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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강찬수 기자 입니다.
  • 기후에너지부
  • kcs25@ekn.kr
“히트펌프 보급,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가야 의미 있어”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 대응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화석연료를 직접 태우는 대신 외부의 열을 옮겨 난방하는 '히트펌프'가 탄소 중립을 위한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2050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건물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 보급 확대를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를 비롯해 히트펌프를 적극적으로 보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에너지 효율이나 높은 초기 비용 등을 들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당장 21일에도 국회에서는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소희 의원(국민의 힘) 주최로 '공기열 히트펌프, 과연 재생에너지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고, 정부의 급속한 보급 확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 압도적인 탄소 저감 효과와 에너지 효율 히트펌프는 투입된 전기 에너지보다 몇 배 많은 열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고효율 장치다. 전기에너지를 투입해 차가운 장소에서 따뜻한 장소로 열 에너지를 강제로 이동시킨다. 여름철 실내를 식히는 에어컨을 반대 방향으로 트는 것과 같은 원리다.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실외기를 실내에 두는 셈이다. 히트펌프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성능 계수(COP)는 보통 3.0 이상으로, 전기 1kWh를 투입해 3kWh 이상의 열을 생산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이미 존재하는 공기·지열·수열 등의 열원을 활용해 난방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소속 최준영 수석연구원과 이기원 주임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대한설비공학회(Korean Journal of Air-Conditioning and Refrigeration Engineering)'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 단독주택 난방 시스템을 고효율 히트펌프로 전면 전환할 경우 국가 전체로 연간 약 364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할 수 있다. 단독주택 난방 및 급탕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6%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기후 특성과 실질적인 가동 효율의 과제 하지만 한국의 뚜렷한 사계절과 혹독한 겨울 기온은 히트펌프 보급의 기술적 장벽이 되기도 한다. 대전대 신우철 교수팀은 충남 공주의 단독주택에서 1년간 실측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히트펌프의 실제 운영 효율을 분석, 지난해 12월 국제 학술지 '에너지스(Energies)'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히트펌프의 연간 평균 COP는 난방 시 2.27, 급탕 시 2.06을 기록했다.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겨울철에는 카탈로그상 성능보다 효율이 약 18%가량 저하되는 현상도 확인됐다. 이 연구는 현재 한국의 전력 생산 방식이 여전히 탄소 집약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아 전력의 탄소 배출계수가 높은 현재 상황에서는 히트펌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콘덴싱 가스보일러보다 약 8.6% 높게 나타날 수도 있다. 따라서 히트펌프가 진정한 친환경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의 탈탄소화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한편, 농업 분야에서는 뚜렷한 성과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충남대 정선옥 교수팀이 지난해 '정밀농업과학기술(Precision Agriculture Science and Technology)'에 발표한 실증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 온실에 고온수 공기열 히트펌프를 적용했을 때 기존 경유 보일러 대비 운영비를 약 67% 절감할 수 있었다. ◇초기 비용과 제도적 개선: 보급 확대를 위한 열쇠 경제성 측면에서는 저렴한 운영비에도 불구하고 매우 비싼 초기 설치비가 걸림돌이다. 기존 콘덴싱 보일러는 설치비가 100만 원 이하인 반면, 공기열 히트펌프는 축열조와 제어반을 포함해 약 1400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이에 기후부에서는 국비로 560만 원, 지방비로 280만 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가구당 약 560만 원의 자기부담금이 발생한다. 기존 가스보일러 설치비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히트펌프를 가동할 경우 월 평균 전기 사용량이 누진제 최고 구간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정부는 누진제가 없는 전용 요금제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효율이 높은 히트펌프 기술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효율 표준을 강화하고, 계절성능지수(SPF)를 향상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 가계의 난방비 부담을 가스 대비 15~20%가량 절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SPF는 특정 기간(주로 난방 시즌 전체) 동안 히트펌프가 공급한 총 열에너지와 이때 소비된 총 전기 에너지의 비율을 나타낸다. COP는 특정 순간의 효율인 반면, SPF는 한 시즌(수개월) 동안의 장기적인 평균 효율을 말한다. 카탈로그상의 COP는 주로 히트펌프 단품의 성능에 집중하지만, SPF는 순환 펌프와 보조 가열기 등 시스템 전체를 고려한 포괄적인 지표다. 히트펌프의 경제성과 탄소 저감 효과를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는 단순 COP보다는 실제 기후 조건과 시스템 손실이 반영된 SPF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증 안 된 채 보급확대, 탈탄소에 역행" 이날 국회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에 나선 홍희기 경희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히트펌프 보급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은 맞지만, 10kW 수준의 소규모 설비가 주종"이라며 “유럽도 빠르게 늘다가 최근 다소 주춤한 상태"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히트펌프를 전면적으로 허용할 경우 탄소중립정책에 역행할 수도 있다"면서 “COP가 너무 낮으면 가스보일러보다 탄소 배출량 많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전면적으로 가스 보일러를 대체할 경우 전기 소비량이 급증해 전력망이 붕괴 우려가 있고, 대기업이 시장을 독과점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임용훈 숙명여대 기계시스템학부 교수는 “히터펌프를 겨울철에 사용하다 보면 급탕(더운물) 사용에서 병목 현상이 생길 수 있다"면서 “축열조와 급탕부스터, 전기보일러 등을 추가 설치할 경우 자부담이 늘어나면서 시장에서 수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10% 수준이어서 유럽보다 COP 기준이 더 높아야 한다"면서 “이론적 수치로 COP 기준을 정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광범위하게 측정한 다음에 그것을 바탕으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 융합과 미래의 방향성 히트펌프 보급을 확대하려면 기술 개발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지능형 제어'와 '에너지 기술 융합' 등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대 남유진 교수팀이 지난달 학술지 '에너지 전환 및 관리: X(Energy Conversion and Management: X)'에 발표한 연구는 태양광 열(PVT) 시스템과 히트펌프를 결합하고 딥러닝(DNN)으로 제어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제시했다. 