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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강찬수 기자 입니다.
  • 기후에너지부
  • kcs25@ekn.kr
2070년 세계 인구 120억 정점에 도달…“현재도 수용가능 수준 초과”

현재 82억3000만명 수준인 지구 인구가 2070년 무렵 120억 명에 이를 때까지 계속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또, 지구 생태계가 장기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세계 인구 규모는 지금 인구의 약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됐다. 이미 1970년부터 세계 인구가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초과했다는 주장이다. 호주 플린더스대학교 코리 J. A. 브래드쇼 교수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환경 연구 회보 (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같은 주장을 내놓았다. 브래드쇼 교수 연구팀의 인구 예측은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들의 예측과는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유엔 등 여러 연구자들은 세계 인구가 100억 명 수준에서 정점을 찍고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연구팀은 1800년 이후 인류 인구 데이터를 분석해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두 가지 기준, 즉 '지속 가능한 수용 능력'과 '이론적 최대 수용 능력'을 구분해 제시했다. 그 결과, 환경 훼손 없이 안정적인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인구 규모는 약 24억~25억 명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인구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1930년 전후의 세계 인구 규모(23억 5000만명)와 유사하다. 이 수치를 넘어설 경우 세계 인류가 소비하는 자원이 지구의 재생 능력 범위를 넘어선다는 의미다. 반면, 리커 로지스틱 모델(Ricker logistic model)을 적용했을 때, 단순히 출생과 사망이 균형을 이루는 이론적 최대 인구는 2070년 무렵 약 117억~124억 명으로 추정됐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물리적 한계를 직접 계산한 값이라기보다 인구 증가율이 0이 되는 지점을 통계적으로 추정한 '정점'에 가깝다. 연구팀은 “증가가 멈추는 규모 = 최대 수용 능력"이라는 생태학적 정의를 따라 '이론적 최대 수용 능력'이라고 표현했다. 이 경우는 화석연료 사용과 자원 고갈을 전제로 한 '비지속적 상태'라는 점에서 연구팀은 현실적인 기준으로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특히 논문은 “지속 가능한 인구는 최대 인구보다 훨씬 낮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현재 인류는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선 상태라고 진단했다. ◇1970년부터 '생태 적자'…현재는 지구 1.7개 소비 브래드쇼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인류는 1970년을 기점으로 지구의 생물 용량(biocapacity)을 초과하기 시작했다. 이는 인류가 자연이 매년 재생할 수 있는 자원보다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는 의미로, 현재 인류의 소비 수준은 '생태발자국' 개념으로 볼 때 지구 약 1.7개가 있어야 유지 가능한 수준으로 분석됐다. 생태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은 인간이 소비하는 자원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토지와 배출하는 폐기물·오염물질을 정화하는 데 필요한 토지(생태계)를 면적으로 환산한 지표다. 연구팀은 생태계 발자국이 지구 1개를 초과한 이러한 상태를 사실상 '생태적 파산(ecological overshoot)'으로 규정하면서, 현재의 경제·에너지 시스템이 미래 자원을 미리 끌어와서 사용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 발견 중 하나는 인구 성장 메커니즘의 구조적 변화다. 연구팀은 1800년부터 1940년대까지는 인구가 증가할수록 성장률도 높아지는 '촉진 단계(facilitation phase)'가 지속됐다고 분석했다. 이는 산업화와 기술 발전, 화석연료 활용이 인구 증가를 가속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이 관계는 붕괴되었고, 1962년을 전후로 인구가 증가할수록 성장률이 낮아지는 '감속 단계(negative phase)'로 전환됐다. 이러한 변화는 출산율 감소, 사회경제적 변화, 자원 제약, 환경 압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기후변화의 핵심 변수는 인구 규모" 이번 연구는 인구 증가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한 점에서도 주목된다. 분석 결과, 지구 기온 상승과 생태 발자국 증가, 온실가스 배출량 변화는 1인당 소비보다 전체 인구 규모와 더 강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즉, 기술 효율 개선이나 소비 절감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인구 규모 자체가 기후 변화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특히 화석연료가 자원 제약을 일시적으로 완화시키면서 인구 증가를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기후 위기를 심화시키는 구조적 모순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이 모델을 통해 분석한 결과, 세계 인구는 2067년에서 2076년 사이 약 117억~124억 명 수준에서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후에는 성장률이 0에 수렴하면서 인구가 정체되거나 감소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연구팀은 이러한 정점 도달 이전부터 이미 환경 수용 한계를 초과한 상태이기 때문에 인류 사회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규모 축소(societal downscaling)' 압력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인구가 아니라 시스템"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지구 생태계의 한계를 초과한 상태에서 인류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규모를 조정해 나갈 것인지, 즉 어떻게 '질서 있는 전환'을 이룰 것인지 묻고 있다. 연구팀은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단순한 인구 증가나 과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두 요소가 결합된 총량의 문제로 규정한다. 특히 환경 변화의 상당 부분이 1인당 소비보다 전체 인구 규모에 의해 더 잘 설명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효율 개선 중심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 자원 사용의 효율을 높이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인구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소비 구조와 생산 방식, 에너지 시스템 전반의 재설계 역시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향후 인류는 기후 변화와 자원 제약에 의해 전쟁과 기아 같은 비자발적인 축소를 겪을 것인지, 아니면 에너지 전환과 소비 구조 개편, 인구 안정화 등을 통해 점진적이고 관리된 축소로 이행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이다. 연구팀은 현재 인류는 단순한 인구 문제가 아니라 자원 이용 방식과 사회경제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토지, 물, 에너지, 생물다양성 등 자원 이용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사회문화적 전환 없이는 현재 인구는 물론 미래 인구도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저출산은 위기가 아니라 전환 신호일 수도" 연구팀은 한국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동아시아의 인구 변화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함의를 던지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고, 전통적으로는 저출생을 경제·사회 위기로 해석해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의 관점에서는 인구 감소가 오히려 지구의 수용 능력에 맞춰가는 '적응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소득 국가일수록 먼저 인구 성장 둔화 단계에 진입했다는 점은 한국의 초저출생 현상이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라 에너지·자원·환경 구조 변화와 맞물린 장기적 전환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지속가능한' 인구 규모에 맞춰 에너지 소비, 산업 구조, 복지 체계를 재설계하는 것이 한국의 과제라면 이 과제를 해결하는 데 이번 연구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2028년 지속가능성 의무 공시…30조 자산기업부터 시작[환경포커스]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는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 도입을 위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이행지원 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한국회계기준원(KAI)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주최하고 금융위원회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후원했다. 세미나에서는 정부의 단계적 공시 의무화 로드맵과 함께 지난 2월 공개된 구체적인 공시 기준에 대한 설명이 진행됐다. 발표에서는 2028년 초대형 상장사를 시작으로 공시 의무를 확대하는 일정과 더불어,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방식, 기후 시나리오 분석, 재무제표와의 연계성 확보 등 기업 실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핵심 사항들이 제시됐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단순한 공시 대응을 넘어 경영 전략과 내부 관리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기준실 유하은 3팀장은 “이번 공시기준서는 기업이 여건과 능력에 맞춰 공시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넓혀준 대신 공시 내용에 대해서는 책임이 따르도록 한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세미나 발표 내용을 질문과 대답 형태로 정리했다. Q. 지속가능성 공시는 언제부터 시작되고, 어떤 기업부터 적용되는가? 전체 확대 일정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는 2028년(2027회계연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최초 적용 대상은 연결자산총액 30조원 이상인 초대형 코스피 상장사(58개사, 약 6.9%)이고, 이후 단계적으로 범위가 확대된다. 