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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상장은 어느새 한국 에서 금기어가 됐다. 계기는 분명하다. LG화학의 물적분할과 LG에너지솔루션 상장이다. 당시 LG화학 주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평가받던 배터리 사업이 분리 상장됐고, 주가는 한때 100만원을 웃돌던 수준에서 반년 만에 반토막났다. 투자자들은 '우리가 키운 사업의 과실을 다른 투자자들이 가져갔다'고 느꼈다. 이후 중복상장은 개인투자자들에게 사실상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제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이재명 대통령이 “송아지 밴 암소를 또 시장에 내놓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중복상장 원칙 금지' 방침을 밝힌 것도 이런 여론을 반영한 결과다. 최근 만난 기업 관계자들은 자회사 상장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했다. “괜히 정부에 낙인찍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상장을 검토하던 기업은 계획을 미루고 있다. 증시는 활황인데 IPO 시장은 좀처럼 온기를 찾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모든 중복상장은 막아야 하는가. 벤처투자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한국에서 IPO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투자금 회수 수단이다. 그런데 상장 문은 좁아지고 국내 M&A 시장은 충분히 크지 않다. 회수시장이 막히면 결국 스타트업과 신산업으로 흘러갈 자금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복상장 규제가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성장 자본의 흐름까지 위축시키고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결국 논쟁의 핵심은 중복상장 자체가 아니다. 분할 과정에서 만들어진 가치를 누가 가져가느냐다. LG에너지솔루션 사례에서 투자자들이 분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터리 사업이 적자를 내고 대규모 투자가 필요했던 시절 위험을 부담한 것은 LG화학 주주들이었다. 그런데 사업이 성장해 상장 단계에 이르자 그 과실이 신규 투자자들에게 배분된다고 느낀 것이다. 중복상장 논란은 상장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 배분의 문제에 가깝다. 그렇다면 예외는 어떻게 정해야 할까. 결국 기준은 주주가치 훼손 여부가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여기서부터 또 다른 논쟁이 시작된다. 무엇이 주주가치인지, 주주 동의는 어느 수준이어야 하는지, 어떤 보호장치가 충분한지에 대한 답은 아직 없다. 중복상장 논쟁에는 정답이 없다. 투자자 보호와 성장 자금 공급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몇몇 실패 사례를 이유로 중복상장 자체를 사실상 금지하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허용과 금지의 이분법이 아니라, 기존 주주가 정당한 몫을 보장받으면서도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교한 기준이다. 그 답은 결국 시장의 경험과 사회적 논의를 통해 만들어질 것이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2026-06-15 14:39 최태현 기자 cth@ekn.kr

코스피지수가 8000선을 돌파하는 등 국내 증시에 유례없는 훈풍이 불고 있다. 정부는 이 기세를 몰아 '외국인 통합계좌(Omnibus Account)' 도입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외국인 자금을 적극적으로 유인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하지만 화려한 거대 담론의 이면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소외감을 토로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생존의 기로에 선 중소형 증권사들이다. 최근 삼성증권이 글로벌 대형 온라인 증권사인 인터랙티브 브로커스(IBKR)와 손잡고 통합계좌 서비스를 개시한 것은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부 대형사는 이미 수년 전부터 글로벌 브로커와 긴밀히 협력하며 시스템을 구축해왔고, 그 결과로 '외국인 자금 유입'이라는 실질적인 열매를 가장 먼저 따내고 있다. 반면 대다수 중소형 증권사들에 이번 제도 변화는 '남의 잔치'에 내야 하는 비싼 축의금과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외국인 통합계좌 체제의 구조적 소외다. 외국인 투자자는 본인이 원래 쓰던 현지 증권사를 통해 주문을 내는데, 이 주문을 받아낼 국내 파트너로 선택받으려면 막강한 자본력과 IT 인프라,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해외 대형 브로커들이 파트너를 고를 때 국내 중소형 증권사를 우선순위에 둘 리 만무하다. 결국 중소형사 입장에서는 수익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한 사업을 위해 인프라 비용만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 하자니 흐름에 역행하는 것 같고, 하자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가뜩이나 국내 거래 비중이 작고 수익성이 악화된 중소형사들에 이러한 비용 가중은 치명적이다. 금융당국이 보고 주기를 간소화하는 등 규제 문턱을 낮췄다고는 하나,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존 전산망을 월 단위 데이터 축적 체계로 전환하고 검증 시스템을 전면 재설계하는 과정 자체가 인력이 부족한 중견 업체들에게는 숨 가쁜 과업일 뿐이다. 정부가 증시 활성화를 위해 속도를 내는 사이, 현업의 현실적인 보폭 차이는 무시된 채 '강요된 속도전'만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분명 옳다. 그러나 선진화가 특정 대형사들만의 리그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대형사들이 선제적으로 시장을 선점하는 동안 중소형사들이 인프라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도태된다면, 의 다양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증시 활성화를 원한다면 외국인 유입이라는 결과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중소형사들의 비용 부담을 완화하거나 상생할 수 있는 세밀한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 낙수효과가 없는 개방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아닌 가혹한 생존 숙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2026-05-15 11:02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