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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지속가능항공유, 불붙은 인플레이션에 부어지는 기름

항공 운송 분야에서도 탄소중립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미국·유럽·일본 등에 이어 국내에서도 관련 정책이 수립되고 있다. 동시에 인플레이션을 촉진하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지속가능항공유(SAF) 확산 전략을 발표했다. 2027년부터 국내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항공편에 1% 가량의 SAF를 혼합하겠다는 것이다. SAF는 기존 항공유를 대체할 수 있는 액체 연료로, 유기물과 비식용 식물 등을 원료로 사용한다. 탄소배출을 감축하는 현실적인 솔루션으로도 꼽힌다. 대형 항공기 전동화는 배터리 무게가 부담되고, 수소 추진 방식은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SAF 사용시 최대 80%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 문제는 가격이 일반 항공유의 2~5배에 달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생산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지난해 기준 대체율이 0.2%에 그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고가의 장비 등이 필요한 탓에 생산 비용도 높다. 정부는 SAF 1% 혼유시 국제선 노선 항공료가 1만원 이하로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실제 항공권 가격을 보면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이미 일반적인 항공편 보다 이산화탄소 환산량이 10% 가량 적은 항공권의 가격이 몇 만원 가까이 높은 탓이다. 내년에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루프트한자를 필두로 유럽 항공사들도 가격 인상에 나선다. 바이오 항공유 할당량 충족을 위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향후 가격이 하락한다는 보장도 없다. 현재는 폐식용유 등을 원료로 SAF를 만드는 HEFA 공정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원료 확보가 어려워 생산량 확대가 쉽지 않은 탓이다. 탄소중립 정책 자체도 경쟁력 향상을 저해한다. 식물의 생장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다른 방식도 각각의 단점이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로 만든 그린수소와 탄소포집(CCS) 기술로 확보한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파워 투 리퀴드(PTL) 공정에서 생산되는 제품값은 화석연료의 8배에 달한다. 글로벌 전기요금이 상승세인 점도 고려해야 한다. 농림 부산물 및 생활폐기물을 비롯한 원료를 가열·분해해 생성한 합성가스 또는 같은 원료를 발효해 나온 알코올을 탄화수소로 바꾸는 솔루션은 아직 상용화 되지 않았다. 이같은 난관이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인위적으로 할당량만 높게 잡는 것은 탁상행정이라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기업이 수익성 유지를 목적으로 판가를 끌어올리면 소비자들이 손해를 입고, 이를 토대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도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차량 전동화 정책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후퇴하는 사례를 교훈 삼아 항공유 분야에서도 지속가능한 해법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기자의눈]HBM 경쟁이 만드는 ‘한국의 초격차’

한때 '초격차'라는 말로 대변되던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 지배력이 흔들리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선두 자리를 내준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일시적 방심이 빚어낸 결과지만, 동시에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는 중요한 변화다. HBM은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으로, 미래 반도체 시장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세계 최초로 HBM을 개발한 이후 꾸준히 투자를 이어왔고, 현재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2019년 HBM 연구개발팀을 축소하는 오판을 내렸고, 이로 인해 기술 개발에서 뒤처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한국 반도체 산업 전체에 위기라고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두 기업의 경쟁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칩워'(Chip War)라 불리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서, HBM 시장을 한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가적으로 큰 자산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HBM 생산능력을 대폭 확대하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기술 우위를 지키기 위해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물론 삼성전자가 과거의 '초격차' 시대로 돌아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SK하이닉스도 쉽게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두 기업이 서로를 견제하며 기술력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초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길이다. 이러한 경쟁 구도는 결과적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 전체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삼성전자의 '초격차'가 SK하이닉스와의 경쟁을 통해 '한국의 초격차'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경쟁력 제고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변화다. 이러한 시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보조금 지급 등 기존에 없던 특별한 지원책이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시기다. 두 기업의 경쟁이 가장 치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힘을 모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확고히 할 때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기자의 눈]서민 울리는 전셋값 고공행진, 공급 확보가 답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68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 초부터 지난달까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3.9% 상승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은 되려 9.96% 하락한 점을 감안하면 전셋값 상승세가 올 들어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모습이다. 전셋값이 급등한 것은 전세사기의 여파가 크다. 속기 쉬운 빌라를 기피하고 아파트를 선호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반면 아파트 전세 공급은 부족하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1년 전 3만1443건이었던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현재 2만7812건으로 11.54%나 줄었다. 업계에선 신규 입주물량 감소,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만기 영향 등이 겹치면서 전셋값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114 자료를 보면 올 하반기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총 1만 8577가구로, 이 중 오는 11월 입주 예정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1만 2032가구)을 제외한 물량은 6545가구에 그친다. 정부도 치솟는 전셋값을 잡기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긴 하다. 공공이 주택을 매입한 뒤 전세로 공급하는 '든든전세주택'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든든전세주택으로 2년간 1만6000가구를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전세사기 여파로 민간임대시장이 위축됨에 따라 최근 장기 거주할 수 있는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활성화 방안도 꺼내들었다. 하지만 이같은 방안이 효과를 발휘할 지는 의문이다. 든든전세주택은 매입 대상이 비아파트에 한정돼 있어 정작 수요자들이 원하는 아파트는 해당이 안 된다. 전 정부에서도 유사한 정책이 낮은 품질로 수요자들로부터 외면을 겪은 적도 있다.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방안의 경우 임대료가 비싸 수요자들의 관심이 끌 지는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뉴스테이 실패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기업형 임대 '에피소드 용산'은 주거 유형에 따라 월 임대료가 96만원에서 696만원에 이른다. 특히 최근 금융 당국의 가계 대출 관리 강화 방침에 따라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전세자금대출까지 옥죄면서 실수요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이다. 본격적인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요동치면서 서민 주거불안을 키우고 있다.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전세불안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가장 시급한 것은 공급 물량을 늘리는 것이다. 정부는 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공급 촉진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관치'의 구태로 재현되고 있는 획일적인 주택 대출 관련 정책의 유연성과 신뢰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영끌'족들을 예방하기 위한 규제를 강화하되, 서민·실수요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대출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현주 기자 zoo1004@ekn.kr

