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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탄소를 얼마나 줄일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

3월 28일, 2050년 탄소중립 감축경로와 탄소중립기본법의 입법 방향을 논의하는 첫 토론회가 열린다. 헌법재판소가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경로가 부재해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지 19개월 만이다. 그 사이 정부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61% 감축으로 상향했다. 이제 남은 질문은 단순하다.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어떻게 줄일 것인가"다. 감축 목표는 숫자에 머물지 않는다.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난방비로 직결되고, 기업에는 생산비 부담으로 이어진다. 특히 에너지 비용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일수록 동일한 요금 인상에도 훨씬 큰 충격을 받는다. 탄소중립은 환경 정책이면서 동시에 분배와 생활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탄소중립은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은 국가 경제뿐 아니라 포항·광양·여수·서산 같은 지역경제와 일자리의 기반이다. 그러나 공정 전환과 설비 교체, 신기술 도입은 선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시간과 자금, 제도적 지원이 동시에 필요하다. 결국 감축의 본질은 '숫자'가 아니라 '속도와 수단'이다. 같은 목표라도 어떤 속도로 추진하느냐, 이를 뒷받침할 기술과 인프라가 준비돼 있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수소환원제철, 전기가열로, 탄소포집·저장(CCUS) 등 주요 전환 기술은 아직 상용화까지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서 비용 부담만 앞서면 기업은 투자 확대보다 투자 유보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단기적으로는 생활비와 생산비 상승, 중장기적으로는 투자 지연과 산업 경쟁력 약화, 지역경제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목표와 수단이 함께 설계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전력망 확충, 저장장치, 무탄소 전력원, 유연성 자원, 기술 공급망, 투자 지원과 점검 체계가 동시에 작동할 때 감축은 현실이 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에너지 전환의 성패가 발전원 확대가 아니라 전력망·저장·유연성·공급망·인력 등 '시스템 구축'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미래세대를 위해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그러나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이 단순히 더 높은 감축률을 법에 적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행되지 않는 목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기반 없이 추진되는 감축은 산업을 약화시키고 전환을 지연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다음 세대는 기후위기뿐 아니라 줄어든 일자리, 약해진 산업 기반, 불안정한 생활 여건까지 떠안게 된다. 그래서 지금 시민대표단과 국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더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탄소를 줄이면서도 미래세대의 일자리와 생활 기반을 함께 지킬 수 있는가다. 국회의 역할도 분명하다. 2031년 이후 감축경로를 법에 채우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이를 실현할 수단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전력망, 무탄소 전력, 산업 전환 투자, 지원 제도, 이행 점검 체계가 함께 움직일 때 법은 비로소 현실을 바꾼다. 지구를 지키는 길과 아이들의 삶을 지키는 길은 따로 있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높은 목표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전환의 설계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이슈&인사이트] 유가 상승, 우리가 놓친 또 다른 전선: 신용경색 우려와 비료값 상승

이란과 미국의 전쟁이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을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의 근심거리는 유가 상승이다. 유가의 상승으로 당장 각 국은 원유의 원활한 확보가 최우선 과제지만 고유가가 지속된다면 걱정해야 할 잔짜 문제는 다음과 같을 거다. 첫째, 인플레이션 우려로 인해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과 그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신용경색, 둘째, 비료 가격 상승으로 인한 에그플레이션이다. 금리 인상에 대한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호주는 금리를 올렸고 영란은행 마저 금리 인상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고 일본도 4월 기준금리 인상을 검토하고 있으며 ECB도 4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높게 보고있는 상황이다. 유럽과 일본이 성장 둔화에서 인플레 걱정으로 정책의 시각이 바뀌어 가고 있다. 금리 인상 우려로 시중의 채권 시장은 벌써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호주의 경우 10년 금리가 5%를 넘어섰고 미국도 10년 금리가 4.4%를 넘보고 있다. 