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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신연수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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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칼럼] 이재명의 경제정책, 출발은 좋은데…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분배…. 민주당의 단골 메뉴였던 이런 용어들이 이재명 대통령의 경제 공약에서는 사라졌다. 대신 성장이 경제정책의 맨 앞에 나왔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지난달 펴낸 '새 정부 성장정책 해설서'에서는 박정희의 산업화, 김대중의 정보화에 이어 이재명 정부가 제2의 경제 대도약을 이루겠다고 했다. 분배보다 성장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를 반영하지만, 그만큼 우리 경제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였고 지난 1년간 폐업한 사업자 수는 사상 처음 100만 명을 넘어섰다. 수출과 내수가 모두 침체에 빠져 글로벌 대기업부터 골목상권까지 안 어려운 데가 없다. 문제는 이런 불황이 경기 순환에 따른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깊어진다는데 있다. 저성장이 이대로 굳어진다면 모든 사람에게 기회의 창은 점점 좁아질 것이다. 정부가 성장의 불꽃을 다시 피우는데 집중하기로 한 것은 옳다.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이재명 정부가 선택한 것은 첫 번째가 인공지능(AI)이고 두 번째가 에너지전환 관련 산업이다. AI는 기술을 넘어 문명의 전환을 가져올 핵심 인프라가 되고 있다. 2019년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한국이 집중할 것은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일본의 수출 보복, 부동산 가격 폭등 같은 힘겨운 현안들 때문인지 AI에 집중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이제라도 AI를 강조하게 되어 다행이다. 에너지전환 역시 탄소중립이 세계 경제의 표준이 되고 있는 만큼 적절한 목표 설정이다. 탄소 배출이 많은 한국의 제조업을 탄소제로 기술로 업그레이드해야 경쟁력이 살아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시절 세계적 추세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축소하고 전력망 확충에 소홀했던 만큼, 서둘러 쫓아가야 할 분야이기도 하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지 30여 일. 시작은 좋아 보인다. 한 달 만에 코스피가 14% 오르며 세계 주요 국가들 가운데 최고의 주가 상승률을 보였다. 정부가 재정 확대를 통해 AI, 바이오, 방산 등 전략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히고, 상법 개정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개선한 것이 효과를 봤다. '이재명 랠리'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주식시장이 활기를 띄고, 꿈틀대던 서울 집값은 한 번의 대출규제 발표로 숨을 죽였다. 그러나 어쩌면 좋은 것은 여기까지일 지 모른다. 계엄과 탄핵으로 경제활동이 얼어붙고 윤석열 정부의 아마추어 같은 국정운영으로 사회 전체가 엉망진창이었기에, 이재명 정부는 기저효과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비용 청구서가 날아들 일만 남았다. 새 정부의 성장 정책 방향은 옳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풀어야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AI에 100조 원을 투자해 세계 3대 AI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으나, 100조 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 등 각종 세금을 줄여서 매년 세수 펑크를 냈고 재정적자도 늘렸다. 이재명 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한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사람들이 싫어할 '증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에너지전환의 경우 에너지고속도로 건설만 얘기하고 전력시장 구조개편 같은 논란이 첨예한 사안들은 빼놓았다. 공약 단계에서는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할 수 있지만, 실제로 정책을 집행하는 단계에 들어서면 재원조달이나 구조개혁 같은 험난한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나와야 진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전 국민에게 소비쿠폰을 나눠주고 증시를 띄우는 것은 일시적인 방편은 되겠지만 근본적인 경제 정책이 될 수 없다. 실물경제 회복 없는 주가 상승은 부동산에 이어 주식시장마저 투기장으로 만들 뿐이다. 한국 경제는 대내외적 전환기에 있다. 밖으로는 자유무역체제가 위협받고 안으로는 혁신이 고갈되고 있다. 미국과의 슬기로운 관세협상으로 수출 산업을 지키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키워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한국의 미래 30년이 달렸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기후경제 언박싱 ④ RE100은 불가능한가?

