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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그린수소’로 대한민국 에너지 대전환 이끌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이산화탄소가 만들어낸 기후 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환경운동가이자 《6도의 멸종》의 저자 마크 라이너스는 지구 평균 기온이 단 1도만 올라가도 킬리만자로와 알프스의 만년설이 녹고 전 세계적으로 가뭄이 찾아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호주 기후위원회가 지난 2014년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2010년이 되면 제주 용머리 해안이 수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반복되는 가뭄과 폭염, 사라져가는 계절, 계속해서 높아지는 해수면 등을 통해 지구의 경고를 직접 체감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뒤덮은 기후 변화의 파고에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길은 결국 탄소를 줄이는 일이다. 그 해법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기자는 대한민국에서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를 결합해 지속 가능한 에너지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제주를 찾았다. 바람과 햇빛이 만든 전기, 그리고 그것을 수소로 바꾸어 저장하는 기술까지. 제주는 섬이라는 한계를 오히려 실험의 무대로 삼고 있었다. 제주가 만들어 가는 탄소중립의 현장은 단순한 실험을 넘어, 대한민국 미래 에너지의 답안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주 제주시 구좌읍 CFI에너지전시관에서 제주도의 '에너지 대전환 계획'을 보여주는 지도가 펼쳐졌다. 제주도 관계자는 지도 위에서 제주가 앞으로 10년 동안 밟아갈 에너지 전환 경로를 설명했다. “제주도는 2035년 탄소중립을 목표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석유, 석탄 같은 화석연료 대신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를주 에너지원으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전시관 벽에는 제주도의 에너지 전환 계획이 단계별로 정리돼 있다. 2026년까지 해상풍력 100㎿를 설치하고, 수소 생산 시설 15㎿를 운영한다. 2030년까지 해상풍력 150㎿와 30㎿ 규모의 수소 생산 국가사업을 추진하며, 2035년에는 해상풍력 3GW와 수소 100% 발전 체계를 완성한다는 목표다. 해상풍력 3GW는 약 300만 가구에 전기를 동시 공급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로, 제주 섬의 전력 수요를 충분히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주도의 에너지 전환 계획에는 에너지 저장장치(BESS) 확충, 분산형 에너지 특화 지역 조성, 가상발전소(VPP) 구축, RE100 거래 제도 개선 등 구체적인 실행 전략도 포함돼 있다. 이러한 전략은 제주의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고, 전력 공급의 안전성을 강화하며, 지역 주민과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생태계의 기반을 구축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제주 바람으로 만든 전기로 물을 분해해 그린수소 만드는 수전해 방식 활용 전시관에서 확인한 제주도의 에너지 전환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전체 전기의 70%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고, 둘째, 부족한 20~30% 가량의 기저전원은 그린수소로 전환한다. 마지막으로, 수소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설비와 전기를 저장하는 장치(ESS), 전기차와 연계된 시스템(V2G) 등 유연한 에너지 자원을 늘려 효율적인 전력 사용을 추진한다. 이 세 가지 전략을 통해 제주도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지속 가능한 전력 공급 체제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전시관을 나와 방문한 3.3㎿ 규모의 그린수소 생산 시설은 제주도의 에너지 전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장이다. 이 시설은 낮 동안 남는 전기로 수소를 만들어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다시 전기나 수소차 연료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한 가정 평균 소비 전략을 약 3㎾로 본다면, 3.3㎿는 약 1100가구에 전력을 동시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이 시설은 두 가지 수전해 방식(AEC 2㎿, PEM 1.3㎿)을 동시에 운전하는 하이브리드 실증 현장으로, 국내 최초의 사례다. 저장탱크는 최대 600㎏의 수소를 보관할 수 있고, 2㎿h 규모의 ESS를 통해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한다. 