미국은 가뜩이나 재정 부담이 큰데 금리가 더 올라간다면 향후 전쟁을 위한 추경 예산을 밀어 부치기가 수월치는 않을 거다. 금리 상승으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최근에 회자되는 사모펀드다. 고금리 자체도 문제지만 금리 상승으로 시중의 유동성이 줄어들고 안전 자산은 이자를 많이 주는 곳을 향할 것이니 시장의 약한 고리인 사모펀드 투자자는 투자금 회수에 나설 거다. 금리의 상승이 비유동성 자산, 특히 최근에 문제가 나타나는 사모 금융 자산을 옥죄면서 신용경색이 나타나고, 이는 기존 금융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높다. 전쟁 중인데도 safe haven이라고 불리는 금과 은의 가격이 하락하는 이유도 이처럼 투자자들이 현금 확보에 나서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워튼 스쿨의 엘 에리언 교수와 BofA의 전략가 마이클 하트넷이다. 엘 에리언은 사모신용 위험이 2008년 금융 위기 직전과 유사한 평행이론이라 하면서 미 금융주가 사모신용 우려로 1분기 11% 급락, 이는 2020년 이후 최악이라고 말하고 있다. BofA의 마이클 하트넷 또한 유가 급등과 사모신용 부문 대출펀드의 환매 사태 우려가 마치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과 닮아간다고 경고하고 있다. 둘 다 사모 신용의 위기를 보면서 2008년 서브프람인 사태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두 번째, 석유 추출물인 유황이 비료가 되는 인산염의 재료이고 이 유황의 50%를 중동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의 장기 봉쇄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비료 연구소(The Fertilizer Institute)의 말을 인용하면, “중동 지역은 세 가지 주요 인산염 제품의 글로벌 거래량 중 약 5분의 1만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유황(sulfur)의 세계 공급량 중 거의 절반이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취약한 중동 국가들에서 비롯되고 이 유황은 인산염 비료 가공에 사용되는 황산으로 전환된다." 상품 가격 플랫폼 ICIS에서 황산 시장을 담당하는 앤디 헴필(Andy Hemphill)은, “생산자들이 기존의 유황 및 황산 비축분을 소진한 이후에 갈등이 더 오래 지속되면 공급망을 따라 “기하급수적"인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현 사회는 모든 상품에 석유가 안 들어가는 제품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유가의 상승이 금리인상과 공산품 물가의 상승(inflation)만을 야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먹어야 하는 식품 가격의 상승 즉, 에그플레이션(Agfltion)까지 올 수 있기에 전쟁이 조속히 끝나야 한다. 우리가 단지 석유 가격과 공급에만 모든 신경을 쓰고 있지만 이로 인한 금리 인상, 신용경색, 그리고 식량 생산의 주요 요소인 비료값도 걱정해야 하는 이유다. ekn@ekn.kr

[EE칼럼] 히트펌프 확대의 조건: 어디까지 가능한가

정부는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 대를 보급해 약 518만 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도시가스 및 기름 보일러를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공기열 히트펌프의 재생에너지 인정, 설치비 최대 70% 보조, 전기요금 체계 개편, 청정열공급의무화 제도 등을 통해 보급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이다. 건물 부문 열에너지 탈탄소화를 위한 핵심 정책으로 평가된다. 히트펌프의 가장 큰 장점은 높은 효율이다. 동일한 에너지로 더 많은 열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에너지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난방 시장에서의 실제 경쟁력은 효율 자체보다 비용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현재 가스 난방의 열 기준 비용은 약 90원/kWh 수준이며, 히트펌프는 성능계수(COP) 2.5 기준 전기요금이 약 220원 이하일 때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 COP 3 수준에서는 약 260원대까지 가능하지만, 이는 이상적인 조건에 가까우며 실제 운전에서는 계절과 부하 조건에 따라 효율이 낮아질 수 있다. 가스와 전기요금이 동시에 변동하는 경우에도 경쟁력은 단순히 “동반 상승" 여부로 결정되지 않는다. 핵심은 상대적인 인상폭이다. 전기요금 상승폭이 더 클 경우 히트펌프의 경제성은 약화될 수 있으며, 이는 보급 속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히트펌프 확대는 전력 시스템 측면의 변화를 수반한다. 기존에 가스가 담당하던 열 수요가 전력으로 이동하면서 전력망 부담이 증가하고, 재생에너지 연계, 피크 부하 관리, 송배전망 투자 확대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이러한 비용은 전기요금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히트펌프 보급이 확대될수록 전기요금 상승 요인이 강화되고, 이는 다시 경제성과 수용성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형성된다. 시장에서는 이미 히트펌프가 자발적으로 확산되는 영역이 나타나고 있다. 공공시설, 상업시설, 농업시설 등 비주거용 건물에서는 설치 공간 확보가 용이하고 중앙 제어 운영이 가능해 효율적인 운전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정책적 지원이 제한적이더라도 경제성과 편의성에 기반한 자발적 도입이 확대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흐름은 정책 설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술이 경쟁력을 갖는 환경에서는 시장이 스스로 선택한다. 