기후와 에너지는 인류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접근보다 이념적 선입견이 앞서거나, 정보는 넘치지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기후와 에너지, 그리고 경제에 관한 정확한 사실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을 취재해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RE100은 사실 불가능한 것이다. 그 자체는 좋은 구호이긴 하나 상당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에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5월 23일 대선 후보 TV토론)" 최근 대선 토론 때마다 RE100은 논란이 되었다. 2022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RE100이 뭐죠?"라고 물었다가 '기후에너지 문제를 모른다'는 비판을 받았다. 2025년 대선 토론에서는 RE100을 놓고 후보들은 물론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이 논평을 내며 논쟁을 벌였다. RE100은 Renewable Electricity 100의 약자로, 기업들이 사용하는 전기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자는 캠페인이다. 이에 대해 우리 기업들의 수출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주장과, 현실적으로 실행이 어렵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실제로는 어떤지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에너지정책학)와 10년간 현장에서 기업들에게 재생에너지를 판매해온 김승희 KEI컨설팅 매니저의 자문을 받아 살펴본다. RE100은 영국에 기반을 둔 단체 '클라이밋그룹(Climate Group)'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Carbon Disclosure Project)가 2014년 시작한 캠페인이다. 구글, 애플, 마이크포소프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협력업체들에게도 RE100을 요구하면서 민간 캠페인임에도 불구하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이상준 교수는 “온실가스 감축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다. RE100은 그 중 일부인 기업이 쓰는 전기만을 떼어내 단순한 목표, 알기 쉬운 이행점검 등을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RE100에는 현재 445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대표적인 기업 36곳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2030년까지 기업이 쓰는 전기의 60%, 2040년에는 90%, 2050년에는 100%의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것이 목표다. 지난 5월 클라이밋그룹이 발표한 〈2024 RE100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회원사들이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있다. 작년에는 세계 424개 기업이 평균 53%의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했다. 그 중에서도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는 이미 99.8%, 애플은 98%, 인텔 97% 나이키 96%, UBS 82%, 로열필립스 99.2%, 뉴발란스는 90% 등 이미 연도별 목표를 초과 달성했고, 2050년 목표인 100%에 거의 도달했다. 반면에 한국 기업들은 삼성전자 31%, 삼성화재 4%, SK하이닉스 30%, SK홀딩스 18%, 현대차 13% 수준에 불과하다. 김승희 매니저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은 데이터센터도 포함되기 때문에 사용하는 전기량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이미 거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한국은 전기를 많이 쓰는 제조업이 많아서 RE100이 어려운 게 아니라는 얘기다. 김 매니저는 “RE100 연차 보고서를 보면 한국이 재생에너지를 가장 구하기 어려운 나라로 꼽힌다. 한국은 제조업이 많아서 RE100 달성이 어려운 게 아니라 재생에너지가 부족해서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과 미국에도 제조업체들이 많지만 그 지역들은 재생에너지를 구하기가 쉬워서 RE100을 달성하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협력업체들에게도 RE100을 요구하는데, 한국 기업들에게 불이익은 없을까? “RE100은 기업들에게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되는 요소"라는데 두 전문가의 의견이 일치했다. 글로벌 RE100에 가입한 한국 대기업은 36개지만, 한국 정부가 국내 여건에 맞춰 운영하고 있는 K-RE100에는 현재 1천여 개 기업이 가입돼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부품 공급업체들에 RE100을 요구하면 협력업체들도 이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매니저는 “RE100은 단순히 대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중견 중소기업들이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유럽 자동차업체 BMW, 볼보, 다임러벤츠의 경우 부품 공급업체들에게 RE100을 요구하고 있다.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구매량을 줄이거나, 다음 입찰에 참여하지 말라는 통보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회사는 탄소 감축을 하지 못해 공급망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다만 RE100이 기업 경쟁력의 결정적인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유럽의 전기차 배터리업체 노스볼트(Northvolt)는 RE100에 모범적인 회사였지만 최근 파산했다. 이상준 교수는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RE100만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대부분 RE100은 권고 사항이지 강제 조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RE100을 안한다고 수출기업이 당장 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 경쟁력에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은 왜 그렇게 RE100에 뒤쳐졌나? 두 사람은 ① RE100용 물량이 적고 ②비싸다고 했다. RE100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재생에너지는 태양광, 풍력, 수력, 바이오매스, 지열(地熱), 조력(潮力)의 6가지다. 그러나 한국에는 지열, 조력이 거의 없고 수력발전이나 바이오매스는 RE100 조건을 맞추기 어려워 사실상 한국에서는 태양광과 풍력이 전부다. 현재 한국에는 태양광과 풍력을 합해 30여 기가와트(GW)의 설비용량이 있고, 이들이 연간 45~50 테라와트시(TWh)의 전력량을 생산한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반도체 제조 등에 쓰는 전기 사용량만 연간 20TWh 정도다. 