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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대미 원전투자, 두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정부의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전략투자 사업에서 미국 원전 건설이 핵심 과제로 급부상했다. 구상 단계를 넘어 구체적인 협상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미국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업의 급속한 성장에 대응하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대규모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간 신규 원전 건설이 정체되면서 이를 뒷받침할 공급망과 전문인력, 건설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 한국은 원전을 계획된 기간과 예산 안에서 건설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설계, 주기기 제작, 시공, 시운전과 운영에 이르는 전 주기 공급망을 갖추고 있으며 국내외에서 풍부한 건설·운영 경험도 축적했다. 미국에는 원전산업을 신속히 재건할 역량이 필요하고, 한국에는 새로운 시장이 필요하다. 대미 원전투자는 양국의 필요와 강점을 결합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그러나 투자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그 조건과 구조다. 한국이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면서도 우리 원전산업의 참여와 미래 시장 진출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성공적인 전략투자라고 하기 어렵다. 대미 원전투자는 다음 두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추진돼야 한다. 첫째, 미국 원전사업에 한국 원전산업의 실질적인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 한국의 자금이 미국 원전사업에 투입된다면 사업 여건과 기업별 경쟁력에 따라 설계, 기자재 제작, 시공, 사업관리 등의 분야에서 투자 규모와 산업적 기여에 걸맞은 역할과 사업 기회를 확보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한국 기업의 참여를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검증된 공급망과 건설 역량을 활용해 미국 원전사업의 일정 지연과 비용 상승 위험을 낮추는 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사업 발굴과 선정 단계부터 양국 기업이 함께 참여하고, 한국 기업의 참여 범위와 합리적인 수익 구조, 그에 따르는 책임과 권한을 정부 간 협의와 사업 계약을 통해 명확히 해야 한다. 미국의 원전산업 기반을 확충하는 동시에 한국의 공급망과 전문인력도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협력이 지속될 수 있다. 둘째, 대미 원전투자의 일부는 한국이 개발한 APR1400의 미국 내 건설로 이어져야 한다. APR1400은 국내외에서 건설·운영 경험을 축적했으며, 이미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설계인증을 취득해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제도적 기반도 갖추고 있다. APR1400의 미국 건설은 한국의 투자에 대한 단순한 반대급부가 아니라, 미국이 검증된 노형과 공급망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확보해 원전 건설의 속도와 실행력을 높이는 방안이다. 이는 미국 노형과 APR1400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하자는 뜻이 아니다. 사업 여건에 따라 미국 노형 사업에서 양국 기업이 협력하는 한편, APR1400을 적용한 사업도 병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두 노형이 각자의 경쟁력을 발휘하며 함께 추진된다면, 미국은 원전사업의 선택지를 넓히고 한국은 새로운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 양국 원전산업이 함께 성장하는 상호 호혜적 협력은 이러한 구조에서 가능하다. 대미 원전투자는 미국의 원전산업 재건과 한국 원전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함께 이루는 산업전략이 돼야 한다. 한국 원전산업의 실질적인 참여와 APR1400의 미국 내 건설이 함께 실현된다면, 미국은 원전 확대에 필요한 공급망과 건설 역량을 확보하고 한국은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다. 나아가 양국이 이러한 협력을 바탕으로 세계 원전시장에 공동 진출한다면, 대미 원전투자는 한미 산업협력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이 될 것이다. chyybh@ekn.kr

