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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이재명 정부의 내수진작을 위한 정책 방안

2025년 상반기 한국 경제는 여전히 민간소비 부진의 그림자 아래 놓여 있다. 최근 수출 경기의 일부 회복에도 불구하고, 내수 핵심인 민간소비는 높은 생활물가, 소득 정체 등으로 인해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2024년 하반기 이후 소매판매 지표는 전월 대비, 전년 동월 대비 모두 감소세를 보였으며, 준내구재와 비내구재 소비 등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모습이다. 통계청 서비스업 동향 조사에 따르면, 2025년 4월 기준 소매판매액지수(불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0.1% 감소했다. 전월 대비로도 소매판매지수(계절조정)는 -0.9% 하락해 소비 위축세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소비 부진은 단순한 경기 순환적 현상만이 아니라, 인구 고령화와 기대수명 증가에 따른 구조적 요인도 깊게 작용하고 있다. 은퇴 이후 길어진 노후에 대비한 저축 성향 강화로 민간소비의 GDP 대비 비중(소비성향)이 장기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더욱이, 생활필수품, 식품, 외식 등 소비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소비자들은 필수 소비외에는 지출을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3월 기준 식품 가격은 전년동월대비 2.4~2.8% 상승했다. 동 기간중 소비자가 많이 이용하는 외식 품목인 치킨, 떡볶이, 김밥 등의 가격상승률은 5%를 훌쩍 넘었다. 이러한 시점에 최근 새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는 내수 부양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전례 없는 대규모와 빠른 속도의 내수진작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필자는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내수진작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본다. 첫째, 대규모 재정 투입 및 신속 집행이다. 정부는 대략 20조원 내외의 규모로 경기 보강 자금을 마련하고, 상반기에 예산의 70% 이상을 조기 집행함으로써, 내수 회복의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 다만, 재정 확대 정책이 물가상승을 초래할 개연성이 있다. 따라서, 한국은행과의 긴밀한 정책 협의가 필요하다. 재정지출이 확대될 때, 한국은행은 필요시 기준금리 인상이나 시중 유동성 흡수를 위한 채권 매각 등으로 통화량을 조절해야 한다. 둘째, 소비 촉진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 올해 동안 한시적으로 소비에 대한 소득공제를 확대하고,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 직접적 소비 유인책을 시행해야 한다. 소비 쿠폰, 전통시장 등 특정 품목에 대한 추가 소득공제 및 할인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 또한, 지역사랑 상품권, 온누리상품권 등 지역화폐의 할인율을 상시적으로 적용하고, 월 충전한도를 한시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셋째. 서민·취약계층 지원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 농축 수산물 할인, 에너지·농식품 바우처 등 생계비 경감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 생계급여 수급 가구를 중심으로 현행 월 18.7만원 한도의 농식품 바우처의 한시적 증액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에 대한 현금지원, 생계비 보조, 바우처 등 이전소득 증가는 소비지출 확대에 효과적이다. 넷째, 지역경제 및 관광 활성화를 추진해야 한다. 지역 상권과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소비 진작 캠페인, 축제·이벤트 등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내 관광 및 방한 관광 인프라 확충을 통해 관광 소비를 늘리는 정책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체험 콘텐츠 확대, 외국인의 교통·입국 편의 제고, 온라인 예매 및 결제시스템 확충을 통한 소비 환경 개선, 테마 위주의 대규모 캠페인 강화 등 다양한 정책이 유기적으로 추진될 때 국내 관광 소비가 실질적으로 늘 수 있다. 다섯째,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매출 증대를 유도하는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내수 중심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판로개척, 마케팅 비용 지원 등 경쟁력 강화와 함께, 소상공인의 매출 증대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소상공인 대상 1:1 온·오프라인 무료 컨설팅과 함께 상권분석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여섯째, 중장기적으로 구조적 내수 기반 확충에 힘을 기울어야 한다. 인구 고령화, 고용 불안, 자산의 부동산 편중 등 구조적 요인 해소를 위해 퇴직 후 재고용 활성화, 금융자산 비율 확대 등 근본적 개혁도 병행되어야 한다. 신정부의 내수진작 정책은 단기적으로 침체된 소비심리와 경기 하강을 완화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인구구조 변화와 고용·소득 불안, 높은 가계부채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내수의 근본적 회복은 쉽지 않다. 결국, 새 정부는 단기적 경기부양책 마련과 함께 중장기적 내수 기반 확충을 위한 구조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서지용