기업들의 수요에 비해 재생에너지 생산량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가격 또한 일반 전기료보다 비싸다. 한전의 산업용 전기는 1kWh에 180원 정도인데,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는 210원/kWh 수준이다. 해상 풍력은 300원/kWh 안팎으로 훨씬 비싸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태양광과 풍력으로 만든 전기가 한화로 70원/kWh 정도인데 비하면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다. 한국 기업들이 RE100을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재명 대통령은 RE100 산업단지를 전국에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두 사람은 RE100 산업단지와 함께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를 폐지하고 입찰제로 가는 것을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RPS는 재생에너지 공급을 늘리기 위해 2012년 정부가 도입한 제도다. 대규모 발전사업자는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동안 재생에너지를 보급하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하루빨리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두 전문가의 얘기다. 첫째 RPS 때문에 재생에너지가 발전 공기업으로만 흘러가고 민간 기업들이 살 수가 없다. 둘째 현재 RPS 제도에서는 재생에너지 가격을 낮춰 경제성을 높일 유인이 적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재생에너지가 원전이나 다른 발전원보다 값이 싸져서 경제성이 높은데 반해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김승희 매니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가뜩이나 없는 자원을 놓고 RPS라는 정부 수요와 민간의 전력구매계약(PPA) 수요가 서로 경쟁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들의 RE100을 지원해주려면 RPS를 폐지해야 한다. 정부가 사주는 물량을 줄이고 민간이 살 수 있는 숨통을 열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준 교수는 “RPS 제도가 10여 년 간 재생에너지 물량 확대에 기여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는 물량에만 집중하던 시스템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가 경제적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아지도록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RE100은 실시간 재생에너지 전력을 공급받는 게 아니다. 실제로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사기도 하지만, 보통은 사용한 전력량만큼의 재생에너지 인증서(REC)를 구매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첫째 전기에는 꼬리표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과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보통 직접 연결되기보다 기존 전력망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전선 안에는 재생에너지 뿐 아니라 원전, 석탄, 천연가스(LNG) 등이 만든 전기가 다 섞여 있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만 분리해낼 수 없다. 두 번째는 재생에너지의 한계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는 환경에 따라 전력생산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업의 전력사용량과 실시간으로 일치시킬 수가 없다. 태양과 바람이 없을 때는 전기를 생산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공장을 멈출 수는 없다. 따라서 물리적 전기는 기존처럼 공급받되, 해당 전기가 재생에너지로 생산됐다는 인증서를 사게 된다. RE100은 '내가 사용하는 전기가 어디선가 생산된 재생에너지라고 치자'라고 하는 셈이다. 한국은 RE100도 쫓아가기 바쁜 상황이지만, RE100은 한계가 있다. RE100은 전기를 많이 사용하고 세계적 영향력이 큰 대기업들만 회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주의 별처럼 많은 글로벌 기업들 가운데 11년이 넘도록 400여개만 회원이 되었다. 새로 들어갈 만한 대기업도 별로 없다. RE100이 더 확대되는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또한 산업현장에서 전기는 온실가스 배출의 일부에 불과하다.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은 전기도 많이 사용하지만 제조공정 자체에서 어마어마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따라서 RE100은 중요한 이니셔티브이지만 기후변화 대응에서는 일부 분야에 그칠 수밖에 없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RE100이 실시간 재생에너지가 아니라는 점도 한계다. 그래서 클라이밋그룹은 2021년 더 야심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4/7 CFE(Carbon Free Electricity)로, 매일 24시간, 주 7일 실시간으로 무탄소 전기를 달성하자는 더 강력한 프로젝트다. 구글, 아스트라제네카, 슈리시멘트, 보다폰 등이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재생에너지 뿐 아니라 원자력 발전과 탄소 포집 및 저장(CCS) 설비를 갖춘 화력발전도 포함시켰다. 24/7 CFE는 RE100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여서 현실적으로 원전을 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승희 매니저는 “재생에너지 시설이 늘어날수록 LNG발전소, 양수, ESS 등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전원이 같이 늘어나게 된다. 저는 재생에너지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현실적으로 재생에너지만으로 데이터센터에 물리적 전기를 100% 공급할 수 없다. 