정책 방향은 초기 충격을 줄이면서 제도를 안착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2030년 이후에는 전체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될 예정이기 때문에, 현재 대상이 아닌 기업도 사실상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공시 의무화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투자자 커뮤니케이션 구조의 변화라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 모든 기업에 영향을 미친다." Q. 공시는 어디에 제출하고, 재무제표와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기업 내부 프로세스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지속가능성 공시는 원칙적으로 재무제표와 동일한 일반목적 재무보고서의 일부로 제공돼야 한다. 즉, 재무정보와 별개의 보고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정보 패키지로 취급된다. 다만 초기 단계에서는 기업 부담을 고려해 거래소 공시 형태로 먼저 시행한 뒤, 일정 기간 이후 사업보고서에 포함되는 법정공시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공시는 재무제표와 동일한 시점에 제출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기업은 재무 결산 일정과 온실가스 배출량 등 비재무 데이터 확정 시점을 맞추는 구조적 변화를 겪게 된다." Q. 공시는 어떤 구조로 작성해야 하는가? 핵심 구성 요소는 무엇인가? “공시는 거버넌스, 전략, 위험관리, 지표 및 목표라는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거버넌스에서는 이사회와 경영진이 지속가능성 이슈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설명하고, 전략에서는 해당 이슈가 사업모형과 가치사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기술한다. 위험관리에서는 식별·평가·관리 체계를 보여주고, 지표 및 목표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같은 정량적 성과와 목표 달성 수준을 제시한다. 중요한 점은 이 네 요소가 서로 연결된 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체크리스트식 공시가 아니라 기업의 의사결정 체계를 설명하는 보고가 요구된다." Q. 어떤 정보를 공시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가? '중요성(Materiality)'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공시 대상 정보는 투자자 등 주요 이용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즉, 해당 정보가 기업의 현금 흐름, 자금조달 능력, 자본비용 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면 중요 정보로 간주된다. 기업은 기준서뿐 아니라 산업 관행, 글로벌 프레임워크 등을 참고해 정보를 식별하고, 단계적으로 선별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중요성 판단은 일회성 작업이 아니라 매 보고기간마다 재평가해야 한다. 중요한 정보가 없다고 판단해 공시를 생략하는 경우에도, 생략하게 된 그 판단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Q. 지속가능성 정보와 재무제표는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가? “지속가능성 공시는 재무제표와 강하게 연결돼야 한다. 동일한 데이터와 가정을 가능한 한 일관되게 사용해야 하고, 차이가 발생할 경우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또한 기후 변화나 환경 규제와 같은 요인이 자산 손상, 투자 계획, 현금 흐름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현재와 미래 관점에서 설명해야 한다. 가능하면 정량적 정보로 제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측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질적 설명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핵심은 지속가능성 정보가 재무 성과를 설명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Q. 온실가스 배출량은 어떤 기준으로 산정하는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국제 기준인 온실가스 프로토콜(GHG Protocol)을 기본으로 산정한다. 스코프(Scope) 1은 기업이 직접 통제하는 배출원에서 발생하는 직접 배출이며, 스코프 2는 구매한 전기나 열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이다. 모든 배출량은 CO₂ 환산량으로 통합해 산출하게 되고, 지역 기반 방식(해당 지역 전력생산의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이 기본 공시 형태로 요구된다. 기업은 지분율 접근법 또는 통제 접근법 중 하나를 선택해 적용해야 하며, 그 선택 근거도 함께 설명해야 한다. 이는 글로벌 비교 가능성과 기업별 특수성을 동시에 반영하기 위한 구조다." Q. 기존 배출권거래제 등 국내 규제와 충돌하지 않는가? “제도 설계는 이중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되어 있다. 배출권거래제 등 국내 규제에서 요구하는 산정 방식이 있는 경우, 일정 범위 내에서는 해당 방식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기업 내에서 서로 다른 기준이 혼용될 경우에는 각각의 방식에 따라 배출량을 구분해 공시해야 한다. 또한 지구온난화지수(GWP) 등 일부 기준도 국내 규정을 따를 수 있도록 허용된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기준을 지향하면서도 국내 제도를 이미 운영 중인 기업의 실무 부담을 완화하는 절충적 구조라고 볼 수 있다." Q. 스코프 3, 즉 공급망 배출은 언제부터 공시 의무가 발생하는가? “스코프 3는 기업의 가치사슬 전반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로,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을 모두 포함한다. 원칙적으로는 15개 카테고리를 고려해 공시해야 하므로 데이터 확보 어려움이 크다. 이를 고려해 최초 적용 이후 3년간 공시가 유예되며, 2028년 적용 기업은 2031년부터 공시하게 된다. 이 유예 기간은 단순한 면제가 아니라 준비 기간으로 이해해야 한다. 기업은 이 기간 동안 협력업체 데이터 확보 체계를 구축하고, 내부 산정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Q. 기후 시나리오 분석은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가? “기후 시나리오 분석은 의무 사항이다. 기업은 기후 변화에 따른 위험과 기회에 대해 자신의 전략이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다만 모든 기업에 동일한 수준의 정교한 분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기후 위험 노출도가 높고 자원이 충분한 기업은 정량적 모델 기반 분석을 수행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질적 분석부터 시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일회성 분석이 아니라 반복적 개선 과정이라는 점이고, 매 보고기간마다 분석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Q. 모든 정보를 반드시 공개해야 하는가? “원칙적으로 중요한 정보는 모두 공시해야 하지만, 지속가능성 '기회'와 관련된 정보 중 상업적으로 민감한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공시를 생략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면제 적용 사실은 반드시 밝혀야 하고, 매 보고기간마다 계속 면제 요건을 충족하는지 재검토해야 한다. 반면 '위험' 정보는 면제 대상이 아니며 반드시 공시해야 한다. 또한 중요한 정보가 없다고 판단해 공시를 생략하는 경우에도, 단순히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판단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빌딩 벽면의 변신…전기 생산하고, 냉방 수요도 줄이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FKI타워(구 전경련회관). 지상 50층, 지하 6층 규모인 이 건물은 10년 전 미국 소재 웹사이트 아메리칸 아키텍처 닷컴이 '올해의 빌딩(Building of the Year)'에 선정되는 등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건축 관련 상을 받았다. 2013년 준공된 이 건물은 건물 일체형 태양광 발전 설비시스템을 갖춰 건물 유리벽면 전체와 옥상 부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태양광 패널은 전체 3279개로, 여기서 생산된 전력은 빌딩 조명에 필요한 전력 60~70%를 충당한다. 여름철에는 사무실 내부로 들어오는 뜨거운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최소화하고, 겨울철에는 햇빛이 잘 들어오게 하는 커튼월 시스템을 도입했다. 전 세계적으로 폭염과 전력 수요 급증이 동시에 심화되는 가운데, 건물의 '벽면'을 활용한 새로운 태양광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의 옥상 중심 태양광을 넘어, 건물 외벽 자체를 발전 설비로 전환하는 건물 파사드 일체형 태양광(building façade photovoltaics, FIPV)이 도시 에너지 시스템과 기후 대응 전략을 동시에 바꿀 수 있는 핵심 해법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과학원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기술이 단순한 재생에너지 확보 차원을 넘어 도시의 기후 회복력을 강화하는 복합적 솔루션임을 정량적으로 입증했다. ◇건물 외벽 일체형 태양광(FIPV)은 건물의 외장재 자체를 태양광 발전 기능을 가진 재료로 대체해 외벽이 곧 전력 생산 설비로 작동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는 단순히 태양광 패널을 부착하는 방식이 아니라, 건축 외피와 발전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FIPV는 콘크리트 벽면에 적용되는 불투명형 패널과 창문에 적용되는 반투명 태양광 유리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설치 과정에서는 외벽 구조 안전성, 풍하중, 내구성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한데, 전력 생산을 위한 배선과 인버터 등 전기 시스템이 함께 구축하게 된다. 또한 패널과 외벽 사이에 공기층을 두어 과열을 방지하고 단열 성능을 높이는 열 관리 설계도 중요하다. 특히 고층 건물이 밀집한 도시에서는 옥상보다 넓은 외벽 면적을 활용할 수 있어 공간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 FIPV는 건물을 단순한 에너지 소비 공간이 아니라 에너지를 생산하고 절감하는 복합적인 인프라로 전환시키는 기술로 평가된다. ◇전 세계 잠재력 732TWh… “도시 자체가 발전소로" 연구팀은 위성 기반 건물 데이터와 3차원 시뮬레이션을 결합해 전 세계 FIPV 잠재력을 분석했다. 그 결과, 현재 기술 조건에서 FIPV는 연간 약 732.5TWh(테라와트시, 1TWh=10억 k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에 300kWh의 전력을 사용하는 가구를 기준으로, 2억 가구 이상이 연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다. 연구팀은 “이는 단순히 새로운 발전원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내부에서 에너지를 '생산-소비'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한다. 