[기자의 눈] 지지율에 흔들려선 안 될 에너지·환경 정책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정부의 에너지·환경 정책도 조급해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에너지·환경 정책은 단기간에 성과를 낼 분야가 아니다. 한번 정한 방향이 향후 10년, 20년의 국가 기반을 좌우한다. 특히 정부가 미국과의 대미 투자 협상을 서두르는 듯 싶다. 원전 수출과 맞물려 웨스팅하우스 지분 투자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원전 업계에서는 신중론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투자를 끌어내야 할 이유가 있는 만큼 우리가 급한 모습을 보일수록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원전 산업의 미래와 수십조원의 투자가 걸린 문제라면 더욱 냉정한 손익 계산이 필요하다. 투자 주체로 거론되는 한국전력의 재무 사정이 녹록지 않다. 반도체 산업단지와 데이터센터 등 메가프로젝트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전력수요 전망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지난해 12월 수립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 4월 처음 공개된 수요 전망에서는 2040년 최대전력을 최대 138.2기가와트(GW)로 내다봤다. 그 후 메가프로젝트가 발표되면서 지난달 2040년 최대전력 수요를 165GW로 수정했다. 한 국가의 전력수요 전망치를 4개월 만에 바꿀 만큼 메가프로젝트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는 증거다. 여기에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화석연료 발전을 줄이는 동시에 메가프로젝트를 감당하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최근 12차 전기본 논의에서는 2040년 재생에너지 설비를 자가용 태양광까지 포함해 총 236GW로 확대하는 전망까지 제시됐다. 지금 재생에너지 용량 37GW보다 6배 넘게 많아 상당히 도전적인 목표다. 물은 얼마나 필요한지도 잘 모른다. 정부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신규댐 가운데 5곳을 예정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앞으로 데이터센터가 얼마나 많은 물을 필요로 할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영산강 수계가 대규모 반도체 산업단지에 물을 공급할 만큼 수질에는 문제가 없는지도 논란거리다. 전기는 계획이라도 나왔는데 물은 이제 제대로 계산해봐야 한다. 이 외에도 대통령 공약인 '햇빛소득마을', 공기업 통폐합 등 쏟아지는 정책들이 너무 많다. 기자 입장에서야 정책이 쏟아지면 쓸 기사가 많아져서 좋지만 요즘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책들이 하나의 전략 안에서 맞물려 움직이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동해 심해 석유·가스 탐사·개발 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반전을 노렸다. 결과적으로 그 조급함은 국내외 자원개발 정책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정부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싶어진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정책일수록 때로는 속도를 늦출 용기가 필요하다. 에너지·환경 정책의 시계는 5년인 정권의 시간보다 훨씬 길다. 정책의 속도가 대통령의 지지율 그래프에 너무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이슈&인사이트] 성장으로 빚을 갚는다는 약속, 그 청구서는 누가 받는가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의 화법은 일관된다. “40조 달러라는 숫자에 마법 같은 것은 없다. 우리는 성장을 통해 빚에서 벗어날 수 있다." G20에서도 CNBC 인터뷰에서도 반복된 이 말은 사실상 미국 재정 전략의 선언문이다. 증세도, 지출 삭감을 통한 긴축도 아니다. 관세 수입과 국채 바이백으로 당장의 불을 끄면서, AI가 만들어낼 생산성으로 부채의 절대액이 아니라 GDP 대비 비중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케빈 워시 신임 연준 의장도 이 그림 안에서 움직인다. 인플레이션이 3%대 중반을 웃도는데도 시장은 그에게서 금리 인하 신호를 기대하고, 재무부는 장기금리를 억누르기 위해 채권 시장에 이례적으로 개입한다. 월가에서 “스스로 한계를 설정한 자멸적 전략"이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문제는 이 성장 서사가 현실화되기까지의 시차다. AI 투자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세수를 늘리기까지는 최소 몇 년이 걸리지만, 청구서는 지금 날아오고 있다.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중동發 지정학적 긴장 때문이고, 미 국채 금리가 들썩이는 것은 AI 데이터센터에 투입되는 천문학적 자금 수요와 재정 적자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겹친 결과다. 경제의 온기가 서민 가계에 닿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기름값과 대출금리, 카드 리볼빙 이자는 지금 청구서로 날아든다. 성장의 과실은 AI 관련주와 부동산을 가진 자산가에게 먼저 쌓이고, 고금리·고물가의 부담은 임금노동자와 무주택 서민에게 먼저 전가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이를 “부자를 위한 정책"으로 단정하는 것도 성급하다. 폴 크루그먼도 최근 장기금리 급등 원인을 행정부 실책보다 AI 붐에 따른 자금 수요 급증에서 찾았다. 지금의 고금리는 워싱턴이 서민을 버리기로 “선택"한 결과라기보다, 세계적으로 동시에 벌어지는 기술 투자 붐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만든 구조적 국면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만 그 국면 속에서 증세 대신 성장을 택한 것은 고통 분담 방식을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증세는 자산가에게 더 크게 작용하는 반면, 고금리·고물가는 서민에게 더 크게 작용한다. 성장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행 과정의 고통 배분이 역진적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15일 상원 표결을 국가부채 해법으로 곧장 연결 짓는 것도 성급하다. 