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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식품기업의 이중고

최근 정부가 제당·제분업계의 가격 담합을 적발하면서, 그 불똥이 엉뚱하게도 가공식품 업계 전반으로 튀고 있다. 원재료 공급업체들의 담합이 깨져 밀가루와 설탕 가격이 내려갈 테니 당연히 라면과 과자, 빵 등 최종 소비재 가격도 인하해야 한다는 논리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식품 제조 현장의 팍팍한 현실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가공식품 원가에서 밀가루나 설탕 등 1차 원재료 단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지 않다. 일례로 일제히 가격 인하에 나선 라면만 하더라도 원가에서 밀가루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수준이라는 업계의 설명이다. 지금 식품업계의 숨통을 옥죄는 진짜 주범은 무섭게 치솟은 제반 비용과 거시 경제의 악재다. 공장을 돌리는 데 필수적인 산업용 전기요금과 가스비 등 광열비, 그리고 물류비가 가공식품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기에 고환율이라는 악재까지 덮쳤다. 국제 곡물 가격이 소폭 내렸어도 높은 환율이 그 하락분을 고스란히 상쇄해 버리기 때문이다. 덩치가 큰 에너지 가격과 고정비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판가 인하 여력은 사실상 쥐어짜기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식품기업들은 억울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들은 원재료 담합의 직접적인 피해자로서 그간 부풀려진 원료를 울며 겨자 먹기로 사들여야 했고, 이제는 고환율과 치솟는 원가 압박을 홀로 감내하며 버티고 있다. 억울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몰려 정부와 여론의 매를 맞고 있는 셈이다. 고물가에 신음하는 소비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분명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그러나 맹목적인 가격 통제는 단기적인 진통제일 뿐, 결국 산업 생태계의 위축과 제품 품질 저하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당장의 원가 맞추기에 급급하다 보면 미래 성장 동력인 신제품 연구개발(R&D)이나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투자 여력마저 쪼그라들게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속 가능한 물가 안정을 원한다면, 기업에게 일방적인 '협조'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원가 부담 완화책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환리스크 방어를 위한 금융 지원이나 산업용 에너지 요금 부담 완화, 물류비 보조 등 피부에 와닿는 정책적 대안이 선행될 때 비로소 물가 안정이라는 목표도 설득력을 얻고 기업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이슈&인사이트] 가계부채 부실과 소비 부진 초래하는 은행의 가산금리 인상

최근 국내 은행들은 가계대출 공급규제에 대응해 가산금리를 인상하며 대출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는 가계의 이자 부담을 폭증시켜 은행 건전성과 경제 활력을 동시에 위협하는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당국의 적극적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2025년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연 4.35%로, 11월 대비 0.03%포인트 상승하며 3개월 연속 인상되었다. 올해 들어서도 금리 인상 기조는 지속되고 있다. 1월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4.50%로 4개월 연속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가 2.5%로 계속 동결되고 있음에도, 은행권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지속 인상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이 가계 금리를 인상하는 이유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와 관련이 있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관리와 3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수도권 주담대 스트레스 가산금리가 1.2%에서 1.5%로 상향되며 대출 한도가 축소됐고, 6·27 부동산 대책으로 하반기 가계대출 목표치가 50% 줄었다. 이로 인해 가계대출 총량 감소가 불가피해지자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올리거나, 우대금리를 축소하는 방안으로 이자이익을 보전하고 있다. 대출금리 인상은 가계 이자 부담을 급증시켜 은행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확인된다. 스페인의 금융경제학자인 Belen Salas는 2023년 연구를 통해 대출금리 상승을 통한 금융비용 증가가 차주의 상환 부담을 높여 무수익여신비율(NPL)을 상승시킨다고 보고했다. 