반면 정책이 시장 조건을 넘어 특정 기술의 확산을 강하게 유도할 경우, 보조금, 요금 조정, 인프라 투자와 같은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재정 부담과 함께 수용성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기존 주거 건물로의 확대는 별도의 고려가 필요하다. 국내 주거는 가스 및 지역난방 인프라가 이미 구축된 구조로, 히트펌프 전환 시 기존 인프라와 신규 설비가 병존하는 중복 투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인프라 활용 효율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관찰된다. 유럽은 히트펌프 보급을 빠르게 확대해 왔으나, 최근에는 전기요금 상승과 비용 부담을 반영해 보조금 조정, 정책 속도 조절, 기술중립 접근 강화 등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보급 확대 과정에서 드러난 현실적 제약을 정책에 반영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은 아직 보급 초기 단계에 있다. 따라서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전기요금, 전력망, 기존 인프라와 같은 변수들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특히 전기요금은 히트펌프 경제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로, 일정 수준 이상 상승할 경우 보급 확대는 자연스럽게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히트펌프는 모든 영역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범용 기술이라기보다, 일정한 조건에서 높은 효과를 보이는 기술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축 건물, 저온 난방 구조, 비주거용 시설에서는 경쟁력이 높지만, 기존 주거 건물 전반으로의 확대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히트펌프 보급 정책의 핵심은 단순한 확대가 아니라 적용 범위와 조건의 설정에 있다. 시장에서 이미 경쟁력이 확인된 영역을 중심으로 확산을 유도하고, 전기요금과 전력망, 기존 인프라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균형 있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ekn@ekn.kr

4월 위기설

사월이 되면 종종 인용되는 영시가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T.S 엘리엇의 '황무지'다. 이 시가 출간된 해는 1922년. 100년 넘는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잔인한 사월'은 여전히 현재성을 잃지 않았다. 특히 올해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으로 은유가 아니라 사실이 됐다. 미국과 이란은 파괴해서는 안 될 에너지 시설에도 폭격을 가하는 등 전선을 넓히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 군사적 공격을 5일간 유예하겠다고 했으나 현재로서는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는 지난달 28일 이란 공습 직후에도 이번 전쟁을 '짧은 여행(excursion)'에 비유하며 곧 끝날 것이라고 장담했으나 결국 빈말이 되고 말았다. 미국과 이란의 '자해극'에 가까운 파괴 탓에 글로벌 경제는 벼랑 끝에 몰렸다. 전 세계 원유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며 국제 유가는 급등락세를 반복하고 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갑작스러운 원유 공급 중단으로 세계 경제는 벌써부터 몸살을 앓고 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23일 호주에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이번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가 1970년대 두 차례 오일 쇼크와 2022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충격을 합쳐놓은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수입 원유의 70%가 중동산이고 대부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이번 전쟁으로 다른 어느 나라보다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두 달 정도는 비축유와 긴급 조달한 대체 원유로 버틴다지만 전쟁이 길어지면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직접 영향을 받는 석유와 화학 분야는 물론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등 주력 산업이 셧다운될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화장품과 라면 등 소비재 생산도 차질을 빚는다. 금융시장은 이미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주가는 급등락을 거듭하고 원-달러 환율도 정상 궤도를 이탈했다. 달러당 원화 가격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고유가와 고환율은 시차를 두고 고물가로 이어진다.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경기침체를 감수하고 금리를 올려야 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3고)'라는 유령이 다시 한국 경제를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전쟁이 끝나도 회복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풀린다고 해도 당장 원유 수급이 원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많은 에너지 시설이 파괴된 데다 중동 산유국이 생산량을 줄일 수 있다. 