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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범의 세무칼럼] 묵인되던 관행이 세금 폭탄으로…국세청, 법인 슈퍼카 겨누는 이유

지난 5월 28일, 국세청은 법인 소유 슈퍼 카의 사적 사용 및 관련 탈루 혐의에 대해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2024년 8천만 원 이상 법인 차량에 의무화된 '연두색 번호판' 제도가 오히려 부의 상징으로 왜곡되면서 고가 법인 차량 등록이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 것이 이번 기획 조사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번 조사는 단순한 차량 사적 사용 적발을 넘어 기업 자금 유출과 편법 증여 전반을 파헤치는 강도 높은 검증이 될 전망이다. 국세청이 타깃으로 삼은 19개 법인은 총 90대(약 300억 원 상당)의 고가 차량을 소유하고 있으며, 적발된 탈루 혐의 금액만 약 3,000억 원에 달한다. 가장 빈번하게 적발되는 사례는 법인 명의로 초고가 슈퍼 카를 취득한 후 사주 일가의 '개인 전용차'로 전락시키는 경우다. 조사에서 법인 명의로 8억 원 상당의 슈퍼 카 3대를 취득해 골프장, 특급 호텔 방문 등에 사적으로 유용한 사례가 드러났다. 또한, 사주 일가의 미술품, 명품 의류 구입은 물론 고급 단독주택의 인테리어 비용까지 법인 비용으로 전가한 심각한 도덕적 해이도 포착되었다. 법인 차량을 사적으로 유용하다 적발될 경우, 법인의 비용(손금)으로 인정받지 못해 법인세가 추징되는 것은 기본이다. 더 큰 문제는 부인된 비용만큼 대표이사의 '상여'로 처분되어 막대한 근로소득세와 4대 보험료까지 연쇄적으로 부과된다는 점이다. 백화점, 골프장, 피부과 등 업무와 무관해 보이는 결제 내역은 국세청의 PCI(소득-지출 분석) 시스템에 의해 즉각 이상 징후로 포착된다. 따라서 접대비나 복리후생비로 처리하더라도 실질적인 업무 연관성을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인 내부 증빙(품의서, 참석자 명단 등)을 반드시 구비해야 한다. 고가 법인 차량 세무조사 시 국세청 조사국에서 가장 엄격하게 교차 검증하는 자료가 바로 '업무용 승용차 운행 기록부(운행일지)'이다. 세법상 임직원 전용 보험에 가입하더라도 운행 기록부를 작성하지 않으면 연간 1,500만 원까지만 비용으로 인정된다. 빈틈없는 기록과 객관적인 업무 운행 사실 자료만이 실무적인 세무 리스크를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다. 단순히 '업무용', '외근', '거래처 방문'이라고 뭉뚱그려 적는 것은 조사 시 허위 기록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 방문처와 구체적인 업무 목적을 명확히 기재해야 함다. 국세청 조사 요원들은 운행일지 내용과 하이패스 통행 내역, 주차장 영수증, 법인카드 결제 위치(주유소, 식당 등), 나아가 차량 내비게이션 기록까지 대조하여 모순점을 찾아낸다. 주말이나 공휴일 운행, 혹은 골프장, 주요 관광지, 사주 일가의 자택 인근 등 업무 연관성이 떨어져 보이는 장소로의 운행 내역은 조사관들의 1차 타깃이다. 불가피한 주말 업무나 휴일 접대였다면, 이를 명확히 입증할 수 있는 휴일 근무 품의서, 접대비 지출 결의서, 회의록 등의 증빙은 운행일지와 하나의 세트로 묶어 보관해야 한다. 연말 법인세 신고를 앞두고 기억에 의존해 1년 치를 일괄 작성하는 관행은 매우 위험하다. 회사의 경영권을 쥔 사주가 거래 과정에 자녀 회사를 '끼워 넣어' 부당한 통행세 이익을 주거나, 법인 소유의 슈퍼 카를 사주 일가에게 헐값에 저가로 양도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세금 탈루 유형이다. 심지어 배우자가 지배하는 특수관계 법인에 가상자산 채굴기 구입 대금 200억 원을 무상으로 빌려주거나, 조세회피처의 페이퍼 컴퍼니에 허위 광고비를 지급해 막대한 자금을 국외로 빼돌려 은닉한 혐의를 있는 법인이 집중 조사를 받고 있다. 법인은 자녀나 배우자가 운영하는 특수관계 법인과의 거래, 혹은 법인 자산(차량, 부동산 등)의 매각 시 반드시 세법상 적정한 '시가'로 거래해야 힌디. 시가보다 낮게 팔거나 높게 사주는 행위는 '부당행위계산부인' 규정이 적용되어 법인세가 엄격하게 추징된다.특히 가공의 광고비나 컨설팅비 명목의 외환 송금은 국세청 국제조사과의 집중 타깃이다. 조사에서 해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자녀의 시기에 맞춰 3억 원대의 수입 스포츠카를 법인 명의로 사주거나, 자금 출처가 없는 미성년 자녀와 180억 원 상당의 빌딩을 공동 매입하면서 50억 원의 취득 자금을 편법으로 증여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사례들이 적발되었다. 법인에 실제로 출근하지 않는 자녀에게 수억 원의 가공 인건비를 지급한 악의적 사례도 포함되어 있다.사주 자녀의 재산 취득 시 가장 중요한 것은 명확한 '자금 출처' 확보. 자녀 명의로 부동산이나 주식을 취득할 때는 객관적인 '소득 증빙'이 필수적이다. 법인에서 정당하게 급여나 배당을 받아 자금을 마련하되, 실제 근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업무 일지나 사내 메일, 결재 명세 등을 반드시 남겨야 가공 인건비 논란과 증여세 추징을 피할 수 있다. 사전 증여로 부를 이전해야 한다면 편법을 동원하기보다, 합법적이고 정당한 플랜을 만들어 사전에 증여세를 납부하는 것이 징벌적 가산세를 피하는 가장 장기적이고 안전한 절세 전략이다.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에서 금융계좌 추적과 디지털 포렌식(문서 감정) 등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며, 장부 조작이나 차명계좌를 이용한 고의적 조세 포탈이 확인되면 조세범 처벌법에 따라 엄정하게 고발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지금은 과거의 묵인되던 관행이 치명적인 리스크로 돌아오는 시대다. 당장이라도 기업의 회계 처리와 세무 신고 내역, 그리고 사주 일가의 자산 변동 내역을 꼼꼼하게 재점검하고 선제적인 방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ekn@ekn.kr