[이슈&인사이트]돌고 돌며 진화하는 국제통상규범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한국유럽학회장 점차적 자유무역을 추구하던 국제사회의 주요국 통상규범들이 최근 들어서 보호주의적 색채를 가지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자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내 산업에 대한 규제에 적용하던 기준을 역외에 강하게 적용하려는 노력은 많았지만, 미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관세부과를 주요한 무기로 보다 노골적인 통상 규제를 강화하는 상황이다. 유럽은 통합된 역내시장에 적용되는 여러 기준을 강화하면서, 기술과 공정성 규제 등을 역외기업과 상품 등에도 적용하면서 새로운 개념의 통상 규제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느려지는 경제발전과 불경기 상황을 타개하고자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조치를 명확하게 강화하는 중이다. 1990년대 출범한 WTO가 진정한 세계무역기구로서 국제사회의 통상환경을 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법의 지배라는 '아름다운' 철학을 반영하였는데, 당시에는 이러한 상황을 두고 국제사회에 팽배하였던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통제는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예상도 있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부터 각국은 무수히 많은 자유무역협정(FTA) 또는 관세동맹(Customs Union)과 같은 특혜무역협정(Preferential Trade Agreement)을 체결하면서 지역경제공동체를 만들거나 국가 사이에 이전보다 자유로운 무역환경을 조성하였다. 이와 같이 국제사회는 자유로운 무역을 추구하고 통일된 경제 기준을 만들자는 의지를 더욱 강조할 것으로 보였다. 2024년 12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남미공동시장(MERCOSUR) 사무국은 양측이 1999년에 시작하여 25년을 소모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마무리하였다고 발표하였다. EU는 유럽의 1위와 3위이자 세계 3위와 7위의 경제 대국인 독일과 프랑스가 속한 세계 3대 경제권으로, EFTA와 영국 등 비회원국과도 시장을 공유하며 유럽경제통합의 핵심이다. MERCOSUR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4개국으로 구성되어 매년 2조 2,00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생산하는 남미 최대의 경제 공동체이다. 유럽의 EU 27개 회원국과 남미의 MERCOSUR 4개국 인구는 7억 명이고, 이들의 경제 규모는 전 세계 GDP의 25%를 차지하는 등 경제적 영향력이 매우 크다. 따라서 유럽과 남미 사이의 FTA는 대서양을 연결하는 경제적 교량을 구축하는 것이며, 환경과 인권 문제 등 양측이 민감하게 생각하던 논점을 무역과 경제라는 매개체로 합의하게 된 것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이 협상은 EU가 아마존 삼림 벌채 억제와 환경 보호에 관한 의무 조항 등 새로운 조건을 요구하면서 지체되었는데, 작년 리우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브라질이 강력한 환경 문제에 해결 의지를 보이며, 협상의 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25년에는 관세율 인상을 주된 수단으로 하는 미국 정부의 무역 공격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그 대상에는 중국과 같은 오랜 미국의 무역 불균형 대상국만 포함된 것이 아니라, 캐나다와 멕시코 등 가까운 경제동맹국도 포함되었다. 물론 EU와 일본 그리고 한국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유예기간을 두고 협상을 벌이기도 하면서, 이러한 사태가 조금 시간을 벌면서 풀어나갈 가능성을 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이 전통적으로 추구하였던 '자유로운 무역'이라는 철학은 사라진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당분간 어떤 식으로든 유지될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많은데, 이는 결국 1980년대 자유무역을 추구하며 진행되었던 우루과이라운드(UR) 이전의 보호무역주의 시대와 비슷해진다는 걱정이 많아진다. 한편, 한국은 최근 EU와 디지털무역협정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것은 한-EU FTA로 조성된 무역환경이 디지털로 대표되는 수단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양측이 조약으로 대응한 것이다. 정부와 기업은 EU-MERCOSUR FTA, 미국의 무역 정책, 중국의 대응과 경제불황 등의 변수들이 국제무역환경과 국내의 산업에 주는 영향을 살펴봐야 하는데, 결국 국제통상규범이 돌고 돌면서 반복되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논제가 첨가되면서 조금씩 진화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진화하는 국제통상규범을 보면, 진화의 과정에서 추가되는 새로운 논제가 보이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 과제를 가늠하게 한다. 김봉철

