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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성 칼럼] AI 2025: 비즈니스, 혁신, 책임의 재정의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2025년 AI는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로 부상할 것이 분명하다. 전 세계 기업들은 AI 투자를 빠르게 늘리고 있으며, 이 기업들은 인공지능(AI)이 비즈니스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커다란 세 개 흐름에 부딪히면서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활용하여 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력할 것이다. (흐름 1) 자동화 가속화: 운영 효율성의 새로운 정의 2025년에 가장 두드러진 트렌드 중 하나는 “자동화 가속화 (Automation Acceleration)" 로 단순 반복업무를 AI가 처리하면서 인간은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의사결정에 집중하는 현상이다.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로보틱 프로세스 자동화(RPA)부터 재무 분석을 자동화하는 고급 알고리즘까지, AI는 직원들을 지치게 만드는 반복적이고 시간 소모적인 업무의 상당 부분을 제거하는 데 주력한다. 목표는 명확하다.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인재들이 전략적이거나 창의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루에 수천 건의 청구를 처리하는 보험회사를 생각해보자. 과거에는 청구 담당자들이 문서를 검토하고, 세부사항을 확인하며, 복잡한 정책 규정에 따라 청구를 승인하거나 거절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이러한 작업이 AI를 통해 상당 부분 자동화된다. 머신러닝 모델이 문서를 스캔하고, 이상 징후를 확인하며, 몇 초 만에 의사결정을 제안한다. 인간 전문가는 특별한 사례나 예외적인 상황이 공정하게 처리되도록 관리하는 데 집중한다. 이러한 “기계의 속도"와 “인간의 감독" 사이의 시너지는 새로운 운영 패러다임을 만들어낸다. 기업들은 일상적인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서비스 처리시간 단축, 오류 감소, 직원 만족도 향상을 경험한다. 한편 자동화는 고급 분석이 일상 운영과 원활하게 통합되는 “지능형 기업"의 토대가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변화 관리, 직원들이 AI 시스템과 협업하도록 교육하는 것, 중요하거나 민감한 사안에서 인간이 최종 의사결정자로 남도록 보장하는 것 등은 신중한 계획이 필요하다. 이러한 단계가 없다면, 자동화는 의도치 않게 직원들 사이에 혼란이나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흐름 2) 데이터 중심의 과감성: 실시간 의사결정 방식 AI 주도 기업의 또 다른 특징은 “데이터 중심의 과감성 (Data Driven Daring)"이라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을 받아들이려는 태도이다. 이는 종래의 데이터 기반 경영(Data-driven Management) 보다 실시간 처리(Real-time processing)를 강조한 실천적인 개념으로 직관, 추측, 또는 정적인 스프레드시트가 전략적 의사결정의 주요 도구였던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다. AI 역량은 기업이 IoT 기기, 온라인 사용자 행동, 소셜 미디어 여론, 심지어 경쟁사 패턴까지 포함하는 방대한 데이터셋을 활용해 시장 변화를 예측하고, 제품을 맞춤화하며, 소비자 니즈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한다. 유통업체들은 이러한 접근법의 초기 도입자로 주목할만 하다.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경쟁이 심화되면서, 유통업체들은 소비자 수요를 예측하고, 재고 부족을 최소화하며, 개인화된 쇼핑 경험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AI기반 예측분석은 재고를 최적화하고, 특정 지역의 판매를 예측하며, 심지어 트렌드 데이터에 맞춰 마케팅 캠페인을 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마찬가지로 여행·숙박 분야에서도 항공사와 호텔들은 이제 수요 패턴, 경쟁사 가격, 계절적 요인을 기반으로 항공권과 객실 가격을 동적으로 책정하는 데 AI를 활용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한다. 하지만 데이터 중심의 과감성에도 위험은 따른다. 알고리즘이나 낮은 품질의 데이터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기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제대로 조정되지 않았거나 편향된 AI 기반 신용평가 모델을 사용하려 한다면, 의도치 않게 적격 차입자를 배제함으로써 평판이 손상되고 잠재적으로 규제 당국의 반발을 촉발할 수 있다. 관건은 지속적인 감시와 반복적인 개선이다. 