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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스테이블코인, 보이지 않는 돈과 새로운 재정 해법

세계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격변의 시기에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고 국민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혁신적인 정책 추진이 필수적이다. 보편적 기본소득, 디지털 뉴딜과 같은 담대한 국가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지만, 증세나 전통적인 국채 발행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 시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금융 혁신에 시선이 모인다. 한때 암호화폐 시장의 부산물 정도로 여겨졌던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은 국가의 재정적 한계를 돌파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강력한 '전략적 자산'으로서의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정책의 가장 큰 제약은 언제나 '재원'이었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의 메커니즘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그 준비자산의 대부분은 미국 국채로 채워지고 있다. 이는 전 세계의 디지털 자본이 미국 정부의 재정 운용을 위한 안정적인 수요 기반이 되어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구조를 우리 현실에 적용할 수 있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활성화하고, 그 준비자산을 국채로 운용하도록 제도화한다면, 우리는 국가 정책을 위한 '마르지 않는 재정의 샘'을 확보하게 된다. 특히 지금처럼 고금리와 경기 불확실성으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한계 상황에 내몰릴 때, 정부의 확장 재정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제공하는 거대한 국채 매입 수요는,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경기부양, 사회안전망 확충에 필요한 재원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는 핵심 통로가 된다. 이는 민간의 고통을 덜고 경제 연착륙을 유도하는 데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순기능이다. 이러한 안정적 재원 확보가 스테이블코인의 첫 번째 효용이라면, 두 번째 효용은 경제 전체의 유동성을 증폭시키는 데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돈의 핵심 기능인 '거래의 매개'와 '가치 저장' 수단으로 기능하지만,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본원통화나 은행의 예금통화가 아니기에 M1, M2와 같은 공식 통화량(Money Supply) 지표에는 포착되지 않는다.그러나 통계에 잡히지 않을 뿐, 경제 전체에 미치는 실질적인 효과는 완전히 다르다.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은 경제 내 총구매력을 사실상 이중으로 창출하는 결과를 낳는다. 예를 들어, 1억 원의 자금으로 스테이블코인을 구매하면, 그 1억 원은 국채 매입 등을 통해 정부 재원으로 시중에 풀린다.동시에, 구매자의 디지털 지갑에 생성된 1억 원 가치의 스테이블코인 역시 독립적인 구매력을 가지고 소비와 투자에 사용된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자금으로 '전통 금융 시스템을 통한 구매력'과 '디지털 자산 시스템을 통한 구매력'이 동시에 창출되는 것이다. 통계상 돈의 양은 그대로지만, 경제를 순환하는 돈의 총량과 속도는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이는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강력한 유동성 공급 효과를 가지며,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새로운 차원의 경기부양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물론 이러한 강력한 효과는 새로운 정책적 과제를 동반한다. 스테이블코인 시스템은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통화정책 영향력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 있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으로 유동성 긴축에 나서도, 디지털 자산 시장의 수요에 의해 움직이는 스테이블코인의 유통은 크게 위축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통화정책의 효과를 반감시켜 정책 당국에 새로운 딜레마를 안겨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통제 불가능한 위협이라기보다, 새로운 금융 환경에 맞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혁신적인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국가의 재정 능력을 극대화하고 실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잠재력만은 명확하다. 안정적인 재원 확보를 통해 정부는 국민에게 약속한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고, 실질 구매력 증대를 통해 국민은 그 효과를 피부로 체감하게 될 것이다. 물론 투명한 감독과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은 반드시 필요하다. 통화정책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과거 무분별한 통화발행으로 인해 위기를 겪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역기능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시대가 주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디지털 금융의 날개를 달고, 대전환의 시대를 선도하며 국가 발전의 새로운 길을 열어젖힐 때임은 확실하다. 김수현