낮 동안 풍력과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수소로 저장했다가, 실제로 운영되는 모빌리티에 그린수소를 공급하는 순환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고, 이는 국내 최초의 사례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1일부터 함덕 충전소에 1㎏당 1만5000원으로 상업 판매를 시작했다"며 “그린수소는 출력제어의 한계를 풀어내고 재생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제주도는 바람과 태양으로 전기를 만들고 남는 전기를 수소로 저장하며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바다에서 파도의 에너지로바람으로 전기를 만들어 수소를 생산하는 '해상 그린수소 생산 시스템'도 국내 최초로 실험 중이다.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앞바다에 설치될 이 시스템은 바닷바람으로 전기를 만들어 수소로 전환하는 기술로, 올해 해상 실증과 관련 규제 완화를 통해 해상에서의 에너지 전환·저장·활용 사이클을 완성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또 다른 핵심 사업은 10.9㎿ 규모의 대규모 그린수소 실증 프로젝트다.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진행되는 이 사업은 네 가지 수전해 기술(PEM,AEC, AEM, SOEC)을 한 곳에 모아 비교 실험한다. 생산된 수소는 청정수소 인증과 RE100 거래 모델에 활용되어, 기업과 지역사회가 재생에너지와 수소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 마지막 방문지는 함덕 그린수소 충전소다. 국내 최초로 '그린수소'를 공급하는 충전소로, 하루에 버스 4대 또는 승용차 20대를 한 시간 안에 충전할 수 있으며, 2024년 11월부터 상업 판매를 시작했다. 올해 9월 기준, 수소버스 22대, 수소청소차 1대, 승용차 68대가 그린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제주 도로를 달리고 있으며, 생산기지가 더욱 안정화되면 그린수소를 이용한 차량 운행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제주는 전국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저탄소 중앙계약', '실시간 전력거래'와 같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며, 에너지전환의 실험장이자 현장 연구소 역할을 하고 있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활용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수소 저장 기술로 보완하며, 탄소중립을 향한 미래를 실험하는 것이다. 또한 RE100 수소시범단지, 5MW 플랜트형 PEM 수전해 기술개발, 수소특화단지 지정 추진, 대규모 청정수소 생산 기술개발 추진 등 명실상부 그린수소 글로벌 허브로 나아가고 있다. 파도가 치는 바다 위 풍력발전기, 전기로 물을 나누어 수소를 만드는 장치, 함덕 충전소에서 조용히 달리는 수소버스까지. 제주도는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를 결합한 대한민국 첫 탄소중립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섬이기에 가능했고, 섬이기에 더 절실한 도전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후부, 2035 온실가스감축목표(NDC) 50~60% 제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2018년 대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최소 50%에서 최대 60%까지 제시했다. 기후부는 오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2035 NDC 정부안' 공청회를 개최한다. 공청회 발표자료에 따르면, 기후부는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7억4230만톤을 기준으로 2035년까지 절반 수준인 3억7120만톤(50%) 또는 3억4890만톤(53%)으로 줄이는 하한선 시나리오 두 가지를 제시했다. 기후부는 이 목표를 “현실적 실현 가능성에 무게를 둔 안"이라고 설명했다. 상한선은 60% 감축으로, 2035년 배출량을 2억9690만톤까지 줄이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 정부 지원 확대, 혁신 기술 개발, 산업 구조 전환 등을 전제로 한 도전적 목표로 제시됐다. 당초 산업계가 주장한 48%나 환경단체가 요구한 65%는 이번 정부안에 모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산업계와 환경단체 양측의 반발이 예상된다. 구체적인 2035년 NDC 감축 비율은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기후부는 지난 9월 19일부터 10월 2일까지 총괄, 전력·산업, 수송, 건물, 농축수산, 흡수원, 순환경제 등 6개 분야에서 대국민 공개 논의를 진행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그 결과를 종합해 최종 정부안을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한다. 또한 공청회에서 2035 NDC를 경제성장의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대한민국 녹색전환(K-GX) 전략 방향'도 함께 발표한다. 대한민국 녹색전환(K-GX'은 NDC 이행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 성장과 신산업 창출, 수출 동력 확보 등을 목표로 하는 전략이다. 정부는 공청회에서 수렴된 의견을 반영해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및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2035 NDC 최종안을 확정하고, 오는 10~21일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E칼럼] 데이터센터와 배터리의 위험한 동거, ‘액화공기’가 해결책인 이유