효과적인 기업들은 고급 분석과 머신러닝이 강력한 데이터 거버넌스, 윤리적 감독, 그리고 기본 가정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결합될 때 가장 강력한 결과를 도출한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흐름 3) 알고리즘 우위: 경쟁력을 높이는 비결 기업 입장에서 알고리즘 우위(Algorithmic Advantage)를 확보한다는 것은, AI를 기업 핵심 프로세스와 전략에 융합해 남들이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역량을 갖추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경쟁 우위는 특히 제조·물류 등 마진이 박한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거대한 물류망이나 생산라인에 AI를 도입해 예측과 실시간 최적화를 수행함으로써 비용 절감과 품질 향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급망 관리에서는 작은 문제도 전체 프로세스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공장 원자재 입고가 늦거나 물류센터 중 한 곳이 마비되면, 연쇄적으로 납품 지연이나 재고 부족이 발생한다. AI 기반 예측분석은 이동경로, 기기고장, 날씨나 도로 사정을 미리 파악해 운송 시간을 단축하고, 재고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해준다. 금융업도 예외가 아니다. 자동화된 트레이딩 시스템은 수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스캔하며, 인간 트레이더가 놓칠 수 있는 미세한 시장 패턴까지 포착한다. 대출 심사나 보험 인수 심사에서도, 전통적 모델보다 정교한 AI 모델이 위험도와 고객 프로필을 세밀하게 분석해 수익을 올리거나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한다. 이렇게 알고리즘 우위를 확보한 기업은 시장 변동에 빠르게 대응하며 장기적 성장을 이끌 것이다. 미래 혁신과 규제 2025년 이후에도 AI 연구 및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생성형 AI, 엣지 AI (Edge AI), 나아가 양자 컴퓨팅까지 차세대 기술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기업이 누릴 수 있는 혁신 범위도 크게 넓어진다. 반면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는 고위험 분야 AI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며, 데이터 처리 기준과 투명성 의무를 부과하는 추세다. 혁신 속도와 윤리·규제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결국 AI는 효율성·정밀도를 극적으로 높이는 한편, 책임·윤리·인력 재편 등 복잡한 과제를 함께 안고 있다. 기업이 어떻게 AI를 설계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시장 경쟁력과 조직 문화가 달라질 것이다. 사람과 기계가 서로의 강점을 살려 협업하고, 윤리적 기준을 준수하며 규제 변화를 발 빠르게 파악하는 기업만이 미래 비즈니스 판도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김한성

[데스크칼럼] 반창고는 한 번에 떼는 게 좋다

지난해말 왼쪽 엄지에 상처가 났다. 상처에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상처의 피떡이 밴드에 들러붙었다. 언제 이 밴드를 떼어내버리나 걱정이 앞섰다. 딱지를 건드리지 않으면 욱신한 정도로만 느껴졌다. 밴드를 한 번에 떼어내자니 격한 통증이 밀려올 게 뻔했다. 의사는 걱정말고 떼어내고 다시 약을 바르라고 했다. 통증은 잠시면 잊혀지고 새살이 빨리 돋도록 하는 게 좋다고 했다.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달 14일에서야 국회는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본회의에서 가결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에 대한 심리에 들어갔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향했다. 윤 대통령은 관저에서 경호처를 방패 삼아 영장에 응하지 않았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1달이 넘었다.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한 이후,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한 총리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했다. 야당은 한 총리마저 탄핵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권한대행을 이었다. 최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후보 3명 중 2명만 임명했다. 민주당에선 최 권한대행마저 탄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한 달 대통령 탄핵으로 국정은 공전했다. 가뜩이나 좋지 않던 경기는 계엄으로 얼어붙었다. 연말 특수를 준비하던 유통가는 매대를 거둬들였다. 송년회 예약도 줄줄이 취소돼 외식업계는 울상을 지었다. 연초에는 좀 달라지나 기대했다. 그러나 무안공항 참사까지 겹치며 소비는 절벽에 다가가고 있다. 불안한 정세 탓에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경제부총리는 경기 회생책을 내놓기는 커녕 탄핵정국 진정에 몰두하고 있다. 금융시장은 계엄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는 대폭 절하됐다. 11월 말 1390원 선이던 원/달러 환율은 한달 사이 1470원대까지 치솟았다. 주요국 통화 가치가 모두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원화만 약세를 이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증시를 불안하게 바라보던 외국인은 너도 나도 '셀코리아'를 외치고 있다. 올해가 더 걱정이다. 이미 천장을 가늠할 수 없는 고환율의 여파는 1~3개월이면 국내 수입물가에 반영될 예정이다. 