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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한 끗 차이의 나비효과

한 끗. 근소한 차이나 간격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는 한 끗 차이로 중요한 경기의 승패가 결정되거나, 나중에 예상치 못한 파장이 일어나는 나비효과를 경험하곤 한다. 지난 2월 21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이 확정되었다. 작년 5월 발표된 전기본 실무안에는 신규원전 4기가 포함됐었지만, 국회 보고 과정 중 정치적 타협에 따라 3기로 축소됐다. 1기 차이지만, 여기에 숨겨진 의미와 파장은 가볍지 않다. 첫째, 국민 부담이 큰 폭으로 뛴다. 전기본 최종안은 실무안 대비 신규원전 1기를 줄이는 대신 태양광 발전설비 2.4GW를 추가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분석에 따르면, 원전 1기 대체를 위해서는 7GW의 태양광 발전설비와 92GWh의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하다고 한다. 전기본 최종안대로 태양광 발전설비 2.4GW만 반영해도 32GWh의 ESS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들 설비 건설비용은 원전 1기 건설비용의 약 2배인 12조 원가량일 것으로 추산됐다. 신규원전은 60년을 가동하지만, 태양광과 ESS 가동 기간은 각각 20년, 15년인 점을 고려하면, 이들 설비의 추가 교체가 필요해 총비용은 33.6조 원까지 급증한다고 한다. 이런 건설비용뿐만 아니라 국민이 내야 할 전기요금도 매년 3,800억 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숫자 하나 줄였을 뿐인데, 국민이 떠안을 부담은 어마어마하다. 둘째, 원전 건설 물량이 줄어든다. 원전 1기 건설비용은 6조 원 내외다. 신규원전 1기 축소는 이 정도의 건설 물량이 국내 산업계에 풀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원전 1기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원전 설계부터 기자재 제작 및 건설 분야까지 망라한 업체가 참여한다. 이들 업체의 인력과 조직은 우리 원전산업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들 업체의 인력과 조직은 물량이 지속 확보돼야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단기간에 많은 물량이 몰렸다가 사라지는 것보다 조금씩이나마 물량이 공백기 없이 공급되는 것이 경쟁력 유지에 효과적이다. 이런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신규원전 1기가 타당한 이유 없이 사라진 것이다. 셋째, 전기본의 공신력이 훼손됐다. 산업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90여 명의 전문가가 2023년 7월부터 2024년 5월까지 87회의 논의를 거쳐 전기본 실무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국회 보고 과정 중 전문가 평가나 검증 없이 신규원전 1기를 줄인 것은, 과학적 근거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시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처럼 정치적 흥정의 산물이 된 전기본은 그 신뢰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나비효과 예로는 지난 2월 27일 국회를 통과한「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이하 '특별법')」을 들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오랜 난제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한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 중 특별법안 제36조제6항의 단서 조항인 “여건 변화가 있을 경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 심의‧의결로 저장 용량을 달리할 수 있다"는 문장이 삭제됐다. 이것이 우리나라 계속운전 제도를 뒤흔들었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운전 허가가 만료된 원전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10년간 계속운전할 수 있으며, 그 횟수는 제한이 없다. 계속운전은 가장 경제적인 탄소중립 수단이다. 세계적으로 최초 운전 허가 기간이 만료된 원전의 대부분은 계속운전되고 있다. 발전사업자는 계속운전 기간 중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공간을 확보해 놔야 계속운전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단서 조항 삭제로 원전 부지 안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의 최대 저장 용량이 제한되면서, 저장공간 부족으로 계속운전 허가를 받기 어렵거나 계속운전 횟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자유로운 발에 스스로 족쇄를 채운 꼴이 됐다. 계속운전을 하지 못하면, 대체 발전설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비용은 전기요금에 반영된다. 대체 발전설비를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대규모 전력 공급부족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다. 정책이나 법률의 수치나 문구의 미세한 변경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 사회․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기본과 특별법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다. 정부와 국회는 이런 실수를 인지한 즉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그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신규원전 계획과 특별법 해당 조항의 조속한 원상복구가 필요한 이유다. 문주현

[기자의 눈] 상법 개정안, 경제 항해의 새 항로가 되길