특히 건물 외벽 면적은 옥상보다 훨씬 넓기 때문에, 기존 태양광의 공간 제약을 근본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FIPV는 일반 태양광과 달리 직사광보다 산란광(diffuse radiation)에 더 크게 의존하는 특성을 보여, 고층 건물이 밀집된 도시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전력 생산 + 냉방 절감… “에너지 수요 자체를 줄인다" 이 기술의 핵심은 단순 발전이 아니다. FIPV는 건물 외피 역할을 수행하며 동시에 차양(shading)과 단열(insulation) 기능을 제공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연간 약 295.6TWh의 전력 절감 효과가 발생하는데, 이는 건물 전력 사용량의 평균 8.1%를 줄이는 수준이다. 건물 외벽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은 태양의 직사광선을 차단해 실내로 열이 들어오는 것을 줄이고, 동시에 추가적인 열저항층 역할로 냉방 부하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특히 폭염 시기에 중요하다. 냉방 수요가 급증하는 순간, FIPV는 전력 생산과 수요 억제를 동시에 수행해 전력망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이중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2050년 최대 37.7Gt 감축… “작은 온도, 큰 의미" FIPV가 본격적으로 확산할 경우 기후변화 완화 효과도 상당하다. 논문에 따르면 2050년까지 누적으로 최대 37.7Gt(기가톤, 1Gt=10억톤)의 이산화탄소(CO₂), 377억톤을 감축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1년에 배출하는 전체 온실가스의 양이 CO₂로 500억 톤인 점을 고려하면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연구팀은 이같은 감축으로 지구 온난화를 약 0.052°C 억제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0.05°C라는 수치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기후 시스템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기후 임계점(tipping point)에 도달하는 시점을 지연시키는 '시간 확보' 효과로 해석된다. ◇경제성: “비싸지만 결국 이익"… 80% 지역에서 순지출 감소 FIPV의 가장 큰 논쟁은 경제성이다. 실제로 균등화 발전 단가(LCOE)는 kWh당 약 0.147달러로, 대규모 태양광(약 0.044달러)보다 높은 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총 비용'이 아니라 '총 효과'다. 연구 결과, 전 세계 도시의 80% 이상에서 생애 주기를 통해 지출이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력 생산과 냉방 부하 감소 효과를 합산했을 때, 시스템 수명(25년) 동안 전체적으로 비용이 절감된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25년을 기준으로 평균 내부수익률(IRR)은 세계 평균이 약 6.45%로 나타났는데, 이는 안정적인 투자 수익률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일부 지역(서유럽, 남아시아, 브라질)은 15%를 초과해 매우 빠른 자금 회수와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냉방 절감이라는 '보이지 않는 수익'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즉, FIPV는 발전 설비이면서 동시에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건축 자재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좁은 국토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이 연구는 특히 한국과 같은 국가에 전략적 의미가 크다. 한국은 좁은 국토에 인구 밀도가 높고, 고층 건물이 밀집된 도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조건은 전통적인 대규모 태양광 확대에 불리하지만, FIPV에는 오히려 유리하다. 논문에 따르면 한국의 FIPV 잠재력은 연간 약 10.7TWh로, 세계 10권 내에 들어간다. 한국은 특히 ▲공간 제약 해결: 옥상 대신 벽면을 활용함으로써 토지 문제를 회피할 수 있고, ▲도심형 분산 전원 구축: 도심에서 직접 생산·소비가 가능해 송전망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폭염 대응 효과: 여름 냉방 수요가 큰 한국에서 에너지 절감 효과를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 다만 다만 한계도 존재 한다. 한국은 중위도 기후로, FIPV 효과가 열대 지역보다 다소 제한될 수 있다. 특히, 겨울철에는 태양열 유입이 줄어들어 난방 수요를 늘리는 방향을 작용, 순절감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가스 및 지역난방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이러한 부정적 효과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된다. ◇“발전소가 아니라 도시 인프라의 재정의" 이번 연구는 FIPV를 단순한 태양광 기술이 아니라, 에너지·건축·기후 대응이 결합된 '통합 인프라'로 정의한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를 줄이며, 도시 열섬을 완화하고, 탄소를 감축하는 복합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특히 정책적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초기 투자비 절감을 위한 세제 혜택, 탄소배출권 보상, 도시 설계 인센티브 등이 결합될 경우 FIPV는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과거 30년 배출한 온실가스 51조 달러의 경제 피해 유발

과거에 개인과 기업, 국가 단위에서 배출한 탄소가 이미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켰고, 미래에도 대기 중에 남아서 훨씬 큰 손실을 발생시킬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특히 1990~2020년 사이에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현재까지 51조 달러(7경7000조원) 이상의 경제 피해를 유발했고, 이렇게 배출된 온실가스가 향후 2100년까지 지금까지 피해의 10배를 유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도어(Doerr) 지속가능성대학원 연구진은 최근 '네이처'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과거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현재와 미래 경제에 미치는 피해를 화폐 단위로 정량화하는 통합 프레임워크를 제시했다. 개인과 기업,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 책임을 구체적으로 따진 이번 연구의 결론은 기후변화 논의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탄소는 부채다"…미래까지 이어지는 경제적 책임 연구진은 탄소 배출을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 피해를 발생시키는 '경제적 부채'로 규정했다. 이 프레임워크에 따르면, 과거 배출로 이미 발생한 손실보다, 해당 배출이 미래에 초래할 손실이 최소 10배 이상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후변화가 단발적 충격이 아니라 경제 성장률 자체를 지속적으로 낮추는 구조적 요인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재의 배출은 미래 경제에 대한 일종의 '지연된 비용 청구서'인 셈이다. 논문의 분석에 따르면 개인의 소비 행동 역시 구체적인 경제적 피해로 환산된다. 특히 2022년 기준 개인 전용기 사용으로 인한 탄소 배출량을 분석한 결과,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창업자),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 테일러 스위프트(팝스타), 플로이드 메이웨더(복서), 제이 지(래퍼) 같은 인물이 상위권에 포함됐다. 이들은 모두 개인 전용기 사용으로 인해 오는 2100년까지 각각 100만 달러(약 15억 원) 이상의 미래 경제적 손실을 유발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일반 개인의 행동에서도 구체적인 비용이 산출된다. 장거리 항공편 연 1회(10년 지속)는 약 2만5000달러, 육류 소비 지속은 수천 달러 규모 추가 피해를 유발한다. 반대로 채식 전환, 에너지 효율 개선 등은 각각 약 6000달러의 피해 감소 효과를 나타낸다. 이는 개인의 소비 선택이 단순한 생활 방식이 아니라 전 지구적 경제 손실과 직접 연결되는 행위임을 보여준다. ◇기업 책임 순위: '탄소 메이저'의 압도적 영향 기업 단위에서는 화석연료 기업들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연구는 1988~2015년 누적 배출량을 기준으로 기업별 책임을 분석했다. 주요 기업 순위 (경제적 피해 기준)를 보면, 1위은 사우디 아람코(사우디아라비가 국영 석유기업)로 2020년까지 약 3조 달러 피해를 유발했고, 2100년까지 약 64조 달러 추가 피해를 발생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엑슨모빌(미국 석유기업)은 2020년까지 약 1.6조 달러의 피해를 유발했고, 미래에도 약 29조 달러의 피해를 더 가져올 것이다. 이밖에도 가즈프롬(러시아 가스기업), 이란 국영석유회사(이란 국영석유), 페멕스(멕시코 국영석유), 인도석탄(인도 국영석탄), 쉘(글로벌 석유기업), BP(영국 석유기업), CNPC(중국 국영석유), 쉐브론(미국 석유기업) 등이 앞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기업의 공통적으로 이미 발생한 피해보다 미래 피해가 압도적으로 크다는 점이다. ◇국가별 책임 순위: 가해국과 피해국의 역설 국가 단위 분석에서는 1990년부터 2020년까지의 누적 배출을 기준으로 경제적 피해를 산출했다. 배출 책임이 큰 국가(가해국) 순위에서 1위는 미국으로 약 10조1800억 달러의 피해를 끼쳤다. 2위는 중국으로 8조7000억 달러, 3위 유럽연합(EU)은 약 6조4200억 달러, 4위 브라질은 약 3억 5500억 달러, 5위 러시아는 약 3조 2700억 달러 규모의 피해를 유발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입은 피해 규모가 국가(피해국)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했는데, 피해를 입은 규모가 약 16조 2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2위는 유럽연합으로 약 7조5700억 달러, 3위는 중국으로 6조5500억 달러의 피해를 입었다. 4위 일본은 3조8500억 달러, 5위 인도 2조8400억 달러의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은 최대 가해국이면서 동시에 최대 피해국으로 나타났다. 경제 규모가 클수록 손실의 절대 금액도 커진다는 것 특징이다. 또, 배출과 피해는 국가 간에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한국의 경우는 중위권에서 '가해국이자 피해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은 배출 책임에서 약 7200억 달러(1086조원)로 중상위권(16위)이었고, 피해 규모는 약 8300억 달러(1252조원)로 12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글로벌 배출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입은 국가이면서, 동시에 다른 국가에 유의미한 경제적 피해를 입힌 국가인 셈이다. ◇기후 문제는 이제 '정산 가능한 경제 문제' 이 연구는 기후변화를 윤리적 논쟁에서 경제적 책임 문제로 전환시켰다. 개인은 소비를 통해, 기업은 생산을 통해, 국가는 산업 구조를 통해 각각 정량화 가능한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 또한 중요한 사실은 이미 발생한 피해보다, 앞으로 발생할 피해가 훨씬 더 크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과거 탄소 배출이 미래에 초래할 경제적 손실은 이미 발생한 피해보다 10배 이상 크기 때문에, 단순히 과거의 피해를 보상하는 것만으로는 배출에 따른 전체 '기후 부채'를 결코 청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지금은 단순한 환경 대응이 아니라 미래 경제 손실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를 고려한 정책 선택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균형 잃은 지구에너지, 모든 게 무너진다