[EE칼럼]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러나 강건너 남의 일이 아니다

6월이 끝나가는 무렵에 해외로부터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베네수엘라의 지진 소식이다. 진도 7.5가 넘는 이중 강진이 발생하여 1900년 이후 120년 만의 대 재난을 가져왔다. 불과 39초의 위력이 이럴 정도로 강할지는 상상 조차 못했다. 미국 지질 자원국은 막대한 인명 피해와 대규모 재산 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며 사망자 수가 1만 명에서 10만 명에 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부디 인명 피해가 작기만을 간절히 기도한다. 베네수엘라는 한 국가가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어찌 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본다. 세계 1위의 석유 매장량을 가지고 있지만 수출의 95% 이상을 석유가 차지하는 기형적 경제 구조였는데 차베스, 마두로 정권의 포플리즘은 막대한 석유 자금을 바탕으로 무상 의료, 무상 교육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말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 는 만고의 진리다. 2010년 이후 유가가 급격히 하락하는데도 복지는 그대로 유지하고 기업 국유화는 진행하고, 가격 통제를 강행했다. 이런 결과 민간 기업은 도산하고, 고급 인력은 외국으로 나가고, 설비 투자 부족을 겪은 석유 산업은 원유 생산량마저 급감하게 되었다. 정책 실패도 있었다. 자금이 없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인 중앙은행에게 돈을 마구 찍어내도록 한 것이다. 당연히 화폐 가치는 휴지 조각이 되었고, 물가가 폭등하는 이른바 하이퍼 인플레이션(Hiper-Inflation)을 겪게 된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수십만 퍼센트의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현재도 연간 물가 상승률은 500% 이상이라고 하는데 이번 사태로 엄청난 물가 상승이 예상된다. 결국 오랜 독재로 인한 부정부패는 국가 존재를 무의미 하게 만들었다.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대 지진에도 의료 체계가 이미 무너져 버린 상황이라 인명구조라던가 치료는 거의 기대하기 힘들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결국 외국의 다양한 지원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해야 하다. 이 같이 전 세계의 많은 시민들이 자연 재난으로부터 속수무책 당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데 있다. 분노한 자연의 역습일까?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베네수엘라 지진의 경제적 피해액이 GDP의 10%인 18조 원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일본 토목학회는 향후 30년 내 발생 확률이 80%에 달하는 난카이 해곡 대지진의 경우 20년간 약 1경 3,800조 원의 경제적 피해와 20년 동안 경제 회복기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한다. 실로 무시무시한 피해액이다. 한반도라고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나 정부는 한반도는 지진 위험이 없다고 보는 듯하다. 틀렸다. 우리도 이미 포항과 경주, 부안 지진을 경험한 바 있다. 강도도 해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홍수의 경우 포항제철 인근의 하천 범람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기도 하였다. 이번을 기회로 우리도 다시 한번 세밀하게 재난에 대해서 안전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진 관련 해서는 원자력이나 다른 발전 시설 등은 물론이고 모든 에너지 시설에 대한 점검과 보강이 반드시 필수적이다. 예를 들면 “산업단지 에너지 저장시설에 대한 지진 안전성 평가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 신종화교수는 설계기준(KBC2016)에 근거한 결과, 기둥이나 보 등에 대해 구조물의 보강이 필요하다고 주장 한다. 지진 이외에 산불이나 홍수 등의 재난에도 점검과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송배전 등 전력 관련 설비 및 시설들은 산에 위치하여 대형 산불이 전력망 공급에도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음을 울진 산불로 보았다. 경기도 및 강원‧경북 지역에만 송전탑 4,300여 기와 변전소 900여 곳, 그리고 가공선로의 70% 가 밀집돼 있다는데 산불의 직접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강건너 불구경 하다가 자칫 집안이 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비무환. 정치에서든, 미리 준비해 두면 근심이 없다는 점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지진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기자의 눈] 미래세대의 환경권, 그리고 ‘일할 권리’에 대하여