이에 더해 '트럼플레이션 2.0'(Trumpflation 2.0)이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할 재정 및 무역 정책 등으로 인플레이션 상승 압박이 커질 것이란 예상이다. 정부가 예상한 올해 물가상승률은 1.8%였다. 그러나 이미 1월에만 2%를 넘길 전망이다. 계엄은 대한민국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상처를 돌봐서 새살이 나도록 치유해야 할 때다. 상처가 곪도록 나둬 치료를 외면하면 상처는 덧난다. 경제 사령탑이 내수와 수출, 금융시장 안정화에 전력을 쏟아부어야 할 때다. 그러려면 최상목 권한대행이 탄핵정국에서 가능한 빨리 벗어나 본연의 전공 분야로 돌아와야 한다. 대통령 체포든, 탄핵 선고든, 조기 대선이든 불안은 빠르게 해소되는 것이 좋다. 엄지 손가락에 붙어있던 밴드를 한 번에 떼어냈다. 눈을 찔끔 감을 만큼 아팠다. 그 뿐이었다. 새로 약을 발랐다. 설 전까진 상처가 다 나을 것만 같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EE칼럼] 중국의 희토류 등 “광물 무기화” 시작됐는데 우리는?

중국이 지난달 3일 발표한 갈륨과 게르마늄 그리고 희토류 등의 대미 수출 통제는 향후 예상되는 중국의 “광물 무기화"의 시작에 불과하다. 중국은 국제 관계에서 외국과의 갈등이 심화할 때 “광물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국방 무기 산업 등의 핵심광물인 희토류는 중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 중국은 일본과의 영토 분쟁을 벌일 때 희토류 수출 제한 카드를 꺼냈다. 당시 중국은 대일 희토류 수출을 40% 줄였다. 그 결과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희토류 가격이 40% 이상 급등하면서 공급망에 큰 혼란이 벌어졌다. 미국과의 반도체 전쟁에서도 중국은 광물을 무기로 사용한 적이 있다. 작년 8월 중국은 반도체 핵심광물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대미 수출을 통제했다. 당시 각국은 중국의 갈륨 수입 의존도를 줄이는 등 대응에 나섰다. 곧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대중 제재를 강화하면 중국은 희토류 통제 카드를 가장 먼저 꺼낼 것이다. 희토류는 사실 희소하지도 않고 흙도 아닌지라 이름 자체가 모순이다. 홑 원소로 추출이 어려운 금속이라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전 세계 희토류 최대 매장과 생산은 단연 중국이다. 중국이 매장량, 산출량, 생산량 모두 세계 1위 이지만 세계 희토류의 90%를 가공하는 기술과 산업 체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전략적으로 의미가 더 크다. 희토류는 전자, 통신, 에너지산업, 자동차, 항공우주 등 첨단산업 분야에 많이 쓰인다. 미 국방성에 따르면 스텔스 전투기 F-35 한 대에 희토류 광물 420kg이 쓰인다. 만약 중국이 희토류 공급을 중단 또는 제한하면 90일 이내에 미국의 주요 첨단 무기에 들어갈 재고가 소진된다. 희토류가 국제적 이슈화된 시점은 2010년부터다. 중국-일본 간의 다오위다오(일본명 : 센카쿠 열도) 분쟁은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로 쓴 최초의 사례다. 미국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희토류 확보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희토류 수요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 중국은 프럼프의 관세 폭탄에 대비해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시행된 “희토류 관리 조례"는 산업 집중도 제고와 수출 통제 및 지배력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2030년부터는 자동차의 절반 가량은 전기차가 차지하게 된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은 엔진이 아닌 배터리와 구동모터이다. 특히 구동모터의 필수 소재는 희토류 이다. 희토류는 연비와 제품의 성능을 결정 짓는다. 전기차뿐 아니라 수소차, 로봇, 모빌리티, 풍력발전기와 같은 신재생에너지 제품 등 모터가 들어가는 거의 모든 제품에는 희토류가 필요하다. 2018년 희토류 세계 생산량의 30%는 희토류 영구자석을 만드는데 소비 됐다. 미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2019년 38%, 2022년 40%, 2023년 43%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28년에는 그 비중이 68%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희토류의 중요성이 더 해지고 있다. 한국은 2023년 희토류 원재료 수입량의 60%, 희토류 소재.부품량의 89%를 중국에서 조달 받았다. 필수 산업의 핵심 원료에 대한 대중 의존도가 이처럼 높다 보니 세계 1위의 희토류 생산국인 중국에서 희토류 수출 제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국내 산업계에는 불안감과 긴장감이 팽배해진다. 한국 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따른 오래된 긴장감으로 피로해진 국가들은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미국은 희토류 확보를 위해 2019년 8월 그린란드에 매장된 희토류를 확보하기 위해 그린란드를 통째로 매입하고자 시도했다. 