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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청년 생각하면 ‘부동산 대책 갈등’ 멈춰라

1·29 공급대책을 계기로 부동산 공급을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의 충돌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9일 수도권에 총 6만 가구를 공급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와 태릉CC 등 가용 부지를 총동원하겠다는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지난해 3차례 부동산 대책에도 서울 등 일부 핵심 지역의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시장이 불안해진 것에 따른 조치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집값은 반드시 잡겠다", “부동산(자산 집중) 망국병"이라는 강한 어조를 동원하면서 보유세제 개편을 포함한 강경한 대책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대책 발표 약 4시간 만에 “서울시의 우려와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발표됐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8000가구 공급이 국제업무지구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노선이고, 태릉CC 공공주택 공급 역시 그린벨트 해제 면적에 비해 주택 공급 효과가 미미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공방은 주말에도 이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태릉CC 사업지의 약 13%가 조선 왕릉 보존지역과 겹친다고 비판했다. 종묘 보존을 이유로 세운상가 개발을 제동 걸었던 정부의 입장과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국토부는 세계유산영향평가 선행을 분명히 했지만, 서울시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직접 반박했다. 오는 6월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도 긴장을 한층 고조시키는 원인이다. 부동산 시장 안정과 정책 책임을 둘러싼 공방은 곧바로 표심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정부와 서울시 모두 공방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상황이다. 부동산은 청년과 신혼부부를 포함한 전 세대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길어질수록 시장의 불확실성만 커진다. 현재 시장에 필요한 것은 정책 주도 싸움이나 책임 공방이 아닌 현실적인 해법이다. 정부나 오 시장이나 정치적 이해 득실이 아닌 부동산 시장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협상과 협력에 나서야 한다. '부동산 망국병'이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마따나 이대로 부동산 시장을 방치할 경우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지속가능할 수 있을 지 조차 의심되는 상황이다. 더 이상 부동산 투기 때문에 초고령화·양극화, 인공지능(AI)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사회·경제의 지속가능성을 훼손당해선 안 된다. 부동산은 정쟁의 소재가 아닌 최우선 협력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이슈&인사이트] 2026년의 각성: ‘금융 안정’의 요새와 WGBI라는 구원투수

2026년 1월 15일, 새해 첫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마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시장은 연준의 금리 인하 기조에 발맞춘 '추가 인하'라는 선물을 기대했지만, 금통위의 대답은 '기준금리 2.50% 동결'이라는 차가운 현실이었다. 특히 이번 결정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그동안 유지해온 “금리 인하 기조 유지"라는 문구를 삭제하고, “당분간 금융 안정을 위해 긴축적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고차원적인 인내를 선언한 점이다. 1. '포워드 가이던스'의 실종과 하이브리드 긴축의 시대 연준이 매월 400억 달러의 단기 국채를 사들이며 '스텔스 QE'를 단행하고 있음에도 한국은행이 '동결'이라는 빗장을 걸어 잠근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2025년 하반기부터 우리 경제를 옥죄어온 '서울 집값'과 '고환율'이라는 두 괴물 때문이다. 한은은 연준의 유동성 파티가 국내 자산 시장의 투기적 수요로 전이될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금리 수준을 조절하는 차원을 넘어, 가계대출 억제를 위한 거시건전성 정책(LTV, DSR 강화)과 금리 정책이 결합된 이른바 '하이브리드 긴축'으로의 완전한 전환을 의미한다. 2. 1,400원의 사투: 외환 방어의 '뉴 노멀'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중후반에 안착하면서 수입 물가 상승과 자본 유출 압력은 한국 경제의 상수가 되었다. 