[기자의 눈] 집값 잡겠단 당국에 혼란 겪는 실수요자·진땀나는 금융권

은행권의 대출규제 바람이 제2금융권인 보험업권으로 흘러올 수 있단 위기감에 보험사들이 긴장모드다. 당장 대출을 실행해야 하는 실수요자들로부터는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기조가 번복되는 모양새에 은행권도 진땀을 빼고 있다. 앞서 은행권이 금리를 올리자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보험업권에서 가장 먼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인상하며 조치를 취했다. 이어 은행이 대출 빗장을 더 걸어잠그자 삼성생명도 따라 지난 3일부터 유주택자 대상 주담대를 막았다. 당국이 우려하는 '풍선효과'가 퍼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조치한 것이다. 그러나 당국은 여전히 대출 수요 쏠림현상을 우려하며 업계에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지난 4일 열린 간담회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보험사 등 전 금융권이 합심해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는 와중 급진적으로 제도 여파를 맞은 실수요자들 일부는 혼비백산하는 사태도 초래됐다. 최근 집을 사서 잔금 대출을 실행 중이거나 직장문제 등 피치못할 이유로 전세계약을 한 이들도 자금 계획이 헝클어지면서 인터넷뱅킹에 오픈런하는 웃지 못할 사태도 나타났다. 은행마다 한도가 상이하게 나타나거나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 제한이 촘촘하게 준비되지 못했단 지적도 따른다. 당장 급전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은 보험사 등 2금융권 문을 두들겨야 하기에 보험사들은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실수요자들 요구에 지난달 말 삼성, 한화, 교보 등 대형 생명보험사 주택 대출 잔액이 늘어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업계는 이미 삼성생명이 정책을 선도한만큼 이에 대한 동참을 고심 중이다. 일각에선 집값이 파죽지세로 뛰기 전 골든타임을 놓친 건 당국인데, 애꿎은 금융권과 대출 실수요자들이 불똥을 맞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부랴부랴 아파트 값을 잡으려는 강경한 압박이 은행권을 넘어 2금융권과 실제 수요자들 가운데 혼란을 초래하고 있단 지적이다. 당국은 추석 명절 이전까지 은행들과 머리를 맞대고 실수요자들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겠단 방침이다. 금융권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시기와 형평성이 고려된 정책이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기자의눈] 이커머스 규제 찬반, ‘역지사지 해법’ 필요