지난 9월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우리나라 디지털 인프라의 치명적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무정전전원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시작된 불길은 22시간 동안 타오르며 정부 전산시스템을 마비시켰고, 이는 단순한 시설 화재를 넘어 '국가 행정 마비'라는 초유의 사태로 번졌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화재가 2022년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의 교훈을 반영하여, 리튬 배터리의 위험성을 줄이고자 설비를 이전하는 작업 중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위험을 예방하려던 조치가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부른 것이다. 이 사건은 AI 시대를 맞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데이터센터가 '리튬 배터리와 위험한 동거'를 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도권 데이터센터는 리튬 배터리의 화재 위험뿐만 아니라, '전력망 확보'라는 또 다른 거대한 장벽에 직면해 있다. AI 시대의 도래로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최근 11개월간 수도권에만 원자력 발전소 20기에 해당하는 20GW 규모의 전력 사용 신청이 몰렸다. 하지만 수도권의 전력망은 이미 포화 상태이며, 새로운 송전망을 건설하는 것은 주민 민원으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송전선로 건설 사업의 83%가 평균 41개월씩 지연되고 있으며, 그 원인의 절반 이상은 주민 반대로 기인한 것이다. 결국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은 화재 위험을 감수하며 리튬 배터리를 사용하면서도, 정작 사업에 필요한 전력조차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서 액화공기 에너지저장장치(LAES, Liquid Air Energy Storage)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LAES는 잉여 전력으로 공기를 영하 190도 이하의 액체로 만들어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기화시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물리적 저장 시스템이다. LAES가 왜 AI시대의 '게임 체인저'인지 네 가지 핵심 이유를 통해 살펴보자. 첫째, '가상 송전망'으로 전력 병목을 해결한다. 데이터센터 부지 내에 LAES를 설치하면, 전력망이 한가한 심야에 전기를 미리 저장해두었다가 전력 수요가 몰리는 낮 시간에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논란이 많은 신규 송전망을 건설할 필요 없이, 기존 전력망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가상 송전망' 역할을 한다. 주민 민원과 행정 절차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전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둘째, 절대적인 화재 안전성을 보장한다. LAES는 오직 공기와 물만을 사용하기에 리튬 배터리의 '열 폭주'와 같은 화재나 폭발 위험이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화재 발생으로 인한 국가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재앙은 발생할 수가 없다. 셋째, 공생을 통한 압도적인 경제성을 자랑한다. 데이터센터는 전력의 약 40%를 서버 냉각에 사용하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폐열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 폐열은 LAES 시스템에서는 발전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귀중한 '연료'가 된다. 반대로 LAES가 전기를 만들고 배출하는 냉열은 데이터센터 서버 냉각에 재활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버려지던 열 에너지를 자원으로 바꾸는 완벽한 공생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다. 넷째, 진정한 에너지 독립을 실현한다. 2026년부터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가 시행되면 수도권의 전기료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다. LAES를 갖춘 데이터센터는 값싼 심야 전력을 저장해 사용하고, 남는 전력은 전력망 안정화 서비스로 판매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에너지 프로슈머'로 거듭날 수 있다. LAES는 더 이상 미래 기술이 아니다. 영국 하이뷰 파워(Highview Power)는 맨체스터 인근에 세계 최대 규모인 50MW/300MWh급 상용 플랜트를 건설 중이며, 가동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도 국토부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의 지원으로 한국기계연구원이 핵심 부품인 터보팽창기와 콜드박스를 100% 국산 기술로 연구 개발하는 데 성공하며 상용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전 화재는 우리에게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 리튬 배터리에 의존하는 현재의 방식만으로는 AI 시대의 에너지 수요를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 데이터센터에 LAES를 도입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대한민국의 디지털 경쟁력을 좌우할 필수 전략이다. 화재 위험과 송전망 갈등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벽을 동시에 허물 수 있는 LAES 기술의 상용화를 위한 정부와 산업계의 과감한 결단과 지원이 시급한 시점이다. ※ 상기 내용은 저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소속기관 등의 공식적 의견은 아님을 밝혀둡니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연구위원 이종석