상법 개정안을 두고 경제계의 반응이 뜨겁다. 마치 콜럼버스가 신대륙으로 항해하겠다고 했을 때 “지구 끝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던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대한상의,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들이 일제히 “기업의 투자와 혁신을 저해하여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마치 절벽 끝을 향해 나아가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미 “기업 발전 저해"라는 제목으로 아직 출항도 하지 않은 항해의 실패를 예견하고 있다. 이런 반응,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 않은가? 그렇다. 금융실명제, 집단소송제, 내부자 거래 규제, 순환출자 금지, 가맹사업법 개정, 금융소비자보호법 등 우리 경제와 금융 시스템을 한 단계 발전시킨 법안이 겪었던 과정이다. 당시에도 기업들은 “경영 위축", “투자 저해", “국가 경쟁력 약화" 등을 외쳤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는가? 이러한 법과 제도들은 오히려 우리 경제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번 상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소수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필수적인 조치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소송 남발"이나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은 폭풍 한 번 겪지 않고 항해하려는 선장의 기우가 아닐까? 물론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른 초기 혼란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기업 혁신을 저해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번 개정안은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과거 많은 법과 제도가 도입될 때마다 기업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들은 우리 경제를 더욱 건강하고 강하게 만들었다. 마치 강한 면역 체계가 백신의 자극으로 형성되듯, 기업 생태계도 적절한 규제와 개혁을 통해 더 강해졌다. 기업들은 이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아, 더 나은 지배구조와 경영 투명성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콜럼버스가 미지의 바다를 향해 나아갔듯이, 변화의 바다에서 방향을 잃지 않는 나침반을 가진 기업만이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는 영광을 누릴 것이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데스크 칼럼] 사모펀드 MBK의 끝없는 그림자

2015년 9월, MBK파트너스가 영국 테스코로부터 유통 공룡 홈플러스를 인수한 사례는 MBK파트너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인수합병(M&A) 시장에도 큰 획이었다. MBK는 당시 미국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아시아 투자 전문회사 어피티니에쿼티파트너스 컨소시엄, 칼라일그룹을 누르고 7조2000억원에 홈플러스를 인수하는데 성공하며 국내 M&A시장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해당 거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최대 규모의 바이아웃(Buy-out) 딜이자, 국내 인수합병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사례로 남았다. 홈플러스 인수 당시 김광일 MBK파트너스 대표는 “MBK는 직원들과 노동조합, 협력사, 고객 등 이해관계자들과 생산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경영진과 긴밀하게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지금, MBK파트너스는 한국 사모펀드 시장에 또 다시 중대한 역사를 남기고 있다. 국내 대형마트 2위인 홈플러스가 이달 4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해 개시 결정을 받은 것이 발단이었다. 지난달 28일 한국신용평가 등 신용평가사들이 홈플러스 신용등급을 하향(A3→A3-)하면서 단기 유동성을 확보하고자 선제적으로 회생절차라는 카드를 꺼냈다는 MBK의 명분은, 대한민국 자본시장에 던져진 큰 혼란과 파장을 감안할 때 궁색하기만 하다. 갑작스런 기업회생 절차로 홈플러스 입점사들은 정산금을 지급받지 못해 각종 자금 마련에 비상이 걸렸으며, 홈플러스 카드대금채권을 유동화한 전자단기사채(ABSTB, 전단채)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전액 손실 위기에 놓였다. 이 와중에 홈플러스가 지속적으로 내놓는 변명과 해명들은 돌연 줄도산 위기에 직면한 소상공인과 납품업체들의 고통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특히 MBK파트너스와 홈플러스가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이해관계자 보호에 일말의 책임감이나 윤리의식이 있었다면, 신용등급 강등 직전까지 전단채를 발행하는 행위는 단연코 없었을 것이다. 자구책을 생략하고 기습적으로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것은 1원이라도 손해 보기 싫다는 MBK파트너스 본성을 드러낸 사례라고 봐도 무방하다. 시장 전반의 신뢰를 저버린 MBK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는 그런 측면에서 상당히 우려스럽다. 고려아연은 이달 말 정기주총에서 영풍-MBK연합과 의결권 정면 대결을 벌인다. 