서학개미들의 거센 해외 투자 행렬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채 매도세가 맞물리며 외환보유액은 2025년 12월 한 달 만에 26억 달러가 급감, 외환위기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와 한은은 2026년 1월 말부터 '원화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KRW FX Bonds)' 발행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달러를 팔아 원화를 방어하는 소극적 개입에서 벗어나, 외국인들에게 원화 채권을 직접 팔아 원화 수요를 구조적으로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한국 국채의 신용을 담보로 외환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진화된 방어 기제다. 3. 4월의 약속, WGBI라는 구조적 변곡점 환율과 금리의 딜레마를 풀 핵심 열쇠는 이제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다. 2026년 April(4월)부터 8개월간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WGBI 편입은 한국 국채 시장에 약 560억 달러(약 75조 원) 이상의 안정적인 외국인 자금 유입을 보장하는 강력한 구원투수가 될 전망이다. 이전의 자금이 단기 수익을 쫓는 '핫머니(Hot Money)'였다면, WGBI를 타고 들어올 자금은 글로벌 연기금 등 장기 보유 성향의 '안정적인 자본'이다. 이 자금의 유입은 국채 금리를 낮춰 정부의 이자 부담을 줄일 뿐만 아니라, 원화 가치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운용 공간을 넓혀줄 것이다. 4. 생산적 유동성으로의 물꼬: AI와 반도체의 승부수 결국 2026년 한국 경제의 성패는 넘쳐나는 유동성이 '부동산'이라는 늪에 빠지느냐, 아니면 '미래 산업'이라는 엔진으로 흘러가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은행은 2026년 통화정책 운영 방향을 통해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개편하고, 유동성 공급의 타겟을 AI와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집중하겠다고 천명했다. 2026년 1.8%라는 저성장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를 통한 착시 효과보다는, WGBI 편입으로 확보된 안정적인 자금 여력을 바탕으로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구조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 2026년은 더 이상 연준의 입만 바라보는 시대가 아니다. WGBI 편입이라는 글로벌 자본의 인정과 원화 표시 채권 발행이라는 자주적 방어 수단, 그리고 산업 구조의 생산적 전환을 통해 우리는 '부채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연준이 튼 유동성의 수도꼭지가 우리에게 홍수가 아닌 단비가 되게 하려면, 이제는 금리라는 계량적 수치보다 '구조의 내실'을 다지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김수현

[EE칼럼] 충분한 전력 확보 위해 시간과 공간도 고려해야

맷 데이먼이 주연한 영화 '마션'은 화성에 홀로 남겨진 NASA 우주인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서 생존하여 지구로 돌아오는 내용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화성 우주 기지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는 물, 공기, 감자와 같은 재배 가능 식물 등 얼마 안 되는 각종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흥미롭게도 마크 와트니가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원은 바로 시간과 공간이다. 주어진 시간과 좁은 공간 속에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충분한 전력의 확보는 국가 경쟁력을 위해 필수적 고려사항이 되었다. 이재명 정부도 최근 신규 원전 2기를 건설하기로 확정하고 부지 선정 작업에 돌입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과 공간이다. 신규 원전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10년 넘는 시간이 소요된다. 천지 원전을 추진하였던 영덕을 비롯해 울진, 울주 등 여러 곳이 신규 원전 부지를 유치할 것으로 전망되어 부지확보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므로 신규 원전은 지금부터라도 당연히 추진해야 할 옵션이다. 좁은 국토에서 불과 몇 년 후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전략은 무엇일까? 발전설비의 건설과 함께 필요한 것은 전력망의 건설이지만 현재 전력망의 건설은 곳곳에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강원지역에서 백두대간을 건너 수도권으로 연결되는 HVDC와 하남시 변전소 건설이 늦어지고 재생에너지 전력을 수도권으로 공급하기 위해 전북과 충청권을 거쳐 수도권 반도체 단지로 연결되는 전력망의 건설도 아직 불투명하다. 