현재도 미국은 자체적인 희토류 공급망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광물자원공사(현, 한국광해광업공단)는 2001년 정부의 희토류 확보 정책( 제1차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에 따라 2003년 10월 중국 희토 원료 생산업체인 서준신재료유한공사와 합작으로 “서한맥슨 희토류 가공사업"에 진출했다. 총 투자 규모는 1억 위안(약 160억원)으로 이 중 광업공단이 4900만 위안(약 80억원)을 투입, 지분 49%를 확보했다. 중국 섬서성 서안시 하이테크 지구에 있는 가공공장에서 매년 약 1000톤의 형광재, 연마재, 자성재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시발점은 1998년 11월 김대중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밝혔던 중국의 서부개발 참여의 일환이기도 했다. 광업공단은 중국산 희토류 공급망을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 상무부가 희토류 수출 통제 방침을 강화함에 따라 지분을 매각 하기로 했다. 문제는 희토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입장에서 지분을 매각 하겠다는 것이 잘된 결정인지? 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생산 제품의 국내 도입을 추진할 것이지 등 다각적인 방안이 요구된다. 아직까지 희토류 소비량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란 예측을 뒤 엎을 만한 신기술이나 대체재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은 없다. 따라서 한국 제조업의 운명은 희토류의 독자 수급 체계 확보에 달려 있다. 새해도 미.중 간 무역 갈등으로 공급망이 최대 이슈가 될 것이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희토류 광산개발과 희토류 제품.생산 기업을 육성하는 등 독자적인 희토류 공급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강천구

[기자의 눈] 고려아연, 집중투표제 ‘묘수’로 유상증자 ‘무리수’ 뒤집다

고려아연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주주들에게 '산타'가 되어 깜짝 선물을 내놓았다. 바로 이번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지배주주의 전횡과 방만한 경영이 경제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자생적 노력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소액주주가 지배주주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재계를 중심으로 대기업들이 이 제도를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자 실제로는 도입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았다. 상법에 도입됐으나, 기업들이 정관에 반영해야 한다는 단서가 달렸기 때문이다. 즉, 원치 않는 기업들은 적용하지 않아도 됐다. 재계가 집중투표제 도입을 강력히 반대한 배경에는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과 외부 인사의 이사회 진입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처럼 재계가 사활을 걸고 저지하려 했다는 점은 오히려 이 제도가 얼마나 선진적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책인지를 반증한다. 그런데 이번에 고려아연은 상식을 뒤집는 선택을 했다. 그들은 오히려 이사진을 열어주는 선택을 했다. 최윤범 회장 측의 지분율이 낮아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 국내 상장사 중에는 낮은 지분율에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상대방의 지분을 인정하지 않고 승리한 경우가 많다. 지난달 상장사 주총에서는 법원이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을 인정했음에도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의결권 수거함을 들고 도망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MBK파트너스가 지분율을 높이더라도 이사회 문턱을 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 것이 K-주주총회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최 회장은 MBK에게 이사진을 열어주는 통 큰 선택을 했다. 이는 고려아연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회사로 격상시킬 전망이다. 우선, 주주권이 한 단계 격상됐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된다면 1주의 가치는 예전보다 제고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해 이사회 중심의 선진 경영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MBK와 같은 동아시아 1위 사모펀드가 엄선한 걸출한 이사 후보들이 이사진에 합류하면, 회의체 기구인 고려아연 이사회에서는 다양한 의견 교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최 회장은 집중투표제를 들고 나오며 이미지 쇄신에도 성공했다. 그간 최 회장은 유상증자라는 '최악의 수'를 둔 경영자로 인식됐으나, MBK 등 주주와의 공생을 선택함으로써 '대인배의 풍모'를 지닌 인물임을 보여줬다. 박기범 기자 partner@ekn.kr