2015년 말 전 세계가 프랑스 파리에 모여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C 이내로 제한하기로 합의한 '파리 기후 협정'을 채택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현재 인류가 마주한 기후 현실은 참담하다. 파리협정의 목표 달성은 아예 불가능해 보인다. 세계기상기구(WMO) 보고서와 기후 과학 분야의 석학들이 내놓은 통찰력 있는 연구를 종합하면, 인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기후 국면에 진입해 있다. 온실가스 배출은 여전히 지구 시스템의 한계를 초과하고 있고, 온난화는 기존 예상보다 빠르게 가속화하고 있다. 인류에게 '오버슈트(overshoot, 목표 온도 1.5℃의 일시적 초과)'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 남은 과제는 오버슈트의 수준, 오버슈트의 기간을 얼마나 줄이느냐다. 인류는 이제 역사상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여정을 준비해야 할 상황이다. ◇가속화하는 온난화와 '지구 에너지 불균형' WMO는 지난 23일 '2025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를 통해 2015~2025년 사이 11년이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따뜻한 기간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2024년은 강력한 엘니뇨 영향으로 산업화 이전 대비 1.55°C의 기온 상승을 기록, 최고치를 경신했다. 온난화의 '속도' 역시 주목된다.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는 최근 출판된 논문에서 2015년 이후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이 연구는 자연 변동성(엘니뇨, 화산 활동, 태양 복사 변동 등)을 제거했을 때, 1980~2000년대 10년당 약 0.15~0.2°C였던 지구 기온 상승 폭이 최근 0.4°C에 근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가속화의 배경에는 '지구 에너지 불균형(Earth's Energy Imbalance, EEI)'이 있다. 영국 레딩 대학교의 리처드 P. 앨런 교수 등 75명의 과학자가 지난달 학술지 '글로벌 지속가능성 (Global Sustainabilit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22년 중반부터 2023년 중반까지 EEI는 1.9 W/m², 즉 지구 표면 1㎡당 1.9W를 흡수해 2006~2020년 평균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는 지구가 방출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태양으로부터 흡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다와 빙권: 축적되는 열과 붕괴의 신호 지구에 축적된 과잉 에너지의 약 91%는 해양이 흡수한다. WMO 보고서에 따르면, 2005~2025년 사이 해양 온난화 속도는 1960~2005년 대비 두 배 이상 빨라졌다. 이로 인해 2025년에는 전 세계 해양의 90% 이상이 최소 한 차례 이상의 해양 열파(폭염)를 경험했다. 이러한 변화는 산호초 백화, 어종 이동 등 생태계 교란을 초래할 뿐 아니라 해수면 상승을 가속화한다. 실제로 해수면 상승 속도는 위성 관측이 시작된 1993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2~2025년에는 연평균 4.75㎜에 달했다. 동시에 바다는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약 29%를 흡수하면서 산성화가 진행돼 해양 생물의 생존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 빙권의 변화 역시 급격하다. 전 세계 '참조 빙하(reference glaciers)'는 2016년 이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질량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아이슬란드와 북미 태평양 연안에서 두드러졌다. 참조 빙하란 세계 빙하 모니터링서비스(WGMS)에 매년 보고되는 전 세계 약 170개의 빙하 중에서 30년 이상의 장기적인 질량 변화 관측 데이터가 축적된 특정 빙하 그룹으로, 전 세계 빙하 상태의 변화를 파악하고 기후 변화의 영향을 평가하는 표준 지표 역할을 한다. 북극 해빙은 2025년 3월 관측 사상 가장 낮은 면적을 기록했고, 남극 해빙 역시 최근 4년간 최저치를 매년 경신하고 있다. ◇약화되는 탄소 흡수원과 생물다양성 위기 자연 생태계의 탄소 흡수 기능도 약화되고 있다. '글로벌 지속가능성'에 지난달 실린 논문(위에서 언급한)은 그 동안 안정적이라고 믿었던 북반구 아한대림(boreal forest)과 영구동토층 생태계가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가뭄, 산불, 해충 확산 등으로 인해 아한대림의 탄소 흡수 능력은 지난 10년간 약 36% 줄었고, 일부 영구동토층 지역은 숲이 흡수하는 것보다 더 많은 탄소를 내뿜기 시작했다. 기후 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 간 상호작용도 심각하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연구팀이 2024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인한 식물 종 손실은 육상 탄소 저장 능력을 저하시켜 향후 최대 145 PgC(페타그램), 즉 1450억 톤의 탄소를 추가로 배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후 재난의 현실화: 건강과 경제의 충격 WMO가 내놓은 '2025년 주요 기상 기후 사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곳곳에서 극단적 기상현상의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파키스탄에서는 몬순 홍수로 1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3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베트남 역시 연이은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폭염으로 인한 노동 생산성 저하가 치명적이다. WMO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3°C 상승할 경우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고온 노출 산업(농업, 건설 등)에서 노동 생산성이 각각 33%, 2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는데, 이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4.5%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와 기상청은 '2025년 이상기후 보고서'를 통해 '기후 위기의 시대'가 이미 심화되다고 지적했다. 가장 충격적인 기록은 산불이었다. 지난해 3월 21~26일 고온·건조·강풍이라는 '삼중고'가 겹치면서 전국 5곳에서 대형 산불이 동시 발생해 역대 최대인 축구장 약 14만 7000개 면적에 달하는 10만5084㏊의 산림이 소실됐다. 또한 지난해 여름철 전국 평균 기온은 25.7°C를 기록, 1973년 체계적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뜨거운 여름으로 기록됐다. 반면 강원 영동 지역은 최악의 가뭄을 겪으며 극심한 식수난과 농작물 고사 피해를 입었다. ◇오버슈트와 '핫하우스 지구'의 위험 현재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모두 이행되더라도 세기말 기온 상승은 2.6~2.8°C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교 연구팀은 지난달 '하나의 지구 (One Earth)'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구가 '온실 지구(Hothouse Earth)' 궤도에 진입할 위험을 경고했다. 특히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임계치) 문제는 심각하다. 그린란드 빙하 붕괴, 대서양 역전 순환(AMOC) 약화, 아마존 열대우림 사바나화 등 16개 주요 시스템이 임계치에 근접했거나 이미 초과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일시적인 오버슈트조차도 티핑 포인트 발생 위험을 최대 72%까지 증가시킬 수 있다. 독일 헬름홀츠 환경연구소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비록 온난화가 2°C 수준에서 억제되더라도 특정 부문에서는 훨씬 극단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식량 안보의 핵심인 주요 곡창지대(breadbasket)의 경우, 2°C 온난화 상황에서도 가뭄 빈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50% 이상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온난화를 1.5~2°C 이내로 제한하려는 노력은 통제 불가능한 극단적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지만, 이제 그 안전장치가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다.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 틴달 기후변화연구소의 레이첼 워런 교수는 이 논문에 대한 논평에서 “정책 입안자들은 단순히 '가장 가능성 높은' 평균값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면서 “확률이 낮더라도 인류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적응 전략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폴리테크니코 대학 연구팀은 지난 2월 '네이처 기후변화' 에 발표한 논문에서 1.5°C 오버슈트가 불가피한 현실이 되었음을 지적하면서 기후 정책의 초점을 '예방'에서 '회복(recovery)'으로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안정화를 위한 해법: 36개의 전략과 CDR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응 수단은 존재한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환경정책센터 연구팀은 이달 초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36개의 기후 안정화 해법을 제시했다. 이들 해법은 에너지, 산업, 수송, 건물, 토지 이용 등 전 부문을 포괄하는데, 각각 연간 약 2Gt(기가톤), 즉 20억톤 규모의 감축 효과를 갖는 전략으로 작동한다. 재생에너지 확대, 전동화, 산업 공정 혁신뿐 아니라 식단 변화, 음식물 쓰레기 감축, 산림 보전 등 행동 변화와 자연 기반 해법도 포함된다. 특히 대기 중의 탄소를 직접 제거하는 방법(Carbon Dioxide Removal, CDR)은 필수적 수단으로 강조된다. 다만 이는 화석연료 배출량을 줄이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 오버슈터 상황에서 기후 안정화 상황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수단으로 엄격히 관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 믹스'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연구팀이 2024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41개국 1500개 정책 분석 연구에 따르면, 탄소 가격제와 규제, 보조금 등의 정책 수단이 결합될 때 실질적인 감축 효과가 나타났다. ◇ 법적 의무와 되돌릴 수 없는 변화 기후 대응은 이제 법적 의무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025년 7월 기후 변화가 인류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며, 국가들이 이를 방지할 법적 의무를 가진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오버슈트 이후의 회복은 결코 대칭적 과정이 아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대학교의 크리스토퍼 트리소스 박사는 온도가 다시 낮아지더라도 이미 붕괴된 생태계와 멸종한 종은 되돌릴 수 없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핵심은 오버슈트의 폭과 지속 기간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뜨거운 남비를 만졌다면 손을 재빨리 떼고 차가운 물에 담궈야 화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인류는 기후 교차로에서 가장 어려운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과학적 지식과 기술적 수단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축적되어 있다. 남은 것은 실행이다. 우리의 행동에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생존이 달려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임도의 두 얼굴: 산불 진화 도움되지만, 발생·확산도 부추겨