이재명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송전망도 2029∼2038년까지 호남의 재생에너지 전력을 수도권으로 실어 나르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중 수도권으로 전력이 제대로 공급되는 시기는 2030년 중반 이후로 예상된다. SMR은 공간을 아낄 수 있고 또 추가적인 송전망 건설 없이 반도체 단지나 데이터센터에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아직 SMR 모델과 안전규제 프로토콜이 확정되려면 10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인근 주민들의 동의 같은 입지문제는 별도로 하더라도 말이다. LNG 발전소는 어떤가? 건설 기간은 4년 정도 예측해야 한다. 그렇지만 최근 가스터빈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AI에 따른 전 세계 전력 부족으로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이 급증하여 지금 주문을 넣어도 GE, 미쓰비시, 지멘스 등 빅 3는 2030년 이후에나 납품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은 공급 부족으로 가스터빈을 성공적으로 개발한 두산 에너빌리티는 호황을 맞고 있다. 이런 점에서 4년 후라는 전제를 둔다면 LNG 발전소는 가장 유력한 대안이다. 수도권에 추가로 지을 수 있는 발전설비는 수도권의 좁은 지역에서 높은 밀도의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수도권이 발전설비가 입지하기 어려운 지역임을 감안하여 주민 수용성이 좋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LNG를 이용한 열병합 발전설비는 지역난방을 통해 주민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지역의 범위가 제한적이고 비용도 고려해야 하나 연료전지를 통한 발전과 열의 공급은 시간을 앞당길 수 있고 공간도 적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된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에 따른 일시적 전력부족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된다. 이미 그 틀이 잡힌 에너지 전환의 시간 제약 안에 충분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결국 시간표를 다시 짤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석탄발전소의 문을 닫는 시간이 연장된다. 이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석탄발전소의 남은 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시간과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유력한 방안이다. 전력 공급을 위해 모든 선택지를 다 검토할 수밖에 없다. 조성봉 bienns@ekn.kr

[EE칼럼] 에너지 전환의 그늘: 취약한 광물·원자재 공급망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1986년 말 석유 위기가 종식되자마자 국내 유일 부존 에너지원이던 무연탄 산업을 합리화한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급률이 50% 수준에서 3% 수준으로 급락하였다. 에너지수입의존도는 1997년 98.3%까지 상승하였으며 30여 년이 지난 2024년에도 93.6%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 덕분에 세계에너지협의회(WEC)의 2024년 보고서에 평가된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정 공급(Energy Security) 부문의 점수는 세계 50위권 수준이다. 그런데 높은 수입의존도 문제는 광물 등 원재료 부문으로 가면 더욱더 심각해서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주요 원재료 수요의 9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잘 알고 있는 공급망(supply chain) 이슈이다. 그런데 최근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무역분쟁에 더하여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우리나라의 공급망 문제를 더욱 심각한 문제로 만들 수 있다. 정책의 미래가 더 많은 광물과 원재료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의 에너지전환정책은 화석연료를 직접 사용하는 설비 대신 전기를 사용하는 설비로 바꾸는 단계와, 전기의 생산 방법을 이른바 '탄소중립발전'으로 전환하는 단계 등 두 가지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경제학 분석에서 자주 사용하는 생산함수의 형태로 바꾸어 보자. 일반적인 생산함수에 사용하는 주요 투입 요소로는 자본(K), 노동(L) 및 에너지(E)와 원재료(M) 등이 있다. 화석연료를 직접 사용하는 방식에서 전기로 전환하는 단계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바꾸는 사례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자동차 두 생산품의 생산과정에 들어가는 K, L, E, M 간의 변화는 매우 적다. 그러나 늘어난 전기자동차에 사용할 전기를 생산하는 단계의 변화는 매우 다르다. 화석연료 발전 대신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이 증가하는 것은 전기의 생산과정에서 에너지(E)가 물질(M)로 대체되는 과정으로 표현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알루미늄, 실리콘, 구리 등과 원자력발전에 필요한 우라늄은 물론 배터리 등 전력저장장치의 생산에 필요한 광물수요 역시 많이 늘어난다. 