[EE칼럼] 기후위기 시대, 새로운 컨트롤타워의 조건

지금 우리 사회는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정부는 환경부와 산업부의 일부 기능을 통합해 기후·에너지·환경정책을 한 곳에서 다룰 수 있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을 구상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기후와 에너지를 통합하되 환경은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외에서도 기후와 에너지를 묶는 경우가 많지만, 환경까지 포함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유는 규제 중심의 환경 정책과 산업·에너지 진흥 정책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상 한국식 실험이라 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혼재되어 사회적으로 여러 이슈를 만들어 내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는 기후정책은 환경부, 에너지정책은 산업부가 맡아 서로 엇박자를 내는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함께 조율하면 정책의 일관성이 높아지고, 국제사회에 한국의 기후 리더십을 보여주는 상징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또한 예산과 조직이 커지는 만큼 정책 추진력도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기대 못지않게 우려도 크다. 환경부는 규제 중심 부처다. 여기에 에너지산업 진흥 기능이 결합되면 '규제와 진흥'이라는 상반된 목표가 충돌할 수 있다. 산업계는 환경부가 에너지 정책을 맡으면 규제가 더 강해질 것이라 걱정한다. 전문성 확보와 갈등 조율 능력 역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어떻게 하면 기후에너지환경부라는 통합형 모델이 성공할 수 있을까? 과거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정부는 대기오염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당시 취사・난방의 주 에너지원 이었던 연탄을 도시가스로 전환하면서 고체연료사용금지, 청정연료사용의무화라는 강력한 연료사용규제를 도입하였다. 이 규제는 초반에는 산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하였지만 장기적으로는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 그리고 자동차와 정유 산업의 기술 혁신을 이끌었다. 규제가 새로운 산업 성장을 촉진한 셈이다. 물론 어려운 점도 있었다. 급격한 연탄 사용 감소로 탄광촌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회적 갈등도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도시가스 공급의 지역독점이라는 특혜를 당시 연탄회사에 부여하여 도시가스회사로 전환하도록 함과 동시에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을 통해 폐광지역을 지원했다. 하지만 규제의 충격을 완전히 흡수하기에는 부족했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분명하다. 규제는 필요하지만 충격 완화 장치가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다양한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지혜롭게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은 단순한 간판 교체나 부처 통합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대한 시험이자 도전이다. 성공의 열쇠는 규제와 진흥의 균형 외에도 정책 충격을 흡수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실행력이다. 특히 여야합의를 통해 어렵게 기반을 다진 에너지3법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하위법령과 시행령을 시급히 제정하여 해상풍력 확대, 사용후핵연료 관리 그리고 전력망 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에너지3법의 집행력을 높이고, 중앙정부·지자체·산업계·시민사회의 참여와 협력을 도모한다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한국적 실험을 넘어 국제적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모쪼록 과거의 교훈을 살리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여 갈등의 진앙지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여는 새로운 컨트롤타워가 되길 기대한다. 조용성

[기자의 눈] 노란봉투법은 난색, 4.5일제는 환영…은행권의 ‘고객편의’ 진심은

은행권이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의 시행을 5개월 여 앞둔 가운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부터 곧바로 직원 채용과 서비스 제공의 대대적인 변화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비정규직 고용 지형부터 손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고객 서비스 위축이 예상된다는 게 주된 반대 이유 중 하나다. 법적 방어 조치로 인한 은행권의 변화가 결국 고객 서비스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은행권은 고객 서비스 최전선인 콜센터부터 대출 상환 업무를 제외하는 등 이전보다 간단한 업무만 진행할 수 있도록 손 본 상태다. 