산림 내 도로인 임도(林道)가 산불 진화의 핵심 병기인지, 아니면 발화와 확산을 부추기는 원인인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최근 미국에서 이 문제를 다룬 논문이 발표돼 우리에게도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임도가 산불 진화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지만, 산불 발생과 확산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미국 '미국 야생 보호 협회(The Wilderness Society)' 소속 연구진은 지난 30년(1992~2024년) 간의 미국 국유림 산불 데이터를 전수 분석한 논문을 최근 '산불 생태학(Fire Ecology)' 저널에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도로에서 50m 이내 구역의 산불 발생 밀도는 1000㏊(헥타르)당 7.99건으로 나타난 반면, 도로가 없는 지정 야생 지역(wilderness areas)은 1.75건에 불과했다. 이는 도로 인근의 발화 가능성이 도로가 없는 숲보다 4.5배 이상 높음을 의미한다. 도로와 산불의 상관관계는 거리에 따라 더욱 명확해진다. 도로에서 250m 이내의 구역에서는 1000 ㏊당 6건의 산불이 발생했으나, 도로에서 2000m 이상 멀어지면 발생 밀도는 2건 미만으로 급감했다. 특히 인간에 의한 실화는 도로 근처에서 압도적으로 높았는데, 이는 도로가 사람과 차량을 숲 깊숙이 끌어들여 실화나 방화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대형 산불 진화에는 임도 도움이 안돼 흥미로운 점은 자연적 요인인 낙뢰에 의한 산불조차 도로 근처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도로 건설로 인해 숲의 덮개(캐노피)가 열리면서 햇빛과 바람이 지표면의 식생을 더 빨리 건조시켜 불이 붙기 쉬운 환경을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임도는 소방 인력과 장비의 접근을 도와 초기 진압 성공률을 높이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도로 인근 산불의 평균 크기(49㏊)는 야생 지역(239㏊)보다 작게 나타났다. 그러나 연구진은 전체 산불 중 가장 치명적인 상위 2%의 대형 산불의 경우, 도로 유무와 상관없이 최종 피해 규모나 발생 빈도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임도는 작은 불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기상 조건이 악화돼 발생하는 '통제 불가능한 대형 산불'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고 오히려 발화 건수만 늘리는 역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기후 전문 보도 매체인 '인사이드 클라이밋 뉴스(Inside Climate News,ICN)'는 “미국 농무부(USDA)가 외딴 지역 산불 진압에 도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연구는 도로가 오히려 산불을 더 확산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ICN은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산불 예방과 관리를 위해 국유림과 초원에서 도로 건설 및 벌목을 제한하고 있는 규정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면서 “반대론자들은 산불 진압에 도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목재 산업에 특혜를 주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숲가꾸기 사업과 침엽수림: 산불 대형화의 기폭제 국내 조사 결과는 숲의 구조적 관리가 산불 피해에 미치는 영향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울환경운동연합과 불교환경연대, 부산대 홍석환 교수 등이 최근 발표한 '2025 경북산불 피해확산 원인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산림청의 '숲가꾸기(간벌)' 사업이 오히려 산불 피해를 키운 핵심 원인으로 지목됐다. 조사 결과, 관리를 하지 않은 자연적인 침엽수림의 수관화(나무의 상층부가 타는 화재) 발생률은 4.9%였으나, 숲가꾸기를 시행한 지역에서는 54.2%로 무려 11배 이상 폭증했다. 특히 산등성이(능선부)의 소나무림 간벌지에서는 수관화 발생률이 78.8%에 달해 최악의 화재 강도를 보였다. 이러한 역효과가 발생하는 과학적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간벌 후 산등성이에 방치된 나무 가지 등 부산물이 강력한 연료 역할을 하여 지표면의 불길을 나무 위로 끌어올리는 가교가 된다. 둘째, 나무 밀도를 낮추면 숲 내부의 습도가 낮아지고 바람의 속도가 빨라져 화재가 번지기 최적의 조건이 형성된다. 하지만 밀도 높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유타대학교의 제이콥 레빈 등은 지난해 8월 '글로벌 체인지 바이올로지(Global Change Biolog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산업용 조림지(Industrial forests)는 공공림보다 대형 산불 발생 확률이 1.45배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균일한 간격으로 빽빽하게 심어진 조림지가 연료의 연속성을 높여 극한 기상 조건에서 화재를 더 넓게 확산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나무가 심어져 있느냐에 따라 숲의 운명도 갈렸다. 경북산불 원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침엽수림의 교목 고사율은 81.8%에 달한 반면 활엽수림은 12.6%에 그쳤다. 침엽수가 활엽수보다 산불에 의한 고사 위험이 약 6.5배 높은 것이다. 구체적인 수종별로는 잣나무(고사율 100%)와 소나무(78.5%)가 화염에 매우 취약했던 반면, 굴참나무(16.2%)와 졸참나무(20.8%) 등 활엽수는 상대적으로 낮은 고사율을 보였다. 활엽수는 잎의 수분 함량이 높고 가연성 수지 성분이 적으며, 불에 타더라도 뿌리에서 다시 싹을 틔우는 맹아 재생 능력이 뛰어나 숲의 회복력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기후 변화와 거주지 경계: 새로운 위험의 확장 기후적 요인 역시 산불 규모를 결정짓는 절대적 변수다. 강원대 백민호 교수와 국립소방연구원 박진찬 박사 등이 지난해 8월 '포레스트(Forests)'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서 최대 풍속이 초속 1m 증가할 때마다 산불 피해 면적은 약 8.5㏊씩 확대되고, 습도가 1% 상승하면 피해 면적이 약 3㏊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정부의 산불 위험 예측 시스템은 2022년 울진-삼척 산불 당시 위험 등급을 '보통'으로 예보하는 등 대형 산불의 기상 복합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피해가 커지는 또 다른 핵심 원인은 '야생도시 경계지역(WUI)'의 확장이다. 거주지가 산림과 가까워지면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급증하고 있는데,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의 마리암 자마니아라이 등이 지난해 8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건물 간의 거리(SSD)가 가까울수록 화재 전이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연구진은 건물 자체를 불에 강한 자재로 보강하고, 건물 주변 1.5m 이내(구역 0)의 가연물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어 공간을 확보할 것을 권고했다. 이러한 조치만으로도 건물 소실 위험을 최대 52%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외 연구 결과는 무분별한 임도 건설이나 인위적인 숲가꾸기는 산불 예방의 정답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활엽수 중심의 내화수림 조성, 자연스러운 숲 구조 유지, 그리고 산림 인접 거주지의 과학적인 방화 설계가 대형 산불 시대에 우리를 지켜줄 진정한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온난화 적응하느라 작아진 생선…인류 식탁은 텅 비어

가파르게 진행되는 기후 변화에 바다 물고기가 적응하느라 크기가 작아지면서 전 세계 어획량이 크게 줄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지구 온난화가 해양 생태계와 인류의 식량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한 연구 결과다. 폴란드 야기엘로니안대학교와 호주 모나시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발표한 논문에서 온난화에 대한 어류의 '진화적 적응'이 오히려 전 세계 어획량 감소를 가속화한다는 점을 정량적으로 입증했다. 이는 기존 수산자원 예측 모델이 간과해온 핵심 변수로, 향후 식량 안보 논의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더 빨리 자라고, 더 빨리 번식하고, 더 작아진다" 연구팀에 따르면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어류의 대사율이 증가하고 자연 사망률이 높아진다. 이러한 환경에서 물고기들은 생존과 번식 확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애 전략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구체적으로 어린 시기에는 빠르게 성장하지만, 과거보다는 훨씬 이른 시점에 성숙 단계에 도달한다. 문제는 성숙 시점이 앞당겨질수록 성장에 쓰이던 에너지가 번식으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성체의 최대 몸 크기는 눈에 띄게 작아진다. 이러한 변화는 개체 수준에서는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 일찍 번식하면 생존 확률이 낮은 환경에서도 유전자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는 정반대 결과를 낳는다. 어획 대상이 되는 개체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전체 어획량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더 많이 잡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물고기가 성장보다 번식에 에너지를 더 많이 쏟으면 바다 전체의 물고기 양, 즉 생물량(biomass)은 과거보다 줄게 된다. 