지난 4월 SK하이닉스 생산직 공개채용에는 청년들이 몰렸다. 고졸·전문대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채용에 '하닉고시'라는 말까지 붙었다. 수억 원대 성과급 전망이 화제가 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러나 같은 시기 발표된 고용통계는 다른 현실을 보여줬다. 지난 5월 청년층 취업자는 1년 전보다 25만5000명 줄었고, 청년 고용률은 25개월 연속 하락 중이다. 호황이라지만 제조업 고용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4% 남짓이다. 호황의 온기가 닿는 일자리는 생각보다 좁고, 청년들의 줄은 그래서 더 길어졌다. 같은 시기 국회에서도 미래세대가 호명되고 있었다. 국회는 지난 11일 기후위기특별위원회를 다시 구성하고 활동 기한을 8월 말까지 연장했다. 2024년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기본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국회는 이미 한 차례 법 개정 시한을 넘겼다. 공론화와 정치권 공방 끝에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다시 시간을 얻었다. 남은 두 달여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두 장면의 주인공은 같다. 미래세대다. 하지만 두 장면 속 미래세대는 다르게 그려진다. 국회 논의 속 미래세대는 기후위기의 피해를 가장 크게 떠안을 세대다. 그래서 더 빠른 감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반면 현실 속 미래세대는 취업을 준비하고, 가정을 꾸리고, 소득을 얻어 살아가야 하는 세대다. 좁아진 채용 문 앞에서, 경쟁력 있는 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와 성장의 기회를 기대하며 줄을 선다. 물론 둘 중 하나를 선택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와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누릴 권리는 모두 미래세대의 권리다. 문제는 지금의 논의가 미래세대의 환경권에는 집중하면서도, 미래세대가 살아갈 산업과 일자리의 기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적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이어진 감축경로 논쟁은 주로 숫자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감축률을 얼마나 높일 것인가, 언제 더 많이 줄일 것인가. 공론화 과정에서도, 국회 논의에서도 핵심 쟁점은 대부분 여기에 머물렀다. 감축경로는 숫자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철강업계가 준비하는 수소환원제철도, 정유·석유화학업계가 추진하는 바이오연료와 순환경제도, 시멘트업계가 검토하는 탄소포집·저장(CCUS)도 아직은 상용화와 경제성 확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무탄소 전력 확대와 전력망 구축, 투자 지원과 제도 정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감축률은 법에 적을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은 법 조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축목표를 둘러싼 찬반이 아니라 실행계획에 대한 설명이다. 더 빠른 감축을 주장한다면 왜 그것이 가능한지 설명해야 한다. 더 완만한 감축을 주장한다면 왜 그것이 결국 더 많은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숫자만 제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국회가 다시 얻은 시간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하라고 주어진 것이어야 한다.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은 단순히 감축률을 정하는 작업이 아니다. 미래세대에게 어떤 사회를 남길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그 사회에는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한 환경도 필요하다. 동시에 일할 수 있는 산업과, 포항·광양·여수·서산 같은 지역의 경제와 삶을 꾸릴 수 있는 기반도 필요하다. 미래세대를 위한 법이라면 미래세대의 권리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 미래세대를 위한 감축경로라면 미래세대가 실제로 서 있는 자리에서도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채용 공고 앞에 선 청년들에게도,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청년들에게도 말이다. 기후특위가 앞으로 두 달 동안 답해야 할 질문은 결국 하나다. 얼마나 줄일 것인가를 넘어, 무엇을 함께 지킬 것인가. 전지성 기자 jjs@ekn.kr