대부분이 외주 인력으로 구성돼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작동이 어려운 고령층 고객은 축소된 지점을 직접 방문해야하는 불편을 겪게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은행권은 노조가 강해지면 파업이 많아지고, 이에 따른 고객 불편이 확대될 것이란 주장도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은행권의 한쪽 편에선 서비스 축소 가능성에 더 크게 직결되는 '주 4.5일제'를 두고 도입 촉구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직원 근무여건 개선을 위해 4.5일제 도입을 통한 효율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 4.5일제를 반대하는 쪽에선 은행권이 제도 시행 후 소비자 피해가 커질 것이란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실제로 주4.5일제가 제도화되면 상시적·구조적으로 고객의 서비스 이용 시간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철저하게 은행 입장에서 노동권 강화가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상황은 반대하고, 근로환경 개선은 내부 이익에 직결되기에 4.5일제는 찬성하는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어느쪽이든 소비자는 이 과정에서 힘없이 순응하는 존재일 뿐이다. 둘 다 서비스 축소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지만 두 사안에 모두 '고객'이 등장하면서 은행권이 이해관계에 따라 고객편의를 앞세우기도 하고 뒤로 미루기도 하는 편의적 태도로 비쳐질 수 있다. 은행권이 명분에 따라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를 보인다면 '고객 우려'라는 방패는 원칙이 아니라 필요할 때 꺼내는 편의적 명분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최근 은행권은 성장동력을 키워야 하는 과제로 인해 정책비용 등 “정부에 더 내놓을 돈이 없다"며 울상이다. 그러나 근로 시간 단축은 성장동력 약화와 직결될 수밖에 없기에 이 역시 명분이 상충된다. 이득에 따라 내세우는 무기에 진정성이 없다면 합리적인 주장일지라도 공감을 사기 어렵다. 연일 '소비자 편의 보호'를 외치기보다 일관적인 태도와 이유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이유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박영범의 세무칼럼] 최대 600억원 가업상속 공제받으려면···

1970년대부터 우리 경제의 눈부신 성장을 이끌어온 창업 세대의 고령화로 가업승계는 중소·중견 기업 경영자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상속·증여세법에는 가업 상속할 때 최대 600억 원을 공제해 주는 '가업상속공제'를 비롯하여, 생전에 가업을 승계하는 경우 낮은 증여세율을 적용하는 '가업승계에 대한 증여세 과세특례' 등 세제 혜택을 통해 원활한 가업승계를 지원하고 있다. 가업상속공제 지원 제도에서 '가업승계'란 기업이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상속이나 증여를 통하여 그 기업의 소유권 또는 경영권을 승계자에게 이전하는 것을 의미한다.가업상속 공제액은 상속세 과세가액에서 가업 영위 기간 10년 이상은 300억 원, 20년 이상은 400억 원, 30년 이상은 600억 원 한도로 공제하여 준다.창업자인 피상속인은 최소 10년 이상 경영한 기업으로, 창업자 가족 합하여 최대 주주 지분 40% 이상을 10년간 보유하고, 승계자인 상속인은 18세 이상이면서 사망일 2년 전부터 가업에 종사하여야 공제해 준다. 2025년부터는 30년 이상 계속 사업한 제조업을 제외한 소상공인 중 제품·서비스 차별성·지역사회 기여도 등을 고려하여 중기부 장관이 지정한 '백년가게'를 운영하는 사업도 가업상속공제 대상에 추가하였다.공제 대상 자산에는 국민주택규모(85㎡) 이하 또는 기준시가 6억 원 이하 주택으로 창업주 사망일 현재까지 5년 이상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는 임직원 사택 중 최대 주주와 친족 등이 사용하지 않은 주택도 포함하였다.자산인 대여금 중 임직원 학자금과 주택 자금에 자녀의 학자금과 기준시가 6억 원 이하 주택의 전세자금도 포함하여 공제하여 준다. 주된 사업 적용 사례로 공제 대상 업종이 응급환자 이송에 대한 용역 수입이 전체의 40%, 산불 진화 용역이 28%, 화물운송 용역이 17% 등 여러 가지 다른 사업을 영위하면 사업별 사업 수입금액이 큰 사업 응급환자 이송을 주된 사업으로 보고 10년 이상 계속하여 운영하였으면 가업상속공제 적용이 가능하다.주식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한 출자지분도 가업상속공제 지분에 포함하며, 유한책임 회사의 업무 집행자를 대표이사로 보아 가업상속공제 규정을 적용한다. 개인사업을 영위하던 중 공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제외하고 법인 사업으로 전환하여 법인 전환 후에도 동일한 업종으로 가업의 영속성이 유지되면 창업주의 개인사업자로서 가업을 영위한 기간도 포함하여 계산한다.주 업종을 제조업 음료에서 제조업 자동차 부품으로 업종 변경하면 대분류 내 업종 변경으로 영위 기간 합산하지만, 제조업 음료에서 도매업 음료로 업종 변경하면 대분류 간 업종 변경으로 영위 기간을 합산하지 않는다. 창업주가 전문경영인과 각자 공동대표이사로 되어있던 기간도 대표이사로 선임되어 법인 등기부에 등재되고 대표이사직을 수행하면 재직기간에 포함하며, 8년 대표이사 재직 후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후 재취임하여 5년간 대표이사 재직하면 합하여 10년 이상 재직한 것으로 본다.종전에는 창업주가 경영에서 물러난 이후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되면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하였으나, 현재는 창업주가 사망할 때 회사를 경영하지 않아도 가업상속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상속인은 전적으로 가업에만 종사하는 경우뿐 아니라 겸업의 경우에도 그 가업의 경영과 의사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면 '상속인이 가업에 직접 종사한 경우'에 포함한다.법률의 규정에 의한 병역의무의 이행, 질병의 요양, 취학상 형편 등의 사유로 가업에 직접 종사하지 못한 기간은 가업에 종사한 것으로 본다. 1개 가업을 공동 상속하여 각각의 자녀가 대표자로 취임하면 가업승계 요건을 충족한 상속인의 승계 지분만 가업상속공제를 적용하며, 자녀 모두 대표자 요건을 충족하면 가업 모두에 대해 가업상속 공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창업주가 사망하여 가업승계 공제를 받은 후 사망일로부터 5년 이내 가업용 자산의 40% 이상을 처분하거나, 주식을 처분하거나, 상속인이 대표 이사에 종사하지 않거나, 가업의 주된 업종을 변경하거나, 1년 이상 휴업이나 폐업 그리고 사업 실적이 없거나, 정규직 근로자 수와 임직원의 총급여액이 90%에 미달하면 사유 발생일 6개월 이내 공제받은 상속세와 이자 상당액을 납부해야 한다. 가업상속공제는 창업주 사망일 전 최소 10년 전부터 사망 후 5년까지 최소 15년간 장기간 계획하고 실천해야 최대 600억 원 혜택을 보는 것이다. 박영범