어획량을 채우기 위해 남획이라도 하게 되면, 물고기 크기는 더 작아지고, 어획량은 더 줄게 된다. ◇“진화를 고려하면 어획량 감소 더 뚜렷" 연구팀은 전 세계 주요 43개 어종을 대상으로 기후 시나리오별 어획량 변화를 모델링했다. 그 결과, 단순히 수온 상승의 직접적 영향만 고려할 경우 어획량은 약 14%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기에 어류의 진화적 적응을 포함하자 감소폭은 22%로 확대됐다. 이는 진화가 기후변화로 인한 수산자원 손실을 약 50% 추가로 악화시킨다는 의미다. 특히 온실가스 고배출 경로(시나리오, SSP3-7.0)에서는 세기말까지 어획량이 약 30%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반대로 저배출 경로(SSP1-2.6)를 따를 경우 연간 약 1800만 톤의 어획량을 보전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는 어획량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물고기의 크기 감소는 해양 생태계 전체를 흔드는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생태계에서 포식 관계는 주로 몸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상위 포식자의 크기가 줄어들면 먹이 생물을 통제하는 능력이 약화된다. 실제로 북서대서양 스코샤붕 해역에서는 상위 포식자의 평균 크기가 약 40% 감소하자, 먹이 생물의 생물량이 300% 증가하는 현상이 관측된 바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다시 플랑크톤 구조를 변화시키며, 결국 생태계 전체의 에너지 흐름을 재편한다. 더 나아가 과거의 먹이였던 종이 포식자의 어린 개체를 잡아먹는 '관계 역전' 현상까지 발생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생태계는 바다가 아니라 담수(민물) 환경으로 나타났다. 민물 생태계는 해양보다 온도 상승 폭이 더 크고 변동성이 높아, 어류의 진화적 압력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몸 크기 감소와 생태계 변화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식탁도 직격탄… 명태·고등어·멸치 모두 영향권 이번 연구는 한국 수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시사한다. 분석 대상 43개 어종에는 한국에서 소비 비중이 높은 주요 어종이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명태는 최대 체중이 약 12% 감소하고, 이에 따라 연간 약 50만 톤의 어획량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외에도 고등어·멸치·갈치·참조기·대구·전갱이·꽁치·청어·가다랑어·까나리 등 한국 연근해 주요 어종 대부분이 동일한 경로의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어종은 공통적으로 “더 빨리 자라지만 더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며, 결과적으로 생산량 감소와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연구팀은 1990년대 북대서양에서 발생한 대구(대서양대구) 어획 붕괴 사례를 중요한 교훈으로 제시한다. 당시 대구 개체군은 과도한 어획과 환경 변화로 급감했고, 이후 어획을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체군은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개체 수 감소가 아니라, 생태계가 '새로운 안정 상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먹이사슬 구조가 바뀌고, 작은 개체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회복 경로 자체가 차단된 것이다.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인한 '소형화 진화' 역시 이와 유사한 비가역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고기를 '진화하는 존재'로 봐야 한다" 이번 연구는 기후 변화가 단순히 “물고기의 양"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물고기의 존재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식탁에서 마주하는 생선의 크기 변화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기후 위기가 생태계와 식량 시스템에 보내는 구조적 경고인 셈이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기존 수산 관리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의 모델은 물고기를 '환경에 반응하지만 진화하지는 않는 존재'로 가정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후 변화와 어획 압력이 결합해 매우 빠른 진화적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진화적 변수를 포함한 수산자원 모델 도입 △어획 압력의 전략적 조절 △대형 개체 보호를 통한 유전적 다양성 유지 △생태계 기반 관리 접근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기후 정책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으로 지목된다. 기후변화를 막지 못한다면 미래의 바다는 물고기가 '존재하지만 잡히지 않는' 공간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환경포커스] “굴뚝에서 요소 생산”…CO₂ 없애고 비료도 만들고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으로 천연가스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이를 기반으로 한 요소(urea) 생산 체계 역시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어지면서 천연가스 기반 화학 산업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는 핵심 리스크로 지목된다. 이런 상황에서 천연가스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공장 배출가스와 폐수로부터 직접 요소를 생산하는 전기화학 기술이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바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와 스윈번 공과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지난 1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Nature Communications)'에 논문으로 발표한 연구 결과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구리(Cu)와 코발트(Co)를 원자 수준에서 결합한 이원 금속 촉매를 이용해 이산화탄소(CO₂)와 아질산염(NO₂⁻)으로부터 요소를 합성하는 기술을 제시했다. 이 연구는 기존 요소 생산의 근간이던 천연가스 의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천연가스 기반 요소 생산의 구조적 한계…에너지·탄소 부담 동시에 현재 상업적 요소 생산은 크게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해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하버-보슈(Haber-Bosch)' 공정, 이어 암모니아와 이산화탄소를 반응시켜 요소를 만드는 '보슈-마이저(Bosch-Meiser)' 공정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 매우 에너지 집약적이라는 점이다. 고온(150~200℃), 고압(100~200bar) 조건이 필요하고, 요소 1톤 생산 시 약 0.9톤에 달하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즉, 요소 자체는 환경 문제 해결(비료, 요소수)에 사용되지만, 생산 과정은 오히려 탄소 배출의 주요 원인이 되는 역설적 구조다. 여기에 천연가스 의존성까지 더해지면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지정학적 위기는 곧바로 요소 공급 위기로 연결된다. 실제 한국이 과거 경유차 오염방지를 위해 사용하는 요소수 공급 중단으로 고통을 겪기도 했다. 석탄에서 요소를 생산하는 중국으로부터 수입이 막혔기 때문이다. ◇공정 자체를 바꾸다…“굴뚝 가스 + 폐수 = 요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이번 연구의 핵심은 완전히 다른 접근이다. 천연가스를 거치지 않고, 이미 배출되고 있는 이산화탄소와 아질산염을 전기화학적으로 결합해 요소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은 상온·상압 조건에서 진행되며, 전기에너지만 공급되면 반응이 일어난다. 즉,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경우 '탄소 중립' 요소 생산이 가능해진다. 특히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CO₂와 산업 폐수 혹은 공장 굴뚝 속 NO₂⁻를 그대로 원료로 활용할 수 있어 오염 물질을 제거하면서 동시에 자원을 생산하는 '업사이클링 공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방식으로 생산된 요소는 화학적으로 기존 요소와 완전히 동일한 CO(NH₂)₂이다. 따라서 경유차 선택적 촉매 환원(SCR) 시스템에 사용되는 요소수를 그대로 대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공장 배출가스로 만든 요소가 다시 자동차 배출가스를 줄이는 데 사용되는 '순환 구조'도 가능하다. ◇촉매의 핵심: 구리와 코발트의 '탄뎀 중계 메커니즘' 이 기술의 성패는 촉매에 달려 있다. 연구진은 공동-스퍼터링(co-sputtering) 공법으로 구리와 코발트를 1:1 비율로 혼합한 Cu-Co 촉매를 개발했다. 이 촉매의 작동 원리는 명확하다. 우선 구리(Cu)는 CO₂를 흡착해 CO, COOH와 같은 탄소 중간체 생성한다. 코발트(Co)는 NO₂⁻를 환원해 NH₂와 같은 질소 중간체를 생성한다. 이 두 중간체가 접경면(perimeter)에서 만나 C–N 결합 형성하고 이것이 요소 생성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탄뎀 중계(tandem relay)' 메커니즘이다. 두 금속이 각각 역할을 나눠 수행하고, 계면(접경면)에서 결합 반응이 일어나는 구조다. 분석 결과, NH₂와 COOH가 결합해 NH₂CO를 형성하는 단계가 전체 반응의 속도를 결정하는 핵심 단계로 밝혀졌다. ◇아직은 '가능성' 단계…값싼 전력 확보가 과제 하지만 공장 수준에서 대량 생산까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생산 속도 자체는 기존 연구 대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전력 효율은 아직 상업화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는 투입된 전력의 상당 부분이 수소 발생 등 부반응에 소모된다는 의미다. 다만 이 기술은 고온·고압 설비가 필요 없다는 점에서 설비 투자와 운영 비용을 낮출 잠재력이 있다. 특히 분산형 생산이 가능해 물류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그러나 핵심 변수는 전력 비용이다. 효율이 11%로 전력 소비에 비해 생산량이 많지 않다. 다만 재생에너지를 활용할 경우 탄소 중립 달성이 가능하다. 결국 이 기술의 경제성은 “얼마나 싸고 안정적인 전력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태양광 발전이나 원전 등에서 남아도는 전력을 활용할 경우 가능성은 충분하다. ◇“에너지 안보 + 탄소 감축" 동시에 노릴 수 있는 기술 한국은 요소 생산 원료를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기술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크다. 한국은 무엇보다 산업 구조 측면에서 유리하다. 제철소, 석유화학 단지 등 CO₂와 NOx 배출이 많은 산업 기반이 이미 존재한다. 둘째, 환경 정책과 정합성이 높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K-ETS) 하에서 CO₂를 원료로 사용하는 공정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미세먼지 오염 원인인 NOx 역시도 총량규제 대상이자 배출권 거래 대상이다. 