이날 상원이 다루는 클래리티법(CLARITY Act)은 부채 감축 법안이 아니라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과 SEC·CFTC 감독 권한을 정리하는 시장구조 법안이다. 다만 통과되면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커지면서 발행사들이 준비자산으로 단기 국채를 대거 사들여, 결과적으로 국채 수요를 늘려 금리에 하방 압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나온 분석이다. 부채를 “해결"한다기보다 국채를 소화할 매수 주체를 늘리는 간접 경로에 가깝다. 그마저도 15일은 법안 가결이 아니라 본회의 토론 개시 여부를 정하는 절차적 표결(클로처)이며, 60표를 채우려면 민주당 의원 최소 7명이 필요하고 트럼프 일가의 이해충돌 방지 조항을 둘러싼 협상이 막판까지 꼬여 있어 통과 자체가 불투명하다. 결국 미국이 걷는 길은 확실하지만 값비싼 증세 대신, 불확실하지만 부담 적은 성장 처방이다. 그 선택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효과를 내기까지의 시차 동안 발생하는 고통을 자산을 가진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이 똑같이 나눠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짚어야 한다. 서민들이 이 시기를 버텨낼 수 있느냐는, AI가 약속대로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속도와 정부가 그 충격을 얼마나 흡수해주느냐는 두 변수의 경주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도 AI 성장을 선택하면서 추가 금리 인상이 예고된다. 성장의 청구서는 일단 서민에게 먼저 날라 올 거다. bienns@ekn.kr

[EE칼럼] 부족한 것은 kW가 아니라 km다

지난 20여년간 선진국의 전력수요 곡선은 지루할 만큼 평평했다. 에너지효율 향상과 경제구조 변화가 성장분을 상쇄했다. 지금은 AI 데이터센터와 전기화를 통한 탄소중립이 가속화되면서 전력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발전소를 지어도 전기를 보낼 길이 없다. AI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가 동시에 늘어난 지금, 전력 시스템의 병목은 발전이 아니라 전력망으로 옮겨갔다. 이것은 한 나라의 사정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 유럽에서 거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로렌스버클리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국 전력망 접속 대기열에는 8,244개 사업, 2,061GW가 걸려 있다. 이는 미국 전체 전력설비 용량의 두 배에 가깝다. 접속신청부터 준공까지 소요기간은 2008년 22개월에서 지난해 61개월로 늘었다. 그사이 345kV 이상 송전선 신설은 2013년 약 6,400km에서 2025년 약 646km로 쪼그라들었다. 필요량은 연 8,000km로 추산된다. 송전 관련 투자비가 사상 최고수준인 연 250억 달러를 넘겼지만, 90% 이상이 신뢰도 개선과 노후설비 교체 사업에 들어갔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거리 송전망을 못 짓는 것이다. 유럽도 비슷한 상황이다. 영국은 2025년 풍력 출력제어와 대체발전에 약 14억 파운드를 썼다. 올해는 8월 초에 이미 10억 파운드를 넘겼다. 출력제어의 98%가 스코틀랜드에서 발생했다. 북부 스코틀랜드에서만 8.8TWh가 생산되지 못했고, 생산될 수 있었던 풍력 발전량 중 61%만이 실제로 전력망에 공급되었다. 2025년 독일은 예비발전소와 출력제어 보상을 포함한 계통혼잡관리 비용으로 30.7억 유로를 지출했다. 독일 남북을 잇는 700km, 4GW급 직류선로 쥐드링크는 당초 2022년 준공 예정이었다. 현재 목표는 2028년 말이다. 2015년 정치적 타협으로 지중화가 결정되면서 계획을 다시 짜야 했고 수십억 유로가 추가됐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유럽 전력망 패키지(European Grids Package)'는 물량과 속도를 내걸었다. 2040년까지 필요한 전력망 투자규모를 1조 2,000억 유로로 잡고, 인허가 간소화와 국가간 전력망 연결사업 우선지원, 금융 및 투자 지원 등의 방안을 담았다. 한국도 이미 그 벽에 부딪혔다. 동해안 지역 발전설비는 17.8GW인데 수도권으로 보낼 송전용량은 14.5GW에 그친다. 이를 풀 열쇠인 동해안~수도권 500kV 초고압직류송전망(HVDC) 건설사업은 당초 목표보다 수년째 밀리고 있다. 송전선로가 지나는 지역의 주민 반발과 지방자치단체 인허가 갈등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전은 2024년 광주·전남 103개, 전북 61개, 동해안 25개, 제주 16개 등 205개 변전소를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해 신규 접속을 제한했다.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지난해 9월 시행되면서 국무총리 소속 위원회가 생기고, 인허가 의제가 18개에서 35개로 늘었다. 허수 물량 7GW 중 2GW를 회수해 재배분했다. 제주는 올해 계통관리변전소에서 해제되기도 했다.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를 지난해 0.1GW에서 2030년 12GW 이상으로 늘린다는 목표도 세웠다. 서남해 재생에너지를 실어 나를 서해안 HVDC 1단계 사업은 2030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태양광은 1~2년, LNG 복합발전소는 3~4년이면 상업운전에 들어간다. 송전선 하나를 놓는 데는 10년이 넘게 걸린다. 전력망 건설이 지연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주민 수용성이다. 송전 설비는 사회가 합의해야 지어진다.