세계 111개국 1,600여개 은행을 대상으로 한 해당 연구는 차주의 채무상환 부담 확대가 금융시스템의 신용위험 증가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가산금리 인상은 가계의 소비 위축도 가져온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연구보고서(2023)에 따르면 가계대출 금리 1%포인트 상승시 소비 0.49%의 감소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특히, 대출금리 상승 시 자영업자와 저연령층의 소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난다. 즉, 자영업자와 30대 이하 연령층의 가처분 소득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 내수부진 심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확인된다. 영국의 금융감독당국인 FCA는 금리 스트레스 테스트 제도(MCOB 11.6.18R : Mortgages and Home Finance: Conduct of Business Sourcebook, Chapter 11, Rule 6.18R)를 운영한다. 동 제도는 주택담보대출 시 은행으로 하여금 차주의 현재 소득으로 5년간 금리 3%포인트 상승 가정 시 상환 가능성을 검증하도록 한다. 이는 고금리 도래 시 연체 위험을 사전 차단하고, 은행의 임의적 가산금리 인상 여지를 없애는 효과가 있다. 영국의 스트레스 테스트 제도는 한국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처럼 대출 한도를 직접 제한하지 않고 차주의 상환 능력 중심으로 평가해 가산금리 경쟁을 억제한다. 국내에서 시행 중인 DSR은 현재+미래 스트레스 금리를 기준으로 대출 한도를 직접 제한해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올려 수요를 자율 조절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영국은 고정 스트레스 기준(기준금리+3%포인트)으로 모든 은행이 동일 조건에서 상환 능력을 검증한다. 이로써 영국의 경우 국내 은행처럼 은행별 가산금리 차별화가 어려워 가산금리 경쟁을 유발하지 않는다. 국내 은행들은 DSR 규제에 맞서 대출 한도를 줄이는 명분으로 가산금리를 올린다는 점이 문제인데, 영국은 차주의 월 소득으로 특정 수준의 고금리도 버틸 수 있는가를 먼저 확인한다. 영국의 경우 대출 한도를 직접 제한하지 않아 영국의 은행은 차주가 고금리에도 상환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가산금리 경쟁으로 규제를 우회할 이유가 없다. 결국, 한국은 대출 총량 제한으로 은행이 가격(가산금리)을 올려 수요를 조절하지만, 영국은 차주의 체력 테스트를 토대로 가산금리 인상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영국 FCA 정책의 핵심 효과는 예측 가능한 스트레스 금리 기준으로 은행의 임의적 가산금리 인상 여지를 없애는 데 있다. 국내 은행의 가산금리 인상은 기준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가계대출 금리를 끌어올리며 은행의 건전성 악화와 소비 위축을 유발하고 있다. 영국 FCA의 스트레스 테스트는 은행의 임의적 가산금리 경쟁을 원천 차단하는 등 한국의 총량규제 방식과 달리 차주의 상환능력을 평가한다. 결론적으로 금융당국은 획일적 총량규제를 완화하고, 영국식 차주별 금리 스트레스 테스트 제도 도입을 검토함으로써, 은행의 가산금리 인상을 억제해야 한다. ekn@ekn.co.kr

[EE칼럼] 에너지 위기에서 원전 가동률 높이기

미국의 이란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다. 세계 원유 수송량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기 때문에, 봉쇄가 단행되면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물류비·물가·금융시장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 원유뿐이 아니다. 천연가스(LNG) 공급에 병목을 만들 우려도 있다. 특히 LNG는 파이프라인 우회가 거의 불가능해 선박 운항이 멈추면 공급이 즉각적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고, 이들 원유가 대부분 호르무즈를 거쳐 들어오기 때문에 영향이 크다. 우리나라의 석유비축량은 약 200일 분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소비량을 감안하면 약 2개월 분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있다. LNG는 45일 그리고 석탄은 15일 분 정도이다. 반면 원자력발전을 위한 우라늄은 3년 분 정도가 비축되고 있다. 당장의 경제상황은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정도에 따라서 민감하게 바뀔 것이다. 에너지 당국도 호르무즈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것은 대응이고 정책은 아니다. 에너지 정책에서는 이미 이런 상황이 고려되었어야 한다. 에너지정책을 수립하는 목적이 이러한 급변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0여년의 우리 에너지정책은 LNG를 지속적으로 늘렸다. 민간발전사 우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망의 안정화 등은 결국 LNG 발전량의 증가로 이어졌다. 온실가스 간접배출분을 포함하면 석탄발전과 LNG발전은 비슷한 수준임에도 석탄발전을 퇴출시키고 LNG발전을 늘린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였다. 탈원전 정부에서 원전과 석탄발전을 줄인 것도 재생에너지보다는 LNG 발전소 증가로 이어졌다. 천연가스 공급의 취약성 그리고 액화천연가스의 시장규모가 작기 때문에 가격의 폭등과 폭락이 빈번하다는 사실은 당연히 에너지 정책에 반영되었어야 할 것들이다. 지금 제시되고 있은 대응책은 석탄발전량과 원자력발전량을 늘리는 것이다. 석탄발전은 석탄발전량 80% 상한제를 해제하면 늘일 수 있다. 