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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역시 폭염과 집중호우로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가을의 시작인 9월의 하순으로 접어든 지금까지도 낮 동안의 무더위는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정적이 하나 있다. 한반도를 찾는 대표적인 여름철 불청객인 '태풍'의 행보가 최근 3년간 극도로 조용하다는 점이다. 2023년 새만금 세계잼버리 기간 한반도를 관통했던 제6호 태풍 '카눈' 이후, 우리나라에 상륙하여 내륙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 태풍은 없었다. 평년 한 해 25.1개의 태풍이 발생하고, 그중 3.4개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다. 2024년에는 26개 가운데 2개가 먼바다에서만 약하게 영향을 주었고, 2025년에는 영향 태풍이 하나도 없었다. 올해도 제6호 태풍 '장미'가 남해동부 먼바다에 태풍특보를 발효시켰을 뿐 육상에는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태풍 자체가 줄어든 것일까. 정반대다. 올해 9월 18일까지 발생한 태풍은 25개로 이미 평년의 연간 발생 수와 맞먹는다. 특히 8월에는 평년 5.6개의 두 배에 가까운 10개가 발생했다. 태풍 자체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한반도로 향하는 길이 막힌 것이다. 태풍은 따뜻한 바다에서 에너지를 얻지만, 진로는 철저히 북태평양 고기압을 포함한 주변 기압계에 의해 결정된다. 올여름 한반도 주변에서는 북태평양고기압이 강하게 발달하고 그 위로 티베트고기압까지 겹치면서 거대한 고기압 장벽, 이중 고기압이 형성됐다. 태풍은 이 견고한 장벽을 뚫지 못하고 남쪽 가장자리를 따라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서진하거나, 동쪽 가장자리를 돌아 일본 동쪽 해상으로 빠져나갔다. 7월 초부터 8월 초까지의 경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제9호, 제10호 그리고 제12호, 제13호 태풍이 잇달아 서진 또는 북서진해 중국에 상륙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제11호만 필리핀 동쪽 먼바다에서 발생한 지 하루 만에 소멸됐다. 한반도가 안전해서 태풍이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기압계의 거대한 흐름이 위험을 중국 쪽으로 밀어낸 셈이다. 여기서 원인과 배경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따뜻해진 바다는 태풍이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고 강해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그러나 올해 태풍이 한반도를 비켜간 직접적인 원인은 북태평양고기압의 위치와 확장 양상이었다. 기후변화가 태풍의 발생 위치와 강도, 이동 경로를 복잡하게 바꾸고 있지만, 몇 해의 경로만으로 “기후변화 때문에 태풍이 오지 않는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북태평양고기압이 언제, 왜, 어느 방향으로 확장했는지를 먼저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태풍이 오지 않는 현상을 마냥 기후변화가 준 따뜻한 혜택으로 반길 수 없다는 점이다. 태풍은 파괴적인 강풍과 폭우를 동반하는 복합재난인 동시에, 한반도 수자원 확보 관점에서는 가뭄을 해소하는 핵심 용수 공급원이다. 태풍 한 개가 몰고 오는 강수량은 지형적 조건이나 정체전선과의 결합 여부에 따라 다르지만, 100mm 이상, 조건이 맞으면 수백mm의 비를 공급한다. 최근 6개월간 전국 누적 강수량은 평년(981.8mm) 대비 84.8%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약 150mm에 달하는 수자원이 부족한 상태이며, 이는 대형 태풍 한 차례가 가져다줄 수 있는 수자원 양과 맞먹는다. 올여름의 용수 부족을 오롯이 태풍의 부재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으나, 태풍 실종이 장기화될 경우 가을 가뭄, 저수율 저하, 농업 및 공업용수 부족, 산불 위험 증가라는 또 다른 형태의 2차 재난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9월 초 기준 전국 34개 시·군에서 이미 기상가뭄이 관측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재난 대응 프레임은 단선적인 '태풍의 상륙 여부'를 넘어서야 한다. 복합재난인 태풍이 접근할 때는 극한의 강풍과 폭우에 대한 방제 인프라를 철저히 가동하고, 태풍이 오지 않을 때는 가뭄과 수자원 고갈이라는 '건조한 재난'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양면적 대응 체계가 시급하다. 최근 몇 년간의 태풍 공백은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준 온화한 선물이 아니다. 언제든 폭우와 가뭄이라는 양극단의 기후 위험이 교대할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다. 단 3년간의 통계에 착시되어 “한반도가 태풍 안전지대로 접어들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방심이다. 오지 않은 태풍에 안도할 것이 아니라, 그 부재가 불러올 숨은 위험까지 대비하는 통합적 안목이야말로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지혜로운 방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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