김광일 부회장은, MBK가 고려아연 최대주주로 주주환원·기업 거버넌스(의사결정구조)를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했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견제, 감독기능이 상실됐으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이해관계에 따라 회사가 원아시아파트너스, 이그니오홀딩스, 정석기업 등에 투자해 2조5000억원의 기업가치를 훼손시켰다는 게 MBK의 주장이다. MBK는 고려아연의 거버넌스를 개선하는 것만으로 총 3조4000억원의 주주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책임경영을 도외시한 채 국내 자본시장을 혼돈으로 몰아버린 MBK가 과연 거버넌스 개선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고려아연은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기업이자 국내 첨단 산업에 다양한 기초 소재를 공급하는 공급망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게다가 고려아연의 '하이니켈 이차전지 전구체' 기술은 국가핵심기술로,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 안전보장 및 국민 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어 정부가 특별 관리하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를 통해 확인된 MBK파트너스의 경영 방식이 고려아연에서도 적용된다면, 이는 주주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국가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고려아연은 사모펀드식 경영의 민낯을 드러낸 MBK가 간단하게 넘볼 수 있는 기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MBK는 고려아연의 거버넌스를 논하기 전에 홈플러스 기업회생으로 촉발된 경제적 손실과 사회적 비용에 대한 책임 있는 답부터 내놔야 하지 않나. 적어도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아시아 사모펀드 시장의 개척자이자 대부, M&A 시장의 귀재라면 말이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김한성 칼럼] 정부주도의 국가 AI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 속도는 최근 몇 년간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새롭게 등장하는 AI모델의 출시 주기가 분기별 또는 연간 단위를 넘어 주간 단위로 좁혀지고 있다. 한편 미국과 중국은 AI 기술 그 자체의 우위를 경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적 번영과 국가 안보,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활용하고 있어, AI 역량이 미래 국가권력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의료, 금융, 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AI 기술을 개발, 채택, 선도할 수 있는 능력이 “국가 AI 경쟁력"이라고 할 때,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각각 독특한 전략을 통해 AI 경쟁 구도를 주도하고 있다. 2024년에 출범한 국제통화기금(IMF)의 'AI 준비도 지수(AIPI)'는 디지털 인프라, 인적 자본 및 노동시장 정책, 혁신과 경제 통합, 규제라는 네 가지 차원에서 174개국을 평가한다. 최근 공개된 IMF AI 준비 지수 대시보드에 따르면, 2023년 최고 성과를 보인 나라는 싱가포르(점수 0.80), 덴마크(0.78), 미국(0.77)이며, 스탠포드 HAI 글로벌 AI순위 보고서에서도 미국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와 같은 빅테크 기업과 강력한 벤처캐피털 생태계에 힘입어 AI 연구 및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한편 중국(AIPI 0.63, 31위)은 방대한 데이터 자원과 국가 주도 이니셔티브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은 AI 법령을 통해 “윤리적 AI"의 글로벌 표준을 설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IMF가 선진 경제국으로 분류한 한국의 경우, 2023년 데이터를 토대로 추정한 결과 AIPI 0.73(약 15위) 수준으로 상위권에 해당하지만, 세계 최상위 수준 국가들과 비교하면 경쟁에서 한 발 뒤쳐져 있다. 다만 한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세계 DRAM 시장의 47%를 차지(2023년 기준)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하드웨어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AI 연산에 필수적인 GPU 및 AI 전용 칩셋 개발에서는 엔비디아(미국), 화웨이(중국) 등과 비교할 때 국내의 GPU나 AI 전용 칩셋 개발역량은 취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지적재산기구(WIPO)에 따르면, 한국은 AI 관련 특허 출원에서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고, KAIST와 같은 주요 연구기관들도 로봇공학, 컴퓨터 비젼, 자연어 처리, 기계 학습 분야에서 활발한 논문을 발표 중이다. 그럼에도 딥러닝이나 생성형 AI와 같은 핵심 알고리즘 연구에서 독자적, 선도적 위치를 확보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2019년에 시작된 정부의 “AI 국가전략"은 2027년까지 70억 달러를 투자하여 2030년 AI 초강대국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미국, 중국 등 경쟁국의 단일 연간 투자 규모에도 미치지 못한 점이 문제다. 예컨대 미국은 2022년 제정된 “CHIPS 법안"을 통해 2,800억 달러를 투자하며, 이 가운데 상당부분을 AI 및 반도체 R&D에 배정했다. 중국도 2017년 “차세대 AI발전 계획"을 발표하여 2030년까지 1,400억 달러 투자목표와 함께, 2025년까지 매년 100억 달러 이상을 AI에 투입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디지털 유럽 프로그램"을 통해 2021~2027년간 년매 100억 달러 이상의 AI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현재 초기 단계의 AI 투자 생태계, 숙련된 인재 부족, 미완성 규제 프레임워크라는 세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등 첨단 제조 인프라, 대기업 중심의 R&D 역량, 빠르게 확충 중인 AI 교육 프로그램 등이 뒷받침 된다면 충분히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잠재력을 현실화 하려면 정부가 주도권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전략을 제안한다. 