 환율을 움직이는 요인은 경상수지(무역)였다. 최근에는 수출 호조에도 환율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수출과 환율 사이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국내 기업의 해외 직접 투자 확대로 인해 국내로 들어오는 외화는 줄고 해외 투자를 위한 국내 달러 수요는 늘면서 수급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있다. 최근 환율 상승의 배경으로 지목된 '서학개미' 외에도 금융기관도 외화수요를 늘린 주요 주체 중 하나다. 다올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실제 외화 수요를 주도한 주체는 국민연금보다 자산운용사·보험사 등 금융기관과 개인 투자자였다. 자산운용사는 해외 투자 상장지수펀드(ETF)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를 추종하기 위한 기초자산으로 미국 주식을 더 많이 사들였다. 연말 결산을 앞둔 계절적 요인까지 겹치며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이 일시적으로 위축됐다는 설명이다. 고환율로 인한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물가다. 한은의 분석에 따르면 환율이 10% 오를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약 0.3%포인트 높아진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에서 유지될 경우 내년 물가상승률은 기존 전망치(2.1%)를 웃도는 2.3% 안팎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전망이 제시됐다. 수입 원가 상승은 에너지와 식료품 등 생활물가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달러를 살 때 환율은 1530원대를 넘어서며 해외여행·유학·직구 관련 체감 비용도 빠르게 늘고 있다. 반면 수출 기업이나 해외 자산을 보유한 일부 주체는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어, 고환율이 경제 주체 간 손익 격차를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창용 총재는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우리 내부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극명히 나뉜다"며 “성장과 물가, 양극화 측면의 위기일 수 있어 걱정이 심하다"고 말했다. 외환당국은 기존 서학개미와 국민연금 등 외환 수급 주체를 겨냥해 급증한 달러 유출에만 초점을 맞추고 압박해 온 조치에서 달러 유입 촉진으로 방향을 바꿨다.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등 외환당국은 18일 환율 급등의 원인을 구조적 외화 수급 불균형으로 보고 달러 유입을 가로막던 외환건전성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크게 네 가지로 △금융기관 외화유동성 규제 완화 △외국계 은행 국내 법인의 선물환 비율 하향 조정 △수출기업 원화 용도 외화대출 허용 △외국인의 한국 주식 직거래 활성화다. 한국은행도 달러 유입 확대를 유도하려는 조치를 내놨다. 한국은행은 지난 19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여고 한시적으로 외화건전성부담금 면제 조치를 시행하기로 의결했다. 한은은 “국내 금융기관들의 외환건전성 부담금 납입부담을 줄여 국내 외환 공급 유인이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금융기관이 한은에 예치한 외화예금 초과 지급준비금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기로 했다. 한은은 “금융기관이 주로 해외에서 운용하던 외화자금을 리스크 대비 안정적인 이자 수익으로 국내에서 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가는 환율 전망치를 최근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내년 원·달러 환율 연평균 전망은 1390~1420원 수준으로 올라섰고, 상단은 1500원까지 열어둔 기관도 적지 않다. 최근의 고환율이 시장의 '눈높이'를 끌어올렸다는 판단에서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0월 이후 환율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4분기 평균 환율(1,450원)은 전망치(1,420원)를 큰 폭 상회했다"며 “한 번 높아진 눈높이가 쉽게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다만 중기적으로 1500원대 환율이 고착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최근 환율 급등은 해외증권 투자 증가와 연말 외화 수급 불균형이 맞물린 '오버슈팅' 성격이 강하며, 계절적 요인이 해소되면 달러 공급 여건도 점차 개선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해외 ETF 투자 증가 속도 역시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형기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 환율 범위는 1350~1450원을 예상한다"며 “단기적인 환율 변동성을 대비하되 대외투자를 진행하는 기관은 환율에 대해 상승과 하락 양방향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1470~1480원대의 높은 변동성이 이어질 수 있지만, 내년 상반기 중에는 1400원대 중반에서 점진적인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구조적인 달러 강세 요인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현재 환율 수준이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과도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도 함께 나온다. 