[박원주 칼럼] 이재명 대통령의 비상경제 운영에 거는 기대

대선이 끝났다. 2024년 12월 계엄 사태 이후 반년 동안 이어온 국정과 경제의 혼란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 우리가 아무것도 못하고 넘어지지 않으려 급급하는 동안 세계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국내 경제의 어려움 또한 가중되었다. 제대로 된 리더십이 있었다면,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다가오는 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기민한 행동을 기대해 볼 수 있었을텐데, 앞바다에서 수십미터 높이로 들이닥치는 거대한 쓰나미를 맥없이 바라보는 어린아이처럼 우리는 아무 대책도 없이 이 중요한 시기를 허비했다.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사태 앞에서 민생과 국가 경제의 생존이라는 어젠다가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계엄과 탄핵, 대선이라는 극단적인 광기와 혼란, 마찰과 분열의 시기를 막 끝낸 우리 앞에 놓인 계산서는 냉정하다. 악화된 경제지표와 서민의 현실은 일자리, 소상공인 매출과 폐업, 가계대출 등 대부분의 서민 관련 지표들이 악화된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2022년 이후 임금근로자의 신규 일자리수는 11분기 연속해서 줄곧 줄어왔다. 특히 건설업과 제조업, 숙박업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경기침체 여파로 소상공인들의 매출도 작년에 비해 크게 줄고 있다. 개인사업자 대출이 있는 사업장 360여만개 중 50만개가 폐업이라는 통계도 보인다. 가계 대출 규모 또한 작년 2/4분기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소비, 건설 투자 등 내수 경기 지표도 부진하다. 올 1-4월의 소매 판매 불변지수가 작년보다 줄었고, 건설 기성도 작년보다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제조 평균 가동률도 올 4월 73.8%로 작년보다 줄어들었다. 이에 더해 트럼프발 관세 전쟁의 여파가 현실화되면서 수출에도 주름이 잡히고 있다. 금년 5월에는 수출이 1.3% 감소했다. 석유 제품,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부품, 전기차, 디스플레이 등의 수출 감소세가 특히 두드러져 보인다. 앞으로 더 많은 제조업 분야가 수출 감소의 위기를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재명대통령의 새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는 이 외에도 무수히 많다.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전 국민의 극단적인 대립과 분열을 해소하고 화해와 통합을 일구어야 한다. 양극화와 세대 갈등, 지역분열의 씨앗이 되어 공동체의 불안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충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트럼프 2기의 관세전쟁과 가치동맹 소실에 대응하여 각자도생의 시기를 살아남을 수 있는 균형잡힌 외교안보와 국제협력, 자주국방의 길을 열어야 한다. 눈앞에 닥친 초고령화 사회가 제기하는 수많은 도전과제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기후위기시대의 글로벌 공조체제에서 우리 몫을 다하고 그린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실행력과 지속가능성을 구비한 온실가스 감축의 새로운 로드맵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숙제들은 우리가 살아 남아야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경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특단의 전환 필요 당장 우리가 직면한 경제적 생존 환경은 척박하고도 암울하다. 서민이 살아야 내수가 살고, 내수가 살아야 중소기업이 살며,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받쳐 주어야 대기업의 글로벌 도약이 가능하며, 대기업의 성과가 국내에서 양질의 일자리로 이어져야 서민경제가 살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 정반대의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형국이다. 흐름을 바꾸는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첫날 바로 비상경제 대응TF를 가동하고 직접 회의를 주재했던 것은 그런 의미에서 너무나 필요했고 마음이 놓이는 일이었다. 3년전 전임자가 취임 일성으로 '자유'라는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편향외교와 정적 탄압에 국정의 방향타를 세웠던 것이 이번엔 반대 방향으로 되풀이되는 것이 아닌지 많은 국민들이 걱정스러워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실용주의와 중도의 기치 아래 국민의 삶을 가장 앞에 세우겠다는 것이 위정자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임에도 그러지 못할까 두려워할 만큼 우리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기대는 극도로 낮아져 있었던 것 같다. 이젠 그런 '사소한' 걱정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정치인이 풀어야 하는 최고의 숙제는 당연히 당면한 민생의 위기일 것이다. 이번 비상경제 운영의 핵심에도 추경 편성을 통해 민생의 어려움을 해소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비상경제가 우선이고 개혁 과제는 후순위의 일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공감한다. 그러나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을 놓칠까 우려스럽다. 위기 극복의 조건은 고통감내와 혁신이다 흔히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 경제의 궤적을 돌이켜보면 그 말이 대부분 맞았다. 그러나 위기가 당연히 기회가 된 것은 아니었다. 위기를 이겨내는 우리의 방법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이란 너무도 당연하게 고통과 인내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가깝게는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1997년의 IMF 외환위기가 그러했고 멀게는 1973년과 1979년에 일어난 2차례의 오일쇼크가 그러했다. 우리는 진통제와 마약으로 위기를 견디고 다시 일어선 것이 아니다. 이를 악물고 환부를 도려내고, 상처부위의 피를 지혈하고 소독약과 항생제를 뿌려가면서 질병의 원인을 찾아 뿌리 뽑는 독한 의지를 발휘했기 때문에 세계가 놀라는 '기적'들을 연달아 만들어 내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IMF가 강요한 처방은 시장개방과 개혁이었다. 그들은 과연 우리나라가 외화 지급불능의 위기를 이겨내고 선진국으로까지 도약하리라 기대했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IMF의 처방은 폐쇄되어 있던 우리 경제를 세계적 투기자본들이 약탈적 히트앤런을 되풀이하는 난장판으로 만들거나 부진한 개혁이행과 고질적 정경불안, 경기침체로 채무불이행이 거듭되는 남미형 정체경제로 쇠락시켰을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이를 바꾸어 놓은 것이 DJ정부의 결기였다. 기업과 공공부문의 과감한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국민들이 생활하고 사고하는 방식마저도 뒤집어 놓았다. 방만한 경영과 문어발식 경영 확장으로 외형의 거대화만을 추구했던 우리 기업 집단들은 사업 구조조정과 대량 정리해고 등 극단적인 경영개선 활동을 통해 생존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가장 기민하게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최적의 체력을 갖추게 되었다. 중소기업, 대기업 할 것 없이 도산이 줄을 이었고,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 50대의 가장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와야 했다. 이전 같았다면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노동쟁의와 파업 등 극한 대립으로 치닫았을 노조들 또한 행동을 자제했다. 나라가 살아야 미래가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적 시장개혁이 있었던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진보정권이었던 DJ정부 때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2025년의 위기, 과거와는 다른 해법 필요하다 2025년 우리가 직면한 비상경제 상황은 일견 1997년처럼 유혈이 낭자한 지경은 아니다. 새 대통령 취임이라는 낭보에 주가와 외환 등 일부 경제 지표가 크게 반등하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우리 경제는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정도는 아니라지만 상황을 호전시킬 수단 또한 대부분 소진된 난감한 지경임을 알 수 있다. 예전처럼 고통을 참고 인내하고 더 부지런하게 노력하는 것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각종 규제가 중첩되고,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노동시장과 기업운영의 경직성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 시장환경이 급변하면서 대기업들마저도 끊임없는 사업재편을 통해 살 길을 찾아나가야 하는데 이를 도와주어야 할 금융시스템은 아직까지도 '우물안 개구리/구멍가게'란 멸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대외적인 부분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시발점으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의 흐름, 중국 제조업의 무분별한 확장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점점 그 폭과 빈도를 키워가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교란, 챗GPT 등 AI 신기술을 필두로 우리 제조업의 비교우위에 근본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글로벌 기술혁명의 전개, 미중 대립구도를 매개로 확산되고 있는 자원 민족주의와 세계시장의 블록화, 온실가스 감축을 명분으로 하는 새로운 시장 규제의 보편화 등 우리 혼자 힘으로 풀 수 없는 난제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코로나 19가 터진 이후 세계 경제에 누적된 군살은 어마어마했다. 일상으로의 복귀 이후 모든 나라들이 경제 정상화를 위해 매진했다. 그러나 건설부문의 PF 부실이 해소되지 않고 있고, 가계부채 잔고가 GDP를 넘어섰는데 시장에서는 소상공인의 줄폐업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지난 3년간 우리나라가 누적된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새 정부는 이처럼 지난 정부가 게을리했던 시급한 숙제까지 떠안게 되었다.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시장을 살린다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기업과 개인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까지는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비상경제 운영의 핵심에는 민생안정과 더불어 시장경제 건전성을 제고하고 기업 경영의 활력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비상'이란 말을 빼는 순간, 우리 국민들은 고통과 인내를 떠올린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감언이설과 당장의 위로가 아니라 진실을 알리고 공감을 얻어 위기를 극복하는 노력이다. 하기 싫더라도 우리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것, 그것이 당면한 비상경제 운영의 기본이다. 이는 모든 국민들에 있어 그러하고, 집권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박원주

