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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오늘이 급한 소상공인에게 한 달 뒤는 멀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개최한 새해 첫 소상공인 현장 간담회 현장을 취재하다가 신용 취약 소상공인을 위해 마련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저신용자 직접대출 정책자금이 6일 신청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조기마감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조기마감에 대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관련 커뮤니티를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상황이 심각했다. 경영난 악화로 오매불망 정책자금 대출 신청만을 기다렸는데 손이 느려 신청을 못했다는 후기부터, 상황이 정말 어려운데 이런 정책자금이 있는 줄 이제야 알았다는 게시글 등이 불만들이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궁금증은 딱 하나였다. 다음 신청은 또 언제 받느냐는 것이었다. 소진공 관계자에게 물으니 일단 오는 4월로 계획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해당 내용을 비교적 짧은 기사로 작성한 후 송고했는데, 직후부터 소상공인들의 메일이 쏟아졌다. 상황이 너무 어렵다고 한탄하는 내용부터 4월에 또 신청을 받는 게 정말 확실하냐고 묻는 메일까지. 한 소상공인은 실제 대출 실행은 언제 받을 수 있는지 취재해달라는 문의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한 소상공인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가슴에 꽂혔다. 운이 좋게 대출 신청에는 성공했으나, 실제 대출 실행이 언제 이루어질지 몰라 가슴만 졸이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했다. '저신용 소상공인 자금'은 신용은 낮지만 사업성과 경쟁력이 있는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자금이다. 문제는 이 정책자금 신청부터 실 집행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이 정책자금은 대출 비율이나 연체, 세금 체납 등을 대출 제한 사항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정책자금을 신청한 소상공인은 다른 대출을 알아볼 수도 없고 연체를 할 수조차 없다고 한다. 희망을 붙잡기 위해 신청한 정책자금이 도리어 저신용 소상공인의 신용을 더 떨어트릴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소상공인 지원 최전선에서 고생했던 소진공의 애로사항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긴 설 연휴까지 낀 1월은 소상공인에게 너무나도 힘든 시기다. 대출의 실제 집행까지 설 연휴 전에 처리되는 것은 어렵다 하더라도, 승인 가부 정도는 다른 어떤 정책자금보다 빨리 안내하는 정책의 세밀함을 보여주는 게 바로 민생정책의 기본이 아닐까 싶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어게인, 개미의 봄

올겨울에도 대한민국 증시판에 상장사들의 꼼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올빼미 공시는 물론이고 자회사 일감 몰아주기, 쪼개기 상장 등 주주들을 분노케 하는 일들이 횡행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수페타시스는 장이 종료된 6시40분경 제이오 인수를 위해 5500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악재성 정보를 일부러 장 마감 후 기습 발표하는 '올빼미 공시'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수페타시스의 올빼미 공시로 시장이 떠들썩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12월 줄기세포 연구 전문 기업인 차바이오텍과 지아이이노베이션도 장 마감 후 유증 공시를 내는 등 올빼미 공시는 여전히 반복됐다. 무리하게 자회사 상장을 추진하는 상장사도 주주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폐암 신약인 렉라자를 유한양행에 기술이전을 한 오스코텍은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이 증명됐음에도 주주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자회사인 제노스코를 코스닥에 상장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오스코텍은 제노스코 예비심사 청구 하루 전 진행한 기업설명회에서도 자회사 상장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아 주주들로부터 깜깜이 중복 상장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코스닥 상장사인 삼목에스폼은 자회사 일감 몰아주기와 대주주의 차익 실현 의혹을 제기한 소액주주연대를 지난해 두 차례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시장에 충격을 준 바 있다. 기업들이 주주들의 반발을 알면서도 꼼수를 강행하는 데는 주주 보호보다는 사측의 이익을 더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주주들은 “회사가 꼼수를 쓰는 건 결국 대주주 배불리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나 중복 상장의 이면을 파헤치면 그 이익이 모두 대주주에게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업들의 꼼수를 막기란 쉽지 않다. 꼼수 방지의 출발점이 될 자본시장법 개정을 놓고도 여야 간 진통이 거센 상황이다. 탄핵 정국을 핑계로 여당도, 금융당국도 법 개정을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듯하다. 누구도 지적하지 않으니 기업들도 '배 째라'식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인 소액주주들에게로 전가될 것을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그나마 소액주주들이 힘을 합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주주행동 플랫폼 등을 통해 주주들이 지분을 결집해 주주행동에 나서고 있다. 최대주주 지분율을 넘어선 주주연대도 있고 주주활동 자금으로 수천만원 넘게 모금한 주주연대도 생겨났다. '뭉치면 산다'는 말이 있듯이 개미들의 결집이 대한민국 증시판에 봄을 일으킬 날이 오길 바란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기자의 눈] 얼어붙은 경기, 건설산업 투자부터 늘리자