그런데 원자력발전량을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법률과 규제가 허락하는 최대치로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자력발전량을 더 늘리는 것이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원전가동률은 80% 수준이지만 더 오래된 원전을 운영하는 미국의 가동률은 90%가 넘는다. 원전 1호기당 불시정지횟수 등의 안전운전을 확인할 수 있는 간접적인 지표들은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더 안전하게 운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동률이 낮은 것은 규제의 문제이다. 규제의 문제는 규제기관만의 문제는 아니다. 규제는 사업자와 규제기관의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 규제기관이 강하면 규제의 수준은 높아진다. 더 안전해진다고 볼 수 있다. 사업자가 강하면 규제의 수준이 낮아 지지만 경제성은 더 좋아진다. 이 양자의 팽팽한 밀고 당김이 당사자에게는 피곤한 일이지만 국가적으로는 최적의 안전성과 최고의 경제성을 얻게 해주는 것이다. 사람은 통제 본능이 있다. 즉 감독자는 피감기관을 점점 더 감독하고 통제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통제의 욕구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 검토하여야 한다. 30년쯤 전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원자력발전사업자인 당시 한국전력이 구매하는 핵연료에 대해 검사하고 검사필증을 부여하였다. 문제가 있는 핵연료를 구매하면 운전상 문제가 발생하므로 이는 어련히 사업자인 한국전력이 인수검사의 차원에서 검사할 것이었다. 그러나 규제담당자는 한사코 해당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후 검사필증을 부여했던 핵연료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규제를 폐지했다. 규제를 신설하거나 폐지하는 과정이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해당 규제자의 밥줄 또는 다른 전문성의 부재에 의해서 결정될 필요는 없다. 원자력발전소 정기점검중 규제기관의 입회가 필요한 시점에서 규제자가 빨리 입회를 하거나 정기검사를 마치고 재가동 승인을 하는 행정적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으로 안전성을 훼손하지 않고 가동률을 높일 방안이 있을 것이다. 계속운전 심사 때문에 멈춰있는 원전이 있다면 심사를 가속할 방안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기술적인 규제는 그대로 두더라도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는 것 등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또 미국은 어떻게 하길래 가동률이 90%가 넘는지를 보고 우리가 그렇게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국가적으로 원자력발전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다면 원자력계는 이에 부응하여야 한다. 정범진

[기자의 눈] 빅파마 투자 몰리는 한국, 영국을 반면교사 삼아야

모처럼 국내 바이오벤처 생태계에 활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빅파마들의 조단위 투자금이 한 달 새 집중되면서다. 이재명 대통령 주도 하에 '바이오 5대 강국' 도약을 추진하는 한국으로서는 반가울 따름이다. 이 투자금이 바이오 강국 역군이 될 우리 바이오텍을 대상으로 한 오픈 이노베이션 생태계 구축에 쓰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선 유한양행-오스코텍의 '렉라자'가, 멀리선 중국이 오픈 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을 증명하고 있다. 렉라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롤 모델'로 우뚝 섰으며 중국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미국의 아성을 위협할 바이오 패권국 도약의 원동력이 됐다. 우리 바이오텍 기술력에 글로벌 빅파마들의 추진력과 노하우가 접목된다면 '바이오 강국'이라는 장밋빛 미래는 공염불로 치부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달 일라이릴리와 로슈로부터의 국내 오픈 이노베이션 투자 유치는 의미가 무척 크다. 이쯤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례가 있다. 빅파마들의 종전 투자처 중 한 곳인 영국이다. 당초 영국에 6억달러(약 9000억원)를 투자할 예정이었던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해 돌연 투자 철회를 결정했다. 같은 해 일라이릴리와 머크(MSD)의 투자 계획도 중단됐다. 이 같은 결정은 미국의 최혜국(MFN) 약가 압박, 온쇼어링 정책을 비롯한 통상 압력 등 다양한 대외 변수가 원인으로 거론되지만, 핵심은 영국 정부의 '똥 볼'이었다. 앞서 영국 정부는 지난해 브랜드 의약품에 대한 약가 환급률을 15.5%에서 23.5~35.6%로 대폭 상향키로 결정해 현지 업계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영국은 의약품 매출이 특정 수준에 도달하면 제약사가 수익의 일부를 환급해야 한다. 예컨데 제약사가 1000만원 수익을 올렸을 때 155만원을 뱉어내던 기존 제도를 최대 356만원까지 토해내도록 고쳤으니, 모험자본이 이를 두고 볼리 만무했다는 설명이다. 결국 영국은 지난해 말 약가환급 비율을 다시 15%로 인하했으나 빅파마들은 이미 미국과 중국으로 떠난 뒤였다. 바이오제약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규정한 우리 정부는 범정부 차원의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를 꾸리고 산업 육성 로드맵을 마련 중이다. 올해 1분기 중 발표를 앞둔 이 로드맵은 업계의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영국이 차 놓은 똥 볼을 좇아서는 안 될 일이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이슈&인사이트] 다문화가정 장애아동 교육, 통합적 지원 체계 구축이 시급