[EE칼럼] 이재명 대통령의 유엔 외교, AI와 원자력 함께 말해야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유엔 총회에서의 기조연설 및 안전보장이사회 공개토의 주재를 위해 이재명 대통령이 출국했다. 유엔 무대에서 이 대통령은 한국 외교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중요한 기회를 맞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인공지능(AI)을 “국가 경쟁력과 미래 변혁을 좌우하는 핵심동력"으로 규정하며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디지털 전환과 산업 혁신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이번 유엔 무대에서도 AI와 국제 평화·안보를 주요 의제로 다룰 것이라 전해진다. 그러나 AI는 충분한 에너지 공급 없이 지속가능할 수 없다. 특히 데이터센터와 슈퍼컴퓨터, 초거대 AI 모델이 요구하는 전력은 재생에너지로만 감당하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은 국토가 좁은 것은 물론 지형 및 기후조건이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에 유리하지 못하다. AI 시대의 안정적 전력 공급을 뒷받침할 수 있는 현실적 해답은 원자력이라는 것은 이미 글로벌한 수준에서 상식이 되었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이번 유엔 외교를 통해 “AI와 원자력은 분리할 수 없는 미래 동반자"라는 점을 강조하기 바란다. 이재명 정부는 국내 원전 확대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실제로 신규 원전 건설은 착공에서 상업 운전까지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단기적인 전력 수급 대책으로는 실효성이 제한적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은 일견 타당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원자력의 확대냐 축소냐 이전에 현재 대한민국 전력 공급의 약 30%를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는 이상, 원자력 발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문제의 본질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자력의 지속가능성에 있어 핵심이 되는 부분은 국내 전력 수급을 넘어서 글로벌 차원에서의 원자력 수요 확대와 핵연료 공급망 불안에 있다. 여러 나라들이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원자력 회귀 내지 신규 도입을 선택하면서, 앞으로 핵연료 수요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 이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글로벌 원자력 시장에서 뒤처질 뿐만 아니라, 국내 원전 가동에도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은 연료봉 제작(fabrication) 분야에서는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핵연료주기의 선행 부분인 변환(conversion)과 농축(enrichment) 부문에서는 역량이 매우 최약하다. 현재 전 세계 전환·농축 역량은 캐나다의 카메코(Cameco), 프랑스의 오라노(Orano), 유럽의 유렌코(Urenco), 그리고 러시아의 로사톰(Rosatom) 등에 집중돼 있는데, 특히 러시아의 비중이 크다. 이 구조가 바로 글로벌 핵연료 공급망 불안의 근원이다. 한국이 장기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과 연대하지 않는다면, 원자력 분야의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 연료 확보라는 근본 과제에서 취약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연료봉 제작에서의 비교 우위를 넘어, 차세대 핵연료 공급망에까지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2023년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캐나다가 결성한 '삿포로5(Sapporo-5)'는 이러한 문제를 직시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 간 핵연료 공급망 강화를 선언했다. 이들은 향후 HALEU (High-Assay Low-Enriched Uranium: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과 같은 차세대 원자로 연료까지 염두에 두고 협력 구상을 넓히려 하고 있다. 한국이 이 협력에 연대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핵연료 공급망 안정화와 선진화를 선도한다면, 원전 수출국의 지위를 넘어 글로벌 핵연료 질서의 규범 제시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유엔 무대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AI와 원자력을 함께 언급할 수 있다면 국내 전력 정책 논란을 넘어서 한국이 세계적 과제에 어떤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원자력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저탄소 에너지', AI 혁신을 위한 '전력 기반', 그리고 국제적 규범을 존중하는 '평화적 이용 모델'일 뿐만 아니라, 차세대 핵연료 공급망을 준비해야 할 국제 협력의 핵심 의제이기도 하다. 설사 이번 유엔 무대에서 당장 이러한 의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한국은 향후에도 국제무대에서 AI와 원자력, 그리고 차세대 핵연료 공급망을 결합한 비전을 주도적으로 제시해야만 한다. 그것이 글로벌 수요 확대와 공급망 재편 속에서 한국이 국제적 신뢰와 리더십을 확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임은정