이 시스템은 실시간 수요에 따라 유량을 조절하여 기존 방식보다 에너지 소비를 2.8% 줄이고 시스템 COP를 5% 향상시켰다. 히트펌프는 단순히 열을 내는 기기를 넘어 전력망의 안정성을 돕는 '유연성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2025년 스위스 취리히공대(ETH Zurich) 보고서 등에 따르면, 스마트 제어가 적용된 히트펌프는 전력 피크 수요를 최대 90%까지 줄이거나 전력 수입을 20% 감소시키는 등 에너지 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 홍희기 교수도 “공기열 히트펌프만 할 것이 아니라 지열과 수열, 태양열 등과 공생체계(하이브리드)로 하자"고 제안했다. 이슬기 산업연구원 박사는 토론회에서 “히트펌프의 성능은 설치 단계의 정격 성능 외에도 실제 운전 환경에서 얼마나 저하가 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면서 “냉매를 친환경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문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히트펌프 보급은 필요하지만 철저한 준비를 한국도 히트펌프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데는 전문가들도 동의한다. 건물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이 국가 전체의 약 25%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히트펌프는 가스보일러를 대체할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의 전력 믹스나 겨울철 저온 환경에서의 효율 저하와 같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개발 등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력망 문제를 해결하고 재생에너지 확대도 필요하다. 이와 관련, 기후부가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 대 보급을 목표로 설정한 만큼 ▶초기 설치비 지원 확대 ▶누진제 없는 전용 요금제 마련 ▶신축 및 기존 건물에 적합한 표준 설계 기준 확립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병철 기후부 열산업혁신과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상업용 건물 시스템에어컨은 지원 대상이 아니고 공기로 물을 데우는 방식의 히트펌프만 보급대상"이라고 분명히했다. 권 과장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기준을 정할 터인데, 김소희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마찬가지로 정부에서도 유럽연합(EU)의 재생에너지 인정 기준인 SPF 2.875보다 높은 수치로 정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는 (겨울이 따뜻한) 제주도와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예산 범위 내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떠오르는’ 그린란드: 빙하 녹아내리지만 해수면 낮아지는 역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눈독을 들이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그린란드. 이 그린란드가 실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이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는 가운데, 정작 거대한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는 그린란드에서는 해수면이 오히려 낮아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와 우즈홀해양연구소, 캐나다 오타와대학 등 국제연구팀은 20일(현지 시간)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해당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그린란드의 해수면이 이번 세기 동안 전 세계적인 추세와는 반대로 1m에서 최대 4m가까이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유독 그린란드에서만 해수면이 낮아지는 현상에 대해 연구팀은 크게 두 가지 과학적 원리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지각 평형 반동(glacial isostatic adjustment)' 현상이다. 거대한 빙하가 지각을 누르고 있다가 빙하가 녹으면서 그 무게가 가벼워지는데, 짓눌려 있던 땅이 마치 매트리스 위의 볼링공을 치웠을 때처럼 다시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지구 내부 맨틀의 흐름이 예상보다 빨라 지각이 반동하는 속도가 기존 모델보다 훨씬 빠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현상은 아랄해에서도 관측된 바 있다. 거대한 호수의 물이 말라버리자 짓눌리던 아랄해 바닥의 지각이 솟아올랐다. 둘째 이유는 '중력의 약화'다. 그린란드의 거대한 빙하 자체는 엄청난 질량을 가지고 있어 주변의 바닷물을 중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그러나 빙하가 녹아 질량이 감소하면 이 끌어당기는 힘(중력)이 약해져 주변에 모여 있던 바닷물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글로벌 탄소 배출 시나리오를 적용해 그린란드 해수면 변화를 예측했다. 탄소 배출을 줄여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C 이내로 제한할 경우(RCP 2.6 시나리오), 2100년까지 그린란드 주변 해수면은 중간값 기준으로 약 0.9m 하강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탄소 배출이 계속되는 고배출 시나리오(RCP 8.5)에서는 평균 2.5m, 일부 지역에서는 최대 3.8m까지 해수면이 낮아질 것으로 분석됐다. 해수면 하강은 그린란드 주민들에게 새로운 도전 과제를 던져줄 것으로 보인다. 그린란드의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인 서부와 남부 해안은 특히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해수면이 낮아지면 기존의 항구와 수로의 수심이 얕아져 대형 선박의 출입이 어려워지고, 이는 해운 물류와 식량 안보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바다 속에 잠겨 있던 암초가 드러나 항해 위험 요소가 증가하고, 홍합이나 미역과 같은 연안 생태계가 마르면서 서식 환경이 파괴될 우려도 크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낮아진 해수면은 바다와 맞닿은 빙하의 끝부분을 안정시켜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 연구는 해수면 변화가 전 지구적으로 균일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린란드 당국은 이제 해수면 상승이 아닌 '땅이 솟아오르고 바다가 물러나는' 상황에 대비한 새로운 인프라 구축과 기후 적응 전략을 세워야 할 시점에 직면했다. 만일 트럼프의 미국이 그린란드를 차지하게 된다면 해수면 하강으로 인해 발생할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다”…원전에 대한 ‘전략적 모순’ 시민 인식

최근 정부가 검토 중인 신규 원전 건설에 응답자의 과반수가 찬성한다고 답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가운데, 우리 국민이 원자력발전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공포와 필요성이라는 두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김소영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2월 한국연구재단에 제출한 '원자력 에너지와 RE100(재생에너지 100%) 병존 이슈 및 현황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시민들은 원자력을 심리적으로는 거부하면서도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전략적 모순'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AIST 보고서에 담긴 전국 성인 남녀 180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시민들의 심리는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뚜렷하게 나뉜다. 먼저 감성적인 영역에서 원자력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시민들은 원자력 발전소의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 5점 만점 중 2.84점이라는 낮은 점수를 주었다. 이는 태양광(3.54점)이나 풍력(3.83점)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또한, 원자력 에너지가 안전한 지에 대해서도 2.91점에 그쳐 척도의 중간점인 3점을 넘지 못하는 등 심리적인 불안감이 여전히 큰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공포의 핵심에는 2011년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었고,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이 사건을 부정적 인식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성적 판단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시민들은 원자력이 위험하다고 느끼면서도, 한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3.6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주었다. 