[김성우 시평] AI 관련 대화에 에너지가 등장하다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지난 1월 필자는 본지에 'AI와 주식 vs 기후변화'라는 기고를 했었다. 새해 인사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니 주식과 AI에 대한 우려를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데, 더 위협적인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아쉬움으로, AI와 주식 관련 대화에 기후변화를 접목시켜야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이 모이면 여전히 AI와 주식에 대한 이야기가 공통 화제인데, 그 사이 달라진 점은 AI와 주식이 밀접하게 연결된 점과 AI가 에너지와도 강하게 접목된 점이다. AI가 반도체 수요를 늘려 관련 주식에 영향을 미치고, AI를 학습시키고 활용하는데 필요한 전력을 적기에 공급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세계 데이터센터 용량은 누적기준 220GW에 달해 2020년 대비 6배가 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관련하여, 이달 초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올해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을 지난해보다 26% 증가한 565TWh로 예상하고 내년에도 702TWh로 추정해, 수요 전력량의 폭발적 증가를 구체적으로 예시했다. 우리나라의 2025년 기준 전력 소비량인 625TWh와 비교해 보면 그 증가세를 실감할 수 있다. 더욱이 2030년에는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1,200TWh를 넘어서, 2025년 기준 일본은 물론이고 러시아 보다 더 전력을 소비한다는 추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막대한 전력을 적기에 필요한 만큼 확보하는 것이 AI 경쟁에서 새로운 핵심 요소로 등장해 AI개발회사 입장에서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꼽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시장에서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수십조 달러가 걸려있는 AI시대의 화려한 투자 발표 뒤에 에너지 수급이라는 도전적 과제가 함께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미국 기술 매체 테크크런치는 전력 수급 이슈로 현재 발표된 데이터센터 건설의 최대 절반이 지연될 수 있다고 경고했고,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직접 발전소를 짓거나 별도의 전력 구매 계약을 맺는 이유도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함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AI 분석 전문기업 신맥스도, 지난 4월 기준 미국내 올해내 완공 목표였던 데이터센터 중 40%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고, 내년까지 완공 예정인 데이터센터 중 60%는 아직 착공을 하지 못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데이터센터가 전력을 확보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이지만 최적의 대안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손쉽게 전력망에서 끌어다 사용하자니 핵심설비가 부족하고, 안정적인 가스발전을 활용하자니 주문이 밀려 5년 이상 기다려야 하며, 무탄소 전력을 공급하는 소형모듈원자로도 상업성 이슈로 2030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편, 최근 대안으로 부상하는 연료전지는 우선은 화석연료를 사용한다는 점과 가격 부담이 걸림돌이고, 가장 친환경적인 태양광이나 풍력은 간헐성 때문에 24시간 전력을 공급받아야 하는 AI의 특성과 맞지 않고 에너지저장장치로 보완해도 다른 전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 하나는, AI개발회사들이 탄소중립 목표를 이미 약속했다는 점이다. 자발적 목표이기 때문에 목표 변경이 가능하지만 미래세대 소비자나 장기 투자자 등 중요한 이해관계자들에게 변경 사유를 설득하는 것이 녹록치 않다. 따라서, AI사업에 필수인 에너지를 (소규모가 아닌 대규모) 화석연료로 공급받는다면 이는 회사의 지속가능성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당장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대규모 전력 수요를 단기간내에 충족할 최선의 대안은 없고, 차선의 대안을 선택하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법뿐이다. 예를 들면,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를 통해 주요 전력 수요를 충당하고, (싱글사이클같은) 저효율 가스발전이나 전력망으로부터 보조 전력만 충당하는 방안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이 밝힌 2026년 신규 발전소 계획용량 중 93%가 태양광, 풍력, 에너지저장장치라는 점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요즘도 사람들이 모이면 여전히 AI와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6개월 전 보다 AI가 사람들과 더 밀착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AI전망에 따라 반도체 주식의 등락이 갈리는데 많은 사람들의 주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수급이 AI에 미치는 영향이 가시화되자 사람들의 대화 주제에 에너지라는 화두가 따라 등장하기 시작했다. 6개월 전에 희망한 대로 이러한 관심이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촉진하길 기대해 본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중동 재건 호재, 정부가 먼저 움직여야