먼저 AI 투자 생태계의 고도화를 위해 대규모 AI 펀드를 조성하고 규제 샌드박스·세제 혜택 등을 도입하여 벤처캐피털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해야한다. 투자-연구-사업화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통합 플랫폼 구축 역시 중요하다. 그리고 AI 인재 양성 및 확보도 필요하다. 초·중·고 및 대학 교육과정을 AI 중심으로 재설계하여 이론과 실무 역량을 겸비한 인재를 키우고 대기업·공공기관·스타트업 간 협력 트랙을 마련하고, 해외 우수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비자제도 개선과 연구개발 특별구역 내 장학금·연구비 확충도 추진해야한다. 아울러 규제 및 윤리 프레임워크 정립하는일도 중요하다. AI 기본법을 속도감 있게 마련해 윤리·투명성·책임 기준을 확립하되, 혁신 성장을 저해하지 않도록 탄력적인 규제 모델을 적용하고 기업의 투자·적용을 가로막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인센티브를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반도체·제조 등 전략 산업과 AI 융합 가속화하는것도 매우 중요하다. 신경형 칩, AI 가속기와 같은 AI 특화 하드웨어 R&D에 집중 투자하여,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경쟁력을 AI 분야로 확장하고 제조·물류·의료 등 다양한 산업에 AI를 적용할 수 있는 사례를 발굴하는 한편 중소기업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대폭 강화해야한다. 끝으로 글로벌 인공지능 파트너십(GPAI) 등 국제협의체에서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여 '한국형 AI 모델'과 이에 기반한 가치관을 전세계에 확산해야한다. 글로벌 군사·산업 포럼에서는 안보와 윤리, 산업 표준을 망라하는 AI 거버넌스를 함께 구축해 국제무대의 표준화 경쟁에서도 우위를 선점할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렇게 정부 주도의 AI 전략이 체계적으로 실행된다면, 한국은 초기 투자 생태계 미비와 인재 부족, 규제 불확실성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고, 반도체 • 대기업 R&D • 차세대 교육 프로그램을 앞세워 세계적인 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한성

[EE칼럼] 자원이자 연료인 나무, 산불 문제 해결책 있다

고기연 한국산불학회 회장/전 산림청 산림항공본부장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이 있다". 미국 교육심리학자 웨인 다이머의 이야기를 자주 되새긴다. 산림청에 따르면, 2023년 1월 1일부터 5월 23일까지 전국적으로 509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과거 10년간 매년 평균적으로 403건의 발생한 것에 비하면 산불이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다. 산림청 재직 당시 산불 대응 업무를 여러 차례 담당한 적이 있다. 최근 산불을 보면 대형화, 전국화, 그리고 연중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22년 3월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의 기억이 생생한데 2023년 4월에도 강릉에서 국민관광지 경포호 북쪽을 검게 그을린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주요 산불은 과거에는 강원과 경북의 동해안 지역에서 발생했으나, 최근에는 양구, 영월, 홍성, 합천, 고령 등 내륙과 서해안 지역에서도 큰 산불이 빈발하고 있다. 예전에는 봄철과 짧은 가을철에 발생하던 산불이 여름 장마철을 제외한 연중 발생한다. 산불위험을 제어할 수 있는 충분한 방안을 고려할 시점이다. 향후 산불 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연료이다.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 진화 임무를 맡은 조종사의 말을 인용한다. 2023년 4월 충남 홍성 산불 때 지휘를 맡았던 영암산림항공관리소의 기장은 진화 임무를 마치고 일몰 후 착륙하면서 “연료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헬기로 물을 뿌려도 진화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연료가 축적되는 정도는 산림청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산림의 평균 임목 축적량은 168.7㎥이다. 이는 1ha 면적에 있는 나무의 양으로, 2011년의 130.4㎥에서 10년 만에 30% 증가한 것이다. 전체 산림 면적을 기준으로 보면 10년 사이에 2억 3천만㎥, 연간 2300만㎥의 목재가 숲속에 추가로 비축된 것이다. 2022년에 국내에서 수확한 목재량은 430만㎥으로, 늘어나는 양의 81%는 숲에 쌓이고 있다. 사실 산불 대응에 있어 인위적으로 조절이 가능한 것은 연료다. 산불 연구 전문가인 강원대 이시영 교수에 따르면, 연료는 산불 발생의 3요소 중 하나인 동시에 산불 확산에도 기여한다. 반면, 산소, 기상, 지형 같은 다른 요소들은 자연현상으로 사람이 조절하기 어렵다. 산불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숲에 쌓여만 가는 연료, 즉 나무의 밀도를 관리해야 한다. 나무는 연료이면서 목재 자원이다. 늘어나는 산불 피해 추세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방안으로 국산 목재의 산업화를 제안한다. 우리나라 목재 자급률은 2022년 기준으로 15%로 대부분 목재 수요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토 대비 산림면적이 64%로 OECD 회원국 중 세계 4위의 산림국가에 어울리지 않은 실정이다. 1970년대 치산녹화 이후 나무 수령이 50년을 넘어가고 있으며, 매년 목재 수입으로 6조원 이상의 외화를 지출하고 있다. 한편, 산불로 인해 귀중한 나무들이 손실되고 있다. 심고, 가꾸어서 커진 나무는 벌채해 이용하고, 대신 좋은 묘목으로 다시 키우고 가꾸는 것이 지속가능한 산림관리의 원칙이다. 