특히 국가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3.69점)이나 에너지 안보(3.51점)를 위해서는 원자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즉, “위험해서 싫지만,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는 모순된 생각이 한 사람의 마음속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시민들의 심리 상태를 '대체적 수용' 혹은 '마지못한 수용'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했다. “원자력 에너지 사용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기후 변화 대처와 에너지 안보를 위해 마지못해서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문항에 대해 많은 시민이 동의(3.39점)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재생에너지만으로는 100% 전력 공급이 불가능하다는 기술적 한계를 시민들이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원자력을 그 보완재로 선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한국갤럽이 지난 13~15일 전국 만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현재 추진 여부가 재논의되고 있는 신규 원전 2기 건설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응답자의 54%는 '건설해야 한다'고 대답해 '건설하지 말아야 한다'(25%)를 크게 앞질렀다. 정치성향별로는 보수층의 71%가 찬성 의견을 밝혔고, 중도·진보층은 50%가 찬성했다. 흥미로운 점은 기존 원전과 차세대 원전(소형모듈원자로(SMR) 등)을 바라보는 심리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아다. 전반적으로 차세대 원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평균 10.08점(24점 만점)으로 기존 원전보다 더 낮게 측정돼 아직은 생소하고 부정적인 태도가 강했다. 그러나 세부 분석을 보면 놀라운 반전이 발견되기도 한다. 보통 기존 원전에 대해 남성보다 훨씬 비판적이었던 여성들이, 안전성이 개선된 차세대 원전 기술에 대해서는 오히려 남성보다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사용하는 '병존 모델(CF100, 무탄소 에너지 100%)'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의견 차이가 크게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는 양측 모두 실용적인 관점에서 두 에너지원의 공존을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민들의 인식을 바탕으로 보고서는 원자력을 '기저부하 전력원'으로 유지하면서 재생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상호보완적 병존'을 우리나라의 최적 에너지 믹스로 제시했다. 지난해 2월 확정된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원전 비중을 35.2%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29.2%로 가져가는 로드맵이 추진되고 있다. 이 같은 에너지 믹스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 핵심 조건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첫째, 남부 지역의 재생에너지를 수도권으로 보낼 수 있는 전력망 및 송전 인프라의 획기적인 확충이 필요하며, 여기에는 약 56조 5000억 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둘째,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출력 조절이 가능한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 도입과 에너지저장장치(ESS) 확보가 필수적이다. 셋째,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 등 원전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신뢰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CF100의 국제적 공인과 인증 체계 확립을 위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보고서는 “경제적 보상과 안전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할 때 국민들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상호보완적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면서 “이는 각기 다른 장단점을 지닌 RE100과 CF100의 상보성을 기반으로 우리 산업구조와 지리적 환경 등을 고려해 보다 유연한 탄소중립 전략이 필요함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허용,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에 달렸다

지난 13~14일 일본 나라현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간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후쿠시마 수산물의 수입 허용 여부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이번 회담에서는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이 문제는 일본이 주도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과도 맞물리면서 언제든 현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 소비자가 일본산 수산물 소비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개인의 위험 인식보다 '정부에 대한 신뢰'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사회데이터과학연구소 배영 교수팀은 국제 학술지 '해양 정책(Marine Policy)' 최근호에 '위험 인식을 넘어: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후 정부 신뢰가 일본 수산물 구매 의향에 미치는 주도적 영향'이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팀은 논문에 2024년 2월 22일부터 3월 7일까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담았다. 동시에 국내 주요 뉴스 채널 유튜브 댓글 28만3408건을 텍스트 마이닝 기법으로 분석했다. 연구 결과, 일본산 수산물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9.6%에 불과했다. 연령이 낮을수록, 원자력(핵) 지식 수준과 정부 신뢰도가 높을수록, 그리고 핵 위험 인식이 낮을수록 구매 의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통계 분석에서 우리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개인의 방사능 위험 인식보다 구매 의지를 강하게 예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소비자들이 단순히 과학적 위험성 때문에 수산물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보호할 의지와 진정성을 보여주는가'를 더욱 중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유튜브 댓글 분석에서도 가장 큰 담론은 과학적 안전 문제를 넘어 정부 정책과 신뢰에 대한 비판이었다. 유튜브 댓글에서 나타난 정부 비판 담론은 정부가 국민의 생명보다 외교적 관계나 다른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인식, 즉 정부의 '선의'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반영하고 있었다. 결국 '수산물 안전' 키워드는 과학적 이슈와 정치적 비판을 연결하는 중심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방사능이라는 추상적이고 과학적인 위험을 '해산물 안전 문제'로 구체화해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고, 이를 정부의 대응과 신뢰도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했다. 이는 식품 안전에 대한 걱정이 단순한 소비자 문제를 넘어, 과학적 논쟁과 정치·사회적 논의를 확산시키는 핵심 요인임을 보여준다. 설문 조사 등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을수록 소비 의향이 높아지는 상관관계가 있었고, 신뢰도가 낮을수록 일본 해산물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지는 상관관계가 있었다. 