가스안전공사, 2025 안전대상에서 행정부장관상 받아

한국가스안전공사(사장 박경국)는 4일 '제24회 대한민국 안전대상'에서 우수기업상 부문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안전대상은 소방청 주최의 국내 최고 권위를 가진 안전분야 시상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에 앞장선 우수한 기업과 개인 및 단체 공로자에게 수여된다. 가스안전공사는 2019년 안전전담부서를 설립을 시작으로 근로자 및 협력업체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힘쓰는 '안전보건경영' 실천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가스안전공사는 현재 본사 및 수소용품검사인증센터 등에 안전보건힐링센터를 개소하며 근로자와 협력업체의 안전 및 보건분야의 적극적인 활동을 개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근로자의 육체적‧정신적 안전보건을 관리하는 체계를 확립하였다. 여기에 △8천보 걷기 이벤트 개최, △숲체험, △체력측정 이벤트 등 다양한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가스안전공사는 작업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고위험 사업장에 안전보건물품함을 설치하였고, 본사에는 밀폐공간 작업을 위한 키트(가스농도측정기 및 스마트 밴드, 스마트 에어백 안전조끼)를 추가로 구비하였다. 이수부 부사장은 “이번 수상은 선도적으로 안전 신기술 등을 활용한 안전보건경영의 결실"이라며, “앞으로도 국민이 안전한 가스안전관리 체계를 확립함과 동시에 안전경영 고도화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LX인터, 신임 대표에 ‘자원통’ 구혁서 내정…핵심광물 역량 강화

LX인터내셔널의 차기 대표에 자원사업 잔뼈가 굵은 구혁서 부사장이 내정됐다. 구 부사장은 줄곧 자원사업을 맡으면서 2023년에는 인도네시아 니켈광산 인수를 총괄하는 등 최고 전문가로 통한다. LX인터내셔널은 니켈뿐만 아니라 구리, 알루미늄 원광인 보크사이트 등 핵심광물 중심으로 사업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LX인터내셔널은 5일 이사회를 통해 구혁서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내정하고, 상무 승진 1명에 대한 2026년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구 부사장은 1996년 LX인터내셔널의 전신인 LG상사에 입사한 이후 금속사업부장(상무), 에너지사업부장(전무), 인도네시아 지역총괄(부사장) 등 주로 자원사업 관련 직책을 맡았다. 특히 인도네시아 지역총괄로 재직하며 2024년 AKP 니켈광산의 지분 60%를 약 1330억원에 인수하며 미래 성장 기반을 확보했다. 또한 자원 사업의 수익성 개선 및 고도화를 적극 추진하는 등 다양한 성과를 창출했다. LX인터내셔널은 구 부사장의 강한 추진력과 탁월한 현장 감각을 바탕으로, 신규 유망 광물 개발을 가속화하고 신사업 포트폴리오를 보다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이번 인사에서 인도네시아 AKP 니켈 광산 인수 후,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광산 조기 안정화에 기여한 홍장표 이사도 상무로 승진했다. LX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성과주의 원칙하에 강한 추진력과 현장 감각을 보유한 사업 리더를 중용하고자 했다"며 “미래 준비를 차질 없이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회사를 이끌었던 윤춘성 사장은 37년간 몸 담았던 LX인터내셔널을 떠나 고문으로 위촉될 예정이다. LX인터내셔널은 앞으로 자원사업에 역량을 집중, 강화할 계획이다. 현재 회사는 인도네시아와 중국에서 유연탄 광산을 운영하고 있으며, 2024년에는 가채광량 3600만톤의 인도네시아 AKP 니켈광산을 인수했고, 추가 자산 인수를 추진 중이다. 2008년 투자한 필리핀 라푸라푸 구리광산의 운영이 종료된 경험을 바탕으로 추가로 필리핀 등에서 구리자산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이밖에도 알루미늄과 갈륨을 채취할 수 있는 보크사이트 등의 핵심광물도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LX인터내셔널은 광석을 제련·가공하는 자원산업 중류 분야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상류와 연계한 사업방식도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인도네시아 니켈자산과 연계한 황산니켈, 니켈중간재(MHP), 전구체, 양극재 등 2차전지소재분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자원보유국들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상류뿐 아니라 중류까지 유치를 원하는 기류이고, 기업 역시 상류와 중류를 연계하면 부가가치를 더 높일 수 있어 이러한 방식으로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LX인터내셔널은 3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액 4조5077억원, 영업이익 64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2% 감소, 영업이익은 58.1% 감소했다. 