우리는 급속도로 진전되는 세계화로 다양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결혼과 취업, 그리고 교육 등의 다양한 이유로 외국인의 국내 이주가 활발해지면서 점점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2022년 외국인 유학생 통계」에 의하면 2022년 기준 유학생 수는 166,892명으로 전년 대비 14.6% 증가하였고, 「2024 외국인 근로자 현황」에 따르면 일반 고용허가제(E-9) 외국인 근로자 수는 2024년 기준 225,307명으로 전년 대비 20% 증가하였다. 그리고 「2022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다문화 혼인(17,428건)은 전년 대비 25.1%(3,502건) 증가하였다. 이에따라 다문화 가구는 39.9만 가구, 다문화 가구원 수는 115만 명으로 매해 증가하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적 가치와 언어, 그리고 생활 방식이 공존하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다문화 가구에서 주목할 것은 점점 늘어나는 장애 아동의 수다. 다문화 가구의 등록 장애인이 있는 비율은 2021년 기준 7.3%(약 25,269명)로 2018년보다 5.8% 증가하였다. 다문화가정에서 장애아동을 양육하는 부모들은 언어적·문화적 장벽, 사회적 편견,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장애 아동을 키우는 것은 양육 부담과 스트레스가 과중하다. 즉, 이들은 아동 양육에 대해 의사소통 장애와 양육 문화에 대한 부적응 등 많은 문화적 장벽을 느끼고 있다. 특히 의사소통 장애로 인해 소극적인 양육 활동이 아동의 학습에 도움을 주지못하게 되어 아동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낀다. 그뿐만 아니라 본인의 능숙하지 못한 학습 지원으로 자녀의 지적 성장과 언어 발달에 장애를 주는 것, 그리고 이에 따라 학습이 뒤처지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또한 그들은 자녀가 학교에서 또래와의 다툼, 외모로 인한 놀림과 같은 사회적 차별로 인해 더 위축되는 것을 본다. 다문화가정의 장애 학생은 장애 특성으로 인해 학교생활 외의 환경을 접하는 데 제한이 있고, 학교생활에서도 다문화가정의 일반 가정의 장애 학생보다 더 많은 문제를 경험한다. 「2020 교육 통계 분석 자료」에 의하면 장애가 있는 아동이 있는 가정은 교육, 의료 등에 있어 이중적 어려움과 더 심각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과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나 장애 아동 또는 장애 위험 아동을 양육하는 다문화 가정의 경우 다문화 가족 지원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문화장애 아동을 양육하는 가정을 위한 지원책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다문화 가정 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은 자녀의 장애로 인한 교육적 지원 요구뿐 아니라 언어적 장벽, 문화적 차이, 교육 정보 부족 등 다양한 어려움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다. 특히 학교와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언어적 한계와 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은 자녀의 교육 참여와 지원을 제한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므로 다문화 가정 장애아동의 통합교육 지원이 단순한 특수교육 지원을 넘어 문화적·사회적 맥락을 고려한 통합적 지원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둘째, 다문화 가정 장애 아동의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학교와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가 협력하는 통합적 지원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즉 학교 차원에서는 다문화 감수성을 고려한 특수교육 지원과 부모 상담 체계를 강화할 필요하고, 지역사회와 사회복지 기관은 부모 교육 프로그램, 언어 지원 서비스, 가족 상담 등을 제공하여 부모가 자녀의 교육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셋째, 다문화 가정 장애 아동의 교육 지원은 단순한 교육 문제를 넘어 포용적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복지 정책의 중요한 과제임이 확인되었다. 다문화 가정 장애 아동과 그 가족이 경험하는 어려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지원 부족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 따라서 향후 정책적으로는 다문화 가족 지원 정책과 장애인 복지 정책을 연계한 통합적 서비스 체계를 마련하고, 학교와 지역사회가 협력하는 다학문적 지원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언어 지원을 포함한 부모 교육 프로그램, 학교와 연계한 학습 지원 서비스, 심리·정서 상담, 지역사회 돌봄 체계 등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 실질적인 도움이 가능하다. 