내수 경기가 차갑게 식었다. 물가가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12·3 계엄사태'까지 터지며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기준선(100)을 밑돌았다. 전월(100.7)과 비교해서는 12.3포인트 급락한 수치다. 경기 후행지표인 고용에도 비상등이 들어왔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는 2804만1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5만2000명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던 2021년 2월 이후 3년10개월만에 줄어든 것이다. 특히 내수와 직결된 건설업(-15만7000명)과 도·소매업(-9만6000명) 감소폭이 크다는 점이 눈에 띈다. 경기 회복 기대감은 낮은 상태다. 정치 불안이 지속되며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제 통상 구도가 어떻게 짜일지 예측하기 힘들다. 유가도 불안한데 환율까지 치솟았다. 한국은행은 경제 성장 둔화 위험이 커졌다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환율 탓에 기준금리를 내리지 못했다. 이런 형국에 주목해야 할 분야가 건설산업이다. 고용 창출 효과가 큰데다 제조업을 비롯한 다른 산업으로 파급력이 커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건설활동이 제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를 보면 건설산업에 의한 제조업 생산유발액은 2020년 기준 157조원에 달한다. 제조업 총산출액의 8.9% 수준이다. 앞으로 건설투자를 5조원 확대할 경우 3만2000명의 건설산업 고용이 창출되고 연관산업 고용도 2만2000명 유발된다는 게 보고서의 요지다. 정부 재정지출 확대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건설산업 투자를 늘려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는 셈이다. 선택지는 다양하다. 정부는 이미 건설업 활력 제고를 위해 주택공급확대, 사회간접자본(SOC) 조기발주·착공 등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하남 교산 등 3기 신도시, 서울-세종 고속도로 등 예정된 공사 일정을 앞당겨 예산을 앞서 집행할 수 있다. SOC 예산 추가 편성도 검토해야 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SOC 예산이 전년 대비 1조원 가까이 감소한 탓에 건설경기 반등에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민간이 단기간에 분양을 늘리는 등 선택을 하기 힘든 만큼 관련 재원을 추가로 마련해 공공 분야 공사 물량을 늘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얼어붙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건설산업 투자를 '과감하게' 늘려야 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자국우선주의’ 트럼프 취임, 한국 에너지정책은 어디로 가나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 확대를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힌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20일 공식 취임한다. 최근 국제 사회에서 에너지 정책은 국가의 경제와 안보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트럼프의 정책은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의 에너지 정책 또한 국제적 흐름과 국내의 현실을 면밀히 검토해 신중히 수립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에너지 전환을 선도해 왔다. 그러나 일부 국가에서는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따른 전력망 불안정, 에너지 비용 상승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을 늘려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고 있다. 저렴한 에너지 공급을 통해 산업 활성화와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동시에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로 해석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보다는 기존 화석연료 자원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해 자국 경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에너지 정책의 흐름 속에서 한국은 현직 대통령이 구속됐고, 거대 야당의 주도하에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수정되고 있다. 