실적 하락은 자원가격 하락 영향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3분기 톤당 140달러였던 호주탄(NEWC) 가격은 올해 3분기 109달러로, 인도네시아탄(ICI4)은 52달러에서 42달러로 하락했다. 해상운송 운임지수를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선운임지수(SCFI)는 같은 기간 3073포인트에서 1482포인트로 떨어졌다. 반면, 전기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은 17.7%, 17.8% 각각 증가했다. 광산 원가 절감 및 생산량 증대, 트레이딩(Trading) 물량 확대 등 수익성 제고에 힘을 기울인 결과, 뚜렷한 개선세를 보였다. LX인터내셔널은 지난해 인수한 인도네시아 AKP 니켈 광산의 생산량 증대 및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구리, 보크사이트 등 미래 유망광물로 자원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 무역 분쟁 심화, 자원 및 물류 시황 약세 등 비우호적인 사업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며 “자원개발과 트레이딩 등 기존 사업을 통해 확보한 재원을 바탕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지역을 다변화하는 등 신규 수익원을 육성해 안정적인 중장기 성장 기반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경북·울산·충남, 분산특구 선정 보류…LNG·암모니아가 발목 잡았나

경북 포항, 울산 미포산단, 충남 서산이 분산에너지특구 최종 선정에서 보류됐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재심의를 거칠 것이라고 밝혔지만, 기후부의 정책 철학과 맞지 않는 사업이 보류된 것으로 분석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5일 김성환 장관 주재로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제36차 에너지위원회를 개최하고 '분산에너지특화지역 지정(안)'을 심의·의결했다. 분산에너지특구 최종 후보 중 부산 강서, 경기 의왕, 전남 전역, 제주 전역은 선정됐다. 이들 사업은 모두 재생에너지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충전하는 내용이 포함되는 등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기차, 히트펌프 활용 등 현재 기후부의 정책 철학과 맞물려 있다. 반면 이번에 보류된 경북 포항의 사업 내용은 청정암모니아 발전으로 인근 기업에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울산과 충남은 지역 발전소가 인근 기업에 전력을 직접 공급하는 구조였으며, 두 지역의 발전소에는 열병합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가 포함됐다. 이에 대해 에너지위원회에 기후솔루션 등 환경단체 인사가 포함돼 있고, 현재 화석연료에 비우호적인 기후부 정책 기조와 맞지 않아 이번 사업이 보류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의 기후부 종합감사에서 “석탄발전소에는 사실상 (암모니아) 혼소 방식은 중단하는 게 맞다고 본다.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전력거래소도 지난달 17일 공문을 통해 암모니아 혼소 발전사업을 포함한 '2025년 청정수소발전시장(CHPS) 경쟁입찰'을 취소한 바 있다. 전력직접구매제에 대한 인식도 녹록지도 않은 상황이다. 한전이 그동안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다가 올리려 하자, 기업이 한전과의 거래를 끊고 발전사업자와 직접 거래로 전환하는 것은 일종의 '체리피킹'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도 지난달 23일 국정감사에서 국제 연료가격이 전기요금에 바로 반영되는 시장 논리를 전제로 한다며 “시장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전력 직접구매제도 폐지가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분산에너지특구라는 특례에도 재생에너지를 활용하지 않고 화석연료 발전으로 전력직접구매제를 추진하는 점에서 심사 과정에 더 감점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는 “결국 절반 이상이 에너지 비전문가인 환경단체 인사 등으로 구성된 에너지위원회가 큰 정책적 과오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통령께서 축사까지 한 aws 데이터센터 위치선정의 중요한 요인인 울산 등을 보류한 것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정치적 결정이라고 해석할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존 후보사업이 아닌 전남과 제주가 전지역으로 확대 지정된 반면, 울산·포항·서산이 보류된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결정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기후부는 이번 에너지위원회에서 보류된 울산, 충남, 경북 지역 사업은 최종 탈락이 아니라 추가 논의를 거쳐 차기 위원회에서 조속히 재심의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분산에너지특구로 ‘부산·경기·전남·제주’ 최종 선정

