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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신연수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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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경제 언박싱> ① 기후위기는 가짜인가?

기후와 에너지는 인류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보다 이념적 선입견이 앞서거나, 정보는 넘치지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기후와 에너지, 그리고 경제에 관한 정확한 사실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을 취재해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기후에너지 분야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하자마자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파리협정은 지구 온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세계 190여 개 국가들이 모여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고 이행하겠다는 국제 협약이다. 트럼프는 “지구온난화는 중국이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지어낸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말은 근거가 없지만, 과학자들 가운데서도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는 과학적 증거가 없거나 과장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의 주장은 무엇이고 기후변화의 증거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기후과학을 전공한 국종성 서울대 교수와 김백민 부경대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지구 평균 온도가 몇 도인데? 지구온난화를 많이 얘기하는데, 지구 온도가 몇 도에서 몇 도로 올라갔다는 것인가? 왜 그런가? 기후변화 연구의 기초가 된 연구로는 두 가지를 많이 꼽는다. 일명 하키 스틱 커브와 킬링 커브다. ○지구 온도 상승을 보여주는 하키스틱 커브 미국의 대기과학자 마이클 만(Michael E. Mann)이 1999년 학술지에 발표한 하키 스틱 커브(Hockey Stick Curve)는 기후 변화에 대한 큰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마이클 만은 지난 1000년 동안의 지구 북반구 평균 기온을 연구했는데 그래프의 모양이 하키 스틱을 닮았다고 해서 하키 스틱 커브라고 불린다. 하키스틱 커브를 보면 지난 10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은 큰 변화가 없다가 1900년 이후 최근 100여 년 동안 급격히 치솟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치솟았다고 하지만 숫자로 보면 AD1000년부터 1900년까지는 13.6∼13.8℃ 사이였고 1998년은 14.6℃로 겨우(?) 1℃ 올랐다. 마이클 만은 1900년 이전의 온도는 나무의 나이테와 산호, 빙하코어에 있는 산소동위원소 비율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복원했고, 1900년 이후는 온도계를 통한 측정 자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하키스틱 커브는 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 3차 보고서(2001년)에 대표 논문으로 채택되었다. ○이산화탄소 증가를 보여주는 킬링 커브 하키스틱 곡선과 함께 지구온난화 논의의 기초가 된 연구가 미국 대기과학자 찰스 데이비드 킬링(Charles David Keeling) 박사의 킬링 곡선이다. 킬링 박사는 1958년 청정지역인 하와이 마우나로아산에 관측소를 만들어 하루도 빠짐없이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1950년대 이후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점점 높아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1950년대 310ppm이던 이산화탄소 농도는 2023년 425ppm을 넘어섰다. 찰스 킬링 박사는 2005년 작고했는데 그의 아들인 랄프 킬링 박사가 계속해서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가스에 의한 온실효과를 발견하고, 이산화탄소 급증과 지구 온도 사이의 관계를 증명하면서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라는 가설은 점점 과학적으로 증명돼왔다. ●지구 온도는 계속 변했는데 왜 지금이 문제? 과학자들에 따르면 45억 년의 나이를 가진 지구는 처음에 뜨거운 불덩이였다. 인류가 탄생한 후에도 지구는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끊임없이 온도 변화를 겪어왔다. 그런데 왜 지금 1℃의 온도 변화를 놓고 호들갑을 떨까? 지구는 평균 온도가 30℃로 높았던 적도 있고, -15℃로 낮았던 적도 있다. 공룡이 살던 1억~2억 년 전에는 지구 평균 온도가 25℃를 넘었다. 현존하는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60만 년 전에 처음 탄생했는데, 지구 온도가 지금보다 5~6℃ 낮은 빙하기를 여러 번 겪으면서도 살아남았다. 1만 년 전부터 따뜻하고 안정된 기후가 이어졌고, 이 때부터 인류는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문명의 꽃을 피웠다. 지구가 수십억 년, 수십만 년에 걸쳐 큰 온도 변화를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의 변화에서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속도다. 