[신율의 정치 내시경] 단순 득표 합산의 함정: 이준석 지지층의 실제 이동 패턴

선거 결과를 분석할 때 가장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만약 A후보가 없었다면 그의 표가 B후보에게 고스란히 갔을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론적으로 이준석 후보와 김문수 후보의 득표를 합하면 이재명 후보를 넘어선다고 분석하며 단일화를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들은 이런 주장을 하면서, 이준석 책임론을 들고나오거나 아니면 선거에서 진 것이 아니라는 일종의 '정신 승리'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지지층 분석이나 출구 조사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이런 주장은 '주관적 희망'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이준석 후보를 지지하는 계층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뉜다. 첫째는 보수적 성향을 가지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이들, 둘째는 민주당 성향이지만 이재명 대통령을 선호하지 않는 이들, 그리고 셋째는 이준석 후보 자체를 본래부터 지지하는 핵심 지지층이다. 출구 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면, 다른 세대에 비해 2030 남성들이 이준석 후보를 가장 많이 지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젊은 세대들의 투표 패턴을 분석해 보면, 이들은 최소한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이재명 후보를 선호하지 않는 층은 아니다. 이들은 기존 보수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바탕으로 한 '개혁적 보수'를 지향하는 성향의 유권자로 분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즉, 김문수 후보와 같은 강경한 보수도 거부하고, 민주당의 '진보 노선'에도 매우 부정적이어서, 또 다른 '보수의 대안'인 이준석 후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표 행태는 기존의 '고루한 형태의 보수'에 대한 거부감과 더불어, 평등과 분배만을 강조하는 기성 진보의 이념 지향성에 대한 거부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이런 성향의 젊은 세대들의 지지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이준석 후보가 만약 선거 막판에 사퇴했다면, 그의 지지층은 김문수 후보로 움직였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출구 조사 데이터와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이준석 후보 지지층 중 보수 성향을 갖는 이들의 비율은 약 30%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2030 세대 남성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이 전부 김문수 후보 지지로 이동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실제로 김문수 후보 지지로 이동하는 비율은 많아야 20% 수준에 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준석 후보를 지지했던 나머지 80%는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일부 민주당 성향의 지지층은 이재명 후보 지지로 옮겨갔을 것이고, 일부는 기권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2030 세대의 경우 '차악'을 선택하기보다는 아예 투표를 포기하는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앞서 언급했듯이, 이준석 후보에 대한 지지가 주로 젊은 남성 유권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인데, 이는 과거 20대 대선에서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이준석의 성별 갈라치기 전략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흥미로운 점은 젊은 세대들의 남성들이 성별 갈라치기와 개혁적 보수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진다. 젊은 남성의 이런 정치 의식을 과연 '개혁적 보수'를 향한 지향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그것이다. 성별 갈라치기 전략을 구사했음에도 이번 대선에서 이준석 후보를 지지한 것은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이 건설적인 대안 모색보다는 감정적 반발로 나타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 방식은, 이성에 입각한 이념 지향보다는, 감성과 이념이 뒤섞인 측면이 강함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이준석 의원이 중도 사퇴를 했다고 하더라도, 김문수 후보가 당선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수층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가정을 가지고 현실을 해석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신율