순환적 임업을 실행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향후 산불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목재자원화를 앞당기는 일이다.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는 숲 경영이다. 벌채에 부정적인 시민들도 있고, 지속가능한 산림관리에 대한 이해가 미흡한 일부 시민단체가 있을 수 있다. 현재나 미래에 산불로 인해 입을 산림과 지역의 피해를 감안할 때 산불당국은 적극적인 소통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또한 순환임업을 이행하는 데 있어 임업 노동력과 임도의 부족, 임업 기계화 미흡 등 장애요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거부터 거론된 문제로 국산재 산업화를 촉진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한 사항이다. 중요한 것은 주요 이슈로 부상한 대형 산불 위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산불 위험이 가장 높은 봄철이다. 3월 중순이면 통상적으로 대형 산불이 많이 발생한다. 효과적으로 대응해 이번 시즌을 무사히 넘긴다고 해도 산불 시즌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산불로 인한 피해는 늘어나고 있다. 산불 대응에 대한 충분한 대책을 선제적으로 고려하고, 산림 재난 위험을 현실적으로 경감하는 노력이 필요한 단계이다. 그 노력의 출발점은 연료이면서 자원인 나무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고기연

[기자의 눈] 애플페이 확대 앞두고...당국 ‘뒷짐’ 감시 반복하나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의 애플페이 진입이 임박하면서 애플페이의 국내 확산을 두고 카드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내 카드사가 애플사에 제공하는 기존 0.15%대의 높은 수수료율을 감당해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삼성페이의 유료화 부담까지 대비해야하는데다 그렇지않아도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크게 악화된 업황이 더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사의 본업 수익성 약화와 각종 수수료 부담은 필연 소비자들의 혜택 축소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카드업계에서 알짜카드와 무이자 혜택이 줄어들고 연회비가 10만원대인 중저가 프리미엄카드 전략이 쏟아져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애플페이의 확대를 두고 업계에선 양갈래의 시선이 나타나고 있다. 카드사들의 부담 증가와 소비자 혜택 축소로 이어질 것이란 회의론과 소비자의 결제방식 확대와 간편결제 보급화 등 이점이 보다 큰 결제 편의성을 가져올 것이란 긍정론이 그것이다. 다만 당국이 이런 카드업계의 고민과 소비자 혜택 축소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다소 미온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앞서 여러 공식석상에서 밝힌 당국의 애플페이 확산 후 소비자 피해 우려에 대한 기조는 '지켜보겠다' 혹은 '고민해보겠다' 수준이다.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앞으로 시장에 미칠 영향 부분은 계속 면밀히 지켜보는 한편 수수료 문제가 지금 입장의 변경이 필요한 상황까지로 확대될 경우 고민해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행보는 소비자 혜택 축소가 머지않아 현실화할 것이란 예측에 무게감을 더한다. 지켜보는 기조를 취했다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당국은 애플이 한국 이용자 4000만명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중국 알리페이에 넘긴 사태 당시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질의에 '모르쇠식' 성의없는 답변만을 반복할 때도 침묵했다. 애플이 국내 소비자에게 무성의하고 차별적인 AS(애프터서비스) 정책을 보인다는 지적이 일었을 때도, 앱스토어 수수료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당국은 '뒷짐'을 졌다. 당국은 국내 업체들은 규제에 따라 엄격하게 감시하지만 통상 애플과 같은 해외 기업들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들 업체가 회피하거나 조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해도 국내 실정법상 제재 수단이 미비하단 이유로 그들에게 피할 길을 내줬다. 애플페이 수수료 책정은 기업간 계약이기에 그렇다쳐도, 향후 애플페이 확대가 가져올 정보유출 문제나 카드사들의 소비자 혜택 감소에 대한 대비가 이번에도 너무나 미흡하단 지적이 나온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반복하기에 앞서 이번엔 치밀하고 단단한 대비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신율의 정치 칼럼]관저 정치를 한다는 인상을 주면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석방됐다. 석방될때, 윤 대통령은 약 100미터 가량을 걸어 나오면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때로는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석방 직후 발표한 메시지에서, “그동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응원을 보내주신 많은 국민들, 그리고 우리 미래세대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해당 메시지를 보면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석방되는 대통령은 '국민 통합'을 강조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을 응원해 준 국민에게 감사드린다“라는 메시지를 발표했으니, 응원하지 않은 국민들에 대해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우리나라는 둘로 갈렸다. 