과연 국가 경제와 에너지안보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국은 지리적, 환경적 특성상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보유하지 못한 나라다. 급격한 재생에너지 확대는 전력 안정성과 비용 측면에서 여러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원자력발전은 탄소 배출이 거의 없으면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며, 석탄발전은 경제성 측면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원을 무작정 줄이는 것은 오히려 국가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에너지 정책 수립에 있어 지나치게 정치적·이념적이거나 급진적 변화는 절대 금물이다. 에너지빈국에 국제정세와 경제상황에 민감한 한국은 글로벌 시장의 변화와 국내의 현실을 모두 고려한 신중하고 균형 잡힌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기술력을 발전시켜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전력 공급을 유지해야 한다. 석탄발전도 이산화탄소포집저장(CCS)와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재생에너지 기술의 효율성을 높이고 전력망의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이러한 방향이야말로 경제와 환경, 에너지 안보를 모두 지키는 길이 될 것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비대면 주담대 제동 건 법원의 등기시스템

비대면 주택담보대출이 활발해진 것은 불과 2~3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2020년 비대면 아파트담보대출을 출시한 데 이어 2022년 카카오뱅크가 비대면 주담대를 출시할 때만 해도 비대면 주담대가 활성화될 수 있을 지에 의문을 가지는 분위기였다. 통상 주담대는 규모가 커 차주들이 자세한 상담을 받길 원하는 데다 서류 제출, 등기 절차 등 번거로운 과정이 많기 때문에 비대면 영업에 제약이 많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시중은행에서도 비대면 주담대 상품을 내놓곤 했지만 인기가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달라졌다. 인터넷전문은행을 찾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영업점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함이 부각됐고, 디지털 선호도가 커지면서 지금은 비대면 주담대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전체 여신(42조9000억원) 중 29%를 주담대(12조5000억원)가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법원행정처가 오는 31일부터 도입하는 '미래등기시스템'은 비담대 주담대를 불가능하게 할 수 있는 소지가 있어 시대를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래등기시스템은 주택 거래 과정의 복잡한 등기 절차를 모바일 앱을 통해 간소화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되는 것이다. 취지만 놓고 보면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는 현재에 부합하는 시스템으로 보이지만, 현장의 부동산 거래 과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등기시스템에서는 주택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의 소유권이전등기와 주담대를 제공하는 은행과 매수인 사이의 근저당설정등기 절차를 오프라인(대면) 또는 온라인(비대면)으로 일원화하도록 하고 있다. 보통 소유권이전등기는 법무사를 통해 대면으로, 근저당설정등기는 비대면으로 처리하는데 미래등기시스템을 이용해 온라인으로 하려고 하면 모바일 앱을 통해 매도·매수자가 직접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야 한다. 법무사에게 부탁하기만 됐던 등기 과정에 불편함이 생기는 데다, 등기 이전에 시차가 생기는 등 리스크가 있어 부동산 거래자들이 비대면보다는 대면 절차를 선호할 것이란 게 은행권 예상이다. 이 경우 근저당설정등기를 위해서도 은행 영업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비대면 주담대는 사실상 취급하기 어려워진다. 이에 일부 시중은행은 비대면 주담대를 중단하기도 했다. 인터넷은행업계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비대면 주담대 취급이 어렵게 되면 직격타를 맞을 수밖에 없어 걱정스러워하는 눈치다. 무엇보다 은행권은 미래등기시스템이 충분히 홍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등기 과정을 디지털화하며 문제가 생기고 있는 만큼 충분한 계도기간을 두고 점차적으로 확대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원행정처와 은행연합회, 은행권은 16일 미래등기시스템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논의하기 위해 간담회를 가진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은행권의 목소리가 잘 전달돼, 본래 취지에 맞게 이용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미래등기시스템이 현장의 혼란 없이 도입될 수 있길 바란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혹시 엄마가 돌아가셨나요?”...목소리의 정체