동 허 암로(AMRO, 아세안+한·중·일 역내 거시경제조사기구) 수석경제학자는 최근 고환율 흐름의 원인으로 “국내 투자자의 미국을 비롯한 해외 증시에 투자 관심이 늘고 확대된 것이 요인"이라며 “정부가 외환시장 추가 개방·확대 조치를 도입했는데,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은행에서 명확히 운용하는 프레임워크 틀 내에서 어느정도의 환율 변동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단기 변동성이 확대된다고 하더라도 인플레이션 전망이 안정적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다각화 만능 아니다…금융지주 수익 안정의 ‘전제 조건’ [이슈+]

금융지주사가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면 수익 안정성이 높아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고정이하여신비율 등 건전성 지표가 악화될 경우 수익 안정성 제고 효과도 약화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 등을 고려해 차별화된 감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일 한국금융연구원이 2012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 주요 은행지주 8곳을 대상으로 사업다각화가 수익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과 그 효과가 어떤 조건에서 달라지는지를 실증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저금리 환경의 장기화, 핀테크 기업의 시장 진입으로 전통적 예대마진 모델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국내 은행지주들은 증권, 보험, 카드 등 비은행 부문으로의 사업다각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금융지주는 사업다각화를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고, 리스크를 분산해 경영 안정성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실제 한국금융연구원이 분석한 결과 사업다각화는 전반적으로 금융지주사의 수익 안정성을 제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대기·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업다각화 수준이 높을수록 수익 변동성이 유의하게 줄어들어 서로 다른 수익 패턴을 지닌 사업부문들의 상호 보완 효과가 실증적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정이하여신비율이 높은 경우 사업다각화의 안정성 효과는 약화됐다. 대손충당금 비율이 높은 경우에는 오히려 수익 변동성이 증가했다. 사업부문별로 보면 여신부문 자산비중이 모든 모형에서 일관되게 수익 변동성을 높였다. 투자부문 비중이 높아도 수익 안정성이 저해됐다. 이대기·김우진 선임연구위원은 “사업 다각화의 긍정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건전성 확보와 균형잡힌 포트폴리오 구성이 필요하다"며 “여신부문, 투자부문의 높은 비중은 경기 민감도를 올려 수익 안정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고려해 금융당국은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 리스크 프로파일을 고려한 차별화된 감독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한국금융연구원은 조언했다. 건전성 확보를 전제로 사업다각화를 승인하는 한편, 계열사 간 내부거래, 위험 전이 모니터링을 강화해 시스템리스크를 예방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대기·김우진 선임연구위원은 “은행지주 경영진은 시너지 창출 가능성, 내부 역량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사업다각화를 접근해야 한다"며 “여신부문 의존도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고, 비은행 부문 간 균형잡힌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통합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고도화해 사업부문 간 위험 전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2조원 ELS 과징금, 판단은 내년으로…금소법 잣대 시험대 [이슈+]

최대 2조원에 달하는 과징금 규모의 확정을 두고 금융감독원의 '홍콩 H지수 ELS 불완전판매' 제재심의위원회 절차가 본격화됐다. 은행권이 자율배상 등 사후구제 노력을 근거로 과징금 경감을 이뤄내는 데 성공할지 업권의 관심이 쏠린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전일 오후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시중은행 5곳(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을 대상으로 제재심을 열고 제재 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대심제를 진행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달 홍콩 H지수 ELS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이들 은행에 총 2조원대의 과징금을 사전 통보했다. 