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 햇빛소득마을처럼 계통소득마을 사업을 추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전망이 마을의 지속가능한 수익원이 되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일회성 지원사업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수익을 주민 복지와 공동체 사업에 활용하는 것이다. 지금은 전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전기를 보내는 길이 부족하다. 전기 생산은 바닷가와 비수도권에서 이루어지고, 수요는 수도권과 첨단산업 클러스터에 몰려 있다. 전력망 병목은 산업과 탄소중립을 동시에 제약하는 구조적 리스크가 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반도체도 AI도 재생에너지도 같은 지점에서 멈춰 설 것이다. 막힌 길을 뚫어낼 열쇠는 혁신적인 기술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이익을 공유하는 사회적 혁신에 있다. bienns@ekn.co.kr

[기자의 눈] ATM 줄이는 은행, 금융 접근성은 누가 지키나

현금 사용이 줄고 모바일뱅킹이 일상화되면서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러나 ATM이 줄어들수록 고령층과 디지털 금융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금융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금융 접근성을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금융권의 책임도 커지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이용률이 낮은 ATM을 유지하는 비용을 줄이고 디지털 금융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현금 사용 감소와 비대면 금융 확산이라는 변화 속에서 오프라인 채널을 효율화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모든 금융 소비자가 디지털 금융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실제 ATM 감소세는 뚜렷하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 2만9321개였던 전국 은행 ATM은 올해 6월 말 2만4711개로 3년 반 만에 4610개, 15.7% 줄었다. 은행 영업점 역시 같은 기간 5657개에서 5381개로 276개 감소했다. 특히 지역별 감소폭을 보면 금융 접근성 문제를 단순히 은행의 점포 효율화로만 보기 어렵다. 울산의 ATM은 21.5%, 경남은 20.8%, 제주도는 18.2% 줄었다. 수도권보다 지방에서 ATM이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인구와 거래량이 적은 지역일수록 은행이 오프라인 채널을 유지할 유인이 작기 때문이다. 문제는 ATM이 단순히 현금을 인출하는 기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으로 대부분의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소비자에게는 ATM 한 곳이 사라지는 것이 큰 불편이 아닐 수 있다. 반면 디지털 금융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나 현금 사용이 필요한 소상공인에게 ATM은 여전히 중요한 금융 인프라다. 특히 지방에서는 ATM 하나가 사라질 때 이를 대신할 시설을 찾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은행에 모든 ATM과 영업점을 과거처럼 유지하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이용률이 낮은 시설까지 일률적으로 유지하면 은행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결국 금융서비스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은행의 효율화를 막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융 접근성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다. 금융위원회도 금융 접근성이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우체국을 통한 은행대리업을 시범 운영하고 은행권 공동 ATM 확대를 추진하는 등 대체 금융채널 마련에 나서고 있다. 다만 은행이 줄인 금융 인프라를 공공 영역이 어디까지 대신할 것인지, 공동 ATM을 어느 지역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다. 앞으로는 ATM의 절대적인 숫자보다 지역별 금융 접근성을 기준으로 시설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고령층 비중과 인구 규모, 주변 대체 금융채널의 유무 등을 고려해 금융 취약지역을 정하고 최소한의 금융서비스 접근성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은행별로 따로 ATM을 유지하기보다 금융권이 공동으로 비용을 부담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디지털 금융으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그렇다고 그 변화의 비용을 금융 취약계층에 일방적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은행의 효율성과 금융의 공공성이 충돌하지 않도록 사라지는 ATM의 빈자리를 누가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마련해야 할 때다. 박지성 기자 captain@ekn.kr

[EE칼럼] 공공기관 통폐합...산업 전략 기회로 삼아야