[이슈&인사이트] 코너로 몰리는 트럼프 관세와 외교 무대에 등단하는 이재명 대통령

트럼프의 관세 부과 정책이 지난 달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지난 달 28일 국제무역법원(CIT)은 트럼프가 관세 부과의 이유로 들고 있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전세계적 관세 또는 보복관세를 정당화할 어떠한 법적 권한도 부여하지 않는다고 명시하면서 전면 무효화 그리고 행정명령의 시행을 영구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바로 트럼프는 29일 미 연방순회 항소법원(CAFC)에 항소하여 CIT 판결에 대한 가처분 인용을 받은 상태다. 5월 10-11일 제네바에서 미·중이 만나 관세회담을 한 후 미국은 중국의 관세를 145%에서 30%로 원상복귀 시켰고 90일 간의 유예 기간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풀지 않자 트럼프는 격노했고 지난 6일 극적으로 시진핑과의 전화 회담이 성사되어 오는 9일 런던에서 미·중 관세 협상이 진행되었다. 이 번 회담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기사의 예측대로 양국 간 무역 전쟁이 최근 관세에서 수출통제로 초점이 전환되면서 관세 문제보다는 미국은 중국에게 희토류의 안정적 공급을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중국 수출통제의 해제를 다소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시장은 역설적으로 트럼프의 TACO(Trump Always Chicken Out) 성향을 알고 있어 관세가 궁극적으로 10%로 수렴될 거라는 자신감으로 각국의 주가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돌파하고 있다. 독일, 영국 등 유럽의 주가지수는 물론 미국의 S&p 지수는 6000 포인트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관세 카드 패가 읽혀면서 중국에게 관세 문제보다 희토류 공급을 요청해야 하는 등 관세 문제에 대해서 양치기 소년이 되어 가고 있다. 게다가 지난 주 트럼프와 머스크의 충돌에서 보듯이 측근과도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있다. 트럼프는 최종적으로 그가 가장 공들이고 있는 감세 재원을 만들기 위한 관세의 조속한 타결이 필요하다. 하지만 관세협정이 코너로 몰리면서 유예기간이 끝나는 다음 달 8일까지 과연 몇 개국과 타결이 될지도 불확실한 상태다. 그가 예상한 관세가 징수되지 못한 상태로 감세법안이 상원을 통과해 발효된다면 10년간 거의 4조 달러에 가까운 재정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부담감마저 안아야 한다. 사법부도 그 어느 나라도 그의 말이 통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11월 초 트럼프 당선 이후 한국·일본 등 주변국에 대한 태도가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올 10월말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참석 가능성도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부터 일본도 중국과의 접촉을 늘리며 중일 관계 개선에 눈에 띄게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다케시 일본 외무상이 중국을 방문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을 한 후 리창 중국 총리를 면담했고 지난 1월에는 일본 자민·공명 연립여당 간사장이 12명의 방중단을 이끌고 중국 공산당과의 정당 간 교류를 7년 만에 재개했을 때도 방중단은 중국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최근 10년간 이렇게 많은 공산당 고위 간부가 일본 측을 환대한 건 처음이다. 이런 환경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캐나다에서 열리는 G7 회담에 초청을 받아 드디어 외교무대에 등단한다. 세계 강대국 지도자들에게 첫 선을 보이는 자리다. 그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심어 주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이 번 만남에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거리두기를 요구할 게 틀림없다. 다자에서 지역 무역체제로의 전환 시기에 우리도 더는 중립 외교 노선을 취할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일본처럼 중국과의 무역 실리는 포기할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의 G7 등단이 우리 국민에게 관심과 기대가 되는 이유다. 최용

[이슈&인사이트]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이 비상계엄의 원인이 되었다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로서 필요한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다. 그리고 높은 산이 막고 있어 군사.안보적으로도 천혜의 요새와 같다. 또한 국가적 행사나 의전 행사 시설과 공간도 매우 훌륭하다. 다른 나라 정상들이 방문했을 때 국가의 위신을 과시한다는 측면에서도 청와대는 매우 효과적이다. 그런데,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구중궁궐 같아 소통에 문제가 많다고 하면서 이 좋은 청와대를 떠나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겨 '용산 시대'를 열었지만, 불통 대통령이 되고 불명예 퇴장하게 되었다.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함으로써 새로운 관저가 필요해졌고 외교목적으로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던 외교부장관 공관을 징발하다시피하였다. 그리고 시설 개·증축 공사를 하느라 윤 대통령이 취임한지 6개월 만에 관저 입주가 마무리됐는데, 서초동 사저에 머물던 도중인 2022년 9월 김건희 여사가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최재영 목사로부터 디올백을 수수하였다. 2023년 11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디올백 수수장면을 담은 영상이 공개되어 파문이 일기 시작하면서 윤 대통령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디올백 수수에 대한 사과를 둘러싸고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이끈 수사팀은 김 여사를 검찰청사가 아닌 경호처 부속청사에서 비공개 조사하고 이원석 검찰총장을 '패싱'하고 무혐의 불기소 처분하였다. 검찰의 불기소는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김 여사 특검 요구 명분만 키워주었다. 한동훈 대표가 불기소에 불만을 표시한 것은 물론이다. 민주당등 야권은 김 여사에 대한 특검을 더욱 더 세게 밀어붙이고 있었는데, 당원게시판 사건으로 대통령실과 극심한 갈등관계에 있었던 한동훈계 의원들이 찬성하면 특검이 통과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돌았다. 그때 마침 윤 대통령이 명태균 선거 브로커와 통화한 음성이 공개되어 큰 파문이 일고 있었다. 김건희 여사 특검 통과 가능성도 높아짐에 따라 윤 대통령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멘붕에 빠져있었을 것이다. 결국 12월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 김 여사 특검 재의결 투표가 예정된 2024년 12월 10일로부터 바로 1주일 전이었다. 군대를 면제받아 총 한 방 쏜 경험이 없었을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대통령실 이전과 깊은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대통령실이 군부 총사령부인 국방부 청사로 들어가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군부가 마음먹기에 따라 쿠테타가 매우 용이해지기 때문에 이것은 피하는 것이 상식이다. 윤 대통령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생각으로 용산으로 나왔으나 대통령실이 군대에 둘러싸이고 군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면서 군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아무래도 함께 있다 보면 식사라도 한 번 더 하게 되어 같이하는 시간이 많게 된다. 실제로 용산 대통령실에 군 인사들의 내왕이 잦았다는 말이 돌았다. 결국 대통령실이 국방부, 합동참모본부와 동거하면서 용산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비상계엄의 진원지가 되고 말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실은 이른 시일내 청와대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당선 시 대통령 집무실을 어디에 둘 것이냐는 질문에 “청와대가 제일 좋다"며 “아주 오래됐고, 상징성이 있고, 거기가 최적"이라고 했고, 용산 대통령실에 대해서는 “도청이나 경계, 경호 문제 등 보안이 심각하다"고 말한 바 있다. 조기 대선으로 인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업무를 시작하는 만큼 일단은 용산 대통령실을 사용하다가 청와대 보수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청와대로 복귀할 방침이다. 가능한 빨리 옮기려고 할 것이다. 역술인이 관여했다는 의혹에 쌓이고, 미국의 도·감청 논란으로 시끄러웠고, 비상계엄 선포로 국가가 혼란에 빠졌던 '용산 시대'는 불명예 퇴장한 대통령과 함께 끝나게 되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기 않기를 바란다. 이강국