“나유라 씨 휴대폰 맞으시죠. 엄마 친구 ㅇㅇㅇ입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얼마 전 퇴근 시간 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요즘 광고성 전화나 보이스피싱이 많다보니 모르는 전화번호는 가급적 받지 않는데, 한 번 수신거절을 했음에도 바로 연달아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휴대폰 너머 한 여성은 술에 취한 듯, 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나의 이름과 엄마의 이름을 도박또박 말했다. 목소리를 들은 순간 말할 수 없이 불쾌감이 들었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문자 부탁드린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전화를 끊은 직후에도 문자로 다시 한 번 해당 내용을 확인했다. 가뜩이나 최근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아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의 무사함에 안도할 때가 많았다. 그녀의 목소리와 문자는 나를 동요시키기에 충분했다. 다행히 엄마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고, 해당 친구 이름도 실존하는 인물이긴 했지만 번호가 달랐다. 엄마는 내가 전화를 받기 수일 전, 정부24를 사칭한 사기문자를 클릭했다가 악성코드에 노출된 모양이었다. 스미싱, 보이스피싱 피해는 엄마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또 다른 가족도 잠결에 교통법규 위반 벌금 부과 관련 문자를 확인했다가 악성 앱인 걸 깨닫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스미싱 범죄는 부고, 결혼소식을 알리는 식으로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문자 확인만으로 전 재산을 도둑맞을 수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2025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에서 올해 3월 중 보이스피싱 피해 방지를 위한 계좌개설안심차단서비스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민생침해범죄, 보이스피싱, 착오송금으로부터 국민재산을 보호하겠다는 다짐도 넣었다. 스미싱 피해자들은 갈수록 늘고 있는데, 정부의 예방 대책은 갈수록 더딘 느낌이다. 모르는 전화는 받지 말고, 문자메시지의 인터넷주소는 클릭하면 안된다는 게 예방법의 전부다. 이러한 예방법은 만약 문자를 클릭했다가 범죄에 노출되면, 문자를 클릭한 피해자의 과실이라는 이야기와 같다.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범죄자를 색출하고, 범죄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은 없는걸까. 혹은, 대책을 마련하는 것보다 피해자의 과실로 치부하는 게 손쉬운 방법이라서 손을 놓고 있는걸까. 아직도 보이스피싱이 개인의 일쯤으로 치부하는걸까.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의 수많은 부모와 자식들은 낯선 목소리에 애를 태우고 있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韓 증시 ‘기피’, 정치권이 키운다

“비트코인이나 미국 ETF(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하세요. 국내 주식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최근 한 투자은행(IB) 전문가가 한 말이다. 이는 처음 듣는 말도 아니다. 언젠가부터 많은 이들이 흔하게 한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언제 들어도 마음 아픈 말이 아닐까 싶다. 새해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로 코스피지수가 2500선을 돌파하며 유의미한 반등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증시에 대한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이런 흐름이 지속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뒤따른다. 그나마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전문가들은 약간의 호재가 발생하면 “중장기적인 투자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부연한다. 지수가 역사적 저점에 닿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국내 증시는 지난해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에 따른 관세 부담 우려, 12.3 비상계엄 사태로 발생한 정치리스크 등으로 큰 폭의 하락세를 겪었다. 증시 반등을 위해 우선 해결돼야 할 문제는 계엄발(發) 정치리스크 해소다.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안정감을 심어주는 게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미 낮았던 올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정치리스크로 더 낮아졌다. JP모건은 최근 한국 성장률을 1.7%에서 1.3%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내수 침체가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지난해 12월 소비자심리지수가 정치·정책 불확실성으로 급락하는 등 내수 부문이 취약한 상황인데, 당분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곧 현실화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관세 부과 정책을 대비하기 위해 정치권의 단합이 중요하다. 외부적으로 미국과 협상을 도모하는 것과 동시에 피해가 예상되는 산업군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인 것이다. 정치적 생명 연장을 위해 서로 이해득실을 따져가면서 리스크를 키울 때가 아니란 의미다. 미국의 강력한 자국 보호 무역주의로 우리 기업이 마주하게 될 환경은 매우 가혹할 것으로 예고됐다. 특히 수출기업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한국무역협회는 '2025년 글로벌 통상환경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25년은 우리나라 기업에게 험난한 풍파(Storm)와 같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이 '한국 주식도 투자 매력이 상당하다'는 말이 오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기를 바라본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조선업계 슈퍼 사이클, 이번이 마지막 기회