부산, 경기, 전남, 제주 등 4곳이 분산에너지특구로 최종 선정됐다. 분산특구는 원거리 송전망을 이용하는 대신 수요지 인근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지산지소형' 에너지 시스템을 말한다. 최종 후보지였으나 이번에 선정이 보류된 울산, 충남, 경북은 재심의를 거칠 계획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5일 김성환 장관 주재로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제36차 에너지위원회를 개최하고 분산에너지특화지역 지정(안)과 제7차 에너지이용 합리화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분산특구는 전기사업법상 '발전·판매 겸업 금지'의 예외로, 분산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 간 전력 직접거래가 허용된다. 또 규제특례가 적용돼 다양한 요금제 도입이 가능하며, 전력 신산업 모델을 활성화할 수 있다. 분산에너지특구로 경기(의왕), 부산(강서), 제주(전역), 전남(전역)이 선정됐다. 제주는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입찰제도와 실시간 전력시장 등 혁신적 제도가 구축된 곳으로 분산에너지 시스템 실험의 최적지로 꼽혀 선정됐다. 제주는 분산특구 지정으로 △피투에이치(P2H·재생에너지 잉여전력을 히트펌프로 열에너지로 전환) △가상발전소(VPP·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통합해 전력시장에 참여) △브이투지(V2G·전기차 배터리를 ESS처럼 활용해 전력시장에 참여) 사업 등이 추진된다. 전남은 태양광 보급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지만, 계통 부족으로 출력제어가 빈번한 지역이다. 태양광 발전소가 밀집한 해남·영암 지역에는 데이터센터를 유치해 지역 내 생산·소비를 실현하고, 인공지능(AI) 기술로 전력 생산과 소비를 최적화하는 마이크로그리드 기술을 산업단지와 대학 등에 실증할 예정이다. 또한 재생에너지의 99.6%(호수 기준)가 위치한 배전망에 ESS를 보급해 재생에너지 접속대기 물량을 최소화하고, 배전망 운영 효율화를 추진한다. 부산과 경기는 전력 공급 대비 수요가 높은 지역으로 수요 관리 최적화가 필요한 곳이다. 부산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대규모로 설치해 산업단지, 항만, 데이터센터 등 다양한 수용가에서 전기요금을 절감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마련한다. 경기는 공원 내에 태양광, ESS, 전기차 충전소를 연계한 마이크로그리드를 구축해 저장된 전기를 전기차 충전에 활용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을 실증할 계획이다. 이날 에너지위원회에서 보류된 울산, 충남, 경북은 추가 논의를 거쳐 차기 위원회에서 조속히 재심의할 예정이다. 한편 제7차 에너지이용 합리화 기본계획은 향후 5년 내 최종 에너지 소비량을 감소 추세로 전환하고, 2029년까지 에너지원단위를 지난해 대비 8.7% 개선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소비 부문별 에너지이용 합리화 시책 △효율관리 시장 기능 강화 △열산업 혁신기반 마련 △데이터 기반 수요관리 시스템 구축 △스마트한 에너지 소비문화 확산 등 5대 과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AI와 송전망 딜레마 中] 文·尹도 못했는데 李는 할까…관건은 ‘주민수용성’

한국이 AI·반도체 3대 강국 도약을 선언하면서, 그 핵심 인프라인 '에너지 고속도로'(초고압직류송전망, HVDC) 구축 사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문재인·윤석열 정부 모두 추진 의지를 밝혔음에도 속도를 내지 못한 대표적 난제로 꼽힌다. 핵심 원인은 분명하다. 송전선로가 지나는 경과지 주민들의 반발이다. 특히 2014년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 사실상 모든 건설이 멈춘 상태다. '송전탑은 들어오면 평생 고통만 남는다'는 인식이 뿌리 깊고, 환경·경관 훼손, 전자파 우려, 재산가치 하락 등으로 민원과 소송이 반복돼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전력망 확충 조기 착공"이 국정과제로 포함됐지만, 실제 사업은 대부분 타당성 조사 단계에서 멈췄다. 윤석열 정부 역시 “AI 시대 대비 전국 송전망 확충"을 강조했으나, 한국전력공사(한전)의 재정 악화와 주민 반발로 인해 진척이 없었다. 정부는 전문가들이 제안한 민간참여 모델이나 특수목적법인(SPC) 방식 도입에도 소극적이었다. 결국 “정부는 추진 의지만 있고, 한전은 여력도 명분도 없으며, 주민은 끝까지 반대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AI 산업과 재생에너지 확산을 뒷받침할 송전망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고 강조하며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을 '국가 전략 인프라 프로젝트'로 격상시켰다.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한전의 단독 추진 구조를 개편해 민간 발전사·투자기관이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송전망 사업 구조'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법적 근거가 명확치 않아, 실제 민간 참여가 가능하려면 전기사업법 및 송전특례제도 개정이 필요하다. 