[이슈&인사이트] 1,500원을 바라보는 환율, 과거 위기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그럼에도 크리스마스 캐럴보다 자주 들리던 환율, 위기, 경기침체 등 암울한 말들은 아직도 흘러나오고 있다. 문득 1997년 외환위기 당시를 떠올리게 된다. 외환위기는 대외채무를 저변으로 고성장을 이어온 한국식 성장모형의 종말이었다. 외환보유액은 800원대의 고정환율을 유지할 수준인 3백억 달러 정도였으며 단기외화채무를 감당할 수준에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에 비하면 약 27년이 지난 지금은 4천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97년과는 분명히 다르다. 시장전문가라는 분들도 여러 매체에서 그러한 점을 부각하며 지금이 외환위기와는 다르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전개하고 있다. 2008년 연말연초도 지금과 분위기가 비슷하였다. 불과 석달 전에 글로벌 채권시장의 맹주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하고 국제금융시장에는 한파가 닥쳤으며 우리나라로부터 자본이탈이 가속화되던 시기였다. 시장에는 우려가 가득했고 누구도 이듬해 경기가 어떻게 될지 점칠 수 없던 암울한 새해의 시작이었다. 연말 당국의 개입으로 환율이 일시적으로 1,250원 부근까지 일시 하락하기도 하였으나, 연초부터 환율은 다시 치솟기 시작하여 3월중에는 일중 1,600원을 부근까지 오르기도 하였다. 당시 미연준과 체결한 달러스왑이 아니었다면 환율은 결국 1,600원을 돌파하여 우리 경제는 다시 제2의 외환위기를 겪어야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2008년 당시는 미국발 충격이었으므로 외환보유액 또는 달러유동성이 충분하다면 환율의 급격한 변동성은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2천억 달러 수준의 외환보유액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듯 환율이 급등하게 된 것은 외환보유액의 규모가 곧 외환시장의 안정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 볼 수 있다. 외환보유액이 주로 미정부채에 투자되어 있었으니, 당시 미연준과 재무부가 양적완화를 통해 미국발 금융충격으로 위태해진 미정부채 가격을 방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환율을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채를 투매하여 미정부채 가격을 폭락시키는 것은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국제금융시장은 이러한 여건을 잘 알고 있었고 한은이 미연준과 원달러스왑을 체결하기까지 원달러환율 급등세를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 환율상승은 외부충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내부적이고 구조적 요인이 합쳐진 결과라는 점에서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는 달러인덱스와 여타 주요국 환율의 큰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만 상승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외환보유액이야 2008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불어났고, 1997년 당시와 같이 대외부채에 기대어 경제가 성장하고 있지도 않지만, 외환시장 불안의 진원지가 내부에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전개될 상황에 대한 이해의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1997년과 2008년의 경우 달러유동성 부족에 따른 “대한민국"이라는 자산의 일시적 저평가에서 발생한 위기라면,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가치하락은 실질적인 가치 하락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최고 수준의 고령화 속도, 세계 1위의 GDP 대비 민간부채, 세계 최고수준의 수도권 과밀화 등 고질적 경제구조가 성장잠재력을 모두 잠식하는 가운데, 수출위주의 산업구조는 대외 무역여건의 변화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특히 최근 발생한 정치적 리스크는 밖으로는 한국의 대외신인도 하락, 안으로는 내수 파괴에 가까운 충격을 가져와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을 송두리째 가라앉히고 대한민국의 가치를 평가절하시키는 원흉이 되고 있다. 2008년 12월 외환당국이 외환보유액을 풀어 환율을 단기간에 200원 가량 급격히 낮춘 데에는 심리적, 정치적, 그리고 통계적인 측면에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당시와 같은 수준의 환율에도 당국이 손을 쓰지 못하는 데에는 현재 상황이 장기화 될 우려에 따른 것이다. 외환보유액 4천억 중, 원화를 방어하기 위해 쓸 수 있는 금액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난 2008년과 같이 현재에도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미정부채 등을 매각하여 조달할 수 있는 액수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소위 말하는 서학개미들이 또는 해외에 달러를 보유한 기업들이 원화환율의 안정를 위해 달러를 국내로 유입할 것이라는 시장전문가들의 의견도 순진한 발상은 아닌가 의심해본다. 자금은 애국심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가격이 바닥을 확인할 때쯤에야 해외로 나간 자금들은 수익을 노리고 국내에 돌아올 것이다. 다만 대한민국이 얼마나 가격조정을 받아야 비로소 매수세가 들어올지 가늠할 수 없는 극심한 불확실성이 우리가 위기의 터널을 직면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김수현