정부는 3일 공공기관 109개 감축을 골자로 하는 “공공기관 기능 개혁 추진 방향 (안)"을 발표했다. 감축이 현실화하면 전체 공공기관은 현재 524개에서 415개로 줄어든다. 이재명 정부가 보수 정권도 시도조차 하지 못한 대대적인 공공기관 통폐합에 나선 이유는 분명하다. 지역·부처 간 이해관계에 따라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기관들이 공공부문의 효율성을 떨어트린다는 판단에서다. 서로 비슷한 기능을 하는 기관이 경쟁적으로 신설되다 보니 정부 재정 부담만 늘어났다. 이번 발표의 최대 관심은 에너지 공기업 통폐합의 중심인 한국남동발전 포함 발전 5사 통합과 석유·가스공사 통합이다. 특히 에너지 공기업 개편안의 핵심은 흩어진 자원개발과 발전 기능을 각각 하나로 묶어 “규모의 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발전사는 2001년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쪼갰지만 25년 만에 통합 절차를 밟게 됐다. 정부의 “2024 탈석탄" 로드맵에 맞춰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 인적. 물적 역량을 결집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개별 발전사가 대형 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면 평균 부채 비율이 급증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따라서 정부는 연구개발비, 대형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묶어 투자 효율성을 높이려면 통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발전사 통합을 통해 재무구조로 투자 여력을 확보해 에너지 대전환과 탄소중립에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또 하나의 이슈는 역대 정부에서 여러번 추진했으나 매번 무산된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통합이다. 정부는 두 공사를 합쳐 “에너지자원공사(가칭)"를 세우고 에너지 공급망 위기를 전략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탐사. 개발 역량과 구매력을 모아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글로벌 에너지기업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취지다. 전국 공공기관 재무구조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기재부 발표에 따르면 2020년 542조 원이던 공공기관 부채는 2025년 769조 원으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 공공기관 인건비 예산은 29조 6000억 원에서 37조 7,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더 이상 방치할 수준을 넘어섰다. 현재 시점에서 정부의 공공기관 통폐합은 단순한 기관 숫자 줄이기가 아니라 공공부문의 기능과 국가 전략을 다시 설계하는 구조 개혁으로 평가하는데 맞다. 현재 공공기관의 가장 큰 문제는 기관 수가 많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기능이 지나치게 잘게 쪼개져 있다. 특히 에너지·자원 분야에서는 한국전력을 포함 발전 5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 그리고 각종 연구, 지원기관 등이 각각의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국가 에너지·자원 안보라는 큰 그림을 누가 책임지는가가 불분명한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번 개혁을 단순한 예산 절감이 아니라 국가 전략 기능 중심의 재편으로 추진한다면 상당한 의미와 성과를 낼 수 있다. 정부도 이번 109개 기관 감축을 전략적 구조 개혁, 유사·중복 기능 일원화, 자회사, 소규모 기관 통합의 세 유형으로 구분했다. 그러나 가장 큰 위험은 통폐합 숫자 경쟁이다. 즉 109개를 줄였다는 숫자가 개혁의 성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A 기관과 B 기관을 합쳐서 기관 숫자는 1개 줄였는데 본부는 그대로 있고, 인력도 그대로이고, 자회사도 그대로이고, 업무도 그대로이고, 임원 자리만 늘어난다면 그것은 통폐합이 아니라 간판을 바꾼 것과 불과하다. 따라서 성공 여부는 기관 몇 개를 없애느냐가 아니라 통합 이후 국가적 성과가 얼마나 커졌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특히 발전사 통합은 매우 중요한 시험대이다. 단순히 5개 발전사를 하나로 합치는 방식은 위험하다. 먼저 통합의 목표를 정해야 한다. 한국발전을 발전회사->종합에너지기업->글로벌 에너지기업으로 발전시키는 로드맵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LNG, 원전 연계, 재생에너지, ESS, SMR, 수소, 해외 발전사업, 핵심광물과 에너지자원까지 연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5개 발전사를 합쳐 놓고 거대한 국내 발전회사 하나를 만드는데 그칠 수 있다. 그리고 자원.에너지 공기업 통합은 더 신중해야 한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를 하나의 에너지자원공사(가칭)로 통합하는 방안은 상당히 의미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조직 통합보다 기능 통합이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히려 해외 자원개발, 에너지안보, 핵심광물, 공급망, 트레이딩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일본처럼 자원은 부족하지만, 경제 규모가 크기 때문에 자원개발, 에너지, 핵심광물, 공급망을 분절해서 관리해서는 중국·미국·일본과 경쟁하기 어렵다. 따라서 에너지->자원개발->핵심광물->소재.배터리->전력->산업을 하나의 공급망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공공기관 통폐합은 조직 개편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전략을 다시 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bienns@ekn.kr

[이슈&인사이트] 청와대 역린은 괜찮았는지 모르지만 국민들 역린은…