[데스크칼럼] BIFF 30년…생애 주기 거친 영화업, ‘근본부터 성장’ 방안은?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30주년을 맞았다. 30주년이니 꼭 30년 전 일이다. 영화감독이라는 분들이 부산 지역 대학신문 기자들을 불렀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만든 박광수 감독과 '101번째 프로포즈'를 만든 오석근 감독이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한쪽에 제대로 차려져 있지도 않은 사무실로 불렀다. 부산 지역 대학신문 기자 열댓 명이 둘러앉았고, 본인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유명 감독과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감독들은 이제 갓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에게 구구절절 절실하게 호소했다. 당시엔 'PIFF'였다. 부산 표기를 'Pusan'으로 하던 때여서 그랬다. 오 감독은 “피프가 한국 영화를 세계에 전달하는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고 “자원봉사를 할 학생들이 없다. 대학신문에서 도와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기억한다. 박 감독은 대학신문 기자들 손을 하나하나 잡으며 홍보 기사를 부탁했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등장하기 전이었다. 전방 산업이 되는 극장은 죄다 영세한 실정이었다. 창발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감독과 배우가 만든 영화는 쏟아지는데 보러 갈 극장이 너무 적었다. 영화의 재원이 되는 펀드를 포함해 후방 산업도 형성되지 못했다. 영화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산재한 영화관을 하나로 묶어 전방 산업을 형성하려는 한국 영화 산업계의 대형 마케팅 이벤트였다. 당시만 해도 영화제는 칸이나 베를린 같은 곳에서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니 대학신문 기자라도 불러 홍보해야 했을 수밖에 없었을 거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5년 만에 대박을 터트렸다. 영화 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멀티플렉스가 날로 늘어나고 영화마다, 감독마다 뭉칫돈으로 펀딩을 받았다. 할리우드와 견줘도 손색없는 특수효과와 컴퓨터그래픽 기술도 한국에서 개발됐다. 2010년 국제신문 영화담당 기자로 다시 PIFF를 찾았다. 배우와 감독은 해운대 뒷골목 어묵집과 포장마차에서 저마다 기자를 불러 만나 영화산업의 활황을 자축했다. 만취한 한 유명 배우는 “황금사자든 아카데미든 우리가 다 휩쓸 거야. 두고 봐"라고 했다. 그는 이유를 “투자금 단위가 달라졌어. 찍기만 하면 돈이 되잖아"라고 설명했다. CGV가 멀티플렉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때였다. CJ는 영화의 전후방 산업을 모두 차지하고, 영화산업을 '사실상 수직계열화'했다. 영화인은 CGV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영화산업은 영화관을 중심으로 독점에 빠졌다. 천만영화든, 쪽박영화든 내용과 관계없이 CJ가 정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러고 또 15년이 흘렀다. 영원할 것 같던 영화업의 전방산업이 교체됐다. 영화관을 OTT와 대형 TV가 대체했다. 시간과 돈을 들여 영화관을 찾기보다 휴대전화나 홈시어터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OTT 업체가 투자를 늘리면서 '영화업'은 '단회 영상콘텐츠업'으로 바뀌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BIFF를 찾아 영화를 관람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영화 제작 생태계가 나빠지고 있다는데, 정부도 영화 산업이 근본부터 충분히 성장할 수 있게 관심을 갖겠다"고 약속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영화분야 예산을 전년 대비 배 가까이 늘렸다. 영화 산업은 생애주기를 한 차례 겪었다. 투자자에게 매칭펀드 재원을 주거나, 감독에게 제작비를 지원하거나, 배우 생계비를 보조해 주는 것만으로는 산업의 근본을 변화시킬 수 없다. 대통령이 영화 산업의 '근본부터 성장'에는 이유가 있을터, 그 방안에 산업 구조적 변화가 들어있는지 궁금하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EE칼럼] 황소를 끌고 올 에너지 정책

소꼬리인 줄 알고 덥석 잡았는데, 그 뒤에 집채만 한 황소가 통째로 딸려 나오는 격이다. 최근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바로 이와 같다. 산업을 도외시한 환경 위주의 정부 조직 개편이나 특정 에너지원 육성 정책이 우리 경제와 산업 전반에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치우친 현재의 에너지 정책은 결국 막대한 비용을 국민과 기업에 떠넘기고, 국가 경쟁력을 심각하게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수순이라 설명하지만, 이는 더 큰 문제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판단에 불과하다. 전기요금 인상은 우리 경제의 연쇄적인 비용 상승을 유발하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모든 산업 활동의 기초 동력인 전기 에너지가 비싸지면, 원자재 가격부터 공장 기계 가동 비용까지 오르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고스란히 제품 생산 원가에 반영되고, 복잡한 물류와 유통 단계를 거치면서 최종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 상승 폭은 훨씬 더 커진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전기요금 인상은 결국 우리 경제 전체를 뒤흔드는 물가 폭등과 경기 침체라는 '황소'를 끌고 올 것이다. 