에너지 위기에 대비해 각국이 비축유를 다시 채우려는 수요까지 더해지면 에너지 가격의 고공 행진은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4월 위기설을 '설'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과 유류세 인하, 25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차량 5부제 같은 에너지 절약 캠페인 등 다각적인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대부분 응급 처방에 해당한다. 긴급한 상황인 만큼 시간이 걸리는 정공법보다 임기응변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정책도 공짜는 없는 법이다. 가격 통제나 세금 감면은 시장 왜곡과 재정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에너지 절약 캠페인이 원유 부족을 얼마나 해결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편성되는 추경의 활용 방안을 둘러싼 논란도 불 보듯 뻔하다. '4월 위기설'에 대해 정부는 비축유를 풀고 대체 물량을 확보했으니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안이한 태도는 '회색코뿔소'를 불러들일 수 있다. 경고 신호가 있고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는데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서 입는 치명상은 전적으로 정부 책임이다. 우리의 통제 범위 밖에 있는 대외 변수에 대해서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일 잘하는 정부'를 표방하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이를 증명할 절호의 기회다. 정책의 우선순위와 실효성, 부작용까지 꼼꼼하게 살펴 위기를 넘겨야 한다. '사월은 잔인한 달'의 다음 구절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다. 언제나 위기 속에는 기회가 있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EE칼럼] 배출권거래제 4기, 마켓풀(Market Pull) 정책에 달렸다

최근 수년간 톤당 1만 원 수준에서 횡보하던 탄소배출권 가격이 서서히 반등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고 그동안 일시적인 가격 상승은 있었으나, 최근의 움직임은 이전과 다른 내·외부적 요인에 기인한다. 우선 배출권거래제 4기(2026~2030년)가 시작되었고, 무엇보다 중동 분쟁 등을 계기로 에너지 안보 전략의 근본적인 변화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중동 분쟁은 일차적으로 에너지 수입선의 다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는 한시적인 대응일 뿐이며, 근본적으로는 에너지 수입 수요 자체를 줄이는 '일렉트로테크(Electrotech)' 육성이 필요하다. 일렉트로테크는 전력의 공급·연결·수요 전반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기술을 총칭한다. 공급 측면에서는 풍력·태양광·원자력 등 국산 무탄소 전원을 확대하고, 연결 측면에서는 초고압직류송전(HVDC)·분산전원·에너지저장장치(ESS)로 계통의 유연성을 높이며, 수요 측면에서는 전기차와 히트펌프 도입 등 '수요의 전기화'를 통해 에너지 소비 구조를 전환하는 것이다. 결국 일렉트로테크는 외부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무탄소 에너지 공급을 늘려 가격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일렉트로테크 전환을 이끄는 핵심 정책 수단이 바로 배출권거래제다. 배출권거래제 4기 기본계획상 발전 부문 유상할당 비율은 2030년 50%까지 단계적으로 상향된다. 이렇게 강화된 배출권거래제 부담 하에서 기업은 누가 등을 떠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저탄소 고효율의 에너지 신기술에 투자하고 설비 도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5%를 차지하는 고로(용광로) 철강 산업 역시 배출권거래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로 공정에서는 석탄을 코크스로 변환하고, 이를 이용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환원)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산업 부문은 4기를 맞아 과거 배출량 기준(GF)에서 시설 효율 기준(BM)으로 할당 방식이 전환되었는데, 이러한 BM 방식 도입으로 철강 업계는 무상할당 업종임에도 10% 이상의 유상할당에 준하는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철강 산업의 탄소 감축 방안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쇳물을 정련할 때 고철(스크랩) 투입 비중을 높이는 방법, 둘째, 코크스 대신 가스로 환원한 직접환원철(DRI)을 전기로에서 녹이는 방법, 셋째, 그린수소를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들이 원료 구입비는 물론 공정 내 전기 사용량이 급격하게 늘어 수익성을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방식을 도입하지 않으면 배출권 구매 비용으로 수익성이 저하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철강사의 영업이익률에는 원재료비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저탄소 원료인 DRI는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하는데, 쇳물 원가 대비 DRI 가격은 110~150%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 국내 철강사의 DRI 수입량을 보면 2022년 54.5만 톤으로 정점을 찍었으나 2025년에는 1천 톤 수준으로 99.8% 급감했다. 같은 기간 P사의 영업이익률 또한 2021년 16.7%에서 2025년 5% 내외로 하락했다. 배출권 가격이 낮은 상황에서 수익 상황이 악화하면 기업은 비싼 저탄소 원료부터 비중을 줄인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수치이다. 