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연구회가 개최한 '중동발 에너지 위기, 다시 생각하는 에너지 안보' 정책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전지성 기자
미국·이란 충돌로 촉발된 중동 에너지 위기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에너지 전문가들이 “에너지 안보를 다시 국가 핵심 전략으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현실화되면서, 석유·가스·석탄 등 전통 에너지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탄소중립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전력산업연구회는 7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중동발 에너지 위기, 다시 생각하는 에너지 안보'를 주제로 정책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은 개회사에서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AI 확산, 관세전쟁, 중동 사태까지 숨 돌릴 틈 없이 세계 질서가 급변하고 있다"며 “지정학적 리밸런싱 속에서 에너지 안보를 어떻게 새롭게 정의하고 대응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여전히 과거 방식의 최고가격제 카드만 꺼내고 민간 손실 보상에는 소극적"이라며 “에너지 정책의 본질적 변화와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현제 에너지경제연구원장도 축사를 통해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석유·가스 등 전통 에너지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났지만, 이번 중동 사태를 계기로 에너지 안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0%를 넘는 구조로 국제유가와 LNG 가격 급등 시 무역수지와 산업 경쟁력 모두 직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번 사태는 단순 지역분쟁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과 산업 전반을 흔드는 위기"라고 진단했다.
첫 번째 발표를 맡은 김덕일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교수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지역 전쟁이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위기"라고 규정했다.
김 교수는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 사우디·UAE 송유관까지 모두 잠재적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며 “이란은 후티 반군 등 '저항의 축'을 활용해 해상 물류와 원유 공급망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카드를 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가뿐 아니라 보험료·운송비·공급망 비용까지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며 “에너지가 곧 안보라는 사실을 전 세계가 다시 체감하게 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또 “미국의 중동 전략 변화와 중국 견제, 이란 핵 문제, 사우디·이스라엘·이란 간 지역 패권 경쟁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며 “단기간에 끝날 사안이 아니라 장기적 지정학 리스크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발표에 나선 정용헌 전 아주대 교수는 에너지 시장 측면에서 이번 위기의 파급력을 집중 분석했다.
정 교수는 “현재 시장은 아직 재고로 버티고 있지만 유효 재고가 임계 수준 아래로 내려가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며 “유효 재고가 10억배럴 이하로 떨어질 경우 국제유가는 배럴당 150~180달러까지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과거 오일쇼크는 생산 차질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호르무즈 병목이라는 '시스템 리스크'가 핵심"이라며 “원유뿐 아니라 LNG·항공유·비료·헬륨·석유화학 원료까지 동시 충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유·LNG 설비와 항만 인프라 파괴가 상당수 발생해 복구에도 장기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며 “향후 에너지 위기는 단순 생산 문제가 아니라 물류·운송·사이버보안까지 결합된 복합 위기로 전개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토론에서는 에너지 전환과 안보 간 충돌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손용호 강릉에코파워 부사장은 “에너지 전환 시대에도 수급 안정은 가장 우선돼야 할 가치"라며 “석탄발전을 무조건 '악의 축'처럼 몰아가는 접근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안정적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LNG와 석탄 등 기존 발전원의 역할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며 “특히 LNG 발전은 데이터센터와 결합해 전력 공급과 냉열 활용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도 “에너지 전환은 장기적 과제지만 에너지 안보는 단기·중기·장기를 가리지 않고 항상 확보돼야 하는 전략 과제"라며 “에너지 전환과 안보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경우 결국 수급 안정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 시민들은 아직 에너지 위기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는 재고와 정부 가격 통제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며 “현실은 석유·가스 수요가 생각보다 빠르게 줄지 않고 있고, 공급망 투자 역시 계속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중동 사태가 단순한 국제 분쟁이 아니라 한국 산업과 에너지 정책 전반을 다시 점검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장기 목표와 함께, 현실적인 에너지 안보와 공급망 안정 전략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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