[이슈&인사이트] 세종 치세의 시작은 정적의 포용이었다

이 나라가 개국한 이래, 최고의 통치자로서 세종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정인지의 《훈민정음》 서문에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리신 성인으로서 제도와 시설이 백 대의 제왕보다 뛰어나시어, 정음의 제작은 전대의 것을 본받은 바도 없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졌으니, 그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인간 행위의 사심으로 된 것이 아니다."라고 칭송한다. 세종실록 세종 조에 보면 “신하 부리기를 예도로써 하고, 간하는 말을 어기지 않았으며, 대국을 섬기기를 정성으로써 하였고, 이웃 나라 사귀기를 신의로써 하였다. 인륜에 밝았고 모든 사물에 자상하니, 남쪽과 북녘이 복종하여 나라 안이 편안하여, 백성이 살아가기를 즐겨한 지 무릇 30여 년이다. 거룩한 덕이 높고 높으매, 사람들이 이름을 짓지 못하여 당시에 해동요순이라 불렀다."라고 평하고 있다. 세종의 치세를 논할 때 부왕인 태종의 사전 준비에서 찾는다. 조선조 초기 신권과 왕권의 대결에서 완전한 왕권의 확립으로 세종조의 정치적 안정을 확보했다. 1, 2차 왕자의 난을 통해서 권력의 중심으로 등장한 정사공신과 좌명공신, 거의 전부를 제거해서 신권으로부터 세종을 자유롭게 하였다. 1등 좌명공신 이숙번뿐 아니라 민무구 등 처남 4명과 세종의 장인 심온 마저 숙청하여 왕권을 반석 위에 올렸다. 그러나 어느 왕조도 채찍만으로 선정을 담보한 예는 없다. 선정의 핵심에는 당근이 있어야 한다. 바로 정적의 포용이다. 세종을 조선조의 최고 통치자라고 한다면 조선조의 최고 신하는 황희다. 1449년(세종 31) 모든 벼슬에서 물러나기까지 24년을 정승의 자리에 있으면서 세종의 정치 고문이자 명재상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벼슬살이만 73년 했다. 황희는 부친 황군서와 모친 용궁김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태조와 정종 대에는 자신이 볼 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임금의 명령이라도 거부하는 완고함으로 여러 번 파직되어 관직 생활이 평탄하지 못했다. 태종 대에 도승지로 임명되어, 양녕대군의 폐세자 건이 나왔을 때는 적장자 계승 원칙을 고수하며, 세종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여 태종의 노여움으로 파직되어 유배를 갔다. 황희는 강경하게 세자 책봉을 반대한 세종의 정적이다. 그런데 세종은 등극하자 맨 처음 정적인 황희를 중용하여,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8년간 영의정으로 세종조의 치세를 이끌게 했다. 세종은 진보적으로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나간 면이 있었다. 황희는 대세를 관통하는 보수적 시각으로 세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수행했다. 세종은 재임 32년간 2,276회(71.1회/년)의 경연을 통해서 정적과 합치를 추구하였다. 당시 조선은 황희, 윤회, 정인지, 최만리 등 유생이 정치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불가의 변계량, 도가의 맹사성, 법가의 허조가 이를 견제했다. 지역적으로 변계량, 정인지, 허조는 영남, 윤회와 맹사성은 호남, 최만리는 이북 출신이다. 그 중심에 경기 출신 황희가 있었다. 여기서 세종의 위대함은 정적을 포용하고 균형을 맞춰 견제함으로써 신권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과학적인 문자 체계인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여유를 가졌다. 또한 그 여유는 과학 기술, 예술, 문화,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지금의 한국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정적을 관용하는 세종의 포용력이다. 역술인 중에는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을 청와대의 풍수에서 찾는다. 그러나 정치를 자동차에 비유하면 한국 정치는 브레이크(정적)가 없는 자동차다. 윤석열 대통령은 재직 2년 반에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준석, 김기현, 한동훈 등 3명의 당 대표를 갈아 치운 것은 자동차에서 브레이크를 제거한 것과 같다. 그러면서 민주당과 대결에서 액셀을 계속 밟았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의 액셀을 계속 밟으면, 사고 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윤덕균