정부 신뢰의 세 가지 차원(정보, 유능성, 선의) 중에서도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려는 진정한 의지(선의)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소비자의 구매 의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됐다. 흥미로운 점은 대중 담론 자체는 매우 정치화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설문 조사 분석 결과 개인의 정치적 성향(진보/보수)은 구매 의도 결정 단계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수산물 구매 거부가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것이라는 보편적인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임을 시사한다. 결국, 한국 소비자들에게 후쿠시마 수산물 문제는 단순히 과학적 팩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정부가 국민을 보호할 진정성이 있는지를 묻는 '신뢰의 문제'로 변모했다. 당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불신은 곧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강력한 거부 반응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는 몇 가지 한계도 있다. 원전 인근 지역 거주자와 대졸 이상 응답자 비중이 일반적인 분포보다 높아 일반화에 주의가 필요하다. 또 한일 관계의 역사적 적대감이나 반일 미디어 노출 등 외부 요인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번 연구는 정부가 단순히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을 넘어, 국민의 불안에 공감하고 보호 의지를 보여주는 '진정성 있는 소통'이 일본산 수산물 소비 심리 안정의 핵심임을 강조한다. 한편, 지난 13~14일 이 대통령과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에서는 후쿠시마현 등 일본 일부 지역 수산물 수입과 식품 안전 문제도 논의됐다. 회담 후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은 “일본 쪽은 식품 안전 또는 식품 무역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설명했고 우리는 잘 경청했다"며 ““일본은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고 우리는 그것을 경청하는 자리였다"고 밝혔다. 일본 측도 회담 이후 외신 인터뷰에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접근을 위해 양국 간 제대로 의사소통해가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상 공동발표에서는 한국의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포함되지 않았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공해(公海)지역 생물다양성 보호 조약 정식 발효

전 세계 바다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면서도 그동안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공해(公海, high seas)'를 보호하기 위한 역사적인 국제 조약이 시행됐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외신 등에 따르면 공해상의 해양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고 지속 가능하게 이용하기 위한 '국가관할권 이외 지역의 생물다양성 보전 협정(BBNJ Agreement)', 일명 '공해 조약'이 지난 17일 전 세계에서 공식 발효됐다. 공해 보호를 위한 최초의 법적 틀 마련 이번 협정은 지난 20여 년간의 논의 끝에 2023년 6월 유엔에서 채택됐다. 이 조약은 지난해 9월 60번째로 모로코가 비준서를 유엔에 기탁하면서 발효가 확정됐고, 비준서 기탁 120일이 지나면서 정식 발효됐다. 한국은 지난해 3월 비준했으며, 현재 중국과 일본, 브라질 등 80여 개이 비준했다. 미국은 조약에 서명은 했으나,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이번 조약 발효는 전 지구 표면의 절반에 달하는 공해에 대해 최초로 포괄적인 법적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공해는 개별 국가의 통제권이 미치지 않는 해역으로, 그동안 파괴적인 어업 활동, 해양 쓰레기 오염, 기후 변화 등 다양한 위협에 노출되어 왔다. 현재 공해 중 법적으로 강력하게 보호받는 지역은 단 1% 미만에 불과하다. BBNJ 협정의 핵심 목표 중 하나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바다의 30% 이상을 해양보호구역(MPA)으로 지정하는 '30 by 30' 결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협정 비준국들은 공해상에 해양보호구역을 설정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활동에 대해 엄격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의약품 개발 등에 활용될 수 있는 해양 유전자 자원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국가 간에 공유하는 메커니즘도 마련될 예정이다. 다만, 이번 협정은 심해저 광물 자원 채굴 등 일부 활동에 대해서는 국제해저기구(ISA) 등 기존 기구의 권한을 존중해야 한다는 한계도 지니고 있다. 그린피스는 이번 조약 발효를 기념하여 독일과 영국, 네덜란드 등 전 세계 13개국에서 해양 보호를 주제로 한 거리 벽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공해 보호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편, 특히 해양보호구역을 어떻게 감시하고 규정을 강제할지에 대한 세부 사항은 향후 열릴 당사국 총회(COP)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에너지믹스’ 고민하는 한국…해외 상황은 어떨까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달 30일과 지난 7일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 여부 등을 주제로 '바람직한 에너지 믹스 정책 토론회'를 두 차례 열었다. 에너지 믹스(energy mix)란 전력을 생산할 때 사용되는 석탄·석유·천연가스·원자력·수력·태양·풍력 등 여러 에너지원의 비율을 말한다. 에너지 믹스를 놓고 고민하는 것은 다양한 연료를 조합해 경제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공급 안정성을 높이고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전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2월 확정된 11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정부는 2030년 원자력 31.8 %, 석탄 17.2 %, LNG 25.1 %, 재생 21.7 %로 계획한 바 있다. 또 2038년에는 원전 35.6%, 신재생 32.9%, 수소암모니아 5.5%, 석탄 10.3%로 무탄소 비중을 70 %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도 했다. 이번 두 차례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기후부의 '계획'에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했고, 의견이 쉽게 모아지지는 않았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 강화, 경제성 확보라는 세 가지 과제, 즉 '에너지 트릴레마(energy trilemma)'를 해결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외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도 전례 없는 에너지 시스템의 대전환을 겪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는 각국에 에너지 자립의 절실함을 일깨웠고, 이는 재생 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효율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인류 역사상 석탄과 석유 시대를 지나 이제 청정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전기의 시대(age of electricity)'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진 한국이 이러한 거대한 변화 속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외국의 에너지 정책을 살펴보고 그들이 겪은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는 것도 중요하다. ◇영국: 법적 프레임워크와 공공 주도의 재생에너지 가속화 영국은 세계 최초로 법적 구속력이 있는 탄소 감축 목표를 설정한 '기후변화법(Climate Change Act)'을 통해 에너지 정책의 안정성을 확보해 왔다. 이 법은 5년 단위의 '탄소 예산(carbon budgets)'을 설정해 정부가 단기적인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2050년 넷제로를 향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도록 강제한다. 