은행별로 판매액에 따라 KB국민은행이 1조원대, 신한·하나은행이 3000억원대, NH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이 1000억~2000억원대로 추청된다. 은행들은 자율배상과 판매 프로세스 개선, KPI(성과지표) 조정 등 사전 예방 및 사후구제 노력을 근거로 과징금 경감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령이 지난달 11일 개정됨에 따라 사후적인 피해 회복 노력이 인정될 경우 과징금의 50% 이내에서 감액이 가능하다. 은행권은 사전 예방 노력과 추가 요건을 충족해 최대치인 75%까지 감면받는 것이 목표다. 금소법상 감경 기준 중 두 가지 이상의 사유를 동시에 충족할 경우 감경이 가능하다. 시중은행들은 지난주 금감원에 과징금을 감경해달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은행들은 그동안 진행해온 자율 배상과 판매 절차 개선 등을 강조할 방침이다. 자율배상액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총 1조3437억원에 달하며 합의율도 96.1%를 기록했다. 은행별로 자율 배상 규모는 최대 7000억원 수준(KB국민은행)에 이른다. 아울러 금감원 소비자보호 거버넌스 모범 관행에 맞춰 소비자보호 내부통제위원회 등 조직을 확충하고 소비자보호담당임원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등 구조적 개선 절차에도 착수했다. 상품 사후 모니터링 추가 등 고위험상품에 소비자보호 체계 강화 및 KPI설계도 개선했다. 은행권은 금소법 위반의 중대성이 낮다는 점을 강조해 부과기준율을 최대한 낮추는 전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법 위반의 중대성은 △매우 중대 △중대 △중대성 약함 등 3단계로, 중간단계인 '중대'의 경우 판매액의 30% 이상 65% 미만 부과기준율을 과징금으로 적용한다. 만일 제재심 이후 증선위 심의 과정으로 넘어간다면, '부당이득 10배 초과 감액' 근거를 내세울 수 있다. 금융위는 과징금이 부당이득인 H지수 ELS 판매 수수료 수익의 10배를 초과하면 감액을 결정할 수 있다. 다만 금감원이 은행의 불완전판매를 지적하며 맞서고 있어 이번 제재심에서 논리 공방이 치열했을 것이란 예상이다. 당국은 ELS 사태의 원인이 은행의 '설명의무 위반' 등 절차상 불완전성에 있었다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손실 위험 등 핵심 정보를 명확히 설명하고 설명서를 교부·확인해야하지만 상당수의 영업점이 이를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과거 20년간 손실률 등 중요한 정보를 누락하거나 왜곡해 설명한 점도 문제라는 입장이다. 특히 금융소비자보호법의 6가지 판매원칙 중 1~2가지만 위반해도 과징금 대상으로 규정하고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어 은행이 '적합성 원칙'에 의한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적합성 원칙은 금융사가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할 때 △재산 △거래목적 △투자경험 △연령 △상품이해도 △위험에 대한 태도 등 6가지 고객정보를 파악해 적합한 상품을 권유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당국은 은행의 ELS 고객이 오래된 점 등을 고려하면 단순항목도 누락하면 안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금투업권과 달리 은행은 예금으로 재투자하는 경우나 투자경험이 부족한 소비자가 많아 적합성 원칙에 보다 엄격한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시각이다. 당국이 소비자보호 기조를 시장에 나타낼 수 있는 사실상 첫 사례인 만큼 투자자 손실에 대한 책임이 크게 감경되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있다. 업계는 5개 은행의 불완전판매 행위가 감독 규정 세부평가기준표상 1.7점을 받아 중간 단계인 '중대한 위반행위(1.6점 이상 2.3점 미만)'로 분류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은행권에 기존에 통보된 과징금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위험가중자산(RWA)을 과징금의 7배로 반영해야 한다. 자본금의 증발 뿐 아니라 RWA가 10조원대로 추가되는 것이다. 이는 보통주자본비율(CET1)의 1%p대 하락과 주주 배당액 감소 등으로 영향을 미친다. 자본 비율 악화는 현재 조단위로 추진 중인 생산적 금융 이행에도 차질을 주게 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이미 과징금과 비슷한 규모로 진행한 자율배상 조치와 상품 판매 프로세스 개선 등 손실 투자자 배상 및 사전 조치에 있어 다방면으로 개선했다"며 “금감원도 사후구제 노력과 은행권의 생산적 금융 이행에 따른 부담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과징금 경감쪽에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제재심이 해를 넘겨 수차례 추가로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재심에서 결론이 도출되면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정례회의 의결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 최종 과징금이 확정될 것이란 예상이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이지스 매각에 던져진 ‘국민연금’ 변수…인수전 시나리오가 바뀐다 [이슈+]