이러한 노력이 이루어질 때 다문화 가정 장애 아동은 교육과 사회 참여의 기회를 더욱 공평하게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EE칼럼] 신규 원전 부지는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지난 1월 21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원자력 발전이 안전하다는 응답률이 60.1%, 60.5%, 기존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의 신규원전계획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응답은 69.6%, 61.9%라는 두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같은 날 이재명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원전 정책을 뒤집으면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며 신규원전 건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마침내 1월 26일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제11차 전기본의 신규원전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한국수력원자력은 1월 30일 신규원전 2기와 소형원전 1기의 부지 확보를 위한 유치공모에 착수하여, 희망하는 지자체는 지방의회의 동의를 받아 3월 30일까지 신청하도록 공지하였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않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고 하였다. 풍경 하나. 2003년 7월 22일 전북 부안군 수협 앞에서는 수천 명의 주민들이 모여 '핵폐기장 반대 부안군민 궐기대회'를 열었다. 단상에는 삭발을 한 여성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1990년 안면도, 1994년 덕적도에 핵폐기장을 건설하려다 실패한 정부는 2003년 울진, 부안 등 7개 지역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 핵폐기장 부지선정 작업에 착수했다. 7월 2일 부안군의회는 유치신청을 부결시켰으나 7월 14일 부안군수가 산자부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7월 24일 산자부는 부안군 위도를 최종후보지로 발표하였다. 이에 주민들은 초중학생 등교 거부와 주민결의대회, 차량시위, 해상시위, 삼보일배 등 반대 운동을 확대해나갔다. 정부의 강행과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는 주민투표를 둘러싸고 절정에 달했다. 정부는 주민투표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선관위가 선거 관리를 거부하여 투표는 민간의 주관으로 시행되었다. 2004년 2월 14일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91%의 반대가 확인되었다. 새로운 부지를 물색하던 정부는 2005년에 '3000억 + α'라는 지역지원 대책을 내세워 포항, 영덕, 군산 세 곳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한 뒤 89.5%로 찬성률이 가장 높은 경주를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으로 결정했다. 풍경 2. 2014년 8월 20일 김양호 삼척시장은 원전건설 신청 철회를 위한 주민투표 동의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그해 6월 무소속으로 당선된 김시장의 공약이었다. 전임시장은 '원전건설은 국가사무로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라는 안전행정부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주민투표를 반대하다 그해 선거에서 현 시장에게 패했다. 삼척시민들은 삼척핵발전소 유치백지화 투쟁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반대 활동에 돌입했다. 원전 유치를 추진해온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2012년 10월 31일 실시되었으나 정족수 미달로 개표도 하지 못하였다. 삼척시의 주민투표 요구는 2014년 9월 1일 안행부의 '국가사무' 유권해석을 내세운 삼척시 선관위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삼척시는 2012년 10월 석탄화력발전소 유치를 추진하던 경남 남해군이 주민투표를 실시해 사업을 백지화한 사례를 들어 반박했다. 결국 민간기구들이 중심이 되어 주민투표관리위원회를 구성하여 10월 9일 주민투표에 들어갔다. 투표에는 67.9%의 유권자가 참석하여 84.9%가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주민투표가 법적인 효력이 없다고 무시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원전 건설 추진은 어려워졌고, 5년 뒤인 2019년 5월 31일이 되어서야 산자부가 전원개발사업추진위원회에서 삼척시 대진원전 예정구역 지정 철회를 의결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불과 21세기 20년 동안 이런 전철을 겪고도 이번에 한수원이 공지한 후보부지 유치 공모를 보면 자치단체장이 해당 지방의회의 동의서를 첨부하여 신청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어떤 지원 대책을 내세워 주민들을 달래려 할지는 모르겠으나 원전 건설은 주민들의 생명 및 생활과 직결된 중요한 사항이므로 주민투표를 통해 의견을 묻는 것이 타당하다. 설령 신청은 현재 공지한 대로 받더라도 후보지 결정 과정에서는 주민투표를 거쳐야 현지의 갈등과 대립을 줄이고 정책 수행 과정도 원활해질 것이다. 정부가 여론조사를 내세워 원전 건설을 추진하려면 다음 질문이 들어갔어야 마땅했다. “귀하가 사는 지역에 원전을 건설한다면 찬성하시겠습니까?" 신동한