지속적인 전기요금 인상은 우리나라 산업의 경쟁력을 뿌리부터 흔들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요 경쟁국과 비교해 매우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190.4원으로, 미국(121.5원)이나 중국(129.4원)보다 월등히 비싸다. 이런 상황에서 요금을 더 올리는 것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육상선수에게 족쇄까지 채우는 격이다. 특히 AI, 반도체, 철강처럼 전기를 많이 쓰는 국가 핵심 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잃고, 이는 수출 부진, 투자 위축, 양질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로 높은 전기료를 감당하지 못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에너지 정책의 본질은 국민과 기업에 필요한 에너지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중단 없이 공급하는 데 있다. 하지만 현재의 정책은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특정 '수단'을 정책의 '목표' 그 자체인 듯이 착각하고 있다. 수단과 목표가 뒤바뀌면서, 정책은 방향을 잃고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급변하는 치명적인 한계를 가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하고, 비상용으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계속 가동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결국, 꼬리(수단)가 몸통(목표)을 흔드는 격의 정책은 우리 경제를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 이는 마치 항로 없이 망망대해를 떠도는 배와 같다. 이제는 '소꼬리'만 보는 단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그 뒤에 험악한 인상을 하고 선 '황소'의 전체 모습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에너지 정책은 특정 이념이나 단기적 성과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원자력을 포함한 균형 잡힌 에너지 믹스를 통해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 공급 기반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특정 에너지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공급 불안정과 가격 변동성의 위험을 키울 뿐이다. 둘째, 전기요금 인상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산업계와 국민에게 미칠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완충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요금 조정은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니라, 경제 전체를 고려하는 고차원적 정책 설계의 영역이다. 마지막으로, '공급 안정성', '안전성', '경제성', '환경성'이라는 4대 핵심 가치를 조화롭게 달성할 수 있도록 국가 에너지 전략의 목표를 명확하게 재정립해야 한다. 이 네 가지 가치가 바로 우리 에너지 정책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될 것이다. 더 이상 꼬리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며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에너지 정책은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적 결정이다. 우리 경제와 산업,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현명하고 책임감 있는 선택을 해야 할 때다. 문주현

[기자의 눈]페라리·에쿠스 몰면서 탄소중립 외치는 국회의원들

“2030년까지 국회 차량을 전부 무공해차로 바꾸겠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6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탄소중립 선언식'에서 아이들과 손을 맞잡고 탄소중립을 다짐했다. 국회가 매년 배출하는 2만2871t의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몰고 다니는 건 2016년식 올뉴카니발 디젤(배기량 2199cc)이다. 1km 주행 때 177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연간 1만3000km를 주행할 경우 연간 2.3t을 내뿜는다. 국회의원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에너지경제가 국회 공직자윤리시스템(PET)에 공개된 22대 국회의원의 본인 명의 자동차 등록 내역을 전수 분석한 결과, 전기차·수소차를 보유한 의원은 단 8명(2.7%)에 불과했다. 하이브리드 차량을 갖춘 의원도 21명(7.0%)에 그쳤다. 반면 배기량 3000cc 이상 대형 승용차·SUV를 몰고 있는 의원은 61명(20.3%)으로, 5명 중 1명꼴이었다. 개별 사례를 보면 극명하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본인과 배우자 공동 명의로 3900cc 페라리를 보유했다. 여기에 벤츠 SL400(3000cc)까지 배우자 명의로 등록돼 있어 단연 '최고 배기량 의원'으로 꼽혔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2013년식 제네시스(3342cc)와 카니발(2199cc)을 처분하고 2021년식 제네시스(3778cc)를 새로 들였다. 배우자 명의 그랜저(2999cc)까지 합치면, 탄소중립보다는 '배기량 업그레이드'에 가까운 선택이다. 김윤덕 의원(국토교통부 장관)을 비롯해 박형수·배준영·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은 모두 3778cc급 제네시스·에쿠스·EQ900 등을 몰고 있다.