영국 노동당 정부는 최근 '그레이트 브리티시 에너지(Great British Energy)'라는 공공 에너지 기업을 설립해 해상 풍력 등 국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이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낮추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가계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특히 영국은 2024년에 마지막 석탄 화력 발전소를 폐쇄하며 화석 연료 시대의 종료를 선언했다. 기후변화 분석 전문 매체인 카본 브리프(Carbon Brief)는 지난달 발표한 '2025년 영국 전력 부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은 재생에너지가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스(LNG) 발전량은 오히려 전년 대비 5%(5TWh) 증가한 91TWh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가스는 영국 전력 믹스의 약 28%를 차지하게 됐다. 2025년 영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전체 전력 공급의 47%를 차지했고, LNG가 28%, 원자력이 11%, 순수입 10% 순이었다. LNG 발전이 증가한 원인으로는 ▶석탄 발전의 완전한 종료 ▶원자력 발전의 급감 ▶전기화에 따른 전력 수요의 반등 ▶수출 증가와 수입 감소 등이 꼽혔다. 전기 수요가 늘어난 것은 신규 전기차와 히트펌프 보급확대 보급, 데이터 센터 확충 등이 지목됐다. 이처럼 가스 발전이 늘어나면서 영국 전력의 탄소 집약도는 오히려 전년 대비 2% 상승한 126gCO2/kWh를 기록했다. 2024년 기록했던 역대 최저치(124g)에서 소폭 후퇴했다. ◇독일: 산업 경쟁력 보호와 전력망 확충의 과제 독일은 원자력 발전을 완전히 폐쇄(Atomausstieg)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80%로 끌어올리려는 야심 찬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독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59%에 달했으나,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높은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전기요금을 기록하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이에 독일 정부는 에너지 집약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 상한제 도입을 검토해 왔다. 로베르트 하베크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지난 2023년 5월 재생에너지 용량이 충분히 확보되어 가격이 안정될 때까지 산업계를 보호할 '교량(bridge)' 역할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에너지원별 발전량(2024년 잠정치)을 보면 풍력이 140.9TWh로 가장 많고, 태양광 74.0TWh, 바이오매스 43.4TWh, 수력 21.1TWh 순이다. 또한 독일은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신규 가스 발전소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실용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이는 재생에너지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때를 대비한 백업 전원으로서, 향후 청정 수소로 전환 가능한 구조를 갖추도록 설계됐다. 독일의 사례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반드시 전력망 확충 및 유연한 백업 전원 확보와 병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이웃 스위스는 폴리제로(POLIZERO) 프로젝트를 통해 2050년 넷제로 달성을 위한 최적의 경로를 탐색하고 있다. 지난해 공개된 폴 쉐러 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위스는 점진적인 원전 폐쇄에 따라 발생하는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35년까지 태양광 발전 용량을 현재의 3배로 확충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주택과 교통 부문의 대대적인 전기화가 필요하고, 특히 지능형 제어가 가능한 히트펌프와 전기차를 전력망의 유연성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게 연구소의 견해다. ◇EU: 에너지 안보와 기후 목표의 일치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을 완전히 끊기 위한 '리파워(REPower) EU'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2027년까지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수입선 다변화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속화하고 있다. 유럽의회는 지난 2023년 9월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기존 32%에서 42.5%(법적 구속력이 있는 목표. 추가적인 지향적 목표는 45%)로 높이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제 에너지 싱크탱크인 엠버(Ember)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EU 전체 전력 생산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47.4%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태양광 발전 비중(11.1%)이 처음으로 석탄(9.8%)을 앞질렀고, 원자력(23.7%)을 포함한 무탄소 전력 비중은 71.1%에 달했다. 코넬 대학교의 아푸르브 랄 교수 등이 지난해 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풍력과 태양광의 대대적인 확장과 그린 수소의 도입은 에너지 안보 강화와 탄소 감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전략이다. 특히 전기를 직접 쓰기 어려운 중공업 분야에서는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수소가 천연가스를 대체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 녹색 전환(GX)과 원자력의 재조명 일본은 2023년 'GX(Green Transformation, 녹색전환) 추진법'을 제정해 향후 10년간 민관 합동으로 150조 엔 이상의 투자를 이끌어내려 하고 있다. 신슈(信州)대학교의 코바야시 히로시 교수는 지난해 논문(미국 오리건대학 논문집)을 통해 일본이 화석 연료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성장 지향적 탄소 가격제(growth-oriented carbon pricing)'를 도입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가능한 한 저감'하려 했던 원자력 발전에 대한 기조를 바꿔, 에너지 안보와 탈탄소를 위해 원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운전 기간을 연장하면서 차세대 원자로를 신설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40년 에너지 믹스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40~50%로 높이면서도 원자력을 주요 기저 전원으로 유지할 계획이다. 또한 일본은 재생에너지 설비 설치 시 발생하는 지역 주민과의 갈등(경관 훼손, 소음 등)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 사회와의 공생'을 법적 요건으로 강화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비용과 소송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이다. '재생에너지 특별조치법'을 개정, 주민 설명회 개최를 의무화했다. 주민 설명회를 열지 않거나 소통 노력이 부족할 경우 사업 인증 자체를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사업자가 인증받은 계획을 철저히 준수하도록 관리 감독 체계도 강화했다. ◇미국: 정치적 변동성과 '기후 연방주의'를 통한 대응 미국의 에너지 정책은 연방 정부의 집권 세력에 따라 급격한 정책 변화를 겪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이러한 가변성 속에서 주(State) 정부 주도의 기후 행동과 기술적 혁신이 어떻게 에너지 전환을 지탱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기후 변화에 민감한 23개 주와 워싱턴 D.C.가 연방 정부의 포괄적인 정책 부재 상황에서도 독자적인 넷제로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서부 지역의 경우, 태양광과 풍력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대규모 송전망 확충이 필수적이다. 