티몬·위메프의 입점판매업자 대금 미정산 사태 이후 정부가 재발을 막기 위해 이커머스 플랫폼 규제 카드를 꺼내들자 IT 기반의 벤처·스타트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7일 기획재정부는 대규모유통업법과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해 이커머스기업과 전자결재대행사(PG)의 판매대금 정산기한을 현행 40~60일보다 단축해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자금 유용을 막기 위한 '판매대금 별도관리 의무'도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벤처기업협회를 비롯해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등 국내 중소 플랫폼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단체들은 지난달 26일 정부의 규제 도입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벤처기업협회는 이틀 뒤인 28일 정부 부처에 법 개정을 우려하는 의견서까지 추가 전달했다. 벤처·스타트업 단체들은 '티메프 사태'가 이커머스업계 전반의 문제가 아닌 특정 기업(티몬, 위메프, 큐텐)의 무리한 사업확장에 따른 경영 실패와 PG업체의 전자금융감독규정 위반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개별기업이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의 경영지도기준을 준수하도록 정부의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는 등 현행법 테두리에서 제재수단을 마련하는 게 적절한 대책이라고 주장한다. 단체들은 강력한 규제를 도입할 경우 오히려 플랫폼 운영 벤처·스타트업의 현금 유동성 약화에 따른 경쟁력 상실을 우려한다. 또한, 국내법 규제안을 적용하기 어려운 국내진출 해외 플랫폼과 비교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단체의 주장에는 입점 판매업자 입장이 배려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당장에 티메프 사태 이전인 지난 6월 문구 플랫폼 바보사랑이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폐업하는 바람에 입점업체들이 고스란히 손실을 입었다. 이어 전자제품 플랫폼 알렛츠는 아예 '도주 폐업'해 경찰이 수사에 나선 상태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물론 플랫폼 입점업체가 네이버·쿠팡 등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을 더욱 선호하게 만들어 이커머스 생태계가 대형사 위주로 개편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플랫폼 벤처·스타트업의 규제 반대 입장도 나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현실적 규제'가 이번 기회에 마련되지 않는다면 제 2의 티메프 발생, 대형 이커머스의 독과점 구조에 따른 중소 이커머스기업의 존폐 위기에 불안을 떨어야 하는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의 입장도 살펴야 할 것이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기자의 눈] 기후위기 대응, ‘전기차 포비아’ 극복이 관건

기후위기 시대에 전기차로의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필수 과제다. 화석 연료에 의존한 자동차 산업이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가운데 전기차가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전기차 화재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사고들은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전기차 포비아'를 확산시키고 있다. 전기차의 배터리 기술은 급속히 발전하고 있으며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적 조치가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잇따른 화재 사고로 인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전기차 전체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지 않으면 전기차 보급이 지연될 수 있고 이는 기후위기 대응과 대기오염 감소에 중요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이미 글로벌 환경 기조가 탄소중립으로 정해진 상황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현재의 전기차 포비아가 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전기차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산업계의 적극적인 협력과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선 전기차의 화재 위험이 내연기관 차량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높은 것이 아님을 객관적인 데이터와 전문가의 의견을 통해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전기차의 환경적 이점, 즉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가능성과 향후 배터리 재활용 기술의 발전 등도 강조돼야 한다. 정부와 제조사들은 이러한 소비자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안전성 강화를 위한 지속적인 연구와 투자에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전기차를 선택할 수 있도록 충전 인프라 확충, 배터리 교체 및 관리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공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결국 기후위기 시대에 전기차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를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전기차 포비아를 극복하고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전기차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이야말로 정부, 기업, 그리고 사회가 함께 전기차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전환점을 마련할 때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기자의 눈] 부정적 프레임 ‘정면 돌파’ 나선 엔씨에 응원의 박수를