인류가 탄생한 후에도 지구는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5~6℃ 떨어졌다 올라갔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수십만 년에 걸쳐 서서히 이뤄진 변화였기 때문에 지구 생태계와 인류가 적응할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불과 100여 년 동안 1℃ 이상 상승해 과거보다 200배 이상 빨리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 역사상 큰 기후변화는 생물의 대멸종을 불렀다. 4억 5000만 년 전에는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 충돌로 많은 우주먼지가 지구로 날아와 10℃가 떨어지면서 해양 생물이 전멸하다시피 했다(오르도비스기 대멸종). 2억 5000만 년 전에는 시베리아지역에서 대형 화산들이 폭발하면서 온도가 상승해 지상 생물 70%, 바다 생물 96%가 멸종됐다(페름기 대멸종). 이처럼 급격한 온도 변화는 대멸종을 불렀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빠른 지금의 기온 상승은 지구 생태계와 인간 사회에 큰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 기후 음모론에 불을 붙인 사건들 지구온난화에 대한 논쟁이 가열될 무렵 몇 개의 사건이 음모론을 키웠다. 기후위기 전도사였던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지구환경의 중요성을 설파한 공로로 2007년 IPCC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의 강연을 바탕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2006년)은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문제는 그 중 일부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위험들을 과장했다는 것이다. 또 2009년 11월에는 영국의 이스트 앵글리아대 기후연구소 필 존스 소장이 IPCC 4차 보고서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과 주고받은 이메일이 컴퓨터 해킹으로 인해 공개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이메일에서 기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일부 자료를 숨기거나 조작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김백민 교수는 “과거 일부 미심쩍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연구들이 기후변화를 입증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전체를 의심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지금도 기후변화에 대한 언론 보도나 책, 그리고 강연하는 분들이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갖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시나리오란 현실이 아니다. 어떤 조건이 되었을 때라고 가정을 하는 것이고 그 가정에 부합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다 하는 예측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확률 0.1%도 안 되는 시나리오에 대해 그걸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그냥 다가올 미래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2022년 출간된 '최종경고: 6도의 멸종'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최근 화제가 된 이 책은 환경저널리스트 마크 라이너스가 쓴 책으로 '기후변화의 종료, 기후붕괴의 시작'이란 자극적인 부제를 달고 있다. 김 교수는 “지구온도 6도 상승은 우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지금의 5배가 되어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현재 추세로 봐서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 기후위기를 강조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런 충격적인 내용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장 근접한 가능성을 갖고 과학적으로 얘기해야 합리적 토론과 정책 수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주 작은 확률을 가지고 지구 생태계가 다 무너지고 인류가 멸망할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기후위기를 대응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이런 사건이나 비전문가들의 과장은 제외한다 하더라도, 과학자들 가운데서도 기후위기가 잘못됐거나 과장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지구 온도 상승은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변화라는 주장이다. 둘째 이산화탄소 농도가 두 배가 되더라도 지구 온도는 그리 많이 상승하지 않으리라는 주장이다. ①대기물리학자인 프레드 싱어(Fred Singer) 전 버지니아대 교수는 지구 온난화는 자연적인 기후 주기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6년 발간된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Unstoppable Global Warming)는 책에서 “지구 기후는 약 1,500년 주기로 따뜻해지고 차가워지는 자연적 사이클을 따른다"면서 이 주기는 태양 활동과 같은 자연적 요인에 의해 주도된다고 했다. ②기상학자인 리처드 린젠(Richard Lindzen) 전 MIT 교수는 기후위기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구 온도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하는데 기후위기론자들은 이산화탄소의 역할을 과대평가했다고 말한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산업혁명 이전의 2배가 되었을 때 지구 온도는 3℃ 안팎의 상승을 할 것이라고 IPCC가 예측한 반면, 린젠 교수는 구름의 작용 등 지구 자체 시스템으로 인해 지구 온도는 1℃ 이상 높아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종성 서울대 교수는 “과학은 진실을 말하는 학문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증거들에 대해 가장 합리적인 설명을 하는 게 과학"이라고 말했다. 