비상계엄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최소한 자신의 행위에 의해 발생한 사회적 균열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런 식의 메시지를 발표했으니, 이른바 '관저 정치'에 대한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석방 이후 국민의힘 지도부와 '차담(茶啖)'을 가졌고, 일부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만찬이 아닌 차담을 가진 것은, 국민의힘과 대통령 서로를 위해 그나마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만찬을 가졌더라면, 윤 대통령이 관저 정치를 시작했다는 소리가 더 본격적으로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그립감이 매우 강한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저 정치 같은 말들이 나올 경우, 국민의힘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3월 10일 18세 이상 501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ARS 방식의 여론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나타난 중도층의 대통령 탄핵 찬성 비율은 65.8%에 달했다. 중도층이 이런 의견을 가지고 있는데, 대통령이 관저 정치를 한다는 인상을 주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에 긍정적일 수가 없다. 또한, 관저 정치를 한다는 인상을 주게 되면, 혹시 있을지 모르는 조기 대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아직은 조기 대선이 있을지 없을지를 알 수 없지만, 정치는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존재라는 차원에서 보면, 여당과 대통령은 탄핵 인용 시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런 대비 차원에서도, 강성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대통령이 또다시 '정치'를 한다는 인상을 주면 좋을 것이 없다. 더구나 대선 잠룡들이 대통령 눈치를 본다는 식의 인상을 주게 되면, 잠룡들에게 중도층의 관심이 가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대통령 탄핵이 기각돼 윤 대통령이 다시 복귀한다는 시나리오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도. 관저 정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뜩이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해 국민들을 놀라게 했던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기 전부터 정치를 한다는 인상을 주기보다는, 개헌 등 국가적 대사에 전념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것이 반성하는 모습일 것이다. 결국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봐도. 대통령이 관저 정치를 한다는 인상을 주게 되면,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을 더욱 신뢰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데 문제는 대통령 탄핵 결정이 임박한 시점에, 대통령은 또다시 지지층을 향한 메시지를 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간접적으로나마 대통령이 메시지를 흘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기 때문에, 강성 지지층을 향한 메시지를 결정적인 순간에 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만일 또다시 강성 지지층에게 메시지를 낸다면, 대통령은 진영 논리에 편승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국가와 '국민 전체'만을 생각하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 신율

[EE칼럼] 대왕고래를 더 이상 산으로 가게 하지 말자

지난해 6월 대통령의 발표로 시작된 동해 심해 가스전 탐사사업은 한 편의 코미디처럼 흘러왔다. 과학기술의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자원탐사사업이 불행하게도 정치의 영역으로 엮이면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종료된 1차 탐사시추인 대왕고래 유망구조에서 상업적 가스전 발견에 실패했다는 산업부 발표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돈만 날렸다느니 누가 책임질 것이냐는 등 책임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기대를 많이 한 사람은 기대만큼 실망도 컸을 것이고 기대를 안한 사람은 내가 그럴 줄 알았다며 비난할 수도 있다. 시추 전에 다른 기고문을 통해 이번에 계획된 첫 시추인 대왕고래 구조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무척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즉, 탐사에 성공하면 남아있는 유망구조의 탐사 성공률이 높아질 수 있고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귀중한 평가자료를 제공하여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20%의 탐사 성공 확률의 의미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고 꾸준히 탐사와 시추를 통해서 동해지역에서 석유 가스의 부존 가눙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부터가 정말로 중요하다. 이번 시추 결과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또한 시추 과정에서 얻은 중요한 많은 지질 및 암석 정보를 정밀 분석해야 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동해 심해광구 내에 존재하는 다른 유망구조에 대한 탐사 유망성을 재평가하고 향후 탐사전략을 수립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에너지자원의 해외 의존도가 93% 이상이고 석유가스는 전량 해외에 의존하는 한국에게는 안정적인 에너지자원 공급망이 국가생존에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국내 석유가스개발은 산유국이라는 에너지안보 측면 뿐만 아니라 동쪽의 일본, 서쪽의 중국과의 해양영토 분쟁에 대비한 자료 확보와 축적, 그리고 탄소중립을 위한 이산화탄소 지중저장소 확보 등 다양한 장점이 존재한다. 