태평양 연안 북서부 국립연구소(PNNL)가 2024년 9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건설 중이거나 허가 단계에 있는 12개의 고전압 송전 프로젝트가 2030년까지 완공될 경우 서부 16개 주 전역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73%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전력망의 안정성을 위해 장기 에너지 저장 장치(LDES)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해결하기 위해 10~100시간 동안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LDES는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다. 캘리포니아와 같은 지역에서는 태양광 발전이 급감하는 저녁 시간대의 전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30GW 규모의 용량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PNNL은 분석했다. 로듐 그룹(Rhodium Group)이 최근 발표한 '2025년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 예비 추정치'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 대비 2.4% 증가했다. 이는 추운 겨울로 인한 건물 부문 난방 수요 증가와 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석탄 발전의 일시적 회귀(13% 증가) 때문으로 분석됐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원 빅 뷰티풀 빌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 등을 통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세액 공제 혜택이 2027년 이후 중단될 우려가 커지면서, 청정에너지 투자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 미국의 태양광 발전은 34% 증가해 역대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고, 무탄소 전원의 비중은 42%까지 상승했다. ◇한국 에너지 믹스에 주는 시사점: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조화 이상의 국가별 사례를 종합할 때,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조화로운 공존이다. 원자력은 저탄소 기저 전원으로서 경제성이 뛰어나지만 출력 조절이 어려운 경직성을 가진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간헐성이 큰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처럼 원전을 기저 전력으로 활용하되, 영국과 스위스가 강조하듯 대규모 에너지 저장 장치(ESS)와 양수 발전, 그리고 전력 수요를 실시간으로 조절하는 수요 반응(DR) 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 둘째, 에너지 안보를 위한 기술 주권 확보다. 에스토니아 등 유럽 국가들은 재생에너지 부품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에너지 안보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공급망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한국 역시 재생에너지 설비의 핵심 부품과 배터리 소재 등에 대한 국내 산업 생태계를 보호하고 기술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한 정책 설계다. 에너지 전환은 필연적으로 이해관계자의 갈등을 유발한다. 정책 초기 단계부터 지역 주민과의 공생 방안을 마련하고, 에너지 빈곤층을 보호하기 위한 섬세한 지원책이 병행되어야만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 확보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각국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법적 토대를 공고히 하고(영국) ▶산업 경쟁력을 배려하며(독일) ▶지역 간 전력망과 저장 시설을 확충하고(미국/유럽)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전략적으로 배분하는(일본/스위스) 등 입체적인 에너지 믹스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엘니뇨가 인류 수명을 두고두고 갉아먹는다

엘니뇨는 흔히 폭우와 가뭄, 폭염을 동반하는 일시적 기상이변으로 인식되곤 한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연구는 이 통념을 뒤집는다. 엘니뇨는 단발성 재난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인류의 기대수명을 조금씩, 그러나 지속적으로 갉아먹는 구조적 위험 요인이라는 것이다.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과 홍콩 시립대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지난 60여 년간의 엘니뇨 사건과 환태평양 국가들의 사망 통계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 논문에서 엘니뇨가 사망률 개선 속도를 체계적으로 둔화시킨다는 사실을 정량적으로 입증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는 현재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약속 수준을 반영한 시나리오(SSP2-4.5)를 적용했을 때, 2020~2099년 사이 엘니뇨로 인한 누적 기대수명 손실의 중앙값이 2.8년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금전 가치로 환산하면 약 35조 달러(5경1600조 원)에 이른다. 이는 해당 국가들이 21세기 동안 생산할 총 경제 규모의 약 1%에 해당하고, 코로나19 이전 미국 연간 의료비 지출의 9배에 달하는 규모다. 엘니뇨(El Niño)는 열대 태평양의 중앙 및 동쪽 해역에서 해수면 온도가 평상시보다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전 세계적으로 홍수, 극심한 폭염, 대기 오염과 같은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나타난다. 엘니뇨는 전염병, 설사병, 심혈관 및 호흡기 질환을 유발해 사망률을 높인다. 특히 의료 기술 발달로 수명이 지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를 거슬러 결과적으로 인류의 기대수명을 단축시키는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엘니뇨의 충격 최대 10~16년 지속 연구의 핵심 발견은 엘니뇨의 영향이 발생 연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력한 엘니뇨가 발생하면 폭염과 대기오염 악화, 감염병 확산, 의료체계 부담 증가 등이 겹치면서 사망률이 일시적으로 상승한다. 문제는 이 충격이 이후 수년간 사망률 개선 추세 자체를 낮춰버린다는 데 있다. 예컨대, 의료기술 발전과 생활환경 개선으로 매년 기대수명이 0.2년씩 늘어날 수 있었던 사회에서 엘니뇨가 발생하면 그 이후에는 그 기대수명 증가 폭이 0.1년 또는 그 이하로 줄어든다. 이 '작은 차이'가 해마다 누적되면서 몇 년 뒤에는 통계적으로 뚜렷한 기대수명 격차로 나타난다. 이번 연구에서 사용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누적 기대수명 손실(cumulative life expectancy loss)'이다. 이는 특정 시점의 기대수명이 몇 개월 줄었는지를 말하는 지표가 아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엘니뇨가 없었다면 이어졌을 기대수명 증가 경로와 실제로 관측된 기대수명 경로 사이의 차이를 시간에 따라 모두 합산한 값이다. 이는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속도가 줄어든 경우에 비유할 수 있다. 한번 속도가 줄면 이후 다시 가속하더라도, 이미 늦어진 거리만큼은 영원히 회복되지 않는다. 엘니뇨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사회 전체의 '수명 증가 속도'를 늦추고, 그 결과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손실을 남긴다. 마찬가지로 논문에서 제시한 '2100년까지 2.8년의 누적 기대수명 손실'이란 2100년에 갑자기 수명이 2.8년 줄어든다는 뜻이 아니다. 2020년대부터 반복되는 엘니뇨의 영향으로 매년 조금씩 사라진 기대수명의 총합이 2.8년에 이른다는 의미다. ◇한국인도 기대 수명 손실 나타나 연구진은 신뢰할 수 있는 사망 통계를 가진 환태평양 10개 국가·지역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는 한국과 미국·일본·캐나다·호주 등이 포함됐다. 연구팀은 엘니뇨가 기대수명에 미친 순수 영향을 분리하기 위해 1982~83년이나 1997~98년처럼 강력한 엘니뇨가 발생했던 해의 엘니뇨 강도(E-index) 값을 0으로 설정하고, 해당 기상 이변이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를 가정했다. 연구팀은 이런 방법에 따라 1960~2022년까지 10개국의 데이터를 적용해 엘니뇨 강도가 '사망률 개선 속도'를 얼마나 둔화시키는지를 나타내는 회귀 계수를 산출했다. 미국의 경우 1982~83년 엘니뇨로 인해 0.6년 이상, 1997~98년 엘니뇨로 인해서는 0.4년 정도의 기대수명 누적 손실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 논문에서 한국도 엘니뇨의 영향을 받는 국가로 제시됐다. 국가별 분석 결과를 보면, 1982~83년과 1997~98년 두 차례 초강력 엘니뇨 모두에서 한국은 기대수명 누적 손실이 '음(-)'의 방향으로 나타났다. 