이에 비추어보면 “기후변화가 가짜"라는 주장은 주장만 있을 뿐,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나 연구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후속 연구들에 따르면 프레드 싱어 교수가 주장한 태양 활동은 최근의 급격한 온도 상승에 기여한 바가 없고, 린젠 교수의 주장 역시 후속 연구들을 통해 반박되었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2배가 되지 않은 상황(2024년 기준 50% 증가)에서도 이미 2011~2020년 지구 온도는 1850~1900년에 비해 1.1도 높아졌다. 반면에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를 입증하는 증거와 연구들은 계속 쌓이고 있다. 마이클 만의 하키스틱 커브 역시 초기에 특정 나무의 나이테를 너무 많이 반영했다며 조작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다른 방법들로 연구한 논문들이 모두 하키스틱 커브와 비슷하게 나왔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대기과학과 기후과학을 전공한 두 교수는 “이제는 지구과학자의 99% 이상이 기후변화를 인정한다"고 입을 모았다. 1990년대까지는 기후변화에 회의를 가진 과학자들이 일부 있었지만, 그 후 관련 연구들이 계속 쌓여서 적어도 과학계에서는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 남은 문제들 기후변화가 점점 확실한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IPCC 보고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1996년 2차 보고서에서 “여러 증거들은 기후에 대한 인간의 영향이 분명하다는 것을 시사한다(suggest)"라고 했던 표현은 2014년 5차 보고서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관찰된 온난화의 주요 원인은 인간 활동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extremely likely)"고 강화됐다. 2023년 6차 보고서에서는 “인간의 영향으로 대기와 해양, 육지가 따뜻해졌다는 것은 명백하다(unequivocal)"라며 세월이 갈수록 표현이 점점 확실해졌다. 그러나 앞으로 밝혀져야 할 문제들도 많다. 첫째 산업혁명 이후 지구 온도가 급상승하면서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늘어났지만 여기에 인간 활동이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인간이 일으킨 변화, 인간이 일으킨 변화에 의해 연쇄적으로 일어난 자연적인 변화, 순수 자연 현상들이 각각 몇% 정도 관여되었는지는 계속해서 연구하고 정교화해야 할 과제다. 둘째 미래 예측과 관련해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가 늘어났을 때 기후가 얼마나 변할지는 시나리오상의 범위로만 주어진다. 6차 IPCC 보고서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산업혁명 이전의 280ppm에서 두 배인 560ppm이 되면 지구 평균 기온이 2.5~4℃ 높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1℃ 변하는 것도 큰 문제인데, 예상치의 범위가 1.5℃나 된다는 것은 현재 지구과학의 한계를 보여준다. 김 교수는 “지구는 하나뿐이라서 지구과학은 물리학이나 생물학처럼 실험을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컴퓨터로 기후 모델을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하는데 거기에는 늘 불확실성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 교수도 “기후는 대기, 해양, 지질이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명백한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어렵다. 미래 예측을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며 기후과학의 복잡성을 설명했다. 두 과학자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기후변화에 대한 여러 가지 회의론은 과학적 근거를 가졌다면 귀담아 듣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과학은 의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경제적 배경으로 인해 무조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것, 무슨 증거를 제시해도 부정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반대로 극단적 날씨가 모두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하거나, 곧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공포심을 부추기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기후과학, 지구과학은 완벽하지 않지만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는 거의 증명됐다고 봐야 한다. [IPCC]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의 약자. 1988년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 창설.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영향,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적, 기술적, 사회경제적 지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세계 195개국이 참가. [기후변화] 지구의 기후가 장기적으로 변화하는 현상. 