또한 전기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추가적인 전력 생산과 송배전에 필요한 구리와 철 등의 수요가 늘어나게 된다. 또한 화석연료 발전시설에 비하여 원자력이나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이 초기 자본(K)이 많이 투입되지만, 시설을 가동하기 위한 비용은 적게 드는 형태임을 고려하면, 에너지전환정책은 국가 단위의 에너지 생산과정에서의 투입 요소가 에너지(E)에서 물질(M)과 자본(K)으로 대체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2019년 유럽의 탄소중립 선언 직후에 출간한 『Net-Zero Europe』보고서에서 유럽이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탄소중립발전이 44%의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현재 총에너지소비 중 21% 수준인 전력이 50% 수준 이상으로 증가하고 또 이를 탄소중립발전으로 공급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산업, 상업, 가정에 있는 에너지 사용설비 역시 상당 부분 교체될 것임을 의미한다. 여기에 필요한 광물과 원재료의 양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광물 및 원재료의 공급망 문제가 매우 중요한 정책 이슈로 다루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제와 산업은 에너지 쪽보다 광물과 원자재 쪽이 더욱 취약하다. 이러한 구조적인 이슈는 정부의 재정과 예산 및 정부 구성에 아직도 그대로 나타난다. 다행인 것은 광물은 재활용하여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며, 우리나라는 철은 물론 비철금속 분야의 리사이클링산업이 잘 발달하여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하지만 옆 나라 일본은 광물 등 원재료의 확보와 재활용 부문에서도 우리보다 상당히 앞서있다. 유명한 대기업 상사조직들이 여전히 국제적으로 활동 중이기 때문이다. 자원은 미쯔이, 전력은 마루베니, 그리고 모두 다 잘하는 미쓰비시 등 여러 대기업 상사조직이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적, 제도적 지원도 상당하다. 일본은 왜 대기업들이 정부의 지원과 제도를 통하여 이 부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 우리나라 정부는 조금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전환의 종점이 어떠한 모습일지 세밀하게 예측하고 분석하여야 함은 물론 구성원 모두가 차근차근 함께 준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허은녕 bienns@ekn.kr

[기자의 눈] 30년 1조원, 서울시 ‘값비싼 미루기’의 청구서

행정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실패가 아니라 방치다. 실패는 수정이라도 가능하지만, 방치는 어느 순간부터 구조가 되고 관성이 된다. 서울시의 임차청사 운영 문제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세금을 누수시키는 방치 행정의 전형이다. 시는 현재 본청 외에도 여러 임대청사에 핵심 행정 기능을 분산해 운영하고 있다. 서소문2청사, 무교별관, 한국프레스센터 등 민간 건물에만 1800명 가까운 인력이 근무 중이다. 시티스퀘어에 위치한 서소문2청사에는 7개 실·국, 53개 부서, 1378명이 근무 중이다. 무교별관에는 2개 실·국 8개 부서 149명이, 한국프레스센터에는 3개 실·국 12개 부서 299명이 배치돼 있다. 서울시의 핵심 행정 기능 상당수가 본청이 아닌 민간 임차 공간에 흩어져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구조가 '한시적 대안'이라는 설명과 달리 이미 장기 고착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임대료는 해마다 자동으로 늘고 있다. 시가 내는 연간 임대료는 2022년 174억7400만원에서 2023년 199억3900만원, 2024년 222억1700만원으로 증가했고, 2025년에는 234억3600만원으로 집계됐다. 불과 3년 만에 연간 부담이 약 60억원 가까이 늘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구조 개편이나 청사 운영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별다른 정책 결정이 없으면 비용은 꾸준히 상승한다. 국회 박홍근 의원실이 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한 장기 추정치에 따르면 임대료 누적액은 2030년 1435억원, 2040년 4472억원, 2050년 8554억원에 이르고, 2054년에는 1조556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행정이 움직이지 않을수록 예산은 더 빨리 새어나간다. 이 문제를 단순히 '공간 부족'으로 치부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시에서 구상 중인 신청사 인근 도시재개발사업의 공공기여분을 활용해 자가청사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임차청사 규모를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안도 하나의 선택지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임대라는 가장 손쉬운 선택을 반복해 왔다. 갈등도 없고, 결단의 책임도 뒤로 미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매년 고스란히 예산서에 쌓인다. 행정 효율 측면에서도 손실은 분명하다. 여러 건물로 쪼개진 행정은 이동 비용과 협업 저하를 낳고, 이는 곧 정책 조정력과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값비싼 미루기'의 부담은 결국 시민에게 돌아간다. 행정의 책임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데서가 아니라, 결단을 내려 방치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이슈&인사이트] 미국의 그린란드 야욕으로 본 새로운 국제관계 질서 변화