셋째, 에너지 전환과 결합 가능하다.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과 연계하면 '그린 요소'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 다만 현실적 제약도 있다. 실제 배기가스를 사용할 경우 불순물에 의해 촉매 수명이 단축될 우려도 있다. 재생에너지나 원전 전력을 사용하더라도 결국은 효율 개선 없이는 경제성 확보가 어렵다. 이번 기술은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아직 “실험실에서 입증된" 수준이다. 다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반복되는 현실에서, 식량 위기를 피하려면 이 기술을 검토해 볼 가치는 충분한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이란 “호르무즈 해협은 영해, 통행세 내라”…미국 “항행은 자유”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공방이 3주를 넘긴 가운데 전쟁은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문제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이란에 48시간 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요구하며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냈다. 하지만 이같은 최후통첩이 이란을 더욱 자극해 향후 전쟁이 더욱 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란은 여전히 세계 경제의 목줄인 호르무즈 해협을 무기화하고 있다. 당장 이란군을 통합 지휘하는 중앙군사본부 하탐 알안비야의 에브라힘 졸파가리 대변인은 22일(현지시간) “이란 발전소를 겨냥한 미국의 위협이 실행되면 호르무즈 해협은 완전히 폐쇄되고 발전소가 재건될 때까지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국제해사기구(IMO) 이란 대표인 알리 무사비는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적과 연계된 선박을 제외하고 모든 선박에 개방돼 있다"면서 “이란 정부와의 보안·안전 조율을 거치면 통과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이러한 행보가 '사실상의 봉쇄(De facto closure)' 상황을 이어가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란은 또 통행료(통행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과의 전쟁이 마무리돼도 통행료를 계속 부과한다면 자칫 국제 유가를 세 자릿수(달러화 기준)로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란의 전 부통령 모하마드 모크베르는 최근 “전쟁이 끝난 뒤 이란이 강력한 지위를 갖는 '새로운 체제'를 호르무즈 해협에 도입할 것"이라고 밝혀 통행세 징수 등이 공식화될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사실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을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은 과거부터 논쟁을 벌여왔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국제 해협이 아닌 자국 영해로 간주해 이 '무해 통항' 체제를 적용하려 하는 반면, 미국은 더 넓은 자유가 보장되는 '통과 통항' 체제를 주장하며 대립해왔다. 이 논쟁은 유엔 해양법협약(UNCLOS) 등과도 연결된다. 지난 2020년 아산정책연구원 이기범 연구위원이 이 문제를 짚었고, 최근 독립연구자인 미리 샤하브(Myra Shahab)도 관련 논문을 공개했다. ◇이란의 '통행료' 주장, 법적 근거는 이란이 통행료 징수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핵심 논리는 UNCLOS에 대한 독자적 해석이다. 이란은 비당사국에게는 '통과 통항권(transit passage)'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조약법 원칙을 근거로 삼아 통행료 징수와 같은 실력 행사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란은 협약의 모든 권리와 의무가 하나로 묶인 '패키지 딜(package deal)'임을 강조한다. 즉, 협약의 혜택인 '통과 통항권(국제 해협을 방해받지 않고 통과할 권리)'은 협약을 비준한 국가들 사이에서만 유효하고, 특히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비당사국인 미국 등은 이 권리를 누릴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작 이란은 1982년 UNCLOS 협약에 서명은 했으나 비준은 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면서 이란은 국제법상 '지속적 반대자(persistent objector)' 지위를 가졌음을 내세운다. 특정 국제 관습법이 형성될 때부터 지속적으로 반대해 온 국가는 해당 규칙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오래 전부터 '통과 통항권'에 반대했다는 주장이다. 이란은 1993년에 제정한 국내법(해양 영역법)에 바탕을 두고 호르무즈 해협을 자국의 영해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안국의 안전을 해치지 않을 때만 허용되는 '무해 통항(innocent passage)' 체제를 적용하겠다고 주장한다. 무해 통행 체제는 외국 선박이 연안국의 평화, 질서, 및 안전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영해를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이란은 군함과 잠수함, 원자력 추진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날 때 사전 승인을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잠수함의 경우는 수면 위로 부상한 상태로 국기를 게양하고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전체를 단독 영해로 주장하기보다는, 해협의 상당 부분(특히 항로가 포함된 구역)이 자국과 오만의 영해 내에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주권적 통제권을 주장하고 있다. 국제법상 연안국은 해안선으로부터 최대 12해리(약 22㎞)까지 영해를 설정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가장 좁은 지점의 폭이 약 33㎞(21마일)에 불과해, 해협 전체와 그 안의 주요 항로가 물리적으로 이란과 오만의 영해 내에 완전히 포함된다. 이란은 해협 전체가 이란만의 것이라고 주장하기보다는 해협 내의 항로가 자국 영해를 지나므로 관습법상 '무해 통항'의 원칙에 따라 이란이 통제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항행의 자유' vs '연안국 주권'... 팽팽한 대립 미국은 이란의 주장을 '과도한 해양 주장'으로 규정하고 '항행의 자유 작전(FONOPs)'을 통해 맞서고 있다. 미국은 통과 통항권이 이미 보편적인 관습 국제법으로 굳어졌으므로 UNCLOS 비당사국이라도 이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UNCLOS의 통과 통항에 관한 규정은 협약 제정 이전부터 존재했거나 제정 이후 관습 국제법으로 굳어졌다고 미국은 주장한다. 즉,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전 세계적인 국가 관행과 법적 확신(opinio juris)에 의해 확립된 보편적인 법규이므로 모든 국가에 적용된다는 논리다. 미국은 협약의 모든 내용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특정 조항(예: 심해저 자원 개발 관련 규정)만을 이유로 비준을 하지 않았을 뿐, 항행의 자유와 관련된 조항들은 이미 확립된 국제법적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호르무즈 해협의 또 다른 연안국인 오만은 1989년 UNCLOS를 비준했지만, 이란과 마찬가지로 영해 내 군함 통항 시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안보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유조선 등이 오만 쪽 영해를 이용하려 해도 해협 자체가 너무 좁아 이란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물리적인 차단보다는 이란의 미사일 위협, 기뢰 매설 가능성, 드론 공격 등으로 인한 '사실상의 봉쇄(De facto closed)' 상태에 가깝다. 이란은 고속정이나 잠수함 등을 이용해 해협 전체에 걸쳐 공격을 가할 능력이 있으므로, 단순히 오만 쪽 영해로 치우쳐 항해한다고 해서 공격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영국 퇴역 해군 사령관 톰 샤프는 “해협 통제는 언제나 이란의 '트럼프에 맞설 카드'였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란 원유의 최대 구매자인 중국이 큰 피해를 보게 되므로 이란이 해협을 완전히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1970년대 쇼크의 3배"…암울한 전망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물리적 차단은 아니더라도 공포와 비용 상승으로 인해 통과 선박이 전쟁 전보다 95% 급감한 상태다. 에너지 연구소 'MST 마키'의 수석 애널리스트 사울 카보닉은 “호르무즈 해협이 폐쇄될 경우 1970년대 아랍 석유 금수 조치보다 3배나 더 심각한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고, 유가는 세 자릿수(100달러 이상)에 진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해운업계에는 이미 실질적인 비용 부담이 발생하고 있다. 중동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슈퍼탱커 운임이 일주일 만에 두 배로 뛰어 40만 달러를 돌파하는 등 '보험료 폭탄'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로이드 리스트 인텔리전스는 최근 “한 유조선 운영 업체가 안전 통과를 조건으로 이란 측에 200만 달러(약 30억 원)의 통행료를 지급했다"고 보도했다. 항행의 자유가 '공짜'였던 시대가 저물고, 각국이 직접 군함을 보내거나 통행료를 내야 하는 해양 질서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는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인류세의 경고: ‘물 위기’ 넘어 ‘물 파산’의 시대 맞았다