비슷한 말이지만 지구온난화는 인간의 영향을 좀 더 강조한 단어이고, 기후위기는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뜻으로 쓰인다. [날씨와 기후] 기후과학자들은 날씨를 기분, 기후를 성격에 비유한다. 날씨가 사람의 기분처럼 수시로 달라지는 것이라면, 기후는 사람의 성격처럼 비교적 오랜 기간 나타나는 날씨의 평균적인 상태를 말한다. 또 기후변동은 비교적 단기적인 변화를, 기후변화는 장기적인 변화를 뜻한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신연수 칼럼] 헌법을 바꾸면 극한 대립이 사라질까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대선 주자들이 앞 다퉈 개헌을 주장하고 나섰다. 여야 원로 정치인들의 단체인 대한민국 헌정회는 대국민 서명운동까지 시작했다. 여야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모처럼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개헌이 실현될 수 있을까? 헌정회는 서명운동을 시작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분산 개헌은 이 시대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고 했다. 여야의 극한 대립과 계엄령, 둘로 쪼개진 나라가 1987년 체제의 한계를 보여준다고도 했다. 그래서 정치적 타협을 강제하도록 헌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나 4년 중임제는 문제가 없나 그러나 대안으로 나오는 개헌안들을 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통령 4년 중임제안을 보자.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면 대통령의 권한이 줄어들까. 오히려 “대통령 4년 중임제는 대통령의 권한이 분산되기보다 집중 강화될 우려가 있다(제20대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활동결과 보고서' 2018)"고 정치인들 스스로 지적한 바 있다. 다음 대통령은 3년만 하고 2028년 대선과 총선을 같이 치르자는 방안은 더 위험해 보인다. 대선과 총선을 같이 실시하면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국회에서도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권력 분산이 아니라 권력 독점이 더 심해지고 국회의 견제 기능은 마비될 것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나 이원집정부제는 어떤가.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임명하는 현행 헌법과 달리,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하거나 선출하는 방안이다. 대통령은 외교 통일 국방만 담당하고 내정은 총리가 맡는 방법이 많이 거론된다. 대통령에 쏠린 권력을 분산할 좋은 방법 같아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다른 정당 출신이 되면 정부마저 둘로 쪼개져 아무 일도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미국과의 통상 문제는 경제인가 외교인가? 대통령과 총리가 영역 다툼을 하며 대립할지도 모른다. ◇제도가 문제인가, 사람이 문제인가 개헌을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모든 제도에는 장단점이 있는데, 개헌만 하면 여야 대립이 사라지고 정치가 발전할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같은 체제에서도 29번의 탄핵, 38번의 거부권은 다른 정부, 다른 국회에서는 없었다. 현행 헌법으로도 김대중 대통령은 자민련 출신 인사를 총리로 임명해 연합정부를 꾸렸다. 우리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잘못 뽑은 건지, 제도가 잘못된 건지는 좀 더 따져봐야 알 일이다. 여야가 개헌에 한 목소리를 내는 것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제각각이다. 권력 구조만 해도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대통령에 국회 해산권 부여, 상하 양원제처럼 중구난방이다. 소득대체율 1%포인트 차이를 좁히지 못해 국민연금 제도를 못 바꾸는 여야가 이런 복잡한 문제를 단기간에 합의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정치인들은 개헌을 진정성 없이 국면 전환용으로 사용해왔다는 의혹이 짙다.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몰리자 마지막 변론에서 개헌을 제안했다. 국민의힘 역시 개헌에 반대하다가 대통령 탄핵 이후 당에 개헌특위를 꾸렸다. 반대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선 때부터 줄곧 개헌을 주장했지만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지금은 입을 다물고 있다. 2014년 헌법 불합치로 무효가 된 국민투표법을, 정치권이 10년 넘게 개정하지 않고 방치한 것을 보면 개헌에 진심인지 의문이다.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려면 개헌은 필요하다. 1987년 마지막 개헌 이후 40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우리 사회는 많이 변했다. 훌륭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21세기 시대정신을 담아낼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 변화에 맞게 다문화 가족에게도 더 많은 인권을 보장하고, 지방자치단체를 실질적인 지방정부로 바꾸며, 감사원은 독립기구화 하는 방안을 검토하면 좋겠다. 그러나 여야 정치인들이 개헌을 정략적으로, 빛깔 좋은 구호로만 이용해서는 오히려 국가대계를 망칠 우려가 있다. 정치인들은 왜 개헌 논의가 국민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서민들은 '계엄보다 더 무서운 불황'에 고통 받고 있다.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려면 그 효용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개헌을 하면 국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신연수 칼럼] 트럼프의 ‘벼랑 끝 전술’