최근 엔씨소프트(엔씨)가 선보인 신작 게임 '호연'에 대한 시장 안팎의 관심이 뜨겁다. 단순히 게임 자체에 대한 관심만은 아니다. 신작 출시를 계기로 엔씨가 반등할 수 있을지, 기존 회사에 축적된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을지 여부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엔씨가 '고난의 행군'을 걷고 있는 데 따른 영향이 크다. 현재 이 회사는 실적 부진에 시름하고 있다. 최근 성적표를 보면 외형과 실속 모두 챙기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용자들은 엔씨를 '돈만 밝히는 기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표 지식재산권(IP)인 리니지의 과도한 과금 유도가 발단이 됐다. 여기에 더해 리니지 시리즈의 성공에 취해 '리니지풍' 게임 양산에 집중한 점은 불만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일부 이용자들은 엔씨를 개고기 식당에 비유한다. 매출 감소 등의 이유로 고인물(개고기)이 돼버린 리니지 정체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회사 이미지가 나빠지니 실적이 좋을리 만무하다. 이에 엔씨는 신작 출시에 있어 리니지 색깔을 빼는 데 집중했다. 리니지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를 최대한 없애고 가볍게 풀어내는 동시에 이용자들의 과금 부담을 낮췄다. 눈길을 끄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엔씨는 자사에 씌워진 부정적인 프레임을 감추고 숨기기보단 '정면 돌파'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엔씨는 호연 출시 전 유튜브에 이용자와 소통하는 콘텐츠를 공개했다. 여기서 고기환 엔씨 호연 개발총괄(캡틴)은 자신을 소개하는 문구에 'A.K.A MEATBALL(미트볼로도 알려진)'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앞서 고 총괄은 '개고기 미트볼'이라는 별명을 얻은 바 있다. 별명에 새겨진 자사의 부정적 이미지를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자신의 치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소위 이미지로 먹고 사는 게임사 입장에서 약점은 최대한 감추고 싶기 마련이다. 하지만 엔씨는 자사를 향한 대중들의 부정적 시선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를 개선하는 데 힘을 쏟기로 마음먹은 모습이다. 최근 만난 엔씨 관계자도 이 같은 의지를 피력했다. 아직 출시 초기인 터라 호연의 성공 여부를 섣불리 판단할 순 없다. 다만 게임의 흥행을 떠나 엔씨가 보여준 용기는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용기가 엔씨를 향한 이용자들의 마음의 빗장을 푸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기자의 눈] ‘오이밭’에서 신발끈 고쳐 맨 정부

최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아파트값이 멈출 줄 모르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8월 넷째 주(26일 기준) 아파트 매매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전주보다 0.26% 오르며 23주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앞서 지난 7월 초 정부는 가계부채를 줄이고 수도권 집값 상승세에 제동을 걸기 위해 보다 강력한 대출규제인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그 계획을 이달로 미루면서 국민들에게 집값을 잡을 의지가 없다는 오해의 빌미를 제공했다. 대출규제에는 주택시세 대비 대출한도를 정하는 LTV(담보대출 인정비율)와 연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로 대출을 규제하는 DTI(총부채상환비율) 등이 있다. DSR은 대출을 실행하는 주택의 원리금(원금+이자)과 나머지 대출의 이자만으로 계산하는 DTI에 비해 더욱 강화된 규제로, 모든 대출을 원리금으로 계산을 하기 때문에 DTI 대비 대출한도가 더욱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DSR을 한 번 더 압박하는 것이 스트레스 DSR이다. 가계부채 증가 및 수도권 집값 상승세를 막기 위한 수단이라면 2단계 스트레스 DSR 보다 더한 규제도 타당하다. 하지만 어차피 최대한도로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상황에 이러한 규제를 2개월 가량 미룬 점은 국민들의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일각에서는 이달부터 줄어드는 대출한도를 의식한 실수요자들의 불안감이 수도권 아파트시장을 자극해 집값 상승에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 정책은 절대 시장 수요자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 만약 강한 신호로 분위기를 뒤집고 싶다면 시장의 예상을 뛰어 넘는 빠르고 강한 정책을 내야한다. 현재 시장에는 확실한 공급책과 불안심리를 잠재울 수 있는 강경한 대책이 필요하다.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번 대책이 오히려 구매욕구를 자극해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할지, 전고점에 도달한 집값이 단기급등에 부담을 느껴 한풀 꺾일지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또 다시 모호한 정책 스탠스를 취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부터 시장에선 “정부가 집 값을 잡을 생각이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이게 결국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의 상승세의 배경이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금 확정된 공급 대책을 조기에 확정, 실행해 공급 측면에서의 불안 요인을 확실히 잠재워야 한다. 또 하반기 예상되는 금리 인하 기조 속에서도 명확한 신호를 보내 빚을 내 주택을 구매하는 '영끌족'을 최소화해야 한다. 김다니엘 기자 daniel1115@ekn.kr