이러한 원가 격차를 극복하고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배출권거래제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배출권 가격은 기후변화가 우리의 삶에 지우는 외부효과(비용)를 제대로 반영해야만 하고, 나아가 감축 노력을 하는 기업은 실질적인 혜택을 보게 해야 한다. 특히 철강과 같은 고배출 산업이 불황을 맞아 신규 투자 여력이 떨어진 지금 같은 시기엔 기업이 배출권 가격과 저탄소 원료 가격 사이에서 저울질하게 두지 말고 저탄소 제품 생산과 판매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투자를 머뭇거리는 기업에게 적정한 인센티브를 제시해 저탄소 제품 시장을 육성(Market Pull)하고, 그 동력으로 저탄소 기술이 축적(Technology Push)되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올해 6월 'K-스틸법'이 시행되고, 상반기 중 녹색전환(GX) 지원을 위한 '전환금융'도 도입될 예정이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기업의 과감한 저탄소 투자를 유도한다면, 배출권 부담을 경감함과 동시에 대한민국 일렉트로테크의 경쟁력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ekn@ekn.kr

[기자의 눈] 잇따른 플랫폼 금융 전산사고…편리함 뒤 드러난 불안

플랫폼 기반 핀테크 기업과 인터넷전문은행에서 전산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네이버페이의 결제 장애에 이어 토스뱅크에서 엔화 환율이 절반 수준에서 거래되는 오류가 발생했으며, 카카오뱅크 역시 모바일 앱 접속 장애를 겪었다. 앞서 지난 2월 빗썸에서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가 발생한 후 불과 얼마되지 않아 전산 사고가 잇따르며, 국내 주요 플랫폼 기반 금융 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들 기업은 그동안 뛰어난 정보기술(IT) 기술력을 바탕으로 '플랫폼'이란 영토 위에서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오프라인 영업점을 방문하지 않고도 사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며 변화를 주도해 왔다. 간편결제, 송금, 환전 등 다양한 기능이 온라인에서 손쉽게 가능해지며 금융의 진입장벽도 크게 낮아졌다. 하지만 최근의 연이은 사고는 이런 '비대면'의 특수성이 지닌 취약점을 드러냈다. 전통적인 은행에서 디지털 장애가 발생하면 영업점을 이용해 일정 부분 대응이 가능하지만, 플랫폼 기업은 시스템이 복귀되기 전까지 이용자가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한 곳에 오류가 생기면 유기적으로 연결된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어려워져 이용자의 불편도 커진다. 이번 사고를 통해 플랫폼 기업의 시스템 장애는 불확실성이 더욱 크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 같은 상황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관련한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 논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인의 발행 주체를 두고 은행과 비은행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은행 주도 발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은행에서도 디지털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축적된 금융 안정성과 리스크 관리에 대한 믿음이 부각되며 은행이 유리한 자리를 점하게 된 것이다. 핀테크 기업과 인터넷은행은 그동안 혁신을 앞세워 은행권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메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혁신은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 서비스가 아무리 편리하더라도 안정성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지 않으면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는 어렵다. 플랫폼 금융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끊김 없고 정확한 서비스를 위한 안정성 확보가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이슈&인사이트] 트럼프, BTS, 그리고 K방산

말은 마음의 거울이자,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창이다. 공적인 위치에 있는 이들의 언어는 개인 차원을 넘어 그 조직과 국가의 격조를 결정짓는다. 최근 전해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새로울 게 없긴 하여도, 그 일관성에 재삼 놀라고 또 '경탄'하게 된다. CNN의 에런 블레이크 기자가 지적했듯, 트럼프 대통령의 언어가 금도를 넘은 지 오래다. 그는 로버트 뮬러 전 FBI 국장의 사망 소식에 “죽어서 기쁘다"고 환호하는가 하면,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 고인이 된 정적들을 향해 저급하고 몰지각한 비난을 쏟아냈다. 블레이크 기자는 “수년간 이어온 저급한 발언들의 정점"이며 “이제는 단순히 막말하는 수준을 넘어 죽음을 노골적으로 축하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더 큰 비극은 트럼프의 천박한 언어가 실제 행동과 일치를 이룬다는 점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권력자의 언어가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행동으로 이어진 사악한 언행일치의 심각한 사례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1865년 3월 4일, 남북전쟁 막바지에 행한 제2차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든 이를 향한 자애로운 마음으로(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트럼프는 모두에게 악의를, 자신에게만 자애로운 언어를 구사하는 듯하다.