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도 에쿠스(3778cc)에 더해 2019년식 카니발 리무진(2199cc), 2020년식 GV80(3470cc)까지 함께 보유하고 있다. 물론 친환경차를 모는 이들도 있긴 있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본인 차량이 없고, 배우자 명의의 소나타 하이브리드를 처분해 2024년식 전기차 아이오닉5로 교체했다. 김성환 민주당 의원(환경부 장관)은 2019년 니로EV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아이오닉5를 몰고 있다. 이학영·김용만 민주당 의원은 수소차 넥쏘를, 문대림 민주당 의원은 2022년식 GV70 전기차를 보유했다. 선언식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아이들과 손을 맞잡은 퍼포먼스와 의원회관 주차장에 즐비한 '검은색 대형 세단'은 이율배반이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이슈&인사이트] 근거 없는 부정선거 소송의 실체

한국 선거가 부정으로 조작되고 있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은 미국 사회에서도 조직적으로 전파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을 부정선거의 피해자로 주장했던 바라 이러한 음모론은 쉽게 퍼져나가는 중이다. 이름은 그럴듯한 “국제공정선거연합 산하 국제선거감시단"이라는 조직이 미국 내에서 한국의 부정선거 음모론을 널리 퍼뜨리고 있다. 이 조직에는 2025년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한국에 방문하여 소란을 일으켰던 미국 한 대학의 한국계 교수와 변호사 등이 가담해 있다고 알려졌다. 한국의 부정선거 음모론을 확산시키는 조직들도 미국까지 진출했다. 2025년 7월에는 트루스포럼이라는 한국의 청년 단체가 미국에 지부를 설치했다고 한다. 한국 트루스포럼을 이끄는 인물이 공교롭게 미국 메릴랜드에 주소지를 가진 재미동포 목사인데 이 목사는 국제선거감시단의 대표격인 그 한국계 미국 교수와 함께 트루스포럼의 미국 지부 대표를 맡고 있다. 극우 보수 성향의 목사와 교수 사이의 콜라보다. 이들은 미국 의회 관계자, 미국 의회 주변에 있는 싱크 탱크 관계자, 보수 시민 단체 활동가 등에게 부정선거론을 전파하고 있다. 영문으로 작성된 자료가 이메일을 타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옹호하고 부정선거 주장을 정당화하는 중이다. 특검의 정당한 수사와 압수수색을 기독교와 통일교에 대한 종교 탄압이요 숙청이라고 포장하는 내용이 요소요소에 퍼진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에서 숙청이 벌어지고 혁명이 일어난 것 아니냐고 언급할 정도였다. 이들에게는 조직력도 있고 자금력도 있다. 영향력도 행사하고 주목도 더 받으면서 돈을 더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들은 쉽게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물리칠 객관적인 논리와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이 필요해진다. 한국에서는 부정선거 음모론이 2020년 국회의원선거 이후 급증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선거 불복소송은 2002년에 4건, 2007년에 0건, 2012년에 5건, 2017년에 7건, 2022년에 11건으로 많지 않았다. 국회의원선거 불복소송은 2004년에 9건, 2008년에 4건, 2012년에 5건, 2016년에 12건에 불과했는데 2020년에 126건으로 폭증했다가 2024년에 34건을 기록했다. 여기에서 주목할만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이 모든 소송에서 대법원이 선거 부정을 인정하는 판결을 단 한 건도 내린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기록적인 선거불복 관련 소송이 제기된 2020년 국회의원선거에서 총 126건 가운데 21건은 소장각하 또는 소취하이고 나머지 105건은 모두 기각 또는 각하로 끝났다. 2022년 대통령선거 이후 제기된 소송 가운데 일부는 현재 진행 중인 사건으로 남아 있지만 대세는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다른 특징 하나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 한 신문사가 2020년 국회의원선거 이후 제기된 모든 선거무효와 당선무효 소송 167건을 전수조사하여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보도했다. 2020년 선거 소송이 126건에 달했지만 실상 100건 이상의 소송 청구 이유와 취지가 아주 똑같았다는 것이다. 전국의 253개 지역구에 거의 절반에 가까운 선거구에서 똑같은 내용을 복사한 뒤 원고만 조금씩 바꿔가면서 무더기로 골탕먹이기 식의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일반 유권자들은 이 정도 되면 마치 전국에 부정선거가 만연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126건의 소송 가운데 불과 4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의 소송이었다. 나머지 122건의 소송은 10명 정도의 부정선거 음모론 변호사들이 모여서 '복붙 소송장'을 제출하는 기획 소송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의회는 물론 대통령에게까지 전파되는 한국의 부정선거 음모론은 실체가 전혀 없다. 지금까지 선거불복 소송에서 대법관들은 자신의 진보와 보수 성향을 떠나 객관적이고 일관되게 판결해왔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해 “아무 증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라고.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널리 체계적으로 홍보하고 전파하고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이준한

[EE칼럼] ‘착한 성장’이 아닌 ‘똑똑한 성장’