최근 오랜 불황의 파고를 넘어선 조선업계가 모처럼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 동반 흑자를 달성하는 경우가 드물었던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국내 대형 조선 3사가 지난해 3분기 일제히 흑자를 달성했다. 최근 각 조선사의 일감이 3년치가 쌓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지난해 4분기에도 동반 흑자가 예상된다. 지난해 연간으로 본다면 13년 만에 나란히 3사가 모두 흑자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최근 조선업계가 슈퍼 사이클(초호황)에 돌입한 영향이다. 선주가 주문을 해야 일거리가 발생하는 산업의 특성상 조선업은 선박 교체 주기에 맞춰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으로 손꼽힌다. 선박 교체 주기가 몰려 한꺼번에 일감이 쏟아지는 시기를 슈퍼 사이클이라고 불러왔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 산업이 세 번째 슈퍼 사이클에 돌입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전문가마다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첫 번째 슈퍼 사이클은 1963~1973년 동안이었고 두 번째는 2002~2007년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 슈퍼 사이클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 네 번째 슈퍼 사이클이 언제 찾아올지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여러 관측들이 나온다. 다만 조선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조선 산업에 네 번째 슈퍼 사이클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0~20년 이후에는 중국에 추월당해 국내 조선사를 찾는 선주들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매우 비관적인 예상이다. 이 같은 예상이 나오는 이유는 지금도 국내 조선 산업을 중국이 무섭게 쫓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2차 슈퍼 사이클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 조선사는 국내 빅 3의 그림자도 밟기 어려운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우위가 흔들리고 있다. 실제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가 지난해 9월 20일 기준으로 집계한 글로벌 수주 잔고를 살펴보면 8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의 발주 잔고를 살펴보면 중국 조선사가 70%를 차지했으나 국내 조선사는 25%를 수주하는데 그쳤다. 지난 2011년 국내 조선사는 8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의 75%를 수주에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3년 만에 점유율이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오랜 기간 동안 불황에 시달려온 조선사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찾아온 슈퍼 사이클 기간만큼은 시름을 잊고 샴페인을 터트려보고 싶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 조선사가 가격 경쟁력이라는 뚜렷한 강점을 앞세우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세 번째 슈퍼 사이클이 끝나는 직후 국내 조선사의 일감이 크게 줄어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국내 조선 산업이 네 번째 슈퍼 사이클을 맞이할 때까지 생존하고 지금의 위상을 지켜내려면 더 이상 중국이 쫓아올 수 없을 만큼 기술력과 경쟁력을 개선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기자의 눈] AI 지속가능성 실현하려면 ‘복제’는 안 된다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To Infinity, and Beyond!)". 픽사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속 우주비행사 캐릭터 버즈 라이트이어의 명대사다. 찬란한 비행을 꿈꾸며 한계를 극복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강한 울림을 줬다. 지난해 산업 현장을 취재하며 버즈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공지능(AI)이 지닌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미지의 세계로 항해하는 그의 도전정신이 일견 닮아서다. 공상과학 소설의 결말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AI는 운신의 폭을 계속 넓히며 산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주요 기업부터 중견·중소기업까지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혁신 방향을 찾기 분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별다줄(별 걸 다 줄인다)'이란 신조어처럼 '별 거에 AI를 접목하는'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최신 기술로 중무장하고,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업 대표들은 세일즈를 자처하며 판로 뚫기에 나섰다. 