미국 트럼프 정부가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에 대한 영토 욕심을 보인 이후 미국과 유럽 국가의 관계가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현재 양측은 이 문제로 전례 없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관계가 더 악화하면 미국과 유럽이 결별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이에 덴마크, 독일, 영국 등 7개 나토 회원국은 그린란드에 비록 소규모지만 병력을 파병해 유럽이 미국의 도발에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모습을 과시했다. 그러나 미국은 파병 국가에 2월 1일부터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고 6월 1일부터는 이를 25%로 인상하겠다며 위협을 하자 독일 등 일부 국가가 파병을 취소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번 사태로 유럽은 큰 충격을 받고 분노하고 있다. 미국이 덴마크 영토인 그린란드를 침공하면 나토는 나토 헌장 5조에 따른 집단 방어권을 동원해 미국과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나토의 붕괴를 초래하는 최악의 상황이 될 거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만약 미국이 계속 영토 야욕을 보이고 유럽에 대해 관세 공격을 시작하면, 유럽이 보유한 약 10조 달러(1.5경 원)의 미국 국채와 주식을 처분해 보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이 무력을 사용하더라도 그린란드를 소유하겠다는 주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국제관계 질서를 파괴하는 전례 없는 행위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의 국익을 내세우며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러시아나 중국 같은 적대세력을 견제하기보다 유사한 가치관과 정치사상, 제도를 가진 동맹국인 나토 회원국들을 더 가혹하게 대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미국이 나토를 냉정하고 가혹하게 대하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미국은 개국 이래 미국 '우선(예외)주의'를 포기한 적이 없다. 이는 미국을 다른 나라들과 다른 독특하고 예외적인 나라이며, 미국의 외교정책은 미국의 핵심 가치와 이익을 지키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더불어, 미국은 미주 대륙 이외 이익이 안 되는 유럽 등 여타 지역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고립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세계 경찰 역할을 맡은 것은 예외적인 사례이다. 지난 2025년 12월 발표된 국가안보 전략 문서인 NSS(National Security Strategy)를 보면 트럼프의 미국은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우선주의'를 재확인하고 미주 대륙을 미국의 핵심 이익이 달린 지역으로 명시했다. 이에 미국은 한국, 일본은 물론 나토에 미국이 희생해서 더 이상 안전보장과 군사 지원을 하지 않겠다며 방위비 인상을 촉구했다. 트럼프는 특히 나토의 안보 무임승차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나토 회원국들은 소련 붕괴 이전까지 나름대로 자기 역량에 맞는 기여를 했지만, 이후 극단적인 군축과 방위비 삭감을 진행했다. 이에 일부 국가는 군을 폐지하는 수준까지 병력을 줄였고, 대신 자국민에 대한 복지 혜택은 확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준 유럽의 실망스러운 대응, 자국의 이익과 방만한 돈 풀기 등은 포기하지 않고 공동의 위협 앞에서도 미국의 방위비 인상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행동 등은 트럼프의 미국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미국이 보는 유럽은 더 이상 혈맹이 아니라 미국의 발목을 잡고, 경제적, 정치적 출혈을 강요하는 안보 무임승차 세력일 뿐이다. 이번 미국의 그린란드에 대한 노골적인 야욕은 지나치고, 무책임하며 경솔하다. 그러나 유럽이 더 이상 협력이 대상이 아니라면, 미국이 자국의 핵심 전략적 이익이 달렸다고 보는 그린란드를 독점적으로 보유하겠다는 판단에 오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럽이나 전 세계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미국이 깡패같이 이렇게 국제 질서를 앞서 파괴하는 과격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감성과 이상주의에 물든 유럽이 알아 왔던 것과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다. 앞으로의 국제관계는 비정상이 정상, 몰상식이 상식이 되는 비정한 도박판이 될 것이다. 협력보다는 위협, 양보보다는 독점, 대화보다는 주먹이 주도하는 원초적 실력주의 시대가 열리는 징조라고 봐야 한다. 한국과 일본도 미국과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과정에 있다. 두 나라가 유럽만큼 미국과 갈등하지는 않겠지만,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새로운 세상에 내몰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단단히 안전벨트를 조여 매야 한다. 이상호