“건설주가 오르는 가장 확실한 신호를 아십니까?" 건설업계 관계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답은 '대대적인 인프라 공사'였다. 이 언급이 나오냐 아니냐에 따라 주가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인프라는 공공의 영역에 나라가 재정을 비정상적으로 쏟아붓는 결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이란 전쟁 종전 소식은 침체됐던 건설업계에 기대감을 자아낼 법 했다. 이번 재건 국면은 송유관, 정유·가스 플랜트 등 에너지 인프라를 복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에너지 인프라는 고도의 작업 기술을 요하는 경우가 많아 당초 시공을 맡았던 기업들이 다시 수주를 맡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실제 중동지역 공사는 시공능력평가 상위권 건설사들이 주도해왔다. 주요 완공 공사 계약 금액 기준으로 보면 이란은 현대건설(29억9366만달러), DL이앤씨(17억361만달러)순으로 비중이 높다. 이라크 역시 현대건설이 34억1630만달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삼성E&A가 33억1000만달러로 뒤를 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HD현대중공업(91억2549만달러), DL이앤씨(60억5680만달러) 순으로 실적을 기록했다. 종전 소식이 전해지자 증권사들은 곧바로 움직였다. 하나증권은 “이란 재건 계획이 명시됨에 따라 종전 후 이란 재건 뿐만 아니라 유전 및 가스전 개발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며 관련 건설주를 주목했다. 하지만 건설업계 분위기는 증권가와는 다소 달랐다. 국내 건설사의 최근 중동 완공 실적은 이란 2012년, 사우디 2019년, 이라크 2021년이 마지막이다.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되면서 현지 인력과 조직도 과거만큼 유지하지 못했다. 미·이란 충돌 당시에도 이미 상당수 건설사들은 현지 사업장 운영을 최소화한 상태였다. 해외 재건 사업은 기업이 먼저 현지에 들어가 사업을 따오는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 정부 차원에서 국가 간 협력 방향을 정리한 뒤, 정부가 건설사에게 사업 의향을 확인해야 움직일 수 있다. 실제 정부도 최근 재정경제부 2차관 주재의 '중동 인프라 협력 실무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기로 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재건 시장은 이제 막 문이 열리기 시작한 단계다. 인프라 사업은 결국 국가가 움직여야 시작되는 시장이다. 이번 중동 재건 역시 기업의 수주 경쟁에 앞서 정부의 외교·행정 역량이 중요하다. 그 전까지는 “건설주는 사는 게 아니다"라는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송윤주 기자 syj@ekn.kr

[기자의 눈] 채권자 메리츠와 대주주 MBK, 의무의 무게도 달라야

홈플러스 자금 지원 과정에서 불거진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채권자 메리츠증권 간의 이견,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관심은 자본시장에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정치권 일각에서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는 채권자 역시 기업의 회생이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주주에 준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시각을 보이면서, 채권자와 주주에게 동일한 수준의 의무를 지우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담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주주와 채권자는 기업과 맺고 있는 계약의 본질과 감수하는 위험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 주주는 기업의 소유주로서 경영진을 감시하고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한다. 회사가 청산될 때는 가장 늦게 자산을 돌려받는 취약한 위치에 있지만, 기업이 성장할 때는 배당과 주가 상승을 통해 제한 없는 보상을 누릴 수 있다.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권리와 수익을 기대하는 주체다. 채권자는 기업의 주인이 아닌 계약 상대방에 가깝다. 기업 경영에 직접 참여할 권리가 없고, 회사가 아무리 큰 성과를 거두더라도 정해진 이자와 원금만을 돌려받는다. 보상이 제한되는 구조 속 주주보다 먼저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선순위 청구권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한다. 이처럼 권한과 보상의 구조가 본질적으로 다른 두 집단에게 일률적인 수준의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게 된다면, 그 파급 효과는 자본시장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채권자들은 늘어난 리스크와 관리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게 되고, 이는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투자 위축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관계자 간 책임 분담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다만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지원할 책임을 채권자에게 무리하게 지우려 한다면, 각 이해관계자가 지닌 고유의 특성과 역할 자체가 모호해질 수 있다. 채권자에게 주주 수준의 구원투수 역할을 기대하는 순간 시장의 자율적 메커니즘은 작동하기 어렵다. 자본시장의 장점은 각자의 조건에 맞춰 주식이나 채권 등 다양한 투자 수단을 선택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지는 데 있다. 투자 주체의 본질적 차이를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책임의 경계를 명확히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자본시장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길이 아닐까. 김태환 기자 kth@ekn.kr

