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유니폼과 환한 미소, 캐리어를 끌며 공항을 누비는 우아한 발걸음. 으레 '객실 승무원' 하면 흔히 떠오르는 고정관념들이다. 하지만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 소재 플렉스 체대입시 강서교육원에서 진행된 여객기 객실 승무원 채용 모의 행사장의 풍경은 이런 고정관념을 내팽개치게 만드는 그야말로 항공기 승무원이 되기 위한 처절한 체험 현장이었다. 이번 행사 프로그램은 이스타항공이 에너지경제신문을 포함한 주요 언론사 10곳의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객실 승무원 채용 체험 기회로 마련됐다. 실제로 객실 승무원 지원자 없이 오로지 기자들만의 체험을 위해 기획된 모의전형이었음에도 그 강도와 긴장감만큼은 100% 실전을 방불케 했다. 이스타항공이 출입기자들을 체육관으로 부른 의도는 명확했다. 객실 승무원은 대중들에게 외모 위주로 선발된다거나 서비스업 종사자라는 만연된 인식을 불식시키고 승객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기내 안전요원'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강조하고 알리기 위함이었다. 이스타항공은 이날 “기내 안전요원으로서 업무를 완벽히 수행해내기 위해서는 체력과 판단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기내 안전요원으로서 필요한 역량을 갖춘 인재인지를 채용 과정에서 미리 확인하고자 미국 컨설팅업체 머서(Mercer)와 함께 오랜 기간 전형을 개발했다"고 소개했다. ◇'서비스'보다 '안전'이 우선…전형 대수술 거친 이스타항공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3월 승무원 전형 전면개편을 선언하고 새 전형을 정식 도입했다. 개편 전 '서류 평가→실무 면접→임원 면접→ 채용 검진'이던 4단계 전형을 '1단계 서류 평가→2단계 상황 대처 면접→3단계 체력시험→4단계 임원 면접→5단계 채용 검진'의 5단계로 세분화하고 강화했다. 서류 평가 합격자 비율을 기존 대비 약 2배 늘려 더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대신 강도 높은 체력과 실전상황 대처 능력을 현장에서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취지였다. 특히, 데시벨 측정 등을 포함한 체력시험을 항공사가 직접 체육관을 빌려 시행하는 것은 국내 항공사 중 이스타항공이 최초이자 유일하다. 이스타항공 이선희 객실승무운영팀장과 김재원 객실훈련팀장은 “이 같은 채용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에 입사해 현재 현역으로 활동 중인 승무원들 역시 매년 리커런트(정기 훈련)를 통해 엄격하게 적격 관리를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날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1시간 진행된 체력시험은 우창완 객실승무운영팀 사무장과 안하영 승무원의 통제하에 부상 방지를 위한 꼼꼼한 스트레칭과 함께 시작됐다. 비정상 상황에서 지치지 않고 승객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실제 객실 승무원 훈련팀 조교 등이 여러 차례 시범 운영을 거쳐 선정한 △암 리치(Arm Reach) △악력 △데시벨 △평형성 △배근력 △20m 왕복 오래달리기 등 6개 종목으로 구성됐다. ◇눈 감고 버티기부터 왕복 오래달리기까지…10명 중 1명 살아남은 지옥의 체력장 첫 관문은 팔 길이를 측정하는 '암 리치'. 이스타항공의 서류전형에는 키를 기재하는 칸이 없다. 이미지 요소로서의 키는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기내 위급상황 시 구급장비나 소화기 등이 비치된 오버헤드 빈(머리 위 선반)에 팔을 뻗어 필요한 물품을 꺼낼 수 있어야 하기에 암 리치 측정은 필수다. 취지에 맞게 신발을 신은 채 까치발을 드는 것도 전면 허용된다. 신장 176㎝의 에너지경제신문 기자는 손을 뻗은 결과 무난히 기준선을 넘겨 가볍게(?) 통과했다. 또, 락커룸 안에서 실시된 '데시벨' 테스트도 무난히 소화했다. 이는 기내 위급의 패닉 상황에서 승객들이 우왕좌왕하며 당황해 할 때 큰 소리로 강하게 구호를 외쳐 대피를 돕고 현장을 통솔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기자는 비상탈출훈련 구호인 “발목 잡아! 