역시 트럼프다. 취임하자마자 전방위적인 '관세 폭탄'을 퍼붓고 있다.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의 전형이다. 국제정치 용어인 벼랑 끝 전술은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 상대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전술을 말한다. 트럼프는 1기에 이어 2기에는 더 강하게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할 모양이다. 우리에게 벼랑 끝 전술은 '국제사회의 문제아' 북한을 묘사하는 단어로 친숙하다. 그러나 사실 원조는 미국이었다. 냉전시대 소련에 대해 핵전쟁도 불사할 것처럼 위기를 고조시키는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원래 미국에 저작권이 있던 벼랑 끝 전술이 21세기 버전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할까. ◇트럼프는 왜? 트럼프의 벼랑 끝 전술은 특히 경제 통상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트럼프가 동맹국이자 이웃나라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 25% 관세를 선언했을 때 경제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전쟁"이라고 비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적으로 무역전쟁은 대개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1930년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다른 나라들의 보복 관세로 이어져 세계 무역이 크게 줄고 경기침체와 대공황이 심해졌다. 세계 경제가 1930년대보다 더 밀접하게 연결된 지금, 미국의 높은 관세가 실현되면 상대국은 물론이고 미국 경제도 타격을 받는다. 공급망이 마비되고 물가가 상승하며 경제성장률이 떨어질 것이다. 트럼프의 경제 참모와 관료들도 무역전쟁의 위험을 모르지 않을 터, 그런데도 트럼프는 포기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관세는 한 달 보류했지만 철강 반도체 유럽 등으로 전선을 넓히고 있다. 트럼프는 왜 이러는 걸까?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무역적자를 줄이고 미국에 공장을 유치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관세를 내기 싫으면 미국에 공장을 세우라'고 한다. 실제로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미국 공장에서 자동차가 완성되려면 관련 부품들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여러 차례 드나들 만큼 오늘날의 제조업은 다국적으로 얽혀 있다. 더 많은 이익과 더 적은 비용을 추구하는 기업이 이를 포기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미국 헌법상 대통령은 2번만 할 수 있기 때문에 트럼프는 이번이 마지막 임기다. 4년 안에 이 복잡한 산업의 재편이 얼마나 이뤄질까. ◇미국에 대한 국내외적 도전과 응전 트럼프의 전술은 경제적 목적 뿐 아니라 정치 사회적 목적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 첫째 트럼프의 지지 세력인 러스트벨트 백인 노동자들을 향한 메시지다. 바이든 정부 시절 경제가 활성화되고 성장률도 높았지만 이번 대선 직전 유권자의 70%는 경제가 나쁘다고 했다. 아마존 구글 같은 빅테크와 월스트리트가 아무리 잘 나가도 저소득층은 성장의 과실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트럼프는 이런 불만을 파고들어 보호무역의 기치를 내걸었다. 둘째 미국 정부의 엄청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다. 미국 연방 정부 부채는 36조 달러(약 5경 2천조 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20%가 넘는다. 트럼프는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을 약속했기 때문에 재정적자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내국세에서 줄어드는 세금을 관세로 메우겠다는 생각이다. 셋째 관세를 국내 문제 해결을 포함한 여러 가지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계획이다. 콜롬비아가 미국 내 불법 체류자들을 실은 항공기의 착륙을 거부하자 트럼프는 콜롬비아산 수입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자 콜롬비아는 바로 백기를 들었다. 트럼프에게 중요한 것은 거시경제 지표보다 정치 사회적 효과다. 자유무역과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미국 노동자들을 달래야 하고, 턱밑까지 추격해오는 중국을 눌러야 한다. 냉전 이후 세계를 1극 체제로 재편했던 미국이 그만큼 대내외적으로 도전받고 변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른 나라들은 발빠르게 움직이는데 … 따라서 트럼프 정부가 끝나고 다른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쉽게 변할 수 없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 역시 트럼프 1기의 중국 봉쇄와 보호무역 기조를 상당부분 이어받았었다. 트럼프는 이를 좀 더 거칠고 과격하게 실행할 뿐이다. 벼랑 끝 전술은 자칫 모두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한 전술이다. 재앙을 피하려면 미국의 요구에 호응하면서도 우리의 이익을 챙길 현명한 외교가 필요하다. 세계 각 국이 발 빠르게 대미 외교를 펴고 있지만 한국은 국내 정치 상황으로 인해 꼼짝을 못하고 있다. 조속한 정치 안정과 힘 있는 경제외교 정책이 절실하다.