[데스크 칼럼] 과천 경마공원 이전,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1.29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불거진 경기 과천 서울경마공원 이전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지난달 7일 과천경마공원 이전 반대 시민궐기대회를 열었던 과천 시민들은 한 달만인 지난 7일 다시 궐기대회를 갖고 삭발식 등 더욱 격화된 정부 규탄 목소리를 냈다. 지난달 26일 우여곡절 끝에 취임한 한국마사회 우희종 신임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충분한 협의와 구체적인 로드맵 수립을 강조하고 경마공원 이전에 대응하기 위한 TF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TF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마사회 노조는 우 회장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판하며 여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경마업계 종사자들은 경주마 생산농가부터 기수, 마주까지 유관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정부의 이전 계획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 와중에 경기도 내 10여개 지자체는 경마공원을 유치하기 위해 앞다퉈 경쟁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장은 마사회장을 찾아와 경마공원 유치를 위한 '당근책'을 경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경마장 이전과 유치를 추진하는 정부와 지자체들이 과연 경마산업에 대한 이해를 갖고 추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일부 경기 북부권 지자체는 수십년간 안보 희생에 대한 보상으로 경마장 유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미군 반환공여지를 활용해 경마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재 과천경마공원에는 1400두 가량의 경주마가 살고 있으며, 경주마들은 매일 새벽 야외에서 훈련을 한다. 가뜩이나 열악한 국내 경마 인프라 속에서 경기 북부지역의 겨울 추위는 경주마 훈련과 경기력 향상에 치명적이라는게 경마업계의 평가다. 재정경제부와 국토교통부가 주도한 1.29 부동산대책은 2030년 이전에 과천경마공원을 폐쇄할 것을 예정하고 있다. 이전 부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5년 내에 옮기라는 것으로, 과연 정부가 2만여 민간 종사자의 생계 터전인 과천경마공원의 이전을 골프장이나 공공기관 이전과 같은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경마업계에 따르면 경마장 이전에는 부지 공모와 선정, 예비타당성 조사와 정부승인, 기본계획 설계와 각종 인허가, 시공업체 선정과 건설 등 필요한 절차만 10년 이상 걸린다. 경마공원 이전이 경주마 경기력, 경마 고객 증감, 승마 등 말산업 전체에 미칠 파급효과도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재경부나 국토부는 물론 마사회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도 이번 경마공원 이전과 관련해 실무 기관인 마사회측에 의견을 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정부와 일부 지자체가 경마산업을 1~3차산업이 결합된 하나의 산업으로 바라보기보다 단순 사행산업으로만 바라본다면 경마·승마산업의 레저화·선진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만일 과천 경마공원 폐쇄 후 신규 경마공원 개장까지 공백기간이 생긴다면 과천경마공원 의존도가 높은 국내 말산업·승마산업은 산업기반 붕괴에 직면하고, 합법 경마의 위축은 불법 경마의 성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때였던 지난 2020~2021년 실제 현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제라도 정부는 과천경마공원 이전 계획이 경마산업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 졸속으로 이뤄진 결정임을 인정하고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할 것이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기자의 눈] 홈플러스, 재기의 마지막 기회다