[기자의 눈] 결국 폭발한 코인 사기 피해자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28일 벌어진 하루인베스트 대표 피습사건이다. 백주대낮에 경비가 삼엄한 법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놀랍지만, 가상자산업계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루인베스트는 1조4000억원대 '코인 먹튀' 의혹을 받고 현재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코인 예치 서비스업체다. 투자자들이 예치한 가상자산을 출금 정지 시키고 본사 사무실을 폐지하는 등 재산상 이득을 편취했다는 혐의다. 이번 피습 사건을 벌인 피의자만 해도 노후 목적으로 모은 자산 대부분을 하루인베스트에 예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언뜻 보면 화를 참지 못한 피의자, 또는 수많은 투자자를 피눈물 흘리게 한 하루인베스트 대표 측에 책임이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머잖아 제2, 제3의 피습사건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고개를 든다. 가상자산 분야에 대한 제도가 미비했던 최근 시기까지 수많은 코인 사기가 집중적으로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그간 가상자산의 존재와 시장 형성을 애써 외면해 왔던 정치권 때문에 '법률 공백'이 발생했고, 발 빠른 사기꾼들은 그 틈을 노려 수많은 투자사기 피해자를 양산해 왔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은 이를 어디 하소연할 데 없이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이를 호소해 봐야 피해자의 탐욕과 무지를 탓하는 손가락질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등이 시행됐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됐다. 이미 수많은 투자 피해자가 발생한 이상 이번 피습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낳는 '방아쇠'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피해자들도 스스로 자제하고 법원 등의 보안을 강화해야겠지만, 지금부터라도 관련 제도 보완을 충실히 해 미래까지 이어질 '증오의 연쇄'를 끊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투자자 보호에 중점을 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지난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다음은 2단계, 가상자산 발행 등 산업 진흥을 위한 입법이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투자자 보호 장치가 아직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 등 기존 경제범죄 관련 법령을 손봐 코인 투자자들도 즉각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코인뿐 아니라 갖은 신산업이 발생하고 있는 문명의 시대에 법의 구멍으로 인한 야만의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야 할 때다. 성우창 기자 suc@ekn.kr

[기자의 눈] AI 신약개발, 대승적 협력 필요하다

최근 국내 제약업계가 전례없는 대규모 협업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연합학습 기반 인공지능(AI) 신약개발 플랫폼 구축사업 'K-멜로디(K-MELLODDY)'가 바로 협업 프로젝트의 주인공이다. 이 사업은 오는 2028년까지 각 기관의 데이터 외부유출 없이 인공지능을 학습시켜 신약 후보물질을 효율적으로 발굴하는 AI 솔루션을 구축하는 사업으로 국내 8개 제약사를 비롯해 대학, 연구소, 벤처기업 등 분야별 국내 최상위 기관 26곳이 참여한다. 한 기관은 이번 사업에 선정된 후 아예 담당 부서명을 K-멜로디 사업에 맞춰 AI신약개발팀으로 변경하기도 했으며 다른 일부 기관은 선정과정에서 탈락한 후 크게 아쉬움을 토로할 정도로 업계의 큰 기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해당 협업 프로젝트에서 데이터 제공 역할을 맡는 8개 제약사들은 기대감에 못지 않게 불안감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미 주요 제약사들은 독자적 또는 AI 벤처기업과 협업해 개별적으로 AI 기반 신약개발 솔루션을 구축해 왔다. 대웅제약은 8억개의 화합물을 DB화한 '다비드'와 AI 신약개발 시스템 '데이지'를 자체 구축해 신약개발에 활용하고 있으며, JW중외제약은 빅데이터 기반 약물탐색 시스템 '주얼리'와 '클로버'를 통합한 자체 AI 신약개발 플랫폼 '제이웨이브'를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K-멜로디 사업의 성패는 다양한 데이터를 많이 학습할수록 성능이 좋아지는 인공지능 머신러닝(기계학습) 특성상 데이터 제공 역할을 맡은 8개 제약사들이 얼마나 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제공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렇지만 각자 자체 AI 신약개발 플랫폼을 구축해 온 제약사들은 자신의 핵심자산이자 영업비밀인 약물·임상 데이터를 국내 최초 시도이자 경쟁사가 모두 참여하는 공동 프로젝트에 선뜻 내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칫 적은 양의 데이터만 제공하고 향후 완성될 AI 솔루션의 '결실'만 공유하려 한다는 이른바 '무임승차' 눈총을 받을 수 있다는 부담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데이터 보호만 확보된다면 K-멜로디 사업에 우리회사 데이터를 적극 제공할 의사가 있다"는 한 제약사 연구책임자의 말에서 보듯 무엇보다 K-멜로디 사업에 데이터 보안이 전제돼야 한다는 게 참여 제약사들의 바람이다. 제약업계는 K-멜로디 사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수단이자 국내 제약산업의 비약적 성장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있다. 모처럼 경쟁관계인 제약사들이 한 뜻으로 뭉친 만큼 대승적 협력에 나서 우수한 성능의 AI 솔루션을 개발하고 다수의 블록버스터 신약을 배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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