즉, 잘 추진하면 1석 3조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계획한 것이 한국석유공사의 “광개토" 프로젝트라 불리는 장기적 탐사 계획이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겉으로 드러난 목적과 숨은 목적이 다를 수 있다. 이것을 만천하에 자랑하며 드러낼 필요는 없다. 숨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략을 주변국에 알려줄 이유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자원개발의 기본은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추진하는 것이다. 광개토 프로젝트는 단기적으로는 제2의 동해 가스전을 찾아 에너지 안보를 확립하고 CCS 저장소도 확보하여 국가 탄소중립에 기여하고자 2031년까지 24개 공을 시추한다는 장기적인 계획이다. 이번에 시추 종료된 심해 대왕고래 유망구조 시추는 그 첫 번째 시추공에 해당한다. 마라톤으로 따지면 운동화 끈 조여 매고 막 출발 한 것과 같고 1년 으로 따지자면 24절기 중 첫 번째인 입춘이 지난 것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국가 에너지자원 문제가 정치적으로 다루어지면 한국의 에너지안보 분야는 희망이 없다. 대왕고래가 산으로 가게 두어서는 안된다. 국가 에너지안보와 탄소중립을 위한 국내 해양 자원 탐사사업은 국가의 역할이며 정부가 나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일이다. 정부를 대신하여 사업을 추진하는 한국석유공사는 앞으로 국민의 믿음과 공감대를 얻어 장기적인 광개토 프로젝트가 좌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되길 기대한다. 신현돈

[기자의 눈] 법정에 선 기후위기, 우리는 피고가 아닐까?

최근 기후소송이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의 모잠비크 가스전 투자, 포스코의 고로 개수, 삼성전자의 용인 국가산단 LNG 발전 계획 등 정부와 대기업을 상대로 한 법적 대응이 잇따르고 있다. 이전까지는 정부의 미온적인 기후 대응을 문제 삼았다면, 이제는 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들도 법정으로 불려가고 있다. 하지만 기후소송의 진짜 가해자는 누구일까? 소송이 겨냥하는 대상은 분명하다.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기업과 기후위기 대응에 미온적인 정부다. 가스공사는 7500억원을 투자해 해외에서 신규 가스전을 개발하려 하고, 포스코는 석탄 기반 철강 생산을 유지하며 탄소 배출을 줄일 계획이 없어 보인다. 삼성전자가 추진하는 용인 국가산단 역시 LNG 발전을 기반으로 해 재생에너지 확대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됐지만 기후대응 목표는 여전히 느슨하고 실제 온실가스 감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는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하며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소송을 제기한 환경단체와 기후활동가들은 이제 탄소 다배출 기업을 향해 소송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책임이 오로지 정부와 기업한테만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석탄과 가스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면서도 기후위기 해결을 요구한다. 저렴한 가격의 제품과 편리한 생활을 원하면서도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산업 구조가 지속되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기후위기가 이렇게까지 심각해진 이유는 특정 기업이나 정부 정책 때문만이 아니다. 기후위기의 책임은 구조적이고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더욱 공고해졌다. 기업은 화석연료를 사용한 제품을 생산하지만 소비자가 이를 외면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판매될 것이다. 정부는 탄소중립 정책을 발표하지만, 시민들의 강한 요구가 없다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동력이 부족하다. 기후소송은 이제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까지 책임을 묻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법정 싸움만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기후소송은 단순한 법적 다툼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변화를 요구하는 신호다. 기후위기의 가해자는 법정에 서 있는 정부와 기업만이 아니라 우리 개인이고 사회라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이 기후위기 대응을 주저하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가? 이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 기후위기를 늦추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이슈&인사이트]젤렌스키가 당시 트럼프에 보다 절실하게 임했다면...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11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의 침공 이후 3년여 계속 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30일 휴전'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평화 협상 중재자로 나선 미국이 러시아와 금명간 당국자간 협의, 주중 정상간 전화 통화 등을 통해 러시아의 휴전안 수용을 설득할 예정인 가운데, 러시아가 휴전안에 동의하면 2022년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잠정적으로나마 처음 포성이 멎게 된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안전보장 문제 등을 두고 충돌하면서 종전을 위한 정상회담이 파행으로 끝났던 대목은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고맙게 여기지 않는다"며 불쾌감을 표한 뒤 자리를 떴고, 소셜미디어에 “젤렌스키는 평화를 위해 준비가 됐을 때 다시 오는 게 좋겠다"고 적었다. 