[김병헌의 체인지] 로봇을 막아 회사를 멈추겠다는 노조

지난 2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이른 아침부터 이어진 보고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표정은 무거웠다. AI, 로봇, 일자리, 입법 지연…. 쌓여 있는 현안을 훑어보던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노동 현장에서 불거진 '로봇 거부' 에 대해 발언을 이어갔다. 생산 현장에 로봇을 들일 수 없다는 노조의 선언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회의장 공기가 한층 팽팽해졌다. 대통령의 목소리는 엄중하게 이어졌다.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다." 비유처럼 던졌지만 실상은 진단이자 경고였다. 로봇과 AI가 산업의 심장을 바꾸는 시대, 선택의 여지는 이미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도 안 된다"며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에 제동을 걸고 있다. 거대한 변화의 수레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데도, 문을 걸어 잠그겠다는 발상. 이는 협상도 전략도 아니다. 시대의 방향을 외면한 채 과거에 기대려는 선택일 뿐이다. AI 혁명은 이미 생산 현장을 넘어 산업 질서 자체를 재편하고 있다. 24시간 쉬지 않는 공장, 불을 켜지 않는 라인,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한 협업 로봇. 이 흐름을 '막자'는 구호는 19세기 러다이트 운동의 메아리일 뿐이다. 그때 기계를 부수던 손은 결국 일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고용을 결정한다는 사실은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 시장이 증명해 왔다. 글로벌 경쟁은 더 잔혹하다. 테슬라는 전기차 모델 S·X 생산을 접고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에 올인한다. 자동차 회사의 간판을 내려놓고 '피지컬 AI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일론 머스크는 “로봇이 노동자보다 많은 세상"을 공공연히 말한다. 말이 아니라 실행으로 증명한다. 공장을 로봇 훈련장으로 바꾸고, 실증 데이터를 쌓아 상용화를 앞당긴다. 세계는 이렇게 움직인다. 현대차의 선택 역시 분명하다. 로봇을 주변부가 아니라 핵심 축으로 삼겠다는 전략,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술력. 제조 라인을 가진 기업만이 할 수 있는 '현장 실습'은 현대차의 최대 무기다. 그런데 그 무기를 스스로 내려놓겠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라면, 이는 협상이 아니라 자해에 가깝다. 노조의 우려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고용 안정, 임금, 노동의 존엄. 그러나 계산은 냉정해야 한다. 휴머노이드 한 대의 투자 회수 기간은 짧다. 비용 압박이 누적된 기업이 자동화를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로봇을 막는다고 비용이 사라지지 않는다. 생산이 해외로 이동하고, 투자가 멈추며, 결국 일자리의 토대가 흔들린다. 기술을 봉쇄하는 투쟁은 고용을 지키는 방패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막는 벽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신호다. “합의 없이는 한 대도 안 된다"는 메시지는 글로벌 시장에 이렇게 번역된다. 한국에서의 혁신은 느리고, 불확실하며, 비싸다. 자본은 가장 빠른 길로 흐른다. 데이터가 쌓이는 곳으로, 실증이 가능한 곳으로 이동한다. 경쟁자가 달리는 트랙에서 우리는 출발선에 묶여 서 있을 것인가. 대안은 분명하다. 기술을 금지할 게 아니라 규칙을 만들라. 로봇 도입과 함께 재교육·전환 배치를 제도화하고, 생산성 이익을 임금·근로시간 단축으로 나누는 사회적 합의를 설계해야 한다. 로봇은 적이 아니라 도구다. 도구를 쥔 사람이 더 많은 가치를 만든다. 정부의 역할은 학습의 사다리를 놓는 것이고, 노조의 역할은 변화의 조건을 협상하는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현대차 노조는 이제 정신을 차려야 한다. 로봇 투입을 거부하는 순간, 경쟁력은 다른 나라 공장으로 이전된다. 세계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로봇과 함께 가는 길만이 일자리를 지키는 길이다.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다면, 방향을 잡고 올라타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거부가 아니라 냉정한 계산과 용기다. 변화를 통제하지 못하면 변화에 지배당한다. 산업의 시간표는 노사 협상보다 빠르고, 기술의 진보는 기다림을 허락하지 않는다. 선택을 미룰수록 대가는 커진다. 이제 결단의 시간이다.