한때 대형마트 업계 2위라는 명성을 누렸던 홈플러스가 이도 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을 오는 5월까지 2개월 늘리며 한숨 돌렸지만 여전히 경영 정상화는 안갯속이다. 유동성 확보와 채권단 설득, 슈퍼마켓 사업부(SSM·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회생 절차가 1년을 넘어가면서 재도약의 희망도 꺼져가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회생은 기업에 재무 상태를 회복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장치지만, 장기화될수록 정상화 동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세금마저 밀릴 만큼 악화된 재정 상황은 본업 경쟁력 부진으로 이어졌다. 납품 대금조차 제때 지급하지 못해 협력사가 공급을 중단하면서 상품 재고가 크게 줄었다. 자체 브랜드(PB) 상품으로 간신히 매대를 채워도 결국 상품 다양성이 떨어져 손님 발길이 줄어든 실정이다. 임금 체불뿐 아니라 매출 감소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 리스크 등 직원들이 체감하는 누적 피로도도 만만치 않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긴급운영자금(DIP)으로 1000억원을 출연했지만 어디까지나 유동성 압박을 잠시 모면하는 수준이다. 연체된 직원 급여 등 일부 채무는 변제하더라도 매장 운영비 등 장기적인 운영을 위해선 이보다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홈플러스가 제출한 구조혁신형 회생계획안대로라면 총 3000억원의 자금이 요구된다. 대표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과 공감대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나머지 2000억원 자금 조달도 막막한 상황이다. 중장기적인 현금창출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결국 재무 부담을 크게 낮출 방안으로 일부 적자 점포 매각과 함께, 알짜 자산인 SSM 분리 매각으로 시선이 쏠린다. 현재 홈플러스는 여러 원매자와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제 거래 성사로 연결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구조혁신 취지에서 일반노조 동의는 구했지만, 마트노조와 노사 간 갈등은 아직 봉합하지 못한 상황이다. 홈플러스 회생 여부는 현장 노동자·입점업체뿐 아니라 업계 전반에서도 주목하는 사안이다. 다행히 2개월의 골든타임은 벌었지만 길지 않은 시간이다. 여태껏 홈플러스와 MBK 모두 강력한 회생 의지를 밝힌 만큼 약속을 지켜야 할 때다. 이제는 급한 불끄기 수준을 넘어 뾰족한 묘수를 내놓아야 한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EE칼럼] 호르무즈 위기와 에너지전환의 새로운 조건

중동 정세가 긴장되면서 국제 에너지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공급망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 통로 가운데 하나로, 이 해협을 통해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0%, 해상 원유 거래량의 약 25%가 이동한다. 또한 세계 LNG 교역량의 약 20%가 이 해협을 지난다. 좁은 해협 하나가 원유와 천연가스를 동시에 연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르무즈는 세계 최대 에너지 요충지이자 대표적인 병목지점(chokepoint)으로 평가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국제유가 상승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과거에도 국제 원유 가격은 여러 차례 급등했다. 1970년대의 석유위기는 공급 충격이 중심이었다. 산유국의 실제 공급 감소폭은 제한적이었지만 당시 국제 사회는 석유 의존도가 매우 높았고 대체 수단도 충분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국제유가는 단기간에 네 배 가까이 상승했다. 당시 위기의 핵심은 공급량 자체보다 공급 감소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다. 반면 2008년 국제유가 급등은 다른 구조였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원유 수요가 빠르게 증가했고, 여기에 금융시장 자금이 유입되면서 국제유가는 배럴당 147달러까지 상승했다. 공급 감소보다 수요 확대와 금융 요인이 가격 상승을 주도한 사례였다. 즉 1970년대의 유가 상승은 공급 중심 충격이었다면, 2008년은 수요 압력이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은 이 두 사례와 모두 다르다. 공급 차질 가능성과 함께 공급망 전체의 불확실성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원유뿐 아니라 LNG 가격에도 영향을 준다. 중동산 LNG는 아시아 시장의 핵심 공급원이며, 이 경로가 흔들리면 한국과 일본, 중국 같은 LNG 수입국의 전력 생산 비용도 직접 영향을 받는다. 동시에 선박 보험료 상승, 우회 항로 확대, 운임 증가가 발생하면 석유화학 원료와 산업용 자재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움직인다. 즉 현재의 에너지위기는 특정 연료의 가격 문제가 아니라 원유, LNG, 해상운송, 전력 생산 비용, 산업 원료 가격이 함께 연결되는 복합적 에너지 시스템 충격이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외부 충격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는다. 또한 우리 산업의 핵심인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자동차와 같은 제조업은 에너지 가격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같은 국제 연료 가격 상승이라도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는 생산비 부담이 더 크게 나타난다. 국제 연료가격 상승이 산업 경쟁력 문제로 직결된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를 단기적인 공급 충격으로만 볼 수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전환이라는 장기적 과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다. 