다만, 추정치를 사용한 탓에 연구팀은 통계적으로 유의하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한국은 엘니뇨의 직접 경로에 있지 않음에도, 여름 폭염의 강도 증가나 계절 강수 패턴 변화, 대기질 악화와 열 스트레스 증가 등의 간접 효과를 통해 장기적인 건강 부담을 축적해왔다는 뜻이다. 특히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빠른 사회이기 때문에, 사망률 개선 속도가 조금만 흔들려도 기대수명 전체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연구진이 1982~83년 엘니뇨가 1997~98년보다 더 큰 기대수명 손실을 남겼다고 분석한 것도,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1980년대 사망률 개선 속도가 1990년대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빠르게 나아가던 경로일수록, 작은 충격에도 잃는 것이 커진다. ◇젊은 층은 '건강', 중장년층은 '경제' 타격 연령대별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엘니뇨로 인한 사망률 개선 둔화는 30세 미만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 폭염과 대기오염, 감염병에 더 많이 노출되고, 대응 자원이 부족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반면, 경제적 손실의 대부분은 30~59세 중장년층에서 발생한다. 이 연령대는 사회 전체 생산의 중심이며, 통계적으로 '한 명의 사망이 가지는 경제적 가치(Value of Statistical Life)'가 가장 크다. 엘니뇨로 인한 건강 악화와 조기 사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구조적 손실로 이어진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는 엘니뇨가 일시적인 기상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엘니뇨는 인류의 기대수명 증가 경로 자체를 잠식하는 장기적 위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조기경보 체계, 폭염 대응 의료 시스템, 취약계층 보호 정책을 기후 적응 전략과 결합하지 않는다면 엘니뇨는 인류의 수명을 단축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한국처럼 고령화가 빠르고, 폭염과 대기오염에 취약한 사회일수록 엘니뇨 대응은 기후 정책의 부차적 영역이 아니라 보건·복지·경제 정책의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해상풍력법 하위 법령 공개…‘환경영향평가 특례’ 조항 우려 목소리

오는 3월 26일 '해상풍력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해상풍력법)'의 시행을 앞두고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4일 공청회를 열고 하위 법령안(시행령안·시행규칙안)을 공개했다. 하위법령안에는 해상풍력법(지난해 제정)에서 위임한 구체적인 절차와 기준이 담겼다. 해상풍력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입지 발굴부터 인허가까지 직접 챙기는 이 법이 시행되면 실제로 어떤 순서로 사업이 진행될 것인지를 법률과 이날 공개된 하위 법령안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1. 거버넌스 구축: 총리 소속 '해상풍력위원회' 컨트롤타워 사업의 모든 중요 결정은 국무총리와 민간위원이 공동위원장을 맡는 '해상풍력발전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한다. 이 위원회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이하 기후부) 장관을 포함해 25명 이내의 부처 장관 및 민간 전문가로 구성되고, 예비·발전지구 지정 및 사업자 선정 등 핵심 사안을 다룬다. 실무적인 사항이나 경미한 설계 변경 등은 기후부 차관이 주재하는 '실무위원회'에 위임해 의사결정의 신속성을 높일 방침이다. 해상풍력위원회 등이 원활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기후부 내에 해상풍력 발전 추진단 등의 전담기관도 설치·운영된다. 2. 입지 발굴: '입지정보망' 가동과 '예비지구' 지정 정부는 가장 먼저 풍황(바람의 상황), 어업 활동, 해양 환경, 해상 교통, 군사 작전 정보 등이 집약된 '해상풍력 입지 정보망'을 공동으로 구축한다. 사업자가 개별적으로 조사한 자료(해저 지반 조사 자료, 국가유산 영향 진단 조사 자료 등)도 국가에 귀속돼 입지 정보로 활용된다. 기후부나 해양수산부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요건을 충족하는 지역을 '해상풍력발전 예비지구'로 지정한다. 이 때 해상풍력위원회의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발굴한 지역도 지정 신청이 가능하도록 관련 절차를 시행령안에 반영했다. 법과 시행령에서 규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지역'은 풍황이 적합하고, 어업활동이나 해상교통 안전, 군사작전, 해양환경과 생태계 등에 영향이 적은 지역을 말한다. 3. 설계 및 수용성: '기본설계' 수립과 '민관협의회'의 역할 예비지구가 지정되면 기후부는 단지 배치, 용량, 전력 계통 연계 방안을 담은 '기본설계안'을 수립하게 된다. 이때 기후부는 해양·환경적 영향 조사를 선제적으로 실시하게 되며, 해수부와 협의를 거쳐 설계를 확정한다. 주민 수용성을 위해 지자체장은 어업인과 주민이 50% 이상, 공익 위원이 20% 이상 참여하는 지역민 중심의 '민관협의회'를 구성·운영해야 한다. 10~25명으로 구성되는 협의회는 기본설계안과 이익 공유 방안을 논의하게 되는데, 신속한 진행을 위해 협의 기간을 최대 1년 6개월로 설정했다. 4. 지구 확정 및 입찰: '발전지구' 지정과 '풍력사업자' 선정 민관협의회에서 수용성이 확보되면 위원회 심의를 통해 '발전지구'가 최종 지정된다. 특히 1기가와트(GW)를 초과하는 대규모 발전지구는 송전사업자가 접속 설비를 우선 건설해 계통 연결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도록 규정했다. 해당 비용은 발전사업자로부터 회수하게 된다. 발전사업자는 경쟁 입찰 방식으로 선정된다. 하위 법령안에 따르면 입찰 시 발전 단가뿐만 아니라 재무 건전성, 자금조달 능력, 주민 수용성 확보 계획, 산업 기여도, 사업비 적정성 등을 종합 평가한다. 선정된 사업자는 정부가 사전에 투자한 비용(기본설계, 민관협의회 지원 등)을 납부해야 한다. 5. 최종 승인과 공사: '실시계획' 승인 및 '인허가 의제' 선정된 사업자는 상세한 '실시계획'을 만들어 환경성 평가서 등을 기후부에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실시계획에는 발전구역의 위치와 면적, 사업기간, 자금조달 계획, 민관협의회 결과 이행, 손실 보상 등이 포함된다. 이 과정의 핵심은 '환경영향평가 특례' 조항이다. 사업자는 기후부가 기본설계 당시 실시한 해양·환경 영향조사를 적용하게 되는데, 정부의 사전 조사와 달라진 사항이나 정부 조사에서 누락된 부분에 대해서만 환경성 평가를 실시하면 된다. 시행령안에서는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의 신속한 투자가 필요한 경우에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실시계획이 승인되면 전기사업 허가, 공유수면 허가 등 28개의 인허가를 한 번에 받은 것으로 간주(의제 처리)된다. 이후 착공 신고를 거쳐 공사를 시작하고, 준공 후에는 기후부의 준공 인가를 받음으로써 모든 절차가 완료된다. 6. 하위 법령안에 제기되는 문제점 이처럼 체계적인 절차에도 불구하고 하위 법령안의 특정 대목은 환경단체 등에서 우려를 제기한다. 우선 환경 검증의 부실화 우려다. 실시계획 단계에서 '누락이나 변경된 사항만' 평가하도록 한 특례는 실제 터빈 위치나 시공 방식이 결정된 후의 정밀한 환경 영향을 놓칠 위험이 있다. '누락'이나 '변경'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논란이 벌어진다면 오히려 사업 속도를 늦출 수도 있다. '자기 면제' 논란도 있다. 기후부가 입지를 정하고 기본설계를 하며 스스로 환경 조사를 주관하는 구조는 정책 추진자가 규제자 역할, 즉 선수가 심판까지 겸하는 꼴이 돼 환경성 검토가 형식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개발 업무와 규제 업무가 한 부처에 있어 각기 다른 부처에 있을 때보다는 소통이 잘 될 수 있지만, 기후부 장관이 개발과 규제 가운데 어느 쪽에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영국·독일 등 해외 주요국에서도 정부 주도 계획입지를 결정하지만, 사업 단계의 환경영향평가 수준 자체를 제도적으로 경감하는 사례는 드물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환경연구원(KEI) 조공장 박사는 “일반적인 환경영향평가는 개발사업 입지가 결정된 다음에 진행되는 데 비해 해상풍력법에서는 발전단지 입지를 최종 결정하기 전에 두 차례 환경 조사를 미리 진행하는 것"이라며 “특례가 있더라도 환경영향평가가 실질적인 기능을 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미국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 2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의 급증하는 전력 수요와 갑작스러운 한파 탓으로 수년간의 감소세를 보이던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미국의 독립 정책 연구기관인 로듐 그룹(Rhodium Group)은 13일(현지 시간) 공개한 '2025년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 잠정 추정치' 보고서를 통해 2025년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2024년 대비 약 2.4%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년 이상 감소 추세를 보였다. 