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얽힌 방산 수출 현장은 다른 의미에서 언어의 품격이 시험대에 오르는 곳이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원유 공급 협상 과정을 설명하며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원유 수급과 방산을 계속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성과를 과시하기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은 바람직한 태도다. 중동의 비극적인 전쟁 상황 속에서 우리 무기의 경이적인 요격률과 방산 대박을 찬양하는 보도가 자칫 초상집 옆에서 잔치를 벌이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한겨레신문의 관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한겨레가 사실 확인의 어려움과 인도주의 관점을 들어 보도를 절제한 것은 언론의 기능과 품격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확인되지 않은 승전보를 옮기기보다, 왜 우리가 이 시점에서 침묵하거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더 나은 보도가 될 수 있다. 보도하지 않은 이유를 보도하는 제3의 길이 언론에게 적절한 타협안이 된다. 대중문화 예술인으로서 BTS가 21일 공연에서 보여준 태도 또한 긍정적이다. 그들은 화려한 조명 아래서 그들의 아미뿐 아니라, 슈가와 지민 등이 직접 언급했듯 공연의 안전을 위해 헌신한 경찰과 서울시 관계자들에게 거듭 사의를 표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한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감사의 언어는 공동체에 대한 존중이자 품격의 발로다. 만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어진다. 트럼프가 천박한 말과 사악한 행동의 일치를 보여주었다면, 반대로 품격 있는 언어에도 상응하는 행동이 따라붙는다면 더 아름다운 모습이 되지 않을까. 따뜻한 감사의 말을 넘어, 광화문이라는 공공의 장을 활용한 BTS가 공공의 가치를 위해 뭔가 실제적인 행동까지 보인다면 무대의 상업적 품격이 무대 밖에서 인격적이고 실천적인 품격으로 완성된다. 품격 있는 언어는 단순히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할 줄 알고, 자신의 성과 앞에서 겸손하며, 보이지 않는 곳의 헌신을 기억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사회의 지도층이 내뱉는 말은 신중해야 한다. 그만큼 의무가 따르지 않지만 스타들의 말에도 품격이 서리면 좋다. 내뱉는 말의 격이 곧 삶의 격이 되고, 그 격조가 다시 행동으로 순환하는 사람을 뉴스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bienns@ekn.co.kr

[EE칼럼] 재생에너지는 산업 연료이고 안보 자산이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반감을 자주 드러냈다. 법원의 저지를 받기는 했지만, 수억 달러에 달하는 해상풍력 발전 사업을 무산시키려 했고, 육상풍력 발전 사업도 막으려 했다. 다른 국가들에게 화석연료로 회귀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영국을 향해서는 “나라 곳곳에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태양광 패널에 대해서도 경관을 해치는 흉물, 매우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비난했고, 세기의 사기극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는 화석연료를 우선시 하며 태양광 프로젝트 수백 건의 최종 승인을 막았다. 그러나 최근 기류가 변하고 있다. 미국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인해 큰 폭의 전력수요 증가를 겪고 있다. 기술 기업들은 전력 부족으로 인해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여기서 재생에너지의 실용적 가치가 부각되었다. 화석연료나 원자력 발전소는 건설에 긴 시간이 소요되지만, 태양광과 풍력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내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효율적인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구글은 미시간주 남동부에 계획된 1GW 규모의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20년간 2.7GW 규모의 태양광, ESS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두 번째 계기는 지정학적 위기와 에너지 안보이다. 미국의 이란 공격이 이를 부각시켰다. 에너지를 외부의 장거리 운송이나 분쟁 가능성이 높은 지역의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것은 국가 안보에 치명적일 수 있다. 반면 태양과 바람은 특정 국가가 독점할 수 없으며, 운송로 봉쇄 위험에서도 자유롭다. 이번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급등이 글로벌 시장을 흔들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많은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그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기반인 MAGA 진영도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 보좌관인 스티븐 밀러의 아내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추종자인 케이티 밀러는 최근 “태양에너지는 미래의 에너지이다. 