[신연수칼럼] 한국은행이 교육에 참견하는 이유

'한 나라의 번영을 결정하는 요소는 지리적 조건이나 인종적 특성이 아니다. 정치나 경제 같은 제도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들은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어떤 나라는 못 사는가'에 천착했다. 이들은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라는 책에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며, 개인의 재능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포용적(inclusive) 제도를 만든 나라는 번영한다. 그렇지 못한 나라는 가난해진다는 것이 이들의 결론이다. 남한의 경제발전과 북한의 폭망 역시 정치·경제 제도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남한을 콕 집을 만큼, 한국은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동북아의 용(龍)에서 헬조선이 된 한국 그러나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기에는 지금의 현실이 심상치 않다. 성장률은 쪼그라들고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로 떨어졌다. 젊은이들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또는 '헬(hell)조선'이라며 '한국이 싫어서' 이민을 떠나겠다고 한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지옥 같은 경쟁에 내몰리기 싫어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한다. 저출산으로 경제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이고 나라의 존립마저 걱정할 지경이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 사회에 역동성, 특히 계층이동성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한국이 활기차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깡촌 출신도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에 갈 수 있었고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수도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서울 강남 출신과 비강남 출신이라는 새로운 신분제도가 생겼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용어가 상징하듯 부모의 능력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는 세습사회가 되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좋은 대학을 갈 수 없을뿐더러, 대학을 가더라도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느라 학점을 못 딴다. 학점이 나쁘니 좋은 회사에 못 들어간다. 이래서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강조한, 다수의 일반 대중이 자신의 재능과 기술을 펼칠 인센티브가 넘치는 사회, 창의성과 기술혁신이 왕성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재능과 열정이 있지만 배경이 없는 젊은이는 좌절하고, 우리 사회는 잠재적 인재들을 잃고 자원을 낭비하게 된다. ◇다수 국민에게 기회가 넓어지는 사회로 가야 한국은행과 이창용 총재가 교육문제에 대한 쓴 소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한은은 최근 연구보고서에서 서울대 진학생 10명 중 1명이 강남 3구 출신이라는 통계를 내놓았다. 서울과 비서울간 서울대 진학률 격차 중 92%는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 환경 등을 포함한 '거주지역 효과'에 기인한다고도 했다. 이는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로의 이주 수요를 촉발해 수도권 인구 집중의 원인이 되고, 서울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며, 가계대출까지 증가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한은은 대학입학에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상위권 대학들이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신입생을 선발하자는 것이다. 이창용 총재는 한술 더 떠 서울 강남 출신 학생들에 대해 상위대학 입학 상한선을 둬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자 '한은이 금리정책이나 잘하지 웬 오지랖이냐'는 비판부터 '위헌'이니 '강남 학생 역차별'이니 하는 반발이 일었다. 지금의 대입제도는 필답형 지식- 상위권 대학-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좁은 문을 향한 지나친 경쟁으로 학생과 부모를 모두 불행하게 만든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죽이는 과거형 교육제도다. 나아가 한은의 지적대로 수도권 인구집중, 부동산 가격 상승, 가계대출 증가 등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문재인 정부는 세금을 올려 서울 집값을 잡으려다 실패했고, 윤석열 정부는 늘어나는 가계대출을 잡으려 함부로 금융시장에 개입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책 자체도 문제가 있었지만 경제정책만으로 안 되는 한계도 있다. 한은의 교육 참견이 일리가 있는 것이다. 물론 수도권 집중과 서울 집값 상승이 교육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자리와 생활인프라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그러나 교육문제가 핵심 요소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한때 경제성장을 위한 중요한 동력이었으나, 이제는 청년들의 행복뿐 아니라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좋은 제도가 아닐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주목한 것은 경제정책만이 아니었다. 좋은 경제제도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제도와, 일반 대중이 균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중시했다. 한국 경제가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전환해야 하는 지금, 좁은 의미의 경제정책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포용적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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