머리 숙여! 자세 낮춰!"라고 2회 연달아 고함을 질렀다. 측정 결과는 119.1dB로 록 콘서트장의 굉음과 맞먹는 쩌렁쩌렁한 성량으로 시원하게(?) 합격선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모의체험은 딱 여기까지였다. 곧바로 '헬 게이트(Hell Gate:지옥문)'가 열렸다. '평형성' 테스트부터 체험자들은 혹독한 한계에 부딪혔다. 난기류 등의 상황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평형성 종목은 눈을 감고 한쪽 다리를 든 채 팔을 양옆으로 뻗고 얼마나 오래 버티기 하느냐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시야가 차단되자 불과 몇 초 만에 평형감각을 잃고 몸이 좌우로 허우적댔고, 이내 발이 바닥에 닿아 가차없이 '탈락' 판정을 받았다. 이어 무거운 항공기 비상구 문을 개방하거나 노약자·아이·부상자 등 인력을 부축할 때 강한 힘이 요구되는 '악력' 시험 차례였다. 스마트기기의 화면이 하늘로 향하게 쥐고 겨드랑이를 뗀 채 3초 간 꽉 찬 캐리어를 한 손으로 잡고 든다는 생각으로 있는 힘, 없는 힘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쥐어짰다. 기자는 왼쪽 32.3㎏, 오른쪽 29.6㎏을 기록해 최고 32.3kg으로 측정됐으나 합격 기준치 미달로 역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충격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인 '배근력' 역시 만만치 않았다. 데드 리프트를 하듯 허리를 30도 굽히고 수직으로 무거운 체인을 당겼으나 역부족. 역시 합격선에 미치지 못해 '불합격' 처리됐다. 마지막 항목은 체력 소모의 끝판왕인 '20m 왕복 오래달리기'였다. 셔틀런 기계음에 맞춰 20m 거리를 반복해서 뛰는 종목으로 지구력을 측정하기 위해 시행한다는 게 이스타항공의 설명이었다. 꼭 비상 상황뿐만 아니라 장시간 서서 일해야 하는 등 많은 체력을 요구하는 객실 승무원 업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도 사전에 체크해야 하는 필수역량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왕복 25회차에서 점차 짧아지는 신호음 간격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더 뛸만 했다. 아뿔싸 26회차에 교관으로부터 부정출발 지적을 받고 아쉽게도 '아웃(불합격)의 고배'를 마셨다. 지하 체육관은 체험 기자들의 거친 숨소리와 열기, 그리고 땀방울로 가득 찼다. 에너지경제신문 기자를 포함한 10명은 전 항목을 마치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날 참가자 10명 중 6개 체력시험을 모두 통과한 합격자는 단 1명에 불과할 정도로 강도가 무척 높았다. ◇“학원에서 준비해온 듯한 모범 답안은 안 통한다"…압박 질문 쏟아진 '상황 대처 면접' 체육관에서 체력을 소진한 기자들은 체육관에서 약 5분 거리에 있는 이스타항공 마곡동 본사로 이동했다. 잠시 숨을 돌리는 것도 잠깐 이어 오후 2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 2단계인 '상황대처 면접'이 기다리고 있었다. 과거 이스타항공의 실무면접은 타 항공사와 다를 바 없는 단순한 자기소개와 질의응답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스타항공은 “승무원 준비생들이 학원과 과외 등을 통해 면접에서 모두 천편일률적인 답변을 하기 때문에 진짜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며 새로운 전형 도입의 배경을 설명했다. 객실 승무원들은 반복 훈련을 통해 웬만한 비상상황 대처 방법을 다 익히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 기내나 일상생활에서는 미리 예측하기 어려운 당황스러운 변수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처음 접하는 상황 속에서도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우선순위 파악 능력과 판단력, 그리고 순발력을 심층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롤 플레잉(Role Playing) 방식의 면접을 전격 도입한 것이다. 