우리는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태양광 발전을 빠르게 확대해야 한다."라는 글을 올렸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토니 파브리치오 공화당 여론조사 전문가 등 트럼프의 주요 측근들도 전력수요 급증과 에너지 가격 부담이 유권자들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름에 따라 태양광발전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어조조차 바뀌었다. 그는 미국의 에너지 비용 인하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태양광 발전이 해결책의 원동력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변화의 징후는 그동안 중지시켰던 여러 대규모 프로젝트의 허가 절차를 재개한데서 나타났다. 태양광발전을 전력망에 기생하는 존재라고 비판했던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 역시 어조를 바꿨다. 그는 태양광 발전이 전력망에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는 상업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의 변화는 통계로 증명된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2026년 미국은 역대 최대 규모인 약 86GW의 발전 설비를 새로 추가할 계획이다. 이는 2025년의 53GW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주목할 점은 그 구성이다. 신규 설비의 절반 이상(43.4GW)이 태양광이며, 배터리 저장장치(24.3GW), 풍력(11.8GW)이 그 뒤를 잇는다. 천연가스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약 6.3GW이다. 재생에너지가 미 전력망 확충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생에너지는 더 이상 탄소중립의 수단이라는 명분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전력수요가 폭증하는 시대에 재생에너지는 선택이 아닌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재로 재정의되고 있다. AI 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산업 연료이자, 지정학적 리스크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안보 자산인 것이다. 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속도와 자립에 있다. 우리처럼 화석연료 매장량이 부족한 국가들에게 있어 태양광과 풍력이 이를 적극적으로 담당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조차 실용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이미 수립된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이 차질 없이 이행할 때, 비로소 AI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에너지 자립이라는 국가적 숙제 해결을 위해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ekn@ekn.co.kr

[데스크 칼럼] 석유 최고가격제는 독배(毒杯)다

정부가 중동 전쟁으로 급등한 기름값을 잡기 위해 지난 13일 도입한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 열흘을 맞았다. 효과는 확실해 보인다.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시행 전날일 12일 리터당 1899원에서 22일 현재에는 1820원으로 내렸고, 같은 기간 경유 판매가격은 1919원에서 1817원으로 휘발유보다 더 내렸다. 유권자들은 “역시 일 잘하는 이재명 정부"라며 내려간 기름값에 환호한다. 환호는 지지율로 이어진다.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3월 3주차 주간 집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62.2%로 3주 연속 상승했다. 그러나 시장 가격을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최고가격제는 심각한 시장 부작용을 불러 올 수 있다.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소비 절약 유인을 소멸시킨다는 점이다. 가격은 시장에서 수급을 조절하는 가장 강력한 신호등이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가격 상승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비 감소를 유도해야 한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가격을 누르면 소비자는 위기 상황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전과 다름없는 소비 행태를 유지한다. 이는 실제 데이터로 확인된다. 한국도로공사 자료에 따르면 토요일 기준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부터 신갈JC까지 통행량을 보면 전쟁 전인 2월 21일 9만1242대에서 3월 7일 9만2066대, 14일 9만5669대, 21일 9만8679대로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통행량이 더 늘었다. 정유사의 손실 보전금액도 눈 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석유사업법의 최고가격제 조항에는 “정부가 사업자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최고액정산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크게 오른 국제가격 대비 국내 시장에는 제한된 가격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그만큼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싱가포르 거래기준 휘발유(옥탄가 92RON) 가격은 배럴당 12일 130달러에서 20일 151달러로, 같은 기간 경유(황함량 0.001%) 가격은 195달러에서 223달러로 크게 올랐다. 