이강윤 정치평론가 이 정부의 인사 문제로 인한 '신뢰의 위기'가 임계점을 넘어서는 조짐이다. 에너지경제신문 여론조사를 비롯, 여러 조사를 종합해봤다. 국정지지율이 6주째 하락 일로다. 이 정도면 추세적 하락이다. 정권 출범 불과 1년 석 달 만이다. 추세적 하락이란 특별한 계기 없이는 상승 반전이 어렵다는 얘기다. 집필 시점 상 가장 최근인 갤럽조사를 보면 긍정평가가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졌다(긍정 38% : 부정 51%). 조사에 따라서는 이미 한두 주 전에 긍정이 30%대로 떨어진 조사가 많다. 갤럽 조사 특징 중 하나는 몇몇 항목에서 주관식으로 답하게 하는 점이다. 선택지를 주고 고르는 것과 주관식 응답은 차이가 작지 않다. 응답자율성이 가장 큰 특징이자 차이점이다. 국정지지 항목도 주관식이다. 응답자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하나씩 말하고, 그걸 다 취합, 분류해서 집계한다. 부정평가 원인 1위가 부동산정책(24%), 2위가 인사(16%), 3위가 경제/민생(10%)이다. 1, 3위는 넓은 의미의 정책분야고 자주 꼽히는 항목인데, 인사가 처음 올랐다는 게 핵심이다. 누적된 불만과 비판이 주관식 답변으로 모아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김승원 법무장관 후보자의 경우 제기된 사항에 대한 반론이나 허위입증은 거의 없이 폭로자 한동훈 의원에게 “그 자료 어디서 났느냐"뿐이었다. 시민 입장에서는 폭로 내용에 대해 뭐라고 설명이든 해명이든 해서 납득시킨 다음, “그런데 이거 불법적으로 수집된 자료 아닌가?"라고 하는 게 상식적 순서다. 그렇지 못한 채 하루하루 충격적 폭로의 연속 앞에 속수무책이니 시민들은 사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법무부건 어느 부처건 장관으로서는 택도 없는 내용들이었고, '저런 지경인데 왜 유야무야 끝났었지?' 라는 생각이 급속히 확산됐다. 여론의 변곡점이었다. 폭로 내용 중 '식약처에서 이게 풀리면 큰 돈이 되겠다' 같은 내용이 있다. 민주당은 '공익 민원'이라고 했다. 여론이 결정적으로 뒤집어진 지점이다. 여러 조사에서 김 후보자에 대해 “잘못된 인사"라는 응답이 50%를 넘겼다. 이 정도면 논란이 아니라 “이건 아니다"라는 게 대세라는 뜻이다. 민주당의 판단 착오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김민석 대표는 “지켜볼수록 잘 된 인사"라며 “김 후보자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했다. 다수가 아니라는 데 끝까지 지키겠다고 하면 이미 소통은 불가한 지경에 빠져버린다. 김 후보자나 민주당, 청와대는 “처신과 해명에 잘못이 있었다. 만일 청문 기회를 주신다면 상세히 설명드리겠다"고 즉각적으로 자세를 전환했어야 한다. 국민들의 1차 관심은 폭로의 사실 여부이고, 자료 출처는 별도로 조사할 문제였다. 폭로 내용이 국민 건강과 직결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자세 전환은커녕 공익민원이라며 문제 제기자를 고발했고, 경찰은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했다. 민주당의 이런 대응은 “아, 폭로 내용이 사실이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장관 후보자는 결국 사퇴했지만 청와대나 본인 모두 국민 비판의 근원이 어디에 있었는지 명확히 새기고 향후 재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강신철 국방부장관 후보자의 경우, 본인은 물론 친인척 네 가족이 철거민특별분양 케이스로 아파트를 분양받고, 강 후보자 본인은 고가의 강남아파트를 손에 넣었다. 해명에도 불구하고 네 가족의 군사작전과도 같은 철거민특공은 주민등록지 이전 등 그 시기와 고의성 등에서 불법 소지가 있어 보인다. '해당 지역 철거민들이 다 그렇지는 않았을 건데 왜 하필 저 가족들만 저럴까?' 당연한 질문이다. 이상 여러 후보자에 대해 청와대 역린은 괜찮았는지 모르지만 국민들 역린을 건드렸다. 이 정부 출범 후 첫 국무위원 구성때부터 이번 개각에 이르기까지 '근본적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인사가 모든 사람의 개인적 기준을 다 맞출 수는 없다. 그러나 서민 대중의 가치관과 눈높이, 기대치에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게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격이어서야 어찌…. bienns@ekn.co.kr

[데스크 칼럼] 죽은 산업을 위한 나라는 없다

산업은 원래 죽는다. 석탄을 태우며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끊임없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냈다. 낡은 산업은 역사 뒤편으로 밀려났다. 기술 발전, 소비 문화, 정치와 외교, 국제 질서 등 산업을 둘러싼 모든 요소들은 산업의 탄생과 소멸을 예외적 사건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리로 만들었다. 불과 반 세기 만에 산업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은 더욱 그렇다. 섬유에서 철강, 조선, 자동차로. 다시 반도체와 IT로. 한때 미래 먹거리로 불렸던 산업은 금세 주력 산업이 되고, 다른 산업이 그 자리를 넘겨받으며 압축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새 산업의 등장에 환호하는 동안, 기존 산업의 생태계는 조용히 사라졌다. 사라지는 순간의 산업은 어떤 모습인가. 제조업은 연일 피지컬 AI를 외친다. 완성차 업체들은 로봇과 AI를 앞세워 생산공장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한국은 이미 제조업 로봇 밀도 세계 1위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제조업 근로자 1만 명당 로봇 대수는 1220대로 세계 평균의 9배를 웃돈다. 