세계 전력시장이 대세 전환의 임계점을 통과하고 있다. 2024년 전 세계 신규 발전설비 용량의 92.5%가 재생에너지로 채워졌으며, 이 중 태양광과 풍력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태양광은 2022년 신규 발전설비 용량의 50.6%로 처음 절반을 넘어선 이후, 2023년 61.9%, 2024년 69.3%를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풍력은 2020년 34.4%로 정점을 찍은 후 2024년 17.4%로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신규 설비에서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누적 발전설비 용량을 보면 2024년 재생에너지 설비 비중이 46.4%에 달했고, 2024년 증가율 정도만 기록해도 2025년에는 화석연료 발전설비와 비슷하거나 역전하게 된다. 2025년은 재생 발전설비 용량이 화석연료를 추월하는 첫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재생 발전량 점유율도 2024년 31.8%에서 2025년 34%를 넘어설 전망이다. 영국의 싱크 탱크 엠버(Ember)의 통계에 따르면 2025년 8월까지 재생 점유율은 34.0%, 태양광 9.1%. 풍력 8.6%, 태양광+풍력은 17.7%였다. 태양광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전력원이다. 2025년 상반기 신규 태양광 발전설비 용량은 전년 대비 64% 급증했으며,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2025년 연간 신규 용량은 700~800GW에 이를 것이다. 이는 2024년 말 기준 전 세계 원자력 발전설비 용량의 약 두 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최근 발표된 Ember의 한 연구가 화제가 되었다. 이 연구에 따르면, 1억 달러로 천연가스를 수입해 1년간 1.5TWh의 전기를 생산하는 것과 비교해, 같은 금액으로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면 30년간 매년 1.5TWh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이는 태양광이 천연가스보다 약 30배의 비용 효율성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다. 화석연료 수입은 국가에 반복적인 경제적 부담을 안기지만, 태양광은 일회성 투자로 장기적인 에너지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보장한다. 그럼에도 태양광의 확산 속도가 더딘 현실은 아쉬움을 남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 주요 기관의 시나리오를 종합하면 2050년 전력 수요는 지금의 2~2.5배 수준 즉, 발전량 기준으로 2024년 30PWh에서 2050년 60~75PWh가 될 것이다. 전기차 보급 확대, 산업 부문의 전기화, 데이터센터 및 AI 관련 수요 증가가 주된 요인이다. 여기서 태양광은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2024년 전 세계 전력생산에서 태양광 점유율은 7%, 발전량 2PWh 수준이지만, 2050년에는 최대 50%, 30~37PWh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광 발전설비 용량도 최대 14TW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태양광은 2030년 이전에 원자력, 풍력, 수력을 제치고, 2033년에는 석탄을 넘어 세계 최대 단일 발전원이 될 것이다. 최근 우리 정부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조직개편,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 2030 재생에너지 목표 상향, 재생에너지 생산 세액공제 제도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속도는 느리기만 하다. 여전히 재생에너지 발전량 점유율은 몇 년째 OECD 최하위이며 아시아에서도 하위권, 아프리카 주요국에도 뒤진다, 태양광 발전량 점유율 순위도 2023년 OECD 24위에서 2024년 26위로 오히려 두 계단이나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흐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결과다. 한국이 갖고 있는 반도체·이차전지·정밀화학·기계·조선·철강 등에서 축적된 능력과 세계적인 레버리지는 더딘 탄소중립 이행과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으로 인해 과소 평가받고 있다. 탄소중립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도덕 프레임으로 볼 때 생기는 허상에서 벗어나, 국가 경쟁력과 수출, 일자리,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잡는 국가 산업 전략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똑똑한 성장'이란 탄소중립으로 가는 성장이 착하냐, 나쁘냐라는 '착한 성장'의 문제가 아니라 그 길이 국익을 위해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똑똑한 성장의 경로이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은 이미 '탈탄소 프리미엄'을 가격과 정책, 공급망 규칙에 내재했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 유럽의 탄소국경조정, 중국의 규모 공세까지 겹치며, 저탄소·고효율 기술을 내재화하지 못한 산업, 기업, 국가는 수출 문턱에서 비용과 리스크를 떠안게 될 것이며, 반대로, 탄소중립을 위한 재생에너지 전환은 우리 제조업의 구조적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도구가 될 것이다. 이제 새로운 거버넌스가 만들어지게 됐으니 탄소중립 및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특히 태양광, 풍력 보급에 속도 높이기 위해 인허가 절차 간소화,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지역 주민과의 협력 강화 등을 서둘러 추진할 할 때다. 탄소중립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확대는 '착한 에너지'라는 도덕적 프레임을 넘어 국익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정책이자 '똑똑한 성장'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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