[이슈&인사이트] 워시의 연준 2.0: 5대 TF와 포워드 가이던스의 종말

2011년 연준을 떠난 케빈 워시가 15년 만에 연준의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연준의 근본적인 개혁을 예고하며 “체제 전환(regime change)"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방식을 과감히 재검토하고, 새로운 원칙에 따라 통화 정책을 운영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포워드 가이던스도 없애고 점도표도 없애고 연준이 그동안 했던 양적완화와 오퍼레이션 트위스톨 인해 불어난 대차대조표도 축소하려고 하고 있다. 연준이 전통적으로 그동안 하지 않았던 프로그램들을 마구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금의환향한 케빈 워시는 이 레거시를 되돌리려고 하고 있다. 그의 개혁안은 크게 소통 방식의 혁신과 통화 정책 운용의 전면 재검토라는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연준 내에 5개의 TF를 가동할 것을 밝혔다. 그 5개 TF는 1. 연준의 소통(Fed Communications): 향후 발표할 경제 전망 요약(SEP)의 내용과 방식, 기자회견 개최 빈도 등 연준의 모든 대외 소통 채널을 재검토. 2. 연준의 대차대조표(Balance Sheet):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불어난 6조 7천억 달러 규모의 대차대조표 축소 방안의 연구. 3. 데이터 의존도 및 활용(Data Sources): 연준이 정책 결정에 사용하는 기존 데이터(특히 정부 발표 지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데이터 수집 및 분석 방법을 도입하는 방안의 검토. 4. 생산성과 일자리(Productivity and Jobs): 급격히 발전하는 AI와 같은 신기술이 생산성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이것이 연준의 물가 및 고용 목표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연구. 그리고 마지막 5. 인플레이션 체계(Inflation Frameworks):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재점검하고,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맞춰 물가 안정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한다. 케빈 워시의 취임으로 이제 세계, 특히 자산을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워시가 들어서자마자 모든 걸 없앨 수는 없기에 일단은 점도표 찍는 것을 거부하고 포워드 가이던스 부분은 많이 축소했다. 케빈 워시는 커뮤니케이션을 줄이고 싶어한다. 그리고 대차대조표도 축소하고 싶어하고, 기존의 근원 PCE 말고 절사평균물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고 있다. 데이터의 기준 역시 바꾸고자 한다. 그리고 AI가 물가상승 없는 이상적 성장을 가져다주리라 믿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21년 인플레이션 관리 실패를 보여준 현재의 프레임워크를 송두리째 교체하려고 하고 있다. 그 방법을 위시는 TF를 통해서 각 주제에 대한 연준 위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내부의 저항을 없애려고 하고 있다. 기존 연준 의원들이 반발을 염려하여 TF를 통해서 하나하나씩 변화의 과정을 빌드업하려고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단순히 혼자서 연준 이사들을 설득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TF를 통해 우회적으로 그리고 논리로 연준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어느 TF가 먼저 결과를 낼지 모른다. 아니면 그의 의도대로 되지 않고 지금의 연준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어쨌든 워시의 연준이라는 배가 출항을 했다. 이제 시장은 친절한 연준씨가 없어졌다. 향후 금리에 대한 예고편인 점도표도 경기 전망에 대한 포워드 가이던스도 사라졌다. 시장은 이제 각자도생하면서 스스로 금리와 경제를 전망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위시에게는 트럼프의 압력과 기존 연준 내부의 인사들과도 싸워야 한다. 우리 또한 이제 미국의 경제 전망과 금리 전망이 사라지는 시대를 살아야 한다. 스스로 준비를 해야 하는 워시의 시대가 열렸다. bienns@ekn.kr

[EE칼럼] 500년 ‘장마’의 퇴장, 이제 장마를 장마라 부를 수 없다

조선 중기인 16세기부터 기록이 전해지는 '장마'는 최소 500년 넘게 우리 민족의 여름철 삶을 규정해 온 공식이었다. 6월 말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한 달 남짓 지루하게 비를 뿌리던 전통적인 장마. 성질이 다른 두 거대한 공기가 한반도 상공에서 팽팽하게 힘겨루기하며 만들어낸 정체전선은, 비록 수해를 발생시키고 생활의 불편을 주었을지언정 우리가 어느 정도는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익숙한 불청객'이었다. 전통적인 장마의 핵심은 '대우(大雨)', 즉 일정 기간 지속해서 비가 내리며 누적 강수량이 늘어나는 형태였다. 정체전선의 위치에 따라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며 전국이 영향을 받았다. 이에 따라 우리 삶도 장마 전과 중, 후로 나뉘어 움직였다. 방재 당국은 장마 정보를 나침반 삼아 대책을 세웠고, 도시의 배수 관리와 농사일의 순서도 이에 따랐다. 전력 수급 계획은 물론 가정의 살림, 아이들의 방학, 직장인의 휴가 일정까지 장마가 기준이었다. 장마는 단지 비가 오는 기간이 아니라, 한국인의 여름 생활을 조직해 온 하나의 거대한 질서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여름은 어떤가. 냉정하게 말해 우리가 알던 500년 역사의 '장마'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 기후변화는 여름의 공식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기상학적으로 이제 한반도 장마의 대표적 상징인 정체전선은 뚜렷한 형태를 찾기조차 어렵다. 장마의 시작과 끝을 특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 것이다. 약 10년 전부터 이러한 징후는 뚜렷해졌다. 가까스로 전선이 형성되더라도 과거처럼 넓은 지역에 길게 비를 뿌리지 않는다. 대신 좁은 구역에서 대기가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며 마치 팝콘이 튀어 오르듯 동시다발적으로 강한 비구름대가 발달했다가 순식간에 소멸한다. 극도의 불확실성을 갖는 국지성 폭우, 즉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새로운 주류가 된 것이다. 심지어 기상청이 공식적으로 장마 종료를 선언한 이후에 오히려 더 치명적인 호우가 빈번하게 출현하는 기현상이 이제는 새로운 표준(뉴노멀)이 되었다. 이 급격한 변화는 단순히 기상학적 용어의 수정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뿌리째 바꿔야 한다는 경고등이다. 우리는 먼저 과거의 장마 패러다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올해 장마는 언제 끝나나요?"라는 질문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장마 기간의 시종(始終)에 매달리기보다, 여름철 내내 언제든 재난급 폭우가 쏟아질 수 있다는 상시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당장 국가의 방재 시스템부터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장마를 비중있게 고려하여 만들어진 과거의 강수량 통계와 배수 용량 기준은 이미 무용지물이 되었다. 단 몇 시간 만에 한 달 치 비가 쏟아지는 기습 폭우에 견딜 수 있도록 도시의 빗물 수용 능력을 재설계해야 하고, 산사태와 하천 범람 경보 시스템도 실시간 국지성 예측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산업과 일상도 달라져야 한다. 전력 수요 예측이 생명인 에너지 수급 계획은 장마의 변화로 인해 불확실성이 더 커진 여름철 하늘상태, 기온과 습도에 맞춰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의 물류망 관리, 농가의 재배 타이밍은 물론이고, 일반 가정의 여름휴가 계획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과거의 장마와는 완전히 다른 현실에 입각한 준비가 필요하다. 7월 말에서 8월 초에 집중되던 일률적인 휴가 문화도 분산되어야 안전과 휴식의 질을 모두 담보할 수 있다. 다행히 기상청과 기상학계는 이러한 위기를 엄중히 인식하고 발 빠르게 움직여 왔다. 지난 2023년부터 학계와 현장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후변화로 다변화된 장마의 개념을 재정립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최근 그 일차적인 청사진이 도출되었다. 아마도 내년 여름부터는 이렇게 새롭게 정립된 강수 개념과 예보 체계를 바탕으로, 국가 방재부터 국민 일상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의 구체적인 대응 방향이 현장에서 실천될 것이라 기대한다. 기후위기는 500년 이상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계절 감각과 삶의 방식을 강제로 바꾸어 놓았다. 거대한 자연의 변화 앞에 인간은 무력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역사적 전환기마다 닥쳐온 숱한 위기를 늘 지혜롭게 극복하고,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바꾸어 낸 저력이 있다. 비록 익숙했던 장마의 모습이 사라지고 더 이상 장마를 장마로 부를 수 없는 당황스러운 현실을 마주했지만, 우리가 바뀐 기후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사회적 지혜를 모은다면, 이 변화된 여름 역시 가장 안전하고 생산적으로 다스려 낼 것이라 확신한다.