[기자의 눈] 정쟁 몰두해 민생 에너지법안 외면, 국회의원은 탄핵 안되나?

행정부와 사법부를 대상으로 한 국회의 탄핵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뉴스의 중심이 되고 있다.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한 국회는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이어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까지 연이어 통과시켰다. 또한 민생과 내수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연봉은 1억6000만원으로 그들이 대표한다는 국민들의 동의 없이 셀프인상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민생법안이라는 에너지 관련 현안 법안들 통과에는 이런 막강한 힘을 사용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실소가 나온다. 실제 국회는 지난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전력망특별법, 고준위특별법 등 국가경제에 시급한 현안들을 차일피일 방치하고 있다. 끝없는 정쟁과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의 소용돌이로 빠져들며 주요 현안들은 또다시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이후 개최한 국무회의에서 각부처 장관들에게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은 기업현장의 애로사항들을 적극 청취하면서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고 반도체특별법, 인공지능기본법, 전력망특별법 등 기업 투자와 직결되는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국회와 적극 소통해 주기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법안을 상정하지도 못하고 국회로 부터 탄핵당했다. 민생법안을 챙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국회의 요구대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국회의원은 헌법 제65조에 따라 대통령·국무총리·장관·헌법재판소 재판관·감사원장 같은 공무원들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할 때 탄핵심판에 소추할 수 있다. 국민들의 대표라는 명분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민생에 필요한 입법 활동을 하지 않거나 당리당략에 따라 민생과 국가경제에 필수적인 법안들을 통과시키지 않거나, 국회 상임위원회나 본회의, 국정감사 등에 출석하지 않거나 성실히 임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고준위 특별법은 고준위 방폐물(사용후핵연료)을 영구 처리할 수 있는 방폐장을 구축하기 위한 법안이다. 해상풍력 특별법은 풍력발전 촉진방안을, 전력망특별법은 국가 핵심 전력망의 적기 확충 방안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모두 2050탄소중립은 물론 산업계와 민생의 근간이 되는 발전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법안들이다. 그러나 국회의 외면 속에 업계의 어려움은 점점 커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기업들과 국민들에게 큰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큰 사황이다. 탄핵안은 빛의 속도로 통과시키고 민생법안은 뒷전인 게 우리 국회의 현주소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韓 기술 노리는 ‘뱀’, 신속·강경 대응이 옳다

푸른 뱀의 해가 열렸다. 문제는 우리 기업들과 연구기관들이 피땀흘려 개발한 기술을 노리는 뱀들이 들어오는 문도 열렸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나섰으나, 산업스파이 규제를 위한 형법 제98조 개정안이 야당의 반대로 정기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탓이다. 올해 열리는 임시국회에서도 통과될지 의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바꾸는 것이 조항 남용과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선진국을 중심으로 각국이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막기 위해 기술 장벽을 높이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리나라가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할 필요성이 큰 것도 고려 대상이다. 부존자원이 극히 적고, 내수시장도 작은 탓에 '가성비'를 갖춰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해야 경제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들게 확보한 기술을 빼앗기면 이같은 강점을 지닌 나라들과의 경쟁이 힘들어진다. 경제적 손실이 크게 나타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말 웨이퍼 생산 기술 유출 혐의로 진행 중인 경찰 조사건의 피해액은 4조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기술 탈취에 열을 올리는 나라로는 중국이 가장 먼저 언급된다. 