데이터센터는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필요한데 지금은 세계 어디서도 재생에너지만으로 그것을 실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RE100 자체는 한계가 많지만, '재생에너지를 통해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국제적인 흐름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RE100이 민간 캠페인이라면, 이를 법적으로 제도화한 것이 탄소국경조정제도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RE100을 달성했다. 따라서 'RE100은 불가능하다'는 말은 틀렸다. RE100은 기업들의 경쟁력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었다. 한국도 재생에너지 제도와 시장을 개편해 기업들이 RE100을 달성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신연수 칼럼] 떠날 때 박수 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국민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에서는 51.7% 득표율이 예상됐지만 결과는 49.42%였다. 민주화 이후 최다 득표율을 기록한 박근혜 대통령의 51.55%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됐는데, 결과적으로 3사의 출구조사는 크게 틀렸다.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가 받은 표를 합하면 이 대통령의 표와 거의 같았다. 민주당 지지자들 중에는 “어떻게 내란 세력인 김문수 후보가 40%를 넘을 수 있느냐"며 어이없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번 대선은 계엄과 내란 세력을 심판한다는 아주 뚜렷한 구도여서 압도적 승리가 예상됐는데 뜻밖이라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중요한 순간마다 절묘한 투표 결과로 민심을 드러낸 적이 많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이번 선거는 계엄 세력을 단죄하면서도, 민주당과 이재명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했다고 본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런 민심을 잘 새겨야 한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지 1주일이 지났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조사한 국민 여론은 '이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할 것'이라는 기대가 58.2% 였다. 이는 역대 대통령들의 70%대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국민은 이 대통령에 대해 아직 전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가까이에서 몇 차례 접해본 이 대통령은 격식이 없고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현안 파악도 빠르고 업무 장악력도 강하다. 본인이 스스로를 “꽤 큰 개미 중 하나"라고 표현할 만큼 주식투자 경험도 있고 경제 논리에도 비교적 밝다. 근래의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경제를 잘 아는 대통령이 될 지도 모른다. 비록 탄핵 때문에 인수위원회도 없이 집권했지만 비교적 준비가 잘 된 대통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이번이 세 번째 대선 도전이었는데 그때마다 전략과 정책이 발전했다. 성남시장일 때는 물론이고 2022년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비주류였던 이재명 후보의 캠프는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부동산을 비롯한 정책 제시나 위기 대응에서도 우왕좌왕했었다. 이번 21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은 훨씬 체계적이고 안정적이었다. 선거 전체를 내란 종식 구도로 가져가면서, 개인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는 무시하는 전략을 썼다. 대신 경제와 민생을 앞세우며 차근차근 정책들을 발표했다. 정책도 논란이 될 만한 것들은 자제하고 '부자 몸조심' 전략을 철저히 지켰다. 이 대통령이 2년 간 민주당 대표를 지내며 당과 호흡을 맞춘 결과로 보인다. 정권을 잡으려면 본인의 준비도 중요하지만 같이 할 참모들의 팀워크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예전보다 집권 준비가 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힘의 체계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 김문수 후보가 핵무장 문제에서 후보의 말과 공약집이 다르게 나오는 등 좌충우돌한 것과 비교된다. 반면 이 대통령에게 염려되는 점도 많다. 가장 많이 들리는 걱정 중 하나는 퇴임 후까지 사법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고 포퓰리즘적 독재의 길을 열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국민의 호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가끔 튀어나오는 경솔한 언행도 자제해서, 사소한 문제로 중대한 국정 과제를 흐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근 법원은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과 대장동 비리 관련 재판을 무기 연기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에게는 불법 대북 송금 혐의 등 다른 재판들이 남아 있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재임 중 형사상 불소추 특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소추의 범위가 기소만인지, 진행 중인 재판도 해당되는지 논란이 있다. 필자는 법률 전문성은 없지만 상식적으로 대통령의 신분 안정을 위한 조항이라면 내란 외환죄가 아닌 한 재판도 중단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국민은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 도덕성이 의심되는 언행이나 가족문제를 알면서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이제는 야당과 반대자들도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협조하고 조금은 인내하면서 지켜보는 것이 옳다. 이 대통령은 취임선서에서 약속한 대로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모두의 대통령'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2030년에는 지지율 80%의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치기를 바란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기후경제 언박싱> ③탄소중립(Net Zero)은 가능할까?