[데스크 칼럼] 기업은 고객에, 정부는 기업에 ‘신뢰’ 줘야

쿠팡의 고객정보 유출 사건은 최근 정보보안 사고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 사건은 정부의 대응 방식과 기업의 보안 책임에 대한 논의의 중심에 있다. 정부는 범정부 차원에서 쿠팡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여러 부처가 동시에 개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이 과연 정보보안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는 지난해 6월 말부터 쿠팡 고객 계정 약 3370만개에 무단접속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용의자는 중국 국적의 전직 개발자로, 인증 시스템 관련 업무를 맡았던 인물이다. 그는 퇴사 후에도 인증용 암호키를 통해 고객정보에 접근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무부는 중국에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했지만, 중국의 불인도 원칙으로 인해 신병 확보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의 대응은 범인 검거보다는 쿠팡에 대한 제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배경훈 부총리는 쿠팡 사태 범정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주재하며 “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의 유출 정보 성격과 피해 규모를 고려해 영업정지 처분을 검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찰은 전담조직을 구성해 쿠팡 관련 사건을 조사하고 있지만, 유출자의 소재나 출국경로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부족하다. 쿠팡과 정부의 유출 규모에 대한 주장은 상반된다. 쿠팡은 글로벌 보안 업체의 포렌식 결과를 인용해 실제 유출된 정보는 3000개 안팎의 일부 항목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3370만건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상반된 주장은 사건의 진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의 대응 방식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정보유출 사고를 계기로 정부가 쿠팡의 전반적인 경영 성과와 정책 협조 여부를 문제삼는 것은 법치국가 원리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다. 법치국가에서 행정조사와 제재는 구체적인 행위확정과 인과관계를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조사 방식은 기업의 정보보안 체계를 실질적으로 강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조사 범위가 무차별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보안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보보안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이는 기업들이 실질적인 보안 투자보다는 단기적 리스크 회피에 집중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응이 과도해질수록 기업들은 문제 해결보다 법적 방어와 리스크 관리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는 정보 공개와 협력을 위축시키고, 전체 산업의 보안 수준 향상이라는 정책 목표와도 멀어지게 만든다. 결국,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정보보안 문제를 넘어 정부와 기업 간의 신뢰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호흡을 고르고 기업의 정보 유출 사고가 더는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와 기술을 정교하게 다듬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예측 가능한 제도적 환경 속에서 기업과 정부가 협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외양간을 고치고 국민도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정보보안 사고는 정보보안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하며, 그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개입은 경계해야 한다. 부당결부와 감정적 제재는 법치주의에 가깝지 않으며, 그 피해는 산업과 시장 전체가 떠안게 된다. 현재 발생하는 정보보안 사고가 기업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보다 합리적 제도 개선이 함께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러한 논의는 앞으로의 정보보안 정책 수립에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기업과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정보보안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에 있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기자의 눈] 통신사 해킹, 기업의 정직이 중요하다

미국 정치사에는 '문제는 범죄가 아니라 은폐'라는 격언이 있다. '워터 게이트'로 불명예 퇴진한 닉슨 대통령을 무너뜨린 건 도청 그 자체가 아니라 '뻔한 거짓말'이었다. '침해 흔적이 없다'던 우리 통신사들의 해명을 떠올리면서 이 격언이 오버랩 되는 건 개인의 지나친 비약일까. SK텔레콤은 지난해 해킹 사실을 자진신고한 대가로 1347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과징금을 맞았다. 반면에 경쟁사인 KT와 LG유플러스는 '침해 증거가 없다'며 신고를 미루거나 부인했다. 아직 제제 여부는 미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과연 우리 사회와 법은 기업들에게 '정직'을 권장하고 있는가라고. 개인정보보호법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기업의 처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유출 사실을 신속하게 알려 정보 주체인 국민의 2차 피해를 막는 것이다. 해킹 사고에서도 '속도'는 생명이다. 기업이 과징금을 피하려 사고를 숨기는 사이 이용자인 국민의 개인정보는 다크웹을 떠돌고 보이스피싱 범죄에 악용된다. 기업의 '은폐'는 단순한 비윤리적 행위를 넘어, 고객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건이 일어난 뒤의 처벌이다. 먼저 매를 맞은 SK텔레콤의 사례가 자칫 “신고하면 독박 쓴다"는 그릇된 학습효과를 줘서는 안 된다. 만약 조사를 방해하거나 증거를 인멸하려 했던 정황이 있는 기업들에게 당국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시장 전체에 '완벽하게 숨기는 게 이득'이라는 최악의 시그널을 보내는 꼴이 된다. 범죄학에서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다.