22일은 점차 고갈되어 가는 수자원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해 UN이 제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2026년 인류가 마주한 현실은 단순히 물을 아껴 쓰자는 캠페인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유엔대학교 물·환경 및 보건 연구소(UNU-INWEH) 소속 카베 마다니 소장은 지난 1월 발표한 '글로벌 물 파산: 위기 이후 시대의 수문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삶'이란 보고서에서 현재의 상황을 '물 위기(water crisis)'가 아닌 '물 파산(water bankruptcy)'로 정의했다. 이는 인류가 매년 자연이 보충해주는 수자원 '수입'보다 훨씬 많은 양을 소비함으로써, 지하수와 빙하라는 지구의 '비상 저금'까지 모두 탕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후 신호등]에서는 기후변화와 물 문제의 필연적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전 세계 주요 분쟁 지역의 실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적, 국제적 해결책을 종합적으로 조명한다. ◇기후변화와 물의 상관관계: 가속화되는 수문 순환의 붕괴 기후변화는 수자원 부족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근본적인 동력이다. 핵심 원인이라는 얘기다. 기온 상승은 증발산을 촉진해 토양의 습기를 앗아가고, 강수 패턴을 불규칙하게 만들어 가뭄과 홍수의 극단적인 순환을 가속화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이 지난해 8월 발표한 '글로벌 가뭄 전망: 더 건조해진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추세, 영향 및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2022년 유럽 본토의 가뭄 발생 가능성은 이전보다 20배 이상 높아졌다. 특히 1900년에서 2020년 사이 가뭄에 노출된 전 세계 지표면 면적은 두 배로 증가했고, 인류세의 수문 시스템은 과거의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irreversible)' 상태에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cene)는 인구 증가와 산업 발달로 인류가 지구 생태계 자체를 크게 변화시킨 탓에 20세기 후반에 새로운 지질시대를 열었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용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4년 발표한 '2023년 전 세계 수자원 보고서(State of Global Water Resources 2023)'에서 지구 기온의 급격한 상승에 따른 빙권(氷圈, Cryosphere)의 손실이한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2023년에만 전 세계 빙하 가운데 6000억톤 이상이 사라졌다. 이는 지난 50년 사이 연간 손실 규모로는 가장 큰 것이다. 빙하와 눈은 하천 유량을 채우는 중요한 공급원인데, 이들이 갑작스럽게 녹아내리면 단기적으로는 홍수를 유발하고, 장기적으로는 수억 명이 식수원이 영구적으로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수자원 부족 및 수질 오염의 글로벌 핫스팟 실태 물 문제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지만, 그 피해 정도는 지경학적 위치(geoeconomic location)와 사회적 취약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지난해 7월 유엔 사막화방지협약(UNCCD)에서 낸 '2023~2025년 전 세계 가뭄 취약지역 보고서'는 “아프리카는 기후변화에 기여한 정도는 가장 작지만, 수자원 문제로 인한 고통은 가장 심하게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 에이몬 맥거크와 시카고대학교 네이선 넌 교수가 지난해 8월 '경제 연구 리뷰(Review of Economic Studies)' 저널에 발표한 '기후변화와 아프리카의 갈등' 논문에 따르면, 가뭄으로 목초지가 부족해진 유목민은 새로운 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정착 농민과의 자원 갈등이 벌어지고 끝내는 폭력적인 충돌을 야기한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 해에만 아프리카 대륙에서 2300만 명이 가뭄으로 인한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렸다. UNCCD 보고서는 스페인을 포함한 지중해 지역의 강수량이 2050년까지 최대 20%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OECD 보고서는 2022년 독일 라인강의 수위가 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물류 운송 능력이 25~35%로 급감한 사례를 들면서, 물 문제가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국가 경제의 심장부를 겨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유량 감소는 오염 물질의 농도를 높이고 수질을 악화시키는데, 2018년 가뭄 당시 라인강의 의약품 잔류물 농도는 30% 이상 상승하기도 했다.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은 무분별한 지하수 취수로 인해 지반 침하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 연구팀이 지난해 10월 '네이처 지속가능성 (Nature Sustainabilit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인도의 주요 대도시는 과도한 지하수 사용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매년 상당한 속도로 가라앉고 있고, 이로 인해 기반 시설이 파괴되고 홍수 위험이 크게 늘고 있다. 인도의 콜카타 시는 전체 면적의 92.56%가 지반 침하를 겪고 있고, 델리 시는 연간 15.19㎜에 달하는 침하율을 기록했다. 멕시코시티는 기반 시설의 노후화로 공급되는 물의 40%가 누수로 사라지는 있다. UNCCD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시스템 용량이 39%까지 떨어져 도시의 물이 완전히 고갈되는 '데이 제로(Day Zero)' 직전까지 몰렸다. 여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역사상 최악의 가뭄을 겪은 남미의 아마존 분지 역시 강 수위가 기록적으로 낮아졌고, 이로 인해 분홍돌고래 등 수많은 수중 동물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숨겨진 물 소비: 산업 생산과 가상수 무역의 불평등 물 문제는 단순히 우리가 마시는 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소비된다. 중국 둥베이(東北)대학교와 유엔대학교 연구팀이 지난해 11월 '네이처 지속가능성'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철강·시멘트·종이·플라스틱 등 주요 재료 생산을 위한 전 세계 '블루 워터' 사용량(물 발자국)은 1995년 251억 ㎥에서 2021년 507억 ㎥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블루워터(blue water)는 강·호수·지하수처럼 눈에 보이고 직접 사용할 수 있는 물을 말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가상수(virtual water)' 무역을 통한 수자원의 착취와 불평등이다. 베이징대학교와 유엔대학교 연구진이 지난해 8월 발표한 '글로벌 농업 무역에서의 물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들은 물 집약적인 농산물을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함으로써 자국의 물 부족을 다른 나라에 전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소득 국가의 취약 계층은 자국의 농산물을 수출하는 동안 정작 본인은 마실 물조차 구하기 힘든 '물 부정의(injustice)'를 겪고 있다. 국제 무역을 통해 가상수가 이동하는 양을 1995년과 2021년을 비교하면, 공산품 생산과 마찬가지로 세계 각국이 중국에 대한 의존이 크게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해결을 위한 기술적·전략적 대안 지속가능한 물 관리를 위해서는 수요 감소와 공급 다변화를 결합한 혁신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우선, 자연 기반 해결책(NbS)과 관리형 대수층 충전(MAR) 기술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OECD 보고서는 강조한다. 습지를 복원하고, 투수성 지표면을 확대해 빗물이 지하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함으로써 지하수 수위를 회복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홍수 예방과 수질 개선이라는 다각적 이득을 동시에 제공한다. UNCCD 보고서는 누수 차단 및 효율적 물 수송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멕시코시티나 미국 일부 도시에서 발생하는 40~60%의 수돗물 누수율을 절반으로만 줄여도 막대한 규모의 새로운 수자원을 확보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수 재이용과 해수담수화 기술의 고도화할 필요도 있다. 싱가포르의 '뉴워터(NEWater)' 사례처럼 하수를 고도로 정수해 공업용이나 식수로 재활용하는 기술은 물 부족 국가의 필수 생존 전략이다. OECD 글로벌 가뭄 전망 보고서는 “다만, 해수담수화 기술은 에너지 소비가 많고, 농축된 소금물 배출로 인해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와의 결합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정밀 농업을 도입하고, 가뭄 저항성 작물을 재배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 세계 담수 소비의 70~80%가 농업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물 소비가 적은 토착 작물을 육종하고 점적(點滴, drip) 관개 시스템을 도입하여 농업용수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 점적 관개 시스템은 작물 뿌리 주변에만 물을 한 방울씩 천천히 공급하는 고효율 관개 방식이다. ◇국제사회 협력 방안: 초국경적 공유와 물 외교의 필요성 물은 국경 내에서만 흐르지 않는다. 전 세계 수자원의 60%는 국경을 넘나드는 하천 유역(transboundary river basins)에 위치해 있다. 중국 칭화대 연구팀은 지난해 9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서 2041~2050년 사이 전 세계 초국경 유역의 40%가 물 부족으로 인한 갈등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같은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 사회의 다양한 협력이 시급하다. UN대학교의 '글로벌 물 파산' 보고서는 “초국경 수자원 협정의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1944년 체결된 미국-멕시코 수자원 조약처럼 수십 년 전의 풍부했던 강수량을 기준으로 한 조약은 현재의 기후 현실에 맞지 않다. 변화된 하천 유량을 반영, 상·하류 국가 간의 이익을 공유하는 유연한 메커니즘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터 공유와 통합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도 시급하다. 상류 국가의 댐 건설이나 물 전용 현황이 하류 국가에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고, 그래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도 가능하다. WMO 보고서는 “글로벌 수문 상태 및 전망 시스템(HydroSOS)과 같은 국제적 플랫폼에 모든 국가가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로벌 물 금융 지원 확대도 필요하다. 가뭄 피해가 극심한 개도국이 기후 적응을 위한 물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도록, 선진국은 기후 기금을 물 분야에 우선적으로 배정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원조가 아니라, 농산물 무역 등을 통해 개별 국가가 떠넘긴 '수문학적 부채'를 갚는 과정으로 인식돼야 한다는 게 '물 평등 보고서'의 시각이다. 부산대학교 및 기초과학연구원(IBS) 소속 크리스티안 프란츠케 교수팀이 지난해 9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한 '인류세 전례 없는 글로벌 물 부족의 첫 출현' 논문은 기후변화로 인해 2030년대 이전에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회복 불가능한 수준의 물 부족, 즉 '데이 제로 가뭄'이 상시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의 날을 맞아 인류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명확하다. 물은 무한한 자원이 아니며, 이미 지구의 자본을 상당 부분 소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한 환경 보호가 아니라, 인류의 평화와 정의, 그리고 다음 세대의 생존을 담보하는 가장 시급한 정치적·윤리적 과업이라는 사실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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