“넷제로는 어차피 달성할 수 없는 목표다." “넷제로는 달성해야만 하고, 할 수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과 기후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주 나오는 논쟁이다.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재앙을 막으려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서 지구 온도 상승을 멈춰야 한다. 세계는 2015년 파리협정에서 2100년까지의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의 1.5℃로 제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전 세계가 2050년까지 넷제로(Net Zero)를 선언해야 한다"고 했다. 넷제로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을 더했을 때 온실가스 순 배출량이 0인 상태를 의미한다. 그 후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넷제로를 선언했다.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에서 인간이 내뿜는 온실가스를 줄이거나 다 빨아들여 넷제로를 만들 수 있을까? 또 법으로 강제하기 어려운 국제사회에서 넷제로 약속이 지켜질까? 미국은 바이든 정부가 넷제로를 선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파리협정에서 탈퇴해 버렸다. 인간의 모든 활동에는 이산화탄소(CO₂)를 비롯한 온실가스가 많이 발생한다. 세계 인구는 늘어나고 경제성장도 계속되는데 넷제로가 가능할까? 인류는 앞으로 점점 더 심각해질 기후재난을 피할 수 있을까? 안영환 숙명여대 교수(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기후변화정책분과위원장), 양수영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전 서울대 객원교수).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의 자문을 받아 살펴본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고, 그 중 상당량이 공기와 바다 등에 누적돼 있다. 2100년까지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하려면 2030년에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 줄이고 2035년에는 60% 줄여야 한다. 그래서 2050년에는 순 배출량 0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목표에 전혀 못 미친다. 온실가스의 70%를 차지하는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은 코로나19 등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된 경우를 빼고는 꾸준히 늘어왔다. 2010년 334억 톤이었던 배출량은 2019년 371억 톤, 2023년 378억 톤으로 늘었다. 양수영 전 석유공사 사장은 “2015년 파리협정부터 온실가스 감축을 본격화했으니 지금쯤은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계속 늘고 있다. 지금 추세를 보면 2030년에 43%를 줄이기는커녕 5~10% 줄이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내놓은 이산화탄소 배출 전망을 보면 넷제로의 목표와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 분명하게 보인다. 그래프에서 맨 위 빨간 선은 세계가 파리협정을 맺지 않고 CO₂를 배출했을 때를 가정한 전망, 맨 아래 녹색 선은 2050년 넷제로를 이루기 위한 배출 시나리오이다. 그 사이에 파란 선인 이행가능정책은 각 국 정부가 실제로 시행 중인 정책을 반영한 전망이고, 노란 선은 각 국이 발표한 공약을 달성했을 때의 전망이다. 각 국 정부가 공약했거나 실제 시행하고 있는 정책들이 실현되더라도 2050년 넷제로와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양 전 사장은 “발표공약달성 시나리오나 이행가능정책 시나리오도 사실은 지킬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것도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양 전 사장 말고도 에너지 전문가들 중에는 “넷제로는 애초에 달성할 수 없는 목표"라면서 “지금은 기후변화 대응보다 경제성장과 에너지안보가 더 중요하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양 전 사장은 또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통해 넷제로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에너지믹스와 전력믹스를 구분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비판했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은 전기에너지만 생산할 수 있는데, 인간이 사용하는 최종 에너지 가운데 전기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수준이다. 산업 분야는 물론이고 비행기 선박 트럭 같은 수송, 건물, 난방 등 많은 분야가 전기화되지 못해 넷제로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양 전 사장은 “2023년 1차 에너지 소비를 봐도 태양광과 풍력은 5%, 화석에너지가 76%다. 5%밖에 안 되는 태양광과 풍력으로 76%를 차지하는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을까. 게다가 태양광과 풍력은 계속 전기를 생산할 수 없는 간헐성의 문제가 있고, 전기는 저장이 어려운데다 전기저장장치(ESS)는 비용이 많이 들어 태양광과 풍력의 대폭 확장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즉 재생에너지로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파리협정을 맺은 유엔기구도 넷제로의 어려움을 인정한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목표 달성을 위해 5년마다 '전 지구적 이행 점검(Global Stocktake)'을 하기로 하고 2023년 첫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각 국이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달성하더라도 2030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9년에 비해 2% 밖에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렇게 되면 2100년 지구 온도는 2.1~2.8℃ 상승한다. 