반면 중소 제조업의 AI 전환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 조사를 보면, 중소 제조기업 가운데 실제 생산 현장에 AI를 적용한 곳은 1.5%에 그쳤다. AI 도입의 가장 큰 걸림돌로는 초기 비용 부담과 인력 부족이 꼽혔다. 현대자동차는 2028년부터 아틀라스 로봇을 국내 제조 현장에 투입하고, 2030년에는 조립 등 더 복잡한 공정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전무후무한 생산성 향상과 막대한 비용 절감이 예상된다.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은 그저 승승장구할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 토대를 촘촘하게 만들어온 중소 협력사들이다. 한국의 중소 제조기업은 6만9807개, 종사자는 199만 명에 달한다. 이들 공장이 같은 미래를 맞을 리 없다. 자본과 기술을 가진 곳은 앞서가고, 그렇지 못한 곳은 뒤쳐진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조차 모른 채, 어떻게 바꿔야 할지도 찾지 못한 채 사라진다. 정부는 올해 첫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2030년까지 100만 명 이상에게 AI 직업훈련을 지원하고, 산업전환 충격이 집중되는 지역에 대한 대응책도 담았다. 지난 7일, 중기부와 과기정통부는 중소 제조기업의 피지컬 AI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내놨다. 기술 공급기업과 제조 수요기업을 연결하고, 기술개발부터 실증과 현장 적용, 확산까지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여기서 우리는 정책의 숫자가 아니라, 그 사이의 빈틈을 봐야 한다. 기술을 도입할 여력이 없는 기업, 무엇을 바꿔야 할지 모르는 기업은 그 빈틈에서 뒤처진다. 산업의 이름은 남는다. 성과도 남는다. 그러나 그 안의 생태계까지 그대로 남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일자리, 기술과 공급망은 산업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다시 짜인다. 죽은 산업을 위한 나라는 없다. 모든 기업을 살릴 수도, 모든 일자리를 지킬 수도 없다. 산업은 죽을 수 있다. 산업의 이름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그 산업을 떠받쳐온 생태계까지 함께 사라져야 할 이유는 없다. 필요한 것은 과거의 산업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그 산업이 남긴 기업과 기술이 다음 산업으로 건너갈 길을 만드는 것이다. 오유신 기자 news@ekn.kr

[기자의 눈] 콜버스와 닥터나우…낡은 규제와의 투쟁 10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스타트업 콜버스랩이 선보인 심야 호출형 버스 서비스 '콜버스'가 난관에 봉착했다. 콜버스는 밤늦게 택시를 잡기 어려운 사람들을 앱으로 모아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승객들을 한 대의 버스에 태워 보내는 서비스로, 이용자 입장에서는 택시보다 저렴하면서 승차 거부도 피할 수 있어 호응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 택시업계가 크게 반발하며 콜버스의 운행 중단을 요구했고, 결국 정부가 심야 콜버스 운행 자격을 버스·택시 면허사업자 중심으로 제한하면서 콜버스랩의 사업모델은 크게 바뀌게 됐다. 이수진 야놀자 대표는 김봉진 당시 우아한형제들 대표(코리아스타트업포럼 초대 의장, 현 그란데클립 대표)에게 연락했다. “우리가 한데 모여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장면은 국내 최대 스타트업 단체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이 생겨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지난달 국회에서는 이른바 '닥터나우 방지법'으로 불린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닥터나우는 환자가 앱으로 의사에게 비대면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약국에 전송할 수 있도록 연결한 서비스다. 닥터나우는 사업을 확장하면서 의약품 도매업도 겸하고 있었는데, 이번 개정안은 편법행위가 우려된다며 해당(의약품 도매업) 사업을 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코스포는 “혁신의 성패가 시장과 이용자가 아니라,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이들의 목소리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며 약사법 개정안 통과에 대해 반발했다. 콜버스와 닥터나우는 스타트업 규제사(史) 10년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김봉진 코스포 초대 의장은 지난 9일 서울 강남 팁스타운에서 열린 '코스포 10주년 기념 미디어데이'에서 “규제 문제 때문에 스타트업이 모이게 됐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규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며 “이게 현재 스타트업이 처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재원 현 의장은 코스포의 숙원으로 규제 혁신을 꼽았다. 스타트업을 위해 규제를 없애달라는 것이 아니라, 스타트업 혁신의 속도에 제도의 속도를 맞춰달라는 주문이다. 김 의장은 “시장을 움직이는 규칙이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혁신은 성장할 수 없다"며 “갈등이 생겼을 때 몇 년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더 빨리 조정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의 10년은 낡은 규제와의 투쟁사였다. 