최근 국제 에너지 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에너지복원력(energy resilience)이다. 이는 단순히 연료를 더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공급망 충격과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에너지 시스템 전체가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World Energy Outlook」에서 에너지 안보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 에너지 시스템의 복원력이 에너지정책의 핵심 조건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복원력 있는 전환(resilient transition)이라는 개념도 중요해지고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장기 목표는 유지하되, 외부 충격이 반복되더라도 전환 자체가 중단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저장장치, 송전망, 전략비축, 수입선 다변화가 함께 논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반복되는 공급 충격 자체가 에너지전환의 필요성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수입 화석연료 의존 구조는 외부 충격이 반복될수록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반대로 국내에서 생산 가능한 전원과 전력망 유연성은 장기적인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Reuters 등 주요 국제 언론은 이번 호르무즈 해협 위기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냈으며, 에너지전환은 더욱 견고하게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수입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 비중이 큰 경제에서는 공급 안정, 가격 관리, 산업 경쟁력, 탄소 감축이 동시에 고려될 수밖에 없다. 단기적 대응은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전환이라는 방향을 유지하면서 시스템의 복원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위기가 의미하는 것은 더 많은 연료를 확보하는 일에 머무르지 않고, 외부 충격 속에서도 전환의 방향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더 정교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이번 위기가 시사하는 에너지전환의 새로운 조건이다. ekn@ekn.kr

[기자의 눈] 가상자산 거래소 공공성, 지분 규제가 답일까

가상자산 거래소를 둘러싼 '지분 규제' 논쟁이 격렬하다. 금융당국은 거래소의 대주주 지분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거래소를 단순한 민간 플랫폼이 아니라 금융시장 인프라에 가까운 공공적 성격의 기관으로 보고 지배구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문제의식 자체에는 충분히 공감할 만한 부분이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단순히 매매를 중개하는 플랫폼이 아니다. 어떤 코인을 상장할지 결정하고, 거래를 체결하며, 투자자 자산을 보관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사실상 시장의 '문지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상장 심사나 내부 통제가 부실하면 투자자 피해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성 논의가 나오는 것도 자연스럽다. 문제는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법이 '지분 규제'여야 하느냐다. 현재 논의되는 안은 대주주 지분을 20% 안팎으로 제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지분율을 낮춘다고 해서 거래소의 공공성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책임 있는 지배구조가 약해질 가능성도 있다. 창업주나 최대 주주의 지분이 분산되면 경영책임이 희석되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도 대주주 지분율을 직접 규제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이나 유럽은 대주주의 '지분 규모'보다 '적격성'을 중심으로 규제한다. 자금 출처가 투명한지, 법 위반 이력이 없는지, 내부 통제를 제대로 할 수 있는지 등을 따져 대주주를 심사하는 방이다. 공공성을 확보하면서도 시장 자율성을 지나치게 훼손하지 않기 위한 균형 장치다. 가상자산 시장은 여전히 빠르게 진화하는 산업이다.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에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규제 수단이 반드시 지분 제한일 필요는 없다. 사고 발생시 책임소재를 명확히 가리거나 내부 통제와 자산 보관 규제를 정교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공공성을 확보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책임성과 혁신을 동시에 살리는 균형이다. 지분율이라는 단일한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무엇이 진정으로 거래소의 공공성을 높이는 길인지 다시 한번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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