이번 조사 결과는 급속도로 확장하는 AI 데이터센터 산업과 암호화폐의 에너지 사용 증가 등 전력 부문 관련 배출량 증가(2025년 약 3.8% 상승)에 기인한 것이다. 또한, 지난해 예년보다 추운 겨울철로 인해 건물 난방 수요가 증가하면서 2024년 대비 배출량이 6.8%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로듐 보고서는 “과거 및 예측된 부문별 소비 데이터를 기반으로 볼 때, 전력 사용량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상업용 건물이며, 데이터센터, 암호화폐 채굴 시설 및 기타 대용량 전력 사용자들로 인해 전력 수요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한 2025년에 운송 부문이 다른 어떤 부문보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았지만, 배출량 증가폭은 거의 없었다고 분석했다. 이는 미국 도로에 하이브리드 및 전기 자동차가 더 많이 운행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와 AI 데이터 센터 확대 추진은 미국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거의 확실히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력에너지 믹스에서 석탄 발전의 비중이 4년 만에 다시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 로듐 분석가들은 당시 미국의 정책 환경 하에서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38~56%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이제 그 예측치를 2035년까지 26~35% 줄이는 것으로 하향 조정했다. 로듐 분석가들은 보고서에서 “지난해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장기 전망이 급격히 바뀌었다"고 밝혔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2020년 여름 美 플로리다를 덮친 기름오염 덩어리 미스터리 풀렸다

지난 2020년 여름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의 해변에서 이상한 물건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유리병과 플라스틱 병, 고무 덩어리 등이었다. 표면에는 검고 끈적한 기름 찌꺼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지역 환경단체는 이를 '타르-쓰레기(tar-trash)'라 부르며 사진을 공개했다. 쓰레기에 기름 덩어리(타르볼)이 엉켜있다는 의미다. 타르볼(tar ball)은 바다에 유출된 석유가 파도·햇빛을 맞고 증발·산화 과정을 거치면서 덩어리 형태로 굳은 잔해를 말한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플로리다 인근에서는 어떤 대형 기름 유출 사고도 보고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기름은 과연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왜 하필 플라스틱과 함께였을까. 학계에서도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나섰다. 노스이스턴 대학 및 우즈홀 해양연구소(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를 포함한 20여 명의 국제 공동 연구진이 뭉쳤다. 이들은 최근 국제 학술지 '환경 과학 및 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에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단서 1: 현지에 없는 기름 처음에는 멕시코만의 오래된 해저 자연 유출 가능성이 의심됐다. 멕시코만에서는 해저 단층을 따라 수천~수만 년 동안 원유가 소량씩 지속적으로 유출된다. 2010년 발생했던 딥워터 호라이즌(Deepwater Horizon) 시추선 폭발 사고 같은 규모가 큰 인위적 사고도 있었다. 당시 490만 배럴의 원유가 유출됐다. 하지만 플로리다에서 발견된 기름의 상태가 이상했다. 풍화가 상당 부분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성분은 놀랄 만큼 잘 보존돼 있었다. 무엇보다 기름이 플라스틱 표면에 얇게 코팅된 채 붙어 있다는 점이 기존의 기름 오염 사례와 달랐다. 연구팀은 이 기름이 가까운 곳에서 새어 나온 것이 아니라, 먼 거리에서 이동해 온 흔적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단서 2: 기름의 '지문'을 읽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정밀 화학 분석이었다. 연구팀은 플로리다 해변에서 수거한 타르-쓰레기의 기름 찌꺼기를 대상으로 이차원 가스크로마토그래피(GC×GC)와 초고해상도 질량분석(FT-ICR MS)을 적용했다. 이 방법은 원유 속 극미량의 생물지표 물질—호판, 스테란, 황 화합물—의 조성을 비교해 기름의 출처를 사실상 '지문(fingerprint)'처럼 특정할 수 있다. 호판(hopanes)과 스테란(steranes)은 원유 속에 남아 있는 고대 미생물의 흔적이다. 풍화에도 안정적인 물질이어서 이들 물질의 양과 비율로부터 원유의 기원과 형성 환경을 확인할 수 있다. 분석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플로리다에서 발견된 기름의 화학적 조성이 2019년 브라질 북동부 해안을 따라 3000㎞ 이상을 오염시켰던 '브라질 미스터리 기름 유출 사고'의 잔여 기름과 거의 일치했다. 두 지점 사이의 거리는 약 8500㎞. 적도를 넘어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거리였다. 한편, 2019년 8월부터 12월까지 브라질 북동부 해안을 초토화한 기름 유출 사고는 브라질 역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였으나 그 정확한 발원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당시 브라질 당국은 원유 운반선이나 1944년 침몰한 독일 보급선 'SS 리오 그란데' 호에서 기름이 유출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단서 3: 어떻게 그런 항해가 가능했을까 일반적으로 바다에 유출된 기름은 수주에서 수개월 사이에 증발·분산·침전되는 풍화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수백 ㎞ 이상 이동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이번 기름은 약 240일 동안, 하루 평균 30~40㎞ 속도로 이동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 비밀은 플라스틱 쓰레기였다. 플라스틱은 물을 밀어내는 '소수성(hydrophobic)' 표면을 갖고 있어 기름이 쉽게 달라붙는다. 한 번 달라붙은 기름은 햇빛과 파도, 미생물에 의한 분해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된다. 다시 말해, 플라스틱은 기름에게 부유식 보호막이자 운송 수단 역할을 한 셈이다. 플라스틱과 기름이 결합한 타르-쓰레기는 해류라는 거대한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남적도 해류에서 시작해 북브라질 해류, 가이아나 해류와 카리브 해류를 거쳐 멕시코만의 루프 해류, 그리고 플로리다 해협까지 이어지는 경로다. 연구진은 여기에 기후변화로 강도가 커진 허리케인과 폭풍이 간헐적인 가속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강한 바람과 파도는 부유 쓰레기를 한 번에 수백 ㎞씩 이동시키며, 예상 경로를 벗어나게 만들기도 한다. ◇끝나지 않은 항해 이 사건을 통해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는 더 이상 수동적인 오염원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기름과 중금속, 유기오염물질을 함께 실어 나르는 이동형 복합 오염체라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타르-쓰레기를 ▶플라스티타(Plastitar, 플라스틱(Plastic)과 타르(Tar)의 합성어) ▶페트로플라스틱(Petroplastic, 석유(Petroleum)와 플라스틱의 합성어) ▶플라스토-타르볼(Plasto-tarball, 플라스틱과 타르볼(Tarball)의 합성어) 등으로 부르지만 본질은 같다. 하나의 오염이 다른 오염을 증폭시키는 구조다. 눈에 보이는 기름띠가 사라진 뒤에도, 오염은 조용히 이동한다. 플로리다에 도착한 것은 오염의 일부에 불과하다. 더 작은 플라스틱 조각, 더 많은 타르-쓰레기는 지금도 대서양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것은 해저로 가라앉고, 어떤 것은 미세플라스틱이 되어 생물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8500㎞를 건너온 이 기름의 항해는 플라스틱 오염, 해류 시스템, 기후변화가 결합될 때 무엇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더욱이 분명한 사실은 그 오염의 항해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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