결국 이번 정부가 속도를 내기 위해선, 정치적 결단과 사회적 설득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대규모 전력망 건설은 단순한 기술·재정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송전망 건설에 속도를 내기 위해선 결국 '주민수용성(Community Acceptance)'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2014년 밀양 송전탑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한전이 밀양지역에 송전탑 52기 설치에 나서자 일부 주민들과 환경·시민단체들이 건설 반대시위를 벌였다. 반대시위가 격해지면서 경찰과 격한 상황까지 벌어졌고, 주민이 자살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주민수용성을 해결하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은 세 가지로 꼽힌다. 직접보상 강화로 토지보상 외에도 발전이익 일부를 지역 주민에게 배분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이다. 기부채납 방식도 있다. 송전설비 경과지 주민이 원하는 공공시설(체육관, 도서관, 의료시설 등)을 송전사업자 측이 제공하는 방식이다. 주민 참여형 모델 도입도 검토할만 하다. 주민들이 송전망 운영 수익 일부를 배당받는 '에너지 협동조합형 구조'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같은 방식들은 이미 해외에서는 여러차례 적용된 바 있다. 독일·덴마크 등은 대규모 송전선 건설 시 지역주민이 일정 비율의 지분을 보유하게 하여, '피해의 당사자'에서 '이익의 주체'로 전환시키는 방식을 채택했다. 국내에서도 전남 신안, 경북 영천 등 일부 지역에서 주민참여형 태양광·풍력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둔 사례가 있다. 송전망도 이와 유사한 '이익공유형 모델'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한전은 이미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송전망 사업을 추진할 여력도, 정치적 리스크를 감당할 이유도 없다"고 토로한다. 한전 내부에서도 “정부 정책은 속도전을 외치지만, 정작 실행 주체에게는 수단도 책임도 불분명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송전망 사업을 민간에 개방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통신망이나 철도처럼 일정 기준을 충족한 민간 사업자가 송전선 건설·운영을 맡고, 정부와 한전이 이를 감독하는 구조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 기반망의 민영화 논란'을 우려해 아직까지 문을 열지 않고 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기술도, 예산도 아닌 사회적 수용성이다. AI·데이터센터·반도체 산업이 전력 대전환기를 맞이한 지금, 송전망 확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송전탑이 아니라, 신뢰의 탑을 먼저 세워야 할 때"라며 이재명 정부가 과거 정부들이 넘지 못한 '주민의 벽'을 넘는다면 '에너지 고속도로'를 통한 AI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E칼럼] 전력시장 자율규제기관 독립화 담론, 개혁인가 성역 강화인가

오랜 동안 전력시장을 정부의 영향력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의결·인사·예산 독립성을 확보하여 정치적 영향을 차단하고, 원칙에 따라 요금을 산정하며 시장을 감독할 수 있는 독립적 결정기구, 예컨데 새로운 형태의 '전기위원회'나 '전력감독원'을 설립해 시장의 합리적 운영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독립된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비교하기도 한다. 독립규제기관 논의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정치와 정부 개입을 배제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물가 안정과 정치적 통제 필요성 등이 우선시 되면서 제도화되지 못했다. 최근 이 논의가 다시 주목받는 배경에는 정부조직법 개편이 있다. 산업부가 쥐고 있던 권한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독립 위원회 모델이 대안으로 다시 부상한 것이다. 초대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또한 이러한 전력부문 자율기구의 설립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고 실제로 급물살을 타는 듯하다. 하지만 명분에 앞서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장의 성숙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율기구를 도입하는 것이 마치, 아이에게 칼을 쥐여주는 일처럼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들 역시 자율적인 전력 규제기구를 두고 있다는 점이 단골로 주장된다. 그러나 성숙한 전력시장이 형성되기 전에 자율기구가 먼저 등장한 사례가 과연 있었는가? 혹은 시장 자체가 부재한 상태에서 자율기구가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 주도적으로 그럴듯한 시장을 만들어낸 경우가 있었는가? 예컨데 한국은행 금통위의 독립성이 제도적으로 가능했던 배경에는 탄탄한 민간 은행업권과 금융시장이 존재했다.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더라도, 그 뒤에는 이를 수용·반영하는 상업은행, 자본시장, 민간 금융업자가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민간 은행 연합의 이해관계 속에서 태동했으며, 한국은행 역시 은행권과 금융시장을 대표하는 성격을 지닌다. 이런 구조 덕분에 금통위는 정부의 정책적 수요와 민간 금융시장의 기능 사이에서 균형자이자 심판자로 작동하며, 독립성이 실질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 전력시장은 시장 참여자라 할 민간 기반이 부족하다. 