오찬과 공동 기자회견도 취소됐고 광물협정 서명식은 미뤄졌다. 급기야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전쟁이 끝나려면 멀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가 한 발언 중 최악의 발언이며 미국은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군사지원 중단을 지시했었다.정상회담이 이렇게 파국으로 끝난 사례는 찾아보기는 힘들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이 '외교적 매복(diplomatic ambush)'을 꾀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에 넘어갔다는 분석이 있지만, 회담 과정을 들여다보면 약자인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을 자극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킨 면이 크다. 첫째, 젤렌스키 대통령 복장 문제이다. 의전에서 복장도 중요하다. 미국측은 사전에 우크라이나측에 군복을 입지 말 것을 수차례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장을 하지 않고 검은색 셔츠를 입고 나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옷차림이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평화협상으로 속히 전쟁을 끝내려고 하는 트럼프로서는 항전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나온 젤렌스키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둘째, 젤렌스키 대통령이 푸틴을 저격하고 안전보장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밴스 부통령에게 “어떤 외교를 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뭘 의미하는 것인가요?" 물었고, 밴스 부통령이 “무례하다"고 하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팔짱을 끼고 말싸움을 이어갔다. 푸틴은 25번이나 자신의 서명을 어겼다면서 단순한 휴전 협상은 수용할 수 없고, 안전보장이 없으면 그것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러시아가 자국 크림반도를 병합한 뒤 체결된 협정에도 불구하고 푸틴이 2022년 전면전을 일으켰다는 점을 재차 지적했다. 셋째, 나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이 미래에 러시아의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직접적으로 자극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감정이 격해지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어떻게 느낄지에 대해 말하지 말라"라고 발끈한 뒤, “당신은 좋은 위치에 있지 않다. 당신은 스스로 그렇게 나쁜 위치에 있게 만들었다"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당신은 수백만 목숨, 3차 세계대전으로 도박을 하고 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마지막으로, 통역을 쓰지 않았다는 부분도 문제가 있다. 아무리 젤렌스키가 영어를 잘 한다고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나 밴스 부통령보다 잘 할 수 없다. 그리고 중요하고 민감한 회담일수록 통역을 써서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특히, 순차 통역을 쓰게 되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감정 격화를 막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고, 궁지에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럴 때에는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사정하듯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상식적이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마치 뭐든 당연히 받아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동안 전쟁을 해 오면서 여러 정상들을 만나 스스로 업(UP)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처지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만용을 부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안전보장이 당연한 요구인 듯이 말했으나, 상대는 거래의 달인이자 괴짜 트럼프 대통령이다. 이러한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더구나 외교적 방식을 언급한 밴스 부통령에게 외교를 아느냐고 무시하듯이 말했고, 미국이 미래에 러시아의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하여 강대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 중단을 지시한 것도 지나치다. 침략자 푸틴에 대항하여 막대한 지원을 해 온 미국이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타격을 가하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 모두가 젤렌스키 때문에 초래됐던건 아니지만 “백척간두에 있는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보다 절실한 자세를 취했으면 어떠했을까?"라는 질문을 지금도 해 본다. 이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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