[이슈&인사이트]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우리 경제는 내수부진과 가계부채 누적, 대외 불확실성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저성장 국면을 맞고 있다. 올해 1분기 GDP가 전분기 대비 약 0.2% 감소하는 등 경제 성장이 마이너스권으로 전환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성장률이 1% 안팎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소비심리가 얼어붙고 기업투자가 위축된 결과다. 실제로 주요 경제지표는 이런 저성장 기조를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작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OECD 평균보다 높았지만, 실질임금 상승률은 거의 제로 수준에 그쳤다. 이러한 장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새 대통령은 일시적 수요부양 정책보다는 과감한 중장기 전략을 바탕으로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내수경기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최근 발표된 통계에서 소매판매와 서비스업 생산이 전월보다 감소세를 보였다. 국내소비는 고물가·고금리·높은 실업률 등 복합요인으로 위축되어 있다. 금리인하와 세금 부담 완화 등의 거시경제 정책으로 소비를 되살리는 동시에, 구조적 개혁으로 장기적 내수회복을 꾀해야 한다. 유아 및 노년층 복지 서비스를 강화로 소비여력을 높일 수 있다. 청년·중장년 등 계층별 일자리 지원과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하여 노동소득 기반을 넓혀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자영업자의 금융지원 외에도 근로자와의 협력구조를 통해 무분별한 임금상승보다 중장기적 상생구조를 이루는 것이 좋다. 단기적 경기부양책뿐 아니라 인구구조변화에 대비한 장기 전략도 필요하다. 각 산업계에 AI 적극 도입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그에 따라 임금이 자연히 상승하는 동시에, 가격경젱력 확보로 수출를 증대시키는 공급측면의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둘째, 누적된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구조적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90%를 웃돌며 전세보증금을 포함할 경우 150%를 웃도는 등 단연 세계 최고수준이다. 높은 부채비율은 이자 부담으로 이어져 소비를 억제하고 금융 시스템의 불안 요인이 된다. 정부가 도입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강화 등 대출 규제는 과열을 잠시 진정시킬 수 있으나 근본적 해법은 아니다. 가계부채의 본질적 원인이 부동산 가격 상승과 소득 불안정에 있는 만큼, 주택시장 안정과 일자리 증대가 해법이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가계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변화시킬 수 있도록 주택 외에도 다양한 자산에 대한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으로 주택에 대한 투기수요를 줄이는 것이 좋다. 주택담보대출 외에도 고령화 시대의 노후소득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공적연금과 사회복지제도를 보완하여 생계형 부채증가를 억제해야 한다. 이는 건강한 고령층이 AI의 도움으로 다시 생산성을 높여 노동기회를 확대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급변하는 대외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미국의 관세뿐만 아니라 미중 갈등의 향배는 한국의 수출·투자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은 여느때보다 우방의 도움이 절실한 시점이며 우리는 이에 미국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도록 적극 협상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의 연방 우산 속에 우리의 위치를 확고히 하여 보호무역주의를 회피하는 동시에 한미동맹과 경제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기회가 된다. 반면 중국과도 전략적 경제협력 관계를 유지하여 수출시장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외적으로는 균형외교 전략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수출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AI 투자로 성장동력을 강화해야 한다. AI는 우리의 미래 먹거리이므로 정부는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AI 인프라 구축에 2000년대 인터넷 망 구축에 투입된 예산의 10%밖에 투입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정말 통곡할 일이다. 현재는 AI라는 기술대륙을 누가 선점하느냐의 전쟁 중인데 우리는 아직 전쟁에 뛰어들 엄두도 못내고 있으니 오호통재이다. 의대정원을 증대로 사회 내분을 조장할 것이 아니라, AI 로봇으로 수술하고 진단하여 의료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AI에 집중 투자해야할 시기이다. 이외에 새 대통령이 풀어나가야할 문제는 너무나 많으나 지면이 짧을 뿐이다. 새 대통령은 우리나라 향후 백년의 운명을 가르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부디 현명한 정책으로 향후 백년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혀주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이다. 김수현