보고서는 1.5℃ 목표를 달성하려면 재생에너지 3배 확대, 에너지효율 2배 개선 등 더 강력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세계 각 국에 촉구했다. 안영환 숙명여대 교수(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기후변화정책분과위원장)는 “넷제로는 개문발차(開門發車)형 목표라고 생각한다. 차 문을 열고 일단 출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기술을 개발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너무 급하고 심각하니까 일단 목표를 정하고 계속해서 기술개발하고 에너지 수요도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제로를 하려면 에너지 수요를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연료를 전환하고, 남은 탄소를 포집하는 모든 과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안 교수는 “기술개발도 하고 우리가 라이프스타일을 바꿔 수요도 줄여야하지만 결국 이것은 비용의 문제, 우리가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느냐 우선순위의 문제이지 넷제로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정 기술 역시 정책과 인센티브에 따라 더 빨리, 더 많이 개발될 수 있다고 했다. 전 세계 700여명의 전문가들이 연구와 토론을 통해 발간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 역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저렴한 기술들이 이미 많이 개발돼 있다고 했다. 'CO₂ 배출량 1톤을 줄이는데 추가로 드는 비용이 100달러 이하인 방법으로 2030년까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5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농업, 건물, 수송, 산업 등 많은 분야에서 그렇다. 최근엔 좀 더 희망적인 소식도 나온다. 미국의 경제지 블룸버그는 “전 세계 에너지 관련 CO₂ 배출량이 긴 하강을 시작했다"고 선언했다. 블룸버그는 4월 발표한 '신에너지전망(New Energy Outlook) 2025'에서 “2024년 세계 CO₂ 배출량이 정점을 찍고 2025년은 구조적인 배출량 감소의 첫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세계 CO₂ 배출량이 처음으로 경기침체가 아니라 청정에너지 증가 때문에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프를 보면 일부러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과 기존 정책을 바탕으로 예측한 시나리오(ETS· Economic Transition Scenario)에서도 2024년을 정점으로 CO₂ 배출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NZS는 넷제로 시나리오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은 “경제적 비용과 효율성만 따졌을 때도 이미 청정에너지가 화석에너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정 전력기술의 보급, 운송을 포함한 최종 사용처의 전기화, 건물과 산업의 에너지 효율 개선 등을 통해 전 세계 CO₂ 배출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었던 중국의 탄소 배출이 처음 줄었다는 뉴스도 나왔다. 이달 초 AFP 통신은 영국의 싱크탱크 '카본브리프'를 인용해 중국의 올해 1분기(1~3월) 전력 수요가 늘었음에도 탄소 배출은 줄었다고 전했다. 중국의 1분기 전력 수요는 지난해 동기보다 2.5% 증가했는데 태양광·풍력과 원자력 발전 비중이 늘어나 전력 부문의 탄소 배출이 5.8%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전체의 탄소 배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줄었다. 이유진 소장은 “독일은 1990년 대비 41%를 줄였고, 영국은 50%, 프랑스는 30%를 줄였다(2023년 자료 기준).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이었던 중국은 지금 에너지 전환 속도가 제일 빠르다. 온실가스 감축이 불가능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넷제로는 화석에너지에 기반한 시스템을 완전히 다른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어서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어렵다고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후변화가 임계점을 넘으면 재난의 규모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을 수 있다. 지금 온실가스 감축에 들이는 비용이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 비용보다 저렴하리라는 것이다. 2019년 유럽연합(EU)이 최초로 '탄소 중립 대륙'을 선언했고, 본격적으로는 2020년부터 전 세계가 탄소 감축을 시작했는데 그래도 5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다. 이 소장은 “영국도 독일(2045년)도 중국(2060년)도 '탄소 제로 사회'로 가고 있다. 넷제로가 어렵더라도 가급적 달성 시기를 당기도록 노력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넷제로가 가능한지, 언제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 중인 것으로 보인다. 온실가스 배출량이나 향후 시나리오도 조사 기관이나 시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첫째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에서 넷제로가 가능한가? 많은 청정 기술들이 개발돼 있지만 비용이나 무관심 때문에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다. 또 앞으로 더 많은 기술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둘째 많은 노력과 비용을 요구하는 넷제로 약속이 국제사회에서 지켜질 것인가? 