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새로운 중앙아시아가 온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4.09 11:00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김봉철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중앙아시아의 현대 지정학적 구조는 단순한 강대국 경쟁의 장에 머물지 않고 점차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러시아의 전통적 안보 영향력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다양한 협력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의 진출은 군사력이나 부채 기반 개발이 아니라 '소프트 거버넌스'의 수출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신북방정책'과 'K-실크로드 전략' 등은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를 넘어, 도시 및 산업 전환을 위한 기술 협력 파트너십 구축을 의미한다.


한국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단순한 하드웨어 제공자가 아니라, 모델을 제안하며 새로운 발전 경로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한국의 중앙아시아 전략은 기존의 자원외교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기술 플러스(Technology-Plus)' 프레임워크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자원 확보와 디지털 인프라를 결합하는 미래 지향적 전략으로, 공적개발원조(ODA)를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2026년 약 24억 6천만 달러 규모의 ODA 예산은 이러한 전략을 뒷받침하는 재정적 기반이다.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와 같은 준정부 기관은 정부 정책과 민간 기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정부 간 협력(G2G)으로 스마트시티 설계 단계부터 단순한 인프라 건설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한국형 기술 표준을 대상국에 심는다.




카자흐스탄은 이러한 한국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알마티 인근의 알라타우 스마트시티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약 8만 8천 헥타르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도시 개발이 아니라 '중앙회랑(Middle Corridor)' 물류 네트워크의 핵심 거점으로 설계되었다. 한국은 지능형 교통 시스템(ITS) 구축과 디지털 행정 시스템을 도입하여 카자흐스탄이 내륙국에서 '연결국(land-linked state)'으로 전환하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협력은 2026년 고위급 물류 통합 논의로 더욱 깊어졌고, 스마트시티는 유라시아 공급망의 핵심 노드로 발전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협력은 물류 중심의 카자흐스탄과 달리 인간 중심적 도시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 타슈켄트(New Tashkent)' 프로젝트는 보건의료,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포괄하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이며, 한국은 의료 스마트시티 구축과 친환경 에너지 시스템 도입에 핵심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약 50억 달러 규모의 의료 스마트시티 투자와 현대로템의 고속철 사업은 산업과 기술 협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사례이다. 녹색 수소와 친환경 난방 시스템 도입은 탈탄소 도시 전환을 촉진하며, 이는 지속가능성과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투르크메니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더욱 특화된 형태의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아르카닥 스마트시티는 국제 전시회 수상을 통해 한국 기술의 상징적 성공 사례로 자리 잡았으며, 폐쇄적인 시장에 진입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스마트 빌리지' 모델을 통해서 농촌과 산악 지역에 적합한 기술 적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약 5억 달러 규모의 경제개발협력기금(EDCF)은 이러한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한국 기술이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역 단위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앙아시아를 향한 한국의 이러한 전략에는 여러 도전 과제가 존재한다. 가장 큰 장애물은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와의 경쟁으로, 비교적 저렴한 중국 기술이 이미 해당 지역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제도적 미비함도 스마트시티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데이터 관리, 개인정보 보호, 디지털 규제 등 법·제도적 기반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을 경우, 스마트시티는 고립된 기술적 성과에 머무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한국은 단순한 기술 제공을 넘어, 관련 법제도 구축과 인력 양성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접근으로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




올해 9월에는 서울에서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 정상들이 모여 협력과 미래 전략을 논의하는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핵심 광물 공급망, 에너지,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K-실크로드' 협력 모델을 강화할 계획이다. 따라서 이번 가을은 한국이 새로운 모습의 중앙아시아를 맞이하고, 그들에게 기술·제도·가치가 결합한 한국형 모델에 기반한 미래 협력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비록 지정학적 경쟁과 제도적 한계가 존재하지만, 최근 한국이 주도하는 디지털 협력 기반은 이미 구축되고 있으며, 이는 중앙아시아가 21세기 글로벌 경제에서 자율적인 위치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새로운 중앙아시아가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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