국민연금이 이지스자산운용에 위탁한 투자금을 이관할 것이란 전망이 흘러나오면서 인수전이 새 국면을 맞았다. 원매자가 소송전을 본격화한데다 우선협상대상자인 사모펀드(PEF)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와의 인수 조건 차이라는 리스크 등 이슈가 맞물리면서 업계에선 완전히 새로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14일 금융권과 투자은행(IB)업계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내부 투자위원회를 통해 이지스자산운용에 맡긴 투자금을 전액 회수하는 방침을 확정했다. 일각에선 이미 회수 절차에 착수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지스를 통해 스타필드 고양에 투자했던 약 3800억원의 자금에 대해 자산운용을 다른 운용사로 이관하거나 자산을 매각하는 방안을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지스는 2016년 신세계와 함께 스타필드 고양 개발사업에 들어갔다. 이지스가 국민연금으로부터 약 3800억원(지분 약 49%)을 출자받아 신세계프라퍼티와 추진한 프로젝트다. 완공된 스타필드 고양은 꾸준한 임대수익으로 인해 이지스의 핵심 자산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국민연금은 이지스가 매각 과정에서 위탁자산 관련 정보가 사전 동의 없이 잠재적 인수자들에게 무단으로 제공됐다고 판단하고 위탁자금 전액 회수라는 초강수 대응에 나섰다. 26조원이 넘는 운용 자산을 보유 중인 이지스에 국민연금이 위탁한 자산은 2조원(시장 평가액 기준 7조~8조원) 가량인 것으로 시장은 추정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자산 이관이 현실화할 경우 이지스 운용 기반을 흔드는 동시에 현재 진행 중인 이지스 경영권 매각 작업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 시장평가액 기준 거액의 자산이 갑자기 이동할 경우 회수 시점에 따라 운용자산이 크게 급감할 수 있어서다. 사업 안정성이나 신뢰도가 훼손되면 시장 지위가 흔들리게 되고, 영업 기반은 물론 매각 협상에서도 불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국민연금이 투자금 회수 외에도 약정 위반에 따른 민·형사상 조치까지 이어갈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이런 리스크가 극대화되는 형국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내 담당 투자실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어떤 자산을 어느 운용사로 이관할지 세부 검토에 들어가는 한편 후보 운용사들에 대한 인터뷰 진행 일정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의 자금이 빠져나가면 이지스의 다른 투자자들은 단기적으로 AUM 감소에 따른 충격이나 투자 구조가 재조정되는 등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지스의 다른 연기금이나 보험사들도 거버넌스 리스크가 높은 GP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고 주요 투자자가 다른 운용사로 교체되는 등의 구조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며 “다만 타 운용사로 이관하는 방안인 만큼 개별 부동산 펀드의 기초 자산이 흔들리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원매자인 흥국생명이 매각 과정상 부당함을 붙잡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점도 인수전을 흔들고 있다. 흥국생명은 이지스 매각과 관련해 최대주주인 손 모 씨와 주주대표 김 모 씨, 공동 매각주간사인 모건스탠리 한국 IB부문 김 모 대표 등 5명을 공정 입찰 방해 및 사기적 부정거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지난 11일 경찰에 고소했다. 매각 측이 '프로그레시브 딜'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하고 실제로는 힐하우스 측에 입찰가를 유출해 최고액을 얻어내는 등 공정성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시장에선 흥국생명이 이지스 인수를 제안하면서 기존 임직원 300명 가량에 대한 '전원 고용승계'를 조건으로 내밀었다는 사실도 전해진다. 반면 힐하우스는 고용승계 범위를 100~150명 수준으로 제시하면서 인수 후 인력 축소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제시한 고용 수준에 따라 운영 체계를 조정할 경우 직원 1인이 담당하는 프로젝트가 10개 이상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국내 대형 운용사는 1인이 4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맡으면 실사를 비롯해 리스크 및 품질 관리가 어려워진다는 게 업계 공통된 평가다. 이는 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나 주요 투자자들의 검토 대상에 오를 수 있다.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하는 금융당국 또한 현재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시장에서 우려하는 '중국계 자본' 유입에 대해 정무적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신중하게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힐하우스의 인수에 사실상 제동이 걸린 상황에서 흥국생명 등 기존 원매자들의 재입찰 가능성도 있다"며 “실제로 매각주관사 측이 힐하우스와의 협상 결렬이나 매각 좌초 위기에 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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