다가올 10년은 스타트업의 혁신과 제도의 혁신이 발을 맞춰 함께 가기를 바란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EE칼럼] 에너지자원 공기업 통합의 성공 조건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를 통합하여 가칭 “에너지자원공사"를 설립하겠다는 정부의 공기업 통합안이 발표되었다. 단순히 공기업의 개수를 줄이는 것이 통합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길 바라며 진정한 통합으로 시너지 효과로 국가 에너지자원 안보와 경제 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통합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중동산 에너지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하고 자원보유국의 자원 민족주의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에너지자원 공급망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석유는 액체인 오일과 기체인 가스를 함께 이르는 말인데 일반적으로 오일을 석유라 부르고 있다. 대부분의 메이저 석유회사는 석유와 가스를 함께 개발 생산하고 있다. 석유와 가스는 모두 같은 원리로 지하에서 만들어지고 함께 생산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석유가스산업은 석유가스를 개발 생산하는 상류부문과 생산된 원유를 정제하고 천연가스를 액화하여 판매하는 하류부문으로 구성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메이저 회사는 상류와 하류 부문에 모두 투자하여 사업의 포트폴리오 구성하여 유가의 변동성에 대비하고 있다. 즉, 고유가 시에는 석유생산으로 상류부문에서 수익을 내고 저유가 시에는 정유사업인 하류부문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으니 100년 넘게 회사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와 따로 존재하고 있을까? 두 공기업 탄생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는 국내외 석유가스개발과 석유비축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한편, 한국가스공사는 천연가스의 국내 도입과 공급이 주요 업무이다. 즉, 석유공사는 석유산업의 상류만 담당하고 있고 가스공사는 가스사업의 하류 부문을 주요 업무로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 두 회사의 현 업무 특성이 담겨 있다. 이 말은 석유공사는 불확실성과 위험성이 높은 상류부문 사업만 추진하는 회사인 셈이다. 반면 가스공사는 천연가스를 국내로 도입하여 공급하는 하류부문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석유가스산업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상류-중류-하류의 수직적 일괄조업 형태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유가 변동과 같은 외부 환경 변화와 위기에 취약한 구조를 지닌 채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석유공사가 하류부문의 정유공장을 갖고 있으면 원유의 생산과 도입 및 정제 분야에 걸친 일괄조업 형태를 갖추어 국내 석유제품 가격 안정에도 큰 기여를 하고 보다 안정적인 회사 운영이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가스 공사가 과거에 추진했던 것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가스전 개발과 LNG 사업과 같은 상류부문에 투자했으면 지금과 같은 에너지 공급망 위기 시 국가 에너지자원 안보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당장 눈앞에 문제를 해결하려다 미래를 망치기 쉬운 것이 에너지자원 분야이다. 정부에서 계획 중인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통합은 석유가스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당연히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통합 전 해결해야 할 선제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면 단지 공기업의 개수를 하나 줄이는 겉보기 성과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결해야 할 전제 조건은 3가지이다. 정부 예산으로 석유공사의 부실자산 처리, 국내외 석유가스 개발과 탄소중립 사업 지속적 추진, 국내 에너지 가격 정상화이다. 현재 수년째 자본 잠식에 빠져있는 석유공사의 부채를 해결하지 않으면 통합이 되더라도 재정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고 국가 에너지자원 안보의 핵심인 석유가스개발은 추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한 가스공사의 13조가 넘는 미수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공급 가격의 정상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정권교체 시마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통합이 추진되다 좌초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전제 조건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정부의 예산 투입 없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니 통합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정부가 예산 투입 없는 통합을 추진하려면 그냥 여기서 멈춰라. 겉보기 통합은 국민에게 또 다른 짐이 될 뿐이다.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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