이것은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달렸다. 점점 더 기후재난이 심각해지리라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받아들인다면, 시민들이 각 국 정부에 약속을 지키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스스로 그러한 소비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넷제로와 탄소중립: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등으로 구성된다. 다만 온실가스의 70%가 CO₂이기 때문에, 보통 전체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값으로 계산할 때가 많다. 따라서 넷제로와 탄소중립은 대개 같은 개념으로 사용한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신연수 칼럼] 소프트 파워의 시대는 끝났나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개념을 정립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지난 주 별세했다. 강압이나 물질적 보상을 통해 상대방의 행동을 바꾸는 능력이 '하드 파워'라면, 매력이나 설득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소프트 파워다. 미국이란 나라가 냉전 이후 세계 원 톱이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물론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 덕분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와 문화, 외교적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3선 출마를 거절함으로써 민주적 정권교체 전통을 확립한 것이나,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한 사례는 수많은 책과 영화를 통해 세계인들의 머릿속에 미국의 문화와 가치를 새겨 넣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연합(UN) 설립을 주도하며 지금의 국제질서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랬던 미국이 스스로 소프트 파워를 파괴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멋대로 다른 나라를 협박하고 불안하게 한다. 미국의 가치관을 세계에 퍼뜨리는 하버드, 스탠퍼드 같은 명문 대학들에 대한 지원을 끊고, 다양성과 포용성 정책을 폐기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해외 원조를 중단하고, 담당 부처인 국제개발처 직원들을 해고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의 국익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단기적인 시야로 국익을 챙기다가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국익을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후 국력이 무척 커졌지만 국제사회에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2030년이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추월하리라는데, 미국은 소프트 파워조차 버리고 무엇으로 중국을 이기려고 하는지 의아하다. 소프트 파워의 결핍은 국제 정치 뿐 아니라 국내 정치에서도 두드러진다. 국내 정치야말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프트 파워의 경연장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거대 양당이 벌인 행태는 실망스러웠다. 자기네 대장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고 대법원장 탄핵을 외치는 민주당에는 독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삼권분립이라는 것이 이제 막을 내려야 될 시대가 아닌가"라며 아예 대놓고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말까지 한다. 다수당의 힘을 내세워 장관들과 검사들을 줄줄이 탄핵한데 이어 법관들도 탄핵할 참이다. 민주당이 국회 다수당으로서 입법권을 장악한데 이어 행정권, 사법권까지 갖는다면 브레이크 없는 독주 체제가 될까 걱정이다. 이재명 후보는 “복수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지난해 총선에서 '비명횡사' 공천으로 '뒤끝 작렬'을 보여준 바 있다. 반대파를 포용하기보다 확실한 보복으로 모두 엎드리게 만든 노골적인 '하드 파워'였다. 국민의힘도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게 없다. 김문수 후보는 경선에서 단일화를 외쳤지만 당선된 뒤에는 공식 후보라는 '권력'을 믿고 약속을 저버렸다. 당 지도부는 자신들이 뽑은 대선 후보를 한밤중에 날치기로 바꾸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단일화를 관철하려 했다. 무엇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이야말로 소프트 파워를 무시한 전형적인 사례다. 윤 전 대통령은 3년 전 대선 때 야당과의 협치, 국민 통합을 외치며 당선되었다. 그러나 집권한 뒤에는 소통하고 설득하기보다 야당과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갔고, 결국 군사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대착오적인 계엄령까지 선포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는 저서 에서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민주주의의 탈선을 막는 가드레일 역할을 한다고 했다. 정치적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고, 주어진 권력을 행사할 때 자제심을 발휘하는 관행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라는 것이다. 관용과 절제의 미덕을 저버리고 극단적 대립을 일삼는 정치인들이 새겨야 할 말이다. 엊그제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한 대선 후보들은 모두 계파를 초월한 화합과 국민 통합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권력을 쥐게 되면 소통과 타협보다 제도적 강제력을 앞세울까 걱정이다. 어느 후보가 약속을 잘 지킬지 눈 밝은 유권자들이 승리하는 대선이 되길 바란다. 나이 교수는 떠났지만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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