[윤석헌 칼럼] 새정부 금융정책의 혁신과 위험

21대 대선 본투표가 내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로 들어설 새정부는 금융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갈지 궁금하다. 대선 막바지에 각 캠프가 발표한 새정부 금융정책 공약은 악화된 경기침체 속에 소상공인, 자영업자, 청년 등 금융취약계층의 어려움 해결을 위한 금융지원 확대를 주 내용으로 한다. 이에 금융권으로부터 벌써부터 상생금융 압박을 우려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런 이슈들이 대선공약의 주 내용을 차지하는 이유가 금융권의 역할에 대한 국민의 불만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간 인터넷뱅크 성과에 비추어 기대할 게 없음에도 복수 후보들이 제4차 인뱅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 역시 은행의 미흡한 중개역할 때문으로 이해된다. 더 나가 토큰증권 법제화, 원화 스테이블 코인, 가상자산 ETF 상장과 STO 발행허용 그리고 디지털자산허브 공약 등도 대부분 그 배경에 전통금융 서비스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깔려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한국금융은 두 가지 커다란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첫째는 이제부터 한국경제 선진화 과정에서 금융의 중개역할에 대한 요구다. 한국금융은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정부주도형 경제성장 과정에서 정부의 규제와 보호 속에 안주했고, 외환위기 이후에는 소매금융으로 전환하면서 소위 '부동산 불패' 신화 속에 특별한 위험부담 없이 주택담보대출을 공급하여 수익을 창출했다. 국가 경제활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위험은 누군가 반드시 부담해야 하는데, 이를 금융권이 부담하지 않으면 소비자 및 국민 부담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위험관리 전문가인 은행이 금융행위로부터 발생하는 위험을 정부 또는 고객에게 전가하는 기이한 구조가 지속되었다. 결국 금융권의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가 초래된 셈인데, 향후 한국경제 선진화 과정에서 이를 탈피하기 위해 금융중개역할 강화를 요구받고 있다. 둘째는 디지털금융으로의 전환이다. 한국은 높은 IT 부문 경쟁력을 자랑한다. 따라서 디지털금융에서 이를 적극 활용하여 전통금융의 취약한 중개역할을 보완할 수 있다면 금융 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요즘 디지털금융이 추진하는 탈중앙화 금융(deFi)이 전통금융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가상자산 지급결제 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의 가치 안정화를 위해 비트코인, 예금, 국채 등 담보자산 투자를 확대하여 국제 가상자산 패권 경쟁의 주도권 확보에 힘쓰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업계와 국회 일부를 중심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근본적인 문제는 deFi의 탈중앙화 철학을 벗어난다는 점이다. deFi의 결제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안정화되고 널리 쓰일수록 이는 deFi가 당초 추구했던 탈중앙화 철학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deFi 및 스테이블코인은 지속가능성에 의문부호가 찍힌다. 특히 아직 기축통화 위상을 누리지 못하는 원화를 대상으로 하는 국내 민간 스테이블코인 추진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물론 미중간 격화되는 가상자산 패권 경쟁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도 없지만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투자자 피해를 부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특히 의욕이 충만한 새정부 초기 정부가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장려하는 것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기조와 맞물려, 전통금융의 예금을 가상자산 투자로 밀어내 '디지털화로 인한 탈중개화' 초래 가능성이 우려된다.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 전통금융의 금융중개역할은 더욱 약화되고 금융시장의 건전성 악화와 소비자 부담 확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금융 관련 정부의 장려나 규제완화 보다 감독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요즘 일각에서 제기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시의적절해 보이는데, 새정부의 디지털금융 정책 추진을 견제하고 균형을 취하지 않으면 또 한 번의 금융사태 발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금융은 카드사태, 저축은행사태, 사모펀드사태 등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 유사한 사태를 다수 경험한 바 있다. 한편 전통금융과 디지털금융이 반드시 대체재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전통금융의 안정성과 디지털금융의 혁신성을 보완적으로 이끄는 투 트랙 전략이 바람직해 보인다. 전통금융엔 중개역량 개발을 위한 유인책이 필요하고 디지털금융엔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한 규제・감독의 기본 틀 제시가 필요해 보인다. 윤석헌

[이상호 칼럼] 힘이 지배하는 시대 한국 국민의 선택

요즘 세상 모든 일이 뒤숭숭하다. 트럼프의 미국은 전례 없는 '독단주의'로 기존 국제질서를 무시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전 세계를 겨냥한 관세 폭격,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편들기. 갈라치기 정치를 통한 권위주의적 지배 시도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충격적인 행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전 승리 굳히기, 중국의 전방위적 영향력 확산 시도는 강대국이 어떻게 평화와 협력을 기반으로 한 현대 국제질서를 위협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국제사회의 균열과 이상 징후는 코로나 사태 때부터 예견되었다. 세계 각국은 생존을 위해 협력보다는 각자도생의 길을 갔다. 경제 부양을 위해 전 세계가 무제한 돈 풀기를 하면서 국가의 경제 체력이 바닥났다. 이는 여러 나라의 정치 상황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문제해결에 나선 강대국은 외부에서 희생양을 물색했다. 러시아는 코로나가 잦아드는 시점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인내, 협력과 화합보다는 갈등과 무력을 사용한 국가의 의지 관철이 선호되는 시대가 왔다. 힘이 지배하는 현실주의 세계가 온 것이다. 강한 안보와 안전한 자유 무역은 지금의 부강한 한국을 만든 기반이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일원으로 지금까지 번영했고 한미동맹으로 핵무장 북한과 강압적인 중국, 변덕스러운 러시아를 성공적으로 견제해 왔다. 그러나 한국의 지속 번영 가능성은 급변하고 있는 국제 경제·안보 환경과 한국의 지정학적 불안정성 때문에 위협받고 있다.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충돌 가능성이 점차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국익을 위한 무력 사용이 가능한 대안이라고 판단한다. 이에 많은 이들이 한국은 양자택일보다 중립을 선택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이든 중국이든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겠지만 제3의 길인 중립을 선택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을 중요시 여겨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중국이 바라는 한국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중국의 속국 또는 조공국을 자처하게 하여 점차 중국 세력권에 편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드 배치 후 중국이 내린 '한한령' 사례를 볼 때 한국이 중국에 경제적으로 더 의존할수록 중국은 한국을 조련하기 위해 무서운 기세로 제재하고 속박하며 통제할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대안이 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한국은 그동안 누린 경제적 번영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가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트럼프의 미국 '독단주의'가 싫어도 한국은 한미동맹을 지켜야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한국과 미국은 단순한 동맹이 아니라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서로를 위해 피를 흘린 75년의 혈맹이다. 이런 역사와 가치는 쉽게 훼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 한미동맹의 가치는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며칠 뒤 새 대통령을 선택해야 하는 운명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한국은 그동안 국내 정치 논리와 권력 투쟁에 매몰되어 급변하는 국제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이번 선거는 말로는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대결이지만, 따지고 보면 부패한 카르텔, 무능한 웰빙족, 정신 나간 평화주의자들이 생존을 위해 벌리는 진흙탕 싸움에 불과하다. 부동산과 기본소득 등 국민이 많은 관심을 갖는 경제 이슈 때문에 실체가 가려져 있지만, 이번 선거는 한국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와 중국과 북한, 러시아를 포함한 반민주세력 국가들이 만들고 있는 신 권위주의적 세계질서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다. 국민의 선택은 오직 국익과 번영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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