규모 있는 발전사 대부분이 한전 자회사 계열이고, 소매 전력시장은 아예 독점적 구조로 한전이 사실상 단일 판매자다. 민간 발전사가 일부 존재하긴 하지만, SMP(System Marginal Price)는 CBP(Cost-Based Pool) 체제에서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제출된 원가 자료를 기반으로 산정될 뿐이다. 신재생에너지 관련 비용 부담 역시 사후 정산 구조로 운영되며, 전가되는 과정도 시장의 경쟁을 통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시장 가격 형성 메커니즘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따라서 전력 가격은 온전히 시장이 만들어낸 결과와는 거리가 멀다. 바로 이러한 제도적 특성 때문에 전기요금은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이라기보다 준조세적 성격을 띠며, 민간 이해관계자가 제도적으로 대표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즉 이런 현실 때문에 전기위를 금통위 혹은 여타 선진국들의 자율규제기구와 비교하는데 현실적 배경적 간극이 크게 존재한다. 금통위 독립성은 정부와 민간 금융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제도로 설계된 반면, 현재 전기위 독립성 논의는 정부 내 권한 조정과 소수의 폐쇄적 이해관계자들의 영향력 유지를 위한 레토릭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독립성이 명실상부하게 작동하려면 단순히 제도만 가져올 것이 아니라, 민간 전력시장 개방과 소매 다변화 같은 구조적 개혁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금통위 모델을 껍데기만 흉내 내는 결과에 그칠 수밖에 없다. 실은 한국 전력시장의 구조를 고려할 때, 전력부문 자율규제기구 독립화는 제도적 명분은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독점자에 의한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 즉 독점자에 의해 자율규제기구가 좌지우지될 위험을 키울 수 있다. 금통위는 은행권 등 민간 금융 주체가 존재하고, 그 이해관계가 제도적으로 반영되는 구조 속에서 정부와 민간 사이의 균형자로 기능한다. 그러나 전력시장은 소매 부문이 부재하고 발전 분야 역시 대부분 한전 자회사로 채워져 있어, 독립위원회가 설립되더라도 견제와 균형을 뒷받침할 민간 기반이 부족하다. 결국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새로운 자율규제기구 설립이 시장의 기대와는 다르게 일부 극소수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자리 만들기 식 위인설관(爲人設官)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규제 포획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현실화될 수 있다. 전기요금 산정에 필요한 핵심 비용·수급 정보는 한전이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어, 위원회는 이를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 풀 역시 간택된 호위무사들이 주축을 이루어, 독립성보다는 기존 구조를 재생산할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정부는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요금 인상 등 책임을 위원회에 전가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시장 독점자는 로비와 정보 제공을 통해 제도를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 과정은 오히려 전력시장 관리에 있어 현행 제도와 비교해 민주적 통제 가능성만 훼손시킬 수 있다. 전기요금은 국민 생활비와 직결되는 준조세적 성격을 지녀 왔으며, 이러한 특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국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적어도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짙다. 그러나 독립위원회 체제에서는 정치 개입을 차단한다는 명분 아래 오히려 국민 통제력이 줄어들고, 주식시장에 상장된 준상업 기관으로서의 ㈜한국전력과 폐쇄된 일부 네트워크의 영향력만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요컨대 전력 도·소매 시장이 성숙하기 전 현 시점에서 전기위원회 독립화는 제도적 상징성은 있을지 몰라도 의도했던 실질적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 오히려 한전의 독점력이 강화되는 역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자율규제기구라는 배를 띄우기에 앞서 소매시장 개방, 민간 경쟁 촉진, 정보 공개 강화 등 시장 기반을 다지는 넓은 바다부터 조성해야 한다. 우리는 그 필요조건 하나하나조차 충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지 않던가? 선행조건도 충족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추진한다면, 그것은 정부의 민주적 통제가 약화되는 동시에 기존의 독점자만 간접적으로 강화되는 부작용만 남길 것이다. 정권과 무관한 자생력을 독점에 선물하면서 독립이라 부르는 순간, 속칭 개혁이 양두구육(羊頭狗肉)으로 전락할까 걱정된다. 유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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