여기에 함께 고려해야 하는 원달러 환율도 같은 기간 1467원에서 1499원으로 올랐다. 손실액을 리터당 100원으로 가정하고, 소비량을 지난해 3월 기준으로 계산하면 대략적인 정유사의 한달간 손실액은 휘발유 1328억원(소비량 13억2752만리터), 경유는 2086억원(20억8579만리터)으로, 총 3414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대략적인 추정치이지만, 그만큼 정부의 손실 보전액이 상당할 것임을 가늠할 수 있다. 가짜석유 유통도 우려된다. 기본적으로 가짜석유 원료인 용제나 등유는 원가가 휘발유와 경유보다 비싸다. 그럼에도 가짜석유에 동원되는 이유는 유류세만큼 이득을 편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류세는 리터당 보통휘발유 694원, 경유 476원이다. 유류세 인하 정책은 그만큼 편취 이득이 줄어들지만, 최고가격제는 유류세가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가짜석유 업자한테는 더 좋은 기회가 된다. 6월 지방선거가 세 달도 남지 않은 지금,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들한테 인기 있는 정책을 쓰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석유 최고가격제는 석유 수급 위기, 정부 재정부담, 가짜석유 유통을 부추길 수 있는 독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중동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를 정도로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는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 전체적으로 이익이 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석유 최고가격제가 1970년 석유사업법 제정때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는 점도 곱씹어 봐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 조사는 이달 16일부터 20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응답률 5.9%,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p다. 정당 지지도 조사는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간 유권자 1,005명을 대상으로 했다. 응답률 5.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두 조사 모두 무선(100%) 자동응답 방식으로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기자의 눈] 금융당국, 목적 없는 지배구조 개선...아집버려라

금융당국이 작년 말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지배구조 개선안 발표가 시간이 갈수록 명분도, 목적도 없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금융위원회가 이달 12일 최고경영자(CEO) 경영승계절차의 공정성·투명성 제고, 이사회 독립성 및 다양성 강화 등을 뼈대로 한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하겠다고 공지했다가, 4시간여만에 돌연 취소한 것을 두고 숱한 뒷말이 나온다. 당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바젤은행감독위원회 최고위급 회의와 유럽 금융감독당국 최고위급 면담을 위해 스위스, 독일 출장 중이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그간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이 원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금융위가 이를 기습 발표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번 건은 금융위와 금감원 간에 불화설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됐다. 또한 금융위가 금융지주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지배구조 개선에 얼마나 마음이 급한지를 보여주는 방증으로 평가된다. 이미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사를 향해 칼을 빼들기 전부터 지배구조 개선의 명분과 타당성이 없다는 이야기가 숱하게 나왔다. 금감원은 올해 1월 8대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 관련 특별점검을 실시했는데, 해당 검사에서 어떠한 문제점을 발견했는지는 베일에 싸여있다. 이찬진 원장이 지난달 시중은행장과 만난 자리에서 “은행권이 먼저 지배구조 혁신에 과감히 나서달라"고 당부한 것도 실체가 모호하다. 은행권이 어떤 이유로, 어떤 방법으로 지배구조를 혁신해야 하는지 세부적인 메시지는 쏙 빠져있다. 이 원장의 발언은 지금까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금융당국의 의중을 금융사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센스있게 이행하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상이 불분명한 금융당국의 칼날은, 금융시장 혼란으로 귀결된다. KB금융지주,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만 해도, 금융시장 환경 변화와 시대에 맞춰 지배구조도 끊임없이 발전돼야 한다는 기본원칙은 공감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금 금융지주사에 보여줘야 할 건 으름장이 아니라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타당성이다. '지배구조 개선'의 목적이, 정부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꽂는 식의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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