이날 강태영 인사팀장이 주관한 면접에서 제시된 '그룹 미션'은 사내 세대 갈등 해결이었다. 6명이 한 조를 꾸려 단 8분 동안 '메신저 소통과 칼퇴근을 중시하는 20대 신입 사원들'과 '대면 보고와 잦은 회식을 선호하는 50대 부장들' 간의 틈을 메울 방안과 회식 룰 3가지를 도출해야 했다. 기자는 조원들과의 토의 내용을 취합해 발표자로 나서 “저녁 회식을 줄이고 점심 회식을 도입하며, 저녁 회식을 하더라도 '1차에서 끝내기, 한 가지 주종 통일, 9시 이전 종료'라는 3가지 명확한 룰을 제안하겠다"고 제시했다. 또한, 대면 보고의 필요성도 충족시키기 위해 회식자리에서 자연스러운 소통을 유도하고, 회식 당일에는 평소보다 30분에서 1시간 일찍 퇴근하도록 해 양측이 양보할 수 있는 절충안을 내놓겠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이어지는 과정은 말 그대로 진땀을 빼는 압박면접의 과정이었다. 강태영 인사팀장은 기자를 포함한 조원들에게 실제 업무 중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질문을 던졌다. “동기가 작성해 상사에게 제출한 최종 보고서에 치명적인 수치 오류가 있습니다. 동기는 자리를 비워 연락이 안 되는데 상사는 5분 뒤 이 잘못된 보고서로 경영진과 중요한 회의에 참석해야 합니다. 동기의 평판을 지키면서 상사가 잘못된 정보로 회의하는 것을 어떻게 막겠습니까?" 기자는 망설임 없이 “생성형 AI 등을 적극 활용해 5분 안에 수치를 빠르게 재수정하고, 상사가 올바른 자료로 무사히 발표하게 서포트한 뒤 동기에게는 나중에 이실직고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강 팀장은 “상사가 새로 갖다준 보고서를 보고 '왜 이걸 이제야 말하냐'며 예민하게 화를 낸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며 날카로운 꼬리 질문을 찔러넣었다. 기자는 “일단 상사에게 욕을 들어 먹더라도 당장의 중요한 회의가 제대로 진행되는 것이 가장 우선이므로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방어했다. 이 같은 꼬리물기 압박의 의도에 대해 강 팀장은 “제시한 답변 자체가 정답인지 오답인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AI를 활용하겠다는 임기응변 역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훌륭한 과정의 하나일 뿐"이라며 “실제 기내에서는 옆 사람이 누구든 신경 쓰지 않고 매뉴얼대로 본인이 직접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돌발상황이 끊임없이 발생하는데, 이런 극한의 압박 속에서도 자신만의 명확한 원칙과 가치관에 따라 얼마나 냉정하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니폼 재킷 벗고 카디건 입다…멈추지 않는 안전 인프라 투자 이스타항공의 '안전 제일주의'는 비단 채용 전형에만 그치지 않는다. 기내 비상상황 발생 시 객실 승무원들이 제약 없이 훨씬 더 빠르고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불편했던 기존 유니폼 재킷 대신 활동성이 뛰어난 '카디건'을 정복으로 착용할 수 있게 규정을 파격적으로 변경했다. 아울러 경인여자대학교에 '이스타항공 승무원 훈련전용 항공안전 실습실'을 조성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해당 실습실은 이스타항공의 주력 기종인 보잉 737과 비슷한 크기의 목업(Mock-up·실물 모형)을 비롯, △비상 착수 수영 시설 △비상 탈출 슬라이드 △화재 진압실 △이론·실습 강의실 등으로 완벽히 구성돼 있어 실전과 다름없는 강도 높은 교육이 이뤄진다. 반나절 동안 땀범벅이 돼 진행된 모의전형을 체험한 결과 '4개 종목 과락'이라는 쓰라린 성적표를 받아든 기자는 다음날 아침 신체 전반에 뻐근함을 느껴야했다. 그럼에도 이스타항공의 모의전형 체험이야말로 여객기 승무원들이 매일 하늘 위에서 감당하고 있는 묵직한 책임감의 무게일 것이라는 생각에 공감했다. 안전을 향한 이스타항공의 뚝심과 그 엄격한 문턱을 넘어 하늘을 날고 있는 승무원들의 존재감이 새삼 듬직하게 느껴졌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