[김병헌의 체인지] 이재명의 시간은 진영이 아닌 국민이다

'문조털래유'와 '한강새똥 돼주길'까지 등장했다. 같은 깃발 아래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로 특정 정치인들의 이름을 조롱 섞인 암호처럼 부른다. 내부 전선이 만들어지는 순간, 집권 세력의 위험은 시작된다. 말이 거칠어지면 정치는 더욱 좁아진다. 논쟁은 사라지고 낙인만 남는다. 같은 당 안에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대통령을 돕겠다는 명분만 내세우며 오히려 대통령의 공간을 줄이는 일이 벌어진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내부를 흔드는 과잉 선명성은 진짜 위기를 부르고 있다. 검찰개혁, 보완수사권 폐지, 민정수석 인사 논란까지 모든 사안이 양갈래로 나눠져 각자의 충성도 시험으로 변한다. 이건 개혁이 아니다. 개혁의 이름을 빌린 권력 게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진보만의 대통령이 아니다. 보수도, 중도도, 무당층도 아우르는 모두의 대통령이다. 정부는 국민이 잘살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정책에 진보 딱지, 보수 딱지를 붙일 이유가 없다. 대통령의 책무는 진영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앞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특히 일부 진보 진영 인사들의 언어는 완전히 거꾸로 간다. 김어준, 조국, 유시민 등 여권 지지층에 영향력이 큰 인물들이 강한 메시지를 던질 때마다 지지층은 달아오른다. 그러나 그 열기가 곧 국정 동력은 아니다. 선거판의 언어와 집권의 언어는 다르다. 바깥에서 북을 치는 사람은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은 대통령과 정부가 진다. 정청래 대표의 행보도 그래서 더 무겁게 봐야 한다. 강한 개혁 의지는 필요하다. 그러나 여당 대표의 말은 거리의 구호가 아니라 국정의 신호다. “권력은 짧다"는 식의 말, 내 편과 상대편을 가르는 말, 보완수사권 폐지를 절대선처럼 밀어붙이는 말등은 대통령에게 힘이 아니라 부담이 될 수 있다. 또 잘못된 말은 사과 제스처로 끝낼 일이 아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인정해야 한다. 집권 여당의 대표라면 지지층의 박수보다 국민 전체의 신뢰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세계 정치사에서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미국 민주당은 2016년 버니 샌더스과 힐러리 클린턴 대선 경선 리래 한동안 진보 선명성과 중도 확장 사이에서 흔들리면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영국 노동당도 2015년부터 2020년 제러미 코빈 체제 동안 비슷한 고민을 겪었다. 강한 진보 노선은 당원과 젊은 지지층의 열정을 끌어냈지만, 2019년 총선 패배 이후 집권을 위해서는 중도층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는 현실론이 힘을 얻었다. 정치는 두 개의 심장으로 뛴다. 하나는 지지층의 열정. 다른 하나는 국민 다수의 신뢰다. 열정만 있으면 뜨겁지만 한계가 있다. 여당은 내부 함성만으로 나라를 운영할 수 없다. 역사가 증명해준다.문제는 균형이다. 지방선거 이후 정부 여당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선관위 논란, 지지율 하락, 민심의 피로감이 겹쳐 있다. 이런 때 여당이 해야 할 일은 내부 선명 전쟁이 아니다. 민생 안전, 경제 회복, 청년 일자리, 부동산 안정, AI 산업 경쟁력 같은 국가 의제를 앞으로 밀어내는 일이다. 국민은 매일 검찰제도만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장바구니 물가를 본다. 월세를 걱정한다. 아이 교육비를 계산한다. 노후를 불안해한다. 개혁도 이 삶과 만나야 힘을 얻는다. 8월 전당대회마저 정청래식 선명성 경쟁으로 흐른다면 민주당은 더 뜨거워질 수는 있다. 반면 국민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질 수 있다. 반대로 대통령의 국정 성공을 중심에 놓고 개혁과 민생을 함께 설계한다면 위기는 기회가 된다. 대통령은 진영의 깃발 아래 갇혀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국민통합의 중심이어야 한다. 여당은 대통령을 앞세워 자기 정치를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국민 전체를 향해 걸어갈 길을 열어야 한다. 권력이 짧다는 말은 맞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짧은 권력을 편 가르기에 쓰면 후회만 남는다. 그 시간을 국민의 삶을 바꾸는 데 쓰면 역사가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센 말이 아니다. 더 넓은 정치다. 민주당 전당대회도 진영의 전사를 뽑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불안을 줄일 책임자를 세우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국민은 싸움꾼을 기다리지 않는다. 성공한 정부를 기다린다.결국 정치의 최종 목적지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다. 개혁도 통합 위에서 완성되고, 권력도 책임 속에서 빛난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내부 승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성공을 만드는 더 큰 정치다.