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더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기업의 은폐 시도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을 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정직했을 때의 손해보다 압도적으로 크지 않다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언제든 이를 은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공은 규제 당국으로 넘어갔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수사당국은 KT와 LG유플러스의 사례를 다루면서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자진신고한 기업에는 합당한 절차적 참작을 하더라도 고의적으로 은폐하고 조사를 방해한 행위에는 최대의 피해를 가정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정직이 중요하다'는 말은 도덕 교과서에나 나오는 훈계가 아니다. 은폐는 범죄보다 더 나쁘다. 규제당국은 이번 기회에 “숨기면 반드시 죽는다"는 확실한 시그널을 시장에 심어줘야 한다. 그것만이 국민의 데이터를 지키는 길이지 않을까.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이슈&인사이트] 고준위 방폐장 건설, 기술보다 중요한 조건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 방사성 폐기물의 생산은 불가피하다. 인간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2015년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센터가 경주에 설치된 이후 현재까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각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에 보관되고 있고, 이마저도 2030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차례로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히 중앙집중식 임시저장시설을 2050년까지 운영하기로 결정하면서 일시적으로 숨통은 트였다. 그러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영구 처분장 건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지난해 9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2030년부터 2047년까지 지하연구시설(URL)을 통한 현장 실증을 거쳐 2060년에 고준위 방폐장을 설치한다는 큰 시간표의 첫발을 떼었다.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고준위 방폐장은 중·저준위 방폐장에 비해 훨씬 높은 기술적 난이도와 안정성이 요구된다. 더욱이 세계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사례도 많지 않다. 미국은 지하연구시설(URL) 운영과 유카산 처분부지까지 결정했으나, 국민 수용성 미확보 등의 이유로 2010년 사업이 잠정 중단되었다. 핀란드는 지하 500m 깊이의 화강암 암반을 활용한 세계 최초의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해 현재 운영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스웨덴, 프랑스, 스위스 등도 2030년 이후 운영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국토 면적이 작고 인구 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여건을 고려하면, 안전성과 수용성이 모두 높은 처분지 선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현행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법은 과학적 검토를 통해 부지를 선정한다는 원칙만 제시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방법은 하위 법령이나 위원회에 위임하고 있다. 지하연구시설을 통한 현장 실증은 공학적 방벽 성능을 점검하는 데 의미가 있지만, 수만 년에 이르는 부지의 장기 안정성을 검증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현장 실증과는 별도의 충분한 과학적 검토가 필요하다. 반감기가 수만 년에서 수십만 년에 이르는 방사성 핵종을 고려할 때, 처분 부지는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위험의 경중을 고려한 중·장기 재해 유발 요소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한반도 환경에 특화된 과학적 검토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10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 당시의 한반도는 지금과 크게 달랐다. 북극과 북유럽해에는 거대한 빙하가 형성되었고, 해수면이 낮아 한반도는 주변 지역과 연결되어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10만 년 동안에도 해수면 상승과 하강, 지표의 융기와 침하, 단층 운동과 지진 등 다양한 환경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심층 처분장이 지표에 노출되거나, 처분시설이 변형되거나 파손될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처분시설 내 방사성 폐기물은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각 재해 요소의 위험도를 면밀히 평가하고, 위험도가 높은 요소에 대해서는 단순한 모델이나 예측에 의존하기보다 적극적인 조사와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들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2016년 규모 5.8의 경주지진은 단층면 최대 변위가 약 30cm, 파열 면적이 16㎢에 달했지만 지표에는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이는 지진을 일으킨 단층이 지하 약 11km 깊이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층들은 한반도 곳곳에 분포해 있고, 오랜 기간 응력이 누적되다가 갑작스럽게 방출되며 큰 지진을 일으키기도 한다. 1952년에는 평양 인근에서 규모 6.2의 지진이 발생했고,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규모 7에 가까운 지진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지역에 처분시설을 건설할 경우, 시설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자명하다. 따라서 중·장기적인 부지 안정성과 지하 단층에 대한 정교한 평가가 필수적이다. 반영구적 처분을 목표로 하는 고준위 처분시설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복구나 이전이 매우 어렵다. 우리 후손에게 영원한 부담이 되는 시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금 깊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재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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