이에 대해 한 통신사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AI 투자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도태되면 죽는다'는 압박이 있다"고 말했다. 경쟁력 확보에 대한 현장 심리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러한 결연함이 무색하게 현재까지 선보인 AI 서비스 기능이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대화 요약, 질의응답, 통역, 보이스피싱 차단 등 주요 구성은 사실상 동일해 소비자 입장에서 느끼는 효과는 미미하다는 게 중론이다. 아직 초기 단계임을 감안하더라도 기업의 정체성이 담긴 AI 기능은 현재로썬 찾기 힘들다. 한 마디로 눈에 '확' 띌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AI가 없다는 의미다. AI 발전의 토대가 돼야 할 법적 가이드라인의 부재가 길었던 점이 주효했던 것도 사실이다. 주요 정책 방향과 전문인력 양성 등이 담긴 AI 기본법은 최근에서야 국회 문턱을 넘었다. 보완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각계 의견을 효과적으로 모으고, 국내 시장 여건과 해외 동향을 종합 고려해 강력한 법안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기업 역시 '한탕주의'에 젖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작금의 AI 투자 양상을 보면 본업이 뒷전으로 밀릴 만큼 기술 개발에 치우쳐지거나, 사업 방향성이 부실한 경우가 적잖다. '남들이 다 하니까' 섣불리 뛰어드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물론 수많은 실패작 가운데서 새로운 기술 모멘텀을 발굴할 수도 있지만, 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AI 서비스가 무한 증식된다면 대중은 금세 흥미를 잃을 수 있다. 이는 곧 발전이 정체되는 현상으로 귀결될 것이다. 문득 기술 등장 초창기 밀물처럼 들이닥쳤다가 엔데믹 직후 썰물처럼 빠져나간 메타버스를 떠올려본다. 어쩌면 첨단 기술이 무한한 공간 너머로 진출하는 걸 방해하는 건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기자의 눈] 다가온 ‘트럼프 2.0’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이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그의 공약대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 보편 관세 부과 등이 실현된다면 한국 산업계는 큰 타격을 면치 못할 것이 분명하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트럼프를 찾아가 한국 산업의 역량을 어필하고 그간의 우호적이었던 관계들을 잘 설명해 조금이라도 우리 기업들에 유리한 쪽으로 마음을 돌려놔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서로를 끌어내리고 비판하면서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쁘다. 트럼프 취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스탠스로 협상에 임할 것인지, 어떤 결과물을 가져올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은 여전히 없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유세 때부터 강력한 '관세정책'을 내세웠다. 그는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를 매기고 이외 모든 수입국엔 10~20% 보편관세를 매길 방침이다. 또 미국 우회수출 기지인 멕시코산 자동차에는 10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국을 비롯한 외국 기업의 강세로 미국 산업에 타격이 전망되자 강력한 보호주의로 자국 산업을 지키겠다는 취지다. 트럼프는 전기차도 싫어한다. 그는 “전기차는 사기"라고 언급할 정도로 친환경 정책에 부정적인 인물이다. 이에 그는 바이든 정권이 작품인 IRA 폐지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외의 다른 변수도 많지만 이 두 가지 성향만 보더라도 한국 산업계 특히 자동차, 배터리 업계엔 엄청난 타격이 예상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이나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을 이뤄왔기 때문이다. 기존 제공되던 세액공제 혜택이 사라지고, 원래 없었던 관세가 부과된다면 매출과 비용에 악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나서야 할 곳은 정부다. 트럼프 리스크로 인해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불안함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하루 빨리 이를 잠재울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치판을 바라보면 이러한 움직임은 전혀 포착되지 않고 있다. 모두가 올해는 '불확실성의 해'라고 긴장하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대통령 체포하기에 혈안돼 국외 사정은 신경 쓰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갈등은 잠시 미뤄두고 국가의 미래와 기업의 먹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고민하는 자세를 보이길 촉구한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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