[기자의 눈] 李, 하이에나를 탓하기 전에 먹이부터 치워라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 질 낮은 화폐가 시장에서 진짜 화폐를 쫓아낸다는 경제학의 '그레샴의 법칙'이다. 본질보다 껍데기가, 선보다 자극이 앞서는 구조적 왜곡을 설명하는 이 명제는 현재 한국 정치판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최근 정국을 집어삼킨 '명·청 갈등'과 당무 개입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직접 유럽 순방 성과 브리핑에 나섰다. 교황의 방북 요청과 유럽연합(EU)의 철강 무관세 수입 쿼터 대응 등 굵직한 성과들을 국민 앞에 직접 설명하는 자리였다. 평소 '일잘러'와 '실용주의'를 브랜드로 내세웠던 이 대통령으로서는 국정 동력을 끌어올릴 기회가 될 법했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의 관심은 온통 '당청 갈등설'에 쏠렸다. 브리핑 직후 이어진 질의응답은 순방 성과 대신 정청래 대표와의 불화설과 당무 개입 의혹에 집중됐다. 일부 정치권과 언론은 대통령의 발언을 한층 자극적으로 인용하며 갈등의 전선을 부추겼다. 외교·민생 의제는 사라지고, 소모적인 권력 투쟁만 남는 '의제의 왜곡' 현상이 극에 달한 순간이었다. 결과는 수치로도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조사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지지도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지르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소모적인 권력 투쟁이라는 '악화'가 대통령의 외교 성과라는 '양화'를 압도한 결과로 해석된다. 빌미를 제공한 대통령의 책임이 무겁다. 지난주, 당대표 도전이 확실시되는 송영길 의원과 비공개 만찬을 가진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뒤늦게 드러났다. 정무적 민감성이 극에 달한 시점에 오해를 살 만한 행보를 자진해서 밟은 셈이다. 야당과 언론에 비판의 '먹이'를 던져준 주체는 다름 아닌 대통령 자신이었다. 대통령은 심기가 불편한 듯하다. 지지율 하락에 대해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면서도 “선거 전후로 국정 운영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공개 발언과 X 등에서 정청래 대표를 겨냥해 내놓는 비판 역시 국민의 피로감만 더할 뿐이다. 정치권 관계자들 사이에서 “영민하던 대통령의 정무적 감각이 흐려진 것 같다"는 우려가 흘러나오는 이유다. 정치는 결과론이다. 그림자를 좇는 언론과 야권의 본능을 탓해봐야 소용없다. 그들이 몰려들 만한 '먹이'를 먼저 치우는 것이 순리이자, 이재명식 '실용주의'에 걸맞은 정무 감각이다. 대통령 스스로 갈등의 싹을 관리하지 못한다면 결과는 결국 처참한 지지율 청구서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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