이들은 국내 대기업 임원 출신 인사를 영입하는 등의 방식을 활용하는 중으로, 반도체 뿐 아니라 디스플레이·조선·2차전지를 비롯해 경쟁을 펼치는 분야를 중심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조선의 경우 대형 컨테이너선 등의 선종을 중국이 사실상 독점하는 상황으로, 대형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시장도 뺏기면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잃을 수 있다. K-방산도 타겟으로 꼽힌다. 인도네시아 기술진은 총 8조원이 투입되는 일명 '단군 이래 최대 무기체계 개발 사업'으로 불리는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 관련 자료 유출 혐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이같은 흐름을 끊지 못해 현지 생산을 요구하는 수출 대상국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방산 수출 4강 도약의 꿈도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 현행 형법이 가리키는 적국이 사실상 북한을 의미하지만, 다른 국가가 탈취한 기술이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집에 물건을 훔치러 온 강도를 진압했다고 처벌을 받는 촌극이 벌어지는 나라지만, 우리 기술을 도둑질하는 행위를 국적을 불문하고 처벌 대상으로 포함시켜 경제를 지키겠다는 모습을 보고 싶다.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국내 경제의 저성장이 빚는 어려움이 많다는 점에는 좌우가 없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EE칼럼] 2025년은 에너지정책 재균형의 적기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곧 출범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요 정책 방향 대부분을 뒤바꿔 놓을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에너지 정책은 가장 크게 달라질 분야로 손꼽히고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는 모두 에너지 정책을 물가 안정과 경제성장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내용은 완전히 상반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친환경 공급망 확충을 통해 물가 안정과 경제성장을 이루려고 했지만, 트럼프는 화석에너지 개발 확대를 통해 에너지 가격을 하락시켜 물가 안정을 도모하고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구상을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했던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에 분명한 반대를 하는 것이다. 선진국 중심으로 추진되는 에너지 전환의 지향점은 곧 탈화석에너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산화탄소 주배출원이 화석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화석에너지 소비량은 2022년 기준 11,656 백만TOE이고, 2050년까지 남은 날 수는 10,591일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대형 원전 1기 혹은 태양광 패널 4백만 장에 해당하는 백만TOE의 화석에너지를 무탄소 에너지로 대체해야 2050년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탄소중립으로의 에너지 전환은 국가 간, 세대 간 공정성에도 어긋난다. 아직 탄소 문명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수많은 저개발 국가에 탈문명을 강요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 또한 기후변화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구체적인 피해는 미래에 발생한다. 미래세대를 위해 당장의 탈문명을 현세대에게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화석에너지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는 에너지 믹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씩 하향 조정되겠지만, 여전히 중심에너지의 위치를 지켜낼 공산이 크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기후변화협약, 탄소국경조정세 등과 같은 제도를 통해 인류 공통의 의제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음도 부정하기 어렵다. 탄소중립은 실현가능성과 별개로 전 세계 화석에너지 투자를 가로막는 현실적 장애물인 것이다. 화석에너지 공급능력이 과거처럼 탄력적으로 증가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에너지 가격 전망은 어렵지 않다. 수요는 여전한데 공급능력이 과거처럼 늘어나기 어렵다면, 화석에너지 가격의 고공행진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주력 에너지인 태양광과 풍력의 높은 발전단가가 더해지면, 전체 에너지 가격 수준의 상향 조정은 명약관화다. 가격 수준만 문제가 아니다. 재생에너지 비중 증가와 함께 가격 변동성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탄소중립 목표 시점에 다가갈수록 에너지 가격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 발생하는 가운데, 에너지 가격의 급등락이 자주 반복되면서 에너지 위기의 상시화가 우려된다. 트럼프는, 탄소중립은 현실적 어려움으로 장기간에 걸쳐 해결할 과제로 인식하고, 미국 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가교에너지로 인정받고 있는 천연가스를 적극 개발하여 재생에너지로 기울었던 에너지정책을 재균형 잡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우리도 재생에너지와 원전 양극을 오가는 에너지정책을 바로 잡을 절호의 기회다. 정부는 탄소중립에 따른 고에너지 가격 시대의 도래 가능성을 인정하고 널리 알림으로써 경제주체들의 적응력을 높이는 한편, 에너지 가격 변동성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국가 시스템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자원개발과 시장가격 그리고 에너지복지 점검이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4%에 이르는 우리나라가 자원개발 없이 변동성 높은 고에너지가격 시대를 맞는 것은 천수답 농사를 고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거의 10년 넘게 개점휴업 상태인 자원개발에 다시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전기·가스 가격은 유권자 표만을 의식한 정치 흥정의 산물에 가깝다. 원가 따위는 아랑곳없다. 그 결과는 턱없이 저렴한 가격, 한전과 가스공사의 대규모 적자와 에너지 낭비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자주 사용했던 유류세 인하, 전기 및 가스 가격 인상 억제 등과 같은 미봉책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시장 수급을 반영한 정확한 가격 신호를 통해 합리적인 수요를 유도해 변동성 높은 시장 적응력을 높여야 한다. 고에너지가격 시대 도래는 필연적으로 에너지 빈곤 문제를 부각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가격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촘촘한 에너지복지 그물망을 만들어 해결해야 할 것이다. 화석에너지 재평가, 가격 기능 회복, 에너지복지 향상을 근간으로 하는 균형 잡힌 에너지정책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박주헌

[기자의눈] 과잉보호로 ‘헐값’될까, 시련으로 ‘성장’할까

“PBR 0.3배면 적대적 M&A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발언이 재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닌, 한국 자본시장의 근본적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발언이 제기하는 핵심 문제는 한국 기업들의 극심한 저평가 현상이다. PBR 0.3이란 기업이 보유한 순자산의 30% 가치로만 시장에서 평가받고 있다는 의미다. 1000원어치의 자산을 가진 기업이 300원에 거래되고 있는 셈인데, 이는 시장 가치 평가의 심각한 왜곡을 보여준다. 이 대표의 발언 중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은 “과도하게 평화로운 시장"이라는 문제의식이다. 한국 자본시장은 오랫동안 지배주주의 경영권이 지나치게 안정적으로 보장되어 왔다. 재계는 이를 '안정적 경영환경'이라고 미화하지만, 실상은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압박이 부재한 상태다. 적대적 M&A의 위험이 실질적으로 없는 상황에서 경영진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재계는 통상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 높은 상속세율, 지주사 디스카운트 등 외부적 요인을 저평가의 원인으로 지목해왔다. 하지만 이는 책임 회피에 가깝다. 기업 내부의 변화, 특히 경영진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성찰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런 현실의 근저에는 한국 기업들이 소액주주를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는 구시대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배당을 늘리거나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조차 특별한 혜택인 양 포장해온 것이다. 이는 주주가 회사의 실질적 주인이라는 자본시장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처사다. 기업가치가 적정하게 평가받도록 요구하는 것은 주주의 당연한 권리다. 한국 기업이 진정한 의미의 선진화를 이루려면 '과도한 평화'를 깨고 '건전한 긴장'을 만들어내는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적대적 M&A의 위협은 그 자체로 경영진과 지배주주를 견제하는 효과적인 시장 규율이 될 수 있다. 기업가치가 적정하게 평가받도록 요구하는 것은 주주의 당연한 권리이며, 이를 보장하는 것이 건전한 시장의 기본이다. 이제 재계는 피할 수 없는 질문 앞에 서있다. 저평가 문제를 더 이상 외부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기업가치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권리 보호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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